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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영화 ‘쉬리’

    잘 만들어진 국산영화 한 편이 전국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개봉된지 열흘 만에 1백만명 관객동원이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영화제목은‘쉬리’.얼핏 보기엔 외화 제목 같지만 ‘쉬리’는 국내의 1급수 청정 하천에서만 서식하는 토종 물고기 이름이다. 우아한 자태로 헤엄치는 것 같지만아무리 빠른 물살도 끝까지 거슬러 역류하는 앙칼진 승부근성을 지니고 있다.‘쉬리’란 한 특수군단이 내건 통일작전 암호이며 아무리 거센 물살도 역류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밀첩보원들의 목숨을 건 활약상이 전편에 펼쳐진다. 영화 ‘쉬리’의 성공은 ‘서편제’이후 최대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더구나 우리의 햇볕정책 이후 남북문제를 다룬 소재의 탁월성과 무제한의 제작비 투입이 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공수해온 최첨단 무기, 총기와 함께 신소재 액체폭탄인 CTX를 둘러싼 탈취와 추적은 폭파직전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한다.여기에다 종전의 국산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종 고난도 폭파장면과 변화무쌍한 촬영의 역동성,편집·연출 기술이 완성도를 성취하여 홍콩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간다는 평을 듣는다.또 상식선에 그치지 않고 영화 속에 숨겨진 역할의 이중성과 의외성을 때맞춰 돌출시킴으로써 새로운 감동과 재미,관객이 스스로생각하고 해답을 얻게 한다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이 영화를 만든 강제규감독은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만드는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번에도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관객이 외면하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스크린 쿼터제의 냉엄한 시장논리는 국제기준에도 흔치 않은 제도지만 국내 팬을 사로잡고 국제시장을석권할 명작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거센 통상압력과 제도라도 맥을 못추는 법이다.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어쩌면 한국 영화부흥의 꿈을 키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던지면서 침체했던 우리 영화계가 술렁이는 분위기다.‘한 편의 영화가 한 나라의 영화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영화평론가 김종원씨의 말이 옳기를 바란다.결국은 ‘좋은 영화’는 관객이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배영화도 자연스럽게 물리치는 힘이 된다는 교훈을 이 영화는 확인시키고 있다./이세기 논설위원
  • 스피드스케이팅‘금맥 잇는다’

    이제는 ‘배기태 사단’이 금맥을 잇는다.초반 알찬 수확을 거두고 있는 한국은 2일부터 열리는 남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또한번의 쾌거를 기대한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역대 대회마다 순위싸움의 고비에서 귀중한 메달을 안겨준 종목으로 ‘잘 나가고 있는’ 한국에 채찍을 더한다는 각오이다.금메달을 노리는 종목은 남녀 500m와 남자 1,000m. 남자 500m의 제갈성렬(29 삼성화재)은 하얼빈대회에 이어 2연패를 노린다.한때 기록이 주춤했으나 지난해 11월 캘거리선수권에서 35초74로 한국신기록을 세워 새로운 기대를 부풀린다. 남자 1,000m는 97년 한해에만 세계신기록을 3차례 갈아치운 스프린터 이규혁(고려대)과 막판 스퍼트가 뛰어난 기대주 최재봉(효원고)이 그메달을 놓고 한솥밥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다소 벅차지만 여자도 중거리에서만은 호락호락하지 않는다.여자 1,500m에출전하는 백은비(한체대)와 최승용(배화여고)이 홈 이점을 안고 금메달의 의지를 태운다.┑용평 특별취재반┑
  • 투지 빛난 쇼트트랙 선수들

    ?맙崙? 특별취재반??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집단 식중독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김동성은 예선과 결승에서 모두 2위를 크게 따돌리며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해 사흘전 식중독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 다는 설명을 무색케 만들었다. 최대의 라이벌인 중국의 리자준이 예선에서 뜻밖의 탈락을 한 덕에 레이스를 쉽게 운영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쇼트트랙에서 대부분의 금메달을 중국에 빼앗길 것이란 우려를 깨끗이 씻어주는 쾌거였다. 쇼트트랙 경기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을 것에 대비해 탈출구 를 마련하기 위해 집단 식중독 사건을 일으켰다는 말도 나돌았으나 신빙성은 가지 않는 소문.또 경쟁선수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식중독 설을 흘리는 고도의 전술을 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얘기들보다는 아무래도 한국선수들의 불굴의 투지가 빛을 발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한국선수단은 대회를 앞두고 대표선수들의 교체로 인한 훈련부족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동계스포츠의 최대 메달밭인 쇼트트랙에서 부진한 성적 을 거둘 것으로 우려됐었는데 선수들의 투지가 이를 극복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전명규 쇼트트랙감독도 대회전 한국선수들의 최대의 비책은 불굴의 정신력 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외언내언]瀋陽 한국영사사무소/장청수 논설위원

    한국과 중국은 지난 28일 선양(瀋陽)의 한국영사사무소 설치에 관한 합의각 서를 교환했다.이로써 총영사관의 전단계인 영사사무소가 빠르면 3월에 설치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각서 교환은 92년 한·중수교 이후 업무관할권 을 놓고 양국간에 줄다리기를 벌여온 영사사무소 개설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외교성과로 평가된다. 또한 동북3성(省)에 진출한 우리국민과 기업체 보호및 지원업무도 함께 기 대할 수 있게 됐다.선양 한국영사사무소 설치는 180여만명의 조선족 동포들 이 거주하고 있는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등 동북3성과의 경제·문화의 교류와 협력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커 다란 외교적 수확으로 받아들여진다.그동안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서 영사업무를 랴오닝성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동북3성으로 확 대한 것은 중국과의 정치적 한계를 극복한 쾌거로 볼 수 있다.특히 선양 한 국영사사무소 설치는 동북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대한 정책확대는 물론 통 일을 위한민족 네트워크 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더욱이 최 근들어 빈번해지고 있는 한국취업사기사건을 비롯해 조선족의 경제적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북한과의 외교적 마찰이다.선양주 재 북한 총영사관은 지난 86년에 설치됐으며 총영사는 60년대 북한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중앙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한 바 있는 한철(68)이 맡 고 있다.현재 15명내외의 영사등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이지 역의 정치적 비중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 최근들어 북한 총영사관은 관할대상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탈북자 증가문 제와 조선족의 친(親)한국 경향에 상당한 우려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친북계열의 조선족을 앞세운 친북행사의 활발한 활동도 이같은 우려를 의식 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북한은 동북3성의 정치적 비중을 중요하게 보고 있 는 만큼 앞으로 고의적인 외교 마찰도 예상된다.이에따른 외교적 파장도 우 려되기 때문에 정부는 이에 대한 치밀한 사전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연출가 임진택씨

