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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NASA 우주센터, 군사무기까지 개발 나서나

    美 NASA 우주센터, 군사무기까지 개발 나서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올해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세계 열강들은 화성 등 다른 행성 정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8월 국방부 산하에 ‘우주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우주 개발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서 우주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 항공우주국(NASA)이다. 1970년대부터 수많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환호하는 장면을 자주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NASA 본사보다 산하 10개 우주센터가 사실상 우주 개척과 비행체 개발, 발사 공간 등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 이들 우주센터에서 개발하는 비행체가 군사무기와도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NASA의 한 관계자는 11일(현지시간) “미 우주개발 현장 사무소라고 할 수 있는 10개 우주센터의 크기와 범위, 연구개발(R&D) 분야, 시험과 운영 등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면서 “우주센터에서 개발된 첨단기술들은 항공산업뿐 아니라 군수산업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우주센터 중 가장 유명한 플로리다 케네디센터는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국가의 핵심 시설이다. 민간 우주업체인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보잉 등도 케네디센터에서 우주선을 발사한다. 미 우주선이 카운트 다운 후 엄청난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는 장면을 연출하는 하는 곳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에임스센터는 케플러 망원경으로 유명하다. 2009년부터 우주를 스캔하고 있는 케플러 망원경은 2600여개의 외계 행성을 새로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에임스센터 내의 첨단 전산센터는 화성 같은 장거리 우주여행을 위한 우주선 설계를 검증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또 캘리포니아 라캐나다의 제트추진시험소는 주로 우주로봇 개발이 전문이다. 지난해 11월 화성에 착륙한 인사이트호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캘리포니아공대과 연계 우주선 엔진 등의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캘리포니아공대가 스탠퍼드대나 MIT보다 두 배 이상의 발명품과 특허를 보유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전기로 움직이는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암스트롱항공우주센터, 세계 최고의 우주 시뮬레이션과 우주선 테스트 시설을 가진 클리블랜드 글렌연구센터, 지구 대기환경과 우주 탐사 기술 개발을 주력하는 버지니아 랭글리리서치센터 등이 NASA 본사와 함께 미국의 우주 개척을 위한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기고] 생활체육을 더 육성해야 할 이유/이병진 대한체육회 감사실장

    [기고] 생활체육을 더 육성해야 할 이유/이병진 대한체육회 감사실장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체육 활동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강조돼 왔다. 기원전 10세기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아이들이 15세가 되면 계절에 따라 궁술과 무용을 가르쳤고, 수명을 높이기 위해 의료체조를 만들어 보급했다. 일찍이 고대 이집트는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수영의 오버핸드스트록 영법이 이 시대에 나왔다. 근세에 오면서 체육 활동은 더욱 강화된다. 독일 체조의 원조 프리드리히 얀은 “신체를 육성하는 것은 지적 소양을 갖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의무”라고 했고, 스웨덴 체조의 창시자 페르 헨리크 링은 체육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강한 체력과 용기를 심어 주려 했다. 덴마크는 프란츠 나흐테갈의 노력에 힘입어 유럽 최초로 체육을 독립 교과로 채택한 국가가 됐다. 오늘날 스포츠 활동은 국민의 기본권이자 복지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독일은 생활체육 정책인 ‘골든 플랜’을 15년간 두 차례에 걸쳐 추진했으며, 일본 역시 생애 스포츠 캠페인과 다양한 맞춤형 실버스포츠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1961년 “미국 민주주의의 힘은 크지만 운동을 통한 건강한 복지사회는 민주주의보다 훨씬 강하고 우선한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음미해 볼 일이다. 최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유승민 위원과 함께 2명의 IOC 위원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국제 스포츠 외교에서 새 중흥기를 맞게 됐다. 2032년 서울·평양올림픽 유치 계획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열기가 전문체육에만 머물지 말고 생활체육 현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물론 그동안 우리 정부도 다양한 생활체육 정책을 내놓았다. 지난해에는 ‘2030 스포츠 비전’을 발표하고 ‘사람을 위한 스포츠’를 모토로 내세웠다. 특히 공공 스포츠 클럽 시스템을 정착시켜 국민 모두가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접어든 시대에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계층별·연령별 맞춤형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 또한 지역 일선에 생활체육지도자를 대폭 확대 배치해 찾아가는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공공체육시설을 확충하고, 학교체육시설을 더 개방해 이용 문턱도 낮춰야 한다. 운동을 즐기고 싶어도 즐기지 못하는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정부와 국회가 생활체육 정책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다.
  • ‘음모왕’ 트럼프, 제 발등 찍었다

