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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국감 기틀 ‘절반의 성공’

    올 국정감사가 11일 막을 내렸다. 예년에 견줘 ‘유달리 조용했다.’는 평가 속에 여야는 “정책국감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자료 제출 공방’ ‘이벤트 치중’이나 ‘피감기관과 술자리’ ‘인신공격성 질의’ 등의 구태로 아쉬움도 남겼다.●상임위 곳곳 ‘자료 전쟁’ 이번 국감은 ‘자료제출 공방’으로 시작했다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서 피감기관의 자료 부실 제출을 놓고 설전을 벌였고, 건설교통위는 한때 파행을 겪었다.특히 국무조정실이 ‘국정감사 정보공개 및 홍보강화방안’ 지침서를 내려보내면서 이런 신경전을 더욱 부채질한 형국이 됐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실사 결과 국무조정실 지침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효과도 없는 지침을 만들어 국감을 물타기하고 국정 활동을 방해했다.”고 꼬집었다.문화관광위 소속 민주당 손봉숙 의원의 보좌관은 KBS 이사회 회의록을 직접 열람하느라 2주일 동안 KBS로 출퇴근하는 ‘수공업’에 매달렸다.●의원들의 빛과 그림자 올 국감에선 ‘중국산 김치의 납 함유량이 국산의 5배’라는 사실을 밝혀낸 보건복지위의 고경화(한나라당) 의원과 인터넷 민원 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을 제기한 행정자치위의 권오을(한나라당) 의원 등이 돋보였다. 재정경제위 등 3개 상임위에서 삼성문제를 다루고 처음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는 등 ‘삼성 국감’으로도 불릴 만큼 삼성그룹이 화제였다.열린우리당 박영선, 민주노동당 심상정·노회찬 의원 등은 ‘삼성 3인방’으로 맹활약했다. 철저한 사전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꼼꼼한 질의가 돋보인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박순자·박재완 의원, 건설교통부 산하 기관들의 부도덕 실태를 까발린 한선교 의원도 호평을 받았다. 여야의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로 매일 국감 브리핑을 하면서도 소속 상임위에서 ‘송곳 질의’를 하며 ‘1인 2역’을 한 열린우리당 오영식,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대한축구협회의 회계비리를 적발한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 차분한 질의로 ‘시청료 논쟁’에 불을 지핀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 등도 눈길을 끌었다. 반면 ‘술자리 폭언 파문’을 일으킨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과 그 자리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이원영·정성호·최용규 의원 등의 행태는 ‘이맛살 케이스’로 꼽힌다.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은 피감기관장의 언어 장애를 비화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했고,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이원종 충북지사를 김영삼 정부 시절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오인하고 자료를 뿌렸다가 회수하는 해프닝을 벌였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알뜰살뜰 정보]

    ●월마트(www.walmartkorea.com) 오는 22일까지 전국 16개 매장에서 대한암협회 등과 함께 유방암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을 전개한다. 유방암 검진 차량인 마모버스(Mammobus)가 지역별로 찾아가 무료 검진해준다. ●빙그레(www.bing.co.kr) 다음달 20일까지 ‘황금 바나바 1000돈’ 이벤트를 진행한다. 바나나맛 우유 뚜껑 패키지를 우편엽서에 붙여 보내거나 구입 영수증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홈페이지에 응모하면 된다. 단지모양의 순금 1돈짜리 휴대전화줄을 만들어 1000명에게 나눠준다. ●비타민플라자(www.vitaminplaza.co.kr) 9일까지 한글 이름을 가진 소비자가 3만원 이상을 구입하면 영국 ‘솔가’에서 만든 휴대용 비타민케이스(5000원)를 준다. ●옥시 레킷벤키저(www.oxy.co.kr) 오는 15일까지 주거세정제 ‘옥시싹싹’을 대표할 주부 모델 3명을 선발한다. 옥시싹싹을 활용한 청소 노하우를 사진과 함께 공모,3명을 선발해 잡지 모델로 활동할 기회를 준다. ●휘슬러코리아 혼수철을 맞아 웨딩 패키지를 내놓았다. 프로컬렉션 리미티드 에디션 4종으로 신혼살림에 적합한 사이즈를 담았다.20만원짜리 1.4ℓ 소스팬을 선물로 준다. ●옥션(www.auction.co.kr) 10일까지 ‘신지누리 특별전’을 열고 김치, 재래김, 고등어, 햅쌀, 돼지고기 등 우리 농축산물을 평균 30% 저렴하게 판매한다. 덤상품과 무료배송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삼성카드와 제휴, 보너스 포인트로 식사비의 20%를 결제하고, 차감된 액수의 절반을 다시 되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또 31일까지 추첨을 통해 삼성카드 보너스 포인트 100만점(1명),50만점(2명)을 지급한다. ●우리닷컴(www.woori.com) 10일까지 ‘우리 가을 운동회’이벤트를 열고 소비자 200명을 추첨, 디지털 카메라 MP3 패션 부츠 등 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적립금을 준다. 상품을 산뒤 이벤트 페이지에서 콩주머니를 던지면 박이 터지면서 당첨 여부를 알려준다. ●롯데리아 이달 말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세트메뉴를 구입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데리버거(1600원)나 내추럴 치즈스틱(1400원)을 무료로 준다. 또 우리김치버거를 40% 할인한 1500원에 판매한다. ●CJ뉴트라(www.cjnutra.com) 이달 말까지 ‘컨트롤 Free Kit’이벤트를 열고, 혈당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혈당 관리 식사조절 보조식품 ‘컨트롤’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배송비 5000원만 내면 컨트롤 30포를 담은 상자를 보내주는 것. ●LG생활건강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림과 함께 쉽고 알려주는 동화책 ‘나도 튼튼이가 될래요.’를 폈다. 전국 300여개 보건소와 소아치과, 유치원 등에 2000여권 이상을 무료 배포한다. ●대유와인 10월 한달동안 와인리스트를 컨설팅해주는 행사를 실시한다. 오픈하거나 와인 리스트를 새로 리뉴얼하고픈 레스토랑이 마케팅팀에 신청하면 특성에 맞게 추천해준다.02)2632-7028.
  • 리메이크 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 낸 홍경민

    리메이크 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 낸 홍경민

    식지 않는 가요계의 리메이크 열풍에 홍경민(29)이 가세했다. 제대 직후인 올 초 6집 앨범 ‘리슨 앤 리핏(Listen & Repeat)’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한 그는 지난 4일 리메이크 앨범 ‘이모션 인 메모리’(Emotion in memory)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은 1970∼00년대 대중들에게 폭 넓게 사랑받았던 곡들로 구성됐다. 타이틀곡인 조하문의 ‘이밤을 다시 한번’을 비롯해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 김현철의 ‘달의 몰락’, 김승진의 ‘유리창에 그린 안녕’,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 등 모두 15곡이 수록됐다. 그의 자작곡 ‘너에게’와 ‘내 남은 사랑을 위해’도 새롭게 편곡해 수록했다.god 멤버 데니안이 래퍼로 참여한 ‘너의 결혼식’도 담았으며,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사랑의 썰물’은 탤런트 김지영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해 시선을 끈다. 앨범 발표에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 대학로 질러홀에서 가진 쇼케이스에서 그는 “리메이크 앨범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인 추세이고, 나도 기존 정규 앨범에 한 두곡씩 리메이크 곡을 수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다.”면서 “어릴적 좋아하고 많이 불렀던 노래를 수록했는데, 많이 불러봐서인지 곡을 소화하는데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서 눈길을 끄는 곡은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그는 “주위에서 ‘옛날 노래인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왜 이 곡을 수록했느냐?’며 반대가 심했지만, 제 마음에 와 닿는 곡이라 고집했다.”고 말했다. 연예계의 ‘팔방미인’으로 불리는 그는 ‘다른 분야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그동안 드라마, 드라마, 쇼프로그램 MC 등 정신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본업인 가수 외의 분야에서는 전혀 부담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면 역시나 그것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50대까지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싶은 내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쇼케이스는 팬 150여명이 참석해 스탠딩 공연으로 치러졌으며,god의 데니안·리포터 전제향·탤런트 김지영 등이 깜짝 방문해 열기를 고조시켰다. 홍경민은 오는 11월12일과 13일 서울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리메이크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02)522-9933.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6일부터 국립극장서 국제문화교류의 장 개막

    ●아트마켓 왜 필요한가 아트마켓의 필요성은 수년 전부터 현장 공연기획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내적으로는 공연 시장의 유통망을 체계적으로 확립해 창작자와 수요자의 접점을 넓히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한국 공연 상품을 해외에 효율적으로 알릴 창구가 절실했다.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두차례 열린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마켓’(APM)은 아트마켓의 전단계로 관심을 모았다. 서울아트마켓은 전국문예회관을 대상으로 공연 작품과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중개한 APM을 확대해 국제적인 아트마켓으로 창설한 것. 지난 3월 문화관광부의 주도로 서울아트마켓추진위원회(회장 강석흥)가 구성됐고, 한국공연예술매니지먼트협회 부설로 서울아트마켓 사무국이 문을 열어 반년 남짓 행사를 준비해 왔다. 문화관광부 김영산 기초예술진흥과장은 “공연예술의 자생력을 북돋우는 방안으로 작년 여름부터 아트마켓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처럼 1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서울아트마켓을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어떻게 운영되나 서울아트마켓은 참가작들의 홍보 부스 운영과 쇼케이스 공연, 각종 세미나 등 크게 세가지 행사로 구성된다. 이번에 설치되는 홍보 부스는 총 180여개. 서울아트마켓 사무국이 장르별로 심사를 통해 선정한 ‘팜스 초이스’작품 13개와 국내외 공연단체의 신청을 받아 등록한 유료 부스 40여개, 그리고 전국문예회관연합회(전문연)의 우수공연 프로그램 부스 120여개가 국립극장 앞마당에 자리를 편다. 쇼케이스 공연은 팜스 초이스 13편과 전문연 우수 공연작중 20편, 해외 참가작 3편을 비롯해 총 46편의 작품이 시간대별로 20분 가량씩 소개된다. 아트마켓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는 해외 공연예술계 유력인사들의 참석율. 서울아트마켓 사무국 김정희 총괄팀장은 “첫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20여개국 100여명의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시나르의 창설자인 알랭 파레, 호주예술위원회 예술감독 데이비드 플레저,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축제감독을 역임한 베르나르 달시에, 싱가포르 아시안아트마켓 창설자 벤슨 푸아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서울아트마켓의 협력행사인 ‘국제축제기획자네트워킹세미나(SINSFO)’에 참석하고, 행사 기간 중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세계무용축제 등을 둘러 볼 예정이다.●아트마켓에 거는 기대와 우려 공연평론가 정재왈씨는 “캐나다, 호주 등 문화예술의 비주류 국가에서 자국 문화를 효율적으로 유통시키고자 만든 것이 아트마켓”이라며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이 앞다퉈 아트마켓에 열을 올리는 실정에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서울아트마켓이 출범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려의 눈길도 만만치 않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울아트마켓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는 것. 특히 매년 9월에 열리는 도쿄예술견본시와 10월 중순에 개최되는 상하이공연예술축제와의 차별성이 중요하다. 아시아 시장을 한묶음으로 보는 해외 공연관계자들의 시각을 고려할 때 이들 국가와 뚜렷이 구분되는 명확한 마케팅 컨셉트를 설정하지 않으면 자칫 ‘집안 잔치’에 머물 위험이 크다. 서울아트마켓에 출품되는 작품들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필수다. 그중에서도 서울아트마켓이 공식 해외 진출작으로 내세우는 ‘팜스 초이스’의 경우 투명한 기준을 통해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는 100여개의 신청작 가운데 연극, 무용, 음악, 복합장르 등 4개 부문에 총 13개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주최측은 한국적이면서 국제성을 가미한 작품들을 우선 순위에 두었다고 밝혔다. 행사 진행에서의 보완점도 눈에 띈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첫 행사인데 굳이 50만원의 참가비를 내는 유료 부스를 운영해 참가 단체들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팜스 초이스’에 연극 ‘한여름밤의 꿈’이 뽑힌 극단 여행자 양정웅 대표는 “음악이나 무용에 비해 드라마가 있는 연극은 20분 분량의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보 부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외에 해외 진출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재왈씨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만큼 행사가 끝난 뒤 총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트마켓의 예산은 10억원이며, 내년부터 재단법인으로 운영될 계획이다.●해외 아트마켓 현황 198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창설된 시나르가 선두 주자다. 현재 가장 성공한 아트마켓으로 꼽히고 있다.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호주공연예술마켓은 1994년 호주 정부의 장기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처음 개최됐다. 아시아에서는 1995년 도쿄공연예술견본시가 첫 아트마켓으로 설립됐고, 이어 상하이공연예술축제, 싱가포르 아시안아츠마트, 인도네시아아트마켓 등이 잇따라 생겼다. 공연예술의 국가간 유통이 상대적으로 원활한 유럽에서는 아비뇽페스티벌, 에든버러페스티벌 등 축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아트마켓이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국제적 규모의 공연예술시장인 ‘서울아트마켓’(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PAMS)이 6일부터 8일까지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 첫 행사를 연다. 아트마켓은 국내외 공연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연예술을 사고 파는 문화장터이자 각국 공연예술 현황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교류의 장. 국내에는 아직 낯설지만 20년 역사의 캐나다 시나르(Cinars)를 비롯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20여개의 국제 공연예술시장이 열리고 있다.
  • 외교부 라인업 ‘안정’ 위주로

