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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보디아 앙코르:상/앙코르사원(세계 문화유산 순례:1)

    ◎힌두신에 바친 세계최대 석조신전/“죽은자의 땅” 해지는 서쪽에 정문/머리일곱 뱀신 「나가」 7대양 상징/넓이 2㎢·정교한 부조장식… 7대 불가사의 위대한 존재는 정녕 신인가,인간인가. 인간이 만든 신의 도시 「앙코르」. 신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고,인간은 다시 앙코르를 지어 신에게 바쳤다. 그 앙코르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경지에 있었다. 앙코르는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번성한 나라 크메르제국(서기 802∼1432년)의 왕도였다.아직 우리에겐 앙코르보다 「킬링 필드」로 더 기억되는나라 캄보디아를 찾아가는 여정은 짧았다.여객기가 태국 방콕을 떠난지 한시간이 채 안됐는데도 기내방송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포첸통공항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곧바로 국내선 청사로 가 시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시엠립공항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앙코르 와트」로 직행했다.사람들은 「앙코르」(도시라는 뜻)보다는 「앙코르 와트」란 단어에 더 친숙하다.그러나 역사도시 앙코르는 「와트」(사원)말고도 「앙코르 톰」(거대한 도시, 또는 성벽의 도시)과 주변 밀림 속에 산재한 여러 사원등 많은 유적을 품에 안고 있다. 앙코르 와트에 도착해 정문 앞에서 차를 내렸다.3백여m 저쪽에 「세계 7대불가사의」니 「세계 최대의 사원」이니 하는 거대한 석조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한국의 가을만큼이나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검은빛을 띤 사원은 의연했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단층형 건물 뒤로는 산봉우리처럼 솟은 높고낮은 상륜(불탑의 뾰족한 끝 부분)들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나그네와 와트(사원)사이엔 아직 해자가 가로놓여 있다.해자란 성을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고자 설치한 인공 물길이지만,이 해자는 앙코르 와트의 신계와 속세를 구분짓는 경계선이다.폭 2백m,둘레길이 5.5㎞에 이르는 인공물길은 차라리 강이었다. 해자를 건너기 위해 돌다리를 밟았다.한걸음 한걸음 「신의 세계」를 향해….돌난간에 형상화한 사신 「나가」가 방문객을 맞았다.난간은 몸통이며 중간중간 치솟아 부채살처럼 퍼진 부분은 나가의 머리다. 그 머리에는 코브라 7마리를 돋을 새겨 넣었다. 이는 힌두교 신앙을표현한 것이다.일곱 코브라는 7대양을 의미하고 난간인 몸통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잇는 교량을 뜻한다니 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간을 인도하는 셈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에 수르야바르만 2세가 지은 힌두사원으로 힌두 3대신의 하나인 「비시누」신을 모셨다. 크메르제국의 신앙 특징은 신왕합일에 있었다. 왕은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다 죽어 사원에 묻히면 그 주신과 하나가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앙코르 와트는 「죽은 자의 땅」이다. 해가 지는 서쪽 문으로 정문을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리를 건너 만난 사원은 3층 구조물로 길이가 동서로 1.5㎞,남북 1.3㎞에 넓이가 2㎢쯤이나 됐다.막상 맞닥뜨린 사원은 과연 세계 최대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그러나 감탄도 1층 회랑에 한걸음 들어서면서 금방 잊어버렸다.벽면을 가득 메운 정교한 돋을새김의 릴리프(부조)때문이다. 회랑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파노라마가 펼쳐진 듯한 작품은 크게 두가지.하나는 사원을 세운 수르야바르만 2세의 승전을 기념한 내용이요, 다른 하나는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도설한 것이다.굳이 그 내용을 구분해 볼 필요도,자세한 설명을 들을 이유도 없으리라. 한장면 한장면이 모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가왔다. 한쪽에는 천국과 지옥을 그렸다. 라마신이 살아 생전 선악을 판단한 뒤 악한 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바로 이어지는 지옥도에는 불꽃이 타올랐다. 그 위에서 악인이 버둥거리고 옆에서는 지옥사자가 한 죄인의 몸에 대못을 박아버린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던져지는 악인….너무 생생한 지옥을 구경했다. 이어서 창을 든 군인들이 나타났는데,더러는 코끼리.사자에 올라탄 장군도 보이고 발밑에는 사상자들이 널브러졌다.벽면을 따라 한참을 가야 이에 맞선 적군이 그만큼의 숫자로 등장한다.이 한 장면에 새긴 군인이 모두 3천명이어서 「3천명의 군인」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부조를 새긴 회랑의 벽은 총길이 8백4m,폭 2m나 됐다. 그만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어도 세계적 예술품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하물며 돌을 쪼아 그 많은 장면을 연출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조각가를 동원해 몇년동안이나 새겨야 이같은 작품을 완성할까?』라고. 2층 회랑에 올랐다.이번에는 춤추는 여신 「압사라」가 곳곳에서 반겨준다.반듯한 이마에 길면서도 큰 눈,도톰한 입술이 한결같이 미인이다.거기에 잘룩한 허리와 속살 비치는 옷맵시를 했으니 또한 육감적이다.압사라는 앙코르유적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앙코르 와트 2층에만도 1천5백여 군상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똑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에 쓴 관이나 헤어스타일,춤추는 동작들이 서로 다 달랐다. 사원 꼭대기인 3층은 그 옛날 왕과 고위사제들만이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하늘 높이 솟은 5개의 원추형 탑이 뿌리박은 사원의 핵심부분이다.중앙탑을 올려다 보며 문득 『여기서 저 탑 꼭대기까지가 파리 노트르담사원 높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 얼른 고개를 저었다.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인간이 만든 신의 집 꼭대기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이처럼 실감나는 곳이 또 있을까.앙코르 와트는 멀리서 보면 웅장했고,가까이서 보면 빈틈없이 정교했다. 그것은 바로 경이였다.
  • 자유분방한 선­상징적 기호 가득/추상미술의 거장 사이 톰블리전

    ◎19일부터 국제화랑서/직관따라 작업… 동양인에게도 공감대/1백호 100만불 호가… 한국 모노크롬세대에 큰 영향 현대 추상미술의 세계적 거장이자 작고한 잭슨 폴록과 함께 세계 최고가의 현대미술작가로 꼽히는 사이 톰블리(68)의 작품이 19일∼5월1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화랑에서 국내최초로 전시될 예정이어서 미술계의 관심이 크게 쏠리고 있다. 우리에게 그 이름이 매우 생소한 작가 톰블리. 1백호 크기 작품이 약 70만달러(약5억6천만원)를 호가하는 미국의 세계적 생존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보다 작품가격이 20만∼30만달러를 웃도는 이 작가는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작품을 만나볼 만한 인물이다. 세계화단에서의 명성은 둘째치고라도 소리없이 한국 서양미술 전개의 한 부분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친 인물도 드물다.지난 70년대 모노크롬(단색화)작업으로 국내 서양화단의 추상계열을 주름잡고 있는 현재 50∼60대 굵직한 작가의 작품에는 톰블리 특유의 선묘작업의 맥이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톰블리는 직관에 의존하는 낙서처럼 보이는 선묘작업을 한다.로버트 라우센버그나 제스퍼 존스등 현존하는 미국 대가와 동세대지만 팝아트나 미니멀리즘이 주류를 이룬 당시 뉴욕화단에서 스스로를 유리시켰다. 유럽 지중해의 전통문화에 빠져 로마에 묻혀 살며 그곳의 오랜 건축환경과 신화이미지를 특유의 선묘와 상징적 기호등으로 표현했다.과거와 현재를 융해시켜 예술적 이상향을 찾으려 한 그는 성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기호와 드로잉을 함께 그려넣었다.물감을 손에 묻혀 화면에 바르거나 연필로 드로잉을 하는등 감성과 이성이 교류하는 작업 순간순간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면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크림색이나 분홍계열을 주조로 한 은은한 화면 위에 특유의 자유분방한 선묘와 기호를 펼친 표현적 화면은 동양인에게도 매우 친근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서울전에는 작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1960년대 캔버스작업과 종이작업 15점에 렘브란트의 「야경」을 특유의 선묘로 재해석한 대작과 시저가 브루터스에게 암살당하는 역사적 사건을분출적인 선묘로 그린 「3월의 이데스」등 대표작이 망라된다.〈이헌숙 기자〉
  • 검정 캔버스에 숫자만 쓰는 괴짜/폴란드 거물작가 로만 오팔카전

    ◎갤러리이즘­가인화랑서 24일까지 난해한 현대미술 가운데에도 무척이나 설명이 어려운 작업을 하는 외국의 한 거물작가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다. 폴란드의 대표작가 로만 오팔카(65).지난달 2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갤러리이즘(517­0408)과 가인화랑(518­3631)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검정색 바탕 캔버스위에 숫자만을 기록하는 희귀한 작업의 주인공이다. 희한한 이 작업은 지난 65년 196×135㎝ 크기의 캔버스위에 숫자 1부터 기록하면서 시작 됐다.1 22 333 4444등 수많은 숫자가 깨알같이 기록되는 세부화에서 숫자는 점점 커져가고 매번 쓰여지는 같은 크기의 검정 캔버스는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바탕색에 흰색이 1%씩 추가됐다. 이렇게 반복되는 바탕색과 숫자글씨는 언젠가 완전한 백색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거기에 이르는 작업과정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시간과 실존의 정서이다. 오팔카는 그 시간이라는 현상을 보여주기 위해 숫자쓰기의 작업을 매일 같이 계속하고 그날 작업을마치면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긴다. 한마디로 「괴짜」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 작가는 자신의 죽음만이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다고 믿고 그날이 올 때까지 숫자를 써내려간다는 것이다. 이토록 해석이 어려운 작가이지만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작가였으며 국제적 권위의 여러 비엔날레 수상경력 6회에 뉴욕 구겐하임,파리 국립현대미술관등 세계유수의 30개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이헌숙 기자〉
  • “예사롭지 않은 재미화가” 강익중씨/오늘 3월 첫 고국전

