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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권 ‘찍퇴 공포’] “비전 없다” 떠나는 30대 vs “갈 곳 없다” 버티는 50대 ‘온도차’

    [금융권 ‘찍퇴 공포’] “비전 없다” 떠나는 30대 vs “갈 곳 없다” 버티는 50대 ‘온도차’

    A보험사에 다니는 한대호(48·가명)씨는 한 달 전쯤 회사로부터 희망퇴직 대상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면담만 다섯 차례. 회사를 떠나려고도 했지만 부인으로부터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고 대판 부부 싸움만 했다. 주택담보대출에, 막내딸 대학등록금까지 당장 무너진 자존심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한씨의 발목을 잡았다. 사표를 내지 않은 한씨는 회사로부터 “(희망퇴직을 수용하지 않은 만큼)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앞서 회사를 나갔던 선배들 대다수는 자영업을 하다 망하거나 사기를 당했다”면서 “희망퇴직 대상자에 함께 올랐던 입사 동기와 ‘회사벽에 X칠할 때까지 참고 버텨 보자’며 서로 위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반면 B증권사 입사 7년차 대리인 박기영(34·가명)씨는 최근 실시된 희망퇴직에서 사표를 던졌다. ‘보험계리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외벌이에 결혼 3년차. 가장으로서 고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지급하는 퇴직금과 위로금으로 2년 정도는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그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매섭다. 저금리·저수익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금융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원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올 들어 은행·보험·증권 등 13개 금융사에서만 4000~5000명의 직원이 회사를 이미 떠났거나 곧 떠난다. 올 하반기에도 금융사들은 추가로 감원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는 희망퇴직 바람에는 세대 간 온도차가 있다. 두둑하게 퇴직금을 챙겨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30대는 희망퇴직에 몰리고 있다. 반면 퇴사 후 재취업이 어려운 50대는 사상 최악의 자영업 경기 침체 속에 몸을 한껏 사리며 ‘끝까지 버티자’는 전략을 구사해 대조를 이룬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한국씨티은행은 당초 회사의 목표치였던 700명가량이 사표를 냈다. 전체 인력(4240명)의 17%에 달한다. 30대 대리급 직원들도 상당수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사측이 기본퇴직금 이외에 특별퇴직금으로 5년치 연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자 5~10년차 ‘허리’에서도 희망퇴직 신청자가 대거 쏟아졌다. 지난달 초 3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마무리한 삼성증권 역시 30대 대리급 직원들 일부가 희망퇴직을 신청해 애를 먹었다. 일주일가량 사측이 나서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대다수는 마음을 돌렸다. 항아리형 인력 구조가 심한 증권업계에서 30대 직원의 이탈은 인사적체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퇴직 비용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불황이 길어지면서 고용불안을 목격한 30대 금융맨 중에는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평생 돈벌이가 가능한 회계사·계리사 등 전문직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금융권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입사 15년차 과장급 이상’에서는 희망퇴직 대상에 올라도 끝까지 버티자는 분위기가 대세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금융계에서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면 미련 없이 옷을 벗었다. 금융권 업황이 꺾이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수억원의 퇴직 위로금을 ‘보너스’ 개념으로 챙기며 경쟁사나 동일 업권 내로 이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11년 희망퇴직을 실시한 SC제일은행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500명 감원 계획을 세웠던 회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850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 중 은행 내 핵심 인력으로 분류되는 프라이빗 뱅커(PB) 40여명도 우량 고객 다수를 끌고 경쟁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금융맨들이 “퇴사를 해도 정작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은행·보험·증권·저축은행 등 금융업권 전방위에서 구조조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잇따른 금융권의 인력 구조조정으로 ‘하림의 주가만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 또한 옛말이다. 자영업도 사상 최악의 침체를 겪으며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카페를 차리겠다”는 퇴직자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국내 골목상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월급쟁이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지난해 22.5%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지만, 미국(6.5%)·일본(8.8%) 등에 비해선 여전히 지나치게 높다. 신승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연구팀장은 “미국은 음식점 하나가 200명을 커버한다면 우리나라는 70명밖에 커버가 안 된다”면서 “선진국보다 동일 영업권 내에 자영업체 수가 2.8배나 더 밀집해 있다”고 말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도·소매업, 음식업 등의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2년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83만 3195명으로 절반 이상이 3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임상훈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고령층 금융업 종사자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하면 신빈곤층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면서 “중고령층 금융맨들의 전문성을 사장시키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망 차원에서 금융사들이 임금피크제 외에 직무개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찍퇴’ 칼바람 흉흉한 금융권

    ‘찍퇴’ 칼바람 흉흉한 금융권

    교보생명은 지난 10일 희망퇴직 접수를 마감했다. 전체 직원(4700여명)의 11%에 달하는 감원 목표치(500명)를 채우지 못했다. 사측은 ‘찍퇴’(찍어서 퇴직) 직원을 대상으로 긴급 설득에 나섰다.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주겠다”며 사측은 이들의 퇴근까지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서장들은 찍퇴 대상자들과 많게는 10여 차례 개인 면담을 하며 퇴사를 강요했다. 일부 관리자는 집까지 찾아가 “네가 관둬야 후배들이 살고 내가 산다”고 설득했다. 이를 거부한 직원에게는 “상황이 다 끝났으니 어디 한번 잘 견뎌 보라”며 악담을 퍼부었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금융권에서 수천명이 옷을 벗은 ‘명퇴’(명예퇴직)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른바 강제 퇴직인 찍퇴의 공포는 여전히 금융권을 짓누르고 있다. 명퇴자 목표치에 미달한 금융사들은 ‘명퇴 거부자’들을 부진자 교육과 무연고 인사 발령 등으로 협박하고 있다. 명퇴를 빨리 신청하는 사람에게는 수백만원 상당의 여행상품권을 주는 황당한 ‘퇴직 마케팅’까지 써 가며 직원들을 두 번 울리는 회사도 있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이달 초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찍퇴 직원 10여명을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보내는 인사 발령을 냈다. 또 부진자 교육을 실시한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부진자 교육은 업무 성과 하위 15% 직원과 장기 승진 누락자가 대상이다. 교육 기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한번 들어가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농협에 인수된 우리투자증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측은 지난달 21일 희망퇴직 접수 마감을 하루 앞두고 아웃도어세일즈(ODS) 조직을 긴급 신설했다. 찍퇴 직원이 희망퇴직을 하지 않을 때에 대비한 ‘강제수용소’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책상이나 전화기도 없이 밖에서 줄곧 돌며 영업해야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사측은 1964년(만 50세) 이전 출생자를 중심으로 60여명을 추려 ODS로 발령을 냈다. 김석민(50·가명)씨는 “ODS에서 교육 과제를 많이 주는 데다 지방에서 온 사람도 많아 생활이 엉망”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씨티은행은 3일 이내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2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주는 퇴직 마케팅에 나서 논란이 됐다. 노조는 직원들에게 사측 면담을 거부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사측은 면담을 안 하면 인사 조치와 징계를 한다고 맞불을 놨다. 조성길 노조 정책홍보국장은 “회사가 퇴직 절차를 무슨 상품을 파는 마케팅처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증권·보험 이어 은행·카드사도 인력 구조조정 바람

