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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한 제주, ‘5·16 도로’ 이름 바꾸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한 제주, ‘5·16 도로’ 이름 바꾸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하고 있는 제주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인 ‘5·16도로’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28일 서귀포신문 등에 따르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5·16도로 명칭 변경에 대한 도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라산 동쪽 750m 고지를 횡단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31번 지방도로는 흔히 ‘5·16도로’로 불린다. 당시 군사정권이 5·16쿠데타를 정당화하고 기념하고자 5·16도로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공식 작명의 주체는 모른다. 5·16도로가 처음 개설된 것은 1932년. 당시 일제가 군사 목적과 한라산 산림수탈 목적으로 한라산에 임도를 개설했다. 이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라산 남과 북을 횡단하는 도로 건설을 계획했고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62년 3월 현 제주시청 앞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기공식에는 2만명의 도민들이 참석했고,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송민도, 도미, 박재란, 해군군악대 등의 요란한 축하공연이 펼쳐 전국에 생방송으로 나갔다. 1963년 10월 12일에는 개통식도 했다. 5·16도로는 1969년 10월 1일 또 한번 개통식을 갖게 된다. 당시 전 구간에 포장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나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개통식을 다시 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당시 516도로 건설을 총 지휘한 제주도지사는 5·16 이후 박정희가 임명한 현역 해군소장이었다. 제주시 산천단에 위치한 춘강사회복지법인 맞은편 도로변에 2m높이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인 5·16 도로명비가 세워져 있다. 5·16도로 개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도 5·16 군사쿠데타와 박정희에 대한 재조명 논란이 벌어지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한라산 횡단도로에 군사쿠데타를 상징하는 5·16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청산해야 할 역사라는 논리였다. 당시 제주도민 여론조사까지 실시했지만, ‘좋은 역사든 나쁜 역사든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5·16 도로 명칭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국정교과서 ‘이승만·박정희 독재’ 평가 줄이고 단편적 사실만 서술

    국정교과서 ‘이승만·박정희 독재’ 평가 줄이고 단편적 사실만 서술

    교육부는 28일 공개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역대 정부의 독재를 사실대로 서술하고 경제 성장의 성과와 한계를 균형있게 서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재 정부’에 대한 평가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으며, 경제성장의 한계 역시 추상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쳐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에 제기된 ‘독재 미화 서술’ 논란을 의식한 듯 ‘사실대로’ 서술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반공체제와 이승만의 장기집권’ 꼭지에서는 이승만 정부에 대해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나열했다. 그러나 평가는 마지막에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는 언급이 전부다. ‘사실 위주’의 서술 태도는 유신 체제에 대한 서술에서도 비슷하다. 유신 체제의 경과와 긴급조치권, 국민투표 부의권, 국회해산권 등 막강한 권력이 부여됐다는 점을 서술했지만 평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가 전부다. 유신 체제에 대한 시각 자료도 싣지 않았다. 이는 유신헌법에 대해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강화하고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천재교육 검정교과서)을 지적한 교과서보다 후퇴한 서술이다. 유신헌법이 초헌법적이었다는 점은 주석에서 ‘유신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이 초헌법적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설명에서는 마치 국가 안보를 위해 비상사태 선포가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1년 12월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하며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265쪽)라고 서술한 부분이다. 5.16은 ‘군사 정변’으로 표현했다. 검정교과서들도 대부분 ‘군사정변’으로 표현했으나 일부(천재교육)에서는 ‘쿠데타’라는 표현도 병행해 사용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5.16 군사정변에 대해 ‘민주화를 지향한 4.19 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되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군복을 입은 박정희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국정교과서에서는 사진 자료로 서울 도심에 나타난 (쿠데타) 주도 세력의 탱크 모습을 실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문제점에 대해서는 검정교과서가 ‘성과보다 부작용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지적하며 국정교과서에서는 성과와 한계를 균형 있게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서술은 검정교과서와는 반대로 성과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속성장의 그늘’과 ‘산업재해와 환경 문제’ 꼭지를 통해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조건 속에 일해야 했고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서술했다. 정부와 기업인이 노동운동을 억압했다는 표현도 들어갔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내용은 전태일 분신사건, 정부의 도시 빈민층 강제 이주, 농민의 희생 등에 대해 ’뭉뚱그려‘ 추상적으로만 언급하고 세부 항목은 사진 자료로 대신했을 뿐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에 대해서도 국정교과서는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했다. 지나친 외자 도입으로 인한 상환 부담으로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수출에 의존한 결과 일본과 미국 등 대외의존도가 크게 심화했다는 문제점(금성출판사)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신군부가 계엄군을 광주에 투입해 과잉 진압하자 가혹한 진압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저항했다’고 표현해 신군부가 충돌을 야기한 주체라는 점을 밝혔다. 시민의 피해상에 대해서는 ‘계엄군의 발포로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고’, ‘5월 27일 계엄군이 대규모 군대를 투입해 전남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고 서술했다. 검정교과서들은 또 공수부대 투입과 전차 동원,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등 신군부 세력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지만 국정교과서는 ‘과잉진압’, ‘가혹한 진압’ 등으로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국정교과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평가와 친일 관련 서술이 줄어든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대다수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들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는 등 평가를 유보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485개 단체가 모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28일 낮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역사교과서를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효도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룬 단원 제목이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정해진 것부터가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한 데 대해서도 “‘건국절’을 사실상 교과서에 못 박은 것”이라며 “교육부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농단에 놀아났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는 교과서라는 이름을 달기에도 민망한 원고 뭉치”라며 “비공개와 ‘복면 집필’로 일관한 집필과정 자체도 절차적 정당성이 없었다”며 교과서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단체들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교과서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해서 (당장) 논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도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단체로 국정교과서에 동조한 적 없다”며 공개된 국정교과서에 대해 ‘노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순실 국정 농단] 朴대통령 생활기록부 보니 “특정 아동들과만 논다”

