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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를 예견하다

    미래를 예견하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이 새해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과 예술, 기능과 감각이 모두 연결돼 통하는 세상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이미 오래전에 예견했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백남준의 예리한 통찰력과 그가 꿈꾸던 미래의 미학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21일부터 열린다. 지난해 하반기 항저우 삼상현대미술관의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전과 학고재 상하이의 백남준 전시에서 선보였던 12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회 제목은 ‘W3’.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으로 미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작가의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된 대표작이다. 총 64대의 모니터를 이중나선형으로 배치하고, 각각의 모니터는 재생 시간 20분가량의 영상을 1초 간격으로 옆 모니터에 전달하도록 설정됐다. 파도처럼 옆으로 전파돼 반복되는 화면의 영상이 ‘X’ 자 형상을 따라 가로지르는 움직임이 돼 나타나는 작품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요즘 시대의 웹문화를 절묘하게 보여 준다. 백남준이 1974년 록펠러재단에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계획서를 제출하고 제작 비용을 신청했지만 무산되는 바람에 20년 뒤인 1994년에야 완성된 작품이다. 전시에는 백남준의 초기 작품인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도 5점 소개된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갤러리에서 열린 생애 첫 개인전에서 정보 전달 매체로만 알고 있던 텔레비전을 예술의 오브제로 변모시킨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TV 브라운관을 캔버스 삼아 전자 파동으로 화면을 변동시켜 소리를 이미지로 바꾸거나 방송되는 이미지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회화를 시도했다. 당시 저명한 비평가들조차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백남준은 이 전시회를 계기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예술사에 기록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두 개의 TV 세트에 음파입력’, ‘수평 달걀 구르기 TV’, ‘수직 구르기 TV’, ‘흰 자재에 대한 발판 스위치 실험’, ‘오실로스코프TV’ 등 작품들은 파르나스에서 첫 개인전을 연 1963년 제작한 것이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형작품 ‘다다익선’을 설치하는 것을 계기로 만나 30년 가까이 백남준의 작품을 제작, 유지보수해 온 이정성(아트마스터즈 대표)은 “백 선생은 애초에 관객들이 작품을 직접 조작하고 만져 보면서 느끼는 참여형을 원했다.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들은 원래 9점이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경우 비디오 플레이어는 작가의 감독하에 1995년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모두 작가입증(AP) 작품들이어서 의미와 중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이 밖에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추모하며 만든 ‘샬롯’(1995)과 러시아 대문호를 표현한 ‘톨스토이’(1995), 인간과 기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표현한 ‘테크노보이Ⅱ’(2000), 자유로운 시간 여행을 꿈꾸며 만든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1991) 등 비디오 조각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02)720-1524~6.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자연을 다스리지 않는 자기 수양의 도구일 뿐”

    “자연을 다스리지 않는 자기 수양의 도구일 뿐”

    “단색화의 바탕은 자연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자연과 합일되는 동양적 자연관이 바탕이 됩니다. 그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한 도구로서 끝없이 반복 수행하며 붓글씨를 쓴다든지 그림을 그리는 조선 성리학에 바탕을 둔 선비정신과 같은 맥락의 작업입니다.” 단색화 1.5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이번 ‘텅빈 충만’전에 물과 빛, 색의 침전을 이용한 작품 ‘숨 빛’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작가 김택상(56·청주대 교수)은 “단색화란 색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에 임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 단색화의 차이에 대해 그는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은 내가 바깥세상과 만나는 것인데 서양의 입장은 자연을 착취해서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고 동북아시아의 태도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 내가 있는 것”이라며 그런 태도가 그대로 단색화 회화에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양의 모노크롬 페인팅은 색을 이용하는 색면추상이지만 단색화라는 감수성을 갖고 작업하는 화가들은 재료의 물성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관계를 지속가능하게 이끌 것인가를 고민한다”면서 “재료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존중하면서 그 재료의 속성을 끄집어내서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서양의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과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된 그의 작품도 많은 양의 물에 엷게 물감을 타서 물을 흡수하는 캔버스에 침전시키는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광 아래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 데 평균 4~7개월, 길게는 2년까지도 걸린다. 박서보, 윤형근, 최영명 등 단색화 1세대의 제자인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경향인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최근 국내외에서 급부상하고 있지만 좀 더 국제무대에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단색화에 대한 체계적인 담론화 작업과 역사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술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한국의 전통에 대해 공부하고 그 결과를 작업에 반영한 사람들이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이라며 “한국 모더니즘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단색화 1세대 작가들에 대한 평가 작업이 제대로 돼야 후학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국제 미술계에서도 단색화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태동 鐘樓에서] 영화 예술, 정치 선전도구 아니다

    [이태동 鐘樓에서] 영화 예술, 정치 선전도구 아니다

    20세기에만 해도 반열에 오른 일부 고답적인 유명 작가들도 영화를 우리가 말하는 ‘신파’와 크게 다르게 보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은둔주의 미국 작가 J D 샐린저는 “영화의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비열한 자식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구텐베르크의 은하’를 쓴 마셜 매클루언은 영상문화의 대변혁을 예견하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그 후 디지털 시대의 영화예술은 대중 예술로만 머물지 않고 컴퓨터 기술의 향상과 더불어 고급한 종합예술로서 활자로 된 문학을 억압할 정도로 크게 발전해 왔다. 성숙한 형태로 발전한 종합예술인 영화는 “영상으로 쓰는 문장(文章)”이기 때문에 후진적인 의식을 개혁하는 데 그 어떠한 인문학적 텍스트보다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영화 예술을 인간의 상상력과 재능을 자유로이 발휘하는 미학적 공간으로 사용하지 않고 레닌과 스탈린 시대처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말했던 ‘빅브러더’의 공화국을 다시금 탄생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영화산업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영화 관객 1000만명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미디어 매체보다 크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정치적이고 사회 문화적인 이슈의 핵(核)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서도 천만 관객이 보는 영화라는 ‘미디어 매체’를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활동을 위한 캔버스와 같은 예술의 공간이나 광장으로 사용하지 않고, 정치적인 선전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든다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의식이 강한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일부 정치인들은 그것을 정치적 논란이나 이념적인 진영 논리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 이기적인 선전수단으로 몰고 가려는 양상을 보여 왔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의 화제를 모으며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은 비록 ‘상업주의와 관객’들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편의 대중적인 예술작품이다. 하지만 일부 진보주의적인 정치 세력들은 이 영화를 순수한 작품으로 보지 않고 ‘보수 영화’라고 낙인을 찍어 이 영화가 상영된 후부터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정치적 논란과 이념적 진영 싸움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 이념적인 프로파간다로 전락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지극히 후진적인 병리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향민인 야당 지도자인 문재인 의원은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긍정적인 쪽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일부 좌파 논객들이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는 말로 이념적인 논란의 불씨를 지폈던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이념적 갈등이 빚어낸 6·25 한국전쟁을 비롯해 월남전 등과 같은 굴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 그토록 어려운 시련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날 세계 속에서 번영하는 국가로 발돋움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정치적인 이념 문제에 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시각일까. ‘국제시장’이 하나의 영화예술 작품으로 보편성을 띠고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개체적인 인간이 불굴의 자유의지와 개척 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간 승리에 관한 역사를 영상미학으로 리얼하게 형상화해 보여 주기 때문이다. 현실을 극복하는 리얼리즘 작품인 ‘국제시장’은 오히려 진보 진영에서 환영해야 할 작품일 수도 있다. 2l세기의 어느 텍스트 못지않게 인간 교육을 위해 필요한 풍요로운 인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영화예술을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보여 주는 참담하고 비극적인 인간 풍경은 다름 아닌 정치·이념적 갈등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 디지털 빛, 틀을 비틀다

