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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오 ‘인천 조폭 난투극 대응 비난’에 항변

    조현오 경찰청장의 ‘강성 리더십’이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인천 조직폭력배 유혈사태’에 따른 경찰의 무더기 징계와 대대적인 감찰과 관련,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조 청장의 ‘내 탓’이 아닌 ‘네 탓’식의 강경 조치가 역풍을 맞은 꼴이다. ●내부망에 반박글… 갈등 고조 인천남동경찰서 강력팀 전모 경위는 조 청장의 “조폭에 주눅든 경찰”이라는 발언에 대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는 글을 지난 26일 경찰 내부망에 올렸다. 반박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전 경위에 따르면 남동서 강력3팀 5명은 지난 21일 상황실로부터 조직폭력배들 간에 충돌 기미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전기충격기인 테이저건 등을 챙겨 남동구 구월동 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도착 당시 조폭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것을 보고 전 경위가 상황실에 지원을 요청하던 중 형사기동대 차량 뒤쪽 30여m 떨어진 곳에서 남자 2명이 뛰어왔다. 형사들이 이들을 붙잡았지만 이미 조폭이 다른 조폭을 흉기로 찌른 상태였고, 다시 한번 찌르려고 하는 순간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현장에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전 경위는 “우리는 꽁무니를 빼지 않았고 목숨을 걸었다.”며 “우리가 죽고 없어도 동료들이 끝까지 추적해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막내 형사에게 채증을 시켰다.”고 밝혔다. 폐쇄회로(CC)TV 영상 가운데 뒤에서 뛰어다닌 사람들은 조폭이 아닌 강력팀원들이었다고도 했다. 앞서 조 청장은 “조폭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경찰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고 질타했다. ●“부하 직원에 책임 떠넘기기” 반발 그러나 전 경위의 글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조회건수가 1만건을 넘어서고 관련글이 500여개나 올랐다. 경찰의 관심도 뜨겁다. 일선 경찰들은 “조 청장이 사건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것도 모자라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비판했다. 경찰청 감사과는 “사건의 문제는 강력 3팀의 출동 지연에 있다.”는 취지의 해명을 올렸다. 조 청장은 불미스러운 사고가 날 때마다 경찰관에게 적극적으로 총기를 사용하라는 발언을 반복했다. 벌써 세 번째다. 인천 장례식장 폭력조직 간 칼부림을 경찰이 막지 못하자 “총은 뭐하러 들고 다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총을 쏜 뒤 책임은 현장 경찰관이 지는데 차라리 칼을 맞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해임과 파면 등 문책성 징계가 잦은 탓에 해임과 파면의 앞글자를 따 ‘해파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조 청장은 서울 구로구 장례식장 비리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를 이유로 영등포·구로서장, 서울경찰청 청문감사관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조 청장은 27일 오전 예고 없이 마련한 강남권 3개 경찰서 간담회를 위해 강남경찰서를 방문, “경찰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한 최종 책임은 청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학준·백민경기자 kimhj@seoul.co.kr
  • “총 쏴서라도 조폭과 전쟁 관용은 없다”

    “총 쏴서라도 조폭과 전쟁 관용은 없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25일 인천 장례식장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들의 유혈사태와 관련, 연말까지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또 “적어도 조폭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모든 장비·장구를 동원토록 하겠다.”면서 “총기도 과감하게 쓰겠다.”고 밝혔다. 조폭과의 전쟁에서는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겠다.”면서 “불관용”이라고 강조했다. 조 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인천에서 조직폭력배 사이에 칼부림이 나는 과정에서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두렵다고 꽁무니를 빼면 경찰이냐. 총은 뭐하러 들고 다니느냐.”고 질타한 뒤 “총기라도 과감하게 사용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깍두기’ 단체경례 경범죄 처벌 이어 “경찰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찰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직원과는 함께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공공장소에서 깍두기 머리(조폭의 속칭)로 90도 경례해 선량한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경범죄로 처벌할 근거가 있다.”면서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매주 내부비리 척결회의 특히 “(관리 대상) 조폭 5451명이 생계 수단을 무엇으로 하는지도 철저하게 추적하겠다.”면서 “건축회사 등 기업활동을 하는 조폭의 배후도 파헤치겠다.”고 천명했다. 기업형 조폭도 수사대상인 것이다. 조 청장은 “경찰청 차장이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고 경찰청장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내부 비리 척결회의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교통사고 처리나 장례식장, 각종 허가 과정에서 구조적인 비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척결 못하는 곳 승진 줄일 것 그러면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실적을 지방청별로 따져 잘하지 못하는 곳에는 총경이나 경정 승진 할당량을 과감하게 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출근길 지하철서 ‘묻지마 칼부림’