    ‘음모왕’ 트럼프, 제 발등 찍었다

    “클린턴, 엡스타인 연루” 리트윗 클린턴측 “웃기는 일… 진실 아냐” 친분 덮으려다 오히려 의혹 키워 오바마 케냐 출생 등 툭하면 음모 “내년 대선까지 음모론 이어갈 것”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복역 중이던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미 정·재계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절친인 엡스타인 사망에 대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의 연루 ‘음모론’을 제기하며 의혹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자신의 친분에 쏠리는 시선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의 연루 음모론 카드를 꺼냈지만 오히려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는 비판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연루 의혹을 키우는 꼴이 됐다. 11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사망 배후에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있음을 암시한 영상을 전날 트위터에 리트윗한 후 이날 오후까지 영상 조회 수가 500만이 넘었다. 이 영상은 보수 성향 코미디언 테런스 윌리엄스가 제작한 1분 30초짜리로 ‘엡스타인은 빌 클린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이제 그는 죽었다’는 내용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 소유의 개인 비행기를 여러 차례 이용하는 등 친분이 있었다. 이에 대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변인 앙헬 우레냐는 이날 “웃기는 일이며 물론 진실이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걸 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수정헌법 25조(궐위 시 부통령 대행)를 발동 안 시켰느냐”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1992년 자신의 별장에서 엡스타인과 파티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는 등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연루설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총격 사건 등을 덮기 위해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트윗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통령은 모든 것이 조사되기를 원하는 것”이라며 방어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2016년 대선 출마로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케냐에서 출생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대통령 출마 자격조차 없다’는 논리로 공격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 시민권자임을 입증하는 출생증명서를 공개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을 멈추지 않았다. 2016년 대선 경선 때는 경쟁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부친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연루됐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2017년 취임 직후에는 경선 기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이 소유한 트럼프 타워를 도청했다고 주장했다. CNN은 “모두 증거 제시 없는 음모론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CNN·뉴욕타임스 등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내년 대선 때까지 음모론 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주미대사 이수혁 빈자리, 청년후보 정은혜 내정…민주당 최연소 의원되나

    주미대사 이수혁 빈자리, 청년후보 정은혜 내정…민주당 최연소 의원되나

    주미대사에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내정되면서 정은혜(36) 전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이 이 의원의 자리를 이어받을 예정이다.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 15번이었던 이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문미옥 전 의원이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돼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그해 6월 비례대표 순번을 이어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정 전 부대변인은 공직선거법 200조에 따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절차를 통해 의원직을 공식 승계받는다. 이 의원이 2년가량 의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측과 아그레망 절차를 거쳐 최종 임명, 부임되면 비례대표 후보 16번인 정 전 부대변인이 빈자리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정 전 부대변인은 당시 청년 몫으로 비례대표 순번에 올랐다. 서울 출신인 정 전 부대변인은 신라대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통합당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청년정책단장과 부대변인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는 부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정 전 부대변인은 하버드 캐네디행정대학원 수료 중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해 딸을 출산하기도 했다. 정 전 대변인이 의원직을 승계하게 되면 20대 국회 민주당 내에서 최연소 국회의원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현재 민주당 최연소 국회의원은 김해영(42) 최고위원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지구 최강 생명체 ‘곰벌레’ 달에 산다?…우주선 추락서 생존 가능성

    지구 최강 생명체 ‘곰벌레’ 달에 산다?…우주선 추락서 생존 가능성

    지난 4월 11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비영리 민간단체 스페이스일(SpaceIL)의 무인 달 착륙선 베레시트가 달 표면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히브리어로 ‘창세기’라는 의미를 가진 베레시트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스페이스일이 개발한 달착륙선으로, 지난 2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이후 베레시트는 달 주위 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쉽게도 착륙에 실패하면서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지난 6일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주요언론은 현재 달에 곰벌레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뜬금없이 달에 지구 생명체인 곰벌레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추락당시 베레시트에 '곰벌레'가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당시 착륙선에는 3000만 페이지 분량의 인류 역사와 문명에 관한 데이터와 인간 DNA 샘플, 그리고 문제의 곰벌레가 실려있었다. 이는 지구가 멸망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인류 문명을 담은 데이터를 지구가 아닌 우주에 보관하자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곧 달에 도서관을 만들고자 한 것.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비영리단체 '아치 미션 파운데이션' 창립자인 노바 스피백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화물'이 그 임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스피백을 비롯한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곰벌레가 생존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는 극강의 생명력 때문이다. 태양이 꺼질 때까지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지구 최강의 생명체 곰벌레는 ‘물곰’(Water Bear)으로도 불리며 행동이 굼뜨고 느릿한 완보(緩步)동물이다. 몸크기는 50㎛(1㎛는 1m의 100만분의 1)~1.7㎜로 놀라운 것은 영하 273도, 영상 151도, 치명적인 농도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돼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곰벌레는 음식과 물 없이도 30년을 살 수 있는 사실상 불사에 가까운 존재다.      다만 언론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곰벌레가 달에 살아있을 수 있으나 번성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언론은 "달에 추락한 곰벌레들은 스스로 동면에 들어가 생물학적인 과정을 꺼버릴 것"이라면서 "이후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면 부활한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남순건의 과학의 눈] 기후변화 언제까지 의심할 건가

