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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도안 ‘무소불위 술탄’… 과거로 간 터키

    에르도안 ‘무소불위 술탄’… 과거로 간 터키

    세속주의서 정교일치 국가 추구 80세 되는 2034년까지 집권 가능 의회 해산권 등 입법·사법까지 장악 숙원이던 EU 가입 포기 가능성 서구, 이슬람국가 완충지대 잃어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공화정을 수립한 지 94년 만에 터키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안이 16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2034년까지 장기 집권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물론 ‘서구 지향적 세속주의 국가’ 터키가 권위주의적 이슬람 국가로 회귀하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유권자 5836만여명 가운데 5060만여명(87%)이 참여한 이번 투표에서 개헌안이 찬성 51.4%, 반대 48.6%로 가결됐다고 밝혔다고 AP 통신 등이 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 “명백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가 된 이후 지금까지 터키를 통치해 오고 있다. 2007년, 2011년 총선을 거치면서 총리직 4연임 금지 규정에 가로막히자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현 의원내각제 헌법에서도 실질적 1인자의 지위를 누려 왔다. 이번 개헌안 가결에 따라 2019년 11월 대선 이후 새 헌법에 따른 새 정부가 시작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회 중임할 수 있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9년에 이어 2024년 대선에서도 승리한다면 2029년까지 집권하게 된다.하지만 새 헌법은 중임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다시 조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9년 임기 만료 직전 조기 대선을 실시한다면 2034년까지도 재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총리직이 없어지는 대신 대통령이 부통령을 임명할 수 있고 대통령은 법관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도 갖게 되는 등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제도 약화된다. 가디언은 “터키가 병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28개 회원국 중 2개국에 불과한 이슬람 국가이자 러시아와 흑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서방세계의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시리아, 이라크와 인접해 있어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터키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이슬람주의와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꼽혀 왔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국민 지지를 등에 업고 과감하게 자기 색깔을 내 왔다.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지켜 온 서구 지향적 정교분리와 세속주의 전통을 버리고 이슬람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공공 장소와 대학 등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던 것을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도 했다. 에르도안이 총리로 재임했던 초기 5년(2003~2007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7%에 달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인 2010~2011년에는 8%대 성장률을 유지해 왔고 지난해 7월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에는 지지율이 70%에 육박했다. 실제로 이번 투표 결과 지역별로 이스탄불, 앙카라 등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서는 개헌 반대표가 앞섰지만 보수적인 내륙 도시에서는 찬성표로 몰렸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親)이슬람, 반(反)서방 기조가 주효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개헌안 통과로 터키가 숙원이던 유럽연합(EU) 가입을 포기할 가능성도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에서 국민투표 승리를 선언한 뒤 지지자들에게 첫 메시지로 “(2004년 폐지된) 사형제 부활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공언했다. EU는 사형제 국가의 회원국 가입은 금지하고 있다. EU는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신속히 진행시키는 대가로 지난해 3월 터키와 맺은 난민송환협정이 폐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필립스 컬럼비아대 인권연구센터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터키의 서방 지향은 이제 끝났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명동 이야기(상)/손성진 논설실장

    [그때의 사회면] 명동 이야기(상)/손성진 논설실장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온갖 사치와 유흥과 오락과 술과 여자로 그칠 사이 없는 소란 속에 그래도 한국 최고의 호사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동아일보 1957년 11월 25일자) 서울의 멋쟁이들과 술꾼들이 다 모여드는 최고의 번화가이자 유흥가인 서울 명동의 모습을 그린 기사다. 지금은 해외 관광객들이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명동은 1960년대 초반에도 60여개의 다방, 80여개의 바, 100여개의 대폿집, 30여개의 양품점이 있던 ‘서울의 샹젤리제’였다. 또한 당시에 이미 증권회사만 60여개가 들어선 한국 금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땅값이 가장 비싼 10곳을 모두 명동과 충무로가 차지하고 있다.명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에서는 행정구역 5부 49방의 하나인 남부의 명례방(明禮坊)이었다. 1914년 명치정(明治町)이 되었다가 광복 이후에 명동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부터 종로를 기준으로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고 불렀다. 북촌은 양반들의 주거지였고 남촌은 서민 동네였다. 비만 오면 땅이 질퍽질퍽해지는 충무로 일대는 진고개(泥峴)라고 했다. 명동과 충무로의 남촌 일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 일본인들이 모여 살고부터다. 진흙밭이던 진고개는 점차 상가로 바뀌었다. 진고개의 영향을 받아 명동도 번창했다. 명동뿐만 아니라 을지로, 소공동 일대에도 금융기관과 상가가 들어차 남촌은 크게 발전한 반면 북촌은 발전이 더뎠다. 혼마치(충무로)와 메이지마치(명동)가 불야성을 이루는 번화가가 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초부터였고 광복을 전후해 상업과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장식된 경성우편국(현 서울중앙우체국) 건물은 지금과 같이 명동과 충무로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단발머리를 한 모던걸이나 나팔바지를 입은 모던보이들이 혼마치와 메이지마치 거리를 배회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멋을 부리는 모습은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25 직후 정부는 파괴된 명동 일대를 복구하기 위해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정했으며 서서히 오늘날과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됐다. 명동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종마루(鐘峴)에는 한국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사적 제258호인 명동성당이 있다. 1898년 5월 세워진 명동성당은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이었다. 환락가인 만큼 명동은 늘 전국에서 모여든 조직폭력배들로 들끓었고 패권 다툼이 자주 사회면을 장식했다. 1970년대의 명동 유흥가는 ‘신상사파’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1975년 1월 2일 조양은이 ‘쿠데타’를 일으켜 신상사파를 몰아내고 세력 판도를 바꾸었으니 ‘사보이호텔 기습 사건’이다. 무명의 조양은은 1980년대 한국 조폭의 패자로 군림한다. 사진은 1969년 4월의 명동(출처:국가기록원).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4월 위기설, 그 실체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4월 위기설, 그 실체는?

