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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가 2~4세 내년 승진 기상도 ‘흐림’

    재벌가 2~4세 내년 승진 기상도 ‘흐림’

    연말 연시 인사철을 앞두고 재벌가(家) 2∼4세들의 승진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임원 승진에 묻어 2∼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거나 핵심 요직에 속속 앉혔다. 그러나 내년 초 정기 인사에선 좀 다를 모양이다. 대기업 상당수가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승진 인사보다 문책성 인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재계발(發) 악재들이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2∼4세들을 승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재벌가는 경영 수업과 후계 승계 등의 일정에 맞춰 과감한 승진이나 발탁 인사가 예상된다. 연말 연시 인사철을 앞두고 재벌가(家) 2∼4세들의 승진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약속이나 한 듯 대규모 임원 승진에 묻어 2∼4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거나 핵심 요직에 속속 앉혔다. 그러나 내년 초 정기 인사에선 좀 다를 모양이다. 대기업 상당수가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승진 인사보다 문책성 인사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재계발(發) 악재들이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어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2∼4세들을 승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재벌가는 경영 수업과 후계 승계 등의 일정에 맞춰 과감한 승진이나 발탁 인사가 예상된다. ●눈길끄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내년 정기 인사에서 승진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가 재계의 주요 관심사로 꼽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상무와 관련된 악재가 적지 않아 “힘들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많지만,“승진은 원칙대로 갈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올해로 상무 3년차인 이 상무는 승진 조건만큼은 충분히 갖췄다. 소니와 합작사인 ‘S­LCD’ 등기이사로 활동하며, 높은 인사고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정기 인사에선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는 승진했지만 이 상무만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승진 대상에서 빠졌다. 재계에서 또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SK의 최씨가.SK는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고, 경영 실적도 좋아 내년 정기인사에서 대규모 승진이 예상된다. 더구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최재원 SK E&S 부회장이 최근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최 부사장은 SK가의 2세 가운데 유일하게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 않아 내년 인사에선 최고경영자(CEO) 승진 관측이 나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물러났던 표 전 사장의 복귀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SK측은 “표 전 사장이 SK 복귀보다 개인사업 추진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복귀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했다. 보폭을 넓혀가는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 가능성도 눈길을 끈다. 재계에선 경영수업을 더 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부회장 승진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간 만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허창수 GS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대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과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팀장,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 과장 등도 눈길끄는 2세들이다. ●2세 승진 ‘속도조절?’ 오너가의 승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두산 박씨가의 4세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두산그룹이 정기 인사보다 수시 인사 스타일이지만 아직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아 승진은커녕 오너가가 한동안 나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LG 구씨일가의 승진도 적을 것으로 점쳐진다. 우선 그룹 실적이 지난해보다 좋지 않은 데다 구씨가 가운데 승진 대상이 별로 없다. 구본무 LG 회장의 양자인 광모씨는 아직 학생 신분이며,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도 승진한 지 2년밖에 안됐다. 또 고 구자승 LG상사 사장의 본걸-본순-본진 3형제도 상사내 패션 부문을 맡은 지 1년밖에 안됐다. 올 초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셋째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조카인 정일선 BNG스틸 사장 등이 잇따라 CEO로 승진한 현대차그룹은 내년 인사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부고]

    ●정진규(법무법인 대륙 대표)진만(SKM 감사)진천(흥우산업 대표)진흥(정도케미칼 〃)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2)3410-6915,6925●정운조(전 한국산업은행 부장)씨 상배 병국(연우상사 대표)씨 모친상 전하진(인케코퍼레이션 대표)장태익(포토마인 〃)유병우(남촌병원 내과 과장)씨 빙모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박태양(뉴질랜드 교육문화원 회장)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1 ●노중현(사업)맹호(지엔쎄븐 부사장)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010-2239●안성열(공무원)정열(삼성화재 팀장)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37●김일두(명일여고 교사)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05분 (02)3010-2253●강득룡(강화병원 원장)씨 별세 현석(단국대 교수)씨 부친상 송영태(두란노 대표)김주회(사업)박기준(KDA 소장)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010-2238●이남형(자영업)대형(전 주택관리공단 상임감사)두형(대한지적공사 대구경북본부 총무팀장)상형(대한주택공사 고객지원팀장)씨 부친상 박종석(자영업)윤종수(상주 성신여중 교무부장)씨 빙부상 16일 대구 모레아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7시 (053)813-5961●조내서(전 한국일보 이사)씨 별세 철현(바로종합건축 대표)민현(뉴저지 메이플우드성당 본당신부)세현(현진어페럴 차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2
  • 기업들 “주력업종 바꿔 바꿔”

    기업들 “주력업종 바꿔 바꿔”

    ‘기업들의 변신은 무죄?’업계에 ‘탈 전문화 바람’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의 주력사업으로 키워오던 부문들을 과감히 접거나 대폭 축소하는 등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영광의 발판이 됐던 과거의 주력 부문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감히 철수하는 곳도 적지 않다. 최근들어 기업들이 회사 구조 개편작업에 속속 나서는 것은 업계에서 ‘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주력 부문도 과감히 접는다. 업계의 이런 대변신에 한화그룹이 정점에 서 있다. 한화는 지난 52년에 한국화약으로 시작해 재계 8대 그룹으로 커왔지만 지난달 회사의 모태였던 다이너마이트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까지 인천공장을 완전 이전하고 다이너마이트는 중국에서 수입할 예정이다. 보은 공장에서는 고부가가치의 방위산업 품목에만 주력할 방침이다.SK케미칼은 이달 초 석유화학 사업부문을 완전히 떼어내 별도 회사인 SK석유화학으로 독립시킬 계획이다. 앞으로 SK석유화학은 폴리에스터 원료인 TPA생산을 전담하고 SK케미칼은 수익성이 높은 정밀화학과 제약부문을 위주로 회사를 재편하게 된다. ●돈만 된다면…수익 다각화에 나서 지난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대우차판매㈜는 수익다각화 사업의 일환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위한 기업문화 개선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그동안 대우차 위주로 판매해 오던 회사의 사업구조를 건설부문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형국이다. 아파트 브랜드 ‘이안’의 강세로 인해 건설부문 매출이 연간 5000억원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자동차판매부문 매출액이 1조 509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억 9500만원 감소했다. 반면 건설부문은 상반기에 2789억원의 매출에 25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회사가 보유 중인 인천 송도 부지 30만평이 개발될 때 생길 수 있는 차익 발생에도 높은 기대를 걸고 있는 등 건설업체로 탈바꿈하는 분위기다. 대우차판매는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매출을 현재 전체의 80%에서 60% 수준으로 낮추고 회사 이름도 건설부문을 아우를 수 있는 명칭으로 변경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LG상사는 74년 반도패션으로 시작한 패션부문을 분리하는 작업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LG상사의 매출액 6조 5119억원 중 패션부문이 5144억원을 차지, 전체 매출액의 7.9%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LG상사는 지난 7월 자진공시를 통해 패션부문의 분리를 검토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제일모직도 저수익사업인 직물부문의 인력을 조정하고 생산규모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또 패션부문도 브랜드 고급화전략을 구사해 중저가제품 비중을 축소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회사의 주력부문이었던 계열사들을 정리하거나 비중을 낮추는 작업은 수익다각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회사 분할로 인한 자본유치, 인수합병 등을 통한 구조개편작업으로 인해 미래에 대비한 유연한 경영전략을 선택하기가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활황증시 오늘의 종목] SK케미칼

    [활황증시 오늘의 종목] SK케미칼

    SK케미칼(006120)은 생명과학 부문의 성장성과 지주회사로서의 자산가치가 부각되는 종목이다. SK케미칼은 SK그룹 계열이면서 9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다. 지난 4월 SK제약을 흡수해 생명과학 부문의 성장엔진을 장착했다. 생명과학 부문인 동신제약과 인투젠의 매출액은 지난해 849억원에서 올해에는 41.3% 증가한 12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골력계 약품인 트라스트,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 등이 꾸준한 매출을 보이기 때문이다. 발기부전치료제, 항궤양제, 백신제 등 개발도 예정돼 있다. 폴리에스테르 섬유원료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부문은 대기업 고정 거래처의 비중이 절반을 넘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 정밀화학 부문도 오는 2007년까지 연평균 10%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수원시 정자동의 10만평 공장부지는 용도 변경을 통해 매각을 할 경우 대규모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보유한 SK㈜ 300만주를 매각하면 SK케미칼은 순차입 감소 등을 통해 기업가치가 5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26일까지 자사주 100만주 취득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게 되면 유통 주식수는 5% 줄어든다.SK케미칼의 지분 가운데 최태원 회장(6.84%) 등 SK 관계인 지분은 30%를 웃돈다. 현대증권은 이날 SK케미칼의 6개월 목표 주가를 2만 1300원으로 제시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2만 6000원까지 높였다. 도움말 현대증권 김태형 연구원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떠나보자 영암호 밤 갈치낚시

