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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지, 남장 공개…콧수염·쇼트커트로 터프가이 변신

    리지, 남장 공개…콧수염·쇼트커트로 터프가이 변신

    그룹 애프터스쿨의 리지가 남장 변신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소속사 플레디스 공식 트위터에는 리지의 남장 사진과 함께 “터프한 리지 군으로의 변신을 끝낸 순덕양, 순덕이의 변신은 오늘밤 몽땅에서 확인하세요!”라는 글이 게재됐다. 공개된 2장의 사진에서 리지는 푸르스름한 수염을 붙친 남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터프가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리지의 표정이 그럴싸해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본 방송을 사수하겠다.”, “완전 귀엽다. 저런 남동생 하나 있었으면…”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리지는 MBC 시트콤 ‘몽땅 내사랑’에서 순덕이로 출연 중이며 애프터스쿨 유닛그룹 오렌지캬라멜의 ‘방콕시티’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닮았네~” 독재자 히틀러 닮은 금붕어 화제

    “닮았네~” 독재자 히틀러 닮은 금붕어 화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닮은 금붕어 한 마리가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선은 그레이터 맨체스터 스톡포트의 크리스 스카튼스키(27)와 그의 아내 사라(29)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아돌피쉬’(Adolfish)라는 이름의 금붕어를 소개했다. 화제의 금붕어는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과 머리 스타일을 거의 완벽히 닮아 아돌프 히틀러의 아돌(Adol)과 골드피쉬의 피쉬(fish)를 합성해 아돌피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들 부부는 네 살 된 딸 엘레나와 함께 한 축제에 갔다가 그 금붕어를 경품으로 타냈고 이후 생김새가 히틀러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라는 “처음엔 아돌피쉬가 수조를 정복하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아직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사진=더 선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김문이 만난사람] ‘힙합의 대부’ 바비 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 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 때부터 겪은 쓰디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다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그의 노래가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는 이유로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솔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 만에 10만 관객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 볼 예정이어서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먼저 이번 공연의 의미와 공연을 앞둔 소감을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하는 ‘솔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 때 2~3곡 정도 불러 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 나, 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도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는 가사에 영어발음을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 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으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고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 노래 발표회에도 솔로로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 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방망이를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 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 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을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중 고 3때 한 스카우트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 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공감을 통해 하나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라는 이름은 세살 때 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 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며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달프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바비 킴은 누구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음악과 운동을 병행한다.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럼펫을 배웠고 노래도 했다. 학교 발표회 때마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야구와 미식 축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특히 야구는 포수와 1번 타자를 맡았는데 고교 때는 학교 대표로 출전해 3할대의 타율을 자랑했다. 고교 졸업 무렵 클럽 바에 가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고 래퍼로 활동했다. 1993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사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994년 앨범 ‘닥터 레게’로 데뷔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터보, 젝스키스 등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99년 룰라 이상민의 14인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의 멤버, 2000년에는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 다음 해 부가 킹즈를 조직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던 중 2004년 8월에 발표한 새 앨범 ‘고래의 꿈’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독특한 창법이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를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난해 세 번째 정규 앨범 ‘하트 앤드 솔(Heart & Soul)’을 발표했으며 ‘쩐의 전쟁’ ‘하얀 거탑’ 등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2009년부터 전국 투어 공연에 나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10만 관객 앞둔 힙합의 대부 바비킴

