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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무용가 배정혜(이세기의 인물탐구:98)

    ◎춤사위 40년… 「한국 창작품」 토양 일궈/민주적정서·사회풍습 등 현대기법으로 표현/안무 생각할땐 3­4일간 식음 전폐하며 상념 「당신은 큰 모란,내일 사경/ 당신의 영위에 첫이슬 내려/ 그 이슬로 원귀들 씻겨 필경/ 삼도천건느리라」 이는 91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진 서울시립무용단의 「떠도는 혼」을 보고 시인 김지하가 춤을 만들고 춤춘 배정혜에게 보낸 즉흥헌시다. 실제로 그의 춤을 본 사람이라면 구천을 떠도는 푸르른 영혼과 젖은듯이 파도치는 슬픔,가슴저미는 한과 창백한 분노가 천상의 불꽃으로 산화되어 장과 한과 원화까지도 춤속에 용해하고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무대는 음악이 춤을 능가하지 않으면서 의상과 장치,소품하나라도 춤의 일부이며 흑백속의 적,흑적속의 백으로 절제된 조명은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과 강철같은 강인함,내딛는 보폭마다 백태의 곡선이 연출되는 모든 장면마다 절륜의 명화를 그리고 있다. 무용평론가 김태원은 배정혜의 춤을 「낮은 강둔덕에 선 건강한 갈대」에 비유한 적이 있다.「배정혜의 마르고 뾰족한 몸짓은 우리 전통춤의 정적 자태를 잃지 않으면서 춤의 본체적 바닥을 드러낼뿐 멋부림이나 태깔부림을 외면한 순수서정춤」이라고 했다.그리고 87년 예년의 평균 1백50여회에 비해 2백40여회가 넘는 폭등한 공연중에서도 단연 배정혜의 「유리도시」를 「문제작」으로 손꼽았고 「올해의 값진 수확」·「분명 한국춤의 진일보를 뜻한다」고 춤평론집 「예술춤시대의 탐색」에서 밝히고 있다.이 「유리도시」는 「문학성과 창작성」이 두드러진 작가의 야심작으로 한때 「그것이 한국춤이냐 현대무용이냐」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연극연출가 오태석은 「우리 몸짓 가운데 힘이 숨어있는 곳을 그는 꿰뚫어보고 있다」면서 무용계의 찬반을 불식시켜버렸다. 그가 평론가들에게 집중적으로 조명된 것은 77년 김소희창에 황병기음악을 쓴 「타고남은 재」가 먼저다.그해 박용구씨는 춤지에다 「배정혜의 작품세계,지평을 여는 한가닥의 빛」이란 제목으로 「우리민족이 다듬어온 정밀하고 유현한 세계를 드높은 차원에서 구현하였고 기백을 뼈대로 하면서 흥과 멋을 훌륭히 살려낸 남성무를 개발해 보여준 것은 우리춤의 신기원을 이룩한 또하나의 위업」이라고 평가한바 있다.이순열도 「놀랍고도 영감적인 춤」,정병호 역시 「수제천의 아름다움을 일깨운 배정혜의 춤은 원형을 재해석하면서도 자기주관을 강하게 투입시켜 또다른 원형을 만들고 있다」고 그의 춤세계를 세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배정혜의 「춤언어의 정확성」과 「춤사위마다의 변화」,그의 역동적 동작은 그가 춤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결과다. 어릴때는 강원도 원주 산골에서 농사를 짓던 배석균씨와 장옥여씨의 3남1녀중 장녀,본명은 배숙자.해방과 더불어 서울에 올라와 춤꾼인 삼촌 배명균씨를 만나면서 6세이전부터 춤추기 시작했고 12살되던 해 첫무용발표회를 열자 당시 경향신문(55년 4월16일자)은 「장추화 조광 김백봉제씨들의 지도밑에 무용을 전공했다는바 그 앙증스럽고 간드러진 춤은 만장의 관객을 도취시켰다」고 특필했다. 69년 제3회 창작무용발표회를 가졌을 때는 그가 안무하고 춤춘 「가랑잎」에 대해 현대무용가 육완순이 「그의 춤은 깨끗하고 섬세하며 오랫동안 연마해온 기교는 놀랄만큼 정확하다」고 감탄을 보냈고 「현대적인 감각과 극적 이미지를 되살린 새로운 시도와 민족적 정서와 사회적 풍습을 현대적 수법으로 미화시킨 무대」(서울신문 69년 12월11일자)로 그의 창작성을 격려하고 있다.그러나 조동화는 「춤의 성년기로 접어든 여유와 저력있는 공연」은 호평하면서도 「춤사위나 표현의 체질개선을 시도한 창작무용」이라는 어휘에는 별로 호의를 보이지 않다가 「떠도는 혼」「타고남은재」가 잇따라 발표되자 78년 신동아(10월호)에 「말없이 자기힘의 실체를 보여준 사람」으로 배정혜를 지칭하고 「춤사위 하나하나를 결코 허툴게 다루지 않으면서 한국무용이 감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보완 발전시킨 새해석」으로 창작성을 인정고 있다. 서울시립무용단장 배정혜.그의 수많은 예술가적 배경의 특징중에서도 그는 무용이 아닌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출신이란 점이 남과 다르다. 숙대 국문과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주임교수이던 김남조시인을 비롯,그의 주변에서는 그가 「춤추는 배숙자」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또 묵고적 기질은 안무를 할 때는 생각이 무르익을 때까지 3,4일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가없는 상념에 침잠한 끝에 지혜의 극에 치달아야만 비로소 춤의 선을 성취해낸다. 그의 이런 다부지고 묘한 면은 지난번 서울시립무용단장에 내정된 무렵에도 원로 박용구 조동화 차범석과 전임자인 문일지가 그를 추천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는 데도 단원들에게 먼저 작가로서의 「작품성」과 「창의력」을 보여준 다음 자신이 정한 것을 말없이 지키면서 지난 7년동안 무용단을 이끌어왔고 4년전 프랑스와 스위스공연에서는 주최측으로부터 체류비와 개런티를 받는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철저한 춤꾼으로서의 그의 정신은 73년 재미교포인 김광섭씨(사업)를 만나 약혼,10년이나 지체하다가 39세이던 83년에 뒤늦게 결혼했으나 춤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았고 부군 역시 이를 이해하여 「춤추는 아내」로만 그를 아끼고 외조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 4월,스승이자 삼촌인 「배명균선생 고희기념」무대에서 초기에 추었던 「주마등」「풀잎」「혼령」으로 한국고전무용의 「정중동」과 「미선의 지고함」을 펼쳐보이더니 지난주에는 서울시립무용단 정기공연에서 「우리춤 50년 뿌리찾기」로 원로들의 간판춤을 정리하여 무용계의 리더다운 사명감을 실천하고 있다. 무대에 오른지 40여년이 넘는 오늘,그의 춤은 「한국창작춤의 토양을 일궈가는 세대」로서 정상에 서있으며 그의 재능을 극구 찬양하는 정병호씨에 의하면 「당대 그를 빼고는 한국무용사를 말할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객석에 엄숙과 침묵을 던지는 무위적정의 춤」은 언제 어디서나 새로 태어나고 새로운 것을 지향하면서 앞으로도 그는 그만의 춤언어로 「지혜의 향기」를 끝없이 길어 올리게 될 것이다. □연보 ▲1944년 강원도 원주출생 ▲49년 장추화무용연구소입소 ▲53년 김백봉사사 ▲54년 전국무용콩쿠르1등,최현사사 ▲55년 제1회 무용발표 ▲58년 제2회 무용발표 ▲59년 조광(발레)사사 ▲60년 도쿄 나고야 오사카순회공연 ▲69년 제3회 무용발표 ▲70년 숙명여대국문과졸업 ▲74년 숙대체육대학원졸업 ▲74∼87년 선화예고무용부장,한영숙 이매방 임준동의 「승무」「살풀이」,이정범「농악」사사 ▲77년 제4회 무용발표,작품「타고남은 재」로 「그해의 최우수작」선정,김천흥「양주탈춤」「춘앵무」사사 ▲78년부터 김선봉「봉산탈춤」,이동안「태평무」사사 ▲84년 리을무용단창단 ▲86∼88년 국립국악원상임안무자 ▲87년 「유리도시」안무·출연,국립오페라단 「처용」안무 ▲89∼현재 서울시립무용단단장 ▲90년 「불의여행」안무·출연,한국무용가협회선정 「90 최우수무용가」,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참가 ▲91년 88올림픽기념및 유엔가입경축공연 ▲92년 프랑스 스위스전역 총19회공연 ▲94년 서울시립무용단 20주년기념 「녹두꽃이 떨어지면」안무 ▲95년 평론가 7인이 선정한 ’95 우수무용작품전 「두례」공연,「서울까치」안무,프랑스순회공연 ▲96년 배명균선생고희기념 배정혜무용발표(정동극장),「우리춤 50년 뿌리찾기」공연
  • 피아니스트 신수정(이세기의 인물탐구:97)

