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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자력 문화재단 金莊坤 이사장/“울진3호기로 원전기술 독립”

    ◎‘한국형 모델’의 세계수준 입증/주민동의 없는 원전건설 없을것 “울진 3호기 원전 건설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20년사에 새 장을 여는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일 원자력발전소 울진 3호기 준공을 앞두고 원자력 홍보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 金莊坤 이사장은 10일 “울진 3호기는 지난 78년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이후 20년 만에 우리 손과 기술로 건설한 최초의 한국 표준형 모델”이라며 “이로써 우리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세계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울진 3호기 준공의 의미는.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한국 표준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우리의 기술수준이 세계적임을 입증한 것이다. 70년대 초 처음 원전을 들여올 때만 해도 100% 외국기술에 의존했지만,지금은 95%의 기술자립도를 이뤘다. ­원자력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보나. ▲서울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방사선 피폭량은 0.14밀리램 정도다. 그러나 영광 원전 주변은 3분의 1 수준인 0.05밀리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원자력의 혜택보다 ‘원자력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원전건설에 대한 지역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생각인가. ▲새 정부는 과거처럼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원전 건설은 결코 강행하지 않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원전의 안전성과 지역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주민들의 동의를 구할 것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의 향후 구상은. ▲원자력은 IMF시대에 가장 적합한 발전방식이다. 발전원가에서 차지하는 연료비의 비중이 화력발전은 68%에 이르지만 원전은 12.3%로 극히 낮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지구환경 보호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점을 적극 부각시켜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해 나가겠다.
  • 金 대통령 崔熙龍 선수에 축전

    金大中 대통령은 27일 영국 엘즈버리 시에서 개최중인 98 세계 휠체어 체육대회 역도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崔熙龍 선수(51·1급 상이군인)에게 축전을 보내 격려했다. 金대통령은 “역경을 딛고 영예의 금메달을 획득한 쾌거에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그간의 값진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고 말했다.
  • 방송/고성장 뒤안 정권통제 그늘(한국문화 50년:5)

    ◎라디오 한개채널서 TV만 40여개로 늘어/공영 단일체제서 90년대들어 민영화 맞아/IMF로 민방들 한파… 방송법 통과 과제로 건국후 첫 방송을 시작할때는 라디오채널 하나뿐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지상파 채널만 TV 5개,라디오 15개,케이블TV와 지역민방 등을 합치면 TV채널만도 40개 안팎이다.61년 TV개국과 80년 컬러TV 시작,95년 케이블TV와 지역민방 출범 및 위성TV 개시 등을 거치며 제작·송출기술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졌다.특히 88서울올림픽은 한국방송의 도약을 과시한 쾌거였다. 그러나 이같은 화려한 발걸음 뒤에는 정부의 끊임없는 견제가 따랐다.건국후 대한방송협회가 정부로 흡수되고,방송사업 국유화로 KBS의 국영방송 시대가 열렸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61년 MBC,64년 TBC를 비롯, 많은 민영방송을 허가함으로써,자유경쟁체제를 마련하는 듯했다.그러나 75년 월남 패망을 기점으로 방송통제가 시작됐다. 70년대는 일일극시대였다.TBC ‘아씨’,KBS ‘여로’,MBC ‘신부일기’등이 현실의 고난을 잊으려는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무기력함과 소비적이라는 여론의 거센 비난으로 84년 일일극시대는 막을 내린다. 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정권은 TBC,DBS를 KBS에 통합시키고 MBC주식의 70%를 국가에 헌납하게 함으로써 방송구조는 공영체제로 일원화됐다.‘땡전뉴스’로 비하되던 왜곡보도의 시대가 열렸다.한편 컬러방송은 상업화를 가속화,호화 쇼등 오락프로가 판을 치고 ‘백분쇼’등 대형쇼가 등장했다. 굴욕의 역사를 넘어 90년대 방송계는 구조적 대변혁을 이루는 전환점을 마련했다.평화·불교·교통방송과 91년 SBS 개국으로 10년간의 공영 단일체제에서 다원체제로 바뀌었다.또 케이블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의 실용화와 지역민방 개국으로 다채널 다매체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성장의 뒤안으로 찾아온 ‘IMF 한파’는 지역민방과 케이블TV를 존망의 기로로 몰아가고 있다.이 모든 문제의 해결과 맞물린 새 방송법은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우리 방송의 현주소이다.
  • 영화/민주화 물결속 규제는 옛말(한국문화 50년:3)

    ◎61년 ‘마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쾌거/군사정권땐 엄격… 잇단 상영금지·구속/88년 미 직배영화 등장 우리영화 위기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 영화계는 민족해방의 흥분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던 ‘광복영화’의 기세가 주춤해진 대신 민중의 정서를 리얼하게 그린 멜로드라마나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파시’(최인규 감독,49년작) ‘마음의 고향’(윤용구 감독,〃)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작들이다.한쪽에서는 분단의 고착화를 반영하듯 반공영화가 붐을 탔다. ‘6·25’가 끝난 뒤 한국영화는 중흥기에 들어선다.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57년에는 한국이 참가한 첫 국제영화제인 제3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시집가는 날’이 희극상을 받아 성가를 높였다.61년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탄 것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 꼽힌다. 그러나 5·16 이후 군사정권은 영화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61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전국적으로 상영 도중 상영금지라는 극형을 당했다.이를 신호로 한듯 62년 1월에는 영화법을 제정,영화사 설립을 등록제로 바꾸었다.64년에는 김대중 등 국회의원 13명이 영화법 폐기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시나리오 사전심의’등 규제책이 계속돼 65년 4월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화산업은 꾸준히 발전,69년에는 연간 관람객 수가 1억7,300만명에 달했다.그러나 이를 고비로 줄어들어 79년부터 연간 관객 수는 4,000만∼5,000만명대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영화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어졌다.경찰 비리를 다룬 코미디 ‘투캅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끈 데서 보듯 소재 제한도 사라졌다.그러나 지난 88년 할리우드 직배영화가 등장한 뒤 영화계의 고민은 ‘어떻게 관객의 발길을 한국영화 쪽으로 돌리는가’에 모아져 있다.지난달 있었던 ‘스크린쿼터제 폐지’논쟁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제주(지방정부 싱크탱크:13)

