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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원칼럼] 책 읽는 장소를 권함/김무곤 동국대 교수

    [객원칼럼] 책 읽는 장소를 권함/김무곤 동국대 교수

    강호(江湖)에 눈이 빛나는 사람이 적으니 사는 재미가 덜하다. 사람 만난 뒷자리에 향기가 남는 일이 드물어져 간다. 정치가나 기업가나 언론인이나 학자나 다 마찬가지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없다. 도무지 공부들을 안 하기 때문이다. 공부 안 하면 메시지가 있을 리 없고, 메시지가 없으면 만남이 공허하다. 남자들끼리 만났다 하면 폭탄주에 노래방에 등산이다. 폭탄주. 난폭하니 자칫 이성을 잃기 쉽고 건강을 망친다. 노래방. 슬프지도 기쁘지도 아니한데 왜 절규해야 하는가. 등산. 올라가서 땀 빼놓고 내려와서 삼겹살은 왜 구워먹나. 가끔 입을 열면 정치이야기. 이제 지겹다. 동시대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이 폭탄주, 노래방, 등산에 그토록 몰입하는 것은 셋 다 그다지 말을 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도 혼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입이 없으니 산출이 없고, 자극이 없으니 변화가 없다. 머릿속에 바뀐 게 없으니 오래 전 이야기를 닳고 닳도록 써먹는다. 새로운 생각을 거부하고 낯선 제안을 물리치게 된다. 이윽고 자기 자신을 황폐화시킬뿐더러 사회의 생기를 빼앗는 것이다. 대한민국 남성 제군(諸君)! 폭탄주 자제하고 공부하기를 권함. 올가을엔 눈빛이 형형해져서 귀환하기를 권함. 아래에 절호의 독서 장소를 예시함. #기차. 한때는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20분 걸렸다. 캔 커피 하나, 책 두 권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은 늘 상쾌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공원 벤치.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더 좋겠지만, 비 안 오고 어둡지 않으면 괜찮다. 책도 읽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그러다 산책도 하다가 책을 베고 잠들 수도 있다. 잠잘 때를 생각하면 좀 두꺼운 책이 좋다. #화장실. 여행 해보면 제집 화장실이 얼마나 귀중한 공간인지 알게 된다. 화장실은 독립적이고, 은밀하고, 자유롭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도, 프랑스의 극작가 마르셀도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헨리 밀러는 “나의 훌륭한 독서는 거의 화장실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썼다. 마르셀은 헨리 밀러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결코 침범 당할 수 없는 고독이 요구되는 모든 일. 즉, 독서나 몽상, 울음, 관능적인 쾌락을 위한 장소”라고 예찬했다. 책 읽는 장소가 책에 대한 기억을 결정하는 듯.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는 ‘어느 책 읽는 사람의 이력서’에서 고백했다. “어느 해 늦여름 나는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이런을 읽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바이런을 읽었을 때 ‘나는 베니스의 한숨의 다리 위에 서 있었네. 다리 한쪽엔 궁전이 있고 다른 한쪽에 감옥이 있었네’라는 시구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마르틴 발저에게 바이런은 사과나무와 함께 떠오른다. 나에게 중국작가 쑤퉁의 ‘홍분(紅粉)’은 서대문 지하다방의 쌍화차 냄새와 함께 떠오른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대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선 절집의 툇마루다. 내용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책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추억을 읽으면 된다. 가끔 어딘가에서 책을 읽었던 그 행위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된다. 프루스트는 말했다. “자신이 읽은 책에는 그 책을 읽은 밤의 달빛이 섞여 있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카악~ 괴물이다… 야만성·무질서·무지 속 내면의 야수 환상 속 이미지·쾌락을 불러내는 존재

    괴물이 각광받는 시대다. 어린이가 공룡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인들은 괴물을 쿨(cool)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우주에서 방사선에 노출돼 DNA가 변형된 사람들을 그린 영화 ‘판타스틱 4’나 슈퍼맨의 어린시절을 그린 TV미니시리즈 ‘스몰빌’,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활약하는 영화 ‘반헬싱’과 그 연작 시리즈들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는 것을 보면 그렇다. 괴물은 비록 외모가 괴기스럽고 혐오스럽지만 자신의 뜻하는 대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 스트레스와 억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금기의 세상을 상상하고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새달 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괴물시대’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이 8월30일까지 ‘괴물시대’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다. 괴물(monster)의 서양적 어원을 찾아가면, 라틴어로 ‘가리키다(monstrare)’와 ‘경고하다(monere)’라고 한다. 19세기까지 괴물은 광기, 악덕, 비이성, 위반 등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일탈을 공중 앞에 드러내 경고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의 괴물시대 전시기획은 공포스러운 그림과 추한 그림, 조각, 사진 등을 통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예민한 정신세계와 인류와 불화하는 현대사회의 불협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괴기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괴물이다.’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손가락질이 사실은 자신들을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폭력성과 야만성, 무질서, 무지 속에서 내면의 야수, 괴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의 실상을 그려낸 안창홍의 불사조, 신학철의 ‘한국근대사’ 시리즈, 박불똥의 ‘사령관 각하의 부스럼’ 등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림이다. 2009년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1970~80년대 처절한 민주화 운동을 이미 잊은 채 민주화된 세상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사조 한 마리가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수백만마리의 불사조를 탄생시키는 안창홍의 1985년작 불사조를 보면, 민주화의 새벽은 1960~70년대의 산업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군부독재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철의 작품도 오랜만에 본다.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이 2002년에 80년대 민중미술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 안에 있던 작품들이다. 당시 기증작품 중에 오치균의 ‘인체’도 들어 있었다. 오 작가가 80년대 말 미국 유학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미국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과 재정적인 궁핍으로 절규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오 작가는 현재 한국현대미술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하나이고, 당시 민중미술계열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기증 작품 목록에 끼어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내 안의 괴물’에서 볼 수 있다. 폐타이어로 대형 조각품을 만든 지용호의 ‘재규어5’는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통을 공허한 재규어의 눈빛으로 보여준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칼과 나이프도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검은 악어와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소가죽의 악취를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김혜숙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크리스털 원형 볼에 오줌을 담아 놓은 장지아의 설치작업 ‘P-tree’는 사회의 금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불결하거나 더러운 것은 오줌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는 인간의 차별화된 마음이 아닐는지. ‘착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굉장한 힘을 가진’ 괴물을 그려온 이승애의 아름다운 괴물 벽화와 곤충표본 상자에 모아 놓은 ‘미이라’ 연작도 볼 만하다. 연필만으로 그려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타투 작가로 잘 알려진 김준의 초기 작품 ‘지옥도’, 한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살덩이뿐인 인간의 실체와 허위의식에 접근하고자 한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 등은 충격적일 수 있다. 이 밖에 임영선, 류승환, 이한수, 김남표, 심승욱, 송명진, 호야, 전민수, 이완, 이재현 등 21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관람료 700원. (02)2124-8941. ●새달 22일까지 사비나미술관 ‘더블 액트’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더블액트(Double Act)’ 전시에도 괴물은 존재한다.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1층에 전시된 서정국과 김미인의 ‘신종생물’ 시리즈다. 공룡이 빨간 날개를 달고 있는가 하면, 공룡의 얼굴은 사라지고 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황제펭귄에게는 진짜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다. 괴물은 2층에도 있다. 이 괴물은 ‘바나나맛 우유’ 시리즈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책상 위에 작은 트랜스포머들이 있는데, 로봇들과 전투기들이다. 수류탄 형상을 한 바나나맛 우유로 만든 작품들로, 강압적으로 우유를 마시게 했던 초등학교 시절과 몸에 그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없어 배앓이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김과현(김원화+ 현창민)이 공동작업한 것이다. 작가 박진아와 이재현이 작업한 ‘도킹’과 ‘남자와 소년’ 등의 작업은 구상작품일 때와 경계선만 남겨 놓고 구체성을 없애버린 작품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모호할 때 관객이 느끼게 될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가 최현주와 이종호의 작업 ‘감각과 지각’에는 인간의 환상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와 쾌락을 불러내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다름아닌 ‘소파’다. 이 괴물은 유쾌하고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앉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그룹 ‘믹스라이스’ 작업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순혈주의의 허위의식을 깰 때가 됐다. 8월22일까지. 관람료:1000원. (02)736-437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견딜 수 없는 것/박경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견딜 수 없는 것/박경리

