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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협력” 강조에 박수 20여차례/김대통령­방미 여로

    ◎“한국전 영령 추모… 참전의원 28명에 경의”/교민들엔 30여분간 원고없이 격려연설 김영삼 대통령은 국빈자격의 미국 수도 워싱턴 방문 이틀째인 26일 상오(한국시간 26일 자정·이하 현지시간)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뒤 한국경제인들과 오찬을 나누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알링턴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묘에 헌화했다. 김대통령은 전날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차례로 접견한 뒤 현지교민들을 위해 리셉션을 베풀었다. ○의원들 기립박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김대통령이 우리나라에 TV로 생중계된 가운데 「21세기 아·태시대를 향한 협력­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동안 상·하원 의원들은 18여차례에 걸쳐 박수로 호응했다. 특히 의원들은 『한국의 전선에서 고귀한 젊음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대목 등에서는 기립박수로 호응했다.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승만·노태우전대통령에 이어 김대통령이 세번째. 상오10시45분쯤 공식수행원들과 함께 의사당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는 레이저 국무부의전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의사당 남쪽입구를 통해 2층 접견실로 갔다. 김대통령은 접견실에서 상·하원 영접의원단 20여명과 악수를 나누고 10여분동안 환담한 뒤 하원경호대장의 안내로 하원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김대통령이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례에 따라 육성으로 입장이 고지되자 회의장 참석자 전원은 기립박수로 김대통령을 맞았다. 연단에 오른 김대통령은 스트롬 서몬드 상원임시의장,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고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소개로 의원들에게 목례를 한 뒤 박진공보비서관의 순차통역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연설 서두에 『우리 국민은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한국을 이루기까지 언제나 든든한 벗이 되어온 미국국민에게 뜨거운 우정을 느낀다』고 인사를 했다. 김대통령이 이어 『한국의 전선에서 고귀한 젊음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모든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약관 19세의 나이로 참전한 찰스 랑겔 의원을 비롯한 28명의 의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자 의원들은 박수로 답례했다. 김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21세기 아·태시대를 향한 협력 아래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전진시켜나가자』고 강조한 뒤 『모든 것이 유한하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열망은 영원하다』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김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고 김대통령은 회의장을 가로질러 퇴장하면서 통로 좌우편의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이어 다시 접견실로 가 기념촬영을 한 뒤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상호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부인 손명순여사는 3층의 특별방청석에서,공식수행원 12명과 황명수의원 등 18명의 방미의원단및 대사관 간부 등은 본회의장 오른쪽 특별석에서 연설을 경청했다.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 워싱턴의 알링턴국립묘지를 방문했다. 예포 21발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국립묘지 무명용사탑 동편 입구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레이저 묘지의전장,고든 워싱턴 관구 사령관및 럭 주한미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았다. ○무명용사탑 헌화 김대통령은 고든 소장으로부터 행사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무명용사탑 앞에 도열한 의장병이 받쳐든 태극기에 경례를 했다. 미 군악대의 애국가및 미국국가 연주가 끝나자 김대통령은 무명용사탑 최상단 지정위치로 이동,무명용사탑에 헌화를 한 뒤 잠시 묵념. 김대통령은 이어 무명용사탑 오른쪽으로 이동,고든 소장으로부터 비문과 무명용사탑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무명용사탑 헌화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 장관과 김동진 합참의장을 비롯한 공식수행원 전원이 참석했다. ○한 미 최상의 관계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은 25일 하오 워싱턴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멀지 않은 캐피털 힐튼호텔로 교민 8백여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다과를 베풀고 격려했다. 리셉션장 입구에서 최병근 워싱턴지역 한인회장 등의 영접을 받은 김대통령은 6인조 실내악단이 「선구자」와 「메기의 추억」을 연주하는 가운데 리셉션장에 입장,교민들과 악수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헤드테이블에서 태권도사범 이준구씨등 교민 7명을 지명해 교민의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30여분동안 원고 없이 격려연설을 했다. 김대통령은 『이번 워싱턴 국빈방문에서는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해 6·25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양국의 우의를 거듭 확인할 것』이라고 방문의미를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지금의 한·미관계는 최상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양국은 작년 교역량이 4백25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올해는 5백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다음달 남북한 3차 쌀회담에서는 순수한 입장에서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라고 소개하고 『통일문제를 환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독일의 통일처럼 언제 갑자기 닥칠지 아무도 예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6·27지방선거와 관련,『34년동안 중단된 지방자치제를 전면부활시킨 자부심과 함께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선거에 보람을 느끼며 지방자치정착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교민들은 김대통령이 특히 부정부패척결 등 개혁의지를 강조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이날 리셉션에는 민자당의 권익현고문과 오세응·김종호·황명수·김동근의원,민주당의 조순승의원,자민련의 구자춘의원 등 국회 국방위와 통일외무위 소속 여야의원도 참석했다. ▷크리스토퍼 장관 면담◁ ○…김대통령은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의 예방을 받고 한·미정상회담,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워싱턴의 더운 날씨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이어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방문을 받았다. 김대통령이 야당총재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인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의 미국방문이 성공을 거두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전하고 어머니 로즈여사의 자서전을 증정했다.
  • 조작된 신화 존에드거후버/앤터니 서머스 지음(화제의 책)

    ◎FBI국장 지낸 후버의 추한 사생활 폭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전신인 「수사국」국장으로 출발,수사국을 FBI로 확대했으며 77세로 숨질 때까지 국장 자리를 놓지 않은 사나이 존 에드거 후버의 일생을 다뤘다.세상을 떠난지 20여년이 흐른 요즘도 그는 미국민 대부분으로부터 「용기와 애국심의 화신」처럼 존경 받는다. 그러나 후버의 참모습은 권력을 끝까지 추구한 편집광에 불과하며 사생활도 추잡했다고 이 책은 밝힌다.「결혼도 마다하고 자신의 일생을 온통 국가안보와 치안유지에 바친 국가적 영웅」이라는 이미지도 조작됐다는 것. 후버가 재임한 동안 8명의 대통령이 거쳐갔다.이 가운데 케네디·닉슨등 여러명이 그를 해임하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그들은 모두 후버에게 결정적인 약점들이 잡혀 있었다.민주주의의 메카라는 미국에서 후버가 48년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후버는 동성연애자에다 흑인을 노골적으로 경멸한 인종차별주의자기도 했다. 이 책은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도 한 인간에게 장기간 특정권력을 맡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안기부 1차장을 지낸 정형근변호사가 우리말로 옮겼다. 고려원 각권 6천5백원.
  • “기업이 정부위에 서선 안된다”­최회장/전경련세미나서 시국관 피력