    디지털 빛, 틀을 비틀다

    디지털 출력된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의 ‘산수도’ 속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존 케이지가 연주를 한다. 영화 속 ‘나사렛 예수’가 텔레비전 모니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장면도 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얀 페르메이르가 그린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는 우유가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영원히 젊은 상태로 남을 줄 알았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다. 스페인 바로크미술의 대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는 가슴에서 빛을 발하는 강화플라스틱 인형으로 재탄생했다. 디지털 시대의 독보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45)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선보인 신작들이다. 그가 ‘다시 태어나는 빛’을 주제로 선보인 30여점의 설치 및 평면 작업들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창작과 모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캔버스가 아닌 발광다이오드(LED)TV에 움직이도록 만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디지털 산수화로 남다른 상상력과 감각을 드러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더욱 확장된 아이디어와 재료를 접목해 동서양의 명화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다.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익숙한 명화들이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모습은 흥미롭고 감탄을 자아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과 대립, 정치·도덕·문화·예술의 혼돈에서 비롯된 인간성 상실에서 빛을 잃어버린 시대를 읽은 작가는 빛을 도구로 삼는 미디어 아트를 이용해 새로운 탄생을 꾀한다. 그는 “순수한 빛의 출현을 기대하는 시대적 요구를 작품 속에 반영하고자 했다. 초자연적인 빛을 상징하는 성서 속 메시아와 빛을 이용하는 미디어 아트 간의 접점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봤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작품 ‘빛의 언어’는 밀로의 비너스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여러 개 복제해 등을 돌려 세워 놓은 뒤 프로젝트빔으로 ‘자승자박’ ‘각인소광’ 등 의미 있는 언어들을 비춘다. ‘빛의 탄생’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작품 속 촛불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에서는 강세황의 그림 속 인물들이 반딧불이처럼 빛을 반사하며 움직이고, 소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바꿔 놓았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는 시간의 개념을 담아냈다. 영원히 앳된 소녀로 남을 줄 알았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또 다른 작품에선 처참하게 늙어 있다. 그는 기존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로 다양한 변화를 주는 동시에 물과 나무 등의 자연물이나 금속,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조각, 오브제에 빛과 영상을 과감하게 결합하는 식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리본 라이트’는 기독교의 세례를 차용해 방수된 모니터 속에 있는 축구 선수의 얼굴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전시 제목으로 선택한 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은 16세기 미켈란젤로가 만든 걸작 피에타상을 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예수의 몸을 마리아로부터 떼 내어 공중에 띄우고 빛을 비춘 형상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저만의 시각으로 풀어 봤습니다. 600년 동안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잖아요. 제가 한번 떼어 놓아 봤습니다.” 조선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이남은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을 이용해 일상과 자연의 변화를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동서양 명화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조각 및 오브제와 영상을 결합하는 등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개인적인 구축물’(Personal Structure)에 초청되는 등 동시대 미디어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향해 나가고 있는 그는 “디지털 기술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서로 충돌하거나 분리되지 않고 조화로운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02)720-1020.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미술관 건축은 어느 건축 분야보다 건축가 자신의 미학과 철학을 살릴 여지가 많은 편이다. 건축가의 상상력과 선진적인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은 독창적인 미술관들이 현대 건축 순례지에 포함되는 이유다.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 그라츠에 있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형태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미술관이 세계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꼭 가 봐야 할 건축물로 꼽히는 이유는 외형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관이, 문화와 예술이 그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역사 1000년이 넘는 중세도시에 들어선 외계 생명체 같은 이 파격적인 미술관은 도시의 해묵은 과제인 동·서 간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적 불협화음을 말끔히 해소시키면서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빈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진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수도 빈의 그늘에 가렸고,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처럼 매력적인 관광 요소가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9세기 도나우강의 지류인 무어강을 끼고 헝가리와 슬로베니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건설된 그라츠는 수 세기 동안 슬로베니아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들의 수도인 류블랴나보다 더 중요한 곳이었다. 조용하고 목가적이며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라츠의 구시가지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도심 중 하나로,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역사지구로 보존되는 구도심은 마치 박물관 같다. 16세기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란트하우스와 시청인 라트하우스, 그라츠의 상징인 슐로스베르크 시계탑(우어투름)과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대성당, 바로크 양식의 에겐베르크궁전 등 많은 고전 건축물들이 구시가지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도시로 유명한 그라츠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한 유서 깊은 명문 대학들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크고 두 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그라츠대학을 비롯해 건축으로 유명한 그라츠기술대학 등 6개 대학에 4만 40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전체 인구가 25만명인 도시에서 6명 중 1명이 대학생인 셈이니 고풍스러운 도시에 지적인 분위기와 젊음의 활기가 넘친다. 2003년 그라츠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등장했다. 바로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다. 쿤스트하우스는 도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무어강의 서쪽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디자인한 현대미술관 쿤스트하우스 그라츠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외형 때문에 한동안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여러 개의 촉수를 가진 거대한 연체동물 같기도 한 이상한 모습을 한 낯선 침입자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공공 기능을 가진 건물에 어디까지 작가의 상상력을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설계안을 놓고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80%가 반대했을 정도로 기괴한 모양이었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에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외형의 미술관이 들어선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라츠 시민들이 이 괴상한 건물을 ‘친근한 외계인’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형은 좀 독특하지만 도시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반영해 설계한 미술관은 도시의 해묵은 과제를 시원하게 풀어주며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해묵은 과제란 바로 동서 간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불화였다. 그라츠는 무어강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뉜다. 동쪽은 요새에서 출발해 발달한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해발 473m의 슐로스베르크 언덕을 중심으로 구릉을 따라 상점가와 고급 주택가, 대학이 들어서 있고 모든 행정·문화·종교·교육·상업시설도 구도심에 밀집해 있다. 반면 서쪽에는 기차역, 공장, 양조장, 제련소 등의 산업시설에 정신병원과 감옥, 홍등가 등이 자리했다. 동쪽은 중세 이후 귀족, 부르주아 계급의 거주지였고 서쪽은 노동자와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 건물 임대료도 동쪽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강 양안의 공간 구조는 완전히 이질적이고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극심했다. 그라츠시는 그 해결책으로 서쪽 지역에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방치돼 있던 무어강 서쪽에 1848년 지어진 철제 건물과 그 옆 공터에 미래적 디자인의 현대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1998년 현상설계를 실시했다. 사실 현대미술관 건립은 그라츠시의 숙원 사업이었다. 이미 1980년대에 현대미술관 건립 계획을 수립해 두 차례 현상설계를 하고 당선작까지 뽑아 놓은 상태에서 정권 교체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됐던 터였다. 무산된 두 번의 계획은 무어강 동쪽에 현대미술관을 짓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동서 간 격차가 심한데 현대미술관마저 동쪽에 짓는다는 계획은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웠다. 세 번째 시도를 하던 중 마침 그라츠가 2003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그라츠시의 미술관 건립 계획은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무어강 서쪽에 쿤스트하우스를 유치해 ‘예술을 통한 사회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정치·사회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런던의 건축가인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는 무어강을 사이에 두고 이질적으로 발전해 온 도시의 역사적 설정과 그들의 혁신적인 디자인언어를 인상적으로 합성해 쿤스트하우스를 완성했다. 건물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위압적이거나 위화감을 주지 않고 주변의 오래된 건축물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설계한 두 건축가의 공이 크다. 4층 규모의 유선형 건축물은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건물들 사이에 연착륙한 외계 생명체 같다. ‘피부’에 해당하는 외벽은 두게 15㎜의 투명한 청색 아크릴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붕에는 16개의 관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튀어나와 있다. 채광창 역할을 하는 건물의 촉수는 이 도시의 상징인 강 건너편 슐로스베르크 언덕 위의 시계탑을 향해 휘어 있다. 마치 이 도시의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교신하는 것 같다. 미술관은 ‘친근한 외계인’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건물 외부에서 매시 50분마다 5분 동안 초저음의 진동이 나도록 설계했다. 건물 외벽에는 아크릴판 아래로 930개의 원형 형광 전구가 설치돼 있다. 구도심을 향한 동쪽 입면은 개별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해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하며 밤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부드러운 곡면 스크린에 표현되는 미디어 이미지, 애니메이션은 마치 외계 생명체가 자기만의 언어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건물 상층부에도 ‘바늘’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전망대가 설치돼 강 건너 맞은편의 도시와 소통하도록 했다. 2003년 쿤스트하우스의 완공과 함께 그 주변으로 고급 레스토랑과 상점, 영화관, 식당과 카페, 재즈바 등이 속속 들어서 도시의 새로운 문화 축으로 금세 자리 잡았다. 무어강에는 2003년 유럽문화도시 선정에 따라 길이 50m, 넓이 20m의 인공 구조물 ‘무어섬’도 완공돼 쿤스트하우스와 함께 도시 서쪽의 전위적인 풍경을 이룬다. 양쪽 강변에서 팔을 뻗어 거센 물살 위에서 힘차게 악수를 하고 있는 모양으로, 사회적 통합을 상징하는 인공섬이자 인도교에는 카페와 공연장이 들어서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인터페이스 같은 쿤스트하우스가 들어서면서 동서 간 문화적 이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무어 강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한 시민은 “쿤스트하우스는 그라츠의 미래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공공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미술에 대한 배고픔… 그림은 아트 세러피”