    증권사와 보험사에서 시작된 금융권 인력 구조조정의 태풍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낮은 수익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고용 안정성을 지켜왔던 은행과 카드사들까지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금융권 종사자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금융이 인수한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은 각각 NH농협증권과 NH농협생명과의 합병을 앞두고 대대적인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340여명의 직원 규모인 우리아비바생명은 30%에 가까운 100여명을 구조조정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다음 달 11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근속연수 15년차 이상의 직원에게 18개월치 평균 임금을, 5년차 이상은 12월치, 5년차 미만은 2개월치를 지급한다는 조건이다. 합병을 앞둔 농협생명과 업무가 중복되는데다 최근 경영실적이 악화돼 효율화 차원에서 인력을 줄인다는 설명이다. 앞서 우리투자증권도 임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접수해 최근 412명의 퇴직자 명단을 확정했다. 전체 직원(2973명)의 13.8%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원규 사장과 감사를 제외한 등기임원 25명도 일괄사표를 냈다. 보험·증권사의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일부 회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생명보험업계의 ‘빅3’로 불리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은 최근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증권업계의 감원 폭은 더 커 삼성증권과 대신증권, 교보증권 등 전 증권사에서 올해에만 15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으로 분류되던 은행 역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씨티은행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600여명의 직원을 줄인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50개 점포를 통폐합하는 한국SC은행은 직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일단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조건을 내걸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칼바람 품은 유령의 울음처럼… ‘비극적 왕’ 단종의 역사풍경화

    칼바람 품은 유령의 울음처럼… ‘비극적 왕’ 단종의 역사풍경화

    “1986년 여름, 강원도 영월을 찾았어요. 마음이 심란하던 때였는데, 마침 친구로부터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얽힌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소나무가 우거지고 영월 서강의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절경 속에 그런 아픔이 숨어 있다니요.” 서용선(63) 화백은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가장 비극적 왕인 단종(1441~1457)이 숙부인 세조에 의해 청룡포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는 ‘야사’(野史) 때문이다. 작가는 이후 28년째 단종과 관련된 역사화를 그리고 있다. 수차례 단종을 주제로 전시도 열었다. 사료를 뒤지고 역사적 흔적이 남은 지역은 빠짐없이 돌았다. 이를 화폭에 옮기기 위해 역사와 철학, 정치학을 넘나들었고 수십 쪽의 논문도 탐독했다. “감정적인 데 치우치지 않고 인간 내부에 깊숙이 내재된 권력에 대한 욕망, 나아가 습관이나 이념을 돌아보려 했어요.” 예컨대 작품 ‘보위: 단종과 수양’에선 세조가 단종에게 상왕으로 물러날 것에 대한 언질을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화폭 상단에는 다른 세계관을 지닌 두 인물, 세조와 생육신 김시습의 얼굴이 나란히 보인다. 또 다른 작품 ‘백성들의 생각:정순왕후’에는 남편인 단종을 비명에 떠나보낸 뒤 여든 넘게 생을 이어간 송씨 부인(정순왕후)의 삶이 담겼다. 좌측에는 평민으로 강봉된 송씨 부인이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우측에는 이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죽은 단종의 얼굴이 보인다. 작가는 이렇게 계유정난 등 수많은 사건과 인물을 화폭으로 옮겼다. 그런데 단순한 역사화가 아니다. 영월 풍경 외에 단종과 사육신의 혼을 모신 동학사와 세조가 말년에 찾았다는 상원사 등이 조화를 이룬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짝짓기 위해 화면을 분할하거나 잇는데, 작가는 이를 ‘역사풍경화’라 불렀다. 역사풍경화는 칼바람을 품은 유령의 울음처럼 음산하고 우울하다. 화폭을 지배하는 복잡한 감정은 빨간 핏빛으로 표현된다. “‘카드뮴레드’를 가장 즐겨 씁니다. 따뜻한 빨강이랄까요. 무채색을 쓰기도 했는데 이 색을 다시 쓰고 있죠.” 그는 민화의 기법을 활용해 거친 도시의 모습과 신화, 역사의 단면을 원색 회화로 표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내버린 괴짜’ 등 수식어도 다양하다. 교수직을 홀연히 내던지고 경기 양평의 작업실에 칩거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정년을 10여년 남겨놓은 시점이라 안팎에서 한목소리로 말렸다. 작가는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역사에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단종과 관련된 작업은 제 작업의 일부예요. 그리고 도시나 사람도 그리지요. 누군가는 이런 역사화 작업을 통해 삶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지닌 역사화는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작가들을 동원해 급조한 을지문덕 등 영웅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신화와 미술을 짝지은 서양에선 다양한 역사화가 등장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지석(誌石)이나 사당이 이 역할을 대신했어요.” 작가는 오는 7월 27일까지 경기 파주시 헤이리의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단종을 주제로 한 역사풍경화 30여점을 새롭게 선보인다. 기존 작업들과 달리 수양대군의 동생인 안평대군이 처음 등장한다. 전시와 함께 연극 ‘세조애걸’과 박동레코드의 퍼포먼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현대판 이산가족, 조선족 부모의 ‘눈물’

    현대판 이산가족, 조선족 부모의 ‘눈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또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을 찾은 조선족은 50만명에 이른다. 5년, 10년 한국에서의 생활은 기약 없이 길어져만 간다. 조선족 부모들은 그리움 속에 ‘코리안 드림’을 위태롭게 이어가고, 중국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눈물만 흘린다. 이들이 직면한 것은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의 모습이다. 9일 밤 10시 방영되는 KBS 1TV의 ‘KBS 파노라마:긴 이별 짧은 만남-조선족 부모들’은 조선족 부모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전한다. 남편과 어린 자식을 중국에 두고 한국에 온 김금옥(42)·금순(39) 자매. 만만치 않은 한국 생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지쳐간다. 자매의 갈등이 깊어지자 결국 6개월 만에 중국을 다녀오기로 한다. 하룻밤을 지새워 도착한 고향집. 그러나 아이들은 6개월 만에 보는 엄마가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점차 아이들은 엄마에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러 한국으로 떠날 날이 다가온다.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에 온 최용준(48)·김성순(46) 부부.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최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게 된 가족의 모습. 가족사진에서 가장 어렸던 아들은 어느새 사춘기를 겪고 오랜만에 만난 아빠를 외면한다. 부모들은 뼈아픈 이별을 감내하고 칼바람같이 매서운 타향살이를 하는 사이 조선족 아이들은 부모를 잊어가고 있다. 과연 조선족 가족들은 그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경제 블로그] 여의도에 부는 칼바람

