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케일
    2026-07-28
    검색기록 지우기
  • 습도
    2026-07-28
    검색기록 지우기
  • 본인
    2026-07-28
    검색기록 지우기
  • 국물
    2026-07-28
    검색기록 지우기
  • 보정
    2026-07-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59
  • 「레미제라블」 27일부터 한국공연

    ◎브로드웨이 유명 뮤지컬스타 대거 출연 「미스 사이공」「오페라의 유령」「캐츠」와 함께 세계 뮤지컬의 「빅4」로 꼽히는 「레 미제라블」이 오는 27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쌍벽을 이루는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지난 85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아시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싱가포르·홍콩에 이어 이번에 첫 국내공연을 갖게된 것.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무대화한 이 뮤지컬은 그동안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22개국에서 3천7백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올해만도 한국을 포함,독일·남아공·핀란드 등 28개국에서 제작·공연될 예정이다. 19세기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프랑스 사회를 다룬 다소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각본과 뛰어난 곡으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는 뮤지컬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낭만주의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과 브로드웨이 및 웨스트앤드 뮤지컬 스타들의 빼어난 가창력과 연기력,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웅장한 무대장치,장엄하고 스피디한 장면전개,관객의 가슴을 저며오는 음악 등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7월28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토 하오 2시·7시30분,일 하오 1시·6시30분.518­7343.〈김재순 기자〉
  • 유기농산물서 농약 검출/발암물질 생성 질산염도/「시민모임」 조사

    ◎일부농약 잔류기준치 조차 없어 식품업체나 일반농가에서 생산,시판중인 유기농산물과 과채류에서 맹독성이거나 발암성 농약이 검출됐으나 국내에서는 이들 농약에 대한 잔류허용기준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지난 4월10일부터 5월말까지 1,2차에 나눠 국립농산물검사소 등에 의뢰,유기재배 및 일반재배된 채소·과일류 93점을 대상으로 농약 및 질산염 잔류량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과채류 26점중 15점(59%)에서 농약이 검출됐고 유기농산물 9점중 5점(56%)에서도 농약이 검출됐다. 풀무원식품이 유기재배한 고추에서는 발암성과 신경독성이 있어 옛 소련에서조차 금지된 것으로 알려진 비페스린이 0.004ppm이 검출됐으며 깻잎에서도 미 환경보호청(EPA)가 발암가능성이 있다고 분류한 클로로타로닐 0.022ppm 검출됐다.깻잎에서는 특히 사용할 수 없는 농약인 펜발레이트 0.111ppm도 검출됐다.그러나 이들 농약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잔류허용기준치가 마련돼 있지않다. 또 질산염 잔류량 검사결과 1,2차 조사대상 93점중 40점(43%)에서 체내 소화중 발암성물질을 생성하는 질산염 잔량이 세계보건기구 하루 권장량인 2천1백90ppm을 초과했다. 풀무원과 가나안농장에서 생산된 케일의 경우 질산염 잔유량이 각각 6천2백ppm과 6천4백ppm이었으며 열무는 최소 3천2백(미금시산)∼9천22ppm(현대백화점 압구정점 판매)로 나타났고 아욱은 1천1백79(신금농장산)∼4천6백95ppm(경기 남양산),배추는 1천2백(퇴계원산)∼5천65ppm(풀무원)이었다.
  • 「외길 30년」… 조각가 강관욱씨/11년만에 대규모 개인전

    ◎90년 교수직 떠난 전업작가… 전통 기법 고수/폭넓은 작품세계… 천안·광주 등 지방도 순회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자양분으로 자라는 자생조각을 하겠다』는 결심아래 외길 30년을 버텨온 조각가 강관욱씨(51)가 11년만의 대규모 개인전을 갖고있다. 서울(예술의 전당,17∼28일)과 충남 천안(아라리오화랑,6월1∼16일),전남 광주(시립미술관,6월20∼30일)에서 순회전을 펼치는 그의 작품주제는 역시 「자생조각전」이다. 이 전시회는 특히 지난90년 전남대 교수직을 떠나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처음 마련한 자리여서 그 치열한 작업정신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전업작가로 나선지 6년여.태안의 바닷가 백리포작업장에 묻혀 돌을 파는 그는 한국의 몇 안되는 굵직한 석조각가의 1인이다.화강암과 한국산 대리석을 소재로 인체와 손,바다등을 형상화한 그는 서구조각의 연마기법을 쓰지않고 정과 망치로 일일이 쪼아 마무리하는 한국의 전통 석조각 양식을 취했다.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은 34점.『고통의 강에서 허우적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작은위로가 되고 행복에 지친 안일한 영혼의 고통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는 그의 근작들은 이전보다 스케일이 커지고 작가의식이 강해졌다.주제나 내용도 예술적 범주를 넘어 사회적·인간적·역사적 메시지를 폭넓게 담고 있다. 일제시대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1937년 어느 길고 긴날」은 여체를 만지는 9개의 손으로 역사속의 추악한 범죄를 비유하며 고발한 작품으로 메시지가 강한 대표작이다.〈이헌숙 기자〉
  • 미 켈리,스위스 호네거,독 크로벨/세계의 거장 3인 국내전

    ◎갤러리 현대 오는 30일까지/기하학적 추상의 색작업 전시장 압도 현존하는 미국 최고작가의 하나로 꼽히는 엘즈워스 켈리(73)와 스위스출신 작가 가프리드 호네거(79),독일의 이미 크노벨(56)의 작품이 지난 18일부터 갤러리현대(734­6111) 전시장을 꾸미고 있다.5월5일까지. 독립된 공간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는 켈리의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과 강력함을 조화시킨 독창적 색면추상으로 전시장을 압도한다.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이 20세기 추상미술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20세기 추상미술­총체적인 모험·자유·원리」(96년 2월9일∼5월12일)전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작가로 지목된 그는 작가 자신의 개성을 전면 거부한 소위 「익명의 회화」를 통해 순수하고 절대적인 영역을 추구하고 있다.일체의 구체적 사물 이미지를 배제하고 색채와 형태의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는 화면은 「붓질 제스처」를 탈피하여 정확한 윤곽선을 강조한 긴장된 형태의 「색」작업의 산물이다. 켈리와 함께 소개되고 있는 호네거와 크노벨도 국제화단의 비중이 만만치 않은 작가들로 외형상 「기하학적 추상의 색작업」이란 공통점을 보인다. 호네거는 지난 60년 뉴욕의 마사 잭슨 화랑에서 대규모 첫 개인전을 갖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단순하고 기하학적 구성속에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을 담아낸 작품에서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작가 크노벨은 그 유명한 조셉 보이스의 제자이다.「눈부신 색채와 직관에 근거한 질서를 담고있다」고 평가되는 그의 작업은 기하학적 구조위에 색깔대비로 독창성을 꽃피우고 있다.회화·조각등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특이한 작업은 어둡고 밝고,따뜻하고 차가운 색깔의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배치에서 그만의 질서를 구가해나가고 있다.〈이헌숙 기자〉
  • K­2TV 미니시리즈 「프로젝트」를 보고(TV주평)

    ◎사랑 가미,기업드라마 건조성 완화 지난 6일부터 선보인 KBS­2TV 16부작 미니시리즈 「프로젝트」(윤용훈 연출)는 첫회분부터 돋보이는 기획의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을 펼치는 대기업 사원들의 정열과 사랑을 다룬 이 드라마는 제작비를 45억여원이나 쏟아부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게 시작됐다. 또 미국·러시아·독일·헝가리·체코·브라질 등 6개국에 걸친 현지로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현실감있는 화면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가 따르기도 한다. 내용은 인재제일을 최우선시하는 국내굴지의 반도체업체 「세신전자」에 입사한 젊은이들이 치열한 국제경쟁을 뚫고 독자적인 컴퓨터 중앙연산장치(CPU)개발에 성공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큰 줄기.여기에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가 가미돼 기업드라마의 건조성을 완화해준다. 드라마를 보면 흔히 기업드라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몇가지 기본요소가 떠오른다.불우한 환경을 딛고 자란 주인공,치열한 경쟁을 이겨나가는 도전의 연속,마침내 달게 맛보는 성공,그리고 사랑이야기….「프로젝트」는 기업드라마의 이같은 기본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과거 기업드라마들이 판에 박힌 줄거리나 특정기업 홍보성 내용으로 인해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점에 비추어 볼때 「프로젝트」역시 위험한 구석이 일부 눈에 띈다. 신입사원들의 연수모습이나 수시로 등장하는 기업로고,「지역 전문가」같은 용어들이 누가봐도 협찬사(삼성전자)를 염두에 두고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한다.또 반도체업계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사용되는 용어들이 지나치게 낯설다는 점도 시청자들이 거리감을 느낄수 있는 부분이다. 덧붙여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캐스팅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 형우역의 최수종이나 상대인 현정역의 전도연이 아직은 청춘물이나 하이틴스타일의 이미지에 머물고 있어 기업드라마에 어느 정도 적응할지 미지수인데다 최수종의 친구 상훈역을 맡은 황인성 역시 참신성에 비해 아직은 연기력이 다소 미흡한 것이 사실. 신기술개발을 둘러싼 국가간의 처절한 암투와 스릴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강한성격의 이 드라마에서 부드러운 분위기의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역할을 소화해 나갈지도 또다른 관심사항이다.
  • 공정위장 김인호씨/부위장 김선옥·철도청장 김경회씨