    지난 달 우리 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호주로 갈 예정이었던 칼 빈슨 항공모함 타격전단이 싱가포르에서 뱃머리를 돌려 다시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칼 빈슨 항모의 한반도 지역 전개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억제 능력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대적인 군사력 증원은 단순 억제 차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6.25 전쟁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한반도 주변에 출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규모의 군사력이, 얼마나 들어오기에 국제 금융시장까지 술렁일 정도의 ‘4월 위기설’이 이토록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대북 무력 압박에 나선 미‧중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만 키워주었다는 비판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커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빠른 속도로 진척시키고, 여기에 탑재할 핵탄두 소형화‧경량화에도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우선 대북 선제타격 시나리오가 담긴 ‘작전계획 5015’를 본격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미연합 키 리졸브 훈련 때부터 수차례의 도상연습을 통해 참수작전 등 대북 선제타격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절차를 숙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창끝통합(Combined Edge)‘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해 실전 경험이 있는 미군 장교를 한국군 부대에 파견함으로써 한국군의 역량 부족 문제도 보완했다. 연합훈련 또는 대북 억지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주한미군 전력도 증강했다. 구형 OH-58D 헬기를 교체한다며 최신형 AH-64D 아파치 롱보우 공격헬기를 2배로 증강했고, 별다른 발표 없이 오산과 군산에 F-16C/D 전투기를 2배 가까이 증강했다. 별도 발표 없이 포항과 군산 등지에 F/A-18E/F 전투공격기와 AH-1W 공격헬기, MV-22B 오스프리 수송기 등의 해병 항공전력이 전개됐고, 특히 군산에는 요인 암살 임무에 자주 동원되는 최신형 무인공격기 MQ-1C 그레이 이글이 배치됐다. 참수작전 수행을 위해 흔히 ‘델타포스’로 통하는 미 육군 특수부대 CAG(Combat Application Group)와 해군 네이비씰(Navy SEAL)의 최정예 팀인 6팀(일명 ‘데브그루’)이 한반도에 전개되어 한국군 특수부대와 연합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영국군 최정예 특수부대 SAS를 비롯한 호주와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의 최정예 특수부대들도 한반도에 대거 출동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과 괌에도 대규모 군사력이 증강됐다. 이와쿠니 미 해병항공기지의 F/A-18 전투기 세력은 평시의 2배 이상 규모로 늘어났고,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35B도 작전배치됐다. 오키나와에는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F-22A가 12대 배치되었으며, 괌에는 평시 전력의 2배에 달하는 폭격기 전력이 전개했다. 물론 이렇게 병력과 장비가 전진 배치된다고 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군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물량전’이기 때문이다. 선박자동위치식별시스템(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에 기록된 항만 입‧출항 정보와 미 해군 해상수송사령부(MSC·Military Sealift Command)의 용선계약 내역을 확인해보면 미국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대량의 탄약을 한반도로 실어 날랐다. 이들 탄약은 주로 공군용 항공과 육군용 탄약으로 항공기에 탑재되어 지상을 폭격하는 공대지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들이다. 이러한 대규모 탄약 반입은 지난해 3월부터 지속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최근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을 위해 일부 물자가 들어온 것이라는 국방부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칼 빈슨 항모전단의 한반도 배치는 이러한 전쟁 준비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전쟁은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전투기와 이지스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기존 7함대 배속 전력인 로널드 레이건(USS Ronald Reagan) 항모전단과 더불어 칼 빈슨(USS Carl Vinson) 전단까지 2개 항모전단이 들어와 있다. 이밖에 태평양의 날짜변경선 인근에 임무 배치 전 훈련(COMPTUEX·Composite Training Unit Exercise)을 마친 니미츠(USS Nimitz) 전단까지 합치면 유사시 일주일 이내에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는 항모전단은 3개에 달한다. 이밖에 현재 미국 서부 해안에는 존 C. 스테니스,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 2척의 항공모함이 더 대기 중이다. 이밖에도 항공모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4만톤급 대형 강습상륙함 본험리처드(USS Bonhomme Richard)가 사세보에서 제31해병원정대를 싣고 대기 중이며, 당초 인도양의 제5함대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마킨 아일랜드(USS Makin Isaland)도 7함대 지역 배속 명령을 받고 지난 주말 제주 남방 해역에 들어왔다. 마킨 아일랜드 전단 역시 제11해병원정대 병력을 싣고 있다. 이밖에도 동태평양 지역에 제15해병원정대를 태운 최신형 강습상륙함 아메리카(USS America)도 포진해 있다. 일주일 이내에 3척의 상륙전단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고 미국이 군사작전을 결심하면 보름 이내에 최대 5개 항모전단과 3개 상륙전단이 한반도 근해로 출동한다. 이들 전단은 최소 300여 대 이상의 최신예 전투기를 날려 보낼 수 있고, 동시에 수 백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퍼부을 수 있으며, 중무장한 1개 사단급 해병대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다. 이토록 가공할 위력을 가진 전력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북 선제타격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북한의 반격에 의한 한국의 수도권 피해에 대한 우려와 김정은 정권 제거 이후 안정화 작전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모종의 합의에 도달함에 따라 이 같은 부담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과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난민 통제 및 인도적 구호 작전에 대한 실무토의와 연합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북‧중 국경지역에 난민 수용시설을 위한 부지를 마련하고 이 지역을 통제하는 한편, 접경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이동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반도를 작전구역으로 삼는 북해함대에 기계화사단을 모체로 하는 1개 상륙사단이 신규 배속되어 북한 지역에 대한 상륙작전 능력을 갖추는 한편, 남중국해 무력시위에 동원되었던 랴오닝 항공모함 전단이 북한과 인접한 발해만 일대로 출동해 대기 중이다. 올해 3월에는 인민해방군에 전투준비태세 강화 지시가 하달되었고, 북부전구 소속 제16‧23‧39‧40 집단군 예하 각급 신속대응부대와 전투근무지원 세력 약 15만 명이 북한 접경지역으로 차출되었다는 소식이 대만과 일본 언론을 통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성격보다는 미국의 군사작전과 박자를 맞추어 후속 군사행동에 들어가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전례 없는 규모로 미군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사태에 대한 우려 메시지만 밝힐 뿐 별다른 군사적 견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붕괴 유도 또는 선제타격에 무게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것처럼 전쟁은 또 다른 형태의 정치행위이다. 따라서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난다. 미‧중 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통해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은 양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어가고 있는 북한이라는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 전체가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세계 최대의 병영국가이자 핵과 미사일, 화생방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휴전선에서 5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국가 전체의 인적‧경제적 자산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남한에게 튈 불똥도 심각한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은 수령이 뇌수, 당이 신경, 인민과 군대는 세포라고 가르치는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김정은과 핵심 요인 몇 명, 즉 두뇌만 제거하면 국가 전체가 마비되는 이상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면전 대신 수뇌부만 제거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강력한 군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태영호 前 영국공사 망명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김정은의 극단적인 공포통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체제 불안정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20여 년간 선군정치라는 이름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았던 군부의 불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군은 한때 온갖 이권에 개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집단이었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숙청되고 기득권을 박탈당하는가 하면, 어린 김정은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다. 군부 원로들이 대거 숙청 또는 좌천되었고, 각 지역의 기업소나 무역회사 등 군부의 돈줄이었던 이권 사업들은 대부분 노동당에 빼앗겼다. 새로 임명된 고위 장성들 역시 김정은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에 따라 진급과 강등을 되풀이했고, 일부는 김정은이 참가한 회의장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총살되기도 했다. 업무 능력과 충성도에 관계없이 김정은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 자신과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은 쿠데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밀란 스볼릭(Milan Svolik)이 1946~2008년 기간 중 등장했다가 사라진 독재자 303명을 분석한 논문을 살펴보면, 독재자의 67%는 지배 엘리트 계층이 일으킨 쿠데타나 정변으로 제거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북한에서도 얼마든지 쿠데타나 정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북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지고 지배 엘리트 계층, 특히 군부 세력의 불안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주변국이 정보기관을 동원한 공작으로 이들 군부 엘리트 계층의 불안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을 경우 김정은 체제는 내부로부터 급속도로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부에서 체제 전복 시도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전에 평양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서 김정은 제거를 직접 시도할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거의 근접했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 더 이상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정치권 전반에 팽배해 있다. 또 현재 한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리더십 부재 상태에 있고, 차기 정권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우호적일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에 미국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은 4월말까지이다. 미국이 공습에 나선다면 미군이 보유한 첨단 무기들이 총출동할 것이다. EA-18G 전자전기 등이 북한 전역의 레이더와 통신기기를 먹통으로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수백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AGM-86 공중 발사 순항미사일이 지대공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 그리고 주요 지휘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강화 콘크리트를 60m 이상 관통할 수 있는 벙커 버스터를 탑재한 B-2A 스텔스 폭격기들이 김정은 은거 예상 시설을 정밀 폭격하는 동안 F-22A와 F-35B 등 스텔스 전투기들이 평양 일대의 김정은 경호부대는 물론 도주용 차량과 열차, 항공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초토화시키고 나면 우리 군 특전사, 미군 델타포스 등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평양과 영변 등에 들어가 김정은의 사망여부를 확인하고 주요 인사를 체포하며, 핵무기를 회수 및 제거할 것이다. 전쟁은 금방 끝나겠지만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제거된 이후이다. 정국은 극도로 혼란하며 주변국과 비교해 군사력마저 빈약한 한국은 전후 처리 문제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도, 미·중 양국에게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국경 통제와 북한 지역 안정화, 대량살상무기 회수 등의 명분으로 북한 지역에 중국군이 들어오게 되면 북한에는 친중 성향의 새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이자 세계 5위권의 육군대국인 한국과 국경선을 맞대는 것을 대단히 불편해하는 중국은 북한의 새 정권을 적극 지원할 것이고, 필요할 경우 북한 지역에 계속적으로 중국군을 주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북폭을 통해 미국은 세계경찰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자국에 대한 핵공격 위협을 제거하며 첨단무기 판촉을 통한 경제적 부수효과를 얻을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 불안 요소를 하나 제거하고 한반도 북부에 반영구적인 완충지대를 확보할 것이며, 동해로 나가는 항구를 얻어 미·일과의 패권 경쟁에서 불리한 핸디캡을 일정 부분 감소시키는 전략적 이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은 요원해질 것이며,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이라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한국이다. 한 세기 전, 힘없는 대한제국은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국권을 빼앗기고 무너졌다. 국민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일치단결하지 않는다면 강대국들이 자국의 입맛에 따라 한반도라는 테이블 위에서 제멋대로 우리의 주권과 미래를 요리하는 치욕을 또 한 번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안희정 “기·승·전·민주주의”…지지자들에게 손편지

