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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우리 게이에요”…한 쌍둥이 형제의 ‘커밍아웃’

    “아빠 우리 게이에요”…한 쌍둥이 형제의 ‘커밍아웃’

    지난 14일(현지시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기막힌 내용이 담긴 영상 한편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있다. 불과 이틀도 안돼 무려 450만 조회수를 기록한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LA에 사는 쌍둥이 형제 애런과 오스틴 로즈(19). 이들 형제가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아버지에게도 숨겨왔던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고백(커밍아웃)하기 위해서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실제로 영상을 보면 성정체성을 두고 오랜시간 가슴앓이 해왔던 두 형제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두 형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아빠 우리 게이에요..." 청천벽력같은 고백을 들은 아빠의 심정은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긴 한숨과 탄식을 지른 아빠는 '그만' 이라고 말하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19년 동안 이들을 잘생긴 청년들로 키워 낸 아빠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아빠'였다. 곧 아빠는 "너희들 세대는 우리와 다르다" 면서 "너희 둘다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이어 "만나서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긴 대화를 하자"며 대화를 마친다. 커밍아웃의 고통과 부정(父情)이 느껴지는 이 영상을 보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해당 영상에만 이미 1만 7000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대부분 형제를 응원하고 있다. 로즈 형제는 "이 영상을 촬영해 공개한 것은 우리와 같은(동성애자)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 이라면서 "우리를 지지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아빠 저 게이에요”…쌍둥이 형제 눈물의 ‘커밍아웃’

    “아빠 저 게이에요”…쌍둥이 형제 눈물의 ‘커밍아웃’

