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칼리드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윤리위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성찬식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어업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공터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2
  • [이슬람 문명과 도시] (6)시리아 다마스쿠스

    [이슬람 문명과 도시] (6)시리아 다마스쿠스

    아침 비행기로 요르단의 암만을 출발한 지 1시간도 못되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착륙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두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승무원들의 재촉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뿌연 매연을 뒤집어 쓴 다마스쿠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서쪽으로 안티-레바논 산맥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다마스쿠스를 감싸고 있다. 비행기는 한바탕 요동을 친 후 순조롭게 착륙해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세계서 가장 오래된 ‘동양의 진주´ 소위 “인류가 계속해서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도시”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것이다. 다마스쿠스는 약3500년 전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후 한번도 폐허가 되지 않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간주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이 도시를 ‘동양의 진주(the Pearl of Ori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마스쿠스의 공식 명칭은 아랍어로 디마쉭 앗-샴(Dimashq ash-Sham)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줄여서 디마쉭이라고 부르지만 아랍인들은 앗-샴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앗-샴은 북쪽을 의미한다. 아랍인들의 주요 거주지역에서 다마스쿠스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는 총알처럼 달려 미리 예약된 신시가지의 호텔로 순식간에 나를 안내한다.1920년부터 1946년까지 4반세기를 프랑스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개척된 신시가지이기에 유럽식 건물들이 이방인처럼 여기저기 눈에 거슬린다. 한시라도 빨리 다마스쿠스 본연의 오리엔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여장을 풀자마자 바로 신시가지를 벗어난다. #다마스쿠스의 젖줄 바라다 강 동쪽의 구 시가지를 향하는 택시는 바라다 강을 끼고 달린다. 이 강이 다마스쿠스의 젖줄이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지중해에서 출발한 바람은 그 험한 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을 힘들게 넘으면서 땀처럼 비를 뿌린 후 정작 다마스쿠스에 도달하면 건조한 바람으로 변한다. 그래서 다마스쿠스와 그 동쪽은 온통 사막뿐이다. 하지만 이 바라다 강이 구타(Ghouta) 오아시스를 만들어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금강(金江)”이라는 의미의 바라다는 정말 다마스쿠스에는 금과 같은 존재이다. 교통 체증으로 잠시 짜증이 밀려왔지만 곧 다마스쿠스 구시가의 성곽이 보이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성곽 안에 2000년 이상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흥분이 밀려온다. 우선 동쪽에 위치한 기독교 지역부터 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성곽의 동문(東門) 앞에 택시를 세웠다. 로마 시대에는 태양이 뜨는 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서 태양의 문이라고 불렸던 동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그곳이 다마스쿠스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투마(예수의 제자인 도마의 아랍어식 표현) 지역이며 주로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다마스쿠스는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예수의 환상을 보고 눈이 멀었으나 다마스쿠스 출신의 아나니아가 성안으로 바울을 데려와 치료해 주었다. 그 후 다마스쿠스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선교활동을 펼치던 바울이 유대인들의 위협을 받자 동료들이 그를 바구니에 넣어 성벽 아래로 내려 탈출시켰다. 동문 바로 북쪽 아나니아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인 아나니아 교회가 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교회는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바구니로 탈출했던 자리에는 성-바울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다. #7세기 중반부터 기독교 공동체 인정 이슬람의 심장부에서 1350여년 동안 존속하고 있는 기독교 교회들을 둘러보며 새삼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의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7세기 중반부터 다마스쿠스를 지배한 이슬람의 아랍인들은 어느 정도의 차별은 있었지만 기독교 공동체를 인정하고 자치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치면서도 오늘날까지 기독교 사회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이슬람의 강제적인 포교를 상징하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라는 표현이 왜곡이라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더욱이 기독교 지역 바로 서쪽의 하랏 알-야후드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유대교 지역을 둘러보면서 아브라함 후손들의 종교가 사이좋게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오늘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종교 간의 충돌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제 나머지 이슬람 지역을 둘러볼 차례이다. 다마스쿠스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우마이야 모스크로 통하는 길목에는 아랍어로 ‘쑤끄(souq)’라고 불리는 전통 시장들이 늘어서 있다. 페르시아-터키 문화권의 ‘바자르(bazaar)’와 같은 의미이다. 이슬람에서 모스크는 단순한 신앙생활의 공간만은 아니다. 주변에 병원, 학교, 도서관, 시장,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건물도 지어 문화적, 경제적 공간을 함께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시장의 상점에서 얻어지는 임대수입은 모스크 운영과 복지를 위한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문화·경제공간 전통시장 ‘쑤끄´ 삶을 외치는 싱싱한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사람과 짐과 부딪치며 어렵게 전진해 가니 향긋한 냄새가 나를 반긴다. 바로 향료 시장이다. 음식에 향료를 많이 사용하는 아랍인들이기에 향료도 형형색색으로 수십 가지가 된다. 시장 골목의 북쪽 끝에 가장 큰 규모의 하미디예 시장이 있다. 고대부터 다마스쿠스는 무역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많은 상인들과 엄청난 물자가 몰려들었다. 그러한 역사적 전통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전통 시장들이다. 이스탄불이나 카이로의 전통 시장에서 느꼈던 소위 ‘삐끼’들의 지나친 강매행위나 버릇없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만 건네고 있다. 항상 시리아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순박한 아랍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주의 국가로서 대외에 개방되지 않았던 탓에 아랍의 순수성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시리아다. 누가 이 순박한 사람들의 나라를 테러 지원국으로 보겠는가? 우마이야 모스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마스쿠스 역사이다. 다마스쿠스를 거쳐 간 다양한 문명의 성전들이 같은 자리에 계속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약 3000년 전에 이 지역에 거주했던 아랍인들은 폭풍과 번개의 신인 하다드 신전을 이 자리에 처음 건설했다. 로마인들이 지배하면서 하다드는 로마인들의 최고신인 주피터로 대체되었다. 그 후 비잔틴 시대인 4세기 말에 기독교의 교회로 바뀌어 세례 요한에게 바쳐졌다. 그 후 7세기 중반부터 아랍의 지배를 받으면서 모스크가 되었는데, 처음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칼리드 이븐 왈리드 장군은 교회 건물의 동쪽을 모스크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나머지 서쪽 부분은 기독교인들이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 나중에 우마이야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슬람 신자들의 수는 늘어나고 기독교 신자의 수가 줄어들자 기독교 공동체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단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우마이야의 칼리프 왈리드 1세가 705년부터 7년에 걸쳐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했다. #세례 요한 머리뼈 모스크에 보관 모스크 첨탑 가운데 하나를 ‘예수의 첨탑’이라고 부른다거나 예배실 한쪽의 성소에 세례 요한의 머리뼈를 보관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다마스쿠스에서의 전통적인 기독교와 이슬람의 친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7세기에 기독교인들과 이슬람 신자들이 같은 문으로 사이좋게 들어간 후 자신들에게 정해진 공간에서 각자의 신앙생활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모스크를 나선다.
  • 안충준교수 파키스탄 훈장 받아