    [경제 블로그] 여의도에 부는 칼바람

    올해 유난히 서둘러 찾아온 봄이 여의도 증권가에서만큼은 해당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증권가의 불황이 길게 이어지면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할 길 없던 증권맨들이 여의도를 속속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증권사의 직원 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소 수준이라고 합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와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요 증권사 25곳의 직원 수는 모두 3만 2225명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3만 1534명까지 떨어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2009년 이후 3년 연속 증가 추세에 있던 증권사 직원 규모는 재작년부터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섰습니다. 2012년 말 기준 3만 4919명이었던 국내 증권사 직원 수는 지난 한 해 동안만 2691명이나 줄어든 셈입니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의 직원 감소 폭이 더 컸습니다. KTB투자증권은 2012년 말 519명이었던 직원이 지난해 말 358명으로 31%나 줄었습니다. 합병 이후 경영 악화를 돌파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받았던 한화투자증권은 같은 기간 직원 수가 1704명에서 1308명으로 23.2% 감소했습니다. 이 밖에도 골든브릿지증권(-19.1%), SK증권(-15.8%), 유화증권(-14.9%) 등이 지난 한해 동안 큰 폭으로 인력 규모를 줄였습니다. 대형 증권사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총자산 규모 5위의 삼성증권은 직원이 2012년 3059명에서 지난해 2736명으로 10.6% 줄었고, 대신증권은 2332명에서 2105명(-9.7%)으로 줄었습니다. 증권가 구조조정의 한파는 여성 증권맨들에게 더욱 시리게 다가왔습니다. 25개 증권사 가운데 15곳에서 남성 직원보다 여성 직원을 더 많이 줄였습니다. 증권사의 여성 직원 수는 2012년 1만 3737명에서 한 해 뒤 1만 2638명으로 8% 감소한 반면 남성 직원 수는 2만 1182명에서 1만 9587명으로 7.5% 줄었습니다. 저조한 업황이 계속되면서 상당수 증권사들이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여의도에서 봄내음을 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서해 봄바다에서 만난 3味… 꽃게·실치·주꾸미

    서해 봄바다에서 만난 3味… 꽃게·실치·주꾸미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 겨우내 칼바람에 얼었던 포구는 따뜻한 봄볕을 받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즈음 서해포구는 봄 바다 내음에 젖고픈 행락객들로 북적인다. EBS ‘한국기행’은 21일부터 25일까지 매일 밤 9시 30분 5회에 걸쳐 ‘서해포구기행’을 떠난다. 닷새간의 여정은 서해 중부 중심어항인 안흥항에서 시작한다. 요즘처럼 봄바람이 불어오면 안흥항 사람들은 꽃게잡이에 설렌다. 예부터 물살이 세기로 유명했던 안흥항은 알차고 좋은 꽃게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혀 왔다. 하지만 거센 물살 때문에 어장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올해 첫 꽃게 조업에 나선 정훈씨가 마주한 건 닻줄이 끊어져 엉켜버린 어장. 엉망이 돼 버린 어장에서 과연 기대만큼의 꽃게 수확을 올릴 수 있을까. 정훈씨의 첫 꽃게 조업 길을 함께 따라간다. 22일(2부) 방송이 찾아가는 곳은 충남 당진의 장고항이다. 장고를 닮아 이름 붙여진 장고항에도 4월이면 생기가 돈다. 이곳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주인공은 실치. 성질이 너무 급해 잡히면 그 즉시 죽어버리는 탓에 타지에서는 싱싱한 회로 맛보기가 어렵다는 물고기다. 그 때문에 실치는 장고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명물이다. 23일 3부에서는 주꾸미 배로 붐비는 충남 서천의 홍원항을 찾아간다. 오동통한 주꾸미로 끓여 먹는 샤브샤브와 묵은지 찌개의 개운한 맛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명물이다. 이 밖에 15가구가 모여 살아가는 보령시 월도(月島)는 오는 24일 4부에서, 갱개미(가오리) 무침으로 유명한 만리포는 25일 5부에서 찾아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경기 ‘봄의 역설’] “온기 돌 때 미리”… 금융·건설·조선, 景氣 봄바람에도 ‘칼바람’

    [경기 ‘봄의 역설’] “온기 돌 때 미리”… 금융·건설·조선, 景氣 봄바람에도 ‘칼바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미국 금융가인 월스트리트의 감원이 대표적이다. 2008년 9월에만 약 2269개 기업이 각각 50명이 넘는 인력을 해고했고, 이는 2001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역시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구조조정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반면 이렇다 할 인력 구조조정이 없었다. 올해 들어 경기 호전세가 돌자 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직원을 내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비자발적으로 이직한 정규직의 수는 4만 4596명으로 지난해 2월(3만 1667명)보다 40.8% 급증했다. 2월 정규직의 이직률(자발적+비자발적)도 2.5%로 지난해 2월(2.3%)보다 상승했다. KT는 지난해 1494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 6000여명의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임원 보직 70개 중 15개를 없애고, 본사 근무 인원 6700명 중 1000명을 희망 퇴직으로 내보낼 예정이다. 전체적으로 150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삼성증권도 임원을 32명에서 26명으로 줄이고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STX는 150여명을 퇴사시킬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도 수익 급감에 따른 지점 감축으로 명예퇴직을 계획하고 있다. 금융, 건설, 조선 등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선 주요 분야다. 기업들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약해진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세계경제 전망도 불확실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단행했던 구조조정을 6년 뒤인 올해로 미루면서 구조조정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조조정 대상에 들어가는 직원들은 앞날이 막막하다. 금융사에 다니는 김모(47)씨는 올 초 명예퇴직을 거부했다가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는 “내가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상상도 못해 명퇴 권유를 무시했는데, 그냥 잘리면서 명퇴금마저 못 받게 됐다”면서 “20년이나 다닌 회사가 이렇게까지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한모(48) 부장은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로 기업이 극도의 불황일 때 사람을 내보내는 것을 삼가기 때문에 경기가 나아지는 지금 내보내는 것 같다”면서 “요즘에는 그저 나이가 죄”라고 밝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나온 퇴직자들이 치킨집 창업에 나섰다면 요즘은 커피점이 대세다. 지난해 커피점은 전국에 1만 5000개에 이른다. 치킨집처럼 골목마다 들어선 커피점은 주인이 자주 바뀐다. 퇴직금을 날리려면 커피점을 개업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지표의 개선세를 대부분의 기업들이 느끼지 못하는 데다가 미래 대비를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면서 “문제는 일반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진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권, 건설 등 침체 분야는 사실 구조조정을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하지만 일자리가 줄면 소비가 위축되고 다시 기업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돼 정부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1박 2일 전원 야외 취침 장소 현장답사 ‘간담 서늘’

    1박 2일 전원 야외 취침 장소 현장답사 ‘간담 서늘’