    안희정 “기·승·전·민주주의”…지지자들에게 손편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경선기간 자신을 응원해준 지지자들에게 손편지를 보냈다.안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쌓인 편지들- 답장을 쓰다 아무래도 모든 분께 다 답글하기는 어려워 손편지로 여기에 올려 봅니다”라며 자신이 직접 편지를 쓰는 모습과 함께 손글씨로 쓴 3장 분량의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편지에서 그는 “제도의 지배는 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쓸 수 있고 그 제도는 결국 민주주의 정당·선거·의회·시민사회를 통해서만 쓸 수 있다”며 “역시 기승전 민주주의”라고 적었다. 안 지사는 “혁명을 꿈꾸던 젊은 시절 이 세상은 흑백사진이었다”며 “제국주의 침략자들, 쿠데타 독재자들, 탐욕스러운 착취자들과 타협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현실은 교묘해졌고 현실 법과 제도의 알리바이가 모든 이에게 부여됐다”며 “결국 제도의 지배를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민주주의 정치가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그러나 정당정치와 선거제도는 우리가 소망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 채 변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무기력감에 빠트렸다”며 “결국 정당, 의회, 선거, 정부, 시민사회의 변화를 통해서만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보다 높은 수준의 대화와 타협을 끌어내고 이 동력을 항구적으로 보장해주는 정당의 제 역할과 시민사회의 성숙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며 “정당이 바로 서고 노조, 시민사회, 풀뿌리 민주주의가 튼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빈 후드와 임꺽정 모델로도, 영웅의 위대한 지도력으로도 현실의 문제들은 풀리지 않는다”며 “이 길(민주주의)만이 현실의 문제를 푸는 유일한 길”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권 탄압’ 이집트 대통령 초청한 트럼프 “시시는 나의 친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나 ‘테러와의 전쟁’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을 유린한 군부 독재자 시시 대통령을 초청해 성사된 것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을 마친 뒤 “우리가 시시 대통령의 매우 강력한 편이라는 데 어떠한 의심도 없음을 모든 이들이 알기를 바란다”며 “시시 대통령은 미국과 나의 위대한 친구이자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시시 대통령과 5초간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같은 장소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요청을 못 들은 척 외면한 것과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시 대통령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단체 대응 방안 이외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취임한 시시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집트 대통령의 방문으로서는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시시 주도의 군부가 2013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이듬해 집권하자 시시와의 회담을 거부해 왔다. 시시 정권이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서 IS 계열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싸우고 있으며 여전히 중동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지역 맹주다. 인권 문제로 안보협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포토]트럼프 “우리는 한편” 쿠데타 일으켰던 이집트 정상과 무슨 대화 나눌까

