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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수 서울시의원 “서울시, 벽면녹화 중요성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김광수 서울시의원 “서울시, 벽면녹화 중요성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서울특별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에서 환경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김광수 바른미래당 대표의원(노원5)은 “서울시는 벽면녹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 나섰다. 서울은 온난화로 점점 열섬화현상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김 의원은 벽면녹화 확대를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벽면녹화는 수평적(지면을 이용) 녹화에 비하여 월등히 낮은 비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에 주로 콘크리트 옹벽과 고속도로 등의 방음벽을 이용하여 녹화를 하고 있으나 도심의 열섬화에 적용을 하면 그 효과는 매우 높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서울의 수많은 건축물의 벽면과 울타리의 벽면을 이용하여 벽면녹화를 실행하면 도심은 한층 푸르게 변화되어 도심경관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되고, 도심 열섬현상은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동일한 조건에서 벽면녹화가 된 곳과 그러하지 않는 곳의 온도차는 2~3도가 된다. 2~3도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의 전기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는 곧 에너지 절감 효과로 이어진다. 벽면녹화의 형태를 보면 식물이 위로 올라가는 등반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식물을 아래로 늘어뜨리는 하수형 방식도 많이 쓰고 있으며 요즘에는 상자를 이용하는 유니트형 등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최근 책정된 예산을 보면 벽면녹화에 대한 서울시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 2015~2018년에 6,498백만원을 편성하여 사용했다. 특히 금년에는 1,732백만으로 지난해 2,075백만원 보다 적게 편성됐다. 도심의 온난화로 인한 열섬화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세먼지로 인한 특별한 대책이 없는 현실에서 벽면녹화는 열섬화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감하며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 서울시는 보다 많은 예산을 책정하여 도심의 벽면녹화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갑자기 무너져 내린 벽…가까스로 목숨 구한 스쿠터 운전자

    갑자기 무너져 내린 벽…가까스로 목숨 구한 스쿠터 운전자

    중국에서 한 스쿠터 운전자가 갑자기 무너진 벽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는 순간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고는 22일(현지시간) 중국 푸젠성의 한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당시 스쿠터 운전자는 집으로 가려고 스쿠터의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콘크리트벽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스쿠터 운전자는 스쿠터를 내팽개치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벽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재빨리 현장을 벗어난 스쿠터 운전자는 목숨을 건졌다. 현지 경찰은 벽이 붕괴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6시간의 핵실험장 폐기 퍼포먼스... 외신 기자들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6시간의 핵실험장 폐기 퍼포먼스... 외신 기자들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지난 24일 오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한 핵실험장 관계자가 소리쳤다. “촬영 준비됐나.” “3, 2, 1…” 굉음과 함께 2번 갱도가 폭파됐다. 이어 안쪽에서 두 번 정도 폭음이 울렸다. 15초 뒤 관측소가 폭발하면서 짙은 연기가 계곡을 뒤덮더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참관을 보러 모인 국제기자단 30명 눈앞에서 북한의 핵실험장이 사라졌다.◈기차 내려 1시간 가량 이동 기자단은 지난 23일 원산을 출발한 지 약 12시간만인 24일 오전 6시 15분 길주군 재덕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안내원을 따라 버스에 올라타 한시간을 달린 끝에 풍계리 2번갱도 입구에 도착했다. 재덕역부터 풍계리까지는 고작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듯한 길이였고, 핵실험장으로 가는 초입에 1층짜리 흰색 페인트된 집이 수십채 있었지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전 8시 19분쯤 2번 갱도입구에 도착하자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을 포함해 약 20여명의 북측 관계자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폭파전 브리핑을 통해 “시험장에 있는 모든 시험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갱도 입구들을 완전 폐쇄하며 모든 관측소들과 지상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소개했다.그러면서 1번으로 표기한 동쪽 갱도는 2006년 첫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후 폐기시켰다고 전했다. 기자단은 2번과 4번갱도를 각각 둘러본 후 2번갱도 폭파 장면을 보기위해 서쪽산 중턱(해발 약 1300m)에 위치한 간이 관측소로 올라가 왼쪽 45도 각도에서 2번 갱도를 바라봤다. 11시쯤 북측 관계자의 카운트다운 후 굉음이 울렸다. 2번 갱도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안쪽에서 두 번 더 폭음이 울리고, 이어 관측소가 푹발했다. 폭파가 끝난 후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는 “오전에 예견했던 북쪽갱도 입구와 측정실 폭파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전문가에 따르면 폭발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갱도 입구는 완전히 막혔다”고 소개했다. 폭파 직후 일부 기자들은 갱도를 답사했는데, 흙, 바위조각 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입구가 완전히 봉쇄된 것을 확인했다. 다만 2번 갱도 관측소 뒤편 기자단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화장실은 건재했다.◈사용한 폭약은 다이너마이트 8개 관계자는 “벽에 다이너마이트를 박고 무너지도록 했다”며 “총 8개의 폭약을 심었다”고 전했다. 이 행사가 오후에 폭파예정인 건물 앞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이 때 폭파대상인 군 막사 처마 밑에 제비집이 발견되자, 한 기자가 “제비가 방사능에 민감하다”고 얘기하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로 개미도 방사능에 민감한데 엄청 많다”고 말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기자단은 3번(남쪽)갱도를 참관했다. 내부 콘크리트 벽두께는 약 20㎝ 정도였으며 폭탄 설치를 위한 케이블이 보였다. 이 때, 북한 측의 조선중앙TV 기자는 3번갱도 옆 3번 관측소 앞에는 개울을 보자 국제기자단에 이를 마셔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북측 기자는 “파는 신덕 샘물 PH(농도)는 7.4 인데 이 물은 PH 7.15로 마시기 더 좋아. 방사능 오염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후 1시 47분쯤 4번 갱도와 약 300m 떨어진 두번째 관측소에 도착했으며 이로부터 30분뒤인 오후 2시 17분 4번갱도와 단야장을 각각 폭파했다.이어 2시 45분부터 생활건물 5개동을 폭파했다. 1개동이 1초간격으로 폭파되면서 연속적으로 큰 굉음과 함께 거대한 구름이 일었다. 오후 4시 2분 3번갱도와 관측소가 폭파됐는데 ‘꽝’하는 소리와 함께 흙과 바위파편이 쏟아져내렸다. 입구쪽 소리는 컸지만 화강암지대 깊은 곳에서 나는 폭발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며 30분이 넘도록 돌들이 흘러내렸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3번 관측소도 폭파 후 목재 잔해만 남았다. ◈외신 기자 “폭발에 나무 관측소 산산조각” 마지막으로 오후 4시 17분 두번째 관측소로 이동해 미쳐 폭파하지 못한 생활건물 2개의 추가 폭파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무전으로 “모두 성과적으로 끝났다”며 축하한다의 말이 들려왔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했다”며 핵시험장 폐기의식 종료를 선언했다. 이렇게 6시간에 걸친 핵실험장 폐기의식이 마무리됐다.그곳에 있었던 외신 기자들도 핵실험장 폐기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톰 체셔 영국 스카이뉴스 아시아 기자도 “산을 올라가 약 500m 거리에서 폭파 장면을 지켜봤으며 ‘3, 2, 1’이라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며 “먼지와 열기가 취재진을 덮쳤고 폭발음도 매우 컸으며 나무로 만든 관측소를 산산조각 냈다”고 했다. 북한도 같은 날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통해 “핵시험장 폐기는 핵시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갱도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하는 동시에 현지에 있던 일부 경비시설들과 관측소들을 폭파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며 “방사성 물질 누출 현상이 전혀 없었고 주위 생태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상의 모든 관측 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 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이 순차적으로 철거되고 해당 성원들이 철수하는 데 따라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쇼생크 탈출’ 하려다…감방 밑으로 판 터널서 질식사한 죄수