     이 세상에서 고독이라는 말보다 더 고독한 단어가 있을까. 어느날 한 남자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는 고독하게 헤엄을 친다. 왜 그랬을까? 노래로 답한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디에선가 있는 꿈과 사랑을 찾아서~/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다시 까닭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라는 진한 너울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 남자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싹텄다. 어린 나이때부터 겪은 쓰디 쓴 인종차별과 이방인의 외로움이 우선 그러했다. 오죽했으면 착해지는 자신이 나쁘다며 ‘오늘 단 하루만 착하지 말자.’고 외쳤을까. 그런 처절함에서 스스로 험한 바다를 택했고 한 마리의 ‘파랑새’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큰 고래가 됐다. 하여 아픔이 있어도, 그 어떤 고통이 가로 막아도 ‘편히 쉬게 할 꿈’을 향해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지금도 그렇게 ‘고래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힙합 뮤지션 바비 킴(38). 그는 요즘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고독과 처절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창법이 심금을 울린다.’고 답한다. 특히 대표곡인 ‘파랑새’와 ‘고래의 꿈’에서 흘러나오는 바비 킴의 음악적 향기는 세대를 뛰어넘는 신선한 냄새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무명세월 11년 설움을 견디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2004년에 발표된 앨범 ‘고래의 꿈’으로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계속됐다. 노래를 듣는 이에게 묘한 위안을 준다는 공통분모로 세대를 뛰어 넘어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2009년부터 전국투어 콘서트에 나서면서 인기스타로서 바비 킴의 존재를 입증한다. 그해 3월부터 지난 해까지 그는 30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는 불과 2년만에 이룬 성과로 최고의 티켓 파워는 물론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임을 입증한 셈이다. 팬들은 바비 킴을 가리켜 ‘소울의 대부’ ‘힙합의 대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는 오는 26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또 한번의 전국 투어 공연에 돌입한다. 상반기에 4개 도시, 하반기에 10여개 도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5월 중에는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객석 수가 한정된 공간에서 콘서트 3년차만에 10만관객을 채우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공연에는 트로트를 ‘바비 킴’적으로 해석해 불러볼 예정이어서 또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바비 킴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특유의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속으로 ‘그래서 팬들이 힙합의 할아버지라고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먼저 이번 공연을 갖는 의미와 소감이 어떠한지 물었다.  “올해로 단독 콘서트는 3년째입니다. 그 중간에 조인트 콘서트가 있었지만 말이죠. 그동안의 콘서트가 바비 킴이 살아온 인생을 담았다면, 올해 콘서트는 바비 킴이 할 수 있는 음악과 바비 킴이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여러 음악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팬들과 함께 하는 ‘소울 투게더(Soul Together)’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좀 더 다양해진 콘서트 무대가 될 듯 싶다. 어떻게 달라질까.  “트로트곡을 제 스타일로 한번 소화해 볼 생각입니다. 물론 실험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트로트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로트곡 10여곡을 선정해 하나 둘씩 들어가면서 선별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지만 공연때 2~3곡정도 불러볼 생각입니다. 제가 트로트를 부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시도는 그를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들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공연의 맛깔’을 더할 것으로 보여진다.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잠깐, 한국말은 어떻게 익혔을까. 두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스무살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국내 모대학 어학당에서 1년반 동안 배웠습니다. ‘가,나,다’부터 배웠죠.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몰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과 한국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당히 컸죠. 한국어로 된 노래가사에는 영어발음으로 일일이 적어가면서 익히고 부르고 그랬습니다.”  한국에서의 적응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영어 테이프 녹음, TV드라마 엑스트라, 유아 TV프로그램 영어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울러 힙합 음악을 고집하면서 그룹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의 적응도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그가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MBC 관현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던 아버지 김영근씨가 미국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면서였다. 그의 가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바비 킴은 초등학교때부터 적지 않은 따돌림을 당했다. 미국 아이들에게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이때마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동양인들은 다들 똑같지 않느냐.’는 대답을 계속 들어야 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필리핀과 중국인들이 살았어요. 또 백인과 흑인들도 많이 살았구요. 한국인은 별로 없었는데 어릴 때 미국인은 물론 똑같은 동양인 아이들에게도 왕따를 많이 당했지요. 화가 날 때에는 덩치 큰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패배의식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바비 킴은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중학교때 트럼펫을 몰래 배웠다. 또 학교에서 솔로로 노래 발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때마다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고 혹시 음악하는 것이 직업이 될까봐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원래 음악적 자질도 타고 났지만 운동신경 또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방망이 잡기 시작해 고등학교때는 학교 대표선수로 1번타자와 포수를 맡았다. 특히 어깨힘이 좋아 1루에서 2루로 도루하는 상대방 선수들은 거의 다 아웃시켰을 정도였다. 타격면에서는 3할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던 고 3때 한 스카우터로부터 ‘너는 동양인이어서 체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3배 이상 훈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때 야구도 그만 두고 좋아하던 미식축구도 그만 두었습니다. 몇날 며칠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음악을 취미가 아닌 진짜 인생의 승부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구요. 미국에는 클럽 바에 가면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주 갔지요. 또 원맨쇼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나이트클럽 래퍼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1992년 미국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자 바비 킴 가족은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듬해 한국에 온 바비 킴은 아버지의 묵시적인 허락하에 음반사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다. 이때 단골로 부른 노래가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리듬은 잘 타지만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바비 킴은 이에 대해 “어릴 때 흑인들과 자주 지내서 그런지 리듬을 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며 웃는다.  그러던 1994년 ‘닥터 레게’로 첫 앨범을 냈지만 인기를 못얻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터보, 젝스키스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코러스와 랩 피처링 등을 하면서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저에게는 무명 11년 세월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만약 처음부터 성공했더라면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지요. 이제는 공연때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관객들과의 진실한 공감을 통해 하나 하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다른 가수들과) 음악의 색깔도 다르고 창법도 특이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이제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바비 킴의 본명은 김도균이다. ‘바비’(Boby)라는 이름은 세살 때 친누나가 미국 TV시트콤을 보다가 바비라는 등장인물을 보고 그렇게 정했단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그는 “음악을 하다보니 취미가 없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 분야로 연구를 많이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팬들과 함께 하는 창조적 음악을 위해 열심히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여자친구는 현재 없지만 나이 마흔이 되면 할 생각.”이라면 웃는다. 중절모와 콧수염의 바비 킴. 특유의 애닯고 처절하고 고독한 창법이 앞으로 어떻게 더욱 깊어질지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달인 김병만, 슈퍼마리오 닮은 졸업 축하 사진 ‘화제’