    [남순건의 과학의 눈] 기후변화 언제까지 의심할 건가

    뉴욕시장을 세 번이나 한 마이클 블룸버그는 정치인, 자선사업가 이전에 전기공학도였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재산이 많은 사람인 그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공헌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식 연설자로 나와 놀라운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블룸버그재단에서 5억 달러(약 6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탄소를 넘어서’라 불리는 그의 계획은 넘어야 하는 난관이 매우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달에 인간을 보내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고 어렵기 때문에 도전한다는 1960년대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목소리처럼 블룸버그는 2030년까지 미국의 모든 석탄발전소를 없애는 한편 새로운 가스발전소 건설을 완전히 막겠다는 등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단순히 과학기술적 접근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에 민감한 정치인과 비정부기구(NGO) 등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선거 때 기후변화 이슈를 부각시키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달에 가는 것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수많은 과학기술의 혁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 반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은 이미 많이 존재한다. 문제는 실제 기후변화의 추세를 되돌리려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기업들의 사업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유도할 수많은 규제와 법령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블룸버그는 이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고 기후변화 문제에 소극적인 정치인들은 과감히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기후변화 문제를 전쟁에 버금가는 비상시국처럼 인식하고 모두 합심해 수년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인류 문명의 종말이 금세기 내에 찾아올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한국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국민 생활 패턴과 산업의 변화에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그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전력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후변화 대응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60개국 중 한국은 거의 꼴찌인 57위다. 이미 많이 늦었다. 지금이라도 절망적인 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에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을 과감히 갈아치우는 운동이 전개돼야 한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통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 수십조원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증여하는 데만 몰두하는 국내 자산가들도 이제는 올바른 곳에 자신의 부가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들에게 올바른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하고 교육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탄소 배출 문제에는 내 편, 네 편이 있을 수 없다. 개개인의 생명이 달려 있고 인류 문명의 존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유엔사무총장이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 대응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내고, 교황이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지금 세대의 윤리적 의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인들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 정말 어쩌려고 이러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 것인가.
  • 케네디家에 또 비보, 로버트 F 전 법무의 손녀 시얼샤 약물과용 사망

    케네디家에 또 비보, 로버트 F 전 법무의 손녀 시얼샤 약물과용 사망

    정말로 이 가문에는 단명(短命)의 저주가 전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이며 법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F 케네디의 손녀 시얼샤 케네디 힐(22)이 1일(이하 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히아니스 포트에 있는 케네디 단지 안에서 약물 과용인 상태로 앰뷸런스를 불러 케이프 코드의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을 거뒀다고 영국 BBC가 2일 전했다. 시얼샤는 로버트 F 케네디와 에셀(91) 부부 사이에 다섯째로 태어난 코트니의 딸이었다. 손녀와 함께 살았던 할머니 에셀은 “오늘 이 세상은 덜 아름다워지게 됐다”고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더 이상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현지 일간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시얼샤는 보스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위중한 상태로 발견된 케네디 단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1960년대 여름 백악관으로 쓰던 곳이었다. 그는 1963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됐고, 동생이자 시얼샤의 할아버지인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 역시 1968년 암살로 세상을 등졌다. 대학 민주당원 연맹의 부회장이었던 그녀는 2016년 매사추세츠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 우울증 및 정신질환과 싸우고 있음을 털어놓았다고 NYT는 지적했다. 그녀는 “뿌리를 찾자면 중학교 입학 직후로 거슬러올라간다. 슬픔의 느낌이 내 가슴을 커다란 바위마냥 짓누른다”고 적은 일도 있었다. 이 가문의 슬픈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존 F의 형 조지프 케네디 2세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 전사했고, 누나 로즈메리는 정신지체로 태어나 뇌수술 실패 후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다 2005년 세상을 등졌다. 여동생 캐슬린은 1948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고, 남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은 2009년 세상을 등졌다. 패트리샤는 2006년, 아널드 슈월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사위로 맞는 마리아 슈라이버는 2009년 세상을 등졌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아일랜드 대사를 역임한 다섯 번째 딸 진 앤이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다. 그 다음, 흔히 말하는 케네디 가문의 5세대 중에는 존 F의 맏딸 아라벨라가 1959년 사산했고, 아들 패트릭이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같은 해 조산 중 죽었고, 존 F 2세는 1999년 비행기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 로버트의 아들 데이비드는 1984년 마약 과다복용으로 숨졌고, 동생 마이클은 1997년 스키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물론 5세대와 6세대 중에는 생존자가 훨씬 많긴 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로 저주”女노예에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노예 매질하면 보상”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레이건 “원숭이들 신발 불편해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인종차별적인 대통령이 수두룩했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런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성관계를 지속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사적인 대화 중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뉴욕타임스는 31일(현지시간) 로널드 레이건(40대) 전 대통령이 197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닉슨과 통화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원숭이들을 보기 위해, 빌어먹을”이라면서 “그들은 아직도 신발을 신는 걸 불펴해한다”고 말한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엔 그가 아프리카 유엔 대표부를 “식인종”이라고 부르는 것도 녹음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 나는 저주”흑인 노예와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친 노예 때리면 보상금”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 상영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 녹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더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같은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비방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재임 중 사적인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내 비망록은 노래 안에” 불멸의 디바와 만나다