    견딜 수 없는 것/박경리 단구동에 이사온 후 쐐기를 쏘여 팔이 퉁퉁 부은 적이 있었고 돌 틈의 땡삐, 팔작팔작 나를 뛰게 한 적도 있었고 <중략> 너가 나에게 앙갚음을 하는구나 아픔을 그렇게 달래었지만 차마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눈이더군 나보다 못산다 하여 나보다 잘산다 하여 나보다 잘났다 하여 나보다 못났다 하여 검이 되고 화살이 되는 그 쾌락의 눈동자 견딜 수가 없었다
  • [열린세상] 두려운 것은 웃음이 없다는 것이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두려운 것은 웃음이 없다는 것이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그리스도는 결코 웃지 않으셨네.” 움베르토 에코를 스타로 만든 ‘장미의 이름’의 한 구절. 결국 모든 살인사건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이른바 ‘희극론’. 호르헤 노수사(修士)는 이 책의 열람·유출을 막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며 마침내 자신의 행각이 발각된 순간, 이를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섬뜩한 광기. 명탐정 윌리엄 수도사도 이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묻는다. “왜 하필 이 책이 유포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오?” 호르헤의 답변은 묵시적이다. “철학자의 말은 세상을 전복시켰지만, 신의 형상까지를 뒤바꾸지는 못했네. 그러나 이 책이 공개된다면, 우리는 마지막 선을 넘게 되네.” 대체 무슨 말인가. ‘희극론’과 독신(瀆神)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리무중의 윌리엄은 되묻는다. “웃음에 대해 말하는 게 뭐 그리 겁나오? 이 책을 없앤다고 웃음이 없어지겠소?” 호르헤의 대답은 무겁고 냉혹하다. “웃음은 잠시 미천한 자들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지. 그러나 율법은 공포, 정확히 말해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네. 이 책은 악마적인 불똥을 튀겨 세상을 태울 것이고, 웃음은 공포를 없애는, 프로메테우스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로 간주되겠지.” “하지만 진중하신 교부들의 생각은 달랐네. 웃음이 천박한 자들의 낙()이라면, 이 방자함은 엄격한 규율에 의해 질책당하고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미천한 평민들은 웃음을 제어할 수 없네. 오히려 웃음을 목자(牧者)의 진지함에 대항하는 도구로 만들 뿐이지. 배와 엉덩이와 먹을 것과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그들을 이끌어내어 영생으로 인도하는 영적 목자들을 말일세.” 이글거리는 호르헤. 그가 볼 때, 세상은 엄숙해야 했다. 고행과 참회와 눈물로 가득해야 하기에. 하지만 웃음은 이를 전복시킨다. 인간을 타락한 쾌락과 천박한 유혹에 물들이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이 찰나적인 육체적 현세에 못박기 때문이다. 그가 신의 도구를 자처하며, 그토록 ‘희극론’의 유포를 막으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녕 에코의 창작력은 출중하다. ‘희극론’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를 아주 그럴싸하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코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웃음’ 때문이다. 그는 소설 전체를 짓누르는 종말론과 엄숙주의를 통해, 거꾸로 웃음의 가치를 각인시킨다. “웃음이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지적 전통은 어떠했는가. 호르헤가 토해내듯, “웃음이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죄인인 우리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독단이 아니었던가. 곧 웃음을 “농부의 여흥, 주정뱅이의 방종”이며 “허약함, 타락, 육신의 어리석음”의 증표로 못박음으로써 ‘웃음=무식=쾌락=육체=죄’의 등식을 만들어낸 것이 서양의 식자층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민중문화의 소멸되지 않는 웃음을 입증한 미하일 바흐친에 따르면 “오직 도그마적이며 권위적인 문화만이 일방적인 진지함을 갖는다. 강압은 웃음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진지함은 탈출구 없는 상황을 쌓아가지만, 웃음은 그러한 상황 위로 올라서서 그 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웃음은 인간을 구속하지 않는다. 웃음은 인간을 해방시킨다.” 참으로 바흐친이 강조하듯, 분노는 일방적이고 보복적이며 분열을 초래한다. 반면에 웃음은 차단기를 들어올리고 길을 트며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현실이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웃음의 광장을 확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독단적인 진지함을 통해 국민을 분노의 외길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갖가지 엄숙한 명분과 법률을 통해 비판하는 자들을 재갈물리려는 사회. 급기야 전직 대통령마저 스스로 소멸케 만드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호르헤의 저 새까만 광기 앞에서, 대체 누가 어떻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명·청시대 문인사회 남색풍조 분석