    달인 김병만, 슈퍼마리오 닮은 졸업 축하 사진 ‘화제’

      학사모를 쓴 달인 김병만의 졸업축하 사진이 화제다.  김병만은 자신의 트위터(twitter.com/kbmpupu)에 “여러분 졸업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사진 속 김병만은 학사모를 쓰고 콧수염을 붙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은 현재 방송중인 모 학습지 광고 촬영장에서 찍은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요미우리 잔류한 ‘영원의 풀스윙’ 오가사와라

    요미우리 잔류한 ‘영원의 풀스윙’ 오가사와라

    2010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는 일본선수들 가운데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다. 2006년 FA를 통해 니혼햄에서 요미우리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던 오가사와라는 2010 시즌 이후 다시 FA 자격을 획득했지만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5,000만엔이 인상된 4억 3천만엔(2년)에 연봉 계약을 했다. 프로입단 15년만에 일본 최고 연봉선수가 된 오가사와라는 그의 환상적인 스윙만큼이나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한때 이승엽(오릭스)의 동료로서 그리고 니혼햄 시절 멋들어진 그의 콧수염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할만큼 매혹적인 이미지를 자랑했었다. 오가사와라는 현역선수들 가운데 통산 타율(2천타수 기준) 2위(.316), 또한 앞으로 11개의 안타만 더 생산하면 ‘명구회’ 입회자격의 기준이 되는 2천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이 기록은 부상이 없는한 4월중에 달성될 것이 유력하다. 오가사와라는 근래에 보기 드문 독특한 타법을 지닌 타자다. 어떻게 보면 현시대의 일본프로야구 기준에서는 ‘이단아’라고 불려도 틀린말이 아닐 정도다. 타격은 경기상황에 맞게, 또는 타자자신의 볼카운트 유불리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게 보통이다. 개념이 애매모호한 ‘팀배팅’이란 것은 팀을 이롭게 하는 타격방법이지만 오가사와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스윙을 가져간다. 그가 ‘미스터 풀스윙’이란 형식파괴의 별명을 얻을수 있었던 것도 보편적인 일본야구 문화를 감안하면 있을수 없는 타격방법이다. 베테랑 선수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오가사와라는 신인시절부터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스윙을 마음껏 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신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가사와라가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했을 당시 이팀의 타격코치는 가토 히데지였다. 가토는 1975년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했던 강타자 출신으로 1970년대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주역중 한명이다. 현역시절의 가토 역시 타석에서 온몸을 다 불사른다는 느낌이 들만큼 큰 스윙을 했던 선수다. 니혼햄 신인시절 오가사와라는 주로 2번타순에 들어서는 선수였지만 번트를 대지 않았던 선수로도 유명했다. 가토의 주문때문이었는데 일본야구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선두타자 출루 후 2번타자에게 번트를 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사회인야구를 거치며 늦게 프로에 데뷔한 오가사와라는 알루미늄 배트가 아닌 나무배트에 대한 적응이 유독 뒤떨어졌던 선수였다. 제대로 맞았다고 생각했던 타구가 생각보다 뻗어나가지 않자 고민에 쌓였고 그 과정에서 가토 코치의 지도는 오가사와라를 전혀 다른 타자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중에 한명이다. 오가사와라가 니혼햄에 입단 했을 당시 이팀에는 일본프로야구의 전설 오치아이 히로미츠(현 주니치 감독)가 노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답게 오치아이의 타격은 ‘신주타법’ 또는 큰 스윙의 궤적의 오치아이를 보고 ‘도어스윙’이라 칭했다. 도어스윙은 마치 빌딩의 큰 출입문을 여는것처럼 스윙궤적을 크게 가져가는 스타일을 일컫는다. 또한 오치아이는 타격준비자세도 매우 독특했다. 