    “내 비망록은 노래 안에” 불멸의 디바와 만나다

    조금의 냉소도 담지 않고 말하건대, 지금은 오페라의 시대가 아니다. 이제 오페라가 세간의 화제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서양의 1950~1960년대 오페라는 문화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러는 데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역할이 컸다. 이 영화는 ‘세기의 디바’로 불렸던 그녀의 음악적 성취, 그리고 “영원히 당신의 사랑과 존중을 필요”로 했던 그녀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무엇보다 감독의 개입이 두드러지는 내레이션과 마리아 칼라스 지인들의 인터뷰가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 작품에서는 오직 마리아 칼라스만 말하고 노래한다. 아니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오페라인 양, 마리아 칼라스는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한다. 실제로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비망록은 노래 안에 담겨 있어요. 그게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언어니까요.” 위에 언급한 대로 이 영화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적 성취에 집중하든지, 삶에 집중하든지. 둘 다 아우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이 글에서는 전자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유부녀였던 그녀가 그리스 선박왕으로 불린 아리스토 오나시스와 염문을 뿌렸다는 사실, 그런 아리스토 오나시스가 마리아 칼라스를 배신하고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할 사실이 있다. 이런 와중에 마리아 칼라스가 오페라 가수로 끊임없이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톰 볼프 감독은 비제의 카르멘 ‘하바네라’ 등 그녀가 공연에서 부른 아리아 영상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설령 이 영화를 통해 마리아 칼라스를 처음 알게 된 관객이라 할지라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가창들이다. 그녀가 온몸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표정과 제스처 역시 마리아 칼라스의 언어였다. 철학자 믈라덴 돌라르는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페라의 매력은 아마도 오페라의 이상한 시간성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장르로서의 오페라에 관한 설명이다. 종언을 맞이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오페라. 그것이 완전한 과거도 현재도 아닌 중첩된 시간대를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다. 한데 어쩐지 이 말은 마리아 칼라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래 문장이 그렇다. “오페라의 긴 생애의 여정 속에서 장엄한 죽음은 디바의 주된 직무였으며 그토록 많은 작품에서 그러한 죽음을 그토록 많이 겪은 이후에 그녀는 죽음에 대한 면역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마리아 칼라스는 수없이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어떤가. 그녀는 명실상부한 불멸의 디바가 됐다. 사후 4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마리아 칼라스는 노래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녀의 예술이 인생보다 길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달 넘어 화성으로”… 달 착륙 50주년, 美살인 폭염도 녹였다

    “달 넘어 화성으로”… 달 착륙 50주년, 美살인 폭염도 녹였다

    펜스 부통령, 탑승자 이름 한명씩 호명 암스트롱 첫발 뗀 시간에 ‘카운트다운’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폭염 속에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펼쳐졌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1969년 7월 20일 달 착륙선 ‘이글’을 달 표면에 내려 앉힌 ‘아폴로 11호’가 발사됐던 미 플로리다주 미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 우주센터는 이날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선장’ 닐 암스트롱(2012년 사망)의 동료 에드윈 올드린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아폴로 11호 39A 발사대 현장을 찾았고, 이 자리에는 암스트롱의 아들 릭도 함께했다. 행사장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관람객 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펜스 부통령은 암스트롱 등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언급하며 “아폴로 11호는 30세기에도 널리 기억될 20세기의 유일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NASA가 추진 중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1 루나’를 위한 우주선도 공개됐다. 올드린과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전날 백악관에 초청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에서 아폴로 11호만큼 자부심을 준 순간은 많지 않다”면서 “이제 달을 넘어 화성으로 미국인을 보내자”고 말했다. 이글이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내린 시각인 미 동부시간 오후 4시 17분과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딘 오후 10시 56분에는 미 전역에서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리는 등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암스트롱의 고향 오하이오주 와파코네타에서는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달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의 하프마라톤 대회가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인류의 달 착륙을 상징하는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를 위한 거대한 도약’이라는 문구를 걸고 뛰기도 했다. 미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경기장에서는 NASA 우주비행사 출신의 마이크 마시미노가 시구자로 나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 기념했다. 양키스 경기장은 50년 전 이글의 달착륙 소식이 장내에 전해지며 잠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씨줄날줄] 플라이 미 투 더 문/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플라이 미 투 더 문/이순녀 논설위원

    “나를 달까지 날아가게 해줘요. 별들 사이에서 뛰놀며 목성과 화성의 봄이 어떤지 보게 해줘요.” 작곡가 바트 하워드의 명곡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 처음 발표된 건 1954년이다. 원래 제목은 ‘인 아더 워즈’(In other words)였으나 가사의 첫 문장이 유명해지자 음반사에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여러 가수가 이 곡을 녹음했지만, 가장 히트한 건 1964년에 나온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반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연설에서 “10년 안에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며 아폴로 계획을 선포하면서 미국과 소련 간 우주경쟁이 치열해진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연인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 로맨틱한 노래가 달 탐사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케네디의 야심찬 계획은 7년 만에 실현됐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했고, 탐사선 이글호에서 내린 선장 닐 암스트롱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뎠다. 달 탐사선이 이륙할 때 선내에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시나트라의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후 달 착륙 기념행사나 영화 속 달 여행 장면에선 이 노래가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했다. 우주탐사 최정예 파일럿이었던 노인들이 40년 만에 우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2000년)에서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OST는 ‘플라이 미 투 더 문’이었다. 2009년 7월 20일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열린 달 착륙 40주년 기념식에서도 이 곡이 연주됐으니, 명실상부한 ‘달 탐사 주제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내일(20일)은 달 착륙 50주년이다.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쟁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들해졌다. 고비용 저효율에 정치적 명분도 퇴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가 마지막 달 탐사였고, 소련도 1976년 루나 24호 이후 달에 탐사선을 보내지 않았다. ‘달까지 날아가는’ 불가능의 영역을 정복한 지 반세기, 이제는 ‘별들 사이에서 뛰노는’ 시대를 향한 인류의 경쟁이 한창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까지 달 궤도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를 만들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1월에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달 뒷면에 최초로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2035년까지 유인 우주선을 보내 달에 기지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도 2030년까지 유인 달 탐사선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무인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하지만 갈 길이 멀다.
  • 아마존 회장 “지구는 파괴중…인류위해 반드시 우주로 가야”