    ◎정통공무원­외부연구원 환상콤비/21세기 제주 도약의 첨병/정통 공무원­梁鍾守 부지사 진두지휘.제주발전 청사진 제시.개발특별법 개정 담당/연구원 그룹­30∼40대 엘리트 중심.지역개발 전략 등 수립.외국투자 유치도 앞장 禹瑾敏 제주도정의 싱크탱크는 크게 청 안팎의 그룹으로 나뉜다. 청내 그룹의 경우 지사가 바뀌고 정책기조가 변하면서 다소 어색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보다 체계적이고 투명한 조직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공직 34년째인 정통 내무관료 출신의 梁鍾守 행정부지사(59)를 머리로 金漢昱 기획관리실장(50)­金榮俊 기획관(51)­金暢禧 법무담당관(48)­吳聖休 기획1계장(50)으로 이어지는 기획통들이 禹지사에게 도정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근래 이뤄지고 있는 도의 구조조정 및 정원감축 밑그림과 제주도개발특별법 개정작업도 이 그룹이 맡아 추진하고 있다. 청외그룹은 다양하다. 지난해 5월 개원한 제주발전연구원,6·4 지방선거에서 禹지사의 정책개발 과제를 담당했던 제주대 교수팀,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는 나팔수격의 金榮澤 관광개발정책고문 등이 주축을 이룬다. 禹지사와 학연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기보다는 지인관계로 얽힌 인맥들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은 21세기 지식산업 사회에 대비,지역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가공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일종의 지식공장이다. 고려대 출신의 농업경제 전공 高成寶 책임연구원(36·박사)을 중심으로 수질환경 전공의 金泰閏 연구원(부경대·33·박사과정 수료),도시행정을 전공한 梁德淳 연구원(경희대·37·박사과정 수료) 그리고 최근 공채로 새식구가 될 교통공학 전공의 黃京洙 연구원(서울시립대·33·박사),관광개발 전공의 金義根 연구원(경기대·30·박사) 등 30대 소장 엘리트군으로 꼽히는 5명의 연구원이 21세기 제주 도약을 위한 각종 지역개발 전략을 발굴,수립하고 있다. 개원 이래 △감귤 수급 안정정책의 효과분석 △21세기 제주형 환경도시 조성을 위한 연구 등 25개 연구·사업을 실시했고 올해도 △21세기 읍·면별 발전전략 △지역개발 사업의 추진실태와 효과분석 등 12개 연구·사업을 추진중이다. 제주대 高富彦(숭실대·49·경영학)·張聖洙(경기대·45·관광개발)·玄榮珍(연세대·47·화학공학)·梁永五(부산대·45·수학) 교수 등 4명의 박사가 팀을 이룬 이른바 제주대 교수팀은 禹지사의 123개 공약에 대한 사업별 실천가능 여부와 필요 예산액,완급여부 등을 파악,그 결과를 도로 이관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경영인리더십(HLC) 회장으로 있는 金榮澤 고문(48·고려대 교육학)은 지난달 30일 미국 펄토넥스사의 짐 앤더슨사장 등 미국·영국·스위스·일본·홍콩·중국 등 6개국 13개 업체 대표 27명을 제주로 불러 투자설명회를 가진 후 3개 업체로부터 6억5,000만달러의 투자약속을 받아냈고 7개 업체로부터는 투자 의향서를 받는 쾌거를 올렸다.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출신인 金고문이 禹지사와 본격적인 친교를 맺은 것은 선거 전후 외자유치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면서다.
  • 삼성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위기는 기회” 삼성의 도전의식 뜨겁다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대그룹들마저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되는가 하면 미니그룹으로 속속 변신해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흥망의 부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재조명해보는 건국 50주년 특집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초일류 만이 생존” 質경영 뿌리내려/“起亞 꼭 인수” 자동차산업 육성 집념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원하다’ 믿든 믿지 않든 재계가 철칙삼아 간직해 온 명제다. 그러나 IMF사태로 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도 사라졌다. 재계 1위 삼성. 삼성도 문민정부까지만 해도 잘나갔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와 척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삼성이라고 IMF한파가 비켜갈 리 없다.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작은 청와대로 불렸던 비서실이 구조조정 본부로 40년만에 간판을 바꿔달았고 문민정부때 특혜시비를 일으켜가며 진출했던 자동차도 IMF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옛 사가(社歌)가 유행이다. “고난과 시련속에 일어선 우리…” 삼성맨들은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과 제품들 가운데 진정 세계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李 회장이 삼성맨들에게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질(質)경영을 통한 초일류는 李 회장이 93년 신(新)경영을 출범시키며 삼성맨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초일류는 삼성경영의 알파요 오메가. 모든 것이 ‘초일류’에서 시작돼 ‘초일류’로 끝난다. 李 회장은 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나부터 변해야 산다”고 역설했다. 제2창업의 2기 경영을 구획정리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 고객의 요구에 혁신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요구에 정직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다. 앞으론 초일류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95년 4월엔 북경발언으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은 2류,행정은 3류,정치는 4류…” 이 발언으로 李 회장이 마음고생을 했지만 李 회장은 이 말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자동차. 삼성자동차 역시 IMF한파로 고전하고 있어 기아차 인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도’아니면 ‘모’의 심정이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기계 전자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립산업이어서 산업간 파급효과가 크다. 자동차 사업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여론의 반대,막대한 투자 등…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한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국가 장래를 위해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유착이니,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경영진과 기술진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李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본관에는 “우리가 왜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집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기아인수로 위기극복의 계기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 ◎어떻게 일궈 왔나/밑돈 3만원 삼성상회가 종업원 17만명으로 성장 삼성의 모태(母胎)는 1938년 3월1일에 설립된 삼성상회(三星商會)다. 고(故) 李秉喆 선대회장이 마산에서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쌓은 사업수완을 밑천으로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 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싹이다. 청과류와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에 팔고 국수제조업(별표국수)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李 회장은 48년 11월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상호도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2년만에 면사수입 등으로 당시 서울의 유명 100사 중 9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을 맞았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전쟁의 와중에서도 생필품을 들여다 팔았다. 53년엔 제당(製糖)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년만에 설비를늘려야 했다. 54년엔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양복지다운 양복지가 없어 ‘마카오 신사’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영국제 양복 한벌 값이 봉급생활자 석달치 월급(6만환)이던 데 비해 제일모직은 1만2,000환에 팔았다. 삼성은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사를 주축으로 급속성장을 계속했다. 李秉喆 회장은 64년 ‘야심작’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33만). 그러나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다 67년 10월에 국가에 헌납된다. 사카린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삼성은 당시 한비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나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룹이 존폐위기로 몰려 헌납해야 했다(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한다). 8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투자를 서둘렀다. 반도체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83년에 발표된 64KD램의 개발성공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선진대열에 들어었음을 알린 쾌거였다. 李秉喆 회장은 한국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87년 11월 19일 타계했다. 88년 李健熙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칩을 개발한 데 이어 96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순풍에 돛을 단 삼성전자는 95년 2조5,054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은 지금 매출·자산 80조에 61개 계열사,16만7,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재계 1위그룹으로 서 있다. ◎인재 제일주의/학력 철폐… 능력주의 지향/첨단시대 개성·창조 강조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등 위성그룹들을 독립시키고도 부동(不動)의 1위를 지키는 삼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창업자인 ‘거상 李秉喆’의 족적이 워낙 크다 하겠다. 비서실을 통한 특유의 공세적 경영이나 ‘품질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질(質)경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다. 일찍이 최고 경영자가 인재중용에 눈을 떠 삼성은 57년 국내 그룹으로는 처음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宋世昌 전 삼성항공 사장 등 27명이 그들이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1년간 부서배치를 받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일부터 배웠다. 호텔같으면 주차관리,에버랜드라면 공원 대청소가 신입사원 몫이었다. 李健熙 회장 체제에서는 학력까지 철폐하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고집했다. 치밀하고 밀도높은 교육때문에 ‘인재조련’에 비유됐다. “개성시대,창조시대에는 끼있고 개성이 강한 사람의 신바람과 기를 살려야 한다” 삼성이 겨냥하는 인재는 컴퓨터업계의 빌 게이츠나 영화계의 스필버그,패션계의 베르사체와 같은 이른바 골드컬러(Gold Color). 첨단·정보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화이트(White)컬러도,블루(Blue)컬러도 아닌 골드컬러에 달렸다는 게 李 회장의 지론이다. 신(新)인재 상은 박세리에게서 입증됐다. 골프에 대한 李 회장의 각별한 애정 탓도 있지만 삼성은 박세리라는 싹을 찾아내 ‘초일류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초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계열사 및 생산제품 ▷전자소그룹◁ ▲삼성전자­반도체, 가전제품, 기타전자제품 ▲삼성전관­LCD, 디스플레이 ▲삼성전기­전자품목 ▲삼성코닝­TV 및 모니터 브라운관용 유리, LCD유리 ▲삼성SDS­시스템통합, 정보통신 ▲한국휴렛팩커드­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삼성 GE의료기기­MRI, CT, 기타 의료기기 ▷기계소그룹◁ ▲삼성중공업­기계, 조선플랜트, 중장비, 건설 ▲삼성항공­항공기, 카메라 ▲삼성시계­시계 ▷화학소그룹◁ ▲삼성종합화학­에틸렌, 플로틸렌, 부타디엔, 복합수지 ▲삼성정밀화학­메틸아민, DMF, 말로네이트, 화공기기, 환경설비 ▲삼성BP화학­초산, 비닐초산 ▲삼성석유화학­PTA ▷금융소그룹◁ ▲삼성생명­그린행복연금보험, 홈닥터플러스보험, 슈퍼무지개보험, 허니문설계보험 ▲삼성화재­화재보험,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상해보험, 연금보험, 해외여행자보험 ▲삼성카드­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카드론(대출), 할부금융, 통신판매, 보험 ▲삼성증권­주식/채권 매매, 증권저축, BMF, RP, CD, 수익증권 ▷자동차소그룹◁ ▲삼성자동차­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삼성상용차­상용차 ▷독립회사군◁ ▲삼성물산­무역, 건설, 자동차 판매, 유통, 의류 생산/판매 ▲제일모직­소모사, 방모사, 울, 소보복지, 방모복지, 카펫, 여성/남성의류 ▲삼성에버랜드­리조트개발/운영, 골프장, 운영사업, 빌딩관리, 컨설팅/에너지사업, 식음사업 ▲삼성엔지니어링­석유화학 플랜트, 정유/가스플랜트, 산업공장/환경오염 등의 엔지니어링 ▲신라호텔­서비스, 컨설팅, 레포츠 사업 ▲중앙일보­일간지, 출판 ▲제일기획­광고기획, 제작, 조사, 마케팅, SP, PR, 디스플레이 이벤트, CI ▲에스원­로컬 경비시스템 및 전자 경비 시스템, 감시 시스템 ▲삼성영상사업단­영상, 영화 ▲삼성의료원­서울병원, 강북병원, 마산병원, 생명과학연구소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관, 삼성어린이 박물관 ▲삼성복지재단­효행상, 어린이집 건립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삼성경제연구소­연구, 교육 ▲삼성종합기술원­정보처리, 첨단기술개발 ▲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기타 유관 기관◁ ▲인력개발원­연수, 교육 ▲삼성경영기술대학­기술교육 ▲삼성패션연구소­패션 디자인 여구 ▲IDS­디자인 교육, 연구 ▲호암재단­호암상, 청년논문상
  • 격세지감 한·일 바둑/任泰淳 체육팀 기자(오늘의 눈)