    ‘쇼생크 탈출’ 하려다…감방 밑으로 판 터널서 질식사한 죄수

    교도소에 수감됐던 한 살해범이 자신이 파놓은 지하도를 통해 탈출하려다 결국 질식해 숨지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주 보아비스타 몬테 크리스토 교도소에 살인죄로 복역중인 저드슨 쿠냐 에반젤리스타(26)가 몇 개월에 걸쳐 자신의 감방 화장실 아래로 통하는 탈출 터널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약 70m 길이의 이 터널은 요새화된 감옥 벽과 전기 철조망 밑을 빠져나가기에 충분했고, 탈출구는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주변 숲에 닿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터널을 완성한 에반젤리스타는 터널로 탈출을 시도하다 숨이 턱 막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심각한 산소 부족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그가 파놓은 터널을 찾아낸 경찰관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터널 안에는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이어지는 전력선과 백열전구, 그리고 쓰레기 여러 봉지가 있었다. 법무부 대변인은 “150명의 경찰관이 7시간에 걸쳐 터널을 조사했다. 에반젤리스타는 집단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다른 재소자들도 터널을 사용하도록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사망 이후 경계를 철저히 펴고 있으며 현재 터널은 콘크리트로 막힌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월 해당 교도소는 브라질 최대 갱단 조직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재소자들 최소 33명이 사망해 언론에 크게 화제가 됐었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서동철 칼럼] 고층 빌딩 사이에 문화유산 숨기기

    [서동철 칼럼] 고층 빌딩 사이에 문화유산 숨기기

    숭례문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언덕길 오른쪽에 서울도큐호텔이 들어선 것은 1971년이었다. 그것은 흉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훨씬 더 높은 곳에서 숭례문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25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1970년대 막바지 대학에 들어가 주변을 지날 기회가 더 잦아진 뒤에는 더욱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건 ‘할짓’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 자본의 호텔이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문화유산을 돋보이게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숭례문에는 정말 미안한 표현이지만, 호텔 화장실처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일본 호텔 자본이 철수하고 지금은 단암빌딩으로 이름을 바꾼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김중업 선생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는 서울의 도시 및 건축 계획과 관련한 정부 시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서울도큐호텔이 문을 연 바로 그해 프랑스로 사실상의 강제 출국을 당했다. 그런 김 선생이 도큐호텔 같은 건물의 설계를 수락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도큐호텔 이후에도 반성은 없어 오늘날 숭례문이 고층빌딩으로 포위당하는 처지가 된 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다.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고 해도 파리 르코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서도 공부한 김 선생이었으니 의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 파리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숭례문과 서울도큐호텔의 악연을 떠올린 것은 지금 부산 복천동 고분군 안팎에서 빚어지는 파문 때문이다. 지금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주변에서 고층 아파트 건축을 위한 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66만㎡ 남짓한 부지에 5층에서 32층에 이르는 아파트 6000가구 안팎을 짓는 대형 공사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1969년 무허가 판자촌을 택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처음 고분이 드러났다. 이후 여러 차례 발굴 조사에서 200기 안팎의 2~7세기 무덤과 토기, 철제무기류, 갑옷, 투구, 금동관, 목걸이 등 1만 2000점 남짓한 유물이 확인됐다. 출토 유물은 긴급 발굴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학계는 얇은 철괴인 철정(鐵錠)에 주목했는데, 사실상 화폐처럼 사용한 철기 재료였다. 이듬해는 말머리 장식 뿔잔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유행한 뿔잔과 비슷한 모양이라는 점에서 학계는 동서 교류의 흔적으로 봤다. 1980년에는 420가구의 연립주택을 짓는 공사가 다시 추진됐다. 부산시 문화재 관계자들의 주민 설득으로 발굴 조사가 시작되자 유물이 쏟아졌다. 특히 대량으로 나온 판갑(板甲)은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불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판갑은 쇠를 두르려 얇게 펴서 만든 갑옷을 말한다. 그동안 가야의 판갑은 일본에서 수입한 것밖에 없다고 했지만, 4세기 판갑이 복천동에서 대거 나오자 5세기 것이 대부분인 일본은 할 말을 잃었다. 고대사의 공백기라는 가야사를 규명하는 실마리가 복천동 고분군에서 찾아지자 발굴 현장 4만 5576㎡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1996년에는 복천박물관도 문을 열었으니 하나의 발굴 현장을 위한 박물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례가 드물다. 지금 추진되는 고층 아파트 건축 계획의 문제점은 둘이다. 우선은 1969년과 1980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공사를 위해 고분군 주변을 판다면 가야 무덤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음은 문화재를 둘러싼 경관의 문제다. 지금도 복천동 고분군의 일부는 고층 아파트로 막혀 있다. 숭례문을 위축시킨 도큐호텔처럼 새 아파트가 건설되면 고분군의 가치는 더욱 퇴색할 것이다. 지역 고고학자의 모임인 영남고고학회도 ‘경관 보호를 위한 초고층 아파트군의 건설허가 재고’와 ‘고분군 주변을 개발하는 경우라도 철저한 발굴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개발 계획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앞으로의 문화유적 주변은 옛 지형을 유지하는 저밀도 개발과 같은 ‘문화재 친화적 개발’을 유도할 것을 촉구했다. 부산시뿐 아니라 정부와 모든 지자체가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 [자치광장] 도시재생 거점, ‘서울로7017’/김준기 서울시 행정2부시장

    [자치광장] 도시재생 거점, ‘서울로7017’/김준기 서울시 행정2부시장

    45년간 차량길로 사용됐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17개의 사람길과 연결된 ‘서울로7017’로 재탄생한 지 어느덧 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고,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를 즐기며 각자의 방식으로 서울로7017에 대한 기억을 만들었다. 서울로7017은 이제 산업화시대 상징에서 도시재생으로 재탄생한 녹색보행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해지고 있다. 서울로7017은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진 시설들에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능을 덧입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도시재생의 선도 사업이자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개발 논리 시대에는 낡은 시설들은 철거 대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도시와 시민들이 감수하고 잃어버린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해법으로 찾은 것이 바로 ‘지우고 새로 쓰는 도시에서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를 만들어 가는 도시재생이다. 서울로7017 곳곳에서 도시재생의 크고 작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크게 변화한 곳은 쓰레기 하차 트럭 주차장이었던 만리동광장이다. 쓰레기를 상하차하는 차량들이 주차를 해놓는 공간으로 활용되던 음침하고 지저분한 공간에 식물들이 식재되고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행사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또한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쪽 고가 상부에는 차량이 통행하던 서울역고가의 방호벽이 보존돼 있고, 유리로 하부를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 구간엔 보강 전 철근 및 콘크리트 모습도 보존해 놨다. 이러한 도시재생 요소들과 서울로7017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축제 및 프로그램은 서울로7017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 중 84.1%가 서울로7017을 타인에게 적극 추천하겠다고 했고, 외국인 만족도도 83.8%에 달했다. 이렇게 도시재생 측면의 성과나 관광명소로서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7017이 도시재생의 중심지로 활력을 이어가고,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선 추가 사업이 필요하다. 서울로7017을 마중물로 지역 일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인접한 빌딩들과 염천교, 서울역을 추가로 연결하고,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 등 이 일대 정비사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계 추진돼야 한다. 서울로7017에 대한 기대와 역할은 더 커져 가고 있다. 서울로7017은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녹색보행공간이자 주변 지역 활성화를 위한 도시재생 거점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다해야 한다. 서울시는 서울로7017을 출발점으로 삼아 보행중심·사람중심 서울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물 새고, 분뇨 역류하는 부영 임대아파트···‘월세 100만원’