    아마존 회장 “지구는 파괴중…인류위해 반드시 우주로 가야”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이자 민간우주업체 ‘블루 오리진’을 이끌고 있는 세계 최고부자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 탐사에 대한 흥미로운 인터뷰를 진행해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베이조스 회장은 미국 CBS 이브닝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구의 운명과 우주 탐사라는 거시적인 주제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베이조스 회장은 "인류 문명을 계속 번창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주로 가야한다"면서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지구는 상대적으로 작다. 특히 기후변화와 오염 등으로 지구는 파괴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인터뷰는 반세기 만에 다시 우주 탐사의 중심으로 돌아온 달을 화두로 놓고 진행됐다. 특히 오는 20일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 50주년이다. 이 인터뷰에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롤라인 케네디가 동석했는데, 아폴로 11호 미션은 미·소 우주개척 경쟁에 자극받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달 착륙은 닉슨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이뤄졌다.베이조스 회장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도 우주 탐사는 중요하다"면서 "태양계의 다른 행성이나 달을 산업화, 농업화 할 수 있으면 이 물건이나 자원을 다시 지구로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도로 발달된 복잡한 물건을 우주에서 만들면 큰 공장과 오염 발생 산업을 지구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베이조스 회장의 바람처럼 실제 블루 오리진의 우주 탐사는 착착 진행 중이다. 특히 베이조스 회장은 지난 5월, 3년 간 개발해온 달 착륙선 ‘블루문’의 실물 모형을 공개하며 탐사에 포문을 열었다. 블루문은 2024년까지 달의 남쪽 극점인 얼음층에 착륙하고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여기에 우주 탐사의 본산인 미 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2024년까지 달 궤도 우주정거장인 ‘게이트웨이'(Gateway) 건설을 발표했으며 중국, 인도, 일본 등도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부친 상태다. 이처럼 현재 우주 탐사의 화두는 달이다. 미·소 냉전으로 시작된 달 탐사 경쟁은 포스트 냉전 체제로 접어들면서 실용적인 궤도 위성 발사 경쟁으로 바뀌었다. 이에 달은 가깝고도 먼 천체가 됐지만, 다시 달은 화성 등 더 우주로 가는 전초기지 후보가 되면서 탐사 경쟁에 불이 붙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모나리자’ 밤새 이사, 루브르 711번 방→갤러리 메디치 딱 100 걸음

    ‘모나리자’ 밤새 이사, 루브르 711번 방→갤러리 메디치 딱 100 걸음

    ‘모나리자’가 밤 사이 이사를 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이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은 2005년 이후 14년 동안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스테이트 룸에 머물러왔다. 보통 711번 방으로 불린다. 그런데 16일(이하 현지시간) 밤 사이 메디치 갤러리란 다른 방으로 옮겨져 다음날부터 10월까지 일반에 공개된다. 루브르는 지난 5년 동안 3만 4000㎡ 이상을 리노베이션했고 이 가운데 갤러리 면적만 1만 7579㎡였으며 이제 스테이트 룸 순서가 돼 모나리자의 미소를 옮기게 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사실 이 방에서의 작업은 지난 1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모나리자 주변에서만 작업을 진행해오다 이제 벽에서 이 명작을 떼내 옮겼다. 같은 방에 있던 베로네세(Veronese)의 ‘카나에서의 결혼 피로연’ 같은 작품들은 보호 케이스에 들어간 채로 남아 있는다. 모나리자가 옮겨간 갤러리 메디치는 이 박물관에서 가장 큰 방 가운데 하나다. 이 명작을 옮기는 일은 힘들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현저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박물관장인 카트리오나 피어슨은 “작품의 가치와 상관없이 늘 위험은 따른다. 우리는 비슷한 식으로 많은 작품을 옮겼는데 말하자면 아주아주아주 조심히 움직인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인원 숫자도 가능한 최소한으로 하려 한다. 당연히 많이 움직일수록 위험은 커지기 때문이다. 장 룩 마르티네스 루브르 관장은 AFP통신에 “갤러리 메디치와는 100 걸음”이라고 밝혔다. 저녁에 모든 관람객이 빠져나간 뒤 직원들은 명작과 똑같은 크기의 목재 케이스를 먼저 옮겨본다. 몇 걸음이나 떼야 하는지 살피며 회전 각도나 주의할 점을 짚어보는 것이다. 이번처럼 박물관 안 다른 방으로 이사 가는 것은 단순하지만 해외로 떠나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계획을 세우는 데만 1년이 걸린다. 모나리자 역시 1974년 러시아와 일본, 1963년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찾았다. 1962년 앙드레 말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재키 케네디 여사가 미국인들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들어준 것이었다. 말로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서양을 건너다 훼손될 것을 우려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당시 수만 명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몇 시간씩 줄을 선 끝에 몇초 정도 스치듯 쳐다보고도 즐거워했다.시계를 1911년으로 돌리면 빈센초 페루지아가 루브르에 침입해 모나리자를 훔쳐갔다. 관람객들이 빤히 쳐다보는데 페루지아가 너무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그림을 떼낸 다음 들고 나가 모두 직원이겠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페루지아는 이탈리아 갤러리의 직원으로 다빈치의 명작이 루브르에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2년 뒤 피렌체에 모습을 드러냈고 1804년부터 이 작품을 소장해 온 루브르는 되찾았다. 피렌체 시는 2013년 이 명작을 임대 전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루브르는 딱 잘라 거절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아폴로 11호 발사된 9시32분 기념하기 위해 50년 만에 그 자리에