    [포토]트럼프 “우리는 한편” 쿠데타 일으켰던 이집트 정상과 무슨 대화 나눌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권유린 논란을 빚고 있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초청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엘시시 주도의 군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2014년 대통령이 된 이래 그와의 회담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엘시시 정권 출범 후 이집트에서 자행된 고문과 투옥 등 인권유린 논란에도, 안보협력을 이유로 엘시시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모양을 취했다. 사진=AP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준표, 보궐선거 막지 말라”… 지사 사퇴 요구 확산

    “홍준표, 보궐선거 막지 말라”… 지사 사퇴 요구 확산

    민주·국민의당·시민단체 반발 “도민 참정권 침해는 헌법 파괴 대선 후보 자격정지 조치할 것”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63) 경남지사가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무산을 시도하려고 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홍 지사는 대선에 나가더라도 사퇴 시한인 오는 9일 자정에 임박해 사퇴하고, 선관위에 사임 통보가 다음날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도지사 보궐선거 발생을 무산시키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렇게 되면 경남 시민들은 도지사 공백상태로 1년 2개월을 견뎌야 한다. 고의적으로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등 법정신을 위반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 지사는 “내년 6월 도지사 선거를 하게 되는데, 1년여 앞두고 보궐선거를 하면 200억원 이상의 선거비용이 들게 되고,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도지사에 나올 사람이 사퇴하고 그렇게 줄사퇴가 이어져 수백억원의 선거비용 부담이 생긴다”며 보궐선거 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을 했던 김진태 의원은 “홍 지사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는 실시하는 게 정상이고 보궐선거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 홍 지사가 대선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면서 “보궐선거를 의도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관위도 홍 지사가 일부러 사퇴를 최대한 늦추어 늑장사퇴를 해 10일 사임 통지서가 접수되면 대선과 동시에 도지사 보궐선거를 하는 사유가 발생하지 않아 도지사 보궐선거는 하지 않게 된다고 3일 거듭 확인했다. 정영훈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이날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도지사 보궐선거는 없다’는 홍 지사의 주장은 꼼수를 넘어 헌법을 부정하는 헌법 파괴 행위로, 헌법 파괴자는 대선 후보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정 위원장은 “도선관위도 홍 지사의 헌법 파괴식 도지사 사퇴 시도에 대비해 오는 9일에 24시간 비상대기체제를 유지하면서 도지사 업무인계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되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남지사 보궐선거를 확정적으로 판단하고 도지사 보궐선거 후보자를 5~6일 공모하는 공고를 했다. 정영훈(49·변호사) 경남도당 위원장과 허성무(54)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4일 출마 선언을 한다. 김경수(50·김해시을) 의원도 타천으로 거론된다. 국민의당 경남도당은 최근 논평을 내고 보궐선거를 저지하겠다는 홍 지사의 도지사 자격과 대통령 후보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며 지사직에서 즉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정의당 경남도당도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홍 지사가 의도적으로 보궐선거를 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법을 쓰레기 취급한 것이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쿠데타적 발상”이라며 “홍 지사가 보궐선거 비용이 걱정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면 된다”고 반박했다. 홍 지사의 의도적인 늑장 사퇴 방침으로,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던 예비 후보들이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비교적 당선 가능성이 높은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소속의 현역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이나 광역도의원 등이 사전에 사퇴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후보에는 현재 자천타천 경남지사보궐선거 출마 후보로 한국당 소속의 박완수· 박대출 국회의원과 권민호 거제시장, 윤상기 하동군수 등이 거론된다. 김학송(66) 한국도로공사사장도 출마의사가 있다는 평가다. 정의당 경남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영국(53) 도의원도 출마 후보로 꼽힌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인권변호사에서 ‘적폐청산 선봉’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3일 확정됐다.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대선 재수생’이다. 이날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문 후보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 분열과 갈등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선언한다”며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 상식과 몰상식, 공정과 불공정, 미래개혁세력과 과거 적폐세력에 대한 선택이다. 적폐연대의 정권연장을 막고 위대한 국민의 나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인권변호사의 길, 정치 신인에서 ‘적폐청산 선봉’을 자임하는 현재까지 문 후보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 어머니 연탄배달 돕던 소년, ‘반유신’ 운동권으로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이었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으며 남한으로 정착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가난은 여전했다. 문 후보는 모친의 연탄 배달일을 돕다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공부만 했다. 명문 경남중·고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느꼈다고 한다. 고3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도 배웠다. 이름 탓에 ‘문제아’ 별명이 붙여졌다. 재수로 입학한 경희대 법대 시절에는 ‘반유신’ 운동권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의 사형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를 이끌다 구속됐고, 결국 학교에서 제적됐다. 석방과 동시에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상병 때는 북한이 일으킨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대응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회한으로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구속됐다. 그는 유치장 속에서 2차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 시위 전력으로 판사 지망 ‘좌절’…노무현과 운명적 만남 사시 합격으로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7년 연애 끝에 부인 김정숙씨와도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고 조영래 변호사·박원순 서울시장·박시환 대법관·송두환 헌법재판관·고승덕 변호사 등 걸출한 동기들이 즐비한 가운데 차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문 후보는 판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시위전력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대형로펌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 됐다. 의기투합한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 두 사람에게 각종 인권·시국·노동 사건이 몰렸다. 문 후보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저서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을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하며 정치권에 들어섰다. 반면 문 후보는 노동문제 변호사 길을 이어갔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 참여정부 ‘왕수석’…노 전 대통령 곁 지킨 ‘친노적자’로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이빨을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총선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거절하며 불편함이 커진 탓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문 후보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향했던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었다. 중도 귀국한 그는 변호인단을 꾸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던 문 후보는 이후 민정수석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김해 봉하마을로 가면서 문재인도 인근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가끔 들르자고 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문 후보는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적극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했다. ◆ ‘정치신인’ 대선후보에서 ‘적폐청산 기수’로 재도전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09년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보선과 이듬해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현실정치와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셌다. 결국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야권대통합 과정에 뛰어들었다.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뒤 대선후보로 나섰다. 안철수 후보와의 우여곡절 끝 단일화로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고와 침잠의 세월을 보내던 그는 2014년 12월 당 대표에 출마했다. 당 대표가 되면서 쇄신을 거듭했지만 친문(친문재인) 프레임에 갇혔고, 이듬해 안 후보가 탈당하는 분당 사태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영입하며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문 후보를 향한 ‘패권주의’ 공세는 계속됐다. 작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문 후보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바람을 타고 있다. 경선에서는 승리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라이벌이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보듬으며 그들로 향한 지지율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전 대표 등 문 전 대표와 한 때 당을 같이 했던 정치인들이 모두 등을 돌린 만큼 포용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반(反)문재인을 기저로 한 정치권의 연대 움직임도 돌파해야 한다. 반년 가까이 이어온 ‘대세론’을 문 후보가 대선 끝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두환, 회고록서 “5·18은 폭동일 뿐 의미 따질 필요 없다”