    ◎3×3인치 캔버스 집합의 이색작품/서울 종로 아트페이스 화랑 전시/휘트니미술관 97년 초대작가 선정/미 언론,“가능성 있는 화가” 대서특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에 진출한 한국작가는 많다.그러나 현지에서 제대로 터를 잡은 작가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다. 정명훈·조수미·홍혜경·백건우등 세계적 역량을 과시하는 음악가들의 수에 비해 미술쪽에서 명성을 획득한 인물은 오로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또한 우리 국적의 소유자가 아니란 점에서 국내 미술계는 항상 상대적 열등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속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한 젊은 화가가 뉴욕화단에서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으며 그가 올3월 처음으로 대규모 고국전을 갖게돼 새해를 맞은 국내 미술계에 반가운 뉴스가 되고 있다. 강익중씨(36).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와 지난 84년 도미,올해로 뉴욕생활 12년째를 맞은 그는 세계적인 대가 백남준씨가 『앞으로 나보다 훨씬 더 유명해질 것』이란 말을 할 만큼 예사롭지 않은 기량을 보이는 인물이다. 국내 정상급 화랑들이 그의 유치를 여러번 시도했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나 지난해 새 건물을 단장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스페이스의 젊고 의욕있는 관장 이주헌씨의 제의를 받아들여 드디어 국내에 첫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강씨가 뉴욕화단에서 얼마만큼 큰 평가를 받고 있느냐에 대해선 다음 몇건의 예만으로도 확실해진다.수년전 그는 뉴욕 퀸스의 지하철 역사 조형작업을 따냈다.지역주민의 이해 갈등으로 시공이 미뤄져 오던 역사 건설이 올해초부터 시작돼 이제 그는 엄청난 작업량을 치르게 됐다.지난 94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청사의 설치 공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수주작가로 뽑혔으며 작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97년 초대작가로도 선정됐다. 「뉴욕타임스」나 「빌리지 보이스」같은 뉴욕의 유력신문과 샌프란시스코 「익재미너」지 등에서 그의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다뤘으며 특히 지난 94년 9월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강익중의 2인전을 놓고 「뉴욕타임스」는9월18일자 「아트」면 한면을 할애해 그들의 기사를 다루며 신예 강씨의 대단한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강씨의 작품은 어떤 형태일까.쉽게 표현해 폭발적인 작업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캔버스를 구하기도 어려운 가난한 젊은 작가가 3×3인치의 손바닥만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수많은 그것들을 모아 그의 색다른 작업세계를 창출해낸 것이다.그가 미국생활중 체험한 문화충격과 갈등,조화등을 소재로한 손바닥만한 캔버스속의 형상들은 80년대말부터 미국화단에 불어닥친 「복합문화주의」의 바람과 맞물려 큰 방향으로 증폭할 수 있었고 그곳 평단의 주목을 끌어냈다. 3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번 서울전에는 바로 그의 3×3인치짜리 그림들중 나무부조 1만9천점,부처페인팅 1천3백97점,회화 7천점,드로잉 3천1백점,플라스틱 큐브 8천4백점이 발표된다.발표될 작품수가 워낙 많아 전시장소는 아트스페이스 서울과 본점인 인사동의 학고재외에 2곳 정도의 전시공간을 더 구할 계획이다.
  • “실험미술 선구” 고 강국진씨 유작전

    ◎새달 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서/「한국적 역사의식」 바탕 현대판화 발전 이바지 국내 미술사에서 큰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되던 인물이나 지난 92년 54세로 생을 마감,미술계를 안타깝게 한 고 강국진씨의 「돌아간 지 세돌­그림잔치」가 11월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펼쳐진다. 「강국진을 기리는 모임」(권상릉·오광수·이두식 등 60명)이라는 범미술계적 모임에 의해 기획된 이 전시는 생전의 작업을 망라,작가가 이룩한 한국화단에서의 뚜렷한 위치를 자리매김한다. 변함없는 성실한 인간성과 작가로서 훌륭한 자질을 지녀 많은 화우로부터 선망의 대상이던 작가는 한국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실험성을 열정적으로 키워냈다. 지난 65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67·68년에 발표한 「투명풍선과 누드」 「한강변의 타살」등은 국내최초의 행위예술로 기록된다.당시 캔버스에 담을 수 없던 문명과 현실비판을 미술작품의 연장이란 행동방식에서 직접적으로 표명한 그의 작업은 치열한 의식의 한 편린으로 큰 평가를 받았다. 70∼8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적 풍토」의 재창조를 위한 「선」과 「가락」등 평면시리즈로 시대를 앞서갔다. 70년대 초반에 이미 판화교실을 열어 판화 보급에도 앞장서 한국현대판화의 발전에 이바지했고 교직(한성대 교수)과 미술행정직등도 병행하며 넉넉하고 꾸밈없는 예술관과 인품을 과시했으나 54세에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다.
  • 11년만에 창작집 「인도로 간 예수」 출간 송기원씨

    ◎“선도 통한 인간구원 가능성 모색”/중단편 7편 수록… 작품세계 변모 한눈에 작가 송기원씨(48)가 선도를 통해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한 중편 「인도로 간 예수」를 표제작으로 11년만에 새 작품집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냈다.90년대초까지 이어진 10여년간의 절필 앞뒤에 발표된 중·단편 7편을 모은 세번째 창작집이다.때문에 93년이후의 작품들이 84년 월문리 연작과 나란히 놓여 그간 작가세계의 변모와 확산을 한눈에 보여준다. 84년의 「새로 온 사람들」「잡풀」 등이 농촌문제·통일문제를 가깝게 다루고 있다면 근작들에는 어둡고 신산했던 지난 삶을 털어버리고 정신의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이 두드러진다. 「인도로 간 예수」는 자신이 거둔 예술적 성공이 하루아침에 혐오스러워진 한 중년 화가가 무작정 여행길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분에 넘친 평론가들의 호의,작품에 따라붙어온 민중작가라는 꼬리표,위악과 퇴폐속에 막 살아온 지난날이 와르르 흉물스런 본모습을 드러내자 캔버스를 찢어버리고 달아나 선의 세계로 들어서는 화가의 모습은 한때 비슷한 연유로 펜을 놓아버린 작가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나이 쉰에 다가서면 위선과 은폐로는 더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내게 잡다한 과거와 가족사가 속박이었다면 참선과 명상수행 등 선도는 이를 벗겨내는 또다른 방법이었지요』 93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아름다운 얼굴」은 의붓아비·의붓누이 틈에서 장돌뱅이로 커 사춘기를 자기혐오속에 보낸 작가가 자신의 삶을 먼지털듯 툭툭 털어 보여준 작품.이밖에 80년대말 뒷골목기행에서 길어낸 「늙은 창녀의 노래」「수선화를 찾아서」 등은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처한 이들에게 쏠리는 작가의 생래적 애정을 잘 드러낸다. 『한때 앞장섰던 민중운동에서 멀어진 이유는 진실로 낮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운동권 내부의 경직성때문이었습니다.의식화된 민중만을 외치면서 그들은 어찌해볼 수 없이 버려진 밑바닥 삶은 모른척 했어요.하지만 지난 80년대 말 뒷골목기행을 쓰기위해 도시부랑아,하급선원,양공주 등을 수두룩하게 만나며 나는 진짜 힘은 이들 버려진 자들에게 있다는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이 체험이 있었기에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학하던 한 장돌뱅이는 다시 붓을 들고 「아름다운 얼굴」을 쓸 수 있었습니다』 장돌뱅이로 삶의 자유를 한번 맛봤다면 일상의 테두리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 않겠느냐는 그는 『2∼3년쯤 인도에 가 참선의 진수를 체험해볼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 노화가 귀국전(외언내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보현 초대전」.작품속의 무한한 상상력과 자유로움,그리고 자연주의적 천진난만함이 영롱한 색감과 어울려 뿜어져 나온다.경이롭고 감동적인 그의 그림앞에서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춘다.『도대체 이 작가 김보현은 누구인가』라며. 김보현은 국내 화단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재미화가다.19 55년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한 지 꼭40년,올해 78세의 고령이다.그동안 미국의 도처에서,그리고 독일 뮌헨에서 15회의 개인전과 18회의 그룹전에 출품한 경력이 그의 작가활동을 말해준다. 미국·프랑스·독일·인도의 유명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돼 있을 정도.그럼에도 김보현의 작품은 92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됐다.당시 그의 개인전을 소개한 한 월간지의 기사제목은 「76세의 소년,예술의 홍수시대에 나타난 대가 신인」. 미국에서의 그의 특이한 화면작업은 동양적 감성으로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길이 17m가 넘는 벽면을 압도하는 그의 대작에는 사람도 나오고 숲과 코끼리·사자·표범등 맹수와 유영하는 물고기도 보인다.순수하고 무구한 자연주의의 감동적 표현이다.샤갈의 의외성,이중섭의 설화적 동심,그리고 장욱진의 천진성 같은 것이 함께 느껴지는 화폭이다. 70년대 몰두한 딸기·복숭아등 과일과 홍당무등 색연필 그림은 뛰어난 묘사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작가는 대작을 그릴때 사전에 주제나 내용에 대한 구상 없이 캔버스의 오른쪽 위로부터 순간의 착상을 자유롭게 그려나간다.천의무봉의 세계가 김보현작품의 특성이다. 실로 40년만에 돌아온 노화가의 귀향전은 적막하다.전시실 1·2층 5백여평에 그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의 발걸음은 뜸하다.김기창·김흥수에 이어 예술의 전당이 세번째로 기획한 원로 초대전 임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웬일일까.국내 화단에 특별한 인연도 계보도 없기 때문이 아닐는지.그래도 그의 작품은 우뚝하다.
  • 코트디부아르 「평화의 성당」(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19)