    홍석현 전 주미 대사의 불법도청 테이프 ‘X파일’ 사건 연루로 흐트러졌던 외교 라인이 마침내 정비됐다. 정부는 29일 홍석현 전 주미대사 후임에 이태식(60) 외교부 1차관을, 1차관 자리에 유명환(59) 2차관을,2차관에 이규형(54) 대변인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태식 주미 대사 내정자에 대한 미국측 아그레망절차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번 외교라인업은 재벌 언론사주 출신의 주미대사 임명이란 ‘파격카드’를 내세웠다 낭패를 본 뒤 나온 직업외교관 위주의 안정적 인사 기조. 반기문 외교장관부터 1·2차관, 김재섭 주 러시아대사, 김하중 주중 대사 모두 내외에서 검증된 커리어 출신들이다.4강 대사 가운데 주일 대사관의 나종일 대사만 학자 출신이다. 특히 이 주미대사 내정자의 경우 현직 차관으로 이례적(94년 박건우 차관 이후 처음)인 케이스.4강 대사의 경우 장관 및 총리를 지낸 ‘초중량급’들이 임명돼 왔는데 이번 인사를 계기로 4강 대사의 ‘급’이 전체적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내정자는 대학시절 학생운동 전력으로 6회 외무고시 면접에서 탈락한 외교관으로선 보기 드문 ‘운동권’출신. 어떤 자리에서건 할 말은 하는 강한 성격이다. 특히 한·미관계 전환기인 2003년 후반 차관보를 지낸 이후 탄탄대로를 걷고 있어 ‘늦관운’이 트였다는 소리를 듣는다. 외시 33회인 아들 이성환(29) 청와대 행정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통역을 맡아 한미정상회담 때 부자가 함께 배석하는 진풍경이 나오게 생겼다. 한·미, 한·일 등 양자관계를 담당할 유명환 제1차관 내정자는 외교부 내의 자타 공인 ‘미국통’이다.7월 말 다자담당 제2차관이 된 지 두 달 만에 양자담당인 제1차관이 됐다. 외교부 생활 35년 가운데 20여년을 ‘미주라인’에서 일했다. 동기인 이 주미대사 내정자와 자리 물림이 눈길을 끈다.2002년 차관보 인사에서 이 주미대사 내정자에게 밀린 뒤 이 내정자가 있던 이스라엘 대사로 갔고, 필리핀 대사를 거쳐 차관자리를 받은 것. 이규형 2차관 내정자는 유엔과장과 국제기구정책관 등을 역임한 명실상부한 다자업무 전문가다.1991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당시 유엔과장으로서 실무주역을 맡기도 했다. 지난여름 ‘때로는 마음 가득한’이란 시집도 출간한 이 내정자는 실제로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는 ‘시인’외교관이다. 홍석현 전 대사 경질로 이태식·유명환·이규형 세 사람의 연쇄승진이 이뤄져 외교부에선 ‘1타(打)3(得)’에 성공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음은 주요 약력●이 주미대사 내정자 ▲경북 월성 ▲경북 사대부고·서울대 외교학과 ▲외시 7회 ▲주미1등서기관 ▲주오스트리아 참사관 ▲통상국장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 ▲주이스라엘 대사 ▲차관보 ▲주영국 대사●유 1차관 내정자 ▲서울 ▲서울고·서울대 법대 ▲외시 7회 ▲북미과장 ▲공보관 ▲대통령 외교비서관 ▲북미국장 ▲주미공사●이 2차관 내정자 ▲부산 ▲외시 8회 ▲서울고·서울대 외교학과 ▲주일본 1등서기관 ▲유엔과장 ▲주유엔 참사관 ▲공보관 ▲국제기구정책관 ▲주중 공사 ▲주방글라데시 대사박정현 김수정기자 jhpark@seoul.co.kr
  • 로봇·요리에 빠진 아이 실업계고 보내볼까

    로봇·요리에 빠진 아이 실업계고 보내볼까

    실업계 고등학교가 변신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많은 졸업생들이 우량기업에 입사하고 동일계 특별전형 등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특화된 교육과정을 갖춘 곳은 2∼3대 1의 경쟁을 거쳐야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인기있는 실업고도 있다. 더 이상 인문계나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는 아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막연히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진학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름과 학습 내용을 바꾸며 변모하고 있는 실업계고를 둘러본다. 실업계고의 ‘변신’은 교육당국의 특성화고 육성, 특화·세분화된 전공, 대입 수시모집의 동일계전형 실시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이에 따라 대학진학자 수가 취업자 수를 앞설 뿐 아니라 서울 상위권대에 입학하는 학생도 계속 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지원자가 줄어 미달 사태가 속출하던 실업계고는 이제 학교에 따라서는 2∼3대 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전공, 특성화고 양성 실업계고는 컴퓨터·IT분야에서부터 상업, 관광, 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특히 내실있는 실업교육을 위해 각 시·도교육청이 지정하고 있는 특성화고는 실업계고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01년 선린인터넷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한 이래 7개교를 특성화고로 운영하고 있다. 강남공고에서 이름을 바꾼 서울로봇고는 자동차로봇과, 로봇재료과 등을 신설했다. 서울관광고는 관광이벤트과, 관광조리코디과 등을 개설해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전통의 명문 실업고인 서울여상의 금융정보과, 국제통상과 등도 초급 수준의 특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지방 실업계고도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가장 먼저 특성화고 사업을 시작한 부산은 동래원예고의 생활원예, 환경조경과, 부산산업과학고의 신발관련학과, 해운대관광고의 관광조리과, 레저스포츠과 등이 있다. 광주 서진여고는 고등학교로는 유일하게 간호학과를 설치하고 있고, 경기 한국도예고의 도예고도 특색있다. 이외 피부미용, 축산, 바이오생명과학, 골프관리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특성화고들이 전국에 64개교가 있다. ●진학 62.3%, 취업 32.9% 지난해 전국의 실업계고 졸업생의 진학률은 62.3%로 취업률 32.9%를 크게 앞섰다. 대학진학률은 2002년 49.8%에서 2003년 57.6%로 처음 절반을 넘기는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4년제대학 진학자도 2002년 전체의 14.1%에 불과하던 것이 2003년 20.0%, 지난 해에는 23.7%를 기록했다. 물론 산업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실업계고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실업계고의 설립 취지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21세기 무한 경쟁의 지식정보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전문기술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진학과 취업을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교육목표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다양한 실업계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교육부, 산자부, 노동부가 공동으로 20개 시범실업고에 40억원을 지원하는 등 산학협력 지원도 늘리고 있다. ●동일계 특별전형 대학진학률이 급등한 것은 각 대학이 실업계 졸업자들에게 동일계열에 한해 정원의 3% 내에서 정원외로 뽑는 ‘실업계고교 동일계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현재 특별전형의 계열은 농업·공업·상업·수산해운·가사실업 등 5개 계열로 나눠져 있으며, 실업계고 학생은 세부전공에 관계없이 동일 계열의 학과를 둔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 실업고가 대입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실업계고에서 3년 동안 해당 전공을 82단위 이상 이수한 학생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상위권 대학들도 동일계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고려대는 수능 2개 영역이 2등급 이내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연세대도 수능 2∼3개 영역이 2등급 이내인 실업계고 동일계열 졸업자를 선발한다. 수능의 직업탐구영역 신설도 실업계고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 실업계고 신입생 선발은 11월 15∼21일 특성화고 원서를 먼저 접수한 뒤 12월 5∼7일 일반 실업계고 원서접수에 들어간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졸업생 3인이 말하는 “실업계고 이래서 좋다” 실업계고 지원을 놓고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졸업 후 진로다. 취업, 진학, 그리고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졸업생 3명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길을 엿본다. 올해 서울여상 인터넷비즈니스과를 졸업한 강수연(19·여)씨는 포스코건설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느껴 일찍 취업할 생각으로 실업계고를 택한 강씨는 재학중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 워드, 정보처리 등 3개 자격증을 차근차근 준비해 대졸자들도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팀내 행정업무나 용역비 정산 등을 담당하는 강씨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무적인 부분에서 크게 도움이 되고,3년간 ‘취업 마인드’를 키워왔기 때문에 회사생활에 적응도 빠르다.”고 말한다. 다만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내년쯤 야간대학에 진학해 보충할 생각이다.“중3시절 중상위권 성적이었지만 좋은 대학 갈 자신은 없어 고민 끝에 실업계고를 선택했고, 후회가 없다.”며 만족해했다.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 기계공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박재홍(21)씨는 실업계고에서 특기를 한껏 살려 명문대 진학까지 거머쥔 케이스. 어릴 때부터 발명을 유난히 좋아하던 박씨는 그러나 당초 실업계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중3 때 우연히 발명동아리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도공고에 구경하러 갔다가 단숨에 마음을 정했다. 전기과에 다니며 발명동아리에서 꾸준히 아이디어를 개발했고, 전국학생발명 창작경진대회, 국제로봇 올림피아드, 전국 학생창의력 올림피아드 등에서 상을 휩쓸며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상위 40% 정도의 평범한 성적이었던 박씨는 “개개인의 소질을 적극 개발해 주는 수업 방식이 재능을 살렸고, 진학으로까지 이어졌다.”면서 “대학 입학 직후에는 영어·수학에서 부족함을 느낀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노력에 따라 극복할 수 있으며, 오히려 물리 등 과목은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성적이 안좋으니 한번 가볼까.’ 하는 경우라면 실업계고 진학을 권하고 싶지 않다.”면서 “먼저 자신의 재능과 희망을 꼼꼼히 살펴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취업과 진학의 두갈래길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우도 있다. 올해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입학한 김가영(19·여)씨는 주식회사 2개를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 전교 10등 내외의 우수한 성적이었지만, 인문계고의 일률적인 생활이 싫었고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터넷고를 택했다. 입학한 뒤 친구들과 창업동아리를 만들었고,2학년 때 ‘이누스’라는 교육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설립했다.3년간 청소년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신기술 콘퍼런스, 여성창업 경진대회 등에서 상을 휩쓴 끝에 동일계전형 혜택을 보지 않고도 수시모집 특수재능보유자 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직원 10명의 월급을 주고도 일반 중소기업직원의 연봉 정도를 번다는 김씨는 “학교에서 컴퓨터 기술을 배우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고 ‘기술을 통해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는 “막연하게 진학의 요행을 바라는 경우라면 실업계고에 가지 마라.”고 잘라 말한다. “확고한 뜻이 있어야 하며, 입학해서도 학교 공부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취업이든 진학이든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의도in] “대구동을 공천 안하는게 확실한 지역구도 타파 방안”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가 20일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새달 26일 치를 대구 동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말하고 “대통령이 계속 연정을 언급하면서 지역감정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아예 한나라당은 후보를 안 내고 중앙당 차원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며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TK(대구·경북)지역과 전남·광주지역이 지역감정 문제가 나오는 곳인데, 이번에 한나라당이 공천하지 않고 다음에 호남에서 비슷한 케이스가 생겼을 때 여당도 후보를 내지 않으면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여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대응한 역제안 성격임을 밝혔다. 박근혜 대표의 한 측근은 “지도부 차원에서는 전혀 논의한 적이 없는 강 원내대표의 사견”이라며 “어떤 의도로 이같은 제안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드라마 ‘가을소나기’ 주연맡은 정려원