    일본 바둑계가 15일 흥분했다.趙治勳 9단이 도전자 王立誠 9단을 누르고 본인방을 10연패,다카가와 슈카쿠(高川秀格) 9단이 갖고 있던 타이틀 최다방어기록 9연패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기전 67년 만에 나온 값진 기록이니 만큼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다.기전을 주최한 마이니치 신문은 물론 아사히,요미우리,NHK 등 주요 언론사들은 1면 사회면에 ‘전인미답의 경지’,‘새로운 역사 창조’라며 趙9단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趙9단의 이런 쾌거를 다룬 국내 언론 보도는 일본과 사뭇 달랐다.사회면 등에 비중있게 다루었지만 趙9단이 처음 타이틀을 획득한 70년대 후반이나 일본 3대 기전인 기성,명인,본인방을 획득해 대삼관을 이룬 80년대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한국인에게 극찬으로 일관했던 우리 언론의 생리로는 다소 의외라고 할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우선 20여년 넘게 정상을 군림해와 타이틀 방어가 당연하지 않냐는 인식이 작용했을수 있다. 기록으로서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처지는 것도 빛을 바래게 한다.국내에서 타이틀 최다 방어기록은 曺薰鉉 9단이 서울신문사 주최 패왕전에서 수립한 16연패다.趙9단보다 6회 앞서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이라는 자부심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듯 하다.70년대는 물론 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기사들만 만나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90년 曺薰鉉 9단이 4년에 한번 열려 바둑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창기배를 거머쥐고 李昌鎬 9단,劉昌赫 9단,徐奉洙 9단 등 국내 기사들이 후지쓰배,동양증권배 등 세계 기전을 잇따라 석권하자 세계 바둑의 무게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했다.중국은 물론 바둑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일본도 한국 바둑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바둑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면 중국과 일본 기사들이 한국 바둑을 다시 추월할 지 모른다.그 만큼 실력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한국기사들이 부단히 정진,趙治勳 9단이 한국으로 ‘역유학(逆留學)’을 오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월드컵 폐막/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금세기 마지막 인류의 제전(祭典)인 ’98 프랑스 월드컵 축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지난 달 11일 개막,열전 33일 동안 20억 지구촌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64경기를 치르면서 수많은 새로운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역시 개최국 프랑스의 우승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는 것 같다. 이번 프랑스의 첫 우승은 지난 30년 우루과이 원년대회 출전이래 실로 68년만에 거머쥔 쾌거다. 그것도 많은 전문가들이 우승후보로 지목했던 남미 강호 브라질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얻은 승리여서 더욱 값지다. 결승전 시상식에서 그 큰 웃음을 보이며 자국 대표팀 주장 디디에 데샹에게 꿈에 그리던 국제축구연맹(FIFA)컵을 수여하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열광하는 선수 및 그라운드 안팎의 프랑스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승자의 환희를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며 통산 5회 우승과 대회 2연승을 노리던 브라질을 꺾은 프랑스팀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인자다. 미드 필드 강화와 철벽수비를 통한 조직력을 가지고도 호나우도를 비롯한 화려한 스타군단의 브라질을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경기내용이 무엇보다 극찬을 받아야 한다. 여기엔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대회 유럽지역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대표팀을 맡아 끊임없이 조직력 강화와 선수간의 인화를 강조해 온 에메 자케 감독이 있었다. 그는 티에리 앙리,릴리앙 튀랑,지네딘 지단 등 승리의 주역들을 게임마다 적절히 기용,제 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한 지장(智將)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프랑스팀의 최대 자랑은 역시 ‘인종의 용광로’라 불릴만큼 인종간의 벽을 허물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 점이라 할 수 있다. 주전 가운데 3명만 본토 출신이며 대부분 카리브해 연안이나 아프리카 등 옛 식민지에서 귀화한 선수들이지만 훌륭히 뭉쳐 제 역할을 다 했다. 프랑스사회가 완전히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한 건 아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통합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가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 지를 시사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정신으로 하나가 돼 20세기 마지막 대회를 유사이래 가장 모범적인 제전으로 승화시켰다. 이제우리 차례다. 세계의 시선은 21세기 첫 대회를 공동개최하는 한국과 일본에 쏠려있다. 2002년엔 300만명 이상의 축구팬들과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4년은 짧다. 정신차려 준비하지 않으면 ‘나라망신’차원을 넘어 또 다른 위기가 올지 모른다.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제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슈퍼스타 박세리(사설)