    ‘1박 2일’ 멤버들이 간담이 서늘해지는 채석장에 방문한 모습이 공개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듯 황량해 보이는 채석장을 거닐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오늘(13일) 오후 방송되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이하 1박 2일)은 경기 풍도로 떠난 멤버들의 ‘모 아니면 도’ 의리여행이 펼쳐지는 가운데, 제작진은 ‘야생화 사진 찍어 오기’ 미션 뒤 멤버들을 데리고 섬 반대편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다. 야생화 사진 찍어오기 미션 뒤 다소 지쳐있는 멤버들에게 제작진은 “섬 서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서 멤버들을 섬 반대편으로 이끌었다. 이후 가파른 경사를 넘어서자 남다른 포스를 풍겨내는 채석장이 등장했고 멤버들은 “까마귀도 있네”라며 음산한 분위기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요물 막내 정준영은 “나쁜 짓 하기 좋은 곳인데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고 차태현은 “어마무시하다”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잇따른 제작진의 설명에 멤버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곳이 바로 저녁 잠자리 복불복 결과에 따라 ‘전원 야외취침’을 할 장소였던 것. ‘전원 야외취침’을 할 장소의 현장답사로 채석장을 오게 된 것을 깨달은 멤버들은 제작진에게 하소연과 야유를 보냈지만, 제작진은 “아무데나 텐트 치시고 주무시면 됩니다”라며 자연스럽게 잠자리 복불복을 진행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멤버들은 의지를 불태우며 단합해 잠자리 복불복 미션을 수행했고, 제작진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 큰 웃음을 선사했다는 후문. ‘1박 2일’ 멤버들의 채석장 현장답사 방문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채석장 왜 데려갔나 했더니 야외취침 할 장소라고 보여주려고 데려갔던 거야?ㅋㅋㅋ”, “아 진짜 벌벌 떨며 잠자리 복불복 하겠구만ㅋㅋ 덕분에 우린 꿀잼~”, “채석장 현장답사 데리고 간 제작진 센스 좀 보소~”, “아 진짜 사막같이 황량하다~ 저기서 텐트 치고 자면 칼바람 장난 아닐 듯”, “아 오늘 방송일세~ 다같이 본방사수 합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과연 멤버들은 풍도 채석장에서의 ‘전원 야위취침’을 피해갈수 있었을지, ‘1박 2일’ 역사상 최악의 야외취침 잠자리 후보지였던 풍도 채석장의 어마무시한 자태는 오늘 방송되는 ‘1박 2일’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김주혁-김준호-차태현-데프콘-김종민-정준영 여섯 멤버들과 함께하는 ‘1박 2일’은 새로운 친구와 새롭게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순간과, 잃어버린 친구를 되찾은 듯한 기쁨을 보여주며 폭풍 호평을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스토리] 물전쟁 승리한 ‘하이트’ 15년만에 뒤집은 ‘카스’

    [커버스토리] 물전쟁 승리한 ‘하이트’ 15년만에 뒤집은 ‘카스’

    ‘물고 물리는 물(水)전쟁.’ 한 주류업계 임원은 1990년대 급박하게 돌아갔던 맥주 시장을 이렇게 회상했다. 페놀 유출 사건을 시작으로 점유율 판도가 뒤바뀌었고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맥주)와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라는 전통적인 양강 구도를 비집고 ‘카스’ 열풍이 불었다. 그는 “경쟁이 전쟁 수준으로 치달았고 당시 업체 사장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엎치락뒤치락 치열했던 맥주 시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사태를 전후로 하락세를 탔고 급기야 기업의 운명까지 갈랐다. 국내 맥주 시장의 역사는 하이트진로 및 오비맥주의 사사(社史)와 궤를 같이한다.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조선맥주와 오비맥주의 전신인 소화기린맥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치열한 물 전쟁을 벌여 왔다. 해방 후에는 조선맥주와 동양맥주가 각각 그 맥을 이었다. 1990년 초반까지는 동양맥주가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며 독주 체제를 이어 갔다. 만년 2위였던 조선맥주가 승기를 잡은 건 1991년도다. 그해 3월 낙동강 유역의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유출됐다. 두산전자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을 연결하는 파이프가 파열된 게 원인이었다. 30t의 페놀이 유출됐고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국 각지에서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졌다. 두산 계열사인 동양맥주 버리기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당시 업계에 종사했던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도 아닌데 동양맥주를 향한 세간의 비난은 어마어마했다”면서 “사고 이후 또다시 페놀이 유출되면서 사태가 악화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두산 페놀유출… 동양맥주에 불똥 불매운동까지 환경부 장·차관이 경질됐고 총수인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1993년 조선맥주의 반격까지 시작됐다. 조선맥주는 기존의 맥주 브랜드인 ‘크라운’ 대신 천연 암반수 콘셉트의 ‘하이트’로 이른바 물 전쟁에 불을 붙였다. ‘맥주의 90%는 물.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라는 하이트의 도발적인 광고 문구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페놀 사건 이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수질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탁월한 한 수였다. 절대 강자 동양맥주의 시장점유율엔 비상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1994년에는 진로쿠어스가 카스맥주를 들고 맥주 사업에 뛰어들었다. 양강 구도였던 맥주판이 한치 앞도 모르는 전쟁터로 뒤바뀐 것이다. 1996년 그렇게 조선맥주(43%)는 동양맥주(41.7%)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2.3% 포인트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이후 오비맥주는 15년간 한 번도 시장 1위를 되찾지 못했다. 잘나갈 것만 같았던 맥주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거품이 꺼졌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시 각 기업들은 맥주 소비가 늘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으로 앞다퉈 빚을 끌어들여 맥주 생산량을 늘렸다”면서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맥주 소비가 줄어 기업들이 휘청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진로그룹은 1997년 부도를 냈다. 맥주 사업에 손을 댄 후 자금난이 심화된 데다 건설, 유통 부문의 적자가 겹치자 모기업인 진로그룹이 고꾸라졌다. 당시 업계에서는 맥주 사업에 거액을 투자한 것을 부도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맥주 부문은 오비맥주가, 소주 부문은 하이트맥주가 각각 사들였다. ●조선 “맥주 끓여드시겠습니까” 도발적 광고 이후 점유율 1위 올라 한 시절을 호령했던 동양맥주도 외환위기의 칼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페놀 사건 이후인 1995년, 두산종합식품과 두산음료를 동양맥주에 합병해 사명도 오비맥주로 바꾸는 등 재기를 노렸지만 돈줄이었던 맥주 사업의 부진은 곧바로 그룹 자금난으로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시도 때도 없이 부도설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었다. 이 가운데 실질적인 주인도 바뀌었다. 1997년 오비맥주는 당시 세계 4위 맥주 회사였던 벨기에 인터브루(현 AB인베브)에 지분 50%를 매각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뼈아픈 선택이었다. 1999년 진로로부터 카스맥주를 인수하기도 했지만 점유율은 여전히 40% 초반에 머물렀다. 그리고 2001년 두산그룹은 그룹 모태나 다름없는 지분을 완전히 정리했다. 식음료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도 처분하며 중공업, 기계 등 중후장대형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오비맥주의 주인인 인터브루는 2009년 7월 사모펀드 투자 기업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에 지분을 매각했다. 당시 오비맥주 관계자는 “인터브루는 비용 절감을 위해 오비맥주 경영에 깊이 관여했다”면서 “KKR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오비맥주 경영진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줬고 오비맥주는 과거 인터브루 시절 아낀 자금력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각 당시 오비맥주의 점유율은 43.7%였다. 그러나 2011년 말 오비맥주는 국내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하이트진로를 눌렀다. 지난해 3월 기준 오비맥주는 60% 점유율로 업계 수성을 하고 있다. 몰락한 맥주 명가 오비맥주는 어떻게 부활에 성공했을까. 때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호림 오비맥주 사장은 오비 대신 진로로부터 인수한 ‘카스’ 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십년간 국내 시장에서 군림해 온 오비 브랜드를 버리겠다는 파격적인 전략이었다. 임직원의 반대가 거셌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당시 오비맥주 직원들은 과거의 브랜드를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면서 “당시 자칫 낡아 보이는 오비의 이미지를 버리고 정통성은 떨어지나 상승세를 타는 카스 브랜드로 젊은 층을 집중 공략했던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작년 오비 1위 탈환… 2000년대 이후 프리미엄 경쟁 하이트맥주는 1998년 회사 이름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꾸고 꾸준히 업계 1위를 다져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오비맥주는 먼저 국내 최초 비열 처리 맥주인 카스의 신선한 맛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또 톡 쏘는 상쾌함을 강조하며 젊은 층을 노렸다. ‘카스 후레쉬’에 이어 ‘카스 레드’ ‘카스 레몬’ ‘카스 라이트’ 등이 잇따라 출시됐다. 과거 다소 획일화된 맥주 맛에서 탈피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철저하게 세분화한 오비맥주의 전략은 시장에 정확히 먹혀들었다. 한편 2000년대 이후 맥주 시장은 프리미엄 경쟁으로 치달았다. 외국 맥주의 수입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됐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맥주는 ‘폭탄주 전용 맥주’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2010년에는 수입 맥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위기감을 더했다. 실제로 2008년 전체 맥주 시장의 3.5%에 불과하던 프리미엄 맥주 시장은 2010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증가해 2012년에는 5.4%까지 됐다. 프리미엄 맥주에 대한 수요 증가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으나 하이트진로맥주와 오비맥주는 다소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2010년 8월 프리미엄 맥주인 ‘드라이피니시d’로, 오비맥주는 2011년 3월 오비 골든라거를 출시해 제2의 맥주 맛 전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양 사는 올해 유통 공룡 롯데주류의 맥주 시장 합류로 제3의 맥주 전쟁을 준비 중이다. 물론 80년의 맥주 역사 속에 이 두 맥주 회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섬유업체 삼기물산과 독일의 이젠백이 합작한 한독맥주는 1975년 정통 독일맥주를 표방한 이젠백맥주를 출시해 한때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리는 등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백맥주는 양대 선발업체의 강력한 견제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1977년 조선맥주에 인수됐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1급 관료 버티기가 ‘일괄 사표’ 불렀다