    [최순실 국정 농단] 朴대통령 생활기록부 보니 “특정 아동들과만 논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측이 공개한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가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TV조선에 따르면 해당 생활기록부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장충초등학교 1학년 재학시절 “특정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글이 적혀 있다. 3학년 때는 “자존심이 강한 어린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4학년 때는 “약간 냉정한 감이 흐르는 편”이라고 적혀 있다. 성적는 6년 내내 우수했으며, 침착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도 뒤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1961년 이후부터는 박 대통령의 생활 기록부에 부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다. 다만 성심여자고등학교 기록부에 “매사가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이 흠이다”,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과묵한 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터키 “EU 가입 협상 중단 땐 난민 재개방”...獨 “협박 안돼”

     터키가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이 중단될시 국경을 재개방해 난민의 유럽행을 막지 않겠다고 밝히자 독일은 “협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등 EU 가입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내 말을 들으라. 만일 EU가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의 국경 문은 열릴 것이다. 이를 마음 속에 새기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대변인 울리케 데머는 이에 대해 “협박은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유럽의회는 터키의 EU가입 협상 중단 여부를 표결에 부쳐 찬성 479표, 반대 37표(기권 107표)의 압도적 비율로 이를 통과시켰다. 터키 정부가 지난 7월 군사 쿠데타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뒤 과도한 탄압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유럽의회 의결은 구속력이 없지만 유럽 내부에서는 의회 표결을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의회 의원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벨기에 총리는 “EU 집행위원회가 권고를 최대한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실제 EU가 협상을 중단한다면 EU와 맺은 난민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와 EU는 지난 3월 18일 난민협정을 맺으면서 터키를 통하는 유럽행 난민 유입을 막기로 합의했다. 당시 터키는 난민의 질서 있는 유럽행을 주재하면서 난민 부담을 짊어질 국가가 되는 대신, EU 가입 협상을 가속화하기로 하는 등 각종 혜택을 약속 받았다.  이와 관련해 데머 대변인은 난민협정이 “모든 주체들의 이해에 맞았다”면서도 “(양측에) 어려움이 있다면 해소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필리핀에선 마르코스 국립묘지 안장 반발 시위...한국 박정희는?

     필리핀 정부가 20세기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년) 전 대통령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승인하자 이에 대해 반발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언론 필리핀 스타 등이 25일 보도했다. 동시대에 철권 통치를 펼쳤던 박정희(1917~1979년)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촛불 집회가 거센 가운데, 아시아권 두 민주 국가의 과거사에 대한 다른 대응이 주목을 받고있다.  이날 오후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반(反)마르코스 단체와 인권단체 등의 주최로 열린 ‘검은 금요일’ 시위에는 폭우에도 수천 명의 시민과 대학생 등이 참가했으며 상당수가 반마르코스 연대의 표시로 검은 옷을 입었다. 이들은 “마르코스는 영웅이 아니다”며 영웅묘지 안장 철회를 요구했다.  필리핀 국립대의 한 남학생 동호회원 수십 명은 대학 캠퍼스에서 마르코스의 영웅묘지 안치를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체 달리기 행사를 하며 “정부는 역사의 어두운 장을 잊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은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필리핀 정부와 마르코스 가족들은 18일 마르코스의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마닐라 영웅묘지로 기습적으로 이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르코스가 전직 대통령이자 군인으로서 영웅묘지에 안장할 자격이 있다며 안장 승인을 철회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반면 야당인 자유당(LP) 소속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은 마르코스 가족들이 도둑처럼 시신을 영웅묘지에 안장해 국민을 모독했다고 비판하는 등 야권의 반발도 거세다.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도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국립 영웅묘지 이장은 순국선혈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마르코스는 1965년에 대통령이 된 뒤 21년 동안 권력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여러 면에서 1917년생 동갑내기인 박 전 대통령과 흡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오랫동안 장기 집권을 했고 꼭 같은 해(197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헌법을 뜯어고치며 철권 독재를 펼쳤다.  차이가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의 등장과 몰락이 마르코스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고 경제 성장 업적이 좀더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를 계기로 집권해 1979년 최측근 김재규에 의한 암살로 끝났다. 이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고 최근 일각에서는 광화문 광장에 동상을 세우려는 시도도 나왔다. 마르코스는 선거로 집권했으나 1986년 ‘피플파워’라고 불리는 민중 봉기로 사퇴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사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함석헌 선생 씨알 평화사상 ‘촛불’로 승화”

