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집·걸그룹·카페… 金대리·李과장이 모아모아 키운다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지하. 지난달 문을 연 수제버거 전문점 ‘바스버거’ 매장 입구에는 눈에 띄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만기상환 수익률 17%’라는 큼지막한 글씨 아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업체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신규 매장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차 펀딩에서 한 달도 안 돼 1800만원가량을 모은 이 업체는 약간의 시행착오로 펀딩을 중단했지만 이달 말 최소투자금액을 낮추고 더 좋은 조건을 걸어 2차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낯선 크라우드펀딩이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다. 벤처기업 투자에서 출발한 크라우드펀딩이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 음식료업, 영화제작 지원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금융 또는 정보기술(IT)산업에 밝은 투자자들의 전유물이 ‘샐러리맨들도 도전해 볼 만한’ 투자처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크라우드펀딩 업체 와디즈는 최근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소재로 한 프로였다. 여기서 국내 수제자동차 제조업체 모헤닉게라지스 등을 소개해 호응을 얻었다.
크라우드펀딩은 군중(Crowd)과 자금 조달(Funding)이 결합된 말이다. 말 그대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의미다. 종류에 따라 후원형, 기부형, 대출형, 증권형으로 나뉜다. 2005년 영국의 조파닷컴이 시작한 P2P(개인 대 개인) 펀딩이 시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용어를 처음 쓴 것은 2008년 미국에서 설립된 인디고고다.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크라우드펀딩은 우리나라에서도 후원·기부·대출형을 시작으로 정착됐고 지난 1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도입됐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개인 투자자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업체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연간 최대 500만원(업체당 2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는 제도다.
바스버거의 서경원(33) 재무이사는 “크라우드펀딩을 한다는 자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입소문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펀딩 입간판을 내건 이유를 설명했다. 회계사 출신인 서씨를 비롯해 투자업계에서 일했던 동업자들이라 새로운 자금 조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1년 6개월 만기 때 최대 17% 수익률을 보장할까. 비밀은 쿠폰에 있었다. 실제 현금으로 돌려받는 만기상환 수익률은 9%이지만 100만원 이상을 투자하면 8만원 상당의 식사쿠폰을 주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크라우드펀딩 업체 메이크스타는 지난달 걸그룹 라붐의 뮤직비디오 제작비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두 달 동안 목표금액 1000만원의 3배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3만원을 낸 후원자는 사인CD, 음원파일, 후원증서 등을 받을 수 있고 2만원 더 내면 포토카드가 추가됐다. 100만원을 내면 라붐 멤버들과의 식사권, 쇼케이스 사진 촬영권이 주어졌다. 이런 방식의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연이어 성공했고 업체 측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에만 한정되지 않고 기부 문화 확산에도 기여한다. 회사원 김미경(29)씨는 지난 4월 16일 오마이컴퍼니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주문했던 세월호 기억팔찌를 이달 초 배송받았다. 김씨는 “세월호 2주년 날짜를 기사를 보고서야 알게 된 내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팔찌를 구입했다”며 “팔찌를 볼 때마다 (그날을) 기억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억팔찌를 계기로 크라우드펀딩을 처음 알게 됐다는 김씨는 “앞으로도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리서치회사 매솔루션에 따르면 전 세계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지난해 344억 달러(약 40조 6200억원)를 기록하며 2014년(162억 달러)보다 2배 이상 급성장했다. 2012년(27억 달러)과 비교하면 불과 3년 만에 13배 가까이 시장이 커졌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성장률은 210%로 예상돼 유럽(99%), 북미(82%) 등을 크게 앞질렀다. 전체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북미가 172억 달러로 아시아의 105억 달러보다 70%가량 크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7년 머니옥션이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으로 문을 연 뒤 꾸준히 늘어난 크라우드펀딩 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40개가 넘는다. 국내 업체들의 펀딩 총액을 집계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와디즈의 경우 증권형, 후원형 등을 모두 합친 펀딩 규모가 지난해 40억원가량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규모가 커져 지금은 매달 15억~20억원 규모의 펀딩을 하고 있다고 밝힐 만큼 급성장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초기 단계라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지난해 11월엔 크라우드펀딩을 사칭해 불법으로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모집한 업체가 금융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중개업체들 중 오래 남을 기업을 고르는 능력도 필요하다. 와디즈 관계자는 “크라우드펀딩은 IT에서 출발한 금융업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의 완성도를 봐야 한다”며 “홈페이지 등을 꼼꼼히 따져 보고 평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