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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미·소유욕… 절경山水의 재구성

    인공미·소유욕… 절경山水의 재구성

    풍경을 채집해 자유자재로 재구성하고, 자연을 뚝 잘라내 극단의 인공적인 산수를 만들어낸다. 한국화가 박병춘(44) 작가와 이정배(36) 작가가 펼쳐보이는 현대적 산수의 풍경들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은일(隱逸)의 미학을 추구해온 전통 산수화와 달리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실비판적인 시각으로 산수의 새로운 개념을 모색해온 두 작가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2월 3일까지 선보이는 박병춘 작가의 전시 제목은 ‘산수 컬렉션’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가 국내외 오지에서 ‘채집’한 산수 풍경들을 다양한 재료로 구현한 설치 작품들이 전시됐다. 1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폭포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7m 높이의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리꽂히듯 늘어뜨린 흰색 천은 그대로 심산유곡의 시원한 물줄기를 닮았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본 폭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3면 벽에는 먹과 붓으로 강원도 영월과 정선의 풍경을 그려넣었다. 바닥에 설치된 검은 색 수조는 폭포의 심도(深度)를 더하며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려진 사물로 연출한 풍경들도 이색적이다. 시장 상인들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비닐산수’는 인도를 여행할 때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된 검은 산맥의 느낌을 재현한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의 가벼움과 일회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모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작은 돌들을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한 ‘산수채집’도 인상적이다. 돌 하나하나마다 히말라야, 내장산, 대관령, 부암동 등 수집 장소를 적어놓아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칠판에 분필로 풍경화를 그리고, 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산수공부’는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산수의 의미를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린 마을 풍경 위에 꽃, 비행기, 의자, 새 등을 자유롭게 배치한 회화 작품도 한국화의 정형적인 틀을 깬 새로운 시도로 눈길을 끈다. (02)736-4371. 이정배 작가에게 자연은 소유욕을 자극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16번지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모어’(More)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멋진 장소, 기막힌 풍경을 봤을 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본능적 충동을 시각적으로 충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거대 자연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가령 설악산 같은 명승지에서 특정 장소, 특정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한지에 인화한 뒤 붓질을 가한다. 인화지 대신 한지에 찍힌 사진은 이미지가 종이에 스며드는 것처럼 보여 마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이 사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와 풍경의 일부를 도려내 그것을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전시장의 모든 작품은 한지사진과 그 사진 속 특정 풍경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설치작품이 한쌍을 이룬다. 작가는 잘라낸 산수 풍경에 돈, 권력, 여자 같은 온갖 욕망의 아이콘을 배치한다. 설악산 능선에서 잘려진 산봉우리는 밧줄과 그물에 포획돼 있고, 그 위에는 질펀하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과 성적 쾌락에 들뜬 여성들, 탱크와 총 같은 무기들이 놓여 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낸 풍경들은 도발적이고,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시대 변화에 따라 산수화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현실을 반영하는 산수의 개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22-350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90년대 오렌지족의 내밀한 풍경

    1993년 개봉한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문화적인 욕구가 공존하던 1990년대 서울 강남의 모습을 신랄하게 풀어내 관심을 모았다. 소설가 노희준의 장편 소설 ‘오렌지 리퍼블릭’(자음과모음 펴냄)은 자본주의 소비 문화를 대표하는 압구정동 ‘오렌지족’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약 20년 전 등장한 오렌지족은 강남 부유층 2세, 즉 명품 옷에 고급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쾌락을 즐기는 부류로 인식됐다. 압구정동은 그들의 본거지로 꼽혔다. 소설 무대인 강남 출신의 작가는 구체적인 묘사와 재구성으로 ‘오렌지 공화국’을 눈앞에 생생히 재현한다. 그 시절 강남 아이들은 ‘세 종자’로 분류된다. 먼저 배밭 시절부터 살던 원주민과 집값이 싸던 개발 초기에 이주한 재래종 ‘감귤’. 이들은 운이 좋되, 진정한 부자라고는 할 수 없다. 신흥 귀족은 1980년대 유입된 ‘외래종’으로, 이들 중에서도 최상위계층이 ‘오렌지’로 불린다. 뒤늦게 강남에 발을 붙인 이들은 ‘탱자’로 강남에 살지만 ‘온몸으로 강북인 아이들’로 묘사된다. 주인공 노준우는 평범한 회계사의 아들로 핵심그룹에 들지 못하는 ‘왕따’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오렌지족 무리와 어울리며 우월감을 맛보지만, 마음 한편은 늘 허하고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준우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는 감귤일 뿐, 그들처럼 상등품 오렌지가 될 수 없었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소설은 노준우가 ‘오렌지 공화국’에 입성하기까지의 고군분투, 오렌지족 행세를 하며 세상을 깔보고 욕망을 분출하던 시절, 헛된 망상을 버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저자는 부(富)라는 국경으로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했던 1990년대 압구정동 오렌지족의 내밀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등장 인물들의 위험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여전히 ‘오렌지 공화국’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스팸 어 랏’은 어떤 뮤지컬

    ‘스팸 어 랏’은 어떤 뮤지컬

    속된 말로 ‘쪽 팔려서’ 건국신화를 이렇게 비틀 수 있겠다 싶다. 한국에서 단군을 바보로, 유화부인을 날라리 여고생으로 비트는 작품이 나올 순 없는 노릇 아니던가. 뮤지컬 ‘스팸 어 랏’(데이비드 스완 연출, 오디뮤지컬컴퍼니·CJ엔터테인먼트 제작)은 영국의 영웅 아서 왕 이야기를 코미디로 재조립한 작품. 아서 왕은 5~6세기쯤 영국을 통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역사가들은 나중에 짜깁기된 인물로 본다.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 이후 비로소 역사에 편입된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인물이란 쪽이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도 ‘아스테릭스’란 코미디로 콤플렉스를 덮었다. 골족의 영웅 베르킨게토릭스가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게 역사적 사실이지만, ‘아스테릭스’에서는 로마군이 패배한다. 뮤지컬에서 아서 왕과 대결하는 흑기사가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가면서도 자기가 이겼다고 우기는 것 자체가 이런 역사에 대한 패러디인지 모른다. ‘스팸 어 랏’은 영국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이 만든 1975년작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열라 많은 스팸’이라는 제목이 ‘막장 개그쇼’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비틀기와 패러디의 향연이다. 성배를 찾는 기사는 모두 나사빠진 인물들이고, 장엄한 카멜롯성은 아예 쾌락이 넘치는 물랑루즈다. 성배를 찾으려면 뮤지컬을 만들라는 ‘니(Ni)족’이 큰 나무인 것은 유럽의 거대나무 신화를 반영하지만, 종족이름이 하필 ‘Ni’인 것은 반대당 의원의 연설을 훼방놓을 때 ‘Ni, Ni, Ni’라고 야유를 보내는 영국 의회 풍경에서 따온 것이다. 엉터리 같은 니족의 회의는 의회에 대한 비틀기다. 뮤지컬이란 장르 자체도 패러디한다. 1막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을 뒤집고, 2막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지킬 앤드 하이드’, ‘미스 사이공’, ‘캣츠’ 등 무려 12작품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원작은 유대인 뮤지컬 기획자를 겨냥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이돌부터 캐스팅하는 문화를 꼬집는다. 공연팬들은 이 두 대목에서 정신줄을 놓고 웃는다.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적으로 바꾼 배우들의 아이디어, 그리고 까칠하다는 평과 달리 이런 아이디어를 다 받아준 연출의 결단이 이런 코미디를 가능하게 했다. 내년 1월 2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5만~10만원. 1588-521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간은 어리석다’ 두 오페라의 공언