    “함석헌 선생 씨알 평화사상 ‘촛불’로 승화”

    “서울 도봉구에서 세계를 끌고 가는 중요한 철학을 펼쳤던 함석헌 선생을 재조명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죠.”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24일 덕성여대와 도봉구가 함께 연 심포지엄 ‘비판의 철학자 함석헌의 삶과 사상’에 참여해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함 선생의 사상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 선생은 1982년 아들이 사는 도봉구 쌍문동으로 이사해 7년 뒤 별세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았던 전태일 열사와 이웃으로 지냈고, 매일 인근 약수터를 찾았던 ‘쌍문동의 할아버지’였다. 1980년대 중요 시국집회 때마다 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와 함께 가택연금을 당했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다. 이 구청장은 지난해 9월 함 선생이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가옥을 기념관으로 개관했고 1년 만에 1만명 이상이 방문한 지역명소가 됐다. 함석헌 기념관에서는 ‘씨알마을학교’가 열려 함 선생의 ‘씨알사상’을 전파한다.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인 기념관 1층은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관이며 창고로 사용됐던 지하에는 세미나실과 숙박을 할 수 있는 게스트룸이 있다. 이 구청장은 “함 선생의 자택은 기념관으로 보존했는데 전태일 열사의 집은 이미 다 허물어져 아파트로 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봉구는 매년 덕성여대와 한두 차례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해 지역 및 대학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고 있다. 대학과 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학술 연구를 펼치는 것은 괴테가 잠잤던 호텔조차 관광객이 찾듯 문화도시 도봉구의 토양을 형성하게 된다고 이 구청장은 분석했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자 재야운동가였던 함 선생의 사상을 현재 박근혜 정부의 정치 상황과 연결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함 선생이 창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는 장준하의 ‘사상계’와 함께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의 답답함을 뚫어줬던 대표적인 언론이었다. 씨앗의 종자를 뜻하는 ‘씨알’은 함석헌 사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요즘으로 치면 스스로 깨친 ‘깨시민’과 비슷한 의미다. 생전의 함 선생은 ‘씨알은 지나친 소유도 권력도 지위도 없는 맨 사람이다. 어떤 정책의 시비가 문제 됐을 때 판단하는 표준은 민중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씨알(민중)에게 함께 싸우자고 주장했다. 함석헌의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조명한 이상록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최근의 촛불집회는 비폭력 평화시위란 점에서 외국인들이 두 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했던 함 선생의 평화사상을 담고 있다”며 “4·19혁명이 쿠데타로 이어졌듯 지배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저항의 결과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2029년까지 집권 개헌 추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2) 터키 대통령이 3연임을 통해 집권 기간을 2029년까지 연장하는 개헌안을 극우성향 야당의 도움으로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간) 전했다. 총리직을 포함해 13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나이를 감안할 때 사실상 종신집권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터키 제2야당 민족주의행동당(MHP·41석)은 이날 “터키 정국 현실을 감안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집권 정의개발당(AKP·316석)이 추진하는 개헌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AKP는 리더인 에르도안이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부터 “총리와 대통령이 권력을 나눠 갖는 내각제가 터키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제왕적 권한을 갖는 대통령이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중심제 개헌을 추진해 왔다. 개헌안은 현재 5년 중임(10년)인 대통령 임기를 첫 임기가 끝나는 2019년부터 새로 설정해 에르도안이 기존 임기와 관계없이 두 차례 더 대통령에 오를 수 있게 했다. 또 총리직을 폐지하는 대신 대통령이 임명하는 두 명의 부통령을 신설하고, 군과 정보당국 수장, 대학 총장, 고위 관료, 사법부 인사도 대통령이 맡게 된다. 개헌안은 전체 550석 가운데 331석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가결돼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3분의2인 367석 이상을 얻으면 국민투표 없이도 확정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에게 직접 신임을 묻는다는 취지로 의회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내년 봄 국민투표를 상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134석)과 쿠르드계인 인민민주당(HDP·59석)은 “지난 7월 쿠데타 시도 진압 이후 권위주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라며 개헌 추진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수남 검찰총장 “사퇴할 생각 없다”