배트를 쥔 손을 앞으로 길게 빼면서 공을 기다렸는데 지금 오가사와라의 준비자세와도 매우 흡사하다. 항간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오가사와라가 대타자 오치아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타격스타일을 고수했다고 하는데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같은 팀에서 생활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보고 배우는 것이 있을거란 추측만 할 뿐이다. 현역시절 오치아이는 그의 독특한 타격폼으로 많은 선배들로부터 혹평을 받았었다. “오레류” 즉, 자기만의 독특한 타격스타일을 내세우며 주류 선수들과 거리를 두기도 했던 오치아이는 선수의 평가에 있어서 기록으로만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싫어 명구회 입회자격이 있음에도 거부한걸로 알려져 있다. 오가사와라의 독특한 타격스타일이 탄생하기까지 아마도 오치아이의 이러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개성넘치는 타격스타일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어디에나 선구자가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비판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참고로 올 시즌부터 이승엽과 박찬호가 뛰게 될 오릭스의 코토 미츠타카도 소위 말하는 ‘신주타법’ 스타일이다. 타격은 정답이 없다. 여러가지 방법과 스타일은 있겠지만 그것은 ‘선수에게 가장 편한 자세가 정석’이란 귀결점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오가사와라는 비록 여타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극단적인 풀스윙을 하고 있지만 2000년대 최고타자가 됐기에 이것은 곧 정답이라 불려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올해부터 오가사와라는 3루 포지션을 버리고 1루수로 완전히 돌아선다. 와이프와 팬들에겐 한없이 공손하지만 타석에서 보여주는 그의 화끈한 스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의 어느 야구평론가는 오가사와라를 가리켜 ‘영원의 풀스윙’라 칭했다. 혼이 담긴 그의 스윙을 보노라면 매우 적절한, 그리고 그의 근성까지 더한다면 최고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한지민 ‘시스루룩 한복’섹시 팜므파탈 변신

    한지민 ‘시스루룩 한복’섹시 팜므파탈 변신

    ‘청순미인’ 한지민이 조선시대의 팜므파탈로 분해 숨겨둔 청순글래머의 매력을 드러냈다. 한지민은 사극 추리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감독 김석윤·이하 조선명탐정)에서 조선 상단을 주름잡으며 사건의 열쇠를 쥔 한객주로 분한다. 드라마 ‘대장금’, ‘이산’ 등에서 순수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한지민은 ‘조선명탐정’의 팜므파탈로서 섹시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최근 공개된 스틸이미지와 캐릭터 포스터를 통해 드러난 한지민의 한객주는 팜므파탈의 요염함과 객주로서 도도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선보이며 예비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눈매를 강조한 화장과 우아한 올림머리, 현대의 시스루룩을 방불케 하는 이색적이고 화려한 한복은 한지민의 숨겨둔 섹시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지민의 섹시미를 엿본 네티즌들은 “한지민도 은근 청순글래머”, “‘이산’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한복이 너무 예쁘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김탁환 작가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영화화한 ‘조선명탐정’은 조선시대 정조 17년에 발생한 의문의 관료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명탐정 김진의 활약상을 그린다. ‘연기본좌’ 김명민은 극중 허당과 천재 사이를 넘나드는 김진으로 분해 콧수염을 기른 모습을 선보인다. 김명민과 한지민 외에도 오달수가 호흡을 맞춘 ‘조선명탐정’은 2011년 1월 27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청년필름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강남 학생들 공포 ‘산적파’ 일당 검거