    전두환, 회고록서 “5·18은 폭동일 뿐 의미 따질 필요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3일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민간인 학살 등의 책임을 부정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부정·긍정의 구분을 하지 않듯이 폭동도 부정·긍정의 의미를 따질 필요 없이 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전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요 원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검거를 꼽았다. 그는 “5·17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가 광주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광주에서만 반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김대중 씨의 검거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지위를 인정받은 점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우리 사회 저변에는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는 더는 이 일들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나아가 그 성격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동력도, 시간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광주사태 당시 국군에 의한 학살이나 발포명령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발포명령 자체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 전 대통령은 “무장시위대의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공격행위는 전형적인 특공작전 형태를 띠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발포명령 여부를 논한다는 것은 군사작전의 기초상식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전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은 광주사태 당시의 희생자 수”라며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80년 6월 광주지검이 민·관·군 합동으로 집계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165명”이라고 적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WP “‘정치적 공주’ 극적 전환점 맞았다”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영장이 발부되자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사실을 긴급 타전했다. 외신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파면에 이어 결국 ‘구속’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은 점에 주목했다. ●NYT “前대통령 수감 전두환 이후 처음” 워싱턴포스트(WP)는 ‘정치적 공주’(political princess)였던 박 전 대통령이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박 전 대통령이 70ft2(6.56㎡) 독방에서 지내며 한 끼에 1.3달러(약 1440원)짜리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서울구치소의 현황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박 대통령을 일관되게 ‘미즈 박’(Ms. Park)으로 표현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박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난 지 3주 만에 감방에 갇히게 됐다고 전하며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스캔들과 무능력으로 고통받았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박 전 대통령을 구속으로까지 내몬 최순실씨와의 40년 관계에 주목하며 박 전 대통령이 부친의 서거 이후 ‘어려운 처지’(difficulties)에 있을 때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日 외상 “위안부 합의 차기정부도 이행해야” 한편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하면서도 “그의 재임 중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차기 정부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외신 긴급 타전…“박근혜 구속, 한끼에 1.3달러”

    외신 긴급 타전…“박근혜 구속, 한끼에 1.3달러”