    ◎한강다리 모조리 다시 건설해야 할것/지자체장들과 현재론 대화계획 없어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5개월만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지난 2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했다가 홍재형 경제부총리를 방문,「진사」를 하는등 곤욕을 치렀던 최회장은 21일 제주에서 전경련 출입기자단과 만나 정부와 재계와의 관계를 비롯해 최근의 잇단 대형사고등 시국현안을 보는 입장을 피력했다. 최회장은 이날 전경련 주최 제9회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에 참석한뒤 기자들과 1시간30여분동안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평소 판단이 내려지면 거침없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스타일인 그는 이날 5개월 전의 「설화」를 의식한 듯 바람직한 정부와 기업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기업가가 정부 위에 서려고 해서는 안된다.미국에서도 과거 유에스 스틸이 케네디 대통령과 싸우다가 혼이 났었다.현재의 클린턴 대통령에게 대항하려고 하는 기업이 있느냐』고 말해 종전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인 세계화 시대에도 기업이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것이 하나 있다.바로 행정부의 규제이며 그것이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라며 정부의 행정규제에 여전히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 최회장의 지방화 시대에 대한 인식은 다소 부정적이었다.『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1인당 GNP(국민총생산)를 3만달러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지 꼭 지방자치가 아니지 않느냐』고 다소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해찬 서울시 부시장의 서울시 지하철 노조 해직자 복직발언 파문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경영에 큰 영향을 주는 정치적인 이슈들을 많이 제기할 것으로 보고 재계차원에서 이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다만 현재로서는 새로 선출된 시·도지사등 지방자치단체장들과의 대화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최근의 잇단 대형사고에 대한 인식이다.그는 먼저 『삼풍 참사를 며칠이고 계속해서 TV에 비춰대는 등 언론이 우리 사회의 어글리 페이스(추한 면)만을 지나치게 보도했다』고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이어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고는 그 원인이 과거 전쟁이 빚은 유산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특유의 생각을 밝혔다. 6·25전쟁때 이승만 정권이 남하하면서 한강다리를 부수느라고 애먹었고 수복후 다리를 재건하는데도 매우 힘들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전쟁의 유산이 다리를 부실하게 건설하는 요인중 하나가 됐으며 삼풍백화점 참사도 부지불식간에 그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나아가 『서울에 있는 한강다리는 모조리 다시 건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전기가 되려면…/김종수 도서출판 한울대표(굄돌)

    서양에서는 인기 도서분야 중의 하나가 자서전이나 전기류의 책들이다.「뉴욕타임스 북리뷰」 등 유수한 도서비평잡지를 보면 전기류의 책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스타」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가,경제인,학자등 유명인사 또는 일견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전기류의 책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서전이나 전기류가 인기가 없다.간혹 각계 스타들의 홍보성 전기가 눈에 띄긴 하지만 전기류라면 일단 인기가 없는 품목이다.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전기나 자서전이 객관성이나 역사성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한 인물의 자기 홍보에 치중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식상해 하는 것은 아닐까.얼마전 월남전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이던 맥나마라의 자서전이 미국 밖에서까지 크게 관심을 끈 적이 있다.자서전이야 어차피 얼마쯤은 자기 홍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이 몸담았던 역사에 대한 회고와 검증이 실려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랑이라면 누가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전기라고 다를 바가 아니다.살아있는 사람이라면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전기는 거의 나오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일지라도 후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한마디로 전기가 객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물홍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미국의 트루먼이나 케네디에 대한 전기는 주목할 만한 것만 꼽더라도 수십종이 될 것이다.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이승만이나 박정희 혹은 여운형이나 김일성에 대한 전기 중에 역사적 엄밀함을 갖춘 전기가 과연 몇 종이나 될까.아니 있기나 한 것일까.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자세,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보이려는 자세,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비판적인 입장이라도 기꺼이 수용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자서전이나 전기가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문화의 한 구석임에 틀림없다.
  • 「남한 쌀」 수용은 북한변화 의미/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김일성 사후 1년동안 북한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4가지의 특기할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첫째는 김정일이 북한의 정치,이념적 최고위직인 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둘째는 북한과 미국의 접근이다.그리고 셋째는 북한이 남한에 쌀원조를 요청한 것.넷째로 북한지도부가 새 경제정책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많은 관측통들은 그의 아들이 즉각 권력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생각했다.후계문제는 신속히 해결하는 게 좋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의례적인 관행이다.어떤 국가든 분명하고 정통성 있는 지도자를 갖는 게 중요하다.그렇지 않으면 그 국가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갖은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권력이란 잡아야될 사람이 빨리 잡지 못하면 누군가 눈독을 들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국가에서는 권력승계가 법절차에 따라 공개리에 이루어진다.그리고 아주 신속히 처리된다.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후임대통령은 불과 수시간만에 취임했다.반면 전체주의국가에서는 이것이 비밀리에 신비스런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하지만 이 경우에도 시간적으로는 민주국가보다 더 빨리 이루어진다.소련에서 안드로포프 사망 뒤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 승계는 1시간 반만에 결정됐다.이런 권력승계과정의 신속성은 역사적으로 중국·폴란드·브라질·모로코등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부모 상중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전통을 이유로 이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그러나 이 이유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첫째 진정으로 부모 애도를 국사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지도자 자질에 문제가 있다.실질적으로 김정일은 부모 애도를 하면서 국가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당·정부기구도 그가 장악하고 있다.「이상한 애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김일성 부자는 한국적인 전통가치보다도 권력을 더 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이다.무소불위의 권력을 확보키 위해 김일성은 모든 정적,심지어 친구까지도 제거했다.더구나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까지했다.온갖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권력을 겸양하는 사람이 김정일 자신인가.아니면 주위의 어떤 세력이 이를 방해하고 있는가.있다면 그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난 1년간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 중 김정일의 주석직 미취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다.최근 필자의 친구 한사람이 북한방문을 위해 모스크바의 북한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다.그러면서 그는 여권에 미국방문 스템프가 여러번 찍혀있는 게 마음에 걸려 북한대사관의 직원에게 비자발급에 문제가 없겠느냐고 문의를 했다고 한다.그랬더니 그 창구직원은 반대로 미국을 자주 방문한 것은 북한비자를 얻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중요한 외교성과로 생각하고 있다.미국과의 관계개선은 안보면에서도 유익하고 미국의 경제,기술원조를 얻을 수 있게돼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소득으로 간주하고 있다.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회생기회를 잡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있다.북·미 두나라가 물밑거래를 통해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우려하는 것이다.러시아에도 북·미거래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미·북거래 때문에 손상을 입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물론 나는 이런 우려들을 불필요한 기우로 생각한다.미·북 관계개선은 한국·러시아 모두 환영할 일이다.양국의 관계개선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뿐 아니라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이들을 보다 개방되고,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분권화되고 외국의 사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한국측에 쌀을 원조해달라고 한 일도 이런 조류변화의 한 결과로 보고 싶다.물론 쌀원조 요청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그러나 북한경제가 어려운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지난 수십년간 남한에 경제원조를 요청한 예가 없었다.오히려 북한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 생필품을 공급하는 데 있어 자기들이 남한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선전하는 데 급급해왔다. 따라서 북한정권으로서는 남한에 쌀원조 요청을 하는 일이 큰 패배를 인정하는 일일뿐 아니라 수치이고 사회주의 노선을 배신하는 셈이된다.이전 같았으면 북한당국으로서는 인민들을 굶겨죽게 만들지언정 남한에 쌀원조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북한은 남한에 손을 벌렸다.이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뜻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북한의 외교노선에도 변화를 몰고올 전조로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남한에 대한 쌀원조 요청은 북한의 일반적인 경제개혁 노력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북한정권은 이미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하기로 정책결정을 내린 것같이 보인다.물론 그 과정은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이는 이들이 옛소련,동구의 부정적인 예를 잘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개혁과정에서 절대로 국가의 통제력을 늦추지는 않으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경제개혁을 시도하면 외부세계도 이를 크게 환영하고 지원할 것이다.지금의 북한지도부가 어떤 의도를 진짜 마음속에 품고 있든 일단 개혁이 시작되면이 사회는 보다 개방적이고 보다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이는 남북한의 성공적인 통일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 선거보도는 잘 되었는가(이동화칼럼)