    드라마 ‘가을소나기’ 주연맡은 정려원

    그녀의 눈물 연기가 다시 시작된다. MBC 새 수목 미니시리즈 ‘가을 소나기’가 21일(오후 9시55분)부터 방송된다. 올해 최고 히트작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여세를 잇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린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후속 드라마다. SBS 대하사극 ‘서동요’를 걷어차고 이 작품을 선택한 오지호나,‘아시아의 스필버그’ 쉬커(徐克)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칠검’과 함께 복귀한 김소연보다 더 관심을 끄는 배우가 있다. 정려원이다. 앞서 ‘내 이름은’을 통해 옛 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는 유희진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예쁘장한 가수 출신 배우라는 시선에서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정통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내 이름은’에서 보여준 눈물 연기는 시청자의 가슴을 저미게 하며 갈채를 한몸에 안기도 했다. 연기자 겸업 또는 전업을 선언한 여가수 가운데 보기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다. 처음부터 무리한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니라, 작지만 알찬 역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연기 수업’이 그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내 이름은’ 이후 숨 돌릴 틈 없이 정통 멜로드라마 ‘가을 소나기’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 감정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연서 역할이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처럼, 이전보다 깊은 내면 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히트작에서의 이미지를 이어가다 실패했던 연기자들을 시청자들은 숱하게 지켜봤다. 가수가 아닌 배우로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성장하고 있는 연기력을 펼쳐보여야 한다. 정려원은 “너무 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면서 “다행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며 캐릭터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고 자신했다. 더욱이 ‘가을 소나기’는 ‘내 이름은’에 비해 통속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명의 여인, 이규은(김소연)과 연서가 최윤재(오지호)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다. 또 윤재와 결혼한 규은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뒤 규은을 간호하던 연서와 윤재가 저항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에는 또 하나의 불륜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는 정려원을 비롯한 연기자 몫이 크다.‘사랑밖엔 난 몰라’의 윤재문 PD와, 영화 ‘접속’과 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 등을 썼던 조명주 작가가 함께한다. 정려원은 “‘김삼순’ 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세 사람의 힘겨운 사랑이 모두에게 공감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포기했던 남성 복원할 수 있습니다

    포기했던 남성 복원할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비뇨기과는 고장난 비뇨기들의「메카」다. 수줍음 속에 하루에도 수백 명의「고장난 행렬」이 이 의학의 비경(秘境)을 순례한다. 비뇨기과는「생식기과」를 애써 좀 점잖게 표현한 것. 질환이 많기론 생식기 분야가 다른 병과보다 더하다. 남성 불임증과 정관복원수술이 우리 임상의학계에서 하나의「이슈」로 등장한 것은 불과 4, 5년 전부터의 일. 잃어버린「남성」을 찾는「인간복원공사」의「해머」소리는 따라서 수술실 속의「메스」소리일 수도 있다. 불임증 환자는 여자쪽이 더 많고, 정관수술 받기는 30만 명 우리나라 불임부부는 전체 가임부부의 10%. 이중 60%가 여자쪽에, 40%가 남자쪽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최근의 통계로 밝혀졌다. 임신하는 데는 보통 ①생식가능연령의 부부여야 하고 ②부부 동서기간이 정상임신 분만성립에 충분해야 하며 ③임신 가능한 성행위가 반복되어야 하고 ④임신 중에 중절수술 같은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몇 가지 의학적 조건이 따른다. 이런 조건하에서 만 3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치 못하면 비로소 그 부부는 불임부부로 규정되는 것이다. 62년부터 가족계획사업이 활기를 띤 이래 지금까지 약 30만 명의 남성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불임환자」를 자원하는 현대판 내시족이 미국에서는 연간 4만 5천명, 인도에서는 180만 명으로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보다 더 절박한 이유로「남성복권(復權)」을 원할 경우 시행되는 수술이「바소바소스토미」라는 이름의 정관문합(吻合)술. 바로 남성복원공사의 큰 역사(役事)다. 정관수술했으나 사정 달라져, 기능복원 원하는 사람도 □ 정관복원수술 남자의 생식기는 두 개의 큰 공장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는 고환이라는 공장이며 여기서는 정자와 남성「호르몬」이 생산된다. 다른 하나는 부성기라는 공장이며 여기서는 정자의 젖이 되는 정액이 생산된다. 남성「호르몬」은 혈관을 통해 온 몸에 순환되어 남성으로서의 특성을 유지케 하며 정자는 정관이라는 수송로를 통해 창고에 운반되었다가 때가 오면 생명의 생산공장인 여성 생식기에 사정된다. 이와 같이 고환이라는 공장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2개월이 걸리고 창고까지 수송되는 데는 자기 크기의 10만 배나 되는 7m의 거리를 20일 전후 걸려 운반되며 창고에서 생명 생산공장에 사정되는 데는 약 10초가 걸린다. 이때 이 세 가지의 통로를 전부 차단하면 거세(去勢)술이 되고 정자의 수송로인 정관만을 차단하면 남자 불임술인 정관절제술이 되는 것이다. 정관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최근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자의 통로를 다시 이어달라는 사람들이 대학병원 비뇨기과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대병원서 복원수술 받은 사람, 5명은 다시 아들딸 낳아 즉 ①자녀의 사망 등으로 아기가 다시 필요하게 되었을 때 ②심경의 변화로 자녀가 현재 이상 더 필요하게 되었을 때 ③경제적 사정의 호전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가 왔을 때 ④재혼했을 때 ⑤정신적 장애가 심할 때, 보통 의사들은 정관복원수술을 감행한다. 지금까지 서울대학병원에서 실시한 정관문합수술은 모두 52례(例). 이중 정자가 출현한 성례는 36례로 밝혀졌으며, 5례가 자녀를 다시 출산하는 행운을 누렸다.「남성복권」이 문자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관문합수술은 지난 64년 서울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실시되었다. 최초의 수술자인 최수명(가명·42)씨는 1남 2녀를 거느린 가장.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정관절제를 했는데 외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면밀한 사전 검사를 거친 뒤 복원수술을 실시, 이듬해에 남자 아이를 분만했다. 국수올 만큼 가는 절단된 정관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여기에 소모되는 재료들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난점이 있다. 남자불임증 환자도 늘어가는 경향, 11년 동안 10배 이상으로 정관복원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요즘은 절제수술을 할 때 미리 복원에 편리하도록 처리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 각종 사고사(死)가 늘어남에 따라 복원수술을 해야 할「케이스」는 점차로 많아지고 있으며 그 성공률도 거의 세계수준만큼 높아져가고 있다고 서울의대 비뇨기과 교실에서는 밝히고 있다. ◇ 남성불임증 남성불임증 환자는 1955년의 경우 전체 비뇨기과 외래환자 중에서 1.72%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연차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여 60년엔 3.7%, 65년엔 18%로 늘었으며 66년엔 22%를 나타내어 55년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와 같은 남자불임증 환자의 증가경향은 일반적으로 남자불임증에 대한 사회적 계몽, 사회적 인습에서 탈피하려는 남성측의 자각,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체 불임부부의 40%나 되는 남자불임증의 원인은 - 첫째, 정자형성기능에 장애가 생겨서 오는 조정(造精)기능장애. 둘째, 정자수송로에 폐색이 있어 생기는 수정(輸精)기능장애. 셋째, 정액성분에 이상이 있는 활정(活精)기능장애. 넷째, 사정기능에 장애가 있어 생기는 사정기능장애 등으로 대변된다. 가장 많은 것이 조정기능장애이며 원인불명도 전체의 30%나 되고 있다. 정액검사별로는 무정자증이 47.15%, 정자 감소증이 35.26%이며 정상 및 기타가 16.81%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 갑자기 남성 불임증이 격증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각종 성병 후유증으로 오는 것과 직업, 기호품 과잉섭취에서 오는 것 등이 있다. 용접공·벤진·납(鉛)다루는 사람에 출산기능 잃는 사람 많아 고열 하에서 전기 용접이나 기타의 일을 오래하는 사람, 유기물질,「벤진」,「톨루엔」, 납 등을 취급하는 직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고환기능의 파괴로 불임증에 걸리거나 유산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밖에 남자불임증을 유발하는 기호품으로는 - ▲ 담배 =「니코틴」은 배아상피에 파괴를 가져오고 정자의 운동성을 약화시킨다. 동물실험에서는「니코틴」의 투여로 임신율이 2분의 1로 낮아졌다. 사람에서도 하루에 20개비 이상의 담배는 임신에 해롭다. 준가임남자 188명 중 76명이 과도한 끽연을 하고 있었음이 보고되었다. ▲ 코피 = 하루에 20잔 이상의「코피」를 마시면 전립선 기타 정로(精路)에 자극을 주고 긴장, 과로를 일으켜서 임신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알코올 =「알코올」만성중독은 다른 종류의 중독 때와 같이 세정(細精)관에 퇴행성 변화를 일으키고 흔히 음위(陰萎)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적당량의 음주는 최음제가 되고 때로 조루증이나 냉감증 부인의 치료목적에서도 효과를 본다. 근래 의학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남성불임증 가운데 면역성 불임증이란 게 있다. 부부가 비정상 성교인 음경흡철증으로 남자의 정액을 빨아먹음으로써 부인이「알레르기」가 생기고 불임이 된 예, 성교결과 질이나 자궁 등의 성기 점막에서 정액 성분이 흡수되어 항체가 생긴 결과 불임이 된 예 등이 보고되고 있다. 최경만(가명·54)씨는 전통사회에서 자란 소위 양반집 자손. 20세 때 결혼한 부인에게 애가 없었다. 그로부터 얻은 첩이 모두 다섯 명, 하나같이 이들도 임신을 못했다. 50이 넘어서야 자신에 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병원 비뇨기과를 찾았다. 정액검사 결과 정자 감소증으로 판명되었다. 불임증 극복엔 집에서 노력할 일도, 배란기 등 택해 조절해야 남자불임증의 치료는 원인불명이 30%나 된다는 점에서 어려운 때가 많다. 보통 일반요법, 내분비요법, 조사(照射)요법, 외과요법 및 인공수정 등으로 나뉘는데 어느 것이나 면밀한 검사와 인내로써 치료에 임해야 성공률이 높다. 일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는 - ▲ 방사조절 = 임신능력이 낮은 남자는 5일 이상 금욕했다가 부인의 배란기를 찾아서 24시간 이내에 2회 이상 집중 성교한다. 가급적 부부의 극치감을 일치시키는 게 좋다. ▲ 성교체위 = 성교가 끝나고 음경을 발거(拔去)하기 전에 부인은 양다리를 가슴쪽으로 구부려 정액이 후질궁륭부(後膣穹窿部)에 괴어 유실되지 않도록 하고 20분간은 기침, 대소(大笑), 재채기 등을 하지 않는다. ▲ 수욕(水浴) = 온도자극 및 기계적 자극을 일으킬 목적으로 각종 좌욕, 세척을 온수 혹은 냉수로 하여 성 중추나 성기에 자극을 가한다. ▲ 최음제 = 발기중추를 자극하고 성기의 충혈 및 그의 흥분을 도모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의 경우 월 평균 30건의 남성불임증 환자가 찾아오고 있는데 이들은 진보된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놀랄만한 성과를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관복원수술도 한층 호전된 외과기술의 덕분으로 그 성공률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료제공 = 이희영(李熙永)교수(서울의대 비뇨기과) [ 선데이서울 69년 2/9 제2권 제6호 통권 제20호 ]
  • 그 아이는 남편의 아이냐

