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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톤 외교’ 정동창 阿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톤 외교’ 정동창 阿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

    달린다는 것은 ‘생각’이다. 생각하기에 인생이 달라진다. 아름답고 숭고한 땀방울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또 달린다. 신영복 교수가 말했다. “달리는 것은 명상이며, 사색이며 육신을 뛰어넘는 비약이며 환희다.”라고. 맞다. 미치도록 달리다 보니 행복해졌고 비약하듯 인생이 확 달라졌다. 달리는 도중에 신영복 교수도 만났고 고(故) 법정스님과도 친해졌다. 산악인 엄홍길, 한복디자이너 김혜순과의 인연도 달리면서 맺어졌다. 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달리기 전도사’라고 한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달리면 행복합니다. 건강해져요!”라고 구호처럼 늘 외친다. 정동창(51)씨. 지난 10여년 동안 마라톤 완주만 무려 70회나 했다. 아마추어로서는 보기 드물게 뉴욕,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등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도전이라고 하는 그랜드 슬램을 상상하면서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이것이 진짜 마라톤이다.’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책도 펴냈다. 정씨의 ‘달리기 인생’ 중 가장 큰 인연은 뭐니뭐니 해도 아프리카의 섬나라 세이셸 공화국이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위쪽 인도양 바다에 위치해 있다. 인구 8만여명(1인당 국민소득 1만 8000달러)에 불과한 이 나라는 영국 BBC 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천국’으로 선정했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한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대선 전) 등이 즐겨 찾았을 정도로 최근들어 휴양지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씨는 어떻게 세이셸 공화국과 인연을 맺게 됐을까. 우선 내년 2월 이 나라에서 제5회 세이셸 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2008년 2월 처음 시작한 이 대회는 국민들의 건강, 단합, 해외 관광객 유치, 국가 브랜드 이미지 고양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국제육상연맹이 공식 인정한 대회이기에 천혜의 자연 경관 속에서 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토너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이셸의 많은 사람들이 더운 나라에서의 마라톤대회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한국, 미국, 프랑스, 남아공, 독일,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참가할 만큼 세이셸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 대회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정동창 세이셸 명예총영사다. “2004년 초 세이셸 공화국 외교부에서 메일이 한 통 도착했습니다. 명예영사 신청을 받고 있으니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메일이 잘못 왔나 싶어 신경을 안 썼지요. 그런데 얼마 후 케냐에 주재하는 이석조 대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세이셸 공화국은 우리나라에 외교공관이 따로 없어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대사는 제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박항률 화백과 친한 사이였지요. 그래서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인연의 끈은 또 있다. 당시 정씨는 마라톤 전문여행사를 운영하면서 해외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한국 참가자들의 수속을 대신해 주는 일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들을 우리나라 국제마라톤 대회에 초청하는 일 등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국내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케냐 선수들을 알게 됐다. 초청된 케냐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고 나서 항공편이 원할하게 연결되지 못해 발이 묶여 있었다. 이때 정씨가 선수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항공편이 연결될 때까지 3일 동안 숙식을 제공하면서 매일 아침 함께 남산을 달리고 별도의 시간을 내서 서울 관광도 시켜주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케냐 선수들은 한 모임에서 케냐 외교부 사람들을 만나 한국에서 참으로 고마운 분을 만났다는 사연을 얘기하면서 정씨의 명함을 건넸다. 이런 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명예영사 추천을 받게 됐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명예총영사가 된 후 여러 차례 현지에 가서 세이셸 공화국의 외교부 장관과 제임스 미셸 대통령 등을 만나면서 향후 할 일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제가 마라톤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지요. 처음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아시아의 멀고도 생소한 한국에서 온 사람이 마라톤 대회를 열자고 하니 황당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연평균 22도에서 32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기에는 무리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요. 