    6일 오전 7시 35분쯤 서울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에서 신대방삼거리역으로 향하는 전동차 안에서 임모(51)씨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승객 이모(62)씨의 허벅지를 23㎝길이의 흉기로 찌르는 ‘묻지마 흉기 난동’을 벌였다. 승객 2명이 다치고 200여명이 몸을 피하는 등 열차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임씨는 전동차가 신대방삼거리역에 정차한 뒤 신고를 받고 나온 역장 김모(51)씨의 무릎에도 상처를 입혔다. 피해자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임씨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와 칼을 휘두르길래 가방으로 겨우 막았다.”고 진술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6일 임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뚜렷한 범행 동기가 없는 ‘묻지마 사건’으로 보인다.”면서 “구체적인 범행동기와 흉기를 갖고 있었던 이유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금천구의 한 병원에서 췌장파열 등으로 수술 후 입원치료를 받다가 지난 4일 병원을 무단 이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아파트 단지 지하실에서 남자 3명이 죽은 채 발견됐다. 2명은 날카로운 흉기에 찔리고, 다른 1명은 목을 맨 상태였다. 단지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한달 전 일어난 ‘울산 아파트 지하실 살인사건’은 폐쇄된 근무환경과 동료간 불신이 만들어낸 허무한 참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온 3구의 시신, 이들의 관계는?  지난달 20일 오전 8시 40분.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비상발전실에 이곳 설비기사 A(46)씨가 출근했다. 3인 3교대로 24시간씩 돌아가는 순환근무에서 이날은 A씨의 근무 차례였다. 그러나 A씨는 이날 일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었다. 앞서 근무를 마치고 맞교대자인 A씨를 기다리고 있던 B(65)씨를 보자 그는 다짜고짜 칼을 꺼내들었다. 이어 B씨의 목과 배 등을 무참히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B씨의 시신이 있는 비상발전실 문을 걸어잠근 뒤 태연히 근무를 했다.  A씨는 다음날 아침에도 전날과 같은 방법으로 출근한 C(56)씨를 살해했다. 이틀에 걸쳐 동료 2명의 목숨을 빼앗은 A씨는 발전실 천장 배관에 목을 매 자살했다.  3명의 시신은 22일 아침조회에 C씨가 안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일단 겉으로만 보면 누가 누구를 살해하고 자살을 했는지가 분명했다. 직장 내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살인의 흔적들. 하지만 제3자 개입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되는 게 수사의 기본이다. 또한 그들끼리의 칼부림이었다고 해도 왜 그랬는지 원인은 캐내야 할 터.  숨진 3명이 근무한 아파트는 700여 세대가 사는 중급 규모의 단지였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21~22일은 주말이어서 이들 외에 다른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또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도 이들과는 다른 업체여서 서로 관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3명이 같이 일을 한 기간이 거의 4년이나 되는데도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다툼이 있었는지 등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범행장소인 비상발전실은 단지 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경찰은 “지하 계단이 상당히 높은 데다 구석진 곳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망자 3명 외에 다른 사람은 드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도 난항을 겪었다. 2명을 살해한 A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이래야 1년에 1, 2차례 만나는 정도였다. 그의 형은 동생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B씨와 C씨의 가족들 역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피살자들이 갖고 있던 수첩이었다.    ●책상에서 발견된 2개의 수첩…“나한테 감정 있나?”  숨진 3명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씨는 자기가 다른 2명으로부터 심하게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B씨와 C씨는 그런 상황들을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해 놓고 있었다. 정황을 정리하면 A씨와 C씨는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3명 가운데 가장 직급이 높은 C씨에 대한 불만을 A씨는 B씨에게 털어 놓았고, 마찬가지로 C씨도 나이가 가장 어린 A씨에 대한 비난을 B씨에게 얘기했다.  다음은 B씨의 수첩에 적힌 내용.  “C가 토요일 당직근무 때 내가 잠을 자는지 확인하러 온다고 하더라.”(A씨)/ “나는 기억이 안나는데.”(B씨) / “A는 자기가 부소장인 것처럼 굴어. 지난번에 소화전 점검하고서 과장한테 고자질한 것 같더라. 나한테 감정 있나봐.” (A씨)  또 다른 메모에는 A씨에 대한 C씨의 불만이 적혀 있었다. “(A는)관리소장과 상담하면서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하고 남들 험담만 한다.”, “근무 교대시간이 너무 늦는다.”, “(젊은 사람이)예의가 없다.” 등 내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분석에서도 다른 외부인의 침입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났다. B씨와 C씨의 사망시점도 그들의 아침 출근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경찰은 A씨가 두 사람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계획된 범죄?  혼자 생활하던 A씨는 모든 것을 계획했던 듯 자기집을 깨끗이 정리한 상태였다. 사건을 담당한 울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 진술을 받을 수 없지만 A씨가 범행 전 살의를 가졌을 수 있다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세 사람의 갈등은 3구의 시신과 1개의 흉기, 2개의 수첩만을 남긴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경찰은 A씨가 B씨와 C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담배 한값 사려고 살인 저지른 15세 소년 충격

    “담배 한갑 사려고…”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남아프리카 공화국 북서주에서 담배 한갑 살 돈을 마련하고자 살인을 저지른 15세 소년이 체포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소년은 지난 13일 저녁 19세의 다른 친구와 함께 길 가던 한 남성(57)을 공격했다. 이들이 이 남성을 공격한 이유는 담뱃값 1.20랜드(한화 약 180원)가 필요했기 때문. 갑작스러운 소년들의 공격에 이 남성은 격렬히 저항했고 결국 칼부림이 일어나 남성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소년 두명은 즉각 현장에서 도주했으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15세 소년만 붙잡혔다. 현지경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소년들이 훔친 돈은 고작 담배 한값 살 돈이었다.” 면서 “일자리도 없는 우울한 세태가 생명 경시 풍조까지 낳고 있다.”고 밝혔다. 남아공 북서주 경찰 측은 이 15세 소년을 살인 및 절도혐의로 구속했으며 달아난 다른 한명을 추적중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부킹녀 알고보니 ‘바가지 술값’ 알바녀

    부킹녀 알고보니 ‘바가지 술값’ 알바녀

    지난 3월 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근처 클럽에서 이모(28·일용직·경기도 고양시)씨는 두 여성을 만났다. 이들은 “클럽이 시끄럽다. 다른 술집으로 옮기자.”며 이씨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계속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지 두 시간 정도 지난 뒤 무려 130만원이나 되는 계산서를 받은 이씨가 종업원에게 따지는 사이 두 여성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 술값을 계산한 뒤 집에 돌아온 이씨는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다 급기야 흉기을 들고 다시 술집을 찾아가 소란을 피웠다. 종업원이 신고하려 하자 도망치던 이씨는 우연히 마주친 외국인 여성 L(28)씨의 손에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됐다. 이른바 ‘홍대 앞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트위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우연한 만남을 가장, 손님을 유인한 뒤 바가지 술값을 씌우는 사기 사건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서울마포경찰서는 11일 서교동 O술집 주인 김모(28)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또 다른 술집 주인 정모(31)씨 등 7명을 입건했다. 또 이들과 짜고 나이트클럽 등에서 손님을 유인한 지모(20)씨 등 아르바이트 여성 17명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 업주들은 ‘신종 알바’라는 전단지를 뿌려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았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대부분은 20대 대학생이었지만 미술학원 강사 등도 포함돼 있었다. 업주들은 이들을 서울·경기 일대 유명 나이트클럽 등으로 보내 20~30대 남자 손님들에게 접근, 우연찮게 즉석만남을 하게 된 것처럼 꾸몄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잘 아는 술집이 있다.”면서 자리를 옮기거나 며칠 뒤 다시 만나 고용한 업주 술집으로 끌어들였다. 술집으로 데려온 뒤에는 종업원들과 짜고 비싼 술과 안주를 시킨 뒤 몰래 술집을 빠져나가 연락을 끊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손님을 한번 데려올 때마다 10만~15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적발된 술집 두 곳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8월부터 지난 4월까지 282차례에 걸쳐 모두 2억 5000여만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고 말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6) 피살 20대女, 전날 쓴 데스노트에 범인이름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6) 피살 20대女, 전날 쓴 데스노트에 범인이름이…