    강남 학생들 공포 ‘산적파’ 일당 검거

    지난 4월 서울 잠실동 한강시민공원. 검은색 에쿠스·SM5 차량 두 대가 늦은 밤 전방을 주시했다. 오토바이를 탄 윤모(18)군이 차 앞을 지나자 폭력 등 전과 12범인 김모(21)씨 형제를 비롯, 청년 6명이 윤군을 에워쌌다. 턱과 코 밑에 난 거뭇한 수염, 덥수룩한 머리, 육중한 체격…. 2008년부터 강남권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일명 ‘산적파’ 일당이었다. ●콧수염·문신·큰 덩치 등 산적 연상 “우리 문신(잉어, 도깨비) 멋지지? 야쿠자들이 하는 거야. 근데 너, ‘산적’이라고 들어 봤지?” 이들은 오토바이족들이 지날 때마다 쇠파이프나 각목 등을 들고 ‘검문’을 했다. 구입 경로나 면허증 소지 여부를 물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주 타깃으로 삼았다. 무면허나 장물일 가능성이 높아 신고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문신을 보여 주며 겁을 준 뒤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금품과 오토바이 등을 빼앗았다. 일부는 강도가 아닌 거래라며 현금 3만원을 주고 ‘입막음’까지 했다. 또 강탈한 오토바이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팔고, 반대로 오토바이를 팔겠다는 피해자를 유인해 감금한 뒤 때리고 이를 빼앗기도 했다. ●청소년 40~50명 규합 신흥조폭 결성 강남, 송파 일대에서 중·고생들의 오토바이와 현금 등을 빼앗고 폭행하는 ‘신흥 폭력조직’이 활개친다는 첩보가 들어오면서 올 초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진한 눈썹과 거구의 몸집, 콧수염 등이 산적을 연상시키는 데다 실제 조직 이름도 산적파이고, 강남권 지역 학생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인근 학교와 경찰 등에 따르면 특히 이들은 불량 청소년 40~50명을 추종 세력으로 거느리고 점점 세를 불려 나갔다. ‘비밀과 의리를 지키자’는 강령 아래 추종 세력의 ‘뒤’를 봐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잠실동에 사는 한 40대 주부는 “험상궂은 외모로 흉기를 들고 부근을 배회해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대낮에 어디 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의리와 비밀’ 조직 강령도 만들어 이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세력과 시비가 붙은 고교생을 집단 구타하다 마침내 지난 10월 꼬리가 잡혔다. 이웃 주민이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차 없이 때리는 이들을 경찰에 신고한 것.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들이 첩보 내용 속 주인공과 동일인임을 확인하고, 폭행을 비롯해 오토바이 강취 등 특수강도 혐의로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피해자와 학부모 대부분이 보복을 두려워하는 데다 입시를 앞둔 학생이라 극도로 신고를 꺼리는 탓에 아직 5명의 피해 진술만 확보한 상태다. 경찰은 “빼앗은 오토바이만 100여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들이 몰던 차량도 대포차로 보여 특수강도 혐의로 입건한 뒤 피해 진술을 더 받아 여죄 여부를 수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1~2년만 더 있었으면 전문 조직 폭력배로 발전할 정도로 이미 강취 수법이나 조직 관리 등은 범죄단체 성격을 갖춘 상태라 더 진화하기 전에 검거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스페인에 세계 최초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길’ 생겨