    ‘인간은 어리석다’ 두 오페라의 공언

    격동의 18~19세기 유럽. 일상의 무게 중심이 신(神)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은 종교를 부정하고 혁명을 희구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근대’라고 불렀다. 예술도 변화를 겪었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성스러운 도구였던 ‘음악’은 인간의 통속적인 로맨스까지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도 이런 흐름의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어떤 오페라는 신을 추억하고 혁명을 반박했다.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드는 세계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일종의 반성 의미였다. 근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했던 두 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 ●메피스토펠레 - 어리석은 개인 악마 메피스토펠레. 그는 신에게 인간을 유혹해 보겠다고 내기를 제안한다. 때마침 지식의 무력함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파우스트에게 접근하는 메피스토펠레. 그는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되돌려주며 쾌락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쾌락이 근본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고 깨닫는다. 그는 신의 세계 속에서 행복의 참의미를 깨닫고 천사와 함께 천국으로 떠난다…. 무신론(無神論)까지 대두됐던 유럽의 근대.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했던 이 오페라는 이런 식의 근대성을 부인한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복은 무의미하며 진정한 행복은 보다 형이상학적인, 종교적 깨달음에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아리고 보이토(1842~1918)의 작품인 ‘메피스토펠레’의 메시지다. 국립오페라단이 이 오페라를 오는 20일과 22~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100여명의 합창단이 등장하는 등 웅장한 규모 때문에 한국에선 빛을 보지 못하다 이번에 한국 초연이 성사됐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복이 진정한 것인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에게 금욕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연출은 다비데 리베르모레, 지휘는 오타비오 마리노, 연주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창은 나라 오페라 합창단과 의정부 시립합창단이 각각 맡았다. 1만~15만원. (02)586-5282. ●안드레아 셰니에 - 어리석은 군중 프랑스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 그는 혁명을 꿈꿨지만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을 비판했다. 백작가(家) 하인 출신이었지만 혁명 뒤 실권을 잡은 제라르와 삼각관계까지 얽혀버린다. 결국 그는 반혁명죄로 고발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실존 인물이었던 셰니에의 삶에 영감을 얻고 ‘안드레아 셰니에’를 만들었다. 오페라는 혁명이라는 대의 명분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당시 군중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혁명은 결국 나폴레옹의 독재로 귀결되고 만다. 말 그대로 미완의 혁명인 셈이다. 군중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의다. 이런 면에서 안드레아 셰니에는 보수주의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사상과 닮아 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당위를 인정하면서도,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혁명에 회의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오는 14일부터 나흘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이 오페라를 올린다. 예술총감독은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이 맡았다. 지휘는 로렌초 프라티니, 연출은 정갑균이다. 2만~12만원. (02)399-1783∼6.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사람들은 왜 도박 중독에 빠지는 것일까. 온·오프라인에 넘쳐나는 돈과 쾌락의 도박 유혹에 빠져드는 사람은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도박 예방 주간을 맞아 심각한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예방법과 치료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태극천자문(KBS2 오후 5시15분) 천자문 탐색을 위해 찾아온 곳은 또리가 자란 고아원 근처. 라이, 세나와 한 팀으로 천자문 탐색에 나선 또리는 고아원 식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에 한껏 들뜬다. 그런데 또리를 대하는 고아원 아이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지 않나, 게다가 또리를 슈퍼스타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45분) 옥숙은 규한에게 반찬을 갖다 주려다 경실과 부딪치며 그의 구두를 밟는다. 경실이 규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옥숙은 규한의 어머니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견례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선다. 두준네 대게 집에 놀러 가게 된 수정은 언제든 공짜로 대게를 먹으러 오라는 두준 아버지의 말에 신이 난다.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SBS 오후 8시50분) 6명의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아침밥까지 준비하는 정완씨는 육남매의 아빠다. 그가 아침부터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부인은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 그녀는 지금 만삭, 나흘 후면 7번째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다. 세 쌍둥이 출산으로 나이 서른에 9남매의 아빠가 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공부의 왕도(EBS 밤 12시5분) 약 60개국에서 4명의 국가대표를 선발, 총 233명이 경쟁하는 국제생물올림피아드.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수상한 경신고등학교 2학년 허영준군. 영준군은 스스로 생물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좋은 환경, 좋은 스승을 만나는 행운이 따랐다고 한다. 12살 생물 천재 영준군의 공부법을 공개한다. ●명불허전(OBS 오후 10시5분)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의 진행으로 명사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행장을 초대해 지난 2001년 한미 은행장으로 취임한 이후 국내 은행장으로서는 처음으로 4연임에 성공한 스토리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금융 투자의 기본적인 지식부터 자산관리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들어본다.
  • 유명인·세계경제 스캔들 궁금하세요?

