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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터 언니한테 자해 배워… 결국 그 때문에 강제 퇴소당해”

    “쉼터 언니한테 자해 배워… 결국 그 때문에 강제 퇴소당해”

    “힘들다” 아빠는 락스 들이켜복지사 도전… 홀로서기 시도 난폭 엄마 학대 못 이겨 가출자립 문턱서 미래 설계 막막 성희롱 아빠 싫어 보육원行“피해·가해자 즉각 분리해야”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학대의 경험은 몸에 각인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반복적 폭력은 아이의 마음에 좌절과 우울·슬픔을 남긴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동이 성인이 됐어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서울신문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성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3명을 인터뷰했다.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기억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학대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학대 생존자들이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3회에 걸쳐 피해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6살부터 매질당한 최지은씨최지은(22·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학대받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간다고 했다. 처음 손톱을 물어뜯었던 건 여섯 살 때였다. 새엄마를 처음 만났던 때도, 학대가 시작된 것도 그 나이였다. 최씨가 손톱 주변을 물어뜯자 새엄마는 보기 싫다며 발코니로 쫓아냈고, 최씨의 손에 장갑과 양말을 씌웠다. 여섯 살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매일 매질을 당했다. 씻는 게 싫어 도망갔더니 새엄마는 비닐봉지로 최씨의 손발을 묶어 욕조에 빠뜨렸다. 물을 뺀 욕조에 두세 시간씩 가뒀다. 새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 음식물 쓰레기를 주고 “먹으면 할머니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최씨의 몸은 늘 멍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도저히 참지 못해 최씨를 데려가 6년은 학대를 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최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새엄마는 다시 최씨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새 학교로 전학을 간 최씨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 담배에 손을 댄 것이 기폭제가 됐다. 새엄마는 최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할머니가 최씨를 감싸자 새엄마는 더 화를 냈다. “새엄마가 우는 저에게 과도를 준 적도 있어요.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용서해 주겠다면서요.” 최씨가 거부하자 새엄마는 소독용 락스를 가져와 컵에 따르면서 최씨에게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를 지켜본 아빠는 “나도 너무 힘들다”며 락스를 들이켰다. 그 이후 최씨는 락스만 보면 아빠가 떠오르고, 욕조를 보면 새엄마가 떠오른다. 최씨의 잦은 결석을 이상하게 여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최씨는 모든 일을 털어놨다. 이후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쉼터에 보내졌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어렸고, 새엄마를 신고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최씨는 쉼터에서 자해를 배웠다. 낯선 곳이 무섭고, 언니들이 무서워 침대에서 울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 언니가 자해하고 주변의 관심을 받자 최씨도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는 게 좋았다. 지속된 자해 때문에 최씨는 쉼터에서 강제 퇴소당했다. 아빠의 관심에 목말랐던 최씨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는 시도까지 했다.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최씨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성인이 된 최씨는 지난해 7월 홀로서기에 나섰다. 지금은 한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운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최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울증이 있지만 상담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도 한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최씨는 양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떠올릴 때면 야속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학대당할 땐 아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동학대에는 ‘과잉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가 의심되면 누구든 신고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가 있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반복해 얘기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가해자들이 학대를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결국 재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재판장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빠가 새엄마를 벌주면 다시는 저를 보지 않겠다고 압박했거든요. 적어도 학대 가해자를 처벌할 땐 아동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새엄마한테서 도망친 김승일씨김승일(21·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새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새엄마는 술을 마시면 난폭해졌다. 주로 청소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혼났다. 새엄마와의 말싸움이 극에 달했던 날 새엄마는 손에 잡히는 모든 걸 김씨에게 던졌다. 그리고 칼을 들고 김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경찰이 찾아와 상황은 종료됐지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경찰이 돌아가자 아빠는 신고를 한 김씨를 나무랐다. 그날부터 김씨의 가출이 시작됐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단기쉼터에 들어갔다. 쉼터에 온 뒤 새엄마와 마주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 처벌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교는 다니던 곳을 계속 다녔다. 쉼터에서 학교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전학을 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교우관계가 깊었던 건 아니다.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이도 없었다. 두세 명 정도는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학대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의지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쉼터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쉼터 선생님들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오는 쉼터라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도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300만원을 빌려줬다가 떼인 적도 있었다. 현재 김씨는 혼자 산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조금 회복됐다.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더니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전까지 학대 기억이 떠오르면 두통이 심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아빠랑 대화한 이후로는 많이 나아졌어요.” 홀로서기는 만만치 않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월 30만원씩 나왔던 자립지원금이 최근 끊겼다. 막노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는데, 방 임대료(월 12만원 정도)와 고정비 30만원을 쓰면 생활이 빠듯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호텔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김씨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자신처럼 학대를 당했던 피해 아동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대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아이와 가해자를 즉시 갈라 놓는 건 좋지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해요. 만약 자립을 원한다면 경제적으로 확실한 지원을 해 주면 좋겠어요.” 폭력 아빠 피해 시설로 간 강솔씨강솔(19·가명)씨는 그게 학대신고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이곳저곳 몸을 더듬는 아빠가 싫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어져 온 학대는 강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면서 끝났다. 강씨는 아빠와 분리됐고, 아빠는 수사를 받았다. 강씨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아빠가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아빠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 의무를 명령했다. 강씨는 언니와 함께 아빠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아빠는 딸들에게 엄했다. 충전기를 고장 냈다고 맞은 적도 있고, 하루는 아빠가 힘들었는지 다 같이 죽자고 칼을 꺼내기도 했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이었지만, 특히 술을 마시면 이성의 끈을 놓았다. 욕하고 소리를 질렀고, 뺨도 때 렸다. 강씨가 조금 크고 나서는 강제로 뽀뽀하는 등 성적으로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강씨는 싫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지만, 아빠는 애교나 앙탈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강씨는 아동보육시설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언니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여건이 안 됐다. 아빠의 보복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외출도 못 했다. 처음엔 시설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도 강씨는 친화력을 내세워 두루 잘 지냈다. 때론 괜히 신고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강씨는 댄서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엄했던 아빠와 떨어져 살면서 자유를 찾으니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시설에 꾸준히 요청했고, 운이 좋아 꽤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댄스 학원비가 비싸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도 모았다. 그 덕에 한 대학의 실용무용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강씨는 기대한다. 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하는 즉각분리제에 찬성한다.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사회가 잘만 보살펴 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대 초기엔 상처받은 아동의 정신적 보살핌에 힘쓰고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겐 교육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회생이 안 돼요. 나긋나긋한 교육이 제대로 들리겠어요? 시설에서 봤는데 아빠가 아이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거나, 목 조르는 경우도 봤어요. 확실한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피해아동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니까 신고 못 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욕하고 때리고 강제로 뽀뽀… 칼까지 꺼내 든 아빠는 악마였다”