    ◎14살에 데뷔한 모차르트 연주 명인/조기교육 1세대… 초등교부터 각종 콩쿠르 입상/“생명이 있는 연주” “영혼이 깃든 선율”로 청중매료/78년 도미… 지나친 연습에 근육다쳐 한때 연주생활 중단도 「작품에 헌신하고 자기자신을 성찰할줄 아는 사람만이 모차르트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알로이스 글라이더가 쓰고 62년 독일 유수의 출판사인 로볼트사가 출판한 「볼프강 아마데 모차르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새로운 광채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하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 연주자는 순수한 심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피아노의 마음을 아는 수많은 별중에서도 특히 신수정을 「모차르트 피아노연주의 명인」으로 꼽는 까닭은 「그의 때묻지 않은 동심과 완전에 도달하려는 음악적 몰입,그리고 음악의 본질만을 끌어내는 투철한 예술정신」이 작곡자의 청결과 천진난만과 투명성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와 모차르트의 인연은 특별히 남다르다. 56년 1월27일,모차르트탄생 2백주년이 되던 날,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강당에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20」을 연주했고 그해 3월,「천재소녀」라는 타이틀과 함께 서울시향의 전신인 해군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나이가 14살.이후 수많은 리사이틀과 런던필·도쿄필·NHK오케스트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지난 91년 모차르트서거 2백주기 기념행사에서도 9회에 걸친 「피아노협주곡 전곡연주」로 그는 모차르트만의 「명징과 영롱」을 거침없이 안겨주었다.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 음악애호가이면 누구나 한번은 모차르트에 빠지거나 그 「낭랑하고 정치하면서도 유연한 음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특히 창작의 절정기에 씌어진 「피아노협주곡 20번」은 밝고 화려한 다른 곡과는 달리 작곡자의 애환이 담긴 「명작중의 명작」으로 피아노가 분산화음을 뿌리는 알레그로 아사이의 론도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생동감이 넘치는 D장조로 클라이맥스를 꾸미는 찬란한 종결이 일품이다. 그중에서도 신수정의 연주는 「올바른 클레메이션(낭송)과 자연스러운 칸틸레나(서정적 선율),크레셴도(점강)와 데크레셴도를 절묘하게 구사하여 피아노만이 갖는 투명한 음색으로 곡전체를 아름다운 꽃으로 개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한상우에 의하면 「신성한 음향상을 이뤄낸다는 것은 삶을 완성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주자」다. 이른바 「생명 있는 연주란 작곡자의 탄생과 성장,시대와 개성과 교양의 넓이는 물론 인생에서의 사건과 환경에까지 빈틈없이 파고들어 마음의 소리가 계시하는 바를 쫓아서 자신만의 인터프리테이션(해석적 연주)으로 작품을 재창조한다」는 의지다. 그러나 피아노를 시작하던 어린시절에는 「피아노 없이는 못살겠다」는 소명의식이 없었고 단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인 만큼 당연히 피아노도 잘쳐야 한다는 선에서 피아노에 열중했을 뿐 혼신을 다해 노력해왔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나자신이 피아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나를 선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또 『모차르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지만그가 지닌 천재성과 경박성이 너무 난해하여 마음껏 양에 차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정열적이면서도 두뇌가 탁월한 연주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78년 결혼과 함께 부군(한광열씨)을 따라 도미,한동안의 공백기로 「피아니스트의 영광」을 잃는 것이나 아닌가 우려하는 이도 있었으나 미국에 간 지 4년만인 83년 5월,샌프란시스코 첫독주회에서 그곳에서 발간되는 크로니클지는 「그의 모차르트연주는 천상의 양식」이란 평으로 그의 건재를 과시해주었다.같은 해 8월,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일시귀국했을 때도 『그동안 아주 즐겁게 살았다.그야말로 삶자체를 속속들이 즐길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많이 깨우칠 수 있었다』면서 「어느때보다 탁월한 연주와 다이내믹한 긴장감,경쾌한 리듬의 향연」으로 그는 변함없이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종달새처럼 명랑한 모차르트의 내부에 남모를 애수와 음영이 도사린 것처럼 그는 미국생활동안 지나친 연습에서 온 근육이상으로 1년 넘게 연주를 멈춘 일과 부군과의 자녀 없이 이혼등 전혀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는 동안 「화려한 소년기와 열정과 오만의 청년기를 지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에 도착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경원대 음대 학장 맡아 따라서 87년 영구귀국하면서 가진 독주회는 「인간적 성숙과 예술적 연륜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음악은 광채를 발하게 된다」는 평대로 「한 음악가가 자신을 완성시키는 결연한 의지」와 「무르익은 경지」를 확인시킨 자리이기도 했다.그때도 여전히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모가 보이지 않는 젊은 모습과 「남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따뜻한 마음씨」,맑고 높고 청량한 그의 목소리는 모차르트음악만큼이나 화창하고 투명하여 사람을 반기고 기쁨만을 나눠주었다. 그는 재미 피아니스트 한동일,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누나인 김덕주와 함께 한국 피아노음악계의 새로운 분기점을 이룬 세대다.그 세대로부터 조기피아노교육붐이 일기 시작했고 음악의 해외유학이 활성화되었으며 국내 음악콩쿠르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충북 청주에서 평생 교육자이던 신집호씨(82)와 김석태씨(76)의 4남매중 장녀.옥천과 청주에서 중학교교장으로 있던 부친 덕분에 아무때나 학교의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벌써 그 시절에 서울과 청주,청주와 대구를 오가며 피아니스트 1세대인 김하경·이애내 스승에 사사,청주국민학교 6학년때 국내최초의 이화·경향음악콩쿠르와 오스트리아에 유학중 그곳에서 열린 각종 국제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세계무대를 향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제는 어엿한 음악계의 중진의 위치에서 각종 음악콩쿠르에서 심사를 맡고 후진을 양성하는 위치지만 그의 어느 구석에도 권위나 거드름이나 관록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92년부터 경원대 음대학장직을 맡아 학교운영에 참여하면서 요즘은 주로 실내악에 관심을 갖고 경원대오케스트라를 일류로 키우기 위해 애정과 열성을 쏟고 있다.어릴때부터 그의 연주를 지켜본 평론가 이상만은 지난 5월초 예술의 전당서 열린 연주에 대해 『그의 선율에는 영혼이 있고 그의 피규레이션(수식)에는 현란함과 온갖 독창성이 있으며 그의 연주는 전아하고 유창하며 거기다가 화려하기까지하다』는 찬사를 보낸다. ○동생가족과 한집 생활 일상생활에서는 여자답고 꼼꼼해서 그의 수첩은 깨알만한 글씨로 그날의 일이 일일이 기록되고 친구를 좋아해서 외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의 안부까지 묻는 섬세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살고 있던 청운동의 빌라에서 지난해 방배동주택으로 이사,친구 같은 동생인 화가 신수희씨가족과 아래위층을 나눠쓰고 있다.책과 피아노와 신수희그림 외에 집에는 아름다운 요크셔테리어만 세마리.요즘은 그 모든 캘릭터가 합쳐진 그만의 독특한 색깔과 풍부한 분위기를 지니면서 「중용과 절제미가 보이는 달관의 연주를 성취」하려는 시기다. 「명인」이란 언제나 자기자신과 자신의 생애를 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또 「무리를 떠나 혼자 높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다이아몬드의 영광은 외롭고,영광의 길은 고독하지만 그는 「피아노를 통한 청중과의 대화」로 외로움이나 고뇌의 기미란 전혀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광채」를 내기 위한 상서로운 징조만을오로지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것 같다. □연보 ▲42년 충북 청주출생 ▲52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입상 ▲59년 서울예고졸업 ▲61년 동아음악콩쿠르수석입상 ▲63년 서울대음대졸업,오스트리아유학중 부조니국제피아노콩쿠르(64년)· 베토벤피아노콩쿠르디플롬(65년) ▲67년 오스트리아 빈국립음악예술 아카데미졸업,빈(브람스잘)·도쿄(이이노홀)·서울독주회(시민회관) ▲68년 한국일보주최 서울독주회 ▲69년 런던필등 협연 ▲70년 동아음악콩쿠르 심사위원,베토벤 탄생 2백주년기념 국향협연 ▲71년 동아일보주최 서울독주회 ▲74년 미피바디음대대학원졸업 ▲75년 도쿄독주회 ▲68∼81년 서울대음대교수 ▲77년 영국연수,방콕독주회 ▲78년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 NHK오케스트라협연,독일연수 ▲83년 샌프란시스코 독주회 ▲87년 중앙일보주최 서울독주회 ▲89년∼경원대교수 ▲90년 쇼팽아벤트(독주회),체코아카데미 목관5중주협연 ▲91·93년 독일뮌헨 국제콩쿠르 심사위원,모차르트 2백주기기념음악회서울시향협연,김민·신수정2중주,모차르트연탄곡전곡 이경숙과 2중주 ▲92·94년 일본 소노다피아노콩쿠르 심사위원 ▲92∼경원대음대학장 ▲95년 김신자·신수정 두오콘서트(미시간주립대),광복50주년기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연주등 2중주 3중주 교향악단협연등 수회,일본 국제콩쿠르심사위원 ▲96년 독일 쾰른음대주최 국제피아노콩쿠르심사위원 〈수상〉 대한민국예술원상(78년)대한민국목관문화훈장(95년)
  • 첼로거장 로스트로포비치·다니엘 샤프란 내한 공연

    ◎로스트로포비치­새달 서울·부산서 바흐곡 등 연주/다니엘 샤프란­19·22일 브람스·슈니트케곡 선사 현존하는 첼로계의 「빅3」 미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69)와 야노스 슈타커(72),그리고 다니엘 샤프란(73).이 가운데 같은 러시아 출신으로 1950년 체코 프라하 국제콩쿠르에서 공동 우승하는등 끊임없이 「맞수」로 비교돼온 로스트로포비치와 샤프란이 잇따라 한국의 음악팬들을 찾는다. 첫 내한연주인 샤프란의 독주회는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하오7시 30분)과 22일 대구 경북대강당(하오7시)에서 열린다.세번째 내한하는 로스트로포비치는 6월4일 부산 문화회관 대강당(하오7시30분)과 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연주한다. 두사람은 모두 소련의 영향력있는 음악가를 부모로 두고 당대 거장으로부터 사사했으며,소련정부가 최고예술가에게 주는 「인민예술가」칭호를 받은 거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샤프란은 43년부터 모스크바필하모닉 솔리스트이자 독주자로 유럽·일본·미국등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나 음반은 러시아에서만 주로 나와 국내팬들에게는 생소한 편.최근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전곡 레코딩과 두차례 내한공연으로 친숙해진 로스트로포비치와 대조된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힘이 넘치고 거침없는 연주를 한다」는 평을,샤프란은 「낭만적이며 섬세한 가운데 강렬한 묘사를 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번 공연에서 샤프란은 자신이 편곡한 브람스의 「4개의 노래」와 슈니트케의 「알텐스틸 모음곡」을 비롯,브람스의 「첼로소나타 d단조」,브리튼의 「첼로소나타 C장조」등을 연주한다.로스트로포비치는 브람스의 「소나타제2번 F장조」,바흐의「무반주첼로 모음곡 제5번,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등을 연주한다.〈김수정 기자〉
  •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잇단 내한

    ◎러 「러시아 내셔널오케스트라」·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독 「베를린 도이치오케스트라」/플레트네프·자발리시·아시케나지 등 거장들 지휘/22일∼29일 각 대륙 대표적 화음 선사/차이코프스키·베토벤·멘델스존곡 연주 미국과 유럽,극동지역을 대표하는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잇따라 내한,각 대륙의 음악적 깊이를 선보인다. 22·23일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이끄는 러시아내셔널오케스트라(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 하오 7시30분)공연과 27·28일 볼프강 자발리시가 이끄는 미국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공연,그리고 28·29일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지휘의 독일 베를린도이치오케스트라(서울 세종문화회관대강당 〃)공연. 지난 90년 러시아 개방 이후 최초로 탄생한 민간교향악단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러시아 내셔널오케스트라」공연은 「러시아의 문화 재탄생」으로 평가되는 젊은 러시아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 78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와 77년 구 소련연방 피아노콩쿠르를 휩쓰는등 정상의 피아니스트로자리잡은 젊은 연주가이자 지휘자인 플레트네프(39)가 이 악단을 창단했다.레닌그라드필하모니,모스크바필하모니 악장들로 활동하던 연주자들이 과감히 국·관립 악단을 뛰쳐나와 창단연도를 무색케하는 기량을 자랑한다.93년 미국 순회연주에서 워싱턴타임스 등 현지언론으로부터 『앙상블의 힘과 광휘가 구 소련 교향악단의 어두운 빛과 하나로 연결됐다』는 호평을 받았다. 22일 공연에서 미하일 플레트네프 자신이 직접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을 협연하며 롯시니의 「윌리암 텔」서곡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된다.23일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미국에서 활동중인 줄리엣 강이 협연하고 글링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서곡,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이 연주된다. 1900년 창단된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는 쇤베르그,바르토크,라흐마니노프 등 20세기 주요 작곡가들의 대작을 초연,연주의 폭이 넓은 악단으로 유명하다.또 1937년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환타지아」음악을 교향악단으로서 처음 연주,교향악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헝가리 출신의 유진 오먼디,이탈리아의 리카르도 무티 등 명지휘자들이 지휘했으며 93년부터 이 악단을 이끌고 있는 볼프강 자발리시 역시 세계 정상급 지휘자 반열에 드는 거장이다. 이번 서울공연은 일본­한국­중국을 잇는 「아시아 투어­베토벤 페스티벌」의 하나.베토벤 곡으로만 레퍼토리가 구성돼 있다.서울공연에서는 「에그몬트」서곡과 교향곡제4번·6번(27일),「레오노레」서곡,교향곡 제5·7번(28일)을 연주한다. 베를린도이치오케스트라(구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공연은 삼성영상사업단이 기획한 「세계정상급 10대 오케스트라 국내초연 기획연주」의 첫번째 무대.지휘자 아쉬케나지는 제2회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는등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로 지난 89년부터 수석지휘를 맡고 있다.이번 공연에서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권해선과 핀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올리 머스토낸이 협연한다.연주곡목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3번,차이코프스키 교향악6번(28일),멘델스존의 「핑갈의 무덤」,모차르트 오페라 「마적」가운데 「복수의 소리」를 비롯한 아리아 3곡,베토벤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 등이다.〈김수정 기자〉
  • 「신춘가곡과 아리아의 대향연」/27일 하오 7시 세종문화회관서