    김수남 검찰총장 “사퇴할 생각 없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으로 현 정부 사정라인의 또 다른 핵심 축인 김수남 검찰총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순실(60·구속기소)씨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처럼 사퇴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다음달 초 특별검사팀 출범 등으로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면 적절한 시점에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金총장 사의설, 검찰 흔들려는 음해” 23일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김 총장은 최근 본인의 사의설에 대해 “검찰을 흔들려는 음해고 일고의 가치 없는 이야기”라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정치적 고려 없이 열심히 수사를 해야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대검 관계자도 “대통령에 대해 수사를 했다고 총장을 갈아치우면 검찰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피의자 입건 등 최씨 사태 수사는 김 총장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리면서 본격화됐다. 법무부 보고를 차단해 청와대로 수사 정보가 유입될 가능성을 차단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한 이가 김 총장이다. 사실상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결정이나 최씨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 공범 적시 등을 최종 승인한 것도 김 총장이다. ●일각선 “이런 상황서 무슨 영예 있겠나”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수수와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 등으로 검찰이 일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김 총장은 ‘검찰발(發)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들으며 최순실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국민 신뢰를 회복해 검찰 조직을 되살리려는 김 총장의 이런 행보는 그러나 자신의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절체절명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20일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때 “대통령을 사실상 범죄자처럼 단정한 게 수사팀의 결정인지 일부 검찰 수뇌부의 결정인지 반문하고 싶다”며 김 총장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영예가 있겠느냐. (총장) 사퇴는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2029년까지 집권 연장 추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2029년까지 집권 연장 추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 기간을 2029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개헌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같은 개헌안이 추진되는 배경에는 민족주의 성향의 제2야당인 민족주의행동당(MHP)이 헌법개정안에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가능해졌다. 데블렛 바흐첼리 MHP대표는 지난달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실상’ 대통령제를 운용하면서 헌법을 어기고 있다며 헌법위반을 막으려면 신속하게 개헌을 추진하라면서 찬성의사를 밝힐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의개발당(AKP)은 내년 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개헌안은 전체 의석(550)의 3분의 2 이상인 367명의 의원이 찬성하면 의회에서 바로 확정되지만 찬성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331명 이상이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현재 AKP는 316석, MHP는 41석으로 양당이 전원 찬성하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357석이 된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6일 MHP에 제출된 헌법 개정안 초안을 인용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9년까지 임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고 보도했다. 현행 헌법에 따라 터키 대통령은 5년 임기에 중임을 허용하기 때문에 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임기는 2024년까지다. 하지만 개헌안은 대선 일정을 재설정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9년부터 다시 두 번의 임기를 더 맡을 수 있도록 해 결국 2029년까지 임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개헌안은 또 총리직을 폐지하고 대통령이 두 명의 부통령을 둘 수 있도록 했다. 또 군과 정보당국 수장은 물론 대학 총장과 고위 관료, 사법부 최고위직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등 권한이 확대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1년 총리 재임 시절부터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해 왔지만 야당의 반대에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지난 7월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이후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대통령제 개헌은 예상된 수순으로 꼽혀왔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과 쿠르드계인 인민민주당(HDP)은 개헌이 권위주의 지배를 강화할 것이라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생가 표지판 훼손,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훼손도

    박근혜 대통령 생가 표지판 훼손,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훼손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영향으로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 표지판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훼손이 잇따랐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21일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에 설치한 표지판을 훼손한 혐의(재물손괴)로 백모(5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백씨는 18일 오전 2시께쯤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는 박 대통령 생가터 표지판에서 박 대통령 모습과 생가 안내 글을 붉은색 래커로 지운 혐의다. 경찰조사결과 백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불만을 품고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구미경찰서는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독재자’라고 스프레이를 뿌린 혐의(재물손괴)로 대학생 A(19)군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A군은 지난 4일 오전 3시 20분쯤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옆 공원에 있는 동상, 기념 시비 등 3곳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려 훼손한 혐의다. 경찰조사에서 A군은 “역사책을 보다가 박 전 대통령이 일본강점기에 천황에게 굴복하고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데도 동상을 세워 찬양하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정희 동상에 ‘독재자’ 낙서한 대학생 붙잡혀…“찬양 참을 수 없었다”

    박정희 동상에 ‘독재자’ 낙서한 대학생 붙잡혀…“찬양 참을 수 없었다”

    박정희 동상에 ‘독재자’라고 낙서한 대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 구미경찰서는 A(19)군을 재물손괴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A군은 지난 4일 새벽 3시 17분쯤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 공원에 있는 동상과 기념 시비 등 3곳에 붉은 스프레이로 ‘독재자’ 등의 낙서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역사책을 보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에 천황에게 굴복하고 이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는데도 동상을 세워 찬양하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헌법의 시대 정신은 ‘국민’