    이토록 감동적인 드라마를 또 다시 볼 수 있을까.박세리 선수의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은 스포츠에서의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한국인의 혼(魂)이 담긴 장엄한 드라마였다.박선수를 통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그리고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박선수는 거듭된 위기속에서도 흔들림없는 자신감과 의지력으로 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스물한살의 어린 나이로 그토록 눈부신 일을 해낸 박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세계 무대 데뷔 첫해 LPGA챔피언쉽에 이어 메이저 대회 2연승의 위업을 수립한 박선수의 쾌거는 우리 국민의 시름을 단숨에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사에도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번대회에서 그는 최연소 우승,동양 출신 첫 우승,7년만의 메이저 대회 2연승등 갖가지 기록을 세움으로써 ‘골프 신데렐라’에서 ‘세계적인 골프 슈퍼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외신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라고 격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그의 골프 실력때문만이아니다.연장,재연장의 접전 끝에 극적인 우승을 거둔 그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투지에 우리는 더욱 감탄한다.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연못 턱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간 그의 하얀 발과 검은 종아리의 대조는 그 정신력이 치열한 자기 단련의 결과임을 웅변으로 보여 주었다. 박세리 선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우리가 벗어 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박선수 자신이 상금을 포함해 광고등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슈퍼스타로 떠 오른 것은 물론 박선수의 가능성에 일찍이 투자한 기업 삼성은 수천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그뿐인가.우리나라의 국제 신인도를 올리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경제학자 기 소르망은 “세계에 내세울만한 한국적 이미지의 상품이 없다는데 한국 경제위기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뉴욕타임스가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으로 꼽은 박선수는 한국이미지 제고에 성공한 벤처기업인 셈이다. 이같은 성공이 정신과 기술의 결합이란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투지만으로는 부족함을 월드컵은 일깨워주었다.박선수는 세계적인 골프지도자 데이비드 리드베터에게 기량을 계속 갈고 닦음으로써 오늘의 영광을 거머쥔 것이다. 우리 모두 박선수를 본받아 추락한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자.
  • 모교 공주 금성여고 ‘세리기념관 짓겠다’/대전 고향­시민 표정