    떠나보자 영암호 밤 갈치낚시

    하얀 달빛 아래 꿈틀거리는 은빛 갈치를 본 적이 있나요. 시커먼 밤바다를 솟구쳐 오르는 그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 지금 전남 영암방조제 주변은 갈치낚시가 제철을 만났습니다. 밤마다 불을 밝힌 배들이 놀라운 신세계를 연출하고 있지요. 씨알 굵은 갈치 떼들이 전율을 느끼게 하는 손맛을 선사합니다. 갈치낚시의 또 다른 매력은 배에서 갓 건져올린 갈치새끼인 풀치를 뼈째 썰어먹는 세코시이지요.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 다른 회와는 비교도 하지 마세요. 특히 갈치낚시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저’랍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 이색적인 갈치낚시는 어때요? 글·사진 영암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9~10월이 제철이에요 “아∼따 먹갈치 한번 드셔보시랑께.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이 그만이여.”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높다.’는 속담은 갈치의 맛과 영양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갈치 중에서 최고로 치는 먹갈치를 찾아 전남 영암방조제로 떠났다. 달빛 은은한 영암방조제 주변은 불을 잔뜩 밝힌 배들로 마치 수를 놓은 것 같았다. 9월 초부터 시작된 갈치낚시는 이맘때부터 10월 중순까지 절정이다. 씨알이 굵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영암방조제 일대가 갈치낚시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영산강하구언이 만들어지고 1996년 영암호방조제와 금호방조제가 잇따라 선을 보이면서부터다. 이곳은 수심이 적당하고 파도가 없는데다 연안에 먹이가 풍부해 풀치(갈치새끼)들이 몸집을 키우고 바다로 나가는 안식처로 제격이다. 때문에 갈치떼가 몰려든다. 이렇게 이곳에서 몸집을 키운 갈치들은 10월 말부터 무리를 지어 먼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11월초쯤 되면 갈치낚시철이 끝난다. 본격적인 손맛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금호방조제 앞으로 나갔다. 방조제보다 배를 타는 것이 훨씬 갈치를 많이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갈치는 이렇게 낚아요 오후 4시. 벌써 많은 사람들이 갈치를 낚고 있었다.“많이 하셨습니까.”하는 물음에 고창에서 온 조성식(48·자영업)씨가 아이스박스를 열어 보여준다. 아이스박스 안에 빼곡히 들어찬 은빛 갈치는 시장에서 얼음을 베고 누운 녀석들과는 색깔부터 다르다. 햇살에 비쳐 정말 은덩어리같다. “아침 10시부터 낚기 시작했는데 벌써 40마리 정도 잡았어요. 손맛이 끝내주는데. 어어∼ 입질이 또 오네.” 황급히 낚싯대를 잡는 조씨는 갈치낚시가 이번이 두번째인 초보란다. “왔어요!”라며 신환주(해남황산초 6년)군이 낚싯대를 잡아챈다. 검은 해수면에서 요동치며 올라오는 은빛 갈치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냉동빙어를 미끼로 끼우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갈치낚시는 찌를 쓰지 않고 손의 감각만으로 고기를 낚는다. 정말 신기하게 낚싯대 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갈치들이 입질을 한다. 손에도 뭔가 기별이 느껴졌다. 낚싯대를 챘더니 갈치는 없고 미끼만 없어졌다. 갈치도 초보라고 무시하는지 이렇게 몇 번 ‘농락’을 당했다. 옆에 있는 조화진(50·회사원)씨가 안쓰러웠던지 한수 가르쳐준다.“갈치낚시는 민물낚시와 달라 챔질을 천천히 해야 합니다. 갈치들이 입질을 할 때 낚싯대 끝이 아래위로 흔들리며 신호를 줍니다. 보통 이때 채면 100% 허탕입니다. 조금 기다리면 갈치가 완전히 미끼를 물고 아래로 내려갈 때 낚싯대가 쑤∼욱 달려갑니다. 이때가 바로 챔질 포인트이지요.” 갈치는 매우 조심성이 많은 물고기로 한번에 미끼를 덥석 무는 경우가 없다. 새가 먹이를 쪼듯 조금씩 입으로 먹이를 탐색하다 안전하다 싶으면 무는 습성이 있다. 또한 갈치는 서서 먹이를 공격하므로 미끼를 세워서 바늘에 끼면 입질을 유도할 수 있다. 갈치가 서서 먹이를 공격할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니까 낚시바늘은 보통 바닥에서 1∼2m정도 위에 두는 것이 좋다. 미끼를 다시 끼우고 바다에 드리웠다. 여기저기서 연방 ‘왔어’라는 외침이 터진다. ●손맛, 입맛 끝내줘요 “형부 한잔하세요.”,“정서방 이리와, 한잔 받아.”옆 배에서 들리는 행복한 목소리에 이끌려 건너가니 먹자판이 벌어졌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태신(66)씨 가족이 벌초를 마치고 이씨의 동생 내외, 사위, 딸까지 모두 9명이 단체로 낚시를 왔다.“정말 입에서 살살 녹아.”라며 인심 좋게 갈치 세코시를 권한다. “낚시는 처음 하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그리고 너무 쉽고요. 벌써 3마리나 잡았어요. 물론 모두 뱃속에 있지만요.” 이혜경(29)씨가 “저 아름다운 은빛 물결 좀 봐.”라며 남편 정귀택(29)씨를 부른다. 갈치낚시는 낚시라기보다는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레저다. 간단한 채비로 손맛도 보고 갈치회를 먹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오순도순 배에 모여 앉아 잡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이씨 일가는 정말 즐거워보였다. ●물반 갈치반 어둠이 슬슬 내려앉기 시작하자 배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야행성인 갈치낚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낚싯줄에 케미라이트를 몇 개 달아 내렸다. 바로 입질이 온다. 낚싯대를 잡았다. 조씨의 말처럼 갈치가 미끼를 물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느껴진다. 녀석이 덥썩 물 때까지 기다렸다. 정말 낚싯대가 쑤욱 내려간다. 이때 바로 챘다. 그리고 릴을 감았다. 시커먼 물아래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갈치가 요동을 친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먹갈치.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명검처럼 날카롭고 아름답다.1시간 동안 무려 5마리를 낚았다. 정말 재미가 쏠쏠하다. 오광석(61·내형항운 대표)씨는 “저는 매주 주말마다 여기에 옵니다. 갈치를 잡아서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 놓고 1년 내내 먹습니다. 갈치국, 조림, 튀김 정말 사서 먹는 갈치와 비교가 안 됩니다.”라며 갈치낚시 자랑을 늘어놓는다. ●갈치의 명품 목포먹갈치 지느러미부터 몸통 위쪽이 먹물 묻은 것처럼 검정물이 들어있어 먹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주은갈치가 최고 명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목포먹갈치를 최고로 친다. 먹갈치는 기름이 많아 구울 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를 필요가 없을 정도다. 또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갈치는 우리나라 서해 남부부터 동해 남부까지 방파제나 갯바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종이다. 배낚시는 전남 영암호가 가장 유명하고 마산 원전과 부산 송정, 여수 돌산도 일대에서도 할 수 있다. ●갈치요리 맛보세요 목포에는 먹갈치요리를 잘 하는 집이 많다. 특히 갈치조림은 시래기나 고구마 줄기와 함께 조리면 더욱 맛이 난다. 서울식당(061-282-5227)은 먹갈치만을 고집하는 집으로 주로 토박이들이 찾는다. 하당고기잡이(061-282-2092), 한보식당(061-244-1267)도 손에 꼽히는 맛집이다. 서울에서 갈치요리를 잘하는 집으로는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 있는 왕성식당(02-752-9476), 여의도 제주나라(02-780-3210), 종로구 통의동 해구(02-738-6886), 서초동 교보타워 뒤 영광굴비식당(02-532-4826) 등이 있다. ●이렇게 준비하세요 선상의 갈치낚시를 위해서는 릴낚싯대(2만원선·대여비 5000원)가 필요하다. 미끼는 냉동빙어를 쓴다. 하루 쓸 분량은 1만원정도. 물론 바늘도 찌 없는 쌍바늘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바늘 2000원, 뱃삯 2만원. 야간에 필요한 케미라이트는 1000원.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얼음이 없으면 갈치가 금방 상한다.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므로 밤낚시에는 두꺼운 외투가 꼭 있어야 한다. 면장갑과 손전등도 준비해야 한다. 식사와 라면 등 간식은 배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배는 영암방조제에 있는 낚시점에서 소개시켜주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보는 편이 좋다. 특히 금호방조제에서 갈치낚시배를 운영하고 있는 신충현(011-9475-6760)선장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암호 찾아가는 길 목포 IC→목포검문소→영암방면으로 좌회전→영산강 하구 둑을 지나 우회전(해남 방면)→대불국가도로(대불산업단지)→목포공항방향으로 15분→삼호조선소입구→영암호 방조제
  • [부고]

    ●김홍규(전 연세대 법대 교수)씨 별세 종훈(연세대 의대 부교수)종우(경희대 한의대 교수)씨 부친상 황택현(독일 거주)씨 빙부상 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92-0299●노재민(전 국방부 과장)재옥(나노학원 원장)재정(홈타운부동산 대표)씨 모친상 김종천(전 대전일보 이사)씨 빙모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410-6908●박근영(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이철준(수성엔지니어링 부사장)명준(길륭 부사장)장수(사업)씨 모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02)3410-6912●강석원(S-Oil 부장)석무(BIDDLE SAWYER Asia지사장)혜경(열린사이버대학 영어과 교수)씨 모친상 박종성(충남대 영문과 교수)씨 빙모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010-2268●김경은(보성냉장 대표)씨 모친상 이재식(동호상사 대표)노대식(전 노대식산부인과 원장)씨 빙모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박상조(고원물산 대표)씨 모친상 8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31)810-5472●노태석(KT 마케팅부문장)씨 모친상 7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31)787-1510●김병옥(장원교역 대표)씨 모친상 이문석(SK케미칼 상무이사)씨 빙모상 김은숙(예원 대표)씨 시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410-6924●장용국(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씨 부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410-6915●진왕철(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교수)승환(현대자동차 부장)명희(충주대 영문과 교수)경희(군장대 사회복지학과 〃)씨 부친상 손주환(안전공업주식회사 대표)박우수(한국외대 영어과 교수)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010-2239●조운석(전 교육부 교육연구관)충석(전 한국공인회계사회 부장)정삼(전 회사원)씨 모친상 최순신(전 관악고 교장)씨 시모상 한상태(전 조흥은행 테헤란로지점장)씨 빙모상 8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30분 (02)592-2660●김종근(영화공간 대표)씨 부친상 8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590-2697
  •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50% 완치