    지난 14일(현지시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기막힌 내용이 담긴 영상 한편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있다. 불과 이틀도 안돼 무려 450만 조회수를 기록한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 LA에 사는 쌍둥이 형제 애런과 오스틴 로즈(19). 이들 형제가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아버지에게도 숨겨왔던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고백(커밍아웃)하기 위해서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실제로 영상을 보면 성정체성을 두고 오랜시간 가슴앓이 해왔던 두 형제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두 형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아빠 우리 게이에요..." 청천벽력같은 고백을 들은 아빠의 심정은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긴 한숨과 탄식을 지른 아빠는 '그만' 이라고 말하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19년 동안 이들을 잘생긴 청년들로 키워 낸 아빠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아빠'였다. 곧 아빠는 "너희들 세대는 우리와 다르다" 면서 "너희 둘다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이어 "만나서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긴 대화를 하자"며 대화를 마친다. 커밍아웃의 고통과 부정(父情)이 느껴지는 이 영상을 보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겁다. 해당 영상에만 이미 1만 7000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대부분 형제를 응원하고 있다. 로즈 형제는 "이 영상을 촬영해 공개한 것은 우리와 같은(동성애자)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 이라면서 "우리를 지지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심장 뛰는 감동 느껴 보세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심장 뛰는 감동 느껴 보세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감동을 주는 이야기와 신디 로퍼의 훌륭한 음악이 ‘킹키부츠’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지난해 미국 토니어워드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을 석권한 뮤지컬 ‘킹키부츠’의 안무 겸 연출가 제리 미첼(54)이 한국을 찾았다. ‘록키호러쇼’, ‘헤어스프레이’, ‘라카지’ 등의 안무가로 이름을 알리고 ‘리걸리 블론드’,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안무와 연출을 함께 맡은 그는 안무가 출신의 브로드웨이 대표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최신 뮤지컬이 1년 반 만인 2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초연의 막을 올렸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그는 “심장박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킹키부츠’는 1980년대 영국 노샘프턴의 수제화 공장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공장의 이야기로, 2005년 영화로 제작됐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여장남자 댄서 롤라에게서 힌트를 얻어 여장남자를 위한 구두인 ‘킹키부츠’를 만든다는 줄거리다. 롤라를 불편해하는 공장 직원들, 이에 상처받은 롤라 사이에서 찰리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는 꿈과 동료애,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 등 보편적인 메시지가 층층이 담겨 있다.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영화 DVD를 보고 많이 울었어요. 인간적이고 감동적이면서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백치 여대생이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 승승장구한다는 ‘리걸리 블론드’, 뚱뚱하고 못생긴 소녀가 스타의 꿈을 이루는 ‘헤어스프레이’, 게이 부부가 보수주의 정치인의 집안에 아들을 장가보내는 ‘라카지’ 등 그의 작품에는 소수자가 편견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기도 한 그는 “관객들이 함께 응원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극장에 가기 전과 후 기분이 달라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주인공이 변하면서 주위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는 뮤지컬이죠.” 1980년대 마돈나와 세계 팝 시장을 양분했던 신디 로퍼가 작곡가로 나선 것도 화제였다. 신디 로퍼는 디스코와 팝, 발라드 등 다채로운 장르의 넘버를 작곡해 토니어워드 작곡가상과 베스트 음악상, 그래미어워드 베스트 뮤지컬앨범상을 거머쥐었다. 여성 작곡가가 단독으로 작곡가상을 수상한 건 그가 최초다. “1990년대 중반 올림픽 이벤트에서 신디 로퍼의 안무를 담당하면서 처음 만났습니다. 로퍼와 친구 사이인 (오리지널 극본가) 하비 피어스타인이 전화해서 출연 제의를 했는데, 마침 음반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 함께 뮤지컬을 만들자고 했죠. 그가 처음 보내 준 곡이 ‘못난 아들’이었는데 그 곡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초연된 ‘킹키부츠’는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장기 흥행 중이다. CJ E&M 공연사업부문이 자금을 투자해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고, 당시 투자 조건으로 한국에서의 라이선스가 성사됐다. 내년 2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 5만~14만원. 1577-336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2.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커밍아웃’ 모델 김지후 자살 동성애 ‘커밍아웃’을 했던 모델 겸 방송인 김지후(23)씨가 자살한 것으로 8일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7일 오전 9시30분쯤 송파구 잠실동 연립주택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방에서는 ‘외롭다, 힘들다, 화장해서 뿌려 달라.’는 내용이 담긴 찢어진 공책 종이가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데다 타살의 정황을 발견하지 못해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후략) 서울신문 2008년 10월 9일자 1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회의 냉대 때문에 성 소수자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은 최근 뉴스의 단골 소재입니다만, 예전에도 동성애자들의 이런 사정을 다룬 기사는 심심찮게 등장했습니다. 40여년 전의 기사로 들어가 봅니다. 20대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情死)를 전한 뉴스(1971년)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룬 뉴스(1969년)입니다. 두 기사에는 ‘동성애’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됐던 당대의 인식과 관점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게 뭔지 여러분들도 한번 찾아 보시지요. ▒▒▒▒▒▒▒▒▒▒▒▒▒▒▒▒▒▒▒▒▒▒▒▒▒▒▒▒▒▒ [신랑도 색시도 20대 처녀…“우린 행복했는데 왜 죄인 취급을 하는지“]-선데이서울 1971년 11월 14일자 스무살을 갓 넘은 아가씨 2명이 여관방에서 죽음을 택했다. 아가씨끼리 3개월 동안 단꿈을 꾸었으나 그 기형적인 사랑에는 부딪치는 장벽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사춘기의 빗나간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사건의 경위는 사춘기 자녀를 딸로 둔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1971년 11월 1일 밤 부산 서구의 한 여관 3호실에서 두 아가씨가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푸른색 해군 작업복 바지에 남자용 스웨터를 입고 하이칼라 머리를 한 총각같은 처녀가 유모(21)양. 그옆에 다소곳이 숨을 죽이고 쓰러져 있는 검정색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가 아내역의 이모(22)양. 경찰이 급히 달려왔을 때 사내 차림의 유양은 완전히 숨이 끊어져 있었고, 이양은 부산시립병원으로 옮겨져 2일 동안의 응급치료를 받은 끝에 살아났다. 극약을 먹고 정사를 꾀한 ‘레즈비언의 최후’였다. 3일 아침 경찰에 불려온 이양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유양의 죽음을 원통해 했다. 자신도 같이 죽지 못했음을 괴로워했다. 이양은 “우리는 돈이 없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었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직장에 들어가 다정하게 지내온 사이. 이양은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동성연애가 얼마든지 있다는데 왜 우리 주위에서는 그렇게 미워하며 죄인 취급을 하느냐”고 경찰관을 붙들고 원망하기도 했다. 두 아가씨가 사랑을 맺은 것은 지난 5월 부산의 어느 섬유 보세공장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사람은 이웃의 소개로 여직공으로 같은 날 입사를 하게 됐다. 한살 아래인 유양은 성격이 아주 쾌활했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출·퇴근도 같이 한 둘은 공장에서는 베짜는 기계를 사이에 놓고 마주보며 일했다. 둘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연인처럼 다정한 눈웃음을 보냈다. 직공 생활 두달째 되던 7월 초 어느날 둘은 일을 끝내고 다방으로 갔다. 유양이 먼저 위스키 를 마시자고 했다. 각자 두 잔씩의 위스키를 마시고는 어지러울 정도가 된 그들은 그길로 충무동의 어느 중국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두 사람은 고량주를 더 마시면서 부둥켜 안고 뒹굴었다. 이양은 처음에는 취한 김에 몸을 주체하지 못해 유양이 하는대로 몸을 맡겼으나 차차 황홀해지더라고 했다. 유양이 이양에게 먼저 “남편이 되겠다”고 제의했다. 이양도 그말이 싫지가 않아 “같이 사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유양은 연하의 남편역이 된 것이다. 근처 여관으로 옮겨간 둘은 서로 살을 부비면서 “헤어지지 말자”면서 부부가 되기로 맹세했다. 다음날 여관을 나서자마자 유양은 이발소로 달려가 머리를 깎아올리고, 국제시장으로 가 바지와 스웨터를 사입고 남장여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관 사람들은 이들이 찾아들 때마다 수군거리며 이상한 눈초리를 했다. 공장의 동료 직공들도 둘 사이를 눈치챘다. 남장을 한 유양이 지난달 24일 공장에서 쫓겨났다. 얼마 후 양쪽 집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둘은 집에서도 쫓겨났다. 이양 등은 도리 없이 여관으로 옮겨 같이 살았다. 이양이 공장에 나갔다 올 때까지 유양은 여관방에서 굶어가며 기다렸다. 