    “명예퇴직할 수도 있지만, 사표는 다른 문제 아닌가.”, “아직 아이를 키우고 있다.” 공직사회에 1급 고위공무원들의 ‘일괄사표’ 현상이 번지면서 일부에서 “퇴로(후임 자리) 없이 무작정 나갈 수는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국무총리실 1급직 10명의 사표 제출로 불었던 인사쇄신 바람이 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등의 집단 사표설로 확산되는 배경에는 아직 50대 초·중반인 1급 공무원의 버티기도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나갈 사람이 끝내 버티자 파편이 전원 퇴진으로 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1급들이 버티는 것은 선배 1급들이 관행처럼 꿰찼던 공공기관장 자리가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에 가로막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사 적체가 심한 기재부는 최근 국책은행장 자리에 1, 2차관이 동시에 후보에 올랐다가 결국 민간 금융전문가에게 밀렸다. 각 부처에서는 이번 1급 인사 태풍의 진원지로 슬쩍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부처 인사는 장관이 요인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라며 발을 뺀다. 지난해 말 인사쇄신의 시그널을 주긴 했고 이를 총리실이 먼저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후 사사건건 관여하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부처를 장악하지 못해 ‘1급 불퇴’도 꺾지 못하는 장관들이 ‘청와대 핑계’를 댄다는 말도 나온다. 청와대가 정부 출범 초기의 잇단 인사 실패를 잊지 못한 채 낙점을 미루고 있는 점이 장관들의 눈치로 이어진다는 말도 있다. 아울러 2006년 고위공직자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고위직들의 연령대가 낮아진 점도 버티기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커버스토리] 창조경제 ‘효자’ 떠오른 국내 방위산업