    타이거 우즈와 버나드 매도프. 최근까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시끄럽게 만든 스캔들의 주인공들이다. 골프황제 우즈는 수많은 내연녀를 거느린 섹스중독자로 본색을 드러낸 뒤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을 역임한 매도프는 다단계 금융 사기로 최대 규모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뒤 감옥에서 복역 중인데 압수당한 그의 고가 사치품이 최근 경매시장에 나와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스캔들의 뒤에는 항상 성(性)과 돈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에는 이들처럼 탐욕과 쾌락에 눈이 멀어 제 발등을 찍은 유명인사들이 허다하다. 그런 인물과 사건들이 궁금한가? 최근 출간된 ‘세계 경제를 뒤바꾼 20가지 스캔들(포천 편집부 지음, 김선희 옮김, 서돌 펴냄)’과 ‘스캔들의 심리학(에드 라이트 지음, 정미나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을 들춰보라. ‘세계 경제를’은 미국 경제전문잡지 ‘포천’이 지금까지 실었던 경제스캔들 기사를 골라 엮은 책이다. 가깝게는 회계부정의 상징이 된 에너지 기업 엔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한국까지 불안하게 했던 미 연방저당공사 페니 메이 사건부터 멀게는 금광 사기로 전 세계를 우롱한 브리엑스, 성냥 생산으로 쌓은 재산을 증권 사기로 다 날리고 목숨을 끊은 이바르 쿠르거의 비극까지 1933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20건의 사건을 담았다. 책은 뒷이야기도 전한다. 특히 해당 사건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를 보면 아이러니다. 뉴욕증권거래소, 미국식품의약국, 내부자거래금지법, 증권거래위원회 등은 사건 재발을 막자는 여론과 규제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물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마크 호닥 뉴욕대 교수의 말처럼 “규모가 어떻든 간에 스캔들은 규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비춰 볼 때 최근 청문회에 나온 인사들이 벌인 공통의 불법행위를 삐딱하게만 볼 일은 아닐 듯. 우리사회의 강력한 규제 욕망을 타오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스캔들’은 제목만 봐서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을 법하다. 그런 기대를 갖고 책을 집는다면 곤란하다. 인간의 욕망을 분노, 시기, 고집, 탐식, 탐욕, 정욕, 교만, 나태, 허망 등 아홉 가지로 나누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스캔들을 분류해 실었다. 프로이트니 융이니 하는 정신분석학자들의 골 아픈 이론 따윈 관심 없는, 마치 미니시리즈 보듯 해외 유명인사들의 스캔들 내막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딱이다. 우즈 이전에 최악의 성추문을 자랑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수십년 전 성폭행으로 최근 체포됐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 등 현대 인물들은 물론 사드 백작, 예카테리나 2세 등 세계사에 등장했던 인물들도 나온다. 두 책의 역할은 스캔들 사례집으로 족하다. 한국 독자의 정서에 맞지 않는 번역의 문제를 이 책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각 1만 6000원, 2만 2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꽃선비’ 송중기, 윙크의 제왕…“남자도 설

    ‘꽃선비’ 송중기, 윙크의 제왕…“남자도 설

    ‘꽃선비’ 송중기가 윙크 세례로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8월 31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극본 김태희 / 연출 김원석)에서 조선시대 최고 바람둥이 여림 역의 송중기가 능글맞으면서도 매력적인 윙크를 선보여 여심을 흔들었다. 하루 앞서 첫 선을 보인 ‘성균관 스캔들’에서 자체발광 미친 미모로 등장한 여림(송중기 분)은 자신에게 환호하는 여인들에게 윙크를 날렸다. 두 눈을 찡긋거리며 능글맞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깨방정 윙크’를 날려 조선 시대 최고 바람둥이 캐릭터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 2회 방송분에서 윤희(박민영 분)에게 깜찍한 ‘부채 윙크’를 선사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드디어 성균관에 입학해 기숙사 배정표를 보고 있는 윤희에게 조심스레 나타난 여림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 말을 건넸다. 여림은 “별호는 계집녀에 수풀림을 쓰지. 여림일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부채를 거두고 얼굴을 드러내며 깜찍한 윙크를 보냈다. 이어 윤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반가움을 표하는 척 하며 가볍게 포옹한 후 귓속말을 속삭이는 여림의 모습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깨방정 윙크, 부채 윙크 등 윙크제왕 여림! 매력적이다”, “송중기의 윙크에 두근거려 잠을 못 자겠다”, “남자인 내가 왜 설레는지 모르겠다”, “자체발광 꽃선비 여림이 최고다! 표정, 행동, 말투, 목소리 뻑이 가요 뻑이 가” 등 송중기의 바람둥이 연기에 찬사를 쏟아냈다. 송중기는 소속사 싸이더스HQ를 통해 “여림은 능글맞고, 장난끼 많고, 인생의 최고 가치는 재미, 흥미, 쾌락을 추구하지만 내면적으로 진지한 면도 있고 슬픈 사연도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그래서 더욱 여림에게 폭 빠져있다”고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진 = KBS 2TV ‘성균관 스캔들’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이재은, 후덕해진 몸매 눈길..섹시화보는 옛말?▶ 전지윤, 가발 착용의 모범사례..여성미 물씬▶ ‘1000 칼로리’ 폭탄버거, 국내상륙…관심up-홈피down▶ 제아 희철, 제시카에 사랑고백 “40번째 영상편지”▶ 허가윤, 실제나이 논란…2살 어린 리지에게 ‘언니?’
  •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 (1)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 佛 올리비에 푸리올

    [유럽의 지성에 듣는다] (1)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 佛 올리비에 푸리올

    2005년 프랑스 철학계에는 ‘이단아’로 불리는 젊은이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당시 32세의 고등학교 교사 올리비에 푸리올은 철학 강의 장소로 ‘학교’가 아닌 ‘영화관’을 선택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을 하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영화 매개 철학강의로 스타덤 영화를 주제로 고전철학을 얘기하는 ‘스튜디오 필로’라는 이름의 강좌에 열광한 사람은 10~20대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그의 영화관에는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바칼로레아를 앞둔 프랑스 고3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르 파리지앵’ ‘라 크루아’ 등 프랑스 언론들은 그의 강의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되찾는 계기’라고 극찬했다. 파리, 니스, 영국 런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 강의를 펼치며 ‘새로운 철학 읽기’를 전파하고 있는 푸리올을 1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한국 영화로 철학을 강의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위해 끊임없이 세계 각국의 영화를 본다는 푸리올은 임권택, 김기덕, 박찬욱 등 한국 감독들의 이름과 그들의 영화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 영화는 독특한 철학과 매력을 담고 있어 철학을 얘기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라고 평가하며 “삶과 쾌락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연구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푸리올은 “영화와 철학을 연결지은 이유는 철학을 얘기하기 위한 매개체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모든 이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서 철학을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영국 등 해외서도 강좌 인기 유독 고3 학생들이 강의를 많이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험 없이 지식만을 습득해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푸리올은 철학을 ‘하나의 전공이 아닌, 살아가기 위한 도구’라고 표현했다. 생각하는 법,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 철학이며, 이 때문에 철학이 현대사회에도 존재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한 현명한 판단, 행동에 대한 근거 등을 모두 철학적 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고 푸리올은 말한다. 데카르트를 인용, “특히 철학은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는 생각보다 먼저 행동하라고 가르칠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푸리올은 자신의 강의와 책에서 각 장의 제목을 ‘~사용법’으로 붙이며 철학의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다. 프랑스에서는 철학 관련 잡지가 여전히 매달 수만권 이상 팔려나갈 정도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韓영화로 한국서 강의 기대” 그는 이에 대해 “철학 전공자의 졸업후 진로를 철학 쪽에서 찾기 힘든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고3 의무과목에 철학이 포함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철학이라는 과목을 누구나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프랑스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에서도 시험 없이 철학을 배우고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시도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교실 대신 영화관으로 강의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놀러간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즐거운 수업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SF 소설 창시자 웰스의 ‘타임머신’