    삶이 뜻하지 않은 쪽으로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갈 때 ‘팔자’란 단어를 떠올린다.70년대 이후 줄곧 우리 놀이판을 지켜온 광대 임진택의 세상살이도이 ‘운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집안의 기대 속에 경기 중·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를 들어갔을 때만해도그저 수업시간에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거나 오락시간을 주도하던 괴짜 모범생에 불과했다.어디에서도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하거나 불법·불순(?)공연을 주도할 싹은 보이지 않았다. “인생항로를 바꾼 발단은 낭만과 저항이 함께 녹아있던 문리대 정신이었고 불씨를 지핀 건 유신정권때 반항의 요람이던 연극반이었죠”. 연극반 시절 ‘오적’의 김지하와 ‘빠리의 택시운전사’홍상화 등과 만나면서 임진택의 세계관은 현실로 내려온다.점화된 정치의식은 당국의 감시와싸우며 연극운동으로 이어진다.그러나 합법적인 장에선 대부분 불발되었다.공연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제일교회(박형규·권호경목사가 주도)나 이화여대 큰 마당에서 현실을 풍자했다. “살벌한 분위기였죠.예를 들어 이근삼의 ‘대왕이 죽었다’라는 공연도 내용과는 상관없이 제목이 이상하다며 금지할 정도였으니까요”. 당국과 술래잡기 하듯 벌이던 연극은 마당극의 단초를 발견하면서 더 넓은판으로 도약한다.‘교내공연 X’판정을 받은 김지하의 두 단막극 ‘구리 이순신’‘나폴레옹 꼬냑’을 71년 교련반대시위 도중 밤샘농성장(강의실)에서 시험공연한 것.무대도 없고 설비도 없는 공간에서 관중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장면을 목도한 것이다. “연습 수준의 공연이었지만 일방적으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관객과 주고받으며 상승하는 역동성을 발견했죠.마당극의 단초를 보았습니다”. 얼핏 보인 가능성은 70년대 중반 활기를 띤 탈춤과 접목되면서 맘껏 꽃핀다.옛날 것이란 이유로 당국에서도 권장한 탈춤에서 임진택은 역설적으로 열린 공간과 기동성이란 장점을 보았던 것. “연극의 내용과 탈춤의 형식을 결합한 거죠.날카로운 주제를 무대·대사에 의존하는 연극 형식보다는 관중과 어우러지며 신명을 우려내는 마당판의 역동성이 더 진보적으로 다가왔죠”. 물을 만난 광대는 73년 원주에서 김지하가 추진하던 ‘농촌협업운동’홍보를 위해 탈춤과 판소리가 섞인 ‘진오귀’순회공연을 계획한다.운동의 무산으로 공연은 빛을 보지 못했으나 제일교회에서 ‘청산별곡(哭)’이란 제목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어 탈춤의 재창조에 나선다.74년 소리굿 ‘아구’를 국립극장 소극장에올렸다.‘이종구 신곡 발표회’라는 합법적 이름을 빌렸다.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도피중이던 김지하가 연습장에 몰래 찾아와 많은 도움을 주었다.이종구 이애주 김민기 김영동 채희완 김석만이 참가했다. “4월 긴급조치 2호 직전의 살벌한 상황에서 합법공간을 빌려 터트린 쾌거였습니다.공연이 시작된 뒤 지하형은 조명실에서 몰래 구경했죠”. 임진택은 가부키 분장으로 ‘마라데쓰’란 노래를 불러 화제를 일으켰다.이 곡은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 탈춤공연의 단골노래로 자리잡았다. 숨가쁜 ‘금지 인생’에도 휴식기간이 있었다.긴급조치로 인한 감옥살이뒤홀어머니를 모신 ‘무능한 가장’은 교수추천으로 대한항공에 들어간 것.반골의 몸짓은 멈추지 않고 ‘유신헌법 찬반투표’에 대한 시민 불복종운동의한 방법으로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공연을 준비했다.공연 3일전 전원이 연행되면서 거사는 무산되었다.이 일로 당국의 눈총을 의식한 회사와 마찰을 빚고 6개월만에 사표를 던진다. 이어진 TBC의 PD생활에서도 한직으로 내몰리자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보성소리’ 승계자 정권진선생을 사사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세번째 전환점인 판소리 시대를 열면서 ‘금지’행로는 되살아난다.85년 올린 ‘똥바다’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는 반대했지만 대학가에선 불티났다. “저지선을 뚫고 두루마기 입고 철조망을 넘어가 공연하면 1,000∼2,000명이 몰렸죠.민중성이란 알맹이를 대중화하는 길을 보았죠.소수의 강경노선 목소리만 크고 다수의 민주운동진영이 소진상태에 있던 터라 대중화가 시급했죠.예술적 흡인력으로 대중성이란 힘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생활에서 막혔던 ‘끼’를 본인의 말 그대로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판소리의 자진모리 장단이 퍼붓는 통쾌함에 한국의 부패세력을 비꼬는 사설은 5공화국의 질식할듯한 시대상황을 배설해준 활로였다.빨라진 걸음은 90년 ‘5월광주’를 낳는다.광주민주화 항쟁 10주년 기념으로 항쟁의 상징인윤상원에 대한 기념비적 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상원이완 이전에 두번 만난 적이 있어요.황석영 형의 제의로 광주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상원이가 독학한 저의 ‘소리내력’을 외워서 부르더라구요”.월계동 아파트에 칩거하면서 윤상원에 대한 기억을 보듬으며 연습에 몰두하던 시절을 “상원이가 나오는 마지막 날 밤 얘기를 푸는데 눈물이 줄줄 납디다”라고 회상한다.사회와 예술을 아우르는 행보는 93년 절창 ‘오적’으로이어진다.정권진선생을 찾아가 두루마리에 적힌 담시 ‘오적’을 보여주며‘선생님 이것을 소리로 한번 담고 싶습니다’라고 배움을 청했던 소망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전국민족극협의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97년,98년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임진택의 문화실천이 갖는 미덕은 과거의 공간에서 박제화되지 않고 현재형으로 살아있다는 데 있다.‘금지’와 친화력이 생긴걸까,최근엔 마당극잔치를 주관하려는 과천시의 ‘얼굴을 달리한 금지문화’와 싸우느라 바쁘다.李鍾壽 vielee@
  • 올해 무역흑자로 채권국되자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달성,‘무역의 금자탑’을 쌓았다.98년 무역흑자 규모 399억달러는 일본·독일·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의 수준이며 지난 86∼88년까지 3년간 흑자규모 192억달러를 2배이상 웃도는 엄청난 금액이다.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들어간 나라가 1년만에 무역흑자를 400억달러 가까이 달성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대 쾌거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99억달러 무역흑자를 달성한데 이어 올해 200억∼250억달러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올해 무역에서 20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낸다면 우리나라는 내년에는 순채권국으로 격상할 수가 있다.지난 10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채무는 1,535억달러이며 대외자산(채권)은 1,324억달러로 순외채는 211억달러에 달한다.지난해 무역흑자에 힘입어 작년말기준 순외채 규모는 17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흑자를 200억∼250억달러 기록한다면 170억달러의 순외채를 갚을 수있다.그렇게 되면 대외자산이 대외부채보다 많아져 순채권국이 된다.순채권국으로의 격상은 한마디로 IMF관리체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외환위기를 겪은 나라가 2년만에 IMF에서 탈출할뿐아니라 외국에 돈을 빌려준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순채권국으로 격상하기 위해서는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자제해야 한다.수출증대를 위해서는 기존 상품의 마케팅강화와 신상품 수출확대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당국은 국내 수출업체가 경쟁상대국에 비해서 불리한 수출여건에 놓이지 않도록 각종 시책을 개발,지원하고 업계는 선진국시장과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당국은 수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율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하고 무역금융제도상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보완해 수출업계가 신용경색으로 수출을제때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특히 중소수출업계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을 확대하고 신용보증기금 심사기준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수출업계는 ‘수출만이 살길’임을 깊이 인식,과거 은행 잎까지 수출하던정신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수출증대는 업계의 생존과 국민경제의 회생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수출업계는 지금까지 가격경쟁위주의 수출전략을 품질위주로,개발도상국 중심의 마케팅전략을 선진국쪽으로 바꾸는 등 공격적인 수출전략을 새해 초부터 펼쳐나가기 바란다.
  • 생명과학(그래픽 진단 ’98세계:1)