    ‘죽음의 병’이라 불리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완치율을 지금의 5배까지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이규형 교수는 기존 항암제와 글리벡을 함께 처방하는 ‘항암 칵테일요법’을 환자에게 적용한 결과 백혈병 완치율을 지금의 10%에서 최고 50%까지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임상 결과는 혈액암 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루케미아’지 인터넷 판에 게재됐으며, 오는 10월 루케미아지 본판에도 실릴 예정이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정유소 8곳 가동중단… 피해액 최고 260억弗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1급으로 약해지고 뉴올리언스 시를 비켜감으로써 경제적 피해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1992년 초강력 허리케인 앤드루에 버금가는 피해를 남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카트리나 피해에 따른 보험 지급액을 최고 250억∼260억달러로 잡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금껏 가장 큰 피해를 준 5급 허리케인 앤드루의 경우 300억달러를 기록했다.9·11테러 때도 보험금으로 300억달러가 지급됐다. 재해 조사업체인 ‘에어 월드와이드’는 보험 피해액을 120억∼260억달러로 가장 높게 잡았다. 그러나 카트리나가 5급으로 맹위를 떨칠 때 300억달러를 예상했던 ‘에퀴캣’은 90억∼160억달러로 하향 조정했다.●석유생산 80~90% 차질 무엇보다 멕시코만에 집중돼 있는 원유 생산과 정유 시설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셰브론과 엑슨모빌이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 플랫폼을 폐쇄했고 대단위 정유소 8개가 가동을 멈췄다. 특히 수입원유 11%(하루 100만배럴)를 취급하는 미국 최대의 석유항인 루이지애나주 연안 항구가 지난 주말 잠정 폐쇄됐다.CNN머니는 멕시코만 연안에서 최소 2개의 해상 시추선이 표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 광물관리국(MMS) 관계자의 말을 인용, 멕시코만 일대에서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의 92%인 130만배럴을 생산하지 못했고 천연가스도 평소의 83%인 830억 큐빅피트가 감산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국 원유 생산의 12%와 정유 시설의 10%가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FT는 전했다.●파이프라인 장기 피해 우려 그러나 이같은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JP모건의 에너지전략팀 캐서린 스펙터는 “굴착장치와 파이프라인, 플랫폼에 미치는 장기적 피해까지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난해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이반의 경우 파이프라인이 미시시피강 삼각주의 진흙에 뒤덮여 9개월 동안 가동이 중단됐었다.유화업계와 항공업계도 울상이다. 세계 최대 유화제품 제조사인 바스프와 다우케미컬, 옥시덴틀 등 10여개 유화 업체가 현지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항공사는 결항과 유가 폭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파산 상태에 있는 미국 2위 항공사 유나이티드 항공은 30일까지 예정된 여객기 63편의 운항을 취소했고, 미국 1위 아메리칸항공도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36편을 결항시켰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부고]

    ●김훈섭(전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씨 모친상 신낙균(민주당 수석부대표·전 문화관광부 장관)씨 시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92●최서기(최서기 법무사 대표)씨 상배 종영(최서기 법무사 사무장)종원(사업)씨 모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2)3010-2254●최기탁(애드원네트 대표)영탁(애드원네트 본부장)민탁(현대자동차 차장)씨 부친상 김호연(대구은행 차장)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3010-2235 ●기광호(사업)윤호(포철기연 이사)진석(이프 대표)씨 부친상 이태인(공군 정보사령부 대령)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5시 (02)3010-2293●박대현(연세대 수학과 교수)구현(전 태경산업 부장)씨 모친상 한미라(호서대 신학과 교수)씨 시모상 2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92-3499●허창욱(외환은행 재무기획부팀장)씨 별세 24일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2072-2022 ●유신영(새한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씨 상배 보형(상계소망교회 목사)씨 모친상 명종(새벽이슬교회 목사)씨 조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010-2269●정맹섭(모던패션 상임고문)경섭(자영업)인섭(〃)재섭(영양종합식품 이사)원섭(미국 거주)홍섭(중국 청운물산 유한공사)씨 모친상 배재목(자영업)권영각(〃)이호일(〃)배완석(가산디자인 과장)씨 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30분 (02)3010-2239●고창범(전 중앙일보 기자)씨 빙부상 김미숙(제주 무용의집·요가의집 원장)씨 부친상 24일 서귀포의료원, 발인 28일 오전 7시30분 (064)732-8618●김정훈(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씨 부친상 한규중(한국화인케미칼 사원)씨 빙부상 25일 오후 5시30분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27일 오전 11시 (02)921-7099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부고]

    ■ 2차사법파동 주도 한기택판사 1988년 ‘2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한기택(46·사시 23회)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24일 말레이시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한 판사는 서울 출생으로 영동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서울고법 판사,9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2002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지난 2월부터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했다. 고인은 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여한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해왔다. 서울 동부지법 단독판사 시절 변호인 없이 소송에 나선 당사자들이 증인신문 사항을 잘못 써오기라도 하면 차근차근 물어보고 자신이 직접 소송서류를 작성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한 판사의 유해는 26일 한국으로 옮겨지며 장례는 서울 삼성병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박상규(전 청주경찰서장)씨 별세 종락(사업)창호(한국시티은행 신탁사업본부장)씨 부친상 한응수(전 주택은행 지점장)이상옥(STX지주회사 대표)박종대(명지대 교수)씨 빙부상 25일 청주 참사랑 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43)286-9506 ●송영승(경향신문 논설실장)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54 ●김동균(사업)동호(서울경제신문사 사진부 기자)씨 부친상 최은후(좋은특허)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2)3010-2292 ●신동훈(삼성전자 시카고지사장)동호(삼성생명 과장)씨 모친상 박성범(국회의원)씨 빙모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17 ●강융희(한국전력기술 처장)승희(거제도O3/8입시학원장)인희(셀케미칼 대표)씨 모친상 김종태(한국씨티은행 구로지점장)씨 빙모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18 ●하영철(프로야구 롯데 대표)씨 빙모상 25일 고려대학교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30분 (02)927-4404 ●구홍일(재향경우회장)씨 모친상 25일 경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400-4099 ●박종석(현대리모델링 이사)종현(화성M&A 대표)종훈(미국 거주)씨 모친상 송영수(사업)백충빈(전 호남정유 국장)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010-2265 ●안완진(전 한국도로공사)씨 상배 영도(버즈원 대표)영훈(대한투자증권 차장)영준(조선대 교수)씨 모친상 이상역(건설교통부)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35 ●오용석(GS칼텍스 세무팀 과장)용승(모토롤라코리아 QA팀 부장)종은(푸른보육경영 연구원)씨 부친상 이혁재(예금보험공사 비서실 과장)씨 빙부상 소현정(KBS 취재1팀 기자)씨 시부상 2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92-0299 ●김인성(전 한진건설 현장소장)수남(세양기업)씨 모친상 종윤(중앙일보 경제부 기자)종훈(서울증권 압구정금융센터지점 부지점장)종호(이지스효성)종화(일본 거주)종민(참고운치과병원)종무(한국레포츠문화진흥)씨 조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11시 (02)3010-2294 ●박한진(현대증권 IB기획팀 대리)씨 빙부상 24일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후 1시30분 (02)2072-2022 ●배길랑(전 국회의원)씨 모친상 24일 서울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3430-0397 ●김성옥(대우증권 업무개발부 차장)씨 빙부상 25일 일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20분 (031)902-5499 ●김문웅(전 대한항공 상무)씨 모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2)3010-2295 ●윤석길(경월한약방)석수(원예업)석보(건설업)석용(경북 경주경찰서 강동치안센터장)씨모친상24일 오후 8시40분 동국대 경주병원 왕생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4)776-9411 ●성호현(한화유통 대리)씨모친상문학수(경향신문 공연문화부 차장)씨 빙모상 25일 오후 8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6시 (02)2002-8937
  • [안동환기자의 현장+] 울분 토하는 현역 과학기술인들

