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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의 性과 결혼] 절망·포기 금물…적극적 사회생활·재활 중요

    [장애인의 性과 결혼] 절망·포기 금물…적극적 사회생활·재활 중요

    결혼한 장애인은 미혼자에 비해 일단 성 문제에 관한 한 1차 장애물은 넘은 셈이다. 하지만 배우자를 찾기까지 과정이 너무나도 험난하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연구해 온 국립재활원 이범석 척수손상재활과장은 “장애에 절망해 포기하지 말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섞이려는 노력과 자신감이 중요하다.”면서 “최근 들어 장애인과 장애인,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만나 결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척수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되었더라고 완전히 성기능을 잃는 것은 아니다. 척수마비 장애인의 경우 4분의1 정도는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4분의2 정도는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면 성생활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도 결혼할 수 있다” 자신감 가져야 1994년 교통사고로 어깨 이하 전신이 마비된 강준기(38)씨는 비장애인 최미숙(31)씨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사고 후 집에서 힙겹게 팔을 움직이며 혼자서 홈페이지 제작을 익혔다.7년 전 PC통신 장애인 동호회 활동을 하던 중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던 최씨를 만났다. 사고 뒤 전신에 감각이 없고 성기능도 마비됐다고 생각한 강씨는 사실 결혼도 완전히 포기했었다. 그러나 최씨를 만나 사랑을 느끼면서 꺼졌던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예상대로 최씨 가족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강씨 스스로도 “내 몸이 이런데 결혼까지는 힘들겠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6개 회사의 홈페이지 관리를 맡는 등 강씨의 믿음직한 모습이 주위를 움직여 2000년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성생활은 쉽지 않았다. 감각이 없고 발기가 지속되지 않아 자연 임신이 불가능했다. 결국 3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2002년 아들 인권이를 낳았다. 강씨는 “결혼도 성생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면서 “성 재활치료를 받아 둘째는 반드시 자연임신으로 낳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즐거운 성생활이 재활치료에도 큰 효과 기혼 장애인이라도 전신이나 하지 마비의 경우 성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의학적 처방이나 상담 등 성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교통사고로 둘다 하반신이 마비된 신성훈(27)·김은주(33)씨 부부는 2002년 사고 직후 재활원에서 만나 동거하다 올 5월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때 성문제 때문에 헤어질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둘다 감각이 없는 상태로 굳이 성생활을 해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했다는 김씨는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 장애인에게도 성문제는 여전히 커다란 숙제”라고 말한다. 부부 사이에 약간의 위기가 찾아올 만큼 심각했지만 국립재활원에서 상담을 받은 뒤 조금씩 달라졌다. 발기에는 원래 문제가 없었지만 체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면서 자신감이 커져 갔다. 이후 성생활이 원만해지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김씨는 “남편이 ‘나도 비장애인처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관계를 갖고 난 뒤에는 단순한 성적 쾌감 이상의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성생활을 하면서 마비도 많이 풀리는 등 재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복지사들부터 성의 중요성 깨달아야 장애인의 성재활(Sexual Rehabilitation)은 장애인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알맞은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국립재활원이 96년부터 성 재활 상담, 발기부전 클리닉, 부부가 함께 성 재활 실습을 하는 ‘사랑의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효선 성재활상담실장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도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정보와 자신감만 주어도 문제 없이 성생활을 잘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성교만이 성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범석 과장은 “장애인의 성생활은 쾌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권리의 문제”라면서 “의료인이나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 집단부터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용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儒林(44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儒林(44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이는 묵자의 겸애설과 극단적인 반대사상이었다. 묵자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해주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곧 ‘겸애’를 부르짖자 ‘양자’는 ‘남을 위해서는 터럭 하나도 뽑을 수는 없다.’고 부르짖음으로써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천명하였다. 묵자는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였으나 양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였다. 묵자가 또한 집단주의자였다면 양자는 개인주의자였고, 묵자가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면 양자는 쾌락주의자이기도 하였다. 맹자의 제2의 천적 양주. 그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또렷이 남아 있지 않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남아 있는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양자는 묵자와 거의 동시대에 태어나 동시대에 죽었던 것처럼 보인다. 묵자가 BC479년 무렵 태어나 BC381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양자 역시 430년에 태어나 36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치는 않지만 사람은 거의 동시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양생(揚生), 혹은 양자거(揚子居)라고도 불렸다. 그는 중국의 사상사에서 철저한 개인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왔으나 이는 맹자를 비롯한 후대의 집중적인 ‘반대 받는 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양주는 오히려 노자가 주창한 자연주의 옹호자로서 도가철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였다. 지나친 집착과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사랑하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따라서 ‘터럭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위아설(爲我說)’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여씨춘추’는 따라서 양주를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고, 한비자(韓非子)는 양자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위험한 성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군대에는 머무르지 않았고, 천하에는 큰 이익을 위해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과도 바꾸지 않았다.…그는 물(物)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히 여기는 경물중생의 선비다.” 경물중생(輕物重生). 물질을 가볍게 여기고 생을 중요히 여기는 자연주의자 양주. 이러한 양주의 모습을 ‘회남자(淮南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생명을 온전하게 하여 그 진수를 보존하며 한갓 물질 때문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하는데, 이것이 양자가 수립한 학설이다.” 이러한 양자의 태도는 열자의 ‘양주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털 한 올은 피부보다 작고, 피부는 사지 하나보다 작다. 그러나 많은 털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많은 피부를 합하면 사지만큼 중요하다. 털 한 올도 본래 몸의 만분의 일의 하나인데, 이를 어찌 가볍게 여길 것인가.” 그리고 양주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옛사람은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온 천하를 맡긴다 해도 받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털 한 올을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 [서울이야기(23)] 도심의 열린 문화쉼터