    “욕하고 때리고 강제로 뽀뽀… 칼까지 꺼내 든 아빠는 악마였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학대의 경험은 몸에 각인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반복적 폭력은 아이의 마음에 좌절과 우울·슬픔을 남긴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동이 성인이 됐어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서울신문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성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3명을 인터뷰했다.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기억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학대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학대 생존자들이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3회에 걸쳐 피해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최지은(22·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학대받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간다고 했다. 처음 손톱을 물어뜯었던 건 여섯 살 때였다. 새엄마를 처음 만났던 때도, 학대가 시작된 것도 그 나이였다. 최씨가 손톱 주변을 물어뜯자 새엄마는 보기 싫다며 발코니로 쫓아냈고, 최씨의 손에 장갑과 양말을 씌웠다.여섯 살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매일 매질을 당했다. 씻는 게 싫어 도망갔더니 새엄마는 비닐봉지로 최씨의 손발을 묶어 욕조에 빠뜨렸다. 물을 뺀 욕조에 두세 시간씩 가뒀다. 새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 음식물 쓰레기를 주고 “먹으면 할머니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최씨의 몸은 늘 멍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도저히 참지 못해 최씨를 데려가 6년은 학대를 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최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새엄마는 다시 최씨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새 학교로 전학을 간 최씨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 담배에 손을 댄 것이 기폭제가 됐다. 새엄마는 최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할머니가 최씨를 감싸자 새엄마는 더 화를 냈다. “새엄마가 우는 저에게 과도를 준 적도 있어요.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용서해 주겠다면서요.” 최씨가 거부하자 새엄마는 소독용 락스를 가져와 컵에 따르면서 최씨에게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를 지켜본 아빠는 “나도 너무 힘들다”며 락스를 들이켰다. 그 이후 최씨는 락스만 보면 아빠가 떠오르고, 욕조를 보면 새엄마가 떠오른다. 최씨의 잦은 결석을 이상하게 여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최씨는 모든 일을 털어놨다. 이후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쉼터에 보내졌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어렸고, 새엄마를 신고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최씨는 쉼터에서 자해를 배웠다. 낯선 곳이 무섭고, 언니들이 무서워 침대에서 울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 언니가 자해하고 주변의 관심을 받자 최씨도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는 게 좋았다. 지속된 자해 때문에 최씨는 쉼터에서 강제 퇴소당했다. 아빠의 관심에 목말랐던 최씨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는 시도까지 했다.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최씨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성인이 된 최씨는 지난해 7월 홀로서기에 나섰다. 지금은 한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운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최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울증이 있지만 상담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도 한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최씨는 양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떠올릴 때면 야속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학대당할 땐 아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동학대에는 ‘과잉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가 의심되면 누구든 신고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가 있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반복해 얘기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가해자들이 학대를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새엄마는 결국 재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재판장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빠가 새엄마를 벌주면 다시는 저를 보지 않겠다고 압박했거든요. 적어도 학대 가해자를 처벌할 땐 아동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승일(21·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새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새엄마는 술을 마시면 난폭해졌다. 주로 청소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혼났다. 새엄마와의 말싸움이 극에 달했던 날 새엄마는 손에 잡히는 모든 걸 김씨에게 던졌다. 그리고 칼을 들고 김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경찰이 찾아와 상황은 종료됐지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경찰이 돌아가자 아빠는 신고를 한 김씨를 나무랐다. 그날부터 김씨의 가출이 시작됐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단기쉼터에 들어갔다. 쉼터에 온 뒤 새엄마와 마주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 처벌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교는 다니던 곳을 계속 다녔다. 쉼터에서 학교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전학을 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교우관계가 깊었던 건 아니다.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이도 없었다. 두세 명 정도는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학대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의지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쉼터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쉼터 선생님들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오는 쉼터라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도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300만원을 빌려줬다가 떼인 적도 있었다.현재 김씨는 혼자 산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조금 회복됐다.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더니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전까지 학대 기억이 떠오르면 두통이 심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아빠랑 대화한 이후로는 많이 나아졌어요.” 홀로서기는 만만치 않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월 30만원씩 나왔던 자립지원금이 최근 끊겼다. 막노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는데, 방 임대료(월 12만원 정도)와 고정비 30만원을 쓰면 생활이 빠듯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호텔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김씨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자신처럼 학대를 당했던 피해 아동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대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아이와 가해자를 즉시 갈라 놓는 건 좋지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해요. 만약 자립을 원한다면 경제적으로 확실한 지원을 해 주면 좋겠어요.” 강솔(19·가명)씨는 그게 학대신고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이곳저곳 몸을 더듬는 아빠가 싫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어져 온 학대는 강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면서 끝났다. 강씨는 아빠와 분리됐고, 아빠는 수사를 받았다. 강씨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아빠가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아빠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 의무를 명령했다. 강씨는 언니와 함께 아빠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아빠는 딸들에게 엄했다. 충전기를 고장 냈다고 맞은 적도 있고, 하루는 아빠가 힘들었는지 다 같이 죽자고 칼을 꺼내기도 했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이었지만, 특히 술을 마시면 이성의 끈을 놓았다. 욕하고 소리를 질렀고, 뺨도 때 렸다. 강씨가 조금 크고 나서는 강제로 뽀뽀하는 등 성적으로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강씨는 싫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지만, 아빠는 애교나 앙탈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그 일이 있고 나서 강씨는 아동보육시설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언니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여건이 안 됐다. 아빠의 보복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외출도 못 했다. 처음엔 시설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도 강씨는 친화력을 내세워 두루 잘 지냈다. 때론 괜히 신고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강씨는 댄서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엄했던 아빠와 떨어져 살면서 자유를 찾으니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시설에 꾸준히 요청했고, 운이 좋아 꽤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댄스 학원비가 비싸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도 모았다. 그 덕에 한 대학의 실용무용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강씨는 기대한다. 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하는 즉각분리제에 찬성한다.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사회가 잘만 보살펴 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대 초기엔 상처받은 아동의 정신적 보살핌에 힘쓰고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겐 교육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회생이 안 돼요. 나긋나긋한 교육이 제대로 들리겠어요? 시설에서 봤는데 아빠가 아이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거나, 목 조르는 경우도 봤어요. 확실한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피해아동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니까 신고 못 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버핏 후계자는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 아벨

    버핏 후계자는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 아벨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왼쪽)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그레그 아벨(오른쪽·59) 부회장을 낙점했다. 버핏 회장이 구순인 터라 이 회사의 후계구도는 오랫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어 왔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버핏 회장은 3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만약 오늘 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일 아침 아벨이 내 업무를 인수할 것이라는 데 이사들이 동의했다”며 아벨 부회장의 승계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찰리 멍거 부회장은 앞서 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회사가 너무 복잡해서 경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질문에 “아벨이 버크셔해서웨이의 문화를 지킬 것”이라며 아벨이 최고경영자직을 승계할 것임을 시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핏 회장의 후계자로 아벨이 지명된 데 대해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라고 평가했다. 2018년 부회장직에 오른 아벨은 현재 25만명을 고용하고 1500억 달러(약 168조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책임지는 버크셔해서웨이의 비보험 부문 자산운용을 총괄하고 있다. 아벨 부회장은 그룹의 철도와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제조업, 소매업, 자동차 판매업 등을 이끌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아벨은 2020년 기본급(1600만 달러)과 보너스를 합쳐 190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았다. 1962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태어난 아벨은 하키를 즐기며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칼 에너지로 직장을 옮겼다. 이후 미드아메리칸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가 1999년 버크셔해서웨이에 인수되면서 버핏과 인연을 맺었다. 아벨 부회장은 보험 부문 자산운용 총괄인 아지트 자인(69) 부회장과 줄곧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다. 버핏 회장은 “만약 아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다음은 자인이 오를 것”이라며 다음 순위로 자인 부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버핏 회장의 아들인 하워드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직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욕조 가두고 매질한 엄마… ‘기억 감옥’에 갇혀 산 16년

    욕조 가두고 매질한 엄마… ‘기억 감옥’에 갇혀 산 16년

    “힘들다” 아빠는 락스 들이켜복지사 도전… 홀로서기 시도 난폭 엄마 학대 못 이겨 가출자립 문턱서 미래 설계 막막 성희롱 아빠 싫어 보육원行“피해·가해자 즉각 분리해야”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학대의 경험은 몸에 각인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반복적 폭력은 아이의 마음에 좌절과 우울·슬픔을 남긴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동이 성인이 됐어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서울신문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성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3명을 인터뷰했다.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기억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학대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학대 생존자들이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3회에 걸쳐 피해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6살부터 매질당한 최지은씨최지은(22·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학대받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간다고 했다. 처음 손톱을 물어뜯었던 건 여섯 살 때였다. 새엄마를 처음 만났던 때도, 학대가 시작된 것도 그 나이였다. 최씨가 손톱 주변을 물어뜯자 새엄마는 보기 싫다며 발코니로 쫓아냈고, 최씨의 손에 장갑과 양말을 씌웠다. 여섯 살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매일 매질을 당했다. 씻는 게 싫어 도망갔더니 새엄마는 비닐봉지로 최씨의 손발을 묶어 욕조에 빠뜨렸다. 물을 뺀 욕조에 두세 시간씩 가뒀다. 새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 음식물 쓰레기를 주고 “먹으면 할머니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최씨의 몸은 늘 멍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도저히 참지 못해 최씨를 데려가 6년은 학대를 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최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새엄마는 다시 최씨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새 학교로 전학을 간 최씨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 담배에 손을 댄 것이 기폭제가 됐다. 새엄마는 최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할머니가 최씨를 감싸자 새엄마는 더 화를 냈다. “새엄마가 우는 저에게 과도를 준 적도 있어요.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용서해 주겠다면서요.” 최씨가 거부하자 새엄마는 소독용 락스를 가져와 컵에 따르면서 최씨에게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를 지켜본 아빠는 “나도 너무 힘들다”며 락스를 들이켰다. 그 이후 최씨는 락스만 보면 아빠가 떠오르고, 욕조를 보면 새엄마가 떠오른다. 최씨의 잦은 결석을 이상하게 여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최씨는 모든 일을 털어놨다. 이후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쉼터에 보내졌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어렸고, 새엄마를 신고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최씨는 쉼터에서 자해를 배웠다. 낯선 곳이 무섭고, 언니들이 무서워 침대에서 울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 언니가 자해하고 주변의 관심을 받자 최씨도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는 게 좋았다. 지속된 자해 때문에 최씨는 쉼터에서 강제 퇴소당했다. 아빠의 관심에 목말랐던 최씨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는 시도까지 했다.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최씨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성인이 된 최씨는 지난해 7월 홀로서기에 나섰다. 지금은 한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운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최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울증이 있지만 상담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도 한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최씨는 양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떠올릴 때면 야속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학대당할 땐 아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동학대에는 ‘과잉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가 의심되면 누구든 신고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가 있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반복해 얘기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가해자들이 학대를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결국 재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재판장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빠가 새엄마를 벌주면 다시는 저를 보지 않겠다고 압박했거든요. 적어도 학대 가해자를 처벌할 땐 아동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새엄마한테서 도망친 김승일씨김승일(21·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새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새엄마는 술을 마시면 난폭해졌다. 주로 청소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혼났다. 새엄마와의 말싸움이 극에 달했던 날 새엄마는 손에 잡히는 모든 걸 김씨에게 던졌다. 그리고 칼을 들고 김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경찰이 찾아와 상황은 종료됐지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경찰이 돌아가자 아빠는 신고를 한 김씨를 나무랐다. 그날부터 김씨의 가출이 시작됐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단기쉼터에 들어갔다. 쉼터에 온 뒤 새엄마와 마주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 처벌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교는 다니던 곳을 계속 다녔다. 쉼터에서 학교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전학을 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교우관계가 깊었던 건 아니다.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이도 없었다. 두세 명 정도는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학대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의지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쉼터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쉼터 선생님들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오는 쉼터라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도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300만원을 빌려줬다가 떼인 적도 있었다. 현재 김씨는 혼자 산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조금 회복됐다.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더니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전까지 학대 기억이 떠오르면 두통이 심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아빠랑 대화한 이후로는 많이 나아졌어요.” 홀로서기는 만만치 않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월 30만원씩 나왔던 자립지원금이 최근 끊겼다. 막노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는데, 방 임대료(월 12만원 정도)와 고정비 30만원을 쓰면 생활이 빠듯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호텔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김씨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자신처럼 학대를 당했던 피해 아동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대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아이와 가해자를 즉시 갈라 놓는 건 좋지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해요. 만약 자립을 원한다면 경제적으로 확실한 지원을 해 주면 좋겠어요.” 폭력 아빠 피해 시설로 간 강솔씨강솔(19·가명)씨는 그게 학대신고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이곳저곳 몸을 더듬는 아빠가 싫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어져 온 학대는 강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면서 끝났다. 강씨는 아빠와 분리됐고, 아빠는 수사를 받았다. 강씨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아빠가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아빠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 의무를 명령했다. 강씨는 언니와 함께 아빠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아빠는 딸들에게 엄했다. 충전기를 고장 냈다고 맞은 적도 있고, 하루는 아빠가 힘들었는지 다 같이 죽자고 칼을 꺼내기도 했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이었지만, 특히 술을 마시면 이성의 끈을 놓았다. 욕하고 소리를 질렀고, 뺨도 때 렸다. 강씨가 조금 크고 나서는 강제로 뽀뽀하는 등 성적으로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강씨는 싫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지만, 아빠는 애교나 앙탈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강씨는 아동보육시설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언니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여건이 안 됐다. 아빠의 보복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외출도 못 했다. 처음엔 시설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도 강씨는 친화력을 내세워 두루 잘 지냈다. 때론 괜히 신고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강씨는 댄서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엄했던 아빠와 떨어져 살면서 자유를 찾으니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시설에 꾸준히 요청했고, 운이 좋아 꽤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댄스 학원비가 비싸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도 모았다. 그 덕에 한 대학의 실용무용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강씨는 기대한다. 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하는 즉각분리제에 찬성한다.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사회가 잘만 보살펴 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대 초기엔 상처받은 아동의 정신적 보살핌에 힘쓰고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겐 교육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회생이 안 돼요. 나긋나긋한 교육이 제대로 들리겠어요? 시설에서 봤는데 아빠가 아이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거나, 목 조르는 경우도 봤어요. 확실한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피해아동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니까 신고 못 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락스→아빠, 욕조→엄마, 성인이 돼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