    헌법의 시대 정신은 ‘국민’

    지금 다시, 헌법/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로고폴리스/528쪽/1만 8000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 헌법 1조 1항과 2항은 우리 국호인 ‘대한민국’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천명하는 동시에 ‘어떤 국가기관’도 국민의 뜻에 반해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강력한 상징성이 담긴 조항이다. 이는 국가 권력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에 대한 경고 메시지다. 다수 헌법학자들의 문제 제기를 보면 우리 정치사에서 헌정 파행과 왜곡의 근원지로 항상 ‘대통령’이 지목됐다. 수직적이며 상명하복식의 정치문화는 국민에게 가야 할 권력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기형적 현상을 보여 왔다. 민주화 시대 이전이나 그 이후나 대통령이 제왕으로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우리 정치에 팽배한 비민주적 제도와 관행, 정서의 원천지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지금 다시, 헌법’은 우리 헌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또 시대와는 어떻게 조화하거나 불화해 왔는지를 구체적인 헌법 조문을 통해 풀어내고, 헌법의 세계로 안내하는 해설서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이자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온 차병직(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법철학자인 윤재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지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2009년 함께 쓴 ‘안녕 헌법’을 새로 썼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헌법 전문부터 130개의 조문, 부칙까지 그 의미와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판인 만큼 지난 7년 동안 벌어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세월호 참사 등 중요 사건과 향후 개헌 때 반영돼야 할 논점도 담았다. 헌법은 근대 국가라는 ‘정치 혁명’의 산물이다. 근대 국가는 전제적 왕을 몰아내고 그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준 뒤 선거를 통해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가기관과 국민 사이의 관계를 밝힐 필요성에서 헌법이 탄생했다. 왜 헌법이 ‘법 위의 법’으로 모든 법의 지휘자이자 국가 최고의 감독자 역할을 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헌법에 절대적 지위가 부여된 이유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에 봉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10개의 장으로 나눠진 헌법 중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2장은 10조부터 39조까지 모두 서른 개의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눈여겨볼 만한 건 국민의 의무를 규정한 건 납세와 국방에 관한 두 개 조항뿐이다. 28개 조항이 국민의 권리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한다. 저자들이 해석하는 대상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피로 쓴’ 결과물인 현행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된 후 1987년 10월 29일까지 아홉 차례 개정됐다. 제9차 개헌을 통해 채택된 게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부활’이다. 우리 헌법은 독재자의 등장 때마다 격동했다. 이승만 정권이 장기 집권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2차 개헌(1954년 11월 29일)은 국무총리제를 폐지하고,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철폐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는 5차 개헌(1962년 12월 26일)을 통해 대통령제 환원, 헌법재판소 폐지로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했다. 이후 대통령 3선을 허용한 6차 개헌(1969년 10월 21일), 대통령 긴급조치권 발동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 선출 등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7차 개헌(1972년 12월 27일), 전두환 정권의 8차 개헌(1980년 10월 27일)까지 헌법은 독재의 도구가 됐다. 최근 국정 농단 및 헌정 질서 훼손 사태와 관련해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권자(국민) 의견이 커지고 있다. 제65조에 규정된 대통령 탄핵의 헌법적 의미는 ‘공직으로부터의 추방’이다. 헌법은 내란 및 외환죄를 제외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제84조)에 대해 ‘대통령 개인에게 부여한 특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재직 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만 퇴임 후 민형사상 책임은 남아 있다. 저자들은 “헌법과 헌법 현실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헌법은 물론 헌법 현실도 결국 국민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행동으로 현실을 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헌법의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 헌법의 기구한 운명/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열린세상] 우리 헌법의 기구한 운명/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20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민을 놀라게 했다. 취임할 때부터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부터 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개헌을 포함한 모든 국정 현안을 삼키고, 모든 국민의 마음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 헌법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헌법 전문에서 천명하고 있다. 상하이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우리 헌법의 모태다. 그리고 1945년 광복 이후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이래 70년도 채 되지 않아 아홉 차례나 헌법이 개정됐다. 첫 번째 개헌은 1952년 6·25 중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위협하고 연금하는 폭력 사태 가운데 이루어졌다. 정부의 대통령 직선제와 야당의 의회주의안을 혼합한 소위 발췌 개헌안이다. 다시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때는 개헌에 필요한 의결정족수에 미달했으나 사사오입의 계산 방법이 동원된다. 3·15 부정선거로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그러자 1960년 6월 내각제를 채택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그해 11월 반민주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개정이 추가됐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에 의해 1962년 12월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 개정이 실현되고,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 개헌이 이루어졌다.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 소위 유신 조치가 단행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는 목표 아래 1972년 권위주의적 신대통령제 소위 총통제를 채택한 유신헌법이 등장했다. 10·26 사태 이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은 1980년 제5공화국의 출범을 선언하면서 대통령이 선거인단에 의해 7년 단임제로 간선되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관철했다. 