    [서울이야기(23)] 도심의 열린 문화쉼터

    올 여름도 무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간혹 소나기가 더위를 식혀 주기도 했지만, 비가 그치자마자 무더위는 계속되었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에 개장한 ‘서울숲’을 최근 방문했다. 햇살이 따가운 한낮의 공원에 의외로 놀이동산처럼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놀이동산과 공원이 비슷하게 인식되지만, 놀이동산에서는 각종 프로그램 및 놀이기구로 분주하게 순회하는 것이 상례이고, 공원에서는 자연 속에서 거닐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자연환경을 즐긴다. 한낮의 더운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서울숲은 넓고 다양한 경관을 가지고 있어 자전거로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공원을 선회하다보니 바닥분수에서 물을 즐기는 어린이들, 스케이트 보드로 묘기를 부리는 청소년들, 자연체험학습을 하고 있는 단체, 시냇물처럼 조성된 곳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공연준비로 분주한 사람들 등 예전의 도심공원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었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노래방, 빨래방, 놀이방,PC방,DVD방, 찜질방,…. 또 아파트, 빌딩, 상가건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도시는 수많은 방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온라인 방까지 가세, 한국은 말 그대로 방의 도시다.” 2004년 제 9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은 ‘방의 도시’(City of bAng)라는 작품으로 참가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방’을 영어의 ‘room’과 차별시하여 한국의 고유명사로 정의하고 있다. 즉, 다양한 이름의 방들, 방들을 담고 있는 건축물이 일상에서 생겨나고 퍼지는 것을 특유한 한국적 상황으로 설명한 것이다. 한국전시를 총괄한 정기용씨도 “한국의 방을 모르면 한국 도시의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오늘날, 이런 방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되며,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미 친숙한 공간이다. 노래방, 빨래방, 놀이방 등 복합어의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각각의 방들은 고유한 기능을 가진 공간이다. 이들 공간은 개별적이며, 외부공간과 무관하게 기능변화, 수평적, 수직적 조합이 무한히 가능하다. 작품처럼 방의 무한한 변용 및 조합, 디지털문화의 가능성으로 역동적인 한국 도시의 현주소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익명성과 폐쇄성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다. 유럽도시의 매력을 언급한다면, 역사적 기념비, 고풍스러운 건물, 미감이 있는 가로시설물 등 물리적 환경 이외에도 시민들의 생활상을 빼놓을 수 없다. 거리의 작은 카페에서 담화하는 사람들, 광장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음악연주를 하는 사람들 등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도시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한다. 혹자는 이러한 외부경관이 기후적 조건으로, 생활방식의 차이로 동양도시에서 발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사실은 기능위주의 현대도시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실된 것이다. 일본건축을 세계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기쇼 구로카와(黑川記章)는 서양과 구별되는 동양적 공간을 ‘마루’와 같은 건물외부와 내부 간의 중간영역으로 여기고, 자연환경에 열린 전통공간의 가치를 지적하면서 도시에서 인간과 자연간의 공생관계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동양도시는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유대감을 상실했다. 동양도시는 본질적으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사상적으로 인간과 일원론적인 자연관을 지니고 있기에, 풍수지리설과 같은 자연과 합일된 구성을 도시이론으로 가지고 있다. 서울의 자연경관이 수려한 것도 이런 자연관과 도시이론에 기인하며, 시민들의 자연친화적인 생활은 당연한 귀결이다. 동양의 산수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붓으로 일획을 긋는 듯한 기법의 신비함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서양화처럼 투시도적 구도화가 아닌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인입하는 상상화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화가의 정신과 삶이 깃들어진 자연과의 대화가 작품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서울이 새로이 변모하고 있다. 아니, 서울이 제 모습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산이 자신의 모습을 찾고, 청계천에 물이 다시 흐른다. 또한, 세운상가는 종묘에서 남산을 잇는 새로운 녹지축으로 바뀔 예정이고, 복개하천의 복원사업이 곳곳에서 추진 중에 있다. 서울의 생태성이 회복되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며, 도심에서의 생태관광이 언급된다. 한강시민공원, 선유도 공원, 월드컵 공원, 서울숲, 서울광장은 Hi Seoul Festival, 강변 물 축제, 좋은 영화 감상회 등의 각종 문화행사와 더불어 이미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시민 휴식처로서의 자연은 도시위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인 행위를 유발한다. 이제 도시는 자연환경에 적극적으로 열린 시민공간을 제공하고자 변화할 것이다. 원활한 교통을 위해 주거지와 한강과의 관계를 절단했던 도로체계는 시민들의 용이한 접근을 위해 개편되고, 개인적인 조망에 중점을 두었던 아파트 개발은 강에서 바라보는 공공의 도시경관 측면으로 수정되려 한다. 도심광장은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적 상징이 아닌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즐거움이 되면서 ‘문화서울가꾸기’에 동참한다. 비단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이 아닐지라도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 자전거길, 산과 습지대에서의 생태공원 등 생활주변의 자연환경이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시민들을 위해 열린다. 도시의 공간구조뿐만 아니라, 주5일 근무제 실시로 도시생활이 변화하고 있다. 매주 짧은 휴가를 맞이하게 된 격이라 자극적인 ‘밤의 문화’보다는 자연환경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 ‘낮의 문화’가 선호될 것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가 간만에 갖게 된 짧은 휴식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극적이고 일탈적이기 쉽다. 주5일 근무제 이전에 야간유흥업소가 더욱 성행했음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휴식은 순간적인 쾌락보다는 지속적인 음미가 요구되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가족과 공유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여가활동이 활성화된다. 이젠 주말에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예기치 않은 전화를 하는 것조차 ‘센스’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서울이 산업도시에서 벗어나 문화도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산업도시의 단계에서는 인원수에 시간을 곱하면 성과물이 양적으로 산출되지만, 문화도시에서는 물리적 측정이 불가능하다. 성과물의 양보다 질이 중시되고, 질은 문화의 성숙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가 성숙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문화적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체험이란 이례적인 일탈이 아니라, 일종의 여가활동처럼 일상의 연속이며, 일상생활 속에 배어난다.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울시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연스러운 참여가 요구된다. 서울시는 문화도시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시민들은 ‘도시만들기’의 주체가 된다. 개인의 이익으로 인해 공공에 대하여 폐쇄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공익이 개인의 이익이 될 수 있는 공동체의식과 방안이 필요하다. 문화도시의 성패는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되기보다 총체적인 평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파리 센 강변의 카페가 개인의 명칭으로서가 아니라, 그 장소가 지니고 있는 분위기에 의미를 부여받고 있음을 상기할 수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것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품을 이식하고 늘 새롭게 단장하기보다는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웃과 공유하면서 가치를 키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한창 진행중인 서울시의 문화행사들은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전제조건이 된다. 문화도시를 완성시키는 것은 시민의 몫이다. ●쉼터 나들이 파란 하늘, 짙은 녹음, 쾌적한 날씨, 어느덧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완연한 가을이다. 멀리서 이색성을 찾기보다 주변에 있는 자연환경을 다시 둘러보고 계절을 만끽해보자. 가을정취를 느끼기에 한강시민공원의 코스모스 단지(이촌지구)나 메밀꽃 단지(양화지구)도 괜찮을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생태기행을 해도 좋다. 자전거 도로는 한강변뿐만 아니라 자연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안양천, 철새로 이름난 중랑천 등의 지천에도 연결돼 있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길동 자연생태공원에서 생태체험학습을 하거나, 올림픽공원 내의 몽촌토성,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자연과 역사문화를 동시에 체험하기를 권한다. 작물재배를 직접 체험하고자 한다면, 서울외곽 곳곳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텃밭 가꾸기’를 할 수 있다. 도시의 가치가 물리적, 경제적으로 설명되기 전에 자연과 개인적인 관계를 지니는 산수화처럼 자신과의 교감으로 이해될 때, 어느덧 문화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백승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계획설계부 부연구위원
  • 儒林(44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6)

    儒林(44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6)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16) 초왕의 말을 들은 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정히 그러하시다면 소인이 여기서 그 운제의 공격을 막아 보이겠습니다.” 이렇게 제의한 묵자는 초왕 앞에서 공수반과 모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 모양을 만들고 나뭇조각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공수반 역시 모형 운제로 모두 아홉 번을 공격했지만 묵자는 모두 수비해 내었다. 결국 초왕은 송나라를 치겠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묵자의 ‘공수반(公輸盤)편’에 나오는 이 고사를 통해 ‘묵적지수(墨翟之守)’란 그 유명한 성어가 나온 것. 이 말의 뜻은 ‘묵적의 지킴’처럼 ‘자기의 주장을 굳게 지켜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인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묵자는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었으며,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천역행(實踐力行)하였던 행동가였다. 흥미로운 것은 맹자와 논쟁을 벌였던 쾌락주의자 고자(告子)와도 묵자는 논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맹자가 고자의 궤변을 논리적으로 성토하였다면, 묵자는 다만 고자의 지행(知行) 불일치를 다음과 같이 꾸짖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란 것은 입으로 말한 것을 몸으로 반드시 실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입으로는 말하면서 몸으로는 실행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당신의 몸이 어지러운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나라의 정사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먼저 당신의 몸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말과 행동의 일치를 중요시하는 묵가의 법도. 이에 대해 묵가는 ‘귀의(貴義)편’에서 다음과 같이 못 박고 있다. “말을 충분히 옮기어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늘 해도 되지만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을 늘 한다면 그것은 입만 닳게 하는 것이다.(言足以遷行者常之 不足以遷行者而常 不足以遷行而常之 是蕩口也)” 이러한 ‘실천역행’의 묵가의 교리는 묵자를 따르는 제자들을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종교집단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공수반과 모의전쟁을 하여 모두 이긴 후 초왕은 자존심이 상해서 묵자를 죽이려 한다. 이때 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수반의 뜻은 다만 저를 죽이려 하는 것이니 저를 죽이면 송나라는 수비할 수 없게 되어 공격해도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의 제자 금골희 등 300명이 이미 제가 만든 수비하는 무기를 갖고서 송나라 성 위에서 초나라 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를 죽인다 해도 그들을 쉽게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묵자가 초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열흘 낮 열흘 밤을 걸어 초나라의 수도 영에 도착하는 한편 금골희를 비롯한 300명의 결사대를 따로 송나라에 파견하여 여의치 않을 때에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금골희(禽滑釐). 그는 묵자를 따르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묵자의 ‘비제(備梯)’편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골희가 묵자를 섬긴 지 3년이 되자 손발에 못이 박이고 얼굴은 새까맣게 되었다. 자기 몸을 부리어 일을 해주면서도 감히 자기가 바라는 일은 물어보지도 못하였다.”
  • 식탁 위의 쾌락/하우드룬 메르클레 지음