    ◎새봄 화려하게 수놓을 성악의 잔치/이규도·엄정행·강화자씨 등 정상급 11명 출연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선사하는 주옥 같은 우리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의 향연이 새봄 무대를 장식한다. 27일 하오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신문사 주최로 열리는 「’96 신춘가곡과 아리아의 대향연」이 그것. 11명의 성악가가 출연하고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 수준높은 연주로 호평받고 있는 서울아트오케스트라(지휘 최선용)가 협연한다. 출연 성악가들은 소프라노 이규도·김인혜·신애령씨와 메조 소프라노 강화자·김학남씨,테너 박성원·엄정행·신동호씨,바리톤 김성길·고성현씨,베이스 김요한씨 등.1부는 주로 독창무대로 꾸며지며 2부에서는 2중창과 4중창,합창의 공연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우리 시대의 프리마돈나」로 통하는 이규도씨(이화여대 교수)는 가곡 조두남의 「학」과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중 「그렇다면,나는 멀리 눈속으로」를 부른다. 국내 오페라 연출 여성 1호로 김자경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한 강화자씨(연대 교수)는 김동진 곡 「진달래꽃」을,한국인으로서 처음 이탈리아 라 스칼라 무대에서 「나비부인」주역을 맡은 바 있는 김학남씨는 김동진 곡 「저구름 흘러가는 곳」을 들려준다. 88년 미국 「뉴욕타임스」로부터「발성과 음악 스타일에서 뛰어난 연주자」란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김인혜씨(숙대교수)는 김동진 곡 「가고파」를 부른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성악가로 꼽히는 엄정행씨(경희대 교수)는 조영식 곡 「목련화」를,국립오페라단장을 역임하고 「토스카」등 오페라 무대에서 폭넓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박성원씨(연대 교수)는 민요 「박연폭포」를 부른다. 또 바리톤의 정통파로 불리는 김성길씨(서울대 교수)는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중 「배반자는 그대」를, 바리톤의「대포」로 불리며 한국오페라계 신세대 스타로 급부상한 고성현씨(한양대 교수)는 신동수 작곡의 「산아」를 선사한다. 이번 신춘가곡대향연의 또하나의 특징은 최근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신예들이 출연한다는 점이다.이탈리아 롯시니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비아니스 국제콩쿠르등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김요한씨와 미국 줄리아드 대학원을 졸업한뒤 링턴센터 공연등에서 주목받은 신애령씨(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가 그 주인공.두사람은 변훈 작곡의 「명태」와 이수인작곡의 「고향의 노래」를 들려준다. 이밖에 베르디의「라 트라비아타」중 「축배의 노래」,「리골레토」중 「언젠가는 모르지만」을 비롯,비제의 「진주 조개잡이」중 「신성한 사원에서」,도니제티의 오페라「라 파보리타」중 「아,나의 사랑」등 오페라 아리아와「그리운 금강산」「오 솔레미오」등이 2중·4중·합창의 레퍼토리로 선보인다.〈김수정 기자〉
  • 세계 유명 무용단·음악인 내한공연 “풍성”

    ◎미국의 조프리발레단·ABT 각 6·9월에 공연/서울신문초청 볼쇼이소년소녀합창단도 내한/홍혜경·조수미·백건우·장한나 등 고국무대에 올해는 한국을 처음 찾는 외국 유명 발레단의 공연이 줄을 잇는 등 세계적인 음악·무용단(인)의 내한공연이 풍성할 전망이다. 국내 무용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외국무용단은 미국의 조프리 발레단,아메리칸 발레 시어터,화이트오크 댄스컴퍼니등. 재즈발레의 독창적 경지를 개척한 조프리 발레단은 오는 6월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빌보드」를 선보인다.로버트 조프리에 의해 지난 56년 창단된 이 발레단은 제럴드 아르피노가 안무한 「아스타르테」로 시사주간지 「타임」표지에 등장할 만큼 미국내에 발레붐을 불러일으킨 단체다. 또 오는 9월16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질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는 뉴욕시티발레단과 함께 미국발레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발레단.영국의 로열발레단,러시아의 볼쇼이발레단 및 키로프발레단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명성을자랑하는 이 무용단은 「지젤」「돈키호테」「백조의 호수」등 널리 알려진 레퍼터리 가운데 2개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다. 지난 74년 키로프발레단의 캐나다 순회공연 도중 자유세계로 탈출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이끄는 화이트오크 댄스컴퍼니는 오는 4월4·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첫선을 보인다.강렬한 율동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바리시니코프가 이번 무대에서 환상적인 무용세계를 한껏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음악에서 보면 5월에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27·28일 예술의 전당)와 베를린방송교향악단(27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공연이 나란히 펼쳐지고 11월에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9·10일 예술의 전당)가 한국을 찾는 등 올 한햇동안 모두 10여개 교향악단의 내한공연이 열린다. 루치아노 파바로티·호세 카레라스·플라시도 도밍고 등 세계 성악계 「빅3」의 뒤를 이어 성악계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탈리아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가 3월24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갖는다.알라냐는 지난 88년 파바로티콩쿠르 1위와함께 몬테 카를로좌와 라 스칼라좌에 데뷔했으며 92년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라보엠」의 로돌포로 등장,극찬을 받은 바 있다. 러시아 볼쇼이극장 소속의 「볼쇼이 소년소녀 합창단」은 서울신문 초청으로 8월15·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청아한 음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또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6월5일)와 그의 제자 미샤 마이스키(5월17일 예술의 전당)의 내한공연이 잇달아 열리고 「파가니니의 재래」로 일컬어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는 11월7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영혼이 깃든 선율로 국내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와 함께 신세대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6월18일)과 막심 벤게로프(7월13일),중국계 천재소녀 피아니스트 헬렌 황(5월11일)과 「건반위의 이단아」 이보 포고렐리치(11월29일)의 내한공연도 예술의 전당에서 이뤄진다. 이밖에 세계적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음악인들의 공연계획도 풍부하게 짜여져 있다. 지난해 이미 고국팬들의 열광을 받은 바 있는 소프라노 홍혜경(5월)·조수미(10월)·신영옥(12월)이 다시 고국을 찾는가 하면 바이올린의 신예 줄리엣 강(6월)과 데이비드 김(6월),첼로의 장한나(10월),피아노의 백혜선(3월)·백건우(5월·11월)등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발길이 잇따를 예정이다.
  • 서울신문 선정 「올해의 문화인물」 10인

    ◎전수천­베니스비엔날레 수상 이용우­광주 비엔날레 전시 기획 정명훈­금관문화훈장 받아 강수진­독서 발레리나로 활약 김아라­서울 연극제 석권 신경숙­여공시절 작품화해 호평 김종학­「모래시계」를 연출 박광수­노동운동가 전태일 영화화 최근덕­“유교 종교화” 주역 룰라­6회 서울가요대상 영예 「미술의 해」인 95년 우리 문화계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외형적 성공을 거둔 광주비엔날레를 잘 치러냈다. 또한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뜻있는 공연도 끊이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건·사고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정치적 격변속에서 문화계는 사상 유례없는 침체와 불황의 늪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올해는 또 우리문학의 거장인 김동리선생과 세계적 명성의 원로조각가 문신씨,국악계의 보물 김소희여사,세계가 인정하는 현대음악계의 정상 윤이상선생이 유명을 달리하여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많은 문화인들이 올 한해 우리 문화마당의 전면 혹은 이면에서 한국의 문화역량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올해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이름을 빛낸 10명의 문화인물을 통해 지난 1년간 우리 문화계를 돌아본다. ★전수천(47·설치미술작가) 지난 6월 세계최고의 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원년행사에 출품한 작품「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1백년 전통의 이 미술제에서 한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올해 국내 최고의 미술잔치인 광주비엔날레에도 특별전「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전」에 수만마리의 누에고치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출품,관람객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작품으로 꼽혔다.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다 지난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뽑혀 국내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베니스비엔날레 수상과 함께 올해 국내 미술계의 가장 떠오르는 작가로 부상했다.최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용우(46·고려대교수,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역임)한국의 문화역량을 빛낸 광주비엔날레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해낸 인물.일간지 미술기자를 거쳐 미술평론가로 등단하고 지난 93년부터 고려대 미술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변신한 그는 국내 미술평론가중 해외 미술무대에 여러 역할을 맡아 가장 진출을 많이 하는 인물로 꼽힌다. ★정명훈(42·지휘자)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지난해 프랑스의 묘한 정치적 알력에 휘말려 바스티유오페라단의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아쉬움을 만회하듯 고국에 쏟는 열정이 대단했다.지난 8월15일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축전음악회­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에서 지휘봉을 잡아 한국을 빛낸 기라성같은 음악인 20명과 함께 벅찬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이로 인해 최근 정부로부터 문화인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그는 또 고국에 기여하는 자세로 지난 5월 「음악을 통한 환경보호 캠페인」에 나서 환경뮤지컬 「오션월드」의 기획과 지휘를 맡아 환경보호에 대한인식을 제고시켰다. ★강수진(28·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원) 지난 10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통상 발레단의 최고무용수에게 돌아가는 시즌 첫 공연의 주역을 따내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선화예고 1년에 재학중이던 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가 85년 세계 3대 발레콩쿠르의 하나인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국발레의 자존심을 높였다.「마적」「마타하리」「로미오와 줄리엣」등에서 프리마돈나로 이미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내년에 공연될 빈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마타하리」객원스타,슈투트가르트의 내년시즌 공연작 「오네킨」과 「에드워드 2세」에서도 주요 배역을 내정받은 상태다. ★김아라(39·극단 무천 대표) 지난 10월 제19회 서울연극제에서 「이디푸스와의 여행」으로 영예의 대상과 연출상등 4개 부문을 석권,올해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86년 「장미의 문신」으로 데뷔한 이래 「숨은 물」「메모렌덤」등 잇따른 우수작품으로 90년대 국내연극계를 주도해오고 있다.내년에도 4월 뉴욕에서 「이디프스와의 여행」 공연에 이어 10월에는 덴마크 오페라하우스 초청으로 유럽 및 아시아 3개국 배우들과 「리어왕」을 연출할 계획이다. ★신경숙(33·소설가) 장기적,전반적인 출판계 불황속에서 작가 신경숙씨의 약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지난해 발표한 단편 「깊은 숨을 쉴때마다」로 올초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몇달 간격으로 펴낸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과 두번째 장편소설 「외딴 방」1,2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려 여전한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뿐만 아니라 산업체 노동자 시절을 털어놓은 「외딴 방」으로 작품세계의 질적 성숙을 이뤘다는 찬사속에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소녀취향」이라는 부담에서도 벗어났다.신씨의 부상은 다분히 90년대의 새로운 징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종학(44·프로듀서) 올해 방송가 최고의 흥행작 「모래시계」를 만든 장본인.온 국민을 안방TV에 붙들어맬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는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 「모래시계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지난 77년 MBC에 입사,「영웅시대」「인간시장」「여명의 눈동자」 등 숱한 화제작을 제작한 김PD는 역사와 흥미를 적절히 결합한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명의 눈동자」로 93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방송대상을 수상한뒤 프리랜서를 선언,작가 송지나·음악 최경식등 「김종학 사단」을 이끌고 SBS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제는 영화쪽으로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박광수(41·영화감독) 올해 우리 영화계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을 화제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노동운동가 전태일 분신 25주기를 기념해 만든 이 영화는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진실의 힘을 일깨워줬다』는 평과 함께 매진사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이래 「그들도 우리처럼」「그 섬에 가고싶다」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를 주로 선보여온 박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한번 투철한 작가정신을 인정받았다. ★최근덕(63·성균관장) 최근덕 성균관장은 유교를 현대화된 종교로 탈바꿈하기위해 종단을 새로 설립하고 종단의 대표를 총전으로 하는 유교 개혁안을 올해 11월에 확정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최관장은 1년 7개월동안 유교의 개혁안을 추진한것은 2천5백년된 유교가 현대에 적응하기위해서는 제사제도와 기구와 조직등을 과감히 현대화해야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최관장은 지금까지 음력으로 지내던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인 춘계·추계석전제를 양력으로 확정하는등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했다. 최관장은 앞으로 전국 2백30여개 향교와 22만 유림들을 종교단체와 종교인으로 이끌기위한 전문인력을 육성하기위해 충남 천안에 유학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룰라(가수·댄스그룹) 김지현·채리나·이상민·고영욱 등 4명으로 이루어진 댄스그룹 룰라는 지난해 「백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초 발표한 「날개잃은 천사」가 수록된 룰라의 2집 앨범은 올 한해동안 1백50여만장이 팔리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룰라는또 지난 9일 열린 스포츠서울 주최 제6회 서울가요대상에서 영예의 최고가수상을 차지,국내 최고의 댄스그룹임을 입증했다.
  • 꿈과 도전의 21세기… 50인을 주목하라(서울신문 50돌 특집)