    ◎한국 등 인간복제 실험 파문/비아그라 폭발적 인기/선충 유전자구조 해독 세기 말의 격랑과 새 천년대의 불확실성 속에 1998년의 세계는 표류를 계속해 왔다. 1년밖에 남지 않은 20세기의 문턱에서 이 표류의 양상을 ●생명과학 ●인물(뜨는 별 지는 별) ●문명충돌의 테러 ●자연재앙 ●인위적 재해 등 다섯으로 나누어 진단해본다. 과학 분야를 통틀어 올 지구촌 최대 화제는 단연 ‘유전자 복제’문제. 지난해 태어난 복제양 ‘돌리’ 이후 각국마다 복제기술이 발달,일본에서는 올해 8마리의 복제 송아지가 태어났다. 국내에서도 한 대학병원의 ‘인간복제’ 실험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영·미 합동연구팀은 8년 만에 인간유전자를 닮은 선충(線蟲)의 유전자구조를 완전 해독,처음으로 생명의 신비를 풀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프랑스에서는 사상 최초로 팔 이식수술에 성공을 거둬 장기에만 국한됐던 이식수술의 영역을 신체부위로까지 넓히는 쾌거를 이룩했다. 획기적인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는 지구의 반이 남성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올 최대의 히트 의약품 비아그라를 개발한 미 화이저사는 상반기에만 2조원의 매출을 달성,세계 의약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한 대학연구팀은 수천만년 전 호박(보석의 일종) 속에 갇힌 벌의 뱃속에 있던 박테리아를 되살리는 데 성공,영화 ‘쥬라기 공원’의 현실화를 가능케 했다. 또 미국의 존 글렌 전 상원의원(77)은 최고령 우주비행사로 우주 생체실험 대상이 돼 화제가 됐으며 전 병리학자 케보키언 박사는 자신의 환자를 안락사시키는 장면을 TV로 방영,안락사 논쟁과 함께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 스티븐스 砲殺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7)

    ◎張仁煥·田明雲 의사 의거 추적/“국권회복 활동” 보도 한달뒤 1면톱 게재/“애국지사” 내외 알려 安重根 의사에 영향 1908년 3월23일 일본 통감부의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張仁煥·田明雲 두 애국지사의 총에 피살된다. 총격은,‘일본의 한국 보호’가 한국인의 바람인듯 공공연히 떠들어댄 그의 망언에서 비롯됐다. 대한매일은 이 사건을 끊이지 않고,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의 열악한 통신체계에도 불구하고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의거를 대한 백성이 자세히 알게됐다. 미국측에 의해 ‘단순살인’쯤으로 치부될 뻔한 사건을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의거로 자리매김,세계만방에 알린 것들은 순전히 대한매일의 공이었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함을 홍보하고 미국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3월21일 기자회견을 가져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한국에 유익한 바가 많다” “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거듭했다. 대한매일에 ‘스티븐스 포살(砲殺)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3월25일자 뉴욕발 기사였다.‘한국 전 고문 須知分(수지분=스티븐스)씨가 일전에 桑港(상항=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는데,24일(사실은 23일)에 그 여관 앞 마차에서 내릴 때 돌연히 사격하였는데,그 사격자는 상항에 체류하는 한국인이라. 수지분씨가 이 조난 전에 신문기자를 만나 일본의 대한정책을 찬양하되,미국이 필리핀에서 하듯 같은 형태의 귀중사업을 일본이 한국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때문이라더라.’ 대한매일의 초기 보도는 전적으로 외신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짤막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름을 보면 결코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에는 ‘수지분이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반면 부상한 한인(전명운)은 빈사 상태’이며 ‘저격 이유는 수지분이 휴대한 서류가 미국 대통령과 주미 일본대사에게 넘어가면 한국에 절망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28일에는 국내발로 ‘수지분이 죽어 통감부 관리 일동이 조전을 보냈다’는 부음기사를,29일과 31일에는 뉴욕발로 ‘병상의 한인은 점차 쾌유하며 수지분 사망 소식에 환희하였다’ ‘암살자(장인환)가 기소되었는데 그 변호사는 애국적 광란상태에서 무지각적으로 벌인 범죄라고 변호하였다’는 속보가 잇따랐다. 사건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외신만을 전하는 데 답답했을 대한매일은 드디어 4월17일자 1면 톱으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한다. 미국에서 발행된 공동회의 호외를 긴급 입수한 것이다. ‘별보(別報)’라 이름 붙은 이 기사는 평상시와는 달리 ‘수지분 포살 상보’‘질문 수지분’‘전명운·장인환 양씨가 수지분을 포격’‘경고 첨(僉=모든)동포’ 등의 제목을 중간중간 큰 활자로 집어넣었다. 그 내용은, ‘수지분이가 23일 상오 華盛頓(화성돈=워싱턴)으로 향하려고 옥란시 정거장에 당도하며 애국지사 양씨는 뒤쫓아왔던지 일찌감치 대기중이라. 수지분이가 일본 영사와 동반하여 자동차에서 내려올 때 좌우 공격하여 연 3차 포성이 울리는 때에 수지분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니 경찰관리가 급히 모여들어 마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어진 ‘경고 첨동포’에서는 ‘우리가 양씨와 함께 죽을 지경에는 미달하였으나 그 애국열성이야 어찌 위로하지 못하리오. 한국독립도 이제 오늘부터요,한국자유도 오늘부터’라고 찬양한 뒤 ‘우리가 각각 주머니를 빌어 독립을 위하여 재판하기를 불가불 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포살 사건’ 보도는 대한매일이 거둔 또하나의 승리였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쾌거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1년7개월 후 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제는 이 보도를 대한매일 사장 배설을 고소하는 빌미로 삼았다.
  • 한국영화의 현주소(제3회 부산국제영화제:Ⅱ)