    김영삼 대통령은 7일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김인호 철도청장을 승진 임명했다. 김대통령은 또 차관급인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에 김선옥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직무대리를 임명하고 신임철도청장에 김경회 철도청차장을 승진발령했다. □얼굴 ◎김인호 공정거래위원장/정통 경제관료… 토지공개념 도입 앞장 6공 초기 옛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맡아 토지 공개념 제도 도입을 진두지휘했다.행시 4회로 기획원에서 출발해 물가정책국장·경제기획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개혁성향이 강한 인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매사에 합리적이지만 일단 결정된 사안을 추진하는 데는 고집스런 일면도 있다.선이 굵고 보스기질이 강하다는 평.부인 이진자씨(56)와 1남1녀가 있다. ▲경남 밀양(54) ▲경기고·서울법대·미 시라큐스대학원 졸▲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 ▲환경처차관 ▲한국소비자보호원장 ◎김선옥 공정위 부위원장/차분한 성격에 시야 넓은 보스스타일 93년 1급으로 승진하면서 옛 경제기획원에서공정거래위원회로 옮긴 뒤 2년10개월만에 차관급으로 승진했다.성격이 차분하면서도 시야가 넓고 보스기질이 강하다. 술은 많이 못하지만 술자리를 사양하지는 않는다.지난 85년 물가총괄과장으로 있을 때 김인호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을 당시 물가정책국장으로 모셔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는 평.취미는 바둑(2급).부인 홍명희씨(47)와 3녀. ▲서울(51) ▲서울고·서울법대 ▲행시 7회 ▲경제기획원 대외경제협력관·예산심의관·물가정책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부위원장 직무대리 ◎김경회 철도청장/교통부서 30년간 근무… 친화력 돋보여 부유한 집안 덕분에 유복하게 자란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서민적이고 친화력이 있어 부하직원이 많이 따른다.주량은 소주 한병 정도지만 차장 재임시절 직원들과 소주집이나 막걸리집을 자주 들러 소탈하게 얘기를 나누기를 좋아하는 스타일. 교통부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교통 전문가로 업무 스케일이 크다는 평을 듣는다. ▲충남 예산(58) ▲성균관대 법학과 졸 ▲교통부 안전감사관 ▲교통부 감사관 ▲교통부 안전관리국장 ▲교통개발연구원 파견 ▲민자당 교통체신전문위원 ▲철도청 차장
  • 서울신문 초청 오 국립방송교향악단 공연평

    ◎슬라브음악 「빈 스타일」로 해석 “신선” 한국을 처음 찾은 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교향악단(핀카스 슈타인베르크 지휘)의 첫날(27일)세종문화회관에서의 연주는 음악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빈 사람들의 기질을 나타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세삼스레 몽테스키외가 『빈에서는 사람은 죽지만 늙지는 않는다』고 한 명언이 떠오른다.스스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음악으로 밤을 지새우는 음악의 도시 사람다운 정열이 모든 단원의 표정에 스며 있었다. 이날의 레퍼터리는 이 오케스트라의 취향에 더 잘맞는 게르만계인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작품이 아니라 슬라브계인 체코와 러시아의 작품들이었다.빈은 이미 하이든 시대부터 변두리의 체코,헝가리,루마니아들과 깊은 교류를 해온 전통을 통하여 우선 첫곡인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에서는 세련된 감각으로 체코의 국민주의 음악의 요소를 알맞게 나타내면서 이 곡이 지닌 시적인 분위기도 잘 살렸다. 둘째곡은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서 최근 많이 활약하는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 박인혜가 독주를 맡았는데 지휘자가 열성있게 리허설을 하여 연주한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오케스트라가 포괄력이 푸짐하게 잘 이끌어갔으며 피아노는 그리 큰 스케일이 아니지만 특히 낭만주의 음악인 이 협주곡이 요구하는 감정이입을 절도있게 하기도 했으며 다이내믹하고도 델리케이트한 두 성격을 조화시켜나갔다. 오케스트라는 슬라브적인 멜랑콜리가 넘치는 이곡을 다소 빈 스타일로 조화시켜나갔다고 할 만큼 러시아 연주가 들과는 다른 작품해석을 한 셈이다.어떻게 보면 이런 작품해석이 빈 기질의 이 오케스트라의 색다른 표현이라고도 생각된다. 끝곡인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8번」연주는 이 작곡가가 오스트리아 음악에도 크게 이바지한 만큼 음악적으로 친숙감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교향곡이 품은 보헤미아적인 민족적 색채를 비롯하여 신선한 리듬과 친숙한 선율미를 자연스럽고도 유창하게 흐르게 했다.이 오케스트라는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 자기 나라나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 못지않게 슬라브계 음악인 드보르작의 본질을 파고 들었다. 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교향악단은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빈 필하모닉과는 달리 바이올린 파트만 하더라도 여성이 반수를 차지하며 더구나 악장과 수석이 여성이어서 빈의 오케스트라도 여성상위시대를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도 새로웠다.앙코르곡으로서 브람스 「헝가리 무곡」을 선사한 것도 연주회 분위기를 북돋운 셈이다.
  • 동양화가 성재휴(이세기의 인물탐구:92)