    안충준(전 인도·파키스탄 평화유지군 지휘관) 동양대 교수는 23일 오후 서울 장충동의 서울클럽에서 파키스탄 정부(주한 파키스탄대사 마수드 칼리드)로부터 카슈미르 분쟁지역 평화유지활동 공로로 파키스탄 국가 훈장을 수여받는다. 안 교수는 1997년 3월부터 1년동안 한국군 최초의 다국적 지휘관으로 이 지역 유엔 정전 감시단장직을 맡았다.
  • 하마스 “정전협상 용의”

    지난달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무장단체 하마스는 3일 이스라엘을 인정하라는 국제사회 압력에 대해 불가 입장을 재천명하면서도 협상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하마스 최고지도자 칼리드 마샬은 이날 일간 알 하야트 알 자디다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이스라엘과 잠정적인 정전협정 체결을 위한 조건들을 협의할 의사를 내비쳤다. 마샬은 “우리는 결코 우리 영토에 세워진 시오니즘 국가(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스라엘이 만일 장기적 휴전 원칙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는 정전 조건들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 관리는 마샬의 발언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하마스측에 이스라엘의 생존권과 주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테러를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정부에 대한 지원 중단 가능성을 경고하며, 하마스가 이스라엘 파괴 방침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팔레스타인 집권 파타당과 하마스 지도자들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2차례 만나 새 정부 구성 방안을 논의했다.가자지구 AP 연합뉴스
  • 이란核 안보리 회부 합의

    이란核 안보리 회부 합의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위해 방향은 분명히, 문제 해결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들이 31일 영국 런던에서 이란 핵문제를 안보리에 넘기기로 원칙을 정하되 3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전날 런던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무장조직 하마스 대응책을 논의한 미국과 유럽연합(EU), 유엔과 러시아 등 중동평화 로드맵 당사자들은 이스라엘 인정과 폭력 포기 촉구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즉각적인 원조 중단에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섣불리 대응했다가 이 지역 정세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러시아 동의 이끌어내기 위한 고육책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외무장관들은 이란 핵문제의 안보리 회부에 합의했지만 최소 1개월 이상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유엔 제재를 미루기로 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IAEA 절차에 대한 권위를 살리기 위해 IAEA의 3월 정기이사회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제재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에 따라 2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IAEA 임시이사회에서 이란 핵의 안보리 회부 결정이 내려져도 안보리 공식 논의는 3월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는 이뤄지지 않게 됐다. 시간을 갖고 안보리 회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버텼던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이번 성명이 우리가 바라는 수준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31일 오후(한국시간 1일 오전 11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부와 국민에게 별도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란인에게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정부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핵야망부터 포기하라.’고 촉구한다는 것이다. ●아난 유엔 사무총장까지 무장 포기 압박 중동평화 4개 당사국의 런던 회동은 하마스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가득찼다고 BBC는 분석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까지 “팔레스타인 정부의 모든 구성원은 비폭력, 이스라엘 인정 확약 등 중동평화 로드맵을 비롯한 기존의 모든 합의와 의무를 준수해야만 한다.”고 가세했지만 새 정부에 대한 지원 여부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는지에 대한 검토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하마스가 여유를 갖고 향후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으로 BBC는 풀이했다. 그러나 사미 아부 주흐리 하마스 대변인은 30일 “(중동 평화회담을 중재하는)중재자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점령과 침략 중지를 요구해야지, 피해자로 하여금 점령을 인정하고 뒷짐만 지고 있으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칼리드 메샬과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나 정국 운영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CIA수용소 억류 26명 美인권단체 명단 공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가 30일(현지시간) 미 중앙정보국(CIA)이 유럽 등 해외 비밀수용소에 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억류중인 수감자들은 2001년 9·11 테러와 98년 케냐·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 사건,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나이트클럽 폭파 등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들”이라고 밝혔다. 발표된 26명의 명단에는 9·11테러와 2000년 예멘 미군기지 테러를 배후 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와 9·11테러 주동자의 룸메이트이자 알 카에다 내 9·11테러 공모자인 람지 빈 알시브 등이 들어 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발표된 26명은 완전한 명단이 아니며 더 많은 용의자들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수감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이 수감자들은 범죄행위에 대한 확증도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독방에 수용돼 있으며 고문당하거나 적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미 정부관리로부터 “이 수감자들이 CIA 해외비밀 수감시설에서 고문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밝히고 이날 발표한 26명 중 누구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dawn@seoul.co.kr
  • 27일만에 극적 구조