    [고전톡톡 다시읽기] SF 소설 창시자 웰스의 ‘타임머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전인 1885년. 허버트 조지 웰스(1866~1946)는 빠른 속도로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를 상상했다. 이 기계의 이름이 바로 타임머신이다. 웰스에게 공상과학(SF) 소설 창시자라는 수식어를 안긴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시간 차원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고전환에서 조금 더 밀고 나아가 당시 영국 사회의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두 종족으로 진화한 인류 시간여행자는 자신이 발명한 타임머신을 타고 80만 2071년 후의 세계에 도착해 지구 역사의 막바지에 다다른 인류의 모습을 목격한다. 80만년 후의 인류는 두 가지 종족으로 진화해 있다. 시간여행자가 처음 만났던 종족은 엘로이족이다. 그들은 120㎝ 정도의 키에 가냘프고 우아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노동을 하지 않고도 아무런 걱정 없이 지상에 살고 있다. 엘로이족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던 시간여행자는 잃어버린 타임머신을 찾아다니다가 지하에 숨어 살고 있는 몰록족을 만나고서야 의문을 해결한다. 몰록족은 회색빛이 도는 붉고 큰 눈을 가졌으며 머리카락은 담갈색이고 피부는 차갑다. 지하에서 생활하면서 엘로이족과 다르게 진화한 몰록족은 인류의 한 종족임을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추악한 겉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엘로이족을 잡아먹는 야만적 습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여행자는 추측한다. 지상의 종족을 위해 노동을 하던 몰록족은 지하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적응해 나갔으나, 어느 순간 두 종족 사이에 단절이 생겨났을 것이며 식량이 부족해진 몰록족은 엘로이족을 먹이로 삼게 된 것이라고. 인류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거의 완벽한 수준에 도달한 이후를 그려낸 것 치고는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인류의 모습은 암울하고 비극적이기 짝이 없다. 훨씬 더 건강하고 재미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그토록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묘사했던 것일까. ●계급 간 갈등이 빚어낸 디스토피아적 전망 “지금 현재도 가난한 노동자들은 땅 위의 자연적 환경으로부터 사실상 격리되어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부유한 자들은 더 좋은 교육을 오랜 기간 받으려 하고 있고, 화려한 생활을 부추기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으므로 그러한 격차는 점점 커져 갈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 두 계급 간의 소통은 더욱 어렵게 되고, 또 생물학적 분화를 막아줄 이들 상호간의 결혼도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땅 위에서 가진 자들이 쾌락과 안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안, 땅 아래에서는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에 맞게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시간여행자가 경험한 미래는 연대와 소통으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세계가 아니었다. 80만년 후의 세계는 자연 뿐 아니라 인간이 이루어 놓은 문화와 정신까지 말살된 세계이다.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통해 시간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문제점을 떠올린다.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울타리를 막아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등의 배타적인 경향’과, ‘보기 좋지 않은 문명 활동을 지하공간에 활용하려는 경향’이 두 종족의 분화를 부추긴 것이다. ‘타임머신’이 출간되고 100년이 지난 지금, 경제환경이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이러한 경향은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100년 전, 부(富)의 가치가 땅이었다면 현재는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금융이나 주식 등의 다양한 형태로 뒤바뀌었다.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금융이나 주식을 갖게 되면서 적절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고층과 최하층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더욱 난감한 사실은 명확해 보이던 두 계급 간 구분이 점점 더 확인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이들을 두 계급 중 어디로 분류해야 할까. 자영업자 역시 두 개의 계급 중 하나에 끼워넣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대기업 연봉자나 공무원들은 밤늦게까지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새벽이나 밤늦게까지 외국어 강좌를 들으면서 자신을 혹사시킨다. 자영업자 역시도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실상은 극소수의 최고 계급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투여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간여행자가 생각했던 것처럼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이 각각 지상의 영역과 지하의 영역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노동의 영역에서마저 쫓겨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시간여행자가 짐작했던 것보다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 셈일지도 모른다. 도시와 과학기술의 발달,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도시는 끊임없이 개발되고 보기 좋게 세탁된다. 노동의 영역에서 쫓겨난 사람들, 개발을 이유로 도시 밖으로 쫓겨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이 시대의 몰록족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스는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문명의 발전이란 부질없이 쌓아 놓은 것에 불과하며, 마침내는 문명을 세운 사람들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미래는 여전히 공란으로 남아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미래는 시간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광대한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타임머신이라는 SF 용어를 탄생시킨 주역으로서 웰스는 SF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SF소설을 통해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타임머신’을 통해 미래의 시간 속에서 그가 살고 있던 당시 영국 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우리의 미래는 웰스가 생각했던 디스토피아보다 훨씬 더 비극적 결말로 내닫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웰스가 덧붙인 것처럼 미래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이 공란의 미지의 세계를 어떻게 채울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박혜선 영상글밭 사하 연구원
  • 국적도 특정체제도 세대도 정치도 탈피… ‘열린 애국주의’ 새지평 열다