    ◎“한국인의 끈기 보여준 쾌거”/洪善基 대전시장 ‘세리배 대회 창설’ ○…박세리가 7일 새벽 연장전 마지막 18번째 홀까지 상대 선수인 추아시리폰과 동타를 기록한 뒤 매 홀마다 승부를 가리는 서든 데스 두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우승을 확정짓자 대전시 서구 월평동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언니 유리씨(27)와 동생 애리양(18)등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 ○…이날 새벽 4시쯤 학교에 나와 학생들과 함께 박세리를 응원하던 충남 공주 금성여고의 梁鳳子 교장은 “세계적 영웅의 족적(박세리 관련 스크랩)이 학교 2층 계단 조그만 게시판에 걸려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면서 “세리가 금성여고와 공주,나아가 국가의 자랑인 만큼 어려운 사립학교 재정이지만 ‘세리기념관’을 세우겠다”고 약속. ○…洪善基 대전시장은 박세리의 집을 방문,“대전시민의 긍지를 전 세계에 떨친 쾌거를 축하하기 위해 박세리배 전국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 이어 오는 9월 박세리가 귀국하면 박선수를 대전을 빛낸 인물로,박선수의 아버지를 자랑스런 아버지로 각각 선정·표창할 계획이라고 발표.
  • 망각속에 묻혔던 ‘국군포로’의 생환

    ◎MBC 특별기획 제작진 노력 돋보여/관련부처 취재협조는 커녕 ‘발뺌’만 방송매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은 지난 달 25일부터 이틀간 방영된 MBC­TV의 특별기획 ‘국군포로’가 깨우쳐준 값진 교훈이 생각나서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두가지 망각에 대한 큰 각성제였다. 첫번째 망각의 주체는 일반 국민이다.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국군포로’라는 이름은 잊혀졌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간 그들의 의미는 세월의 켜가 쌓이면서 땅속에 묻혔다. 망각의 땅에 첫 삽을 든 것은 지난 해 12월 귀환한 양순용씨. 그는 홀로 사선을 넘어왔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이름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국군포로’들. 이를 MBC의 생방송이 집중포착,사회적 이슈로 불길을 지핀 것이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희미한 기억 속의 아버지를 확인하는 등 숱한 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집단 망각에서 깨어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뜻깊은 자리였다. 또 하나의무책임한 주체는 정부,구체적으로는 국방부다. 연출을 맡았던 김학영 PD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프로를 위해 취재하는 가운데 확인된 국방부의 불성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 프로가 처음 공개한 포로명단들은 사실 국방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처음엔 “확인해보겠다”고 피해가더니 다음엔 “가족에게 개별통보 하겠다”등 발뺌으로 일관했다”. 국방부의 임무가 현재의 군인에만 국한되는가. 포로가 되어 동토의 땅에 갇혀 있는 저들은 어느나라 군대의 선배군인이고 누구를 믿고 전선에 나섰던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하나의 특집프로가 국방부가 지금까지 못한 혹은 타성에 젖어 할 생각도 않은 일을 해낸 셈이다. 건전한 문제의식과 치밀한 준비작업(양순용씨가 일러준 내용등을 토대로 전국의 가족들과 일일히 통화해서 확인함)이 합쳐서 일궈낸 이번 특집은 공룡매체의 장점을 마음껏 과시한 쾌거가 아닐까. 그것은 단순히 몇명의 가족이 생사를 확인했다는 숫자놀음의 차원이 아니다. 제작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한과 한이 풀리는 장면을 보고 국방부 당국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아마 다른 각도에서 방송매체의 힘에 놀랐을 것이다.
  • 차범근 감독 경질 안팎/和蘭戰 충격적 참패 전격 메스