    지난달 8일 발생한 파키스탄 대지진 당시 무너진 집에 매몰됐던 청년이 27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젤룸계곡 내 파흘 마을에 사는 칼리드 후세인(20)은 지진 발생 당시 집에서 어머니 및 4명의 형제와 함께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지진과 함께 발생한 산사태로 바위와 흙더미가 집을 덮치면서 이들은 모두 매몰되고 말았다. 다른 동네에 있어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아버지와 세 명의 아들은 사고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마땅한 구조장비도 없이 이들은 잔해를 파헤쳤다.12일 만에 다른 가족들의 시신은 찾았지만 칼리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 무자파르는 “칼리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족들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지난 5일 나머지 잔해를 치우던 아들 자히드(18)가 “형의 손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무자파르는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칼리드가 숨을 쉬고 있었다.”며 “나무기둥과 돌더미 속에 갇혀있던 칼리드의 주변에는 겨우 손을 움직일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칼리드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기는 했지만 큰 부상없이 구출됐다. 인근 도시로 옮길 차량이 없어 5일이 지난 지난 10일에야 겨우 무자파라바드로 이송, 입원했다. 칼리드에게는 외상보다 심각한 정신적 상처가 남았다. 초점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쳐다보며 손으로 계속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 칼리드의 모습에서 갇혀있는 동안 얼마나 큰 공포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칼리드의 담당 의사는 “27일 동안 물과 음식없이 버틴 것은 기적”이라며 “다리 치료와 함께 정신과 의사들이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조국이 보낸 제1의 세일즈맨입니다”

    “조국이 보낸 제1의 세일즈맨입니다”

    마수드 칼리드 파키스탄 대사는 여느 외교사절과 달리 의례 외교에서 벗어나 국내 경제단체와 경제인들을 저인망식으로 두루 만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3월 대사로 다시 한국을 찾은 뒤 한국무역협회, 코트라, 한국수입업협회, 대한방직업협회, 상공회의소는 물론, 지역 기업인 단체들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다. 1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11일 만난 칼리드 대사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경제 챙기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세간에선 파키스탄 핵기술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느냐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어 신경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칼리드 대사는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다.“이미 한국 정부 등에 충분히 설명해 한국측도 납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칼리드 대사는 “‘대사님’이라고 관저에 파묻혀 지내기 쉬운데 내게 가장 중요한 업무가 경협 확대인 만큼 ‘세일즈’를 위해 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파키스탄은 세계 네번째 원면 생산국이며 농산물과 과일의 품질 또한 세계 으뜸이다. 칼리드 대사는 “영국 왕실에서도 파키스탄산 망고만을 고집하는 등 명성이 자자하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6.3% 고속성장을 이룩해 항만, 도로, 고속도로 건설 등 기반시설 수요가 폭주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참여 기회가 무궁무진하며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 진출에 유리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영어 구사가 가능하며 시간당 임금이 37센트밖에 되지 않는 우수한 인력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는 아직 10억달러 수준으로 교역 규모가 미미하지만 섬유, 가죽, 건설, 통신, 제약, 정보통신(IT)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 떨어진 텍스라가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라며 풍부한 불교문화와 예술의 전통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현지 투어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칼리드 대사는 동북아국장을 역임하고 미국 국장, 정책 국장, 유엔 부대표, 안보리 순회 상임이사국 부대사 등을 두루 거친 파키스탄 외교부의 ‘실세’ 외교관이다. ‘한국통’인 칼리드 대사의 공격적인 외교 뒤에는 지난 1991년 결혼한 한국인 부인 송성희씨의 내조가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칼리드 대사가 지난 1989년 한국에서 근무할 때 처음 만나 본국에 돌아간 뒤에도 칼리드 대사가 끈질기게 국제전화로 구애한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본사손님]

    ●마수드 칼리드(주한 파키스탄대사) 예방
  • 빈 라덴 꼬리 잡힐까

    빈 라덴 꼬리 잡힐까

    “지난 2년여 동안 알 카에다에 가한 것 중 가장 치명적인 일격.” 파키스탄 당국이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3인자 아부 파라지 알 리비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한 미국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체포됨으로써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도피 행각도 종착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대 테러전에서 거둔 결정적 승리”라고 치하하며 “미국은 물론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험한 적이 제거됐다.”며 파키스탄 당국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리비아 출신인 알 리비는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 이은 조직내 세 번째 거물로 9·11테러 주모자 중 한 명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지난 2003년 3월 체포된 후 파키스탄내 알 카에다 조직을 이끌어왔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알 리비를 알 카에다의 대외작전 책임자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가 빈 라덴이나 자와히리와 지속적으로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빈 라덴 추적을 지휘하는 한 고위 관계자는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인 만큼 그로부터 빈 라덴과 자와히리에 대한 새로운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파키스탄 정보 요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알 리비와 외국인 1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둘 중 여성 전통 복장인 부르카로 여장한 남자가 도주해 민가에 숨어들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남자는 지붕을 뚫고 들어온 요원에게 체포됐다. 현재 알 리비는 헬기를 이용,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옮겨져 모처에서 보안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 리비는 심문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파키스탄 관리는 “몇 시간이나 침묵했지만 결국 자신이 알카에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며 “우리가 그의 신원에 대한 확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은 “알 리비가 많은 사람과 은신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빈 라덴 추적에 도움이 되는 여러 단서를 이미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키스탄 당국이 배포한 사진속 알 리비의 얼굴 피부가 훼손된 것은 햇볕에 오랜 시간 노출된 후유증으로 보인다고 AP는 보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집트 대사 부인과 요리cook 조리talk