    국적도 특정체제도 세대도 정치도 탈피… ‘열린 애국주의’ 새지평 열다

    “억눌려 있던 성역과 금기의 틀이 무너졌다.”(2002년 한·일 월드컵) “광장의 자발성과 쾌락의 상호주의가 넓어졌다.”(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승전보를 멈췄다. 하지만 보름간의 축제는 이미 전국을 뒤흔들었다. 각계 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이 남긴 의미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되짚었다. 2002년과 2010년의 월드컵이 모두 ‘16강 진출’의 성과를 거뒀고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한·일 월드컵은 자발성과 역동성을 던져줬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경제위기가 불러온 상실감을 잊게 했다. 또 냉전세대의 ‘관제문화’ 대신에 대중 주도의 자율적인 문화가 넘쳐났고, 이는 그 해 대선의 에너지로 작용했다. 물론 ‘집단적 애국주의’라는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시로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에 견줘 남아공 월드컵은 2002년의 새로움을 이어가면서도 한층 진한 흔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단적 애국주의가 ‘자유주의·개인주의적 애국주의’로 이동했다. 국적을 뛰어넘어 즐거움을 나누려는 젊은 선수들과 젊은 응원단이 서로 소통하며 동질성을 공유했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대~한민국’처럼 국가명을 응원구호로 외치는 경우는 드물다. 2002년 거리응원에서 처음 불려진 국가의 이미지가 2010년에는 더욱 밝아졌다.”고 평가했다. 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마음에 ‘대한민국’이 내재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2002년이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존재를 확인하는 계기였다면 2010년은 이를 뛰어넘어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월드컵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태도도 변화시켰다. 새벽 거리응원을 마치고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일상으로 차분히 복귀하는 모습이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김윤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외국처럼 국수주의와 결합된 홀리건적 문화로 흐르지 않고 우리는 일상과 조화를 이룬 축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상대팀이 이겨도 야유와 비난을 퍼붓지 않았다. 비록 16강전에서 승리는 멈췄지만 아쉬움과 원망보다 “보름 동안 즐거움을 줘서 고맙다.”고 화답하는 성숙함을 보였다. 북한팀의 ‘정대세 신드롬’에서 볼 수 있듯 애국주의는 더 이상 이념과 체제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이 교수는 “국가에 대한 자신감이 강해지는 만큼 상대편 국가를 더욱 인정하게 됐다.”면서 “이는 내가 즐기는 만큼 너도 즐길 수 있다는 ‘쾌락의 평등주의’를 심화시켰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와 김 연구원은 이를 두고 ‘열린 애국주의’ 혹은 ‘한국식 애국주의’라고 통칭했다. 이같은 변화는 ‘세계화’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박지성·이청용·이영표 등 해외파 선수가 많아지면서 탈국적 애국주의가 태동했다. 중산층들의 해외 이주가 늘면서 개방에 대한 인식도 커졌다. 응원을 주도한 계층의 변화도 이런 흐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386세대(2002년)에서 10~20대(2010년)로 응원 주체가 변했다. ‘차미네이터’ ‘잔디남’ ‘동방예의지 슛’ 등의 신조어는 스마트폰 세대의 축제 코드를 대변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2002년에 비해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인 특징이 공동체주의와 결합돼 탈정치적인 현상이 심화됐다.”고 바라봤다. 구혜영·신진호기자 koohy@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고전톡톡 다시읽기]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121~180)는 로마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자, 스토아학파의 주요 철학자다. ‘명상록’은 황제의 어록도, 황제 권력에 대한 장황한 연설문도 아닌, 아우렐리우스 자신의, 자신을 위한 ‘메모집’이라 할 수 있다. 황제보다는 철학자로 살고 싶어했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우주와 자연의 섭리, 공동체와 인간의 보편이성에 대한 사유를 비롯해서 스승들의 가르침과 일상의 도리들, 죽음과 행복, 마음의 평안에 대한 기록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행사할 줄 알았던 자유로운 ‘철인(哲人) 황제’의 사유를 담고 있다. 부드럽고 평온하면서도 단호하고 단정한 그의 메모를 읽노라면 안정된 치세를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명상록’의 한 구절 한 구절은 포화 가득한 전장에서 쓰인 것들이다. 단 한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막을 걸어가는 고행자처럼, 그는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흔들림 없이 사유하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다진다. 아우렐리우스에게 철학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당장 꺼내어 쓸 수 있는 것. 한시도 내 몸과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 죽음조차 평온한 일상의 하나로 넘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에게 철학은 고담준론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자 실천이었다. ●운명, 우주적 섭리의 또 다른 이름 ‘명상록’에는 유독 죽음과 운명에 대한 기록들이 많은데, 이는 스토아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스토아철학자들에게 죽음이란 고통이나 종말이 아니라 해체와 소멸이라는 자연의 작용에 불과하다. “어떤 것들은 생성되려고 서둘고, 어떤 것들은 생성되었다가 소멸되었으며, 생성되고 있는 것들도 일부는 소멸되었다. 흐름과 변화가 우주를 쉴 새 없이 새롭게 하는데, 그것은 시간의 부단한 진행이 끝없는 세월을 언제나 새롭게 하는 것과 같다…. 각자의 삶은, 말하자면 피의 발산과 공기의 흡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매순간 그러하듯 공기를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이나, 네가 엊그제 태어나면서 받은 호흡 능력 전체를 네가 처음으로 그것을 낚아챘던 곳으로 돌려주는 것이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반복해 말한다. 죽음은 피조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해체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선도 악도 아니라고,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삶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이란 ‘생성되는 만물들의 급류’다. 무언가가 떠내려오고 무언가가 휩쓸려가는 시간의 급류 속에서 삶이란 잠깐의 체류일 뿐이다. 삶에서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에 일희일비하거나 다가올 죽음에 대해 불안해하는 자는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와도 같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우리의 두려움과 집착과 망상은 사물에 대한 ‘그릇된 표상’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어둠 속에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이는 ‘어둠’ 때문이 아니라 어둠에 대한 나의 표상과 가치판단 때문이다. 어둠이란 빛이 부재하는 자연현상임을 인식한다면 공포스러울 것도, 당황할 것도 없다. 우리가 ‘쾌락’으로 여기는 행위들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행위는 살이 접촉할 때 발생하는 ‘약간의 경련과 배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 대체 집착할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처럼 미세한 시선으로 사물과 사건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표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에 대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표상에 얽매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그리하면 모든 것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게 되리라는 것, 선도 악도 아닌 세계 자체를 긍정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명상록’의 또 다른 화두는 운명이다. 생사, 사고, 부귀, 강약 등은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들, 즉 운명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강에 낚싯줄을 드리운 어부에게 물고기가 많이 잡히느냐 안 잡히느냐도 운명이고, 세상에 태어나 무병장수하다 가느냐 요절하고 마느냐도 운명이다. 개체는 이 ‘운명’ 때문에 행복해하고 불행해하지만, 이것이 곧 우주적 차원의 행·불행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주와 운명은 개체에게 무관심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채로 내버려두라. 단,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있으니, 고기를 잡으려고 낚싯줄을 드리우는 행위, 몇 년을 살다 가든 우주의 섭리와 공동체의 윤리에 부합하게 살려고 하는 행위는 개체의 의지요, 개체의 자유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천만에.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라. ‘나는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고통을 겪지 않았고, 현재의 불운에도 망가지지 않고 미래의 고통도 두렵지가 않으니, 나야말로 행운아로구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를 행이나 불행으로 인도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다. 우주의 사건들은 일어나야 할 방식대로 일어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운명이다. 인간이 여기에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운명이 닥치든 초연하고 담담하게 대처할 수는 있다. 어떻게? 철학하기를 통해! ●철학, 자기구원을 위한 수행 아우렐리우스의 스승인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세운 철학 학교를 ‘진료소’에 빗대 설명한다. 누구는 어깨를 삔 상태로, 누구는 두통을 호소하며 진료소를 찾듯,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자는 철학 학교를 찾아야 한다. 몸을 돌보는 것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하나다. 전자에 규칙적 생활이 필수적이듯, 후자에는 일관성과 꾸준한 자기통제력이 요구된다. 철학자는 의사요, 철학하기란 치료행위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자신의 하루를 ‘진단’하고 ‘점검’한다. ‘스스로를 카이사르와 같은 황제로 착각하지 않고’ 보통사람들처럼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는지,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들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했는지 등….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그것이 마치 생애 최후의 행위인 것처럼 충실하게 완수하고자 한다. 전장에서의 삶은 고달팠고, 그와 로마의 운명은 이미 기울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철학을 통해 자신을 구원했다. 철학이란 매순간 자신에 대해 완벽한 지배 상태에 놓이게 하는 힘이요, 스스로를 구원하는 실천행위임을 보여준 것이다. 채운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스토아 학파는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4세기 말에 키프로스의 제논이 설립한 학파다. 제논이 아테네 광장에 있던 공회당의 채색주랑(彩色柱廊·스토아 포이킬레)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스토아는 ‘주랑(긴 복도)’를 가리킨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 크리시포스에 의해 도약의 국면을 맞은 이래로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으로 이어지며 기원후 2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스토아주의 철학은 철학자가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수련 덕목들을 다룬다. 그래서 종종 가벼운 ‘어록’이나 ‘덕담집’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철학은 일상과 동일한 지평에서 구체적인 ‘연장’으로 작동한다. 이 연장을 손에서 놓지 말고 열심히 일상을 단련하라는 것이 스토아철학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이 말을 확인하고 싶다면, ‘명상록’과 더불어 에픽테토스의 어록이나 세네카의 서간집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흔히 스토아학파를 ‘금욕주의자’로 명명하는데, 이들이 주장한 ‘금욕’은 강제적 법칙이나 규율과 무관한, 자기구원과 쾌락에 도달하기 위한 자율적인 ‘삶의 기술’(ars vivendi)이었다. 이들에게 철학하기란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형하는 문제,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되는”(푸코) 문제다.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운명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자유고, 이것이 철학해야 하는 이유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태가 일어나도록 하고자 힘쓰지 말라. 그저 일어나야 할 방식대로 일어나기만을 바라라. 그리하면 행복하리라.”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문화마당] 몸으로 노래하는 대중음악/강태규 음악평론가