하지만 국민 건강과 단합,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스포츠라고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뉴욕과 런던,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 대한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수차례 설명을 했더니 결국 받아들이더군요.” 정씨는 수도 빅토리아 해변을 출발하는 5㎞, 10㎞, 하프마라톤과 42.195㎞ 풀코스 구간을 직접 개발해 국제육상연맹의 인증을 받아냈다. 국제마라톤대회 심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가 코스별로 몇 번을 직접 뛰어 보고 답사한 끝에 드디어 2008년 2월 제1회 세이셸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한국인이 해외에 마라톤을 수출하는 첫 쾌거를 이루어내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350여명 정도가 참가했으나 해마다 참가자 수가 늘어 지난해에는 내국인 1000여명, 외국인 400명(28개국)에 이를 만큼 세이셸 최대의 이벤트로 발전했다. 내년 2월 대회에는 31개국에서 12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그는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 점은 달리는 데 다소 회의적이었던 세이셸 국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라고 회고한다. 수도 빅토리아 시내에 아침, 저녁으로 조깅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정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문화행사를 열었다. 첫해에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김영호 교수 등 유명 연주자들을 초청해 세이셸 국민들에게 차원 높은 문화를 느끼도록 했다. 2009년에는 이강소, 박항률, 금누리, 이용수, 김재민, 권기동 화백 등 우리나라 유명작가들의 초대전을 개최했다. 2010년에는 한복패션디자이너 김혜순의 패션쇼를 열어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의 멋을 한껏 맛보게 했다. 이 같은 정씨의 노력에 힘입어 2009년 10월 세이셸 공화국 미셸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고 이때 정씨의 숨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외교통상부에서도 정씨를 세이셸 공화국의 유일한 외교연락 창구이자 준외교관 자격으로 인정했다. 정씨는 2009년 6월 한·세이셸 경제기술협력(ETCA) 체결, 2010년 3월 대전광역시와의 자매결연, 2010년 7월 한·세이셸 항공운송협정체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이셸에 가면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관리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때마다 저를 ‘미스터 마라톤’이라고 부르지요(웃음). 세이셸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해변 중 1위로 지목될 만큼 빼어난 해변경관을 간직한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 12배의 광활한 영해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고 참치는 세계 2위의 어장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참치 전쟁이라고 하는데 세이셸을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씨가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대 후반.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체중이 90㎏을 훌쩍 넘었다. 과중한 업무와 잦은 술자리 등으로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는 진단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뛰는 것이 힘들어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점차 속보로 끌어 올렸고 어느 정도 체력이 붙자 조금씩 뛰기 시작했고 이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점차 여유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 요즘도 그는 달린다. 달리면서 그날과 그달에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더러는 명상을 하면서 자신과 진지한 대화를 한다. 고민이 생길 때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 남산 산책로나 북악스카이웨이 코스를 후련하게 달린다. 그에게 왜 달리느냐고 물었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오는 정직한 보람과 행복의 참맛이 있기 때문이지요.” 편집위원 km@seoul.co.kr ■정동창은 196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86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석사(1994),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박사과정(2002)을 수료했다. 경원대, 배재대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 및 아주관광 부장(1986~1996)을 역임한 뒤 마라톤 전문여행사 여행춘추(1997~2011)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 세이셸 공화국 명예총영사이며 세이셸 관광청, 투자청, 에어세이셸 한국사무소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틈틈이 마라톤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호주, 뉴질랜드 100배 즐기기’(2001), ‘이것이 진짜 마라톤이다’(2002, 번역),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2011) 등이 있다. 특이사항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70여회 완주했으며 이 가운데 35회 이상을 보스턴, 뉴욕, 런던 등 세계 유명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외국어대 산악회, 100회 마라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라톤 전도사’ ‘미스터 마라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8) 전주 삼천동 곰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8) 전주 삼천동 곰솔