    “이공계가 희망이라는 말, 그건 사기극이야.” 지난 1일 서울 방배동의 한 호프집에서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국내 최대 이공계 커뮤니티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www.scieng.net)의 오프라인 모임.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던 차분한 자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숨과 냉소, 분노로 메워졌다. 젊은 그들에게 온 국민을 흥분케 한 ‘황우석 신화’도, 재임 30개월을 기록한 역대 최장수 정보통신부장관인 선배도, 이공계 출신의 잘 나가는 CEO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공계를 전공한 뒤 현역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조차 현재의 이공계에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다.“‘월화수목금금금’이라도 좋으니 일한 만큼 대우받고 싶다.”는 현역 과학기술인. 그들의 숨김 없는 얘기들이다. ●너도나도 엑소더스 정부 연구소에서 일하는 ‘긍정’(이하 참석자 이름은 인터넷 대화명)이 포문을 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이공계 출신인 그의 부인은 최근 동기 모임에 참석해 무척 놀랐다고 한다. 함께 공부했던 동기 10명 가운데 6명이 의대나 약대로 진학했다. 그는 “이공계에서 박사까지 했다면 출발선을 앞서 간 셈인데도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토로했다. 한 대기업 연구소의 LCD팀 창립 멤버였던 A박사가 전하는 사례. 그는 최근 함께 일했던 팀원들의 소식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이던 82학번,88학번 연구원 2명이 한의대에 진학했다는 것.A박사는 “소위 명문대 출신의 이공계 인력들이 꿈을 접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가 톱클래스 학과의 서열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자격증 아닌가. 의사나 약사는 10년을 하든 50년을 하든 한번 배워서 쭉 전문가 소리를 듣지만 전자제품을 보라.3년 전 컴퓨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공계는 끊임없이 연구해야 살아남는다. 적당한 보상조차 없는 현실에서 누가 이공계를 선택하겠는가?”대학에 재학 중인 ‘준’의 지적이다. 벤처업체에서 일하는 ‘애니그마’가 말을 잇는다.“박사 과정 선배가 일주일에 80시간 일하면서 40만원을 받는다. 그 선배가 하는 말이 30년 뒤에 음식점 하나만 하면 성공이라고 말한다. 학부생들이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왜 고민하지 않겠는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고 수준의 박사급 이공계 인력이 몰려있는 대전 대덕연구단지 주변에는 일명 ‘박사 식당’이 많다. 정부 연구소 박사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기업연구소 출신 박사들이 하는 식당과 술집들이 꽤 존재한다. 현역 연구원들이 말하는 한국은 기묘한 나라다. 기업이든 연구소든 연구만 계속하는 인력은 퇴출당한다.40대 초반이 되면 국내 연구개발자의 수명은 끝이다. ●한국에 다나카는 없다 이날 모임의 맏형격인 ‘헤르메스’의 지적이 날카롭게 이어진다.“교수가 아닌 기업과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고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이공계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진대제, 안철수를 보라. 엔지니어로 시작했지만 경영자로 성공했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가 국내 기업에 있었다면 관리자가 되든지 퇴출당하든지 기로에 섰을 것이다. 연구개발자가 관리직으로 갈아타지 못하면 이공계인은 무능력자로 퇴출당한다. 기업은 우수인재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모순이다. 인재를 가려 뽑을 능력도 없고 그만큼의 대우도 하지 않는다. 이공계 인력이란 게 값싸고 질 좋은 부품 아니냐. 연구원으로서 커리어를 키워주고 기회를 주고 있느냐?”(헤르메스) “30년 뒤에 내 모습이 뭐냐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 학부 때부터 논문 빨리해서 교수를 하든지, 돈 되는 아이템을 공략해 회사에서 5년 이내에 성과를 내고 관리직으로 전환해 CEO로 커가든지 연구개발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스티븐) 국비 유학생 출신인 ‘케미스트리’의 지적이다.“가시밭길이다. 국내 박사는 대리급, 해외 박사는 과장급이다. 엄연히 진골, 성골,6두품이 있다. 반도체나 LCD 등 돈 되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 관리직으로 안착하면 바로 CEO 코스다. 그들에게는 개인의 성공신화일지는 몰라도 후배들에게 본받을 모델이 아닐 것이다.” ●시스템 부재가 모럴 해저드 부른다. 대학과 정부 연구소를 가리지 않고 연구비에는 최소한의 인건비만 책정된다. 한 달 20만∼50만원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석·박사가 수두룩하다. 연구비의 일부는 상급기관에 대한 로비나 향응 접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고백도 나왔다. 그렇다 보니 연구비도 인플레가 되는 현상마저 나타난다.“1억원짜리 연구면 꽤 큰 프로젝트이지만 정부 출연 연구소는 안 하려고 한다. 어차피 일하는 건 비슷한데 나눠먹기엔 1억원도 푼돈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 일할 바에야 액수가 더 큰 걸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억이면 될 과제를 5억원의 예산을 신청한다. 사전 연구, 검증 연구, 기획 연구라는 명목으로 1년이면 끝날 과제도 3∼4년씩 질질 끈다.”참석자들은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는 시스템인가.”라고 의문을 표시한다. ‘스티븐’이 대학 연구소에서 경험한 황당한 사례.“장비 구입비 명목으로 2000만원이 지급됐는데 이미 구입해 마땅히 필요한 장비가 없었다. 그 돈을 날리지 않으려고 교수가 2000만원어치 홈시어터를 구입해 집에다 설치했다. 그리고 영상장비를 구입한 것으로 보고했다. 고발을 하는 게 아니라 비효율을 지적하고 싶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연구원 모두가 새 노트북을 산다.1년도 안돼 분실처리한다. 예산을 또 신청하기 위해서다.” ‘헤르메스’는 “벤처기업 중 정부 지원금으로 장비를 사서 그 장비를 임대해 돈을 버는 업체도 있다. 벤처가 아니라 리스업체다.”라고 지적했다. ●이공계 인력은 거품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류’는 “IT가 뜬다고 하면 모두 컴퓨터로 몰린다. 대학과 학원에서 인력이 양산된다. 정부가 개입해 인력을 공급하다 보니 이공계 인력 모두가 하향평준화됐다.”고 토로했다. 국내 이공계 졸업생의 비율은 40% 안팎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공계 출신의 수는 많지만 질은 낮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 유명 포털사이트의 구인난도 화제에 올랐다.‘에니그마’는 “한 포털사이트가 직원 100명을 뽑으려고 했지만 2만여명이 지원하고도 100명을 다 채우지 못했다.”면서 “구직난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구인난이다. 전산을 전공했다는 사람조차 C언어(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날 그들이 발견한 것은 불안한 미래와 상대적 박탈감에 지친 연구자들의 오늘이었다. 택시로, 지하철로 각자의 일상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그들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sunstory@seoul.co.kr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모임 참석자 ●헤르메스(42) 과학평론가·과기부 자문위원 ●긍정(31)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 ●애니그마(25) IT업체 근무 ●스티븐(30) 유닉스 전문가 ●케미스트리(24) 국비 유학생·생명과학 전공 ●류(28)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IT정책 ●준(24) S대 전기공학 전공 ●종(22) H대 멀티미디어공학 전공 (이름은 인터넷상 대화명)
  • [학교소식]

    ●9일 입학전형 시안·출제경향 설명회 대일외고는 9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길음동 현대백화점 미아점 10층 사파이어홀에서 입시설명회를 연다. 이날 입학전형 세부시안과 출제경향, 면접내용 등에 대해 설명한다.●체육관·수영장 개관… 주민에게도 개방 서울 용산초등학교는 지난달 14일 체육관과 수영장을 개관했다. 학생들은 1주일에 한 차례, 교직원들은 수요일마다 수영강습을 받는다. 수영장은 오전 6∼8시, 오후 5∼9시에는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된다. 체육관에는 배드민턴과 배구경기장이 마련돼 있다. 체육관도 조만간 지역주민에게 개방될 예정이다.●1학년 110명 캐나다·영국 연수 실시 이화외고는 방학중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실시한다. 모두 110명이 간다. 한 팀은 10일부터 8월3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어학기관 브리티시 컬럼비아 칼리지에서 연수를 받고, 다른 팀은 오는 17일부터 8월3일까지 영국 옥스퍼드대학 안에 있는 어학기관 ‘잉글리시 옥스퍼드 센터’에서 연수를 받는다.●각종 질병예방 `1830 손씻기 운동´ 서울 동북초등학교는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1830 손씻기 운동’을 하고 있다.‘1830 손씻기’는 1일 8차례, 한번에 30초 이상 손을 씻자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이들은 야외 활동을 마치고 난 뒤나 점심 먹기 전 등 틈나는 대로 손을 씻고, 각자 지닌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는다.●뛰어난 발표·모범학생에 `칭찬 스티커´ 서울 이수초등학교 4학년 4반은 4월부터 칭찬스티커를 받고 있다. 칭찬스티커는 뛰어난 발표를 하거나 철저한 준비성을 보이거나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받는다. 칭찬스티커를 25개 모으면 담임선생님은 상장과 상품을 준다.●필독도서 중심 9월 독서왕 선발 퀴즈대회 서울 아주초등학교는 지난달 15∼17일 3일 동안 도서 바자회를 열었다. 이번 바자회에는 학년별 필독 도서 60종과 권장 도서 48종이 판매됐다. 아주초등학교는 오는 9월 필독 도서를 중심으로 독서 퀴즈 대회를 열어 독서왕을 선발할 예정이다.●아버지 학교방문 행사… 350명 참가 예상 서울 영훈초등학교는 8일 ‘아버지 학교방문’ 행사를 연다. 어머니에 비해 학교 소식을 모를 수 있는 아버지와 교사의 만남을 위해 마련됐다. 이날 아버지 350여명이 방문할 예정이다. 학생과 아버지가 저녁시간에 함께 와서 담임교사를 만나 학생이 공부한 학습결과물을 함께 보고 체육관과 음악실, 과학실, 미술실, 실과실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인천·부천 중3생 무료 외국어 체험교실 인천외국어고등학교는 오는 18일부터 22일까지 인천·부천지역 중학교 3학년 100명을 대상으로 무료 외국어체험교실을 연다. 운영하는 교과는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이며, 기본적인 회화와 함께 노래, 영화, 문화체험 등을 중심으로 학습이 이뤄진다. 인천외고 홈페이지(www.icf.hs.kr)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이메일(jinamour7@hanmail.net) 또는 팩스(032-511-3544)로 접수하면 된다.●인천 학생디자인공모전·경진대회 인천시는 인천디자인고등학교에서 2005인천학생디자인공모전(10월4∼15일) 및 경진대회(10월21일)를 연다. 참가부문은 제품디자인, 환경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이며 입상작은 오는 10월31일∼11월3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전시된다. 신청서는 인천디자인고등학교 홈페이지(www.indigo.hs.kr)에서 다운받으면 된다.●초등학생 여름방학 프로그램 운영 인천주안도서관(www.juanlib.or.kr)은 오는 8월 9·10일 초등학교 1·2년생을 대상으로 ‘밥보다 과자가 좋아’ ‘놀면서 친해지는 영어테크’ ‘그림 독서일기장 꾸미기’ ‘꼴깍 이야기 듣고, 뚝딱 만들기’를,3∼6년생은 ‘나만의 독서카드 꾸미기’ ‘신문으로 보는 세상’ ‘부자습관 기르기’ ‘우리 궁궐 엿보기’ 등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각각 선착순 30명씩 모집하며, 접수기간은 오는 25일부터 29일까지다.●인하케미캠프 참가자 15일까지 모집 인하대는 인천·경기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오는 25∼28일 ‘제5회 인하케미캠프’를 운영한다. 주제는 ‘천연색소의 추출’,‘청사진 만들기’,‘혈당량 측정’,‘DNA 관찰과 모델링’ 등이며, 실험은 2인1조로 진행된다. 참가신청은 15일까지며, 참가비는 10만원이다.
  • IT 탐내는 굴뚝기업들