    2003년 12월 6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갑작스러운 한 통의 전화가 겨울밤 파출소의 한적함을 깨운다. “사…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신고인은 외국인이었다. 한국인 여자 친구 A(당시 24세)씨의 주검과 마주친 그는 떨고 있었다. A씨는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칼에 찔린 복부에서 난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자상의 크기는 1.7㎝로 작은 편이었지만 대동맥을 관통할 정도로 깊게 찔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첫 번째 칼부림은 바로 옆 탁자 아래에서 시작된 듯했다. 탁자 아래엔 비산(飛散·튀어 흩어짐) 혈흔과 적하(滴下·방울져 떨어짐) 혈흔이 섞여 있었다. A씨의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칼로 배를 공격한 후 범인은 확인사살을 하듯 A씨의 목을 다시 누른 것이다. 방어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범행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피해자는 반항 한번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찢어진 장부… 과학이 뒷장을 드러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일반 주택 2층을 개조해 만든 옷 도매가게였다. 주로 아프리카 쪽 바이어를 상대하는 매장은 흔한 입간판 하나 없어 일반인은 전혀 상점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탁자엔 바로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듯 음료수 캔과 비스킷, 거래장부가 놓여 있었다. 선풍기형 난로도 탁자를 향해 있었다.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모두 열려 있었고 책상서랍 안에 있던 260만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문이나 창에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찰은 손님을 가장한 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범인이 외국인이라면 수사 과정에서 곤란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한국 경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지문 자동검색 시스템(AFIS)을 이용할 수 없다. 불법 체류자라면 소재 파악도 쉽지 않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갈 즈음 지문 감식을 위해 거래 장부를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반장님, 장부 한 장이 비는데요. 5일 자가 없어요.”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앞장의 글자와 뒷장에 남아 있는 자국이 좀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흔적이 남은 장부를 찢어버린 것이라는 판단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흔(筆痕) 재생을 의뢰했다. 필흔 재생이란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구를 사용할 때 원본 뒤 종이의 눌린 자국을 통해 앞장의 글자를 복원하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쓰면 필기구의 압력이 종이 뒷장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글씨를 쓴 사람이 펜을 얼마나 힘껏 눌렀는지, 필기구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음, 그다음 장까지도 필흔이 남을 수 있다. 통상 볼펜이나 연필은 원본 뒤 셋째 장까지 자국이 남는다. 하지만 사인펜으로 쓴 글씨는 다음 장에서도 흔적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자국이라고 말하지만 육안이나 현미경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도여서 이를 확인하는 데는 고가(3000만원가량)의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영국제 ‘ESDA2’가 쓰인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증거물(눌린 종이)을 기계에 넣은 후 그 위에 랩과 같은 특수필름을 평평하게 깐다. 진공상태에서 기계가 정전기를 발생시키면 필름에는 자연스럽게 글자 모양에 따라 요철이 생긴다. 필름을 15~20도 정도 기울인 상태에서 특수 처리된 흑연가루를 뿌려주면 필름 위에 앞장에 썼던 글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국과수가 복원한 페이지는 ‘제이’(Jay)라는 손님의 거래 내역서였다. 티셔츠와 바지, 점퍼 등 도합 640만원어치의 물품을 제이가 주문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수사팀 입장에서 뜻밖의 횡재는 제이의 전화번호였다. 01×-8××-××××.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제이를 찾아 나섰다. ●장부 속 고객 ‘제이’를 잡아라 휴대전화 개통자는 나이지리아인 저스틴(당시 31세)이었다. 이태원 나이지리아인 밀집 지역을 탐문 조사한 결과 장부 속 제이는 저스틴과 동일 인물이었다. 제이란 이름은 위조 여권 속 가명이었다. 범인은 불안한 듯했다. 사건 뒤 저스틴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태원 녹사평역에 나타났다가 다시 한남동과 경기 동두천시로 옮겨갔다. 마지막 위치는 나이지리아인 밀집 지역인 안산시의 주택가로 확인됐다.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드넓은 주택가를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 특히 나이지리아인 지역 사회에 잘못 들이닥치면 오히려 경찰이 떴다는 것을 저스틴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 경찰은 비용 때문에 휴대전화보다는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화 이용 유형에 착안했다. 인근 공중전화 10군데를 골라 잠복에 나섰다. 그렇게 한 지 3일. 저스틴은 전화를 걸고 나오다 공중전화 앞에서 검거됐다. 저스틴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범행을 부인하기에는 증거나 정황이 너무나 분명했다. 우선 현장에 남은 음료수 캔의 지문이 그의 것과 일치했다. 특히 자취방에서 찾아낸 비닐봉지에서 숨진 A씨의 혈흔이 발견되자 그는 죄를 벗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저스틴은 범행을 저지르기 14개월 전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비자 유효 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자가 되면서 일자리 찾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막막해지자 그는 범행을 결심했다.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곳은 전에 친구와 들렀던 A씨의 가게였다. 인적이 뜸한 데다 여자들만 있어 강도를 하기도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스틴은 자신을 나이지리아에서 온 바이어라고 속이고 범행 전날인 12월 5일 옷가게에 들렀다. 모처럼 온 큰 손님에 반가워하며 A씨가 장부를 적어 나가는 동안 그는 내부구조와 현금의 위치, 도주 경로 등을 살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범행에 쓸 과도도 구입했다. 범행 당일인 6일, A씨가 3시간에 걸쳐 옷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저스틴은 칼을 쓸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무참하게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가게를 나오는 순간 저스틴의 머리에 불안이 엄습했다. 자기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장부가 떠올랐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깔끔히 찢어내는 용의주도함으로 범행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은 끝내 그를 스스로 옭아매는 증거가 됐다. 불안은 그렇게 범인의 영혼을 잠식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죽은 여성이 범인에게 남긴 데스노트가 살인자를 지목하다

