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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濟비방 유인물’ 싸고 이인제·노무현 신경전

    민주당 경선이 한달 이내로 다가옴에 따라 대선 예비주자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은 14일 설 연휴기간에 자신을 비방하는 유인물이 당 대의원들에게 우편으로 집중 발송됐다고 당 선관위에 고발하고 경위조사를 의뢰했다. 이 고문측은 또 모 일간지에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없다-노무현 필승론’이라는 광고가 게재되고,인터넷 신문오마이 뉴스에 이 책에 대한 서평 ‘이인제는 이회창 칼춤의 희생양인가’라는 글이 실린 것도 문제시하고 있다.비방 유인물이 배포되는 것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특정 후보측의조직적 음해공작의 일환으로 의심하고 있다.이에 대해 노무현(盧武鉉) 고문측은 “비방 유인물을 배포한 일이 절대로없다.”고 부인한 뒤 “당 선관위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면우리의 결백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북청사자놀음’ 보유자 전광석씨 별세

    중요무형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보유자인 전광석(田光石)씨가 12일 오후7시 서울 마포구 도화1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5세. 고인은 지난 23부터 9년 동안 전병식선생을 사사한 뒤 북청사자놀음 가운데 ‘칼춤’에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고 73년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정순(崔貞純)여사와 경욱(耕旭·고려대교수) 경우(耕雨·우리기획 대표)씨 등 2남이 있다.발인은 14일 오전 9시.(02)929-3499
  • [김삼웅 칼럼] 최익현과 ‘얼빠진’ 지식인들

    충남 청양에 모덕사(慕德寺)란 사당이 있다.해방후 환국한 백범이 임정요인을 이끌고 이곳을 찾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환국고유제(還國告由祭)를 지낸 곳이다. 고유제란 임정주석이 휘하 요인들과 함께 ‘정부가 조국땅에 돌아왔음’을 아뢰는 의식을 말한다.6·25전쟁후 피란지에서 서울로 환도한 국회의장 신익희도 국회의원들과모덕사를 찾아 ‘환도고유제’를 지냈다. 모덕사가 어떤 곳이기에 나라를 되찾은 임정 주석과 서울을 수복한 국회의장이 고유제를 지냈을까.“대한민국 28년(1947년)4월23일 후생 김구는 삼가 맑고 깨끗한 술을 따르고 향을 지피어 제사를 올리며 아뢰오니,춘추의 대의시며일월같이 높은 충절이었습니다”로 시작된 백범의 ‘환국고유제문’을 더 들어보자. “외로운 소자(小子)는 어렸을 때 스승의 가르침에 선생의 말씀을 받잡고 내내 잊지 못하였습니다.나라잃고 안팎의 난리속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선생의 위대한훈업에 격려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선생이시어!이제야 저의 힘을 다하여 산넘고 물건너서 여기선생의봉롱(封瓏)가까이 왔사옵고 산같이 높으신 뜻을 받들고 조촐한 차림으로 모시옵니다” ‘고유제문’의 주인공은 면암(勉庵) 최익현이다.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을사조약후 8도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킨 의병대장,일본군에 체포돼 쓰시마(대마도)에 끌려가서도 단식으로 저항했던 지사,순국 뒤에 돌아와 묻힌 곳에 세운 사당이 바로 모덕사이다. 국적(國賊)을 포살한 안중근의사가 최후진술에서 “실로만고에 얻기 어려운 고금 제일의 우리 선생이다”,매천 황현은 “재상과 유림이 모두 한몸에 맺혀지니 해동(海東)천년에 공의 말만 있으리다”,중국의 원세개는 “굴원(屈原)과 개자추(介子推)를 합한 절의(節義)”라고 격찬했던 분이 면암선생 아닌가. 한말과 왜정시대에 자진(自盡)하거나 창의(倡義)한 분이많거늘 유독 면암의 사당에서 고유제를 지낸 까닭은 을사조약 후 전국 의병장의 9할이 그의 문도 출신이란 이유다. 이는 곧 “면암이 의병장을 낳고 의병장은 독립군을 낳고독립군은 항일투사를 낳고…” 독립운동사의 요람인 셈이다. 국민의 기억에서 멀어진 모덕사의 사연을 꺼낸 것은 면암을 지식인의 사표처럼 받들어온 우리 근대 지성 풍토가 너무나 크게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과거 행적으로 보아 ‘사회원로’로 대접받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포함된 지식인들이 급조단체를 만들고 “옛 역사의 ‘낡은장부’를 뒤적이면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운운하는시국성명을 발표했다.매명주의 속성의 지식인들은 탈세언론의 비호에 나서고,평양 8·15통일축전에 참석했던 또다른 지식인들은 돌출행위로 남남갈등을 촉발시킨다.이래저래 지금‘얼빠진 지식인’의 공해가 심각하다. 족벌언론의 탈세를 꾸짖고 색깔론 따위의 시대착오를 질책하고 남북화해를 기피하는 북측의 태도를 비판하면서,사회정의와 민족화합을 주도하는 것이 ‘원로’나 지식인의도리이고 책무이다.친일도,헌정파괴도,탈세도,곡필도,용공음해도 묻어두자는 무책임한 반지성의 목소리야말로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칼춤’이 아닐까. 진실을 밝히고 양심세력을 옹호하고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령일진대 칼 뺄 때와 붓 잡을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선악시비도 가리지 못하면서,먹구름 덮이면 단시론(單是論),햇볕들면 양비론,안개끼면 양시론을 펴는 허명의 군상들이 날뛴다.면암의 선비 정신을 아는가 모르는가. 위당 정인보는 왜정시대 다수 지식인들의 정신상태를 ‘얼빠진 상태’라 규정하면서 “얼을 남이 빼앗아가는 것이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잃는 것이라”지적했다. 그렇게 ‘얼빠진’지식인의 전통이 지금도 활개치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 SBS 수목드라마 ‘순자’ 야외촬영 현장

    SBS 수목드라마 ‘순자’의 야외촬영이 있던 지난 주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햇살은 더할나위없이 화사하건만 추위는 꽁꽁 싸매 입어도이가 딱딱 부딪칠 만큼 매서웠다. 포졸들이 에워싼 관아 마당엔 탤런트 정애리가 곤장틀에 매어져 있고,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이지현은 칼을 찬 채 쪼그려 앉았다. “저년의 목을 당장 쳐라” 변사또의 호령에 망나니들이 칼춤을 시작하고,“암행어사 출또야” 함성과 함께 야단법석이다. “컷” 감독의 오케이사인.촬영이 잠시 멈춘 틈에 홑겹 한복차림으로 몇시간째 떨던 연기자들은 롱코트를 걸치고,핫팩을 문지르며 몸을녹이느라 바쁘다.화려해보이는 연기자들의 겉모습과는 영판 다른 고된 일상을 훔쳐본 느낌이랄까. ‘여자만세’ 후속으로 10일 오후9시55분부터 방송되는 ‘순자’의본래 제목은 ‘무엇이 순자를 뜨게 했는가’였다고.제목 그대로 시골 순대국집 딸 순자가 여배우로 성공하기위해 티없는 순수와 사랑을버리고 마침내 스타가 되기까지,다시 날개없는 추락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문정수PD는 “이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진정한 성공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라고 연출의 변을 밝힌다. 공교롭게도 순자 역에 캐스팅된 이지현은 여균동감독의 영화 ‘미인’에서 누드모델로 출연,파격적인 섹스신으로 뜬 신인이다.극중에서그녀는 성공을 위해 누드모델은 물론,재벌2세에게 사랑을 팔고,사랑했던 옛애인을 ‘남성취향’의 디자이너겸 연예계 실력자에게 소개해주는 욕망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녀는 드라마 내용도 그렇고 해서 벌써부터 걱정인지 “실제 내 모습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짐짓 의연한 표정이다.‘몸매만 있고 연기는 없다’는 욕을 먹지 않으려고 맹렬히연기수업중이란다. 연예가의 다양한 군상들도 그려진다.정애리는 시들어가는 대스타이자 공주병 환자 황승리역,스타딸보다 증세가 심한 엄마역은 사미자가맡는다. 최근 드라마의 빼놓을수 없는 양념인 코믹연기를 위해 순대국집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순자의 엄마(윤여정)와 생활에는 무능하면서도허랑방탕한 아버지(양택조)등을 포진시키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허윤주기자 rara@
  • [김삼웅 칼럼] 화해시대의 냉전수구 지식인