    물 새고, 분뇨 역류하는 부영 임대아파트···‘월세 100만원’

    자산 총액 21조로 재계 16위에 이름을 올린 부영그룹 임대 아파트의 충격적인 모습이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15일 방송된 MBC ‘PD수첩’ 제작진은 부영이 전국 곳곳에 지은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준공승인을 앞둔 곳부터 15년이 지난 곳까지, 주민들은 하자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천정에서는 물이 쏟아지고, 다용도실에는 곰팡이가 가득 피었다. 심지어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해 거실까지 침범하는 경우도 공개됐다.특히 충격적인 것은 부영의 후속 조치. 부영 시설관리인은 역류한 변기의 하단 부분을 백색 시멘트로 바르는 것으로 조치를 마무리했고, 보상금으로 80만원을 제시했다. 콘크리트가 떨어져 외부에 노출된 녹슨 철근에는 실리콘을 발라 조치했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부영은 협력업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공 중간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는 등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아파트를 지었다”고 폭로했다. 한 주민은 임대료 통지서를 공개하며 “보증금 2억원, 월 40만원대에 들어와 현재는 110만원 이상 월세를 내고 있다”고 분노했다. 다른 주민은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매달 주거비로 200만 원 정도를 쓰지는 않을 거다”고 하소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영이 부를 축적한 또 다른 수법을 발견해 검찰 고발까지 강행했다. 검찰은 부영의 이중근 회장에게 총 12개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한편 지난 5월 8일, 부영 그룹 이중근 회장의 1차 공판이 진행됐다. 이 회장은 4300억 원대의 횡령, 배임 등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흙수저 풀/진경호 논설위원

    풀에게도 팔자가 있을까마는 집 안팎 풍경만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먼저, 거실에 고이 들어앉아 밤낮으로 보살핌을 받는 풀이 있다. 이런저런 난초와 산세베리아, 스투키, ‘다육이’…. ‘금수저’들이다. 그런가 하면 앞마당으로 내쳐지긴 했으나 햇살과 바람, 비를 한껏 맛보며 갖가지 벌레들과 친구 먹은 풀들도 적지 않다. 주말 오후 집앞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 이 ‘은수저’들과 수다를 떨다 비루한 풀 한 포기에 눈길이 잡혔다. 화단 앞 아스팔트 도로를 비집고 올라온 녀석은 솜털이나 알아챌 5월 산들바람에도 바들거렸다. 아는 이도 없을 이름이 외려 수치스러울 잡풀들…. 고개를 돌려보니 계단 사이 틈새에도, 담벼락 모서리에도, 콘크리트 전봇대 허리춤에도 녀석들이 진작 있었다. 보잘 것은 애당초 제 잘난 사람의 눈맛일 뿐, 금수저 은수저가 따로 없을 존귀한 생명임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라 했나. 귀를 대면 거실과 화단의 ‘잡풀’을 향한 녀석들의 외침이 들린다. “네 따위들이 풀이라 할쏘냐.”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풀들이다.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jade@seoul.co.kr
  • 北 마음 변하면? “폭파로 지반 약해져 다시 파도 핵실험 어렵다”

    北 마음 변하면? “폭파로 지반 약해져 다시 파도 핵실험 어렵다”

    함경북도 풍계리에 위치한 북한 유일의 핵실험장이 제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 이후 11년 7개월여 만에 폐기된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2일 ‘5월 23∼25일 풍계리 핵 실험장을 갱도 폭파하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한국 등 5개국 기자들이 참관한다. 완전한 비핵화의 첫 조치로 평가된다. 또 핵실험과 핵 고도화를 멈춤으로써 비핵화의 진정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갱도를 콘크리트로 막는 방식이 아니라 재가동 가능성을 봉쇄하는 폭파 방식을 택했다. 핵실험장 폐기로 인해 지표면을 통한 방사능 유출 및 오염 가능성은 낮지만 지하수를 통한 유출 가능성은 남아 있다. 생방송 중계 여부, 전문가 집단의 검증 여부 등은 미정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의미하는 것은. -북은 핵물질을 생산하고 추출한 뒤 핵탄두로 만들고 핵실험을 해 왔다. 이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인 핵실험을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에서 핵실험장은 이곳이 유일하다. 따라서 6번의 핵실험으로 50~70kt급 핵폭탄을 개발한 북한의 핵고도화도 멈추게 된다. →북은 지난해 9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니 더이상 핵실험은 필요 없지 않나. -북한이 원자탄(핵 분열)과 증폭핵분열탄(원자탄과 수소탄의 중간 단계)은 완성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수소탄(핵 융합)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게 통설이다. 다만 6차례의 핵실험 데이터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소탄 완성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파키스탄도 핵실험 6번 만에 핵무기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실험이 핵무기 개발에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비핵화 진정성을 보이는 의미 있는 조치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가 아닌 ‘폐기’라고 발표했다. 모든 갱도를 폭파시킨 후 입구를 폐쇄하고 주변의 관련 시설을 모두 철수하는 것이다. 산 중턱에 있는 갱구를 통해 수평으로 들어가면 중심에 핵실험 장소가 있다. 이 핵실험 장소부터 갱도를 지나 갱구까지 차례로 다이너마이트를 놓은 뒤 안쪽부터 차례로 연쇄 폭파시킨다. 즉 산을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핵실험장을 묻는 것이다. 그간 위성으로 관측된 갱구는 총 4개다. 다만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존보다 큰 시험장이 2개 더 있고 이는 건재하다”고 밝혀 내부에 몇 개의 갱도가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핵실험장 폭파로 방사능 유출 우려는. -핵실험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반이 단단하고 차단벽도 구간마다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지표면을 통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다만 인근을 지나는 지하수를 모두 점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환경오염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6차 핵실험을 한 갱도는 (실험 당시 충격으로 붕괴돼) 이미 사용이 불가하니 입구 붕괴 및 폐쇄로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역시 환경오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북한이 나중에 마음을 바꿔 핵실험장을 재가동할 수는 없을까. -갱도를 콘크리트로 매설해 메우는 방식이라면 다시 콘크리트를 파내면 재가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폭파 방식은 다시 갱도를 복원한다 해도 이미 인근 지반이 약해진 상태여서 더이상 핵실험이 쉽지 않다. 북이 다른 핵실험 장소를 찾는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핵실험이 가능하려면 화강암과 같이 강한 암반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고 주거 지역과도 격리돼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초대했는데 전문가는 초대하지 않았다. -우선 추후 전문가를 초청하거나 비공식 초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핵실험장 폐기가 이번 국면에서 첫 북핵 사찰 사례가 될 수 있어 관심이 높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자체 점검단 중 한쪽만 참여할지 공동으로 방북할지도 관건이다. 하지만 북 입장에선 이런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다. 선제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비핵화 검증 행사가 될 수 있다. 또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전문가에게 핵능력이 노출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전문가가 참여하면 사전 절차나 일이 복잡해져 시일이 늦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생방송 가능성은. -2008년 북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6자회담 당사국 언론에 공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녹화방송으로 무게가 쏠린다. 북한은 지난 12일 “국제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를 보장하고 기자센터를 설치한다”며 “국제기자단 성원이 핵시험장 폐기 상황을 현지에서 취재·촬영한 다음 기자센터(원산)에서 통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고 협조한다”라고 밝혔다. 풍계리와 원산은 직선거리로도 200㎞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 방송까지 꽤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오는 23~25일 중에 기상 상황을 보고 진행키로 해 핵실험장 폐기 일시도 아직 정확하지 않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자치광장]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한강/윤영철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