    ◎해외시장 진출 어디까지/작년 230만불 수출… 세계시장 3만분의 1/한국적 정서로 ‘문화의 벽’ 돌파엔 한계/합작·해외로케 등 다양한 시도 필요/국제영화제서 위상 제고… 앞날은 밝아 어느 제조업체가 지난해 230만달러(32억2,000만원)어치를 수출했다면 사람들은 그 회사를 중소기업쯤으로 여길 것이다.한 산업분야 전체의 수출액이 그 정도라면,‘아직도 그렇게 낙후된 분야가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97년 230만2,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린 영화가 바로 그 ‘산업’이다.반면 영화수입 규모는 대략 9,000만달러에 이른다. 한해 시장규모가 2,300억원을 넘어서 세계 10대 시장에 들고 할리우드 대작영화가 미국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쯤 개봉되는 나라,대한민국 영화산업의 자화상이다.‘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의 총아’니 ‘문화상품 수출의 첨병’이니 영화산업에 쏟아지는 기대는 크고,국민의 정부 출범후 이에 따른 진흥책도 영화계·관변·정치권 등 여기저기서 활발하게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수출은 비약적으로 늘어날까.영화계내부의 목소리는 ‘단기간에는 힘들다’는 데로 모아진다.영화인들은 그 까닭으로 ‘문화적인 벽’을 가장 먼저 꼽는다.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한국의 정서,한국배우들 이 외국인에게 그리 어필하지 못한다는 것.예컨대 백인·흑인들은 ‘투캅스’를 보더라도 안성기와 박중훈을 구분조차 못하기 일쑤다. 한국영화 수출을 가로막는 장애는 국내 영화계에도 존재한다.외국 히트곡을 멋대로 삽입했다가 국제시장에서 저작권이 문제 되자 뒤꽁무니를 뺐다거나,음향을 국제규격에 맞게 처리하지 않아 벙어리 필름이 되는 바람에 12나라와의 계약이 취소됐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뒷얘기들이 나돈다. 그러나 이같은 열악한 환경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많은 영화인들은 최근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자세로 적극 나서고 있다.좁은 국내시장만을 바라보고 영화를 만들기에는 제작비 규모가 이미 꽤 커졌기 때문이다.따라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하는 영화사들이 늘고 있다.그 선두주자로 ‘기획시대’(대표 柳寅澤)를 꼽을 수 있다. 기획시대는 최근 2∼3년새 수출을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폴랜드와 합작으로 ‘이방인’을 제작,유럽시장을 노렸고 박중훈을 주연으로 한 코믹액션 ‘현상수배’는 호주 현지 배우들을 기용,올로케했다.‘현상수배’는 국내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50만달러에 수출,그 손해를 만회했다.이 영화사는 지금 프랑스와 합작으로 시대극 ‘이재수의 난’을 만드는데,합작이 유럽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는 예기치 않은 낭보가 전해졌다.영구아트필름(대표 沈炯來)이 칸영화제 마켓에 내놓은 SF ‘용가리’가 272만달러에 사전판매되는 성과를 거둔 것.이는 지난해 한국영화 충수출액을 뛰어넘은 액수다.‘용가리’의 쾌거는 국내에서 개발한 토종 SF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 할 만하다.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점도 장래를 밝게 한다.한국영화는 올해 각 국제영화제에서 한단계 높은 대우를 받았다.칸영화제에 ‘아름다운 시절’ 등 4편이 초청받은 것을 비롯해 베를린·몬트리올 등 큰 영화제에주요 초청국이 됐다. 영화가 어느날 갑자기 주력 수출품으로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한국영화를 외국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과정도 멀고 험할 것이다.하지만 한국영화는 문화수출의 대표 품목으로서 그 출발선에 섰다.나머지는 영화계 스스로의 노력,정부의 적절한 지원,영화팬들의 끊임없는 사랑이 얼마나 탄력을 붙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 ‘손에 손잡고’/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역대 올림픽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세계적 찬사를 받았던 서울올림픽이 9월17일로 꼭 10년이 됐다. ‘손에 손잡고’ 세계를 감격시켰던 서울올림픽 영광의 흔적은 지금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우리가 언제 올림픽을 치렀냐고 할 정도로 올림픽의 의미를 빨리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인의 뿌리깊은 건망증에서 오는 결과라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일이다.엄밀하게 보면 서울올림픽은 우리 국민의 저력과 자존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위상을 한층 드높인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특히 서울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얻은 성과는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선진국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지구의 변두리,극동의 한 구석,6·25 동란으로 폐허가 됐던 나라에서 강대국의 전유물이던 올림픽을 가장 멋지고 웅장하게 치러냄으로써 한국이 일약 세계중심권에 나서는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예술과 문화의 진수를 전 지구촌에 전파시킴으로써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생각만 해도 흥이 나고 기분좋은 서울올림픽 순간들이었는데 지금 그때의 자존과 영광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서울올림픽의 진정한 의미가 이렇듯 빨리 퇴조된 데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한 민족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볼 때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비리나 과오에는 과감한 척결이 필연적이지만 그시대가 창조한 업적은 길이 발전·승화시키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된다.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패전 40년만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멕시코가 올림픽은 실패했어도 잉카문명의 오묘한 진리를 세계인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간직시키고 있는 역사적 교훈을 음미해서 잃어가는 서울올림픽의 영광과 자존을 지속시켜 나가야 하겠다. 더욱이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전쟁의 폐허와 가난에서 일어나 우리 국민의 위대한 힘과 피땀어린 노력에서 얻어낸 쾌거인 만큼 올림픽의 영광을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으로 보전하는 일이 필요하다. 서울올림픽때 보여준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한번 모은다면 당면한 IMF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제2건국을 통한 21세기 선진한국의 도약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 원자력 문화재단 金莊坤 이사장/“울진3호기로 원전기술 독립”