    250년 전 북학파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사람의 입장에서 물(物)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의 입장에서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은 균등하다.”고 했다. 이른바 인물균(人物均) 사상이다. 그는 대표 저술인 ‘의산문답’에서 이 시대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릴 이야기를 남겼다. “지구는 활물(活物)이다. 흙은 지구의 살이고 물은 피며, 비와 이슬은 눈물과 땀이고, 바람과 불은 혼백이며, 기운이다.”라고 한 뒤, “풀과 나무는 지구의 모발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이며 이(蝨)다.”라고 선언했다. 홍대용보다 100년 뒤에 활동한 서구의 니체(1844~1900)가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이 앓고 있는 유일한 피부병은 인간”이라고 했던 말의 시원이라 할 수 있겠다. ●바닷가 곰솔이 내륙에… 학이 나는 듯한 자태 큰 눈이 내린 전주 시내 한복판. 천연기념물 제355호인 삼천동 곰솔 앞에 섰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서설을 맞으며 홍대용의 도발적 선언을 떠올렸다. 참담한 몰골을 한 이 나무가 바로 오래전의 가르침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지몽매함이 빚은 결과라는 생각에서였다. 전주 삼천동 곰솔은 몇해 전 전문가들의 정밀 조사에 의해 사망 진단을 받은 나무다. 천연기념물에서도 해제될 뻔했다. 그러나 아직 죽지 않았다. 천연기념물로서의 지위도 그대로다. 뭉개지고 부러지고 찢기면서도 여전히 생명을 내려놓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곰솔이 내륙 한가운데서 산다는 것 외에도 한창 때의 생김새가 우리나라의 여느 곰솔에 견줘 매우 수려했다는 점에서 삼천동 곰솔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망 진단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생명을 이어 가는 매우 각별한 나무다. 내륙에서 자라는 대개의 곰솔이 그렇듯 삼천동 곰솔도 사연을 갖고 이 자리에 살게 됐다. 이 자리는 원래 인동 장씨의 선산 구역이었고, 곰솔은 선산임을 가리키는 표지송(標識松)이었다. 이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1920년대에 인동 장씨의 후손인 장재철씨가 주변에 축대를 쌓고, 나무 앞에 ‘장씨산송대’(張氏山松臺)라는 표지석까지 세웠다. 표지석은 여전히 나무 앞에 서 있다. 그때만 해도 이곳은 도시 변두리의 고요한 숲이었다. 나무는 고요 속에 파묻혀 인동 장씨의 선산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다. 키보다는 사방으로 고르게 뻗은 가지가 더 훌륭한 나무였다.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 학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그래서 나무에 ‘학송’(鶴松)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개발이익 노려 10년전 밑동 여덟 곳에 독극물 1990년대 초반. 이 지역에 개발 열풍이 불어닥쳤다. 사람이든 나무든 멧돼지든 이 땅의 뭇 생명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른바 안행택지지구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곧 나무 곁으로 8차선 도로가 뚫렸고, 잇달아 고층 아파트가 올라갔다. 천연기념물인 곰솔 부근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덕에 택지 개발의 전 과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침내 택지 개발이 완료되고, 새로 지은 아파트와 자동차로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들어서자, 곰솔은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 마치 하나의 섬처럼 뎅그마니 떨어져 있게 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셈이었다. 청신한 숲의 공기를 밀어낸 자리에는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이 들어찼고, 사방의 고층 아파트는 바람의 길을 막았다. 솔잎에 찾아오던 햇살까지 머뭇거리게 했다. 생기를 잃고 나무가 허약해진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그리고 얼마 뒤, 숨이 막혀 허덕거리던 삼천동 곰솔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솔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검은빛의 가지도 희뿌옇게 말라 죽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나무 줄기 밑동 부분에 예리한 공구를 이용해 뚫은 여덟 개의 구멍이 발견됐다. 지름 1㎝, 깊이 9㎝의 구멍 안쪽에는 독극물이 투여된 흔적이 있었다. 2001년의 일이다. 누군가가 나무의 숨통을 틀어막기 위해 계획적으로 벌인 소행이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지위는 살아 있는 생물에게만 부여하는 지위다. 나무가 죽으면 자연스레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될 것이고, 그리 되면, 보호구역 역시 해제돼 뒤늦게나마 개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나온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죽어 가는 곰솔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온갖 아이디어가 속출했고, 나무 의사들이 동원됐지만, 나무를 온전히 살려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나마 다 죽어 가는 나무의 한쪽 끝을 잡고 있는 나뭇가지만 살아남았다. ●열아홉 줄기 흑빛으로… 네 가지만 푸르러 그냥 두었다가는 나무의 중심 줄기가 더 썩어들면서 아예 무너앉을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줄기 부분을 방부처리했지만, 나무는 계속 썩어 들었다. 