    6살부터 매질당한 최지은씨새엄마한테서 도망친 김승일씨폭력아빠 피해 시설로 간 강솔씨성인된 아동학대 피해자 3인 인터뷰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학대의 경험은 몸에 각인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반복적 폭력은 아이의 마음에 좌절과 우울·슬픔을 남긴다.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가해자로부터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학대에서 살아남은 아동이 성인이 됐어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성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3명을 인터뷰했다. 어른이 됐지만, 학대의 기억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학대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기에 그들을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학대 생존자들이 아픔을 딛고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3회에 걸쳐 피해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새엄마로부터 6살 때부터 학대...우는 최양에게 과도를 주기도 최지은(22·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학대받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간다고 했다. 처음 손톱을 물어뜯었던 건 여섯 살 때였다. 새엄마를 처음 만났던 때도, 학대가 시작된 것도 그 나이였다. 최씨가 손톱 주변을 물어뜯자 새엄마는 보기 싫다며 발코니로 쫓아냈고, 최씨의 손에 장갑과 양말을 씌웠다. 여섯 살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매일 매질을 당했다. 씻는 게 싫어 도망갔더니 새엄마는 비닐봉지로 최씨의 손발을 묶어 욕조에 빠뜨렸다. 물을 뺀 욕조에 두세 시간씩 가뒀다. 새엄마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 음식물 쓰레기를 주고 “먹으면 할머니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최씨의 몸은 늘 멍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도저히 참지 못해 최씨를 데려가 6년은 학대를 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최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아빠 집으로 돌아왔다. 새엄마는 다시 최씨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새 학교로 전학을 간 최씨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 담배에 손을 댄 것이 기폭제가 됐다. 새엄마는 최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할머니가 최씨를 감싸자 새엄마는 더 화를 냈다. “새엄마가 우는 저에게 과도를 준 적도 있어요. 손가락 하나를 자르면 용서해 주겠다면서요.” 최씨가 거부하자 새엄마는 소독용 락스를 가져와 컵에 따르면서 최씨에게 마시라고 강요했다. 이를 지켜본 아빠는 “나도 너무 힘들다”며 락스를 들이켰다. 그 이후 최씨는 락스만 보면 아빠가 떠오르고, 욕조를 보면 새엄마가 떠오른다. 최씨의 잦은 결석을 이상하게 여긴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최씨는 모든 일을 털어놨다. 이후 최대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쉼터에 보내졌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어렸고, 새엄마를 신고한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거든요.”최씨는 쉼터에서 자해를 배웠다. 낯선 곳이 무섭고, 언니들이 무서워 침대에서 울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 언니가 자해하고 주변의 관심을 받자 최씨도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는 게 좋았다. 지속된 자해 때문에 최씨는 쉼터에서 강제 퇴소당했다. 아빠의 관심에 목말랐던 최씨는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는 시도까지 했다.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최씨는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성인이 된 최씨는 지난해 7월 홀로서기에 나섰다. 지금은 한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운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최씨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울증이 있지만 상담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는다. 스스로 칭찬해 주는 연습도 한다. 반려견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최씨는 양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떠올릴 때면 야속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이 학대당할 땐 아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동학대에는 ‘과잉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대가 의심되면 누구든 신고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아이가 있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반복해 얘기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가해자들이 학대를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엄마는 결국 재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재판장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빠가 새엄마를 벌주면 다시는 저를 보지 않겠다고 압박했거든요. 적어도 학대 가해자를 처벌할 땐 아동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술 마시면 난폭했던 엄마...중3대 학대 이후 삶의 방향 잃어버려 김승일(21·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새엄마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새엄마는 술을 마시면 난폭해졌다. 주로 청소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혼났다. 새엄마와의 말싸움이 극에 달했던 날 새엄마는 손에 잡히는 모든 걸 김씨에게 던졌다. 그리고 칼을 들고 김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경찰이 찾아와 상황은 종료됐지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경찰이 돌아가자 아빠는 신고를 한 김씨를 나무랐다. 그날부터 김씨의 가출이 시작됐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단기쉼터에 들어갔다. 쉼터에 온 뒤 새엄마와 마주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다. 처벌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학교는 다니던 곳을 계속 다녔다. 쉼터에서 학교는 한 시간 거리였지만 전학을 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교우관계가 깊었던 건 아니다.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이도 없었다. 두세 명 정도는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학대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의지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쉼터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쉼터 선생님들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오는 쉼터라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도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300만원을 빌려줬다가 떼인 적도 있었다. 현재 김씨는 혼자 산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조금 회복됐다.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더니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전까지 학대 기억이 떠오르면 두통이 심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아빠랑 대화한 이후로는 많이 나아졌어요.” 홀로서기는 만만치 않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월 30만원씩 나왔던 자립지원금이 최근 끊겼다. 막노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는데, 방 임대료(월 12만원 정도)와 고정비 30만원을 쓰면 생활이 빠듯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호텔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김씨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자신처럼 학대를 당했던 피해 아동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대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아이와 가해자를 즉시 갈라 놓는 건 좋지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해요. 만약 자립을 원한다면 경제적으로 확실한 지원을 해 주면 좋겠어요.”술 마시면 난폭해졌던 아빠 피해 댄서 꿈꾸는 19살 청춘 강솔(19·가명)씨는 그게 학대신고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이곳저곳 몸을 더듬는 아빠가 싫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어져 온 학대는 강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면서 끝났다. 강씨는 아빠와 분리됐고, 아빠는 수사를 받았다. 강씨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아빠가 처벌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아빠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 의무를 명령했다. 강씨는 언니와 함께 아빠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의 빈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아빠는 딸들에게 엄했다. 충전기를 고장 냈다고 맞은 적도 있고, 하루는 아빠가 힘들었는지 다 같이 죽자고 칼을 꺼내기도 했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이었지만, 특히 술을 마시면 이성의 끈을 놓았다. 욕하고 소리를 질렀고, 뺨도 때렸다. 강씨가 조금 크고 나서는 강제로 뽀뽀하는 등 성적으로 불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강씨는 싫다고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지만, 아빠는 애교나 앙탈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강씨는 아동보육시설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언니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여건이 안 됐다. 아빠의 보복이 두려워 한 달 가까이 외출도 못 했다. 처음엔 시설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도 강씨는 친화력을 내세워 두루 잘 지냈다. 때론 괜히 신고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시설 안에서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강씨는 댄서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엄했던 아빠와 떨어져 살면서 자유를 찾으니 춤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시설에 꾸준히 요청했고, 운이 좋아 꽤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댄스 학원비가 비싸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도 모았다. 그 덕에 한 대학의 실용무용과에 입학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강씨는 기대한다. 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하는 즉각분리제에 찬성한다. 아동이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사회가 잘만 보살펴 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대 초기엔 상처받은 아동의 정신적 보살핌에 힘쓰고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겐 교육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악마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회생이 안 돼요. 나긋나긋한 교육이 제대로 들리겠어요? 시설에서 봤는데 아빠가 아이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거나, 목 조르는 경우도 봤어요. 확실한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피해아동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니까 신고 못 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대규모 정전 부르는 ‘코인 채굴’ 금지령