    ◎3년만에 건립한 세계최대 성전/콘크리트 기둥·대리석을 조립식으로 축조/“영혼없는 건축”… 집권자의 과대망상적 산물/높이 170m 총33만 8천여명 동시 미사참여 가능 명지대학교 최재필 지금은 작고한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새삼 경탄을 하게 된다.김환기화백의 그림은 그저 조그만 네모와 그 속의 점들이 커다란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이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이거 뭐 이래? 애들 장난같잖아』하는 반응을 보일는지 모른다.아무런 뜻도 없는(다시 말해서 의미있는 형태가 아닌)그저 조그만 무늬의 반복은 시정 아낙네의 치마폭에 인쇄된 무늬와 무엇이 다를까 하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김화백이 네모 하나하나,점 하나하나를 캔버스에 그리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김화백은 노년이 되어 마지막으로 그 큰 캔버스에 네모 하나,점 하나를 찍으며 그간 그의 일생에서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만나서 좋았던 사람.이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젊었을 시절 신세를 졌던 사람.김화백은 네모 하나 점 하나를 그려가며 이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리라.밤이 새도록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새벽 그 넓은 캔버스에 이제는 더 채워넣을 공간이 남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때,그는 그가 그동안 보냈던 삶의 전부가 이 한장의 캔버스에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하며 탈진한 그의 육체를 뛰어넘는 초월의 경지를 느꼈으리라. ○규모 웅장… 감동은 없어 바로 이런 것이 예술품의 가치가 된다.이러한 가치는 비단 미술품에 그치지 않는다.건축도 마찬가지다.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축물도 이것이 땅 위에 굳건히 서게 되기까지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것에 용해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유럽에는 대성당이 많다.로마 바티칸시의 성베드로 성당,파리의 노트르담사원,런던의 성바오로 성당 등.이들 성당 앞에 서면 그 웅대한 규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까지 정열을 쏟아 만들어 놓은 세심한 장식 디자인에 우리는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이들 건물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렸다.중세의 장인들은 대를 이어가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는 말이다.이들중 대부분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된 건물을 보지도 못했다.그렇지만 이들은 벽돌 한장한장을 쌓아가며 스테인드글라스 한조각 한조각을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또 그것이 아름다웠든 그렇지 못했든지를 막론하고 그것을 신에게 바친다는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며 자신이 마치지 못한 작업은 그의 아들에게,그의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그래서 수백년이 흐르면 비로소 그토록 아름답고 장엄한 성당이 완성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이보다는 인내심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바로 5년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단 3년만의 공사 끝에 건립되었다.더구나 이 성당은 본고장 유럽에 있지도 않다.「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이름지어진 이 건물은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라는 나라의 야무스크로시에 세워진 것이다. 성당 중앙부의 돔은 지름이 90m에 이르며,꼭대기의 높이는 지상에서부터 1백70m니 우리나라 63빌딩보다 약간 낮은 정도다.그러나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몇개가 이 돔 안에 들어갈 수 있다.성당 내부 제단의 캐노피(차양)높이만도 9층 높이가 되며,10층 건물의 높이를 가진 창문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총면적은 2만3천평에 이른다.그뿐이랴.이 성당에는 좌석이 7천석이 있고,추가로 1만1천명이 서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게다가 대리석이 깔린 옥외광장은 3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모두 총합 33만8천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코트디부아르의 행정수도로 근래 새로이 개발된 야무스크로시의 총인구가 3만명을 넘지 못하고,그중에서도 카톨릭 신자는 4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렇듯 비현실적이다 못해 과대망상적으로 큰 성당을 지은 사람은 다름아닌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인 펠릭스 우페이 바냐다.참고로그는 코트디부아르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제껏 35년간 대통령을 해오고 있다. ○63빌딩보다 약간 낮아 우페이 바냐 대통령이 어린시절,그의 고향 야무스크로에는 성당이 없었기 때문에 영세를 받기 위해서 수십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그의 고향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자신의 고향에 아름다운 성당을 갖고자 하는 개인적인 염원 자체야 높이 사 줄만 하지만,이러한 염원이 과대망상적인 사고로 귀결지어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이 평화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3년만에 뚝딱 지어졌다.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피에르 카브렐리라는 건축가는 다음과 같이 회상을 하고 있다.처음 우페이 바냐 대통령에게 불려간 자리에서 대통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대한 꿈을 이야기했다.나는 요즈음 누가 이런 고전양식의 성당을 지으려고 할까하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그리고는 이 성당을 언제까지 완공해야 할는지 물어보았다.대통령은 바티칸의 교황이 4년만에 한번씩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그가 작년에 왔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다음번 방문까지 몇년이 남았는지를 나보고 계산해 보라고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대의 성당은 3년만에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기술이 없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돌 하나하나를 깎고 기둥을 하나씩 만들어 지은 중세의 성당과는 달리 이 성당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부재(공상에서 미리 만든 콘크리트 기둥이나 벽체 등)를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을 써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김환기화백의 네모와 점에 녹아든 영혼,또는 중세 장인들의 수공예작품에 밴 종교적 열정을 여기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 대통령의 업적” 과시 어느 후진국 장기 집권자의 개인적 욕구에서 시작되어 과대망상적으로 지어진,그러나 영혼이 없는 건축,이것이 이 세계최대 성당의 현주소다.우페이 바냐 대통령의 나이는 현재 90세가 넘었다.그가 대통령직에서 어떤 연유로든지 물러난 후에도 이 성당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닐지 우리는 예측할 수가 없다.후진국의 장기 집권자나 식민통치자들은 거개가 다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 개인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대형 구조물을 한 두개쯤은 지어놓게 마련이고,이들이 권력을 잃은 후에도 대부분의 이러한 건축물은 오래지 않아 장대한 기념식과 함께 허물어지거나,요행히 그렇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쇄락해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멀고 가까운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올 8월이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게 된다.5공 시절 세워진 천안의 독립기념관의 그토록 장엄한 모습이 요즈음 그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한 퇴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국민의 성금(?)으로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그래도 중간에 무산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34년만에 처음으로 인구 1천만의 국제도시 서울에 민선시장이 선출되었다.포부도 크고 개인적인 신념도 가지고 있겠지만 세계최대의 무엇을 서울에 들여놓고자 무작정 밀어붙이는 일만은 삼갔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 “흑판을 화폭으로… 밥상을 오브제로”

    ◎「이색재료」 자유롭게 사용 “눈길”/중견화가 김명희씨­신예 홍지윤씨 개인전/김명희/폐교된 교실 포스터통해 시간의 흔적 묘사/홍지윤씨/전통성에서 현대성 탐색… 다양한 조형작업 「캔버스에 유채」「한지에 채색」이라는 전통적인 재료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한 두 작가의 개인전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중견화가 김명희씨는 9년만에 갖는 개인전(원갤러리·12∼25일)에서 학교에서 수업용으로 쓰이던 흑판에 그린 근작들을 내놓았다. 또 공평아트센터에서 16일까지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신예작가 홍지윤씨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대하는 밥상을 오브제로 사용해 눈길을 끈다. 김명희씨가 흑판을 화폭으로 선택한 것은 그의 작업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맨해튼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던 그는 5년전부터 화가인 남편 김차섭씨와 강원도 내평리의 교실 네개짜리 국민학교 분교를 가정집과 화실로 꾸미고 은거하고 있다.교실 2개는공동의 공간이고 각자 교실 1개씩을 화실로 쓴다. 사실주의 화법으로 시간의 흔적을 묘사하고 생활속의 느낌을 심도있게 추적해왔던 그는 폐교된 국민학교 교실에 남겨진 태극기,칠판,각종 표어와 포스터를 통해 느꼈던 아이들의 에너지를 구체적인 기억의 장면들로 하나하나 재현해 냈다. 추억과 형상을 다룸에 있어 기록자로서의 치밀한 묘사와 목격자로서의 객관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그는 「칠판」이라는 관념화되고 인지된 사회적 기호를 이용했다. 홍지윤씨는 하고 많은 재료중에서 「밥상」을 택한 것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에서 착상한 것이라기보다 삶의 실체적인 의미에서 밥상이 인간의 삶과 함께하는 오브제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밥상외에 한지와 삼베 등 새로운 오브제들을 전통적 안료인 분채와 석채와 병용하면서 다양한 조형작업을 시도한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동양화를 단순한 수묵채색에 한정하기보다 재료를 마음대로 써가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전통성에서 현대성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쓰여질 것을 기다리는 칠판이 아닌 칠판,먹을 것을 올려놓는 밥상이 아닌 밥상.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이에 대해 『재료에 대한 작가의 자유로운 태도의 좋은 반영』이라고 평했다.
  • 심야의 탈주/맥주거품에 부각된 인간내면 “인상적”(감동의 명화)