    [자치광장]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한강/윤영철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

    서울의 한복판을 가르며 흐르는 한강은 당초 한양도성 밖을 흐르는 문자 그대로 자연 하천이었다. 2014년 수립된 한강 자연성 회복 계획의 비전에서 제시된 대로 두모포에 큰 고니가 날아오르고 아이들이 멱을 감는 곳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제1차 한강종합개발을 시작으로 수면 매립과 개발, 도로 조성이 이어지며 지금과 같은 제방으로 둘러싸인 곧고 넓은 강과 수변공원으로 이뤄진 인공하천이 됐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한강을 꿈꾼다. ‘2030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은 이런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2014년 시작, 2030년까지 진행된다. ‘생태환경 개선’, ‘맑은 물 회복’, ‘친환경 이용’이라는 3개의 추진 전략과 한강 숲 조성, 자연형 호안(湖岸) 조성, 역사ㆍ문화 조망 및 체험 등 9개의 정책과제 아래 20개의 세부실행 과제로 이뤄져 있다. 현재 20여개 단위사업 중 8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강 숲 조성사업’은 올해 말까지 단기계획 목표인 45만 1700㎡를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한강 둔치에서는 사업 이전보다 훨씬 많은 나무와 꽃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의 한강변은 현재 콘크리트 대신 돌과 흙으로 이뤄진 자연형 호안으로 변하고 있다. ‘자연형 호안 조성 사업’을 통해 전체 한강 호안 78.7㎞ 중 39.8㎞가 이미 복원됐다. 지난 3년간 원효대교와 한강대교 구간(1.3㎞), 한강대교에서 동작대교 구간(2.1㎞)이 추가로 복원됐거나 진행 중이다. 호안사면 녹화를 위해 조기에 식생을 안정화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도입하고 있다. 물억새, 사초 등 초본류와 갯버들 같은 관목들이 우거진 호안사면은 곤충과 조류들의 은신처와 서식처 역할을 하는 생물서식공간(biotop)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홍수로 인한 수위 상승 때 물의 충격으로부터 제방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완전한 자연호안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강공원 둔치엔 시민들 운동ㆍ휴식 공간이 있고, 지하엔 대형 상수도관과 분류하수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매설돼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은 일반적인 조경 공사와 달리 그 자체로 완성품이 아니다. 생물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공구조물을 걷어내고 서식 여건을 조성해 주면 그 나머지는 자연이 스스로 회복해 나감으로써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이다. 60년대 여의도에 윤중제를 쌓기 위해 폭파돼 없어졌던 밤섬이 복원되었듯 자연의 복원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위대하다. 한강 자연성 회복 사업은 2030년까지 진행되는 긴 여정인 만큼 기다림이 필요하다. 인간과 자연이 오롯이 공존하기 위해선 시민, 전문가, 공무원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 장기 기증 이행 서명한 다음날 13세 아들이 깨어났다

    장기 기증 이행 서명한 다음날 13세 아들이 깨어났다

    부모가 장기 기증을 이행해도 좋다는 서류에 서명한 직후 13세 소년이 깨어났다. 지난 3월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에 사는 트렌튼 맥킨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맥킨리는 지난 3월 어린이용 다목적 트레일러에서 머리부터 굴러 떨어져 두개골 일곱 군데가 골절돼 뇌사 상태에 빠졌다. 바로 다음날 의사들은 산소호흡기를 떼낼 예정이었다. 의사들은 부모들에게 다시 의식을 되찾지 못할 것이며 다섯 어린이에게 장기를 이식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어머니 제니퍼 레인들에 따르면 여러 차례 개두수술(craniotomy)을 받았고 신장이 악화됐고 심장 마비도 경험했다. 한때 15분 동안 수치상으로 죽음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의사들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고 레인들은 다른 다섯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장기 기증 이행 서류에 서명했다. 그녀는 “우리가 좋다고 얘기한 것은 장기를 깨끗하게 기증하려면 의사들이 아들의 목숨을 계속 붙어 있게 할 것이란 점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고 돌아보고 “사망 시간을 특정하기 위해 다음날 마지막 뇌파 테스트가 예정돼 있었는데 바이탈 수치가 갑자기 튀기 시작했고 테스트는 취소됐다”고 말했다.현재 그는 더딘 회복 과정을 밟고 있다. 여전히 많은 신경이 손상돼 있고 마비도 겪고 있다. 두개골 절반을 연결하는 수술도 받아야 한다. 사고 순간에 대해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트레일러가 내 머리 바로 위로 쏟아졌다. 그 다음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지금도 걷고 얘기하고, 농구 슈팅도 하며, 심지어 읽기와 수학도 하고 있다. 그러니 레인들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심지어 의식 없을 때 천국에 다녀온 것 같다고 했다. 맥킨리는 “너른 들판을 똑바로 걸어갔다. 신의 도움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입원 비용을 돕는 기금 모금 운동을 펴고 있다. 당초 4000달러를 모을 작정이었는데 49일 동안 325명이 참여해 8일 오전 10시 45분 현재 1만 5372달러가 모금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양주 LP가스 폭발 ···주택 4채 파손 1명 숨져

    양주 LP가스 폭발 ···주택 4채 파손 1명 숨져

    경기 양주시의 한 마을에서 LP가스 폭발로 추정하는 사고가 나 주택 4채가 완파 또는 반파되고 60대 여성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7일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15분쯤 양주시 봉양동의 한 시골주택에서 LP가스 폭발로 추정하는 사고가 나 주택 2채가 완전히 부서지고, 다른 2채는 일부 파손됐다. 완파된 주택 한 곳에서는 A(67·여)씨의 시신이 119구조대에 의해 발견됐으며, 나머지 3곳은 빈집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주택가 현장은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이웃 주민들은 ‘북한에서 포를 쏜 줄 알았다’며 폭발 당시 충격을 전했다. 사고현장 건너편에서 자동차공업소를 운영하는 김우용씨는 “처음에는 우리 가게에서 가스가 폭발한 줄 알았다”면서 “너무 큰 소리에 깜짝 놀라 119에 곧장 신고했다”고 말했다. 농사일을 하러 나왔다가 폭발 사고를 목격했다는 이기원씨는 “뿌연 연기와 함께 폭발 잔재물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면서 “수십m 높이 솟아오른 것 같다”고 전했다. 폭발 현장은 슬레이트로 된 지붕이 휴지조각 처럼 구부러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콘크리트 잔재물이 가득 쌓여 있어 희생자를 찾는데 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폭발사고가 난 주택 뒤편으로 주민들이 일구는 밭에도 기왓장과 벽돌 등이 날아들어 사고 당시 충격을 가늠케 했다. 사고가 나자 소방당국은 소방차량 17대와 구조견 등을 투입해 현장 수습과 인명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고든 정의 TECH+] 차세대 소형 모듈형 원자로 개발 중…원자력 르네상스 다시 열릴까?