    이집트 대사 부인과 요리cook 조리talk

    이집트는 유구한 역사만큼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나일강, 클레오파트라 등등…. 하지만 막상 이집트 음식 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것 없이 고개만 갸웃하기 마련이다. 아비르 헬미 이집트 대사 부인은 “초로 분위기를 돋우고 접시에 나이프와 포크 등을 차리는 서양식 식탁의 기본이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며 “지중해 건강식의 원류가 바로 이집트 음식”이라고 자랑했다. 올리브 오일과 콩·토마토·오이 등을 많이 먹으며, 바질·타임·오레가노 등 허브와 향신료를 듬뿍 쓰는 것이 이집트 음식의 특징. 한국 음식의 맛을 장이 좌우한다면, 이집트 음식은 다양한 향신료가 맛을 가름한다. 이집트 여인들은 소금과 후추처럼 애용되는 향신료인 커민을 외국에 나갈 때 꼭 챙긴다. 마치 사막을 건너 향료를 운반하던 낙타처럼. 아비르 헬미 대사 부인은 서울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일곱살 난 아들 카림을 키우며 카이로에서 가져온 커민으로 맛을 낸 음식과 함께 이집트 문화의 전령사로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그를 통해 역사만큼 깊은 이집트 음식의 향에 취해 봤다.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문명의 진원 맛의 진원 이집트 아비르 헬미 이집트 대사 부인이 직접 꾸민 응접실은 넓고 화려했다. 순도 100%의 이집트산 은으로 만든 촛대와 각종 장식품과 접시 및 남대문에서 산 싱싱한 꽃으로 꾸며진 식탁은 우아하면서도 정감이 넘쳤다. 소파와 탁자가 4세트나 갖춰진 이곳에서는 매일 저녁 파티가 열린다. 다른 나라 대사관 동료들끼리 자주 모이는 저녁 식탁에 오르는 이집트 음식에는 신선한 야채로 만든 샐러드와 렌즈콩수프, 훔머스 등 콩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이집트는 농업국가입니다. 살충제를 많이 쓰지 않아서 민트를 요리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퍼질 정도로 이집트 야채는 향이 강하고 신선하지요.” 렌즈콩으로 만드는 ‘팔라펠’은 유럽에서 ‘채식주의자의 햄버거’라 불릴 정도로 인기다. 팔라펠은 콩소스인 훔머스에 찍어먹는다. 부드러운 죽같은 훔머스는 땅콩 버터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입안 가득 고소한 맛과 마늘과 레몬이 섞인 알싸한 향을 안겨준다. ●허브와 향신료가 맛을 좌우 헬미 부인의 이집트 음식 자랑이 이어지는 중간에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카림이 뛰어들었다. 그는 아들을 위해 브로콜리 등을 넣은 야채수프를 자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대개 야채를 먹기 싫어하잖아요. 당근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대신에 야채를 잘게 썬 수프를 끓여주는 것이 영양가도 높고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아이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키우는 비법도 살짝 귀띔했다. 카림은 세살때부터 한국에서 자라 이제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비빔밥과 불고기. 점심도시락으로 피자를 싸주면 싫어하고, 김밥을 싸달라고 고집해 아침마다 대사관 직원 아주머니가 일일이 김밥을 말고 써느라 고역을 치른다. 한국 사람들에겐 이집트 요리가 생소하지만 바자에 나가면 항상 준비한 음식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것이 헬미 부인의 자랑.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레바논 등의 음식과 비슷하고 재료도 친숙한데다 역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 오일, 토마토, 바질, 민트, 파슬리, 타임 등을 많이 쓰는 점에서는 이탈리아 음식과 비슷하다. 닭고기나 양고기로 만든 케밥을 즐기는 점은 터키와 닮았다. 커민은 위에 좋고, 바질과 타임은 소화를 도우며, 민트는 호흡기에 좋다. ●양국 모두 큰상에서 정을 쌓아 헬미 부인은 유니세프에서 어린이의 위생을 위해 일하다 남편 아무르 헬미 대사를 만났다. 대사는 음식에 관한 인터뷰는 정중히 사양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 각각 4년간 지냈으며 한국에 온지는 이제 3년 반째다. 이집트 음식은 대부분 담백한데다 많이 맵지 않아 처음 한국음식을 접했을 때 김치 냄새가 매우 심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아들처럼 매운 맛이 덜한 불고기와 비빔밥이다. “나물 반찬을 수십개씩 한꺼번에 내놓는 한국 상차림처럼 이집트에서도 애피타이저를 25가지씩 대접하지요. 이집트의 시어머니나 한국 친구 모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차려놓고 많이 먹으라고 하는 점은 똑같아요.”상다리가 떡 부러지는 식탁에서 가족과 친구간의 정을 확인하는 것은 이집트나 한국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7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는 긴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공통점을 가졌다. 매년 5만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원형을 보기 위해 이집트를 찾는다고 한다. 