    ◎“파필과 파묵” 한국화 의 새경지 개척/스승의 필법을 거부… 한때 화단의 반란자로 낙인/해회서 먼저 진가 인정… 60년대 미 화랑서 작품거래/골동서화점서 일하다 소질발견,본격 그림 수업 아침햇살을 받고 먼 항해를 떠나는 풍곡의 「출범」은 언제봐도 찬란하고 의기양양하고 힘차다.청옥타래를 장식한듯 크고 작은 도서를 거느린 그의 돛단배들은 어느 때는 탁하고 어느 때는 눈시린 하늘을 배경한채 이상향을 향한 도도한 항진을 멈추지 않는다.유장하게 흐르는 끝없는 항로는 전에는 그의 미래였으며 이제는 그가 지나쳐온 먼먼 뒤안길이다. 평론가 이구열씨는 『풍곡의 독특한 준법은 웅장하면서도 교만함이 없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간사함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 천박하지 않으며 힘이 넘치는 붓질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화면구성이 특징』이라고 말한다.먹붓을 매끄럽게 다듬기보다 갈라지고 뭉친대로 파필과 파묵을 구사하여 강인하게 풍상을 견딘 천봉만학과 비바람에 마르고 닳은 산간석경을 「붓이 가는대로」 창출해 낸다.여기에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점과 적·황·남청색을 대비시킨 색채의 변환은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듯한 방타,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선획과 더불어 진취적이고 야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나게 한다. ○야인적 분위기 물씬 이런 풍곡의 세계를 향해 원로 이경성씨는 『전에 듣지 못하고 후에도 본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경지』임을 전제,『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방일은 자신만의 용필과 묵법을 일시에 실현시키고 있다』고 평한다.따라서 『그는 동양화로 불렸던 전통적인 화법을 깨고 그만의 화풍을 이룩하면서 「자연그대로」를 화면에 전개시키는가하면 어느 작품은 거의 추상에 가깝고 어느 작품은 서양화를 방불케 하여 기술적 정신적 측면에서 한국화를 개척하는데 앞장선 동양화 대가』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른바 『잔잔한 기교에 연연하기보다 한국미의 본질인 대범한 문기에서 우러나온 예리한 필단(붓끝)으로 시기속취를 없앤 묵색의 창윤과 구도의 웅대함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곡이라고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그의 활달한 화폭을 곧잘 그의 특기인 남도창에 비유하곤 한다.한량없는 주흥에 겨워 도끼로 찍어내듯 터져나오는 그의 창처럼 중중몰이 휘몰이로 이어지는 그의 화필은 남성적 스케일과 템포와 스피드와 박력을 드넓은 화면에 유창탁발하게 발휘해 낸다.예의「부드러운 우미의 서정성을 배격한 패기와 생명감에 넘친 장미의 의지적 공간」이 그것이다. 그의 술친구이자 한학자인 조규철씨의 「풍곡화실기」에 보면 「한창 술에 취해 노래와 웃음이 집을 흔들흔들하게 하고 방약무인한채 호기가 진탕하여 스스로 제지할줄 모르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는 미친듯이 그림에 몰두하여 그 정사와 세심이 삼매지경에 든다」고 쓰고 있다.실제로 그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탈하고 강렬한 인간적 체취와 즉흥적으로 발설하는 예술의 핵심적 본질론이 그의 작품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뉴욕초대전 호평 받아 풍곡은 경남 창녕에서 십리 못미처 위치한 창락면 어섬(어도)에서 태어났다.글방과 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창녕읍 골동서화점에서 일한 것이 자신의 그림 소질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고 18세 되던 해 대구의 서화가인 석재 서병오에게 사군자와 묵화를 사사,1년도 못되어 스승이 타계하자 이번엔 화법교본인 「개자원화보」로 독학하다가 다음해 호남의 산수화 대가인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정통 남종화법과 고전적인 그림 지식을 섭렵해 나갔다. 그러나 그림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그의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외곬의 성격은 지나치게 화보식인 법규를 초탈하여 자신만의 기질적인 필정과 묵취와 생명감으로 독자적 세계를 개척하기에 이른다.사풍의 고법형식을 좇지 않고 스승의 노여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그만의 화풍을 갖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반란으로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되어 그는 오랫동안 국내화단에 외면당하는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홀로 진주에 머물러 현대적인 방법을 모색한 일련의 작품으로 55년 서울에서 첫 전시,동아일보는 『전통을 고수하는듯 하면서도 새로운 선을 느끼게 하는 건실한 선,푸근한 묵운,탈속한 설채』란 호평을 실었으나 국내 화단은 끝내 냉담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57년 뉴욕의 저명한 화랑주인 부세티여사가 한국에 왔다가 때마침 서울 동화백화점에서 열린 그의 두번째 개인전을 보고 뉴욕 월드화랑이 주최한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형식적 유형에서 이탈된 분방한 먹붓그림」이 서양인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60년대 미국 화단에서 그림이 거래되는 유일한 동양화가로 올라서게 되었다.이렇게 풍곡의 경우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국내에 알려진 케이스로 우리 화단은 그의 예술의 진가를 알아보기에 인색했거나 알아보지 못한 결과를 빚은 셈이다. 정치적인 사교나 계산있는 대인관계에 어두운 그로서는 그후에도 해외 활동 20년만인 78년 중앙미술대전에 초대되었고 평생 처음 사회적 영예인 중앙문화대상을 수상,국내화단은 비로소 노익장의 예경에 대한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 80년대의 「돛단배」시리즈가 풍부하고 화려한 화면속에서 역동적 낭만성을 드러내고 있다면 90년대의 현실적인 산수풍경이나 호랑이나 새나 물고기를 의인화한 해학적 표현과 묵법 담채의 담대한 표현성으로화면의 신선감과 묘체를 성취,국내화단은 「전통화단의 거인 예술가」로 풍곡을 내세우면서 「지금까지 그의 화풍을 모방하거나 그런 류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외부인 접촉 일체 삼가 그의 일상생활은 지극히 서민적이고 물욕이 없는 야인이다. 그리고 아무리 정성을 담았다해도 마음에 들지않는 그림은 미련없이 찢어버리는 단호한 제작정신을 지키고 있다.전에는 친구들을 만나 말술에 바둑을 두거나 등산을 즐기기도 했으나 3년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여 말술도 친구도 끊고 요즘은 연희동 자택에 칩거한채 소품에나 손대고 있다.가족은 부인 강신애씨(71)와의 사이에 3남2녀,차남인 종학씨가 동양화가로 활약하고 있다. 『선도 악도 불자체는 아니며 그리로 이르는 과정(불가선불가악)』일뿐 이라는 그의 소신대로 그는 언젠가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마는 하도 어려워서 붓가는대로 이리저리 칠할따름』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고백한 바 있다.자신의 노추를 남에게 보이지 않고자 사진은 물론 사람 만나기를 일체 꺼리고가족이든 누구든 그의 그림에는 일체 손을 못대게 하는 등 한번 안되는 것은 끝까지 「안된다」「안한다」는 고집은 여전하다. 이제 장렬한 석양 앞에 선 그의 귀범은 모든 구차한 격식을 떨쳐버린채 투묘를 서두로는 시기다.그러나 그의 정박은 잠시의 휴식일뿐 그는 또한번 먼 항해에 앞선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일 힘차게 닻을 올리게 될 것이다. □연보 ▲1915년 경남 창녕출생 ▲1934년 의재 허백련문하에서 수업 19 38년 이충무공영정제작(충무 착량묘에 봉안),진주에서 작품생활 ▲1950년 대한미술협회회원 ▲1955년 첫개인전(서울 동방살롱)19 57년부터 백양회회원, 개인전(서울 동화백화점),뉴욕 월드화랑주최 「한국현대작가전」초대 ▲1958년 샌프란시스코박물관주최 「아시아미술전」 한국대표 초대 ▲1959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0년 중국 대북·향항미술관초대 「특별전」,뉴욕빌리지미술관 공모전 김상수상, 뉴욕시립도서관초대 개인전 ▲1962년 워싱턴 웨스트엔드화랑초대 개인전 ▲1965년 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8∼74년 수도여사대교수 ▲1969년 개인전(서울 신문회관)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동양화대전」초대, 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백양회이사, 개인전(서울미술회관)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초대,개인전(동산방화랑),동아미술제 심사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1983년 국립현대미술관주최 「현대미술초대전」 ▲1984년 현대화랑초대 개인전 ▲1987년 서울시주최 「서울미술대전」초대,현대백화점개관기념 초대전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준공 개관기념전초대,「서울미술대전」초대 ▲1987년 「풍곡성재휴 회고전」(호암갤러리) ▲ 중앙문화대상 예술상(78년)
  • 일 쓰쿠바 첨단센터(G7으로 가는 길:10)

    ◎정보·두뇌결집… 「제3의 창조」 촉발/1만5천여 연구인력 집중… 연구소끼리도 교류/“개량에 능하지만 독창성 없는 일본” 인식바꿔 도쿄로부터 북쪽으로 60㎞쯤 떨어진 이바라기현 쓰쿠바시에 자리잡은 쓰쿠바대학은 한겨울 찬바람속에서도 오고가는 학생과 차량으로 늘 북적댄다.학술연구도시로 세워진 쓰쿠바시에 터잡고 있는 국립연구소와 민간기업연구소등 각종 연구기관은 줄잡아 2백80여곳.세계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연구소들이 즐비하다.그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곳은 쓰쿠바대학의 첨단학제영역연구센터(선단학제령역연구센터:TARA센터)다. 쓰쿠바시가 새롭고 쓰쿠바대학은 더 새롭지만 첨단학제영역연구센터는 가장 새롭다.쓰쿠바시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 19 64년이고,대학은 73년에 설립됐으며,첨단학제영역연구센터는 94년에야 문을 열었다.걸어온 길이 얼마 안되는 데도 이들이 세계의 눈길을 모으고 있는 까닭은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시대의 요청에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쓰쿠바시는 63년 도쿄시의 과밀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그러나 베드타운으로 불리는 흔한 위성도시와는 달리 국립연구소를 이전시키고 민간기업 연구소를 대거 유치함으로써 학원연구도시로 육성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였다.당시 일본정부는 소득배가정책을 내걸고 있었다.생산자를 중시하고 기술개발에 바탕을 둔 국가개발 전략이 채택됐다.쓰쿠바는 국가발전을 위한 과학기술개발의 본격화에 발맞춰 채택된 모델이었다. 쓰쿠바에는 우주항공·물리학·생물학·반도체·화학·농학·기계·미생물·지질학·전자공학·기상학·건축학·조선공학등 거의 모든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소가 집중돼 있다.특정분야의 연구단지 수준을 넘어 다양한 연구소를 집결시킨데 커다란 특징이 있다.뿐만 아니라 이바라기현은 공업단지(민간연구소유치지역)협의회를 조직해 연구소끼리 활발한 교류를 촉진시키고 있다.쓰쿠바는 한마디로 아이디어와 기술을 만들어내는 종합 공장이다. 쓰쿠바는 특히 지난 85년 국제과학기술박람회를 계기로 민간기업의 연구소들이 속속 유입,1만5천명 이상의 연구인력이 집중되면서 세계적인 과학기술의 메카로 비약하고 있다.최근 일본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연구소의 유치등을 통해 지역발전의 전기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쓰쿠바가 성공을 거둔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요인에 대해 쓰쿠바시청 도시개발부 야마자키 신이치(산기진일) 부장은 『쓰쿠바는 정보·연구인력을 집중시켜 정보를 취득하기 쉽게 만든 것이 성공의 가장 커다란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쓰쿠바대학의 첨단학제영역연구센터는 이러한 발상을 더욱 진전시킨 새로운 시도다.일본은 개선 개량에는 능하지만 기초적 독창적 연구에는 구미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TARA센터를 구상한 에사키 레오나(강기영어내) 학장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기초연구에서 얻게되는 맹아적 과학지식을 빨리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신기술로 확립해 이를 유효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TARA센터의 설립취지를 설명한다. TARA센터의 진면목은 연구 진행 방법,프로젝트의 선정등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이곳에서는 고정된 연구부문을두지 않는다.폭넓은 학술연구를 한 팀으로 묶어 하나의 프로젝트를 연구하게 만들고 있다.예를 들면 「동물에 있어서 생식세포형성기구」 프로젝트에는 생물학·약학·유전학등을 전공하는 여러 학자가 참여하고 있다.쓰쿠바대 교수만이 아니라 도쿄공업대학교수,니혼뎅키연구소 연구원,캐나다 맥길대 교수등 학문과 국적,소속기구의 다양한 조합으로 연구진을 구성하는 것이다. TARA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는 염재호고려대교수(행정학과)는 『학제간 연구가 의외로 효과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서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를 연결시키고 있는 TARA센터의 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다. 하나의 프로젝트에는 기본적으로 3년의 연구기간이 부여된다.연구비는 대학예산과 기업의 지원에 의존한다.연구프로젝트는 「최첨단성」「학제성」「창조성」을 기준으로 선정되고 있다.현재 「동물…형성기구」말고도 「신경계의 발생·분화와 세포사의 제어기구」「반도체 나노크리스탈의 광물성」「표면물질상의 창제와 원자스케일에서의 물성연구」「복수의 자율 로봇이 지적으로 협조행동을 해서 인간의 활동을 원조하는 시스템의 개발연구」등 「첨단성」이 충분히 느껴지는 19개 프로젝트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에사키학장은 정보와 연구브레인이 집적돼 있는 쓰쿠바시의 특성을 살리면 서로 다른 학문의 만남이 창조력을 촉발시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TARA센터의 사이토 히로시(재등호) 교수는 『인재자원 말고는 볼만한자원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창조적 독창적 연구를 한층 강화해 나라 전체로서 과학기술을 진흥시켜야 한다』면서 『TARA는 새로운 연구 시스템을 구축해 독창적 연구를 진행시키기 위해 설립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폐쇄사회인 대학의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경쟁원리와 엄격한 객관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특색을 설명했다. 일본은 과거 독창적인 기술,독창적인 연구가 빈약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왔다.창의력에서 구미 선진국에 비해 뒤 떨어진다는 것이었다.일본은 외국유학경험이 전혀 없는 유가와 히데키(탕천수수)가 49년 「중간자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받는 등 물리학·지질학·공학·의학분야에서 적지않은 독창적 이론을 개척해 왔지만 전후 일본의 경제적 발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독창성이 빈약하다는 인상을 주어왔다.이에 대해 도호쿠대학의 니시무라학장은 『독창성이 빈약하다는 말은 20세기초까지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듣던 이야기였으나 미국은 그 뒤 이를 극복해 세계 일류국가가 됐다』고 상기시키고 『일본도 지금부터 창조성이 풍부한 연구와 기술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거품경제의 붕괴후 일본에서는 창조적인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데 국민적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TARA센터는 이러한 요구에 그 어느 곳보다 앞서 부응해 나가고 있는 곳이다. ◎전문가 인터뷰/쓰쿠바대 연구센터장 무라카미 가즈오 교수/재능·업적따라 평가 과학자도 「프로」돼야 『일본은 구미에 비해 노벨상 수상자가 적다.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94년 센터 출범 때부터 3년째 쓰쿠바대 첨단학제영역연구센터(TARA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 무라카미 가즈오(촌상화웅) 교수의 지적이다. 「쓰쿠바 고혈압 마우스」와 「쓰쿠바 저혈압 마우스」를 만들어내 혈압연구에 돌파구를 연 응용생물화학 전공의 무라카미센터장은 『일본의 대학은 폐쇄적인 사회였다.연공서열이 중시됐다.일본에서는 노벨상을 탄 과학자나 평범한 교수의 처우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서 『연구자도 프로가 돼야 한다.프로 스포츠선수는 성적이 좋으면 연봉이 오르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연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던가 은퇴한다.과학연구자도 재능과 업적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TARA센터도 「프로의 세계」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TARA센터가 연구프로젝트를 선정할 때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떻게 창조성을 판단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창조성이 높은 논문을 많이 발표한 학내외 저명교수들로 심사진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선정하게 하고 있다.그들은 프로젝트 신청자의 업적과 프로포절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매력적인지를 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또 심사는 광범위하게,공개적으로 진행시킨다.누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되도록 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가. ▲우리는 폐해사회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단점을 타파하기 위해 외부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지난해 8월 중간평가 때도 외부인사로 평가단을 구성했었다.그결과 그동안의 연구성과에 대해 만족스런 평가를 받았다. ­TARA센터를 만들게 된 배경은. ▲일본대학은 전후 50년동안 변하지 않았다.일본 젊은이들에게 헝그리정신도 없어졌다.일본은 기초적 연구를 구미로부터 보다 일찍 수입해 공업제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우수했다.창조적 결과를 낳는 데는 우수하지 못했다.이대로 가면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에 과학연구에 있어 앞지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무라카미 센터장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에 논문 또는 컴퓨터통신망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사람과의 대화』라면서 『과학은 낮의 과학도 있지만 밤의 과학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술 한잔 나누면서 갖는 대화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라고 소탈하게 웃으며 답한다.
  • 중기 러 기술 도입 활발/90∼94년/총25건중 44% 차지