    주요 외신들이 31일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긴급 타전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 영장 발부 소식을 전했다. 교도 통신은 “서울중앙지법이 부패와 권력남용 스캔들에 연루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전 대통령이 부패와 뇌물수수·반란(수괴)죄 등으로 구속된 전두환, 노태우 이후 구속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됐다”고 전했다. 신화, 로이터 통신 등도 “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고 타전했다. AFP 통신은 서울중앙지법 대변인의 발표를 인용하며 “탄핵당한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결국 파면에 이어 ‘구속’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은 점을 주목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과정과 서울구치소의 현황 등에도 관심을 보이며 비교적 상세한 보도를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정치적 공주(political princess)”였던 박 전 대통령이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WP는 또 박 전 대통령이 70제곱피트(6.56㎡)의 독방에서 지내며 한 끼에 1.3달러(한화 약 1440원)짜리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탄핵으로 파면된 첫 대통령인 박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고 보도했다. NYT는 박 전 대통령을 일관되게 ‘미즈 박(Ms.Park)’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서울발 기사로 박 전 대통령의 구속사실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온라인 홈페이지에 주요기사로 올렸다. 이 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친구인 최순실에게 뇌물을 주도록 기업들을 압박하고 대신 정치적인 혜택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권좌에서 쫓겨난 지 3주 만에 감방에 갇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이 신속히 진행됐다면서 이번 구속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스캔들의 최신 ‘충격파’라고 소개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임기는 스캔들과 무능력으로 고통받았다면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몇 시간 동안의 부재가 박 전 대통령의 임기를 정의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CNN은 박 전 대통령의 혐의와 최 씨와의 관계, 향후 대선 일정 등을 객관적이고 건조한 톤으로 타전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박홍기 칼럼] 거리에서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홍기 칼럼] 거리에서 전직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정해진 시간은 빠르다. 대통령 선거가 40일 남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국민 스스로 다시 확인하고, 권력에 거듭 각인시키는 날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대통령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지 기각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통치 행위였다”,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는 진술을 또다시 듣는 현실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22년 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그랬다. 당시 그들은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헌정사 70년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8명의 끝은 비극적이다. 이승만은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쫓겨 하야한 뒤 망명했고, 윤보선은 5·16 쿠데타로 물러났다. 박정희는 18년 집권하다 부하의 총에 숨졌고, 최규하는 신군부의 강권에 8개월 만에 사임했다. 전두환·노태우는 퇴임 뒤 군사반란죄로 옥살이를 했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는 탄핵당해 파면됐다. 나머지 3명 역시 평탄했다거나 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준 상처는 유독 깊다. 한때나마 품었던 희망은 좌절을 넘어 절망으로 바뀌었다. 소신과 원칙, 청렴의 뒤편은 추악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반대편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이미지만으로 실제를 판단하도록 한 이미지 전략에 말려든 결과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다. 그 대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헌법의 가치는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무기력한 국회를 대신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이유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거리에서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대선 정국이다. 너도나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국민을 찾아 전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헐뜯고 치고받는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대통령만 되면 도깨비 방망이로 원하는 대로 뚝딱 대한민국을 개조할 수 있는 양 떠벌리고 있다. 외침은 한결같다. 정권교체, 적폐청산, 모든 게 탈(脫)박근혜로 통하고 있다. 정국 혼란을 직간접적으로 초래한 정치인으로서의 반성이나 성찰에서는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가 따로 없다. 낯 두껍다. 다음 정부의 국정 과제가 쏟아지고 있다. 양극화 완화, 정치개혁, 저성장 극복과 일자리 창출, 저출산, 삶의 질, 국민통합, 국가안보, 남북관계, 교육개혁, 제4차 산업혁명 등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난제들이다. 변화된 환경과 여건에 맞춰 비중이 달라졌을 뿐 18대, 17대 대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연결에서 존재하듯 새로운 과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국민도 알고 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며 터득한 학습 효과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과 함께 적재적소의 인재 기용, 시스템적 국정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민주 정치의 핵심인 말과 소통이다. 자기 생각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설득시켜 과제를 실천에 옮기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박 전 대통령이 철저히 실패한 것들이다. 국가도 끊임없이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위임받은 권력인 만큼 군림 아닌 통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임기 내내 꾸준하게 과제를 추적하고 확인해야 함은 당연하다.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하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를 떨쳐내야 한다. 통합이다. 더 나은 사회, 국가를 만드는 데 이념과 진영 논리가 있을 수 없다. 국정에는 줄탁동기(?啄同機)의 순리가 필요하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어미 닭과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하듯 안과 밖에서 힘을 합쳐야 하는 이치와 같다. 참여와 공감을 이끄는 지혜이자 리더십이다. 다음 대통령은 퇴임 이후 시민들과 함께 자유롭게 거리를 걷는 자신을 그려 봤으면 한다. 임기 5년 길지 않다.
  •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역대 세 번째 구속 전직 대통령되나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역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될지가 관심사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구속 수감된 역대 대통령으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다. 1995년 10월 2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계동(65) 당시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 해 11월 1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노씨는 재임 기간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200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같은 해 11월 16일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같은 해인 1995년에 출범한 검찰 ‘12·12 사건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전두환·노태우를 앞세운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및 학살’의 주범인, 노씨와 전 전 대통령을 그 해 12월 21일에 기소했다. 두 사람에게는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앞서 검찰은 1995년 12월 2일 전씨에게 피의자 소환 조사를 받을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전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종결된 사안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개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에 검찰은 전씨에 대해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음날인 1995년 12월 3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전씨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노씨는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추징금 2688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전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추징금 2205억원 납부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은 해 12월 김영삼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에게 경호 및 경비 지원 혜택만을 제공한다. 재직 중 탄핵결정으로 퇴임한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이 3주 넘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후 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순자 “5·18 발포 명령, 전두환과 무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가 24일 자서전을 내고 전 전 대통령과 5·18 발포 명령은 무관하다면서 12·12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것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서전에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전 전 대통령 내외의 관점에서 전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씨는 약 720쪽 분량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인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5·18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데타에 대해서는 “최 대통령이 광주사태의 뒷수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80년 7월 말 그분을 불러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자신의 후임이 되어 줄 것을 권유했다”면서 “(최 전 대통령이)우리나라가 놓여 있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전 사령관뿐’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프로젝트’가 고강도로 진행되자 ‘생을 포기할 뻔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 역시 다음달 초 회고록을 출간한다. 회고록은 모두 2000쪽에 달하며 대통령 취임 과정, 재임 시절, 성장 과정 및 퇴임 후 등 3권으로 구성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文 전두환 표창장 논란’에 이순자 입 열었다…“편협한 일”