헬미 부인은 4000년전 고대 이집트인의 화장법을 공부했는데 당시 여성들이 20대 초반부터 주름살 예방에 신경쓰고, 임신선을 없애는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했다며 놀라워했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보면 모든 여성이 가는 허리와 날씬한 배를 가졌는데 이는 청결, 날씬, 건강이 당시 유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는 한국 여성들이 메인요리로 고기를 먹는 이집트 여성에 비해 더 날씬하다며 부러워했다. 화려한 꽃꽂이 솜씨를 자랑하는 헬미 부인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나 던졌다.“참, 야채는 이집트가 한국보다 훨씬 싸고 싱싱하지만 남대문 시장의 꽃은 이집트보다 훨씬 싸고 좋다는 걸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더군요.” ■ 이집트 요리조리 쿡 ●팔라펠 재료 병아리콩·껍질 벗긴 잠두 각각 1컵, 다진 양파½컵, 으깬 마늘 3조각, 물 1컵, 참깨 ½컵, 병아리콩 가루 ½컵, 밀 ¼컵, 채썬 파슬리 ¼컵, 소금 ¼큰술, 빻은 커민·고수풀 각각 2작은술, 베이킹 파우더 2작은술, 고춧가루 ½작은술, 검은 후추¼작은술, 식용유 적당량. 만드는 법 (1)기름과 말린 병아리콩, 잠두를 분쇄기에 넣어 돌린다.(2)남은 재료를 모두 넣고 한 시간 동안 둔다.(3)패티를 호두 크기의 공 모양으로 만든다.(4)겉이 바삭하고 갈색이 날 때까지 375℃의 기름에 4분 동안 튀긴다.(5)피타 빵에 튀긴 팔라펠, 채썬 토마토와 양파·상추, 요구르트를 채운다. ●피타 빵 재료 이스트 2작은술, 온수 1컵, 밀가루 3컵,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온수에 이스트를 넣어 녹인다.(2)밀가루, 소금을 섞어 체에 친 다음 (1)과 함께 섞는다.(3)몇분간 주물러 빵 반죽을 만든다.(4)반죽을 젖은 천으로 덮고 따뜻한 곳에서 3시간 동안 부풀어오르도록 놓아둔다.(5)오븐을 350℃로 예열한다.(6)반죽을 6조각으로 나눈 뒤 공처럼 만다.(7)손이나 밀대로 반죽을 둘레 5인치, 두께 ½인치로 펴준다.(8)오븐에 넣고 피타가 연한 황금빛을 띤 갈색이 될 때까지 10분간 굽는다. ●렌즈콩 수프 재료 물 2ℓ, 렌즈콩 500g, 양파 2개, 당근 2개, 토마토 1개, 커민 ½큰술, 버터 1큰술, 저민 마늘·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렌즈콩과 얇게 썬 양파 1개, 당근,4등분한 토마토, 커민을 넣고 끓인다.(2)끓으면 불을 줄여 다시 15분간 끓인 뒤 식혀 믹서로 곱게 간다.(3)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얇게 썬 양파 1개를 중간불에서 투명해질 때까지 10분간 익히고, 마늘은 황갈색이 되도록 볶는다.(4)양파와 마늘을 (2)와 함께 냄비에 넣어 15분 끓인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스위트 핑거 재료 온수 1½컵, 설탕 ½큰술, 기름 ¼컵, 소금 약간, 밀가루 1컵, 계란 4개,설탕시럽(설탕 2½컵, 바닐라 1큰술, 물 1½컵, 레몬쥬스 ½큰술). 만드는 법 (1)설탕시럽은 모든 재료를 한데 넣고 저으면서 끓인 뒤 식혀서 따로 준비해둔다.(2)물, 소금, 기름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든 뒤 따뜻하게 둬 부풀어 오르면 계란을 하나씩 넣어 섞도록 한다.(3)계란을 넣은 반죽을 손가락 모양으로 빚는다.(4)반죽이 황금빛을 띤 갈색이 날 때까지 튀겨준다.(5)튀긴 (4)를 설탕시럽에 담갔다 내놓는다. ●훔머스 재료 병아리콩, 베이킹소다 1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참깨 페이스트·레몬즙 250㎖, 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물 1.5ℓ를 끓이다가 불린 병아리콩, 베이킹 소다를 넣고 약한 불에 1시간 반 동안 뭉근히 끓인다.(2)콩을 체에 받쳐 찬물에 헹군 뒤 껍질을 없앤다.(3)콩을 으깬 뒤 마늘, 참깨 페이스트, 레몬즙, 소금을 넣고 섞거나 믹서로 간다.(4)접시에 담아 올리브, 방울 토마토 등으로 장식하고 올리브 오일을 뿌린다. ■국내 유일 이집트식당 ‘알리바바’ 국내에도 이집트 음식점이 있다. 서울 이태원의 큰길 제일기획 맞은편 건물 2층의 알리바바(790-7754)가 유일하다. 3년전 식당을 연 칼리드 알리(37) 사장은 주한 이집트 대사관 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에 식당을 열고 정착했다. 곳곳에 이집트 소품들이 놓여있는 알리바바의 내부는 작고 소박한 편이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반반이다. 외국인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인들이 많이 온다. 한국 사람들은 인천이나 멀리 지방에서도 이집트 식당이란 명성 때문에 찾기도 하고, 특히 영어 교사들이 자주 들른다. 메뉴는 영어로 되어 있다. 가장 인기있는 것은 알리바바 치킨(1만 4500원). 닭고기를 레몬, 양파, 오레가노 소스에 재웠다가 오븐에서 구워 낸다. 훔머스(4500원), 팔라펠(8000원), 쌀과 콩을 삶아 볶은 뒤 그 위에 토마토 소스와 베이컨 조각을 얹는 쿠사리(8000원) 등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이집트의 중동식 빵은 피타 빵(2000원)이라 불리는데 인도의 ‘난’과 비슷한 맛이 난다. 물담배를 피우기 위해 찾는 단골도 많다. 물담배는 물을 통과한 담배의 연기가 긴 호스를 통해 사람 입에 들어오게 돼 있다. 니코틴은 없으며 물에 딸기, 사과, 망고, 바나나 등 과일맛이 나는 향료를 넣는다. 일행끼리 대화를 나누며 돌아가면서 담배를 피운다. 다 피우는데 2시간 정도 걸리며 값은 2만원으로 남녀 모두 즐긴다고 한다. 알리 사장은 “이집트에 여행을 다녀왔다가 또 다시 이집트의 맛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며 “우리 식당이 서울 강남에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CIA, 유럽서 테러용의자 불법납치 논란