    ◎산업기술정보원 분석 중소기업의 러시아 첨단기술도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31일 산업기술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90∼94년까지 25건의 러시아 기술이 도입됐으며 이중 44%인 11건이 중소기업이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에는 11월말까지 전기전자 3건,정유화학 및 기계가 각각 1건 등 총 5건이 도입됐으나 기술도입 신고대상 축소에 따른 기술도입 정보 집계의 누락을 감안하면 공식통계보다 최소 2배이상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분야별로 보면 정유 및 화학분야에서 동서석유화학이 지난 94년 6월 러시아의 유전·미생물연구소에서 촉매용 균주 및 균주배양기술을 22만5천달러에 도입했고 전기전자분야에서는 새보산업이 이보다 앞선 93년 초음파 스케일제거기술을 러시아 INVAC사에서 5년동안 도입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나스파크사는 지난 94년 전 러시아 경합금연구소인 VILS로부터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기술을 도입했으며 광희물산은 92년 지하수 및 광천수 탐사·시추기술을 러시아 V V 도쿠초프 토양연구소에서 들여왔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이 러시아의 기술을 도입하는 이유는 러시아가 미·일 등 기술선진국과는 달리 첨단 핵심기술을 저가에 제공하기 때문이다.반도체 설계기술,방전가공기제조기술,항공기용 탄소브레이크기술 등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데다 기술도입 대가도 건당 2백만달러(94년 기준)로 미국 3백80만달러,일본 3백20만달러에 비해 크게 낮다.조세감면 혜택도 큰 역할을 했다.90∼94년 도입된 기술중 68%인 17건이 조세감면 혜택을 받았다. 산업기술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한·러간 실질적인 경제관계가 맺어진 90년이후 러시아 기술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러시아측에는 기술제공을 담당하는 책임있는 기관이 없는데다 기업체들이 아직 대부분 국영기업이서 경영자들이 결정권이 없어 중소기업들은 기술도입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단동시 영화산기슭 항미원조기념관(압록강 2천리:23)

    ◎한국전 유물 1천여점 10곳에 전시/부지 18만㎡에 연건평 1만2천㎡… 58년 건립/김일선·모택동 친필서한·명령서등도 전시/영웅실엔 전사한 모택동 맏아들 석고상도 중국과 북한이 손을 잡고 치른 한국전쟁을 통해 오늘의 단동시인 당시 안동은 영웅도시가 되었다.그로 인해 1958년 9월 중앙문화부의 비준을 거쳐 안동에 이른바 항미원조기념관이 세워졌다.이 기념관이 오늘의 모습으로 확장된 것은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 93년의 일이다.기념관의 확장은 19 83년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에 단동(안동)에 들른 중앙군사위 부비서장 홍학지의 주선으로 실현되었다. ○등소평 친필 든 탑 세워 항미원조기념관은 단동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화산기슭에 있다.글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원조한 전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의 현판은 당시 중국인민항미원조총회 곽말약(곽말약)이 썼다고 한다.18만㎡나 되는 부지에 1만2천㎡에 이르는 건물을 지었다.그리고 지난 1953년에는 등소평동지의 친필이 든 높이 53m의 탑을 세웠다.탑높이 53m는 1953년의 정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에는 10개의 전시실을 두어 한국전쟁에 관한 1천1백8건의 문물이 전시되었다.이 가운데 주목을 끈 자료는 김일성이 모택동주석에게 보낸 친필서한이다..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중국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 김일성의 친필서한은 여러 자료 가운데 백미인지도 모른다.김일성 서한 옆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조직을 채근한 모택동의 친필 명령서가 나란히 진열되었다. 그러니까 대륙의 거인이던 모택동의 휘필 한점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합작한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그 명령에 따라 1백만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화속으로 뛰어든 것이다.장백현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조선족 서군(65)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당시 중국지원군 참전상황이 잘 드러난다.19 50년 당시 장백현 공청단위원회 선전부장이던 그는 한달 훈련을 받고 중국지원군 고사포부대 제1사 제1탄소속 부중대장으로 참전했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은 10월19일로 기억하지비.그날밤에 안동을 떠나 장전하구로 와서 이내 압록강철교를 건넜수다.극비의 행동이라 중국말도 못하게 했고 중국을 떠날 때 글이 있는 물건은 못 지니게 했구마.삭주를 거쳐 평안남도 북진에 도착한 것이 10월28일인가,그렇지비.그날밤 거기서 5리쯤 떨어진 영봉에서 우리 지원군과 미군이 첫접전을 붙지 않았겠슴둥.그게 운산전투였지지비』 그 운산전투에서 미군은 3일간 포위되었다.11월1일 미군이 포위망을 뚫었으나 지원군은 미군 2천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그 무렵에 지원군을 「38군」이라고 불렀는데 모택동이 「만세 38군」이라는 친필까지 내려 전공을 치하했다.그러나 지원군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특히 서군선생이 소속된 고사포부대는 박살이 났다.장비가 일본군이 쓰던 것이라 포탄이 포신에서 발사되어도 12초가 지나야 터졌다.그런 상황이어서 미군의 포격과 공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서군선생이 소속한 고사포부대는 12월25일 압록강을 다시 건너 요령성 금주시로 철수했다.거기서 소련제37.85포로 재무장하고 이듬해 3월18일 집안을 거쳐 만포로 건너갔다는 것이다.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비해 모든 장비가 열세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단동의 항미원조기념관에서도 확인되었다.기념관내 공군진열실에서 본 쌍방의 공군장비에서는 너무 엄청난 차이가 났다.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체 전투기가 2백대도 안되었지만,연합군비행기는 1천2백대였다는 것이다. ○연합군 비해 장비 열세 1951년 3월15일 지원군 공군사령부가 안동에 창설되었다.사령원은 유진이었는데,더러 미그15기가 F84 미군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공중전 전과는 미미한 것이어서 조선인민군과 함께 대공포화에 중점을 두었다.요령성 관전현 석호구향 보산촌에 사는 김창권(66)씨는 전쟁 때 고사기관총소대에 복무했다.방호산이 사령으로 있던 조선인민군 제5군단 12사 1연대 1중대 고사기관총소대 사수이던 그는 당시 활동상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고사기관총소대는 대우가 달랐디요.일반전투원은 하루 배식량이 8백g이었는데 우리는 1천g이었단 말입네다.12.7㎜ 소련제 고사기관총으로 무장했는데,재수가 좋으면 적기를 명중시켰디요.함경남도 함주군에 주둔할 때니끼리 1951년 1월18일 오전쯤 됐을 겁네다.미군기 한대가 저공으로 공격해와서리 갈겼디요.그거이 명중되어 처음 한대를 잡고서리 뒤에 두대를 더 잡았디 뭡니까.그래서리 전사영예훈장 2급을 받았댔습네다』 그에게는 일생동안 무료치료에 자식의 대학진학특전 등이 돌아왔다.그러나 중국으로 오는 바람에 한때 무효가 되었으나,지난 1987년 전공을 다시 인정받아 지금은 매달 3백원씩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는 전쟁을 회고하기를 떴다하면 미군 비행기고,아군기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그렇듯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북한은 물론 중국쪽 국경지대에도 낙하산부대들이 투하되었다. 1952년 11월15일 백두산일대에 낙하산병이 투하되자 장백·임강·무송현이 발칵 뒤집혔다.경찰과 민병대가 동원되어 5주야를 산을 수색했다.이들에 의해 1명이 사살되고 15명을 포로로 잡았다.「장백현지」를 보면 이보다 앞서 1951년 6월29일 낙하산 침투병을 잡는 데 공헌한 장백현 12도구 사람 채후남(1888∼1974년)이야기가 인물록에 나온다.채후남은 마을에 살다 행방불명된 김형길이라는 청년이 낙하산으로 떨어져 이미 이사한 어머니를 찾아 숨어든 것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관광·참배객 줄이어 항미원조기념관 맨 위층에 마련한 전쟁묘사공간 「청천강전역」은 스케일이 엄청 컸다.그림과 실물조각,조명과 음향이 한데 어울린 이 공간은 높이 17m,너비 1백32m나 되었다.마치 전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그 공간을 넋잃은 듯 바라보는 노인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다.아니나다를까,전쟁에 참가했다는 노인이었다.자신을 평안북도 창성 태생으로 지금은 단동시에 사는 조선족 최정근(69)이라고 소개했다. 『은산전투를 마치고 청천강으로 나갔다.나는 포병이라 부근부대를 뒤따라 조을리에 이르니 전투가 끝났다고 그라데…,시체가 즐비해서 밤이면 얼어서 뻣뻣한 미군시체를 바람막이로 쌓아놓고 잠을 잤디 않았갔수.죽은 미군 신발을 벗겨 신는 것은 약과고 속옷까지 벗겨 입었으니 원….손을 옷속에 넣으면 이가 한줌씩 잡혔으니 별도리가 없었디』 전쟁은 가혹한 것이었다.항미원조기념관 영웅모범열사실에는 모택동의 맏아들 모안영의 석고상이 전시되었다.지원군사령부 근무중 미공군 폭격에 사망한 그의 유해는 북한에 묻혀 있다.어떻든 전쟁은 비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항미원조기념관은 전쟁예찬이 아닌 전쟁억제에 더 큰 비중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 “핵이 한반도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리처드 아미티지(해외논단)