    고려말 공민왕의 남색을 정면으로 다뤄 화제를 모은 영화 ‘쌍화점’에서 알 수 있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성애는 인류 역사만큼의 뿌리깊은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명·청 시대만은 달랐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400년간 남색은 사대부 문인사회에서 공공연히 유행해 하나의 사회 풍조가 되다시피 했다. 중국 출신 호주 뉴잉글랜드대 교수 우춘춘(吳存存)이 쓴 ‘남자, 남자를 사랑하다’(이월영 옮김, 학고재 펴냄)는 명말 이후 청말까지 문인사회를 풍미한 남색 풍조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중국 명청시대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남색이 유행한 현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어린 미소년에 대한 성애적 열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당시 주루와 극장 안은 술자리 시중을 들며 노래하던 수많은 미소년(연동·戀童)들이 넘쳐났다. 명대 말기에는 남성이 전문적으로 매음하는 장소인 남원(男院)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청대의 수도 베이징에는 주로 여자 배역을 맡는 소년배우들의 도제집단인 사우제(私寓制)가 출현했다. “미녀를 중하게 여기지 않고 미남을 중하게 여긴다.”, “가동(歌童)은 있어도 명기(名妓)는 없다.”는 유행어까지 나돌았다. 명말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회고록에서 당시 베이징 거리의 남색 풍조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공공장소 곳곳에 정성껏 화장한 남자 기생 모양의 젊은이들이 있다. 일단의 사람들이 이들을 사들여 그들에게 거문고 타고, 노래하며, 춤추는 방법을 가르친 후에 아름답게 단장시켜 마치 아름다운 여자처럼 꾸며 놓는다. 그런 후 이 가련한 소년들은 정식으로 매음 활동을 시작한다.” 명청시대의 선비들은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넘어 풍류생활 중 최대의 쾌락으로 여겼다. 남색은 신기를 찾아 즐기던 명말 사대부 남성들이 발견한 독특한 성적 쾌락이었고, 이러한 풍조는 청대로 접어들면서 본격화했다. 저자는 당시 남색 풍조가 철저히 계급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풍조의 능동적 주체는 부유층 남성이었다. 나이 어린 연동들은 남색의 수동적 상대역으로 수급되다가 10대 후반에 이르면 무참히 버려졌다. 남색은 또 여성의 금욕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명청시대 부녀자의 금욕은 중국 역사 이래 최고조에 달했다. 전족 풍습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남성이 성적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새롭게 도달한 높은 인식 수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성을 비인도적으로 억압하고 금욕을 강요한 결과로 획득한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잔혹한 성억압을 통해 남성이 도달한 자신만의 성해방과 만족은 진보적인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원전은 2001년 출간된 단행본 ‘명청사회성애풍기’(明淸社會性愛風氣)로, 이 가운데 남색을 주제로 다룬 부분만을 골라 한국어 번역본으로 펴냈다. 1만 4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매춘관광/김성호 논설위원

    인간이 생래적으로 갖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식욕과 성욕이다. 식욕이 몸을 지탱·유지하는 생존의 본능이라면 성욕은 종족 보존을 위한 태생의 욕심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 함께 식·성욕을 유지, 증진하려는 기술이 동반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성욕은 자주 일탈로 치솟는다. 쾌락의 악마성이 강한 탓이다. 불교에서 꼭 지킬 5가지 생활규범 오계(五戒)에 ‘음행하지 말라.’는 불사음(不邪淫)을 넣은 것이나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는 많은 종교의 징벌은 일탈성욕을 경계하는 상징이다. 물론 모든사회의 규범에서도 일탈성욕은 큰 응징의 대상이다. 정도를 벗어난 성욕이 사고파는 거래와 결합하면 매춘(賣春)의 흉측한 일탈로 증폭된다. 매춘은 인류의 궤적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는다. 인간이 무리지어 산 이래 가장 오랜 직업으로도 평가받는다.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남성들에게 몸을 판 여인들의 이른바 ‘사원매춘’이 이집트, 아시리아로 이어진 게 증거다. ‘몸접촉’을 통한 성욕 거래, 매춘만큼 끈질긴 일탈도 없어 보인다. 이 땅에서도 매춘은 예외가 아닐 것이다. 조선후기의 관기, 축첩제가 시초로 여겨지고 전쟁을 거치며 미군부대 주변의 성했던 사창가며 가파른 산업화에 편승해 퍼져간 집창촌은 한때 공공연한 일탈의 공간으로 통하기도 했다. 유린되는 여성인권 보호라는 큰 목표 아래 ‘성매매’로 개명된 채 국가적 차원의 타도대상으로 찍혀 철퇴를 맞은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인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역사학자의 표현답게 매춘은 정말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는가 보다. 당국의 집중단속을 피한 일탈의 성거래가 최근 들어 더욱 교묘, 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엔고(高) 특수에 편승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성매매를 기업적으로 알선해온 일당이 대거 붙잡혔다. 택시기사며 식당주인들도 매춘관광 거래에 가세했다. 짧은 일탈의 재미를 맛본 일본인들은 객지에서 쇠고랑을 찰 판이다. ‘순간의 실수는 영원할 수 있다.’ 비단 매춘관광에 나섰다가 피를 본 일본인들만이 새겨야 할 교훈일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부분의 한국 관객은 홍상수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거나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혹은 그의 영화가 지루한 일상을 반복할 거라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 심심할 거라고 미리 단정 짓는다. 그의 영화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인 ‘일상성’이 영화를 오독하는 결과를 낳은 것인데, 사실은 그 반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주인공 구경남처럼,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은 대개 길을 나서면서 영화에 진입하고, 주변인 및 낯선 인물과 조우하면서 일상의 세계로 침투한다. 그의 영화는 한줄기 바람과 같아서, 느슨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슬쩍 흔들고, 밋밋하고 답답한 공기에 신선한 기운을 제공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감독 구경남이 두 지역을 오가면서 접하는 소소한 일들을 다룬 영화다. 영화제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제천을 방문한 그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와 그의 아내를 만난 다음 본래의 위치에서 쫓겨나듯 빠져나온다. 며칠 후 특강을 맡아 제주도에 간 그는 선배의 집으로 초대받는데, 선배가 재혼한 상대가 옛날에 인연을 맺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2008년 여름, 집을 나섰던 남자는, 한 여자 덕분에 새 인생을 살고 있다는 선배와 후배를 통해 자기 삶과 새롭게 대면한다. 피카레스크소설의 주인공을 닮은 홍상수 영화의 남자들은 제풀에 겨워 세상을 떠돌다 종종 도덕적 난관에 부딪힌다.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구경남은 성적 쾌락에 빠져 엉뚱한 짓을 벌이고 다니는 비도덕적인 인물이다. 반면 홍상수는 자신에게 절실하고 우선한 도덕적 의무란 ‘위선적인 인간들에게 솔직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그의 영화에 줄곧 나오는 ‘술’은 흉금을 털어놓기 위한 도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짝을 이루는 단편영화 ‘첩첩산중’에서, 구경남과 대구를 이루는 여주인공 미숙은 속마음과 반대로 말을 내뱉은 뒤 ‘나쁜 버릇이다.’라며 스스로를 꾸짖는다. 현실에 얽매이는 대신 자유롭게 삶을 향유하기, 치장하는 대신 살면서 체험하고 생각한 바를 그대로 드러내기. 홍상수의 영화는 그런 과정을 통해 정직성에 이른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한, 모든 영화는 사회적 다큐멘터리다.’라고 했다. 정직성의 개념은 홍상수의 영화가 한 남자의 도덕극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농밀한 기록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다.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이 차지할 공간이 점점 넓어지는 만큼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깊어질지 알 수 없지만, 역사상 가장 솔직한 인물이자 구경남의 선조인 자코모 카사노바에게서 그 미래를 점쳐보는 건 가능하다. 카사노바는 유명한 회고록의 머리말에서 ‘나에게 닥친 행·불행의 원인이 나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배울 수 있었으며, 나 자신을 스승으로 여겨 사랑해왔다.’라고 썼다. ‘인간다워지기’ 그것이야말로 홍상수 영화의 마지막 도착지점이 아닐까. 1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평론가>
  •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글쓰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실질적 정직 드러내기”