결국 지난해 나무 주위를 정비하면서, 나무의 줄기를 모두 걷어내고 옛 줄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가짜 줄기를 만들어 세우는 대형 수술을 해야 했다. 흑빛의 나무 줄기에는 열아홉 개의 부러진 가지가 처참한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네 개의 가지만큼은 신비롭게도 잘 살아 있다. 찢기고 부러진 나무의 흔적은 볼수록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이는 곧 개발과 성장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솟구친다. 세월의 한 페이지를 접어야 할 세밑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옛 사람이 지적한 ‘벼룩’이나 ‘이’와 같은 무지몽매한 짓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삼천동 곰솔의 처참하게 찢긴 나무 줄기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 사진 전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길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14-1. 호남고속국도의 전주나들목으로 나가서 전주월드컵경기장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8㎞ 남짓 남동쪽으로 직진하면 통일광장 사거리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 옆 길을 이용해 우회전하면 8차선의 백제대로에 들어서게 된다. 4㎞쯤 가면 왼쪽으로 삼천주공아파트 단지 사거리에 이르는데, 이 길 건너편에 삼천동 곰솔이 있다. 좌회전한 뒤 이면도로로 들어가 곧바로 나오는 주유소 옆 샛길로 비보호 좌회전하여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이 나온다.
  • [옴부즈맨 칼럼] 학교서 배운 것, 직장서 배워야 할 것/박제국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

    [옴부즈맨 칼럼] 학교서 배운 것, 직장서 배워야 할 것/박제국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일하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는 행정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미처 배우지 못한 게 너무 많고 이를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습득하는가에 따라 유능한 직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래서 요즈음은 채용시험에서도 ‘그동안 무엇을 배우고 성취하였는가’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잘 배우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가’를 평가하여 직원을 선발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점에서 보면, 직장 내에서 유능한 상사나 선배와 함께 일하는 것은 큰 행운이다. 보고서를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책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고 법·제도를 만들려면 국회 등 관련 기관과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지, 정책 갈등을 해결하려면 관련 부처나 민원인과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론과 마주해야 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직접 또는 간접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행정학 강의라고 할 수 있다. 행정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질수록 공무원들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수단은 그만큼 빨리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후배들을 돌아보면 필자가 겪어 왔던 실수와 시행착오를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단순한 이론 교육으로 얻을 수 없는 행정 현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경험 속에서 체화되는 ‘암묵지’(暗?知)를 보다 많은 사람이 체계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행정의 낭비나 비효율성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어떻게 공유하고 전달할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은 그동안 일어난 정책들의 다양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하여 시사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부처마다 수많은 정책을 설계하여 추진하지만, 이 중에는 성공하는 사례와 실패하는 사례가 갈리기 마련이다. 또한 어느 측면에서는 성공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실패한, 복합적인 결과를 낳는 정책도 있다. 학계 및 민간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정책의 성공과 실패 원인, 시사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가르침으로써 보다 현실에 근접한 학교 교육은 물론 정부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책의 성공한 측면은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지만 실패한 측면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리거나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실패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공직 내 환경과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공직에 종사하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우리 사회의 필요한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글이나 책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의 노하우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분야 경험이 풍부하고 공사 생활에 있어 존경받는 퇴직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를 필요로 하는 기관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물건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들지만, 지식을 나누면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지식의 총량은 두배, 여덟배씩으로 늘어난다. 