    [고든 정의 TECH+] 차세대 소형 모듈형 원자로 개발 중…원자력 르네상스 다시 열릴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원자력의 부흥기였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반대가 커졌지만,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신형 원자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지구 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하지만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예상보다 빠른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다시 원전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켰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신규 원전 도입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탈원전으로 정책 기조를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려가면서 차세대 에너지의 주도권이 화석 연료나 원자력에서 점차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이동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자력 시대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중국, 러시아 및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원전이 건설되거나 건설 예정인 곳도 많은데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훨씬 안전한 원자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역시 원자로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누스케일 파워(NuScale Power)의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는 획기적으로 안전성을 높인 차세대 원자로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원자로와 누스케일 원자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모듈식 구조입니다. 기존의 원자로는 일반적으로 모든 연료봉을 하나의 원자로 안에 넣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소한 문제로 전체 시스템을 정지시켜야 했고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생기면 핵연료 전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누스케일 SMR은 지름 2.7m, 높이 20m의 독립된 압력 용기로 각각 50㎿의 발전 용량을 가진 소형 원자로를 외부 환경과 격리된 콘크리트 수조에 여러 개 넣는 방식입니다. 각각의 모듈에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터빈을 돌립니다. 모듈식 구조 덕분에 문제 발생 시 해당 모듈만 교체하거나 수리하면 됩니다. 더구나 핵연료를 한데 집중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멜트다운(meltdown, 노심용해)가 설령 일어나더라도 처리가 쉽고 덜 위험합니다. 추가적인 장점은 해체 과정도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원자로는 해체 과정이 건설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모듈식 원자로는 기존의 원자로 대비 해체가 한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매우 단순한 구조입니다. 원자로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은 내부에 펌프처럼 움직이는 복잡한 부품을 제거한 데 있습니다. 이 미니 원자로는 내부의 1차 냉각제의 자연적인 대류 현상을 통해 냉각제를 순환시켜 2차 냉각제를 증발시키는 구조입니다. (개념도 참조) 사실상 움직이는 부품이 없어 고장이 날 가능성이 적고 전원이 차단되는 상황에서도 냉각제는 계속 순환해 냉각이 이뤄집니다. 마지막 안전장치는 거대한 콘크리트 수조입니다. 각각의 모듈이 물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만약에 2차 냉각제가 고갈되더라도 외부의 물이 모듈을 냉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막대한 양의 물이 외부의 충격을 완화하는 구조로 지진 등의 충격에 훨씬 안전한 구조입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나기 매우 어려운 구조입니다. 미국 원자력 규제 위원회(NRC·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는 2026년까지 누스케일 파워가 12개의 모듈로 된 첫 번째 SMR 원자력 발전소를 아이다호에 건설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여기서 안전성과 경제성을 입증한다면 SMR이 미래 원자력 발전의 중흥을 이끌 신기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SMR 역시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을 남기는 점은 마찬가지이고 방사능 누출 사고 가능성이 0%라고 할 수 없어 기존 원자력의 단점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핵융합 반응처럼 위험한 방사성 폐기물 및 자원 고갈의 우려가 없는 차세대 에너지원일 것입니다. 다만 그 중간 단계로 차세대 원자로의 역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진=누스케일 소형 모듈식 원자로의 구조(NuScale Power)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남북 훈풍 탄 철도관련株 강세

    남북 훈풍 탄 철도관련株 강세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철도 관련주가 연일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개성공단 입주업체 등 일부 남북 경협주는 하락하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대북 관련주가 ‘과속 상태’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2일 코스피에서 현대로템은 전 거래일보다 22.10% 오른 3만 2600원에 장을 마쳤다.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전 거래일인 지난달 30일에도 상한가를 기록하며 남북 철도 연결 관련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철도 신호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대아티아이(+21.89%), 현대제철 철도차량 1차 협력사인 대호에이엘(+15.91%), 역무 자동화 기기를 생산하는 푸른기술(+14.81%), 철도차량 유지·보수 사업을 하는 에코마이스터(6.34%) 등 철도 관련주들도 줄줄이 상승세를 보였다. 레미콘 업체인 부산산업은 철도 콘크리트 침목 생산 자회사를 뒀다는 이유로 철도 관련주로 부각되며 이날까지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현대건설우도 2거래일 연속 상한가로 치솟았다. 현대건설은 과거 경수로 등 대북 사업 경험이 있는 유일한 건설사다. 태영건설우(+25.22%), 두산건설(+13.49%), 계룡건설(+10.08%) 등 건설 관련주들도 동반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이날 일부 경협주는 하락세를 보였다. 투자주의 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재영솔루텍은 전 거래일보다 23.94% 급락한 데 이어 좋은사람들(-8.01%), 남광토건(-7.85%), 제이에스티나(-3.22%), 인디에프(-2.56%) 등 개성공단 입주업체들도 하락했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경협주는 코스피 대비 초과수익률이 100% 포인트에 육박하는 등 유례없는 과속 상태에 들어서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남북 해빙 무드로 인한 경협 기대감으로 급등세를 보인 종목들은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격언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언제든지 차익 매물이 대거 나올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초미니 아파트 분양 러시를 이루고 있는 홍콩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초미니 아파트 분양 러시를 이루고 있는 홍콩