    헤겔이 지식인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비유하여 역할의 ‘추종성’을 강조하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이끌고 시대조류를 형성하는 것은 역시 지식인의 역할이다. 국가의 흥륭을 결정하는 요인은 건전한 정치세력과 올곧은 지식인그룹의 역할을 들 수 있다. 건전한 정치세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올곧은 지식인그룹이 존재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지식인그룹이 존재하는 사회치고 낙후되거나 멸망한 국가는 없다. 불행히도 우리 근현대사는 올곧은 지식인이 소외되고 사악한 지식인집단이 주류가 되어 역사의 물굽이를 역류시키고 시대정신을 오염시켰다. 왜정시대 친일지식인의 반민족성이나 독재시대 어용지식인들의 반민주성 그리고 요즘 냉전의식에 중독된 반통일적 지식인집단의 행태를보면 사악한 지식인의 존재가 얼마만큼 역사발전에 저해하는가를 알게 된다. 2차대전후 프랑스와 독일이 파시즘지식인을 청산한데 비해 한국과일본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거대한 극우파워를 형성했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한국의 수구집단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 독초가 번창한 땅에 약초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원래 독초는 번식력이 강한데다 꽃도 아름답고 열매 또한 탐스러워 사람을 유혹한다. 양귀비꽃을 상기하면 된다. 해방과 혁명,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도 ‘양귀비’로 상징되는 수구세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실로 우리의 비극은 여기서 기원한다.만악의 근원이다. 왜정시대 ‘내선일체론’이나 5공시대 ‘광주폭도론’그리고 요즘‘북한불변론’으로 이어지는 수구지식인의 ‘붓장난’은 민족의 이성에 칼질하는 망나니 짓이다. 한 시대가 지나면 이들의 ‘칼춤’이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지탄(指彈)’은 말 그대로 손가락질일 뿐,악의 존재는 멀쩡하다. 악초가 ‘손가락질’로 제거되는 일은 없다. ‘양귀비꽃의 마력’처럼 수구지식인일수록 미사여구·교언영색으로무장하고 허구의 논리로 민중을 매혹한다. 강고한 집단주의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준다. 왜정시대 ‘아시아 해방과 미·영귀축론’에는 친일파의 독초가 숨겨 있었고, 5공시대 ‘광주폭도론’의 배경에는 유신잔재가,요즘 내세우는 ‘상호주의원칙’에는 냉전회귀의 분단주의 비수가 꽂혀 있다. 기득권도 챙기고 논리성도 세우려는 냉전수구지식인의 이중성은 박쥐의 생태와 닮는다. 음습한 곳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박쥐처럼 기득권과 논리성의 가면을 바꿔쓰면서 기회주의적 줄타기를 거듭한다. 왜정시대가 행세에 편하고 독재시대가 치부에 적합하며 분단시대가 기득권 지키기에 유리한 때문이다. 그래서 한사코 해방을 기피하고 민주화를 거부하고 통일을 방해한다. 수구세력은 김대중대통령의 집권으로 한때 겁을 먹었다. 개혁·민주·통일이라는 수구세력이 가장 기피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DJ정부는 곧 지역성에 바탕한 거대야당과 수구지식인집단에 포위된 소수정권의 한계를 드러냈다. IMF 극복이라는과제가 개혁을 이완시켰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시대상황도‘물리적 개혁’을 막는 금줄(禁線)이 되었다. 권력핵심의 인적 구성도 개혁성보다 현상유지쪽에 치우쳤다. 이를 놓칠세라 ‘정권의 한계’를 간파한 수구세력은 지역주의와 반공정서를 바탕으로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남북화해협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심지어 진보적 시민단체나 언론사 내부에서도 개혁을지지하면 ‘친여’로 몰려 비판된다. 독재시대에는 친여와 친야의 흑백론이 필요했다. 군정 대 반군정의 경계선이 확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과 수구,통일과 반통일의 잣대가 비판의 기준이 돼야 한다. 길은 없는가.깨어 있는 지식인그룹이 수구세력의 본질을 밝히고 그들의 반시대적 논법을 깨뜨려야 한다. 여야 개혁정치인들도 시대적과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더이상 수구지식인의 반시대적 ‘여론’이국민의 뜻으로 둔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한 김용순총비서의 방남(訪南)에서 보듯이 남북관계는 지난 반세기보다 올 3개월동안 훨씬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민족사의 큰 경사다. 이런 시점에서 냉전의식에 절은 수구지식인들도 인식의 변화를 보였으면 한다. 마침 추석명절을 보내고 업무를 새로 시작하면서 이 기회에 한번쯤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면 어떨까.수구지식인의 정체성회복이 시급하다. 김삼웅 주필 kimsu@
  • [김삼웅 칼럼] 분단사의 한 매듭 비전향장기수