    ◎전술·선수선발 모두 낙제점 평가/자진사퇴 거부 일방적 해임조치 車範根 한국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이 전격 경질된 것은 국민 정서를 감안한 축구협회 지도부의 초강수로 해석된다. 그의 경질은 성격상 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의 의지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없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표팀 감독이 대회 기간 동안 경질되기는 처음으로 그큼 한국 축구의 심각한 사태를 대변해 주는 셈이다. 특히 이날 기술위원회에서는 車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강력하게 거부함에 따라 일방적으로 해임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져 車 감독에 대한 지도부의 깊은 불신을 엿보게 했다. 車 감독은 사실 그동안 여러차례 중도 퇴진의 위기를 맞았었다. 3월1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 한일전 패배가 첫번째 고비. 지난해 11월 잠실에서 가진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0­2로 완패한 데대한 질책이 채 가라 앉기도 전에 또 일본에 고배를 들면서 일부에서는 車감독의 교체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역대 일본과의 국가대표 경기에서 연패를 당한 것이 처음인 탓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월드컵 4회 연속 본선 진출권을 따낸 공로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고려,대표 선수들의 일부 교체로 마무리했다. 그 뒤에도 車 감독은 유럽전훈과 국내 평가전을 치루면서 전술의 핵심이 없다는 평을 전문가들로부터 받아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심지어 국내 프로 구단에서 조차 2진급 밖에 되지 않는 선수를 대표 선수로 전격 발탁하는 車 감독을 두고 선수를 보는 안목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車 감독은 본선 1차전인 멕시코전 선발진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멕시코전 패배 뒤 곧바로 협회 고위 관계자로부터 경질설이 흘러나왔다. 이런 와중에 맞은 네덜란드전 참패는 결정타였다. 그동안 車 감독에 호의적이던 鄭 회장 조차도 여론이 악화되자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경기가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을 경질하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협회 관계자는 “대회 중 감독을 경질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지만 車 감독이 멕시코와의 경기에 앞서 선수관리 문제로 물의를 빚은데다 네덜란드전에서도 경기전부터 비기는 경기를 하겠다는 등 최선을 다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겨 국민들로부터 의구심을 샀다”며 “이에 따라 국민 여론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고 남은 경기에서라도 목표인 1승을 올리기 위해서는 극약 처방이 불가피하다는 각계의 여론도 빗발쳐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한국축구사에서 대회 기간 중 사령탑의 경질은 처음이지만 외국의 경우 이같은 극단적인 처방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경우는 흔하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최종예선 과정에서 한국에 역전패하는 등 초반 졸전을 거듭한 가모 슈 감독을 경질하고 코치였던 오카다 현 감독을 사령탑에 앉혀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끌어 냈으며 이번 본선 대회 기간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2패로 예선 탈락한 페레이라 감독을 지난 20일 전격경질한 바 있다.
  • 용병술/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용병술이 문제가 되고 있다.한국의 멕시코전 역전패에 대해 축구전문가들과 팬들은 감독의 선수기용과 교체멤버 투입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내막은 알 수 없지만 기대한 것만큼이나 실망의 파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용병술이란 어디까지가 정의인가.우리는 언제나 결과만을 가지고 용병술의 잘 잘못을 따지려 든다.만약 경기에서 이겼다면 감독의 용병술의 묘(妙)와 모험심을 높이 평가했을 지도 모른다.‘사람을 잘 써야 하는 것’은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인간만사에 적용되는 진리다.사람을 잘 쓰면 흥하고 못쓰면 망하는 예는 정치역정 등에서 얼마든지 경험한 바다. 물론 월드컵 감독으로서는 선수 하나하나에 대한 장단점과 기량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줄로 안다.하석주가 퇴장당하자 팬들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7골을 넣은 최용수를 기다린 것은 당연하다.운동경기의 결과란 예측불가능하지만 질 듯하다가도 이기고 다 이겨논 경기를 뒤집는 역전승의 묘미도 있다.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던 선수가 분연히 일어나 놀랄만한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쟁취하는가 하면 초반의 우세로 여유를 부리던 선수가 긴 부진으로 관중을 실망시키기도 한다.감독의 두뇌는 이런 때 상대팀의 전략을 멀고 깊게 짚어서 적시에 적절한 선수를 투입시켜야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등장하면 관객은 절망대신 열망으로 스타의 이름을 외쳐대고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의 이름 위에 폭죽처럼 쏟아진다.새로 기용된 선수들은 팀을 구원하고 환상적 플레이로 팬들을 혼도시킨다.온국민의 기대와 환호속에 1차전을 끝냈다.그럴 리는 꿈에도 없겠지만 국제대회에서의 사감(私感)이나 ‘시험적’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예기치 않은 위기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경기다.하석주의 퇴장을 뜻밖의 사고로 치부하기 전에 이에 대비하는 빈틈없는 전술이 준비됐어야 한다.‘손자병법(孫子兵法)’은 ‘유능한 전략가는 우선이 쪽이 패하지 않을 태세를 갖춘 다음 적을 무찌를 틈을 엿본다’고 가르친다.의심하고 따지고 원망하기 전에 월드컵 예선통과라는 쾌거를 이룬 차범근 감독을 믿고 온국민이 끝까지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만이 남았다.
  • 金大中 대통령의 訪美 성과(사설)

    金大中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양국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공고히 하는 실질적인 정상외교로 평가된다.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병행추진한다는 국민정부의 국정철학을 미국 지도층 인사들과 미국민들에게 확신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향후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金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민주주의는 미국민이 제1의 정치적 가치철학으로 여기고 있고 시장경제원리 역시 자본주의의 근간이자 이들의 보편적인 경제질서이다.특히 金대통령은 ‘아사아를 대표하는 민주적 지도자’라는 개인적 지명도가 방미외교 성과를 높이는 결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통령의 이번 방미의 1차적인 과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적극적인 경제협력과 지원,특히 미국기업의 투자유치이다.金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외교에서뿐 아니라 미국 경제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역설,이를 이해시킴으로써 앞으로 경제협력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탄력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金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에 한·미 투자협정을 체결키로 합의한 것은 이번 정상외교의 가장 큰 성과이다.투자협정 체결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외국인의 투자유치가 절실한 한국에 있어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투자협정 체결은 앞으로 미국기업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생산기술을 접목시키는 산업간 전략적 제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해외투자공사(OPIC)가 지난 91년 이래 중단한 대한(對韓)투자보증사업을 재개키로 약속한 것은 방미 경제외교의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된다.이 조치는 미국기업의 한국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투자유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이 미국정부에 한국의 대북(對北)정책에 대한 원칙적인 방향을 확실히 제시,그동안 혼선을 빚어온 안보외교에 공조체제를 구축한 것도 이번 방미외교의 성과이다.과거 정부때 지나친 명분 우선의안보외교가 양국 상호간의 불신을 초래,북한만이 실리를 추구토록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양국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공조의 기본틀에 합의한것은 실리추구의 외교로 특기할 만하다.한·미 양국은 이번 정상간 합의와 한·미투자포럼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실무차원에서의 협력을 한층더 강화해 나가기 바란다.
  • 한국 세계 아마바둑 첫 우승/金燦佑 7단 JAL배 8전승

    【도쿄=姜錫珍 특파원】 한국의 金燦佑 선수(26,7단)가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출전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 金 7단은 5일 도쿄 일본기원 회관에서 벌어진 제20회 JAL배 세계 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마지막날 8번째 대국에서 중국의 강호 자오웬동(趙文東) 7단을 81수 만에 불계승으로 누르고 8전 전승을 기록,우승했다. 金선수는 앞서 7번째 대국에서 홍콩의 왕이순 6단에 역시 불계승을 거뒀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에서 그동안 제6회 때 劉昌赫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4차례에 걸쳐 2위에 입상한 적은 있으나 우승은 처음이다.
  • 快擧 박세리의 정상정복(사설)

