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찾아” 떼지어 국경탈출 모험(북한은 지금…:5)
◎「러」 접경 길목마다 탈북자 색출 검문 강화/서방소식에 밝은 외화벌이꾼 이탈 속출
북한과 인접한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는 지금도 탈북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데다 중국의 보따리장사꾼이나 북한의 외화벌이꾼 등을 통해 풍요로운 서방세계의 소식이 스며들며 철저한 정보통제 사회 시스템의 이완현상이 조금씩 나타나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연길에서 만난 한 북한전문가는 『현재 중국·러시아등 제3국에서 숨어지내는 탈북자들이 수백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최근들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중국 접경지역을 통해 탈북하는 일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힌다.『탈북자 증가현상은 옛 소련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외화벌이꾼·물자조달원 등을 통해 외부소식이 점차 북한에 알려지고 있는 데다 식량난등 경제난이 심화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최완규 경남대교수는 진단한다.
탈북은 요즘 중국보다 국경을 넘기가 힘든 러시아의 국경지역에도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러시아는 노동력이 부족한데다 3D기피 현상이 심해 쉽게 일자리를 구할수 있다는 소식이 북한에 알려진 것이다.러시아 원동은 중앙정부와 워낙 멀리 떨어져 단속손길이 느슨한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러시아 원동의 심장부 블라디보토크에서 슬라비얀카를 거쳐 북한의 최접경지역 하산으로 가는데는 시간이 평소보다 2∼3배나 더 걸릴 정도로 검문검색이 강화돼 긴장감이 감돌았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슬라비얀카로 가는 중간지점에는 급조한듯 벽돌에 바른 시멘트가 채 마르지 않은 군·경 합동검문소가 새로 설치해 검문을 하고 주요 길목 곳곳에서 군인들이 차량을 이용한 이동검문도 하고 있었다.
○식량난 악화로 탈북 부채질
슬라비얀카에서 만난 러시안인 샤샤씨는 『러시아는 이 지역에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1년에 5∼6번씩 부정기적으로 탈북자들의 주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하산에서 만난 외화벌이꾼 이모씨는 『이곳 하산지구에는 최근 탈북자 및 외화벌이꾼들이 1천여명으로 크게 불어났다』며 『크라스키노에는 탈북자만도 20여명이나 된다』고 귀띔한다.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며 북한의 벌목공이나 막일꾼등 외화벌이꾼들은 「잠재적인」 탈북자로 바뀌고 있었다.
이들의 월급은 1백달러 정도.월급은 북한당국 50%,개인 50%를 갖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당국이 독식하는 바람에 이탈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우수리스크에서 만난 조선족 최모씨는 『러시아에 있는 북한의 외화벌이꾼은 5만∼6만명선』이라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풍족한 서방세계의 소식을 접한 이들중 일부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제3국으로 이탈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중국쪽의 북한 접경지역에는 탈북상황이 더욱 악화돼 있는듯 했다.일부 북한주민들은 무리를 지어 국경을 넘을 정도로 과감해지고 있었다.용정시 개산둔에서 만난 조선족 유모씨는 『북한의 혜산·만포·신의주 등 도시는 물론 무산·회령·남양·은덕 농촌지역에서도 무리를 지어 국경을넘어오고 있다』고 전한다.굶을 바에야 한끼의 밥이라도 실컷 먹자는 생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 형량도 구류에 그쳐
탈북자들이 크게 늘어나며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는듯 했다.북한당국은 탈북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경제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처벌강도를 높여봐야 별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화룡시 노과향에서 만난 조선족 우모씨는 『전에는 탈북자를 잡으면 「시범케이스」로 눈뜨고 못볼만큼 가혹한 형벌을 내렸지만 지금은 구류 정도에 그친다』고 말한다.
탈북자들의 발길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속 고집하는 한 탈북의 원인인 식량난 등 경제난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합동조사에 참가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탈북을 막으려면 전면적인 개혁·개방정책을 통한 경제난 해결이 급선무이지만 개혁·개방으로 인한 외부정보 유입이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탈북의 악순환은 계속 될 것같다』고 말했다.
◎참여교수 시각/심지연 경남대교수·한국정치/사회일탈 현상/식량배급 중단에 체제불만 팽배
일반적으로 사회의 일탈 및 해체와 새로운 사회의 출현은 몇가지 단계로 나뉘어 전개된다.그 첫째가 예비적인 조짐들이 나타나는 단계로,이 단계에서는 정치체제와 지배계급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표출되며 부분적으로 무질서가 나타난다.특히 지배계급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은 사회의 해체를 초래하는 유인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두번째 단계는 정치·경제적으로 구조적인 취약성이 나타나는 단계로,이 국면에서는 정부 또한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세번째는 지식인의 이반현상이 나타나는 단계로,지식인들이 기존 정부로부터 떨어져나가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한다.네번째는 혁명집단의 형성과 대중이 동원되는 단계로,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의 제계급을 수직적으로 연결한 집단이형성되고 이 조직이 대중을 동원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이 정부를 위협하고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까지 성장했을 경우,지배계급은 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놓고 분열하게 된다.즉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변화를 모색하려는 개혁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로 나뉘는 것이다.이 단계에서 개혁파가 과단성있게 개혁을 단행하는 데 성공하면,보수파의 입지는 약화되며 정치체제는 균형을 회복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실패하여 보수파와 개혁파간에 격렬한 투쟁이 전개될 경우,체제의 기능은 마비되어 지배계급은 마침내 붕괴되고 새로운 지배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제반 현상을 분석할 때 북한사회는 예비적인 조짐이 나타나는 첫단계를 지나 두번째의 단계,즉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단계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냉해를 미처 복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95년도의 대홍수,그리고 금년에도 황해도와 평안도를 비롯한 곡창지대를 휩쓴 홍수로 농작물 생산에 타격을 받아 북한은 지금 식량이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이로 인해 계획경제를 떠받치는 지주 중의 하나인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굶주림을 참지 못한 주민들의 탈북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적인 재해의 발생으로 북한의 지배계급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으며,그 여파로 북한은 지도체제의 정비조차 미루고 문제의 해결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단계에서 북한의 지식인들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크게 주목된다.왜냐하면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이반현상이 가시화될 때 체제의 일탈 및 해체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