    식탁 위의 쾌락/하우드룬 메르클레 지음

    ‘엠마가 들어서자 사람들은 온갖 꽃과 고급스런 식탁보의 기분 좋은 향기, 다양한 요리와 트뤼플 버섯 냄새가 섞인, 미풍으로 둘러싸이는 느낌을 받았다. 촛대 위의 촛불은 식기에 새겨진 은종 위에 길게 불꽃을 드리우고, 은은한 미광이 날카롭게 조각된 크리스털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엠마’는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이다. 그녀가 앉아 있는 식탁은 인간이 꿈꾸는 모든 게 갖추어져 있다. 맛있는 요리와 와인, 크리스털 유리잔, 촛불, 꽃, 향기가 나는 식탁보 등등.‘감각을 위한 축제’로서의 식사는 바로 이런 식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독일에서 호텔경영과 요리, 철학을 공부한 하우드룬 메르클레의 책 ‘식탁 위의 쾌락’(신혜원 옮김, 열대림 펴냄)은 이런 모든 것들, 미와 맛, 향유와 감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디세이아’가 쓰여졌던 기원전 700년 초기 그리스시대의 식사에서 시작해 고대 로마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와 19세기의 모습까지. 저자는 식탁을 둘러싼 다양하고 일상적이며, 동시에 특별한 모습들, 즉 손님 접대와 식탁문화에 대해, 음식과 와인 즐기기에 대해, 그리고 훌륭한 맛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각기 다른 시대마다 음식 섭취라는 행위가 어떻게 미학적인 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시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보여주는 만찬은 손님 접대의 절정을 보여준다. 손님의 발을 씻겨주고 새옷을 내주는 등 경건함과 공손함이 종교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향연 진행과정은 너무 완벽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축제의 절정은 식사시간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여흥, 즉 시를 짓거나 화가와 음악가들의 공연, 재담, 게임 등에서 완성됐다. 로마시대 권력층에게 식사는 곧 부와 권위의 과시였다. 이들은 호화주택에서 엄청난 파티를 열어 최고급 요리를 무제한적으로 제공했다. 평민들은 앉아서 음식을 먹었던 반면 부자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당시 포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수저와 나이프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고기를 먹기 좋게 자르는 하인들만이 사용했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엔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의 구분이 확실했다. 곡물을 껍질째 빻아 만든 무겁고 거무튀튀한 빵은 ‘나쁜 음식’으로 농민들이, 밀가루로 만든 눈처럼 하얀 ‘좋은 빵’은 귀족들이 먹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한 날짐승들, 꿩, 오리, 비둘기, 메추라기 등과 야생짐승 고기는 귀족들의 만찬에 쓰였다. 반면 돼지, 황소 등의 고기는 농부들에게 적합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계층의 서열이 위협받지 않도록 그에 맞춰 소비하는 ‘사치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사람들은 음식 그 자체를 넘어 식사도구와 식탁보, 식기 등 식탁을 둘러싼 것을 미학적으로 꾸미기 시작한다. 귀족들이 포크 사용에 매달린 것도 이때부터다. 전문 요리사와 요리책, 다양한 상차림 등 새로운 음식문화 양식이 이때 등장했다. 메뉴와 차림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식탁이 회의용 탁자처럼 변하는 등 현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이후 시민사회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또 진정한 미식이 무엇인지, 칭찬과 감사의 말을 표현하는 것이 식사를 얼마나 즐겁고 아름답게 만드는지 미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며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오늘 저녁 때는 가장 아끼는 식탁보를 꺼내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따뜻하고 아름다운 식탁을 꾸며 보는 게 어때요?’라고.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儒林(42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儒林(42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 맹자사상의 금강석인 ‘성선설’. 이에 대한 실마리는 고자(告子)와의 논쟁에서 이미 엿볼 수 있다. 고자는 “타고난 것을 성(生之謂性)”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인간이 타고난 생리적 욕망인 음식과 색을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므로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사람의 본성은 선함도 불선함도 없으므로(性無善無不善也)’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마치 ‘고여서 맴돌고 있는 물과 같다. 이 말은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 본성이 선과 불선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없는 것은 이처럼 물이 동서로 나누어짐이 없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던 전국시대 최고의 쾌락주의자.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고자를 맹비난하고 있다. “물은 진실로 동서로 나누어짐이 없지만 어찌 상하로 나누어짐이 없다는 말인가. 인성이 선한 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선으로 나아가지 않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아니함이 없다. 물론 지금 물을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이마보다 높이 올라가게 할 수 있으며, 거꾸로 쳐서 역류하게 하면 산에 머물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다만 그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인 것이다.…” 맹자는 ‘다만 고여서 맴돌고 있는 정지된 호수의 물로 비유함으로써 물의 동서가 없음’을 강조한 고자의 궤변을 질타하고,‘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사람은 물처럼 아래로, 즉 선으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다.’는 경쾌한 논리로 자신의 성선설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고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면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가.” 이에 고자는 대답한다. “그렇다.” 맹자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하얀 깃털의 흰 것이 하얀 눈(雪)의 흰 것과 같은 것이며, 하얀 눈의 흰 것이 하얀 옥(玉)의 흰 것과 같은 것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개의 성과 소의 성이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은 것인가.” 고자는 만물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니 존재의 본질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개의 본질이나 소의 본질이나 사람의 본질은 같다고 말한 것이고, 맹자는 개나 소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은 다른 것이므로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마치 ‘말의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하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말이 늙은 것을 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의 나이 많은 것을 나이 많은 것으로 공경하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질타함으로써 인간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다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천명을 지닌 존재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물에겐 본능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는데, 본능은 자신의 의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생리현상이므로 인의예지의 천명을 가진 인간과는 감히 비교될 수 없으며, 그것을 억지로 비교하려는 것은 ‘사람과 금수의 구분(人禽之辨)’을 없애는 일이다. 금수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만이 가진 내적 본질, 즉 인의(仁義)만이 진정한 사람의 본성이라고 맹자는 주장하였던 것이다.
  • [임해리의 色色남녀] “난 28세에 500명을 알았다”

    어제 TV에서 우연히 ‘정사 2’라는 핀란드 영화를 봤다.30대의 미모인 욘나는 광고 회사의 유능한 커리어 우먼으로 가정적인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편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다. 결혼 후에도 카지노와 바를 전전하며 수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며 순간적인 희열을 맛보는 섹스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남편과도 아는 사이인 알렉스라는 요트맨을 만나게 된다. 두 남녀는 서로의 육체적 쾌락에 미친 듯이 탐닉하게 되고….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하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욘나는 결국 직장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남편에게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과 불안은 섹스에 탐닉하는 기폭제가 되고 해고통지와 함께 집에서 추방된 욘나. 그녀는 바에서 만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입원하고 나서야 현실에 눈을 뜬 후 치료 모임에 나간다. 영화를 보는 동안 주인공의 공중 줄타기 같은 일상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섹스중독자는 성 충동을 참을 수 없거나 조절할 수 없는 것, 과도한 횟수의 성교를 가져야 하며 성행위 전후로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고 한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섹스중독자들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섹스를 갈망하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케네디와 클린턴도 섹스중독자였다고 하며 할리우드의 스타 중에도 꽤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인 남녀의 5% 이상이 섹스중독자라는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또한 한 대학팀의 조사로는 한글 인터넷 이용자 중 10대에서 30대의 15%가 음란사이트 및 채팅을 통해 성적욕구를 해결하여 사이버 섹스 중독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이버 섹스중독이나 오프라인에서 하는 섹스중독이나 정상적인 삶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에 중독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알코올, 마약, 약물, 도박, 홈쇼핑, 성형 등등….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끊으면 금단현상을 나타낸다는 공통점이 있고 재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섹스중독은 어떤 사람이 빠지게 되는 걸까? 내가 예전에 취재한 사람 중에 독특한 이력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그는 28살로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태생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유럽에서 10년, 일본에서 5년을 살았다고 한다. 엄마는 외국인과 네 번 결혼을 했다 혼자 살고 자기는 15살부터 여자와 자기 시작하여 유럽, 중국, 일본 한국 여자까지 한 500명 정도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섹스는 스포츠나 게임 같은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기적이면서도 귀여운 소년 같은 면도 있고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외롭고 불쌍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를 아는 사람 얘기로는 그가 습관성 도벽과 거짓말 때문에 계속 직장을 옮긴다고 하였다. 그가 헤어지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저도 이담에 결혼은 진짜 사랑하는 여자와 하고 싶어요!” 섹스중독,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토요일 아침에]행복하게 부자로 사는 법/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모두 돈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백만장자를 꿈꾸며, 백만장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 있다고 믿는다. 로또복권이 그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집단최면 현상, 로또신드롬, 대박신드롬이 이래서 생겼다. 사실 로또복권의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1이다. 골프에서 홀인원 할 확률은 2만분의1,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3만분의1, 화재로 사망할 확률은 40만분의1, 벼락을 맞아 사망할 확률은 50만분의1이다. 로또복권 당첨이 벼락을 맞아 사망하기보다 16배나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박의 환상에 젖어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복권을 산다. 그러나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은 대부분 평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과정이 배제된 결과는 정상적인 삶의 코드를 망가뜨린다. 그 결과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걸린다. 어플루언스(affluence)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인 ‘어플루엔자 신드롬’은 주식, 부동산, 복권으로 갑작스레 큰돈을 번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갑자기 돈이 많아지니까 그동안 추구해 왔던 삶의 목적이 없어졌다. 당연히 일상생활이 무료해지고 이를 달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한다.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새 아파트, 새 차를 구입하고, 명품으로 치장한다. 그런데도 별로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다. 1998년 봄, 미국의 한 평범한 자동차 수리공이 복권에 당첨됐다. 당첨금이 무려 2071만달러였다. 젊은이는 당첨금을 받자마자 자기가 일하던 자동차 판매 회사의 경영권을 샀다. 모든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만한 경영으로 1년도 못 돼 회사의 문을 닫았다.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갔다.69만달러를 주고 이혼했다. 남은 돈으로 쉽게 재혼했지만 위자료만 물고 또 갈라섰다. 새로 시작한 중고차 사업이 어려워지자 고리사채를 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급기야 파산 신고를 했다.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어촌 마을에 소송바람이 불었다. 대도시를 연결하는 대교가 건설되고 고속도로가 연장 개통된다는 소식에 폭등한 땅값 때문이다. 그렇게나 화목했던 마을이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으로 들끓고 있다. 명절을 맞아 외지에 나간 형제들이 모이면 다음날 장남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이 모두 법원을 찾는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한다. 70대 할머니가 한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60억대 재산을 가진 부자였지만 남편과 10여년 전부터 별거하며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서 가정부와 함께 지내왔다. 두 딸과 아들이 있지만 재산 상속 문제로 이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살이가 재미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한평생 돈벌이에 세월을 흘렸지만 수십억원의 재산이 오히려 불화의 씨가 되었다.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믿었던 그 엄청난 재물이 결국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한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재물과 명성과 향락을 누렸던 솔로몬이 내린 인생의 결론은 ‘허무’와 ‘헛됨’이었다. 말년에 그가 깨달은 바는 사람이 최고의 부귀, 영화, 권세, 지혜를 가질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부자로 사는 비결이요, 참된 복이라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이런 깨달음이 없기에 한평생 돈만 좇느라 피폐한 삶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정말 행복하게 부자로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마광수의 섹스토리] (12) ‘섹스토피아’에 다녀오다