    고난의 한국현대사는 남의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는(생기지 않는) 용어가 다수 사용된다.‘비전향장기수’도 그중의 하나이다.이 용어의‘비전향’에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갑골(甲骨)이,‘장기수’에는반인권·비인도주의의 야만성이 배인다. “지면에 옥(獄)을 그려놓아도 사람은 그것을 피하고 나무를 깎아형리(刑吏)를 만들어도 사람은 그것과 면대하기를 싫어한다”고 사마천은 ‘임안(任安)에게 드리는 글’에서 말했다.감옥을 말하는 ‘옥(獄)’자는, 사나운 개 두마리가 사람의 입(言)을 지키는 모양을 하고있다. 자유를 구속하는 형상인 것이다.감옥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속박하고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를 기피한다. 며칠후(9월2일)면 ‘비전향장기수’63명이 북한으로 간다.70세 이상이 대부분으로 평균 32년6개월씩을 0.75평의 감방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사람들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들은 남한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던 간첩과 빨치산출신이고,에돌아 보면 분단시대의 희생양이다.어찌됐건 그들의 개인이나 가족사는 통한의아픔이고 민족사적으로는 ‘콩깍지로콩 삶는’ 비극이다.무엇보다 짧게는 15년,길게는 45년을 복역한 이들의 짓밟힌 삶은 누가,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이데올로기? 신념?분단시대? 이들을 보내면서 지금이 과연 2000년대의 문명사회인가,문명은 이데올로기의 상위개념인가,하위체계인가를 묻게 한다.그리고 여전히 병들고 늙어서 폐인이 되다시피한 노인들을 이념과 거래의 장삿속으로만 인식하려는 색맹(色盲)의 군상을 지켜본다. 중세의 혼돈을 즐기는 군상은 근세의 여명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랜 독점지배로 굳혀진 기득권의 철옹성에서 밝아오는 여명도 마녀의 눈빛으로 보이고,지구는 여전히 평면일 뿐이었다.“지구가 돌다니,마녀다! 화형에 처해라”던 중세의 도그마가 이 땅의 논리로 대변된다. “을지훈련을 축소한 것은 북쪽 주장을 추종한 것이다” “경의선이 복원되면 주한미군의 철수론에 악용될 수 있다” “정상회담 합의(제2항)는 헌법위반이다” 따위의 시대착오적,뒤틀린 도그마는 오늘을 중세와 21세기의 시공(時空)을 착각하게 만든다.언제까지 분단의 철옹성에서 이념의 색안경을 쓰고 동족끼리 광란의 칼춤을 추자는 것인가.탈냉전시대에도 ‘민족’이라는 노적가리에 불지르고 싸라기 주워먹자는 것인가.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납북자’와 ‘국군포로’를 둔 가족이다.이들의 서운함(정부에)과 원망(북쪽에)은 당연하다.남북 당국은 대화를 통해 시급히풀어야 한다.이 문제가 비전향장기수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단의아픔이고 반인도주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또한 틈새만 보이면 화해협력을 적대관계로 되돌리려는 냉전세력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 사실 ‘납북자’와는 별개로 ‘국군포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문제다.말하기 쉽게 ‘비전향장기수와 맞교환’ ‘상호주의 원칙’이제기되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은 지닐지 몰라도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 휴전협정에 따른 남북한 포로교환으로 국제법상 종결된 사안인데다가남쪽에서 파견한 북파요원문제, 휴전협정 직전 이승만 정부가 석방한2만5,000명의 반공포로문제 등과 연계시키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면 지금의 작은 가능성마저 물거품이 되고 남북은다시 양쪽의 극우·극좌세력의 뜻대로 대결과 적대관계로 되돌아간다.그러한 ‘닫힘’보다 작은 ‘열림’을 확대하면서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보다 빠르고 쉬운 길이다. 이쯤에서 함께 주의해야 할 것은 돌출행동을 자제하는 일이다.50년이상 순치된 국민의 냉전의식이 하루아침에 씻기기는 쉽지 않다.북송비전향장기수들을 ‘애국투사’로 치켜세우거나 지나친 환송식 등은국민의 정서와는 걸맞지 않는다. 당사자들도 조신해야 한다.“조국이 나를 42년 동안 옥살이를 시켰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분단된 조국의 비극일 뿐이지요”(이종환)란자세를 북한에 가서도 지켜주길 바란다.그래야 화해협력이 지속되고통일의 길이 열린다. 김삼웅 주필 kimsu@
  • ‘시대의 춤꾼’이애주 한국춤의 뿌리 되살린다

    이애주(서울대 교수)라는 이름 석자는 아직도 ‘민주화투쟁’을 연상케 한다.고 이한열군 노제에서의 한풀이를 비롯한 ‘시국춤’이 워낙 깊게 각인되어서다.그러나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보유자인 그는 사실 한국춤의 정통을 잇는 큰 춤꾼이다. 전통춤의 정수인 승무는 ‘한영숙류’와 ‘이매방류’두 가지가 문화재로 인정받았는데,한영숙류(67년)가 이매방류(87년)보다 20년 먼저 지정받았으니말하자면 ‘본류’인 셈이다.이애주는 한영숙의 후계자다. 그 이애주가 17일부터 충남 홍성,경기 부천,서울에서 4차례 공연을 갖는다. 이름하여 ‘한맥의 춤’. 이애주는 이 무대에서 ‘전통 장검무’를 되살려낸다.굳이 ‘되살린다’고하는 까닭은 현재 공연되는 검무가 원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그는 “짧은 칼을 빙빙 돌리면서 아기자기하게 추는 춤은 조선 말에 시작된 것이지삼국시대이래 내려오는 전통 칼춤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긴 칼을 양 손에 들고 장엄하게,힘차게 추는 원래의 춤사위를 재현하겠다는 것.그는 고구려 벽화,신윤복의풍속도,정약용의 한시 등에 묘사된 검무 동작을 바탕으로 한성준·한영숙의 춤사위를 응용해 재창조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10년동안 구상해 오다 최근 완성했다”고 밝혔다. 장검무와 함께 이애주가 공 들인 작품이 학춤.궁중정재나 중부지방 학춤은실제로 학의 형태를 뒤집어쓰고 추는데 이번에는 학을 표현한 관만 쓴다.대신 두루마기의 펄럭이는 자락으로 날개를 상징할 생각이다. 이밖에 살풀이의 원형인 본살풀이와 태평무,비나리도 무대에 올린다. 그는 한성준의 고향이자 한성준춤학교,한성준춤비(碑)가 있는 홍성에서 첫공연을 벌이기에 앞서 “공연을 보고드리는”의식도 갖는다.전통춤을 집대성한 한성준-그의 손녀인 한영숙-한영숙의 후계자 이애주로 이어지는 맥을 재확인한다는 뜻이다. 공연일정은 △17일 홍성 홍주문화회관 △20일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대공연장△22·23일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다.시각은 모두 오후7시.(02)762-4067. 이용원기자 ywyi@
  • 최고 춤꾼 이매방의 65년 춤인생