    스페인의 도시 사라고사에 세계 최초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로 명명된 길이 생겼다. 사라고사에서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신흥개발구역 ‘아르코수르’가 바로 그곳. 아르코수르 주민회는 동네를 관통하는 중심 대로의 이름을 놓고 최근 주민투표를 실시, 80%가 지지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로 거리 명을 확정했다. 아르코수르 주민회는 7일(현지시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거리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안내판 제막식을 거행했다. 아르코수르 주민회 대표 안토니오 알무디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야 말로 현대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라 주민들이 꼭 세계에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붙인 길을 갖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언론은 “주민들이 강력히 원한 거리 이름이었지만 시가 그런 이름을 허용할지 한때 불투명했다.”며 “그러나 비디오게임이 21세기 문화의 대표적인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름을 붙이도록 허용했다”고 전했다. 제막행사에는 슈퍼마리오처럼 멋진 콧수염을 붙인 주민들이 대거 참석해 또 다른 화제가 됐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1988년 발매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게임의 주인공이다.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을 만든 전설의 게임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의 작품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동이’ 콧수염 키스 미공개 NG 공개...숙종 “급했어”

    ‘동이’ 콧수염 키스 미공개 NG 공개...숙종 “급했어”

    MBC 월화극 ‘동이’ 한효주-지진희의 ‘콧수염 키스신’ NG 장면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지난 25일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미공개 NG장면을 공개하는 MBC ‘해피타임’에서는 ‘동이’ 편을 준비했다. 이날 방송에선 동이(한효주)와 숙종(지진희)의 키스신 NG 장면이 전파를 탔다. 숙종이 동이에게 기습뽀뽀를 한 뒤 다시 키스를 시도하는 NG장면이 전파를 탔는데 이때 숙종역의 지진희는 해야 할 대사를 빼먹고 뽀뽀와 키스에만 열중했다. 이에 감독이 “앞에 거 다 뛰어넘으면 어떡해”라고 핀잔을 주자, 지진희는 민망한 듯 “급했어 내가”라고 말하며 멋쩍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키스신에서 ‘컷’ 소리를 기다리던 한효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지진희는 곧바로 “왜 웃어 임마”라고 말하며 “너 일부러 NG냈지?”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다.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둘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편집된 ‘동이’ 방송은 달콤했는데 NG장면은 그저 웃기기만 하다”, “숙종 진짜 너무 급했어 하하 ”등 그들의 미공개 모습에 재밌다는 반응이다. 사진 = MBC ‘해피타임’ 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정용화 “콧수염 있는 女 싫다” 황당 고백

    정용화 “콧수염 있는 女 싫다” 황당 고백

    그룹 씨엔블루(CNBLUE) 정용화가 기피하는 여성 스타일을 밝혀 눈길을 끈다. 정용화는 최근 KBS 2TV ‘해피투게더 시즌3’ 녹화에 참여해 "콧수염이 있는 여자는 싫다"며 다소 독특한 이성 스타일을 전했다. 이어 "유치원 때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4학년 때 다시 만나게 됐는데 콧수염이 길게 자라있어서 정말 놀랐다"며 "그 이후 콧수염이 있는 여자는 싫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정용화는 무대에서 입술을 혀로 핥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데뷔 초 ‘외톨이야’를 부를 때 입술이 말라서 혀로 입술을 한 번 핥은 적이 있는데 그게 카메라에 잡혀서 팬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며 "팬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일부러 입술을 한 번씩 혀로 핥을 때가 있다"고 말해 출연진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해피투게더 시즌3’에는 정용화 외에도 손담비, 애프터스쿨 가희 리지, 슈프림팀 사이먼디 등이 출연해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방송은 22일 오후 11시 5분.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씨앤블루’ 정용화 “콧수염 난 여자, 싫어요”

    ‘씨앤블루’ 정용화 “콧수염 난 여자, 싫어요”

    ‘씨앤블루’ 정용화가 싫어하는 여성스타일로 ‘콧수염 있는 여자’를 꼽았다. 정용화는 KBS 2TV ‘해피투게더3’ 녹화장에서 ‘콧수염 있는 여자가 싫다’고 솔직하게 털어놔 출연진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용화는 “유치원 때 정말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고 운을 뗀 뒤 “이후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무렵 그 아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코 밑에 콧수염이 길게 자라있어 어린 마음에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함께 출연한 손담비와 ‘애프터스쿨’ 리지도 싫어하는 이성상을 밝혔다. 손담비는 잘난 척 하는 남자가 싫다고 털어놨고, ‘애프터스쿨’ 리지는 손톱 물어뜯는 남자가 싫다고 고백했다. 한편 이날 정용화는 평소 무대 위에서 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혀로 입술을 핥는 제스처를 자주 취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깨방정 숙종-풍산 동이’...’콧수염’ 키스 기대↑