    ◎쫓기는 자의 두려움 화면마다 넘쳐/거푸 두번 감상… 그때 추억 아직 생생 뤼미에르 형제가 18 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반대중에게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지 올해로 꼭 1백주년.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영화는 이제 4차원의 영상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인간의 꿈을 대변하는 각광받는 대중예술로 자리를 굳혔다.세계영화 탄생 1백돌을 맞아 문화 예술 각계 인사들이 집필하는 「감동의 명화」를 연재한다. 김종원(영화평론가) 흘러간 영화에는 마치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는 것과 같은 남다른 감흥이 있다.그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각인돼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낭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원천이 된다. 젊은 날 영화는 나의 연인이었고 지식의 보고였다.또한 구원 그 자체이기도 했다.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을 찾았다.그럴 때는 으레 준비해 간 노트에 좋은 장면과 대사들을 적어놓곤 했다. 그 시절 아련한 기억의 창문을 열면 의식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한편의 영화가 있다.대학 2학년 때던가.나를 매료시킨 캐롤 리드 감독의 「심야의 탈주」(1947년 베니스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영국)가 바로 그것이다. 캐롤 리드라면 흔히 「제3의 사나이」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보다 「심야의 탈주」를 사랑한다.이 흑백 시네마에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쫓기는 자의 내면에 응고된 삶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이 화면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특히 현상수배된 탈옥수인 주인공 조니(제임스 메이슨)가 갈등하는 모습을 맥주 거품을 빌려 부각시킨 중반부의 장면은 압권이었다.조여오는 수사망과 밀고의 압박 속에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시던 맥주잔이 탁자에 엎질러지면서 확대되는 맥주 거품.캐롤 리드 감독은 이 화면에 동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 시켰다. 아일랜드의 한 시가지가 흔들리면서 전개되는 타이틀 백.추운 겨울의 탑시계는 하오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지하 독립운동 조직의 총기 밀수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조니는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직공장을 습격한다. 세명의 일당과 함께 돈을 털어 달아나던 조니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수위를 쏘고 그 역시 총상을 입는다.뒷골목에 숨어 있다가 동료의 도움으로 비상선을 빠져나온 조니는 애인 캐더린(캐더린 라이언)의 부축을 받으며 탈출이 계획된 부두에 이른다. 그러나 조니는 경찰관들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가운데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미래를 단념한 애인의 권총에 맞아 절명한다.함박눈이 내리는 부두의 광장에 서로 손을 잡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두 남녀의 시체. 이처럼 라스트 신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예컨대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캔버스 앞에 앉힌 뒤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광적인 화가(로버트 뉴턴)의 행위나 현상수배범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흥정하는 새장수(F J 매코믹)의 야비한 이기주의 등은 성악적인 인간의 한 전형이었다. 나는 쫓기는 자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출한 이 영화의 영상미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이들 캐릭터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나는 「심야의 탈주」를 앉은 자리에서 두번이나 봤다.그래서 지금은 없어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4층에 자리한 재개봉관은 나의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 백남준/세계유명미술가 5위 랭크/독 캐피탈지 선정

    ◎1위엔 미비디오작가 부르스 노먼 세계미술을 주도하는 작가는 누구일까.또 현재 서구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는 누구이며 어떤 작가들이 부상하고 있을까. 해마다 「세계유명예술가 1백명」을 선정하는 작업을 해온 독일의 경제월간 캐피탈지에 따르면 미국의 비디오작가 부르스 노만이 지난해 가장 눈부신 활약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출신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5위에 올라 여전히 높은 인기를 과시했다. 이 조사는 지난해 주요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과 국제적인 기획전 출품,미술잡지들에 실린 비평및 작가소개의 횟수 등을 토대로 순위를 매긴 것이어서 절대적인 작품성에 대한 평가로 보기에는 미흡하나 지난해부터 「개방화·세계화」바람을 타고 국내에서도 해외작가전 붐이 일고 있어 외국작가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한자료로 눈여겨 볼만하다. 2위부터 5위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지그마르 폴케,게오르크 바젤리츠 등 모두 독일 화가들이 차지했다. 1위부터 5위까지는 지난해와 비교해서 전혀 순위에 변동이 없었는데 두 사람이 비디오와 컴퓨터 등 새로운 매체를 구사하는 반면 나머지는 전통적인 캔버스 회화를 고수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어 6위부터 10위에는 크리스티앙 볼탄스키(프랑스,설치),일리야 카바코프(러시아,설치),귄터 푀르크(독일,신개념미술),마리오 메르츠(이탈리아,아르테포베라),로즈마리 트로클(독일,오브제설치)가 차례로 올라있다. 한편 이번에 급부상한 작가들을 보면 일리야 카바코프(7위),독일의 레베카 혼(46위 키네틱,설치),미국의 키키 스미스(38위,인체조각),리처드 프린스(39위,신개념미술),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클레멘테(35위,신구상회화),독일의 요헨 게르츠(41위,비판적미술),게오르크 헤롤트(82위,오브제),스테판 발켄홀(94위,인체조각)등이다. 이번 순위표에는 여성 작가가 모두 13명이 올랐다.이는 24년전 캐피탈지의 순위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수다. 이밖에 순위의 이동은 다소 있지만 순위표의 4분의1 이상은 이미 60∼70년대에 미술사적 지위를 확보한 미국 팝아트와 미니멀,개념미술계열,그리고 이탈리아 아르테포베라의 원로작가들이다.캐피탈지의 「세계유명미술가 1백명」은 「월간미술」 최근호에 소개됐다.
  • 지휘자 원경수(이세기의 인물탐구:66)