    아폴로 11호 발사된 9시32분 기념하기 위해 50년 만에 그 자리에

    16일(이하 현지시간)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위업을 달성한 아폴로 11호 로켓이 발사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대장인 닐 암스트롱(2012년 작고)과 동료 버즈 올드린(89)이 달 표면을 밟는 장면을 달 궤도를 선회하는 모선에서 지켜본 마이클 콜린스(88)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를 찾아 정확히 50년 전 로켓이 발사된 오전 9시 32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성대한 기념 행사들이 잇따라 진행된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인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한 콜린스는 로켓이 발사됐던 39A 발사대 앞에서 연설을 통해 이륙하는 동안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그는 NASA-TV 인터뷰를 통해 “로켓의 힘이 그대로 진동으로 전해져 날 때렸다. 온몸이 떨렸다. 힘이 의미하는 완전 다른 의미의 컨셉트를 내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륙할 때 조종석에서 버티고 있었는데 그 뒤 조용하고 이성적인, 달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질주가 시작됐다”면서 “우리 어깨에 세계의 무게가 실렸음을 느꼈고, 모두가 우리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적이나 동지나”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동료 우주인들이 자신처럼 발사 장소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달 착륙 과정을 복원하는 작업에 필요한 돈이 닷새 만에 50만 달러 이상 모금된 가운데 이번 주 내내 기념 행사가 이어진다. 암스트롱이 임무 도중 입었던 우주복이 국립우주항공박물관에서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시된다. 마크 펜스 부통령은 “아폴로 11호는 30세기가 돼도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닌 20세기의 유일한 사건”이라면서 “이 국가의 삶과 헤아릴 수 없는 이 세계의 역사에 대단한 기여였다”고 밝혔다.세 우주인은 새턴 파이브 로켓의 맨 위에 실린 아폴로 우주선 모듈에 앉아 발사된 지 11분 만에 궤도에 진입했고, 나흘 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 암스트롱은 6억 5000만명이 숨을 죽이며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는 가운데 첫 발자국을 남긴 뒤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란 말을 남겼다. 당시 250억 달러가 들어간 달 착륙 임무에 40만명 정도가 매달렸다. 그들은 지구로 귀환해 24일 태평양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인류의 달 착륙 50주년… 아폴로 11호 ‘타임라인’ 경매

    50년 전인 1969년 7월 16일 오전 9시 32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가 발사됐다. 우주센터 인근의 해변과 도로에는 약 100만명이 이 발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 린든 존슨 전 대통령 부부, 전설적인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토크쇼 진행자 자니 카슨까지…. 오지 못한 이들은 TV로 지켜봤다. 발사 나흘 뒤인 20일 오후 4시 17분 착륙선 모듈인 이글호에서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기지다. 이글호가 착륙했다”는 교신이 날아왔다. 다음날인 21일 오전 10시 56분 선장 닐 암스트롱(1930~2012)은 이글호에서 나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18분 뒤 버즈 올드린(89)도 내렸다. 이들이 달을 걸은 시간은 2시간 30분. 아폴로 11호는 24일 오후 12시 50분 태평양에 풍덩 빠지면서 지구로 돌아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인류가 달 표면을 밟은 지 오는 20일로 50년이 되면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부분월식이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17일 새벽 관측될 것으로 예상돼 인류의 달 착륙 축하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아폴로 11호의 ‘타임라인(시간표)수첩’도 18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다. 다음달에는 올드린이 소장한 11가지 아이템이 경매에 부쳐진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달에 첫 발자국 남긴 지 50년… 인류, 다시 ‘문’을 두드리다