    ‘IT가 뭐기에….’‘굴뚝 기업’들이 정체된 주력업종을 보조할 신성장 엔진으로 정보기술(IT)을 속속 선택하고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없이도 손쉽게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 굴뚝 기업의 발길을 IT 분야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기술 경쟁력이 무엇보다 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IT에서 섣부른 도전은 ‘산토끼 뿐 아니라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IT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곳은 동국제강. 지난달 유일전자를 880억원에 인수해 휴대전화용 부품사업에 첫 발을 내디딘 동국제강이 이번엔 삼성SDS와 손잡고 시스템통합(SI)과 전사적 자원관리(ERP)업무를 수행할 IT전문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이를 위해 동국제강은 다음 주 삼성SDS와 IT전문회사 설립을 위한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동국제강은 오는 9월까지 지분 출자나 전략적 협력 방안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짓고, 회사 설립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자본금 규모는 1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또 유일전자를 디스플레이 및 정보통신 부품소재 전문기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추가 인수합병(M&A)과 국내외 IT인재 영입 등을 통해 2010년까지 매출 2조원, 순이익 3000억원 규모로 덩치를 키울 계획이다. 동국제강측은 “유일전자 인수는 2008년까지 매출 7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라며 “철강, 물류 중심에서 정보통신산업을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장세욱 전무(장세주 회장 동생)를 28일 유일전자 주총에서 등기 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 문정업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동국제강의 IT사업 진출은 성장 가능성보다 출혈 리스크가 더 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면서 “향후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도 지난 4월 벤처기업인 ‘SK유티스’를 설립,IT 산업소재 시장에 진출했다.SK유티스는 휴대전화와 LCD TV,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IT기기를 생산한다. 한때 엘리베이터, 자동판매기 업계의 강자였던 LS산전은 최근 전자태그(RFID)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LS산전은 지난 5월 국내 처음으로 천안공장에 RFID 전용테스트센터와 RFID 리더 양산라인을 준공, 가동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2010년 1조 15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RFID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삼촌인 허승표 회장은 영상광고업체 미디아트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판권 계약이 지난해 말 끝나면서 이동통신 관련 부품 자회사인 인텍웨이브에 사활을 걸고 있다. 허 회장은 명함을 미디아트 회장에서 인텍웨이브 회장으로 바꿀 정도로 IT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인텍웨이브는 이동통신용 전력 증폭기, 유무선 통신용 부품 및 이동통신용 중계기 등을 통해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SK 유럽법인 ‘유로켐’ 가동