    ◎완벽한 화음 연출… 타고난 예술가/탁월한 재능… 악보속 숨겨진 작고고가 의도 읽어내/미·영·러·독무대 활약… 작년 서울시향 맡아“새바람”/부친 반대하자 음악위해 가출… 미·오스트리아서 지휘공부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인 카를 뵘은 『지휘자란 손의 움직임 보다는 내면적인 접촉으로 철학적 사상과 정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토스카니니처럼「악보에 적힌 것을 그대로 소리로」옮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푸르트벵글러처럼「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세밀하게 파헤치는 거장도 있다.어쨌든 지휘자가 지적인 음악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과 예술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를 고루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지휘자 원경수는 지휘자의 가장 바람직한 조건중에서 한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주의자에 틀림없다. 한번 들으면 악보를 줄줄이 외우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전문가 뺨치는 편곡실력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직접 다루고 어떤 악기군이 작곡자가 의도한 악보대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면 이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다.첼리스트였던 토스카니니가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지만 원경수는 악보속에 숨겨져 있는 번뜩이는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재창조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뿐만 아니라 콧대 높은 세계적인 연주자일지라도 원경수 예술의 질서속에 그의 소리를 몰아넣음으로써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청중 모두를 일시에 침묵시키고야 만다. ○세상물정엔 어두워 원경수는 한마디로 음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그와 오랫동안 많은 연주를 해냈고 또 그를 경원대 음대 대우교수로 초청한 피아니스트 신수정은『그의 일생은 음악이 바로 종교』라고 단적으로 단정해버린다.평소의 그는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이 천진무구하다.이해타산도 모르고 세상물정에도 어둡다.그러나 음악에 관한한 어떤가.그 자신이 어릴때부터 그래왔던것 처럼 음악에서만은 만능이며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다.기라성같은 세계 정상급과의 협연에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시키기 위해열의에 찬 정열을 식히지 않는다.그래서 처음 그를 만난 사람은 피곤할 수 밖에 없게 된다.그러나 그를 만남으로써 음악이 향상되고 있음을 스스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좀더 새로운것,실험적인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그의 특징은 행사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그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을 지향하는 타입이다.초연 작품을 즐겨 선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의 하나다.윤이상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영국 에든버러대 배리쿠퍼교수가 찾아낸 베토벤 10번 1악장,에네스코의 루마니안 랩소디 2번,그리고 모차르트의 새교향곡 a단조(K16a)초연등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감동적인 명연주들이다. 미국 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였던 그가 지난해 서울시경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을때 정재동이후 키를 잃고 방황하던 시향에 뭔가 범상치 않은 바람이 불 것같은 예감에 음악계는 긴장과 생기가 감돌았다.그리고 그의 시향은 지난 1년간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싱싱한 전열을 가다듬었다.과연 그의 송년음악회는 해마다연주되던 베토벤 9를 과감하게 버리고 「전원」과 「운명」으로 「평화롭고 엄숙하게」 막을 내렸다. 원경수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서 태어났다.당시 화신백화점 전무로 있던 원대참씨와 김계복여사의 3남매중 장남으로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한번 들은 곡은 오선지에 채보하거나 피아노로 방금 옮겨 칠만큼 섬세예민한 음감을 타고났다.부친은 상당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텔리임에도 아들의 음악만은 완강히 말렸다.만약 음악을 계속할 경우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말했다.그도 『굶어죽더라도 음악을 포기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와버렸다.그때가 경복고를 졸업하던 47년이었다. ○레코드 한장들고 낭와 그런 결심을 하게된데는 성장과정에서 그가 자기자신에게 해온 하나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끝없이 소리내며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면서 「나는 장래 무엇이 될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것인가」를 자문했고 그리고 무엇이 되든지간에 「주말이나 월급날을 기다리는 틀에 박힌 인생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메뉴인이 연주한 레코드 한장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온 그는 장래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를 능가하는 연주자가 될것을 꿈꾸며 혼자서 독학한 실력으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부산 피란시절에는 이화여대 임시강당에서 바이올린 독주회,이를 인연으로 후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김영욱의 바이올린 레슨을 맡아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김영욱의 집에 기식한 시기도 있다.그후 선배 지휘자인 임원식씨의 소개로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고려교향악단에 들어가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 뵈탕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다가 54년 한국을 방문했던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도어 잔슨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유학하기에 이른다.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것은 미국 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와 인디애나대 졸업후 빈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를 전공,61년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 지휘자였던 피엘 몽퇴가 주관한 행커크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부터다.피엘 몽퇴의 제자의 대열에 서게된 그는 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67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중심지역인 스탁톤에서 40년 역사의 스탁톤 오케스트라를 지휘,다음날「스탁톤 저널」은 『이 오케스트라는 일찍이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한적이 없다.특히 피아니시모의 처리는 섬세한 연주의 심벌이었다』고 대서특필했다.그날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기립박수로 앙코르를 외쳤고 그는 60여명의 후보자 가운데 당당히 새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지휘로 국제무대에 오른 그는 76년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의 저명한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를 지휘.당시 빈 아카데미에 유학하고 있던 시향의 김영목씨 편지에 따르면「그의 연주 티켓은 며칠전에 매진됐으며 동양에서 오는 한 지휘자에 대한 이곳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은 대단하다」고 전한 적이 있다.「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빈 사람들의 긍지와 자존심 자체」였으나 그의 연주는 「그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만족시켰다」고. 퉁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연주에 앞서 그해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교향곡7번과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를 연주했을때 음악평론가 이성삼은 『원경수의 지휘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지 못하던 서울시향은 오랜만에 융합된 화음과 투명한 톤으로 생기에 찬 발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호평했다.이는 그의 국제적 성공을 예고하는 팡파르가 되었다. ○그림솜씨도 뛰어나 아마추어를 능가하는 그림솜씨 또한 유명하다.전람회를 열만큼은 아니지만 흑석동에 있는 그의 집에는 그가 그린 추상계열의 작품들이 벽면마다 장식되어있다.이 그림취미는 그가 지휘할때마다 눈앞에 떠오르는 색채의 멜로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베토벤이 마치 구름처럼 또는 폭포수처럼 곡조의 환상을 이루는 화면속의 장엄미사는 문자 그대로 장관이 아닐수 없다.패션디자이너인 부인 서혜자여사와의 사이엔 알리사(27·재미 변호사)와 저스틴(26·MIT박사학위중)남매, 현재 서울엔 부인과 둘이 살고 있고 건축가 원정수씨가 실제다. 강한 추진력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지휘,그의 피아니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작고 청려하며 그의 포르티시모는 웅대하고 장쾌하다.어느 한군데도 흠잡을 수 없이 유연하고 세련된 흐름이 원경수 예술의 진수일 것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교향곡축제는 그가 편애해 마지않는 말러 심포니로 시작된다.「말러를 가장 말러답게」로 평가되는 바로 그 말러다.말러 자신이 말한대로 「초원의 꽃이 천국의 속삭임을 전달하는」 환상적인 묘사풍은 「음악은 너무 흘러넘치지 않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것같다.언젠가 런던 익스프레스지가 『마에스트로 원과 함께 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파헤쳐 함께 즐긴다』고 지적한 것처럼 한 예술가의 인생의 경륜과 예술혼이 깃든 지휘는 수준높은 청중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것에 틀림없다. □연보 ▲1929년 서울출생 ▲1945년부터 바이올린 독학 ▲1952년 서울대 음대졸업 ▲1952∼54년 고려교향악단 단원 ▲1954∼61년 메인주 행커크서머스쿨 피엘몽퇴,심포니 오브더 에어의 월터 핸더슨에게 지휘법 사사 ▲1957∼65년 인디애나주립대 작곡·바이올린·지휘전공,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 도어 잔슨에게 지휘및 바이올린전공,신시내티심포니 필리핀 마닐라심포니 인디애나주립대 교향악단 지휘 ▲1963년 중서부지역 바이올린 독주순회,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 ▲196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지휘전공 ▲1967∼94년 모데스토 심포니,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2년 서울시향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8년 캘리포니아 스탁톤뮤직콘설바토리및 패시픽유니버시티 강의 ▲1976년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1975∼89년 빈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 지휘 ▲1976·80년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 지휘 ▲1978년 런던 필 지휘(런던 화이어 버드홀) ▲1981년 베를린 괴테 인스티튜트 수학 ▲1982·87·89년 에이레 국립 오케스트라와 칠레 아르헨티나 연주 ▲1984년 서울시향과 미순회 연주 ▲1985년 런던 필 지휘(런던 바비컨센터),KBS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1986년 빈 서머뮤직 페스티벌.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바비컨)▲1988·89년 체코슬로바키아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렉싱턴 필하모닉오케스트라,베를린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1992년 경원대 대우교수 ▲1994년 뉴모스코 스테이트 필하모니 지휘(차이코프스키홀),스탁톤 심포니 명예 지휘자및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 경남 울주군 천전리 바위그림(한국인의 얼굴:10)

    ◎눈·코·입 깊게 음각… 괴상한 모습/청동기 작품… 종교의식의 탈 새긴듯/옆에 사슴몸뚱이… 인두수신상 모양 경남 울주군 천전리 옛날 선사인들이 남긴 어떤 생각의 흐름을 보노라면 경외로운 마음이 우러난다.자신들이 의도한 바를,그것도 형이상학적사고를 빌려 어찌 그리도 잘 표현했는지….경남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유적에서도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천전리유적은 같은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유적(서울신문○월○일자)처럼 청동기인들이 새긴 바위그림으로 이루어졌다.그리고 두 유적은 모두가 태화강지류 대곡천 강가에 자리했다.그림이 들어있는 바위는 높이 2.7m,너비 9.5m의 붉은색 셰일.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은 주로 위쪽에 새겨놓았다.이 거대한 암벽 캔버스에는 사람얼굴 등의 인물상을 비롯,여러가지 기하학무늬와 동물 그림 등이 어우러져있다. 인물상은 7군데에 뚜렷이 각인되었다.얼굴만을 묘사한 것과 전신을 모두 나타낸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원시 바위그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아주 단순한 표현기법의인물상이다.그러나 무심히 보아 넘기지 못하도록 눈길을 잡아 매어두는 요소가 분명히 깃들여있다.깊은 오목새김(음각)으로 인해 밝기 보다는 오목부분의 어둠이 뚜렷한 인물상 하나.그 인물상은 좀 괴상스럽다. 그래서 청동기인들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원시종교의식과 관련한 탈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눈 코 입이 너무 깊은 탓에 여느 사람의 얼굴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또 공교롭게도 이같은 얼굴의 바위그림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다.그것은 울주군 천전리로부터 멀어도 여간 멀지않은 시베리아 아무르강유역의 바위그림 원시탈이다.시베리아와 한반도 남문 사이의 청동기인들의 길이 일찍 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위그림에는 사슴도 여러 마리가 나온다.사슴은 동서양을 통틀어 재생력을 가진 생명체의 상징물이었다.또 샤머니즘에서는 죽은 샤먼의 영혼이 사슴의 몸뚱이를 빌려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환생을 의미하는 것이다.사슴의 뿔은 우리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왕권을 상징했다.그런데 사슴 몸뚱이에 부드러운 사람얼굴이 달린인두수신상이 천전리 바위그림 속에서 발견되었다.서양신화에 나옴직한 그림이라서 사뭇 흥미롭다. 그리고 도안화한 한 인물과 태양인듯 싶은 둥근 무늬 좌우로 네 마리의 사슴이 뛰는 그림도 있다.열매를 꿴 화살모양의 무늬는 큐빗의 화살을 연상시킨다.학자들은 이 천전리 바위그림의 무늬를 암수가 결합하는 것으로 해석했다.역시 에로스적 해석이 아닌가 한다.기하학 무늬는 마름모꼴무늬,굽은무늬,둥근무늬,우렁무늬,십자무늬,삼각무늬등 다양하다.홑이나 겹을 이룬 이들 무늬는 꿰맨 것 처럼 무더기로 붙어있다. 이 바위그림들에서는 천전리 청동기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그들의 보금자리는 어디였을 까.바위그림이 있는 물가 바로 근처에서 아직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고 보면,좀 떨어진 데서 살았을 것이다.그래서 이미 발굴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와 청량면 동천리 집자리유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 두 집자리유적은 천전리와 대곡리 두 바위그늘 유적과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일직선상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 울주 대곡리 청동기시대 암각화(한국인의 얼굴:7)