    리처드 아미티지 전미국방차관(부시행정부 당시)은 12일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에 기고한 「부랑자(북한)다루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은 핵문제가 한반도문제의 전부인냥 착각하고 북한 및 북한핵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지나치게 소외시켰다면서 한국을 한국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원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글 내용을 소개한다. 최근 북한의 무장침투간첩 체포사건은 휴전협정이 맺어진지 42년이 지났지만 분단된채 중무장한 한반도에는 아직도 냉전적 대치상태가 여전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바로 이같이 모두의 기대를 깨뜨려버리는 불신의 망령이야말로 1주년이 된 미·북한간 핵합의보다 북한정권의 실제 행태를 훨씬 더 정확히 반영해주는 것이다.이번 간첩 체포사건은 북한의 핵 야망을 보다 큰 한국문제의 일환으로 보지 않고 모든 문제의 중심인냥 여기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인가를 극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사건인 셈이다. 94년 10월의 미·북 기본합의는 상당한 흠점에도 불구하고 대치국면에서 한걸음 벗어나 문제해결로 향하는 첫 걸음일 수 있는 「무사착륙」의 단계로 기대해 볼만 했다.그러나 약속을 잘 지킨 적이 별로 없는 북한을 앞으로 4년간 더 엄하게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핵합의의 논리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북한이 최대 보험증서와 같은 자신의 핵프로그램을 미국·한국·일본과의 경제적·정치적 관계수립과 맞바꾸도록 설득당했다는 희망에 기대어 있다.그러나 북한은 과연 약속대로 한길을 걸을 것인가.핵과 관계수립의 양다리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인가.진짜 「무사착륙」이고,점진적 통일과정이 가능한 것인가. 핵문제에 정신을 온통 뺏앗긴 나머지 군사분계선 1백㎞내에 배치되어 있는 최소 50만명의 북한병력과 포들을 감축시킨다는 휼륭한 목표를 망각한 지 오래다.이 감축은 미·북한간의 대화,그리고 이와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남북한 화해의 중심주제가 되어야만 한다.핵합의가 완전하게 실천된다 하더라도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북한의 재래식 무장력·미사일·화학무기 위협 등은 단 한 웅큼도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핵문제를 너무나도 중요시하는 겨를에 어느새 미국의 정책과 전략은 핵만 합의되면 다른 문제에도 해결의 불꽃이 튀겨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휩싸이고 말았다.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심사를 진척시킬 수 있는 보다 스케일 큰 플랜이 없어 북한의 협상력만 키워줄 따름이었다.1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이런저런 요구로 핵프로그램의 거래가를 높이는 한편으로 한국과 진지하게 관계를 재정립할 생각조차 않은채 일방적으로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다. 게다가 핵합의는 한·미관계에 상처를 남겼다.핵 현안을 미·북한 문제로 만들어버리면서 클린턴행정부는 한국의 역할을 주변적인 것으로 약화시켰다.요즘 한국에는 남 눈치 보지 않고 올곧게 한·미 동맹관계를 역설하는 귀중한 친미인사가 드물다.대신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은 미국을 못미더워하고 불신하는 기운을 피부적으로 금방 느낀다. 같이 피를 흘리면서 연마되었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같이 나누면서 한층 두터워진 우리들의 유대는 결코 가벼이 볼 게 아니다.그러나 지금 어떻게 우리들은 한국과 미국이 한마음으로 지지할 수 있는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새롭고 보다 균형된 동반자관계를 세울 것인가.지금 당장 해야될 큰 일은 현재의 군사적 교착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다.미국과 한국은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여 보다 큰 스케일로 북한을 상대할 구도와 플랜을 짜야 한다.그리고 재래병력과 무기·미사일·화학무기 문제를 북한에 거론해야 한다.한국을 이런 일들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들여야 한다. 북한의 전략은 분명하다.레이저 광선처럼 미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미국과 관계를 맺는 것을 정통성과 국제적 경제원조의 열쇠이자 안보의 잠재적 보증인,그리고 한국에 대한 억제력 활용대안으로까지 여기고 있다.최근 북한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방문 미국인에게 평화유지 체제가 갖춰지면 한반도에서 미군이 평화정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북한의 이같은 전략을 이해하면 언뜻 일관성없이 왔다갔다하는 행태가 설명될 것이다.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는 철저한 상호성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미국·한국·일본의 관심과 요구사항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미사일과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군사분계선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만 우리는 북한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통일 과업과 미국의 장래 태평양전략을 다같이 고려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한반도의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동의해야 될 사안이지만 지상주둔군을 감안하면 미국도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미국·한국·북한의 삼자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휴전선통행 문제등 상호 신뢰확대 방안을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이에 대해 북한이 진지하다면 핫라인설치나 군사훈련의 통보 등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 셰익스피어 연극 2편 나란히 무대에