    “미술에 대한 배고픔… 그림은 아트 세러피”

    가수 이현우(48)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하트 블로섬 팜’이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가시가 돋은 하트를 아크릴로 그린 연작 17점을 선보인 그는 “살다 보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럴 때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갑옷을 입듯이 강해지는 것 같다”면서 “그런 마음의 진화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어 붓을 잡았다”고 말했다. 가수 조영남, 배우 하정우와 구혜선 등에 이어 연예인 화가 대열에 동참한 셈이지만 그는 원래 전공이 미술이었고 그림만 그리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꽤 길다. 그는 중 2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예술전문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카네기멜런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파슨스디자인학교 오티스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평생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연히 음반을 내고 음악 활동을 하게 됐지만 항상 미술에 대한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 2011년 서울 종로구 인사갤러리의 ‘아름다운 숨’전, 지난해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의 ‘온 스타일 윤주의 봄날’ 팝업 전시 등 간간이 그룹전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인전은 처음이다. 하트를 소재로 정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간결한 이미지인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하트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7년 전부터였다. 비슷한 시기 큐레이터 출신인 이은경씨와 결혼을 하고 그 사이 아들 둘을 얻었다. 작업실 없이 현재 집에서 아이들이 잠든 밤이나 틈틈이 시간 날 때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주위의 평가에 민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림을 전공한 아내의 비판도 있고 여섯 살, 네 살 아들이 그림에 낙서를 하고 캔버스를 걷어차기도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고맙게 느껴진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해외 아트페어에도 출품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연예인의 창작 활동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일부 있다는 의견에 대해 “화가로서 표현하고 싶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좋게 봐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고통스러우면서도 하나씩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아트 세러피라는 것이 이런 거겠죠.”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제주 곶자왈 덤불속 생명을 품다

    제주 곶자왈 덤불속 생명을 품다

    사실적 기법의 인물화와 선인장 그림으로 강한 개성을 드러내 온 화가 이광호(47·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가 이번에는 인적도 없는 제주의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내면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넝쿨과 잡풀이 뒤엉켜 시들어가는 곶자왈 숲의 겨울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은 신작 21점을 서울 종로구 사간동 국제갤러리 1관에서 16일부터 열리는 개인전 ‘그림 풍경’에서 선보인다. “곶자왈은 용암지대여서 불모지입니다. 오랜 세월 낙엽이 쌓인 곳에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를 타고 덩굴이 자라고 복잡하게 뒤엉킨 풍경이 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제각각 그렇게 자란 이유가 있었어요. 생존의 결과인 거죠. 이런 곶자왈 숲은 제게 생명력의 상징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시에 앞서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곶자왈 숲을 처음 봤을 때 뭔가 심상치 않았다”면서 “안으로 들어갔을 때 원시적이고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방치된 자연스러운 형태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수풀이 우거진 ‘자왈’을 결합한 제주 고유어다. 인물, 선인장 등을 화폭에 담아냈던 그가 숲에 눈길을 준 이유에 대해 “숲이 갖고 있는 막막함, 광활한 다양성을 생각하면 화가로서 도전할 수 있는 폭 또한 무한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전시장 1층에는 낮의 풍경을 담은 대작을 비롯해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축축한 느낌의 덤불 숲, 새벽녘의 실빛이 들어오는 자욱한 숲의 절경 등이 걸렸다. 그런가 하면 2층은 밤의 숲을 그렸다. 같은 공간을 밤과 낮에 달리 그린 것도 있다. 하지만 계절은 모두 겨울이다. 작가는 “여름에는 숲이 너무 우거져서 형체를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없지만 겨울에는 나무와 덤불이 서로 투쟁하듯이 공존하고 그 속에 나뭇가지 또한 복잡하게 엉켜 있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복잡하게 엉킨 덤불들은 너무 난해해서 감히 붓으로 옮겨 담을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그런데도 감히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묻자 그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것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불확실한 것을 그리면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푸른 잎들을 바탕에 깔고 가느다란 덤불들까지 세세하게 표현해 낸 그의 작품에선 숲의 깊이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반 붓과 고무 붓을 사용해 칠하고 손끝으로 뭉갠 뒤 판화작업에 쓰는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며 효과를 낸 결과다. 유화물감의 질감이 그 맛을 더한다. 그는 “겨울 곶자왈 숲의 특정 장소를 시간의 변화에 맞춰 정기적으로 방문해 장면을 포착하고 작업실에 와서 구석부터 시작해 느낌을 되살려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속도감 있는 붓질과 중첩된 터치, 부드럽게 뭉개거나 날카롭게 긁어낸 윤곽선 등 작가만의 표현 방식으로 숲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했다. 한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화가 중 한 명인 그는 사실성을 뛰어넘어 회화적 기법이 보여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현 방식을 화폭에 보여 준다. 그는 “긁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이미 구획돼 있는 부분을 해체했다. 부분적으로 헤매듯이, 더듬거리듯이 보다가 해체하기도 하는 그런 행위 자체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축구실력 만큼 화려? 테베스, 등 타투 인증샷