    꿈과 도전의 시대인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는 각계의 유망주 50인을 서울신문이 뽑아 소개한다. ▷정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43세.부인과 1남1녀.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신문기자를 거쳐 12대부터 내리 당선한 3선의원.문민개혁 완성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97년 대선에서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포부. ◎손학규 민자당 대변인 49세.부인과 2녀.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교수를 지낸 초선의원.선진정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첨병이 되는 것이 포부. ◎이인제 경기도지사 46세.부인과 2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13·14대 재선의원을 거쳐 6·27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충실한 지방살림꾼으로 지방자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포부. ◎강재섭 민자당 국회의원 48세.부인과 1남1녀.서울법대를 나와 서울고검 검사,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재선의원.만성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법치가우선하는 정치문화 정착이 포부. ◎박종웅 민자당 국회의원 42세.부인과 1남1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초선의원.건전한 청소년문화 정착과 환경보존에 힘써 통일조국 기반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포부. ◎이철 민주당 원내총무 47세.부인과 2녀.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3선개헌반대투쟁 전국학생대표를 지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3선의원.변화와 개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 ◎이석현 국민회의 국회의원 46세.미혼.서울법대를 나와 전국 카톨릭학생총연합회장과 평민당부대변인을 지낸 초선의원.계층,지역간 차별을 해소하는 조세제도로 경제정의를의 실현하고 정치권의 자정을 이루겟다는 것이 포부. ◎신계륜 국민회의 국회의원 41세.부인과 2남.고려대 법대 재학시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민련 민중1위원장을 지낸 초선의원.세대간,지역간,계층간 대립을 극복하는 「열린 정치」와 「통합정치」를 이루겠다는게 포부. ◎허대만 포항시의원 26세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경북도 최연소의원.포항지방자치연구소의 정책실장을 맡아 지방의회발전방향 연구.포항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졸.경실련의 서울대 대표및 포항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관계◁ ◎유재웅 공보처 방송행정과장 38세.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정부안에서 방송실무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지난해 지역민방 선정과 통합방송법 제정의 산파역을 했다.방송선진화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것이 포부. ◎김영목 경수로기획단국제협력부장 43세.서울대 불문과 졸.73년 외무부에 들어왔다.외시 10회.경수로 건설 사업과정에서 미국·북한과의 협상 업무를 맡고 있다.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 ◎조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38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57년부터 외무부에 몸을 담았다.외시 13회.WTO출범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외교를 맡고 있는 실무 주역.WTO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나가는 것이 포부. ◎송영무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47세.부인과 2녀.대령·해사 27기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획과장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호위함 함장등을지낸 작전통.통일 이후 영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해양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포부. ◎추경호 재정경제원 사무관 35세.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행시 25회.재정경제원 종합정책과에 근무.신경제5개년계획의 추진 및 각종 경제운용 계획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활력 넘치는 경제사회 실현이 꿈. ◎정승일 통상산업부 행정사무관 31세.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행시 33회.통산부 미주통상과에서 근무하고 있다.자율화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정책개발이 포부. ◎맹병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27세.충남 천안출신으로 경찰대학 7기.법학은 물론 사격·운동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전교 5등으로 졸업.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과 가까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차세대경찰의 기대주. ▷사회◁ ◎김진학 사회복지전문요원 37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보건복지부 공채 1기.사회복지전문요원 동우회회장.현인원은 3천명.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사회복지수준을 일구겠다는 포부.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정책실장 30세.서울공대 산업공학과 졸.91년 페놀사건,지난해 낙동강 식수오염사태 조사활동.그린피스와 시베리아 산림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답사.지방자치와 통일시대에 걸맞는 환경정책 개발과 시민운동이 꿈. ◎박찬운 변호사 35세.인권변호사.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제도 운영규칙 입안주도.대한변협 기획실장 및 성폭력상담소·소비자보호원 법률자문위원.「알기 쉬운 인권지침」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등 저서 다수. ◎정유성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39세.교육운동가·공동육아연구회운영위원·연세대강사·독일 뮌헨대학 교육학박사.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민간교육운동을 이끌어갈 인물.학부모 프로그램인 「학부모 아카데미」 개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35세.서울대 경제학과 졸.86년부터 노총 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노동문제나 임금문제에 정통한 노동계의 이론통이자 행동가.학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주도. ◎최헌규JC대전지구회장 36세.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졸.7년째 청년운동을 이끌고 있다.변화와 개혁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고 국민대화합을 실천하는 데 앞장.지방의 청년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포부. ◎김경호 경실련 부정부패추진위간사 29세.91년 연세대 법학과 졸.시민의 민원과 고발,진정사항을 검토하고 정부기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경실련의 포괄적인 시민운동을 보다 전문화·구체화시키겠다는 포부. ▷학계◁ ◎성영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39세.분자생물학자.연세대 생화학과를 거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하버드 의과대등에서 연구.만성 간질환의 주요원인인 C형 간염 유전자 백신 개발에 이어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중.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 38세.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이론물리학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소장 학자.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인간 뇌의 물리학에 도전중. ◎이성환 고려대 전산학과 조교수 33세.인공지능 연구자.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읽을수 있는 필기체 인식 컴퓨터 개발이 전공.사람 닮은 똑똑한 로봇을 만들겠다는게 꿈.▷경제계◁ ◎김병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팀 과장 32세.서강대 전자계산학과 졸.85년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신규 프로젝트 기획 등을 맡아왔다.유망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차인규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과장 36세.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베스트셀러카인 쏘나타Ⅱ의 외장 부품을 설계했고 엘란트라 프로젝트를 관리.벤츠와 도요타 등 유명한 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것이 꿈. 나인용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33세.홍익대 대학원 제품디자인과 졸업.크레도스와 프레지오 디자인을 맡았다.앞으로는 강한 개성을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의 디자인을 맡고싶어 한다.교통난을 해결할 차세대 교통기기 개발의 꿈. ◎김석규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35세.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석사.13개 펀드 운용.연간 운용 총자산규모 3천8백억원으로 국내 펀드매니저중 최상급.국제적 펀드매니저로 이 분야의 명저서를 남기는 것이 꿈. ◎김두별 대우 기계부품부 사원 26세.고려대 경제학과 졸.21세기 무역거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3국간 거래 전문가로 활약 중.3국간 거래가 활발한 중동지역을 집중 연구,중동 전문가로 활약이 기대됨. ◎전진한 포항제철 기획조정실 26세.한양대 정외과 졸.포철의 심장부 투자기획파트에서 활약.사내 어학연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어학에 발군의 실력.포철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희망. ◎조윤제 한국과학기술원선임연구원 31세.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구조생물학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30세때 코넬대 의대 부속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 표지에 소개. ◎최흥섭 대한항공 선임연구원 33세.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공학박사.항공기의 중요부품을 가볍고 강한 복합재료로 바꾸는 세계적인 추세에맞춰 이 분야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국산 항공기가 세계 하늘을 누비는 것이 희망. ◎이지희 오리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4세.84년 한양대 신방과를 졸.(주)오리콤 입사.중앙일보 광고상 공모부분 대상,한국일보 신인부 대상 수상(84년).오리콤의 유일한 여성 CD.기억에 남을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꿈. ◎오충렬 외환은 외화자금부대리 33세.연세대 경영학과 졸.88년 외환은행에 입행,2년8개월동안 일선 은행업무를 익힌후 4년2개월동안 외환딜러로 근무.3개월간 미국 시카고 금융선물중개회사에서 연수.한국 제1의 데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딜러가 꿈. ▷문화예술◁ ◎이병헌 연기자 25세.한양대 불문과졸.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드라마 「사랑의 향기」 「아스팔트의 사나이」 「해뜰 날」등에 출연.신선한 감각에 연기력도 우수하다는 평.차세대스타로 가장 유망. ◎신경숙 소설가 32세.85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출간.삶의 속내를 들추는 우수젖은 문체의 미학 보여줌. ◎이미경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45세.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정외과를 나왔다.87년 여성단체연합 태동때부터 살림을 도맡아왔다.가정·일터에서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해결,여성도 당당히 주체가 되는 사회를 일구겠다고. ◎최용훈 극단 「작은 신화」대표 32세.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연극연출가.「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쿠데타」등 연출.창작극 활성화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우리연극만들기」운동주도.우리연극의 모델을 정립하는 게 꿈. ◎조덕현 서양화가 38세.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졸.이화대 미대 교수.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89년)·동아미술전 대상(90)을 수상.90년대 이후 미국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국제무대에 알려진 젊은 작가. ◎백혜선 피아니스트 30세.예원중 재학중 도미,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아티스트 디플롬과정 졸업.94년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로 입상,올해 서울대 교수로 발탁.국내 음악계의 기대주. ◎박호빈 무용가 29세.서울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을 전수받았다.94년 젊은 무용가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신작무대」대회에서 현대무용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은주 김영사대표 38세.미혼.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와 83년 김영사에 입사.편집장 때 뛰어난 기획능력을 보여 베스트셀러를 많이 냄.89년 출판사 대표취임.전문지식의 대중화,대중의 고급화를 이루는 게 꿈. ◎이광모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34세.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 UCLA에서 영화연출 전공.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로 재직.예술영화 보기운동을 통해 상업영화에 물든 우리 영상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포부. ▷체육계◁ ◎현주엽 고려대 농구선수 20살.키 195㎝와 체중 103㎏.고무공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호쾌한 덩크슛에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까지 탁월.지난 5월 「청소년 월드올스타」로 뽑혔다.세계적인 농구지도자가 되는게 꿈. ◎박세리 공주금성여고 골프선수 18살.여자 프로골프계 「천하통일」을 노리는 신예.올시즌 아마추어 3개대회와 프로대회 4개대회 우승.1라운드 평균타수 71·1타.내년 2월 여고 졸업과 함께 프로 진출을 결심,삼성물산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전미라 군산 영광여고 테니스선수 17살.94년 윔블던 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한 「무서운 샛별」.내년 여고를 졸업하고 현대해상 테니스팀에 입단 예정.세계 50위권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에 차있다. ◎주형광 프로야구 롯데 투수 19살.프로 최연소 완봉 및 완투 신기록을 보유한 고졸 2년생.배짱과 마운드 운용이 뛰어난 10대 투수 가운데 선두주자.한·일 슈퍼게임에 최연소 대표로 선발됐다.최고 왼손투수가 되는 게 꿈. ◎이경출 상무 양궁선수 25살.경남 복산국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양궁과 인연을 맺은 뒤 15년째인 올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늦깎이 남자 양궁 희망주.승부욕이 뛰어나다.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게 꿈.
  • 음악 평론가 이강숙씨(이세기의 인물탐구:85)