    ‘이 시대 최고의 춤꾼’이매방의 춤세계,그 폭과 깊이를 한목에 보여주는무대가 열린다.이름하여 ‘우봉 이매방 춤인생 65년 기념 대공연’이다.28∼29일 오후7시 국립중앙극장 대극장(02)571-4584. 지난 96년의 고희 기념공연 후 3년만에 다시 갖는 이 대형 무대에는 우봉(宇峰·72)의 작품과 제자들이 총출연한다. 무대에 오르는 춤은 모두 12가지.이 가운데 우봉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승무(제27호),살풀이춤(제97호)을 비롯해 자신이 창작한 ‘입춤’‘보렴승무’등 네 작품을 직접 춘다.창작무는 우봉이 남도가락에 맞춰 안무한 것. 입춤은 육자배기에,보렴승무는 남도잡가 ‘보렴’에 바탕했다. 아울러 40∼50년대 “한창 팔팔할 때”(우봉 표현)추다가 반세기 가까이 무대에 올리지 못한 ‘대감놀이’‘화랑도’‘기원무’‘장검도’등은 제자들의 춤으로 소개한다. 대감놀이는 무당춤의 하나고 화랑도는 신라 화랑의 기상을 담았으며,기원무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희구한다.또 장검무는,우봉이 중국 경극의 대가 매난방에게서 배운 칼춤을 우리 가락,전통검무에 맞춰 재안무한 작품이다. 공연에 나서는 제자는 70여명.김명숙·오율자·채향순·이노연 등 대부분이대학교수 또는 무용단체장인,한국무용의 지도자들이다.여기에 우봉의 오랜지기이자 역시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강선영(74·제92호 태평무)이 제자들을 이끌고 우정출연한다.가히 한국 전통무용과 무용가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무대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우봉은 목포권번 춤선생인 집안 할아버지 이대조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해 7살부터 권번에서 정식으로 춤을 익혔다.당대의 명무(名舞)들인 박용구·이창조에게 사사했고 한때는 일본에서 현대무용을 익힌배구자,중국 경극배우 매란방 등에게서도 춤을 배웠다.그의 예명 매방(梅芳)은 매란방(梅蘭芳)을 흠모해 지은 것이다. 이후 우리춤에 정진한 세월이 어느덧 65년 쌓여 이번 무대를 마련하게 됐다. 공연을 앞두고 우봉은 매일 오후6시부터 밤12시까지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산다.연습시간을 밤으로 잡은 까닭을 우봉은 “이제는 제자들도 머리가 커서낮에는 시간들을 낼 수 없어서”라고설명했다.그러면서도 제자들이 늦게 나오거나 연습에 빠질 때면 ”아직도 열불이 난다“고 말했다. “몸이 움직이는 한 언제까지라도 춤을 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우봉은,나이를 생각해 내년에는 회고록을 쓰고 춤동작을 그림으로 남기는 무보(舞譜)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원기자 ywyi@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경창헌 주한아르헨티나 대사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한반도와 지구상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면적은 한반도의 13배나 된다.남북 길이만도 3,694㎞에 이른다.21세기 세계가 필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천혜의 자원 보고(寶庫)로 불린다. 2차세계대전 전에는 세계 강대국의 하나였으며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경제적 곡절을 겪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 가깝다.중남미에서 가장잘사는 나라로도 평가된다. 아르헨티나의 21세기 밀레니엄행사는 남반구의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로서나름대로의 특색을 갖는다.지난 8월26일 출범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2000’이라는 조직이 모든 행사를 기획·추진하고 있다. 밀레니엄행사는 화려하고 장대한 규모 대신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서민 대중의 정서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주요 테마는 이민의 역사를배경으로 한 통합과 조화다.지향점은 물론 ‘21세기의 선진 아르헨티나’이다. 첫 행사는 지난 11~12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명한 빨레르모공원에서 치러졌다.‘이민자축제’였다.세계 60여개국 이민사회가 참가해 각국의 전통문화와 음식,풍물을 소개했다.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3만여명의 우리교포들도 참여해 고전 무용인 칼춤,부채춤,사물놀이 등을 소개했다.한국관에서도 한국 전통 음식과 묵화 붓글씨를 현장에서 소개했다.‘2002년 월드컵홍보’도 겸했다. 아르헨티나는 올 연말까지는 온통 문화축제로 꾸며져 있다.지난 21일부터는 전에 없던 기록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9월부터 연말까지 새 밀레니엄맞이 기념 마라톤대회,전통민속인 탱고축제,영화축제,문화의 밤 행사 등도전국 각지에서 행해진다. 금세기 마지막날인 12월31일 축제의 절정을 이룬다.부에노스 아이레스시를비켜 지나며 바다처럼 흐르는 거대한 ‘라 프라타’강에서 모든 요트와 크고 작은 배들이 동원돼 선상축제가 벌어진다.시내 20여개 공원에서는 불꽃놀이도 펼쳐진다. 같은 시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북방 1,600㎞에 위치한 살따주에서는 ‘구름기차’의 축제를 갖는다.이 열차는 12월31일 오후 3시 살따시를 출발,2000년 1월1일 0시에 4,220m 고지의 뽈로리야 철교를 지나게된다.2000년 들어 최초의 결혼식이 이 열차 안에서 치러진다.아래에서 보면 하늘로 향하는 듯한철교는 구름이 되어 천상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안데스 관광지인 바릴로체의 봉우리,일명 ‘성당의작은산’은 3만m에 이르는 전등 트리로 조성된다.12월8일 점등되어 뉴밀레니엄의 태동을 축복할 예정이다. 안데스산맥과 접한 멘도사주도 산악인들을 위해 12월31일 출발하여 하늘과가장 가까운 곳에서 2000년 첫 태양을 맞을 수 있는 남미 최고봉 아꽁까구아산(해발 6,962m)을 등정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그 역사가 말해주듯 이민사회로 출발하여 애환을 거듭하고 있다.선진국가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충정도 각별하다.아르헨티나는 서민 대중의 정열과 지혜가 흘러넘친다.새로운 2000년에는 한 걸음 앞선 선진,번영으로 연결될 꿈에 부풀어 있다. [慶昌憲 駐아르헨티나 대사]
  • 정선혜 ‘報恩의 춤사위’ 17일 국립국악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제 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인 이매방(75)의창작춤 ‘장검무’와 ‘무녀도’가 한 무대에서 재현된다. 이매방의 제자로 살품이춤 이수자인 정선혜(35)가 오는 17일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갖는 ‘초심’공연이 그것.‘장검무’와 ‘무녀도’‘승무’‘살풀이춤’등 6가지 춤을 선보인다. ‘장검무’는 중국 검무와 우리 전통 칼춤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춤.지난 59년 이매방이 ‘개인무용발표회’때 선보였으나 90년이후 공연된 적이 없다. ‘무녀도’는 무당춤의 연희적 요소를 예술적으로 승화한 창작춤.경기도 도당굿과 전라도 당굿의 무당춤을 기본 춤사위로 하여 굿판의 신명을 춤으로작품화했다.지난 54년 첫 공연됐으며 지난 90년 국립무용단의 김지수가 공연한 이후 처음이다. 두작품 모두 이매방의 50년대 인기 레퍼토리였으나 승무·살풀이와 달리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독창적인 춤사위와 의상,춤가락 등을 전수받을 젊은 춤꾼이 없었기 때문. 지난 90년 이매방의 문하에 들어간 정씨는 “선생님의 작품들을 한 무대에올리는 것은 처음”이라며 “‘장검무’와 ‘무녀도’는 시험무대라 어깨가무겁지만 열심히 연습해 선생님의 춤을 이어받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공연에서는 춤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이매방이 의상을 손수 바느질했으며 음악편집은 물론 공연당일 반주도 직접 맡는다.남기윤 백경우 박성호 김정기가찬조 출연,‘한량무’를 보여주며 양종승 민속학 박사가 해설을 맡았다. 강선임기자
  • [김삼웅칼럼] 5·18 진혼곡

    소돔과 고모라시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지만 까레시는 여섯명의의인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군사정권시대에 광주민주항쟁이 없었다면,그들 의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정신적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치 사육신의 의혈(義血)이 조선왕조의 건강성을 유지해온 역설과 비유될수 있겠다. 군사정권시대에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그들은 대부분이 일방적인 사법살인·암살·테러·의문사·고문치사의 희생자들이다.그러나 광주항쟁은 폭력집단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된 차이가 있다. 오늘(18일)은 광주민주항쟁 19주년이다.학살자와 부상자·‘시민군’이 살아 있는,그래서 어느 측면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동시대인들에게 194명의 사망자와 1,059명의 부상자를 낸광주학살은 불의와 폭력이 판치는 반이성의 시대로 각인된다. 고려 100년 동안 11명의 무신이‘칼로 칼을 갈고,피로 피를 씻는’폭력의논리가 지배한 이래 8백년 후 이 땅에서는 또다른 무인시대가 열리면서 반이성의 광란이 칼춤을 추었다. 고려 무신들은“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남김없이 죽이라”면서 학살을 일삼았고,나중에는 어용문인들만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현대의 무인정권도 비슷했다.무자비한 학살과 양심세력을 묶어놓고 그들을 추종한 반민세력과 어용문사들이 한시대를 주름잡았다. 아카시아꽃 향기로운 80년 5월,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꽃 한송이 꺾지 못하는 여린 학생과 시민들이,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찍어 죽이는학살자들을 상대로 무장항쟁에 나선 것은 나약한 시대의 양심의 불꽃이고 저항의 횃불이었다. 돌이켜보면 동학의 피울음,의병의 한맺힘,독립군의 애국혼,4·19의 민권의식이 합쳐서 마침내 광주민주항쟁의 불꽃이고 횃불이 되었던 것이다.우리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혼이요,당당한 저항의 맥박이었다. “내 손에 숨진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어떤 벌이라도 달게받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그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비밀경찰 책임자로킬링필드 대학살의 실무총장 두크(본명 카잉케프예프)가 최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말이다.그는 20년 만에 정체를 드러냈다.기독교인으로 변신한 이 학살자는‘죄값을 받겠다’고 뒤늦게나마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스페인내전의 장본인 프랑코는 독재와 학살을 참회하면서 내전 당시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 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우고,숨지기 전에 그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지금‘전몰자의 계곡’은 용서와 화해의 성지가 되었다. 얼마 전 5·18 관련 단체 회원 250여명이 당시 진압부대를 차례로 방문하여 용서와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부상자회와 구속자회·유족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편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광주항쟁의 민주와 평화정신의 맥락을 거듭 살피게 된다.가해자들이 여전히 5·18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으로 규정하고‘폭동 진압’ 자긍심을 느낀다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바로 까레의 의인정신과 연결된다 할 것이다. 5·18 당시 현장에 달려간 뉴욕타임스 기자는“광주시민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폭동(Violence)이 아니라 봉기(Insurrection)였다.나의 판단은 광주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고 썼다.민중봉기·민주항쟁을 폭동으로 호도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자들은 역사에대한 바른 안목을 갖고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캄보디아의 두크나 스페인의 프랑코보다 못한 학살자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지역색 조장이‘오역죄(五逆罪)’라면 양민학살과 참회를 모르는 죄는 무슨죄에 해당될까.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건립지원을 통해 역사적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기회에 5공세력도 피해자들이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펼 때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지역화합과 IMF극복에 동참해야 한다.그리하여 20세기의 불행했던업보를 모두 풀고 화합의 새 세기를 맞아야 한다.광주의 영령들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0)이애주 교수