    선거와 언론은 밀접한 관계라 할 수 있다.언론은 여러가지 보도메뉴중 선거를 크게 중시한다.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측면과 아울러 국민이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선거와 관련된 언론의 역할중 중요한 것은 우선 선거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다.선거의 일반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와 후보자가 서로를 알도록 연결하는 것이다.유권자에게는 후보자의 면면과 주장등을 보다 많이 알리고 후보자에게는 유권자의 바람이나 분포·성향등 참고사항을 수시로 알리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거는 발전의 원동력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국가와 민주발전이라는 두 바퀴가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제대로 구를 수 있도록 비판과 계도라는 언론고유의 기능을 최대로 발휘하는 일이다.우리의 후진적 정치행태와 선거풍토는 이같은 언론의 채찍을 필요로 하고 있다.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비신사적이고 부도덕한 짓도 마다않는 풍토가 남아 있는 한 언론이 나설 일은 얼마든지 있다. 4대 지방선거가 끝난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언론이 제역할을 했다는 생각과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나 후회가 교차한다.우선 선거정보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질량면에서 발전된 면모를 보였다.최근까지 증면경쟁을 벌이던 신문들은 보다 많은 면을 선거기사보도에 할애할 여유가 있었다. 보도기법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기 때문에 읽는것 뿐만 아니라 보면서 느끼게 하는 부분도 크게 늘어났다. ○보도의 질양 모두 향상 방송 역시 지역민방과 케이블 텔레비전(CATV)의 출현에 따라 해당지역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전할 수 있었고 기존방송 역시 방송시간연장을 통해 정보의 양적 팽창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었다.신문·방송 모두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향상에 따라 보다 신속하고 질 좋은 보도를 할 수 있었음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정당이나 후보자의 광고,여론조사발표 등은 신문·방송이 모두 매체의 역할을 했으나 전파매체쪽이 보다 눈에 띌 수 밖에 없다.특히 선진국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여론조사기법인 출구조사(Exitpoll)를 원용하여 모방송이 투표마감과 동시에 재빨리 광역단체장 당선예상자와 득표예상률을 발표한 것은 많은 국민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선에서 대세가 결정된 다음 그 때까지의 각종 수치를 컴퓨터에 넣어 나온 최종득표예상을 보도했다가 낙선한 어느 후보측으로부터 「컴퓨터부정」시비에 말려들어 두고두고 애를 먹은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격세지감의 컴퓨터 부정 미국의 케네디·닉슨의 대결로 유명한 TV토론이 미흡하게나마 유권자에게 선보여 흥미를 끈 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보도가 광역단체장,특히 서울시장 쪽에 편중되었다는 점이다.하늘만 보여주고 땅은 외면한 느낌이다.그러다 보니 광역의회나 기초단체장,특히 기초의회 쪽은 언론매체로부터 소외당하고 정보를 얻어내기 어려웠다.결과적으로 많은 유권자가 기권을 하거나 투표장에 나가서도 일부만 투표하는 부분기권현상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더 자성해야 할 점은 비판과 계도의 미흡이다.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지역감정의 확산과 지역할거주의의 고착이라 할 수 있겠다.이것이 과연 국가발전이나 민주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인가.그렇다면 몰라도,그렇지 않다면 이에 대한 언론의 대응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물론 우리 모두 변명할 수는 있다.지역감정을 비판하고 지역할거에 반대했다고,또 그런 점을 보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감정 계속 비판해야 그러나 과연 체중을 실어서 보도했는가,정당간의 공방전을 객관적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는가,그보다는 싸움시키고 구경하기에 몰두하지 않았는가 한번 되돌아보려 한다.『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선거법정신이 흑색선전에 놀아나지 않았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이같은 자성을 토대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나가려는 노력을 배가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때다.선거는 끝났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또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해마다 다른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 화제의 후보들(“열전” 6·27선거)