    [커버스토리] 창조경제 ‘효자’ 떠오른 국내 방위산업

    지난해 1월 5일 미국 알래스카 센트럴 비행장.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헬기의 비행시험을 앞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정부 관계자들은 아침부터 가슴을 졸였다. 12시간 동안 영하 32도의 칼바람을 맞은 헬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판가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시동을 걸고 모든 기능에 문제가 없음을 나타나는 표시등에 불이 켜지자 관계자들은 환호했다. 우리 헬기가 극한의 추위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고 세계 11번째 헬기 개발 국가로 진입하는 신호탄이었다. 국내 방위산업이 미래 신성장 동력을 이끌 창조경제의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우리 방위산업 수출액도 약 34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1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1970년부터 40여년간 우리 국방기술이 민수 분야에 창출한 부가가치는 1조 1200억원으로 나타났고 2006년 방사청 개청 이후 현재까지 민·군이 합심해 개발한 23개 사업의 투자효과는 4713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정부가 홍보해 온 국산 ‘명품 무기’들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여전하다. 국방기술품질원은 7년간 방산기업에 공인시험성적서 2749건을 위·변조한 241개 협력업체를 지난 17일 적발했다. 지난 12일에는 복합소총 K11이 훈련 중 폭발 사고를 일으켜 장병 3명이 다치기도 했다.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방위산업이 ‘성장통’을 앓고 있는 셈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방위산업 통계 및 경쟁력 백서’에 따르면 우리 방위산업 생산액은 2012년 기준으로 10조 8936억원으로 세계 10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방위산업의 제품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82~88%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연간 매출액 5억원 이상의 방산기업은 314개이며 이 가운데 대기업이 26개, 중소기업이 288개다.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삼성테크윈, T50 항공기와 수리온을 생산하는 KAI, 해성 미사일 등을 생산하는 LIG넥스윈 등은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포함된다. 하지만 2012년 기준으로 전체의 8.3%에 불과한 대기업의 방위산업생산액이 8조 7665억원으로 80.5%를 차지하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6%인 점은 중소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실장은 “우리 방위산업이 대기업의 완제품 생산 위주로 돼 있고 무기의 국산화율은 60%대에 그쳐 중소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 제한된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열린세상] 대학구조개혁, 교육의 질로 평가하자/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학구조개혁, 교육의 질로 평가하자/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다. 적어도 지방대학에서는 그렇다. 캠퍼스는 새 학기가 되면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으로 활기를 띠게 된다. 남도의 산수유 꽃망울마냥 봄의 전령처럼 찾아온 새내기들은 캠퍼스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그러나 올해의 봄은 여느 봄 같지 않다. 정부의 강도 높은 대학구조개혁의 칼바람은 꽃샘추위와 함께 물러나곤 했던 여느 회오리바람 같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의 정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대학구성원들 스스로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2023년까지 전국 대학 정원의 16만명을 감축하겠다고 나선 것도 대학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교육부의 구조개혁 방안과 지방대 특성화 사업계획이 발표된 이후 지방에서는 특성화 사업단에 선정되기 위해 저마다 사활을 걸고 있다. 대학 재정과 학교 운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정원감축이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에 학과 통폐합 등으로 정원의 10% 감축방안을 마련하느라 대학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미충원 사태는 수년 전부터 누적돼 왔고, 수도권 경제력 집중에 따른 인재의 유출은 해묵은 과제다. 수도권 대학에 비해 교육·연구여건이 열악하고 교육만족도도 떨어진다. 졸업생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취업의 질도 취약하다. 특히 정부의 ‘대학설립 준칙주의’에 따라 양산된 비리사학으로 인해 학생과 교수들의 이중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까닭에 대학구조개혁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방향이다. 교육부가 전국의 대학을 대상으로 절대평가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5개 등급별로 정원감축을 시도하겠다는 것은 개혁의 대상이 지방대학임이 명백하다. 교육부는 충원율 폐지 등 평가지표의 개선으로 지방대학이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 말을 곧이 믿는 지방대학 구성원은 아무도 없다. 구체적 평가지표와 반영비율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교육부가 예시한 내용만 놓고 봐도 교육시설, 교육성과, 교직원 등의 항목에서 지방대학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대학교교육협의회(대교협) 등 교수·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개혁조치가 결국 지방대학 몰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은 특성화 전략이다. 지방대 특성화 사업은 대학이 특성화 분야를 정해 신청하는 대학자율형, 인문·사회·예체능·기초과학·국제화 분야를 육성하는 국가지원형, 지역산업과 연계한 지역전략형 등 세 가지 유형이다. 대학 스스로 특성화·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접근은 적절하지만, 문제는 특성화를 대학의 정원감축과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원을 많이 감축할수록 가산점이 높기에 취업률이 낮고 학생 지원도 적은 비인기학과나 기초학문 분야가 일차적 통폐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특성화 전략은 창의·융합을 근간으로 한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표와도 상충된다. 학문의 다양성과 균형적 발전을 저해하고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야 위주로 특성화가 진행될 우려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역산업이 열악한 곳에서는 특성화 사업도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렵고 동일 지역에서 서너 개 대학이 유사한 특성화 주제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정원감축이 아니라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져야 한다. 대학 스스로 교육과정을 특성화하고 차별화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향후 교육부의 평가지표 개발에는 이 같은 정책 방향이 담겨져야 한다. 차제에 지방대학 구성원들도 그동안 교육의 질 제고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학생과 지역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엄격한 학사관리와 교수학습 지원체계를 통해 학생들의 교육만족도를 제고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백화점식 학과 개설과 자기 분야의 좁은 시야에 갇혀 시대의 흐름을 외면해 온 거점 국립대학들도 개혁의 본을 보여야 한다.
  • 최룡해 北 군총정치국장 감금설 확산…장성택 이어 숙청 바람 또 부나

    최룡해 北 군총정치국장 감금설 확산…장성택 이어 숙청 바람 또 부나

    장성택이 숙청된 뒤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꿰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한달 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아 감금설 또는 신변이상설이 제기되고 있다. 장성택에 이어 또 한 번 충격적인 숙청의 칼바람이 부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최룡해는 모습을 드러낼만한 공식행사에 5번 연속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중앙보고대회 등 주요 공식 행사에는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에 당장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긴 어렵다. 그러나 장성택 숙청 이후 2인자로 떠오른 최룡해가 조선노동당 사상일꾼대회 등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다른 군부 인사들은 대부분 참석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김정은 제1위원장 수행 횟수 1위를 기록했던 최룡해가 올해 들어 3위로 떨어진 것도 변화된 점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룡해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향후 북한의 권력 지형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최근 최룡해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족보와 소설책/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화평론가

    [열린세상] 족보와 소설책/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화평론가

    대학 동기인 소설가가 전화를 했다. 딸이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곧 할머니가 되겠네’라고 농담을 던졌더니 그 친구 말이 ‘그러게 말이야, 늙었지 뭐’였다. 어린 시절에는 설날에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다는 말을 듣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두 그릇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제 설날에 떡국 먹기가 머뭇거려진다. 지인의 부모 장례식에 다니던 나이에서, 지금은 친구의 자식 결혼식에 갈 나이가 되었건만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이 한심스럽다. 선친의 제사가 있어서 고향 선산에 갔다. 절을 올리고 잠깐 앉아 선친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선친과 관련해서 많은 기억이 있으련만 어떻게 된 것인지 일만 하던 선친의 모습만 떠올랐다. 땀내 나는 작업복, 시커멓게 그은 얼굴, 밤늦도록 장부 정리를 하면서 주판알을 튕기던 거친 손마디, 그것이 전부였다. 얼마 전 딸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놀리려고 딸이 농담으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내 딸만큼은 아빠 곁에 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딸도 엄마가 돼 한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딸에게 아빠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물어보나마나 뻔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나는 문인들과 토론한답시고 매일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근 보름을 그렇게 보내고 어느 날 맨 정신으로 일찍 들어갔다. ‘아빠 왔다’하면서 딸의 방문을 열자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짓궂게 웃으면서 ‘누구신데요?’ 하는 것 아닌가. 그때 착실한 아빠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건만, 그날 이후 이날 이때까지 새벽에 들어가는 짓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 대한 딸의 기억을 어찌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요즘 달라진 게 있다면, ‘카카오톡’에 가족 채팅방을 열어 자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문자와 이모티콘을 섞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왠지 이전보다 딸과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비용도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 스마트폰을 분실해 버린 것이다. 애타게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주고받던 내용들을 볼 수가 없어 몹시도 허전했다. 이번 설에 우연히 족보를 들춰 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십권 되는 족보를 펼쳐 두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글자를 짚어가면서 ‘남평문씨’ 족보를 설명하던 선친의 모습,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듣고 있는 까까머리 중학생의 모습, 겨울 칼바람을 녹이는 뜨끈한 방구들, 며느리가 울면서 쫓겨나는 연속극 ‘여로’의 한 장면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선친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리움 등이 겹치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족보를 정성껏 닦으면서 생각했다.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결혼한 후에도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내가 아는 것이 소설뿐이니 좋은 소설책을 사서, 책을 선물하는 날짜, 책을 읽고 느낀 점, 책을 살 때의 내 근황을 적은 엽서를 동봉해 선물하는 것이다. 내가 족보를 싫어했듯이 딸도 소설 내용이 자신의 세대 감각과 맞지 않는다며 소설책을 싫어할지 모른다. 그래도 훗날 소설책을 들춰보다가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 카카오톡으로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소중한 기억이 다 사라져버린 듯한 묘한 기분을 맛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내가 간직하고 있는 족보에서는 선친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딸도 내가 선물한 책을 오래오래 간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딸이 내게 ‘누구신데요’라고 묻던 때처럼 나에 대한 기억이 안 좋은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남겨주는 아빠는 아빠가 아니지 않은가. 해서, 늦었지만 올해부터는 따뜻한 기억을 남겨주는 아빠가 되도록 개과천선해야겠다는 결심도 한다.
  •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유라시아 루트의 척추’ 시베리아 횡단철도 타보니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유라시아 루트의 척추’ 시베리아 횡단철도 타보니