    죽은 여성이 범인에게 남긴 데스노트가 살인자를 지목하다

      2003년 12월 6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갑작스런 한통의 전화가 겨울밤 파출소의 한적함을 깨운다.  “사, 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신고인은 외국인이었다. 한국인 여자친구 A(당시 24세)의 주검과 마주친 그는 떨고 있었다.  A씨는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칼에 찔린 복부에서 난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자상의 크기는 1.7㎝로 작은 편이었지만 대동맥을 관통할 정도로 깊게 찔린 것이 치명적이었다. 첫번째 칼부림은 바로 옆 탁자에 아래에서 시작된 듯했다. 탁자 아래엔 비산(飛散·튀어 흩어짐) 혈흔과 적하(滴下·방울져 떨어짐) 혈흔이 섞여 있었다. A씨의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칼로 배를 공격한 후 범인은 확인사살을 하듯 A씨의 목을 다시 누른 것이다. 방어흔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범행은 순식간이었고 피해자는 반항 한번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찢어진 장부, 과학이 뒷장을 드러내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일반주택 2층을 개조해 만든 옷 도매가게. 주로 아프리카쪽 바이어를 상대하는 매장은 흔한 입간판 하나 없어 일반인은 전혀 상점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탁자엔 바로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듯 음료수 캔과 비스킷, 거래장부가 놓여 있었다. 선풍기형 난로도 탁자를 향해 있었다. 피해자의 가방과 지갑은 모두 열렸고 책상서랍 안에 있던 260만원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문이나 창에 외부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경찰은 손님을 가장한 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범인이 외국인이라면 수사과정에 곤란한 점이 적지않다. 우선 한국경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를 이용할 수 없다. 불법체류자라면 소재 파악도 쉽지 않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갈 즈음 지문 감식을 위해 거래장부를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반장님, 장부 페이지가 한장이 비는데요. 5일자가 없어요.”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앞장의 글자와 뒷장에 남아 있는 자국이 좀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흔적이 남은 장부를 찢어버린 것이라는 판단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흔(筆痕) 재생을 의뢰했다.  필흔 재생이란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구를 사용할 때 원본 뒤 종이의 눌린 자국을 통해 앞장의 글자를 복원하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글씨를 쓰면 필기구의 압력이 종이 뒷장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글씨를 쓴 사람이 펜을 얼마나 힘껏 눌렀느냐, 필기구가 무엇이냐에 따라 2번째와 3번째 페이지까지도 필흔이 남을 수있다. 통상 볼펜이나 연필은 원본 뒤 3번째 장까지 자국이 남는다. 하지만 사인펜으로 쓴 글씨는 다음 장에서도 흔적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자국이라고 말하지만, 육안이나 현미경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정도여서 이를 확인하는 데는 고가(3000만원가량)의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영국제 ‘ESDA2’가 쓰인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증거물(눌린 종이)을 기계에 넣은 후 그 위에 랩과 같은 특수필름을 평평하게 깐다. 진공상태에서 기계가 정전기를 발생시키면 필름은 자연스럽게 글자모양에 따라 요철이 생긴다. 필름을 15~20도 정도 기울인 상태에서 특수처리된 흑연가루를 뿌려주면 필름 위에 앞장에 썼던 글자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국과원이 복원한 페이지는 ‘제이’(Jay)라는 손님의 거래내역서였다. 티셔츠와 바지, 점퍼 등 도합 640만원어치의 물품을 제이가 주문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수사팀 입장에서 뜻밖의 횡재는 제이의 전화번호였다. 01×-8××-××××.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제이를 찾아 나섰다. 장부 속 고객 ‘제이’를 잡아라  휴대전화 개통자는 나이지리안인 저스틴(당시 31세)이었다. 이태원 나이지리아인 밀집지역을 탐문조사한 결과 장부 속 제이는 저스틴과 동일인물이었다. 제이란 이름은 위조여권 속 가명이였다.  범인은 불안한듯 했다. 사건 뒤 저스틴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태원 녹사평역에 나타났다가 다시 한남동과 경기 동두천시로 옮겨갔다. 마지막 위치는 나이지리아인 밀집지역인 안산시의 주택가로 확인됐다.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드넓은 주택가를 모두 뒤질 수는 없는 노릇. 특히 나이지리아인 지역사회에 잘못 들이닥치면 오히려 경찰이 떴다는 것을 저스틴에게 알려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 경찰은 비용 때문에 휴대전화보다는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화이용 패턴에 착안했다. 인근 공중전화 10군데를 골라 잠복에 나섰다. 그렇게 한지 3일. 저스틴은 전화를 걸러 슬리퍼를 끌고 나오다 공중전화 앞에서 검거됐다.  저스틴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입을 굳게 닫았다. 하지만 범행을 부인하기에는 증거나 정황이 너무나 분명했다. 우선 현장에 남은 음료수 캔의 지문이 그의 것과 일치했다. 특히 자취방에서 찾아낸 비닐봉지에서 숨진 A씨의 혈흔이 발견되자 그는 죄를 벗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저스틴은 범행을 저지르기 14개월 전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돼 불법 체류자가 되면서 일자리 찾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막막해지자 그는 범행을 결심했다.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곳은 전에 친구와 들렀던 A씨의 가게였다. 인적이 뜸한 데다 여자들만 있어 강도를 하기도 쉬우리라 판단했다.  저스틴은 자기를 나이지리아에서 온 바이어라고 속이고 범행 전날인 12월 5일 옷가게에 들렀다. 모처럼 큰 손님에 반가워 A씨가 장부를 적어 나가는 동안 그는 내부구조와 현금의 위치, 도주경로 등을 살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범행에 쓸 과도도 구입했다.  범행 당일인 6일, A씨가 3시간에 걸쳐 옷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저스틴은 칼을 쓸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무참하게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가게를 나오는 순간 저스틴의 머리에 불안이 엄습했다. 자기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장부가 떠올랐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깔끔히 찢어내는 용의주도함으로 범행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은 끝내 그를 스스로 옭아매는 증거가 됐다. 불안은 그렇게 범인의 영혼을 잠식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5) ‘금오신화’ 김시습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5) ‘금오신화’ 김시습