이런 생활이 1주일쯤 계속되니까 유양은 이양이 공장에 다니는 것을 말리면서 죽는 날까지 방에서 같이 살자고 우겼다. 헤어져 있는 동안의 외로운 생각이 질투와 비슷한 감정으로 변한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양도 공장을 그만두고 여관에 들어앉았다. 하지만 여관비가 밀리면서 둘은 밥 한끼도 못 먹을 지경이 됐다. “사흘을 굶어도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저 우리는 만족했어요.” 이양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똑같이 가난한 가정에서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집안일을 돌보던 두 사람은 첫 직장을 얻어 나왔다가 불행한 결말을 보게 됐다. 이양은 “유○○에게는 이렇게 된 과거가 있었다”고 전했다. 유양이 17세때 이웃의 30세 된 과부가 매일밤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함께 자고 뒹굴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사춘기 처녀에게 동성연애 심리를 심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유양은 그 과부가 1968년 10월 자살을 해버리자 미친 사람처럼 쏘다니며 자기 또래의 처녀들만 보면 연애 감정이 살아나 괴로워 했다더라고 이양은 전했다. ▒▒▒▒▒▒▒▒▒▒▒▒▒▒▒▒▒▒▒▒▒▒▒▒▒▒▒▒▒▒  [그 여보의 남편은 여자? 간호장교 출신 가장의 단란한 3인 일가]-선데이서울 1969년 3월 2일자 여자끼리 결혼해서 3년 6개월 동안 살고 있다. 두 여자 중 한 여자는 남장(男裝)으로 살아간다. 한 사람은 완전히 남자답고, 한 사람은 완전히 여자답다. “그렇게 사는 데 불만이 없느냐”고 묻는 것은 그들의 금슬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젖먹이를 주워다 기르며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며 이웃이 부러워할 만큼 부부생활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남편 김영철(35·가명)씨와 부인 황연자(30·가명)씨는 황해도 동향 출신이다. 두 사람 다 1·4 후퇴 때 월남했다. 김씨는 황씨 언니의 고향 친구다. 고향이 같고 언니의 친구라는 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1965년 8월 12일 결혼을 했다. 김씨는 여군간호학교 중위 출신. 여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두 동생을 위한 아버지 노릇을 다하기 위해 남자의 역할을 해왔지만 여군이라는 것이 김씨의 ‘중성화’ 또는 ‘남성화’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 여자 부부는 충남 논산에 집을 마련해 행상을 하며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다. 살림이야 가난하지만 자연이 좋아서 이곳에 산단다. “때로는 이웃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합니다. 저것들이 성(性) 불구가 아니고서야 여자끼리 살 수가 있느냐는 거예요. 하지만 우린 문제 없는데, 옷을 벗어 보일 수도 없고….” 몸의 어느 한 구석도 여성이 아닌 곳이 없다는 남편 김씨의 이야기. 여자의 여자됨을 핵심적으로 알려주는 성 기능을,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신체의 핵심적인 부분이 다하고 있지 못할 때 그녀를 완전한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어쨌든 ‘있을 것은 다 있으니’ 여자는 여자라는 이야기다. 남편 김씨는 21세 되던 해부터 14년 간을 줄곧 짧은 머리에 남장을 하고 살아왔다. 남장을 한 초기에는 의식적으로 남자 행세를 했으나 ‘서당개 3년’이라고 이제 십수년간 남자로 살다보니 어김없는 남자가 되었고, 오히려 진짜 남자 뺨치게 남성적이 되었다고 한다. 부인 황씨는 현수(2·가명)라고 이름 지은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현모양처 구실을 다하고 있다. 거리에 버려진 젖먹이 어린 생명을 보살피며 거기서 생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고 있다. “불만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족한 표정으로 말하는 부부의 이구동성. 이쯤에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허구많은 남자를 두고 왜들 그러시나? “남자가 싫어서…”라는 것이 부인 황씨쪽의 간단한 변. -여자가 남자를 싫어하다니 무슨 곡절이라도 있으신가? “없어요.” 그러나 남편 김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김씨는 1·4 후퇴 때 두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아버지의 맨주먹 벌이로 간신히 대전간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일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져 결국 장녀인 김씨가 어린 두 동생을 기르고 가르치게 되었다. 김씨는 직장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자 어린 소녀의 몸으로 시장의 채소 리어카를 끌었다. 하지만 네 식구의 최소한의 연명도 어려운 형편. 18세의 소녀 김양은 여군에 입대한다. 아버지의 결사적인 반대를 피해 동향 친구 허모씨 쪽으로 가(假)호적을 내고 입대, 간호장교가 되었다. 간호장교 생활 3년 동안의 얼마 안되는 봉급은 받기가 무섭게 동생들에게 보내졌다. “제대를 하고 나니 막막하더군요. 직업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보다 훨씬 적지요. 우선은 먹고 사는 일이 급했지만 동생들을 가르치는 걸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1년간 곱게 길러온 검은 머리를 잘라내고 바지를 입고 잠바를 걸쳤다. 트럭의 조수도 했고 택시도 몰았다. 남자 아닌 남자의 역경과 수난은 계속됐고 자신의 노력이 집안 살림에 점차 도움이 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제대 후 2년 만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전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노력은 결실을 거뒀다. 첫째 동생은 명문대를 나와 은행에 취직했고 둘째 동생은 파월 백마부대에서 복무 중이다. 어린 동생들 때문에 18세의 꽃피는 사춘기부터 30세가 넘는 생의 황금기를 결혼도 못하고 고스란히 빼앗겨버린 김양, 아니 원일군의 아버지 김씨. 아무런 후회도 아쉬움도 없단다. “이놈(현수)을 훌륭히 키워 의사를 만들어 제가 하고 싶었던 인술을 베풀도록 할 생각입니다.” 남장으로 꾸민 김씨의 20대 시절, 살기 위해 직종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에게 여러 신문, 잡지사의 기자들이 정체를 밝히겠다며 짓궂게 몰려들었다고 한다. “2시간 동안이나 신문기자에게 납치된 적이 있었지요. 옷을 벗겨보고 말겠다 다짐하는 기자도 있었죠.” 이제 어엿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어려운 생활 중에도 1주일에 한번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책을 한다. 앞으로 현수와 같은 불행한 아이가 있으면 몇 명이고 데려다 기르고 싶다는 김씨 부부는 만일 큰 돈을 벌게 되면 꼭 고아원을 차리겠다고 다짐한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최초 커밍아웃 제이슨 콜린스, NBA 은퇴 선언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농구·야구·하키·미식축구) 통틀어 최초로 커밍아웃해 화제를 모은 미국프로농구(NBA) 센터 제이슨 콜린스(36)가 선수 생활을 접었다. 콜린스는 “NBA에서 은퇴한다”고 19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열린 브루클린 네츠와 밀워키 벅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콜린스는 2001년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네츠)에서 NBA에 데뷔, 2002년, 2003년에는 뉴저지를 NBA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끌었다. 이후 멤피스 그리즐리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애틀랜타 호크스 등을 거쳐 올해 2월 브루클린과 10일짜리 단기 계약을 맺으며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FA) 선수 신분이 되고도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못했다. NBA를 누빈 13년간 콜린스는 경기당 20.4분을 소화하며 3.6점, 3.7리바운드를 남겼다. 대형 스타가 아닌 그가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것은 지난해 4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다. 미국 4대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현역 선수가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사례는 콜린스가 최초였다. 콜린스에 이어 미국프로풋볼 세인트루이스 램스의 마이클 샘,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1 남자농구 매사추세츠 대학의 가드 데릭 고든 등이 커밍아웃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스포츠와 동성애자 권리를 위해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과 대중, 지도자, 선수들, 리그와 역사가 나를 포용해줘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 팀 쿡 커밍아웃 이튿날 잡스 추념비 철거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커밍아웃’한 이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캠퍼스에 있던 아이폰 모양의 스티브 잡스 추념비가 철거됐다고 LA타임스 등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추념비를 세운 러시아 기업 ZEFS는 성명을 통해 “팀 쿡이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이후 추념비는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부인하는 정보들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러시아연방법에 따라 해체됐다”고 밝혔다. 성인 키 높이의 대형 아이폰 모양으로 터치스크린 방식을 통해 잡스의 면면을 소개해 온 이 추념비는 지난해 설치됐으며, 쿡이 기고를 통해 커밍아웃한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철거됐다. 독실한 동방정교회 국가인 러시아는 2012년 전통적인 성관계에 어긋나는 내용을 선전하거나 교육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2월 소치동계올림픽 개최 직전 게이, 레즈비언 등을 억압하는 법률이란 비판이 서방국가로부터 쏟아졌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차별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옹호했다. 추념비 철거 소식이 관심을 불러모으자 대학 당국은 “리노베이션을 위해 철거하는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애플사의 영업이 타격받을 것 같진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ABC뉴스는 “애플스토어가 없긴 하지만 러시아 젊은이들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해외로 나가 구해 오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애플의 열혈 팬”이라고 전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55세 생일날 홀로 장보는 ‘커밍아웃’ 팀 쿡 포착