    ◎음악미학의 본질 꿰뚫는 이론가/찬사 일변도의 평을 거부,혹평으로 더 유명/“악기의 노예 만들지 말라” 어린이교육 경고/최근엔 그림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 발간해 눈길 이강숙(음악 평론가) 「타협을 모르는 직선적인 성격」「한국음악 발전을 위한 해박한 이론과 지식」「탁월한 지도력과 아이디얼리티」는 음악평론가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교장을 표현하는 수사들이다.그는 일관성없는 찬사일변도의 평을 거부하여 호평·혹평을 선명히 가리는데 앞장서 왔고 서양음악만이 음악으로 간주되는 인식변환을 위해 지난 90년 음악의 모국어를 탐색한 「한국음악학」을 출간했을 때는 「1백년 안에 나올 수 없는 역저」로 음악계는 온통 이를 찬사해마지 않았다. 「인간은 왜 음악을 하며 그것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고전음악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속에서 현란하게 변화해 가는 음악의 존재와 「자연의 심장은 모든 부분이 바로 음악」이라는 칼라일의말에 접근하면서 이 책은 「음악을 왜 하는가」란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하고 있다. 「상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하게 바라보는 그의 천부적 직관」은 음악과 관련된 작은 단서하나에도 결코 무심하지 않아 음악에서 「생명력」이 없거나 악보속에 숨겨진 기쁨과 슬픔을 발견하지 못하는 연주는 가차없이 혹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80년대초 전국의 교향악단이 참가하는 「교향악 축제」를 보고 「서울 지방간의 수준차를 절감하는 기회가 아니라 각기 다른 지방의 음악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을 촉구한 일과 당시 부산시향의 연주를 향해 「아무리 지방악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휘봉을 흔드는 법이 어쩌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일까」를 통박하고 「여운이 없는 소리,벽에 와서 부딪치기만 할 뿐 에코가 없는 소리는 죽은 음악에 불과할 뿐 연주자는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로 노래불러야 한다」고 강변하여 음악계를 크게 긴장시키기도 했다. ○“악기로 노래불러야” 강조 81년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 총감독으로 있을 때는 단원의 고질적인 타성을 개선한다는 차원에서 전대미문의 오디션단행으로 후유증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교향악단의 자질향상과 처우문제,유능한 지휘자 확보,관주도형 운영방식 탈피,연주횟수 증가 및 한국 창작곡연주 활성이라는 굵직한 업적을 이룩하여 「음악외적인 지도력과 괄목할 만한 수완」을 일사불란하게 발휘해 보였었다. 아동음악 교육에 대해서도 「유학만이 음악의 길인가」라는 평문을 통해 「어린이를 악기의 노예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스키너상자(상자)」를 인용한 「상자속의 생쥐」론에서는 「인간의 잠재의식속에 내재된 천재성과 의식적인 훈련의 모순성」을 상자속의 지렛대와 생쥐의 움직임에 비유하여 「실기 위주」의 음악은 「과열레슨,입시부정의 부작용을 초래할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또한 그가 개인의 힘으로 발간한 「낭만음악」을 음악교육 이론지로 정착시킨 점과 유진 올만디,존 케이지,바렌보임,푸르트벵글러등 세계 정상의 음악가들과의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은 원로 박용구씨에 의하면 「그만의 독자적 표현법이자 한국 음악평의 격조를 한단계 끌어올린 새로운 평론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자적인 표현… 격조 높여 그는 대체로 혹평을 꺼리지 않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에 관한한 「세계 어느곳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모든 조건을 구비한 연주자」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90년 「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의 전통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겉으로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안에서 흐르는 눈물이 홍수를 이룬다」고 무조건적인 편애를 감추지 않기도 한다. 그를 만나지 않고 그의 이름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작곡가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음악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이론가답게 그의 이미지는 얼핏 지나치게 반듯하고 원칙적이며 빈틈없어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훤칠한 키에 미남,경북 청도(청도)에서 태어나 경북중시절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타고난 미성에다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숙명여고 교사시절에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쇼팽」으로 불리기도 했다.박력있고 대범한 도시기질에다 어떤 논쟁에서도 양보하지 않는 특유의 고집때문에 「고집 그자체」도 그의 별명의 하나다. ○직선적 평… 신선한 충격 음대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와 형들(2남2녀중 막내)의 반대에 부딪쳐 홀로 집을 나와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했으나 「위대한 작곡가의 대부분은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임을 상기하여 대학 2학년 되던 해 피아노과로 전과했고 64년 임원식 지휘로 국향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전악장을 국내 초연,피아니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가 했더니 다음해 「사상계」가 모집한 신인작가 소설모집에 응모하여 다시한번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이청준의 「퇴원」에 밀려 소설이 탈락되자 「문학을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음악에 관한 글」을 쓰게 되어 한 일간지에 본격적으로 음악평을 게재하기에 이른다. 그의 특이한 지적 예리성은 음악미학의 본질을 원초적으로 연구분석하고 이를 정곡으로 꿰뚫어 문체의 일총(일총)과 현목(현목)의 영롱함을성취하면서 직선적이고도 정치된 이론으로 음악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전망을 그때마다 제시하여 경각심과 함께 통쾌한 충격을 던지곤 했다. 센서티브하고 나이브한 일면에 엄격한 자존심이 도사린 그를 향해 국악작곡가 황병기(이대 교수)는 「심성이 깨끗한 예술가」로 표현하고 서울대 동료교수였던 강석희(작곡가)는 「음악을 하고(행) 아는(지)일과 그것과 상관되는 글을 쓰는일,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의 집행을 위한 탁월한 리더십은 조직을 움직이는 행정의 능력에도 뛰어나다」고 조언한다.가족은 숙명여고 교사시절에 만난 시인 문희자(문희자)씨와의 사이에 2남1녀,위로 남매는 미국에 있고(장녀 윤수씨는 미 오하이오 주립대교수,장남 석재씨는 예일대교수)부부는 막내 아들(인재·서울대 자연대 재학중)과 서초동에 살고 있다. 그는 최근 엉뚱하게도 이색적인 그림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을 내 또한번 주위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음악천사의 슬픈 사랑의 희생을 통해 이땅에 최초의 음악가 탄생을 그린 이 동화는 이제까지의 딱딱한 그의 이론서들과는 달리 간결한 소넷의 시적 이미지와 함께 읽는 이의 가슴에 한줄기 청랑한 선율이 흘러 들게 한다.낭만과 학구적인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그는 모든 예술가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는 아니며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형상화 작업에 침몰하는 단순한 이론가」에 그치진 않아 보인다.단지 그가 이 땅에 탄생시킨 음악천사의 희생처럼 「왜 사느냐」의 의미를 문학적 음악이론으로 실천시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행정가로서의 수완을 유감없이 과시하는,이시대 예술계에선 보기드문 「투철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연 보 ▲36년 경북 청도출생 ▲53년 전국성악콩쿠르 특상 ▲54년 서울대음대콩쿠르 2위입상 ▲61년 서울대음대 피아노과졸업(김원복교수 사사) ▲64년 국향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제2번」한국초연 ▲66∼68년 서울대음대 강사 ▲65∼68년 계명대음대 피아노과 조교수 ▲68∼70년 미휴스턴대음대 석사과정(음악문헌학전공) ▲70∼75년 미미시간대음대 음악교육학 박사 ▲75∼77년 미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조교수(음악교육및 이론) ▲77∼92년 서울대 음대교수 ▲81∼83년 KBS교향악단 총감독,영국 EBU합창경연대회 심사위원 ▲85년 서울대 교무담당 학장보 ▲86년 음악학연구회 창립,회장 ▲88년 88 서울올림픽 걔폐회식 상임위원,낭만음악사창립 계간 「낭만음악」 겨울호 창간 ▲92∼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서울문화예술평론상 「음악의 방법」(82년)「열린음악의 세계」(80년)「음악의 이해」「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85년)「음악과 지식」「종족음악과 문화」(87년)「음악선생님을 위하여」「한국음악학」(90년)「김순남 그 삶과 예술」(92년) 동화집 「음악천사의 사랑」(95년)
  • 세계 남성테너 세대교체 바람

    ◎불 30대 귀족풍 로베르토 알라냐 등장/파바로티·도밍고 등 「빅3」 아성 공략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 등 「빅3」가 지배해온 세계 테너계에 세대교체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여성성악의 꽃 소프라노에서는 싱싱한 새별이 잇따라 등장했으나 테너의 경우에는 이 「빅3」가 오랫동안 세계무대를 주름잡으며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해왔다. 「빅3」의 영향력은 공연무대는 물론 음반출반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위력을 행사해 이들의 음반은 항상 판매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물러설 줄 몰랐다.보리스 흐보로스토프스·브라인 터펠 등 몇몇 신인이 간간이 얼굴을 내밀기는 했으나 「빅3」의 빛에 가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전세계 음악인은 최근 파바로티의 목소리,도밍고의 연기력,카레라스의 외모를 모두 겸비한 한 신인가수에게 온통 눈길이 쏠려 있다.전성기를 지난 「빅3」의 뒤를 이을 제4의 테너를 갈망해온 음악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은 귀족풍의 준수한 기품을 갖춘 로베르토 알라냐(32).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알라냐는 원래 파리의 한 피자가게에서 팁을 받으며 매일밤 8시간씩 노래를 부르던 아마추어가수였다.그러다가 어느날 그의 노래를 듣던 한 성악교수가 클래식 오페라풍의 팝송을 부르는 그를 「제2의 파바로티」감으로 지목해 매니저에게 소개함으로써 마침내 알라냐는 클래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정통클래식에 입문한 그는 첫번째 오디션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주역 알프레도역을 따냈으며 88년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90년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좌에 선 뒤 92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함으로써 세계 유명 오페라단으로부터 집중적인 출연공세를 받게 된 알라냐는 93년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밀라노 스칼라좌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역으로 출연,마침내 정상급 스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에는 뇌종양으로 죽은 아내에 대한 슬픔을 딛고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타이틀 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비평가들의 찬사속에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오페라 「카르멘」중 젊은 돈 호세가 사랑을 고백하는 아리아에 대해 『사랑의 고백인 만큼 부드럽게 불러야 하는데 선배 테너들은 마치 전쟁을 선포하듯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예리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 장백현 민간 예인(압록강 2천리:8)