    다섯 살에 ‘대학’과 ‘중용’을 배우고 시와 산문을 지었던 신동,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저항했던 생육신, 천재 시인이자 전기소설의 저자, 공자적인 이상과 원칙을 죽을 때까지 고수했던 유학자, 세상을 등진 채 산림을 방랑하며 술 마시고 곡하며 노래했던 ‘거짓 미치광이’, 머리 깎고 유랑하며 불교 공부에 매진했던 비구, 노자와 장자를 공부하며 연단과 양생을 실천했던 도가. 김시습(1435~1493)의 화려한 이력이다. 김시습, 그는 평생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삶의 여정을 걸었다. 그는 유학의 원칙을 포기한 적이 없으면서도 승려로 자처하고,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의 길을 가면서도 불제자로 알려지기를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한 것을 탐구하고 괴이한 일을 행하는 색은행괴(索隱行怪)나 방외인’으로 단정 짓기도 어렵고, ‘행적은 승려지만 본마음은 유학자’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지기였던 대제학 서거정의 말처럼 그는 입산도 출산도 마음대로 하고 유학에도 불교에도 구애됨이 없었다. 그는 공자이면서 불자이자 노장이었고, 동시에 공자도 불자도 노장도 아니었다. 김시습의 사상적 방랑은 줏대 없는 흔들림과는 달랐으니 진리를 현현하는 구도자의 몸부림 그 자체였다. 김시습은 천재였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식별하여 말보다 먼저 천자문을 배웠으며, 세 살 적엔 글을 지을 줄 알았고, 다섯 살에는 시와 산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세종이 그 천재성에 감탄하여 비단을 하사하고 장성하면 크게 쓰리라 약조까지 내렸다. 그는 학문에 놀라운 진전을 보이며 관료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갔다. ●불의한 세상에 맞서기… 비타협의 순수성 그러나 1455년 21살 그의 삶은 전변한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신하가 왕을 참람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절망하여 책을 불사르고 똥통에 몸을 빠뜨리는 등 미친 척 행동하며 유랑을 시작한다. 얼마 뒤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사형당하고, 끝내 단종도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다. 김시습은 저자에 버려진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주고, 제사 지내주었다. 그는 희망 없는 세상과 단절할 수밖에 없었다. 관서, 관동, 호남 등지를 떠돌며 때론 비분강개하고 때론 처절한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나그네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김시습이 머리를 깎고 승려를 자처하며 전국을 떠돈 이유는 단순히 목숨을 보존하고 세상을 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학자로서는 현실을 구제할 수 없고, 탈속한 승려로서만이 그 정의의 세계, 비타협의 정신을 현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멱라수에 빠져 죽음으로써 더러운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초나라의 굴원과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미치광이, 천치바보 등 사람들이 조롱하고 욕해도 김시습은 타협하지 않았다. 불의한 세상에 대항하는 길은 거기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김시습은 더욱 견결하게 세상을 비판하며, 혼탁한 세상과 대치했다. “이내 마음 못 꺾으리 어느 위력도/ 옛날도 지금도 이 마음 빛나리라/ 순 임금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높고 낮은 차이란 본디 없는 것/ 대장부는 언제나 염치가 있는 법/ 세상 눈치 보면서 이리저리 따르랴/ 학자와 문인은 역사에 남아 있다/ 제왕의 칼부림도 역사는 못 막으리(‘대장부’)” ●묘비에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라 써달라 1462년 28살, 김시습은 긴 유랑을 끝내고 경주 금오산(지금의 남산)의 용장사에 정착한다. 그는 매일 맑은 물을 올려 예불하고 예불이 끝나면 곡을 하고 곡이 끝나면 노래하고 노래가 끝나면 시를 지었다. 시가 끝나면 또 곡을 하고는 시를 태워버렸다.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조문하는 고통스러운 행위. 김시습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 서서 불의한 세상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절대 낙관할 수 없는 절망적 현실의 횡포, 그렇다고 비관만 하며 사람살이의 이상과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는 상황. 바로 이 지점에서 전기소설 ‘금오신화’는 탄생한다. 김시습은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인정과 진실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단코 포기될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장가도 못간 채 홀로 사는 양생, 왜구의 침입으로 절개를 지키다 결혼도 못하고 죽은 낭자, 이 두 사람의 기이한 만남과 사랑.(‘만복사저포기’)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간신배들을 물리치지 못해 원한을 품고 죽은 한 선비가 마침내 저승(남염부주)에서 간악한 무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고, 한미하지만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경주 선비 박생이 남염부주의 차기 왕으로 임명되는 이야기.(‘남염부주지’).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사랑이나 정의와 같은 진리들이 반드시 인간 세상 밖에서라도 해원될 수 있으리라는 불가사의한 희망을 보여준다.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일지라도 인간은 꿋꿋이 신념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함부로 낙관할 수는 없지만 신념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진리가 실현되리라는 것. 이것이 김시습이 은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진실을 믿는 김시습.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1471년 성종이 즉위하자 37살 김시습은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근처 폭천정사에서 10여년을 지낸다. 성종의 등극으로 김시습은 세상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며, 경세제민의 능력을 갈고 닦는다. “나라 창고에 쌓인 재물은 모두 백성들이 마련한 것이며, 윗사람들의 옷과 신발은 바로 백성들의 살가죽이며, 음식 요리는 백성들의 기름이며, 궁전과 수레도 백성들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며, 세금과 공물, 그리고 모든 용품도 죄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백성들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것은 원래 군주에게 총명과 예지를 다하여 백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다스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애민의’) 꺾이지 않은 예봉, 정치에 관한 확고한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훼손된 세상은 되돌아올 줄 몰랐다. 1481년 폐비윤씨 사건이 일어나자 47살 김시습은 다시 양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상의 처한 자리가 곧 깨달음의 장 김시습은 한 번도 안주한 적이 없었다. 세상을 등졌을 때도,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방랑할 때도, 정착했을 때도 어느 한 순간도 진리를 향해 가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방편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학의 도이기도 하고, 불교의 도이기도 하고, 노장의 도이기도 했다. 그에게 유불선은 ‘길은 달라도 마음을 기름은 한 가지’로 회통된다. 일상의 모든 행동에서 사심을 끊어버리고 공평한 마음을 회복하여 인을 실현하는 유교의 길, 양생이나 연단으로 탐욕을 끊음으로써 본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노장의 길, 일상응연처(日常應然處)에서 모든 집착을 끊어내고 나라는 실상이 없음을 깨닫고 모든 존재들이 상호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불교의 길은 김시습에게 공히 진리를 찾아가는 방편들이었다. 일상의 처한 자리에서 필요에 따라 유자도 되고 불자도 되고 노장도 되었다. 그에게는 이 사상 사이에 어떤 차별도 없었다. 욕망이 들끓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불의한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그는 모든 사상의 자양분을 섭취하고 실천했다. 그에게 문제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일상과 진리 사이에 어떤 틈도 없게 하는 것. 진리 그 자체로 살아가는 일. “나의 삶과 부처 사이에 틈이 없으며 나의 유통이 곧 부처의 유통이다. 부처의 원이 자재하고 장엄하므로 나의 원도 자재하고 장엄하다.” 김시습은 부처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게 하고, 공자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게 하고, 노장의 진리가 그대로 삶이 되도록 방랑하고 또 방랑했다. 그 어느 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김시습의 삶은 결국 하나였다. 구도의 길이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길이 바로 그것.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夢死). 묘비명에 새겨달라고 했던 이 말보다 더 잘 그를 형용할 표현은 있기 어려울 것이다.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9) 지능적 칼잡이는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9) 지능적 칼잡이는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989년 11월 4일 오후 9시 50분 서울 중구 장충로 2가 타워호텔. 호텔 카바레에서 공연을 마친 가수 남진(당시 43세)은 일본 연예계 인사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건장한 20대 남자 3명이 몰래 그 뒤를 따라갔다. 남진이 승용차 오른쪽 뒷좌석에 오르려는 순간, 그들 중 한 명이 예리한 흉기를 품 속에서 꺼내 남진의 왼쪽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남진은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음 날 신문 사회면에 남진 피습 기사가 실렸지만, 그리 크게 나진 않았다. 남진의 전성기가 이미 지난 때였다고는 해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로서 다소 섭섭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괴한이 공격한 신체 부위가 배나 가슴이 아니라 허벅지였다는 점에서 언론사들이 덜 위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허벅지를 찔렀다는 것은 생명을 노렸다기보다는 그저 겁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조폭들의 ‘허벅지 테러’ 하지만 이상한 점은 조직 폭력배들의 칼부림이 있을 때 유독 허벅지를 노려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허벅지는 피를 보면서도 최악의 결과로는 치닫지 않아 상대를 겁주기에 알맞다는 판단에서일까. 법의학자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허벅지 테러는 칼을 꽤 다룰 줄 아는 전문가들의 지능적인 살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아래 사례를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건 1 2003년 7월 17일 오전 6시 40분쯤 서울 논현동 대로변 포장마차. A(33)씨 등 3명이 흉기로 B씨의 허벅지를 찔렀다. 채권·채무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투다 A씨 일행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의 허벅지를 여러 차례 찔렀고,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사건 2 1992년 4월 12일 오후 11시 전주 완산구의 한 당구장. 폭력 조직 W파 행동대원 김모(24)씨가 경쟁 조직 N파 소속 2명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범인들은 2층 당구장으로 올라가는 김씨의 뒤를 노렸다. 목격자는 경찰에서 20대 청년 2명이 당구장 계단에서 흉기로 김씨의 양쪽 허벅지를 10여 차례 찌른 뒤 앞길에 대기시켜 둔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범인들이 노린 것은 허벅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조직 폭력배가 낀 테러 사건일수록 피해자의 자상이 허벅지 부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폭들이 허벅지 부위를 공격하는 이유는 대퇴부의 동맥이나 정맥을 끊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는 반면, 나중에 자신은 재판정에서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해를 하더라도 살의는 감추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최근 들어 조직 폭력배 등이 관련된 이 같은 범행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의학적으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전체 혈액 중 20~33% 정도를 쏟으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실제 많은 피가 빠져나가 사망하는 ‘실혈사’(失血死)와 출혈을 하는 동안 급하게 혈압 등이 떨어져 사망하는 ‘실혈성 쇼크사’다. 피를 흘린 채 오랜 시간 방치될 경우에는 실혈사로, 대동맥 등이 절단돼 한꺼번에 급격히 피가 빠져나갈 때는 실혈성 쇼크사로 사망한다. ●전문가의 칼 솜씨는 다르다? 허벅지는 살이 많다는 이유로 갖은 수난을 겪어 왔다. 역사 속의 태형(笞刑)도, 학교의 체벌도 주로 허벅지나 엉덩이에 집중됐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많이 맞으면 신체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곤장을 맞고 장독(杖毒)으로 죽는 게 이런 경우다. 맞은 부위에 피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정작 심장에는 혈액이 부족해져 사망하는 것이다. 심하면 우리 몸의 피 6~7ℓ 중 3분의1 이상이 허벅지 한군데의 상처로 몰리기도 한다.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영화에서 부검을 마친 의사가 형사에게 흔히 던지는 말이다. 과연 전문가의 칼 솜씨라는 것이 존재할까. 부검의들은 이른바 ‘전문 칼잡이’가 낸 자상은 한 해 수백 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의사들도 실제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국과원 관계자는 “영화에서처럼 사람 죽이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 현실에서는 흔치 않은 만큼 일반적으로는 살인자라도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진은 “이젠 가해자와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낸다.”면서 모두 용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찔했던 당시 상황은 똑똑히 기억했다. “흉기가 허벅지를 관통했는데 대동맥이 끊겼으면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동맥을 5㎜ 정도 벗어났는데, 저에게도 또 가해자에게도 천만다행이었지요. 하늘이 도운 순간이었죠.”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9)] 괴한에 허벅지 찔린 남진, 5mm 차이로 구사일생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9)] 괴한에 허벅지 찔린 남진, 5mm 차이로 구사일생