    [마광수의 섹스토리] (12) ‘섹스토피아’에 다녀오다

    나는 Z대 여대생이다. 나는 환상 속에서 ‘섹스토피아’에 갔다. 나는 향기로운 술로 마취되어 침대에 뉘어졌고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정신이 몽롱해서 잘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희미한 시야에서이지만, 얼핏 보기에 상당히 섹시한 미남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바로 내 가슴에 휘감겨 있는 천을 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저항할 수 없었던 나는 행동을 포기하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남자에게 도취되어 그의 행동을 따랐다. 그는 내 가슴 천을 벗기고서 내 젖꼭지에 박혀 있는 보석을 입술로 하나씩 떼어낸 다음, 두 손을 뒷짐진 채로 혀로만 내 몸을 빨았다. 유두부터 빨더니 배꼽의 보석을 떼어내고 이번에는 입으로 내 아랫부분의 천을 벗겼다. 그리고는 내 클리토리스를 빨며 결국은 거기에 박혀 있는 보석도 떼냈다. 보석을 떼어내는 그의 정교한 혀놀림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되었고, 어느새 내 밑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클리토리스를 빨았다. 계속되는 흥분에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깨어나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여전히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내 몸에는 여러개의 가벼운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놀란 순간 비디오가 켜지고 나와 아까의 그 남자가 알몸으로 뒹구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나는 내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때 다시 그 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완전히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본능에 못이겨 그를 붙잡고 내 몸을 계속 빨아달라고 애걸했다. 그는 계속 내 몸뚱어리를 탐식하며 시끈시끈 조곤조곤 빨았다. 나는 다시 그에게 고통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보석이 박힌 금빛 채찍을 꺼내더니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통과 쾌락에 찬 신음소리를 냈고, 계속 때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오르가슴의 절정에 도달하여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나보니 여전히 비디오가 돌아가고 있었다. 비디오 마지막 부분에서 그 남자가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비디오를 당신이 보관하시오. 그리고 당신도 피학성(被虐性)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더욱 유희적인 성생활을 즐기기 바랍니다. 내가 삽입 성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쾌락한 앞날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에서였습니다. 방 한 쪽 서랍 첫째 칸에 당신을 인도할 열쇠가 함께 있으니까 꺼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황급하게 서랍을 열었다. 황금열쇠가 있었다. 열쇠에는 이런 말이 새겨 있었다. “당신의 질에 이 열쇠를 꽂고 돌리시오. 그러면 당신은 행복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나는 열쇠를 내 질 안에 삽입하고 비틀었다. 그러자 내 질에서는 신기하게도 한 개의 편지와 지도가 나왔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말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말은 사실입니다. 당신은 지금 섹스토피아의 입구에만 도달해 있습니다. 당신은 섹스토피아 깊숙한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섹스토피아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곳은 한 마디로 말해서 미녀와 미남들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서울 근처에 그런 곳이 다 있다니…. 나는 허공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저를 빨리 섹스토피아의 핵심부분으로 데려다 주셔요. 빨리요!” 그러자 금방 마법의 양탄자가 날아와 나를 태웠다. 나는 양탄자를 타고 섹스토피아 핵심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은 정말 미남·미녀들만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다. 여자는 물론 남자들도 다 야하디야하게 화장하고 있었다. 나는 곧 섹스토피아의 수령에게 불려갔다. 그는 나를 3개월 동안 훈련시켜 완전히 새 여자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맨 처음, 나는 나의 유전자 코드를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자 나는 엄청나게 섹시한 미녀로 변모되어 있었다. 손을 내려다 보았다. 내 손 끝에는 30㎝가 넘는 좁다란 손톱들이 달려 있었고, 손톱은 빨주노초파남보로 각각 채색되어 있었다. 발톱도 마찬가지였다. 길디긴 발톱에 20㎝ 높이의 샌들. 나는 내 하반신이 휘청거려지는 것을 느끼며 나도 모를 나르시시즘의 오르가슴을 느꼈다. 클리토리스에는 자전거 바퀴만 한 링이 피어싱되어 있었고, 양쪽 음순에는 묵직한 음순걸이가 금빛을 내며 늘어져 있었다. 거울을 보니 모두 피어싱투성이였다. 눈썹고리, 미간(眉間)고리, 코고리, 입술고리, 뺨고리, 턱고리, 이마고리, 인중고리 등등…. 나는 또 멋지게 화장되어 있었다. 눈두덩에는 펄(pearl) 섞인 아이섀도가 세 층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위 속눈썹의 길이는 20㎝, 아래 속눈썹의 길이는 10㎝였다. 위 속눈썹은 금색, 아래 속눈썹은 은색이었다. 입술은 두 가지 색 립글로스로 번쩍이고 있었다. 윗입술은 보라색, 아랫입술은 초록색…. 눈썹은 모두 면도로 밀어져 있었고, 눈썹 없는 눈두덩은 더 야한 빛을 발했다. 나는 귀를 만져보았다. 양쪽 귓바퀴에는 각각 열 개씩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각 구멍마다에서 가느다란 금빛 체인이 흘러내려 어깨를 덮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조금 흔들자, 체인들이 서로 부딪치며 명량(明亮)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때 다섯명의 미녀들이 들어왔다. 모두 쭉쭉빵빵이었고 온 몸에 총천연색으로 문신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게로 다가와 내 온몸을 낭자하게 핥았다. 나는 미칠 듯한 오르가슴을 느끼며 자지러졌다. 여자들이 나가자 이번에는 다섯 명의 미남자들이 들어왔다. 모두다 오색찬란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한 남자의 배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문신되어 있었다. “유미적 평화주의 만세!” ‘유미적 평화주의’라…, 나는 퍼뜩 생각이 났다. 그렇다.Y대 M교수의 책에서 봤던 말이다. 그는 남자들도 여자처럼 화장·치장을 하면 절대로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주장했었다. 남자들은 나를 돌려가며 먹었다. 그렇지만 먹히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다.M교수가 주장하듯, 모든 여성은 다 마조히스트로구나…. 나는 희열 속에 몸을 담그며 한용운의 시구를 생각했다.“복종은 달콤합니다. 복종은 아름답습니다….” 이번에는 남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내 온몸을 핥고 빨았다. 나는 구름 위에 떠도는 기분이었다. 환상에서 깨어난 후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렇다. 이제 내가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을 방법은 나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길뿐이다. 물론 세상에서 ‘야하고 섹시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타고난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정말 선택받은 이들이요 행복한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미(美)란 세상에 태어날 때 갖고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인공미도 얼마든지 미의 대열에 낄 수가 있다.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의 얼굴을 완벽한 섹시함으로 다듬으려면 성형수술도 필요하고 피부 마사지나 몸매 관리도 필요하다. 정 다이어트가 안되면 위장이라도 잘라내야 한다. 그래서 나도 그 섹스토피아의 사람들처럼 되리라…. 나의 일부분이자 전부, 나의 모든 것은 결국 ‘야한 아름다움’으로 귀착한다. 나는 우선 가발부터 샀다.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르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색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파란색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속눈썹은 황금색, 립스틱은 초록색으로…. 코고리도 맞추고 입술고리도 맞췄다. 그리고 크게 용기를 내어 음순을 뚫었다. 긴 사슬이 달린 음순걸이(‘고리’가 아니라)를 장착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그이’가 나타나면 그는 음순걸이의 늘어진 체인을 거세게 잡아당기며 내게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선물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게 도움을 준 것은 Y대 M교수가 쓴 ‘성애론(性愛論)’이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미와 사랑을 연습할 수 있었다. ■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톰 호지킨스 지음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톰 호지킨스 지음

    ‘아! 5분만 더’ 요란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가 다시 이불속에 들어가 맛보는 잠 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하지만 시간에 매여 사는 현대의 소시민들 중 그 달콤함을 만끽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시간이 되면 어차피 열릴 눈꺼풀을 어거지로 벌리기 위해 냉수로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한다. 만일 이불속에서 계속 뭉그적거리다가는, 결국 게으름이란 ‘적’에게 패한 뒤의 씁쓸함만 맛볼 뿐이다.‘아! 나는 안돼’ ●5분 더 자는 아침잠을 만끽하라 하지만 꼭 이래야만 하는가. 사람들은 왜 나태한 습관이 주는 쾌락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까. 현대의 문명사회는 여가와 휴식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을 늘어놓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스케줄에 얽매여 노예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부터 이렇게 게으름이 죄악시되었으며, 이를 유독 강조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영국에서 잡지 ‘아이들러’(Ideler)를 발행하는 톰 호지킨스는 이같은 물음과 함께 시간에 떼밀려 사는 현대인의 삶에 정색하고 반기를 든다. 자칭 ‘게으름을 피우느라 늘 바쁘다는 게으름꾼’인 그가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남문희 옮김, 청림출판 펴냄)이란 책을 냈다. 게으름에 대한 찬사이자,‘아침형 인간’이 판치는 현대사회를 정면으로 비웃는 책이다. 저자는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인식의 뿌리로 오래전부터 인간을 지배한 성경을 지목한다.‘…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언 6장). 근면 지상주의로 통하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떤가. 그는 청교도적인 이상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사람은 일찍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고 부유하고 지혜로워진다는 투의 금언들을 대중에 보급, 장려했다.1830년대 낭만주의 여류 시인 해너모어는 ‘일찍 일어나기’란 시에서 나태함을 ‘조용한 살인자’로, 잠은 ‘중대한 죄악’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저자는 반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그들이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묻는다. 어릴 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튀어나가 뭔가 유익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속에 살아온 사람들은, 지금 과연 얼마나 부유하고, 얼마나 행복한가? 이른 아침, 런던·도쿄·뉴욕 등 거대도시들의 지하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그렇게 건강하고, 부유해 보이는가. 그는 지난 3000년간의 철학, 소설, 시, 역사서에서 게으름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내 게으름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본보기로 엮어낸다. 잠꾸러기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서 위대한 이원론을 완성시켰고, 시인 월트 휘트먼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빈둥거리며 살았으며, 빅토르 위고는 2층 버스에 올라 몇시간이고 한가로이 세상 구경을 즐겼다고 한다. 이같은 게으름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독창성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무기력이나 나태와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게으름은 무기력이나 나태와는 다르다. 흔히 말하는 소위 ‘느림의 미학’과도 다르다. 저자는 일상의 순간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즐기라고 조언한다. 이를 테면 몸이 아플 때 독한 약을 한 줌씩 먹고 병을 내쫓으려 하지 말고 그 몽롱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라고 권한다. 목적지를 향해 지루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말고 배회하듯 거리풍경을 즐기면서 산책하라고 조언한다. 너도 나도 짐싸들고 뛰쳐나가는 바캉스철에 결코 여행하지 말고, 북적대는 곳을 피해 허름한 선술집에서 대화의 기쁨을 누리라고 외친다. 물질만능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좀더 세심히 귀기울여보면 그의 진심이 새록새록 가슴에서 살아난다. 최소한 남과 비교하면서 상처받고 절망하며 사는 일중독자들에게, 게으름은 ‘인생의 시계바늘을 여유롭게 조정함으로써 내 삶의 주인이 되게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9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구실 못하는 괴로움을 지켜보겠다