    ◎민족혼 담긴 「함경도 수박춤」 사라질판/예인 김학천옹 와병… 생활고로 은둔 생활/중앙정부 지원금 적어 유·무형 문화재 관리 엄두 못내/한글판 잡지 「장백」…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 장백현에는 문화전반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문화관이 있다.문화예술은 물론 체육과 오락,성인교육활동을 담당해온 장백현문화관은 지난 194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이 문화관은 현안에 92개 촌단위 문화실과 연계되었다.문화실은 대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문화오락활동을 벌여왔다.반달이나 한달을 주기로 여는 노인무도회·장기대회·문예공연·이야기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촌 문화실마다 마치 공통과목과 같은 별도의 활동이 또 있다.어느 촌이든 농악대를 운영하는 것이다.특히 태양촌 농민악대가 유명하다.지난 1989년 길림성 혼강시(장백은 혼강시 관할에 속함) 제2차 농민문예공연에서 1등을 차지한 농악대다.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장백현문화관의 문예보도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장백현문화관은 19 92년부터 3년간 내리 길림성 전체에서 2등 자리에 올라서는 영예를 안았다.기관지로 한족어 위주의 「장백문화보」와 한글판 「장백」잡지를 내고 있다.「장백」은 제5호를 끝으로 마감했다.그 이유는 재정난 때문이었다.국가에서 해마다 주는 16만원의 사업비로는 20명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나면 전화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악대 촌 단위로 운용 장백현문화관장은 조선족 문단에서 꽤나 문명을 날리는 이성태 선생이다.중편소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발표한 이후 여러 문인을 길러냈고 많은 전설과 문화유산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그는 문화관의 어려운 살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았다. 『문화사업은 본래 돈을 들여야 되는 일이 아니겠습네까.그런데 지난달 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 창립기념 조선족예술절 경비로 문화관 수입이 벌써 거덜이 났디요.문화유산 발굴은 커녕 문화재 관리도 어려운 판이야요.그 유명한 민간예인 한분이 병환에 계신줄 알면서도 도움을 못드리고 있디요.한국 같았으면 인간문화재라 해서 생활보장은 될텐데…』 그의 민간예인이라는 말이귀에 번쩍 들어왔다.아니나 다를까 와병 중이라는 민간예인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김학천(64)노인이었다.그는 장백현문화관장을 지낸 동생 김학현(60)선생과 함께 지난 1990년 요령성 단동에서 열린 전국 소수민족문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분이다.그 때의 수상작품은 수박춤이었다.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심사위원들이 며칠 계속된 콩쿠르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수박춤을 구경하던 관객들의 박수에 놀라깨어 침을 흘리면서 춤에 도취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김학천·학현 형제는 울로초를 가지고 미니스커트 모양으로 짧게 엮은 치마만을 팬티위에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수박춤에는 이렇다 할 악기반주가 없다.다만 주연격인 형이 발가벗은 사지를 이리저리 치면서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냈다.그 소리는 바람,우레,비,짐승,새 소리 등 무궁무진했다.동생은 함지박 물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들겨 형의 손바닥 장단을 따라 맞추었다.흥이 한껏 돋아나면 형이 여러 형태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리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손바닥으로 쳤다.이들 일가는 함경북도 단천군에서 지난 1962년 77세로 작고한 아버지 김달순대에 장백현으로 들어왔다.이주지는 14도구 간구자였는데 슬하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아버지가 가보로 여긴 수박춤은 셋째 아들 김학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이미 고인이 된 맏아들은 목청이 나빠 아버지 마음에 들지 못했고 둘째는 조선(한국)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친한테서 전수 받아 그리고 넷째 아들 김학현은 어려서 집을 나와 공부를 하다가 조선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았다.그렇지만 그 핏줄이 그 핏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재질이 뛰어났다.넷째는 공부도 제대로 한터라 1959년 장백현문예공작단(문공단)이 생겨나면서 부단장과 단장을 지내고 장백현문화관장을 끝으로 사회공작(사회생활과 일)을 마무리 했다.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공단은 통화지구에서 유일한 조선족단체여서 현 밖을 자주 나갔디 않았겠수.통화,유화,임강,혼강,휘남 같은 도시에 나가면 극장이 미어졌수다.인근 농촌 조선족들은 찰떡을 해서리 기차를 타고 버스도 타고 와서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으며 관람을 했지 않슴메.도시공연이 끝나면 농촌을 돌았는데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비.그래도 인심이 좋아 동구 밖까지 와서 환대했댔수다.어떤 사람들은 타지로 떠나면 짐을 지고 따라와 같은 공연을 며칠씩 보기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디우』 김학현 선생과 함께 그의 형님 김학천 노인을 찾아나섰다.집은 장백현 14도구진에 있었으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늙은 양주가 더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들어가 과수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했다.차가 더 기어올라갈 수가 없어서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포수막을 닮은 귀틀집이 보였다.좁은 마당에 배추며 부추가 자랐다.그러나 지난해 옮겨심었다는 사과나무는 몸살에 걸려 아직 사과 한톨도 매달고 있지 않았다. ○올로초 치마입고 춤춰 그 집에서 나오던 김학천 노인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나이에 비해 너무 겉늙었으려니와 허리가 잔뜩 굽어 1m67㎝라는 키가 1m20㎝도 안되어 보였다.얼굴의 피부는 소나무껍질 같이 주름 투성이었고 러닝 밖으로 드러난 살결이 무척이나 검었다.설상가상으로 근육위축병에 걸려 손발이 쪼그라 들었다.목불인견의 몰골 그것이었다. 노인은 윗옷을 훌훌 벗었다.그리고 벽에 걸린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모처럼 찾아온 나그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동생 김학현선생도 따라서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노인은 손바닥으로 앙상한 몸골을 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고 앙천대소 하기도 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로애락을 연출했다.인간의 마지막 절규로 들려왔다.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어렸다.초점을 잃은 노인의 동공이 풀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는 허공을 바라다 보았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Music,Life&Soul」출간

    ◎정경화·정명훈·조수미·장영주…/세계 정상급 「음악인의 삶」 담아/음악을…­예술열정·성공담 인터뷰 통해 밝혀/…Soul­연주·휴식·사생활 모습 담은 사진집 음악은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 장르다.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지휘자 정명훈,성악가 조수미씨를 비롯해 세계 정상급으로 꼽히는 음악가만 열명을 훌쩍 뛰어넘는다.최근 이들이 광복 5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공연한 데 발맞춰 이들의 음악 역정과 사사로운 모습을 담은 책 두권이 나왔다.「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임후남 지음,동화출판사 펴냄)와 「Music,Life & Soul」(시엠아이)이 그 것이다.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음악가 11명의 음악 수업,음악 인생을 자세히 소개했다.등장인물은 정경화·정명훈·조수미씨 말고도 강동석·이경선(바이올린),정명화(첼로),김영미·신영옥·최승원(성악),김혜정·서혜경(피아노)씨들이다.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끊임없는 연습과 자기성찰로 숱한 어려움을 뛰어넘었다.예컨대 지난 9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주최로 열린 성악콩쿠르에서 1등한 최승원씨(33)는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이겨냈고,서혜경씨(35)는 연주자에게 치명적인 근육무력증을 극복했다. 그런가 하면 성공에 얽힌 뒷얘기들도 나온다.정경화씨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지난 67년 레벤트리 콩쿠르 때 일이다.경쟁자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핀커스 주커먼.주커먼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 정씨에게는 「포기하라」는 압력이 닥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회에 나가 주커먼과 공동1위를 차지한다.주최측이 정씨의 실력과 주커먼의 명성을 함께 뽑은 탓이었다. 지은이는 이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을 발굴했다. 「Music,Life & Soul」은 음악가 13명과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 등 14명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음악을…」에 소개된 사람 가운데 이경선·최승원·서혜경씨가 빠지고 대신 한동일·백건우(피아노),김영욱·장영주(바이올린),홍혜경(성악)씨가 새로 들어갔다. 사진작가 최명준씨는 세계 곳곳에서 활동중인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연주 활동은 물론 휴식·외출 등 사생활도 담았다.최씨는 인물별로 테마를 정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가령 조수미씨의 테마는 이탈리아어로 정열·활력을 뜻하는 「PASSIONATA,ENERGICA」.조씨는 거리에서 기타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등 대담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최씨는 후기에서 『내가 만난 14명 모두가 예외없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했다.공연예술기획사인 CMI가 펴냈다.
  • 광주의 저력(외언내언)

    예부터 예향으로 불리는 광주는 그림과 창,그리고 춤으로 이름난 고장이다.시내 어느 다방을 밀치고 들어가도 조촐한 산수화 몇점은 만날 수 있다. 남종화의 대가였던 허소로부터 미산·남농(허건)에 이르는 3대의 화풍이 남도의 동양화를 풍성하게 가꿔냈다.가슴을 저미는 남도창의 애조띤 가락이나 해남 강강술래의 약동하는 춤사위는 우리 국악의 핵심을 이룬다. 그 예향 광주에서 제1회 국제 발레콩쿠르가 24일 개막됐다.13개국 66개팀이 참가하는 대규모 발레콩쿠르가 지방도시에서 열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더구나 참가단체들이 러시아 국립발레단·볼쇼이발레단 등 세계정상급들이고 저명한 예술감독과 발레단장들을 심사위원으로 참석시켜 이 콩쿠르의 성가를 높였다. 많은 현대무용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에서도 아직껏 엄두를 못내던 빅 이벤트를 광주 무용인들이 조용히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8개국 발레단체가 참가한 국제 발레 페스티벌을 개최,주목을 받은바 있는 광주다.예향의 저력을 세계를 상대로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저력은 오는 9월20일 개막되는 제1회 광주비엔날레로 이어진다.한국에서는 아직 국제비엔날레를 가져본 일이 없다.지난 6월 창설 1백돌을 맞아 열린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축제.올해는 세계에서 25번째로 한국독립관이 개관돼 우리 화단을 들뜨게 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총경비는 1백82억원.시가 상당부분 지원하고 있으며 향토예술인들이 1백20여점의 작품을 기증,기금을 마련했다.비엔날레의 영속적 개최를 위해 2백억원의 기금도 모금중이다.지방화시대에 지방에서 특색있는 국제문화행사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칸느영화제나 베니스비엔날레도 모두 지방도시에서 열리는 국제 예술행사가 아닌가.
  • 광주 국제발레콩쿠르 내일 개막