    축구실력 만큼 화려? 테베스, 등 타투 인증샷

    등을 완전히 덮은 화려한 타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이탈리아 프로축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유벤투스 FC)가 타투 인증샷을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테베스는 등과 오른팔을 완전히 타투로 수놓았다. 디테일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교한 작품인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테베스는 그런 작품에 만족한 듯 "화려하고 장엄한 작품을 완성해준 친구야, 고맙다."고 타투이스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에 따르면 테베스의 타투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타투이스트의 작품이다. 테베스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테베스는 자신의 등을 캔버스 삼아 웅장한 타투를 완성한 타투이스트에게 "네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한편 테베스는 이번 시즌 세리에A 11경기서 9골 5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테베스는 "이탈리아로 이적한 뒤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트위터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테베스, 화려한 등 타투 인증샷 공개

    테베스, 화려한 등 타투 인증샷 공개

    등을 완전히 덮은 화려한 타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이탈리아 프로축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유벤투스 FC)가 타투 인증샷을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테베스는 등과 오른팔을 완전히 타투로 수놓았다. 디테일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교한 작품인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테베스는 그런 작품에 만족한 듯 "화려하고 장엄한 작품을 완성해준 친구야, 고맙다."고 타투이스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에 따르면 테베스의 타투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타투이스트의 작품이다. 테베스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테베스는 자신의 등을 캔버스 삼아 웅장한 타투를 완성한 타투이스트에게 "네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한편 테베스는 이번 시즌 세리에A 11경기서 9골 5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테베스는 "이탈리아로 이적한 뒤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트위터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해외여행 | 예술을 입은 홍콩