    미 중앙정보국(CIA)이 유럽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고 고문했는지를 유럽 국가들이 조사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CIA가 고문이 가능한 나라로 용의자를 데려가 수개월씩 감금하는 ‘용의자 인도작전’을 공공연히 벌여 현지 법을 어겼음에도 외교면책 문제와 신원확인의 어려움 때문에 기소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유럽 시민권자나 유럽에 사는 아랍권 출신들로 테러 용의자들과 이름이 비슷하거나 이슬람 급진단체에 소속됐다는 이유 등으로 납치됐다. 일부는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지금까지 실종된 사람도 있다. CIA는 테러리즘을 막기 위한 효율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각국 정보당국의 묵인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유럽의 검찰 당국은 주권과 인권 침해라며 수사에 착수했다. 2003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이집트 출신의 급진 이슬람 성직자 아부 오마르가 납치됐다. 오마르는 1997년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맹비난했다. 오마르의 가족은 그가 납치됐다고 주장했으나 이탈리아 대테러 당국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4년 4월 오마르가 부인에게 전화했다. 자신은 납치돼 이탈리아 북부 미군기지에 있으며 카이로로 이동 중이라고 말한 사실이 가족을 감시중인 이탈리아 경찰에 포착됐다. 마피아 및 정치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아르만도 스파타로 검사가 CIA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이집트의 정보요원이 배후에 있음을 알고 수사를 맡았다. 이탈리아 야당 의원들은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진상을 요구, 파문이 확산됐으나 당국은 입을 다물고 있다. 또 2003년 12월 아랍 출신으로 독일 시민권자인 칼레드 마스리는 부인과 함께 마케도니아로 여행을 갔다. 그러나 국경 검문소에서 아무런 설명없이 억류된 뒤 아프가니스탄에서 5개월간 고문과 심문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알카에다 용의자인 칼리드 마스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마스리는 2004년 5월 풀려났다. 독일 경찰은 그의 말을 의심했고 부인은 다른 여자와 달아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그를 태운 비행기가 CIA 소속의 운송회사로 확인됐다. 독일 검찰은 납치사건으로 간주, 마케도니아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스웨덴에서는 2001년 말 이집트 국적을 가진 거주인 2명이 두건을 쓴 CIA 요원에게 카이로로 납치돼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의회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팔 수반 선거 아바스 당선 확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뽑는 선거가 9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일제히 치러졌다.180만 주민 가운데 60%인 110만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의 유권자 23만명도 부재자 투표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는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부터 오후 7시(한국시간 10일 새벽 2시)까지 3000여 투표소에서 이뤄졌다. 개표는 투표가 끝난 직후 시작됐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개표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입후보자 7명 가운데 최대 정파인 ‘파타운동’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아바스 의장은 “당선되면 아메드 쿠레이 임시 총리를 유임시키고 내각 구성과 함께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자치정부는 순조로운 투표를 위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각각 11개와 5개 선거구로 분리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미셸 로카르드 전 프랑스 총리가 이끄는 세계 각국의 공정선거 감시팀 800여명도 팔레스타인 선거 감시요원 2만명과 함께 투표소와 검문소 등에 배치됐다. 이스라엘은 선거기간 3일동안 점령지역에서 군사작전의 중단을 약속했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내린 여행제한도 완화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군당국은 검문을 계속하고 있으며 주요 도로의 바리케이드도 치우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유권자들을 위해 우체국 5곳에 투표소를 마련했고 이날 밤 투표함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로 운송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망 이후 PLO 의장을 2개월간 맡으면서 후계자 입지를 굳힌 아바스는 선거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60%가 넘는 지지를 얻어 2위권과의 격차를 30% 포인트 이상 벌렸다. 파타운동내 ‘알 아크사 순교여단’을 이끌던 마르완 바르구티는 무장단체의 지지를 받았으나 후보를 사퇴했다. 대신 그의 사촌인 무스타파 바르구티가 출마, 최종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아바스를 추격했으나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밖에 무장단체인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의 타이시르 칼리드와 공산주의계 인민당 바삼 알 살히가 출마했고 무소속으로 이슬람지하드 지도자 출신의 사이드 바라카 등 3명이 나섰다. 한편 라우히 파투흐 자치정부 임시 수반은 7월 17일 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아라파트 독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인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가 아라파트가 독살됐다고 주장, 진위 여부를 놓고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칼리드 마샬 하마스 정치국장은 11일 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전화를 걸어 의사들이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난 2주간 아라파트의 건강 상태와 진료기록들로 볼 때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의 독극물 중독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97년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첩보원에 의해 중독돼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가 이스라엘이 국제 압력에 굴복해 해독제를 제공함으로써 목숨을 건진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아라파트의 독살설을 부인하고 있다.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마샬의 주장에 대해 “완전한 거짓이고 중상모략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도 아라파트 수반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모두 독살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살설이 계속 나도는 것은 아라파트를 치료한 페르시 군병원이 아라파트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프랑스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아라파트의 사인을 밝힐 수 없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또 라말라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중병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아라파트가 2주 사이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도 의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라파트가 발표하기 곤란한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아라파트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또다시 불거진 이스라엘의 아라파트 독살설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어 중동에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란 우려도 일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러 추락 여객기 테러 확실시