    ‘슈퍼 루키’ 박세리가 세계여자골프계에서 ‘최고중의 최고’를 가리는 미국 여자프로골프(98’LPGA)타이틀을 거머쥐는 불멸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세리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지원체제에서 전반적으로 위축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값지다. 더구나 미국 4대 메이저대회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의 우승이라서 더욱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세계골프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자 한국골프의 새 역사의 시작인 셈이다.지난해 10월 프로테스트 1위로 통과한지 7개월만에 얻은 최단기간의 정상정복에다 대회사상 최저타수 기록이란점도 묵과할 수 없다.이는 한국골프의 자존심을 세워준 쾌거이기 때문이다. 세계정상급의 선수들이 전부 초청되어 ‘신인은 절대로 LPGA선수권 타이틀을 쥐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박세리는 타이거 우즈의 최연소 기록을 깨고 보다 어린 나이의 최연소 우승자가 되어 지난해 타이거 우즈의 급부상이 부럽던 우리에게 가슴 벅찬 낭보를 안겨주었다.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노릇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한국민의 이미지를 쇄신했을뿐 아니라 멀고도 곧은 장타와 쇼트게임,그린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승부근성은 남은 대회의 연승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박세리의 우승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선수들이 분점해왔던 여자프로골프계도 제3세계의 몫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승상금은 세계여자골프사상 최다액수인 19만5천달러,전세계 골프관련업체의 관심을 모아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때마침 칸영화제 견본시에 나간 국산 SF영화 ‘용가리’가 4일만에 2백79만달러의 사전판매계약을 맺는 등 해외시장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뛰어난 재능이 경제회생의 전령이 되리라는 기대마저 안겨준다. 정치를 보나 경제를 보나 모두가 답답한 일들 뿐인데 특히 스포츠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잘 뛰어줘 후줄근한 상황에 단비가 되는 것 같다.정상을 정복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상을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엄격한 자기통제와 부단한 노력으로 연소자의기록을 지키면서 계속적인 발전과 건투가 있기를 기원한다.사치스포츠로 질시받던 골프가 이런 경사를 불러들이다니 골프에 대한국민의 인식도 달라져야겠다.
  • 李鳳柱의 인간승리(社說)

    장하다.참으로 장하다.李鳳柱선수가 19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98로테르담국제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2위를 차지했다. 비록 1위는 놓쳤지만 李선수가 이번에 세운 기록 2시간7분44초는 지난 94년 黃永祚 선수가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세운 종전 한국기록 2시간8분9초를 25초 앞당긴 것이다.이로써 한국 마라톤은 4년동안 깨뜨리지 못했던 8분 벽(壁)을 넘어 드디어 7분대에 진입했다. 李선수의 신기록 수립은 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다.그것은 온갖 악(惡)조건을 이겨낸 선수 개인의 인간승리이자 그를 통해 폭발한 한국혼(魂)의 승리다. 올해 28세의 늦깍이 마라토너 李선수는 ‘달리는 종합병원’으로 불린다.두발의 길이가 각각 다른 짝발에 짝눈,강훈련으로 인한 갖가지 부상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마라톤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무릎부상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최근 한 대회에서는 13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해 “한 물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이번 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중요한 대회에서 번번이 2위에 그쳐 ‘만년 2인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지니고 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주저앉을 상황에서 李선수는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서 한국인의 끈기와 투혼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스포트라이트가 비치지 않은 그늘속에서 강인한 정신력과 성실성으로 한국 신기록의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그래서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마라톤에서의 승리가 빛난다.올림픽 정신의 꽃이 마라톤으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민이 겪고 있는 경제난국도 李선수와 같은 자세라면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끈기와 정신력은 우리 모두 지니고 있는 한국혼이다.李선수의 쾌거는 온 국민에게 고통을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한국혼을 일깨운 李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 李봉주 한국新 쾌거/2시간7분44초로 준우수/로테르담마라톤

    ◎황영조 기록 25초 단축 李鳳柱(28·코오롱)가 2시간8분벽을 돌파하는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98로테르담마라톤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李鳳柱는 19일 하오(한국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내 42.195㎞의 마라톤 풀코스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2시간7분44초의 한국신기록으로 스페인의 론세로(2시간7분27초)에 이어 2위로 골인했다.李鳳柱의 이날 기록은 지난 94년 보스턴마라톤에서 黃永祚가 세운 2시간8분9초의 한국기록을 4년만에 25초 앞당긴 것이다. 李鳳柱는 이날 경기에서 초반부터 선두그룹에 나선뒤 중반 이후 줄곧 론세로에 이어 2위를 유지하며 페이스를 지켜 나갔다.李鳳柱는 선두를 달리던 론세로가 후반 한때 호흡곤란으로 레이스 도중 두차례나 멈칫하는 등 부진을 보여 추월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선두를 빼앗지는 못했다.
  • 빨치산 토벌(대한민국 50년:13)