출범 당시부터 민주적 정당성에 심각한 결함을 지녔던 전두환 정부는 6월 민주화 항쟁에 직면하게 되고, 그 결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이 1987년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여야 8인 정치협상’에서 개헌안을 마련해 여야 공동으로 국회에서 발의하고 의결한 다음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됐다. 그렇다면 70년 미만의 우리 헌정사에서 현행 헌법이 30년 가까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추진 배경이 된 점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촉발되고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개헌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헌법 개정은 국민투표라는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로 확정하게 돼 있다. 누가 개헌을 주장하든지 진정한 동기와 의도는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이 결국 알게 된다. 국민의 공감을 반드시 얻어야 하는 이유다.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더라도 개헌의 동기와 의도가 의심받고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면 다시 생각할 일이다. 설사 개헌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수명이 길지 않다는 점만은 우리 헌정사가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다음 현행 헌법은 국민과 여야가 개헌안의 마련에서부터 국민투표에 이르기까지 협력해 마쳤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헌법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이루어 낸 정치적인 합의와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민과 국회가 공감대를 이뤄 헌법에서 정한 개정 절차를 마찰 없이 밟아야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고 헌법의 수명이 보장된다.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 신장을 꾀한다는 목표를 내세운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타협과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단명에 그치고 만 것이 지난 헌정사다. 개헌론의 기세가 물 위로 솟구치는 듯하다 한풀 누그러진 모습이다. 이제 차분하게 왜 개헌이 필요한지, 즉 개헌의 동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여야 및 국민이 협력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헌법 개정 절차를 보고 싶다. 그래야만 새로운 헌법은 길이길이 효력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 편견 쫓긴 탈모인들 등 떠밀린 터키行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측근이었던 광고감독 차은택(47)씨가 체포 이틀 뒤인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에 나타났을 때 대중의 관심은 그의 벗겨진 머리였다. 8일 귀국과 함께 검찰에 체포됐을 때만 해도 눌러쓴 모자 사이로 비교적 많은 숱의 머리카락이 보였으나 이날 TV 화면에 비친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인터넷 등엔 곧바로 대역 논란과 함께 ‘대머리’가 주요 검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가 저지른 국정농단에 대한 공분 너머로 그의 신체 특징에 대한 조롱이 더 많이 쏟아졌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차씨의 검찰 출두 사진과 함께 “차라리 다 밀고 와야지. 쯧”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외모 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차은택 대머리 화제… 사회 편견 방증 탈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이처럼 여전히 가혹하다. 최근엔 이를 견디지 못해 해외로 원정 수술을 떠나는 행렬도 늘고 있다. 특히 터키행 원정 수술이 각광을 받는 상황이다. 기술이 뛰어난 데다가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탈모 환자 A씨는 17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지난 1월 23일 터키에서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부터 보는데, 연애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수술받는 데 따른 걱정보다 탈모 탈출이 훨씬 간절했다. 터키가 아니라 더 먼 곳이라도 상관없었다”고 전했다. 탈모 증세가 있는 B(44)씨 역시 “요즘에는 탈모가 개그의 소재로도 쓰이지만 실제 직장에서는 능력 없는 사람 취급받기 일쑤”라며 “수군거리는 사람만 보면 모두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4300毛 기준 터키가 500만원 저렴 A씨의 경우 터키에서 머리 4300모를 심는 데 수술비와 항공료, 숙박비, 현지 체류비까지 약 7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통상 1200만원 정도가 드는 국내 비용과 비교해 저렴한 편이라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터키에서는 하루 평균 200회의 모발이식 수술이 진행된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연 10억 달러 규모다. KOTRA 관계자는 “의사들의 경험이 풍부하고 유럽보다 가격이 80% 정도나 저렴해 특히 유럽 탈모 환자들이 터키로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 경찰이 수배한 이슬람국가(IS) 조직원이 모발이식 수술을 받으러 터키에 갔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터키의 모발이식 에이전시 관계자는 “영업 방침상 정확한 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많은 한국인 탈모 환자들이 터키에 온다. 쿠데타 당시 조금 주춤했지만 금방 회복했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100만 촛불집회 보고 쿠데타 생각났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100만 촛불집회 보고 쿠데타 생각났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지난 12일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대해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추 사무총장은 17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100만 명이 모여도 나머지 4900만 명의 뜻이 중요하다. 한 쪽에 편향된 국민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 분명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날 나온 사람들도 100만명이 안될 것이다. 실제로는 20만~30만 명에 불과하고 구경꾼도 많았을 것이다”라면서 “설사 100만 명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침묵하는 4900만 명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강변했다. 대통령의 하야 및 탄핵 요구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는 “의혹만으로 옷을 벗는 경우는 없다”면서 “미르ㆍK스포츠재단도 기업들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알리자는 차원에서 돈을 걷어 한, 정부 차원에서 좋은 취지로 한 일인데 무턱대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추 사무총장은 오는 19일 예정된 박사모 등의 집회에 대해서는 “보수단체들이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다 들었다. 어버이연합이 참석하면 자발적이라는 취지가 퇴색될 것 같아 직접 참여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회원 개인차원의 참석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세계 대통령 하야·탄핵 사례