    [문화마당] 몸으로 노래하는 대중음악/강태규 음악평론가

    며칠 전 문화전문 계간지 ‘쿨투라’ 편집을 마감했다. 여러 편의 원고 가운데 편집을 끝내고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 있었다. ‘특집원고’에 실릴 이 글의 제목은 ‘몸과 음악’이었다. 한 음악 전문기자가 기고한 이 글은 대중음악과 몸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최근 우리 대중음악의 편향적인 지형도와 몸의 노출에 대한 가수들의 태도를 단칼에 비판하는 빛나는 글이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1960년대 이후 팝의 역사에서도 몸의 노출로 인한 관능이 존재했다. 사이키델릭 록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여성보컬 그레이스 슬릭은 음악에 대한 철학을 선보이면서 억압된 성의 자유를 외쳤다. 그의 관능적인 이미지 표출은 늘 화제를 모았다. 세계적인 뮤지션 에릭 클랩튼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블라인드 페이스’의 재킷 표지는 어린 소녀의 알몸 상반신 사진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음반 ‘일렉트릭 레이디랜드(Electric Ladyland)’의 재킷 또한 여성들의 나체사진이었다. 비틀스의 존 레넌 역시 솔로 앨범 ‘투 버진스(Two Virgins)’에서 자신의 부인 오노 요코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당당하게 내보였다. 록그룹 ‘록시뮤직’은 두 여자의 대담한 노출로 낯뜨겁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월이 지나서도 ‘몸의 노출’보다 ‘음악적 조명’을 받고 있다. 이들 이후로도 음악은 몸의 진화와 함께 성장했다. 마이클 잭슨은 노출 없는 몸짓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쳤다. 그의 현란한 몸의 움직임은 자신의 음악성을 더욱 의미 있게 포장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대중음악은 어떤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는가. 지금 국내 대중문화계는 어느 때보다 상업성에 의존한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다. 배우가 연기를, 가수가 노래를 잘 한다는 것, 즉 맡은 역할에서 예술의 미학을 찾는 일은 이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되레 자본주의 시대가 추구하는 상업적 논리와 배척되는 행위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에 발맞춰 콘텐츠의 주역들은 점점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탈바꿈시킨다. 앨범 재킷 등을 통해 슬쩍 몸을 내보이는 대리전도, 춤 동작 등 예술의 일부로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영역도 아닌, 몸 그 자체를 드러낸다. 현재 국내 대중문화계 전반을 돌아보면, 남녀 엔터테이너 모두 몸 자체의 섹시함을 드러내고 홍보하는 데 주력하는 형국이다. 방송,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계 전반이 ‘육체의 바다’에 빠졌다는 주장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중예술 분야에서 콘텐츠는 2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고, 육체를 통한 감각적 노출이 제1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이돌이 점령한 대중음악계에서 근육질 몸매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행태는 이제 보편적 규칙이 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몸이 디지털 환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원류는 몸에 대한 인간 본연의 욕망이겠지만, 차별을 요구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쟁탈 현장의 희생물일 수 있다는 것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의무이고, 노래를 위해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역량을 바쳐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다. 그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40년 전, ‘몸’이 수행한 대리 기능을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재킷에 낯뜨거운 노출 장면이 여과 없이 실렸어도,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훌륭하고 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가수들은 음악을 위해 몸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몸을 위해 음악을 이용하는지 한번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음악은 그 자체로 영속성을 보장하지만, 몸은 그 자체로 순간의 쾌락을 제공할 뿐이라고 엄중하게 묻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대중음악계가 불황을 탄식하기 전에 가수의 영역과 위상의 문제를 한번쯤 되짚어 봐야 때다. 언제까지 몸으로 노래할 것이며, 몸의 노래를 요구할 것인가.
  • [영화리뷰] 원 나잇 스탠드

    [영화리뷰] 원 나잇 스탠드

    ‘원나잇 스탠드’(One night stand). 제목부터가 야하다. ‘하룻밤의 정사’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니 왠지 에로 영화의 정수를 보여 줄 것 같다. 과감한 노출과 열정적인 정사신이 은근슬쩍 기대된다.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노출’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야하다. 시각적으로 야하지 않을 뿐 감각적으로 충분히 야하다. 지금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뭔가 다른 차원의 에로티시즘이다. 원나잇 스탠드는 서울독립영화제 최초의 기획제작 작품. 이를 위해 독립영화계에서 알아주는 민용근, 이유림, 장훈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장 감독은 ‘의형제’의 장훈 감독과 동명이인이다. 기획의도는 에로티시즘이다. 왜 한국의 독립영화계에서는 도발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는지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단다. 그래서 겉은 별로 야하지 않지만 속은 진국(?)인 원나잇 스탠드가 탄생됐다. 영화는 총 3편의 단편영화로 구성됐다. 민용근 감독의 첫번째 작품이 시선을 끈다. 주인공은 시각 장애인 청년과 선글라스를 낀 여성. 청년은 한 미모의 여성을 사랑한다. 하지만 속된 말로 변태다. 그 여자가 버린 쓰레기를 뒤지고, 청진기를 현관에 대며 그녀의 사생활을 엿듣는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낀 여성도 스토킹을 하는 이 청년을 스토킹한다. 항상 이 청년을 엿보며 쾌락을 얻는다. 성적으로 변태적인 행동을 보이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촌철살인 같은 대화는 이 영화의 별미. 변태적인 소재를 따뜻하고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색다른 에로티시즘이 흥미롭다. 이유림 감독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다. 남편은 아내가 사라지고 그 아내가 결혼 전 이상한 존재였음을 깨달아간다는 내용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아내의 숨겨진 욕망을 통해 부부관계에서 신뢰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를 에로티시즘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신선하다. 장훈 감독의 세 번째 단편은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 영화배우 권해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목욕관리사인 주인공이 어느 날 외국인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했다가 질투에 휩싸이지만 정작 친구가 원하는 것은 여자친구가 아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동성애를 소재로 이렇게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새달 4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메디칼럼] ‘신데렐라’ 강숙, 신데렐라콤플렉스의 전형