    ◎위엄 담긴 큰 입… 우두머리인듯/유난히 긴 코… 역삼각형 얼굴/옆에는 고래그림… 포경 입증 우리 민족은 BC 1000년쯤 부터 시작한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 오늘과 같은 모습의 틀을 잡았다.신석기시대에 먼저 자리잡았던 인류와 좀 늦게 들어온 북방인종이 함께 민족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의 기원과 밀접한 신석기인과 청동기인들이 한 자리에 만들어 놓은 흥미로운 유적이 있다.경남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동 태화강 상류 강가의 바위그림 유적이 그것이다.이들 두 인류는 시차를 두고 70m 높이의 바위벼랑 한 부분을 캔버스로 삼아 바위그림을 새겼다.그림은 높이 2.5m,너비 9m에 이르는 부분에 밀집되었다.띄엄띄엄 드물게 새긴 그림을 합뜨리면 가로로 29m나 길게 뻗쳤다. 바위그림은 신석기시대 부분과 청동기시대 부분이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대곡리에 일찍 들어온 신석기인들 쪼기로 평면그림을 새겼다.내용은 고래를 중심으로 한 물짐승과 사슴 위주의 뭍짐승이 주류.고래떼 위쪽과 사슴떼 위쪽에는 각각 사람 하나씩을 배치했다.그두사람은 성기를 내민 남자들이다.자기 위력을 뽐내는 고래잡이꾼으로 여길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청동기인들은 신석기인들과 수법을 달리한 선그림을 한 무더기로 새겼다.교미하는 멧돼지,거꾸로 뒤집힌 큰 고래,고래를 부위별로 나눈 그림,어딘가에 갇힌 짐승과 줄무늬가 난 짐승,사람 얼굴 등을 표현했다.사람을 다룬 인물상은 얼굴만을 클로즈업한 탓에 신석기인들이 새긴 인물상에 비해 표정이 훨씬 뚜렷하다. 이 청동기시대의 대곡리 사람 얼굴그림은 전체윤곽이 팽이모양의 삼각형이다.눈썹과 코가 유난히 길고 눈은 크다.얼굴윤곽이 삼각구도라는 점에서 턱이 뾰족해 보여야 할 텐데,턱이 빈약스럽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입가에 위엄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귀는 왼쪽 하나만을 달랑 새겼다.수염도 적당히 자라 얼굴이 범상치 않다.그래서 얼굴의 주인공을 대곡리 청동기인집단의 우두머리 쯤으로 보고 있다. 고래 그림에는 밭고랑 모양의 줄 여남은 개를 그어놓았다.이 고래는 1백50m나 가라앉는 잠수능력을 지녀 여간해서 잡기 힘든 고래다.큰 고래라고도 하고 수염이 많아 수염고래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오늘날 포경선들이 노리는 사냥감도 수염고래다.당시 대곡리 사람들도 수염고래를 잡아 먹거리로 쓰고,불을 밝힐 기름도 얻고 싶었을 것이다.이들은 실제 고래를 잡았다.고래를 부위별로 나눈 X­레이식 투시 그림을 바위에 새겨놓음으로써 고기 분배방식도 일찍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어쨌든 대곡리 청동기인들은 신석기시대 부터 이어진 포경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대곡리에서 멀지않은 장생포는 얼마전만 해도 고래잡이 항구로 흥청댔다. 대곡리 바위그림에서 교미하는 멧돼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풍족한 사냥은 반드시 번식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교미를 강조했다.특히 수컷의 웅크린 자세에다 힘을 주었다.선 쪼기로 X­레이식 투시수법으로 새긴 이 그림은 멧돼지 번식뿐 아니라 모든 사냥감의 번식을 빈 상징물로도 풀이될 수 있다.이같은 투시수법의 동물그림은 북구 스칸디나비아쪽에도 많이 나타난다. 바위그림에는 U자 모양의 선각 안에다 멧돼지,또는 호랑이로 보이는 짐승을 새겨 넣었다.이는 짐승을 함정에 빠뜨렸거나,짐승 길들이기 등으로 해석하는 그림.대곡리 바위그림 유적은 두 가지 기능을 지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그 하나는 그림속의 얼굴 주인공과 같은 우두머리의 집전 사냥감의 풍요와 번식을 기원했던 제의유적이 아닌가하는 것이다.또 동물의 생태 등을 통해 샤냥기술을 가르친 교육장일 수도 있다.
  •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 영화제(유럽 문화산업 현장:중)

    ◎관광진층·경제활성화 동시 추구/현대미술·영화흐름 주도… 세계적인 축제로/권위에 안주 않고 끊임없는 개혁정신 발휘/비엔날레 한국관 기공계기,기업의 현지 투자 요청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열렸던 지난 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베니스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국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으나 이를 세계에 선전하지 못해왔다.이런 기회를 베니스 시민들이 갖게 해주어 감사한다』 이에 대해 베니스의 시장인 마치모 카치아리씨는 『한국이 상설 전시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공단에 기업이 투자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많은 관광객을 보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계적 권위와 그 권위를 단순한 문화행사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광진흥과 경제활성화에까지 연결시키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의 수많은 미술제전과 영화제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이 개관했을 때에는 히틀러가 참석했으며 일본관이 개관할 때는 국왕이 참석,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895년 이탈리아왕국과 베니스시는 베니스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미래에도 예술을 주도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창설했다.그해는 국왕인 움베르토1세와 사보이왕가의 마그리타왕비의 결혼 25주년 기념식이 있는 해였다. 베니스는 당시 세계최고의 예술도시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미국등의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던 곳이었다. 제1회 대회는 주로 라틴국가들의 화가 4백71명이 참가했으며 그후 1백년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년에 한번씩 6월에 시작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각국의 화가·조각가·건축가·평론가·저널리스트·화상등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 올림픽.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르디니 공원에 상설전시관을가진 24개국,주로 선진유럽국가들의 국제잔치로 치러져 왔다.따라서 이곳에 상설전시관,즉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이탈리아관의 한쪽을 비좁게 빌려 쓰면서 국가관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국제 로비전을 펼쳐 왔다. 선진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날카롭게 대결하는 이곳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지막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 기공식을 올린 우리 정부는 「문민정부 최대의 문화외교 성과」로 이를 자부하고 있다.한국관이 들어서는 부지는 지난 20여년동안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이 상설전시관을 짓기 위해 탐내왔던 곳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박물관인 베니스의 미술전통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귀족적 권위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혁의 정신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을 지켜왔다. 이탈리아의 전위미술가였던 필리포 마리네티는 베니스를 20세기 미술운동의 하나인 미래파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그의 미래파선언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위적인 성격을 가미했다.그는 19 07년 『박물관과미술관은 수백년 전에 죽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야 한다.운하의 물길을 터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물에 잠기게 하라.오!영광에 가득찼던 캔버스들이 물위에 떠내려 가며 색이 바래고 갈갈이 찢겨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라는 미래파 선언을 했다.그는 더 나아가 『엔진의 뚜껑을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체의 승리」라는 낡은 그림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1968년에는 학생들의 데모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제도가 바뀌기도 했다.베니스대학 학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그랑프리 제도가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며 데모를 벌여 대상제도가 사라지고 「올해의 화가상」과 가장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국가관에 주는 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19 32년 만들어 졌다.당시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첨단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제를 창설했다.독재자의 광기와 과욕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독재자가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 뒤에도 전세계 영화인들의 최고 영예가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칸영화제가 생긴 것은 이보다 7년 뒤인 39년이며 베를린영화제는 50년에야 창설됐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제1회대회때부터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34년에는 국내영화·국제영화 두분야로 나누고 36년에는 최고상인 무솔리니배가 추가되고 47년부터는 베니스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주어진다. 38년도 베니스 영화제의 무솔리니배는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를 만든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레펜슈탈에게 돌아가고 51년도에는 영화 후진국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생문」으로 작품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로사와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와 평생동안 학교의 체육선생을 지낸 사람으로 구로사와는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무라이의 비정한 생활을 영화한 것이 일본문화 수출의 첨병이 되었다.일본의 영화산업은 베니스영화제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에는 우리나라의 강수연양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해마다 여름철에 리알토섬(베니스의 주요 섬)의 남쪽 방파제 구실을 하는 리도섬에서 열린다.리도 섬에는 11㎞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과 경마장 골프코스 비행장 축구경기장 등이 있는 곳으로 영화제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축제가 벌어진다.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는 『우리나라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를 선전하고 알리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상품은 비싼 것이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뢰를 하면서 물건을 사는데 비해 한국 상품은 1만달러가 넘는 것은 보증서가 있는가,잘못되었을때 환불을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받게 된다』고 밝혔다.이대사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알리는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화행사와 관광진흥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베니스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 완벽한 선의 미학 추구/귀국전 여는 재미화가 김장희씨(인터뷰)