    SK그룹이 유럽에 첫 생산기지를 설립했다. SK케미칼은 22일 폴란드 브어추와벡시 현지 생산법인인 ‘SK유로켐’ 공장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SK유로켐의 자본금은 3800만달러 규모로 SK케미칼이 지분의 53.9%를 출자했으며, 현지 업체인 안빌사(17.4%),SK건설(10%),LG상사(10%)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또 한국수출입은행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현지은행 등의 금융기관과 함께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37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투자, 총 투자규모는 7500만달러에 달한다. 이날 준공식에는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 이상철 폴란드 대사, 신동규 한국수출입 은행장, 야첵 피에호타 폴란드 경제부 장관 등 180명이 참석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쌍두 체제’로 포스트 재벌을 향해 순항중이었던 SK그룹은 2003년 2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소위 ‘SK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악재로 오너가(家)인 최 회장이 전격 구속됐기 때문이다.2세 체제의 성공적인 착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카운터 펀치’는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보스’의 부재와 채권단의 압박, 소버린의 흔들기는 ‘SK호’의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한 임원은 긴박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시민단체의 공격과 채권단의 위협, 소버린의 가세는 그야말로 내부 구성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는 그룹 해체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또 소버린의 지분 매입 의도는 최 회장이 보석으로 나온 뒤에나 대책이 세워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겪은 최 회장은 ‘뉴SK’ 기치를 내걸고, 난제를 정공법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포스트 재벌을 지향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투명성과 윤리경영을 핵심으로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SK㈜ 창립 42돌에서 밝힌 내용이다.“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입니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경영 ‘대표선수’ 패밀리 4인방 “내 아들은 5명이다.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울 것이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 나는 자식들 누구에게나 밥상(경영권 승계 후보)을 차려주겠지만 먹은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 최씨가에서 현재 SK 경영에 참여하는 인물은 최신원(53) SKC 회장과 최태원(45) SK㈜ 회장,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 등이다. 최씨가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최씨가의 차세대 5인방인 사촌 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패밀리 5인방’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많지 않아 ‘뭉쳐야 산다’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기원씨는 아예 상속포기 각서를 썼을 정도였다. 또 연장자인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맏이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족대표로 경영권을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적극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은 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슈퍼 엑셀런트의 준말)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토론해서 분석하고, 협의해서 합의한다.’로 요약된다. 합리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은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에서 18개월가량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에서였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보유한 포항제철(현 포스코).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 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최 부회장은 이를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의 스와핑(주식 맞교환)으로 해결했다. 최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석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이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은 94년 선경(현 SK)그룹 경영기획실로 첫 발을 내디뎠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이다. 특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가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으며,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 리베로’라고 불렸다. 특히 최 부사장이 계열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임직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비켜섰었다.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우석대와 미국 엘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2세 교육 “선친은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엔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고차를 샀는 데, 이것도 어떻게 구입했는지 일일이 현지 지사장으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 받기까지 했죠. 그리고 집도 제일 싼 곳에서 살아 일주일에 쥐를 40마리까지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까지 했답니다.” 차남인 최 부회장은 남들처럼 어렵게 공부했던 미국 유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자식 교육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최 회장은 자식들과 토론을 즐겼다. 주제는 사회·경제가 아닌 과학 분야. 가끔은 난센스 퀴즈와 같은 질문을 들이대, 자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부친이 살아계셨으면 최근의 토론 주제는 아마도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관련됐을 것”이라며 “그 만큼 과학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도’인 고 최 회장은 아들들은 모두 이과 전공을 권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이 진학 문제로 고민할 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선택해라.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경제를 잘 알려면 ‘리(理)’와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남인 최 회장은 문과 지망생이었지만 선친의 뜻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최 부회장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고 최 회장은 또 자식들에게 최종 학력만큼은 최고를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선친은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은 아무 곳에서 졸업해도 괜찮지만 최종 졸업장은 최고 수준의 ‘학벌’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최고가 뭔지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가 3세들은 ‘공부 중’ 최씨가의 2세들은 대부분 연애 결혼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설명이다. “대학 테니스 동호회에 선수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적극 끌어들였죠.”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SK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 관장의 부친이 당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체육부 장관으로 정경 유착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미국에 건너가 맏며느리감인 노 관장을 직접 살펴봤으며, 고 최 회장도 미국 출장중에 노 관장을 면담했다. 고 최 회장은 사돈인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SK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목속에 결혼한 탓일까. 부부간 ‘애정 전선’은 세간의 이목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평이다. 한 지인의 얘기다.“최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 수감됐을 때입니다. 노 관장은 공판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1주일에도 세 차례씩 면회를 꼭 갔었어요. 당시 수감중인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생일에 사람을 통해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고요.” 최 회장과 노소영씨는 장녀 윤정(16)양과 차녀 민정(14)양, 장남 인근(10)군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 부회장과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인연은 누이동생인 최기원씨 소개로 맺어졌다. 채 교수와 기원씨는 친구 사이다. 자녀는 2남1녀. 장남 성근(14)군과 장녀 원정(8)양, 차남 동근(6)군이다. 고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51)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녀 서희(28)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최성훈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은진(22)씨와 3녀 현진(20)씨, 장남 영근(18)씨는 모두 학생이다. 최신원 SKC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유진(27)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차녀 영진(2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장남 성환(24)씨는 중국 복단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최유경(38)씨는 장녀 경진(8)양과 장남 민근(7)군을 두고 있다. 모두 초등학생이다. ●‘SK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조정남(64) SK텔레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산파’로 통한다. 또 ‘CDMA 전도사’라 불린다. 조 부회장이 밝힌 1995년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의 개발 성공 일화다.“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에게 지속적으로 CDMA 성공 여부를 물어오셨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수천명이 동시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상업화 규모의 투자를 결심해야 하는 판국에 몰렸습니다. 그때 제가 손 부회장에게 ‘제게 400억원을 주십시오. 항상 물으시던 CDMA 성공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손 부회장은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부회장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친근감이 넘친다. 자칭 ’리버럴리스트’로 말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김창근(55) SK케미칼 부회장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잠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처리와 관련,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후계자로 불릴 정도다. 그는 마지막 구조본부장으로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거쳤고,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는 등 SK를 대표하는 재무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신헌철(60) SK㈜ 사장은 소탈한 외모와는 달리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과 함께 노력형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주판알만 튀기던 그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아예 작품을 통째로 암기해 버릴 정도다. 그는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메밀꽃 필 무렵’을 술술 읊어댄다. 신 사장은 본인을 ‘운 좋은’ CEO라고 평가한다.SK㈜ 사장도 운 때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 능력으로 뽑았다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겸손해한다. 신 사장의 얘기다.“최 회장으로부터 SK㈜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능력도 부족한 내가 맡아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회장이 지금의 SK㈜는 ‘아버지’ 같은 CEO보다 상처를 보듬아주고, 이것 저것 챙겨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CEO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CEO를 맡을)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능력없다.’는 말과 달리 SK㈜는 신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과 수출, 순이익 면에서 역대 실적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신 사장의 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신 사장이 1998년 5월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국제전화 식별번호 추첨식에 참가할 SK텔레콤 제비뽑기 ‘대표선수’로 신 본부장을 선택했다. 가서 모든 경쟁사가 희망하는 ‘00700’ 번호를 뽑아오라는 특명과 함께. 그런데 이 업무는 신 본부장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선사업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임직원이 염원했던 대로 기어이 ‘00700’번호를 뽑아내는 기염을 연출해냈다. 신 사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김신배(51) SK텔레콤 사장은 논리적이며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가사를 외운 팝송이 100여곡에 이를 정도로 감성적인 면도 적지 않다. 또 순탄하게 CEO까지 오른 듯 보이지만 이공계 출신의 기획통 CEO로서 만년 하위권이던 수도권영업을 SK텔레콤 지사 중 1위로 올려 놓을 정도로 ‘야전 경험’도 많다. 그는 당시 현장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또 바닥권이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평소에 즐겨하지 않던 술이었지만 그때 마셨던 술이 그 전 동안 마셨던 술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신세기통신과의 통합작업을 2년간 잡음없이 해 낼 정도로 사업 조정 및 대인 관계에도 능수능란하다는 평이다. 그는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띄울 때에는 ‘오늘같은 밤’(이광조)이나 ‘골목길’(신촌블루스)을, 분위기를 탈 땐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이나 ‘사랑일 뿐이야’(김민우)를 부른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팝송 100곡 정도는 가사를 안보고 부를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만원(53) SK네트웍스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CEO다.2003년 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위기를 맞았을 때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으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같은 활약 덕분에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취임, 채권단 조기 졸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21회 행시 수석 출신으로 1994년 통산산업부 과장에서 ‘SK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령장을 받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40권을 구입했다고 전한다.95년부터 OK캐쉬백 사이트의 원형인 쇼핑몰을 구상했으며,OK캐쉬백과 그 사이트를 기획해 SK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오너가(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사위)의 일원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솔직함과 친근감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CEO라는 평이다. 그는 1979년 ㈜선경 미주본부로 입사, 경영지원본부장,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치며, 방송·통신 장비업체인 SK텔레시스 인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맏형’ 최신원 SKC회장 “분가요?시기상조입니다. 여건도 성숙치 않았는 데 무슨 분가입니까. 지금은 형제간에 서로 협력해서 SK를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최신원(53) SKC 회장은 최근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SK분가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이어 “형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 최씨가(家)의 맏이로서 형제간의 협력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 형제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패밀리 미팅’으로 알려진 형제간 모임은 실상 집안 제사 행사인 경우가 많다. 또 해외 출장을 빼곤 형제들 모두 참석하는 것이 최씨가의 오랜 전통이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동생들을 지원하는 소리없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지난해 ‘소버린사태’로 경영권을 위협받았을 때 SK㈜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지분을 확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행동하면 불협화음이 나올 수 없어요. 사업이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뭉치면 되고요. 선친과 숙부께서 상호신뢰 속에서 그룹을 키워오신 것처럼 우리 2세 형제들도 서로 협력해 SK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울 것입니다.” 최 회장은 또 “몸은 부실해도 부친을 닮아 통뼈”라며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죽으면 돈 갖고 갑니까.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죠.” 그는 앞으로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했다.“제 소박한 꿈은 이렇습니다.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재단’의 장학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국에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기술학교를 세워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선친은 평소 교육에 열정이 대단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셨다.”면서 “선친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해병대 출신이다. 부친이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기 때문.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병대 CEO’로 불린다.CEO(최고경영자)로 나선 지 8년째인 최 회장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계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턴어라운드’ 작업을 통해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golders@seoul ● 최씨가 며느리·딸 ‘경영불참 불문율’ 국내 재벌가에서 며느리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SK가(家)는 이보다 한 술 더 떠 딸들까지 아예 배제한다. 한 임원의 얘기다 “최종현 회장이 한번은 가족 회의를 열고 최씨가의 여성은 딸이든, 며느리든 경영 참여는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경영에 참여시키기로 한 거죠. 그래서 큰 집(최종건가)과 작은 집(최종현가)의 5남 5녀 가운데 ‘대표선수’ 5명(윤원, 신원, 창원, 태원, 재원)만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요.” 큰 집 조카들까지 포함해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했던 고 최종현 회장(그는 생전에 형의 3남 4녀와 자신의 2남 1녀를 합한 ‘5남 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음)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며느리와 딸들을 경영진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최 회장이 병마와 막바지 씨름할 때였다. 하루는 저녁 식탁에 앉았는 데 큰 아들(최태원 SK㈜ 회장)이 보이지 않자, 큰 며느리(노소영 관장)에게 “오늘도 못 온대.”라고 물었다. 노 관장은 시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듯 “네∼”라고 답했다. 이어 “요새 그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그러자 최 회장은 무뚝뚝하게 “사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사업이란 장난이 아니다. 전력투구해야 한다. 사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최씨가의 맏며느리인 김채헌(51·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부인)씨는 최씨 2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소리 안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이다. 시동생 얘기다.“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 형수님으로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없지만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뭔가 해 보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동생의 평은 이렇다 “워낙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합니다. 마음도 대단히 여리고요.”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씨가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편이며,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긴다.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최태원 회장도 노 관장의 바깥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지인은 “최 회장과 성격이 비슷한 데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라며 “서로 바쁘기는 해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요리를 하는 등 부부 금슬이 대단히 좋다.”고 설명했다. 시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은 큰 며느리를 어떻게 봤을까. “저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킨단 말이야. 제 시어머니(고 박계희 여사)를 닮은 데도 많고….”고 최 회장과 50년 지기인 언론인 홍사중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겉으로는 제법 쌀쌀하면서도 조금도 표리가 없고, 야무지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뜻으로 최 회장이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부인인 채서영(41)씨는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집 사람이 좀 바쁘죠. 그래서 저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능한 한 골프를 치지 않으려고 해요. 집안 일은 좀 거드는 편인데…. 와이프 눈에는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만 쓰는 주방용 칼이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부인 최유경(38)씨는 치과의사다. 개업을 않고 가끔씩 지인들 병원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golders@seoul.co.kr .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윤원아, 신원아, 월요일자 신문 꼭 봐라. 우리 회사가 크게 나온다.”(고 최종건 SK 창업주) “아버지,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최신원 SKC 회장) “그때 보면 알 수 있어, 이놈들아.”(고 최종건 창업주) 최신원 SKC 회장이 공개한 워커힐호텔 인수 직전 부자간에 오갔던 대화다.1973년 1월 선경(현 SK)은 정부로부터 서울 워커힐(현 쉐라톤 워커힐)호텔을 26억 3200만원에 인수하며,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선경이 국민과 재계에 던진 ‘무명의 반란’이었다. 최종건 선경(현 SK) 창업주가 맨손으로 선경직물을 일으킨 지 2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최 창업주는 같은 해 11월 폐암으로 별세,‘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원대한 꿈을 동생인 고 최종현 SK(당시 선경직물 부사장) 회장에게 맡긴 채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갔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최 창업주가 20년간 SK의 섬유를 책임졌다면 25년간 SK를 이끈 고 최종현 회장은 ‘석유’를 개척하고,‘이동통신’의 길을 터놓았다. 고 최종현 회장의 50년 지기(知己)인 언론인 홍사중씨가 본 형제는 이렇다.“형(최종건)은 좋은 의미의 ‘보스형’이었다. 의논할 상대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일에 혼자 결정을 내렸다. 동생(최종현)은 ‘리더형’이었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좋은 짝이었다.” 소리없이 일을 꾸미는 사람은 동생이요, 밖에서 뛰는 사람은 형이었다. 그래서 회사 돌아가는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형을 가리켜 ‘용장’이라 했고, 아우를 가리켜서 ‘지장’이라 했다. 형제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SK를 자산규모 재계 4위의 대그룹으로 일궈냈다. ●‘원조 불도저’ 최종건 창업주 최근 재계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강한 추진력과 남다른 승부 근성 때문에 ‘불도저’라 불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상 불도저라는 애칭은 최 창업주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의리파, 불같은 추진력, 강한 뚝심’은 최 창업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비’ 같은 성격에 ‘조조’의 꾀도 많았다. 이런 점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 하나.1966년 선경직물은 차관 도입 문제로 일본 정부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에 불과한 선경직물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며 차관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었던 최 창업주는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을 단골 술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 술집 마담에게 거짓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하라는 것. 술집 마담은 때가 되자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말을 건넸다. 최 창업주는 일본 관계자 앞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 나가겠다.”고 밝힌 뒤 2시간 가량 단잠을 자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거, 죄송합니다. 저 위에 좀 다녀 오느라 늦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일본 관계자들은 최 창업주가 정부 최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나간 것으로 모두 오해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선경직물이 정부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구나.’를 암시하며, 차관 도입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의 장비 같은 성격은 또 이렇다. 최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다혈질인 데다 성미가 급하고, 감정을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화가 나면 앞뒤 생각없이 퍼부었다.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화난 얼굴로 “누구 불러오라.”고 불호령을 내리면 서울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출장갔다고 곧잘 거짓말을 했다고 회고한다. 최 창업주는 1926년 수원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4녀(양분, 양순, 종건, 종현, 종분, 종관, 종순, 종욱)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취직,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24세 때인 1949년에는 교하노씨인 노순애(77) 여사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선경직물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상반된 스타일의 ‘안주인’ 노순애 여사가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면, 최종현 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는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풍긴다. 노 여사는 시동생과 시누이 등을 거느린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만만치 않게 했다. 차남 최신원 SKC 회장의 얘기다.“100마지기 농사 일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셨으니 고생이야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부친은 사업 때문에 공장에서 먹고 자며, 한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습니다.” 노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에 반한 최 창업주의 누나 최양분(83) 여사는 그를 맏며느리감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고 박 여사는 박경식 전 해운공사 이사장의 넷째딸로 19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베네트칼리지를 거쳐, 칼라마주대학을 졸업했다.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자기 의사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태원에 가서 1만∼1만 5000원짜리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고, 깍쟁이였다. 고 박 여사가 모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내가 ‘이태원표’ 옷을 입고 있으면 모두들 몇십만원짜리로 아는데, 그래서 더욱 그런데 가서 사 입어도 불편한 게 없어요.” 최 회장도 부인을 깍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병마와 씨름하던 그는 먼저 간 박 여사를 두고 “자기 성격 따라 깍쟁이처럼 죽었다.”고. 박 여사는 1997년 6월18일 최 회장의 폐암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두 ‘안주인’은 상반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도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특히 가정 일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박 여사가 미술관에서 일하면서도 최 회장이 일찍 퇴근하면 아무리 중요한 미술관 행사를 주재하는 중이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은 “모친은 외출도 좋아하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라며 “두 분께서 같이 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골프였다.”고 말했다.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과 혼맥 고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은 이렇다. 그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책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에서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지켜본 바에 따라 나는 남녀간의 연애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연애는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다가 다른 사람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 ‘스테디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면 ‘아이 러브 유’가 되어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너 없이는 못살아.’가 되는데 이것은 병이다.” 최 회장 본인의 경험 때문일까. 최씨가의 2세들은 정략이나 중매 결혼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특히 최종건 전 회장이 일찍 별세한 이후 최종현 전 회장이 사실상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자임했던 만큼 ‘큰집’ 조카들도 이같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신원 SKC 회장은 “숙부는 자식들 결혼과 관련해서 복잡한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면서 “예물 등도 가능한 한 안 주거나 받지 않는 주의였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최태원(45)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했다. 부친과 똑같이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노 관장을 만나 연애했다. 차남인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의 부인은 영어교사였던 채희경씨의 맏딸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다. 막내딸 최기원(41)씨는 당시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준일(46)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큰집’인 고 최종건 회장의 일가 혼맥도 학계부터 권력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지만 정략적인 냄새는 없어 보인다.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인 채헌(51)씨와 결혼했다. 장녀 정원(50)씨의 남편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고광천(54)씨며, 차녀 혜원(48)씨는 박주의 전 금융인 아들인 박장석(50) SKC 사장과 결혼했다. 막내 아들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은 변호사 집안인 최유경(38)씨와 결혼했다. 4녀 예정(43)씨의 남편인 이동욱(43)씨가 최종건가(家)에서는 눈에 띈다.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이씨의 부친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 전 중정 부장은 서로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막역했던 사이였다. 양가가 둘의 결혼을 일찍이 약속을 했고, 결혼은 최 창업주 사후에 이뤄졌다. 고 최종건 회장이 각별하게 지냈던 재계 인물로는 김용산 전 극동건설 회장이었으며, 언론계에서는 고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방계로 넘어가면 장녀 최양분 여사는 한때 종건·종현 형제의 가정교사였던 고 표현구 전 서울대 농대 학장과 결혼했다. 표문수(52) 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아들이다.3녀 최종분(73) 여사는 고 이한용 신아포장 대표와 혼인했으며, 막내 사위인 정재현(46)씨는 현재 SK C&C 전무로 일하고 있다. 차녀 최양순(82) 여사는 고 여운창 경기개발 대표와 결혼했으며,4녀 최종순(69) 여사는 해군 중령 출신인 고 조제동씨에게 시집갔다. 3남 최종관(71) 전 SKC 고문은 장명순(71) 여사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3녀 경원(42)씨가 김연준 전 한양대 이사장 아들인 김종량(55) 한양대 총장에게 시집갔다. 또 4녀 은성(40)씨는 나웅배 전 부총리 아들인 나진호(42)씨와 짝을 이뤘다. 장녀 순원(47)씨는 존 캐리 퍼크너(47)씨와 국제 결혼했다. 장남인 최철원(36) 마이트엔메인 대표이사는 한숙진(34)씨와 인연을 맺었다. 4남 최종욱(66) 전 SKM 회장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 딸인 조동옥(59)씨와 결혼했다. 조씨의 남동생이 조동성 서울대 교수다. 미혼인 장남 준원(30)씨는 현재 SK C&C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윤선(29)씨도 통신·방송장비 전문업체인 SK텔레시스에서 일하고 있다. ●섬유에서 석유…정보통신 SK그룹의 모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만주 일대를 대상으로 직물을 수출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일본의 교토(경도)직물(京都織物)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교토직물은 현물출자하고, 선만주단은 공장 부지를 비롯한 건물 공사비 등을 투자했다. 상호도 선만주단의 ‘선’자와 교토직물의 ‘경’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고 지은 것이다. 고 최종건 회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재건하기 위해 1953년 부친 몰래 빼낸 땅문서로 공장을 불하받는다. 이후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본격적인 섬유기업으로 탈바꿈한다. SK의 성장사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보면 3단계로 나눠진다.1단계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 건설.2단계는 유공(현 SK㈜) 인수,3단계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다. 소프트웨어로 볼 때 최종현 회장의 경영 참여와 이순석과 손길승, 김항덕 등 1세대 전문경영인의 합류 등이다. 1980년은 유공 인수로 선경의 숙원 사업을 달성한 해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울산을 오가며 국내 유일의 정유사였던 유공을 넘본 지 10년 만이다.‘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매진한 결과, 돌아온 보상이었지만 당시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선경은 유공을 손에 넣자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경이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상한 것은 80년대 초반까지 올라간다. 당시 국내 어느 기업도 정보통신사업에 대해 꿈도 꾸지 않을 때, 고 최종현 회장은 미국 방문길에서 통신사업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 현지에 경영기획팀을 만든다. 이것이 훗날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golders@seoul.co.kr ■ 풍수지리 거부한 최씨 형제 “집터보다 내 기가 더 세니까 염려들 말어.” 국내 재벌가(家)가 최근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동에 둥지를 트는 까닭은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은 남산을 베개삼아 한강으로 다리를 곧게 쭉 뻗어 복록과 자손복이 대대로 넘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예 재벌가 ‘집성촌’으로 불린다. 이처럼 집터의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지는 재벌가에서 유독 이에 무관심한 집안이 있다.SK그룹 최씨가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1968년 서울 삼청동에 새 집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 데이진 오야 사장의 부인이 풍수지리를 잘 안다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삼청동 자택의 지형 사진을 보내달라고 연락해왔다. 당시 최 회장과 오야 사장은 비즈니스를 떠나 개인적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오야 사장은 당시 일본 정·재계의 거물로 최 회장의 호탕한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오야 사장 부인은 매우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옷만 두 박스를 가지고 왔으며, 매일 밤 우유로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 회장은 이들이 한국에 머물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을 본 오야 사장 부인은 “지형이 사나워 좋지 않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이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삼청동 자택은 화재로 가정부가 화상을 입어 숨진 데 이어 여름 장마철에 큰 물난리를 겪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집터의 기가 세서 그런 것이니 이사가는 게 좋다고 자주 권했다. 그래도 최 회장은 “내 기가 집터보다 더 세니 염려말라.”고 했다고 한다. 고 최종현 회장도 집터와 관련된 고집은 ‘그 형에 그 동생’이었다. 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1997년 11월. 풍수지리 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최 회장이 사는 서울 워커힐 호텔 내 빌라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곳인 탓에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며 이사를 권했다. 그는 “그런 곳은 일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기간 머물며 살기에는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 전 회장이 풍수지리 연구를 위해 교수직을 내던진 최 전 교수의 소식을 듣고, 아무런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맺어졌다. 최 회장은 그러나 “집이란 어차피 일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며 “나는 이곳이 좋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집을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최 회장은 훗날 “형님처럼 기가 세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여기서 산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느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golders@seoul.co.kr ■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 ‘그룹부흥 한몫’ “손길승 실장은 단순히 내가 부려먹는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 동업자입니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일개 그룹 기획실장이 거액의 정치헌금을 다룰 수 있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손 회장을 경영 참모가 아닌 동반자로서 얼마나 믿고, 의지했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정태수 한보 회장의 ‘머슴론’과 비교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서열 4위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순석 전 ㈜선경(현 SK네트웍스) 부회장과 손길승 전 SK 회장, 김항덕 고문 등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들의 역할은 이 전 부회장이 ㈜선경, 김 고문은 유공(현 SK㈜), 손 전 회장은 경영기획실로 나눠진다. 특히 손 전 회장은 20년간 기획실에서만 근무해 직업이 ‘기조실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59학번 서울대 상대 동기 출신으로 때로는 ‘맞수’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회장이 1995년 가장 먼저 SK를 떠났으며, 한때 ‘좌(左)길승, 우(右)항덕’으로 불렸던 전문경영인 체제도 결국 손 전 회장의 단독 체제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김 고문은 손 전 회장이 당시 그룹 회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최종현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룹 회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결과, 그룹 전반을 꿰찬 사람은 손길승 전 회장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명분이나 이치에도 맞았고요. 그리고 나는 사심없이 회사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손 전 회장은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야인으로 물러났던 김 고문을 회장대우 상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회장 집무실 옆에 자신의 방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김 고문에게 제공했고, 경영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와 상의했다. 그러나 3인방 가운데 ‘SK호’에 가장 먼저 탑승한 사람은 이 전 부회장이다. 그는 1965년 4월 고 최종건 회장의 설득에 못이겨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수원 출신으로 최종욱 전 SKM 회장과는 초등학교 동기다. 김 고문은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하다가 69년 선경으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39세 때 대한석유공사의 수석 부사장에 올라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 전 부회장의 강력한 권유로 65년 12월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지난 40년간 고 최종현 회장의 평생 동지이자, 경영 전도사였으며,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그는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에 오른 최초의 전문경영인인 동시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건강 칼럼] 색깔음식과 색깔치료