    대규모 정전 부르는 ‘코인 채굴’ 금지령

    각국 정부가 비트코인 투기 열풍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가상화폐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는데도 채굴을 단속하거나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채굴업체 한 곳당 많게는 수만 대의 컴퓨터를 24시간 가동하고 그 열기를 식히고자 냉방시설까지 돌리다 보니 대규모 정전 사태가 생겨 나는 등 전력난이 심해져서다. 미국 경제지 포천은 2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의 성지’로 불리는 중국 내몽골자치구에서 지역 정부가 채굴업체들에 ‘2개월 안에 공장을 폐쇄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별다른 기반 산업이 없는 내몽골에서는 전기료와 인건비가 저렴하다. 이를 노리고 비트코인 업체들이 대거 몰려와 가상화폐를 캔다. 전 세계 비트코인의 약 8%가 여기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몽골 자치정부가 채굴장 폐쇄 방침을 굳힌 것은 최근 중앙정부로부터 “에너지 소비를 통제하지 못한 유일한 지방정부”라고 질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내몽골 정부는 “올해 화력 발전용 석탄 사용 증가량을 3000만t 이내로 묶으려고 했지만, 가상화폐 채굴장 때문에 실제로는 1억 8000만t이 넘을 것 같다”고 발표했다. ‘2060년 온실가스 제로(0)’를 선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선언을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기에 최고지도부가 칼을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지난달 흑해 연안의 압하지야 자치공화국도 비트코인 채굴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2022년 5월까지 모든 종류의 가상화폐 채굴을 막고 이를 어기면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 골자다. 인구 24만명인 압하지야(현재 미승인국)는 전력 요금이 한국의 10%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비트코인 채굴업체만 600여곳에 달한다. 이들이 써대는 전기 때문에 매일 밤 1~2시간씩 전국의 전력 공급을 차단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순위 6위인 이란도 지난해 말부터 채굴 공장 때문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생겨 나자 올해부터 가상화폐 채굴장 1000여곳을 강제 폐업시켰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부터 가상화폐 사용을 전면 금지한 터키는 자국 가상화폐 거래소 ‘토덱스’ 설립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터키에서는 경제 불안 등으로 자국 통화인 리라의 가치가 급락하자 주민들이 가상화폐로 물건을 사고파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터키 정부는 자국 화폐를 보호하고자 가상화폐 규제에 착수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가상화폐로 몸살 앓는 세계…연일 상승에도 채굴 금지국 늘어

    가상화폐로 몸살 앓는 세계…연일 상승에도 채굴 금지국 늘어

    각국 정부가 비트코인 투기 열풍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가상화폐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는데도 채굴을 단속하거나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채굴업체 한 곳당 많게는 수만 대의 컴퓨터를 24시간 가동하고 그 열기를 식히고자 냉방시설까지 돌리다보니 대규모 정전 사태가 생겨나는 등 전력난이 심해져서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2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의 성지’로 불리는 중국 내몽골자치구에서 지역 정부가 채굴업체들에게 ‘2개월 안에 공장을 폐쇄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별다른 기반 산업이 없는 내몽골에서는 전기료와 인건비가 저렴하다. 이를 노리고 비트코인 업체들이 대거 몰려와 가상화폐를 캔다. 전세계 비트코인의 약 8%가 여기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몽골 자치정부가 채굴장 폐쇄 방침을 굳힌 것은 최근 중앙정부로부터 “에너지 소비를 통제하지 못한 유일한 지방정부”라고 질책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내몽골 정부는 “올해 화력 발전용 석탄 사용 증가량을 3000만t 이내로 묶으려고 했지만, 가상화폐 채굴장 때문에 실제로는 1억 8000만t이 넘을 것 같다”고 발표했다. ‘2060년 온실가스 제로(0)’를 선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선언을 무색케 하는 상황이기에 최고지도부가 칼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는 “지난달 흑해 연안의 압하지야 자치공화국도 비트코인 채굴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2022년 5월까지 모든 종류의 가상화폐 채굴을 막고 이를 어기면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 골자다. 인구 24만명인 압하지야(현재 미승인국)는 전력 요금이 한국의 10%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비트코인 채굴업체만 600여곳에 달한다. 이들이 써대는 전기 때문에 매일 밤 1~2시간씩 전국의 전력 공급을 차단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순위 6위인 이란도 지난해 말부터 채굴 공장 때문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생겨나자 올해부터 가상화폐 채굴장 1000여곳을 강제 폐업시켰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부터 가상화폐 사용을 전면 금지한 터키는 자국 가상화폐 거래소 ‘토덱스’ 설립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터키에서는 경제 불안 등으로 자국 통화인 리라의 가치가 급락하자 주민들이 가상화폐로 물건을 사고 파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터키 정부는 자국 화폐를 보호하고자 가상화폐 규제에 착수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부모 부주의에…인덕션에 화상 입고 아령에 발 찌이는 아이들

    부모 부주의에…인덕션에 화상 입고 아령에 발 찌이는 아이들

    공정위·소비자원, 어린이 사고 안전주의보 발령 최근 ‘홈코노미’(홈+이코노미) 문화가 크게 확산되면서 에어프라이어기, 운동기구 등에 의해 집 안에서 어린이들이 부상을 입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부모의 부주의에서 비롯된 사고다.3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홈코노미 관련 어린이 안전사고는 총 1278건으로, 이 가운데 87.8%(1122건)는 만 7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안전사고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위해정보의 89.6%(1146건)은 화상과 피부손상 관련 사고였고, 이외에도 뇌진탕·타박상(5.3%), 근육·뼈·인대손상(2.4%) 등의 사고도 있었다. 사고 원인으론 전기밥솥, 인덕션, 에어프라이어기 등 홈쿠킹 관련 제품이 70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중에서도 92.0%에 해당하는 646건은 ‘화상’ 관련 사고였다. 지난해 한 만1세 남자아이는 자택에서 전기밥솥의 김이 나오는 입구를 오른손으로 잡아 화상을 입었다. 또 다른 만1세 남자아이도 작동 중인 에어프라이어를 직접 열고 그 안에 손을 넣어 1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인덕션이 달궈진 지 모르고 손을 댔다가 데었다. 고데기·헤어드라이어 등 뷰티케어제품 역시 가열된 제품을 만져 화상을 입는 사고가 빈번했다. 만3세 남자아이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눈썹칼을 만지다 손을 베이거나, 만1세 여자아이가 면봉으로 귀속을 찔러 피가 나는 등의 사고도 발생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크기가 작은 물건은 영유아 주변에 두지 않고, 보호자의 행동을 모방할 우려가 있으니 어린이가 보는 앞에서 크기가 작은 물건의 사용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만3세 남자아이가 실내 사이클을 돌리다 얼굴에 부딪히거나 만2세 여자아이가 쓰러진 아령에 발가락을 찌이기도 했다. 집 안 운동기구를 사용하고 제대로 뒷정리를 안 해 발생하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공정위와 소비자원은 어린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열이 발생하거나 날카로운 제품은 어린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면봉·네일 장식 등 삼킴·삽입사고 위험이 있는 물건은 어린이가 보는 앞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운동기구는 평평한 바닥에 설치하고, 아령 등 작은 운동기구는 사용하고서 어린이가 접근하지 않는 별도의 장소에 보관할 것도 권고했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강점기 포드자동차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강점기 포드자동차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이제 곧 사라질 운명에 놓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첫 제품은 1886년에 독일 칼 벤츠와 고트리프 다임러가 거의 동시에 내놓았다.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초창기 자동차는 부자들만 탈 수 있는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자동차 대량생산의 길을 튼 사람은 미국 헨리 포드로 1913년 무렵부터 ‘T형’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1920년 즈음에 국내에 굴러다니던 자동차는 680대 정도였다. 아시아에서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자 포드는 1927년 일본 요코하마에 일본 포드자동차 조립 공장을 설립했다. 같은 해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오사카에 공장을 세웠고 크라이슬러도 진출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 조립한 포드와 GM 등의 자동차가 국내로 많이 들어왔고 광고도 게재됐다. 국내 자동차 판매회사의 효시는 1913년에 설립된 ‘오리이 자동차상회’라고 한다. 또 광산 개발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던 테일러 가문의 윌리엄 테일러도 포드와 시보레 자동차를 취급했다. 테일러의 사무실은 태평로에 있었다. 1933년 우리나라 사람이 차린 자동차 판매회사 1호는 소공동 소재 ‘경성자동차상회’다. 경성자동차상회의 설립자는 박용운으로 당시 자본금이 100만원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국내에서는 10여개의 자동차 상회들이 난립해 자동차 판매 경쟁을 벌였다. 수요가 늘어나고 딜러들의 경쟁적 판매로 자동차 수도 점점 늘어나 광복 당시에는 7300여대에 이르렀다. ‘녹 안 나는 동(銅)’이라는 제목 아래 새로운 포드 세단을 선전하는 위 광고는 일본 포드자동차 회사에서 제품 광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까지 일본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다. 도쿄대 기계과 출신 도요다 기이치로는 미국으로 가서 자동차 제작 기술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고는 일본으로 돌아가 1933년 나고야에 공장을 만들어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세운 모태 기업은 원래 자동방직기 제작소였다고 한다. 1935년 5월 첫 시제 승용차와 시제 트럭이 완성됐다. 이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자동차 제조회사인 도요타가 독립해 설립된 때는 1937년 8월이었다(창업주 이름은 ‘도요다’로, 회사 이름은 ‘도요타’로 쓴다). 그런데 이 무렵 국내에도 ‘조선국산자동차회사’라는 자동차 제조 회사가 일본의 자동차 회사인 동경와사전공계(東京瓦斯電工系)에 의해 설립됐다. 현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처음에는 20만평(약 66만㎡) 규모의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재정상의 문제로 도쿄자동차회사에 1939년에 합병됐고 규모도 4만평(약 13만㎡)으로 축소됐다고 한다. 자동차 완제품을 생산하지는 않고 스프링 등 부품을 제조했다.
  • 칼·총탄 담긴 협박편지… 스페인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 ‘진흙탕 싸움’