    55세 생일날 홀로 장보는 ‘커밍아웃’ 팀 쿡 포착

    최근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팀 쿡 애플 CEO의 평범한 일상이 포착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팀 쿡 CEO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미국의 유명한 유기농 로컬 마켓을 찾아 홀로 장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55세 생일이기도 했던 이날 팀 쿡은 가벼운 선글라스와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외출을 해 한가로운 주말을 보냈다. 팀 쿡은 음악을 듣는 듯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습이었으며, 그의 손에는 애플의 흰색 아이패드가 들려있었다. 홀로 장을 본 뒤 양속 가득 패브릭 쇼핑백을 들고 나온 그는 직접 자신의 차에 짐을 싣고 현장을 떠났으며, 생일을 누구와 함께 보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팀 쿡은 지난 달 말 “내가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커밍아웃을 한 뒤 일부 국가에서는 거센 역풍이 일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주요 외신들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정보·기술 주립대학에 설치된 스티브 잡스의 기념비는 팀 쿡의 커밍아웃 직후인 31일 철거됐다. 철거 주체는 지난 해 기념비를 세운 한 회사였다. 이 회사는 공식 성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러시아의 가족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상을 퍼뜨릴 수 없다”고 밝혔다. CEO 개인 사생활 공개과 더불어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폭발적인 판매기록을 이룬 애플은 연일 주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홀로 장보는 ‘커밍아웃’ 애플 CEO 팀 쿡 포착