    ◎강릉­형제가 시장·도의원 출마 상호득표 지원/5선의원 노승환씨 “여생을 마포구에” 출사표/권·김 가문서 안동시장 나와… 문중 대리전 양상/포항 1천억에 재산가 시의회의원 후보 등록/국회의원 5차례 낙선 세무사 구청장에 출마/광명 전재희씨 여성후보 등록1호… 익산 염석호씨로 30세로 최연소 가능성 지방선거의 후보등록이 11일 일제히 시작되면서 전국 2백30곳의 기초단체장 후보에 유권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번 선거의 「꽃」으로 불리는 기초 단체장 선거전에는 전직 상·하급자나 문중 대결 등 이색적인 후보와 경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또 역전의 정치인과 행정 전문가가 대결하는가 하면 뚜렷한 주자가 없는 지역에서는 후보자가 과포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구청장 후보로 전직 구청장 출신인 조삼섭 후보(민자·59)와 국회 부의장을 지난 원로 정치인 노승환 후보(민주·67)가 등록을 마쳤다. 조 후보와 노 후보는 이 날 마포구청에 마련된 등록창구에 한 시간 전부터 나와 성명전으로 포문을 열었다. 조 후보는 상오 9시 등록을 마친 뒤 『노 후보가 비록 화려한 정치경력을 갖고 있지만 마포구는 젊고 일하는 구청장을 원할 것』이라고 일성.이어 『서울시 행정 전문가로서 주거 환경개선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즉석 공약. 5선 경력의 노 후보는 『구청장 일을 하려면 나같은 배짱과 박력이 있어야 한다』며 『정치는 다음 세대들에게 맡기고 남은 여생을 마포구를 위해 일하겠다』고 맞대응. ○단양 최고경합지 부상 ○…충북에서 유권자가 3만1천여명으로 가장 적은 단양군 민선 군수 후보로는 이 날까지 6명이 등록을 마친 데 이어 3∼4명이 더 등록할 것으로 보여 최고 경합지로 부상.12일 4명 정도의 추가 등록이 확실시돼 기초 단체장 후보자 한 명 당 유권자가 3천명꼴이다. 이 날까지 정하모(56·민자·전 공무원),박주진(60·민주·농업),김면수(51·무소속·농업),김용근(53·무소속·토목업),김참렬(43·무소속·무직),박금돈(50·무소속·농업),조수형(61·무소속,전 경찰공무원)씨 등이 등록을 마쳤지만 뚜렷한 주자는 아직 없는 형편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학」은 없고 「군계」만 있는 형국』이라며 후보자들의 이전투구를 점쳤다. ○…충북청주시 홍덕구 선관위에는 전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순호씨(민자)가 등록. 최씨의 선거구에는 현역 도의원 박만순(무소속)가 버티고 있는데 최씨는 등록을 마친뒤 체육대회가 열리는 관내 국민학교로 직행 ○…홍덕구 선관위에는 또 사제지간인 이상록씨(67·민자)와 임헌용씨(54·민주)가 청주 5선거구 광역의원에 후보로 등록. 임씨는 이씨가 청주 대성중 교장 재직시절 재학했다고. ○…경북 안동시장 선거에는 이 지역 양대 문중인 안동 권씨와 안동 김씨 문중에서 각각 2명의 후보가 출마해 양대 문중의 대리전 양상.유권자 13만여명 가운데 안동 권씨는 2만여명,안동 김씨는 1만9천여명. 등록 첫날인 이 날 권씨 집안에서는 권희택씨(59·무소속)와 권혁구씨(43·민주당)가,김씨 가문에서는 김덕배씨(60·무소속)와 김성현씨(42·무소속)가 각각 등록을 마쳐 그 결과가 주목. 아직도 유교 정서가 강하게 남아있는 안동시는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문중의 몰표가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따라서 이번 시장 선거에서도 어느 후보가 문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을지가 최대의 관심사. 안동 권씨의 대표 주자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석탄공사 부사장을 지낸 권희택씨.안동 김씨 집안은 경북도 내무국장을 지낸 김덕배씨가 김성현씨보다는 득표력이 앞선다고 보고 있다. 권희택씨와 김덕배씨측은 권혁구씨와 김성현씨가 문중 표를 어느 정도 가져가는 지가 당락의 변수로 작용한다고 분석.그러나 각 문중의 화수회는 현재까지 특정 후보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지역 살림꾼을 뽑는 선거가 문중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때문이다. 이같은 중립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양 문중들의 영향력으로 볼 때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음성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 ○…경북 포항시 덕수동 기초의원 후보로 등록한 조영우씨(35)는 재산을 총1천2백21억4백38만5천으로 신고. 그의 재산은 각종 토지 1천1백87억5천8백22만6천원이며 건물도 41건에 10억6천9백45만1천원. 이밖에 예금과 유가증권 및 채무 33억1천9백21만7천원이 있느는데 이 재산의 대부분은 토건업을 해온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케네디가 야심 ○…강릉시에서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한 김남수씨(56)는 민자당 후보로 도의원에 출마한 동생 김남훈씨(42)와 함께 선거를 치르게 돼 화제. 이 형제들은 이 날도 강릉시 선관위를 나란히 찾아와 후보 등록을 할만큼 우애가 좋기로 소문나,이번 선거전에서도 깊은 우애가 지켜질지 주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강릉시 초당동에서 수대째 살고 있는 형제들은 형 남수씨가 정당의 지구당 사무국장을 오래 지내면서 정치감각과 추진력을 키워왔고 동생 남훈씨는 JC활동과 기업운영 등으로 나름대로 기반을 닦아왔다. 동생 남훈씨는 지난 92년 도 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자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현직 도의원이다. 보선 당시 경쟁이 심했으나 선거경험이 풍부한 형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동생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었다고. 이들은 한때 「형제가 다 해 먹느냐」는 여론에 밀려 한 사람은 포기해야할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지난 달 지역의 최대의 씨족인 가족회의가 두 형제를 모두 출마하도록 결정했다고. ○…희수를 넘긴 할머니가 탄광촌을 주민이 떠나는 곳으로 버려둘 수 없다며 시의원 선거에 출마.강원도 삼척시 도계음 도계3리 박옥자씨(70)는 삼척시 도계읍 선거구에서 시의원 출마를 선언하고 등록을 마쳤다. 아들 3형제와 세 며느리,7명의 손자 손녀를 둔 박씨는 『높은 사람을 만나 지역실정 등을 호소하는 데는 늙은이가 낫다』고 설명. ○…경북 영덕군에서는 민선 군수자리를 놓고 전직 군수와 한때 부하 직원이던 군청 재무과장이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민자당의 김우연 후보(52)와 무소속 김효태(56)·이해운후보(57) 등 3명이 이 날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민자당 김 후보는 지난 3월27일 사직한 전직 영덕군수 출신.무소속의 김 후보는 지난 30여년간을 영덕군청 내무과장 등 군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지난 해 말 사직. 특히 민자당 김 후보와 무소속의 김후보는 공교롭게도 지난 해 4월30일부터 올 3월27일까지 영덕군에서 군수와 재무과장으로 함께 근무했던 상·하급자 관계.두 후보는 서로 영덕군청 근무 경력을 내세우며 표를 호소하고 있다. 영덕군청 공무원들은 전직 군수와 재무과장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자 공공연한 지지를 삼가는 분위기. 양 후보측은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경력을 정확히 알고 있으므로 올바른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며 상대방의 경력에 크게 게의치 않는다는 반응.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 지역 출신으로 지난 1년간 군수직을 맡았던 민자당 김 후보와 오랜 기간 영덕군에서 근무한 재무과장 출신의 무소속 김 후보를 놓고 선택에 고심한다고. ○…전남 구례군수로 등록한 후보들의 재산 차이가 너무 커 재산과 득표와의 관계에 관해 분석이 구구. 이동승 후보(53·민주당·전 전남도 도로행정 계장)의 경우 광주시 부근의 임야와 빌딩 등 싯가로 58억4천7백17만1천원을 신고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한김영일 후보(43·군 번영회장)는 재산은 커녕 빚만 2천5백만원이라고 신고. 이 후보는 평생 공직 생활을 해온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알뜰하게 관리해 왔다고 설명하고 『당선되면 돈이 많은만큼 깨끗한 군 살림을 펼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 전형적인 농민으로 3년전부터 번영회장을 맡아온 김 후보는 『큰 돈이 없으니 돈의 위력도 모른다』며 『정말로 깨끗한 살림은 생활 습성이 청빈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2천여평에 논에 농사를 짓는다는 김 후보는 농민 유권자를 의식해 행정의 초점을 영농진흥에 맞추겠다고 공약. ○여성표 공략에 초점 ○…경기도 31개의 기초 자치단체장 후보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전재희 후보(47·민자)는 이 날 대리인을 시켜 등록을 마치는 것과 때를 같이해 도덕산 약수터를 찾아 본격 선거운동에 돌입하는 발빠른 움직임. 행정고시 합격자 여성 1호,민자당 단체장 후보자 공천 1호인 전후보는 약수터에 이어 방송통신대 학습관에서 열린 불우이웃돕기 일일 찻집에 들려 행사를 주관한 학생들을 격려했다. 하오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기초의원 출마자의 선거 사무실 개소식장과 광명 중앙시장을 찾았다. 전 후보는 이번 선거전이 민주당의 김태수 후보 등 남성 후보자들과 성대결로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기초 단체장 선거는 성대결이 아니라 30만 광명시민의 살림꾼을 뽑는 기회』라며 『참신성과 행정능력을 시장감 선택의 잣대로 삼아달라』고 호소. 그럼에도 전 후보측은 지난 해 4월 광명시장에 임명된 이후 짜임새있는 시정으로 주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끈 점을 고려해 여성표 공략에 초점을 맞출 것 같다는 것이 상대 진영의 분석. ○…부산 남구에서는 지난 10대 국회의원 선거 이래 5번이나 연달아 고배를 마셨던 이영근씨(55·세무사)가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조세 전문가로 알려진 이 후보는 이번에는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을 시도해 초대 민선 구청장을 거머쥐겠다고 출마의 변을 토로. 시민들은 부산 시의원으로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이 날 나란히 등록을 마친 성재영 후보(52)와 한판 명승부가 벌어질 것이라며 「세기의 대결」에 성급한 추측이 무성. ○멋진 환경도시 건설 ○…소장파 환경연구가 염석호씨(30)가 무소속으로 익산시장 후보로 등록을 마쳐 도내 기초단체장 후보 가운데 최연소로 기록될 전망. 원광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일본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에서 의회정치를 공부한 그는 지난 92년부터 최근까지 일본의 모 환경종합연구소에서 환경 연구원으로 활동했었다. 염 후보는 『기탁금 1천만원은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이며 유권자들의 열띤 지지로 3백여명이 넘는 추천인을 구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며 당선 가능성을 강조. 선거운동에 컴퓨터 등 첨단 장비까지 동원한 그는 『시장에 당선되면 익산시를 환경문제에 관한 한 여느 도시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멋진 도시로 만들겠다』고 피력.
  • 황창평 보훈처장에 듣는다(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보훈의 달」 짚어본 복지정책/“2천세대 「국가유공자 복지타운」 건립”/재중·러 독립지사후손 모국정착 지원/고엽제 「후유의증」 환자까지 보상·치료/동­서해안·제주 등 4곳에 보훈가족 휴양시설 □대담=황병의 정치부장 올해는 광복 50주년이자 한국전 발발 45주년이 되는 해다.그 의미만큼이나 우리는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경제개발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뒤 가리지 않던 단계에서 벗어나 통일에 대비하고 세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새김으로써 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국가통합의 구심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국가의 주요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새 분위기 조성 시급 사실 일제에 항거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바친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접은 미국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낙후돼 있다. 미국은 참전용사모임인 재향군인회가 미국내 최대 압력단체이며 대만도 국가유공자들이 시민으로부터 최대의 경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유공자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국가유공자 후손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활지원등을 「빈곤층에 대한 그 것」으로 여겨 신분을 오히려 감추는 현상까지도 빚어졌다. 호국보훈의 개념을 한차원 발전시켜 나라사랑 정신을 국가 중심 이념으로 승화시키는 기수역을 맡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대공일선에서 30여년 근무한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제격이라는 평이다. 황 처장은 4일 대담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지만 국민들 사이에 희생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각종 이기주의가 분출,국가안보와 사회불안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보훈은 국가의 뿌리라는 점에서 보훈대상자들이 당장 미국처럼 자랑스럽게 예우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만은 조성하자는 게 보훈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틀후면 현충일입니다.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유공자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먼저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수는 18만가구 1백만명에 이릅니다.일제∼6·25∼월남전까지의 유공자와 그 외 공상자들이지요.이 가운데 6·25관련 유공자가 5만가구로 가장 많습니다.이들은 아직도 전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이만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이들 유공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습니다.이 점에서 국가유공자와 가족을 보살피고 예우하는 일은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유공자들은 순직이나 전사·전상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생활이 무척 어려운게 현실 아닌가요. ▲70년대 중반부터 보훈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지원을 위해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주택·취업등의 지원을 해 오고 있습니다.그 결과 지난해말 보훈대상자의 월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백31만원보다 35% 많은 1백77만원에 이르고 있습니다.또 주택보급률도 일반국민의 79.8%보다 6.4%포인트 높은 86.2%에 이르고 있지요.대부분 보훈가족들은 어느정도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또 현재 한달에 35만원씩 주고 있는 기본연금을 올해와 내년에 12%씩 올려 97년에는 매달 45만원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대부분 노령화돼 있지 않은가요. ○8백60세대분 착공 ▲보훈대상자 평균연령은 61세에 이르고 있습니다.독립유공자의 경우 본인은 74세이고 유족은 65세이며 6·25대상자는 66세이지요.따라서 각종 노인성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국가는 이들의 쾌적한 노후생활을 위해 수도권과 부산·대전·대구·광주등 대도시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령자 주거시설로 2천세대 규모의「복지타운」을 연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입니다.이미 수원에 8백60세대분 휴양시설이 착공됐지요.또 보훈가족용으로 동해·서해안과 제주도등 4곳에 휴양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과 관련해서는 월남전 고엽제피해자문제가 현안인데 정부의 대책은. ▲고엽제문제를 보면 월남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현재 고엽제환자로 검진받은 사람은 4천3백25명이며 이 가운데 14%인 5백96명이 후유증환자로 판정됐고 39%인 1천6백69명은 「후유의증」환자로 판정돼 무료진료를 받고 있습니다.말초신경병등 고엽제후유증으로 선정된 10개 질병에 대해서는 보훈병원의 판정에 따라 전상자와 같이 한달에 35만∼1백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문제는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후유의증환자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고엽제역학조사를 진행중이므로 결과가 나오는대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입니다.역학조사결과 후유의증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확정되는대로 보상이나 치료를 해줄 생각입니다.또한 생계가 어려운 후유의증환자를 위해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고엽제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국내 생존 유공자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지만 보훈의 특성상 선열을 잘 모시는 일도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올해는 광복 50주년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정부는 이를 위해 올광복절에는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1천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새로 포상하고 국외안장 선열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봉환식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또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진 미확인 선열묘소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합니다.이와 함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3백여명을 초청,발전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특히 이준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시의 구드용호텔을 매입,기념관으로 개조하고 8월5일쯤 유럽한민족제전을 개최,유럽교포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을 예정입니다. ○미확인 선열묘 조사 ­해외안장 애국선열 가운데 가장 관심사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곳을 찾는 일입니다.진척이 있습니까. ▲지난 77년부터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안 의사 묘소를 찾아왔으며 최근 한중 수교이후 안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자리를 찾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진전이 아직 없습니다.정확한 묘소위치를 믿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관계자료를 모두 수집,분석하는 중입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생활한 독립유공자후손들이 국내정착을 희망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중국과 러시아지역에는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이들은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친지등의 초청에 따라 일부 국내정착했지만 후손들 가운데 모국정착희망자가 많아 현재 이들에 대한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이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면 본인이나 가족 1명에 한해 3천만원의 정착금을 주고 있습니다.취업이나 대부지원도 있고 의료보호등도 실시하고 있습니다.현재 영주귀국한 중국거주 교포는 11가구 39명에 이릅니다. ◎미 「한국전 참전기념탑」/새달 27일 워싱턴서 제막/주요정책 심층보도… 국민과 정부를 잇는 기획/총든 병사 동상 19개… 참전 22국 각명새격/참전용사 등 50여만 참가 “축제 한마당” 오는 7월27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는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다. 한국전 휴전일에 맞춰 갖게 되는 이 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전 참전 22개국 외교사절과 참전용사등이 참여,한바탕 축제가 열린다. 이들은 이날제막식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원히 기억될 승리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당시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 탑은 80년대초 한국전 참전용사의 명예를 높이고 미군전사자와 실종자를 추념하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에 의해 처음 건립이 제안됐다. 미국의회는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제의에 따라 지난 86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미 한국전 참전 기념사업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의결,탑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미국정부는 우선 한국전에 참전했던 알 데이비스 예비역해병대장을 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재원마련을 위한 기념주화 발행을 허용했다. 또 탑이 들어설 링컨기념관 앞 광장 주변 8천4백여평을 공원으로 지정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같은 정부결정에 따라 기념은화를 발행하는 한편 참전용사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재원 1천7백만달러를 마련,92년 6월14일 당시 부시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 이 탑은 49m 높이의 화강암석벽을 V자형으로 땅위에 배열한 모습인데 승리의뜻을 담고 있다. 또 V자 안쪽에는 총을 들고 걸어가는 병사들의 동상이 19개 놓이며 탑 벽면에는 한국전 참전 22개국 이름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는 이번 제막식에 맞춰 벌어지는 나흘간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 우선 전야제인 26일에 한국전의 의의를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어 제막식 당일에는 케네디센터등에서 사물놀이·어린이 태권도시범등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다. 28일에는 워너극장에서 국악·현악4중주단 연주등 한국음악제를 열고 전통한복패션쇼도 펼친다.행사 마지막날인 29일에는 우리군 의장대와 미군의장대가 함께 의사당로 15번가에서 23번가까지 퍼레이드를 벌인다.
  • 선글라스/렌즈 작고 복고풍 디자인 유행