    해외여행 | 예술을 입은 홍콩

    홍콩에서는 천천히 걸어야 한다. 길을 걷다 수없이 마주치는 갤러리, 낡은 건물에서 만난 아티스트의 모습, 우연히 발견한 전시회.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홍콩 여행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Site 아티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 홍콩은 여전했다.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것인지 횡단보도를 뛰듯이 건너는 사람들의 보폭에 맞추자니 마음이 급해진다. 버스도 택시도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질주했고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빨랐다. 어쩌면 내가 처음 홍콩을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힘찬 활기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자문자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여유롭고 싶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번잡한 도심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이동했을 뿐인데 여기 이곳, 확실히 조용하다. 낡은 건물 자키 클럽 아트센터JCCAC·Jockey Club Creative Arts Centre에 들어서자 마음은 더욱 차분해졌다. 몇몇 방문객들만이 작은 광장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977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과거 인쇄소와 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이 모여 있던 공장이었다. 1990년대 관련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공장 소유자들이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고 2001년 5월 이후부터 건물은 텅 빈 채 낙후되어 갔다. 그 후 2008년 홍콩 정부에 의해 예술 창작 센터 JCCAC가 문을 열었다. 낡은 공장이, 넓은 스펙트럼의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ㅁ’자 형태의 건물을 따라 찬찬히 1층을 둘러보니 이곳은 예술가들의 숨어 있는 아틀리에다. 가죽 공예부터 한 땀 한 땀 뜨개질로 스카프를 만드는 작가의 숍,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갤러리, 사진 스튜디오,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공간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문을 열고 있었다. “Welcome to my atelier!내 작업실에 온 걸 환영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업에 열중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내 시선이 좀 뜨거웠나 보다. 좀 구경해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묻자 어두운 작업실의 불을 환하게 켜 준다. 아주 작은 나무와 집, 가로등과 같은 것들이 그의 섬세한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는 작은 금속을 두드리고 컷팅해서 만든 펜던트를 보여 주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이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잠시 들른 것뿐인데 유일무이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만나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그래서 텅 비어 있거나 문을 굳게 닫은 아틀리에들이 생기를 되찾길 간절히 바랐다. JCCAC 30 Pak tin street, Shek kip mei, Hong Kong 프론트데스크 10:00~19:30, 입주한 아틀리에마다 상이 852-2353-1311 www.jccac.org.hk ●Street 예술의 힘이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페더빌딩Pedder Building이 어디에 있죠?” 지도상 페더빌딩은 센트럴역 D1 출구 가까이 위치해 있었는데 한참을 헤맸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나를 쇼핑몰로 안내했고 또 어떤 이는 페더빌딩이라며 정체 모를 회사 빌딩을 가리켰다. 가만히 있어도 후끈 달아 오르는 열기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던 빌딩 숲 사이에서 주저앉아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페더 스트리트Pedder St.에서 기다란 직사각형의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리 더운 날씨에도 페더빌딩을 찾아 헤맸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한마디로 족하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갤러리들이 빌딩 하나에 모여 있으니까. 가고시안Gagosian, 사이먼 리Simon Lee, 하너트Hanart T Z 갤러리 등 현재 총 6개의 갤러리가 페더빌딩에 층층이 자리해 있다. 2009년,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서양 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보여 주는 벤 브라운 파인 아트Ben Brown Fine Arts 갤러리가 아시아 마켓으로의 영역 확장 차원에서 홍콩 페더빌딩에 입주했고 반대로 홍콩에서 중국을 비롯해 동양의 현대 미술을 알리는 펄렘PearlLam 갤러리도 매력 넘치는 작품들로 빌딩을 채웠다. 북적이지 않는 갤러리는 참으로 반가웠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하게 산책을 하면서 오로지 작품 감상에 몰두할 수 있었다. 건물을 나오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더들 스트리트Duddell St.에 있는 스타벅스 콘셉트 스토어에 들러 아이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나오던 길에 르 캐드리Le Cadre 가구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신원을 밝히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982년 가구를 비롯해 도자기, 인테리어 소품을 전시한 갤러리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대로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갤러리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가구와 동양의 담백한 소품들로 예술과 인테리어의 간단명료함을 추구한다고. 돌아보니 이곳을 찾는 고객과 디자이너, 그 밖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독려하는 공간으로서 사진과 벽화, 조명까지도 세심하게 챙겼음이 갤러리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갤러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느낌과 철학이 어찌나 강한지 그들은 오히려 알려지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다고 했다. 갤러리 홈페이지를 폐쇄한 이유도, 사진 촬영을 딱 두 장으로 제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르 캐드리 갤러리의 스타일을 모방한 갤러리들이 끊임없이 생겨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고. 약속대로 사진은 딱 두 장만 찍었고 멋진 공간을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 밖에 소호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도 돌아봤다.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 타르트를 손에 쥐고 할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 서쪽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도 가 보고, 주얼리를 전시하는 aME 갤러리도 들렀다. 그 길의 끝에는 홍콩의 신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 PMQ도 있었다. 발이 퉁퉁 붓도록 걸었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마주하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말은 옳은가 보다. Pedder Building 12 Pedder St., Central, Hong Kong 입점 갤러리 | 가고시안Gagosian, 펄렘Pearl Lam, 사이먼 리Simon Lee, 하너트Hanart T Z, 리만 머핀Lehmann Maupin, 벤 브라운 파인 아트Ben Brown Fine Arts ●Exhibition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전시회에서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예술작품들을 쇼핑몰 곳곳에 전시한 K11 아트 쇼핑몰에서 그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날은 설치미술, 공예, 제품,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3명의 한국 아티스트들이 쇼핑몰 지하 1층 갤러리에서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선보이는 첫날이었다. 오프닝 행사가 한창이던 복잡한 전시장에서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 의미는 완전히 다르지만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모든 작품이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바느질로 총과 칼, 방패의 형태를 만든 허보리 작가의 작품은 ‘허세무기’. 자세히 보면 그 조각보는 색색의 넥타이들로 이어져 있다. 정장을 입은 남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녀. 마치 정장이라는 전투복을 입고 넥타이라는 무기로 장전한 모습이 수렵시대에 사냥을 나서는 남성들처럼 느껴졌다고. 그녀의 작품에는 명품 넥타이들의 상표가 유난히 눈에 띈다. 사람을 상대하며 비즈니스 경제 활동을 하는 현시대에 상표에 의해 자신감을 얻을 수도,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남성들의 양면을 표현했다. 실용적 이유로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무기가 바로 넥타이라는 것이다. 둥글고 하얀 백자 도자기 위에 그래피티 아트 느낌의 자유분방한 그림과 함께 메시지가 적혀 있다. ‘I pray for you’. 작은 꽃이 꽂혀 있는 단아한 모습의 화병에는 ‘LOVE’라는 단어가 수줍어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작품일까 살짝 궁금증을 가져 봤지만, 아니다. 강준영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과거가 반영되어 있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을 늘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반대로 외국 생활을 그리워했다고. 그리고 그 그리움을 도자기를 캔버스 삼아 그려내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 기도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은 바로 가족 때문이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할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졌던 그는 작품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이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랑의 형태는 굉장히 다양한데 저는 그 사랑의 출발점이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기도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도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한 것이죠. 세상의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저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두 작가는 일상에서 얻은 작은 생각들과 심도 있는 깨달음을 작품으로 표현했고 많은 이들이 그에 공감하길 바랐다. 어쩌면 하나의 예술 작품이 세상을 평화롭게, 풍요롭게 만드는 커다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전시장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예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K11 18 Hanoi Rd., Tsim Sha Tsui 10:00~22:00 852-3118-8070 www.k11concepts.com/en ●Interview 홍콩익스프레스 앤드류 코웬Andrew Cowen 부사장 완벽한 도시에 예술을 입혀 미각을 깨우는 다양한 음식과 지갑을 열게 만드는 수많은 쇼핑몰, 섹시한 클럽과 감동적인 야경. 아기자기한 골목과 유럽풍의 거리가 조화를 이루는 해변가 스탠리Stanley와 아이들의 천국 디즈니랜드. 여행지로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홍콩은 미술애호가들의 눈도 충족시켜 줄 만한 예술적 면모까지 갖췄다. 홍콩의 로컬 항공사 홍콩익스프레스도 이러한 멀티 컬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홍콩익스프레스 앤드류 코웬Andrew Cowen 부사장을 만나 항공사가 예술 산업에 일조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홍콩의 갤러리들을 주말마다 방문하거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홍콩섬 엘리 웨이Alley Way라는 작은 골목길이나 스타의 거리와 같은 곳에서 감상하는 스트리트 아트를 더 선호한다. 스트리트 아트가 그에게 특별한 것은 우연히 만난 화가들,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아가씨, 오래된 도자기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홍콩 현지 느낌이 물씬 묻어 있는 작품들을 얻을 수 있는데 영국에서 온 그로서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작품들이 신선하고 인상적이라고. 그는 예술과 여행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여행을 통해 지금껏 경험하지 않은 색다른 컬러와 디자인,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지원하는 것은 항공사가 단순히 한국과 홍콩을 잇는 물리적인 역할을 넘어 예술가들의 작품에 좀더 도움이 될 만한 기회를 마련해 주는 작은 격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양국의 문화 교류와 관계를 독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로컬 항공사로서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와 이벤트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행지로서 다양한 매력을 가진 홍콩이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죠. 예를 들어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한 도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다양한 문화와 이벤트를 통해 더 많은 여행객을 유치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 또한 항공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더라도 홍콩에서는 예술 산업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한 외국 경매회사들과 갤러리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고 미술품 거래에도 면세 혜택을 주고 있으며 해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예술 축제들을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응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홍콩익스프레스 www.hkexpress.com 홍콩 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파이카) 070-8128-9735 ▶travel info Hong Kong Airline 홍콩익스프레스는 홍콩의 유일한 LCC 항공사로 인천-홍콩 노선을 매일 2회 운항하고 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정기편은 07:25UO618과 12:55UO619가 있으며 귀국편은 04:20UO615, 21:50UO614에 홍콩을 출발하는 스케줄이다.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지난 8월부터는 부산-홍콩 노선이 주 6회(월·화·수·목·토·일요일) 새롭게 추가됐다.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Art Place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뉴욕에 기반을 둔 비영리교육기관으로 홍콩센터에서는 미국과 아시아의 경제·정치·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위한 공연과 전시, 각종 세미나 등이 열리고 있다. 과거 영국군의 탄약고였던 건물의 모습이 구석구석 남아 있어 전시가 열리지 않아도 조용히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9 Justice Dr., Admiralty, Hong Kong 09:00~21:00(연중무휴) 852-2103-9511 www.asiasociety.org aME Gallery 홍콩섬 소호에 위치한 주얼리 갤러리로 세계 각국의 보석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aME’는 라틴어로 사랑과 영혼을 뜻하는데 정교하고 섬세한 보석과 인간의 감정을 조화롭게 만든다는 큐레이터의 이야기가 잘 들어맞는다. 재료는 금속부터 유리, 원석, 금 등 다양하며 때때로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상설 전시 중인 액세서리는 구입도 가능하다. 12/F Tin On Shing Commercial Bd., 41-43 Graham St., Central, Hong Kong 화~토요일 12:00~19:00 852-3564-8066 www.ame-gallery.com PMQ 지난 8월 오픈한 PMQ의 역사는 훨씬 깊다. 1889년 최초의 공립학교 센트럴스쿨이었던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후 경찰들의 숙소로 모습을 바꿨다. 그러나 2000년부터 사용이 중지되었다가 얼마 전 홍콩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으로 또 다른 변화를 이뤘다. 110여 개의 부티크숍, 갤러리, 디자인 스토어와 아틀리에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No. 35 Aberdeen St., Central, Hong Kong 07:00~23:00 852-2870-2335 www.pmq.org.hk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 한국의 공예적 특성이 묻어나면서도 개성 있는 디자이너 13명이 홍콩에 모였다. ‘In Art We Live’를 슬로건으로 쇼핑몰 곳곳을 미술과 디자인으로 장식하고 있는 아트 쇼핑몰 K11의 창립 5주년을 맞아 <Design Feisty: 거침없이 한국 디자인>전을 준비한 것. 설치미술, 공예, 제품,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생각이 자유로운 좋은 물건’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홍콩 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에서 처음으로 홍콩에서의 한국 작품을 전시 기획한 것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K11 아트 쇼핑몰 지하1층 갤러리 홍콩디자인센터 한국사무소 070-8128-9735 전시기간 2014년 10월12일까지, 10:00~22: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시들한 꽃… ‘예술계 이단아’ 안창홍 29번째 개인전