    ‘文 전두환 표창장 논란’에 이순자 입 열었다…“편협한 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전두환 표창장 논란’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편협한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4일 보도된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순자 여사는 1975년에 받은 표창장이 왜 논란이 되느냐며 “대통령 되기 훨씬 전이고 (1980년) 광주 사태하고 무슨 상관이 있대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순자 여사는 “국가에서 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전 아무개가 줬으니까 집어 던져야 된다. 그건 조금 편협한 생각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19일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과거 특전사 복무 사진을 공개하면서 “(12ㆍ12 쿠데타 때)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에 최성 고양시장이 “전두환 장군 표창은 버리셔야지 갖고 계시면 되느냐”고 꼬집은 한편 안희정 충남지사 캠프 쪽에서도 공세에 나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을 받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사실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한국사회가 왕정(王政)에서 다시 시민정(市民政)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왕정식의 통치에, 이원집정부제를 통한 장기집권까지 꿈꾸다가 촛불민심과 1987년 6·10 항쟁 때 시민들이 만든 헌법시스템에 의해서 쫓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즉 시민들이 왕정에 맞서 저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을 표방하는 뿌리는 1919년의 3·1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8월 28일 한국을 점령한 다음 날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본관이 이번 성지(聖旨·일왕의 지시)를 받들어 이 땅에 부임한 것은 다스리는 생민(生民)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코자 하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장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함부로 망상을 품고 정무 시행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협박했는데, 데라우치가 말하는 ‘망상’이 바로 한국인에 의한 자주 독립 국가 건설과 민주공화정이었다. 일제는 헌병 통치와, 소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가게 하는 무단(武斷)통치로 한국인들을 억압했다. 또한 토지조사를 빙자해 전국 각지의 토지를 광범위하게 강탈했다. 이런 폭압 정치 10년에 한국인들이 맨손으로 저항한 것이 3·1 혁명이다. 일제의 총칼에 진압되었지만 3·1 혁명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임은 1987년 제정된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다. 1919년 4월 12일 중국 상해에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장 선포문에서 “한성에서 의(義)를 일으킨 지 30여일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조직된 임시정부”라고 명시해 3·1 혁명 발발 30여일 만인 4월 12일에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음을 명기했다. 임시정부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라는 것이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통신·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현행 헌법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 민주공화제를 표방했다. 박근혜 정권이 1948년 건국 운운한 것은 이런 대한민국의 뿌리와 민주공화제의 전통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이 촛불혁명이었다. 현행 헌법은 또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미 1923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탄핵당한 전력이 있었다. 임시의정원은 탄핵판결문에서 “(이승만은)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수입을 방해하였고…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으로 부인(‘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보’)”했다면서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라고 선언했다. 3·1 혁명과 4·19 혁명 정신은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와 전두환이 자행한 1980년의 5·17 군사반란으로 거듭 부인되었다가 6·10 항쟁으로 다시 되살아났고 그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현행 헌법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과 헌재의 대통령 파면권을 준 것은 이 나라가 다시는 왕정으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제도였다. 이제 다시 시민정으로 복귀하는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은 3·1 혁명과 4·19 혁명을 계승한 촛불 ‘혁명’이 소수 정객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해방과 동시에 다시 권력을 장악한 친일세력들과 그 후예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적폐를 청산하고 다시는 훼손당하지 않을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지난한 임무가 남아 있다.
  • 문재인 ‘전두환 표창받았다’ 발언 논란…“당장 버려야” 안희정 등 맹공격

    문재인 ‘전두환 표창받았다’ 발언 논란…“당장 버려야” 안희정 등 맹공격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9일 대선주자 합동토론회에서 ‘군 복무 당시 전두환 장군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발언해 야권에서 논란이 커졌다. 지난 18일 KBS가 주최한 민주당 대선주자 합동토론회에서 문 전 대표가 사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 인생의 한 장면’ 코너에서 이번 논란이 시작됐다. 문 전 대표는 특전사 복무 때 사진을 보여주고 당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당시 제1공수여단 여단장이 전두환 장군, (12·12 쿠데타 때)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는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최성 고양시장은 “전두환 장군 표창은 버려야지 왜 갖고 계시냐”고 웃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토론이 끝나자 안희정 충남도지사 측은 문제를 제기했다. 안 지사 측 박수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모 후보의 말처럼 그런 표창장은 버리는 게 맞다”며 “과도한 안보 콤플렉스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과거의 일이라도 자랑스럽지 않고 자랑해서도 안 되는 일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솔한 발언에 대해 광주와 호남 민중들에게 먼저 사과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도 대변인 논평에서 “적폐세력과의 대연정에서 ‘전두환 표창’ 발언까지 두 후보가 보여준 철학과 원칙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호남 경선을 목전에 두고 이제라도 촛불시민의 염원과 당의 정체성에 맞는 입장을 천명하고 이에 맞는 행보를 하라”며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를 싸잡아 비판했다. 특히 문 전 대표를 향해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전두환 표창’을 폐기하고 20일 광주 금남로의 땅을 밟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전 대표를 향한 공세에는 국민의당도 가세했다. 김경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전두환 표창장이라도 흔들어서 ‘애국보수’ 코스프레라도 할 생각인가 본데 그렇다고 안보 무능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야권 정치인으로 금기를 어긴 문 전 대표는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측 김유정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광주와 호남에 사죄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며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아니고 이제 시작일뿐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문 전 대표 측 임종석 비서실장은 연합뉴스를 통해 “선거를 치러 본 사람이라면 네거티브가 얼마나 참기 힘든 유혹인지 잘 안다. 그러나 네거티브라는 치명적인 유혹을 극복할 때, 비로소 새로운 정치는 시작된다”며 “지금 안희정 캠프에서 문 후보의 특전사 시절 표창에 관련해 취하는 태도는 명백한 네거티브이다. 안 후보가 나서서 당장 멈추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권혁기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특전사 복무 당시 전두환 여단장에게서 표창장을 받은 것을 두고 일부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치공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문 전 대표는 누구보다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를 왜곡하는 행태는 한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당과 우리 당 일부 후보 진영은 무분별한 음해를 중단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권 부대변인은 “(일각의 공세는) 박근혜정권에서 군 복무할 때 대통령 표창받은 군인 모두가 ‘친박’이라는 논리와 다름없다”며 “아무리 경쟁을 한다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침소봉대와 음해로 호남 정서를 왜곡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 전 대표가 직접 쓴 책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1975년 8월에 입대했다. 1975년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주동자로 구속, 수감됐다. 문 전 대표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강제로 군에 입대했다. 문 전 대표가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은 것은 자대 배치 이후다. 문 전 대표는 1978년 만기 전역했으니, 1980년의 5·18광주민주화 운동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문 전 대표 측의 설명이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필리핀 정국 파열음…두테르테 탄핵안 발의 배후 놓고 갈등