    ‘깨방정 숙종-풍산 동이’...’콧수염’ 키스 기대↑

    배우 한효주가 MBC 월화극 ‘동이’에서 숙종 역 지진희와의 키스신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한효주는 6일 MBC를 통해 최근 진행된 지진희와 키스신 촬영에 대해 “콧수염 있는 남자와의 키스신은 처음이었다. 간지러워서 웃음 때문에 NG가 많이 났다.”고 전했다. 이어 한효주는 “포옹장면이 극 중에서 가장 야하다고 생각했는데 키스신이 등장하다니 처음에 대본을 받아들고 ‘꺅!’하고 소리를 질렀다.”며 “재미있고 설레며 또 귀여운 장면이 될 것이다. 기대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진희는 “처음에는 장난스럽다가도 나중에는 떨리고 진지한 숙종의 모습을 연기했다. ‘깨방정 숙종’과 ‘풍산 동이’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는 설정이어서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6일 방송되는 ‘동이’에서 동이와 숙종은 주막 봉놋방 안에서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눌 예정이어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사진 = MBC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이 아저씨가 김흥국? …삭털식 후 콧수염 없이 거리응원

    이 아저씨가 김흥국? …삭털식 후 콧수염 없이 거리응원

    김흥국이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대 우루과이 16강전 경기가 열리는 2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영동대로에서 시민들과 함께 거리응원을 펼쳤다.16강 공약에 따라 30년 기른 콧수염을 밀어낸 탓에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에 앞서 김흥국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방송된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 만세’ 생방송을 통해 콧수염 삭발식 일명 ‘삭털식’을 거행했다. 김흥국이 콧수염을 완전히 자른 것은 30년 만이다. 이날 삭털식에는 마포 사랑 이발소의 박태종 이발사가 직접 나섰다. 김흥국은 내내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콧수염이 없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자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날도 더웠는데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사진 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김흥국, ‘콧수염’은 깎았지만 ‘삭발’은 무산

    김흥국, ‘콧수염’은 깎았지만 ‘삭발’은 무산

    가수 겸 방송인 김흥국(51)이 결국 국민과 약속을 지켰다.김흥국은 26일 오후 2시부터 방송된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만세’에서 ‘코털 삭발식’을 진행했다.김흥국은 지난달 MBC TV ‘네 마음을 보여줘-스타 클리닉‘을 통해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하면 콧수염, 8강에 진출하면 삭발, 4강에 진출하면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밀어버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김흥국은 “콧수염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지만 태극전사들이 너무 잘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한편 김흥국은 우루과이 전을 이기면 삭발하겠다고 했으나 한국 축구 대표팀이 우루과이에게 2대 1로 석패해 삭발식은 할수 없게 됐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
  • ‘콧털삭발’ 김흥국 “아버지 유산..이해해주실 것”

    ‘콧털삭발’ 김흥국 “아버지 유산..이해해주실 것”

    가수 김흥국이 콧수염 삭발식을 공개하며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8강 진출을 기원했다. 김흥국은 26일 오후 2시부터 방송된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 만세’ 생방송을 통해 콧수염 삭발식 일명 ‘삭털식’을 거행했다. 김흥국이 콧수염을 완전히 자른 것은 30년 만이다. 2010월드컵이 열린 남아공을 방문하느라 2주간 방송을 쉬었던 김흥국은 “콧수염을 지난 30년 동안 길러왔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다.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오늘 이해해 주실 거다.”며 자못 비장하게 삭털식에 임했다. 이날 삭털식에는 마포 사랑 이발소의 박태종 이발사가 직접 나섰다. 김흥국은 내내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콧수염이 없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자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날도 더웠는데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흥국과 공동MC를 맡고 있는 김경식은 “16강은 콧털, 8강은 삭발, 4강은 전신 면도. 월드컵의 남자 김흥국이 민둥산이 되는 그날까지 국민과의 약속은 계속된다.”고 전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사진 =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 만세’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NTN포토] 김흥국 ‘콧수염 자르고 응원왔어요’