    ◎‘한국형 모델’의 세계수준 입증/주민동의 없는 원전건설 없을것 “울진 3호기 원전 건설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20년사에 새 장을 여는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일 원자력발전소 울진 3호기 준공을 앞두고 원자력 홍보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 金莊坤 이사장은 10일 “울진 3호기는 지난 78년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이후 20년 만에 우리 손과 기술로 건설한 최초의 한국 표준형 모델”이라며 “이로써 우리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세계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울진 3호기 준공의 의미는.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한국 표준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우리의 기술수준이 세계적임을 입증한 것이다. 70년대 초 처음 원전을 들여올 때만 해도 100% 외국기술에 의존했지만,지금은 95%의 기술자립도를 이뤘다. ­원자력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보나. ▲서울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방사선 피폭량은 0.14밀리램 정도다. 그러나 영광 원전 주변은 3분의 1 수준인 0.05밀리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원자력의 혜택보다 ‘원자력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원전건설에 대한 지역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생각인가. ▲새 정부는 과거처럼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원전 건설은 결코 강행하지 않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원전의 안전성과 지역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주민들의 동의를 구할 것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의 향후 구상은. ▲원자력은 IMF시대에 가장 적합한 발전방식이다. 발전원가에서 차지하는 연료비의 비중이 화력발전은 68%에 이르지만 원전은 12.3%로 극히 낮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환경 보호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점을 적극 부각시켜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해 나가겠다.
  • 金 대통령 崔熙龍 선수에 축전

    金大中 대통령은 27일 영국 엘즈버리 시에서 개최중인 98 세계 휠체어 체육대회 역도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崔熙龍 선수(51·1급 상이군인)에게 축전을 보내 격려했다. 金대통령은 “역경을 딛고 영예의 금메달을 획득한 쾌거에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그간의 값진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고 말했다.
  • 방송/고성장 뒤안 정권통제 그늘(한국문화 50년:5)

    ◎라디오 한개채널서 TV만 40여개로 늘어/공영 단일체제서 90년대들어 민영화 맞아/IMF로 민방들 한파… 방송법 통과 과제로 건국후 첫 방송을 시작할때는 라디오채널 하나뿐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지상파 채널만 TV 5개,라디오 15개,케이블TV와 지역민방 등을 합치면 TV채널만도 40개 안팎이다.61년 TV개국과 80년 컬러TV 시작,95년 케이블TV와 지역민방 출범 및 위성TV 개시 등을 거치며 제작·송출기술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졌다.특히 88서울올림픽은 한국방송의 도약을 과시한 쾌거였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발걸음 뒤에는 정부의 끊임없는 견제가 따랐다.건국후 대한방송협회가 정부로 흡수되고,방송사업 국유화로 KBS의 국영방송 시대가 열렸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61년 MBC,64년 TBC를 비롯, 많은 민영방송을 허가함으로써,자유경쟁체제를 마련하는 듯했다.그러나 75년 월남 패망을 기점으로 방송통제가 시작됐다. 70년대는 일일극시대였다.TBC ‘아씨’,KBS ‘여로’,MBC ‘신부일기’등이 현실의 고난을 잊으려는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무기력함과 소비적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난으로 84년 일일극시대는 막을 내린다. 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정권은 TBC,DBS를 KBS에 통합시키고 MBC주식의 70%를 국가에 헌납하게 함으로써 방송구조는 공영체제로 일원화됐다.‘땡전뉴스’로 비하되던 왜곡보도의 시대가 열렸다.한편 컬러방송은 상업화를 가속화,호화 쇼등 오락프로가 판을 치고 ‘백분쇼’등 대형쇼가 등장했다. 굴욕의 역사를 넘어 90년대 방송계는 구조적 대변혁을 이루는 전환점을 마련했다.평화·불교·교통방송과 91년 SBS 개국으로 10년간의 공영 단일체제에서 다원체제로 바뀌었다.또 케이블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의 실용화와 지역민방 개국으로 다채널 다매체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성장의 뒤안으로 찾아온 ‘IMF 한파’는 지역민방과 케이블TV를 존망의 기로로 몰아가고 있다.이 모든 문제의 해결과 맞물린 새 방송법은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우리 방송의 현주소이다.
  • 영화/민주화 물결속 규제는 옛말(한국문화 50년:3)

    ◎61년 ‘마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쾌거/군사정권땐 엄격… 잇단 상영금지·구속/88년 미 직배영화 등장 우리영화 위기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 영화계는 민족해방의 흥분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광복영화’의 기세가 주춤해진 대신 민중의 정서를 리얼하게 그린 멜로드라마나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파시’(최인규 감독,49년작) ‘마음의 고향’(윤용구 감독,〃)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작들이다.한쪽에서는 분단의 고착화를 반영하듯 반공영화가 붐을 탔다. ‘6·25’가 끝난 뒤 한국영화는 중흥기에 들어선다.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57년에는 한국이 참가한 첫 국제영화제인 제3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시집가는 날’이 희극상을 받아 성가를 높였다.61년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탄 것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 꼽힌다. 그러나 5·16 이후 군사정권은 영화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61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전국적으로 상영 도중 상영금지라는 극형을 당했다.이를 신호로 한듯 62년 1월에는 영화법을 제정,영화사 설립을 등록제로 바꾸었다.64년에는 김대중 등 국회의원 13명이 영화법 폐기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시나리오 사전심의’등 규제책이 계속돼 65년 4월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화산업은 꾸준히 발전,69년에는 연간 관람객 수가 1억7,300만명에 달했다.그러나 이를 고비로 줄어들어 79년부터 연간 관객 수는 4,000만∼5,000만명대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영화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어졌다.경찰 비리를 다룬 코미디 ‘투캅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끈 데서 보듯 소재 제한도 사라졌다.그러나 지난 88년 할리우드 직배영화가 등장한 뒤 영화계의 고민은 ‘어떻게 관객의 발길을 한국영화 쪽으로 돌리는가’에 모아져 있다.지난달 있었던 ‘스크린쿼터제 폐지’논쟁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제주(지방정부 싱크탱크:13)