    그 아이는 남편의 아이냐

      『어린애의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 뿐』이라고「괴테」는 영탄했다. 시성(詩聖)의 이 망언(?)이 진작 알려졌던들 그 주옥 같은 명편(名篇)들이 여성들에 의해 그렇게 잘 읽히지는 않았으리라.「패터니티·테스트」라는 이름의 친자(親子)감정이 요즘 법의학계의 큰「이슈」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을 갖게 하는 일.「여성상위」「모성우위」의 천하에서 현대의「아담」들은 내심 그 아들이 자기의 발가락이라도 닮아주길 눈물겹게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 10월 말까지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 건수는 모두 1,267건. 이중 60%가 남편 혹은 아내의 부정(不貞)을 이혼사유로 들고 있다. 여기 곁들이게 마련인 것이 친자확인 혹은 친자감정문제- 현대판「솔로몬」의 재판은 그렇게 해서 개정(開廷)된다. 혈액검사로 밝혀낸「남의 아이」의 실례(實例) <사건 1> 남편은 김석환(金錫煥)(가명·50) 아내는 이화자(李花子)(가명·47). 고급 공무원인 남편과「인텔리」인 아내가 50의 문턱에서「서로 갈라지길」선언했다. 최근에 와서 갑자기 가정에 등한해진 남편을 상대로 이여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남편 김씨는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 막내 아들인 영진(永珍)(4)군에 대한 친자확인 소송을 낸 것이다. 남편 김씨에 의하면 영진군은 분명 자기의 자식이 아니며 거기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는 수년 동안 가정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김씨와 이여인 그리고 영진군에 대한 혈액검사가 1차적으로 모 의학 권위기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남편은 B형, 아내는 AB형. 그러니까 이 부부 사이의 자식은 법의학상 A형이나 B형 혹은 AB형의 혈액형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영진군의 혈액형은 O형. 의학은「부권부정(父權否定)」을 선언했다. 친자감정도 안 한 채 처음 원고쪽인 이여인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던 법원은 이와 같은 법의학의 확정 감정으로 당초의 판결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 이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안 난 채 법원에 계류 중이다. <사건 2> 경기도 고양군 을(乙)면, 후미진 산골짜기에 외딴집 두 채가 있었다. 하나는 정삼길(가명·45), 이순자(가명·39)씨 부부의 집이며 다른 하나는 최오철(가명·39), 전양옥(가명·38)씨 부부의 집. 최씨의 부부가 아들 딸 여섯을 두고 있는데 비해 정씨의 부인 이씨는 마흔이 넘어서도 어린애를 낳지 못했다. 이여인에겐 어린애를 못 낳는다고 시댁으로부터 심한 눈총이 들어왔으며 마음에선 정씨에게 소실을 보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때, 결혼생활 25년 동안 어린애를 갖지 못하던 이여인이 뜻밖의 임신을 했다. 남편은 물론 시댁과 마을에서도 이여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분만한 씨는 분명히「불의의 씨」이며 그 씨의 주인은 옆집남자인 최오철씨일 거라는 것. 「부권확정」을 위한「패터니티·테스트」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 실시되었다. 남편이 A형, 산모가 A형, 옆집남자가 O형인데 어린애는 A형. 따라서 이 아이는 정씨의 것일 수도 있고 최씨의 것일 수도 있다는 판정이 나왔다. Rh-Hr형 검사가 2차적으로 실시되었다. 남편이 CC, 산모가 Cc, 옆집남자가 cc인데 아기는 cc. 즉 남편과 산모 사이에는 CC인자형이나 Cc인자형의 자녀만이 출산되며 옆집남자와의 사이에는 cc인자형이 출산될 수 있다. 옆집남자인 최씨와의 불의가 있었음이 인정되었다. 뒤늦게 알려진 얘기지만 남편 정씨는 남성 불임증 환자. 임신을 못해 쫓겨나게 된 이여인은 의식적으로 옆집남자인 최씨를 유혹, 그의 씨를 받아 여권(女權)(?)을 지키려 했던 것. 촌부(村婦)의 무지가 빚은 단막극이었다. 「아버지 아니다」는 알아도「당신의 아이다」는 못가려 법의학에서 응용되는 친자문제는 보통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A라는 사람이 a라는 어린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둘째, A’라는 부인이 a라는 어린이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셋째, A라는 사람과 A’라는 부인이 a라는 어린이의 부모가 될 수 있는가. 친자감정은 우선 혈액형 검사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응용되고 있는 것은 ABO형, MN형, Rh-Hr형 검사이며 외국에선 PQ, Ee, Pp형 검사 등도 실시되고 있다. 혈액형 검사에서는「친권긍정」은 못하고「친권부정」만을 할 수 있다. A라는 아이가 A라는 사람의 아이가「아니라는」것은 증명해도「A의 아이다」는 것은 확정을 못한다. A형의 부(父)와 B형의 모(母) 사이에 난 아이가 B형이라 해서 그 아이가 반드시「A형인 부」의 자식일 순 없다. O형과 B형의 부에게서도 B형의 자식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법의학상 친권부정율은 다음과 같다.(적십자혈액원장 원종덕 박사의 말) ① ABO형으로 산출되는 부권부정율은 19.86%, MN형은 18.74%, Rh-Hr형은 31.93%로 총부정율은 51.36%이다. ② 절대적으로 모권이나 부권을 부정할 수 있는 총 부정율은 26.62%이다. 지문·미각·침 등에 유전학(遺傳學) 적용, 귀지의 습도(濕度)도 부전자전(父傳子傳) 즉 전체 친자감정 건수 중 약 반은「A가 a의 아버지가 아니다」라는 부권부정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반의 해결을 위해 지문, 타액, PTC 등의 다른 검사가 실시된다. 혈액형 검사 이외의 친자감정 방법에 대해 과학수사 연구소 문국진(文國鎭) 법의학과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문 검사> 지문검사는 친자감정에 광범히 이용되고 있다. 생후 한 달 반이 지나면 사람에겐 지문이 생기는데 보통 두 살만 되면 지문검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문이 뚜렷해진다. 지문에는 궁상(弓狀)문, 제상(蹄狀)문, 와상(渦狀)문 등 백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유전된다는 원칙 아래 부모의 것과 자식의 것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다. 지문 외에도 장(掌)문(손바닥), 족적(足跡)문, 구진(口唇)문 등이 친자감정에 이용된다. <PTC 미각검사> PTC(페닐디오카바마이드)란 약을 입에 넣었을 때 쓴맛을 느끼는 사람과 안 느끼는 사람이 있다. 느끼는 사람을 양성, 안 느끼는 사람을 미맹(味盲)이라 하는데 이것이「멘델」법칙에 의해 유전된다는 것이다. <타액 검사> 자기의 혈액형 물질을 침에 배설하는 사람과 배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배설형을 S, 비배설형을 s로 할 때 그 자식의 형을 보는 것이다. <귀지 검사> 사람의 귀지에는 마른 것(乾)과 습한 것의 두「케이스」가 있다. 아버지의 귀지가 마른 것이면 아들도 같이 마르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생체검사> 첫째, 기형(畸形)여부를 본다. 언청이, 요도의 위치, 육손이 등의 기형은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째, 계획(計劃)검사를 한다. 예를 들면 신장과 양손 끝(指端間)의 거리의 비율은 항상 같다는 것 등 124개「포인트」를 계측한다. 모발과 눈동자의 빛깔 등도 유전요소가 된다. <산과(産科)적인 고찰> 임신기간과 성교날짜, 배란기에 성교를 했는지의 여부 등을 면밀히 검사하여 친자여부를 감정한다. 희극배우 채플린의 친자확인 소송(訴訟)은 의학계 결론과 달라 말썽 문국진 박사에 의하면 형사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친자확인 소송은 군인들 세계에서 많다. 전방 주둔부대의 군인이 그곳 다방, 술집 등에 근무하는 여성들과 일시적인 정교(情交)관계를 맺는 경우, 몇 년 후에 소위「당신의 아들」을 업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자료, 양육비, 재산상속 등의 문제와 관련되는 친자확인 소송은 돈 많은「화이트·칼라」족에 많다는 것. 유명한 희극배우「채플린」은 몇 번의 정교를 맺은 어느 배우지망생으로부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받은 적이 있다. 「채플린」은 혈액형이 O형, 여자는 A형인데 아이는 B형. 의학계는 친권부정을 판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배심법정은 아이를「채플린」의 씨로 단정, 매주 75「달러」의 양육비와 변호사료 5천「달러」를 지불토록 한「난센스」판결을 내려 세상의 빈축을 산 적이 있다. 서울가정법원 사무국장 김동선(金東先)씨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친자문제와 관련되는 대부분의 사건을「패터니티·테스트」없이 처리한다. 발가락조차 닮지 않은 자식을 할 수 없이 자기의 자식으로 믿고 살아야 하는,「억울한 부권」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17세 윤하 일본가요계 돌풍