    |모스크바 외신|지난 24일 러시아 여객기 2대가 동시에 추락한 사건은 테러에 의한 것임이 확실시되는 정황과 증거가 27일 발견됐다. 자칭 ‘이슬람불리 여단’이라는 무장단체가 27일 러시아의 체첸 탄압을 거론하면서 사건의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 이어 이타르타스 통신은 추락 여객기 두 대 가운데 한 대의 잔해 속에서 폭발물 잔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통신은 또 추락한 2대 가운데 1대인 Tu-154기에서 나온 위험신호가 ‘공중납치’를 알리는 것이었다고 전했다.이 보도는 이날 이슬람 웹사이트에 ‘이슬람불리 여단’이라는 단체가 여객기 추락 사건의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을 게재한 지 몇 시간 뒤에 나왔다. 인테르팍스 통신도 연방보안국(FSB) 관계자들의 말이라며 Tu-154기의 잔해 속에서 폭발물 흔적이 발견됐다고 전했다.로이터통신은 폭발물 잔해가 발견된 곳은 40여명이 타고 있던 Tu-154기가 추락한 현장이라고 보도했다.통신은 또 인테르팍스 통신 보도를 인용,FSB 관계자들이 비행기 2대 가운데 최소한 1대는 테러에 의해 추락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세르게이 이그나첸코 FSB 대변인은 초기 분석 결과 폭발물 잔해가 ‘헥소젠’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슬람불리 여단은 지금까지 이슬람 무장단체의 입장을 대변해온 한 인터넷 웹사이트에 성명을 게재,2대의 러시아 여객기에 각각 5명의 전사(무자헤딘)들이 탑승했으며,이들 무자헤딘들의 유언장이 곧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우리의 무자헤딘들이 신의 가호 속에 체첸 등에서 부정한 러시아인들에 의해 고통받는 이슬람 형제들을 돕고 이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한 파상공세의 일환으로 첫 공격을 감행해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알 카에다’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지난달 파키스탄 총리 암살미수 사건 때 ‘알 카에다의 이슬람불리 여단’이라는 이름의 성명이 나온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추락 사건 직후 지금까지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체첸 성을 가진 여성 2명의 신원을 알려줄 것을 체첸 정부에 요청했다.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추락 여객기 2대의 탑승객들 가운데 체첸 성을 가진 사람은 Tu-154기에 1명,다른 여객기에 3명 등 모두 4명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이슬람불리 여단’은 1981년 카이로에서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을 암살한 단체의 지도자 ‘칼리드 이슬람 불리’로부터 명칭을 따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 “하마스 새지도자는 자하르”

    한달만에 2명의 지도자를 잃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단체 하마스는 새 지도자를 선출하고도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또 다른 암살의 표적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지난달 아흐메드 야신 피살 후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가자지구 지도자로,칼리드 마슈알 정치국장을 해외 지도자로 하는 쌍두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은 란티시 다음 서열인 마흐무드 자하르(59)가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로 선출됐다고 보도했다.야신의 주치의 역할도 했던 자하르는 란티시와 비슷한 성향의 강경파.1990년대 중반부터 하마스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연락책 역할도 해왔다.일부에서는 40세의 강경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를 새 지도자로 지목하고 있다.그는 야신이 살해되기 전까지 비서 역할을 했으며 하마스 가자지구의 대변인을 맡아왔다. 가자지구 밖에서 하마스의 최고지도자는 여전히 칼리드 마슈알(48)이다.마슈알은 1987년 야신과 함께 하마스를 공동 창설한 7인 가운데 한명이며,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해외 지도부를 이끌고 있다.지난해 시리아가 미국의 압력으로 다마스쿠스의 하마스 본부 사무실을 폐쇄한 뒤로 마슈알은 공개석상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팔 “26일만에 새 지도자마저” 분노

    폭력과 유혈로 얼룩진 중동지역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중동평화협상의 성공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정착촌 철수 구상에 대한 미국의 지지,하마스 지도자 압델 아지즈 알 란티시(56)의 표적살해로 중동 정세가 또다시 요동치는 데 따른 것이다. ●두번째 하마스 지도자 암살 란티시는 17일 아들과 부인,경호원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다 이스라엘군 헬기의 로켓포 공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 도중 사망했다.그의 전임자이자 하마스를 창건했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이스라엘의 표적암살 공격으로 숨진 지 26일 만이다.란티시의 아들과 경호원 1명도 현장에서 즉사했다. 란티시 피살은 사흘 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 유지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새로 건국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로만 귀환할 수 있다고 밝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는 시점에서 나와 그 파괴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만 것이다.그럼에도 불구,이스라엘은 란티시가 이스라엘에 대한 수많은 테러 공격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이 그치지 않는 한 똑같은 방법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복수심을 자극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 싸잡아 비난 하마스는 즉각 100배의 보복을 이스라엘에 돌려줄 것이라고 다짐했다.하마스의 또 다른 고위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란티시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겠다.”며 대이스라엘 강경 보복공격을 경고했다.이날 가자지구에는 수십만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모여 야신과 란티시의 거듭된 표적살해에 대한 복수를 외쳤다.한편 하마스는 란티시를 이을 새 최고지도자를 선출했다고 밝혔으나 표적살해가 이어질 것을 우려,신원 공개를 거부하면서 익명으로 발표했다. 아흐메드 쿠레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란티시 암살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편향된 정책이 불러온 직접적인 결과”라고 미국을 이스라엘과 함께 비난했다.나빌 샤스 외무장관도 “미국은 우리 영토 일부를 이스라엘에 주고 난민의 권리를 무시했다.”며 미국이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강경정책을 묵인해준 게 란티시 암살로 이어졌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미국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 청사진은 당분간 입에 올리기조차 힘들게 됐으며 유혈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세계 이스라엘 규탄 미국이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을 갖는다고 옹호했을 뿐 전세계가 이스라엘의 표적살해를 규탄하는 데 입을 모았다. 유럽과 아랍권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일본도 일제히 이스라엘의 란티시 표적살해를 비난했다.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조차 이스라엘의 거듭된 표적살해는 명백한 불법이며 정의에 어긋나는 짓으로 아무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란티시는 누구 이집트에서 공부한 소아과 의사 출신의 란티시는 야신과 함께 하마스 공동 창설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경 무력투쟁을 적극 주장해온 것으로 유명하다.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암살명단 제일 윗자리에 올랐다.지난달 야신 암살 후에는 시리아에서 활동중인 하마스 정치국장 칼리드 마샬과 함께 하마스의 양대 기둥으로 여겨졌다. 유세진기자 외신 yujin@seoul.co.kr˝
  • [국제플러스] “빈라덴 런던 공격도 지시했었다”