    ◎색상 다양… 재키·헵번스타일 인기/갈색·청색·녹색렌즈 햇살차단 효과적/값은 1만∼20만원… UV코팅 제품 선택을 햇빛도 가려주고,헤어밴드로도 사용하고,멋스럽고…. 강한 햇빛을 가려주고 눈을 보호해 주는 고유기능외에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선글래스가 초여름의 가장 인기있는 패션소품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거리에선 크게 부담없는 가격으로 유행을 따를 수 있는 선글래스를 헤어밴드 대용으로 머리에 꽂은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올해 선글래스 디자인은 렌즈 크기가 더욱 작아졌고 모양이나 렌즈 색상이 예년보다 다양해 진 것이 특징.디자인은 패션의 복고풍 추세에 맞춰 복고형이 유행이다. 그중에서도 재클린 케네디가 즐겨 썼던 플라스틱 소재의 크고 두꺼운 사각형(재키 스타일),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유행시킨 타원형으로 끝이 살짝 올라간 모양(헵번 스타일),강한 색상의 둥글고 두꺼운 플라스틱테(라거펠드 스타일)가 인기있는 아이템이다.한때 크게 유행했던 금속테에 알이 동그랗고 작은 「아르마니 스타일」은 요즘에 좀 퇴조하는 양상을 보인다. 유행도 유행이지만 선글래스는 무엇보다 얼굴형태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얼굴형이 동그란 사람은 깔끔한 은테나 진한 감청색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둥그런 역삼각형 스타일이 얼굴을 갸름하게 보이게 하고 작은 타원형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렌즈는 자외선 차단처리가 된 UV코팅 렌즈를 선택하고 너무 진한 색의 렌즈는 눈의 피로를 가중시키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뜨거운 여름햇살을 차단하기에는 갈색,청색,녹색이 좋고 요즘 새로 선보이고 있는 노랑,핑크 등은 햇살이 강한 바닷가나 산에서는 그다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가격은 1만원대부터 20만원까지 천차만별.길거리에서 파는 선글래스는 렌즈속에 미세한 기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빛의 굴절때문에 눈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시력을 해칠 수 있으므로 착용보다는 장식용 액세서리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 “반외세론 한계”미·아세안과 관계개선(종전20년/베트남의오늘:상)