    ◎30일까지 13개국 66개팀 경연… 워크숍도 개최 세계 13개국 66개팀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 발레 콩쿠르가 예향 광주에서 열린다. 24일부터 30일까지 7일동안 열리는 이번 「제1회 광주 국제 발레콩쿠르」에는 바체슬라브 고르데예프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장,소피아 골롭키나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 교장,리처드 크레이건 독일 슈트드가르트 발레단 예술감독,프랭크 앤더스 전 덴마크 로열데니시 발레단 예술감독,자오 루헝 중국 센트럴발레단 예술감독,로스 스트레튼 미국 아메리칸 발레디어터 예술감독,마이클 스뮈 미국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장,요코 모리시다 일본 마쓰야마발레단 프리마발레리나 등 세계적인 유명 발레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또 이갈 페리 미국 페리댄스앙상블 예술감독,올가 코헨초크 러시아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타등이 워크숍 강사로 초청된다. 이 콩쿠르는 남녀 주니어와 시니어 솔로부문및 시니어 2인무부문등 5개분야로 나뉘어 열린다. 참가 단체는 러시아 국립발레단,볼쇼이 발레단,일본 와쿠이 발레단과 마쓰야마 발레단,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오페라학교 등 50여개이다.국내에서는 국립발레단,유니버설 발레단,그리고 각 대학무용과에서 참가한다. 콩쿠르 개막식인 25일 하오 7시30분에는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광주시립무용단의 「우수영의 원무」공연이 마련된다.폐막일인 30일 하오 6시에는 러시아 국립발레단과 콩쿠르 수상작품 6개팀의 갈라 콘서트가 펼쳐진다. 이와 별도로 콩쿠르 기간동안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과 시립교향악단 연습장,시립무용단 연습장등에서는 심사위원을 중심으로한 초청강사들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한다. 앞으로 이 콩쿠르는 지난 해 8개국 발레단체가 참가했던 제1회 광주 국제발레페스티벌과 함께 2년마다 한번씩 열릴 예정이다.
  • 교육의 실상(두만강 7백리:17)

    ◎학생줄어 농촌학교 거의 문 닫을 판/적은 봉급에 교원들 사명감 잃고 잇따라 전업/교육세 높지만 시설투자 못해 민족교육 위기 연변의 조선족신문인 연변일보는 최근 1면 톱으로 「주내민족교육 거족적 발전」이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그러니까 연변조선족자치주내 민족교육이 큰 발전을 가져와 유치원·소학교·초중으로부터 고중까지의 보통교육체계가 정립되었다는 내용이다.이와 더불어 유치원 적령어린이의 수용률은 89%이고 1978년 대학입시 부활 이후 연변에서 2만7천명의 학생을 대학에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변일보 자매지 경제주간도 「빌어먹을 신세여도 자식만은 공부시킨다」는 말로 시작하는 기사를 올렸다.이 기사는 우리 민족이 중국내 56개 민족 가운데 문화자질이 높다고 전제하면서 가장 문명한 민족으로 평가했다.그 실례로 92년 중국의 중앙텔레비전방송국 주최 민족문제지식콩쿠르에서 중학생들이 거둔 우수입상성적과 전국 대학입시에서 해마다 출중한 점수를 따내는 현실을 열거했다. 그러나 연변 조선족의 교육문제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경향도 없지 않다.아전인수격으로 민족교육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교육현장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연변대 정판룡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연변 조선족의 교육은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령 어린이 89%수용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확실히 높습네다.연변에서는 벌써 50년대에 초중교육이 거의 보급되었고 지금은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까지 체계적인 민족교육망이 이루어졌디요.그런데 문제는 민족교육의 질이 해마다 떨어져 지난날의 찬란한 빛이 옛말이 되었다는 데 있습네다.자식들 공부시키려는 열정은 높은 데 반해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디요.우리 민족교육은 위험한 지경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말입네다』 연변 조선족 교원의 자질이 우선 한족보다 뒤떨어진다.연변대학 본과 졸업생들이 교원으로 배치받는 숫자가 적은데다 막상 배치되었다가도 곧바로 직업을 바꾸기가 일쑤다.그런데도 초중교원 양성을 전담하는 사범단과대학이 없다.교원의 학력도 한족은 70%가기준에 도달하지만 조선족은 그보다 낮다.고중 교원의 학력은 한족에 비해 높은 편이나 연변1중과 같은 중점학교를 제외하고는 실제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농촌학교의 교원질은 대단히 낮은 편이다.숭선진중학교의 경우 대학입시에 떨어진 고중졸업생이 초중 수학을 가르치는 형편이니 교원의 질은 알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교원의 인기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이야기와도 상통하는 현상인데,그 이유는 봉급이 적다는 데 있다.숭선진과 노과진의 교원중에는 그 흔한 흑백TV 1대도 없는 사람이 많다.2백50원 남짓한 봉급에 쪼들리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거의 5원이면 해결하는 부주돈 걱정이 늘 따라다닌다. 연변이 중국 전체의 평균치보다 교원직업선호도가 높다고 한다.그러나 별로 인기가 없는 작업이라는 것은 연길시 4개 학교 3백15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 잘 나타났다.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그대로 종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60%의 교원은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교사임무를 참답게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니 학생의 질도 자연스럽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농촌인구의 도시집중은 농촌의 교육현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학교가 점점 더 썰렁해지고 있다.한족과 비교해서 조선족이 더욱 심하다.화룡시 덕화진의 조선족이 다니는 남평중학과 한족이 다니는 차창중학교가 그 표본이다.두 학교는 본래 같은 숫자의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차창중학 재학생이 1백20명인데 비해 남평중학은 80명으로 줄어들었다.지난해 덕화진 지길촌과 남평촌에서 신생아가 4명 태어났으나 두 집에서 이사를 가는 통에 두 아이만 남았다.두 마을에서 8년 뒤에 입학할 아이는 겨우 둘이 남았다는 계산이다. ○흑백 TV없는집 많아 용연소학교는 60명의 학생에 교원 9명이 근무하고 있다.화룡시교육국이 60명이하의 학교는 무조건 합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터라 김창욱교장(43)의 걱정은 컸다.4년 후면 40명이하로 줄어들 전망이어서 폐교위기가 곧 닥쳐올 판이다.그렇다고 국가가 작은 학교로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이다.왜냐하면 참새가 아무리 작다 해도오장육부를 다 갖춰야 사는 것처럼 들어갈 돈은 다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학교를 꾸려놓았다고 해서 대단한 자랑을 했다.화룡시 노과진 호곡촌에서는 한 선생님이 두 학생을 맡은 적이 있다.퍽 신기했던지 화룡시문화관의 사진작가 최종록씨가 사진을 찍었는데,그 사진이 국제화보에 실렸다.이러한 옛 이야기를 뒤로 하고 숭선진과 노과진의 촌단위 학교는 이미 해산되었다.아이들을 집중시킨 승선진 중심소학교의 학생수는 2백45명.그 바람에 일곱살 응석받이 어린이를 포함하여 33명이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 ○교원양성대학 없어 그런저런 사정이 있어 서인지는 몰라도 학생의 지식수준도 한족 학생보다 뒤떨어진다.조선족 학생은 조선어 외에 한어와 다른 외국어를 배워야 하므로 학습부담이 큰데다가 몇개 조선족출판사에서 찍어내는 책으로 과외독서를 하는 가련한 처지다.수백개 한족출판사에서 출판하는 많은 질좋은 책을 탐독하는 한족학생에게 자연히 뒤지게 되어 있다.비록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 대학교로 가는 학생비례는한족보다 많다고 하지만 일단 대학교에서의 학술탐구에서는 한족학생의 뒤에 묻어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정된 환경에서 조선족 학생은 어릴 때부터 조선어 외에 민족교육을 받을 수 없다.중국역사와 세계역사는 알아도 조선역사는 몰라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는 자습을 하지 않고는 전연 무지로 될 수밖에 없다.세계역사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치가 큰만큼 세계역사만 배워도 중국역사는 알 수 있으나 지정학적으로 작아 보이는 한반도역사는 따로 과목을 설치하지 않고는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이다.
  • 배고픈 지식인(두만강 7백리:16)