    홀로 장보는 ‘커밍아웃’ 애플 CEO 팀 쿡 포착

    최근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팀 쿡 애플 CEO의 평범한 일상이 포착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팀 쿡 CEO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미국의 유명한 유기농 로컬 마켓을 찾아 홀로 장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55세 생일이기도 했던 이날 팀 쿡은 가벼운 선글라스와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외출을 해 한가로운 주말을 보냈다. 팀 쿡은 음악을 듣는 듯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습이었으며, 그의 손에는 애플의 흰색 아이패드가 들려있었다. 홀로 장을 본 뒤 양속 가득 패브릭 쇼핑백을 들고 나온 그는 직접 자신의 차에 짐을 싣고 현장을 떠났으며, 생일을 누구와 함께 보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팀 쿡은 지난 달 말 “내가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커밍아웃을 한 뒤 일부 국가에서는 거센 역풍이 일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주요 외신들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정보·기술 주립대학에 설치된 스티브 잡스의 기념비는 팀 쿡의 커밍아웃 직후인 31일 철거됐다. 철거 주체는 지난 해 기념비를 세운 한 회사였다. 이 회사는 공식 성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러시아의 가족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상을 퍼뜨릴 수 없다”고 밝혔다. CEO 개인 사생활 공개과 더불어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폭발적인 판매기록을 이룬 애플은 연일 주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러 의원 “팀쿡, 러시아 입국금지”... 사회· 경제 후폭풍?

    러 의원 “팀쿡, 러시아 입국금지”... 사회· 경제 후폭풍?

    러시아의 한 유명 정치인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53)의 '커밍아웃'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 비탈리 밀로노브는 "팀 쿡의 러시아 입국을 평생 금지해야 한다" 면서 한술 더 떠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 임질?" (What could he bring us? The Ebola virus, AIDS, gonorrhea?)이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밀로노브 의원은 러시아에서도 반동성애 입법자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이같은 움직임은 반동성애법을 제정하는 등 동성애를 대놓고 문제시하는 러시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경제 전문가들은 동성애에 대한 분위기가 좋지않은 러시아와 중국, 중동 등에서 애플의 사업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앞서 쿡은 30일(현지시간)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커밍아웃 이전부터 동성애자로 의심받아온 쿡은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면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난 수년 간 내 성적 지향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했고 애플 직원들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언론들은 쿡의 커밍아웃이 가져올 사회적, 경제적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그가 미국 시가총액 1위로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애플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IT 업체 종사자들은 대체로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반면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개인적인 결정일 뿐" 이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애플 CEO 팀쿡 커밍아웃 “동성애자..신이 준 선물, 자랑스럽다” 이유보니

    ‘팀쿡 커밍아웃’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쿡이 커밍아웃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에 선정된 바 있는 팀쿡 애플 CEO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30일(현지시간) 팀쿡은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 했다. 포춘지에 사람들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남성 리더 33위에 이름을 올렸던 팀쿡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에서 “내 성적 성향을 부인한 적은 없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도 없었다”면서 “분명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커밍아웃 발언을 했다. 팀쿡은 “동성애자로 살면서 소수자에 대해 깊이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때때로는 힘들고 불편했지만 나 자신으로 살고 역경과 편견을 넘어설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전했다. 팀쿡은 그 동안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동성애자 지지 발언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모교인 앨라배마주 오번대에서 차별을 경험했던 이야기와 함께 “이제는 인간 존엄의 근본적 원칙에 대해 법률에 명문화할 때”라며 동성애자 권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팀쿡 커밍아웃 대박이다”, “팀쿡 커밍아웃, 영향력 클 듯”, “팀쿡 커밍아웃, 충격이다”, “팀쿡 커밍아웃 세계적인 지도자가 동성애자라니..”, “팀 커밍아웃,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팀쿡 커밍아웃 “나는 동성애자, 자랑스럽다”…한국은 아이폰6 출고가 관심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했다. 팀 쿡은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내 성적 성향을 부인한 적은 없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적도 없다”며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 수년간 내 성적 지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했고 애플의 동료들도 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게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애플 CEO가 동성애자라는 걸 밝히며 이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팀 쿡이 동성애자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공개적으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가 한국에서 31일 정식 출시되면서 애플스토어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다. 팀쿡 커밍아웃 및 아이폰6 소식에 네티즌들은 “팀쿡 커밍아웃 및 아이폰6, 감동적인 고백이다”, “팀쿡 커밍아웃 및 아이폰6, 용기 있는 선택이다”, “팀쿡 커밍아웃 및 아이폰6, 깜짝 놀랐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애플 CEO 팀 쿡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애플 CEO 팀 쿡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것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30일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쓴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나의 성적 취향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인생에서 가장 끊임없고 시급한 질문은 당신은 남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말을 믿는다”며 “애플의 CEO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소외됐다고 느끼는 모두에게 위안이 되거나, 소수자 평등을 위해 싸울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 사생활을 공개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쿡은 그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동성애자 지지 발언을 해 왔다. 쿡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잘 공감할 수 있었다”면서 “때때로 힘들고 불편했지만 나답게 살고 내 길을 따라갈 자신감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성애자라고 밝히기로 한 결정이 쉽지 않았고 사생활은 여전히 중요하다”면서도 “우리는 정의를 향해 차곡차곡 벽돌을 깔며 햇빛이 드는 길을 만들고 있다. 이것(커밍아웃)이 내 벽돌”이라고 말했다. 아트 레빈슨 애플 이사회 의장은 쿡의 커밍아웃에 대해 “용기 있는 일”이라며 “이사회와 회사 전체를 대표해서 쿡이 애플을 이끌고 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상장사 CEO 중 커밍아웃을 한 경우는 C1 파이낸셜의 CEO인 트레버 버지스와 IGI 연구소의 CEO 제이슨 그렌펠가드너 등이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러 정치인 “커밍아웃 팀 쿡, 평생 입국금지” 비난