    시들한 꽃… ‘예술계 이단아’ 안창홍 29번째 개인전

    “다소 거칠고 보기 흉하더라도 진정한 가치를 품은 것,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봅니다. 제 삶도 그렇습니다. 그 길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섬뜩하고 도발적인 모습의 인물상을 통해 지친 영혼들의 상처와 시대의 우울,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얘기해 온 작가 안창홍(61)이 이번에 난데없이 뜰의 꽃을 그렸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 아니라 처절하게 시든 맨드라미다. 왜 굳이 맨드라미였을까. 그의 설명은 언제나 그랬듯이 명쾌하다. ‘안창홍의 뜰’이라는 제목으로 성동구 서울숲 옆에 위치한 페이지갤러리에서 29번째 개인전을 갖는 작가는 “꽃인데 꽃 같지 않고, 징그러울 정도로 동물적이고, 시들 때는 참혹하게 시드는 모습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들과 잘 맞물린다”면서 “불안함이 끊이지 않는 우리 시대의 세상사, 그로 인한 개인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을 표현하는 소재로 맨드라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자연과 풍경으로 주제를 바꾼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속에서 완전히 발효된 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며 “산수가 빼어난 밀양에서 태어나 자연은 언제나 친밀했다. 자연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래전부터 자연을 관찰해 왔고 표현 방식을 찾아왔다”고 했다. 25년 전 경기도 양평 끝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제대로 마음을 먹고 3년 전 작업실 앞뜰에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맨드라미 등 여러 가지 꽃을 심었다. “얼어 죽고, 말라 죽고,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철마다 피고 지는 꽃들의 영고성쇠를 지켜봤다”는 그는 “비록 작은 터의 꽃밭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생태는 거칠고 완고하면서도 섬세하고,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공평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작업실 앞마당에 조성한 뜰의 풍경을 담은 20여점의 작품이 걸렸다. 그가 표현한 맨드라미의 풍경은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한 풍경화와는 다르다. 한마디로 처연하다. 두꺼운 마티에르가 느껴지는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그는 자연을 통해 ‘심상풍경’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안창홍의 뜰은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맨드라미에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 내면에 맺혀 있는 세상사, 인생의 여정, 시간 그리고 생성의 소멸 과정이 녹아 들어 있다. 그리고 시간의 영원함 속에서 사라지는 모든 실존적인 것들을 나타낸다. 검은 비가 내리듯 캔버스 위에 찍은 무수한 점들은 시간의 존재를 통해 소멸되어가는 느낌과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세상의 양지에는 반드시 음지가 있어요. 응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은 결코 예쁘지 않아요. 아름다운 자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맨드라미를 통해 냉혹하고 치열한 자연의 느낌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안창홍은 1973년 부산 동아고를 졸업한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거침없는 표현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성이 담긴 그의 그림들은 강렬한 주제의식과 함께 늘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왔다. 작업 도중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가혹한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작업에 몰두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시 작품 중 사계절의 뜰을 그린 가장 큰 작품은 깊은 고통의 표현인 셈이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학살, 여객기 피격, 이라크 내전, 에볼라 확산 등 참혹한 뉴스들을 들으면서 그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을 떠올렸고, 이 작품을 맨드라미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계속 밤샘 작업을 한 탓에 작품들을 갤러리에 보내고 나서 보름 동안 심하게 앓았다는 그는 표현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포기하고 작업실에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던 작품을 이틀 동안 밤새워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02)3447-0049.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은둔의 화가’ 伊 모란디 세기의 명작 40여점 첫 한국 나들이

    ‘은둔의 화가’ 伊 모란디 세기의 명작 40여점 첫 한국 나들이

    단순화된 형태와 세련된 모노톤의 색조로 물주전자와 병들이 그려져 있다. 작은 캔버스 안에는 유럽의 전통과 근대성, 구상과 추상, 시간과 공간, 현실과 상상, 이성과 감성이 복잡한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극도의 단순함과 허무에 가까운 고요함을 지닌 이 정물화는 이탈리아 20세기 미술의 거장 조르조 모란디(1890~1964)의 작품이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던 모란디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국내 처음으로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모란디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작가의 전성기(1940~60년대)에 제작된 유화와 수채화, 판화, 드로잉 등 작품 40여점이 선을 보인다. 모란디는 ‘병(甁)의 화가’로 불릴 정도로 정물 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병을 모티프로 한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비슷한 듯 다른 수많은 정물화에서 병, 물주전자, 조개껍질, 꽃 등 그가 선택한 일상적인 소재들은 형태, 구조, 색에서 미묘하고 아름다운 변주를 보이며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되고 있다. 같은 정물인 듯 보이지만 각자 다른 느낌을 준다. 모란디 말년의 풍경화는 정물화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실험, 빛의 극적인 사용과 아름다운 색의 조화가 돋보인다. 수풀의 리듬, 하늘과 들판 등의 소재를 반복하며 소박하고 정적인 추상에 가까운 회화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 개막을 위해 한국을 찾은 로렌조 사솔리 데 비앙키 볼로냐박물관협회장은 “모란디는 사물의 본질을 시적으로 승화시켜 작품을 구현했다. 물성, 질감 등 사물의 물리적 속성과 사실주의적 테크닉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그는 양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20세기 미술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모란디는 결혼을 하지 않고 세명의 누이와 함께 볼로냐의 비아 폰타자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는 볼로냐 예술아카데미의 에칭전공교수로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침실 겸 작업실이었던 작은 방에서 수도자처럼 작업하다 생을 마감해 은둔의 화가로 불린다. 스위스에 단 한번 다녀왔을 뿐 다른 나라에 한번 가 보지 않고 평생을 이탈리아에 머물렀지만 조토, 마사초 등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들과 세잔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연구하며 작품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모란디는 어떤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았고, 근대 이후 한국 미술계의 관심이 주로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에 편중돼 온 까닭에 한국 대중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베니스비엔날레(1948년)와 상파울루비엔날레(1957년)에서 수상할 만큼 생전에도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사후에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주요 작가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팝아트와 만난 아노미·앤디워홀