    지난 19일 홍콩 카오룽반도(九龍半島·Kowloon Peninsula) 서북쪽의 삼서이보(深水埗). 부동산 개발업체 윙쿽사가 거실을 겸한 방 한칸과 샤워실, 부엌만 갖추고 있는 초미니 아파트 분양이 한창이다. 붙박이장이 있는 거실겸 방에는 침대 외에 다른 가구를 들여놓을 여유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면적은 고작 11㎡(약 3.4평)에 불과하다. 20평방피트짜리 컨테이너(약 11.7㎡)보다 작고, 미국 주차장의 자동차 1대 주차면적보다도 더 작은 크기다. 홍콩에 ‘나노 플랫’(nano flat)과 ‘캡슐 홈’(capsule home), ‘구두상자 집’(shoe box home)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초미니 아파트(면적 20㎡ 이하·6.05평) 분양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홍콩인들이 이보다 더 큰 아파트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15.9%나 급등하는 등 올해 1월까지 연속 22개월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2월 홍콩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1년 전보다 16% 오른 평방피트(0.09㎡)당 1만 2644 홍콩달러(약 172만원). 3.3㎡(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6100만원에 이른다. 홍콩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지역도 ㎡당 분양가가 2000만원을 넘는다. 그렇지만 홍콩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은 1만 7200 홍콩달러에 불과하다. 30년간 모아야 56㎡(17평) 집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홍콩인들은 중대형 아파트를 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소형이나 초미니 아파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체 카오룽 디벨럽먼트사가 폭푸람(薄扶林) 지역에 짓는 209평방피트(19.4㎡·5.9평) 아파트는 지난달 786만 홍콩달러에 분양됐다. 무려 평당 1억 8100만원에 팔린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센털라인의 빅터 라이 매니저는 “초미니 아파트의 가격은 중형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며 “개발업자들도 이러한 점을 노리고 초미니 아파트 분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힘입어 올들어 삼서이보와 틴수이와이(天水圍)지역에서 건설되는 6개 단지의 아파트 3300여 가구 가운데 초미니 아파트가 분양 물량의 15%를 차지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홍콩 교통주택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건설된 민간 아파트 중 초미니 아파트는 1만 7791가구의 4%인 691가구이다. 2016년 206가구(1.4%)보다 3배 이상 늘었다. 2012년에만 해도 신규 분양 아파트 중 이런 초소형 아파트는 단 한 가구도 없었다. 신규 분양 아파트 중 초미니 아파트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는 까닭이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라이선그룹이 지난해 8월 분양한 초소형 아파트(4.4~8.8평)는 하루만에 98가구 완판됐다. 4.4평형 아파트 분양 가격이 279만 홍콩달러(3억 8300만원)였다. 그런데도 이를 구매하기 위해 1200여명이 몰려들어 1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아파트가 위치한 곳은 카우룽반도의 몽콕 지역으로 입지가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부동산 컨설팅 분석가 웡렁싱은 “초미니 아파트의 인기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홍콩의 많은 젊은이들이 혼자만의 생활을 누리고 싶어 하고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작은 평수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가격별로 계약금 비율이 다르다는 점도 홍콩인들이 초미니 아파트를 선호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700만 홍콩달러 이상 아파트는 집값의 40%를 계약금으로 내야 한다. 이에 비해 400만 홍콩달러 이하 아파트는 집값의 10~15%만 계약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홍콩 젊은들에게는 400만 홍콩달러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홍콩에는 이른바 ‘깡통하우스’(can house)도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홍콩 디자인 인스파이어’ 박람회에 소개된 캔 하우스는 홍콩 소재 건축회사 제임스 로 사이버텍스처사가 선보였다. 콘크리트 수도관 안에 각종 편의시설을 구비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초미니 주택이다. 수도관의 길이는 5m, 지름은 2.1m이며 바닥 면적은 9∼11㎡ 정도다. 접이식 침대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갖춰져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과 연결해 집의 불을 켜고 끄는 등 원격 조종도 가능하다. 차지하는 면적이 좁고 운송이 간편하며 다른 캔하우스와 함께 쌓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빌딩과 빌딩 사이 작은 공간에 연결 부품 없이 여러 채를 쌓아둘 수도 있고, 고가도로 아래나 건물 옥상에도 설치할 수 있다. 캔 하우스의 무게는 20t 정도로 이동도 간편하다. 제임스 로 사이버텍스처 대표는 “건설 현장에 콘크리트 수도관들이 널려 있어 무심코 들어갔다가 그 안이 무척 넓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때 이 수도관 안에 편의시설이 갖춰지면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 대표는 “캔 하우스는 무엇보다 비용이 매우 적은 데다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쾌적해 높은 집값에 지친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캔 하우스 한 채의 가격은 1만 5350달러(약 1640만원) 정도이며, 한 달에 383달러 정도에 임대될 예정이다. 사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국가와 도시의 비교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홍콩 집값은 2월 기준 세계 280개 도시 가운데 가장 비싸다. 홍콩 도심 아파트가격은 3.3㎡(평)당 9750만원에 이른다. 두번째로 비싼 도시는 서울과 비슷한 규모의 싱가포르(6830만원)이다. 이어 영국 런던(6820만원), 중국 베이징(5990만원)과 상하이(5733만원), 스위스 취리히(5594만원) 등의 순이다. 세계의 경제 수도로 통하는 미국 뉴욕(7위)은 예상과 달리 평당 4815만원에 그쳤다. 다만 뉴욕 집값은 맨해튼뿐 아니라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 뉴욕주 여러 도심을 포함한 가격이다.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은 평균 4683만원으로 8위 스위스 제네바(4806만원), 9위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4805만원)에 이어 세계 10위를 차지했다. 일본 도쿄의 도심 집값(3860만원)은 서울보다 한참 낮은 19위이다. 물론 절대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집값이 그 도시에 사는 수요자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느냐다. 주택가격이 비싼지 아닌지는 가구별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을 지표 삼아 비교·판단한다. 넘베오에 따르면 올해 세계 도시 가운데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가장 높은 곳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가 무려 200.48이다. 해마다 선두권을 유지하던 베이징(49.75), 상하이(43.05), 홍콩(41.43) 등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따돌렸다. 카라카스 PIR대로라면 이곳 사람들은 200년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카라카스의 3.3㎡당 아파트값은 507만원. 여느 선진국 도시보다는 싸지만 국민 1인당 소득이 월 3만 5676원인 점을 감안하면 주택 가격이 매우 높은 편이다. 같은 방법으로 베이징에서는 집을 한 채 마련하려면 49.75년이 걸린다. 영국 런던(8위·23.07), 싱가포르(9위·22.47) 등 선진국이나 이탈리아 로마(14위·20.65), 태국 방콕(15위·20.49) 등도 서울(23위·19.33)보다 높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정은 “국제사회 투명하게 공개”…핵실험장 폐쇄 생중계할 듯

    김정은 “국제사회 투명하게 공개”…핵실험장 폐쇄 생중계할 듯

    金 “난 美 향해 핵 쏠 사람 아냐” 비핵화 프로세스 진입 신호탄 ‘정치적 쇼’ 라는 의심 잠재우기 북미회담에 긍정적 영향 줄 듯5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전 세계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 주는 ‘빅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첫 단추를 끼웠음을 알리는 정치적 행위이자 상징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동결-폐기’로 압축되는 프로세스에 이미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비핵화 논의가 본격화될 5월 말 6월 초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땐 녹화중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시행할 것이며,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자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 언론인들을 조만간 북한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비핵화 의지를 외부에 보여 주고자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해체할 때도 미국 CNN, 한국 MBC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핵 6자회담의 다른 5개 참가국 방송·통신사를 초청했다. 당시 냉각탑 폭파 행사는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영변 현지에 위성 송출시설이 없어 불발됐다. 대신 이 장면은 폭파 수시간 뒤 전 세계에 녹화 중계됐다. 그러나 그간 위성 송출기술이 발전해 간단한 장비로도 생중계할 수 있어진 데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하려면 생중계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어 이번에는 생중계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간 합의로 한·미 언론인과 전문가를 언제 파견할 것인지 논의해야 하는데,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 전에 폐쇄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풍계리 이외 영변 핵시설에 대한 언급은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단은 이 내용”이라고 답했다. ●풍계리는 北 핵무력의 심장부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반대하는 미국 내 강경파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나는 남쪽이나 태평양, 미국을 향해 핵을 쏠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공개하는 행위는 김 위원장 발언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될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8년 폭파된 영변 냉각탑과 달리 지난해 9월까지 핵실험을 한 북한 핵무력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높이 20여m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인 영변 냉각탑은 폭파되기 2년 전인 2006년부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폭파 당시에도 ‘용도폐기 된 빈 껍데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폐쇄는 다르다는 평가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일부에서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핵실험 시설보다 훨씬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한 것도 ‘정치적 쇼’라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측이 한국 언론을 비롯해 외부 언론에서 나오는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비핵화의 시작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선 핵 동결과 이미 생산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 폐기, 미래의 핵을 폐기하기 위한 시설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씨줄날줄] ‘5㎝’/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5㎝’/박건승 논설위원

    판문점은 원래 ‘널문리’였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평양으로 간다. 그때 백성들이 대문으로 만들어 준 임시 다리로 강을 건넜다고 해서 ‘널문리’로 불렸다. 360여년이 흘러 한국전쟁 당시 휴전회담이 ‘널문리 주막’ 앞에서 진행됐는데, 이것을 중국 측이 읽을 수 있게 한자어로 바꾼 게 ‘판문점’(板門店)이다.애초 판문점은 남북이 유일하게 경계선 없이 공존하던 공동경비구역(JSA)이었다. JSA는 1951년 정전협정 논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평범한 시골 벌판 한 자락에 불과했다.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을 계기로 군사분계선(MDL)이 생겨났다. 판문점 북측 지역과 남측 지역에 걸친 이른바 ‘T2-T3’ 사잇길에 군사분계선이 있다. 여기에서 ‘T’는 언젠가는 사라질 임시 건물(Temporary)이라는 뜻이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이다. ‘T’는 한국전쟁과 휴전, 분단을 상징하는 아픔이 깃든 곳이다. 판문점이나 T건물 어느 것 하나 담고 있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의 콘크리트 턱을 넘는 모습은 연말 ‘세계 10대 뉴스’로, 미국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할지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예측이 현실화할 공산이 매우 커졌다. 높이 5㎝, 너비 50㎝. 이 콘크리트 연석은 군사분계선 표시를 위해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치한 것이다. 5㎝ 높이 턱만 넘으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단 한걸음에 가게 된다. 어제 남북 정상 만남은 이 콘크리트 턱을 사이에 두고 이뤄졌다. 그런 연후에 두 정상은 손 잡고 세 차례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마치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그들은 긴장한 듯하면서도 뺨에는 홍조가 올랐다. ‘그림 같은 평화’였다고나 할까. 마음만 먹으면 이리 쉬운 일인데 그 선을 넘는 데 11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불과 땅에서 검지 하나가 채 안 되는 정도의 높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높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벽이었다. 5㎝ 턱이 가른 남북 사이가 그렇게나 멀었으리라. ‘벽’을 넘나든 두 정상의 행보는 그들 개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비핵화 이후 나중에 더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한 큰 걸음일 수 있다. 우리 자손들은 훗날 이 5㎝ 높이의 콘크리트 턱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만약에 통일의 그날이 온다면 5㎝ 턱의 흔적을 지워야 할지, 보존해야 할지를 두고 ‘행복한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ksp@seoul.co.kr
  • 남북 손잡고 ‘10초 깜짝 월경’… 친교 산책서 30분 단독회담