우수한 퇴직공무원들을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선진행정 경험을 배우려는 개발도상국가에 필요한 행정경험을 전수해 주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이 2011년 관가 10대 뉴스로 ‘전관예우 금지’(12월 1일 자)를 꼽은 데서도 보듯이, 일부 퇴직 공무원들의 잘못된 전관예우가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잘못된 관행은 과감하고 철저하게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소중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투명하고 떳떳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日구로다, 이번에는 “대마도가 한국땅이냐?” 공격

    日구로다, 이번에는 “대마도가 한국땅이냐?” 공격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언론인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 특파원이 난데없이 대마도를 앞세워 한국의 독립기념관을 비난해 빈축을 사고 있다. 구로다 특파원은 자사 신문에 연재하는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외신칼럼 10일자에서 ‘대마도는 이미 한국 영토?’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한국 어린이들의 학습의 장’이라면서 “넓은 부지에 많은 전시관이 있고,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와 탄압에 대한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본 수학 여행단도 잘 다녀가는 곳으로 일본어 팸플릿도 제작돼 있는데, 서두에 독일인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아우슈비츠는 독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써놓아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말살 만행과 같은 것처럼 이미지화했다.”고 사실상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최근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 말도 안되는 일이 있다고 해서 팸플릿을 자세히 살펴보니 지도에 대마도를 한국 땅으로 표기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해놓은 것을 보면 기념관의 전시 수준까지 의심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 측은 일본어 안내책자에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도가 실려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각 나라와 제주도, 독도, 대마도 등을 표기한 것이지 그것이 어느 나라 땅인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마치 한국이 일부러 사실을 왜곡하려고 한 것처럼 자사 국민들에게 전하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 결코 도움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 [CEO 칼럼] 문명과 역사, 그리고 토목/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CEO 칼럼] 문명과 역사, 그리고 토목/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고대 로마가 전성기에 로마를 중심으로 372개의 거대한 도로를 113개의 각 속주를 비롯한 주요 지역으로 연결되도록 건설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 도로는 로마의 경제를 움직이고 지역의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제국의 혈맥’이었다. 중국은 운하라는 수단을 통해 대륙의 거대한 영토를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흔히 수나라의 양제가 베이징에서 뤄양(陽)을 거쳐 항저우를 잇도록 만든 대운하만을 중국의 운하라고 생각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의 운하는 지역을 서로 연결해 왔다.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을 걸쳐 2500년 동안 운하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며 경제, 문화, 정치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도로, 운하와 같은 토목사업은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토목공학을 영어로 시빌 엔지니어링(Civil Engineering)이라고 한다. ‘시빌’의 사전적 의미인 ‘문명의’, ‘시민의’라는 뜻은 도로·항만·공항·다리·철도·상하수도 등 토목이라는 건설 분야가 문명의 기초이며, 역사와 맥을 같이해 왔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토목 분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한 것이 현실이다. 건설 산업 종사자를 속칭 ‘노가다’라고 폄하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며, 최근엔 ‘토건족’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건설 분야를 단기간의 경기 부양을 위한 수단이나 일시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것 역시 구시대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토목 분야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매우 정밀한 계산과 최신 공법들이 동원되는 첨단 산업이다. 