    팝아트와 만난 아노미·앤디워홀

    팝아트는 상품 광고와 대중문화 스타, 만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 등 현대 소비사회를 반영하는 대중적 이미지들을 예술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미술 사조다. 우주 소년 아톰의 머리와 미키마우스의 얼굴을 절묘하게 조합한 ‘아토마우스’로 이름을 알린 한국의 대표 팝아트 작가 이동기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26번째 개인전을 열고 지금까지 고민해 온 주제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번 전시 제목은 ‘무중력’이다. 모두가 영향을 받는 ‘중력’, 혹은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뒤섞이고, 사라지고, 튀어나오는 이미지의 아노미 상태를 보여 주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전시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아토마우스’뿐 아니라 ‘절충주의’ ‘드라마’ ‘추상’, 가수 싸이와 모 대기업 회장을 그린 ‘초상’ 연작 등 신작 회화 20여점을 선보인다. ‘파워세일’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선보인 ‘절충주의’는 대중 매체에서 생산돼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조합한 시리즈다. ‘드라마’는 작가가 해외 사이트에 소개된 한국 드라마의 캡처 장면을 수집해 이를 다시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절충주의’와 ‘드라마’가 우리가 생활하는 현실을 그대로 카피한 작품이라면 2008년부터 선보인 ‘추상’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 작업들이다. 이동기는 “현대 미술이 개념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작가가 어떤 하나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현대미술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과 그런 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면서 도리어 “작가가 한 가지 콘셉트로 일관성 있게 작업한다는 게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전시장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텅 빈 캔버스가 액자에 담긴 ‘작품’도 걸려 있다. “현대미술이 과연 개념을 제시하는 걸로 끝나는 미술인지, 작가가 무엇을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포괄적인 질문을 하는 작업”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시는 새달 28일까지. (02)2287-3500.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는 팝아트의 전설로 불리는 앤디 워홀과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국내 신예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워홀과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앤디 워홀의 ‘폭스바겐’(1985), ‘수프 드레스’(1966) 등 작품과 미디어 및 인터랙티브아티스트 하석준, 강석호, 루나 이정은, 임안나, 지호준 등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시도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의 ‘앤디워홀 에디션’ 출시를 기념한 특별기획전이다. 투명한 유리에 투박한 디자인의 앱솔루트 병은 앤디 워홀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는 1985년 ‘앱솔루트 워홀’이라는 콜라보레이션 작품으로 탄생했다. 첫 번째 앱솔루트 아트 광고가 됐고, 앱솔루트가 전 세계 수천 명의 아티스트와 진행한 다양한 예술적 교류의 시작점이 된 앤디 워홀의 페인팅 작품은 앤디 워홀 파운데이션과의 협업을 통해 28년 만에 실제 병에 구현됐다. 전시는 새달 4일까지. (02)738-7570.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동양’(東洋)은 한쪽으로 치우친 단어다. 애초 중국의 무역항인 광저우를 중심으로 동쪽 바다를 일컬었으나 근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와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전역을 뜻하는 용어로 탈바꿈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을 통칭하던 ‘서양’(西洋)과 대비돼 사용된 이 단어에는 ‘동양 유일의 문명국’을 자처하던 일본의 오만과 교만이 잔뜩 배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박물관들(조선총독부박물관·이왕가박물관)에 수장됐다가 넘겨받은 아시아의 유물과 미술품 1600여점 가운데 200여점을 추려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유물 중에는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탐험대를 파견해 중앙아시아의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끌어모은 ‘천불도’, ‘기마여인’ 등 ‘오타니 콜렉션’도 포함됐다. 수집 뒤 박물관에 기증되거나 매매를 통해 수장고에 들어왔으나 일본 수집상이나 탐험가들의 손을 거친 만큼 약탈품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박물관 측은 “해방 뒤 미군정이 ‘적산처분’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재산을 우리 정부에 귀속시킨 만큼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향후 소유권을 놓고 잡음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일본의 ‘동양’에 대한 집착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자리다. 유물들은 중국 한대(漢代) 고분 출토품부터 일본의 근대 미술품까지 다양하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중앙홀 북벽 벽화, 중국의 불비상과 북위(北魏)와 북제(北齊)시대의 반가사유상, 아래가 좁고 뾰족한 한나라의 말 머리 꾸미개와 악명 높은 일본인 고미술상 ‘야마나카 상회’의 주인이 직접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한 청동제 수정 감입 네 잎 금속장식, 아프가니스탄에서 출토된 부처의 머리, 고대 부여의 사람 얼굴 모양 장식 등이 망라됐다. 대다수가 상설전시를 통해 꾸준히 모습을 내비친 작품들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70여년 만에 수장고를 나와 빛을 보는 유물들도 있다. 일본인 조사단이 만주 지역을 돌며 1912년의 광개토대왕비 모습 등을 그린 ‘여진비’ 스케치와 부여의 정치 중심지였던 북만주 마오얼산에서 1923년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 장식, 중국 허난 지역에서 출토된 수정이 감입된 네 잎 금속장식 등이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선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종합박물관을 지향하면서도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 문화재를 대거 수집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라고 밝혔다. 전시에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한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 10여점도 처음 공개된다. 박물관이 소장한 250여점의 근대 일본화 가운데 금기시된 ‘군국주의’란 주제 탓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 중앙홀의 북벽에 걸렸던 길이 14m의 벽화. 1996년 청사 해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이 민족의 교훈으로 삼고자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그림을 그린 일본인 화가 와다 산조는 한국과 일본에 함께 전승돼 온 전설인 ‘날개옷 이야기’(나무꾼과 선녀)를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북벽에선 금강산, 남벽에서는 시즈오카현의 경승지인 미호를 각각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북벽 벽화만 공개된다. 작품은 마(麻) 재질의 캔버스 위에 고대 일본의 전통 종이인 도사지를 사용했는데 와다 산조는 1926년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1000년이 가도 변치 않도록 했고, 이는 양국의 영구적 일치(식민 통치)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왕가박물관에 전시됐던 중국 북제 시대 반가사유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불교 조각 중 백미로 꼽힌다. 일본 수집상인 우라타니 세이지가 당시 1162원의 고가에 매도한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간결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췄다.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인근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부처 머리는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까지 유행했던 후기 헬레니즘 양식을 담았다. 총독부박물관이 1920년대 프랑스 고고학 조사단을 이끌었던 아캥 당시 프랑스 기메박물관장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 이태희 학예연구사는 “당시 총독부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중국 한대의 것들이 많았는데, 이는 낙랑군이 한반도에 문화를 전수했다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반도의 것과 유사한 일본 기타큐슈 지역의 토기들을 전시한 것도 같은 맥락(임나일본부설)”이라고 전했다. 박물관은 다음달 14일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관련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면의 분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면의 분할

    시커멓게 변색된 손가락 마디마디에 두드러진 굳은살. 인도 어느 구도자의 맨발인 듯, 산골 처녀의 민낯인 듯 화폭 속 긴장감 넘치는 선의 흔적과는 또 다르게 마냥 둔탁해 보인다. 손가락 자체가 작품의 진정성을 대변한다. 자연 풍광을 추상적으로 그려 내는 박영남(65) 국민대 회화과 교수는 캔버스와 팔레트를 구분 짓지 않는다. 붓을 쥐지도 않는다. 그림물감을 짜내 섞기 위한 팔레트 없이 곧바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은 뒤 붓 대신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그림을 그려 나간다. 물감은 금세 굳어 버리기 때문에 작업은 빠른 속도로 이어진다. 순간의 직관으로 그리기에 군더더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면의 분할이 화폭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1981년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팔아 떠난 미국 유학길은 늘 가난에 쪼들린 삶이었죠. 집값이 폭등하기 전이라 근근이 학비를 내고 생활을 이어 갈 정도였어요. 물감과 캔버스를 넉넉하게 살 돈이 없어 아끼고 또 아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작업하게 됐죠.”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던 작가는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5000달러를 가지고 미술용품 가게로 달려가 물감을 잔뜩 쓸어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물감을 마음껏 손에 쥐고 문지르던 순간의 쾌감은 이후 30년간 계속된 손가락 작업의 단초가 됐다. 1984년 귀국 이후 심상을 색채의 대비 효과와 빛의 깊이에 담은 서정적 추상회화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해 갔다. 작가는 자연조명 아래에서 작업하기를 고집한다. 중요한 이미지로 차용해 온 흑과 백의 색채는 인공적인 형광등 불빛보다 자연광 아래에서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물감을 여러 겹으로 덧칠한 색색의 단층은 달빛을 머금은 듯 몽환적 정서를 선사한다. 그는 14번째 개인전을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이어간다. 이번 전시에선 1990년 시작된 ‘자기 복제’(Self Replica) 연작인 ‘블랙 앤 화이트’를 비롯해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그린 채색 작업 100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빅 애플’ 등을 선보인다. 작가는 물감이 마르는 속도를 조율하면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간다. “물감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색채를 선으로 나누며 화면을 분할하는 그리드(grid)는 작업의 또 다른 축이죠. 미술계 7년 후배인 오치균 작가 역시 손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추상이 아닌 구상이란 점에서 관람객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한 면이 있죠.” 작가는 자신의 그림들을 놓고 “내 작품을 복제했다”고 설명했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이 진화돼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들은 일렬로 혹은 직사각형 형태로 재배치됐다. 이번 개인전에선 1995년 오스트리아 수도원 공방에서 체류하며 배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활용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끊어진 48번 국도 맴도는 이산자들의 눈물과 희망