    1989년 11월 4일 오후 9시 50분 서울 중구 장충로 2가 타워호텔. 호텔 카바레에서 공연을 마친 가수 남진(당시 43세)은 일본 연예계 인사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뒤를 건장한 20대 남자 3명이 몰래 뒤따랐다. 남진이 벤츠 승용차 오른쪽 뒷좌석에 오르려는 순간, 그들 중 1명이 예리한 흉기를 품 속에서 꺼내 남진의 왼쪽 허벅지를 깊숙히 찔렀다. 남진은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남진의 피습기사는 다음날 신문 사회면에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당시는 이미 전성기를 넘긴 때이긴 해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로서 다소 섭섭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괴한이 공격한 신체 부위가 배나 가슴이 아니라 허벅지였다는 점에서 언론사들이 덜 위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허벅지를 찔렀다는 것은 생명을 노렸다기보다는 그저 겁을 주기 위한 목적 정도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조폭들은 왜 허벅지를 공격할까 하지만 이상한 점은 조직폭력배들의 칼부림이 있을 때면 유독 허벅지를 노려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허벅지는 피를 보면서도 최악의 결론에는 치닫지 않아 상대를 겁주기 알맞다는 판단에서일까. 법의학자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허벅지 테러는 칼을 꽤 다룰 줄 아는 전문가들의 지능적인 살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아래 사례를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수 있다. 사건1 2003년 7월 17일 오전 6시40분쯤 서울 논현동 대로변 포장마차. A(33)씨 등 3명이 B씨를 흉기로 허벅지를 찔렀다. 채권·채무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투다 A씨 일행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의 허벅지를 여러차례 찔렀고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건2 1992년 4월 12일 오후 11시 전주 완산구의 한 당구장. 폭력조직 W파 행동대원 김모(24)씨가 경쟁조직 N파 소속 2명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범인들은 2층 당구장으로 올라가는 김씨의 뒤를 노렸다. 목격자는 경찰에서 20대 청년 2명이 당구장 계단에서 흉기로 양쪽 허벅지를 10여 차례 찌른 뒤 앞길에 대기시켜둔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범인들이 노린 것은 허벅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조직폭력배가 낀 테러 사건일수록 피해자의 자상은 허벅지 부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조폭들이 허벅지 부위를 공격하는 이유는 대퇴부의 동맥이나 정맥을 끊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가할 수 있는 반면 나중에 자신은 재판정에서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해를 하더라도 살의는 감출 수 있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최근들어 조직폭력배 등이 연관된 허벅지 관련 흉기 범행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의학적으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전체 혈액 중 20~33% 정도 피를 쏟으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실제 많은 피가 빠져나가 사망하는 ‘실혈사’(失血死)와 출혈을 하는 동안 급하게 혈압 등이 떨어져 사망하는 ‘실혈성 쇼크사’다. 피를 흘린 채 오랜 시간 방치될 경우에는 실혈사로, 대동맥 등이 절단돼 한꺼번에 급격히 피가 빠져가갈 때는 실혈성 쇼크사로 사망한다. 전문가의 칼 솜씨는 다르다? 허벅지는 살이 많다는 이유로 갖은 수난을 겪어 왔다. 역사 속의 태형(笞刑)도, 학교의 체벌도 주로 허벅지나 엉덩이에 집중됐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많이 맞으면 신체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곤장을 맞고 장독(杖毒)으로 죽는 게 이런 경우다. 맞은 부위에 피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정작 심장에는 혈액이 부족해져 사망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우리 몸의 피 6~7ℓ 중 3분의 1 이상이 허벅지 한 군데의 상처로 몰리기도 한다.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부검을 마친 의사가 형사에게 흔히 던지는 말이다. 과연 전문가의 칼솜씨는 존재할까. 부검의들은 이른바 ‘전문 칼잡이’가 낸 자상은 한해 수백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의사들도 실제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국과원 관계자는 “영화에서처럼 사람 죽이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 현실에서는 흔치 않은 만큼 일반적으로 살인자도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진은 “이젠 가해자와 형님, 아우하면서 지낸다.”면서 모두 용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찔했던 당시 상황은 똑똑히 기억했다. “흉기가 허벅지를 관통했는데 대동맥이 끊겼으면 위험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동맥을 5㎜ 정도 벗어났는데, 저에게도 또 가해자에게도 천만다행이었지요. 하늘이 도운 순간이었던 거죠.”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다른남자 이름 잠꼬대… 황당한 남녀 칼부림사건