    시나 소설은 더이상 독자로서 읽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높디높은 장벽이 허물어지며 누구나 직접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자신을 고통의 극점으로 밀어넣는 행위다. 편지 한 줄, 일기 한 줄, 시어 하나, 소설의 첫 문장을 쓰고 고르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인 듯 고통스럽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쓰고 싶고, 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글쓰기의 테크닉 측면으로 접근하기 일쑤다. 소설에서 요구하는 장르 규칙은 어떠하고, 첫 문장은 어떻게 구성하며, 기호는 어떻게 활용하며, 신춘문예가 선호하는 방식은 어떠하고…. 대중화된 글쓰기, 혹은 신춘문예 등단용 맞춤형 글쓰기에서 보여지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다. 소설가 이만교(42)가 이러한 글쓰기 공부 관행에 메스를 가했다. 2006년부터 만 3년 동안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의 경험과 실제 강독하고 토론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 공부책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그린비 펴냄)를 펴냈다. 그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강렬하게 살맛 나게 하는 창조적 글쓰기 자체가 목적인 수업’이다. 이에 따라 수강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보고 기술적으로 문법이나 구성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놓고 감각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 실천하는 방법까지를 함께 점검하는 작업을 가져왔다. 이만교 강의의 핵심 키워드는 ‘정직하기’다. 내 삶에 정직하기, 내 무의식(욕망)을 정직하게 표출하기, 그렇게 욕망을 드러낸 뒤 느낀 추악함과 고통스러운 쾌락, 부끄러움 등 느낌을 정직하게 쓰기 등이다. 이만교는 이것을 ‘도덕적 정직’이 아닌 ‘실질적 정직’이라고 규정한다. 1992년 문예중앙에서 시로, 1998년 문학동네에서 소설로 각각 등단한 이만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등을 내놓으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의 맨 앞줄 즈음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나는 왜 쓰려고 하는지 등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글쓰기 작업이 꽉 막혀 버린 시기를 가졌다.”면서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진실은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는지 나도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고 말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시작됐지만 이제 이만‘교(敎)’로 통할 정도로 열광적인 환호와 뜨거운 지지자들을 낳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작소’는 그의 강의를 고스란히 활자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만교식 글쓰기 강의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인 내 작품이 낱낱이 해체되는 낯뜨거운 ‘실질적 정직’의 합평 기회를 직접 가질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분석 사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6·25전쟁에서 4·19혁명에 이르는 1950년대는 격동의 혼란기였다. 전쟁의 폐허 복구 과정에서 경제원조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토대가 형성되는 한편으로 반공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사회 전반을 통제했다. 무엇보다 ‘자유’와 ‘민주’, ‘실존주의’ 같은 근대 서구화 사상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유교적 전통과 관습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가치관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아프레걸= 전후(戰後)+girl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동국대 출판부 펴냄)는 무정형의 욕구가 사방으로 분출되던 1950년대 문화 현상의 실체와 내면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1950년대는 전근대사회로부터의 탈피를 강력히 추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작용했고, 격렬한 지각변동을 거치게 된다.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를 비롯한 10명의 필진은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지성적 열망과 퇴폐적 향락이 뒤엉킨 채 공존했던 당대의 문화를 읽는, 나름의 독법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복제의 욕구가 놓여 있다. 저자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아프레걸(Apres girl)’이다.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에 영어 단어 소녀(girl)를 합성한 이 조어는 향락, 사치, 퇴폐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분방하고 일체의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받기를 잊어 버린 여성들”로 ‘성적 방종’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 이강천 감독의 ‘아름다운 악녀’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육체적 쾌락과 돈에 대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내뿜는다. 1950년대 서울신문에 연재돼 숱한 화제를 뿌렸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남편의 제자와 춤을 추러 다니는 중산층 ‘아프레 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아프레 걸들은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프레 걸을 ‘자유를 갈망하던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테면 ‘자유부인’의 주인공 선영이 댄스나 계, 자모회 같은 영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사회적 요구가 작용한 것인데 그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아프레걸들의 일탈은 쾌락과 욕망을 위한 값싼 방종이 아니라 잃어 버린 자아를 되찾는 과감한 모험이라는 주장이다. ●현모양처 여성상 계몽했던 잡지 ‘여원’도 흥미 아프레걸이 미국의 문물을 소비하고, 댄스와 같은 미국식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당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대변한다면, 1950년대 지적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잡지 ‘사상계’는 미국식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반한 지식 엘리트의 문화를 상징한다. 1950년대 중반 창간된 여성지 ‘여원’을 통해 여성담론의 변화를 읽어 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현모양처 여성상의 계몽을 표방했던 ‘여원’은 짧은 기간이지만 독신여성 같은 다양한 여성 담론을 형성해 냈다. 하지만 곧 농촌여성을 중심으로 한 비도시 하층민 여성이 주 독자층으로 형성되면서 ‘여원’의 편집방향은 대중적 통속화의 길을 걷는다. 2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영화 ‘박쥐’를 보고-에밀 졸라와 박찬욱