    ◎호치민대 미국학강좌 개설 2년째/“자주통일 위업” 민족자긍심 드높아/150만 보트피플·사회­자본주의 접목따른 과제 산적 75년 4월 30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베트남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해병 11명을 태운 헬기가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을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처절했던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베트남은 수백만명의 보트피플 문제와 이웃 캄보디아 점령으로 국제적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빈곤탈피를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과거의 적(적)미국과도 화해를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다.변화하는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국이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했다』­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비극적으로 마감할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꼽았다.사실 베트남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베트남전 당시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수행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었음은 물론 지금까지도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해방 20주년」을 맞는 베트남에서는 현재 자신들의 위대한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준비가 한창이다.특히 올해는 공산당 창당 65주년,건국 50주년,건국의 영웅이며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5주년등 갖가지 행사가 겹치는 탓에 나라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호치민 전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으며 붉은색 베트남기와 다채로운 경축 깃발이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를 뒤덮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명백한 패배로 끝난 전쟁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후 19년간 목조르기식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면치 못하면서도 베트남인들은 단결된 민족적 의지로 거대한 나라 미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했다는 자부심만은 종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갖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민족주의적 열정도 경제난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앞에서는 더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같다.지난 86년 12월 6차 공산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본뜬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그 결과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면서 지난해에는 8.9%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가져다 준 혜택을 실감하면서 베트남인들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베트남인들은 이제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해 더이상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고있다.도 무오이 서기장 등 베트남지도자들도 과거에 자신들을 괴롭혔던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 한결같이 『과거는 과거일뿐 우리는 과거에 얽매일 수 만은 없으며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의 협력강화와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92년 7월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지난 78년 12월 캄보디아침공으로 빚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중국과는 이미 91년 11월 관계를 정상화했다.이와함께 베트남은 빠르면 올 7월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 외무장관 및 확대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아세안에 가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베트남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해초 미상원의 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결의안 가결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 1월 미국과 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함으로써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또 과거의 「적」인 미국을 배우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 호치민 시립대학에서는 공산정권수립후 최초로 지난해부터 미국학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적극적인 경제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서구식 다당제 정치개혁을 거부한채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지난 90년 이후 동구에 밀어닥친 민주화 물결에 대해서도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제대로 사회주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이같은 경직한 태도는 90년 당시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베트남의 옐친」이라고 불렸던 찬 수안 바크라는 개혁파 정치국원을 축출한 이래 일체의 정치개혁 움직임을 용납치않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은 시장경제 도입과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부합될수 없는 상반된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달성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이와함께 공산화 이후 1백50여만명에 달했던 「보트 피플」은 아직도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에 따른 남북갈등과 자본주의를 이미 경험한바 있는 남베트남인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국민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 「장애인의 날」에 부쳐/이기백 논설위원(서울논단)

    ◎장애인 우선의 따뜻한 사회를 『한 나라나 사회의 풍요로움은 장애자나 노인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따라서 이 법은 동정적 법률이 아니라 장애자를 사회에 통합하는 법률입니다』 50년대 케네디 미국상원의원이 장애자법 통과를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버스나 열차는 장애자가 혼자 탈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장애자 혼자 개찰구에서 객차의 지정된 좌석까지 찾아갈 수 있으며 횡단보도는 물론 지하도를 자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또 사회 구성원들도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와 도울 자세가 갖춰져 있기도 하다. 20일은 장애자의 날.이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생계와 편의시설,그리고 일반인들의 따뜻한 이해이다.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최근 94년말 피고용인 3백명이상 2천1백98개소의 2% 고용의무율 이행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행 업소는 11%인 2백30개소에 불과해 기업체들이 아직도 장애인의 취업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대상사업체에 고용된 장애인은 9천92명으로 고용 의무인원 4만5백85명의 4분의 1에도 못미친다.대부분의 사업주들이 장애인은 생산성이 낮고 부대비용이 많이 들며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이다.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장애인들의 직장내 활동과 출퇴근 등을 위한 각종 사회시설의 확충이 시급하다. 특히 교육서비스업,보건 및 사회복지사업,광업 등 장애인 고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비교적 높은 반면 금융및 보험업,도·산매업,공공부문 등 장애인 고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업종은 오히려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실정이다. 이들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장애인 미고용부담금」을 부담하겠다는 인식이어서 이들 기업이 지난 한햇동안 5백46억원을 준과세로 납부할 정도였다.더욱이 취업한 장애인들도 70% 이상이 생산직이고 임금수준도 40만원 안팎으로 극히 열악한 실정임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편의시설은 또 어떠한가.얼마전 새마을호 객차 2량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다.또 지하철이나 지하도 일부에는 장애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치가 설치되고 공공 주차장의 한 두면 정도는 장애자용으로 표시돼 있다.그러나 장애인들 스스로가 개찰구에서 열차의 좌석까지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지하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장애인 전용 주차장은 항상 비워둬야 하는데도 주차난을 이유로 「장애인 우선주의」를 찾아볼 수 없다.외국의 경우 장애인 전용 주차장은 무조건 비워두고 간혹 무자격자가 주차할 경우 가차없이 범칙금을 물리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주차료만 내면 양해된다. 연초에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바뀐 의미도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성장에 걸맞는 복지시책을 추진함으로써 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으로 풀이된다.복지향상의 주대상자는 장애인이다.이들에 대한 한국형복지모델은 자립복지방안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자에겐 모두 생산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자립복지 방법으로는 교육·고용·의료재활 및 보조이다.장애인들에 대한 직업교육을 통해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는데 중점을 둬 자립을 부축시키는 일이다. 1백여만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자립의 기틀을 다지도록 지원해 정상인과 다름없는 사회생활을 할 때 우리사회도 진정한 복지국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우선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 미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맥나마라 회고록에 분노