    피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가 점점이 묻은 칼을 담은 소포, 총탄 두 발이 동봉된 협박편지, 비난전으로 점철된 후보 토론회….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가 극우 파시스트 의석의 도움을 받아 지방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스페인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 과정에서 펼쳐진 일들이다. 4일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최근 여론조사에서, 전 주지사이자 지난 3월 10일에 기존의 집권 연정을 깨 이번 선거를 촉발한 장본인인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후보의 인민당이 약 56~57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전체 136석의 과반인 69석엔 못 미치기 때문에 아유소 후보는 연정 구성에 극우 정당인 복스를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복스는 13석 안팎을 확보할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인의 수도권인 마드리드 지역 주지사 선거에서 우파 연합 지지가 높아지는 동안 좌파 진영 후보들은 각종 테러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사회당 소속인 레예스 마로토 산업통상관광부 장관 앞으로 붉은 액체가 묻은 칼이 도착했는데, 마로토 장관은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승리할 경우 부지사로 유력한 인물이라고 스페인 현지 매체 엘파이스가 전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달 19일엔 포데모스의 리더로 이번 주지사 선거에 후보로 나선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후보에게 총탄 두 발이 동봉된 협박편지가 배달됐다. 포데모스는 2010년 남유럽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한 좌파 정당이다. 최근 토론회에서 진보 후보들은 살해 협박편지 같은 치졸한 협박으로 점철된 선거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아유소 후보는 “칼을 담은 소포가 장관이 근무하는 정부 청사의 보안을 뚫었다면, 공항 검색대라고 뚫지 못하겠느냐. 집권 사회당의 무능이 드러난 사례”라며 성동격서 식으로 응수했다. 진지한 토론이 불가능한 토론회였던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번 마드리드 주지사 선거의 혼탁함이 향후 스페인 총선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코로나19 봉쇄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선명하며 선동적인 주장을 선호하는 유권자가 느는 추세라고 엘파이스는 전했다. 당장 아유소는 코로나19 방역을 중시하던 스페인 정부의 방침에 사사건건 각을 세우는 인기영합주의로 지지율을 올린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 ‘공산주의인가, 자유인가’라는 이분법적 선거 구호를 채택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모든 여성에겐 이야기가 있다”…당신이 몰랐던 ‘오스카 3관왕’ 프랜시스 맥도먼드 [김정화의 WWW]

    “모든 여성에겐 이야기가 있다”…당신이 몰랐던 ‘오스카 3관왕’ 프랜시스 맥도먼드 [김정화의 WWW]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감독상에 작품상, 여우주연상까지 휩쓴 영화 ‘노매드랜드’였다.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와 함께 이를 만든 주역은 바로 프랜시스 맥도먼드. 맥도먼드는 도시의 쇠락으로 직장과 집, 남편까지 잃은 뒤 밴에 전재산을 싣고 떠돌이 생활하는 주인공 ‘펀’을 연기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97년 제69회 시상식에서 영화 ‘파고’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맥도먼드는 2018년 제90회 시상식에서 영화 ‘쓰리 빌보드’로 두 번째 상을 받았고, 이번에 3번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대 아카데미에서 주연상을 3회 이상 받은 배우는 그와 캐서린 헵번(4회), 메릴 스트립(이하 3회), 잉그리드 버그만뿐이다. 40년 연기 인생…“사람과의 교류를 원하는 배우”1957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맥도먼드의 출생 당시 이름은 신시아 앤 스미스였다. 그는 생후 18개월 무렵 목사 가정에 입양돼 프랜시스 맥도먼드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목사라는 특성상 자주 이사를 다녔고, 베서니 칼리지와 예일대 드라마스쿨을 거쳐 영화와 연극계로 발을 디뎠다. 코엔 형제의 작품 ‘분노의 저격자(블러드 심플)’로 처음 영화에 데뷔했고, 현 남편인 조엘 코엔의 ‘아리조나 유괴 사건’ 등에서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헐리우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1996년작 파고다. 임신 중인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 역을 맡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설원의 범죄 현장에서 냉정하지만 따스한 경찰을 연기한 그는 단번에 오스카를 매료시켰다. 이후에도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고, 2018년 ‘쓰리 빌보드’에서 강간, 살해로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 헤이스로서 처절한 아픔을 연기하며 또 다시 세계를 매료시켰다.맥도먼드의 매력은 평범함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는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맞지 않고, 볼이나 이마를 빵빵하게 만들어주는 필러도 쓰지 않는다. 레드카펫에서도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당당히 드러낸다. 배우지만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더 예쁘고, 더 어리고, 더 화려한 사람만이 주목받기 쉬운 헐리우드에서 이같은 행보는 기행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보다 강하다. 그는 2017년 뉴욕타임스(NYT)와의 특집 인터뷰에서 “스스로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며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거부한다고 밝혔다.맥도먼드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그들을 만지고, 본다. 여기에 진짜 ‘교류’가 있다”며 “나는 사진을 찍히고 싶어 배우가 된 게 아니다. 사람과의 소통을 원해 배우가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영화 ‘숨겨진 계략’을 제작한 영국 감독 레베카 오브라이언은 맥도먼드에 대해 “가장 덜 버릇없는(least spoiled) 미국 배우 중 한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맥도먼드가 얼마나 평범해질 수 있는가를 사랑한다”며 “그는 화장을 하지 않고, 그저 온전한 자신으로 연기한다”고 평했다. 오스카 주연상 3회…연극 토니·드라마 에미상까지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연기는 풍부하고 진정성 있는 극 중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모두 언뜻 평범하지만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다. 매번 틀에 박힌 여성상을 뛰어넘는다. 파고의 마지가 그랬고,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가 그랬다. 가디언은 “출산을 앞둔 경찰관 마지,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경찰에 저항하는 엄마 밀드레드의 모습은 20년의 세월을 넘어 맥도먼드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두 역할”이라며 “둘 다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자신감 있는 괴짜”라고 했다. 두 여성 모두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남성들에 비해 더 똑똑하고, 더 강하다. 이런 맥도먼드가 이번에 노매드랜드에서 완벽한 유목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NYT가 “노매드랜드는 대중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맥도먼드의 노력의 절정이었다”고 한 것처럼 그는 단순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 않았다. 영화를 촬영하며 몇 개월간 실제 유랑자처럼 생활했고, 같이 지낸 유목민 대부분은 그가 배우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극 중 주인공 이름 ‘펀’(Fern)조차 그의 이름 ‘프랜’(Fran)과 비슷하다.크고 작은 디테일 역시 맥도먼드의 실제 삶에서 가져왔다. 영화에서 펀은 접시 세트를 자랑하는데, 이는 맥도먼드의 아버지가 대학 졸업 선물로 사준 것이다. 펀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사람은 맥도먼드의 가장 오랜 친구 중 한명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비평가 저스틴 창은 영화 리뷰에서 “맥도먼드는 영화에서 펀의 뒤로 사라지지 않는다. 펀에 의해 재발견되고, 펀 역시 맥도먼드에 의해 재발견된다”고 썼다. “여성들이여, 연대를” 헐리우드 성차별 소신 발언도헐리우드에 만연한 성차별을 깨뜨리기 위해 여성 배우로서의 목소리 역시 끊임없이 내고 있다. 그는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들에게 모두 연대해달라고 연설하며 업계 관계자들이 더 많은 여성 인재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상식장의 모든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서로 둘러보라. 우리에겐 모두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 후 두 단어를 남겼다.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 ‘포용 특약’이라고도 하는 이 개념은 남성 일색의 헐리우드 캐릭터가 실제 사회의 성별, 성 정체성, 인종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출연 계약 때 이 인클루전 라이더를 넣어 배우, 제작진에 여성과 성소수자, 흑인 등을 일종 비율로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다. 헐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오랜 성폭행 등에서 보듯, 업계의 남성중심적 관점을 깨기 위해선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연기 인생의 초반에 큰 성과를 얻고 이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배우들도 있는 반면, 맥도먼드의 삶은 계속해서 성숙하고 발전한다. 그는 아카데미 외에도 브로드웨이 연극 ‘굿 피플’로 토니상을,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로 에미상을 받았다.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세 분야에서 모두 상을 받은 ‘트리플 크라운 액팅’을 달성한 흔치 않은 배우다. 노매드랜드에서 그랬듯, 제작자로서의 역량도 보여주고 있다. 맥도먼드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읽고 자오 감독에게 직접 연출을 제안한 장본인이다.60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맥도먼드가 연기를 이어가는 건 스타라는 화려함에만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배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꾸준히 노력하며 어떤 이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칠하고 있다. 이번 시상식에서 맥도먼드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구절을 인용해 밝힌 소감은 이 목표 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칼이 내 말을 대신할 테니까.(I have no words: my voice is in my sword) 우리는 그 칼이 우리 일이라는 걸 압니다. 나는 그 일을 좋아하죠. 그걸 알아줘서 감사합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누구 · Frances Louise McDormand1957 미국 일리노이주 깁슨 출생1975 펜실베이니아주 모네센 고등학교 졸업1979 웨스버지니아주 베서니 칼리지에서 예술 학사1982 예일대 드라마스쿨 예술 석사1984 영화 ‘블러드 심플’(Blood Simple)로 데뷔1987 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출연1988 영화 ‘미시시피 버닝’(Mississippi Burning) 출연1997 영화 ‘파고’(Fargo) 출연, 제6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2000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 출연2011 연극 ‘굿 피플’(Good People) 출연, 토니상 수상2014 TV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Olive Kitteridge) 제작·출연, 제67회 에미상 수상2018 영화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출연, 제90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2021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제작·출연,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영화 ‘노매드랜드’와 클로이 자오 감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우리는 존재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 자오의 말 [김정화의 WWW]https://bit.ly/3nEbrxD
  • [사설] 조리사 폐암 사망 산재로 인정, 근로환경 개선 절실하다