    영화 ‘박쥐’를 보고-에밀 졸라와 박찬욱

    이번에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릴 것 같다. 그동안 사제의 불륜을 정면으로 다루고 뱀파이어란 한국 영화에서 다소 낯선 장르를 실험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30일 개봉을 앞두고 24일 기자 배급 시사회에서 그 비밀스러운 첫 날개를 폈다.청소년 관람불가.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 개척자인 에밀 졸라의 1867년작 ‘테레즈 라켕’을 ‘느슨하게’ 원작으로 삼았다.여기서 느슨하게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테레즈라고 하는 여인이 시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억압 속에 자라난 남편을 정부 로랑의 도움을 빌어 살해하고 그 죄의식 끝에 자살한다는 ‘테레즈 라켕’의 기둥 줄거리에 흡혈귀로 전락한 사제를 정부로 끌어들여 ‘뱀파이어 치정 멜로’로 바꿨기 때문이다.1953년 마르셀 카르네가 스크린에 옮기면서 로랑의 직업을 트럭 운전사로 바꿨는데 박찬욱 감독은 인간의 구원을 신에게 기원하는 사제 출신의 뱀파이어로 바꾼 것. 시사회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지적했듯 이 영화는 뱀파이어 영화의 외양을 갖췄지만 속내는 ‘징글징글한 멜로’다.따라서 한국형 뱀파이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겠다.박찬욱표 영화에 낯설었던 ‘멜로에의 귀납’에 뜨악해하는 팬들도 있을 것 같다.그래도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듯 밀어붙이는 박찬욱의 끈기에 두 손 들었다.’는 이들도 나올 듯하다. 졸라가 초판을 발행한 뒤 포르노그래피 같다는 혹평이 쏟아지자 2판에 장문의 서문을 싣고 ‘해부학자와 같은 과학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기질에 대해 연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한국의 한 독자는 인터넷에 이런 독후감을 남겼다.’대다수의 동물들의 눈은 인간처럼 다양한 색을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이 책은 마치 세상을 그런 동물들의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박찬욱 감독이 2009년 스크린에 옮겨놓은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동물과 같은 처지로 전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고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밤이면 건물 옥상에 발을 걸고 박쥐처럼 매달려 있어야 하는 상현(송강호)은 ‘병신 같은 남편’ 강우(신하균)과 ‘정 한번’ 통해보지 못한 태주(김옥빈)와 운명적으로 얽혀든다.태주는 어린 시절 버려진 자신을 어머니처럼 거둔 라여사(김해숙)의 ‘행복 한복점’을 지옥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신세.상현은 환자들의 최후를 돌보는 일을 하다 진정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의 옛프랑스 식민지에서 실시되는 백신 개발 임상실험에 자원한다.그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을 고비를 맞지만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은 뒤 기적처럼 소생한다. 그리고 육개월 뒤-무려 이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비로소 자신이 새로운 피를 계속 몸 속에 주입해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흡혈귀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그리고 절망한다.피를 흘리다가도 스스로 아물어버리는 기적을 바라보며 낙담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라여사를 통해 어린 시절 친구였던 강우(신하균)와 태주 부부와 얽혀든다. 서로의 육체를 탐하며 ‘세상의 모든 쾌락을 갈구하겠다’고 다짐하던 상현은 태주의 꼬임에 빠져 강우를 살해하게 되고 죄의식에 버둥대다 행복 한복집을 드나들며 마작이나 하며 낄낄대던 ‘오아시스’ 멤버들을 도륙하게 된다.이성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상현은 자신에게 이적을 간절히 바라던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발각돼 자신을 예수처럼 숭앙하던 사람들 앞에 치부(?)를 폭로당한 뒤 태주와 함께 마지막 선택을 한다. 뱀발처럼 덧붙이자면 시사회 뒤 떠들썩했던 성기 노출은 결코 외설적이지도 않고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지 않다.박 감독이나 송강호의 말마따나 “자연스럽고” “감추지 않았을 뿐”이다. 입센이 졸라를 비난했던 말 ‘졸라는 목욕을 하기 위해 하수구로 내려간다.그러나 나는 하수구를 정화하기 위해 내려간다.’처럼 박찬욱은 하수구를 관객들에게 펼쳐보이려고 작심한 듯하다.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밀어붙인다.메스꺼운 장면도 많지만 박찬욱표 유머 로 무두질한다.그런데 조금 거북하다.특히 졸라의 원작을 접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 ‘박쥐’를 보는 이들은 많이 불편해질 것 같다.따라서 졸라의 책을 꼭 읽은 뒤 영화를 보면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러닝타임 133분에 너무 많은 극적 장치들-별반 절실하지 않아 보이는-을 집어넣어 뭘 얘기하려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송강호와 김해숙의 균형잡힌 연기,신하균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연기,무엇보다 김옥빈의 연기 진폭의 확장 등이 반갑지만 그 열연에 영화 전체의 ‘바디’가 균형을 잡아주진 못한 것 같다.그로테스크한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요소였다.그 점에 대해선 영화라는 매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결코 만만찮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스트린드베리가 자연주의에 대해 비판한 대목은 박찬욱 감독에게도 그대로 해당될 것 같다. 카메라의 먼지까지도 포함시키는 사진과 같다.그것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연의 단면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 묶인 잘못 이해된 자연주의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미각(味覺)과 통각(痛覺)/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미각(味覺)과 통각(痛覺)/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김치가 너무 매워서 먹지 않았더니 선생님께서 야단을 치시더라는 것이다. 학생이 잘못하면 꾸중을 듣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내용이 기가 막혔다. 선생님 왈 “김치를 못 먹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는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훌륭한 사람이 못 된다.”라고 했단다. 진퇴양난이었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하자니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자를 불신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겠고, 선생님 말씀을 명심해서 앞으로는 어지간히 맵더라도 먹으라고 하자니 아이의 건강과 앞으로의 미각 생활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사실은 그 선생님이 틀렸다. 내 주위에는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한국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내 관찰로는 그 분들이야말로 매운 음식을 거의 매일 먹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품위 있고 행복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또 매운 음식을 안 먹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많다. 분명 김치를 먹어보지 않았을 에디슨이나 퀴리부인도 훌륭한 사람이었고, 나폴레옹·알렉산더대왕 같은 영웅들도 고추장을 먹지 않았으리라. 멀리 갈 것 없다. 세종대왕도, 신사임당도 우리가 지금 먹는 빨갛고 매운 김치를 먹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1978년에 나온 ‘고려 이전 한국식생활사 연구’ 이후, 고추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해 일본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사료(史料)가 나왔다. 지난 2월 한국식품연구원 등의 연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성종 18년(1487년)에 간행된 문헌인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에 한글로 ‘고쵸’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고쵸’가 지금 우리가 먹는 고추와 같은 것임이 밝혀진다면 임란(壬亂) 발발 100여년 전에 이미 한반도에 고추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연구팀은 이 사실 하나를 밝히기 위해 15년간 국내외 수백편의 고문헌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동안 고추의 일본유래설 때문에 고추를 재료로 하는 우리 식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각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로 만든 매운 음식이 한국인의 일상적인 식탁에 올라오게 된 것은 임란 훨씬 후의 일인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짠지는 나오지만 김치나 고추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매운 음식 열기는 최근 한 10년 동안 가장 고조된 것 같다. 필자의 유소년기를 돌이켜보아도 매운 음식을 파는 가게가 지금처럼 거리를 온통 메우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매운 맛에 열광하는 것일까? 음식문화평론가 김학민에 따르면 매운 맛은 사실 맛이라기보다 자극이다. 즉 , “혀에서 감응하는 미각(味覺)이 아니라 살갗 등에서 느껴지는 통각(痛覺)”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각이 아닌 통각이 식문화를 지배하게 된 것은 동시대의 팍팍한 삶과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요구된 강한 자극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매운 음식을 한국을 대표하는 식문화로서 대할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나 유행으로 바라보아야 맞다. 과도하게 매운 음식들이 한국인의 미각과 건강을 해치고,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막고 있다. 무엇보다도 매운 음식 유행의 가장 큰 악영향은 그것이 식재료를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각은 식재료를 음미하는 데서 비롯하지만, 통각의 세계는 자극의 강도가 식재료의 질과 신선도를 앞서기 때문이다. 이 봄, 혀를 호사(豪奢)시키는 즐거움보다 혀를 마비시키는 피학적 쾌락을 택하게 하는 사회의 한가운데서 도다리쑥국의 슴슴한 맛과 냉이나물의 은은한 향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에 살아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불황 스트레스’ 여행으로 날린다