    ◎10일부터 국립극단 「리처드 3세」/목화레퍼토리 컴퍼니 「로미오와 줄리엣」/리처드…­오영수·이문수·이승옥씨 등 호화멤버 출연/로미오…­두 집안 칼싸움으로 대단원… 실험성 기대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두 편이 같은 날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10일부터 국립극단이 「리처드 3세」(17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를,극단 목화레퍼토리 컴퍼니가 「로미오와 줄리엣」(12월9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을 각각 공연하는 것. 「리처드 3세」(연출 김철리)는 15세기 후반 영국 랭카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의 왕위계승전을 둘러싼 음모를 통해 한 인간의 몰락을 그린 정치사극.주인공인 리처드가 형과 조카를 살해하고 권력을 쟁탈했다가 그 또한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권력찬탈이라는 극의 내용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까지 겹쳐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무대화되지 못했던 작품이다.이같은 배경 탓인지 국립극단은 이번 공연을 한국 초연무대라고 자랑하고 있을 정도.국립극단의 간판 레퍼토리인 「피고지고 피고지고」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은 오영수씨가 절름발이 곱추의 몸이었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리처드 3세역을,이문수씨가 왕위찬탈 과정에서 모사꾼으로 나오는 버킹엄 공작역을,이승옥씨가 복수의 화신 마가렛 왕비역을 맡는 것을 비롯해 권성덕 권복순 손봉숙씨 등 국립극단 배우들이 무대에 선다.평일 하오7시,토·일요일 하오4시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연극의 새로운 문법을 모색해온 오태석씨의 연출로 지난달 이미 호암아트홀 무대에 올랐던 작품.오씨는 이번 공연에서 원작에 담겨 있는 반목과 질시를 무대 전면에 끌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진정한 화해를 위한 자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실제 사람크기만한 체스의 말(마)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가 식구들이 서로 칼부림을 부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결국 두 집안의 칼싸움으로 막을 내린다.셰익스피어극의 전통을 바탕으로 오씨 특유의 연극적 상상력을 결합시킨 이 「실험적인」무대가 관객들에게어떻게 비춰질지 관심을 모은다.평일 하오7시30분,토요일 하오4시·7시,일요일 하오4시 공연.
  • 미,「63년 박정희 정권 부패상」 극비 보고

    ◎주한 미 대사관 작성… 32년만에 비밀해제로 밝혀져/정보부 62년 증권파동 조작… 60억환 이득 챙겨/일 택시 특헤수입등서 막후 개입… 비자금 조성/김종필 중정부장 요정서 1주에 5백만환써 주한미대사관은 지난 63년 2월 박정희 정권의 비자금 조성 내막을 포함한 당시 한국 권력핵심부의 부패상을 상세히 언급한 비밀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무참사관이 작성하고 서명한 보고서(미국무부 문서번호: A­640)는 빽빽이 기록된 모두 13장 분량으로 미당국의 정보 공개 원칙에 따라 올해초 비밀 해제됐다.「한국의 부패 문제」란 제목이 달린 63년 2월20일자 이 보고서는 ▲부패의 구조적 성격 ▲박정권의 군사혁명정신 퇴색상 ▲중앙정보부가 연계된 62년 주가 조작 사건 등 비자금 조성 내막 및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63년 1월 사퇴:현자민련총재)을 비롯한 일부 권력 핵심부 인사의 주변 상황과 동향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공직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고 있다』면서 『특정인이 너무 오랫동안 「케이크를 먹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정부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부패의 부활」이란 소제목을 가진 부분에서 『(부패하기 쉬운)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척결하려는 (군사정권의)격렬한 시도가 예상대로 대부분 실패했다』면서 『(군사정권에 의해 폐쇄됐던)요정들이 (다시)문을 열고 군정과 중정인사들을 최고의 단골로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김종필 중정부장의 경우 이런 곳들에서 일주일에 5백만환(약 4천달러)상당을 쓰는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그 액수가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분명한 점은 그와 그의 사람들이 아낌없이 돈을 쓴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패의 새로운 성격」이란 부분에서 보고서는 『부패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이 여전히 분명하다』면서 『(군사)정권은 스케일이 큰 공작들을 통해 비자금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지난 62년의 증권 파동에 대해 보고서는 『62년 2월부터 5월까지의 주가파동은 정보부의 부추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서 『이 파동을 통해 정보부 및 이에 연계된 측이 챙긴 이득은 최소한 40억환에서 많게는 아마도 60억환(최소한 약 3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보고서는 『이것이 한국 역사상 발생한 단일한 재정 쿠데타(Financial Coup)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군사혁명이 난 후 몇달간은 경제계의 부패가 급격히 없어지기는 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패의 행태가 점차 부활됐다.김종필이 부상한 이래 김해금씨 일문이 득세한 얘기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국무총리,참모총장,참모차장,최근의 재무장관,중정의 경제공작 책임자인 「김용태」 및 많은 인물이 이에 포함되며 이들 대부분은 김종필과 출신 지방이 같다. 정보부는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활용하는 한편 통제,압력 및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그리고 고도로 조직된 계획을 실행해왔다. 중정이 관여한 워커센터(워커힐)건설에 약 5백만달러 상당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새나라자동차회사는 중정의 밀접한 대일본 비즈니스와 연계돼 세워졌다.중정은 처음에 택시 2백50대를 일본으로부터 특혜 수입했다.중정의 소유로 알려진 이들 택시는 한달에 근 12만달러 상당을 벌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자금과 관련해)빈번히 제기되는 의문은 이 풍부한 비자금이 개인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는지 아니면 긴급을 요하는 국가적 목적들을 위해서 쓰여졌느냐는 것이다.김장군과 그의 동료들은 후자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확인되지않은 바에 따르면 김은 증권시장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10억환(약 75만달러)이란 이익을 봤다고 한다.
  • 심슨 유죄인가 무죄인가/「살인혐의」 8개월 공방

    ◎배심원단 내일부터 평결/증인 126명·각종 증거자료물 850건 동원/배심원 흑인 10·백인 1명… 평결불일치 가능성/유죄땐 흑인 폭동·무죄땐 백인 우월주의자 테러 우려 심슨은 무죄인가,유죄인가. 지난 8개월여에 걸쳐 지리할 만큼 오래 끌어온 불세출의 미식축구스타 OJ 심슨의 살인혐의 재판이 끝나가고 있다.「심슨재판」은 지난 1월24일 시작된 이래 92일 동안의 검찰측 증인신문과 74일간에 걸친 변호인측 증인신문을 마치고 최후논고,최종변론도 지난달 29일 마침으로써 배심원단의 평결절차만을 남겨 놓았다.재판개정과 함께 8개월여동안 격리생활을 해왔던 12명의 배심원들은 2일(한국시간 3일 상오1시)부터 하루 8시간예정의 평결작업을 시작,심슨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랜스 이토판사는 배심원단에 대해 내린 평결지침을 통해 1급이 아닌 2급살인으로도 평결할 수 있음을 전달,심슨의 살인혐의에 대한 정황증거가 어느 정도 인정됨을 시사했다.평결은 만장일치여야 하지만 배심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헝주리(평결불일치)가 나오면 재판은 무효가 돼 심슨은 풀려난다.이때 검찰측이 처음부터 다시 재판절차를 밟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새로운 배심원단을 구성해야 하는데 지난 20개월동안 심슨사건에 철저히 격리돼 있던 배심원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견해는 헝주리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배심원 12명 가운데 10명이 흑인이며 백인과 히스패닉계가 1명씩이다.지난 8개월 동안 외부와 격리된 채 지내온 배심원단이라고는 하지만 2주일에 한차례씩 허용된 가족면회를 통해 바깥의 여론을 전해 들었기 십상.특히 흑인배심원들은 흑인계층이 압도적으로 심슨의 무죄를 믿고 있다는 분위기에 흔들릴 소지가 크다. 평결작업은 대체로 유죄일 경우는 3일 이내에 결과가 나오지만 길어지면 10일이상 소요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미 장기간의 격리생활로 지칠대로 지친 배심원들이 재판의 빠른 종결을 원하고 있어 늦어도 다음주중에는 심슨의 유죄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이번 재판은 유명운동선수출신으로서 방송의 스포츠해설가,영화배우 등으로 인기와 명성이 높던 한 흑인스타가 관련된 살인사건이라는 극적인 소재로 인해 지난해 6월중순 사건이 발생한 이래 줄곧 미국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1백26명의 증인과 8백50여가지의 각종 증거자료물이 동원되는 한편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LA카운티가 8백50만달러나 비용을 소모하는 등 갖가지 화제를 낳았다. 백만장자인 심슨이 전재산을 털어 동원한 13명의 변호인단은 치정살인의 가해자가 누구냐는 사건 본래의 초점을 분산시킴으로써 재판의 장기화에 성공,「드림팀」이라는 별칭을 실감케 했다. 가수 마이클 잭슨등 유명인사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달변의 흑인율사 조니 코크란이 이끄는 변호인단은 심슨이 흑인의 영웅이란 점을 부각시키면서 검찰측이 제시한 각종 증거물들이 사건을 담당한 한 LA경찰의 인종차별적 관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펼쳤다. 여검사 마샤 클락이 이끄는 검찰측도 증거가 조작됐다는 변호인단에 맞서 심슨의 알리바이가 허술하다는 점과 DNA분석결과의 과학적 신빙성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흑인스타와 살해된 백인 전처,흑인 수석변호사와 백인여검사,흑인이 압도적인 배심원단등 묘한 인종구성과 맞물려 심슨재판은 이미 흑백대결의 인종재판으로 변질돼버린 게 사실.이는 사건현장에서 맨먼저 심슨의 피가 묻은 가죽장갑 한짝을 찾아냈다는 전직 LA경찰 마크 퍼먼의 인종차별적 성향이 공개되면서 결정적인 증거물에 대한 신뢰도가 한꺼번에 불신받는 바람에 더 심화됐다. 이와 관련,만일 심슨이 유죄평결을 받을 경우 지난 92년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 당시처럼 또 한차례 흑인폭동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LA지역을 긴장시키고 있다.심슨이 무죄가 될 경우에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한 모종의 테러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어 백악관조차 심슨재판의 후유증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심슨재판은 거의 전과정이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됐다. 재판이 열리고 있는 LA카운티 형사법원 건물에는 14대의 중계차가 나와 있고 세계 각국에서 1천1백59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있다. ◎심슨 재판 일지 ◇94년 ▲6월12일=심슨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애인 로널드 골드먼피살. ▲6월13일=살해된 니콜의 개가 짖는 소리에 이웃 주민들이 그녀의 집 풀장에 있던 시체를 발견해 LA경찰에 신고.심슨 가택 수색영장 발부.시카고에 출장갔다 돌아온 심슨,경찰에 연행돼 조사받고 석방. ▲6월14일=경찰,심슨 집에서 찾아낸 물건들에 대한 혈흔조사 시작. ▲6월17일=심슨,살인혐의 구속. ▲11월3일=12명 배심원 선서. ◇95년 ▲1월11일=배심원 24명 격리. ▲1월24일=랜스 이토판사 주재아래 심슨사건 재판 개정. ▲9월21일=변호인측 68명의 증인신문 종결.심슨,피고인 진술 포기. ▲9월26∼29일=검찰,변호인측 최후논고 및 최후변론. ◎사건현장 혈흔서 심슨 유전자 발견­검찰/살인 증거물들은 경찰에 의해 조작­변호인 □검찰과 변호인측 주장 ◇검찰측 ▲살해동기=전처인 니콜 브라운이 94년 5월22일 심슨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직후 심슨의 애인 폴라 바비에리마저 사전에 말 한마디없이 다른 남자를 만나러 떠나 버리자 두 여자에게 홀대당한 심슨이 질투심과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살인을 저질렀다.우연히 사건현장을 목격한 로널드 골드만의 경우 증인을 없애기 위해 같이 죽였다.93년 5월 심슨이 니콜을 구타,긴급신고전화 911에 녹음된 심슨의 거친 욕설로 미뤄봐도 심슨의 니콜에 대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심슨의 잔혹한 성격부각=두사람을 칼로 찌른 뒤 뛰지도 않고 편안한 걸음걸이로 태연하게 현장에서 떠났다.그는 살해한 니콜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재워두고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난자한 살인자다. ▲알리바이 조작=심슨은 살인을 저지른 직후 홍보사업을 이유로 시카고로 떠났다.공항으로 가는 대절 리무진 안에서 심슨은 덥다며 에어컨을 켜도록 하고 유리창까지 열었으나 기상자료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은 매우 선선했다. ◇변호인측 ▲증거의 신빙성결여=검찰이 제시한 살인증거물들은 초동수사를 맡은 LA경찰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피묻은 장갑을 맨처음 발견했다는 마크 퍼먼수사관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다.그 장갑은 심슨의 손에 맞지도 않는다. ▲살해시간 추정=검찰측은 증인들의 신문과정에서 살해시간이 밤10시30분이나 10시35분일수도 있다고 했다.심슨의 집에 묵고 있던 케이토 케일린(연예인)의 증언에 따르면 심슨은 그날밤 외출했다가 10시40분에 돌아와 집안의 에어컨을 켰다.사건현장에서 심슨의 집까지는 차로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긴 하지만 이해가 안된다.피살된 골드먼의 부검결과 반항한 흔적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단숨에 모든 일을 처리하고 돌아올 수 있는가. ▲심슨의 몸=두사람을 공격한 사람의 전신 어디에도 상처 하나가 없다.손에 약간의 상처가 있지만 사건과 무관하다. □유력한 검찰측 증거들 ▲혈흔=사건현장 뒤뜰에서 발견된 핏자국 분석결과 심슨의 유전자가 나타남.심슨은 사건발생 다음날 경찰 조사때 왼손 중지에 상처가 있었음.심슨의 브롱코승용차에서도 혈흔이 발견됨. ▲심슨의 침대밑에서 발견된 검은 색 양말=DNA분석결과 심슨의 피와 살해된 니콜 브라운의 피인 것으로 밝혀짐. ▲피묻은 장갑=심슨의 집에서 찾아낸 한짝의 피묻은 장갑에는 살해된 두사람의 피성분이 분석돼 나옴. ▲검은색 털모자=심슨의 머리카락과 흡사한 성분이 발견됨.살해된골드만의 겉옷 섬유성분도 발견됨.
  • 비운의 대만 화가 「사랑의 부활」