    17세 윤하 일본가요계 돌풍

    17세 한국 소녀가 일본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인 가수 윤하(17). 지난해 9월 일본에서 데뷔한 윤하는 국내에서는 아직 정식 데뷔하지 않은 무명이지만, 일본에서는 ‘제2의 보아’로 불리는 기대주다. 잠재력면에서는 오히려 보아보다 한수 위로 평가 받는다.4살때부터 시작한 발군의 피아노 실력을 바탕으로 직접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피아노 록’을 추구,‘아티스트’의 이미지가 강하다. 윤하는 지난 7일 발표한 네번째 싱글 ‘터치’를 발매 당일 일본 최고 권위의 음반차트인 오리콘 싱글 차트 15위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터치’는 10일 일본 전역서 개봉되는 영화 ‘터치’의 삽입곡. 일본 인기가수 이와사키 요시미의 1985년 최대 히트곡인 동명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인 신인 가수의 목소리로 명곡이 되살아났다.”고 소개했다. 윤하는 영화 ‘터치’의 개봉과 함께 일본 내 7개 도시를 순회하는 쇼케이스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윤하는 두번째 싱글 ‘호우키 호시’(혜성)를 이 차트 12위(발매 당일 18위)까지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전까지 이 차트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한국 가수로는 보아가 유일하다. 윤하는 또 지난 2일과 5일 일본의 4대 음악 프로그램인 아사히 TV의 ‘뮤직 스테이션’과 NHK의 ‘팝잼’에 연속 출연해 뜨거운 호응도 얻었다. 윤하는 지난 6월 ‘팝잼’의 신인발굴 코너에서 사상 6번째로 높은 점수인 89점을 얻으면서 ‘가요계 샛별’로 화려하게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윤하의 소속사인 ‘스탐’의 박상용 대표는 “윤하의 첫 정규 앨범 곡 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 초쯤에는 국내 활동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유통업체들 다양한 가맹점 내세워 고객 유혹

    유통업체들 다양한 가맹점 내세워 고객 유혹

    명절 때 최고의 선물로 상품권이 꼽히고 있다. 실속 있는 선물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덕이다. 백화점과 할인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은 다양한 상품권으로 대목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메일 상품권에 이어 올해는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모바일 상품권’도 나왔다. 서울인이 유통업체가 내놓은 상품권의 특장점을 분석했다. ●대형 백화점은 계열사 ‘망라´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고급 상품권을 추구한다. 황금빛 봉투를 사용하고, 필요하면 케이스 포장을 해준다. 제휴 가맹점은 호텔, 면세점, 골프장 등으로 중·장년층을 공략한다. 우리·하나·씨티·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판매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롯데백화점 상품권은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시네마, 롯데호텔, 롯데면세점, 롯데월드 등 계열사를 아우른다.KTF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 쓸 수 있는 게 특징. 신세계백화점은 이마트와 함께 외식업체를 많이 섭외했다. 까르네스테이션, 스타벅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 오킴스, 뱅커스 클럽, 빕스, 토니로마스, 스파게띠아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이마트에 입점한 업체들이다. 현대백화점은 현대 계열사를 섭렵했다. 현대홈쇼핑,H몰, 호텔현대, 현대드림투어 등과 더불어 호텔 리츠칼튼, 그랜드 하얏트 호텔, 호텔신라, 예술의 전당에서 사용 가능하다. 백화점은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로 배송해준다. ●할인점 상품권, 놀이동산·영화관 등 쓰임새 많아 할인점 상품권은 대형 백화점보다 쓰임새가 다양하다. 매장 수가 적다 보니 여러 업체와 제휴를 맺는 것. 놀이동산, 영화관, 패밀리 레스토랑 등을 찾는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와 삼성플라자는 삼성 계열사와 더불어 중소형 백화점과 제휴를 맺었다. 제일모직, 삼성에버랜드,CGV 등이 대표적. 애경·동아·대구백화점, 포항대백쇼핑,GS주유소 등도 한솥밥을 먹는다. 삼성플라자는 신세계·갤러리아·예술의 전당·디지털프라자·호텔신라에서도 쓸 수 있다. 애경백화점은 삼성플라자, 홈플러스,CGV는 물론 그랜드백화점·마트, 한국까르푸, 중부 컨트리클럽,GS슈퍼마켓 등과 손을 잡았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외식업체와 제휴를 많이 했다. 마르쉐, 토니로마스, 스파게띠아,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 씨즐러, 베니건스, 미스터차우, 따스트뱅 등이다. ‘모바일 상품권’이 나왔다.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백화점이 SK텔레콤·KTF·LG텔레콤과 제휴한 것. 이동통신사별 홈페이지나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에 접속, 상품권을 구입하면 된다. 문자메시지나 캐릭터, 벨소리 등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발송할 수 있다. 선물받은 상품권은 휴대전화에 다운받아 해당 백화점에서 상품권으로 교환받는다. ●홈쇼핑에서도 판매 홈쇼핑 상품권은 주부들에게 인기다. 케이블TV는 물론 인터넷 쇼핑몰이나 카탈로그 상품도 살 수 있기 때문. 배송은 어디나 가능하고, 이메일로 주고받을 수 있다. CJ홈쇼핑(www.cjmall.com)은 상품권을 1000원부터 20만원까지 세분화해 판매한다. 이메일 상품권은 메시지와 함께 전달하도록 기획했다.GS홈쇼핑(www.gseshop.co.kr)은 케이블TV가 나오지 않는 가정을 위해 카탈로그와 함께 상품권을 배송한다. 이메일 상품권은 주소를 잘못 입력해 엉뚱한 사람에게 상품권이 보내지지 않도록, 입력한 이름과 주소가 일치해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완했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는 상품뿐 아니라 도서, 음반, 공연, 영화 예매까지 가능해 편리하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지방선거 누가 뛰나] (하) 호남권 기초단체장