    다른남자 이름 잠꼬대… 황당한 남녀 칼부림사건

    잠꼬대를 하면서 엉뚱한 남자의 이름을 부른 여자친구를 남자친구가 폭행했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칼을 들고 맞섰다. 칼을 휘두르다 다친 두 사람은 나란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사건이 남미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콜롬비아 바랑킬랴라는 곳의 한 호텔에 투숙한 남녀가 벌인 질투극이다. 26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넬시라는 이름을 가진 30세 여성과 에스테반이란 이름의 3살 연하남이 비극(?)의 주인공. 잠자던 여자친구가 잠꼬대를 하면서 ‘메노르’라고 중얼거린 게 사건의 시작이다. ’메노르’는 두 사람이 알고 있는 한 남자의 별명이었다. 여자친구가 잠꼬대를 하면서 다른 남자의 별명을 부르자 남자친구는 화가 치밀었다.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그는 아직 잠에 푹 빠져 있는 여자친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마른 하늘에 생 벼락을 맞은 여자는 벌떡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칼을 잡았다. 여자가 칼을 쥐고 정당방위(?)에 나서면서 연인 사이에 칼부림이 났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바랑킬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 관계자는 “두 사람이 병원에 왔을 때 여자는 오른쪽 눈 주변을 얻어맞아 멍이 들고, 남자는 여자가 휘드른 칼에 배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Twitter “범인 잡았다”

    ‘오늘 새벽 3시 홍대 유니클로 부근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칼부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용의자 인상착의는 185㎝ 정도의 건장한 체격에 헌팅캡류의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었습니다. 목격자분 찾습니다. RT 부탁해요.’ 지난달 27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경찰이 트위터를 통한 제보의 도움으로 ‘홍대 칼부림 괴한’을 붙잡았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홍익대학교 앞 주점에서 “비싸게 낸 술값을 돌려 달라.”며 흉기를 휘두르며 협박한 이모(28)씨를 특수강도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이씨는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상착의가 알려지자 경기 고양시로 도주했으나 나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트위터가 범인 잡았다’

     ‘오늘 새벽 3시 홍대 유니클로 부근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칼부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용의자 인상착의는 185㎝ 정도의 건장한 체격에 헌팅캡류의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었습니다. 목격자분 찾습니다. RT 부탁해요.’ 지난달 27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경찰이 트위터를 통한 제보의 도움으로 ‘홍대 칼부림 괴한’을 붙잡았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홍익대학교 앞 주점에서 “비싸게 낸 술값을 돌려 달라.”며 흉기를 휘두르며 협박한 이모(28)씨를 특수강도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달 28일 0시 20분쯤 서울 서교동 한 주점에서 일행 2명과 술을 마시고 술값 130만원을 낸 뒤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해 오전 2시 50분 다시 주점을 찾아 길이 26㎝의 흉기를 테이블에 꽂고 종업원 시모(31)씨에게 술값을 돌려 달라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씨는 종업원이 신고하려 하자 오전 3시 10분쯤 도망치면서 우연히 마주친 미국인 L(28·여)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손가락을 다치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행인은 근처 가게 주인에게 사건을 알렸고, 가게 주인이 트위터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사건은 SNS를 통해 ‘홍대 앞 묻지 마 칼부림 사건’으로 불리며 ‘리트위트’됐다. 이씨는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자신의 인상착의가 알려지자 경기 고양시로 도주했으나 나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최종상 마포서 형사과장은 “트위터 덕분에 추가 목격자와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범행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SNS를 통한 사건 제보도 수사 시 적극적으로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술값 시비 난동부린 20대 ‘홍대앞 묻지마 칼부림’

    서울 마포경찰서는 홍대 근처 술집에서 흉기를 들이대고 난동을 부린 이모(28)씨를 특수강도미수 등 혐의로 4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27일 0시 20분쯤 서울 서교동 한 술집에서 일행 2명과 술을 마시고 술값 130만원을 냈다. 그러나 2시간 30분 후에 다시 술집을 찾아와 흉기를 테이블에 꽂고 종업원을 협박하면서 술값을 내 놓으라고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오전 3시10분쯤 도망치면서 우연히 마주친 미국인 L(28·여)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손을 다치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근처 가게 주인이 트위터에 “추가 목격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면서 SNS를 통해 ‘홍대 앞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당시 미국인 여성은 술에 취해 피해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트위터 덕에 경찰이 추가 목격자와 관련 자료를 확보, 범행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흔들리는 열도

    지진 발생에도 차분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여 왔던 일본 국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약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17일 정부가 강제 대응을 검토할 정도로 사재기가 만연하고 칼부림까지 일어났다.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는 물론 도쿄 대부분의 상점에서 빵이나 신선 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제는 직접적인 강진 피해는 물론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낮은 북서부 지역에서도 사재기가 시작됐다. AFP통신은 아키타현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주먹밥과 컵라면이 동났다고 전했다. ●일부 상점은 물품 판매개수 제한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판매량이 제한돼 있고 그마저도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살 수 있다. 도쿄 서부 가나카와현에서는 한 60대 회사원이 다른 운전자를 칼로 위협하다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남성은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트럭 운전자가 먼저 기름을 넣으려 하자 칼을 들이대고 “순서에 문제가 있다.”며 소동을 일으켰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전날 사재기 자제를 호소했던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법적·강제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냉정한 대응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경고했다. 이미 일부 상점에서는 자체적으로 물품의 판매 개수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물자 부족은 사재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고 있거나 제품은 있어도 이를 실어 나르는 차량의 급유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테, 아키타 등 지역에 47개의 슈퍼마켓을 두고 있는 유니버스 관계자는 “휘발유가 부족해 차량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세슘 수돗물’에 생수난 가중 여기에 전날 후쿠시마 지역 수돗물에서 소량의 세슘이 검출된 것이 알려지면서 생수 구하기가 기름 사는 것 못지않게 어려워졌다. 날이 추워지면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자 지역에 따라 하루에 두 차례 계획 정전을 실시하는 곳까지 생겼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도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 핵 관리 당국과 일본 정부가 설정한 방사능 위험 지역 범위가 차이가 나자 불안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미국과 일본의 적용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도쿄에 사는 지토요 도키는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뭔가를 숨기려는 것 같다.”면서 “정부와 도쿄전력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언론 과소평가 멈춰라” 고베 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신문 기고문을 통해 1995년 지진 경험을 전한 뒤, 사태를 축소해서 알리려는 정부·언론과 전문가들을 겨냥해 “위기상황에서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보다는 과대평가했을 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안전하다고 믿고 있을 때 갑자기 ‘자, 이제 도망쳐라’라고 하면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조폭, 코스닥업체도 집어삼켰다