    춤꾼은 발딛고 선 땅의 이야기를 허공에 퍼뜨리며 땅과 하늘을 잇는다.하지만 대개의 우리 춤은 관념적인 동작에 머무르며 현실과는 따로 놀았다.87년시위 현장과 노제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풀어낸 이애주교수(당시 40·서울대 체육과)의 ‘바람맞이춤’은 이런 통념을 깨뜨렸다. “춤의 본질은 인간의 건강성과 바르게 사는 법을 몸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긋나게 흘러왔지요.정부의 탄압과 사회현실을 모르쇠한 춤꾼들의 의식이 주요 원인이죠” 이른바 ‘시국춤’이라 불린 그의 춤작업은 당시 민족·민주운동의 상징이었다.‘춤꾼,더구나 국립대 교수라는 점잖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삐딱한(?) 선입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거친 무명옷을 입고 온 몸으로 불사르는 이교수의 춤사위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70년대초 음악의 이종구·김영동·김민기,마당극의 임진택·채희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문화운동 1세대와 어울리며 탈춤과 우리춤,민요 등을 연구했다.밤을 새며 토론한 내용은 동작이나 기교로서 탈춤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지혜였다. ‘조국은 하나다’(김남주시집) ‘대륙의 붉은 별’(모택동평전)등 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책들이 연구소를 채우고 있는 것도 그의 춤을 살찌워온 것이 ‘사회’였음을 보여준다.74년 ‘땅끝’ 공연을 준비하다가 경찰에끌려간 것이나 놀이패 ‘한두레’ 활동,탈춤보급운동 등은 그의 세계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변한다. “민주화운동 현장에 참여한 것은 저의 춤과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 줬습니다.예술과 현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값진 교훈을 주었죠.‘씨·물·불·꽃춤’을 담은 ‘바람맞이춤’도 역사와의 만남때문에 가능했지요” 생명을 잉태하는 ‘씨’와 그것을 살리는 ‘물’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고문에 대한 대항논리로 만들었고 권인숙을 고문했던 불지짐에서는 ‘불’을보았다는 이교수는 이 모든 양심들이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을 ‘꽃’에 담았다고 말한다.“누님은 사회가 춤을 추게해야 한다”는 당시 풍물패 후배 조경만교수(목포대)의 격려도 큰 힘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런 치열한 의식이 빚는 춤사위 덕택에 이한열,조성만,문송면(수은중독으로 사망),이석규(분신한 대우노동자)등 당시 열사들의 원혼은 비로소 구천을 떠날수 있었다.차마 감지 못한 눈들이 그의 살풀이춤을 빌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갔다.무대춤 형식으로는 맺힌 것을 풀어주고 극복하는게 불가능했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한열이가 최루탄을 맞고 죽는 장면을 재연하면서 베를 가르고 나가는데한열이 어머니가 실신하고 누나는 ‘한열이가 왔다’면 통곡합디다.할복 투신한 조성만의 거리춤 재연때도 비슷했습니다.제가 유족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역할을 한거죠” 과거를 회상하는 이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어 알듯 말듯한 미소로 표정을 바꾸었다.그 뜨겁던 역사의 현장에서 묵묵히 ‘춤’의 세계로 침잠할 때처럼.이교수는 역사의 현장과 잠시 거리를 둔 상황을 에두른다. “88년 범민족대회를 평가하는 모임에서 크게 실망했습니다.주체세력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보고는 ‘내 춤이 계속 여기 머물러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소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닐 바에는 차라리 들어 앉아 춤이나 정리하자고 결심했죠” 그동안 10년이 흘렀다.사람들은 ‘이애주가 운동권과 단절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어떤 이는 ‘역사의 현장에서 춤의 뿌리로 돌아왔다’며 애써 이애주의 변신(?)을 반겼다.모두 단편적이고 좁은 시각이었다.모두 그의 춤에서 현실 참여만을 떼서 본 탓이다.애초에 둘은 따로 있지 않았다.그는 전통춤에서 저항이라는 뿌리를 보았던 것이다. “우리춤을 계승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에서 ‘운동권 단절’ 운운해 당황했습니다.무엇보다 운동권에 누를 끼친 것같아 미안했습니다.하지만 저는 결코 단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애주에게 춤은 무엇인가.어릴 때에는 몸에서 배어나온 ‘흥’이었다.아버지 직장의 야유회 여흥시간은 그의 무대였다.‘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알아본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민요나 전통춤을 그럴듯 하게 흉내내는 딸을 데리고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 전신)로 갔다.민요춤 소고춤 칼춤을 배웠다.그곳에서 한성준류 ‘승무’를체득했던 김보남선생을 사사한 것은 ‘운명’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그를 눈여겨 본 한영숙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보유자)은 첫 제자로 받아들였다.이애주에게는 몸에 익은 춤사위였다.그러나 한때 스승은 제자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춤만 배울 것이지 이상한패거리들과 어울리다 자신의 연습장에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나,툭하면 형사들이 찾아와 ‘이애주에게 무얼 가르쳤소’라고 다그치곤 했기 때문이다. “저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어요.내색은 않으셨지만 좋아하지 않으셨죠. 나중엔 이해해 주셨는데 제 마음속의 미안함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최근 이교수는 고구려 벽화에 푹 빠져 있다.그림속 고구려인들에게서 우리춤의 원형을 보았다.그곳에서 새 밀레니엄을 우리식으로 열어 젖힐 방도를찾고 있다.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그는 다른 약속장소로 향했다.멀리보이는 관악산 위에 그의 단아한 몸이 떠오르면서 수많은 집회·장례식장의 춤이 겹쳐졌다.87년 대통령선거때 백기완후보의 TV유세 찬조연설를 하는 강렬한 인상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하얀 장삼과 붉은 가사,남색 치마를 입고 북채를 들고 있다. 부드럽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날카로운 춤사위로 개인의 번민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토해 내고 있다.그 속엔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통과해 온그의 큰 깨달음이 들어 있었다. - 그의 길(이애주 교수) 47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 54∼63년 ‘이왕직 아악부’에서 김보남 사사 59∼61년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대회 3년 연속 우승 64년 문화공보부 신인무용경연대회 특상 65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입학,석사 학위,서울대 국문과 편입 졸업 6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한영숙 사사 82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전통무용 전임강사 83년 공간 전통예술의 밤’ 공연 95년 서울대 정교수 96년 무형문화재 지정 98년 ‘이애주 춤’ 공연
  • 창무극단 21일부터 뮤지컬 ‘광개토대왕’ 공연