    호남권은 지난해 ‘탄핵 정국’이후 꾸준한 지지세를 유지해왔던 열린우리당에 대해 최근 민심이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는 전북보다 광주·전남지역이 더 심한 편이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현 정부의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역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잇따라 언급된 한나라당과의 연정 문제도 지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광주·전남의 경우 최근 지역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오차범위 안에서 민주당이 우리당에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당에 일방적 지지를 보냈던 지난 17대 총선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거나 무소속으로 남았던 일부 현직 기초자치단체장의 복당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우리당과 민주당 소속 후보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22명을 뽑는 전남은 120여명,5명을 뽑는 광주는 30여명이 단체장 출마에 뜻을 두고 있어 평균 5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후보군의 직업별로는 시·군·구·도의원 등 기초 및 광역의원 출신이 6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인지도를 높인 뒤 단체장에 진출하는 케이스가 늘고있는 것이다. 여수시와 장성군은 1급 공무원 출신이 출마를 선언했으며, 상당수의 변호사·교수 등도 기초단체장에 도전장을 냈다. 14명을 뽑는 전북은 모두 50여명이 차천·타천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열린우리당의 공천이 당선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우리당 공천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당원이 최근 1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출마예상자들이 하향식 공천에 대비, 지지세력 확보를 위한 정지작업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새만금사업과 김제공항 폐쇄 등 지역현안에 대한 현 정부의 지지부진한 해법 때문에 민주당의 틈새공략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 실제로 한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 무소속으로 있다가 최근 민주당에 입당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에 다양한 전문가가 진출하는 것은 자치제를 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당보다는 인물 위주로 선택하는 유권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호남권 출마 예상자 범례 우:열린우리당, 한:한나라당, 노:민주노동당, 민:민주당, 자:자민련, 무:무소속 ●광주 ▲동구=유태명(61·현 구청장·민) 임택(42·구의원·우) 이윤정(50·우리당 중앙위원·우) 신이섭(57·시의원·민)▲서구=김종식(57·현 구청장·우) 박영수(55·시의원·우) 김선옥(47·시의원·우), 박금자(50·시의원·우), 신현구(45·동북아전략연구소 이사장·민)▲남구=김화진(47·우리당 남구당원협의회 의장·우) 이혜명(48·민주평통 남구추천위원장·우) 이창호(51·구의원·우) 정재수(46·전 광주시생활체육협의회사무처장·우) 황일봉(46·현 구청장·민) 임형진(46·전 시의원·민) 나종천(63·시의원·민)▲북구=이형석(44·시의원·우) 김용억(52·시의원·우) , 김전승(45·북구 희망자활후견기관관장·우) 김재두(38·민주당 부대변인·민) 반명환(59·시의회 의장·민) 정상진(45·전 구의회 의장·민) 김후진(58·전 시의원·민) 오주(67·광주시생활체육협의회장·민)▲광산구=송병태(67·현 구청장·우) 김명민(62·전 시의원·우) 이현선(56·송정농협 조합장·우) 유재신(46·시의원·민) 강박원(69·시의원·민) 이정남(49·시의회 부의장·민) ●전남 ▲목포시=정영식(59·전 행자부차관·우) 정종득(65·현 시장·민) 이완식(66·도의원·민) 장복성(43·시의회의장·민) 이호균(45·목포과학대학장·민) 민영삼(48·민주당 부대변인·민) 최기동(55·전 목포시의장·민) 김정민(45·목포대교수·무)▲신안군=박인호(46·도의원·우) 권염택(59·도의원·우) 고길호(60·현 군수·민) 고판술(62·군의회의장·민) 김청수(63·전 문태고동창회장·민) 오무정(63·신안수협장·민) 김관선(48·전 광주시의원·민) 강성만(43·전 국회의원 보좌관·민)▲무안군=서삼석(47·현 군수·우) 정해균(58·전남도총무과장·민) 나상옥(52·목포무안신안축협장·민) 김철주(48·도의원·민) 양승일(60·군의원·민) 신재열(59·전 한전목포지점장·민)▲해남군=민화식(66·전 군수·우) 박희현(61·현 군수·민) 김향옥(56·전 전남일보이사·민) 김철환(49·해진신문발행인·민) 이석재(59·전 도의원·민)▲진도군=하일룡(65·도의원·우) 임준모(62·전 진도군기획예산실장·우) 김경부(65·현 군수·민) 김상헌(47·도의원·민) 장전형(44·전 민주당 대변인·민) 박연수(58·전 진도부군수·무)▲영암군=전동평(43·도의원·우) 김일태(61·전 전남도교육위의장·우) 김철호(65·현 군수·민) 강우원(63·전남도의회부의장·민) 장경택(58·전 농협 전남지역본부장·민)▲함평군=김성호(49·도의원·민) 안병호(58·함평축협장·민) 이석형(47·현 군수·무)▲완도군=김종식(60·현 군수·우) 박현호(54·전 광양부시장·민) 차용우(54·도의원·민) 김종식(55·전 완도수협장·민)▲담양군=최형식(50·현 군수·우) 이정희(50·변호사·민) 이정섭(58·전 담양읍장·민) 이병담(60·전 담양부군수·민)▲장성군=김종길(47·전 언론인·우) 송광운(51·전남도행정부지사·민) 김한종(51·도의원·민) 이병직(61·도의원·민) 김흥주(63·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중앙회장·민) 정창옥(53·전 도의원·민) 유두석(55·건설교통부과장·민)▲곡성군=고현석(62·현 군수·우) 허기하(54·도의원·민) 이영진(53·군의원·민) 김정현(46·민주당 부대변인·민) 조형래(56·전 군수·민)▲나주시=박경중(58·전 도의원·우) 김대동(59·전 시장·민) 손기정(62·전 전남정무부지사·민) 이길선(55·나주시의장·민) 양봉현(61·전 도의원·민) 신정훈(41·현 시장·무)▲화순군=전형준(49·다산건설 대표이사·민) 정완기(63·전 도의원·민) 홍이식(47·도의원·민) 최영호(46·도의원·민) 박판석(50·정당인·민) 배동기(49·전 부군수·민) 임호환(60·전 농업기반공사전남본부장·민) 이영남(49·여·현 군수·무)▲영광군=강종만(51·도의원·우) 김윤일(56·영광농협장·우) 정기호(51·도의원·민) 장현(49·호남대교수·무) 전태갑(63·전남대교수·무)▲강진군=국영애(46·여·강진 성화대교수·우) 박방림(55·전 강진군수비서실장·우) 김철진(53·전 강진군청 공무원·우) 황주홍(52·현 군수·민) 차봉근(60·전 전남도의장·민)▲장흥군=백광준(55·군의장·우) 김성(49·도의원·민) 백도선(60·전 군수·민) 김인규(52·현 군수·무)▲여수시=김강식(49·남해안발전연구소장·우) 김재철(54·시의원·우) 정채호(56·전 여천시장·우) 신장호(52·여수환경운동본부 이사장·우) 조삼랑(63·전 서초서장·우) 이재찬(64·전 도의원·우) 김충석(65·현 시장·민) 오현섭(55·전 전남정무부지사·민) 김광현(64·전 여수시장·민) 박병렬(52·도의원·민) 송대수(49·도의원·민) 추상은(56·여수시의회의장·민)▲순천시=조충훈(52·현 시장·우) 조보훈(59·전 전남정무부지사·우) 김철신(47·전남도의장·민) 허정인(48·전 전남도의회부의장·민) 안세찬(44·전 시의원·민) 정수생(64·전 해남부군수·민)▲광양시=이강사(64·전 광양군수·우) 김현옥(61·전 국제와이즈맨 백운회장·우) 서용식(59·전 시의원·우) 이성웅(62·현 시장·민) 이돈광(53·전 도의원·민) 남기호(47·시의원·민) 이정문(50·시의원·민)▲구례군=서기동(57·전 구례읍장·우) 김용준(61·군의원·우) 전경태(57·현 군수·민) 박인환(55·도의원·민) 이몽룡(59·구례군 보건의료원과장·민)▲고흥군=진종근(57·현 군수·우) 이일형(54·도의원·민) 박병종(51·도의원·민) 황남길(57·전남테크노파크 운영국장·민)▲보성군=황병순(62·전 도의원·우) 이탁우(48·도의원·민) 박철현(59·전 광주도시공사사장·민) 김수송(62·전 도의원·민) 하승완(55·현 군수·무) ●전북 ▲전주시=강재수(58·전 전북정무부지사·무) 송하진(53·전 전북도기획관리실장·우) 차종선(51·변호사·우) 최형재(42·시민운동가·우) 최진호(55·도의원·우)▲군산시=김철규(64·금융결재원감사·우) 강임준(50·도의원·우) 박종서(58·기업도시유치 범시민연대대표·우) 함운경(41·우리당 당원교육센터소장·우) 황이택(51·새만금발전포럼대표·민) 권형신(59·전 한국소방검정공사사장·무)▲익산시=채규정(59·현 시장·우) 허영근(59·전 도의장·민) 김상민(53·익산경제발전시민포럼대표·우) 박경철(49·익산시민연합대표·무)▲정읍시=유성엽(45·현시장·우) 강광(69·바르게살기운동정읍시협회장·무) 유남영(50·정읍농협조합장·무)▲김제시=김상복(62·도의회 부의장·우) 이건식(60·금만농어촌발전연구소이사장·무) 이길동(66·고향발전연구소장·우) 황호방(50·노인대학장·우)▲남원시=최진영(43·현 시장·민) 윤승호(51·도의원·우) 강동원(52·농수산물유통공사감사·우)▲완주군=최충일(63·현 군수·우) 소병래(41·군의회의장·우)▲진안군=김문종(55·농협조합장·우) 박관삼(60·전 부군수·무) 송영선(54·지역농업연구원 이사·우) 이충국(51·도의원·우)▲무주군=갈성로(54·공노총전북도청지부위원장·무) 윤완병(49·도의원·우) 홍낙표(56·전북도의정회 부회장·우)▲장수군=장재영(60·현 군수·무) 최용득(58·전 군수·우) 박용근(45·도의원·우)▲임실군=김진억(67·현 군수·무) 심민(59·전 부군수·우) 강완묵(46·전 농민회장·우) 김진태(58·신일소방·방재회장·무) 한인수(49·도의원·우)▲순창군=강인형(59·현 군수·우) 박완주(50·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무) 설균태(67·전 국민카드부사장·무) 김교근(58·전 농협조합장·민)▲고창군=이강수(54·현 군수·민) 정길진(64·도의회의장·우) 진남표(58·고창지역개발연구회장·민)▲부안군=김종규(54·현 군수·무) 고영조(47·자치분권전국연대공동대표·우) 이병학(47·민주당 전북도당정책실장·민) 최규환(70·전 군수·민)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잠깐이면 될 것이다. 아주 잠깐. 이 쇳줄을 넘어 몸을 던지면 될 것이여. 눈 깜짝할 사이면 저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잉게.”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씨가 지은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朴仁天) 일대기인 ‘집념-길위의 길’에는 1923년 당시 23세이던 박씨의 실패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장사에 손을 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본 오사카에 돈을 벌러 갔지만 일주일만에 빈손으로 돌아오며 자살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이창동씨는 박씨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박인천의 일생은 우리 역사의 엄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택시 2대로 운수사업 시작 박씨는 나이 30세를 넘어 정규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으면서도 독학으로 지금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는 등 놀랄 만한 집념으로 인생의 반전을 이뤘다. 이런 그의 의지는 해방 이후 당시로선 노인 취급을 받고 은퇴할 만한 나이인 46세에 광주에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회사를 차려 광주고속이라는 고속버스 회사를 출범시킨다. 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삼양타이어(현재의 금호타이어), 석유화학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현재 재계서열 10위 그룹으로 키워 냈다. 특히 금호그룹은 5공시절 예상을 깨고 제2민항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며 대표적인 호남재벌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박씨가 택시 두 대에서 아시아나항공까지 키워온 대재벌의 창업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뼈아픈 실패들이 밑거름이 되었다. 남달리 고집이 세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오늘날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박씨의 삶은 좌절과 성공을 향한 몸부림, 해방 후 맨주먹으로 출발해 한국 굴지의 재벌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과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호가 ‘금호’(錦湖)인 박인천 회장은 1901년 7월5일 전남 나주군 죽포면 동산부락 일명 신기(新基)마을에서 태어났다. 빈농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열 살이 될 때까지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당에 다녀야 했다.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한 한학이지만 열다섯살 때 팔현강당에서 개최된 강경(講經)시합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곧 한문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자동차가 신작로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시대에 한문 공부를 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열일곱살 되던 해 지금의 초등학교격인 나주 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식공부에 대한 열의도 2년을 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애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어 버리고 열아홉살 때부터 면화수집상, 대금업, 싸전업 등의 장사를 했지만 손을 대는 족족 손해만 입었다. 이처럼 실패만 거듭해온 박씨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공장 굴뚝 앞에서 조선 사람으로서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그를 바꿔 놓았다.“일본놈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공장을 짓는지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본 순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뒤 5년 만인 1929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이후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이순정 여사를 배필로 맞았다. 박 회장은 8·15 해방을 맞자 택시 두 대를 구입해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다.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포드 디럭스 세단 5인승 택시 두 대를 사들였다. 그때 이 돈은 80㎏들이 쌀 44가마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3남인 삼구 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창업주의 집념, 도전, 개척정신을 본받는다는 취지로 그룹 창업의 모태가 됐던 택시와 똑같은 모델을 구입해 용인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사업수완이 있었던 박 회장은 2년여의 짧은 기간에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48년에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박 회장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50년대에 광주여객을 전라남도 최대의 여객운송업체로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이순정 여사의 내조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올해 95세인 이 여사는 아직도 광주여객을 운영하던 광주시 금남로 212번지에 거주하고 있다. 광주여객을 경영하던 당시 ‘안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에서 친척, 조카, 버스 차장과 정비공 등 50명의 식솔을 손수 챙길 정도로 남편의 사업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1984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도 이 여사는 900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매년 1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단체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 여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민간부문 최고 권위의 ‘적십자 박애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제2민항 선정 ‘제2 도약´ 광주여객을 업계 최고의 반열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이후 방적회사인 전남제사, 고려도자를 비롯해 금호타이어(전 삼양타이어)를 설립,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던 박 회장은 1972년 어느 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큰 아들 성용에게서 중대한 제안을 받는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 온 아들은 “경영성과를 높이고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박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같은 해 10월 10일 박성용 교수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해 지주회사인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박 회장은 또 박 교수를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73년 1월1일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이 초대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출범시켰다. 금호는 그룹체제 출범과 함께 계열사별로 경영관리체제를 정비했다. 금호실업은 장남인 성용, 광주고속은 2남인 정구, 금호타이어는 3남인 삼구, 삼화교통은 첫째 사위인 배영환에게 경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1984년 6월6일 타계한 박인천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박성용 부회장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강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자문역으로 그룹경영을 도와온 박 회장은 금호실업 사장과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 만에 2세 경영시대를 연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88년 정부로부터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되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계열사간 합병과 비수익 사업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박성용 회장은 1996년 4월 바로 아래 동생인 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 주었다. 형제간 친족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작금의 경영계에 교훈이 될 ‘형제간 화합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박정구 회장이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인천 회장은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성용, 정구, 삼구에 이어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부회장,5남 종구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등이다. 딸은 경애, 강자, 현주씨 등 3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혼맥은 박인천 회장이 생전에 아들딸의 혼사에 매우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화려한 혼맥을 맺고 있다. 박 회장은 직접 유력 집안에 줄을 넣어 “사돈을 맺자.”고 청한 적도 있을 만큼 자식들의 혼사를 중요시했다. 특히 호남재벌이면서도 정구, 삼구, 찬구 3형제를 모두 영남 유력 집안에 장가 보냈다. 3세들 결혼도 삼성,LG, 대우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화려한 혼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박 회장이 자식들의 결혼을 직접 챙기는 등 혼사를 중요시 여겼지만 유독 큰아들 성용은 부친의 뜻을 어기며 연애결혼을 강행했다. 큰 아들 성용은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미국인 마거릿 클라크를 만나 열애 끝에 1964년에 결혼했다. 박성용 회장은 클라크 여사와 1남 1녀를 뒀다. 장손녀 미영(39)씨는 아직 미혼으로 캐나다에서 머물며 불교 관련 일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재영(35)씨는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구문정(30)씨와 결혼해 1남을 두고 있다. 창업주의 큰딸인 경애(71)씨는 제헌의원 출신 배태성씨의 장남 배영환(72) 삼화고속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 슬하에 배정철·승현·동철·홍철 등 4형제를 낳았다. 2남인 정구 회장은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형일(59)씨를 배필로 맞았다. 김익기씨는 해태그룹의 창업주였던 박병규씨와 사돈관계이고, 박병규씨는 민병권 전 교통부 장관과 사돈이기도 하다. 정구 회장은 슬하에 은형·은경·은혜씨 등 세 딸과 외아들인 철완씨를 두고 있다. 세 딸은 모두 시집을 갔는데, 재계 유력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장녀 은형(35)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결혼했고, 은경(33)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차남인 장세홍(한국특수형강 이사)씨와,3녀 은혜(29)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재명(일진경금속 영업담당겸 누브인터내셔널 대표)씨와 혼인했다. 아들 철완(27)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미술관장으로 있는 2녀 강자(64)씨는 대한전자재료 회장인 강대균(64)씨와 결혼했다. 강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LSE대 출신인 아들 재원(25)씨와 지은과 지영 등 두 딸이 슬하에 있다. 3남인 삼구 회장의 부인 이경결씨는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 재무장관을 지낸 이정환씨의 둘째 딸이다. 이정환씨는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30)씨는 2003년 3월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현정(29)씨와 결혼했다. 세창씨는 지난 6월 MIT공대 MBA 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회사에 취직했고, 딸 세진씨는 유학 중에 있다.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위창남 전 광주투금 사장 딸인 위진영씨와 결혼했다. 장남 준경(27)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중동 관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 주형씨는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3녀 현주씨 삼성과 사돈 금호가(家)의 화려한 혼맥은 3녀인 현주(52)씨에서 절정을 이뤘다. 현주씨는 대상그룹 임창욱(56)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현주씨는 1998년 큰딸 세령(28)씨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37)와 결혼시켜 삼성가와 사돈 관계로 맺어졌다. 세령씨와 이 상무가 만나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인 현주씨와 홍라희 여사가 불교신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하게 지낸 게 계기가 됐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세령씨는 결혼과 함께 휴학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세령씨는 유학 중 2000년 장남 지호를 얻었고, 이듬해 귀국해 이건희 회장 부부와 함께 살면서 지난해에는 딸 원주를 낳았다. 둘째 딸 상민씨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유학 중이다. 특히 현주씨는 대상그룹의 계열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75%를 갖고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딸 상민씨를 2대 주주(17%)로 편입시켜 눈길을 끈다. 5남 종구(47)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은 ㈜삼흥복장 사장 이명선씨의 장녀 이계옥(4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건호, 도윤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씨는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별정직 2급)으로 공직을 시작했다.2002년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으로 자리를 잠시 옮겼다가 2003년부터 국무조정실 1급인 경제조정관으로 재직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을 펼치면서도 유독 종구씨만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점도 재계에 비상한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씨는 막내 아들이지만 경제를 전공한 전문가로서 그룹 일에 뜻을 두기보다는 공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으로 집안 내에서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벽안의 맏며느리’ 클라크 여사 ‘벽안(碧眼)의 재벌 며느리’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 여사는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재벌가에서 조용히 남편을 도우며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동서들을 챙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예일대 수학중 만나 교제 마거릿 클라크 여사는 남편인 박 전 명예회장을 1963년 미국 예일대에서 만났다. 그녀는 대학원 경제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 전 회장을 눈여겨봤다. 동양인이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에 항상 ‘제니스’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듣던 박 전 회장에 대한 호감이 컸다는 게 박 전 회장의 이종 사촌인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 등 친인척들의 전언이다. 박성용 전 회장도 미국인이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조신하게 생긴 클라크 여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커갈수록 고통이 더했다. 당시로선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밀양 박씨의 장손으로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번민의 세월을 보내던 박 전 회장은 아버지에게 클라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그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그러나 아버지 박인천 회장은 그 사진을 둘로 찢어서 봉투에 넣어 아들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그것이 박 회장이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자로 소문난 박 전 회장은 난생 처음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1964년 둘이서 법적 절차만을 갖춘 최소한의 결혼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사실상 ‘의절’ 상태에 들어갔다. 물론 박 회장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았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 박 회장은 큰 아들 성용이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때에 둘째딸 강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아들 집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예일대경제학박사를 받은 뒤 클리블랜드시에 있는 케이스 공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인천 회장은 클리블랜드 공항에 마중나온 파란 눈의 며느리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장손녀 미영씨를 맞닥뜨린 뒤 얼었던 마음이 녹아 내렸다. 미국인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정이 가는 인상을 가진 맏며느리를 보고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2년반 만에 연 것이다. ●자녀들에 한국식 교육 서구 고문은 “성용 형님이 결혼한 뒤 페기(마거릿 클라크의 애칭) 형수에게 집안의 법도 등 예절교육을 많이 시켰다.”면서 “아버님에게 며느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며느리가 지켜야할 예절에 대해 귀가 닳도록 얘기를 했다는 말을 형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클라크 여사는 미국인이지만 미영씨와 재영씨를 이화여고와 구정고까지 졸업시킨 뒤에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을 정도로 한국식 자녀교육을 고수했다. 그녀의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클라크 여사는 박 전 회장 사후에 미국 친정에 기거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미영씨와 재영씨를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미국에서 달려와 직접 챙기는 등 아직도 맏며느리로서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인천 회장도 한국 집안에 시집온 뒤로 별 탈 없이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는 미국 며느리에 대해 뒤늦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작한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물에서 한 지인에게 “우리 큰 자부(며느리)가 미국 여자입니다. 나도 잘 이해를 하고 또 역시나 데리고 있어 보니까 똑같아요. 한국 며느리나 외국 며느리나. 그리고 이해심도 있어요. 자기들끼리 좋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창업주 父子 ‘금연 전도사’ ▲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기리기 위해 용인 인재개발원에 전시된 ‘1933년형 포드 딜럭스세단 5인승’ 옆에서 박삼구(왼쪽) 회장과 박찬구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연운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986년 금연 캠페인을 시작해 1991년부터는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일선 영업장에까지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이런 금연 노력은 창업주와 2세 경영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박인천 회장은 1938년 심한 폐병을 앓아 2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지금이야 폐병이 심한 병이 아니지만 당시 폐병을 앓는 환자는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나갔다. 경찰이었던 박 회장은 요양을 위해 순천경찰서에서 보성경찰서로 직장을 옮기고, 몸에 좋다는 각종 약과 치료를 받았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결국 경찰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목포에서 개업 중이던 김보형이라는 한의사로부터 1년 동안 녹용을 복용한 이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이후 장수를 누려 84세에 별세했다. 박성용 명예회장도 폐가 좋지 않았다.1985년까지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러나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여 흡연운동을 전사적으로 전개했다. 1986년 8월 박 회장을 비롯한 142명의 임직원들이 금연운동에 동참해 매일 담뱃값 대신 푼돈을 모아 만든 ‘금호건강복지기금’을 조성해 금연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던 그룹 본사 사옥인 아시아나 빌딩을 포함한 전 사업장에 완전금연을 실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이런 공로로 1991년 8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금연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딱딱한 단화를 신지 못하고 스폰지 단화나 등산화 등을 신고 다녔다. 박정구 회장도 폐병으로 2년여 투병생활을 했다.2001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에서 폐기종 치료를 받아 한때 건강을 되찾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나 2002년 7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그룹 관계자는 “창업주를 비롯한 2세 경영인들이 공교롭게도 폐가 좋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가족병이라기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종건 SK그룹 선대회장과 최종현 회장, 양회문 대신증권 회장 등이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시청태극기’ 경쟁률 12대1