초장대 교량, 해저터널 등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뿐 아니라 안전과 편리함, 경제성, 지역의 문화 등을 고려한 문명의 발전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는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건설 산업을 박대해야 할 정도로 모든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도로 연장(2.12㎞)은 2010년 말 기준으로 영국의 3분의1(6.78㎞), 일본의 4분의1(9.46㎞), 미국의 10분의1(20.48㎞)에 불과하다. 인구와 면적을 감안한 도로 연장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인 28위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최근 한여름과 한겨울 전력난으로 인한 정전대란이 우려되고 있으며,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도서 지역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도로, 항만, 교량, 발전 등의 인프라 자체가 모자란 상황임에도 매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공공 분야 국내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인프라 구축 산업 수주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정표에 ‘아시안 하이웨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 인도를 지나 터키까지 연결되는 21세기 실크로드를 일컫는 아시안 하이웨이는 2004년 ‘아시안 하이웨이 네트워크 정부 간 협정’이 체결되면서 본격화됐다. 서구 자본주의 중심의 세계 경제 축이 아시아로 옮겨 갈 것을 예측하는 미래학자들에게 ‘아시안 하이웨이’는 문명학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지표가 될 것이다. 도로가 연결되고 물류가 이동하면 경제가 흐르고, 문화가 자연스레 소통된다. 미래에 ‘아시안 하이웨이’의 상습 정체 구간으로 대한민국이 지목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SOC 분야의 투자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열린세상] 감성 없는 사회의 불만·불안/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열린세상] 감성 없는 사회의 불만·불안/국중호 日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부자와 빈자 간의 부(富)나 소득 차이가 예전에 비해 더욱 벌어지는 양극화라 하지만, 부는 위쪽으로 쏠리고 사람숫자는 아래쪽으로 쏠린다. 자본주의 사회를 그냥 두게 되면 소수의 부나 소득이 상층으로 쏠리는 ‘버섯모양’이 된다(11월 15일 자 서울신문 ‘열린 세상’ 칼럼 참조). 유감스럽게도 자본(돈)의 힘은 냉정하다. 부를 거머쥐려 해도 대부분은 큰 자본에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러니 사람 수 분포로 치면 미끄러진 아래층에서 많은 사람이 아우성치는 ‘거꾸로 선 버섯모양’이 된다. 버섯모양이건 거꾸로 선 버섯모양이건 중간층이 엷어져 불만이 증폭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국가가 소수에 집중된 부나 소득을 쪼아내 아래로 끌어내리고,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끌어올려야 그 병폐로 인한 불만이 사그라진다. 이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논리나 과학’의 세계가 아닌 ‘감성과 예술’의 세계이다. 아래로 쏠린 많은 사람들을 감싸고 보듬어 위로 끌어올리고, 위로 쏠린 부의 소유자에게 나눔의 동참을 설득해야만 불만 해소의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애플사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후,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그 연설은, 지금 하는 일과 미래의 일이 어떤 시점에서 연결될 것으로 믿으라는 ‘점(點)의 연결’ 얘기(그가 리드대학에서 청강으로 배운 서체가 그후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아름다운 서체로 살아났다는 점),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라는 얘기(그는 자신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났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 일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애플사 CEO로 복귀), 그리고 ‘마음과 직관을 따라 살아가는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며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살아갈 것)로 메시지를 전한다. 스티브 잡스의 매력은 이처럼 ‘가슴과 직관’에 따르며 사는 용기를 호소하고 그 자신이 그렇게 실천하며 살아간 데 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일본 NHK ‘클로즈업 현대’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어 낸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은 제품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작품’을 만드는 열정에 있다고 했다. 우리의 손에는 작품을 느끼는 무한한 감각이 있다. 그 손 안에 놓인 애플의 ‘아이’ 시리즈가 감성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세계인이 열광했다. 이명박 정권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 수주, 카자흐스탄 화력발전소 공사 수주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이들 수주에 대해 국민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다가도 다시 금방 불만으로 변한 데는 바로 감성의 결여에 그 원인이 있다. 그 수주가 일부 계층의 부를 키워 버섯의 위층을 살찌게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를 향유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런 허탈감이 불만으로 표출되었고 또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순서였으나 이제는 좋은 대학을 나와 멋진 상공(商工)을 잡는 것이 큰 목적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사농공상은 파괴되었지만, 이제는 대학 간판이 감성 배양을 저해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상공(商工)으로 성공하려는 이면에는 ‘망치를 두드려 작품을 만들겠다.’