    ◎정통공무원­외부연구원 환상콤비/21세기 제주 도약의 첨병/정통 공무원­梁鍾守 부지사 진두지휘.제주발전 청사진 제시.개발특별법 개정 담당/연구원 그룹­30∼40대 엘리트 중심.지역개발 전략 등 수립.외국투자 유치도 앞장 禹瑾敏 제주도정의 싱크탱크는 크게 청 안팎의 그룹으로 나뉜다. 청내 그룹의 경우 지사가 바뀌고 정책기조가 변하면서 다소 어색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보다 체계적이고 투명한 조직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공직 34년째인 정통 내무관료 출신의 梁鍾守 행정부지사(59)를 머리로 金漢昱 기획관리실장(50)­金榮俊 기획관(51)­金暢禧 법무담당관(48)­吳聖休 기획1계장(50)으로 이어지는 기획통들이 禹지사에게 도정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근래 이뤄지고 있는 도의 구조조정 및 정원감축 밑그림과 제주도개발특별법 개정작업도 이 그룹이 맡아 추진하고 있다. 청외그룹은 다양하다. 지난해 5월 개원한 제주발전연구원,6·4 지방선거에서 禹지사의 정책개발 과제를 담당했던 제주대 교수팀,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는 나팔수격의 金榮澤 관광개발정책고문 등이 주축을 이룬다. 禹지사와 학연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기보다는 지인관계로 얽힌 인맥들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은 21세기 지식산업 사회에 대비,지역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가공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일종의 지식공장이다. 고려대 출신의 농업경제 전공 高成寶 책임연구원(36·박사)을 중심으로 수질환경 전공의 金泰閏 연구원(부경대·33·박사과정 수료),도시행정을 전공한 梁德淳 연구원(경희대·37·박사과정 수료) 그리고 최근 공채로 새식구가 될 교통공학 전공의 黃京洙 연구원(서울시립대·33·박사),관광개발 전공의 金義根 연구원(경기대·30·박사) 등 30대 소장 엘리트군으로 꼽히는 5명의 연구원이 21세기 제주 도약을 위한 각종 지역개발 전략을 발굴,수립하고 있다. 개원 이래 △감귤 수급 안정정책의 효과분석 △21세기 제주형 환경도시 조성을 위한 연구 등 25개 연구·사업을 실시했고 올해도 △21세기 읍·면별 발전전략 △지역개발 사업의 추진실태와 효과분석 등 12개 연구·사업을 추진중이다. 제주대 高富彦(숭실대·49·경영학)·張聖洙(경기대·45·관광개발)·玄榮珍(연세대·47·화학공학)·梁永五(부산대·45·수학) 교수 등 4명의 박사가 팀을 이룬 이른바 제주대 교수팀은 禹지사의 123개 공약에 대한 사업별 실천가능 여부와 필요 예산액,완급여부 등을 파악,그 결과를 도로 이관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경영인리더십(HLC) 회장으로 있는 金榮澤 고문(48·고려대 교육학)은 지난달 30일 미국 펄토넥스사의 짐 앤더슨사장 등 미국·영국·스위스·일본·홍콩·중국 등 6개국 13개 업체 대표 27명을 제주로 불러 투자설명회를 가진 후 3개 업체로부터 6억5,000만달러의 투자약속을 받아냈고 7개 업체로부터는 투자 의향서를 받는 쾌거를 올렸다.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출신인 金고문이 禹지사와 본격적인 친교를 맺은 것은 선거 전후 외자유치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면서다.
  • 삼성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위기는 기회” 삼성의 도전의식 뜨겁다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대그룹들마저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되는가 하면 미니그룹으로 속속 변신해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흥망의 부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재조명해보는 건국 50주년 특집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초일류 만이 생존” 質경영 뿌리내려/“起亞 꼭 인수” 자동차산업 육성 집념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원하다’ 믿든 믿지 않든 재계가 철칙삼아 간직해 온 명제다. 그러나 IMF사태로 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도 사라졌다. 재계 1위 삼성. 삼성도 문민정부까지만 해도 잘나갔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와 척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삼성이라고 IMF한파가 비켜갈 리 없다.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작은 청와대로 불렸던 비서실이 구조조정 본부로 40년만에 간판을 바꿔달았고 문민정부때 특혜시비를 일으켜가며 진출했던 자동차도 IMF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옛 사가(社歌)가 유행이다. “고난과 시련속에 일어선 우리…” 삼성맨들은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과 제품들 가운데 진정 세계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李 회장이 삼성맨들에게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질(質)경영을 통한 초일류는 李 회장이 93년 신(新)경영을 출범시키며 삼성맨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초일류는 삼성경영의 알파요 오메가. 모든 것이 ‘초일류’에서 시작돼 ‘초일류’로 끝난다. 李 회장은 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나부터 변해야 산다”고 역설했다. 제2창업의 2기 경영을 구획정리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 고객의 요구에 혁신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요구에 정직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다. 앞으론 초일류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95년 4월엔 북경발언으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은 2류,행정은 3류,정치는 4류…” 이 발언으로 李 회장이 마음고생을 했지만 李 회장은 이 말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자동차. 삼성자동차 역시 IMF한파로 고전하고 있어 기아차 인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도’아니면 ‘모’의 심정이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기계 전자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립산업이어서 산업간 파급효과가 크다. 자동차 사업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여론의 반대,막대한 투자 등…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한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국가 장래를 위해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유착이니,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경영진과 기술진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李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본관에는 “우리가 왜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집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기아인수로 위기극복의 계기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 ◎어떻게 일궈 왔나/밑돈 3만원 삼성상회가 종업원 17만명으로 성장 삼성의 모태(母胎)는 1938년 3월1일에 설립된 삼성상회(三星商會)다. 고(故) 李秉喆 선대회장이 마산에서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쌓은 사업수완을 밑천으로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 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싹이다. 청과류와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에 팔고 국수제조업(별표국수)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李 회장은 48년 11월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상호도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2년만에 면사수입 등으로 당시 서울의 유명 100사 중 9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을 맞았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전쟁의 와중에서도 생필품을 들여다 팔았다. 53년엔 제당(製糖)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년만에 설비를늘려야 했다. 54년엔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양복지다운 양복지가 없어 ‘마카오 신사’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영국제 양복 한벌 값이 봉급생활자 석달치 월급(6만환)이던 데 비해 제일모직은 1만2,000환에 팔았다. 삼성은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사를 주축으로 급속성장을 계속했다. 李秉喆 회장은 64년 ‘야심작’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33만). 그러나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다 67년 10월에 국가에 헌납된다. 사카린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삼성은 당시 한비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나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룹이 존폐위기로 몰려 헌납해야 했다(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한다). 8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투자를 서둘렀다. 반도체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83년에 발표된 64KD램의 개발성공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선진대열에 들어었음을 알린 쾌거였다. 李秉喆 회장은 한국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87년 11월 19일 타계했다. 88년 李健熙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칩을 개발한 데 이어 96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순풍에 돛을 단 삼성전자는 95년 2조5,054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은 지금 매출·자산 80조에 61개 계열사,16만7,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재계 1위그룹으로 서 있다. ◎인재 제일주의/학력 철폐… 능력주의 지향/첨단시대 개성·창조 강조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등 위성그룹들을 독립시키고도 부동(不動)의 1위를 지키는 삼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창업자인 ‘거상 李秉喆’의 족적이 워낙 크다 하겠다. 비서실을 통한 특유의 공세적 경영이나 ‘품질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질(質)경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다. 일찍이 최고 경영자가 인재중용에 눈을 떠 삼성은 57년 국내 그룹으로는 처음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宋世昌 전 삼성항공 사장 등 27명이 그들이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1년간 부서배치를 받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일부터 배웠다. 호텔같으면 주차관리,에버랜드라면 공원 대청소가 신입사원 몫이었다. 李健熙 회장 체제에서는 학력까지 철폐하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고집했다. 치밀하고 밀도높은 교육때문에 ‘인재조련’에 비유됐다. “개성시대,창조시대에는 끼있고 개성이 강한 사람의 신바람과 기를 살려야 한다” 삼성이 겨냥하는 인재는 컴퓨터업계의 빌 게이츠나 영화계의 스필버그,패션계의 베르사체와 같은 이른바 골드컬러(Gold Color). 첨단·정보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화이트(White)컬러도,블루(Blue)컬러도 아닌 골드컬러에 달렸다는 게 李 회장의 지론이다. 신(新)인재 상은 박세리에게서 입증됐다. 골프에 대한 李 회장의 각별한 애정 탓도 있지만 삼성은 박세리라는 싹을 찾아내 ‘초일류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초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계열사 및 생산제품 ▷전자소그룹◁ ▲삼성전자­반도체, 가전제품, 기타전자제품 ▲삼성전관­LCD, 디스플레이 ▲삼성전기­전자품목 ▲삼성코닝­TV 및 모니터 브라운관용 유리, LCD유리 ▲삼성SDS­시스템통합, 정보통신 ▲한국휴렛팩커드­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삼성 GE의료기기­MRI, CT, 기타 의료기기 ▷기계소그룹◁ ▲삼성중공업­기계, 조선플랜트, 중장비, 건설 ▲삼성항공­항공기, 카메라 ▲삼성시계­시계 ▷화학소그룹◁ ▲삼성종합화학­에틸렌, 플로틸렌, 부타디엔, 복합수지 ▲삼성정밀화학­메틸아민, DMF, 말로네이트, 화공기기, 환경설비 ▲삼성BP화학­초산, 비닐초산 ▲삼성석유화학­PTA ▷금융소그룹◁ ▲삼성생명­그린행복연금보험, 홈닥터플러스보험, 슈퍼무지개보험, 허니문설계보험 ▲삼성화재­화재보험,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상해보험, 연금보험, 해외여행자보험 ▲삼성카드­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카드론(대출), 할부금융, 통신판매, 보험 ▲삼성증권­주식/채권 매매, 증권저축, BMF, RP, CD, 수익증권 ▷자동차소그룹◁ ▲삼성자동차­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삼성상용차­상용차 ▷독립회사군◁ ▲삼성물산­무역, 건설, 자동차 판매, 유통, 의류 생산/판매 ▲제일모직­소모사, 방모사, 울, 소보복지, 방모복지, 카펫, 여성/남성의류 ▲삼성에버랜드­리조트개발/운영, 골프장, 운영사업, 빌딩관리, 컨설팅/에너지사업, 식음사업 ▲삼성엔지니어링­석유화학 플랜트, 정유/가스플랜트, 산업공장/환경오염 등의 엔지니어링 ▲신라호텔­서비스, 컨설팅, 레포츠 사업 ▲중앙일보­일간지, 출판 ▲제일기획­광고기획, 제작, 조사, 마케팅, SP, PR, 디스플레이 이벤트, CI ▲에스원­로컬 경비시스템 및 전자 경비 시스템, 감시 시스템 ▲삼성영상사업단­영상, 영화 ▲삼성의료원­서울병원, 강북병원, 마산병원, 생명과학연구소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관, 삼성어린이 박물관 ▲삼성복지재단­효행상, 어린이집 건립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삼성경제연구소­연구, 교육 ▲삼성종합기술원­정보처리, 첨단기술개발 ▲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기타 유관 기관◁ ▲인력개발원­연수, 교육 ▲삼성경영기술대학­기술교육 ▲삼성패션연구소­패션 디자인 여구 ▲IDS­디자인 교육, 연구 ▲호암재단­호암상, 청년논문상
  • 격세지감 한·일 바둑/任泰淳 체육팀 기자(오늘의 눈)