    남북 손잡고 ‘10초 깜짝 월경’… 친교 산책서 30분 단독회담

    金 “文대통령 직접 나와서 감동” 文 “여기까지 온 것 아주 큰 용단” 金 “북으로 지금 넘어가 볼까요” 文 “수행원들과 사진 찍을까요” 예정 없던 깜짝 제안 주고받아 北지도자 첫 국군 의장대 사열 소나무 공동식수·표지석 세워 환송공연 ‘하나의 봄’ 영상 상영 金, 밤 9시 28분 北으로 돌아가 “정말 설레는 마음이 그치지 않고요.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니까, 또 대통령께서 이렇게 판문점 분리선(군사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 주신 데 대해서 정말 감동적입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험난하고 지난했던 긴 터널을 지나 남북 정상이 27일 오전 9시 29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비로소 손을 맞잡았다. 처음 마주한 상대의 눈을 보며 20여초간 강렬한 첫 인사를 나눴다. 두 정상은 감격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었고, 문 대통령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판문점 평화의집은 남북 정상회담 준비로 새벽부터 분주했다. 수행원 대기실에는 서울의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와 남측보다 30분 늦은 평양 시간을 보여 주는 시계가 나란히 걸렸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T2-T3’ 사잇길에는 무장군인 대신 정장을 입은 남북 경호원들이 마주 섰다.문 대통령은 오전 8시 청와대를 출발해 52㎞를 달려 9시 1분 판문점에 도착했다. 잠시 평화의집에서 휴식을 취하고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9시 27분쯤 김 위원장이 걸어 내려올 ‘T2-T3’ 사잇길로 이동했다. 북측 판문각 직원들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판문각 2층 커튼을 살짝 걷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오전 9시 28분 정적이 흐르던 판문각 문이 열리고 김 위원장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새벽 승용차로 개성을 거쳐 내려왔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경호원 12명에게 둘러싸여 내려왔다. 검은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내려오다 호흡을 가다듬고선 문 대통령을 향해 밝게 웃었다. 김 위원장은 ‘T2-T3’ 사잇길을 가로지르는 높이 10㎝, 너비 50㎝의 콘크리트 경계석 북쪽에 서서 남쪽에 선 문 대통령과 악수하고 경계석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쪽 땅에 최초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세기적 만남의 이벤트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아 끌었다. 두 정상은 ‘금단의 선’ MDL을 가볍게 넘어 10초간 북측 땅을 밟은 뒤 되돌아왔다. ‘10초 깜짝 월경’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김 위원장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개방적이고 호방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의도한 연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0월 2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가는 길에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비슷한 메시지를 남겼다. 평화의집에서 문 대통령과 환담하며 “(판문각에서 MDL까지) 불과 200m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 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면서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측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국군의장대와 전통의장대를 사열했다. 문 대통령과 MDL 만남을 가진 뒤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집과 평화의집 사이에 있는 판문점 광장으로 이동했다. 두 정상 주위를 호위무사들이 장방형으로 에워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두 정상이 우리의 전통 가마를 탄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 예포 발사 등 정식 의장대 사열 의전은 생략했지만 전통의장대와 3군의장대 300여명을 동원, 북측 정상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북한을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의장대 사열을 마치고 남북 정상은 양측 수행원들과 악수한 뒤 단체 사진 촬영을 했다. ‘10초 깜짝 월경’처럼 이 또한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북측 수행원 가운데) 사열을 끝내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다”고 돌발 제안을 했다. 평화의집으로 이동한 뒤 김 위원장은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가져다준 만년펜으로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란 글을 남겼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 15분부터 11시 55분까지 100분간 정상회담을 했다. 오후에는 남측 군사분계선 인근 일명 ‘소떼길’에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으로 소나무를 심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를 끌고 방북했던 길이다. 공동 식수한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반송’이다.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줬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귀를 새긴 표지석도 세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대동강 물과 흙을 나무함에 넣어 아주 정성스럽게 가져왔다”고 전했다. 공동 식수를 마치고선 수행원을 물리고 군사분계선 표지물이 있는 푸른색 ‘도보다리’까지 산책했다. 두 정상은 오후 4시 42분 다리 끝에 설치된 의자에 단둘이 마주보고 앉아 5시 12분까지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잠깐 담소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실상 ‘단독 회담’이었다. 북측 사진기자가 다가가 근접 촬영을 시도하자 김 위원장은 웃으며 비켜달라고 손짓했다. 김 위원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문 대통령에게 무엇인가를 얘기했다. 두 정상만 아는 ‘밀담’이다. 멀리서 촬영 중인 생중계 카메라에는 요란한 새 소리만 담겼다. 양 정상은 이날 3개장 13개 조항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악수하고 잡은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선 부둥켜 안았다. 환송만찬에는 김정숙 여사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참석했다. 마지막 행사인 환송공연에선 평화의집 벽을 스크린 삼아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표현한 ‘하나의 봄’이란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공연 말미에는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을 기록한 사진 영상물이 상영됐다. 두 정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았다. 오후 9시 26분 김 위원장 내외는 문 대통령 내외의 전송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9시 28분 김 위원장의 차량이 MDL을 통과하고서야 문 대통령도 판문점을 떠났다. 오전 9시 29분부터 오후 9시 28분까지 거의 12시간 만에 기적처럼 찾아온 한반도의 봄이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남북 흙·물로 ‘평화의 소나무’ 심고, 수행원 없이 도보다리 산책