    ◎콩나물 장수만도 못한 의사·작가 수입/자금난에 출판사들 잇달아 문닫고/문인들은 천직 버리고 장사꾼 전업/이욱·윤동주시인 후대들에 「우리정신」 심어줘 이욱의 시비를 찾아 덕화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그의 시비는 북한땅 무산이 바라다 보이는 두만강가 산 언덕에 서 있었다.이욱은 1907년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숨을 거둔 곳은 연길이었는데 그해가 1984년이다. 시비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한동안 묵도를 올렸다.나는 그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비 앞에서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추모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반동학술 권위자로 몰려 연변대에서 쫓겨났다.그래서 화룡시 서성진으로 하방되었다.시인 이욱을 그때 만났다.어린 중학생이었던지라 시인이 쌓아놓은 책들을 목마른 사람 물 마시듯 탐독했다. ○반동학술로 몰려 수난 이욱 시비의 정면에는 19 57년에 쓴 시가 새겨있다.「칠순/할아버지/나무를 심으며/어린 손자를 보고/싱그레 웃는/그 마음/그 마음/그 마음」이라는 시비의 시에서 어떤 명언을 떠올렸다.내일 세상이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민족의 선각자들은 후대를 위해 사과나무와 같은 정신을 심어왔다.이상설,김약연,윤동주 같은 분들이 그들이다. 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 문화잠장의 말에서 오늘날 조선족의 문화,선인들이 뿌린 정신의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친은 가수였디요.광복 전에 회령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해서리 축음기와 판 20장을 상으로 받았다고 기래요.아버님은 김정구 이화자 백년설 남인수와 같이 목단강에 가서 공연했다는 말도 들었시요.공연기간이 끝나기 전에 소련 홍군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진격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귀국했는데 이화자만 남았다는 거디요.이화자가 못떠난 것은 전염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합데다.데려다 치료를 해준 어떤 한족의 은공을 못 잊어 이화자는 한족과 살다가 문화대혁명 때 결국 잘못되었다는 겁네다』 이렇듯 고급문화나 대중문화 모두가 한반도에 뿌리를 두었다.그러나 광복후 소련의 영향을 똑같이 받은 중국과 북한의 문화가 연변 조선족 문화를 좌우했다.19 58년에 일기시작한 문화대혁명의 대우파 투쟁에서는 또 사정이 바뀌어 북한의 문화가 밀려났다.그 이후 70년대 초에는 중국과 북한관계가 다시 개선되었다.조선어는 평양을 기준 삼아야 한다는 주은래의 담화가 나올 정도였다.따라서 언어규범이 북한을 닮아갔고 모든 분야의 문화가 중국과 북한의 혼합형으로 변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는 더 큰 변화를 맞았다.그것은 한국문화였다.한국문화를 닮아보려는 노력을 무던히 했고,실제 한국문화는 급속도로 번져나갔다.이에 대한 투쟁도 만만치 않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해에도 한국노래의 범람을 경계하는 광대극을 놀았다. ○북한의 언어규범 닮아 문화의 목적은 인간이 중시되어 세상이 보다 편리하게 열리는데 있다고 한다.연변의 원로작가 김학철선생은 미발표 소설 「20세기의 신화」가 문제되어 옥살이를 한 분이다.그가 연변 작가모임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적이 있다.반우파투쟁 당시 북경에서 실제 본 목격담이었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북경의 한 단위모임에서 어느작가를 우파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 다른 작가가 발언권을 얻었다.발언에 나선 작가는 『이 분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당하고만 있는 작가를 변호하고 6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용정시 고급중학교 운동장에는 시인 김성휘의 시비가 서 있다.1933년 용정시 백금향에서 태어나 1990년 작고한 이시인의 시 「시냇물의 흐름을/천천히 보아라/천리만리/먼먼 길도/자신 만만타/흐르고/흐르고/내처 흐르며/한생을/말숙하게/가는 나그네」.역대를 살면서 민족과 영혼을 팔아먹고 편히 살아온 좌파들의 양심을 두드리는 소리다.성급한 투쟁은 역사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정치투쟁은 이제사 끝났다.하지만 문인들은 요즘 경제사정에 충격을 느끼고,또 고민하고 있다.수술칼을 손에 쥔 의사가 면도칼을 든 이발사 수입만도 못하고 교수나 작가의 수입이 콩나물장수를 못 따라간다.그래서 많은 지성인들이 천직을 버리고 장삿길에 나서는 이른바 하해로 뛰어드는 것을본다.더구나 출판업이 곤경에 빠져들어 문인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연변인민출판사는 국가로부터 해마다 1백9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는다.그럼에도 1백43명의 재직자와 50여명의 퇴직자들의 인건비,기타 경비를 빼고나면 책을 찍어낼 돈이 남지 않는다.내가 근무하는 아리랑편집부에서 80년대 초에 1년에 30여종 문예도서를 발간했는데 지난해는 계획도서가 겨우 4종 뿐이었다.다른 몇종은 위탁출판으로 돈을 받고 대신 출판한 것인데 그것마저 몇종 안된다.그래서 한문도서를 찍어 번 돈으로 조선어책을 발간하고 있지만 그것도 근근득식이다. ○출판은 하늘이 별따기 요즘 작가들은 글을 써도 발표할 수가 없다.장편소설 한권을 발간하는데 자비로 1만5천원을 내야 하는데 그것은 교수급 지식인의 거의 2년 노임이니 개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혹시 정부나 기업인들의 찬조를 받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다.아무리 좋은 명작이고 좋은 글이라도 그것은 원고상태에서 죽어가는 형편이다.그리고 민간예인과 민담가들이 발굴되지 못한채 인생을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에따라 책을 통한 출판문화가 사라지는 경향이다.연변신화서점은 우리 민족도서가 가장 많은 곳인데 조선어책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종수가 적다.그리고 변강 향진의 상점엔 책이라곤 전혀 없다.그만치 농촌의 문화생활이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화룡시 덕화진에서는 원래 1년에 한번씩 운동대회를 열어왔다.지금은 2년에 한번으로 줄어들었다.그리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가 있는 날이면 영화관이 관중들로 꽉 찼다는 영화관이 문이 다 떨어져 나간 폐물로 되어 버렸다.용정시 백금향은 원래 문화보급이 잘되어 소문난 곳이었는데 지금은 문화잠은 있어도 문화활동은 없다.용정시 개산툰진 문화잠 책임자의 말에서 그 실상이 잘 드러났다. 『촌의 노인협회,부녀회,청년회의 활동차수로 보면 가관입네다.모여서 트럼프를 쳐도 통계에 넣으니깐요.경비난으로 지난해부터 문화활동이 정지됐지 뭡네까.촌마다 문화실이 있고 손풍금이 있지만 손풍금을 칠 사람이 없고 더구나 활동을 조직할 만한 청년 골간은 더욱 없습네다.똑똑한 사람들은 도시로 들어갔디요.연말회보를 하면서 이것저것 숫자는 많이 말하게 됩니다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 이말입네다』
  • 노보시비르스크 발레학교(시베리아 대탐방:14)

    ◎“「러」 3대 명문” 매년 수천명 오디션… 20명 엄선/학생전원 무료교육… 8년과정 특수교/세계적 무용콩쿠르서 상위입상자 배출/문화수준 과시하듯 오페라 하우스엔 연일 초만원 노보시비르스크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하우스」는 평일에도 관객이 만원사례를 이루는 유명한 극장이다. 공연시간 2시간전인 목요일 하오 5시.취재팀은 이 극장 예매창구를 찾아 입장표 3장을 달라고 했다.대답은 「니옛」.3일전에 이미 매진됐다는 창구직원의 설명이었다. 취재팀은 다시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설명하고 『돈을 더 주고라도 표를 살 수 없느냐』며 사정했다.40대로 보이는 창구의 아주머니는 취재팀을 좁은 창구로 훑어본 뒤 잠시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냈다.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표값을 달라』고 했다.한 사람당 입장료는 5천루블(8백원정도).입장료를 건네주자 「로열박스」에 해당하는 자리가 주어졌다.그녀는 『오페라 극장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온 기자들이기 때문에 일종의 「배려」를 했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서울손님」 특별배려 공연 30분전.취재팀은 극장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다 경비원들의 「제지」를 받았다.외투를 벗어 카운터에 맡기라는 것이다.러시아는 학교·공공건물·식당·극장등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외투를 벗어 맡기는 것이 관습처럼 돼 있었다. 극장안으로 들어서자 평일인데도 빈 좌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관객들은 공연에 대한 팸플릿을 사들고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3천여명의 관객들이 들어찼는데도 별다른 소음이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했다.이날 공연은 실력이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감히 무대에 올리지 못한다는 발레 「지젤」이었다. 이 극장의 공연 레퍼토리는 하루는 콘서트,다음날은 발레,그 다음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식으로 일주일 내내 매일 다른 종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다음날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한다고 예고돼 있었다.지젤공연은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의 공연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공연장에서 만난 나탈리아양(22·은행원)은 『생활수준은 만족스럽지 않아도 문화생활만큼은 다른 큰 도시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문화 「수준」을 과시했다. 이곳 시민들의 문화수준은 하루아침에 높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문화를 중요시하는 국가정책,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시베리안의 감정,훌륭한 문화·교육시설등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이뤄놓은 것이다. ○「명예」 칭호 교수6명 노보시비르스크 카멘스카야 36번가에 자리잡은 노보시비르스크발레학교만 봐도 그렇다.미국이나 영국처럼 학교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지도교수의 수준,엄선된 학생,훌륭한 시설과 교과과정,배출인물들 모두가 그 「수준」을 짐작하케 한다.이 학교가 생긴 것은 지난 57년.이곳 오페라하우스에 소속된 발레단원들이 뜻을 모아 발레학교를 조직했고 곧 이어 모스크바·레닌그라드발레 학교와 함께 러시아 3대발레학교로 발돋움했다.러시아의 발레학교는 모두 9곳.이 가운데 이들 3대발레 학교는 부족한 정부예산에도 불구,매년 연방정부가 보조금을 줄 정도로 러시아의 「보배」로 여겨지고 있다.때문에 학생들은 전원이 무료로 교육혜택을 받고 있었고 지방의 학생들은 실비의 기숙사비용만 지불하면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아래 공부를 할 수 있다. ○교수 1명에 학생 3명 학생은 남자가 60명이고 여자가 1백명.선생님수는 54명으로 학생 3명당 한명의 교수가 맡고 있는 꼴이다.선생님들 가운데 6명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명예」칭호를 받은 쟁쟁한 실력자들이다.이 학교는 국민학교 3년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엄격한 오디션을 받아 입학하는 8년과정의 특수학교다.일반 발레단원은 이 학교의 졸업만으로 충분하다.그러나 발레 선생님이 되려면 이 과정을 마친뒤 반드시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종합대학을 다시 거쳐야한다.이 학교의 나데그나 스니트키나 교장(여·53)은 『매년 전국에서 수천명의 지원학생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아와 입학시험을 치르지만 이들 가운데 20명만이 합격할 정도』라며 학교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녀는 『다른나라의 발레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는 교양도 중요시 한다』면서 『학년수준에 맞춰 영어·수학·과학등 일반학교 교과과정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소개했다.교장의 자랑을 뒷받침하듯 매년 스위스 로사나콩쿠르등 세계적인 무용콩쿠르 입상자 가운데는 꼭 이 학교 학생 몇명이 포함돼 있다.올해에도 이 학교의 아나 츠칸코바양이 당당히 2위에 입상,영국의 로열발레학교측의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을 하고 있다.외국에서 유학온 학생들도 전체 학생의 50%인 80여명이나 된다.주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등 옛 소련국가에서 온 학생들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에 대한 학비는 학생이 소속된 나라의 경제사정에 맞물리고 있다.그러나 돈만 많이 낼 수 있다고 입학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스니트키나교장은 『일단 학생들의 몸매와 가능성,무용수로서의 자질테스트에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학교규율 매우 엄격 학교시설도 일류다.7개의 발레실외에 운동실이 따로 있다.도서관에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발레·발레사와 관련된 각종 서적들로 채워져 있다.최근에는 연방정부의 도움으로 영화촬영세트가 구비된 자체극장도 한창 공사중에 있다. 18세까지의 장성한 남녀가 「득실거려」학교규율도 무척 엄격하다.특히 남학생은 남자선생님들이,여학생은 여자선생님들만이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다.남녀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학교측으로서는 「당연한」 규율인지도 모른다.
  • 신영옥­홍혜경/세계적 목소리 잇단 고국무대

    ◎메트로폴리탄 주역소프라노… 28일·새달 18일부터 전국순회/신­맑고 투명한 「은빛의 소리」로 유명/홍­배역따라 음색·기교 능란하게 구사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역 소프라노인 홍혜경씨와 신영옥씨가 6·7월 잇따라 고국무대에 선다.신씨가 오는 2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7월1일 부산 문화회관 대강당,7월6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독창회를 갖고 홍씨가 7월18일 광주 문화예술회관,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내한공연을 펼친다. 전세계 성악가들이 동경하는 꿈의 무대 메트로폴리탄에서 동양계로서 쉽지않은 프리마돈나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이들의 연이은 무대는 음악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3년만에 고국독창회를 갖는 신씨는 서정적이며 섬세한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그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순수해서 「은빛의 소리」라는 평을 듣는다. 지난 88년 미국 스폴레토음악제에서 오페라「루살카」의 숲의 요정으로 데뷔한 이후 90년 메트로폴리탄콩쿠르 우승,로렌자커리콩쿠르,올가쿠셰비츠키콩쿠르 1위입상 등 주요콩쿠르를 휩쓸면서 차근차근 세계무대의 정상에 올라섰다.91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리골레토」에서 질다역을 노래하면서 세계 오페라계의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영국 로열오페라등 정상의 국제무대에서 주역을 맡아 청중을 매혹시켰다.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의 맛을 내는 그는 「리골레토」의 질다등 선율이 아름답고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역이 잘 어울리며 서정적이며 코믹한 역에서도 그의 발랄함은 돋보인다. 역시 3년만에 고국독창회를 갖는 홍씨는 온화한 공명의 서정적 소리로 분류되는 리릭 소프라노.타고난 목소리도 아름답지만 주어진 역에 따라 음색과 기교를 능란하게 바꾸며 개성이 담긴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8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디션에 최종 우승한 이래 매 시즌마다 주역으로 출연하는 영광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84년엔 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등 세계적인 테너들과 오페라의 주역으로 함께 공연하여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으며 「라보엠」의 미미,「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등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으로 나섰다. 홍씨는 또 오는 8월27일과 29일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다.이 공연은 실황녹음돼 음반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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