    [메디칼럼] ‘신데렐라’ 강숙, 신데렐라콤플렉스의 전형

    [메디칼럼]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 등장인물 중에서 신데렐라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가장 잘 따르는 인물은 은조 엄마 송강숙일 것이다. 은조는 진정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의붓 아버지 대성을 만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지만 엄마는 잘못 만난 탓에 여기저기 전전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팔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은조 팔자가 사나운 것은 건강한 부부 생활을 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과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작부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남자들을 만나 불안정한 동거 생활을 반복하게 된 것은 은조 엄마의 성격적인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여자라면 이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은조 엄마는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호강시켜줄 남자를 찾아다니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한사람과 지속적이고 친밀감 있는 인간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기에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술과 같은 향락에 빠져 은주를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지 못했다. 이러한 삶 속에서 강숙이 선택한 것은 자신을 호강시켜줄 남자만을 사냥하고 그뒤 남자 재산을 독차지 할려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 세상을 노력하지 않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대로 돈을 쓰면서 살고 싶어한다. 이런 점이 바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성과 안정된 삶을 위해 대성의 아들을 낳지만 은조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처럼 아들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주지 못해 드라마에서 간간히 비치는 아들 모습은 버릇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아이로만 보이고 있다. 은조나 은조 동생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바로 강숙이 자식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주지 못하는 남을 진정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평범하면서 안정된 삶속에서 있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술과 작부 인생에서 쾌락을 느끼게 된다.건실한 대성을 만났어도 술주정뱅이 장씨를 계속 만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삶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독설을 내뱉고 숙성실과 방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사나운 내 팔자 때문에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은 꼭 다친다.’고 생각하는 은조를 보면 ‘엄마를 잘못 만나 이렇게 된 것인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원장 김태훈@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예계 복불복:영화] 제작비 믿다 ‘쪽박’ vs 작품성으로 ‘적시타’

    [연예계 복불복:영화] 제작비 믿다 ‘쪽박’ vs 작품성으로 ‘적시타’

    2009년 한국 영화계는 극장 관객 수 증가와 역대 최고 매출액 갱신,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 48.8% 달성 등 여러 지표에서 청신호를 보였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국내 영화 118편 중 손익 분기점(BEP)을 넘긴 영화는 단 16편으로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투자 수익률 50%와 100%를 넘긴 고수익 영화는 각각 8편, 5편으로 나타났다. ◆ 쪽박 영화, 믿었던 너마저…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영화 한 편은 곧 수익에 대한 기대와 직결된다. 하지만 다수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한정돼 있고, 때문에 ‘기대보다 흥행한 영화’보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화’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영화 중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작품으로 수애ㆍ조승우 주연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들었다. 지난해 9월 개봉했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95억 원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해 명성황후와 호위무사의 사랑을 그린 대작 사극이다. 관계자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손익분기점은 약 300만 명이었으나, 전국관객 170만 명 정도를 동원한 데 그쳤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군복무 중인 조승우가 추석 대목을 앞두고 치열하게 펼쳐진 영화 홍보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과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에도 불구, 통속적인 멜로 영화로 비친 약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지난해 11월 개봉한 장혁 주연의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도 손익분기점에서 한참 부족한 성적을 거뒀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한국판 ‘색,계’를 외치며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지만, 단 14만 관객의 선택을 받는데 그쳤다.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포한해 약 50억 원 이상이 투자된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한 주 차이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0’ 등의 재난에 급습 당한 결과다. ‘요가’를 소재로 유진ㆍ박한별 등 미모의 여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킨 공포영화 ‘요가학원’ 역시 단 27만 관객을 동원한 데 그쳤다. 지난해 8월 공포영화의 공식에 따라 여름에 개봉한 ‘요가학원’은 극중 여배우들의 요염한 자태와 요가 의상을 통한 몸매 노출로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워커홀릭과 폭식증, 거울중독증 등 과도하게 묘사된 여성 캐릭터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란 흥미로운 소재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게다가 주연배우 박한별은 네티즌이 뽑은 ‘2009 영화계 미스 캐스팅’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 기대치 못한 ‘다크호스’ 대박 영화 반면 당초 예상보다 더 큰 선전을 거두며 관계자들에게 기쁨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긴 영화들도 있다. 먼저 지난해 6월 개봉한 김윤석 주연의 ‘거북이 달린다’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9년 전체 영화 중 흥행 10위를 기록했다. ‘거북이 달린다’는 할리우드 대작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등과 스크린 경쟁을 벌였음에도 꾸준한 ‘거북이 흥행’을 이뤄냈다. 50억 원을 투입한 이 영화는 제작비의 2배 정도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이어 지난해 9월 개봉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총 제작비가 15억 원이 채 안된 저예산 영화였지만, 개봉 14일 만에 5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제작사 스폰지 관계자는 “장근석과 정진영 등 노 개런티에 가까운 출연료를 받으면서 열연한 배우들과 끔찍한 쾌락 살인사건의 실화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관객들에게 어필했던 점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또 임창정과 박예진 주연 코미디 영화 ‘청담보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에 맞서며 비수기인 11월 한국영화의 점유율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개봉 첫날 전국관객 10만 명을 넘기며 순조로운 출발을 선언한 ‘청담보살’은 총 120만 명의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한국 코미디 영화의 저력을 선보였다. 사진 = 각 영화 포스터 및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10 신춘문예-희곡 당선작]심사평, 뛰어난 극적 구성… 동시대적 질문 가득한 수작