    ◎수직·수평선 반복… 명상·사색의 흔적 담아 5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인공갤러리에서 열리는 재미작가 김장희전은 완벽한 선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의 고뇌가 그대로 담긴 전시회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흔히 모든 회화는 선에서 출발한다고 하지만 6년간에 걸친 김씨의 선 추구작업은 하나의 독창적인 영역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이화여대 회화과 재학시절 동양화에 기울었던 김씨는 일본 교토대 유학을 거치면서 판화작업에 치중했지만 6년전부터 선 작업에 치중해오며 시선을 끌고있는 작가. 판화의 기술적인 노동측면에 싫증을 느껴 선 작업에 매달리게 됐고 끊임없는 선 작업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캔버스위에 수직 혹은 수평선을 반복적으로 긋는 김씨의 작업은 극도로 절제된 작업을 통해 회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며 선 하나하나에 명상과 사색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작가는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새 영역을 구축해 내야 한다』는 김씨는 『선 작업에 몰두할때 편안함을 찾게된다』면서 『결국 이 작업은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선 추구작업을 지속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 새달 8일 뉴욕서 「서울·뉴욕 멀티미디어 예술축제」

    ◎한국 하이테크 아트 미서 선뵌다/백남준씨 기획,국내외 한인작가 참여/20여개 작품 설치… 무용·영화상영도 한국의 하이테크 아트를 선보이는 대규모 전위예술 전시회인 「서울­뉴욕멀티미디어예술축제」(SEOUL­NYMAX)가 다음달 8일부터 11월6일까지 뉴욕의 영화박물관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펼쳐진다. 한국문화원등의 지원하에 재미 예술가 백남준씨가 총 기획을 맡아 열리게된 이번 행사는 첨단 컴퓨터를 사용한 한국의 하이테크 예술소개를 통해 한국 전위예술의 국제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례적인 행사. 프랑스 독일 일본 리투아니아 미국 오스트리아등 6개국 예술가가 함께 초청돼 20여개의 전자예술 작품 설치전시회를 갖는데 부대행사로 40편의 영화 상영과 무용등 60회의 공연외에 2차례에 걸친 토론회도 갖는다. 한국측에선 미술평론가 김홍희씨가 선정한 김윤 최은경 석영기 정상곤 박천신 신직식 육근병 홍윤아 김영진 문주등 10명의 하이테크작가가 참가할 예정. 이들의 작품전시와 함께 백남준 유현정 조승호 권홍구 최인준등현지의 한인작가도 출품하며 김덕수패의 사물놀이,홍신자의 무용,이두용감독의 영화(물레야 물레야등 6편),그리고 KBS의 남북이산가족 다큐멘터리 상영도 곁들인다. 이번 전시에서 부부 컴퓨터 작가인 김윤과 최은경은 현대한국의 감성을 표출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품 「인공두뇌 공간에서의 유희」와 「생명현상」을 각각 선보이며 컴퓨터 그래픽을 판화의 연장개념으로 보고있는 석영기와 정상곤은 복제미술의 미학적 문제를 지적한 「서랍달린 비너스」와 환경문제를 다룬 그래픽 작품을 소개한다. 컴퓨터 판화와 설치,애니메이션등 다양한 장르의 컴퓨터 미술에 능통해 컴퓨터 총체예술가로 불리는 뉴욕거주 작가 신진식은 3대의 모니터 영상을 흰 캔버스 벽면에 반영하는 「면벽하는 텔레비젼」을 설치해 퍼포먼스를 보여줄 예정.이밖에 비디오 설치작가 육근병은 음양 혹은 선악의 대립등에서 우주의 원천적 생리를 주로 다루어온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며 영화와 비디오를 통해 시적인 영상을 창출하는 홍윤아는 환경문제를 비롯한 지구촌의 관심사를 단편적인 영상모음으로 제작한 「지구상의 어떤하루」를 선보인다. 한편 이번 전시회를 총체적으로 기획해 성사시킨 백남준씨는 내년중 서울­뉴욕­베를린,후년에는 서울­뉴욕­파리를 잇는 첨단 국제예술제를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회화·공예·디자인/「일본 현대미술전」 동시에 한국서

    ◎일 전통예술의 현대적 계승 조명/“대중문화 개방논의 시점서 이례적” 일본의 현대회화와 전통공예,디자인등 현대 일본미술 관련 전시회가 동시에 한국에서 열리고 있어 주목을 끌고있다. 이같은 현대 일본미술전은 인접국임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실질적인 문화교류가 흔치않았고 국내에서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 비추어볼때 이례적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23일까지 현대아트갤러리가 개관6주년 기념으로 마련하고 있는 「일본 현대미술의 단면전」이 젊은 회화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일본의 현대회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면 국립현대미술관 제4전시실에서 10월11일까지의 예정으로 열리고 있는 「현대일본전통공예전」과 「현대일본디자인전」은 각각 중요무형문화재와 독창적인 작가들이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기획으로 흥미를 끌고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일련의 현대일본미술전은 회화와 전통공예,디자인등 각 분야별로 어떻게 전통의 창작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수용했는지,그리고 독창적으로 가꾸어왔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우선 현대아트갤러리의 「일본현대미술의 단면전」은 가타야마 마사히토,야마베 야스시,다치 가쓰오,기타 나오유키,후쿠다 미란등 30대 작가 5명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 이가운데 야마베와 다치가 현대회화의 전통적인 방법을 통해 회화의 현대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면 후쿠다 미란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따라 자신의 회화세계를 가꾸는 작가로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이나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의 인물 시선을 바꾸는등 그림을 재해석해 그리는 작업을 보여준다.그런가하면 가타야마는 붓의 힘찬 터치와 되풀이되는 이미지 반복,분할된 화면등으로 대상을 철저히 추상화하는 흐름을 보여주며 기타는 알루미늄을 소재로 택해 캔버스대신 사용해 독특한 색감을 보이는 입체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일본전통공예전」과 「현대일본디자인전」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의 전통공예 1백9점과 80년대 이후의 디자인 작품 1백93점을 각각 소개하고 있다. 이가운데 「현대일본전통공예전」은 일본공예의 큰 조류를 이루고 있는 전통공예를 도예,염직,칠공예,금속공예,목·죽공예,인형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내놓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전통 공예기술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보이는 작품들이다.또 「현대일본디자인전」은 80년대 이후부터 일본에서 독창적으로 싹틔운 디자인 형태를 건축 인테리어 패션 그래픽등 4개분야로 나누어 선보인다.
  • 격조높은 증화(백제를 다시본다:23)