    ◎49년 ‘레드 킬러 작전’ 3,400여명 사살·생포/군검,지리·오대·태백산일대 주민 90% ‘적색’ 분류/48년부터 6·25휴전후까지 산악지대서 ‘소탕전투’ ‘낮에는 대한민국,밤에는 인민공화국’. 빨치산의 점령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낮에는 군경의 치안아래 있으나 밤만 되면 빨치산의 점령구로 바뀌었다.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한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48년부터 50년 사이 일부 남한지역은 이처럼 사실상‘무정부 상태’였다. 봄바람이 북풍을 녹이기 시작하던 49년 3월.1백여명의 빨치산은 전남 곡성군에서 군경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경찰 사망자 수는 1백여명이고 통신도 파괴됐다.보성 화순 순천 나주 함평 구례 영광 등에서도 비슷한 전투가 잇따랐다.그해 8월 전남 화순도 더위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3백여명의 빨치산은 광부들과 연합해 철로,통신시설을 차단한뒤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관을 무참히 학살했다.호남지역 빨치산 활동의 중심은 역시 험준한 산세를 갖고있는 지리산 일대. ○48년 ‘여순사건’서 촉발 경상북도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빨치산이 은신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일월산 부대’의 지휘자는 유명한 金達三이었다.일제 또는 미제 소총으로 무장한 빨치산은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했다.국군 1개 중대는 빨치산의 공격으로 4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경북지역 가운데 봉화 영덕 영주 등의 동북지역에서 빨치산은 발호했다. 대중과 연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일컫는 빨치산은 48년 10월의 여순사건으로 촉발됐다.토벌 군경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은 소규모 유격전을 벌였다.49년 6월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은 더위 만큼 날뛰었다.조국전선을 결성한 북한이 게릴라를 대거 남파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은 게릴라 전문양성기관인 ‘강동정치학원’을 설치해 게릴라들을 훈련시킨뒤 남으로 내려보냈다.때로는 남한에서의 투쟁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남한내 빨치산을 북으로 불러 올려 교육시켰다.강원도지역도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빨치산들과 어울려 유격활동을 했지만 남쪽지역에 비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빨치산의 활동은 49년 9월들어 절정에 달했다.정규군 편제인 병단을 만드는가 하면 중대 소대 분대도 편성됐다.심지어 여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무기와 탄약은 북한으로부터 보급받았으며 생활은 현지보급에 의존했다.산악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은 이즈음해서 산을 내려온다.경찰서와 군부대를 공격하는 ‘아성(牙城)공격’이다.목포형무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해 1천4백여명의 죄수 가운데 4백여명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李承晩 정부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다.전국을 지리산,오대산,태백산 지구로 나눠 빨치산 토벌 동계 대공세를 벌였다.38선에서의 대치와 충돌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산악지대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빨치산의 수는 1만여명.하지만 빨치산과의 전투보다 추위와 눈보라와의 싸움은 토벌을 더욱 힘들게 했다.빨치산은 지리산이나 일월산처럼 산세가 험하거나 외진 곳을 주 근거지로 삼았던 탓이다.빨치산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당시 관계자들은 회고하고 있다.군경은 주민 가운데 90%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주민들은 빨치산 편으로 분류됐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군경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빨치산의 보복과 경찰에 대한 반감·증오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6일 李承晩 대통령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단시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끝내고 명년 초에 후방치안문제로 유보해오던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다”고 빨치산 소탕작전을 독촉하는 발언을 했다.토벌군은 마을을 불살라 유격대를 주민들과 분리시키는 ‘소진(燒盡)소개(疎開)작전’으로 빨치산의 끈질긴 저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체포로 “작전 끝” 정부군의 진압에 49년 겨울을 지나면서 게릴라들은 차츰 소멸돼 갔다.12월 15일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인 ‘레드 킬러’로 1천7백여명의 빨치산이 사망했고 1천7백여명이 생포됐으며 132명이 귀순했다.이에 앞선 그해 10월 좌파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남로당에 대한 등록취소령도 남한내 빨치산 활동에 조종(弔鍾)을 울리는데 일조를 했다.50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졌다.마치 6월의 한국전쟁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빨치산 토벌작전은 한국전쟁이 끝난후까지도 여전히 계속됐다.53년 5월17일 빨치산 소탕 작전사령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틀림없이지리산 벽점골 비트에 잠복중입니다”.작전과장의 설명에 장교들은 침을 삼켰다.남한내 빨치산의 총지휘자이자 충청 경상 전라도를 넘나들며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던 남부군단 사령관 李鉉相.종적을 감춘지 3년만에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여순사건의 지휘자였던 金智會 등을 체포해서 밝혀낸 쾌거였다. 치밀한 작전계획 아래 포위망을 좁힌 것은 그로부터 5개월뒤.李鉉相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4개 연대였다.9월 18일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1연대는 운봉을 출발해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해 반성리에 포진했으며 3연대는 노고단을 경유에 반야봉으로,5연대는 함양을 경유해 백무동 능선을 압박해 나갔다. 2연대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바스락 소리에 돌격대는 숨을 멈췄고 수십미터 앞에는 잡초를 헤치는움직임이 포착됐다.빨치산 3명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리가 5m 앞으로 좁혀졌을때 돌격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숨진 빨치산가운데 한명이 李鉉相.이로써 기나긴 3년동안의 빨치산과의 전쟁은 끝났다.당시 李承晩 대통령이 완전히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것이 빨치산 토벌이었다. ◎약간의 마을 파괴” 미 반공시각 파악/일부 국내학자들 “지금이라도 진산규명” 주장/“민족사 정립 차원 특별법 제정해야” 빨치산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빨치산진압작전은 ‘모조리 죽이고,모조리 태우고,모조리 빼앗는(殺光,燒光,槍光)’다는 ‘삼광(三光)작전’.일본군이 만주 및 한만 국경지역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할 때 사용하던 전술이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게릴라가 아닌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군경의 초토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49년 경남 하동과 경북 문경에서는 국군이 마을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집단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국회에서도 “민중들의 삶의 근거지를 빼앗고 좌익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李靑天 국방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빨갱이 소탕’이라는 지상명제에 밀렸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영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서는 “별로눈에 띠지 않는 약간의 마을 파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드럼라이트영사의 보고서는 다분히 반공논리에 의해 작성된 측면이 많다.“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비공산주의자 청년들을 가려 뽑아 그들을 좌익과 같이 견고하고 무자비한 행동에 맞설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특별법을 제정해 ‘민족사 정립을 위한진실규명 국민위원회’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제주 4·3사건의 피해자·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요즘들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4·3사건과 빨치산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져 50년동안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한국 쇼트트랙서 금… 금

    ◎남 1,000m 김동성·여 3,000m 계주서 쾌거/메달 순위 12위 【나가노=곽영완·강영기 특파원】 한국이 한꺼번에 2개의 금메달을 따내 쇼트트랙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은 17일 밤 나가노 화이트링크에서 벌어진 제18회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m와 여자 3천m 계주를 석권,메달 레이스에서 12위로 올라섰다. 남자 1천m에 출전한 김동성(18·경기고 3년)은 이날 결승에서 막판까지 2위에 그쳤으나 결승라인을 코앞에 두고 스케이트날을 길게 내미는 노련미로 중국의 리지아준을 누르고 우승,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은 92년과 94년대회때 김기훈이 연속 우승한데 이어 김동성이 정상에 오름으로써 올림픽 3연패의 기록도 달성했다. 한국은 전이경(22·연세대 3년) 원혜경(19·배화여고 3년) 안상미(19·대구정화여고 3년) 김윤미(18·정신여고 2년)가 출전한 여자 3천m계주에서도 4분16초26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마지막 주자 김윤미는 2바퀴를 남겨놓고 중국선수를 추월,한국의 이 부문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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