    러 정치인 “커밍아웃 팀 쿡, 평생 입국금지” 비난

    러시아의 한 유명 정치인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53)의 '커밍아웃'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 비탈리 밀로노브는 "팀 쿡의 러시아 입국을 평생 금지해야 한다" 면서 한술 더 떠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 임질?" (What could he bring us? The Ebola virus, AIDS, gonorrhea?)이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밀로노브 의원은 러시아에서도 반동성애 입법자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이같은 움직임은 반동성애법을 제정하는 등 동성애를 대놓고 문제시하는 러시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경제 전문가들은 동성애에 대한 분위기가 좋지않은 러시아와 중국, 중동 등에서 애플의 사업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앞서 쿡은 30일(현지시간)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커밍아웃 이전부터 동성애자로 의심받아온 쿡은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면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난 수년 간 내 성적 지향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했고 애플 직원들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언론들은 쿡의 커밍아웃이 가져올 사회적, 경제적 후폭풍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그가 미국 시가총액 1위로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애플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IT 업체 종사자들은 대체로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는 반면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개인적인 결정일 뿐" 이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애플 CEO 팀 쿡, 깜짝 발언 “게이인 게 자랑스럽다” 도대체 왜?

    애플 CEO 팀 쿡, 깜짝 발언 “게이인 게 자랑스럽다” 도대체 왜?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53)이 30일(현지시간)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쿡은 “내 성적 성향을 부인한 적은 없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도 없었다”면서 “분명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로 살면서 소수자에 대해 깊이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며 “때때로는 힘들고 불편했지만 나 자신으로 살고 역경과 편견을 넘어설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자로서의 공감 능력은 더 풍부한 삶을 열어줬고 시련은 자신에게 코뿔소 가죽처럼 튼튼한 마음을 가지게 해 애플의 CEO로 일할 때 도움이 됐다고 쿡은 덧붙였다. 쿡은 그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동성애자 지지 발언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모교인 앨라배마주 오번대에서 차별을 경험했던 이야기와 함께 “이제는 인간 존엄의 근본적 원칙에 대해 법률에 명문화할 때”라면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해 언급했다. 또 27일에는 아직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고향 앨라배마 주 정부에 대해 성소수자(LGBT) 권리 보호에 소홀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쿡이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은 다른 동성애자들을 돕기 위해서다. 또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는 주가 늘어나는 등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바뀐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설명했다. 쿡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인생의 가장 끊임없고도 다급한 질문은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라는 발언을 인용하며 “애플의 CEO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나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사생활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다”면서도 “우리는 정의를 향해 차곡차곡 벽돌을 깔며 햇빛이 드는 길을 만들고 있다. 이것(커밍아웃)이 내 벽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수년간 내 성적 지향에 대해 많은 사람에게 공개했고 애플의 동료도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내가 게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트 레빈슨 애플 이사회 의장은 쿡의 커밍아웃에 대해 “용기있는 일”이라며 “이사회와 회사 전체를 대표해서 쿡이 애플을 이끄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쿡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이날 처음 스스로 밝히기는 했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게이·레즈비언 잡지인 ‘아웃’(Out)은 지난해 동성애자 명단 50명을 발표하면서 맨 위에 쿡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스티브 잡스에 이어 애플 경영을 맡고 나서 애플도 LGBT 권리 옹호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금까지 미국 상장사 CEO 가운데 커밍아웃을 한 경우는 C1 파이낸셜의 CEO인 트레버 버지스와 IGI 연구소의 CEO 제이슨 그렌펠-가드너 등이 있다. 유나이티드세라퓨틱스의 마틴 로스블랫 CEO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성으로 변모한 뒤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로드 브라운 BP CEO는 수십년간 성적 정체성을 숨겨오다가 2007년 남자친구가 이를 공개하자 할 수 없이 커밍아웃한 뒤 사임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동료 CEO들은 쿡의 커밍아웃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쿡의 기고문을 팔로어들과 공유하면서 “진정하고 용기 있는, 그리고 진정한 리더가 무엇인지 보여준 팀에게 감사한다”고 썼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선임 부사장도 쿡에게 보낸 트윗에서 “정말 감격스럽다. 이번 일이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공화당 대권 잠룡으로 강경 보수주의인 티파티의 지원을 받는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이날 CNBC 방송에 출연해 “쿡의 커밍아웃은 그의 개인적인 결정”이라며 “그건 그의 인생이고 내 초점은 헌법적으로 누가 그걸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애플 CEO 팀 쿡, 대단하다”, “애플 CEO 팀 쿡, 정말 용기있네”, “애플 CEO 팀 쿡, 무슨 일이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스 유니버스 2등 미녀 깜짝 ‘커밍아웃’ 화제

    미스 유니버스 2등 미녀 깜짝 ‘커밍아웃’ 화제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녀가 ‘커밍아웃’을 해 현지의 화제로 떠올랐다. 미스 스페인 출신으로 2013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해 2등을 차지한 파트리샤 유레나(24)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깜짝 커밍아웃했다. 유레나는 지난 20일 인스타그램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으로 한 여성과 누워있는 야릇한 사진 한장을 올렸다. 상대 여성은 스페인의 유명 가수이자 DJ 바네사 클레인. 연인 관계임을 암시하는 듯한 이 사진은 팔로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곧 유레나가 커밍아웃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유레나는 곧 입을 열었다. 유레나는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 행동에 후회하지 않는다” 면서 “지금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얼마 후 트위터에도 “여러분들의 댓글과 지지에 감사드린다” 면서 “사진을 올린 것은 스스로 충동적으로 한 일”이라고 적었다.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것으로 현지언론은 미인대회 타이틀 보유자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커밍아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유레나는 지난 2008년과 2013년 스페인 미인대회에 출전해 연이어 우승을 차지했으며 지난해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가브리엘라 이슬러에 이어 2등에 올랐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윤 일병’ 세상 알린 임태훈 소장은