    ◎잘못된 전쟁 이끈 장본인/당시 정부오도 책임 은폐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한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78)의 회고록이 최근 출간,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게 쓰라린 전쟁의 상처에 대한 회상과 함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하에서 미국의 베트남전 전면개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맥나마라 전장관은 지난 10일 출간된 「회고록­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당시 미행정부는 베트남 공산군을 군사적으로는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정치적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채 계속 병력을 전장으로 보냈다』고 말하고 자신은 베트남전 수행에 관해 대통령과 견해를 달리 했지만 미국이 유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소련이 용기를 얻을 것을 우려해 침묵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맥나마라의 회고록에 대해 전장에서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은 참전용사들은 『때늦은 후회이며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는 분노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지난 67년 전장에서 실명한뒤 베트남참전 실명용사회를 창설한 존 세일스씨는 『맥나마라의 발언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모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라면서 『전쟁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도록 한 것은 맥나마라와 그 무리들』이라고 분노했다. 베트남전에 작전장교로 참전한 해리 서머스 퇴역 중령도 『베트남전에서는 많은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그러나 맥나마라는 진실을 알면서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이를 숨겨왔다』면서 『그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참전한 병사들을 저버렸으며 미국인 모두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 아서펜 감독작품「체이스」/정재형 동국대교수·영화평론가(감동의명화)

    ◎미 도덕률 붕괴과정 묘파/성억압에 쌓이는 집단히스테리 해부/불의에 맞선 보안관역 브란도 인상적 감독 아서 펜은 미국의 의미에 몰두해 있다.그의 작품은 명백히 미국문화의 어떤 면을 검토하고 있다.「체이스」에서는 남부 조그만 도시에서의 폭력적인 분위기를 다루며,거기에 일반적인 성적 도덕률이 침식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펜은 미국이란 체제의 가치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재평가하는 작업을 해나간다.그의 영화들은 미국인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갖고 정열적이며 강렬하고 역설적인 정서적 효과들을 창출해내고 있다.그 작품들은 또한 지난 수십년동안의 미국의 도덕적 조건들을 평가해주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그중 케네디 암살의 공포감은 「체이스」에 잘 암시되어 있다.폭력은 그의 영화에서 빈번히 취급되어지는 표현법에 속한다.그런데 그것이 거의 무의미하게 사용된 적은 없다.폭력은 미국인 자신들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깊은 요소로 간주되어지기 때문이다. 케네디암살의 재현은 미국인이 보편적으로 갖고있는 폭력에 대한억눌린 잠재성에 대한 비유이다.물론 이 영화가 그 당시의 유행이라고도 볼수 있는 폭력적 표현으로 상업성을 겨냥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다.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는 조금도 현실의 이면을 과장하지 않는다.위선자,권력에 혈안이 되어있는 행정관료,냉정하고 탐욕스러운 아내,폭력에 의존하는 자기기만자들,모두가 하나같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이 영화에선 그들이 서로의 살을 물어뜯으며 고통을 주는 쪽이나 희생을 당하는 쪽이나 동등하게 묘사되어 있음을 느낄수 있다.단지 특이하게 선량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인물은 불의에 맞서 대항하는 보안관 캘더 역의 마론 브란도뿐인데,그는 마치 이 혼탁한 세상에서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감독 아서 펜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양쪽의 영향을 다 받고 있다.사회가 소외된 사람 및 반항아들에게 불만을 심어줄 뿐 환기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폭력은 불가피하게 번져나온다는게 그의 지론인 것이다.존 F 케네디,마틴 루터 킹,그리고 로버트 케네디 등의 암살도 바로 사회적이며 동시에 개인의 성적인 욕구의 억압된 구조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있는 그러한 폭력의 의미는 미국의 사회가 집단 히스테리증세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60년대 이래로 미국은 점차 무정부상태로 진입하고 있음을 이 영화는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사람들은 서로를 쏘고 쏴 죽인다.이건 그들이 서로를 단지 미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이러한 현상은 그들이 어디에 목적을 두어야할 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폭력이다.그들은 사회체제에 대한 분노의 격앙된 감정과 동시에 무력감,좌절감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 김 대통령 7월25일 방미/4일간 국빈방문/클린턴과 정상회담

    ◎한국전참전기념비 제막 참석 김영삼대통령 내외가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7월25일부터 28일까지 4일동안 워싱턴을 국빈방문 한다고 윤여전청와대대변인과 미국 백악관에서 12일 동시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워싱턴 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데 이어 7월27일 워싱턴에 새로 세운 한국전 참전기념비의 제막식 행사에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비핵화문제,양국 안보협력 강화방안 및 양국의 경제·통상협력 증진방안 등에 관해 폭넓은 토의가 예상되고 있다. 국빈방문에 따른 다른 일정에 대해서는 양국정부간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중이라고 윤 대변인은 밝혔다. 윤 대변인은 『김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정세 및 지역안보정세에 대해 폭넓은 의견교환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문제,한­미안보협력강화방안 및 양국의 경제통상 협력증진 방안을 토의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협력과 관련한 협의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김대통령은 취임후 93년 11월 방미에 이어 미국을 두번째 방문하게 되며 네번째 갖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서로에 대한 친분을 더욱 두텁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양국은 이같은 빈번한 정상회담을 통해 21세기 아·태지역의 견인축으로서 동반자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며 이어 클린턴대통령이 주최하는 국빈환영만찬에도 참석한다. 또한 내셔널 프레스 클럽(NPC)에서 오찬연설을 하고 27일에는 한국전참전 기념탑제막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한편 케네디센터에서 거행되는 한­미 합동경축공연도 참관할 예정이다.
  • “미의 월남전 개입은 잘못”/미 맥나마라 전국방 회고록서 밝혀

    ◎“이기기 어렵다” 조기결론 불구/정치적 타개책 강구 노력안해 월남전 수행 계획에 참여했으나 이 전쟁에 관해 약 30년 동안 침묵을 지켜온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78)은 곧 출간될 회고록에서,미국은 월남전 때 「굉장히 그릇된」 결정을 내렸음을 시인했다. 그의 회고록은 『베트남에 관한 결정에 참여했던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의 관계자들이 굉장한 과오를 범했으며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를 미래의 세대에게 지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고 출판업자가 말했다. 맥나마라 전 장관은 3일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회견을 통해 「뉴스위크」지가 오는 10일 시판되는 4월17일자에서 「회고: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이라는 제목의 이 책 내용을 6천단어로 요약 게재한다고 말했다. 맥나마라는 미국과 월남이 베트남(월맹) 공산군을 군사적으로는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월남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더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종종 받아왔다. 그의 회고록은 랜덤 하우스 출판사 계열사인 타임스북스에 의해 오는 10일 서점에 나올 예정이다. 사가들은 맥나마라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통해 65년 월남에 개입한 미 지상군이 적을 패배시킬 가망이 없음을 일찍 깨달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월남전에 관한 전문가인 워싱턴의 작가 케이 버드는 『맥나마라 전 장관이 일찌감치 66년에 「어,이것 잘안돼 가는군.정치적 타개책을 강구해야겠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 시도지사 후보경선/민자당 “속앓이”/후보접수 마감은 했는데…