    ◎세련된 색조의 능산리고분 사신도/청룡·백호상 역동적… 동양사상 펼쳐/무령왕릉 왕비목침 장식화도 걸작/공주 송산리 고분벽화는 초기수준… 고구려 벽화와 비슷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지상에 드러난 백제의 회화를 만날 길이 없다.다만 여러 장르의 고분미술을 통해 백제회화의 잔영을 들여다 보아야만 했다.고분미술에서 회화를 찾자면 이른바 고분벽화가 가장 큰 캔버스의 그림일 것이다. 고분벽화는 주검을 거두어들인 무덤 속 널방(현실)의 벽면과 천장에다 그렸다.백제의 벽화고분은 웅진시대의 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과 사비시대의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 유명하다.웅진시대 중기의 송산리6호분 벽화가 지극히 간략한 필치의 회화라면,사비시대 후기의 능산리 고분벽화는 원숙하고 세련된 필치로 색조를 자유로이 구사한 본격적 회화라 할 수 있다. ○회화유물 극히 적어 그래서 이들 2기의 고분 속에 그린 벽화는 뚜렷이 구분된다.시대적으로 앞뒤의 관계가 있는 이들 고분벽화 가운데 좀 늦은시기의 부여 능산리 고분의 그림을 먼저 살펴보면 한마디로 격조 높은 백제적 회화다.캔버스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 고분의 벽면은 물갈음한 화강암(천장과 서벽)과 편마암(동벽과 북벽)으로 되어있다.물론 거대한 널돌(판석)인데,벽면에 직접 사신도를 그렸다.그리고 천장에는 연화문과 비운문을 형상화했다. 동벽 중앙의 청용은 살아서 꿈틀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S자형으로 용틀임을 한 몸통과 딱 벌린 입에서는 혀가 길게 나와 사뭇 역동적이다.그리고 한껏 벌린 다리가 위로 치켜든 꼬리와 함께 생동감을 안겨준다.상상의 동물 용을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백제인들의 솜씨가 놀랍거니와 동양적 심성을 활짝 열어보인 풍부한 사고력 또한 높이 사고싶다. 서벽에 그린 백호는 머리를 위로 쳐든채 꼬리는 한껏 굽혀서 역시 위로 뻗치고 있다.눈에다가는 붉은 칠을 해서 튕겨나올듯 부릅떴다.그리고 입 언저리로 길게 내민 혀,가슴에 돋친 비운문이 어울려 백호의 위엄은 대단하다.널방에 침범할 수도 있는 사기를 얼씬도 못하게 미리 쫓아버리려는 형상이다.그러나 널방에 스며든 습기로 인해 백호의 몸통 아래쪽이 빛바래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백호 허리 윗부분 공벽에는 원을 그려넣고 10개의 작은 반원을 같은 간격으로 돌려놓았다.원 내부에는 두꺼비를 배치,월상을 표현했다.또 백호를 그릴 때 남겨둔 머리와 꼬리부분의 공벽은 비운문으로 채워 백호의 동작이 더욱 날쌔보인다.특히 백호도의 월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형상이기도 한 것이다. 남벽의 주작도는 널방 입구,다시 말하면 널방문 위에 그렸다.주작 주위에는 인동문을 배치했다.벽을 살피다가 북벽을 향해 돌아서면 이를 어쩌나,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그 이유는 북벽에 남아 있어야할 현무도가 지워져있기 때문이다.세월이 그만큼이나 흘렀는데 흔적이 뚜렷하길 바라는 마음이 욕심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애석한 심사를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현무도는 지워져 다행히도 천장화가 비교적 잘 남아 한숨을 돌리게 된다.연화문을 그리고 사이사이와 주변에 하늘을 표상하는 비운문을 박았다.연화문은 꽃술 가운데 주문을 장식했는데,연꽃술은 8잎으로 되어있다.연화문은모두 7개로,이 가운데 3개는 남북을 잇는 1줄에 가지런히 배치한데 이어 4개는 좌우에 각각 2개씩 그려넣었다.연꽃을 그리는데 사용한 색깔은 분홍색,갈색,황색,검은색이다. 공주 송산리 6호분은 그림을 그려넣은 벽면부터가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과 다르다.능산리 벽화고분의 벽이 물갈음한 넓은 널돌인데 비해 송산리 6호분은 널방의 4면벽을 문양벽돌로 쌓은뒤 그림을 그릴 부분만 진흙을 발랐다.그리고 나서 호분(조개껍데기를 구워서 만든 안료의 일종인 백색분)으로 벽화를 그렸다.뒷날 사비시대 고분벽화처럼 사신도를 그렸다.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널방 동벽에 청룡,서벽에 백호,북벽에 현무,남벽 입구 위쪽 벽에는 주작과 일월상을 그리는 형식을 취했다.청룡도는 머리에 뿔 2개가 달린 쌍각청용이다.허공을 뛰어달리는 용의 자세로 짐작된다.백호도는 백묘기법을 써서 그렸음에도 패기찬 자태가 잘 표출되고 있다.왼쪽 앞다리는 올리고 뒷다리를 전후로 벌려 달리는 모습을 했다. 이러한 백호도는 회화기법은 다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온다.고구려벽화의 백호는 몸체가 가늘고 긴데 비해 백제의 것은 비교적 굵은 편이다.현무도는 퇴색되어 뱀과 거북이 얽힌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주작은 형태를 알아볼 만큼은 남아있다.두 날개를 위로 힘껏 펼친 주작이 꼬리털을 날리면서 막 비상하려는 자태를 하고 있다.그 주작의 양쪽에는 흰색으로 그린 동심원이 배치되었다. 백제의 회화에서 고분벽화는 분명한 대작이다.그렇다면 무덤에 넣은 껴묻거리(부장품)의 장식화들은 소품에 해당하는 백제의 회화일 것이다.사비시대에 축조된 도성 이웃의 지배자무덤들은 일찍 모두 내부가 파괴되어 장식화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웅진시대 무덤의 사정은 다르다.지난 1971년 당시 세기적 발견으로 평가되었던 공주 무령왕릉 출토유물의 장식화들은 백제미술의 백미를 이룬다.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나무베개(목제두침),장식화와 나무발걸이(목제족좌) 장식문양은 걸작이다.나무베개 장식화는 베개의 나무 표면에 주칠을 하고,우선 금박으로 거북등문양(구갑문)을 넣었다.그 거북등문양 안에는 흰색·붉은색·검은색깔·금니등으로 세필의 비천상·주작·어용·연화문을 그렸다.특히 비천상의 경우 천의를 날리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했고 주작은 두 날개를 부채꼴로 펼치면서 긴 꼬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백묘기법으로 그려 어룡은 먹선과 금니를 함께 사용해 그렸다.가는 먹선으로 윤곽을 긋고 몸뚱이와 꼬리는 금니로 처리했다.전체적으로 V자형을 이룬 이 나무베개의 어룡은 바다속에서 헤엄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백제회화유물이 아주 극소수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 무령왕릉출토 나무베개의 그림들은 귀중한 회화자료가 될 것이다. 무령왕릉의 나무발걸이에 나타난 장식문에서는 비운문이 단연 으뜸이다.역시 주칠을 한 발걸이 표면에는 금박띠를 돌리고 그 안에다 좌우대칭의 먹선 비운문을 그렸다.비운문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요즘으로 말하면 디자인에 가까운 장식문양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독특한 회화성을 지녔다.그 온화한 필치의 백제회화를 흔히 만날 수 없게 굴러가버린 역사의 수레바퀴가 비정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그래서 백제미술을 대하면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사신도/동 청령­서 백호­남 주작­북 현무/방위신 표현… 중앙의 황룡은 거의 생략 고분속의 벽화 사신도는 널방(현실)의 4방벽면에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이 사신도는 방위신을 표현한 것이다.방위신에는 본래 청룡·백호·주작·황룡 이외에 황룡을 포함해서 오신수가 있는데 벽화에서는 황룡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신격의 짐승(신수)은 음양오행설및 이십팔숙법과 관련되었다.28개 별자리를 중앙·동·서·남·북의 다섯 방향에 따라 나누고 그 별자리의 모양을 따서 환상적인 신수를 만들었다.그리고 신수를 숭배했다.방위신은 방위에 따라 빛깔과 형태를 달리한다.이를테면 중앙에는 황룡,동쪽에는 청룡,서쪽에는 백호,남쪽에는 주작,북쪽에는 뱀과 거북이 뒤엉킨 현무를 배치했다.또 천장에는 상서로운 동물들과 해·달·별·꽃 등을 그려넣었다. 일부 고분의 벽화에는 사신도를 각 벽면의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 공백은 산수화·구름무늬·연꽃무늬·당초무늬와 인동무늬·불꽃무늬로 채웠다.그래서 마치 사신도가 여러 장식무늬 바탕 위에 그린 것처럼 착각되기도 한다.그러나 사신도는 어디까지나 사신이 주제가 된 것이다.충남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중앙에 사신만을 그려 대체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연상시킨다.부여 능산리 고분은 4방벽에 사신도,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렸다. 벽화는 널돌(판석)로 널방벽을 축조할 경우 직접 돌벽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회를 바른 다음 벽면에 그렸다.그림을 그릴 때는 묵선으로 밑그림을 먼저 쳤다.더러는 밑그림이 없이 곧바로 색깔을 써서 그리는 백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백제 벽화고분에서 널방벽 널돌에 회칠을 하지 않고 직접 그림을 그린 경우는 사비시대에 축조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벽화고분이다.그리고 앞서 웅진시대에 축조한 공주시 송산리 6호분은 백묘법으로 그린 고분벽화라 할 수 있다. 백제 벽화고분 속의 사신도는 형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자유롭고 박력있게 표현한 고대회화로 결론지어도 좋을 것이다.
  • 「미술가족 워크숍」 서울 갤러리 아트빔서 열려

    ◎캔버스에 「행복한 우리집」 함께 그려요/부부화가 10쌍 자녀들과 화목다지며 작업/완성작 5월 전시… 수익금은 장학금 기탁 부부화가 10쌍이 자녀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는 「행복한 우리집」주제의 미술가족 공개 워크숍이 19∼20일·27일 3일에 걸쳐 서울 갤러리 아트빔에서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워크숍은 미술인 가족들이 창작의 기쁨을 통해 창출한 가정의 행복은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한 캔버스 위에서 전문작가인 부모와 아이들이 펼치는 천진스런 동심의 세계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갤러리 아트빔의 큐레이터 김혜경씨는 『세계가정의 해를 맞아 사랑이 숨쉬는 사회가 어떤것일까를 생각하던중 미술가족 워크숍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히고 가족들끼리도 바쁜 시간을 할애,공동의 시간과 작업을 갖는 것이 사랑을 회복하는데 좋은 모티브가 됨을 보여주는 것이 워크숍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19일 미술가족 워크숍을 가진 서양화가 최진욱(38)·박강원(37)씨 부부는 수인(7)과 영인(3)등 두 딸을데리고 나와 넓고 큰 캔버스에 마음껏 낙서하듯 그리는 자유로운 드로잉을 하면서 단란함을 보여주었다. 최진욱씨는 『부부가 화가라고 해도 워낙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과 작품을 해보기는 처음』이라며 수인이가 서툴게 색종이로 뼈대를 세워 유화물감으로 그린 굴뚝이 있는 집과 새·나무등의 풍경및 영인이 제 마음대로 찍어가는 점들을 중심으로 바탕색을 보충해 나가기에 바빴다. 그것은 서양화가 신장식씨(36)와 판화가 기명진씨(35)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아들 동인(8)·딸 해인(6)남매와 함께 워크숍에 나선 이들 가족은 같은일에 금방 싫증내는 아이들의 심리를 감안해 크레파스와 색종이에서부터 수수깡·스프레이·색철사·스탬프·스티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료를 준비했다.또 캔버스도 4절지 10장으로 마련해 아이들이 종이가 너무 클때 느끼는 미완성의 부담을 갖지않도록 세심한 배려까지 했는데 아이들은 작업장에 널려진 종이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창작의 세계를 마음껏 펼쳤다. 또한 부부도예가인 원경환(41)·이윤신씨(37)는 국민학교 6학년인 딸과 함께 점토작업과 접시그림 그리기 등을 했다. 이번 워크숍에서 완성된 미술가족의 창작 작품들은 가정의 달인 5월4∼24일 갤러리 아트빔에서 전시되며 전시회의 수익금은 환경미화원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기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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