    달에 첫 발자국 남긴 지 50년… 인류, 다시 ‘문’을 두드리다

    美·소련 냉전으로 촉발… 예산 201조원 투입 과학적 탐구대상이라는 사고 전환 가져다줘 NASA, 반세기 지나 ‘아르테미스’ 계획 발표 2024년까지 달궤도 우주정거장 건설하기로“우리는 10년 내로 달에 사람이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갈 것이며 다른 여러 가지 일도 할 겁니다. 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5월 25일 상·하원 합동연설과 이듬해 9월 12일 라이스대 연설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달 착륙을 현실화하겠다는 첫 목소리였다.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 “엄청난 폐허로군요.” 1969년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미국 동부시간),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내디디며 낸 목소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답이었다.냉전체제하에서 미국과 경쟁하던 구소련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1961년 4월 12일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배출하면서 우주탐사에서 한 걸음 앞서 나갔다. 이에 미국은 소련이 달성하지 못한 목표인 ‘인간의 달 착륙’이라는 카드를 내놨다. 그러나 당시 미국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1960년대 말까지 사람을 달에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세 가지의 유력한 방식이 제기됐는데 가장 먼저 고려됐던 것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을 달에 직접 발사하는 ‘직행 도달’ 방식이었다. 가장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달까지 사람을 보낼 정도의 거대한 로켓이 다시 달에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이륙할 수 있겠냐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폐기됐다. 다음으로 지구 저궤도에 여러 로켓을 쏘아올려 우주공간에서 도킹시켜 조립한 다음 달로 보내는 ‘지구궤도 랑데부’ 방식과 사령선, 착륙선으로 이뤄진 우주선을 타고 달까지 간 다음 착륙선만 달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사령선과 결합해 지구로 복귀하는 ‘달궤도 랑데부’ 방식이 제기됐다. 결국 시간과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달궤도 랑데부 방식이 채택됐다.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약 10년 동안 이어진 아폴로 프로그램에 공식적으로 투입된 예산은 약 254억 달러로 현재 물가가치를 반영하면 약 1700억 달러(약 20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달 착륙 프로그램이 순조로웠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은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쳤다. 1967년 아폴로 1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우주인 3명은 모의시험 훈련 중 전선에서 튄 스파크로 인해 발생한 화재 때문에 우주선 안에 갇힌 채로 사망했다. 1968년 12월 달 궤도에 처음 진입한 아폴로 8호에 이어 6개월 사이에 9, 10호를 발사해 달 궤도의 안정적 진입을 재시험한 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마침내 달에 착륙하게 됐다. 달에 첫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은 미 해군 비행사로 한국전에 참전해 78차례의 전투비행 임무를 수행했고 서울 수복에 공을 세워 3개의 훈장을 받기도 한 베테랑 비행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전 원장)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대해 “달이 더이상 신화나 이야기 속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가 가능한 대상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우주경쟁 시작에서는 러시아가 우세했지만 유인 달 탐사 분야에서는 미국이 완벽하게 승리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식의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던 달이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달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40주년이 지나고 201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과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우주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인도, 일본 같은 신흥 우주강국들까지 다시 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NASA는 2024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달 착륙 프로그램의 이름을 ‘아르테미스’로 정했다. 1960년대 추진했던 달 착륙 프로그램의 이름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아폴로’로 정한 것에 대해 쌍둥이 여동생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로 정한 것이다. 아르테미스는 공교롭게도 영화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가 2017년 발표한 SF 소설 제목과도 일치한다. 소설 ‘아르테미스’는 70년 뒤 인류가 달에 정착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우주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처럼 달 궤도에 ‘게이트웨이’를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ISS 참여국가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게이트웨이는 우주인이 수개월 동안 머물면서 수시로 달을 탐사하고 달 토양이나 암석 등을 채취해 바로 분석할 수도 있으며 달 표면에 기지를 짓는 일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될 전망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아프리카 최초로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꿈 모터바이크 참변에 물거품

    아프리카 최초로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꿈 모터바이크 참변에 물거품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이 모터바이크 사고로 한 순간에 스러지고 말았다. 수도 프리토리아 출신으로 2013년 남아공 공군에 몸담고 있던 만들라 마세코는 100만명이 응모한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우주인 선발 시험을 통해 숱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2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됐다. ‘아프로놋(Afronaut)’이나 ‘스페이스 보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아프리카인 최초의 역사를 써나갈 꿈에 부풀었는데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도로 위에서 서른살 짧은 삶을 마감했다고 영국 BBC가 유족들의 성명을 인용해 8일 전했다. 그는 2015년에 예정됐던 한 시간에 걸친 준궤도(sub-orbit, 인공위성 궤도보다 낮은) 비행을 앞두고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일주일 테스트 훈련을 받았는데 불행히도 연기됐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다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전형적인 시골뜨기인데 우주로 나가는 일생일대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고 겸손해 했던 마세코는 우주로 나가면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 출신 배경에 관계 없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동기를 심어주고 고무하고 싶다고 밝혔다. 직접 우주에서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멋진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BBC 인터뷰를 통해 “나도 닐 암스트롱이 그랬듯이 한줄 명문을 남겨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미국 우주인 암스트롱은 1969년 달 표면을 인류 최초로 걸은 뒤 “한 남자에게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란 멋진 말을 남겼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美 무인 비밀 우주왕복선 ‘X-37B’ 지상 카메라에 포착