    ‘윤 일병’ 세상 알린 임태훈 소장은

    하마터면 영원히 묻힐 뻔한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을 폭로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임태훈(38)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 소장은 군 당국이 단순 폭행치사 사건으로 발표했던 윤 일병 사건이 잔인한 가혹행위에 따른 비극이라는 사실을 지난달 31일 폭로하면서 일약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7일에는 2차 폭로를 통해 윤 일병의 직접적 사인이 구타에 의한 것이었다고 은폐 의혹을 추가로 제기하는 등 ‘골리앗’ 같은 군 당국에 맞선 ‘다윗’처럼 당찬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는 등 말쑥한 외모의 임 소장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권리 구제 활동을 벌여 온 ‘인권운동가’다. 2005년 6월 경기 연천군 경계초소(GP)에서 발생한 김모 일병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군대의 언어폭력, 구타 및 가혹행위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게 된 임 소장은 그해 10월 군인권센터 설립에 나섰고 2009년 군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임 소장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구한의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임 소장은 1997년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창립했다. 당시 변호사였던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함께 동성애를 왜곡한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임 소장은 2000년 당시 성공회대 교수였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권유로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진학했다. 체계적인 인권·시민사회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임 소장은 같은 해 9월 연예인 홍석천씨의 동성애자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해 동성애자 차별에 저항했다. 이 운동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동참했다. 이후 임 소장은 한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도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임 소장은 2004년 동성애 성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군형법 92조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 신체검사에 저항해 병역을 거부했고,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사면위원회는 복역 중인 임 소장을 양심수로 선정,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고, 임 소장은 2005년 6월 가석방된 뒤 그해 8·15 특사로 사면됐다. 이후 임 소장은 국가인권위원회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사업과 군 인권교육교재 개발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등 군 의문사나 가혹행위, 차별, 인권 유린에 대한 개선 활동을 벌여 왔다. 그는 지금 ‘군 인권의 개척자’란 별명을 얻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내 가슴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

    “내 가슴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

    “2006년 여름,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처음 봤던 한국 축구대표팀, 이젠 한국에서 응원합니다.” 서강대 탈북학생 동아리인 ‘우리하나’의 전 회장 정광성(25·정치외교학과)씨는 월드컵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1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교정에서 만난 정씨는 기말고사 기간과 겹친 브라질월드컵 한국-러시아전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씨는 “러시아전이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교양과목 시험 직전에 끝나기 때문에 볼지 말지 고민 중”이라면서 “알제리, 벨기에와의 경기는 친구들과 함께 레지던스(청소·세탁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시설)를 빌려 꼭 응원할 계획”이라며 웃었다. 2006년 홀로 고향인 함경도를 떠나 가까스로 한국에 안착하기 전 3개월쯤 머물렀던 후텁지근한 태국의 난민수용소에서 정씨는 월드컵을 사실상 처음 접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전기가 잘 안 들어오는 데다 결승전만 TV로 중계하기 때문에 월드컵 응원은커녕 관람도 쉽지 않다”면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2006년 여름, 태국수용소에 함께 있던 한국인 몇 명과 TV로 독일월드컵을 지켜보는데 축구를 통해 세계인이 웃고, 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짜릿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4년이 흘러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정씨는 서울의 거리에서 한국대표팀을 응원했다. 정씨는 “친구들과 거리 응원을 나갔다 돌아오니 공부를 하던 동아리방 건물 문이 잠겨 있어 창문을 열고 담을 넘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면서 “북한에서는 이렇게 국민들이 진심으로 열광하고 기뻐할 일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남한에 온 이후 한동안 ‘북한 출신’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란으로 정씨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정씨는 “입국 직후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두 살 어린 학생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는데, 혹시라도 탈북자 꼬리표가 달릴까 봐 숨겼다”고 했다. 이어 “강원도에서 왔다고 속였는데, 강원도 사투리는 북한 말과 또 다른 데다 세상 물정도 몰라 따돌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한사회에 정착하지 못해 한때는 북한으로 되돌아갈 생각도 했다.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시달리기도 했던 정씨가 마음을 잡게 된 건 주변에 ‘커밍아웃’을 한 뒤부터다. 정씨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조언으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탈북 사실을 알렸다. 날 이상하게만 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따뜻한 관심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도 ‘고향만 북한일 뿐, 내가 잘못한 것도 없고, 김정일이 싫어 고향을 떠난 것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니듯 함경도도 한반도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씨보다 몇 달 앞서 탈북한 여동생과 부모님은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 북한 고위직이었던 정씨의 조부모가 1956년 8월 종파 사건(연안파·소련파 숙청 사건)에 연루돼 숙청되면서 평양에서 지방으로 추방당한 이후 정씨 아버지는 북한에서 유일한 출세의 길로 여겨지는 군 입대도 할 수 없게 되자 탈출을 감행했다. “무엇보다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20대인 나로서는 남한 사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라는 정씨는 “월드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원임을 느낀다”며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건승을 기원했다. 글 사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동성애 사회에서 HIV감염자 더 소외…그게 가장 힘들어”