    서울시의 광복 60주년 기념행사 태극기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2일까지 인터넷을 통해 ‘광복 60주년 태극기’(3600장) 배부 신청을 받은 결과 모두 4만 2858명이 신청했다. 이 태극기는 지난 8월10일부터 21일까지 시청본관 전면을 뒤덮었던 것이다. 당초 무료 배부하려던 계획이 선관위의 반대로 유료 판매(장당 1000원)로 전환되면서 신청자가 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무려 4만여명의 신청이 쇄도해 경쟁률은 12대1에 달했다. 신청자 중에는 호주, 네덜란드, 미국, 뉴질랜드 등지의 재외동포와 시내 호텔을 주소로 태극기를 신청한 일본인 등 이색적인 사람들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2003년부터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강북구에서는 500명의 구민들이 한꺼번에 신청하기도 했다. 인터넷 대신 장문의 편지로 ‘열의’를 전해온 시민들도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모(65)씨는 “농촌에 사는 노인이다보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없어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 집에 걸어놓고 보려하니 한 장만 보내달라.”며 태극기 값 1000원과 배송료 1000원을 동봉했다. 군인으로 9년간 재직했다는 이모(64)씨는 붓글씨로 쓴 편지에서 “집에 항상 태극기를 걸어 놓는데 몇 달간 태극기를 바꾸지 못해 때가 묻고 실밥이 나왔다. 컴맹이라 서면으로 신청한다.”며 역시 태극기 값 1000원을 함께 보내왔다. 시는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8일 서울시 홈페이지(www.seoul.go.kr)에 추첨 결과를 공지하고 태극기는 기념문구와 사진이 새겨진 케이스에 담아 우편 발송할 예정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1만원의 작은 정성 기쁨·감동 무한대