    닉슨, 워터게이트 ‘거짓말’로 사임 獨 불프, 저금리 대출 드러나 사퇴 호세프, 회계장부 조작 혐의 탄핵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또는 하야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전 세계 대통령의 사례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불명예 퇴진한 전 세계 대통령은 15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남미 지역 국가 출신이지만 정치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에서도 나왔다. 브라질과 이스라엘에서는 각각 두 명씩 있었다. 이들의 퇴진 이유는 부정부패와 부정선거, 회계장부 조작, 성추행 등 다양했다.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1913~1994)은 미국 최대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사임했다. 이 사건은 대선 기간이던 1972년 6월 닉슨 측 공작원 5명이 워싱턴DC의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사무실에 설치한 도청 장치를 수리하려다 발각돼 알려졌다. 닉슨 대통령은 이듬해 6월까지도 자신의 개입 사실을 부인했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녹음 내용이 공개되자 의회가 탄핵안을 준비했고 결국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왔다. 대통령을 이어받은 부통령 제럴드 포드가 그해 9월 그를 사면해 처벌은 면했지만, 평생을 국민의 따가운 눈총 속에 살아야만 했다. 빌 클린턴(70)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에 대한 위증 혐의로 1998년 12월 하원에서 탄핵 소추됐다. 1999년 2월 상원에서 탄핵안을 부결시켜 간신히 대통령 자리는 지켰다. 퇴임 직전인 2001년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그간 거짓 진술을 했다고 인정하는 대신 기소를 면제받기로 특별검사와 합의해 형사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에게는 ‘사생활이 문란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독일에서도 2012년 2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보수 기독민주당(CDU) 출신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이 자진 사퇴했다. 2008년 주택 구입 당시 지인에게서 시중금리보다 낮은 연리 4% 조건으로 50만 유로(약 6억 3000만원)를 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비난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4년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난 뒤였다. 정정 불안이 일상화된 남미 국가에서는 수시로 탄핵이 이뤄진다. 1993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1922~2010)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공금횡령 및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당했다. 에콰도르의 압달라 부카람(74) 대통령도 1997년 세금 횡령 혐의로 탄핵 소추됐다.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78) 페루 대통령 역시 2000년 부패 혐의로 탄핵된 뒤 수감돼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 가장 최근에는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69)가 2014년 재선 당시 국가 부채를 숨기려고 회계 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지난 9월 탄핵당했다. 호세프는 의회 결정을 “정적들이 일으킨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보니…김기춘 “5.16, 구국의 일념”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보니…김기춘 “5.16, 구국의 일념”

    2014년 6월부터 210일 동안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고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된 가운데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5.16과 유신헌법에 대해 청와대 수석들과 총리, 장관 들에게 공통된 인식을 주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TV조선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의 노트에는 월별 일정과 날짜별로 매일 해야할 일, 그리고 수석회의 내용을 기록돼 있는 가운데 특히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에는 김 전 비서실장이 5.16과 유신헌법에 대해 “5.16 에 대한 평가는 공통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애국심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었다고 표현한 것으로 적혀 있다. “당시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가난했고 안보 위기 상황”이었다는 이유도 적혀 있다. 김 전 실장은 “역사적 평가에 맡길 일이긴 하지만 현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알아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회에서 5.16에 대한 질문을 받은 각료들은 김 전 실장의 지시와 거의 비슷한 대답을 했다. 지난 8월 인사청문회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저는 5.16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역사적 평가가 계속 된다고...”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도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그 부분에 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걸 말씀을 드렸는데”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유신 헌법에 대해서도 “국력 결집과 남북 대결”을 이유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주선 “朴대통령 밉다고 유고? 통째로 권력 탈취는 안돼”