    「3년간 동거」의 변심에 이 여인의 칼날 보복은 수면제 먹이고 면도칼로, 단골 술집서 서로 눈맞아 서울 성동구 행당동 강모(28) 여인. 이 여인은 11월 22일 상오 10시쯤 서울 종로구 신문로 S여관 2호실에서 보약으로 알고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있는 D보험회사 사원 박모(31·서울 종로구 계동)씨의 국부를 예리한 면도칼로 완전히 도려내고 자기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살아났다. 지금은 철창 안에서 남자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면서 그것 없는 남자의 생활을 지켜보겠다고 도사리고 있다. 강여인이 박씨를 만난 것은 그녀가 중구 화원 시장에서 술장사를 하고 있을 때인 지난 65년 여름. 박씨가 회사 동료직원들과 함께 이 술집을 드나들면서 강여인과 친숙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8월의 어느 날 근처 여관에서 두 남녀는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 치정(癡情)관계. 이런 경우 당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거의 정신 없이 일을 벌여놓고는, 그 쾌락을 종말이 어떤 것이든 짊어지게 되는 것. 이때부터 두 사람은 만나는 회수가 늘어났고 근처의 여관, 여인숙을 전전하게 되었다. 남자는 체격 좋은 총각, 미모의 강여인은「무학(無學)」 부산이 고향인 박씨는 부산에서 D대학을 졸업한 체격 좋은 청년. 서울 계동에 있는 시집간 누이집에 기거하면서 D보험 S출장소 총무로 한 달 1만 8천원의 봉급으로 생활해왔다. 봉급으로 자기 생활만을 하는 박씨였으나 객지에서의 직장생활이 외로웠던 박씨는 자주 술집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런대로 예쁘장한 강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강여인은 학교라고는 근처도 안간 여인. 박씨와는 달리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배다른 3남 2녀의 막동이인 강여인은 부모가 일찍 죽어 부모의 얼굴을 모르면서 이미 결혼한 오빠, 언니들의 집을 며칠간씩 옮겨가는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22세 때 김모씨와 결혼, 그 후 남편은 병으로 죽고 박씨를 만났을 때는 처자있는 이른바「기둥서방」이모(35·상업)씨와 동거를 해오던 중이었다. 여관 등을 전전하던 이들은 어느 날 강여인의 정부 이씨에게 들켰다. 고소하겠다는 등 몇 차례의 싸움이 오간 뒤 박씨는 3만원을 이씨에게 주고 화해, 강여인을 혼자 차지했다. 그 후로 박씨는 떳떳하게 강여인의 술집, 오빠가 사는 판잣집, 형부집 등을 남편인양 드나들었다. 단꿈「신혼살림」차렸으나,「마담」알면서 마음변해 67년 초 이들은 종로구 관훈동에 보증금 3만원에 월세 3천원으로 방을 하나 얻어 살림을 시작, 마치 신혼부부인양 단꿈에 빠진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곳 저곳의 술집을 자주 드나들던 박씨에게는 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났다. 67년 10월 중순쯤 박씨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 국일관 앞「H집」의「H마담」과 정을 통하면서부터 강여인에게 싫증을 느끼고 멀리하기 시작, 더욱이 강여인에게 돈을 빌어서는「H마담」에게 갖다주는 등 박씨의 냉대는 심해졌다.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강여인에게 금년 3월 중순께 오랜만에 박씨가 관훈동을 찾아왔다. 저녁을 시켜먹은 뒤 곧장 집으로 간다는 박씨를 뒤쫓으니 박씨는「H마담」에게로 가고 있지 않은가.「H마담」과 싸움을 벌였다.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박씨가「H마담」아닌 강여인 자기를 때리더라는 것. 모욕을 느낀 강여인은 이때부터 박씨의 국부를 자를 것을 결심, 6백원을 주고 예리한 접는 면도칼(길이 15cm)을 사서 품에 넣고 다녔다. 올해 8월 중순부터 4회에 걸쳐 발길을 끊은 남자의 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만나 동침할 대마다 기회를 엿보았으나 성공치 못하자 조급한 이 여자는 면밀한 계획을 짰다.(여관에서 만날 때마다 이 여자는 목욕하고 세탁한 옷, 고무신까지 새것을 신었다. 일을 저지른 뒤 자기는 마지막이라 생각, 최후를 깨끗이 하고 싶어서였다) 드디어 마지막 계획실행 일자를 결정, 11월 18일『보약이 있는데 달여줄 테니 만나자』고 D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21일 밤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박씨와 만나 보약을 달여 먹이고는 교섭 없이 12시쯤 잤다. 이 약을 먹인 것은 수면제를 먹인데다가 국부를 자르면 죽을 것을 염려, 국부를 잘린 뒤 죽지 않고 거뜬히 살 힘(?)을 주기 위해서 또 수면제를 먹고 힘이 없어 죽지 말 것을 바라서 보약부터 먹였다고 했다. 다음날 10시쯤 잠을 깬 강여인은「바카스」에다 수면제 15개를 타서 보약이라고 하고는 먹으라고 주었다. 안먹겠다는 박씨에게『「H마담」이 준다면 안먹겠느냐』고 강짜. 어쩔 수 없이 박씨는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자신도 수면제 먹고 범행,「아픔보다 아찔함 앞섰다」 한편 강여인 자신도 수면제 40알을 먹고 잠에 떨어질 무렵 품고 있던 면도칼로 박씨의 국부를 완전히 도려냈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12시 30분쯤 여관종업원 권모(21)군이 방문이 열려있어 닫으려고 보니 방안에 피가 가득했다. 기겁을 하고 112에 신고. 두 남녀의 생명을 구했다. 나중에 박씨는 보약을 마시고 잔 것만을 기억, 그 밖의 것은 모르고 단지 오줌이 마려 일어나니 방안엔 피가 흥건하고 아래가 아파 만져보니 국부가 없었다. 아픔보다 아찔함이 앞섰다. 뒤에 강여인은 국부만을 자르고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은『죽으면 복수가 간단히 끝나므로 살려놓고 괴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두고 보고 싶었다』고.『3년간이나 같이 지낸 자기를 농락,「H마담」을 상대한 것에 격분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씨는『장난기로 강과 접촉했는데 강이 적극성을 보이자 자기는 총각, 결혼문제도 있고 해서 강을 멀리 하려고「H마담」을 사귄 것』이라고 강여인을 멀리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강여인은 지금 무척이나 즐겁다고 한다. 강여인은 음독 후 병원에서 소생,『나는 이렇게… 했다』면서 자랑스러운 듯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큰 소리다.『나는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면서 마지막 어느 날을 택하겠다고 했다. 지금 박씨는 서울 중부사립병원에서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면서『죽고싶은 심정』이나『앞으로 이성을 멀리 조용히 살고싶다』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씨의 형도 누이도 박씨가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조용히 돌아섰다. 강여인은 11월 22일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는 한 여자의 독한 마음이 한 남자의 장래를, 자신의 내일을 그르쳤다. 이런 종류의 관계에서 가령 분별력이라든지 자기들이 빠져 있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안목을 요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남녀관계이든 최소한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어서 피차「비참」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변우형(邊雨亨)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儒林(391)-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7)