    ◎대륙 호령하던 대왕의 웅혼한 기상/고구려 벽화·사과 바탕/백성들 삶·전투장면 재현 시대 상황도 날씨도 모두 춥다.아직 멎지않은 구조조정 바람에 몸과 마음의 움츠림은 여전하다.뭔가 어깨를 펼만한 일이 없을까. 서울 창무극단(대표 오현주)이 21일부터 2주일 동안 공연하는 뮤지컬 ‘광개토대왕’은 힘이 있는 무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던 광개토대왕의 발자취와 업적을 담았다.연출을 맡은 오현주씨는 “이번엔 광개토대왕의 업적보다는 관용·생명존중 등 인간적인 고뇌에 무게를 두었다”면서 “웅혼한 기상과 투철한 미래관,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배울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힌다.이어 “고구려벽화 등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재연한 백성들의 삶이나 전투장면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95년 추석때 초연해 화제를 모았다.이번에도 당시의 방울놀이,칼춤,풍물놀이,장대타기,공돌리기 등 흔히 볼 수 없었던 고구려시대의 전통유희들을 가득 담았다. 특히 고구려 탈춤놀이는 백제로 넘어간뒤 일본에 변형되어 가부키가 된 것으로 탈춤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아울러 전통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나 우리 민족 고유의 운율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해석하는 등 민족문화의 현대적 계승도 시도한다. 1막은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개토대왕이 옛 영토를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중국 후연과 백제와의 갈등 등을 다루고 2막은 남으로 북으로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을 담았다.찌들대로 찌든 시야를 넓히며 민족의 웅지를 펴는 자리가 될듯.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첫날 1회 오후 7시,평·토 오후 4시 7시30분,공휴일 오후 3시 6시30분.(02)525­5100
  • 매카시 망령 무엇을 노리나/金三雄 상무·주필(時論)

    우리 시대의 대표적 정치학자로 꼽히는 崔章集 교수의 사상이 의심스럽단다.지금까지는 멀쩡하다가 金大中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사상이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언론 ‘사상 칼춤’ 그것도 검찰이나 정보기관이 아닌 월간조선이 칼질을 시작했다. 5년전 金泳三정권 초기 총리 겸 통일원장관에 취임한 韓完相 교수를 사상 문제를 제기하여 결국 퇴진시킨 바 있는 일부 언론이 다시 ‘사상 칼춤’을 추고 나섰다. 金泳三 정권은 韓부총리의 퇴진을 계기로 개혁이 좌초되면서 수구세력에 둘러싸여 참담한 국정실패를 가져왔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국민들은 崔교수에 대한 ‘사상 칼춤’이 무엇을 노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 용공선풍을 일으켰던 매카시는 교묘한 과장법으로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정보관련기록의 ‘반역’을 ‘반역자’로 묘사하고, ‘피의자’는 ‘중요한 피조사자’,‘러시아 이름을 가진 세명’은 ‘러시아인 3명’, ‘고위관리’는 ‘고위 관리들’,‘첩보원’은 ‘첩보원들’로 조작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포섭대상’은 ‘소련의 첩보원’,‘친공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바꿔서 활용했다. 또 ‘자유주의적’이란 문구는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이란 표현으로,‘공산주의 동조자’는 ‘활동중인 공산주의자’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단어를 조작하여 억지 공산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결과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역죄로 기소되어 처형되고, 원자탄제조를 지휘했던 오펜하이어 박사마저 반역죄로 몰려 처벌받게 되었다. ○반공 내용 철저 외면 그러나 허위나 조작이 오래 가기는 힘들다. 웰치 변호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덜미가 잡힌 매카시는 병역사실의 조작등 개인 비리까지 드러나 탄핵되면서 미국사회의 매카시선풍은 사라졌다. 한국사회의 매카시즘은 아직도 기승을 부린다. 월간조선의 崔교수에 대한 모해는 언론 매카시즘의 전형이다.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하여 문제삼고 崔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한국정치학회 성명)는 바로 그대로이다. 학자의 연구성과, 특히 대통령자문위원장의 논문이 조명되고 바판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논문의 전체를 비판해야지 단어 몇개 문장 몇 구절을 토막쳐서 문제를 삼는것은 정당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월간조선은 崔교수의 글에서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 몇 구절을 뽑아서 사상에 붉은색을 칠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반공적 내용은 철저히 외면한다. 예컨대 “주체사상은 불가오류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는 대중동원의 이념적 기제로서 작용하여 왔다. 이제 주체사상은 민중이 오직 하나의 정점에 의해 지도되고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민중소외, 민중대상화의 기능을 탈피하여 문자 그대로 민중주체의 민중자율성의 원칙과 이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한국전쟁의 한 해석’) 이 구절은 북한의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 내용만 떼어내 읽으면 崔교수는 극우적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권 상처내기 외도 월간조선의목표는 崔교수가 아니라 金大中 정권이다. “崔교수가 관계한 ‘제2건국운동’은 어디로 가나”란 광고문에서 나타나듯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2건국운동, 나아가 金大中 정권에 용공의 너울을 씌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정부를 비판하고 학자를 비판하는 행위는 언론의 본질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공정성과 사실성에 입각해야 한다. “학자의 학술 연구를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한국정치학회)이며, “언론이 표피적으로 왜곡된 사실로써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崔교수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김학준 인천대총장) 매카시즘이다. 한국언론과 정계일각에 똬리를 튼 매카시 망령을 박멸하는 길은 없는가.
  • 최승희 춤 재현 백향주 춤판

    한때 조선예술사의 잘려나간 반쪽에 속해 있었던 최승희.그 최승희의 춤을 재현한다는 북한 국적 무용수 하나가 29∼30일 하오 7시30분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주인공은 재일교포 4세 백향주. 최씨는 한국무용사가 세계에 내세울 만한 무희.30년대 ‘신무용’ 선구자로 중국,일본에서까지 각광 받으며 315개나 되는 안무를 만들었지만,46년 월북하며 남에서 묻히고 60년대 숙청돼 북에서도 사라졌다.해빙무드를 타고 80년대 말에나 재조명이 시작됐다. 방년 23세의 백씨도 중국·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은 실력파.무용가였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3세때부터 춤을 춘 백씨는 15세때 북경 중앙민족대학 무용학부에 유학,최우등으로 졸업한다.최승희 춤을 배우게 된건 최씨 양자로 알려진 북한무용가 김해춘 문하에 들면서.이때 사사한 레퍼토리로 일본공연에서 ‘최승희의 재래’라는 격찬도 받았다.그런가하면 한국에서도 전통무용가 정민을 사사했고 몽골,위구르,타이,티벳 등 아시아 춤도 두루 익혀 무용세계를 넓혀온 학구파. 공연은 ‘우조춤’,‘초립동’,‘무당춤’,‘칼춤’,‘고구려무희’,‘관음보살무·비천무’ 등 말로만 듣던 최승희 춤의 정수를 눈으로 만날 기회.598­8277.
  • 내년 세계연극제·과천 마당극 큰잔치 49개 작품 선정