    박주선 “朴대통령 밉다고 유고? 통째로 권력 탈취는 안돼”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10일 야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행정각부, 내치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면 헌법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헌법의 규정에 따라서 야권이 주장하는 형태로 내각을 구성도 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부의장은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대통령의 전속적 권한은 유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통령이 행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밉고 대통령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유고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부의장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통령이 군 통수권까지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 자체가 헌정중단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어지게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이 만들어준 정부인데,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법적 절차에 따라서 탄핵을 하든 기소를 해가지고 구속을 하든 하는 것이지, 국민이 만들어준 권력을 선거를 통하지도 않고, 헌법이 개정되지도 않았는데 통째로 권력을 탈취하려고 하는 그런 자세는 맞지 않다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박 부의장은 대통령 하야에 대해서도 “하야는 혁명과 쿠데타가 아니고서는 본인 의사에 반해서 하야시킬 수가 없다”며 “헌정중단을 비판하는 상황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도, 국민도 헌정 질서 내에서, 헌법의 규정 절차에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고 추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야권이 주장하는 거국중립내각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대통령이 요청하는 여야 영수회담을 하자고 하면 저는 받아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신 대통령의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박 부의장은 “대통령의 범법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국법 절차에 따라서 탄핵소추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미 니카라과 ‘남편 대통령·부인 부통령’ 탄생

    중미 니카라과에서 6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남편 대통령-부인 부통령’ 정권이 탄생했다. 다니엘 오르테가(71) 현 대통령과 부인인 로사리오 무리요(65) 부통령이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퍼스트 커플(대통령 부부를 부르는 말)이 함께 정부통령이 된 것은 1973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후안 페론(1895~1974)과 아내 이사벨 페론(85)이 당선된 이후 43년 만이다. 로이터는 7일 반미 성향의 오르테가 대통령이 70%가 넘는 지지율로 세 번째 연임(통산 4선)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등록 유권자 380만명 가운데 65%가 투표에 참여했다. 니카라과는 1936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문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호 아래 쿠데타에 성공해 반세기 가까이 철권통치를 해 왔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1979년 소모사 정권을 축출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부통령에 당선된 무리요의 향후 대선 출마 여부도 관심사다. 시인이자 작가로 정부 대변인 등을 지낸 그는 오르테가 대통령의 혁명 동지이자 정치적 동료로 인기가 높아 2021년 남편을 대신해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자동차 시장 ‘만년 2위의 쿠데타’

    벤츠 판매 7년 만에 BMW 추월 경차 ‘스파크’도 ‘모닝’ 앞질러 준대형 ‘K7’은 ‘그랜저’ 넘어서 ‘만년 2위는 없다.’ 올 들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2위의 반란이 이어지고 있다. 만년 2위에 머물던 브랜드와 차량이 1위 등극을 전격 예고하고 있다. 31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은 3만 8594대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BMW(3만 1870대)를 6724대 앞서고 있다. 이 추세가 연말까지 계속돼 연간 판매량에서도 BMW를 누르면 한국시장 진출 이후 처음으로 국내 수입차 시장 베스트셀링 브랜드 1위에 오르게 된다. 벤츠는 수입차 연간 판매량 순위에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 동안 6년 연속 2위에 그쳤다. ●벤츠 ‘E300’은 BMW ‘520d’ 맹추격 벤츠는 또 E300 모델을 앞세워 단일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부문에서도 1위를 노리고 있다. 올 들어 현재 1위인 BMW 520d를 600여대 차이로 맹추격하고 있다. 수입차 관계자는 “벤츠는 매해 성장세가 이어진 가운데 올해 볼륨 모델인 E클래스에서 신차가 대거 나왔고 경쟁 차종인 BMW의 5시리즈는 모델 노후화 문제로 인기가 전보다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모닝 6091대 뒤져… 내년 신형 나와 국내 경차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 연속 경차 부문 1위를 달리던 기아차의 모닝이 한국지엠의 스파크에 밀리고 있다. 역시 신차 효과와 관련이 있다. 스파크는 지난해 7월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 출시로 새로워진 이후 판매가 증가세를 이어 가는 반면 모닝은 모델 노후화와 내년 초 신형 출시에 대한 대기 수요 영향으로 올 들어 9월까지 스파크에 6091대 뒤져 있다. 업계는 스파크가 신차 효과에다 강력한 프로모션까지 실시하고 있어 2007년 이후 9년 만에 모닝을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그랜저를 중심으로 하는 준대형차 부문에서도 판도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 준대형 시장 최강자는 현대자동차 그랜저다. 2011년 5세대 그랜저(프로젝트명 HG)를 계기로 단일 브랜드 사상 첫 국내 판매 10만대 돌파라는 금자탑을 쌓은 대표 차종이다. ●그랜저 이달 신차 출시… 1위 지킬 수도 하지만 올해는 기아차 K7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기아차는 올해 초 디자인과 성능이 대폭 강화된 K7 신차를 출시한 결과 1~9월 기준 K7이 4만 1914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같은 기간 그랜저 판매는 3만 9975대에 그친다. 이 추세가 이어져 K7이 그랜저를 따돌리고 준대형 1위를 차지할 경우 K7은 처음 출시된 2010년 이후 6년 만에 1위 자리에 안게 된다. 다만 11월 중순 6세대 그랜저(프로젝트명IG)가 본격 시판될 예정이어서 그랜저가 계속 1위 자리를 고수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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