    유흥주점 운영권을 두고 칼부림을 하던 ‘깍두기 형님’들은 이제 ‘구식’이 됐다. 최근의 국내 조직폭력배들은 금융범죄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사채업자, 주가조작 세력 등과 손잡고 코스닥 상장사까지 집어삼키는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해 개미 투자자들을 울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는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뒤 회사돈을 빼돌리고 주가를 조작한 조직폭력배 ‘읍내파’ 이모(46)씨와 기업사냥꾼 김모(44)씨 등 2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또 이들과 함께 회사자산을 탕진한 노모(46)씨 등 8대을 불구속 기소하고, ‘콜박스파’ 장모(41)씨 등 5명을 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2007년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려 코스닥 상장사인 산업용필터 제조업체 C사를 인수한 뒤 지난해 4월까지 회사돈 총 306억원을 빼돌려 유흥비, 해외여행비 등으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C사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식대금을 넣었다가 다시 빼는 가장납입(속칭 ‘찍기’) 수법을 통해 237억원 상당의 회사주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폭들은 기존 기업사냥꾼 뺨칠 정도의 경제범죄 수법을 동원했다. 이들은 주가조작세력에 110억원을 주고 조직적으로 시세조작을 맡기는 한편, 분식회계를 통해 외부감사인을 속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2002년 상장 이후 연 매출 100억원대를 올리던 유망 벤처기업 C사는 올 3월 ‘깡통’으로 전락, 상장폐지됐다. 개미투자자들의 손실은 600억원대에 달했다. 이들은 회사 주식을 대량매도한 주주를 찾아가 폭행 후 매수를 강요하고, 주가조작세력을 감금·협박해 시세조종금 일부와 지불각서를 받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주변의 인맥을 동원해 청탁수사로 공격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낮 중학교서 학생이 칼부림

    경기도 안양의 모 중학교에서 3학년 남학생이 흉기로 다른 학생 5명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안양동안경찰서는 9일 낮 12시45분쯤 학교 담벼락과 야구부 숙소 사이 샛길을 지나다 어깨가 부딪혔다는 이유로 동급생 5명을 흉기로 찌른 혐의(상해)로 A(15)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상의 주머니에 있던 흉기로 남학생 1명과 여학생 4명의 복부와 옆구리 등을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학생 중 2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나머지 3명은 경상을 입고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군이 점심때가 끝나갈 때쯤 야구부 숙소와 학교 사이 폭 1m가량의 길을 지나가다가 피해 학생 무리 중 여학생 1명과 어깨가 부딪히면서 시비가 붙었다.”면서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이 와중에 A군이 갖고 있던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공터에는 5~6명의 학생이 더 있었지만 싸움에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은 학생들을 찌르고 나서 교무실에 가 자수했다.”면서 “이들이 같은 학년일 뿐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봐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사들은 A군이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A군이 문제의 흉기를 인터넷에서 구매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왜 학교에 갖고 왔는지 등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대가 끊겼다!” 비뇨기과 의사에 ‘분노’ 칼부림

    “대가 끊겼다!” 비뇨기과 의사에 ‘분노’ 칼부림

    한 남성이 집안의 대를 끊어놨다며 자신의 주치의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CCT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타이저우시립병원의 비뇨기과를 찾은 28세 남성 덩(邓)씨는 치료를 받겠다며 주치의를 찾아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난동을 부렸다. 그는 “당신이 내 ‘대’(代)를 끊어놨으니, 당신도 똑같이 해주겠다.”며 칼부림을 부린 탓에 68세 의사 예씨는 어깨와 복부에 심각한 자상을 입었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덩씨는 지난 19일 이 병원을 찾아 약정자증과 정맥의 이상확장, 좌측 부고환 낭종 등의 증상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그는 생식기 쪽 정맥 일부를 묶는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부터 생식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하이시 및 여러 도시의 비뇨기과를 돌며 재검진을 받았고 그때마다 ‘이상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의심을 떨치지 못한 그는 결국 수술을 집도한 예씨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앙심을 품었다. 예상치 못한 칼부림을 당한 의사는 복도로 뛰쳐나왔지만 덩씨는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태를 진정시키려던 다른 의사 4명에게까지 상해를 입힌 뒤에야 간신히 저지당했다. 그는 “친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를 당한 의사는 40년간 비뇨기과 전문의로 일해 온 베테랑이다. 그의 치료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 “덩씨는 고의상해죄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몸 4군데에 자상을 입은 의사는 응급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피해 의사 예씨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회식자리서 男동료에 강제키스…저항하자…

    회식자리서 男동료에 강제키스…저항하자…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동료 남성에게 장난으로 입을 맞추려다가 ‘칼부림’이 벌어진 사건의 판결이 공개됐다. 중국 일간지 난팡두스바오에 따르면 지난 2월 새벽 2시경 중산시의 한 유리공장의 기숙사에서 회식을 하다 A씨가 취한 상태로 옆에 앉은 B씨에게 입을 맞췄다. 이에 극도로 화가 난 B씨는 A를 밀쳤고, 두 사람 사이에는 고성과 주먹이 오고갔다. 이후 A씨는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간 뒤 칼을 들고 다시 B씨에게로 가 칼을 휘둘렀다. 이 일로 B씨는 가슴과 머리·어깨에 자상을 입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체포하고 곧장 중산시 제1인민법원에 재판을 신청했다. 그는 경찰 및 재판에서 “당일 45도나 되는 바이주 2병을 먹어 매우 취한 상태였고, 내가 B씨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려 했다거나 칼부림을 한 행동등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차려보니 경찰서였다.”고 진술했다. 중산시제1인민법원은 A씨가 비록 만취한 상태였지만 고의로 남에게 해를 입혔고, 또 B씨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혔다는 점을 인정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A씨가 지난 2003년 5월 술에 취해 타인에게 고의로 상해를 입히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점 등을 미뤄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하고 징역 9개월과 손해배상금 약 4700위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고.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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