    儒林(391)-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7)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7) ‘고여 있는 물’의 비유법으로 ‘선도 불선도 없다.’는 고자의 궤변을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통해 사람에게는 누구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선한 데로 나아가려는 본성이 있으며, 물론 물이 역류하여 거꾸로 낮은 데에서 높은 데로 올라갈 수는 있지만 이는 물의 본성이 아니니 불선으로 나아가려는 인성은 물이 거꾸로 역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라고 맹자는 고자의 궤변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인의론을 강조하고 있음인 것이다. 결론적이지만 맹자는 평생을 통해 당대의 제자백가들과 혈투를 벌여 이 모든 싸움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정곡을 찌르는 비유법과 직관의 검으로 하나씩 하나씩 당대의 고수들을 격파해 나가는 맹자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에서 강호의 무림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유가의 고수로서 지존(至尊)이 되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결국 고자의 ‘먹는 것과 여색을 추구하는 것을 인성’으로 보는 쾌락설, 즉 ‘인생의 목표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먹고 마시고 여색의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도덕이나 인의는 다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쾌락주의(快樂主義)는 맹자로부터 여지없이 난타당함으로써 무림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의 사상이 오늘을 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진리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산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고자의 쾌락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일까. 아니다. 오직 먹고 마시고 현세의 즐거움과 성의 쾌락을 추구하는 찰나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오늘날의 세기말적인 현상은 고자의 재림(再臨) 때문이 아닐 것인가.‘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도 오직 선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말의 기술’만이 난무하고 있는 요즘은 오히려 소피스트가 난무하던 고대 그리스의 재현이 아닐 것인가. 이러할 때 고자를 격렬히 비판하고 난 뒤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맹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곰곰이 음미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생선도 내가 먹고 싶은 바이고 곰발바닥도 또한 내가 먹고 싶은 바이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먹을 수 없다면 생선을 놓아두고 곰발바닥을 먹을 것이다. 사는 것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도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사는 것을 놓아두고 의를 가질 것이다.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원하는 바가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하게 얻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죽는 것도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싫어하는 바도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걱정거리가 있어도 피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맹자의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하지만 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의를 버리고서까지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싫어하지만 불의(不義)를 싫어하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오더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진리를 향한 자신의 순교정신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말한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놓아두고 말미암지 아니하면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아아 슬프다. 사람은 닭과 개가 나간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 [임해리의 色色남녀] 거시기 좀 배우지?

    얼마 전 연애의 달인인 친구가 하소연하기를 자기 아내가 도통 성적 접촉을 갖지 않으려고 해서 각 방을 쓰거나 ‘외부’에서 ‘성 도우미’의 손을 빌려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마음은 허탈하고 기분은 거시기하다고 털어 놓았다. 그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아내는 성욕감퇴증인 것 같다. 교직 생활과 가사노동을 오랫동안 병행해 온 40대 여성의 그녀는 늘 육체적 고달픔과 정신적 긴장의 이중고에 시달렸을 것이다. 또한 성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그렇게 가사와 육아, 직장 일에 치이다 보니 부부간의 대화나 성적 접촉이 뜸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냥 ‘가족’의 이름으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간단히 말하면 꽃이 활짝 펴 보기도 전에 시들어진 셈이다. 생각해 보면 그 책임은 그와 그의 아내 모두에게 있다고 보여진다. 평상시에 나는 남자들에게 그렇게 말한다.“여의주도 개입에 물리면 개 구슬되는 것이고 좋은 땅도 개발업자 잘 못 만나면 조립식 주택밖에 못 짓는다. 그러니 남자들은 ‘개발’에 정진하라!” ‘소녀경’에서도 남성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기술 중 하나가 여성에 대한 지식이며 여성을 잘 알아야 완전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인도의 성전(性典)인 ‘카마수트라’에서 ‘카마’라 불리는 인간의 쾌락행위는 고대 인도의 바라문 계급이 학습해야 할 교양이며 지혜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섹스의 쾌락은 신들의 사랑으로 찬미되었고 종교와 철학의 목표였던 것이다. 또한 동양에서는 성 에너지의 양생을 통해 건강과 수명연장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섹스산업이 융단 폭격을 하는 오늘날 포르노나 도색잡지 등에서 성교육(?)을 수료한 남성들은 일발 장전 사격 후 10분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티코 엔진에 무리하게 과속을 하며 자신이 베스트 드라이버이기를 꿈꾸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남성은 불이고 여성은 물이라고 한다. 불은 물에 의해 꺼지는 것이다. 물이 뜨거워 질 때까지 불의 화력을 유지하는 것이 ‘사랑 만들기’의 기본이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면 당연히 권태기를 맞게 되고 사랑의 열정이 식는 것을 자연의 이치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새로운 모험의 세계를 찾으러 다닌다. 총각들은 젊음, 기혼남들은 권태, 늙은 독신남은 생존이라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이발소나 안마시술소, 마사지센터,‘대딸방’을 방문하는 것이다. 기혼남들의 아내는 성욕 감퇴증이나 우울증, 외로움 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도교에서는 여성의 육체를 아는데 7년이 걸리고, 여성의 마음을 아는데 7년, 그리고 여성의 영혼을 아는데 7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하물며 한 여성의 육체를 채 알기도 전에 만족이 되니 안되니, 맛이 있니 없니를 따지는 남성이야말로 얼마나 ‘맛이 간 물건’이란 말인가! 정말로 이 땅에 사는 많은 남자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았으면 한다. 아니 요즘 구청이나 주민 복지센터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던데 왜 성인남녀를 위한 성교육은 안 시키는 것일까? 이왕이면 각 보건소마다 성 클리닉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민 건강 차원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여! 여성에 대해 공부 좀 합시다. 성 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토요일 아침에] 웰빙, 참된 행복/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이달부터 주5일 근무제가 확대됨으로써 이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중 40%가 주2일 휴일시대를 맞게 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많이 바꾸어 놓은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변화는 웰빙 문화의 등장이다. 근로 시간의 축소로 여가시간이 늘어나게 되자 조금씩 조금씩 만족스러운(well) 삶(being)에 대한 인간적 욕구가 표면화되면서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삶의 방식이 단순한 생존의 차원에서 벗어나 정신적 풍요와 육체적 건강을 위해 명상이나 헬스 등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생식이나 유기농 등의 자연식을 매개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웰빙 문화의 한 모습이다. 그런데 가끔 그것이 명품이나 비싼 유기농 나아가 건강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의 소비주의 성향을 부추기는 상업적 마케팅 전략으로 왜곡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웰빙은 사전적으로는 주로 삶의 질을 강조하는 행복, 안녕, 복지 등의 의미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삶의 질’은 주로 행복의 주관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인간의 만족스러운 또는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서 언급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높은 삶의 질은 고통스럽거나 비참한 상태를 제거하여 삶을 만족시키는 데에 그 기준을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난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질병의 고통은 행복을 가로막으며, 정신적 및 정서적 불안은 웰빙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고 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웰빙이 만족스러운 삶, 건강한 인생을 의미하는 개념이라면 이 개념을 단순히 ‘삶의 질’ 차원에서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단지 문화적인 측면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고대부터 수많은 현인들이 사유(思惟)의 주요 핵심 주제로 인생을 논하였고, 이는 결국 ‘행복’ 추구로 귀결되었듯이 행복은 인생의 궁극 목적일 수밖에 없다. 이 행복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웰빙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 번 주어진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웰빙)은 어느 누구의 삶에나 공통으로 맡겨진 과제요 목적이며, 이는 곧 행복을 찾는 삶일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철학자들은 예로부터 행복을 개인의 감성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쾌락과 동일시하거나 고통이나 불쾌가 없는 상태, 혹은 자족, 무욕 등의 정신적 독립의 상태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행복을 자아나 인격의 총체적, 영속적 만족의 상태, 초현실적인 종교적 기쁨의 상태로 정의하는 존재론적, 비공리적 의미로서의 행복의 기준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행복은 이렇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찾아가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고통과 모자람 속에서도 행복은 도망가지 않는다. 비록 풍요롭지 않다 해도 내 작은 마음 안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때 그것이 곧 행복일 것이고, 웰빙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주2일 휴일 시대와 함께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 계획을 짜기에 분주하다. 해외여행? 가족여행? 아니면 필요한 공부 보충? 계획을 짜다 보니 길어진 휴가기간이 오히려 짧다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에는 여름휴가는커녕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다. 비록 물질적인 풍요와 외적인 성공이 내게 당장 따라오지 않는다 해서 불행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휴가는커녕 구슬 땀을 흘리면서 여름을 난다 해도 거기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희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행복이며 웰빙이 아니겠는가?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교수
  • 일상속의 아이러니 특유의 문체로 다뤄

    ‘회색 눈사람’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52·서강대 프랑스문화과 교수)씨가 소설집 ‘첫 만남’(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장편 ‘마네킹’ 이후 2년 만, 소설집으로는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이후 6년 만이다.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 7편과 미발표 신작 1편 등 8편을 묶었다. 수록작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과 그 안에서 버둥대는 개인의 실존에 오감을 활짝 열어둔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 개인의 삶의 기억이 유난히 많이 들어간 이번 작품집에 대해 그는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입을 열면 말이 쏟아져 나오고, 써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앞에 끌려가 앉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스스로의 작동법칙에 따라 연결돼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집 앞’은 화자인 ‘나’가 세살 위 언니 ‘K’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이다. 내가 아홉살 되던 무렵, 집 문턱을 넘어 가족의 일원이 된 ‘K’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늘 불온한 존재다. 직업 여행가로 세상을 떠돌던 ‘K’는 서른 살 기념으로 사막여행을 제안하고, 여행 도중 사막 한복판에 나를 버려두고 가버린다. 고통스럽게 기억을 더듬던 화자는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명제를 꺼내든다.‘K, 너를 사랑한다’. ‘밀랍 호숫가로의 여행’은 부부 약사로 순탄한 결혼생활을 해오던 중년여성이 맞닥뜨리는 삶의 위기를 다룬다. 어학연수를 떠났던 딸아이는 행방불명되고,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까지 선고받은 나는 남편으로부터 혼외정사로 아이가 있다는 고백까지 듣게 된다.“뒤늦게 나는 기쁨과 고통은 별개로, 그렇기에 서로 상관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다.”(87쪽) 미발표작 ‘파편자전-익숙한 것과의 첫 만남’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의 색채가 짙다.‘나’는 십수년 전 파리의 한 정신분석자와의 면담을 떠올리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개인적 삶의 이미지들을 탐색한다. 가족, 개, 노래, 어머니, 우표로 이어지는 기억의 파편들은 글쓰기의 욕망 혹은 쾌락으로 전이된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한자철학 연구하는 수필가 안병욱씨