    북극곰은 흰 털로 덮여 있고, 펭귄은 검다. 똑같이 추운 곳에 사는데 왜 색이 다를까? 곰은 힘이 센 대신 동작이 느려 먹이를 얻으려면 자신을 위장해야 하고, 펭귄은 위장에는 불리하지만 햇볕의 열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검은 색을 택했다. 마찬가지로 야채나 과일이 가진 독특한 색깔도 자기 방어를 위해 지니게 된 것이다. 이 자기방어의 색깔 속에 든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 인간에게 항암효과와 노화방지, 심장병 예방 등의 도움을 준다. 재밌는 것은 과일이나 야채의 색깔이 진할수록 효과가 크며, 우리가 입는 옷 등 주변의 색깔도 과일이나 야채처럼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빨간 토마토는 베타카로틴과 리코펜 성분이 많은데, 이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바뀌어 항산화작용은 물론 폐와 기관지 점막을 보호·재생 시켜 폐암 등을 예방해 준다. 토마토의 또 다른 성분인 리코펜도 담배의 발암작용을 차단한다. 또 빨간색 자체는 혈액 순환을 도와 손발이 차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에게 좋다. 보라색 포도 껍질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프렌치 파라독스’란 말까지 있다. 즉, 프랑스인이 고기나 햄을 많이 먹으면서도 심장병 발병률이 낮은 것이 바로 보라색 과일과 야채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보라색은 신진대사의 균형을 유지하고, 긴장을 풀며, 식욕을 억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게 지나치면 해가 될 수 있으므로 검은 콩, 레드 와인, 건포도 등을 일정량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이밖에 바나나(숙면효과)나 콩(유방암 예방), 흰색 양배추와 컬리플라워(위암 예방), 초록색 브로콜리(헬리코박터파이로리균 억제)와 키위(백내장 예방) 등 색깔만큼 효능도 가지가지다. 그렇지만 한가지만 먹는다면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항상 진한 색의 과일을 골고루 먹도록 권한다. 이제는 무지개색 식탁과 무지개색 옷으로 건강을 지켜 보자. 좀 광대 같으면 어떠랴. 건강을 지키는 일인데.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원장
  • 친구와 세월 낚으러-안성 고삼지