    ‘불황 스트레스’ 여행으로 날린다

    유례없는 불황에도 최근 20~30대 미혼 직장인들이 자신을 위한 씀씀이를 늘리고 있다. 호황기에 열심히 부었던 펀드가 반토막이 나고, 시중은행의 금리도 5%대를 넘지 못하자 “모으느니 써버리자.”는 인식 때문이다. 여기에 집 장만이나 가족 부양 등 생활의 의무감에 구속받지 않으려는 2030세대의 특성에다 ‘불황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여행이나 쇼핑 등 자신을 위한 씀씀이를 아끼지 않는 새로운 풍속이 확산되고 있다. 4년차 직장인 김모(27)씨는 최근 회사 동료와 함께 이탈리아행 항공권을 샀다. 다음달에 열흘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약 350만원의 예산을 생각하고 있다. 주위에서 ‘또순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저축에 열을 올리던 김씨였다. 그러나 지난해 800만원가량 부은 펀드가 600만원대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펀드 불입을 멈췄다. 김씨는 “아등바등 돈을 모아봤자 오히려 손해나 볼 뿐이다. 젊었을 때 좋은 곳을 여행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집 장만·가족부양 의무감 회피 2년차 직장인 김모(29)씨도 “2000만원대밖에 안 되는 연봉을 모아봤자 떼부자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세대다. 죽어라 대학공부 했더니 취업난 닥치는 걸 보면, 미래를 위해 행복을 포기해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한다.”면서 “그럴 바엔 현재를 즐기자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김씨는 지난 2월 일본 후쿠오카로 2박3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환율 때문에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돈이 더 들었지만, “열심히 일한 내 스스로에 대한 상”이라는 생각에 아깝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현상 때문인지 여행업계에서도 2030세대의 수요는 꾸준한 편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여행객이 30~40%가량 줄어든 것에 비하면 20~30대는 여전히 많은 편”이라면서 “이들은 사치가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넥스투어 관계자는 “올 들어 20대 여행객이 계속 증가세”라면서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세금이 오르고 금리가 낮아지면 여행 경기가 오히려 살아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업계 “불경기 속 해외여행 늘어” 불황에 소비를 확대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성향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주대 노명우 교수는 “최근 경제위기는 ‘예측에 입각해 돈을 버는’ 시스템이 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쾌락주의적 경향이 생긴다.”면서 “윗세대가 보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030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계산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문성근 “연쇄살인마 판곤은 현대병이 만든 괴물”

    문성근 “연쇄살인마 판곤은 현대병이 만든 괴물”

      “판곤은 현대병이 만든 괴물이죠.”  19일 개봉하는 영화 ‘실종’에서 연쇄살인마 판곤의 캐릭터를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소화한 배우 문성근 씨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촬영장을 빠져나올 때마다 지옥에서 나오는 느낌이었다.”는 한마디로 캐릭터에 관한 소개를 대신했다.문씨는 판곤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인류 사회가 병들어가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법과 규제에 의해 억눌렸던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매우 나쁘게 표현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문씨가 그려낸 판곤은 여성들을 납치해 감금,성폭행한 뒤 산 채로 분쇄기에 갈아 닭 모이로 주기까지 하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다.문씨는 판곤의 살인에 대해 어떤 동기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판곤은 흉물이죠.사이코패스의 특성상 어렸을 때 어떤 상처를 받긴 했겠지만,그렇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죠.그가 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지 알 길이 없죠.그게 사이코 패스니까요.”  영화속 판곤은 살인에 대해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저 본능을 좇아 쾌락 추구를 위해 살인을 되풀이하는 인물이다.문씨 또한 판곤을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내려 애썼다.악역을 절대 미화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씨는 자신이 연기한 판곤에 대해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라며 “판곤 자신도 스스로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다만 “반성하는 의미가 아니라,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대본과 책에 일일이 메모를 해가며 캐릭터를 꼼꼼히 연구해 촬영에 임했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악인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악인은 왜 악인인가,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었다.이번 연쇄살인마 판곤 또한 굵은 바탕만 생각해놓고선 배역에 몰입하기 시작했다.그 결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끔찍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문씨는 1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세 개비의 담배를 피우며 연쇄살인마 연기에 대한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재떨이에 남겨진 담배꽁초가 그걸 웅변했다.‘손톱’ ‘올가미’ ‘세이 예스’ 등으로 낯익은 김성홍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우리 주변에 흔히 지나치는 인물이 연쇄살인마일 수 있다는 평범한 플롯인데 문성근이란 배우가 상당한 몫을 떠받치고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사실 그는 얘기할 게 많은 배우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에 도움을 준 뒤 ‘자기 몫을 챙기지 않고’ 정치적인 활동을 기피했으며,아버지는 고 문익환 목사였다.SBS TV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쌓은 지식인 이미지가 날카로운 인물.  어쩌면 TV 브라운관 속에서 안경 너머 반짝이던 그 눈빛을 떠올리면서 스크린에서 연쇄살인마로 죽임을 밥 먹듯이 하는 캐릭터로 변신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8년간 잘 다니던 대기업 생활을 때려친 뒤 연극 무대에 오른 것 또한 남다르다.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참 무모한 짓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년간 일을 해 돈을 모으고 연극판에 뛰어들었는데 참 무책임한 짓이었죠.자식도 있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죠.저는 운이 좋아서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실제 많은 배우들이 애기들 ‘분유 값’ 때문에 연기를 그만 둬요.명계남씨도 중간에 연기하다가 회사에 취직한 적이 있었어요.이 분야가 참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연기를 계속 하라고 권하기가 어려워요.”  그는 후배들이 어렵게 극단을 꾸려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모종의 일’을 계획하고 있다.지방자치단체들과 극단의 자매결연을 통해 ‘상주 극단’의 개념을 도입하려는 몸짓이다.현재 대학로에는 연극할 공간이 매우 적다.반면 각 지자체에는 훌륭한 무대가 많다.따라서 이 둘을 연결시켜 ‘상설 공연무대’를 만들어 ‘연기를 하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장소를 만들자는 게 그의 또다른 꿈이다.  그는 18일 밤 방영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아버지에 대한 추억 등을 털어놓는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 인터넷서울신문 김상인vj bowwow@seoul.co.kr
  • 박찬욱 감독 ‘박쥐’, 포스터 첫 공개!