    [어떻게 지내세요] 한자철학 연구하는 수필가 안병욱씨

    “한자엔 철학이 있지. 성인(聖人)의 성(聖)자를 보면 듣고(耳)고 나서 말(口)을 해야 으뜸(王)이란 뜻이지. 훌륭한 지도자는 영혼의 소리까지 듣고 자기 얘기는 삼가야 해.”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안병욱(86) 전 숭실대 교수.‘산다는 것’‘안병욱 명상록’ 등 수많은 저서를 통해 현대인의 타락하고 혼탁한 정신생활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현대 지성의 방향과 모럴을 제시해왔다. 서울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은 안씨 자택을 찾았다. 아파트 현관문이 빼곡하게 열려 있었다.“선생님”하고 불렀더니 “그냥 들어와”라고 한다. 고서의 냄새가 잔뜩 풍기는 서재에서 마주 앉았다. 먼저 ‘도산아카데미포럼’에 가끔 참석한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주저없이 “일제때 많은 사회적 박해를 받았지만 흥사단만큼 100년 가까이 시종일관 원칙과 사상을 견지해온 단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도산아카데미’의 설립대표이기도 한 안씨는 “도산 선생은 기러기 정신으로 흥사단을 설립했다.”면서 “기러기는 구만리 하늘길을 날아도 방향감각이 확고하며 질서정연하다.”고 강조했다. 협동정신이 강하고 신용과 신의, 죽는 날까지 일부일부(一夫一婦)를 지키는 것 또한 ‘기러기의 세계’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대문명의 일곱가지 병, 즉 ▲도덕없는 상업 ▲인격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근로없는 재산 ▲양심없는 쾌락 ▲희생없는 신앙 ▲원칙없는 정치 등을 꼬집었다. 근황을 물었더니 “현대인에게 좋은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4년째 월간지(한글+한자문화)에 무료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면서 한자철학은 알수록 흥미롭다고 했다. 예를 들어 즐거울 낙(樂)은 상형적으로 원래 어린이가 책상에 앉아 양 손으로 뭔가 배우는 모습이며, 어미 모(母)는 쪼그려 앉아 기다리는 여(女)의 모습에 젖꼭지 두개(모성)를 콕 찍어 형상화했다는 것. 건강(健康) 또한 시멘트 옆에 사람이 서 있는 튼튼한 신체(健)와 집안에서 여자가 절구로 곡식찧으며 어떤 요리를 할까 즐겁게 생각하는 그런 편안한 모습(康)이 합쳐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신체를 단련시켜도 마음의 편함이 없으면 진정한 건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질투와 시기, 부조리가 있는 한 사회적 건강은 결국 절름발에 불과하다고 비유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철학과 정신세계가 얕아지는 이유도 이같은 한자의 오묘한 철학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얼마 전까지 천식과 기관지에 문제가 있었지만 한자연구에 빠지다보니 지금은 아주 깨끗해졌다면서 매일 아침 아차산에 오른다며 웃었다. 오후에는 강의를 했던 수백권의 대학노트를 다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칸트와 셰익스피어, 논어와 맹자 등을 읽는다. “이젠,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본격 연구할 생각이야. 흥망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거든. 요즘 우리 지도층은 한심해. 모럴이 없어요. 국가의 기강은 질서와 원칙에서 생기지” 생명과 사명이 만날 때 가장 위대하다는 그는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 ‘글’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글을 쓰자, 인간 상록수를 만들자, 국가의 인재를 위해 좋은 철학을 심어주자 등의 사명감으로 더욱 충만해진다는 것. 세종때 집현전의 성삼문과 신숙주는 음성학의 대가인 한림학사 황찬을 만나기 위해 요동반도를 열세번이나 다녀오면서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을 완성한 일화도 곁들였다. “1년전 부산에서 강연을 할 때 호텔에서 안마를 한번 받았지. 그때 안마사가 ‘직업이 대학교수였느냐.’고 하더군. 또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는데 재단사가 ‘오른팔이 3㎝ 더 길다.’고 했어. 하기사 20대 중반부터 하루 10시간씩 서서 강의를 했고 오른팔을 뻗어 칠판에 글을 쓰다보니 그런 얘기를 들을 만도 하지.” 문득 서재에 걸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불여학’(不如學-아무리 생각해도 배우는 것만 못하다.).‘청산원부동 백운자거래’(靑山元不動 白雲自去來-청산은 원래 움직임이 없는데 구름이 오고갈 뿐이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테크니칼·버진, 일금부부, 에세이 인격

    대학가의 이 알쏭달쏭한 풍속도를 아십니까? <테크니컬·버진> “마지막 교두보는 지키자” 한국적「즐기는」신안특허(新案特許) 요즘 여대생 사회에서는 TV란 은어가 은밀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 경우 TV란「텔레비전」의 TV가 아니라「테크니칼·버진」(Technical Virgin)의 TV. 직역하면「기술적인 처녀」정도의 뜻이 되겠다. 「기술적인 처녀」라면 뭘까. 여대「캠퍼스」에서는 이「테크니칼·버진」의 포괄적인 의미가 아직은「포퓰러」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으나 우리 여대생 사회에 있어서의 성개방은 이제 신화 속의 얘기만은 아닌「현실」로 부각되어 가고 있다. 새 가치관으로서의 성윤리의 몰락은「쾌락의 추구」와 직결된다.「테크니칼·버진」은 이 쾌락의 추구로서의「섹스」관. 적당한 수단과 방법으로「섹스」를 즐기되「버지니티」만은 고수한다는, 말하자면「코리어나이즈」된 성개방의 물결이다. 「퍼미시브」한 현대 사회구조에서 성에 대한「타부」의 동요 현상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 단지 바다 건너의 새「섹스」관이 여성의 처녀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데 반해「테크니칼·버진」은 최후의 교두보로서「버지니티」를 사수(?)한다는데 보다 한국적인 일면이 있다. S여대 학생회장인 김국경(金菊卿)양은『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여대생은 거의 전부가 가짜』라고 흥분한다. 학업에 몰두해야 하고 부덕(婦德)을 쌓아야 하는 여대생 사회에서 성의 개방이니 쾌락의 추구니 하는 어마어마한 죄악(?)은 있을 수도 있지도 않다는 것. 그러나 김양의 도덕적인 발언과는 달리 요즘 여대생 사회에서는 무언가 형체가 분명치 않은 새로운「섹스」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호텔」을 출입한다, 학자금이나 용돈의 마련을 위해 술집의「호스테스」가 된다, 가정부도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저명한 사학가「막스·러너」는 언젠가 현대를 고대「바빌론」에 비유해 개탄한 적이 있다.「바빌론」의「처녀성(處女城)」에도「테크니칼·버진」이란 게 있었을까. <일금일부(一金夫婦)> 중년, 여대생을「양육(養育)」한다 학자(學資)·용돈은「출장남편」이 「F·사강」의『어떤 미소』가 몇 년 전 상영된 적이 있다. 돈 있는 중년 신사와 여대생이 엮는「어떤 정사」가 줄거리. 그리고 분명 여기에서 영향받은 듯한 한 가지 중대한 현상이 명동 거리와 이름있는 어느「레스토랑」, 극장가에서 나타났다. 싱싱한 여대생과 말끔한 중년신사의「데이트」현장이 눈에 띌 만큼 자주 목격된 것이다. 요즘엔「일금부부」란 게 생겼다. 돈 있는 중년이나 사장족(族)이 일정액의 현금투자를 하곤 여대생을 양육한다. 방을 얻어주고 매달 생활비와 학자금을 대준다. 그리곤 1주일 에 한두 번씩 현지출장을 나가 어떤 형태의「부부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경우「부(婦)」쪽은 대부분 서울에 집이 없는 지방출신 아가씨. 일금 ○○○○○원정의 현금투자자로 맺어지는 이「일금부부」는 서울에만도 상당수가 있다는 얘기다. S대 J교수에 의하면 우리 여대생들에겐『시집가기 전에 멋있게 놀아보자』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엔조이」의식에 여대생 특유의「매머니즘」과 물질적 허영심이 교차될 때「일금부부」같은 편리한 변칙(?)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추론. 굳이 여대생의 경우만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여성의「출분」은 그 99%가 경제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작년 E대의 집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대생의「고민 제1위」는 경제 문제. 다음이 이성 및 성 문제, 가정 문제, 신체 문제, 사회가치 문제의 순서로 되어 있다. 힘 안들이고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일금부부」는 지극히 제한된 계층의 생활풍습(?)이긴 하지만 따라서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 미국에서는 미혼인 남녀 대학생이 공공연히 동거생활을 하고 있음이 밝혀져 얼마 전「뉴요크·타임즈」지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자유의 천국 미국에서는『처녀들이 교의(校醫)에게 피임약 처방을 요구할 자유』까지 보장되어 있다지만 우리 여대생들은 아내있는 남자와「일금」의 관계를 맺는다. 그것도 경제적 사유 때문에. 좀 슬픈 생각이 든다. <에세이 인격> 원전(原典) 외면하는 독서경향 척척 인용구로「유식」행세 『저 친구 얘기 한번 해보니까「에세이 인격」이더군』하는 소리가「캠퍼스」안에서 자주 들린다.「에세이 인격」이란 한 마디로 요새 번창 일로에 있는 유사(類似)「에세이」류만을 탐독, 교양이나 지식, 사고의 한계가 그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안모, 이모, 김모, 전모 등의「에세이」류나 읽고 대학생인 체하려는 사이비 대학생들을 꼬집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세이」류의 특징을 들자면 ①다분히「페단틱」하다는 것 ②주로 여대생들을 상대로 쓰여진다는 것 ③상식적「테마」보단 추상적「테마」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세이」류를 읽음으로써 대학생들은 원전을 읽지 않고서도 언제나 풍부한 인용구를 소유할 수 있으며「유식한」냄새를 타인에게 과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을 보지 못한 인용어구는 하나의 사상누각(沙上樓閣) - 결코「유식」할 수 없다.「깊이」는 가고「재기」만 남은 셈이랄까? 「에세이」류가 결코 상아탑의「텍스트」일 수는 없다는 논리의 동일 연장선 위에 요즈음 대학생들의 학점 중시경향을 놓을 수 있겠다. 5·16 전만 해도 출석은「사인」으로, 학점은 졸업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던 것이 이제 꼬박꼬박 교수가 출석을 부르고 평균 B를 위해 고등학교 시절 학원에 나가던 기개로「노트」를 외어야 한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애인까지「카드」정리에 동원해야 했던 어제에 비하면 취직시험을 위해 애인의 아버지를 동원하는 오늘의 대학생이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하기도 하다. 시험을「보이코트」했을 때 시험을 친 학생에겐 무조건 C를, 시험을「보이코트」한 학생들에겐 모두 B학점을 주던 교수도, 학생도 이젠 없다.『전체의 의사를 배반했기 때문에 C학점을 준』그런 일은 신화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학점만이 학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잡다한「에세이」류가 인생의 폭을 넓혀주는 건 결코 아니다. 대학의 젊음을 보다 건강히 연소시킬 수 있는, 학점도「에세이」도 아닌 곳에 오히려「로마」로 가는 길은 뚫려 있지 않을까? [ 선데이서울 68년 10/27 제1권 제6호 ]
  • [길섶에서] 기억 또는 추억/김경홍 논설위원