    친구와 세월 낚으러-안성 고삼지

    밤낚시의 유혹이 시작됐다. 은은한 달빛과 총총한 별들을 벗삼아 즐기는 밤낚시야말로 강태공들에게는 더없는 즐거움. 특히 평일에 짬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밤낚시는 손맛을 보기에도 그만이다. 하지만 대어를 낚지 못하면 또 어떠랴.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분주한 일상의 직장 동료들과 우정을 쌓는데는 밤낚시만한 것이 없다.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밤낚시를 떠나보자. 삶의 여유를 되찾아보자. ●회사에서 낚시터로 오래간만에 친한 대학친구 장성백(38)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밤낚시를 하러 가자.”는 것이다. 서울 충무로에서 영화 촬영감독 생활을 하는 그의 느닷없는 전화에 “오늘 8시는 돼야 끝나.”라고 얼버무렸지만 “그때 떠나 낚시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사는 이야기도 하다 아침에 돌아오자.”는 거듭된 요청에 얼떨결에 승낙을 했다.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에 친구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나 보다. 저녁 8시. 경치 좋은 안성의 고삼지로 향했다. 그가 영화 촬영을 하면서 몇번 다녀왔다는 곳이다. 서울을 출발해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다. 낚시터에서 저녁을 먹은 뒤 간단한 채비를 갖춰 조그만 쪽배를 저어 가까운 좌대에 자리를 폈다. 은은한 달빛과 별을 벗삼아 노를 저어 가는 운치가 그만이었다. ●달과 별을 벗삼아 난생 처음 좌대라는 곳에 올랐다. 저수지 위에 2평 남짓한 방갈로로 제법 아담했다. 아무도 방해하는 이가 없는 둘만의 세상이 됐다. 좌대에 오르자마자 친구는 낚싯대를 펴고 나는 버너를 켜 소주 안주거리를 만들었다.“수심이 생각보다 깊네.”라며 연신 찌를 맞추는 친구, 후르룩 후르룩 찌개의 맛을 보는 나. 애초부터 낚시보다는 친구가 그리웠던 탓일까. 난 마치 소풍온 기분이었다. 낚싯대를 좌대 받침에 고정하고는 떡밥, 지렁이를 매단 바늘을 저수지에 드리웠다. 그러고는 나란히 앉았다. 케미컬라이트(찌에 끼우는 야광체)를 단 찌가 어두운 호수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총총하다.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검은 저수지에 춤추는 케미컬라이트.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섬’이란 영화 봤냐. 김기덕 감독이 찍은 영화 말이야. 여기가 그 섬을 찍었던 곳이야.”라며 친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랬구나. 여기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산다는 것은 그런 거야 김기덕 감독의 ‘미인’을 함께 작업했던 친구는 영화 촬영감독이다.“요즘 무슨 영화를 찍고 있냐.”고 하자 “그냥 먹고 논다. 세월만 죽이고 있다.”는 친구. 요즘 영화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 중이란다. 자신과 맞는 작품, 탄탄한 시나리오를 찾기가 쉽지 않단다. 친구는 가슴이 답답하면 항상 밤에 차를 몰고 낚시터로 간단다.“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해. 세상 잡념이 없어지지. 너도 이참에 낚시에 입문하지 그래.”“임마 나는 낚시 담당 기자야. 입문은 벌써 했어.”“그런데 지렁이도 제대로 못 끼우냐.” 거기부터는 할 말이 없었다.“술이나 한잔 하지.” ●세월을 낚으며 이렇게 밤은 깊어만 갔다. 오랫만에 만나서인지 할말이 많았다. 갑자기 찌가 흔들린다. 대를 재빨리 낚아채었지만 물고기는 간데 없고 빈 바늘만 매달려 있다.“에이 빠르네.” 물고기는 잡아서 무엇하랴. 이렇게 편안한 곳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검은 적막만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밤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가득 담았다. ‘낚싯대론/고기만 잡는다 생각했습니다./별을 건지고, 뭉툭한 바늘로/상처도 꿰매는데/그저, 고기만 잡았나 봅니다./그대 살림망엔, 별 두 담고/인정도 담아, 향기 퍼집니다./내 살림망,/붕어만 담아 비린내/가득 합니다./어리석은 태공의 마음을,/호수에 띄워 보냅니다.’ 입에서는 시인 차이장씨가 쓴 시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새벽의 미명을 받으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으려니 어느덧 새벽이 밝아온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아름다운 고삼지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밤새 흔들리는 찌를 바라보고 “오늘도 ‘빵’(물고기를 한마리도 못 잡았다)이야.”라며 허허 웃고 가는 그들의 심정 말이다. 물고기를 잡는 즐거움은 덤이고 적막한 세상 속의 풍경과 아름다운 새벽의 모습을 즐기는 것이로구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친구 낚싯대의 찌가 보이지 않는다.“야 네 찌가 없어졌다. 뭐 해.”라고 외치자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낚싯대가 휘청거린다. 엄청 큰놈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물고기가 딸려 올라온다.“야 뭐야. 붕어 같지 않은데.”라고 하자 “에이 배스네. 분명히 이놈 피라미 먹었을 거야.”라고 응수한다. 바늘을 당기자 진짜 배스의 입에서 조그마한 피라미가 나온다.“에이 집에 가자. 오늘은 ‘빵’이다.”며 채비를 주섬주섬 챙긴다. ●황홀한 아름다움 양촌낚시 막내 사장이 “손맛 좀 보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넨다.“손맛은 무슨 손맛.”이라고 하자 “배타고 새벽 풍경이나 보고 잠깐 루어나 던져보세요.”라고 권유한다. 그의 말에 따라 조그만 배에 올랐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가르며 고삼지의 중심으로 나갔다.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8자 모양의 팔자섬, 그리고 상류의 동그락섬. 물안개 자욱한 육지 속의 섬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또 청송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꼴미’는 수중에서 자라는 10여그루의 버드나무로 운치가 그만이다. 좋았다, 밤낚시는. 경기도 안성 고삼저수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육지 속의 바다라고 할 만큼 넓은데다 경치가 아름다워 평일에도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1963년에 완공된 84만평의 저수지는 주변에 오염원이 없어 수질이 깨끗할 뿐 아니라 수초가 풍부해 붕어, 잉어, 배스 등 씨알 굵은 물고기들의 입질도 잦은 편이다. 고삼저수지의 속살을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방갈로형의 수상 좌대를 찾아야 한다. 수초와 버드나무가 우거진 월향리의 양촌낚시(031-672-3752)는 낚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수십개의 수상 좌대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또한 아버지때부터 무렵 30년간의 가업으로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는 막내 아들 유희재씨가 친절하게 포인트부터 조과까지 설명을 해준다. 좌대는 3인 기준으로 평일 4만원, 주말 5만원이다. 고삼저수지는 유료터로 노지에서 낚시를 할 때도 1인당 5000원씩을 내야 한다. ● 밤낚시 알고 가세요 밤낚시를 즐기는 시기가 무척 빨라졌다. 밤낚시의 묘미를 아는 사람들은 봄을 기다렸다가 5월 중순이면 밤낚시를 시작한다. 밤낚시의 장점은 피라미의 성화를 피할 수 있다는 점. 안정된 수온을 찾아 다소 깊은 곳에 숨어있던 붕어가 밤 시간대에 얕은 곳으로 이동해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모내기 철을 앞두고 배수로 인한 수위 변화가 심해 한낮보다는 밤이 붕어들의 경계심이 풀려 대물을 낚을 가능성이 높다. 강태공들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적한 밤에 조용히 풀 수 있다는 점도 밤낚시의 매력이다. 밤낚시는 낮낚시 기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가지 장비를 추가로 준비해야 어려움 없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밤낚시는 모든 행동이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는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낚시 기본 장비 외에 케미컬라이트와 랜턴은 필수. 어두운 밤 장비를 준비해야 포인트 이동시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랜턴은 불빛을 싫어하는 붕어의 습성상 가급적이면 사용을 피해야 한다. 수면을 바로 비추거나 다른 낚시꾼을 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케미컬라이트는 장비점에서 싼 가격에 살 수 있으므로 충분히 가져가는 것이 좋다. 야영장비와 취사도구, 식수와 간단한 식사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벽녘의 찬기운을 피할 수 있는 방한복과 장화, 그리고 이슬이나 비를 막을 수 있는 우의 등도 준비하는 편이 좋다. ●서강낚시 백화점에서 낚시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세일한다. 홍현사 우럭낚시 가방, 서울조구 수심측정기가 달린 장구통릴, 우럭대와 낚싯줄 포함 22만원짜리 세트를 13만 5000원에, 민물낚시를 할 수 있는 반카본 초보자용 낚싯대 3개. 받침대와 살림망, 찌, 줄, 바늘, 의자 등 25만원짜리 세트를 13만 5000에, 원다테크노스 스페셜 붕어 낚시대 3개와 4단고급가방, 고급찌 3개 등 59만원짜리 세트를 29만 5000원에 할인 판매한다.(02)717-6119. 안성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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