    1만원의 작은 정성 기쁨·감동 무한대

    ‘만원의 행복’ 비싸고 큰 선물이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싸고 작지만 꼭 필요한 선물이 기쁨을 선사한다. 추석을 맞아 가격은 1만원 안팎이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상품을 모아봤다. 올해는 가벼운 주머니를 탓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자. ●아로마 금연 코치 휴대전화줄 세트(G마켓 1만 2500원) 아로마 향이 콧속으로 솔솔 들어와 흡연과 식욕 억제 효과가 있다. 금연과 다이어트를 결심한 가족에게 주면 좋을 듯. 휴대전화줄로 사용하도록 예쁜 케이스도 넣었다. 아로마는 유칼립투스, 라벤더, 그레이프룻 등 3종 세트. 아로마 향을 스포이드에 담아 코치 양끝에 주입한 후 코에 걸면 된다. 거의 표시가 나지 않고, 한번 주입하면 1∼2일 지속된다. ●휴대용돋보기+7일 막대 약통(인터파크 9900원) 가로 6㎝×세로 9.5㎝×폭 0.2㎝ 미니 사이즈로 지갑이나 수첩에 간편하게 넣고 다닐 수 있는 직사각형 돋보기.3배로 확대된다. 일주일 용 약을 담을 수 있는 막대 약통은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도록 도와주는 제품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릴 센스있는 선물이다. ●엄지발가락 교정 액세서리(옥션 9900원) 엄지발가락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불편한 친척에게 양말을 벗기고 교정기구를 끼워 주자. 사용이 간편하고 세척이 쉽다. 인체 친화적인 실리콘으로 만들어 신발을 신어도 불편하지 않다. 양쪽 발에 사용하도록 2개를 넣었다. ●다용도 집게 가제트팔(옥션 3300원) 허리가 불편한 노인들이 물건을 집기란 만만치 않다. 가제트팔은 간단하지만 불편한 일을 해결해보자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깨진 유리조각을 주울 때나, 장롱·침대 밑에 들어간 물건을 꺼낼 때, 애완동물 배설물을 치울 때, 쓰레기를 주울 때도 유용하다. ●종합 양갱 선물세트(인터파크 1만 1400원) 추석과 어울리는 경제적 선물. 전국 우수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인삼양갱 2개, 호박양갱 2개, 녹차양갱 2개, 밤양갱 2개, 팥양갱 2개 등 모두 10개가 고급스럽게 개별 포장돼 있다. ●호박 젤리(옥션 9900원) 국산 호박을 사용해서 만든 젤리. 장거리 운전을 하거나 밤늦게 공부하는 이들에게 선물하면 좋다. 젤리가 260개 남짓 들어있다. ●꿀분말(인터파크 1만 2500원) 건강식을 선호하는 요즘 유럽에선 설탕 대신 빵, 아이스크림, 차, 커피에 꿀분말을 넣어 먹는다. 세계 두번째로 우리나라가 꿀을 분말화하는데 성공했다. 모든 음식에 설탕 대신 꿀분말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한국양봉협회가 엄선한 꿀을 사용, 냉동·건조시켜 자연 벌꿀의 맛, 영양, 향을 그대로 담았다. 홍삼꿀분말(250g)은 1만 5500원. ●무농약 혼합 9곡(초록마을 1만 1000원) 무농약으로 재배한 잡곡만 모았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기준량의 3분의1 이하로 줄여 농사졌다. 콩은 파쇄해 껍질을 제거, 아이들도 좋아한다. 흑미, 검은콩, 약콩과 씨눈이 살아있는 현미찹쌀, 보리, 차조 등이 담겼다. ●아세로라플러스 비티민C300(비타민플라자 9900원) 아세로라와 로즈힙 성분을 원료로 한 100% 자연 비타민으로 1정에 300㎎의 비타민C가 함유돼 있다.NBTY사의 아메리칸 헬스 브랜드.2만 6000원이던 종전 가격에서 특가로 판매한다. 맛이 좋아 어린이들도 손쉽게 복용한다. ※ 상품을 살수 있는곳 G마켓 www.gmarket.co.kr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옥션 www.auction.co.kr 초록마을 www.hanifood.co.kr 비타민플라자 www.vitaminplaza.co.kr
  • 사랑과 증오와 위장의 이빨자국

    사랑과 증오와 위장의 이빨자국

      한강나루터 여인 피살사건에서는 이빨자국이 범인을 잡았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상 처음 있은「케이스」다. 이 이빨 흔적의 감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이 문국진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과장)이다. 그가 현장과 멀리 떨어진 실험실에서 결정적 증거를 잡을 때까지의 법의학적「추리」의 고충담을 들어 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는 것은 사랑·증오·위장할 때 문국진 박사 얘기를 들으면 사람이 사람을 깨물 경우에는 세 가지 상황을 상정(想定)할 수가 있다. 첫째가 느껴움의 극치에서 상대방을 애무(愛撫)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깨뭄. 둘째가 증오심에서 가해지는 사정없는 물어뜯음. 셋째가 지능범이 흔히 획책하는 방법으로 위장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남기는 엉뚱한 교상(咬傷). 법의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세 가지 경우에 있어서 물린 사람의 몸에 나타나는 자국이 모두 다르다. 첫째의 경우, 앞이빨 자국이 남는다. 둘째의 경우, 맨 앞이빨에서 좌우로 세 번째 있는 불쑥 솟아오른 대치(大齒)의 자국이 깊게 파인다. 셋째의 경우, 앞뒤 이빨의 차이 없이 균등한 자국이 난다. 지난해 12월 28일 사건발생이 보고되었을 때 현장에 급거 출동한 과학수사진은 가장 귀중하면서도 유일한 증거를 채취했다. 피살된 이(李)여인의 턱과 젖가슴과, 그리고 국부의 세 군데의 뜯은 흔적. 그래서 범인을 두고 변태성욕자설까지 세워졌다. 이 세 가지 색다른 증거물을 놓고 문박사의 추리가 시작되었다. 세 자국의 검증 결과는 애무를 위한 가벼운 교상도 아니었다. 미움에 복받친 잔인한 물어뜯음도 아니었다. 마지막 셋째 번의 경우였다. 자국이 균등하게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문 사람이 냉정한 상태에서 제3의 목적을 위해 저질렀다는 결론 밖에 얻을 수 없었다. 위장을 위한 교상이다. 다음 문박사는 사람 몸에 교상이 남을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를 법의학의 연구실적의 여러 실례에서 뽑아내어 보았다. 물린 상처의 정도 보면 생전이냐 사후냐 알아 첫째 피해자가 물리는 경우. 여기에도 A-피해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물리는 경우와 B-죽은 상태에서 물리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다. 둘째 가해자가 물리는 경우다. 이번 사건은 둘째 경우는 아니다. 피해자가 물리는 경우에도 A와 B에 따라서 자국이 나타남이 달라진다. 살아 있을 때에 물리면 아프다. 피해자는 얼른 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오래오래 남는 깊은 자국이 나지 않는다. 하물며 이여인처럼 턱, 젖가슴, 국부로 상당히 거리가 먼, 그리고 여자로서는 결정적인 곳을 물어 뜯기면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또 살아 있으면서 물렸다면 그 직후 곧 피살되었다고 해도 교상이 상당히 나아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여인은 사후에 물어뜯겼다. 그러기에 그 상처가 경직(硬直)과 함께 뚜렷이 남게 되었다. 범인은 이여인의 숨을 먼저 거두게 한 후 위장을 위해 시체에 이빨 흔적을 낸 것이다. 이러한 3단논법으로 문박사의 결론은 내려졌다. 이빨은 지문(指紋)과 같이 만인부동(萬人不同)이고 종생불변(終生不變). 이번 경우는 용의자 치형(齒型) 피살자의 상흔(傷痕)과 꼭 맞아 피살체에서 떠낸 이빨 흔적과 똑 같은 모양의 이빨을 가진 사람이 범인이다. 경찰에 연행된 용의자들의 이빨 모양을 모조리 석고에 따서 흔적과 대조했다. 연말연시의 휴가도 다 날리고 실험실에서 살았다. 문과장뿐만 아니라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직원이 총동원 되었다. 꼭 열흘 동안 밤샘이 계속되었다. 문박사에게는 뚜렷한 증거를 살리지 못한다면 법의학이 운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또 이빨자국이 범인을 체포한다면 세계법의학계에 새로운 보괒료도 되므로 법의학자로서의 야심도 작용했다. 교상흔적과 범인의 이빨형태가 꼭 같아서 영락없이 범인을 잡은 이번 같은 예는 세계에서도 10년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하는 통계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상흔적이 단서가 되어 범인이 체포된 예가 있기는 있었지만 이번 경우와는 달랐다. 7년 전 뚝섬에서 여인 타살(打殺)사건이 발생했었다. 용의자로 피살자의 애인인 벽돌공장 직공이 연행되었다. 증거가 없었다. 다만 용의자는 엄지손가락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용의자는 벽돌이 떨어져서 다쳤다고 우겼다.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는『벽돌에 사람 이빨이 나 있으면 그러한 형태의 상처가 날 수 있다』였다. 용의자는 이 바람에 순순히 자백을 했다가 그 손가락의 상처는 피해자가 죽기직전 가해자를 문 흔적이었던 것이다. 애매한 용의자 풀어줄 때 법의학 하는 보람을 느껴 이 경우는 이번처럼 흔적과 이빨을 대조하지 않고 자백을 얻은 예다. 문박사는 1월 6일 이미 결론을 얻었단다. 바로 남편인 최대연(崔大連)(51)의 이빨과 그 흔적이 일치한다는 사실. 그러나 문박사는 하루 24시간을 꼬박 고민 속에서 지냈다. 『원래 법의학을 하게 된 것은 개인의 병을 고치기에 앞서 인권옹호를 통해 사회의 병을 고치자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가 혹시 잘못되어 생사람을 잡는 결과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데이터」를 되풀이 검토한 뒤「법의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7일에 결과를 일선 수사진에 통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용의자였던 최대연은 횡설수설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에까지 걸어 보았으나 거기서도 범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 용의자가 교상 흔적과 이빨 모양이 일치한다는 과학수사의 결과에 그만 자백을 하고 말았다. 문박사의 얘기론 이번 이빨감정의 성공으로 우리나라에 흔한 밤중에 강도사건도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우리나라의 도적들은 대체로 통금시간 전에 목적한 입에 잠입, 해제 직전에 일을 해치우고 도망을 친다. 그들은 잠복하는 2~3시간 사이에 음식들, 특히 과일들을 먹는단다. 그러니까 먹다 남은 것이 그 자리에 버려지기가 일쑤. 그 유기물(遺棄物)에서 범인의 이빨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이빨자국에도 눈독을 들여야 한다. 외국에서는 이빨자국이 범인체포에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탓으로 이빨흔적만 연구하는 법의학이라는 새 분야가 치의학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된 학문의 하나로 확립되어 있다. 그만큼 이빨자국이 중시되고 있는 셈. 문박사는 서울의대를 졸업, 계속 과학수사연구소에 근무하다가 64년에「급사혈(急瀉血)이 조직비만세포(組織肥滿細胞)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법의학 논문으로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얻었다. 동기생들 중에는 돈을 번 사람도 상당히 많으나『자기는 3급 갑류의 의무지정으로 봉급은 본봉 1만 4천원「플러스」수당 1만원의 박봉 공무원』이란다. 실험실에서 일선의 수사를 돕는, 햇빛을 받지 못하는 법의학도이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애매한 용의자가 그의 감정결과로 풀려 나오면 다른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 것 이상의 기쁨에 젖는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문명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가를 알려면 그 나라의 법의학의 발달도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 선데이서울 69년 1/19 제2권 제3호 통권17호 ]
  • 파견나갔던 국장들 ‘금의환향’

    말많던 재정경제부의 후속인사가 마무리됐다. 이번에는 부처교류나 외부에 파견나갔던 국장들이 1급으로 ‘금의환향’한 게 특색이다. 재경부는 이르면 30일 1급과 2∼3급 국장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조달청장으로 나간 진동수 전 국제업무정책관의 후임에는 김성진(행시 19회)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이 공모를 거쳐 확정됐다. 청와대로 간 윤대희 정책홍보관리실장 자리에는 장태평(20회) 농림부 농업구조정책국장이 진통끝에 낙점됐다. 두 자리 모두 1급이다. 김성진 전문위원의 경우 안팎의 후보군에서 국제금융업무를 직접 경험한, 유일한 후보라는 점이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태평 국장의 경우 세제실 출신으로는 드물게, 정책홍보관리실장에 올랐다. 1급 대우인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에는 김경호(21회) 현 홍보관리관이 승진하는 케이스로 내정됐다.2급 자리인 후임 홍보관리관에는 김교식(23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발탁됐다. 김 국장은 옛 재정경제원 시절 공보과장을 지냈다. 이종갑(20회) 교육인적자원부 인적관리국장이 공자위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교육부에서 1급 승진이 거론됐던 이 국장이 사무국장으로 내정된 것은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조정국에 신설되는 3급 규제혁신심의관에는 김영과(22회) 전 종합정책과장으로 정해졌다. 이호철(23회) 전 정책조정총괄과장은 부처교류 차원에서 3급인 농림부 투융자평가통계관으로 이동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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