    [2010 신춘문예-희곡 당선작]심사평, 뛰어난 극적 구성… 동시대적 질문 가득한 수작

    2010 신춘문예는 160편이라는 많은 희곡이 응모하였다. 다수의 작품이 일상극의 형태로 가난과 실업의 고통, 낙태 등 가족의 부재와 20, 30대 청년실업의 문제들을 다뤘다. 또한 역사적 담론을 담은 작품이 적었으며 신변잡기적인 작품들과 소비 쾌락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간혹 이유 없는 엽기작품들도 섞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작가적 상상력이 부족하고 기존 희곡의 글쓰기 양식을 답습한 경우가 많았다. 미숙하고 서툴러도 자기만의 글쓰기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최종 후보작으로 ‘시체 팝니다’와 ‘누가 윤제씨를 뜯어 먹는가!’, ‘러브 이벤추얼리’, 그리고 ‘변신’ 4편을 선정하였고, 심사위원들은 그중 이시원작 ‘변신’을 주저없이 당선작으로 뽑았다. 김진아작 ‘시체를 팝니다’는 시체를 사고팔 수밖에 없는 비정한 세상을 미래를 배경으로 형상화했으나 결말 부분의 처리가 급박하고 주제가 다소 모호한 것이 약점이었다. 정진세작 ‘러브 이벤추얼리’는 상큼한 전개와 경쾌한 진행, 마지막 극적 반전이 매우 뛰어난 희곡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벼운 소재와 비현실적 사랑이야기, 모노드라마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김성제작 ‘누가 윤제씨를 뜯어먹는가!’는 40대 중년 가장의 고난한 삶을 독특한 시선으로 보여주었으나 가장의 고통이라는 한 주제에 너무 매달려 극이 진행 되어도 이야기가 쌓이지 않고 예견된 결말로 가는 단조로움이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었다. 반면 이시원의 ‘변신’은 뛰어난 극적 구성과 깔끔한 문체, 인간이 사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인간을 품고 있으며, 동시대적 질문이 흠뻑 담긴 뛰어난 수작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향후 창대한 발전이 기대된다.
  • 그리스 神 이미지로 현대사회 5가지 모델 제시

    최근 간행된 ‘행복의 역설’(질 리포베츠키 지음, 정미애 옮김·알마 펴냄)에 따르면 인류의 소비 문명은 3단계를 거치며 변화했다. 1880년대 소수의 부르주아 계층만 소비의 주체가 된 1단계, 1950년대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거의 모든 계층이 30년에 걸쳐 풍요를 누린 2단계, 그리고 1970년대 말 이후 과잉물질주의가 이끈 ‘과소비 사회’가 3단계다. 저자가 본 ‘과소비 사회 이후’는 결코 밝지 않다. “과소비사회를 대체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발달할 것이라는 게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삶은 행복과 기쁨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처럼 보인다.”며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일부 모델에는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 신들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첫째는 페니아(빈곤의 여신). 물질 과잉은 소비자를 끊임없이 결핍의 상태로 몰아가고 주기적으로 불만족스럽게 만들어 평온함과 기쁨을 앗아간다. 기쁨을 맛볼 기회가 많을수록 소비자는 더욱 만족의 상태에서 멀어진다. 이것이 바로 풍요 속의 빈곤, 페니아의 강박증이다. 둘째는 디오니소스(술의 신). 전통문화에서 인간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함으로써 개인주의에서 해방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과소비사회는 공동체의 쾌락 대신 개인적인 기쁨으로 대체됐다. 셋째는 슈퍼맨. 현대사회에서는 경쟁력과 유능함, 적극성 등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개인마다 잠재력을 최대한 격발시켜 자기 초월을 시도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늘 ‘슈퍼맨’ 현판이 붙어 있다. 넷째는 네메시스(율법의 여신).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증오심과 질투심,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네메시스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은 부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벌한다. 다섯째는 호모 펠릭스(행복한 인간). 20세기 인류는 위대한 진보를 거듭했지만 지구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현대의 ‘행복한 인간’ 숭배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처럼 다섯 가지 모델을 들어 과소비사회의 종말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저자는 “온전한 만족감 대신 상품의 욕구만을 따른다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고 단언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아직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11억명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올해 통계에 따르면 기아로 고통받는 인구가 10억 2000만명이다. 전쟁보다 기아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행복의 역설’은 이런 곳에서도 유효할까. 저자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다. 2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책꽂이]

    ●공간의 힘(하름 데 블레이 지음, 황근하 옮김, 천지인 펴냄) 세계화는 여러 지역을 평평하게 하고 있다지만, 사람들이 정말 지리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들의 삶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자연적·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세계는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여전히 울퉁불퉁하다.”고 말한다. 지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방향을 전한다. 2만 2000원.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교육자, 노벨상 수상자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이었던 버트런드 러셀이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현대 분석 철학까지 서양철학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의 주요 사상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해 그만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재치와 유머가 넘쳐나 딱딱하지 않다. 국내 첫 완역 출간. 3만 8000원.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옮김, 상상의숲 펴냄)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종이 소비가 점점 줄었을까. 천만에. 서류 인쇄용지, 종이컵, 티백, 물티슈, 책, 스티커, 가격표, 영수증 등 종이 없는 세상은 꿈꿀 수 없다. 사라지는 숲에 대한 불편한 진실과 그 대안은. 1만 4000원. ●잠 못 이루는 밤(엘뤼네드 서머스브렘너 지음, 정연희 옮김, 시공사 펴냄) 불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어둠에 대한 불안, 종교적 이유, 쾌락의 추구 등 시대마다 사람을 괴롭히는 불면의 원인이 있었다. 불면은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개인에게 스며들고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만 3000원.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윌리엄 캄괌바·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펴냄)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있는 말라위의 한 소년은 말한다. “무엇을 하든 난 내가 배운 한 가지를 기억할 것이다. 뭔가를 이루고 싶으면 해보아야 한다는 걸.” 돈이 없어 학교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소년과 그의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 만들어낸 감동 이야기. 9800원. ●시장을 뒤흔든 100명의 거인들(켄 피셔 지음, 이건·김홍식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제시 리버모어 등 세계가 인정한 투자의 대가 100명의 투자 기법과 인생. 오늘날에도 새겨들을 만한 투자 성공담과 실패담을 골고루 전하며 100인의 투자 거장을 조명하고 투자 교훈을 들려준다. 2만 8000원.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안창홍·김정욱 11월14일까지 갤러리 스케이프. 사람과 사람의 속성 사이에 흐물거리는 성스러움과 속됨, 죽음의 폭력과 응시, 욕망의 배설과 상처, 쾌락과 슬픔을 유발시키는 관계들을 증폭시키는 그림을 2인전 형태로 제시. (02)747-4675.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 11월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1919년 앨버트 테일러와 1947년 프레드 다익스, 1973년 노무라 모토유키가 서울에서 찍은 사진 전시. 30년 간격으로 변화된 서울 모습 제시. (02)724-0114. ●아프리카 미술, 서구 미술계를 침공하다 20일까지 갤러리 통큰. 베니스비엔날레에 2007년 아프리카관이 만들어진 후 아프리카 미술은 팝아트의 대안미술로 부각되고 있다. 화려한 색깔과 뒤엉킨 구도를 구경할 것. (02)732-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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