    ◎안할 순 없고… 대상지역 3∼4곳 압축/대부분 민주계·비민주계 싸움 걱정 요즘 민자당 당직자들에게 『시·도지사 후보 경선을 하기는 하는거냐』고 물으면 『경선을 해서 모양을 갖추면 좋겠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다.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같은 질문에 『왜 안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느냐』면서 『두고 보라』고 하더니 영 딴판이 됐다. 게다가 31일 경선에 나설 후보 접수를 마감한 결과가 밝혀지자 말수가 더욱 줄어들었다. 15개 시·도에 38명이 신청해 외형상 경쟁률은 2·5대 1을 기록했다.그러나 이 가운데는 『김구선생과 케네디대통령의 추천을 받았다』는 신청자등 허수들도 들어 있다.엇비슷한 중량급 후보를 맞대결시켜 민주적인 당의 면모를 과시하고 바람을 일으킨다는 처음 취지에 부합되는 지역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경선을 붙여 볼만한 지역은 인천과 경기·충북과 제주 정도라는 것이 당 안팎의 냉정한 분석이다.그렇지만 그것도 당의 역학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신청자들의 정치적 무게가 엇비슷하다는 것만 보는 시각이다.민자당은 우선 경선대상 지역에 대해 불만이다.왜 하필이면 인천이고 경기며 제주냐 하고 한숨짓고 있다. 인천은 최기선 전시장과 강우혁 의원이 대결한다.경기는 이인제 의원과 임사빈 의원·정동성 전의원·조종석 대한광업진흥공사사장등 5명이 경선을 신청했지만 결국 이·임 두 현역의원으로 압축될 공산이 크다.제주는 강보성 전의원과 우근민 전제주지사의 싸움이다. 이 세곳에는 공통점이 있다.민주계와 비민주계의 대결이라는 점이 그것이다.특히 인천과 경기는 민주계와 민정계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 중앙당은 그동안 인천에서 민주계 핵심인 최전시장이 당선 가능성에서 앞선다면서 강 의원에게 경선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반면 민정계가 여럿 포진한 인천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의 후원을 업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의원은 경선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실제로 시장을 지냈지만 인천지역에 그다지 연고가 없는 최 전시장보다는 투표권을 지닌 대의원들을 보다 널리 아는 강의원이 경선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 또한 엇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다.이 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이한동 국회부의장은 「절대중립」을 선언하고 있다.그런데도 지역에서는 임 의원의 뒤에는 이 부의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제주는 민주계인 강 전의원과 우전지사가 후보를 단일화 한다는 데는 합의했으나 서로 『그 단일후보는 바로 나』라고 주장하며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곳 모두 당 지도부의 뜻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김덕영 전지사와 윤석조 서주산업회장에 구천서의원까지 뛰어든 충북도 실제로 경선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당 지도부가 충북지역까지 넘보고 있는 자유민주연합의 바람을 막기에는 세사람 모두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한 당직자는 1일 『거물을 영입하면 경선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또 『경선이 어렵다면 후보를 사전조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조정하는 과정에서 후보를 사퇴하면 경선을 안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민자당의 관심은 이제 『몇군데서 경선을 하느냐』하는 외모의 집착에서 벗어나 『몇군데서 시·도지사를 당선시킬 수 있느냐』하는 실리문제로 돌아선 인상이다.
  • 시카고공항 연6천만명 이용… 1위/세계공항 1천곳 여객조사

    ◎애틀랜타 2위… 10위권 북미·유럽이 차지/김포는 아주1위… 여객증가율 세계 최고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은 미 시카고 오헤어 공항이며 아시아에서는 김포 공항으로 나타났다. 국제공항협회(ACI)가 세계 1백40개국 1천개 공항을 대상으로 조사한 94년 공항이용객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1년동안 이용객수(입·출국자및 중간기착자)는 모두 20억여명을 넘어섰다. 이들 공항중 시카고 오헤어 공항의 이용객수는 6천6백40만명으로 1위이며 2위는 애틀랜타(5천4백10만명),3위는 댈러스(5천2백60만명)가 차지했다. 특히 이용객수를 기준으로 한 아시아 최대의 공항은 김포공항으로 연간 이용객 수가 2천7백30만명으로 세계 13위로 올라서 홍콩과 도쿄 공항을 앞질렀다.김포 공항은 이용객 증가율에서도 19·6%로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상위 30개 공항을 지역별로 보면 북미가 18곳으로 가장 많았고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공항이 각각 6곳이었다. 이밖에 4위부터 10위까지는 ▲영국 히드로(5천1백70만명) ▲로스앤젤레스(5천1백10만명) ▲독일 프랑크푸르트(3천5백10만명) ▲샌프란시스코(3천4백60만명) ▲덴버(3천3백10만명) ▲마이애미(3천20만명)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2천8백66만명)등으로 북미 공항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동안 아시아의 관문임을 자부해온 홍콩과 도쿄공항은 각각 17위와 21위에 머물렀으며 이용자가 급신장하고 있는 싱가포르와 방콕공항은 27위와 29위에 랭크됐다. 이용자를 지역별로 보면 북미가 9억9천8백여만명,유럽과 미서부해안 캐나다및 한국 일본등이 포함된 아·태지역은 각각 6억3천2백만명과 2억6천8백만명이 공항을 이용했다. 이밖에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지역 1억7백만명,아시아 4천8백만명,아프리카 1천4백만명이 공항을 이용했다. 한편 지난해 각 공항이 처리한 화물량은 전년도 대비 13% 늘어났고 항공기이착륙 건수는 3.3% 증가했다.미 멤피스 공항(테네시주)은 연간 1백70만t의 화물을 처리,가장「바쁜」공항의 명성을 얻었다.
  • 미 쿠바정책 개선 필요(해외사설)

    피델 카스트로가 파리에서 양복차림으로 귀빈대접을 받는 모습은 워싱턴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카스트로가 워싱턴을 방문해 환영받기에는 아직 이르지만,쿠바정책 재검토는 너무 늦은감 마저 있다.케네디대통령때 시작된 쿠바 제재조치는 효용가치가 소진됐다. 제재를 강화해 쿠바를 고립시키면 국민생활이 비참해지고 봉기가 일어나 결국 카스트로정권이 축출될 것이라는 환상에 보수파들은 아직도 집착한다. 이 시나리오는 현명치 못하며 인도적이지도 못하다.쿠바는 생존할 것이다.다른 나라들이 그곳에 투자하면서 금수조치에 불참하고 있기 때문이다.보수파들의 희망대로 반란이 일어난다면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많은 쿠바인들이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젊고 온건한 쿠바계 미국인들은 그들 윗세대의 보복망상에 점점 더 식상해하면서 카스트로정권과의 대화및 교역증진을 바란다.제재조치가 철폐된다면 그의 억압적 정책이 오래 유지될 수 없고 보통 쿠바인들은 물질적 부와 인간적 자유를 조금씩 맛볼 수 있게 될 것으로 그들은 느낀다.미국의 시대착오적인 제재정책이 없다면 카스트로가 국내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릴 수 있는 편리한 변명거리도 사라진다. 미국과의 개방적인 교류,쿠바계 미국인의 고국내 사업투자 허용 등이 첫단계가 될 수 있다.더 호의적인 무역조건도 개혁진전을 위한 유인책으로 제시될 수 있다.파리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카스트로는 프랑스 인권단체의 쿠바방문을 허용했다. 쿠바주둔 소련군및 기지가 미국에 진정 위협이 되고 카스트로가 세계각지에 무기및 혁명을 수출하던 때는 지나갔다.냉전의 망령이 사라진 쿠바는 역사에 추월당한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피폐한 미국의 이웃일 뿐이다.미국정책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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