    끊어진 48번 국도 맴도는 이산자들의 눈물과 희망

    올해는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린 지 61년째 되는 해다. 15일 밤 7시에 방송되는 아리랑 프라임의 ‘이산자’는 고향을 가슴에 묻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남은 이산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인이자 평론가 김갑수와 음악 감독 이정욱이 통한의 현대사를 기록하는 구술채록자로 길을 나선다. 한국전쟁 당시 북쪽 주민의 피란길이었던 48번 국도를 떠나지 못하는 이산자, 그리고 그 시절 피란민이 지금껏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간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눈물 어린 이산자들의 사연, 그 비극의 역사를 ‘문학’과 ‘음악’으로 기록한다. 48번국도의 중간지점 김포에는 실향민의 한이 높은 봉우리로 솟아있는 애기봉이 있다. 한 해 20만명이 넘는 실향민이 올라와 눈물짓는 이곳에서, 경기 김포시 군하리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실향민 부부 목성균(88)·정정임(86)씨를 만났다. 매년 추석이면 망향제를 지내기 위해 나이든 몸과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북녘 바로 앞에서 끊겨버린 48번 국도의 끝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외치는 늙은 목소리가 들린다. 황해도 벽성 출신 화가 이동표 (83) 화백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초혼제를 치르기 위해 직접 그린 어머니의 영정을 태우고 있었다. 평생 고향을 모티프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 화백. 수백 장의 크고 작은 캔버스 위에는 한국전쟁의 처참함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형상화돼 있다. 이 화백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통일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48번 국도의 끝에서 끝나지 않은 이산자의 희망을 기록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중견 화가 오재심 개인전

    중견 화가 오재심 개인전

    중견 화가 오재심(58)이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나의 기도, 나의 그림’을 이어 간다. 작가는 30여년간 미술교사로 일하며 현대적 아이디어가 접목된 민화풍의 그림을 그려 왔다. 옛 그림 속 이미지와 현대적 풍경을 접목해 한지에 전통 채식 기법을 시도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캔버스에 세밀화 표현법을 접목해 대형 학이 날아가거나 모란꽃과 매화가 활짝 핀 전원 풍경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꿈속에 아른거리는 자연에 대한 기억을 붓으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02)734-1333.
  • 개 피부에 ‘I LOVE YOU’ 실로 새겨.. 여친에게 엽기 선물

    개 피부에 ‘I LOVE YOU’ 실로 새겨.. 여친에게 엽기 선물

    최근 폴란드에서 엽기적이고도 끔찍한 방법으로 사랑을 고백한 대학생이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바르미아대학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는 문제의 대학생은 여자친구에게 줄 깜짝 선물을 고민하다 전공(?)을 살리기로 했다. 남학생은 캔버스로 삼은 건 사고를 당해 꿰매야 하는 개, 펜으로 삼은 건 바늘과 실이었다. 깨끗하게 털을 민 개를 꿰매면서 남학생은 실로 "I love you"라는 글을 써넣었다. 살아 있는 개의 피부에 자수를 놓은 셈이다. 여자친구는 감동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남학생의 친구들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문제의 남학생은 궁지에 몰렸다. "동물이 장난감이냐." "동물을 사랑해 수의학을 공부한다는 학생이 이런 짓을 하다니" 등의 비판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파문이 커지자 대학 측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징계 사유가 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관계자는 "개에게 글귀를 적어넣은 학생,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친구들이 모두 징계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엽기 선물을 받은 여자친구는 "글을 쓴 방법이 문제지만 (수의학을 전공한 남자친구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봐달라"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여성 맨몸 위에 그린 아프리카 초원 ‘황홀’

    여성 맨몸 위에 그린 아프리카 초원 ‘황홀’

    여성의 나체를 캔버스 삼아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표현한 작가의 그림이 화제다. 화제의 그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작가 존 퍼플던(John Poppleton)의 바디 스케이프‘사바나 선셋’(Savannah Sunset). ‘바디스케이프’는 인간의 몸을 이용, 신체에 자연풍경을 그리는 예술 행위. 1분 25초 분량의 영상에는 어두운 조명 아래 나란히 나체의 등을 보이는 두 여성이 있다. 존은 형광색조를 사용해 무엇인가 그려 나간다. 그의 손이 분주해질수록 여성의 등에는 하나둘씩 구름이 생기고 초원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스텝의 도움을 받아 코끼리와 기린의 문양이 새겨지고 그의 손이 더해질수록 여성의 등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모습으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두 여성의 허리 사이 공간으로 동그란 조명을 비추자 일몰 직전의 아프리카 초원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취미로 사진을 찍던 존은 1993년 친구들 결혼식 사진 촬영을 해주면서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20년 동안 사진업계에선 인물 사진 전문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2010년 한 호텔 방 침대에 누워 아픈 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동안 어두운 빛을 이용한 예술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그는 국제 웨딩&초상 사진전에서도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사진관련 서적에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현재 존 퍼플던은 북부 유타 웰스빌의 조용한 마을에서 아내 베키 및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사진·영상=John Poppleton, John Poppleton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노란색 아닌 갈색 병아리가 뭐 어때서…상상력 고갈된 국내 미술교육이 위기”

    “노란색 아닌 갈색 병아리가 뭐 어때서…상상력 고갈된 국내 미술교육이 위기”

    “딸이 초등학생 때 울면서 집에 돌아왔어요. 동급생들이 모두 병아리를 그렸는데 자기 그림만 벽에 걸리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다들 병아리를 노랗게 그렸는데 자기만 갈색으로 그렸다고 했어요.” 신종식(56) 홍익대 미대 교수는 아쉬운 표정으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냈다. “(미술에서) 똑같이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마음을 통째로 열고 상상의 나래를” 신 교수는 평소 학생들에게 “마음을 통째로 열고 주변의 모든 풍경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쳐 왔다. 홍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로 유학을 간 뒤 그곳 지도교수에게 배운 교훈이다. 당시 그는 프랑스인 동기들보다 8세쯤 많았던 외국인 유학생에 불과했지만, 뛰어난 손감각으로 주목받았다. 지도교수의 관심 덕분에 무럭무럭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미술학교장이 파리 시내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조건으로 ‘발 그리기 공모전’을 연 것도 이때였다. 한 달 동안 엽서 크기인 1호짜리 캔버스 10점에 발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제출해야 했다. 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예수와 부처, 공자 등 세계 문명사에 획을 그은 인물 10명을 꼽아 이들의 발을 펜화로 그려 제출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을 실제처럼 표현해 그리는 식이었다. 주변에선 1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130여명의 학생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 나왔다. 1등은 굵은 선으로 다양한 장화를 그려낸 학생이 차지했다. 초등학생의 낙서 같은 작품이었다. “미술가, 교수, 갤러리 관계자 등 심사위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1등 작품을 뽑았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130여명의 학생 중 누구도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대작을 보며 커온 프랑스 학생들은 기술적인 면보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 더 집중했던 거죠.” 신 교수는 “한국 미대 학생들은 요즘 소위 돈 되는 흐름만 따라가려 한다”며 “한때 하이퍼리얼리즘이 유행하자 이를 따라 그리다가 지금은 다시 다른 흐름을 찾아 다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돈 되는 흐름만 따라가려” 비판 어려서부터 건축학도를 꿈꾸던 그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와 파리 제8대학 대학원 유학시절 주변 요새나 성곽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 또 시험기간이면 도서관 대신 파리의 수도원에 들어가 공부하며 수도사들과 경험을 나눴다. 신 교수는 다음달 3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청안갤러리에서 개인전 ‘본 보야지!’(Bon Voyage!)를 이어간다. 단순히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지론만큼 자신이 두 눈으로 본 풍경을 캔버스 위에 꿈결같이 아련히 재현한 작품들이다. 별도의 드로잉도 없고, 미리 계산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순례자처럼 지나가고 여행자처럼 두리번거리며 사는 것, 그거야말로 좋은 삶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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