    여당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유라시아철도추진위원회’가 28일 발족하는 등 지난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실현 방안으로 밝힌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유라시아 철도) 추진 계획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남북한을 관통하는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이 계획이 실현되면 한·러 교류 확대는 물론 물류, 관광, 통일, 외교적인 관점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TSR은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노선. 러시아의 극동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혹한의 시베리아,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철도로 한반도에서 유럽, 중앙아시아 등으로 뻗어나가는 유라시아 루트의 척추다. 서울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에 달하는 선로를 따라가면서 바이칼 호수를 품고 있는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 모스크바 등 TSR이 지나는 러시아 주요 도시들을 취재했다. 또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추위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만나 러시아 시장의 가능성, 한국에 대한 러시아인의 인식과 향후 한·러 관계에 대한 기대와 전망, 개선점 등을 들어봤다. 달리는 기차는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시베리아의 칼바람에도 멈춰서는 일이 없었다. 철길 이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허리까지 쌓인 눈과 황량한 대지를 이따금씩 채우고 있는 은빛 자작나무가 전부였다. 30분 정도 정차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역에는 타고내리는 승객은 적은 반면 선로 위를 채우고 있는 화물 컨테이너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기관차 뒤로 100~120량의 화물 컨테이너를 달고 질주하는 모습도 특이한 광경 중 하나다. 1929년 전쟁 물자 운송 및 시베리아 황무지 개척 등을 위해 만들어진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2002년 전철화·복선화 이후 극동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유일한 육상 교통수단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 노선(총길이 9288㎞)이다. 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기차는 극동의 수도라 불리는 하바롭스크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다 이후에는 계속해서 모스크바가 위치한 서쪽으로 향했다. 기차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의 로망인 TSR은 러시아인들에게도 교통수단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러시아 신년 연휴의 끝자락이었던 지난 9일 TSR에서 만난 아토르 마틴(30)은 “말로만 듣던 횡단열차를 타 보고 싶어 연휴 기간 동안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며 창밖에 펼쳐지는 설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경을 뒤로한 채 3일을 꼬박 달린 TSR은 러시아 내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하는 몽골횡단철도(TMGR)가 합류하는 곳인 만큼 다른 역들에 비해 유독 많은 승객이 기차에 오르내린다. 한국 사람과 흡사한 부랴트인들을 보니 왠지 모를 반가움이 앞선다. 울란우데를 지나 7시간 정도를 달리면 세계 최대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바이칼호수가 펼쳐진다. 바이칼호수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만큼 넓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다 담아내기조차 벅차다. 철길 옆으로 이어진 물줄기들이 이르쿠츠크가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이르쿠츠크 역에서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유독 많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러시아의 몇 안 되는 관광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를 지난 TSR은 30여 시간을 달려 시베리아의 수도인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한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물류망이 형성돼 있는 데다 150만여명이 사는 시베리아 최대 도시다. 이 때문에 노보시비르스크에는 다른 역에 비해 화물 컨테이너를 실은 기차가 유독 많이 줄지어 서 있다. 시베리아를 지난 TSR은 우랄산맥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에 정차한 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우랄 산맥을 넘기 시작한다. 수십 개의 역에 정차한 기차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150여 시간을 달려온 끝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했다. TSR의 종점인 모스크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로 가는 레닌그라드역,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가는 키예프 역 등 모두 9개의 터미널과 13개의 노선이 있다.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터미널들과 핀란드, 독일, 벨라루스 등 유럽과 러시아 각 지방으로 연결된 철로들은 왜 모스크바가 TSR의 종점이자 또 다른 시작점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극동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TSR은 화물과 승객을 실은 채 오늘도 말없이 질주하고 있다. 글 사진 시베리아횡단열차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초보 노점상 진희씨에게 보내는 세 딸의 가슴 뭉클한 응원

    초보 노점상 진희씨에게 보내는 세 딸의 가슴 뭉클한 응원

    갑작스러운 불행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윤진희(43)씨에게도 그랬다. 세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로 살아가던 진희씨는 6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온실 속 화초와도 같았던 진희씨는 세 딸을 위해 질기고 강한 잡초가 돼야 했다. 27일부터 31일까지 KBS 1TV에서 오전 7시 50분 방영되는 ‘인간극장’의 ‘엄마 힘내세요’ 편은 초보 장사꾼이 된 진희씨와 엄마를 응원하는 세 딸의 뭉클한 가족애를 카메라에 담는다. 진희씨는 2주 전 트럭에서 옷 파는 노점을 시작했다. 홀로 노점을 펴 본 적도, 옷을 떼어 온 적도 없었던 진희씨는 아직도 혼자 장사하는 일이 버겁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는 손님도 많지 않고, 길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있는 것도 고단하기만 하다. 하루 장사를 마치고 꽁꽁 언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면 리나(16)와 유나(14), 예나(12)가 엄마를 맞이한다. 손을 문질러 주고 안마를 해주는 딸들의 응원과 격려에 진희씨는 약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6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희씨는 삶의 의지마저 함께 놓아버렸다. 몸도 마음도 아픈 엄마를 가장 먼저 끌어안은 것은 바로 세 딸이었다. 딸들은 엄마를 위해 일찍 철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한국 무용 유망주로 꼽혔던 첫째 리나는 아빠를 웃게 해주기 위해 무용을 시작했다. 이제 리나에게 무용은 가족을 일으키기 위한 목표가 됐다. 둘째 유나는 집안일을 돕는 든든한 살림꾼이 됐고, 막내 예나는 남사당패의 단원으로 장학금까지 받는 똑소리 나는 아이다. 형편상 첫째 리나가 무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두 동생은 자신의 용돈을 보탠다. 이렇게 똘똘 뭉친 자매는 엄마를 ‘엄마’로 만들어주는 보물이다. 진희씨가 강한 엄마로 거듭나게 된 뒤에는 유나의 친구 어머니인 염정미(44)씨도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나약하기만 했던 진희씨에게 정미씨는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인 동시에 용기를 키워주는 조련사였다. 여성스러운 진희씨와 반대로 정미씨는 털털하고 씩씩하다. 장사 선배로서 진희씨를 도우며 함께 전국을 돌며 재활용 옷을 공수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진희씨를 위해 트럭 노점에 직접 비닐 천막을 둘러주기도 한다. 엄마 없이 홀로 남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 등교와 살림을 챙겨주기도 하는 정미씨는 진희씨의 오늘을 있게 만든 최고의 조력자다. 기특한 세 딸과 든든한 정미씨, 그리고 세상의 따뜻한 도움으로 진희씨는 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사설] 사납금만 올리는 택시요금 인상 더는 안 된다

