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 4권 출간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읽지는 않는 책, 고전. 굳이 마크 트웨인의 익살이 아니더라도, 읽자고 결심해 책장 앞에만 서면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고전이다. 당시에는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상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충격이 가신 책은 따분한 ‘공자왈 맹자왈’에 그치기 쉽다. 이럴 때면 누군가 시간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줬으면 싶다.
●입체적 구성으로 이해 쉽게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낸 ‘세계를 뒤흔든 선언’시리즈는 이런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데이비드 보일 지음, 유강은 옮김), 미국 ‘독립선언서’(스테파니 드라이버 지음, 안효상 옮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앤드루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알렉스 맥길리브레이 지음, 이충호 옮김)을 각각 다루고 있다. 소로와 카슨의 책까지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고전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책은 계속 나왔다. 책세상문고는 ‘고전의 세계’로 50여권을 이미 냈고, 살림출판사는 ‘e시대의 절대사상’을 타이틀로 50권의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선언시리즈에 눈길이 가는 것은 입체적인 구성 때문이다.
대개 고전 관련 서적은 ‘원문+해당 전공자의 풀이글’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분량도 많고 다소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에 반해 선언시리즈는 본문을 과감하게 생략한 채 당시 배경과 그 이후의 파장·효과에 집중하고 있다.4권 모두 등장배경과 지은이, 선언 내용, 당대에 끼친 영향, 책이 남긴 유산, 여파, 연구자의 풀이글 순으로 일관되게 편집됐다. 부록으로 선언에 관련된 참고문헌 등이 실린 것은 물론이다. 여기다 각권 모두 170∼180쪽 정도의 문고판이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풀이글·자료사진도 충실
그렇다고 내용이 허투는 아니다. 프리랜서나 편집자, 작가가 간결하게 집필하고 충실한 자료 사진과 그림이 뒷받침하고 있다. 문고판치고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에다 그린비는 각권의 풀이글을 고병권, 안효상, 홍세화, 박용남 등 이름만 봐도 든든한 이들에게 맡겼다.
원문 자체가 워낙에 유명세를 치렀던 책이라 직접 읽어 보라는 것 외에는 따로 설명할 말이 없다.‘공산당선언’과 ‘독립선언서’의 웅장한 목소리에서 근대의 출현을,‘시민불복종’과 ‘침묵의 봄’의 조근조근한 어투에서는 근대의 성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다만 “세계를 뒤흔들었다.”는 말이 와닿지 않는다는 점은 못내 껄끄럽다.‘월드시리즈’가 세계선수권이 아니라 미국 국내 프로야구 리그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이 껄끄러움을 덜어내려면 우리도 이렇게 산뜻한 책을 얼른 내놓는 방법밖에 없다. 각권 99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