    남북 흙·물로 ‘평화의 소나무’ 심고, 수행원 없이 도보다리 산책

    故정주영 회장 방북했던 ‘소떼 길’ 한라산·백두산 흙 섞어 공동 식수 文은 대동강물, 金은 한강수 뿌려 北 9시에 맞춰 9시 30분 첫 만남 金 ‘T2-T3’ 사잇길 걸어내려와 文 ‘금단의 선’에서 金 직접 영접 오후엔 두 정상 단독회담 가능성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한반도 ‘평화의 봄’이 피어오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첫 만남을 시작한다. 김 위원장은 판문각에서부터 남북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 ‘T2-T3’ 사잇길을 걸어 내려와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높이 10㎝에 불과한 콘크리트 경계석이 바로 군사분계선이다. 이 ‘금단의 선’에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손을 맞잡는다. 만남을 9시도 아닌 9시 30분으로 애매하게 잡은 것은 북한을 배려한 조치로 보인다. 북한 표준시간은 우리보다 30분 느리다.두 정상은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식 환영식이 열리는 자유의집과 평화의집 사이 판문점 광장까지 함께 걷는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최초로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한다. 국가 연주, 예포 발사는 생략한다. 의장대 사열은 정상외교의 보편적인 행사다. 전통의장대는 ‘아리랑’을 연주할 예정이다. 공식 환영식 후 평화의집 1층에서 김 위원장은 방명록에 서명하고 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한다. 이어 접견실에서 사전 환담을 나눈 뒤 2층 회담장으로 이동,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상회담을 시작한다. 오전에는 확대정상회담, 오후에는 배석자를 최소화한 단독회담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각각 오찬을 하고선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를 끌고 방북했던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 길’에 나무를 심는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섞고 김 위원장은 한강 물을, 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준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같은 방식으로 소나무를 심었다. 식수 표지석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와 양 정상의 서명을 새긴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반도 화해와 평화가 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공동식수는 남측이 제안했다. 공동식수를 마치고 두 정상은 수행원 없이 ‘도보다리’(FOOT BRIDGE)를 산책하며 오붓하게 담소를 나눈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중감위)가 판문점을 드나들 때 동선을 줄이려고 판문점 습지 위에 만든 길이 50m 정도의 작은 다리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폭이 좁아 이번 회담을 준비하며 확장하고 ‘한반도기’ 색인 하늘색으로 새 단장을 했다. 남북 정상은 이 다리의 군사분계선 표식 바로 앞까지 함께 걷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도보다리에서 두 정상이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의자와 탁자를 마련했다”며 “아무도 따라붙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대화하는 건 이때가 유일하다. 합의문은 오후 회담을 마치고 만찬 행사 전에 발표한다. 오후 6시 30분부터 열리는 환영만찬에는 양 정상과 수행원들이 참석하며 북측에서는 김 위원장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핵심참모 25명이 자리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환영만찬 후 환송 행사에서 ‘하나의 봄’이란 영상을 함께 보며 정상회담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판문점 평화의집 벽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신한다.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표현한 영상과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세기의 회담은 막을 내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과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윤중기 인터뷰 일시 1997년 11월 6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윤중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1950년 12월 18일 황하삼과 인천을 출발 6·25 사변 때 나는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이었으며 살던 곳은 동구 인천극장 건너편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할 때는 앞집에 살던 황하삼(黃夏三·인천해성중학교 3학년)과 함께 출발했다. 함박눈이 많이 내린 그 날 깊은 밤에 도착한 곳이 안양이었고 안양에서 새벽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걸어서 도착한 곳이 수원이었다. 수원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서 남하하여 대구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그날이 1950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이었다. 대구에서 삼랑진을 거쳐 다음 집결지인 마산까지 가게 되었다. 1951년 1월 3일 황하삼과 내가 17일 동안 걸어서 내려와 마산에 도착해 보니 마침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이 있어서 중학교 4~6학년들이 신병모집에 응했는데 나는 황하삼이 어려서, 황하삼과 같이 움직이려고 해병 신병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때 나와 인천공업중학교 같은 반이었던 문병하, 한경희, 임석주를 포함한 4~6학년 중학생 600여명이 해병 6기로 입대하였다.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황하삼과 함께 입대 해병 6기 신병모집에 나이가 어려서 지원도 못 한 중학교 1~3학년 학생들과 탈락한 중학교 4~6학년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1500여명은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3주 훈련을 마치고 군인이 된 우리들은 부산 동래온천에 있었던 육군보충대로 갔다.5사단 35연대 1대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속 육군보충대에서 드디어 트럭을 타고 하루 종일 걸려 강원도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 최전방이 가까워져 오면서는 포성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니 점차 그 소리는 커지고 화약 냄새도 났다. 그렇게 화약 냄새가 나는 골짜기를 지나 도착한 곳이 5사단 사령부였다. 여기에서 각 연대로 배치되고 나와 황하삼은 함께 35연대 1대대로 배치받았다.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치 나와 황 하삼은 5사단 35연대 제1대대 보급과에 있는 탄약소대에 남게 되었다. 당시 내가 배치받았던 탄약소대는 1대대 전 지역에 탄약을 보급하는 곳이었다. 5사단 35연대 1대대 CP에서 출발하여 나는 황하삼과 탄약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전방 대대 OP 쪽으로 보급 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보급물자를 실은 트럭을 타고 대대CP를 출발하여 트럭 위에서 보니까 콘크리트 다리 옆으로 큰 바위산이 있고 그 다리를 지나서면 왼편으로 샛길이 나타나면서 그 길로 우리 탄약차가 들어서면 그곳이 바로 대대 OP가 있는 풍기국민학교였다. 대대OP·CP를 설명하자면 대대OP는 대대전방지휘소를 말하며 대대전방 전투지역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아 대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곳이고, 대대CP는 대대의 후방에서 행정과 보급을 맡아 전투지역을 지원해 주는 곳이다.동네 친구 황하삼의 전사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에서 나하고 같이 활동한 황하삼이 살던 집은 인천극장 앞 우리 집 건너편이었다. 황하삼은 인천에서 남하할 때부터 나하고 같이 걸어서 내려갔고,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도 같이 입소했고, 부산 동래 임시보충대에서 같이 지냈고, 5사단 35연대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도 같이 배치되어 생사고락을 같이한 유일한 친구이며 전우였다. 황하삼은 나와 같이 최전방에 있을 때 적 포탄이 떨어지면서 파편에 뒤통수를 맞아 내가 보는 앞에서 즉사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던 첫 휴가 1951년 6월 중순에 대대장이 나에게 첫 휴가를 가라고 배려해 준 것은 인천부터 나하고 같이 전쟁터에 온 내 친구 황하삼이 며칠 전에 전사했기 때문에 대대장이 나를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고향 인천의 내 집을 떠났을 때는 1950년 12월 18일, 그때로부터 불과 7개월 만이었지만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막 집에 가까이 갈수록 부모님과 형제들 보고 싶었던 감정은 사라지고 갑자기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하삼 얘기를 어떻게 꺼내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황하삼 어머니 통곡의 눈물 어느덧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좀 있으려니까 황하삼 어머니께서 오시더니 “우리 하삼이도 잘 있지?”라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 어머니, 하삼이는 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귀대 날짜는 다가오고 해서 할 수 없이 황하삼이 전사했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그러자 황하삼 어머니는 “왜 내 아들만 죽었냐”라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셨고, 황하삼 식구들은 온통 울음바다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제대 나는 가칠봉 전투에서 괴뢰군의 집중 포격으로 전신에 파편상을 당해 부산 1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8개월 동안 내 몸 안에 박혀있는 파편을 빼내는 긴 입원 치료를 받은 후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를 하였다. 한 형제같이 함께 자란 황하삼! 조국과 고향을 지키려 전쟁터까지 같이 가서, 나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는 죽어서 고향에 오지 못하고, 그래도 항상 네 이름 석 자 황하삼은 내 가슴 속 깊이 있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1회 계속참전기 10회를 마치며 같이 한 동네서 자란 중학생 황하삼과 윤중기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같이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한 후 한 부대에서 같이 참전하였습니다. 먼 훗날에도, 나라를 위하여 전사한 인천학생 황하삼의 애국심을 기억해주기 바라며 이 참전기를 기록합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윤중기 ▲공립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 소속 1950년 12월 18일 :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생으로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서 도보로 남하 시작함. 1951년 1월 10일 :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도착하여,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자원입대함. 1951년 6월 4일 :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윤중기 옆에 있었던 황하삼이 전사함. 1952년 7월 5일 : 상이용사로 명예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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