    「97 세계연극제,서울·경기조직위원회」(위원장 김의경)는 이 행사의 공식 초청작품을 1차로 선정했다. 조직위는 내년 8월30일∼10월16일 열리는 이 연극제에 국내 8개,해외 15개 작품(12개국) 등 27개 작품을 공식초청했으며 내년 9월14일∼10월7일 열릴 경기도 과천 세계마당극큰잔치의 초청작은 국내 12개,해외 15개 작품(14개국) 등 27개 작품을 선정했다. 참가단체와 공연명은 다음과 같다. ◇세계연극제 △국내 공식초청작 ▲백마강 달밤에(목화) ▲오구(연희단거리패) ▲오장군의 발톱(미추) ▲날 보러 와요(연우무대) ▲산씻김(세실) ▲봄날(비파) ▲고도를 기다리며(산울림) ▲사천 사는 착한 여자(한양 레퍼터리) △해외 공식초청작 ▲안티고네(그리스·아티스극장) ▲죄와 벌(러시아·타강카극장) ▲암로디 영웅담(아이슬랜드·반다멘극단) ▲맹도견(일본·신주쿠양산박) ▲도쿄 게토(〃·극단해체사) ▲위대한 의사 야부하라(〃·지인회) ▲야종(중국·상해활극단) ▲마드야마 비아오감(인도·소파남) ▲노래삼부작(미국·더블 에쥬) ▲약속의 땅(캐나다·레데몽드) ▲룻기(라트비아·뉴 리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베네수엘라·라하타블라) ▲카이다라의 전설(아이보리 코스트·야마코극단) ▲카포니노와 니(프랑스·콤파뉴 이마쥐 애귀) ◇세계마당극 큰잔치 △국내초청작 ▲서울말뚝이(민예극장) ▲여시아문(전망) ▲점아점아 콩점아(아리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전주연극협회 전북지회) ▲밥(길라잡이) ▲칼노래 칼춤(놀이패 한두레) ▲날거라 아침 갈매기야(부산놀이패 자갈치)▲일어서는 사람들(광주〃 신명) ▲아줌마 만세(대전〃 우금치) ▲노동자를 싣고 가는 9대 버스(한강) ▲동이풀이(제주놀이패 한라산) ▲대동풀이 판굿(청주〃 열림터) △해외초청작 ▲르 페플럼(프랑스·루아이얄 드 뤽스) ▲웃길 것인가 말 것인가(프랑스·레잘라마스 지브레) ▲인간분수(영국·아반디 디스플레이) ▲무당 포폰(콜롬비아·탈러) ▲로미오와 줄리엣(브라질·갈파오) ▲솔로몬자식들의 의식(인도네시아·랜드라) ▲브로큰 버드(싱가포르·프렉티스 시어터) ▲해마(일본·대낙타함) ▲히니라우드(필리핀·CCP) ▲오색코끼리(홍콩·명일) ▲그들이 공유한 것(미국·핑총) ▲라과다서커스(아르헨티나·라과다)
  • 농악무으뜸… 아박무·접시춤 등 창작(연변조선족 1백년:14)

    ◎오늘의 삶에서 억척의 생명력을 다시본다/민속춤/사회주의 영향 마당놀이서 무대예술로 변모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을 조감해 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가치있는 일이다.특히 해방전의 이주민들이 펼쳐온 놀이마당을 전통과 변화라는 시각에서 검토하는 것은 한국 전통예술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 1백년을 회고해 볼 때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은 조국보다 훨씬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밟았다.우선 해방후 중국 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이란 위상확립을 위해 몸부림을 쳤고 문화혁명시기에는 갖은 탄압을 받아가며 예술활동의 위축을 겪어야 했다.그리고 북한의 끈질긴 교화를 받으면서 지내오다 최근에는 한국의 영향으로 예술활동의 변화라는 파도를 타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에 근거를 둔 전통예술성은 굴절하지 않고 맥을 이었다.특히 이주로부터 해방까지의 예술활동 중에서 춤과 노래를 조명해 보면 조선족의 의식이 가장 잘 표출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촌마을 농악대 유명 이 시기에 연희되었던 민속춤으로는 승무·농악무·남무·한량무·살풀이·강강술래 등이 있다.이밖에 「아박무」가 있다.구전에 의하면 「아박무」는 1923년 봄,안도현 송강 송화의 한 골짜기에서 발생했다고 한다.그러나 조국으로부터 그대로 옮겨 온 전통춤 중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농악이 으뜸이다.가장 먼저 농악대가 구성되어 연희된 곳은 1928년 왕청현의 어느 마을이라고 하나 규모있고 영향력을 가진 농악대로서는 1938년 길림성 안도현의 신촌마을이다. 경남의 이주민 1백여가구가 1938년 이곳에 자리 잡았다.그들이 올 때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 농악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도구를 휴대해 왔다.그들은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악을 울리며 피로를 풀고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그후 1941년 남사당패에서 농악을 추었다는 광대 이원보씨를 전라도로부터 모셔와 본격적으로 연수를 받았다.이리하여 20명 내외로 구성된 신촌농악대는 마을 마당놀이(지신밟기)·두레굿·집돌이농악의 수준을 넘어서서 무대에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의 마을농악대를 조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속춤 중에서는 「쾌지나 칭칭나네」가 가장 많이 추어졌다.특히 정월보름날 줄다리기에 나가기 위한 선행놀이로서 이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해방전 동북 3성의 조선족 마을에서 주로 재인들에 의해 추어진 민속춤으로는 승무·탈춤·칼춤·학춤·사자춤·수박춤·양산도 등을 들 수 있다.물론 이것들은 전문 광대들에 의해 무대에서 추어진 것들이 태반이다. ○항일투쟁 춤도 등장 이금덕(1922·전남태생)은 이리 권번에서 노래·기악·춤을 익히고 40년대에 이주하여 「양산도춤」과 「수건춤」을 보급시켰다.김선덕은 14세 때 평양권번에 들어가 음악과 무용을 익히고 이주후 「칼춤」과 「남무」를,김재산(1890·강원도출생)은 1914년 길림성 안도현으로 이주하여 「학춤」과 「거북춤」을 퍼뜨렸다.조정숙(1928·평양출생)은 8세부터 기예를 배워 활동하다가 해방후 이주하여 「승무」 「한산춤」 「봉산탈춤」등을 추었다.이밖에 박정록과 김학천 같은 예인이 있다. 특히김학천의 「수박춤」은 유명하다.김씨네 집안에서 5백년이나 전승된 춤이라고 한다.알몸으로 허리엔 짐승가죽을 두르고 맨발로 추는 이 춤은 악기라고는 물을 담은 큰 함지안에 작은 함지박을 엎은 것인데,이를 두드리는 정도이다.이 두닥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연희자가 두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 손으로 자기 몸을 치면서 추는 춤이다.도중 갖가지 새소리와 짐승소리를 낸다.사냥꾼의 모의춤이라 할 수 있는 이 춤의 끝은 맹수를 정복한 사냥꾼의 희열로 끝난다. 박정록이 전수시킨 「접시춤」은 30년대부터 훈춘지방에서 추어진 것인데 이 지역에서 자생된 춤으로 알려졌다. 해방전의 중국조선족의 춤을 말하면서 항일투쟁배경에서 자생한 몇가지 춤들을 빠뜨릴 수 없다.항일 전투가 지속되는 긴박감 속에서 여성대원들이 군복을 누벼나가는 모습을 극화시킨 여성군무인 「재봉대원의 춤」을 비롯해서 「기병대 춤」「무장춤」등이 1930년대부터 항일투쟁 집단에서 연희 되었었다. 그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도 중국에서 무용활동을 했다.그로인해 조선족의콧대를 한층 높여준 결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춤의 예술적 경지를 한층 높이는데도 몫을 했다.최승희 편력을 살필 여유는 없지만 그녀는 1912년 서울 태생으로 14세 때 도일하여 혀대무용과 발레를 배운 세계적 무용수이다.1930년 조선경성공회당에서 처음 귀국공연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은 일약 아시아로부터 유럽·미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최승희가 중국에서 활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부터이다.당시 조선족이 10만여명이 살고 있었던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최승희가 공연을 했다. ○최승희 무용 큰 호평 최승희의 창작춤들은 한국전통의 춤사위를 되살려 새로운 감각과 창조성을 가미시킨 것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당시 중국 경극계에서는 『노래를 위주로 했던 재래의 경극은 최승희무용의 영향을 받아 끝내는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마당놀이에서 출발한 농악이 섬세한 기예의 독창성을 살려 무대 「농악무」가 되었고 따라서 민속춤의 대부분이 무대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르렀다.이를테면 「탈춤」과 같은 여러 춤들이 무대에오르게 되자,마당놀이로서의 민속춤은 차차 위축되어 「쾌지나 칭칭나네」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사회주의가 민중의 소박한 놀이를 무대예술로 자리바꿈 시켰다는 사실은 오늘의 중국 조선족 예술활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제1회 민족춤제전 펼친다/민예총주최,새달1∼3일 서울문예회관대극장