    |런던 AFP 연합|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 런던의 관문인 히스로 공항을 겨냥한 테러도 지시했었다고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타전한 기사에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체포한 알카에다 요원 중 최고위급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37)에 대한 조서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지난해 3월 파키스탄 북부 라왈핀디에서 체포된 모하메드는 9·11 테러 며칠 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빈 라덴을 만났으며 “그때 히스로 작전을 논의했다.”고 말했다.그는 “오사마는 블레어가 우리의 주적이며 런던이 우리의 목표라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 하마스 새 지도자 란티시 ‘무차별 보복’ 선언

    팔레스타인 무장저항단체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23일 뽑힌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피격된 셰이크 야신의 오른팔로 그보다 강경한 인물로 알려졌다. 야신이 팔레스타인 지역 외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반대한 반면 란티시는 ‘모든 곳’에서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하마스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됐던 이스라엘과의 잠정 휴전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타협도 반대한다. 강경한 어조로 연설,하마스 요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팔레스타인 대중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야신 다음의 2인자로 인식돼 왔다. 반면 야신이 가졌던 정신적 구심점과 카리스마는 없다.야신은 사지마비로 정상적 활동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었지만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그리고 해외에 이르기까지 하마스의 다양한 조직과 파벌을 통합해 왔다.란티시는 가자지구만 관할하며 통합 지도자는 시리아로 망명한 칼리드 마샬이다. 란티시의 사상적 배경은 이집트의 이슬람급진운동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다.카이로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 영향을 받았다.그가 야신 등 7명과 함께 만든 하마스의 뿌리도 무슬림형제단이다. 란티시는 1947년 텔아비브 남부 예브나에서 태어났다.48년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예브나가 이스라엘에 편입돼 그의 가족은 가자지구로 떠났다.18살에 이집트로 건너간 그는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에서 소아과 의사 학위를 받았다.76년 가자지구로 돌아와서는 대학과 병원에서 일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발생한 87년부터 이스라엘 당국에 여러번 체포됐다.92년에는 416명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요원과 함께 레바논으로 추방됐다.이 과정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떠올랐다. 93년 오슬로협정 체결 후 가자지구로 돌아왔으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비난으로 종종 팔레스타인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은 자폭테러를 부추기고 지시한다며 란티시 암살을 시도했으나 그를 부상시키는 데 그쳤다. 전경하기자 lark3@˝
  • 이란 - 이집트 관계정상화 막판 협상

    1980년 이후 국교를 단절해온 이란과 이집트의 관계 정상화 협상이 지난달 양국 정상이 회담을 가진 뒤 급진전하는 가운데,이집트가 정상화 선결조건으로 테헤란에 도피중인 이집트 이슬람 무장단체원들의 정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앞서 이란은 지난 6일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암살범 칼리드 이슬람불리의 이름을 딴 테헤란의 도로명을 변경해 달라는 이집트측의 요구를 들어준 바 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신문 앗샤르크 알 아우샤트는 15일(현지시간) 이집트 고위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이집트가 도피 중인 무장단체원 명단과 세부정보를 이란측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집트는 명단 등을 입수하기 전에는 외교 정상화 선언을 할 계획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이집트는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고,이후 비공개 실무 접촉 과정에서 이집트측이 이런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집트 보안당국은 이집트의 대표적인 이슬람 무장단체 알 자마아 알 이슬라미야 등의 고위간부들이이란 수도 테헤란에 은신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
  • “이란 - 埃 외교관계 24년만에 곧 재개”

    |테헤란 AFP 연합|이란과 이집트는 완전한 외교관계를 복원하기로 결정했으며 4반세기 가깝게 단절됐던 양국간 외교관계가 수일 내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모하마드 알리 압타히 이란 부통령이 6일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TV와 회견에서 밝혔다.압타히 부통령은 이같은 결정이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기술정상회의에 참석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간 회담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축출된 팔레비 전 이란 국왕에게 망명처를 제공한데 반발해 지난 1980년 이집트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었다. 양국관계는 특히 이집트가 1980∼1988년의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지하자 더욱 악화됐다가 1990년대부터 무역 등 일부 부문에서 제한적인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앞서 테헤란 시의회는 이란 외무부의 요청에 따라 이집트측이 그동안 관계 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워온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암살범인 칼리드 이슬람불리의 이름을 딴 도로명칭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