    일본 바둑계가 15일 흥분했다.趙治勳 9단이 도전자 王立誠 9단을 누르고 본인방을 10연패,다카가와 슈카쿠(高川秀格) 9단이 갖고 있던 타이틀 최다방어기록 9연패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기전 67년 만에 나온 값진 기록이니 만큼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다.기전을 주최한 마이니치 신문은 물론 아사히,요미우리,NHK 등 주요 언론사들은 1면 사회면에 ‘전인미답의 경지’,‘새로운 역사 창조’라며 趙9단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趙9단의 이런 쾌거를 다룬 국내 언론 보도는 일본과 사뭇 달랐다.사회면 등에 비중있게 다루었지만 趙9단이 처음 타이틀을 획득한 70년대 후반이나 일본 3대 기전인 기성,명인,본인방을 획득해 대삼관을 이룬 80년대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한국인에게 극찬으로 일관했던 우리 언론의 생리로는 다소 의외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우선 20여년 넘게 정상을 군림해와 타이틀 방어가 당연하지 않냐는 인식이 작용했을수 있다. 기록으로서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처지는 것도 빛을 바래게 한다.국내에서 타이틀 최다 방어기록은 曺薰鉉 9단이 서울신문사 주최 패왕전에서 수립한 16연패다.趙9단보다 6회 앞서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이라는 자부심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듯 하다.70년대는 물론 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기사들만 만나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90년 曺薰鉉 9단이 4년에 한번 열려 바둑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창기배를 거머쥐고 李昌鎬 9단,劉昌赫 9단,徐奉洙 9단 등 국내 기사들이 후지쓰배,동양증권배 등 세계 기전을 잇따라 석권하자 세계 바둑의 무게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했다.중국은 물론 바둑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일본도 한국 바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바둑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면 중국과 일본 기사들이 한국 바둑을 다시 추월할 지 모른다.그 만큼 실력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한국기사들이 부단히 정진,趙治勳 9단이 한국으로 ‘역유학(逆留學)’을 오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월드컵 폐막/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금세기 마지막 인류의 제전(祭典)인 ’98 프랑스 월드컵 축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지난 달 11일 개막,열전 33일 동안 20억 지구촌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64경기를 치르면서 수많은 새로운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역시 개최국 프랑스의 우승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 이번 프랑스의 첫 우승은 지난 30년 우루과이 원년대회 출전이래 실로 68년만에 거머쥔 쾌거다. 그것도 많은 전문가들이 우승후보로 지목했던 남미 강호 브라질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얻은 승리여서 더욱 값지다. 결승전 시상식에서 그 큰 웃음을 보이며 자국 대표팀 주장 디디에 데샹에게 꿈에 그리던 국제축구연맹(FIFA)컵을 수여하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열광하는 선수 및 그라운드 안팎의 프랑스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승자의 환희를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며 통산 5회 우승과 대회 2연승을 노리던 브라질을 꺾은 프랑스팀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인자다. 미드 필드 강화와 철벽수비를 통한 조직력을 가지고도 호나우도를 비롯한 화려한 스타군단의 브라질을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경기내용이 무엇보다 극찬을 받아야 한다. 여기엔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대회 유럽지역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대표팀을 맡아 끊임없이 조직력 강화와 선수간의 인화를 강조해 온 에메 자케 감독이 있었다. 그는 티에리 앙리,릴리앙 튀랑,지네딘 지단 등 승리의 주역들을 게임마다 적절히 기용,제 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한 지장(智將)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프랑스팀의 최대 자랑은 역시 ‘인종의 용광로’라 불릴만큼 인종간의 벽을 허물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 점이라 할 수 있다. 주전 가운데 3명만 본토 출신이며 대부분 카리브해 연안이나 아프리카 등 옛 식민지에서 귀화한 선수들이지만 훌륭히 뭉쳐 제 역할을 다 했다. 프랑스사회가 완전히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한 건 아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통합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가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 지를 시사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정신으로 하나가 돼 20세기 마지막 대회를 유사이래 가장 모범적인 제전으로 승화시켰다. 이제우리 차례다. 세계의 시선은 21세기 첫 대회를 공동개최하는 한국과 일본에 쏠려있다. 2002년엔 300만명 이상의 축구팬들과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4년은 짧다. 정신차려 준비하지 않으면 ‘나라망신’차원을 넘어 또 다른 위기가 올지 모른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제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모교 공주 금성여고 ‘세리기념관 짓겠다’/대전 고향­시민 표정