    [핵잼 사이언스] 美 무인 비밀 우주왕복선 ‘X-37B’ 지상 카메라에 포착

    비밀에 싸여있는 미 공군의 무인 우주왕복선 X-37B의 모습이 지상의 천문학자에 의해 포착됐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스페이스닷컴, 라이브 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들은 네덜란드의 천체사진가이자 천문학자인 랄프 반데버그가 촬영한 X-37B의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에서 지난 2일 사이에 포착된 X-37B는 대충의 윤곽만 보일 뿐 전체적으로 선명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X-37B의 모습을 지상에서 촬영하는 것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포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X-37B는 현재 지구 저궤도와 고궤도를 넘나들며 모종의 임무수행 중이다. 이 때문에 그 궤도를 사전에 파악해 지상에서 촬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반데버그는 "X-37B를 촬영하기 위해 몇달 동안 계속 추적해오다 결국 꼬리를 잡았지만 지난 6월 중순 관측하려 했을 때 다른 궤도로 교묘히 빠져나갔다"면서 "아마추어 위성관측망 덕분에 다른 궤도에서 발견해 그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X-37B는 은퇴한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의 축소판처럼 보였으며 실제로도 작은 물체"라면서 "고도가 300여㎞에 불과해 세부적인 이미지 수준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현지 언론이 X-37B에 흐릿한 사진에도 관심을 갖는 것은 베일에 싸인 임무 때문이다. X-37B는 보잉사가 제작한 기체로 전체길이 8.8m, 높이 2.9m, 날개 길이는 4.6m다. 임무와 목적, 비행시간 등이 모두 비밀에 부쳐져 있는 X-37B가 우주로 나간 것은 이번이 벌써 다섯번 째로, 지난 2017년 9월 7일 플로리다의 NASA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 팰콘 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X-37B가 처음으로 발사된 것은 지난 2010년 4월 22일이며 각각 224일, 468일, 675일, 718일을 우주에 머물다 귀환했다. 이번에도 역시 600일을 훌쩍 넘겨 우주에 머물고 있지만 미 공군은 여전히 ‘모르쇠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 공군 측은 “X-37B의 주요 목표는 우주에서 재사용을 시험하고 지구로 돌아오는 운영 실험”이라고만 밝히고 있다.보도에 따르면 X-37B는 각 임무 때마다 로봇팔이 장착된 화물 적재 칸에 뭔가를 싣고 우주로 나갔다. 이번 임무에서는 미 공군의 공표로 ‘첨단 구조상 내장형 열 분산기-II’(ASETS-II·Advanced Structurally Embedded Thermal Spreader II)라는 장비가 실린 사실이 알려졌다. 미 공군연구소가 개발한 이 장치는 장기간 우주 환경에서 실험용 전자장치 등을 시험할 수 있다.   그러나 X-37B의 임무는 순수한 실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X-37B의 관제 임무는 콜로라도 주(州) 슈리버 공군기지에 주둔 중인 제3우주실험대대(3rd SES·3rd Space Experimentation Squadron)가 맡고 있다. 이 대대의 임무가 인공위성 등에 관한 정보 등을 수집한다는 점에서 X-37B가 우주 궤도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몇몇 군사 전문가들은 X-37B가 군사정찰이나 적국의 스파이 위성 파괴, 인공위성 포획, 심지어 우주 폭격기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美, 중국산 추가관세 중단… 트럼프·시진핑 무역협상 재개 합의

    美, 중국산 추가관세 중단… 트럼프·시진핑 무역협상 재개 합의

    핵심 쟁점 최종 합의까지는 쉽지 않을 듯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한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잠정 중단과 무역협상 재개 등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휴전 기간도 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견을 보였던 핵심 쟁점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따라서 미중이 무역전쟁 확전은 피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과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당분간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한다”며 회담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미 기업들이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와 일부 거래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미 기업들이 화웨이에 장비를 판매할 수 있다”면서 “국가 안보와 관련해 큰 문제가 없는 장비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두 나라 정상이 무역협상 복귀용 리셋 버튼을 누른 것”이라며 “최소한 전 세계 산업계와 금융계 등이 우려해온 무역전쟁 격화는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미중 정상이 만났지만 지식재산권 보호와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을 위한 중국의 법률 개정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미중 정상이) 근본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어떤 주요한 돌파구 신호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장 핵심 이견인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법률 개정 약속’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합의를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우리가 중단했던 지점에서부터 중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법률 개정 약속을 번복하기 전의 상황을 미중 무역 재협상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은 법률 개정 약속을 합의문에 명시하는 문제에 대해 ‘균형된 합의’를 주장하며 거부했고 미국은 중국의 합의 미이행 시 제재용 법률 개정과 스냅백(합의 미이행 시 제재 복귀) 도입에 대한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또 중국이 협상 개시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화웨이 제재 해제도 명확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풀겠다는 것인지, 부분적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인지 불투명하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구명 밧줄을 던졌지만 화웨이가 안전한 항구까지 도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협상이 복잡하다”고 언급한 것처럼 미중이 핵심 쟁점에 대한 최종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미중 휴전 합의에도 어느 쪽도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미중은 진정한 합의에 도달하기보다 계속해서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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