    필리핀 정국 파열음…두테르테 탄핵안 발의 배후 놓고 갈등

    필리핀에서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이에 제동을 걸려는 부통령 간에 갈등이 다시 증폭되는 모습이다. 야당 소속 하원의원은 16일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이에 집권 여당은 그 배후에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선출한다. 야당 자유당 소속인 로브레도 부통령은 지난해 6월 말 새 정부 출범 때부터 마약 척결 방식 등 주요 정책을 놓고 두테르테 대통령과의 불협화음을 예고했다. 야당 의원이 꼽은 가장 큰 탄핵 사유는 마약 용의자에 대한 초법적 처형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마약용의자 8000명 이상이 경찰이나 자경단 등에 의해 사살되고 인권 유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최근 유엔에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유혈 소탕전을 비판하는 공개 영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필리핀 국민이 (경찰의 마약용의자 즉결처형으로) 희망을 잃고 무력해졌다”며 국제기구의 조사를 요청했다. 한편 여당 소속인 판탈레온 알바레스 하원의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로브레도 부통령의 연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를 꿈꾸는 여성이 있다”고 로브레도 부통령을 겨냥했다. 에르네스토 아벨라 대통령궁 대변인은 “탄핵안 발의가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큰 음모 가운데 일부”라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로브레도 부통령의 영상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단지 우연인 것 같지는 않다”고 야당 측의 ‘정치적 쿠데타’ 시도를 의심했다. 필리핀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 하원의원 292명 가운데 90% 이상이 친두테르테 진영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여야 대립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녀와 야수’ 여신룩 VS ‘콜로니아’ 섹시 여친룩..엠마 왓슨의 극과극 매력

    ‘미녀와 야수’ 여신룩 VS ‘콜로니아’ 섹시 여친룩..엠마 왓슨의 극과극 매력

    16일 개봉한 ‘미녀와 야수’, 그리고 4월 6일 개봉하는 ‘콜로니아’에서 엠마 왓슨이 연기 변신과 함께 극과 극 스타일링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출신의 톱스타인 엠마 왓슨은 명문 브라운 대학 졸업 및 UN 세계 친선 대사 활동 등을 통해 미모와 지성과 개념을 겸비한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고 있다. 엠마 왓슨의 화제작인 ‘미녀와 야수’가 16일 개봉한 가운데 ‘콜로니아’가 4월 6일 국내 개봉 예정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엠마 왓슨은 두 작품에서 180도 다른 연기 변신 및 극과 극 스타일링으로 영화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먼저 3월 16일 개봉한 ‘미녀와 야수’는 저주에 걸려 야수가 된 왕자가 ‘벨’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며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쓴 기념비적인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라이브 액션 버전이다. 엠마 왓슨은 미녀 ‘벨’로 출연, 싱크로율 100%의 아름다운 여신 룩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녀와 야수’의 시그니처 드레스이기도 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스틸 하나 만으로도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엠마 왓슨은 디즈니 여성 캐릭터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벨’ 역할을 통해 아름다움, 지성미, 그리고 최초로 도전하는 노래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엠마 왓슨은 화제작 ‘미녀와 야수’ 개봉 이후 ‘콜로니아’를 통해 다시 한 번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콜로니아’는 1973년 칠레 군부 쿠데타를 배경으로 비밀 경찰에 붙잡혀간 연인 ‘다니엘(다니엘 브륄)’을 구하기 위해 ‘레나(엠마 왓슨)’가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콜로니아’에 찾아가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미녀와 야수’의 ‘벨’이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부분에 끌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콜로니아’ 역시 여성 캐릭터가 위기에 빠진 남성 캐릭터를 구한다는 설정 및 극 중 ‘레나’의 강철 같은 용기에 반해 출연을 하게 되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미녀와 야수’ ‘콜로니아’는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이지만 엠마 왓슨이 선택하게 된 이유가 바로 사랑하는 연인을 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스타일링은 극과 극이다. ‘미녀와 야수’에서는 단아하고 우아한 여신룩을 펼쳤다면 ‘콜로니아’에서는 섹시한 여친룩으로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스튜어디스 ‘레나’ 역할로 출연하는 엠마 왓슨은 칠레에 거주하고 있는 연인인 ‘다니엘’과 함께할 때 자유분방한 보헤미안룩부터 하의 실종 화이트 셔츠룩까지 섹시 여친룩을 선보이며 영화 팬들의 시선을 강탈할 예정이다. 미모와 지성과 개념을 동시에 지닌 최고의 연기파 톱스타 엠마 왓슨이 차기작 ‘미녀와 야수’ ‘콜로니아’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선보여 관심을 집중 시키고 있다. ‘미녀와 야수’는 16일 개봉했으며 ‘콜로니아’는 4월 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씨줄날줄] 권한대행 사회/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권한대행 사회/이동구 논설위원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라고 했다. 이방원을 비롯해 역대 조선 왕들 가운데는 왕위를 지키려고 부모 형제, 심지어는 자식까지도 무참히 제거했다. 최근 북한의 김정은이 자신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것도 이와 유사한 사례로 꼽히지 않을지. 모두가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된 전제 군주국이나 이와 유사한 독재 국가에서나 일어날 일들이다.작금의 대한민국은 권력을 합법적으로 대신 행사하는 권한대행이 대유행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 등 국가를 통치하는 상층부 권력기관의 상당수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빚어진 현상이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바른정당은 대통령 파면 이후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심지어는 이화여대, 성신여대 등 상아탑에서조차 직무대행이 운영을 맡고 있다. 포천과 하남시, 해남과 괴산군 등 지자체에서도 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은 우리 현대사에서 9번이나 반복됐다. 4·19혁명으로 허정 당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고, 5·16 군사 쿠데타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10·26 때에는 당시 최규하 총리가 권한대행에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됐을 때는 고건 당시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대부분 혁명이나 쿠데타, 탄핵 등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현재의 황교안 권한대행은 역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직접 지켜본 대행이 됐다. 남을 대신해 무엇을 이뤄 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역 배우처럼 어렵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지만 정작 자신의 업적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권력을 대신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쌓아 올렸거나 쟁취한 권력이 아니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임기가 보장되지 않은 한시적인 역할이니 이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기란 더욱 어렵다. 황 권한대행의 처지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황 권한대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국정 책임을 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은 사분오열돼 있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압력에다 경제 상황까지 예사롭지 않다. 다가올 대선을 제대로 치러야 하는 책무까지 부여받았다. 수습해야 할 국정 현안이 태산이다.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대한민국호를 구해야 하는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각오가 필요한 권한대행이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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