    박찬욱 감독 ‘박쥐’, 포스터 첫 공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만남으로 주목 받고 있는 영화 ‘박쥐’가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오는 4월30일 개봉이 확정된 ‘박쥐’는 그동안 스틸 몇 장만 선보인 채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번에 공개된 티저포스터는 파격적인 분위기와 함께 강렬한 느낌을 준다. 신부 사제복을 입은 송강호와 어깨를 드러낸 채 그의 목을 누르고 있는 배우 김옥빈의 도발적인 포즈가 눈길을 모은다. 17일 ‘박쥐’ 제작사 측은 티저포스터에 대해 “선과 악의 대비를 보여주며 거꾸로 매달린 한마리의 박쥐를 형상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몸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며 “특히 두 배우의 고통인 듯 쾌락인 듯 묘한 표정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 역의 송강호와 그와 사랑에 빠지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 여인 역의 김옥빈 캐릭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예고편은 도입부터 한국영화 최초로 유력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투자와 제작 유치에 성공한 작품을 알리는 유니버셜 로고가 등장한다. 이어 기도문을 외우는 송강호의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은 죽음에 이른 신부가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고 뱀파이어로 되살아나 금기를 깨고 쾌락을 갈구하는 과정을 격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그 끝에 어떠한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지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박쥐’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화가 공개되기 전 프랑스, 영국, 러시아, 그리스,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뱀파이어 전설의 본고장 루마니아 등 각국에 선판매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유명 영화 사이트 IMDB에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영화 정보가 등록(http://www.imdb.com/title/tt0762073/board)돼 있으며 선판매된 국가들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공개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박쥐’는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고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가 친구의 아내(김옥빈)와 사랑에 빠져 남편을 살해하자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돈주앙’ 치명적인 옴므파탈 관객 빠져들다

    ‘돈주앙’ 치명적인 옴므파탈 관객 빠져들다

    주지훈·김다현·강태을. 세 명의 돈주앙 매력에 대한민국 여성관객들이 흠뻑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에 ‘나쁜남자’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나쁜남자’는 여성들에게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어필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옴므파탈(Homme Fatale)은 여심을 서서히 녹이고, 결국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만다. 스페인 귀족 돈주앙 역시 진실된 사랑을 모른 채 쾌락과 순간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연민은커녕 그녀에 대한 추억은 찰나에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여인 마리아에 자신의 모든 걸 빼앗기면서 그가 변했다. 그러나 처음 얻게 된 사랑의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오는 3월 8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돈주앙’은 배우들의 완벽캐스팅과 화려한 무대조명, 풍성한 음향, 특수 제작된 원형무대로 작품에 몰입시키기 충분했다. 스페인 오리지널 플라멩코 팀과 집시밴드, 한국배우들은 무대 위에 선 자체만으로 강력한 포스를 풍겼다. 흥겨운 선율에 맞춰 화려한 몸놀림과 탭댄스, 정열적인 춤을 추는 댄서들은 뮤지컬 안에 또 다른 공연을 만들어냈다. 무대에 선 배우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동작을 맞춰내 강인한 힘을 뿜어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짜릿한 전율을 안겼다. 웅장한 사운드에 절도 있는 군무는 박진감 넘치는 발구름과 디테일한 손놀림으로 정점을 찍는다. 시종일관 무대 위를 가득 메우는 화려한 색채의 의상과 배우들의 청량한 목소리는 웅장한 선율과 혼연일치 돼 강한 흡입력이 됐다.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의 향연은 관객들에게 울림 있는 감동을 선사한다.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명은 화려함과 섬세함이 빛을 발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조명은 극과극의 대조를 이루며 극에 스며들게 했다. 뮤지컬 ‘돈주앙’은 1부에서는 사랑과 결투에서 늘 승리만 얻는 거침없는 ‘나쁜남자’ 돈주앙을, 2부에서는 진정한 사랑에 빠져 고뇌하고 갈등하는 ‘착한남자’ 돈주앙의 모습을 그려낸다. (사진제공 = NDPK)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재미만 보고 반응없어 돈을 보관했다는 알쏭달쏭 아가씨들

    재미만 보고 반응없어 돈을 보관했다는 알쏭달쏭 아가씨들

    3일 밤 8시쯤 중(中)구 다(茶)동 S「호텔」「엘리베이터」안. 금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실패한 한(韓)모양(18)과 김(金)모양(18)은 「고고」춤을 추기 위해 S「호텔」을 찾아들었다. 이들이 시시덕거리며 웃고 떠들자 옆에 있던 김모씨(32)와 이(李)모씨(34)는 생각이 달라져 아가씨들을 유혹했다. 어렵쇼, 한마디에 『좋다』고 덜컥 쾌락하는 바람에 30대 사나이들이 오히려 어리둥절. 이들은 S「호텔」 옥상의 「나이트·클럽」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 거리며 자정이 넘도록 「고고」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자 602호실에 두「커플」이 함께 투숙, 예정된 「스케줄」 대로 일사천리,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노곤한 몸을 일으켜 옷을 입은 두남자들은 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부끄러워서 먼저 나간 것』으로 간주했지만 김모씨 주머니를 뒤져보니 자기앞수표 1만원권 2장, 현금 1만원 모두 3만원이 행방불명이었다. 값비싼 오입을 한 것으로 치부한 김씨는 볼 일을 보기 위해 남대문(南大門)시장에 갔다. 그런데 시장에서 「스토킹」을 사려는 두아가씨를 자세히 살펴 본 즉 간 밤에 재미를 봤던 문제의 「행방불명녀」들. 본전 생각이 난 김씨는 두아가씨를 잡고 『왜 돈을 훔쳐 달아났느냐』고 따졌다. 『잘못했다』고 빌기만 했더라면 한모양이 숫처녀였던 점을 생각해서 웃고 넘기려 했지만 『언제 훔쳤느냐』고 오히려 따지는 바람에 화가 치밀어 남대문서로 끌고 갔다. 경찰에서 이들 18살 철부지 아가씨들은 『강제로 당했다』고 주장하며 『재미만 보고 아무 반응이 없어서 돈을 보관하려 했다』고 알쏭달쏭한 해명. [선데이서울 72년 5월 14일호 제5권 20호 통권 제 188호]
  • 연쇄살인 왜? 주변인 증언 바탕 병리 해부