    “동성애 사회에서 HIV감염자 더 소외…그게 가장 힘들어”

    “이 정도면 잘 견뎌 온 거니까…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습니다.” 박동민(43·회사원·가명)씨는 지난 3일 서울 종로의 한 술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판정을 받은 지 20년 되는 해를 ‘자축’하는 자리이자 ‘2014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의 사전 이벤트였다. 병에 걸린 걸 축하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걸리면 죽는 병’이라고 했는데 지금껏 잘 살아왔잖아요. 저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 ‘우리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박씨가 겪은 지난 20년은 또래보다 고단했다. 21세 되던 1992년 그는 동성을 만날 때 가슴이 떨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4년 교통사고로 입원한 뒤 HIV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었다. 당시만 해도 죽는 병으로 알았기 때문에 겁이 났다. 회사를 그만뒀고 긴 방황이 시작됐다. 1998년,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HIV 감염 사실과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동성애자임을 주변에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했다. 다행히 박씨의 사연을 들은 동성애 인권단체 등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동성애와 HIV. 하나의 무게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우리 사회의 거대한 두 편견과 싸워야 했다. 박씨는 “가장 힘든 건 동성애자 사회에서조차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냉대하는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 몇 해 전 게이들이 가는 술집 주인이 박씨가 마신 컵을 모두 가져다 버리고 그가 앉았던 자리를 표백제로 청소했다는 얘기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20여년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줄어든 듯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20대에는 살아가기보다 살아남기 급했고 30대에는 상처받기 싫어 도망치기 바빴다”면서 “하지만 이제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어느 순간부터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사진 찍는 걸 주저했는데 이제는 사진도 많이 찍고 연애도 당당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해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인 퀴어문화축제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7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퍼레이드로 막을 연다. 올해로 벌써 15년째다. 서대문구청이 축제를 2주일 앞두고 세월호 참사 추모 분위기를 이유로 들며 퍼레이드 등 축제 승인을 취소했지만 주최 측은 집회 신고를 하고 강행할 예정이다. 동성애 단체 관계자는 “보수 기독교단 등 동성애 혐오 집단이 구청 등에 민원을 내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첫해에는 고작 50여명이 참가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 올해엔 2만명가량 모일 것으로 주최 측은 내다봤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국내 성소수자는 350만~400만명에 이르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벽장 속에 숨어 있다. 1년에 한 번 억압에서 해방돼 자신을 드러내고 걸어 볼 수 있는 때가 퀴어문화축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희리 기자 heeree916@seoul.co.kr
  • 강민경 ‘익룡연기’ 해명… “대본을 받았는데 지문이…” 얼마나 어색했길래

    강민경 ‘익룡연기’ 해명… “대본을 받았는데 지문이…” 얼마나 어색했길래

    강민경 ‘익룡연기’ 해명… “대본을 받았는데 지문이…” 얼마나 어색했길래 걸그룹 다비치의 강민경이 이른바 ‘발연기’ 논란을 일으켰던 ‘익룡연기’에 대해 해명했다. 강민경은 28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는 장수원, 애프터스쿨 리지, 배우 박동빈이 출연한 ‘연기의 신’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강민경은 ‘익룡 연기’라는 별명을 얻게 된 드라마 ‘웃어요 엄마’ 속 장면을 언급하며 “커밍아웃을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민경은 “저 장면이 생애 첫 연기 장면였다. 대본을 받았는데 지문이 엄청 길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본에는 대사없이 ‘선루프를 열고 올라가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신나게 소리를 지르면서 자유를 느끼다가 갑자기 슬픔이 북받쳐 오열한다’라는 지문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강민경은 “첫 드라마의 첫 촬영 장면이었는데 지문이 많았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추웠다. 촬영시기가 1,2월 겨울이었다. 그래서 입이 잘 안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강민경은 또 “감독님이 오케이를 해서 저는 제가 잘 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얼굴을 가리고 봤다”면서 “소리가 너무 거슬린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석천 “동성애자가 마약범인가요”

    홍석천 “동성애자가 마약범인가요”

    “14년 전 제가 커밍아웃을 했더니 마약수사팀 형사 4명이 영장 없이 찾아와 ‘마약 한 적 없느냐’고 물어요. ‘맨 정신에 동성애 할 리가 없다’면서. 저 그런 거 안 합니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방송인 홍석천(43)씨는 “성소수자가 지저분한 성관계를 한다거나 마약을 한다는 등 잠재적 범죄자쯤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서 “성적소수자들은 협박이나 사기, 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찰을 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왔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언급했더니 수사서류에 ‘동성애자 ○○○’라고 명시해 조사과정에서 주변에 알려진 일도 있다”면서 “가족과 직장 동료도 몰랐는데 경찰한테 ‘아우팅’(성소수자임이 밝혀지는 것)을 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용산서와 파출소 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용산구에는 이태원과 해방촌 등지에 트랜스젠더(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바나 게이(동성애자) 클럽이 많아 용산서 경찰관들은 성소수자를 접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거나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는 경찰관도 적지 않다. 홍씨는 성소수자로서 걸어온 길을 소개하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를 전했다. 홍씨는 “동성애자는 가족이 받을 충격이나 사회적 시선을 우려해 성적 취향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배려를 당부했다. 그는 “경찰은 시민과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면서 “인권 사각지대에서 경찰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사생활이 노출될까 봐 쉬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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