    ◎관집중씨 비엔날레 참가중 과로로 뇌사/가족들 “평소에 한국 사랑… 장기기증”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하다 지난 19일 밤 갑자기 쓰러진 대만 화가 관집중(64)씨가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게 됐다. 관씨의 부인 팽용용(50)씨는 22일 저녁 『가족회의를 거쳐 23일 상오 9시 산소호흡기를 떼고 남편의 평소 뜻에 따라 장기를 기증키로 병원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친한·지한파 화가로 알려진 관씨는 이달초 광주에 와 비엔날레 특별전인 「동양화와 문인정신전」에 작품을 설치한뒤 19일 밤 조직위 주최로 열린 만찬장에서 저산소증에 의한 심한 뇌손상으로 졸도,뇌사상태에 빠져 산소호흡기로 연명해 왔다. 사고소식을 듣고 딸과 함께 병원에 온 부인 팽씨는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병원측의 판단에 따라 그이가 좋아한 한국땅에서 임종을 맞도록 했다』고 밝히고 『남편의 장기가 병든 자의 생명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팽씨는 『남편이 10여년 전부터 앓아온 천식이 도졌는데도 한국과 한국사람을 너무 좋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작품을 설치하러 광주에 온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흐느꼈다. 대만은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표적 문인화가로 꼽히고 있는 관씨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목호방학」과 「대미불언」등 2점. 「동양화와 문인정신전」 큐레이터 장석원(전남대)교수는 『그는 철저하게 동양정신에 바탕을 두되 세계적인 정서를 두루 포괄하고 있는 호방하고 스케일이 큰 작품세계를 화폭에 담아온 문인화의 거장』이라고 평했다. 부인 팽씨는 장기기증이 끝나는 대로 남편의 시신을 화장해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편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는 관씨의 사고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관씨의 병원비를 지급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3일 집행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 광복 50돌 맞아 「한·일관계 소설」 출간 붐

    ◎가즈오의 나라­광개토왕 비문 변조싼 한·중·일 시각차 조명/세종로 1번지­“치욕의 상징” 옛 조선총독부 건물 보존 주장/제국의 별­일 육사출신 이청천·홍사익·박시찬 삶 대비 광복 50주년을 맞아 최근 출판가에 한일관계를 다룬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이 소설들은 한일간 역사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각기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인다.이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을 받는 작품은 「가즈오의 나라」(전2권·프리미엄북스 펴냄),「세종로 1번지」(전2권·여백),「제국의 별」(전4권·우석)들이다. 「가즈오의 나라」는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지난해 최대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김진명씨의 두번째 작품.「일제가 광개토대왕 비문을 변조해 조선침략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했으며,지금도 그 맥을 이은 극우파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내용이다.「무궁화꽃…」에서와 마찬가지로 추리적 기법이 동원돼 연쇄살인과 범인 추적,비밀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과정을 흥미있게 풀어나갔다. 이와 함께 광개토대왕비를 발견한 경로,비문 해석을 둘러싼 한국·일본·중국학자들의 다양한 학설을 소개해 작품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다만 줄거리에 「김정일의 일본 방문­평양에서 쿠데타 발생­한국정부의 지원으로 김정일 재집권」으로 전개되는 남북관계 진전을 담은 것이 작품의 전체 틀을 어그러지게 하는 인상을 준다. 「세종로 1번지」의 작가는 지난해 「원균 그리고 원균」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고정욱씨다.앞의 작품에서 「이순신은 선이요,원균은 악」이라는 통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역사해석을 시도한 지은이는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시각을 내세웠다.오는 15일 광복50주년에 맞춰 철거하기로 한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 곧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과 극복은 우리 의식에서 형성돼야지,껍데기에 불과한 건물을 파괴한다고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논리다.또 한마당 잔치를 벌인 것으로 우리 자신이 청산을 끝냈다고 만족해 하지나 않을지 경계하는 마음도 내보인다. 작가는 건물철거에 관련된 토목업자가 점차 역사의식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형상화했다. 「가즈오의 나라」와 「세종로 1번지」가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해석했다면 유현종씨의 「제국의 별」은 일제강범기 때 실재했던 인물들의 다기한 삶을 보여준다. 한일합병 직후 일본은 조선무관학교 생도인 이청천·홍사익·박시찬 등을 국비유학생으로 뽑아 일본육사에 입학시킨다.이들 가운데 광복군 사령관을 지낸 이청천·박시찬은 조국광복에 일생을 바친다.그러나 홍사익은 육사를 우등으로 졸업,중장까지 진급했다가 일본 패망후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소설은 홍사익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이청천 등의 독립운동과 대비시킨다.역사소설가로 손꼽히는 작가의 선굵은 문체가 일본·필리핀·만주 등지를 넘나드는 웅대한 스케일 속에 녹아들어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 「대륙의 한」 1∼2권 펴낸 이문열씨(저자와의 대화)