    매년 4월 28일은 ‘국제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노동자들이 각종 일터에서 크고 작은 부상과 질병을 얻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지만 부상과 질병 등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조리사나 셰프들은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제조업에 비해 식당 일은 ‘산업’이라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 특히 학교나 군대, 직장 등의 대형 급식실은 부엌이 아니라 산재 위험성이 도사리는 공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이나 뜨거운 물·기름 등에 화상을 입거나 칼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다. 육수통 같은 대형 조리 기구를 들다가 허리나 손목 등을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요리 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 물질 때문에 호흡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내과 질환은 외상에 비해 인과관계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재 판정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급식실 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가 올해 2월에 처음 나온 것만 봐도 현실을 알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조리원 A(당시 54세)씨는 2018년 폐암으로 사망했지만 거의 3년 만에 산재로 인정받았다. A씨가 일한 급식실 주방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최대 농도가 기준치의 60배, 초미세먼지가 4배나 높게 검출됐다. 학교 비정규노조 측은 경기도 내 학교 급식실에서만 폐질환에 걸린 조리사가 3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근로 현장에서 사고 등으로 부상이나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산재 판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바람직하기는 아예 산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로환경을 쾌적하게 개선하는 것이다. 현장이 주방이라면 유해 물질을 최소화하는 조리 기기를 도입하고 환기시설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조리사들에 대한 건강검진을 철저히 하고 불시 사고에 대비한 응급 치료 시스템을 상시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주방도 재해가 일어나는 산업 공간이라는 인식의 정착도 중요하다.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질병·별자리로 풀어 본 조선 왕들 일상과 운명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질병·별자리로 풀어 본 조선 왕들 일상과 운명

    역사서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시대를 다룹니다. 특히 조선의 왕은 많은 역사가들이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조선의 왕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명의인 어의와 대소신료들은 왕의 몸을 항상 치밀하게 살펴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인물과 사상사)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27명 왕이 어떤 병을 앓고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추적합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인데, 11명이 40세 이전에 사망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며 값비싼 음식을 먹고 희귀한 보약을 몸에 달고 살았지만, 수명은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책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기록으로 왕의 생활을 추리합니다. 왕의 일상과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 식습관은 물론 가족사와 개인적인 성품까지 살폈습니다. 왕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종기였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기 때문에 작은 종기는 죽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또 과식하고 과음하고, 지나치게 색을 즐기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각종 병을 얻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시대의 창)은 조선의 왕 12명을 별자리로 풀어냅니다. 예컨대 1397년 5월 7일 태어난 세종은 태양 별자리가 황소자리이고 달 별자리는 처녀자리입니다. 황소자리 특성상 오감이 발달해 식욕이 왕성하지만, 맛없는 음식은 거부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별자리로 풀어냅니다. 글자를 알지 못해 억울함을 당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인데,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를 표상하는 처녀자리의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저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오래된 관찰과 탐구에서 시작한 별자리로 풀어낸 설명은 이색적입니다. 역사의 주요 장면과 함께 내 별자리를 찾아 왕의 운명과 비교해 보는 일도 재밌을 듯합니다. gjk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유치원 침입해 흉기 휘두른 中 괴한…유아 2명 사망, 16명 부상

    [여기는 중국] 유치원 침입해 흉기 휘두른 中 괴한…유아 2명 사망, 16명 부상

    중국이 유치원에 난입해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남성 사건에 떨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광시성(广西) 베이류시(北流市) 유치원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현장에 있었던 교사 2명과 유치원생 16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사건 발생 당일 오후 두 명의 어린이가 입원 치료 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유치원 내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당시 사건은 교무실에 있었던 교사들이 나와서 그를 제압,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사 2명도 범행을 저지하다가 상해를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건이 발생한 유치원은 설립된 지 10년이 된 중대형 규모의 사립 유치원으로 확인됐다. 현재 해당 유치원은 관할 공안국이 봉쇄된 상태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돼 관할 공안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국은 가해 남성의 정확한 범행 동기를 확인되지 않았다고 29일 오전 8시 이 같이 밝혔다. 다만, 중국 사법 당국은 이번 사건이 무고한 인명 살상 사건이라는 점에서 신속,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공개한 상태다. 문제는 중국에서 교육 기관에 무단 침입 후 흉기를 휘두른 ‘묻지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범인들이 교육 기관에 난입, 흉기를 휘두를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원가 치안과 방범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칫 사망까지 할 수 있다는 고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학교에 어떻게 자녀들을 믿고 보낼 수 있겠느냐”면서 학원가의 치안 강화를 요구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광시성 장족 자치구에서는 초등학교 경비원이 교실에 난입, 흉기를 휘둘러 교사와 학생 41명이 상해를 입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가해 남성은 준비해 온 흉기로 학생과 교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 이를 저지하려는 교사를 찌른 뒤 도주한 바 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공안에 붙잡힌 가해 남성은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 분통이 터져서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논란이 심각해지자, 사건이 발생 직후 중국 교육부는 긴급 공고문을 공개, 관련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교육부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건의 성격이 매우 나쁘고 사회적인 비난을 받기에 적절하다’면서 ‘교육부는 즉시 관련 부서와 협력해 부상당한 교사와 학생들을 치료하고 사건 원인을 조속히 파악할 것이다. 또, 전국의 모든 교육 기관이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효과적으로 강구할 수 있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고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모든 학교 내에 경비요원을 배치, 교내 순찰 및 경계 업무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외부인의 교내 진입 시 차량 및 소지품 검사를 실시, 효과적인 관리 감독을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씨줄날줄] 옴니버스 옴니아/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옴니버스 옴니아/임병선 논설위원

    그제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이 쓰던 문장(紋章)이 있다. 가톨릭 추기경은 문장 하나에 자신의 사목 방향을 모두 담는다. 붉은색 갈레로(모자)는 주교의 사목 책임을 뜻한다. 십자가 아래 방패의 왼쪽 문양은 성모 마리아의 보호(세 별) 아래 순교 성인들의 정신으로(붉은색 바탕의 빨마와 칼) 성덕(聖德)을 실천함으로써(별과 칼의 금색) 한반도에 빛을 비추어(노란색 무궁화) 한국 사람들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려는 뜻이 담겼다. 방패 오른쪽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작은 원)를 중심으로, 성령(비둘기)과 함께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커다란 원)이 돼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증진하려는 염원이 담겼다. 아래 리본에는 라틴어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가 새겨졌는데 그의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다. 정 추기경은 연명 치료를 거부했으며 90세라 장기 기증이 어렵다고 판단돼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됐다. 그는 “모두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를 마지막 말로 남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명동밥집에 1000만원을 전달하고 음성 꽃동네와 예비신학생들, 아동 신앙교육을 위해 기부하는 등 가진 것을 모두 나눈 뒤였다. 공교롭게도 어제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 30조원 가운데 6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옴니버스 옴니아의 정신에 어느 쪽이 더 부합하는지는 판단해 볼 일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회의 아버지였다면 정 추기경은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돌아봤다. 밖으로는 교회법 전문가로 세상사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처럼 비쳤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2009년 서울 뉴타운 개발에 대해 “돈보다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쌍용차 파업, 용산 참사, 이듬해 세월호 참사 때 시류를 좇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또 생명 윤리에 관심이 깊어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를 하나의 생명으로 봐 반대하고 황 교수와 나눈 논쟁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서울대교구가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투자한 것도 어린 시절 과학자, 화학자를 꿈꾸고 평소에도 많은 책을 읽어 과학과 연구 윤리에 조예가 깊은 그의 영향이었다. 2009년 김 추기경, 이듬해 법정 스님에 이어 정 추기경처럼 영적 지도자들이 세상을 떴다. 교회를 세습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재벌기업의 세습도 여전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당긴 투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상화폐 광풍에 휩쓸리는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검박한 삶이 작지 않은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bsnim@seoul.co.kr
  • 이토록 안달나는 ‘벚’ 있으랴