    ◎문화개방시대맞아 우리춤 새활로 모색/전통·현대무용·발레 등 12개단체 참여/남북통일주제 「너를 찾아서」「뜨거운 봄」 눈길 문화개방시대를 맞아 「우리춤」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제1회 민족춤제전이 4월1일부터 사흘간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춤위원회(위원장 강혜숙)가 마련하는 이번 행사는 전통무용·현대무용·발레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12개 단체가 대거 참여,범무용계의 화합의 춤판으로 꾸며질 예정이어서 관심. 특히 우리 고유의 정신이나 정서와 유리,「춤꾼들만의 춤」에 머물러온 기성 무용계 풍토에 대한 반성과 함께 경쟁력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민족춤 양식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한층 의의를 더한다. 이번 공연에는 민족춤계의 문호개방 방침에 따라 민족춤위원회 소속단체가 아닌 ㄹ무용단과 황미숙무용단이 동참해 눈길을 끈다.서울시립무용단 배정혜단장이 산파역을 한 ㄹ무용단(대표 김현미)이 선보일 작품은 「나무가 우는 밤」.현대문명의 찌꺼기와 자연이 만나면서 빚어지는 혼돈과 암울함을 통해 환경과 인간의 조화를 모색한다.또 황미숙무용단은 인간내면의 성찰과 자연에의 동경을 무용언어로 그리는 「어느 에세이」를 무대에 올린다. 진보춤계의 최초의 제전인 이번 공연에는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발레와 마당춤으로 풀어보는 「너를 찾아서」(조기숙 발레단)·「뜨거운 봄」(강혜숙 춤패)등 2개의 시의성있는 무대도 마련됐다.이 가운데 특히 「너를 찾아서」는 가상의 통일이후 유치원 학생들이 박물관을 견학,지난 시대의 왜곡된 역사유물을 통해 실천적인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을 발레형식에 담은 이색무대.이밖에 동학농민혁명 당시 돌려졌던 사발통문의 의미를 되새기는 「백년전 백년후」(춤사랑 해오름),이기적 삶의 파괴성을 우리 고유의 시나위 가락으로 표현한 「시나위」(정옥조 현대무용단),새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아기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춤패 배김새)등도 기대되는 작품이다.한편 이번 민족춤제전에서는 야외공연도 병행,4월1일 옥내 극장춤공연에 앞서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동학혁명 1백주년을 기리는 「검결­칼노래 칼춤」을 전야제 형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민족춤위원회 강혜숙위원장(청주대 무용학과 교수)은 『이번 민족춤제전은 우리춤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통일시대의 준비를 위해 새롭게 요청되는 「대안의 춤문화」형성을 목표로 하고있다』며 『앞으로 이 행사를 연례화,민족춤의 세계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성춤계에 대한 자성의 바탕위에서 마련된 이번 민족춤제전은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등으로 구획된 무용계의 경직된 3분법적 사고를 벗고,단체의 색깔을 초월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분파주의에 젖은 우리 무용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1백주년 특별공연/동학농민군 함성 무대위에 넘친다

    ◎뮤지컬 「징게…」·민족가극 「금강」·무용극 「녹두꽃…」 등 다채/「들풀」/우금치서 전사한 농민군 이야기 극화/「녹두꽃…」/동학난 당시 시대상 현대시각서 조명/4월22일∼6월7일 전주서 10여팀 참가 기념연극제도 동학 농민군의 함성이 무대위에 넘친다.동학혁명 1백주년을 맞은 공연계는 기념연극제·뮤지컬·무용극등 다양한 장르의 특별무대를 마련,동학혁명의 의의를 새롭게 조명한다. 현재 공연을 준비중인 무대는 민족예술총연합회(민예총)가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연극제와 역사뮤지컬「들풀」(극단 모시는 사람들),창작무용극「녹두꽃이 떨어지면」(서울시립무용단),민족가극「금강」(가극단 금강),뮤지컬「징게 맹개 너른들」(서울예술단)등. 민예총은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후 문예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오는 4월22일부터 6월7일까지 전주 시내 각 소극장에서 「동학기념연극제」를 펼친다.현재 참가를 신청한 단체는 「우리동네 갑오년」(대전·우금치극단),「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대구·극단 함께하는 세상),「칼노래 칼춤」(서울·부산 극단 한두레·자갈치회)등 10여팀.연극제 기간중에는 전야제 형식의 마당극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25일부터 서울 연강홀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들풀」(김정숙 작,권호성 연출)은 동학혁명 최후·최대의 격전장이었던 우금치 전투에서 죽어간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황해도 굿 무형문화재 박남희씨를 비롯,김호정 장진등 모두 30여명의 배우들이 민초로 출연,시대를 뛰어넘는 민중의 건강한 모습을 연기해낸다.연출자 권호성씨는 『이 작품은 이 땅의 들풀들이 자신을 짓누른 역사의 껍질을 온몸으로 걷어내며 새하늘,새세상을 열어가는 사랑과 분노의 이야기』라며 『5년간의 기획끝에 탄생되는 노작인만큼 이를 통해 동학혁명이 단순히 죽어버린 과거의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될것』이라고 자신했다. 서울시립무용단이 창단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녹두꽃이 떨어지면」(김용범 작,황두진 연출)도 주목할만한 작품.동학난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을 오늘의 시각에서 조명,「과거의 전봉준」이 아닌 「미래의 녹두장군」을 그린다는 것이 기획의도다.특히 기존의 스토리 위주의 무용극 구성방식에서 탈피,대형무대에 어울리는 현대화된 새로운 한국 춤사위를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무용공연과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계획도 갖고있다.시립무용단의 터줏대감인 한상근씨 등의 안무로 80여명의 무용인들이 출연하는 초대형무대로 꾸며진다.공연은 4월19,20일 하오7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밖에 서울예술단의 「징게 맹개 너른들」(김제 만경 넓은들,부제 「녹두장군」,김효경 연출),신동엽시인의 대서사시「금강」을 각색한 「금강」(문호근 연출)등이 각각 4월,8월중에 선보인다.특히 1백여명의 배우들이 꾸미는 초대작「징게 맹개 너른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구전민요로 널리 알려진 녹두장군 전봉준의 진보사상을 동학난의 시대적 필연성이란 새로운 관점에서 극화할 방침이어서 관심.한편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이같은 대작들의 잇단 출현은 우리 민족운동사의 커다란 분수령을 이룬 동학혁명을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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