    ◎“백제의 요서점령은 자랑스런 역사”/4∼5세기에 진출… 북위침략군 수십만 격퇴/「근초고왕의 조카 여광이 주역」 허구 도입 이 시대 최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문열씨(47)가 잃어버린 백제사를 되찾는 긴 여행에 나섰다.이씨는 4∼5세기 백제의 중국 요서진출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대륙의 한」1∼2권을 최근 냈다(둥지 펴냄).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수호지」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웅장하고 세련된 문체를 뽐낸 그가 이제 우리 역사의 작품화에 본격 나선 것이다. 『백제가 오늘날의 산동·화북 어름에 본토보다 몇배 넓은 지역을 차지해 다스리고 있었고,더욱이 중국 북위의 침략군 수십만을 격퇴했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살수대첩이나 안시성싸움처럼 호쾌한 느낌을 주었습니다.또 중국 역사책에 나오는 백제계인 백지래왕,요서8왕 이야기도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소설 「대륙의 한」은 4세기 근초고왕 시대에서 시작한다.근초고왕은 남으로 마한의 잔여세력을 통합하고,북으로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이겨 국토를 넓힌 정복왕.소설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다 「근초고왕에게 왕위를 뺏긴 조카 여광이 있었다」는 허구를 접목한다.여광이 성장해 왕위를 되찾으려다 실패하자 그의 세력이 중국으로 건너가 요서 일대를 정복,통치한다는 줄거리이다.여기에 다양한 인물을 설정,치열한 책략과 뛰어난 무예를 곁들임으로써 스케일 큰 대하소설을 구성했다. 사실 이 작품은 이번에 처음 소개된 것이 아니다.80년대 초 신문에 연재되다 중단된 것을 그뒤 2개 출판사가 각각 「그 찬란한 여명」과 「요서지」란 제목으로 출간했다.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책을 낸 까닭을 작가는 『소재가 워낙 아까워서』라고 말한다. 『한 작품을 세번째 낸다는 게 꺼림칙해 무척 망설였습니다.그렇지만 결코 미완성인 채 놓아둘 수 없다는 생각에 10년만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가 「요서 진출」에 집착하는 것은 그 자랑스러운 역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현재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내용이 실려 있긴 하지만 워낙 빈약한데다 그동안 일반에게 소개된 적이 없어 국민 마음에 아직 그 역사가 자리잡지는 못했다고 보고 있다. 이씨는 『앞선 작품이 여광일당의 중국 도착에서 사실상 끝나고 뒷부분은 설명식으로 마무리해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대륙의 한」에서는 요서를 정복해 가는 과정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까지를 구체적으로 소설화하겠다고 밝혔다.따라서 작품을 두부분으로 나눠 ▲1부에서는 여광 등이 요서에 자리잡을 때까지를 ▲2부는 그들의 후손이 북위의 침략을 물리치는 등 대활약을 펼치는 모습을 그릴 예정이다.모두 8∼9권으로 계획한 가운데 현재 1부의 마지막 부분인 5권째를 쓰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의 줄거리 전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자료의 빈곤』이라면서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내용을 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는 리얼리즘을 확보하지 못한채 선조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것은 『싸구려 국수주의』에 불과하며 이는 『작가가 꼭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 경주 황룡사 금동보살상(한국인의 얼굴:34)

    ◎통통한 뺨… 순진무구한 웃음/머리엔 삼보관… 두툼한 눈두덩에 가는 눈/작고 예쁜 입·살짝 패인 보조개 복스러워 신라 제일의 가람은 황룡사다.삼국통일의 원동력을 불어 넣은 대가람으로,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함축했던 명찰이었다.서기553년 새 궁궐을 착공했을 때 황룡이 나타나 불사로 고쳐지었다고 한다.서기562년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절터는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있다.본래의 가람은 12 38년 몽고군의 병화로 모두 불타버렸다.지난 19 76년 부터 8년동안 문화재 연구소의 발굴결과 2만여평의 절터가 확인되었다.황룡사를 다 짓고나서 서기 574년 신라 삼보의 하나 장륙상을 세웠다고 하나 역시 몽고침략으로 사라졌다.이를 받치던 석조대좌만이 금당 자리앞에 남아 있다.장륙은 1발(장)6자(척)다.요즘 수치개념으로는 4·5∼5m에 해당한다.「삼국유사」를 보면 장륙상 석가삼존상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라 보물의 하나 장륙상은 만날 수 없게 되었다.다만 절터에서 웃는 모습으로 출토된 8.3㎝ 높이의 금동보살머리 1점을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본디 반가사유상이었는데,머리만 남고 다른 부분은 모두 떨어져나갔다.이 보살의 머리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머리와 비슷하다.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황룡사 출토 보살의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도 말한다. 이 보살의 아름다움은 미소에 있다.삼국시대 최고의 미소로 평가받아 마땅한 웃음인 것이다.머리에는 지극히 간결한 삼보관을 썼다.이는 국보 83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관과 같다.그러나 이마 한 가운데 표현한 머리카락 묘사가 이 보살에서는 생략되었다. 어떻든 황룡사 출토 보살상의 얼굴은 짧고 둥글다.순진무구한 웃음을 머금었다.눈두덩이 약간은 두꺼워 보이는데 눈은 가늘게 떴다.통통한 코,작고 예쁜 입과 보조개,적당히 살이 오른 뺨 등이 복스럽다.그래서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 얼굴에서 마음을 깊이 가라앉혀 생각을 한데 모은 침잠한 모습을 굳이 읽지 않아도 좋다.이 보살에서는 선동의 장난스러운 표정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황룡사 보살상 오른쪽 뺨에는 손가락끝이 닿았던 흔적을 남겼다.이 보살이 오른손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대었던 반가사유상임을 단적으로 일러 준다.6세기 후반 걸작의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이 분명하건만,이렇듯 머리만 남아 있다.하지만 황룡사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불보살상이기도 하다. 역사는 황룡사에 전체높이가 자그마치 2백25자(80m)나 되는 거대한 9층 목탑이 있었다고 전한다.그 목탑의 존재는 최근 발굴한 기둥자리 주춧돌에서 확인되었다.신라는 이 목탑을 세우는데 백제의 공장 아비지를 초빙했다.그가 목탑을 지을때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그런데 당시 신라의 젊은이들은 9층목탑과 장륙상등 스케일이 큰 황룡사 가람을 바라보면서 기상을 키웠다.그들은 뒷날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으니,역사에는 아이러니한 구석도 있다.
  • 백제 금동반가상유상(한국인의 얼굴:30)

    ◎앳된 소년… 눈·입가엔 자비의 미소/석가 어릴적 모습… 삼국시대 최고 걸작/깊은 사색 속 손가락엔 생동감 엿보여 백제 금동반가사유상 백제 불교미술이 황금기를 맞는 시기는 7세기에 접어들어서다.이는 불상에도 잘 반영되어 얼굴(상호)표정을 자유자재로 그려냈다.잔잔한 미소 뒤쪽에 스며든 내면의 세계까지를 얼굴에 담았다.대단한 표현력이다.웃음에 가리지 않은 그 내면세계를 고뇌로 보아도 좋을 것이나,구도적 의미를 주어 사유라 일컬었다. 그러한 불교조각의 백미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한 금동삼산반가사유상이다.사람과 맞먹는 크기(등신대)를 한 높이 93.5㎝의 이 사유상은 웃음을 머금었지만 문자 그대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얼굴에 고뇌스러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까닭은 어떤 대상을 너무 골똘히 생각한데서 비롯된 표정일 것이다.책상다리 앉음새인 결가부좌에서 한다리를 풀어 대좌 아래로 걸터놓았대서 사유상에 반가를 앞세웠다. 금동삼산반가사유상의 주인공은 보살이다.그것도 다른 보살이 아닌 아미타불로 불리는 석가여래의 어릴적 모습인 태자 싯다르타라고 한다.하지만 백제 반가사유상의 싯다르타는 인도 북부 작은 왕국의 소년이 아니다.불교 발상지에서 천신만고 끝에 중국의 북제를 거쳐 백제에 들어오는 동안 여러번 재창조되었다.특히 북제에서는 20㎝ 안팎의 백옥사유상을 만들었으나 이를 받아들인 백제인들은 청동을 소재로 등신대의 사유상을 조성했다. 그리하여 스케일이 큰 백제의 불심과 예술,또 백제인화한 소년 싯다르타를 여기서 만나는 것이다.의젓하게 삼산관을 머리에 썼지만 얼굴은 앳된 소년이다.눈매와 입가에 어린 미소에는 벌써 자비가 깃들었다.중생을 구제하는 절대자가 아직 아닌데도 부처를 닮아가고 있는 이 싯다르타는 지금 사색을 통해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자 하고 있다.그래서 속기를 벗어 탈속의 경지에 진입이라도 한듯 얼굴이 티끌 한점 없이 맑다. 얼굴은 둥글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그럼에도 한편으로 갸름해 보이는 것은 이목구비가 준수한 탓이리라.버들잎 같기도 하고 초승달을 닮은 듯도 한 눈썹이 길다.그 눈썹에 물려 시작한 코가 유난히 오똑하다.깊은 생각에 잠겼다는 사실은 살포시 내리깐은 눈매에 그대로 표출되었다.자그마한 입은 내리깐 눈매와 더불어 잔잔한 미소를 드러내 보이는데 큰 몫을 했다. 오른쪽 손을 굽혀 중지가락을 살짝 뺨에 댔다.오른손가락과 오른 발목에 올려놓은 왼손가락 마디 마디가 생동감에 차있다.대좌에 늘어뜨린 옷자락은 휘날리는 듯 표현되었다.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을 안겨주는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한마디로 영원성을 지닌 예술품이다.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거니와 동양 고대불상의 백미이기도 하다.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몇차례 해외 나들이에서 외국인들로부터 경탄의 찬사를 받았다.파리 전시회 때도 전시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동반가사유상을 보러온 학자도 있었다는 것이다.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파리에서 말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