    지난해 말 인상된 택시요금이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 등에 쓰이기는커녕 기사가 택시업체에 내는 납입기준금(사납금)만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가 택시요금 인상 이후 노사가 합의한 ‘임금협정서 이행실태’를 점검한 결과, 1월 현재 임금 협상을 끝낸 144개 업체 가운데 40개 업체가 협정서에 제시된 규정들을 어겼다.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법인택시업체는 255개에 이른다. 27개 업체는 노사 협상에서 정한 사납금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13개 업체에선 기사가 실제 근무하는 시간을 줄이는 편법까지 동원해 되레 기사의 수입이 줄었다고 한다.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승차 거부가 줄어들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다. 택시업계 노사는 지난해 10월 택시 기본요금을 600원 인상할 때, 기사의 처우 개선과 이에 따른 서비스 개선에 나서겠다고 시민에게 굳게 약속했었다. 1일 사납금은 2만 5000원을 넘기지 않고, 기본 월급을 23만원 이상 올리는 등의 기준을 각 사업장에 내려보냈다. 하지만 상당수의 업체에서 요금이 오른 만큼 사납금도 올려 요금 인상이 기사의 수입 증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월급은 50여만원 인상됐는데 사납금은 70여만원 올랐다는 사례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요금 인상이 사업주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된 것이다. 이번 서울시의 택시업계 운영실태 점검은 기사들의 민원이 잇따르면서 실시됐다. 이는 택시업계의 꼼수 행태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시는 택시업체의 이 같은 행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차하면 사법경찰의 특별수사를 병행하고, 검경 수사와 세무조사를 의뢰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부디 이 원칙과 의지가 누그러져서는 안 된다. 썩은 살을 도려내듯 사업주들의 그릇된 행태는 꼭 찾아내야 한다. 택시업계의 경영은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확인된 사납금 운영 실태 등을 보다 철저히 가려 경영부실 요소가 개입됐다면 구조조정이란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은 서비스의 향상과 직결된다. 시민들이 겨울밤 칼바람을 맞으며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기만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 “육로 통해 백두산 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육로 통해 백두산 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다음에는 꼭 북한을 경유하는 열차를 타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한 철도 연결이 민족의 통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지난 8일 백두산 천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북한을 통과해 대륙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철도 개통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새해를 맞아 백두산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해발 2750m 백두산 정상에서 꽁꽁 얼어붙은 천지를 바라보며 저마다 소원을 하나씩 풀어냈다. 통일에 대한 소원도 빼놓지 않았다. 백두산 천지비(天池碑) 앞에서 만난 박현석(53)씨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한 당시 유라시아 철도를 언급했는데 대한민국을 위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실현만 된다면 북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관이 꿈이라는 이기쁨(22·여)씨도 “중국 여행을 하면서 단둥(丹東) 등 접경지역을 많이 갔는데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면서 “유라시아 철도가 하루빨리 연결돼 이를 계기로 통일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영하 20도의 기온에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까지 더해졌지만 많은 관광객들은 천지에서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새누리 좋은 사람들’을 따라 산행을 온 중학생 김신영(14)군은 “한국이 그동안 인천공항, 부산항 등 항공과 항만을 이용해 주변국과 교류가 활발했는데 여기에 철도까지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몇 배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북한이 변수가 될 수 있지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관광업계에서는 백두산이 현재 중국을 경유하지 않으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유라시아 철도가 북한을 관통할 경우 관광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2008년 88만명 수준이었던 백두산 관광객 수는 2012년 처음으로 150만명을 넘어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백두산 현지에서 산행 가이드를 하는 조선족 동포 김태군(29)씨는 “애국가 영상에도 나올 정도로 백두산은 한국 사람들이 꼭 한번 찾고 싶어하는 산으로 알고 있다”며 “철도가 연결되면 백두산만의 기운을 느껴 보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백두산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中 대륙으로 향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기점 훈춘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中 대륙으로 향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기점 훈춘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8일 중국 훈춘(琿春). 시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148만 7000㎡(45만평) 규모의 거대한 ‘포스코현대국제물류단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해 3월부터 건설을 시작한 물류단지 공사 현장에는 관리사무동과 물류창고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2020년까지 총 2000억원 정도가 투자되는 이곳은 우리나라가 중국 대륙은 물론 러시아 극동 지역과 몽골, 북한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이 될 요충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되는 지점인 러시아 하산 지역과도 불과 30분 거리에 있다. 중국 동북 3성인 헤이룽장(黑龍江)·랴오닝(遼寧)·지린(吉林)성에서 생산된 물류 또한 훈춘에 위치한 물류단지를 통해 중국 내륙과 외국으로 옮겨질 전망이다. 연제성 포스코현대 훈춘물류기지 법인장은 “훈춘은 이제 시작하는 곳으로 통일시대에 대비한 대북사업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며 “2020년까지 사업을 다각화시켜 종합 물류회사로 성장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사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동북아 핵심 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훈춘이 유라시아 철도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 국무원(國務院)이 2012년 ‘중국두만강지역(훈춘)국제합작시범구’ 설립을 비준한 후 개발을 본격화한 게 발전의 계기가 됐다. 2020년까지 조성할 시범구는 90㎢ 면적에 국제산업합작구역, 국경무역합작구역, 북·중 훈춘경제합작구역, 중·러 훈춘경제합작구역 등 4개 구역으로 구성된다. 훈춘시 소속 김민철(47) 훈춘국제물류단지 종합관리부 부장은 “훈춘은 동북아 6개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몽골, 북한 등과 통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는 곳”이라면서 “훈춘시도 도로망 연결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되면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훈춘은 교통망 확충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창춘(長春)~옌지(延吉)~훈춘을 잇는 총 360㎞ 구간의 고속철도가 올해 완공되고 이미 2010년 동일한 구간에 건설된 고속도로는 러시아 하산까지의 연장을 목표로 공사를 준비 중이다. 또한 중국 현지 언론은 훈춘~북한 나진항으로 연결되는 새 두만강 대교의 건설이 올해 안에 착공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되면 훈춘 지역으로 몰려든 물류들이 나진, 하산을 통해 뻗어 나갈 수 있는 셈이다.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훈춘에서 중소 여행사를 운영하는 이모(43)씨는 “훈춘과 유라시아 철도의 연결은 물류 이동에 있어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현재 육로나 항로를 이용하는 시스템에 철도까지 더해진다면 동북 3성이나 러시아 등의 많은 물류를 한 번에 한국과 중국 내륙까지 보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고경봉 훈춘국제물류단지 기획건설부 부장도 “철도 연결은 관련국 모두가 공동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중국은 인건비,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 등 각자의 장점을 살려 서로 교류하면 윈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는 창춘~옌지~훈춘 구간의 고속철도가 동북 3성의 중국인들을 한국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속 250㎞로 달릴 수 있는 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훈춘에서 지린성 성도인 창춘까지 철도 운송시간이 현재의 3분의1 수준인 2시간 50분으로 단축되기 때문이다. 동북 3성의 인구는 2012년 기준으로 1억 960만명에 이른다. 훈춘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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