    ◎“한국인의 끈기 보여준 쾌거”/洪善基 대전시장 ‘세리배 대회 창설’ ○…박세리가 7일 새벽 연장전 마지막 18번째 홀까지 상대 선수인 추아시리폰과 동타를 기록한 뒤 매 홀마다 승부를 가리는 서든 데스 두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우승을 확정짓자 대전시 서구 월평동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언니 유리씨(27)와 동생 애리양(18)등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 ○…이날 새벽 4시쯤 학교에 나와 학생들과 함께 박세리를 응원하던 충남 공주 금성여고의 梁鳳子 교장은 “세계적 영웅의 족적(박세리 관련 스크랩)이 학교 2층 계단 조그만 게시판에 걸려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면서 “세리가 금성여고와 공주,나아가 국가의 자랑인 만큼 어려운 사립학교 재정이지만 ‘세리기념관’을 세우겠다”고 약속. ○…洪善基 대전시장은 박세리의 집을 방문,“대전시민의 긍지를 전 세계에 떨친 쾌거를 축하하기 위해 박세리배 전국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 이어 오는 9월 박세리가 귀국하면 박선수를 대전을 빛낸 인물로,박선수의 아버지를 자랑스런 아버지로 각각 선정·표창할 계획이라고 발표.
  • 슈퍼스타 박세리(사설)

    이토록 감동적인 드라마를 또 다시 볼 수 있을까.박세리 선수의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은 스포츠에서의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한국인의 혼(魂)이 담긴 장엄한 드라마였다.박선수를 통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그리고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박선수는 거듭된 위기속에서도 흔들림없는 자신감과 의지력으로 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스물한살의 어린 나이로 그토록 눈부신 일을 해낸 박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세계 무대 데뷔 첫해 LPGA챔피언쉽에 이어 메이저 대회 2연승의 위업을 수립한 박선수의 쾌거는 우리 국민의 시름을 단숨에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사에도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번대회에서 그는 최연소 우승,동양 출신 첫 우승,7년만의 메이저 대회 2연승등 갖가지 기록을 세움으로써 ‘골프 신데렐라’에서 ‘세계적인 골프 슈퍼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외신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라고 격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의 골프 실력때문만이아니다.연장,재연장의 접전 끝에 극적인 우승을 거둔 그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투지에 우리는 더욱 감탄한다.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연못 턱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간 그의 하얀 발과 검은 종아리의 대조는 그 정신력이 치열한 자기 단련의 결과임을 웅변으로 보여 주었다. 박세리 선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우리가 벗어 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박선수 자신이 상금을 포함해 광고등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슈퍼스타로 떠 오른 것은 물론 박선수의 가능성에 일찍이 투자한 기업 삼성은 수천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그뿐인가.우리나라의 국제 신인도를 올리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경제학자 기 소르망은 “세계에 내세울만한 한국적 이미지의 상품이 없다는데 한국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뉴욕타임스가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으로 꼽은 박선수는 한국이미지 제고에 성공한 벤처기업인 셈이다. 이같은 성공이 정신과 기술의 결합이란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투지만으로는 부족함을 월드컵은 일깨워주었다.박선수는 세계적인 골프지도자 데이비드 리드베터에게 기량을 계속 갈고 닦음으로써 오늘의 영광을 거머쥔 것이다. 우리 모두 박선수를 본받아 추락한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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