    누구든 몸이 아파서 잠 못 이룬 밤이 있을 것이다. 때때로 질병이나 과로로 몸이 아플 때면 이번에 낫고 나면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야지 하면서 숱하게 자신을 다그친다.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통증이 가시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다. 술로 인한 고통도 마찬가지다. 술이 과하면 머리도 아프고, 속도 쓰리고, 배도 아프고, 어떤 일에 맞닥뜨려도 의욕이 사라진다.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깨고나면 잊어버리고 만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고통도 자각이나 반성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쾌락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몸과 마음이 그렇게 만족했는데,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고 만다. 여성들이 산통을 잊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육체의 기억은 부질없는 것이다. 살다 보니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매일 다니는 길도 있고, 자주 가는 곳도 있고, 다시 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길목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때 누구랑 즐겁게 밥을 먹었지. 아이가 이곳에서는 요렇게 예쁜 짓을 했었지. 아이쿠, 여기서는 내가 부끄러운 행동을 했었지…. 쉽게 잊는 육체의 기억보다는 순간의 감동이 추억으로 남는 것일 게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씨줄날줄] 존 스쿨/이목희 논설위원

    성매매를 얼마전까지 윤락, 매춘으로 불렀다. 여자쪽의 잘못이 부각된 용어였다. 파는 자 이상으로 사는 자가 잘못이라는 기본인식이 형성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렸다. 예방까지는 한참 갈 길이 멀다. 아직은 파는 쪽을 교화하는데 머물고 있다. 사려는 쪽의 변화가 없으면 성매매에서도 ‘풍선효과’는 여지없이 작동한다. 지난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집창촌을 집중단속하자 신종 퇴폐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구매자를 교육시켜 수요 자체를 억제하자.’ 간단한 경제학원리를 성매매 예방에 도입한 이는 노마 호탈링이라는 미국 여성이다. 어릴 적에 부친 사망, 모친 취업으로 빈집을 지키다가 이웃남자들의 성노리개가 됐다. 이어 마약복용, 성매매 등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끝에 심기일전해 세이지(SAGE)라는 성매매방지 단체 설립을 주도했다.1995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 경찰·검찰과 함께 ‘존 스쿨(John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 성매매 초범자 교육프로그램이다. 자신을 수십차례 검거했던 경찰간부가 도움을 줬다. 성매매가 떳떳지 못한 것은 어디나 같다. 들키면 미국에서 흔한 이름인 ‘존’이라고 둘러대는 사람이 많았다.‘존 스쿨’ 명칭은 그에서 유래됐다. 존 스쿨 제도는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뿐 아니라 유럽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여성부와 법무부가 올해 검토사업으로 발표한 바 있다. 지난 주말에는 미 국무부가 존 스쿨 전파 문제를 한국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스쿨 교육은 성매수자들에게 성판매 여성이 직면한 폭력, 학대, 감금, 약물중독 등의 고통을 보여준다. 순간의 쾌락을 위한 성매매 행위가 관련 여성의 삶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알려줌으로써 구매욕구 자체를 없애자는 취지다. 교육결과 성매수 재범률이 2%로 떨어졌다고 한다. 미 국무부는 올해 국제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을 ‘성매매근절 모범국’으로 꼽았다. 동시에 ‘성착취 목적 인신매매 발생, 경유, 목적지’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중국·필리핀·태국 여성들이 성매매를 위해 한국으로 팔리고, 한국 여성은 미국·일본으로 매매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한국의 모범국 선정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등 ‘노력’이 평가받았기 때문이지, 실제 상황은 다르다고 본다.“성매매를 단속해 경제가 나빠졌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한 언제든 다시 ‘열등국’이 될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퇴계의 고백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의정부의 사인(舍人)이 되어 노래하는 기생이 눈앞에 가득하였을 때 문득 한 가닥 환희심이 일어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기미(機微)는 살고 죽는 갈림길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의미심장하다. 퇴계는 ‘화려하고 시끄럽게 쾌락에 빠지는 것’과 ‘그것에 초연할 수 있는 평상심’을 ‘살고 죽는 생사의 갈림길(機則生死路頭也)’로 보고 있음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술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찍이 15살 되던 해 송재공을 따라 안동에 갔을 때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진 실수를 한 이래로 술에 대해 평생 근신하였다. 퇴계는 병약했으나 술은 즐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는 퇴계가 만년에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 중에 술에 관한 시가 서너 수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퇴계는 직접 집 뒤의 산속에 술 빚는 창고를 두어 서당에 손님이 찾아오면 산봉우리로 불러 술을 마셨다고 한다.‘달밤에 이 문량이 도산으로 찾아오다(月夜大成來訪陶山)’란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산봉우리 넘어 불러/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관란헌에 셋이서 솥발처럼 앉아/그윽한 마음 열고, 다시 난초 배에 올라/달 놀이 하다 돌아왔네(良夜同欣好客來 隔岑呼取濁 盃 臨軒鼎坐開幽款 更上蘭舟弄月回).” 이밖에도 절우사(節友社) 화단의 매화가 늦봄에 피어나자 읊은 퇴계의 시는 아취(雅趣)를 느끼게 한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찌 필요하리오/난초향기 같은 말. 하늘가에 옛 친구들/볼 수가 없어, 그대 더불어 날로 아무 일 없이/술잔 기울여 마시네(今者何須蘭臭言 天涯故人不可見 與爾日飮無何尊).” 이처럼 술을 좋아하던 퇴계였으나 평생 술을 절제하여 취하지는 않았다. 술에 대한 경각심을 퇴계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서울에 있을 때에 늘 사람에 이끌려 날마다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러나 얼마 뒤 한가한 날에는 문득 심심한 마음이 들어서 돌이켜 생각해 보고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또 내가 일찍이 금문원(琴聞遠:제자))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산길이 몹시 험하였다. 갈 때는 말고삐를 잔뜩 잡고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길 험한 것을 아주 잊어버리고 마치 탄탄한 큰 길을 걷듯 하였으니, 마음을 잡고 놓음이 이처럼 심히 두려운 것이다.” 퇴계의 두 번째 고백 역시 학문의 길은 몹시 험한 산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항상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하며, 마치 탄탄한 큰길처럼 함부로 가면 낭패를 본다는 내용으로 제자들에게 내리는 경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젊은 날의 퇴계는 마음을 다잡고 거경(居敬)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학문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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