    이토록 안달나는 ‘벚’ 있으랴

    몇 해를 내리 겨누기만 했다. 충남 서산의 개심사 왕벚꽃(겹벚꽃) 말이다. 명성이야 귀가 따갑게 들었다. 다섯 빛깔 겹벚꽃과 푸른 청벚꽃이 어울려 ‘저세상’ 풍경을 펼친다고 했다. 하지만 도회지에 사는 장삼이사가 꽃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행장을 꾸릴라 치면 아직 일렀고, 제대로 가늠했다 싶으면 다른 일들에 발목 잡히기 일쑤였다. 그동안 대체 몇 번의 봄이 지난 건지. 올해는 다행히 꽃의 시간에 늦지 않게 합류할 수 있었다. 이 절집의 명물인 왕벚꽃과 청벚꽃이 동시에 흐드러졌고 심검당 앞의 철쭉과 자목련, 선방 앞 골담초도 절정을 이뤘다. 이제부터 전하려는 건 아주 운 좋게 만난 ‘꽃절집’ 개심사의 화양연화에 대한 이야기다.개심사 가는 길이 예쁘다. 너른 목장지대를 줄곧 옆구리에 끼고 간다. 봉긋봉긋 솟은 구릉 사이로 분홍빛 왕벚꽃 가로수들이 점처럼 찍혀 있다. 구릉 아래로 신창제란 저수지도 있다. 작은 호수지만 왕벚꽃 가로수, 신록 등과 어우러진 자태가 퍽 아름답다. 호수 중간의 긴 다리는 쉬어가기 맞춤한 곳. 관광객들의 ‘인증샷’ 배경으로도 곧잘 쓰인다. 호수 주변의 구릉마다 여러 갈래의 소로가 나 있다. 목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목장길이다. 하지만, 길 대부분은 ‘출입금지’다. 가시 돋친 철조망 여기저기에 ‘출입금지’ 푯말이 어수선하게 나붙었다. 거의 완벽하게 막힌 목장길 가운데, 드물게 철조망을 치지 않은 길도 있다. 아쉬운 대로 이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긴다. 그리운 벗이여… 목장길 너머 닿을 듯한데 이 지역 대부분이 출입금지인 것엔 이유가 있다. 국내 씨수소의 정자 대부분이 생산되는 곳이라서다. 이 일대 목장을 운영하는 기관은 농협 한우개량사업소다. 국내 씨수소의 거의 전부가 여기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한우개량사업소가 애면글면 키우는 씨수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국내 한우 개량 사업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신창제 너머로 ‘저세상급’ 벚꽃 풍경을 펼쳐내는 용유지(용비지) 등 풍경의 보고가 널려 있는데도 가 볼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개심사 일주문을 지나면 완만한 오르막이다. 솔숲 사이로 난 길을 10분 남짓 걷다 보면 곧 경내다. 절 아래로 직사각형의 연못이 조성돼 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불분명하지만, 절집이 깃들여 있는 상왕산(象王山)의 코끼리가 목을 축이라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연못 위로는 나무다리가 놓였다. 해탈문에 이르는 다리다. 역시 이름은 없다.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혹시 탐진치(貪瞋癡, 욕심·노여움·어리석음)를 버리면 해탈에 이른다는 의미가 담긴 다리가 아닐까. 경남 양산 극락암의 홍예교처럼 말이다. 고귀한 벗이여… 해탈문 이르러 평안하신가 나무다리를 건너 마침내 겹벚꽃과 만난다. 개심사를 ‘화훼사찰’로 알린 일등공신이다. 여러 겹의 꽃술이 뭉친 꽃송이가 어린아이 주먹가웃이나 될 만큼 커 왕벚꽃이라고도 불린다. 늙은 벚나무의 시커먼 가지마다 둥근 꽃송이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동양적이라기보다 어딘가 서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태다. 고혹적인 외모의 귀부인을 알현하는 느낌이랄까. 흠잡을 데라곤 없는 도도한 꽃이 범종각, 해탈문 등 ‘못난 기둥’의 소박한 건물과 뜻밖에 잘 어울린다.요즘은 사람들의 관심이 명부전 앞의 청벚꽃에 좀더 쏠린 듯한 느낌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심사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진 꽃이다. 청벚꽃은 붉은빛이 덜하고, 청포도처럼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멀리서 보면 푸르스름한 것이 꼭 덜 여문 풋사과를 보는 듯하다. 올해는 유난히 봄꽃들의 개화가 일렀다. 매화, 벚꽃 등 대표적인 봄꽃들이 최소 일주일 이상 일찍 개화했다. 하지만 개심사 겹벚꽃은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평균 개화시기인 4월 중순부터 꽃술을 내기 시작했으니 이달 말까지는 절정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가려진 벗이여… 철쭉·자목련·골담초 잊지 마오 겹벚꽃의 위세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하는 꽃도 있다. 심검당 앞의 철쭉과 이제 막 꽃술을 연 자목련이 그렇다. 특히 흰 바탕에 연분홍빛이 슬쩍 겹쳐진 철쭉의 꽃술은 더없이 말갛고 그윽하다. 선방 앞의 노란빛 골담초도 절정이다. 뿌리가 한약재로 쓰여 절집에서 흔히 기르는 식물이다. 꽃도 꽃이지만, 사실 개심사는 소박한 당우들이 인상적인 절집이다. ‘검소하되 결코 누추하지 않은’ 당우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보전(보물 143호)이다. 그 안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1619호)이 엄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무엇보다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건 대웅전 옆 심검당(尋劍堂)이다. 얽히고설킨 번뇌를 벨 반야(般若)의 칼을 찾는 집이란 뜻의 건물이다. 당호는 날카로워도 자태는 순하다.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아래 이리저리 휜 목재를 기둥 삼았다. 개심사의 건축물 대부분은 이처럼 굴곡진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명부전이 그렇고, 범종각과 해탈문 등도 비슷한 형태다.청량한 벗이여… 신록의 길목 ‘해미향교’ 거닐다 꽃에 홀려 놓쳐선 안 될 또 하나의 풍경이 신록이다. 절집 주변의 나무들마다 가지 끝에 채도가 제각각인 연둣빛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늙은 나무라고 어둡지만은 않고, 어린나무라고 마냥 옅지는 않다. 저 유명한 이양하의 ‘신록예찬’에서처럼 “눈을 돌려 산천을 둘러보면 이제 막 연둣빛으로 단장하는 나무들의 건강한 성장이 싱그럽고, 발밑에는 포슬포슬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의 청량함이 기특하다.” 신록이 그윽한 곳을 들자면 해미향교를 빼놓을 수 없다.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들이 틔워 낸 신록이 향교로 드는 길목의 붉은 홍살문과 묵직하게 어우러져 있다. 가장 좋은 건 찾는 이가 드물다는 것. 둘만의 공간이 필요한 연인들이나 신선한 장소를 찾는 사진작가들에게 제격이지 싶다. 개심사에서 해미읍성 가는 길에 있다. 해미읍성은 서산 여정의 고전이다. 개심사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조선 세종(3년) 때인 1421년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됐다. 이순신 장군도 서른다섯 살 때(1579년) 이 성에서 열 달간 근무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성의 둘레는 약 1.5㎞다. 정문인 진남문 주변 성벽이 공사 중이어서 다소 번잡하지만, 내부는 여전히 넓고 단아하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신고 포상금 최대 20억” 개미 울린 리딩방 규제

    금융 당국이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주식 리딩방 규제에 칼을 빼들었다. 리딩방 관련 불공정 거래 신고 포상금을 크게 늘려 단속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검찰은 27일 ‘2021년 제3차 불공정 거래 조사·심리기관 협의회’를 열고 주식 리딩방 관련 신고 포상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 중요도 등급을 한 단계씩 올려 적용하기로 의결했다. 불공정 거래 포상금은 신고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1∼10등급을 나누고, 각 등급 기준금액(포상금 지급한도)에 기여율을 곱해 산정된다. 금액이 가장 높은 1등급 기준 금액은 20억원이다. 올 3분기부터 등급별 기준 금액 자체도 올라간다. 이미 법상 한도액(20억원)에 가까운 1·2등급을 제외하고 3등급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4등급은 8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가장 낮은 10등급 기준 금액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오른다. 또 과징금 제재 사건이라도 더 많은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고, 부당이득 금액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중요도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다음달부터 그동안 금융위와 금감원, 거래소로 흩어져 있던 불공정 거래 민원·신고 정보를 하나로 모은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운영한다. 금융 당국은 신고할 때 불공정 거래 종목, 행위자, 일시, 방법, 관련 점포 등을 포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포상금 산정에도 유리하다고 밝혔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스토킹 살인’ 김태현 구속 기소…스토킹 처벌은 빠졌다?

    ‘스토킹 살인’ 김태현 구속 기소…스토킹 처벌은 빠졌다?

    검찰이 스토킹하던 여성과 일가족을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 김태현(25)을 구속 기소했다. 27일 서울북부지검 강력범죄전담부(부장 임종필)은 김태현을 살인, 절도, 주거침입, 경범죄처벌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정보통신망침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스토킹범죄처벌법은 오는 10월 시행 예정이기 때문에 경범죄처벌법위반이 적용됐다. 앞서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9일 같은 혐의를 적용해 김태현을 서울북부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태현은 지난달 23일 피해자 A씨의 집에 침입한 뒤 동생 B씨와 어머니 C씨, A씨를 차례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태현은 상품 배달이라며 미리 준비한 박스를 문 앞에 내려 놓고 5분 뒤 B씨가 문을 열자 칼로 위협해 집에 들어갔다. 검찰은 김태현이 지난해 11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피해자 A씨가 게임 관련 일부 비용을 내주자 호감을 가졌다가, 지난 1월 23일 신경질적 언행 등으로 인해 연락을 차단당한 뒤 스토킹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현은 1월 24일부터 A씨의 집으로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등으로 반복적으로 접근한 혐의를 받는다. 김태현이 2월 7일 채팅 어플리케이션으로 “후회할 짓은 하지 말랬는데 안타깝다. 잘 살아봐”라며 욕설을 보내자, A씨는 다음날 전화번호를 바꿨다. 이후 김태현이 살인을 결심하고 지난달 19일부터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흉기를 훔치는 등 범행을 준비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김태현은 범행 전날인 지난달 22일 자신의 휴대전화 대화 내역과 연락처를 지웠고, 범행 다음날인 24일 피해자의 휴대전화 대화 내역과 친구목록도 삭제했다. 검찰은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16대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등 과학적 수사로 혐의와 동기, 범행 전후 상황을 파악했다”면서 “대검 통합심리분석 결과,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극단적 방법으로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려는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지만 사이코패스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돈과 너를 원한다” 15년 전 ‘테이프 강간범’…항소심도 징역 8년