    [NTN포토] 김흥국 ‘콧수염 자르고 응원왔어요’

    [서울신문NTN 현성준 기자]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대 우루과이 16강전 경기가 열리는 2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영동대로에서 김흥국이 거리응원을 펼치고 있다.현성준 기자 gus@seoulntn.com
  • 16강약속 콧수염 삭발 김흥국 “오늘 밤 머리 빡빡 밀려나”

    16강약속 콧수염 삭발 김흥국 “오늘 밤 머리 빡빡 밀려나”

    ”이제 8강 가면 머리털마저 다 없어지는 거아? 이거 내 얼굴 맞나?” 태극전사의 월드컵 16강 진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콧수염 삭발식을 방송으로 공개 진행한 가수 김흥국이 8강 진출을 기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흥국은 26일 오후 2시부터 방송된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 만세’ 생방송을 통해 콧수염 삭발식 일명 ‘삭털식’을 거행했다. 김흥국이 콧수염을 완전히 자른 것은 30년 만이다. 2010월드컵이 열린 남아공을 방문하느라 2주간 방송을 쉬었던 김흥국은 “콧수염을 지난 30년 동안 길러왔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다.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오늘 이해해 주실 거다.”며 자못 비장하게 삭털식에 임했다. 이날 삭털식에는 마포 사랑 이발소의 박태종 이발사가 직접 나섰다. 김흥국은 내내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콧수염이 없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자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날도 더웠는데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흥국과 공동MC를 맡고 있는 김경식은 “16강은 콧털, 8강은 삭발, 4강은 전신 면도. 월드컵의 남자 김흥국이 민둥산이 되는 그날까지 국민과의 약속은 계속된다.”고 전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사진 =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 만세’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박지성 코스프레·삭발” 파격공약

    “박지성 코스프레·삭발” 파격공약

    서울 목동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신모(49) 부장은 26일 우루과이와의 16강 전에서 한국이 이기면 28일 월요일엔 ‘박지성 코스프레’를 하고 출근하기로 직원들과 약속했다. 신 부장은 “우리팀이 승리할 것을 대비해 이미 박지성 선수 유니폼이랑 축구화도 사 뒀다.”며 웃었다. 직원들은 “박지성 복장을 한 부장님을 보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고 말했다. ☞[포토] “대한민국~ 오! 필승 8강~” 응원전 보러가기 한국팀이 월드컵 첫 원정 16강에 오르면서 경기 결과를 놓고 ‘내기 및 공약 열풍’이 뜨겁다. 직장·학교·동호회·계모임 등을 중심으로 단순히 스코어 맞히기를 떠나 승패 결과에 따라 실천에 옮기겠다며 파격적인 약속을 내걸고 있다. 월드컵 공약 열풍은 연예인들이 촉발시켰다. 가수 김흥국도 16강 진출 공약에 따라 조만간 수십 년간 애지중지 길러온 콧수염을 깎기로 했다. 이 밖에도 시민들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8강에 오르면 눈썹을 밀겠다.’, ‘우루과이전에서 승리하면 삭발하겠다.’ 등 ‘코믹 공약’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수험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 이천의 한 고등학교 정모(31) 교사는 “처음에 학생들이 점수 맞히기를 하면서 5000원씩 몰아주는 돈내기를 하는 것을 적발해 혼을 냈다.”면서도 “액수도 크지 않고 학업부담에 힘들어하는 고3 학생들이 나름대로 월드컵을 즐기는 방편인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복권식 레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스포츠토토에 따르면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무려 29만여 명 참가했다고 밝혔다. 스포츠토토 관계자는 “참가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서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역대 최다 참가자 신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월드겁 내기 열풍은 자연스러운 욕구해소 및 문화현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월드컵을 스포츠 행사로써 보기보다 평소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할 기회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특별한 이벤트가 있기를 바라는 심리”라면서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재미를 위해 새로운 룰이 추가되는 것처럼 인간 행위의 진화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관련 기사> ☞허정무 “16강에 만족하지 않겠다” ☞아~ 잠자기 글렀다… 주말 빅매치 놓칠수 없지 ☞‘점쟁이 문어’ 독일 승리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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