    연쇄살인 왜? 주변인 증언 바탕 병리 해부

    2004년 유영철, 2006년 정남규에 이어 2년 만에 등장한 연쇄살인범 강호순. 그들이 나타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은 무엇일까. 21일 오후 11시10분에 방영되는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죽이고 싶어 죽였다?-강호순 살인 미스터리’편에서는 강호순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연쇄살인범을 기른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살펴본다. 강호순에게 희생된 피해자 중 누구도 그와 원한 관계가 없었다. 그는 심지어 피해자 중 조선족 김모씨에 대해서는 12시간 동안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고 진술했다. 강호순을 조사했던 수사관들도 그가 죄없는 부녀자들을 왜 죽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끝내 풀지 못했다. 프로그램은 강호순의 최측근이라고 밝힌 김모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여성에 대한 집착과 여성편력을 파헤친다. 김씨는 “부인은 말 그대로 집에서 밥해주고 집만 지키는 여자이며 머슴 혹은 성적 도구에 불과했다.”면서 “혼인신고를 하고 살아도 다른 여자들 있으면 자기는 총각이라고 하고 선 보러 다닌다.”는 증언을 했다. 이어 그는 “강호순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여성을 대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으며,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로 길을 물어보면서 여자를 차에 태우는 수법 역시 20대 때부터 쭉 이어져 온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강호순의 핵심 측근은 그가 보험사기의 달인이었다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은 1999년 시작된 방화 사건들이 연쇄 살인의 전주곡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성적 쾌락이 방화를 통한 성적 희열로, 다시 살인을 통한 극단적 쾌락 추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범행동기를 분석하고 알아야만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강호순 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사이코패스 범죄 무방비 사회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증)로 확인된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절도, 상해 등 경미한 범죄를 저질러 이미 여러 차례 형사처벌된 적이 있는 전과8범이었다. 이처럼 사이코패스 기질을 지닌 범죄자들은 재범 위험이 높은 데다 갈수록 범죄가 흉포화하는 특성을 보이지만, 현행 사법체계로는 이를 사전에 진단해 치료 혹은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어 거리를 활보하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치료감호법은 심신장애, 마약·알코올·약물중독 등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가 있는 범죄자들에게 보호와 치료를 병행하게 하고 있다. 소아성기호증 등 성도착증도 정신성적 장애에 포함되지만, 인격장애로 분류되는 사이코패스는 치료감호 대상이 아니다. 또 지난 2005년 사회보호법이 폐지되고 청송감호소가 문을 닫으면서 출소 이후 중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사후 조치는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보호관찰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만기출소자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강호순처럼 재범의 우려가 높은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해서도 치료나 사전에 범행을 막기 위한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과 달리 약물치료 등 의학적 방법은 물론 인지행동치료 등을 통해서도 완치될 수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충동조절 훈련 등 심리치료를 통해 일정 부분이라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하루에 TV 시청 시간을 4시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2시간으로 줄이는 식의 ‘보상과 처벌’ 원칙이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게 하는 등 일상생활을 모두 교육으로 구성한다면 충동성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소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 하더라도 선별적인 정신감정을 통해 사이코패스 여부를 진단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는 “굳이 필요가 없는데도 쾌락을 위해 절도를 저지른다든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고 범행이나 규칙 위반이 습성화돼 있는 등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보이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수사, 재판 단계 등 수감 이전에 정신 감정을 통해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단,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치료감호소 최상섭 소장은 “수감돼 있는 동안의 심리치료와 함께 출소해 사회로 복귀하기 이전에 정신감정을 통해 다시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상습 성범죄자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나 보호관찰 대상의 확대 등을 통해 사이코패스 기질의 범죄자들을 감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전문가들이 본 한국 연쇄살인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전문가들이 본 한국 연쇄살인

    한국의 연쇄살인범들은 어떤 특징을 보이고, 그들은 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살해했을까? 전문가들은 살인의 원인을 토대로 연쇄살인범들을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강호순은 ‘욕정추구형’이자 ‘개인과시형’ 연쇄살인범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연쇄살인범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막연하게 선천적 유전인자가 발현된 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치부하다 보면 사회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강호순을 ‘욕정추구형 살인범’으로 정의했다. 박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다수살인범(연쇄·연속·대량 살인) 25명과 면담을 해 지난해 12월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연쇄살인범을 ▲쾌락추구형(스릴·권력·욕정추구형) ▲이득추구형(강도살인·범행은폐형) ▲분노형 ▲ 복합형으로 나누었다. 그는 “‘욕정추구형’ 살인범은 성폭행 뒤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성욕을 채우는데, 강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999년부터 1년간 부유층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은 ‘강도살인형’으로, 유영철은 욕정추구형과 권력추구형의 ‘복합형’으로 설명했다. 2004년부터 2년간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는 ‘스릴추구형’이라고 덧붙였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유영철·지존파처럼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적 동기형’과 강호순·정성현처럼 지나친 자신감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는 ‘개인적 과시형’으로 연쇄살인범을 분류했다. 동국대 곽대경 교수는 연쇄살인범을 사회불만형·쾌락추구형·권력형으로 나누고, 강호순은 쾌락추구형으로 분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은 연쇄살인범을 무턱대고 선천적 범죄 유전자를 지닌 사이코패스로 보면서 정작 대책에 대한 논의가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호순은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까지는 정두영 정도만 사이코패스와 가까웠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검거된 연쇄살인범들은 선천적 기질에 의한 것보다는 저마다의 살인 동기가 있었고, 살인 전에 강도나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의 진화 과정’을 밟았다는 것이다. 지난 1986년 화성 연쇄살인사건부터 강호순까지 연쇄살인범에 의한 피해자는 70여명에 이른다. 박형민 박사 역시 “국내 살인범들이 태생적 유전인자보다는 성장기나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겪은 좌절 탓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연구 결과”라면서 “어린 시절의 학대가 정남규, 유영철 등을 살인자로 키웠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금전적 이득이나 성적 욕망에 대한 가치가 높은 사회에서 극악범죄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좌절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것을 보장해주고, 결손가정 어린이와 비행청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연쇄살인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주 김민희기자 kdlrudwn@seoul.co.kr
  •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70만원 인출 경찰 조롱한 것”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왜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강의 범행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점 세 가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① 마지막 범행에서 70만원 인출 왜?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의 과도한 자신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범죄를 경찰과 국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1986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하승균 전 임실경찰서 서장은 “아이들 숨바꼭질과 같은 심리”라고 말했다. “숨바꼭질할 때 술래가 자신을 못 찾으면 재미가 없어지듯, 강도 자신의 범죄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대담한 행동을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년여간 범행을 한 번도 들키지 않은 강의 대담성에 극에 달해 경찰을 조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 강의 목적은 강간이었나, 살인이었나 사이코패스들은 피해자가 자신의 완벽한 통제 하에 놓인 후 자신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극도의 쾌락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강의 경우에도 이런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하 전 서장은 “네번째 아내가 죽어서 방황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도착증을 갖고 있던 강은 성폭행을 하고 나서 피해자가 죽었을 때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강간 후 증거 인멸을 위해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살인이 익숙하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헌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완벽한 살인을 하기 위해 공백기인 22개월 동안 진화한 수법을 연구했을 것이고, 그것의 산물로 손톱을 절단했다.”면서 한 번의 살인 후 냉각기를 갖는 이런 모습이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③ 2005년 화재도 강이 저질렀을까 네번째 아내와 장모가 죽은 2005년 화재에 대해서 강은 혐의를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강이 방화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아내와 장모의 보험은 들어놓고, 함께 빠져나온 아들의 보험은 들어놓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고 설명했다. 강이 방화 계획을 세운 후 선택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설명이다. 대개 연쇄살인범들은 첫 범죄 대상으로 살인이 용이한 주변 사람부터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2005년 방화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연쇄살인범들은 살해를 일종의 종교 의식에 비유하기 때문에, 방화를 의식의 하나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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