    “돈과 너를 원한다” 15년 전 ‘테이프 강간범’…항소심도 징역 8년

    2003~2004년 목포서 여성 4명 강간투명테이프 등 주도면밀하게 범행 준비“현재는 가정을 이뤘다”…선처 호소 2003~2004년 전남 목포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이른바 ‘투명테이프 연쇄 강간범’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승철)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 강도 강간·주거 침입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1)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전남 목포의 한 동네에 거주하는 여성 4명을 잇따라 흉기로 위협하고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A씨는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주머니칼, 투명테이프, 천 등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한 뒤 혼자 거주하는 2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행했다. A씨는 피해 여성이 귀가할 때까지 뒤를 쫓거나 늦은 밤까지 잠복했다가 출입문을 닫으려는 순간 문고리를 잡아챘다. 잠기지 않은 출입문을 직접 열고 침입하기도 했다. A씨는 당황해하는 여성들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칼로 위협하거나 반항이 거세지면 흉기와 주먹으로 얼굴 부위를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살려주세요’라는 피해 여성들에 외침에는 “돈과 너를 원한다”는 짧은 말로 대신했다. A씨는 투명테이프로 피해자들의 입과 눈 부위를 감아 앞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또 양손을 투명테이프나 천으로 묶은 뒤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 A씨는 피해자들에게 돈까지 빼앗은 뒤 달아났다.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15년이 2019년 8월 A씨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수 등)에 연루되면서 혐의가 들통났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각 범행은 그 죄질이 나쁠 뿐만 아니라 행위 자체에 내포된 위험성 역시 매우 크고, 피고인이 그 후에도 13세인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하는 등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현재는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과 피고인 및 그 가족들이 피해자들과 합의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 결과 피해자들 모두와 합의에 이른 점, 이 사건 범행 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검사는 원심의 양형이 가벼워 부당하다는 반면, A씨는 형이 무겁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특히 A씨는 “피해자들에게 추가로 보상을 해 처벌불원서를 제출했고, 현재는 가정을 이뤘다”며 법원에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 이유로 내세우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원심의 양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써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이을 사람 없고… 얼쑤, 신명 잃고… 우리 전통 잊고

    이을 사람 없고… 얼쑤, 신명 잃고… 우리 전통 잊고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무형문화재는 계승자를 찾지 못하고 하나둘씩 맥이 끊기고 있다. 사회적 외면과 정부의 쥐꼬리만 한 지원, 지자체의 무관심 등이 원인이다. 우리는 고유의 문화를 잃고 있지만, 중국은 ‘문화 동북공정’을 앞세우며 우리 문화의 침탈을 가속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년 내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자취를 감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무형문화재의 현주소와 과제 등을 알아봤다.●“칼 만들어 어떻게 먹고사냐” 아들 말에 침묵 은장도 등 칼집 있는 작은 칼을 만드는 경북무형문화재 15호 장도장 후계자 이면규(60)씨는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15살 때 입문한 것과 딴판이다. 고민 끝에 4년 전 무역회사에 다니던 아들(33)에게 기술을 전수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어떻게 칼을 만들어 먹고살 수 있느냐’는 아들의 반문에 이씨는 답을 하지 못했다. 장도를 만들어 자식 교육 등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씨는 “눈이 나빠져 제작에 어려움이 많다. 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국가무형문화재 60호 장도장 보유자 박종군(57·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씨는 ‘인간문화재’여서 정부 지원을 받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 광양에 작업장이 있는 박씨는 “한 달에 한 개 안 팔릴 때도 있다”며 “지역 내 초중학교에서 장도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해 살림에 보탠다”고 했다. 후계자가 없어 두 아들에게 가르친다. 그는 “후계자가 있어도 노사관계로 변해 매달 받는 15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희생해 우리 장도 문화를 물려주자’고 아들들을 꼬드겨서 겨우 전승하는 중”이라며 “중국이 우리 것들을 자기네 거라고 동북공정을 외치는데, 이러다가 나라까지 빼앗긴다”고 말했다.전승에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나무로 베틀을 만드는 국가무형문화재 88호 바디장은 충남 서천의 인간문화재가 숨진 뒤 끊겼다가 같은 마을 40대 젊은이가 잇고 있다. 바디장 보유자가 생존했을 때 배워 이수자가 됐다. 장경희 한서대 교수는 “무형문화재는 일반적으로 조상이 하던 것을 자식이 물려받는데 동네 청년이 전승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아직은 이수자로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해 건축일을 곁들여 ‘투잡’을 한다”고 전했다. 가죽으로 전통 신발을 만드는 국가무형문화재 116호 화혜장(갖바치) 등 후계 작업이 순조롭지 않은 종목이 수두룩하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는 149개 종목이 있다. 예능 52개, 기능 53개, 생활관습 8개, 의례의식 19개, 놀이무예 13개, 전통지식 4개다.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보유자는 175명, 그 밑 단계로 전승교육사(조교) 253명에 이수자는 6608명이 있다. 보유단체도 70개 있다. 문화재청이 관리 지원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외에 시도 무형문화재도 594개 종목이 있다. 강재훈 문화재청 사무관은 “일부 종목은 국가와 시도 둘 다 지정돼 있다”며 “하지만 바디장 등 4개 종목은 보유자가 없다”고 말했다.●종묘제례악 ‘1호’… 체육처럼 인기·비인기 갈려 국가무형문화재는 1964년 12월 종묘제례악을 1호로 출발했다. 한 번에 서너 개씩 지정돼 종목이 늘면서 스포츠처럼 인기·비인기 종목으로 나뉘고 있다. 그나마 대중이나 언론매체 등에서 관심을 보이는 판소리, 현악기(거문고, 가야금)는 인기가 있다. 반면 편종과 편경, 북은 비인기 종목이다. 거의 안 팔려 다른 직업이 없으면 전업으로 이어 가기엔 언감생심이다.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쪼그라드는 종목도 있다. 곰방대(담뱃대)를 만드는 제65호 백동연죽은 금연 문화·정책으로 소비가 급감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말총으로 제작하는 갓일, 망건장, 탕건장도 마찬가지다. 이지은 문화재청 사무관은 “백동연죽은 흡연 도구보다 주로 전시용으로 나간다”면서 “갓은 공연연기자 정도만 사 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단체 종목인 의례의식(19개)과 놀이무예(13개)는 농어촌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마을 주민이 나이 들어 하나둘 숨지면서 굿이나 풍어제를 벌일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옛날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과 힘을 보태 잇던 생활 속 전통 의식이다. 이동순 사무관은 “참가 인원이 부족하면 어깨 너머로 배운 이웃 마을 주민이 나서 간신히 맥을 잇고 있지만 이마저 시골 교회에서 굿을 ‘미신’으로 봐 쉽지 않다”면서 “그동안 폐지된 의식은 없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사무관은 “시연 때마다 전승자들 간에 ‘원형 논란’이 인다”며 “원형이란 게 있을 수 없고 발전적 변화로 봐야 하지만 이마저 전승이 끊길 위기”라고 덧붙였다.●이수자 5년 넘게 해야 ‘전승교육자’ 시험 자격 문화재청은 인간문화재(보유자)에게 매달 150만원을, 전승교육자에게 70만원을 지원한다. 단체 종목에는 다달이 360만원을 주는데, 보유자가 없으면 550만원을 지원한다. 이수자는 지원금이 없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연간 한 번 이상 언제 어디서든 실연할 의무가 있다. 문화재청은 실연 비용으로 80만원에서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수자도 공연전시 때 만큼은 연간 600만~800만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급이 높아질수록 지원금이 더 많아져 장인들이 승격을 위해 온 힘을 쏟지만 매년 시험이 있지는 않다. 이수자는 5년 넘게 전승활동을 해야 전승교육사 시험을 볼 수 있다. 인간문화재는 이수자든, 조교든 실력만 뒷받침되면 도전할 수 있다. 명맥을 이으려는 고육책이다. 문화재청은 발굴과 신청을 통해 후보자를 받아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관보에 실어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를 다시 열어 지정 여부를 정한다. 지정할지는 역사·예술성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따져 판가름한다.●나전칠기 여름, 궁시장은 겨울… 시험 일정 달라 종목 특성에 따라 계절을 달리해 시험을 보는 점도 특이하다. 나전칠기 시험은 여름철에 치른다. 습기가 많아야 옻칠이 잘되기 때문에 장마철에 볼 때도 있다. 반면 궁시장은 겨울철이 좋다. 접착제로 쓰는 민어 부레가 날이 무더우면 제대로 붙지 않는 탓이다. 한지장도 종이 원료인 닥나무 수확철이 1~2월이고, 생산지인 농촌의 농한기가 겨울철인 점을 들어 그때 시험을 본다.●무형문화재 선진국이라지만… 中 침탈 우려도 이종규 사무관은 “힘들게 우리 전통 문화를 전승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무형문화재 선진국 축에 든다”면서 “지정하고 평생 지원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했다. 독일은 공예 위주로 ‘마이스터’를 지정하지만, 지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형문화재 전승을 위해 가장 많이 힘쓰는 지역은 동북아시아다. 특히 중국은 2011년쯤부터 무형문화재를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이름 지어 지정하고 지원한다. ‘유물론’ 국가다운 이름이다. 문제는 아리랑, 농악 등 조선족 문화재를 지정하고 자기네가 ‘원조’라고 마구 억지를 부리는 점이다. 이른바 무형문화재편 ‘동북공정’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공예만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집중 관리한다.사회주의 국가인 북한도 무형문화재를 ‘비물질민족유산’으로 명명했다. 평양랭면과 아리랑, 씨름, 연백농악무 등 100여개가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은 사무관은 “남한과 비슷한 게 많다. 그렇지만 원류는 같아도 사회 분위기가 달라 약간씩 차이는 난다”면서 “우리가 종목 중심이라면 북한은 인물 위주로 지정해 인간문화재 등보다 ‘쟁이’라는 용어를 많이 붙인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맥이 끊겨 사라져도 훗날 복원할 수 있도록 기록화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강 사무관은 “요즘은 온돌, 김치·장 담그기 등 생활 속 문화재를 지정하는 것이 추세”라고 했다. 이 사무관은 “무형문화재 전승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지만 그것보다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코로나19로 해외 공연·전시회를 못 열어 걱정”이라고 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영주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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