는 현장 상공인을 주눅들게 하는 공포가 있다. 무겁게 짓눌린 이 불안과 공포는 우리가 ‘마음과 직관’에 따르는 용기를 잃지 않아야 걷어낼 수 있을 듯하다.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것은 앞으로 절실한 ‘감성정치, 감성경영’에 부과된 숙제이기도 하다. 대학 중퇴자인 스티브 잡스는 ‘무엇인가에 허기져 갈구하는 바보처럼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말로 연설 마지막을 장식한다. ‘허기져 갈구하는 바보’ 같은 삶이 가장 충만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용기를 내기가 무척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한국이 불만과 불안을 넘어 어떤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만의 두려움일까?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7)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7)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왁자하던 대학 캠퍼스가 고요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 탓이기도 하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기말 고사 기간이어서 대개는 도서관을 찾아 든 탓이다. 늦은 밤까지 환한 도서관의 충혈된 불빛이 살갑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교정은 더 깊은 고요에 빠질 것이다. 교정의 나무들도 하나둘 낙엽을 떨구고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중이다. 모두가 휴식의 시간을 준비하는 계절이건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다.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우선 코앞에 닥친 기말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취업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취업의 부담에 시달리며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 두고, 겉으로 살려내지 못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창조력이 더 아쉬운 시절이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신통한 나무 “회화나무 아래 서 있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게 사실이에요? 진작에 알았으면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한 번씩 들를 걸 그랬네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의 기말고사 준비로 겨를이 없는 최인경(22·인하대 4)씨를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 앞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최씨는 어릴 때 이 나무 그늘에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나무보다는 나무 아래 깔린 자갈돌이 중요했기 때문이란다. “나무 아래에는 예쁜 돌멩이들이 자르르 깔려 있었어요. 공기놀이뿐 아니라 대개의 놀이에 돌멩이는 아주 중요하거든요. 여기에서 모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는 몰랐죠.” 콩과에 속하는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학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나 팽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잎이 무성한 나무여서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 키운다. 이 나무에 학자수라는 별명이 붙은 건 사방으로 고르게 뻗는 나뭇가지가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기품이 있어서다. 서양에서도 이 나무를 ‘학자의 나무’ 즉 ‘스콜라 트리’(Scholar Tree)라고 부르는 걸 보면 회화나무에 대한 인상은 동서양이 공통적이다. 천연기념물 제315호인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에는 별다른 유래가 없다. 다만 이 나무의 꽃이 위쪽부터 피어나면 풍년이 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이다. 7월 지나 여름 햇볕이 따가울 즈음 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아롱아롱 피어나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청라지구 개발로 숨가쁜 변화 기록으로 남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이 동네가 필경 농사를 짓던 마을이었으며, 나무 곁으로 너른 논밭이 펼쳐졌던 게 분명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에 지금처럼 5~6층 규모의 연립 주택이 들어선 것은 20년도 채 안 된다. 그때까지 나무 주위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무 바로 곁으로 주택단지가 형성된 10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언덕만 돌아서면 멀리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유난히 염소를 많이 기르는 농촌 마을이었다. 지난 20년 사이에 이 지역을 스쳐간 변화는 놀랄 만큼 컸다. 논과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주택단지, 이른바 ‘청라지구’가 형성됐다. 8차선의 넓은 도로가 뚫린 건 물론이고 도로 한가운데로 뱃길까지 뚫렸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신현동 회화나무는 이곳에서 500년을 살아 왔다. 키는 평균적인 아파트 7층을 넘는 22m나 되고, 둘레도 6m 가까이 된다. 하지만 주변에 늘어선 주택들에 갇혀 나무는 왜소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주택들이 둘러싼 탓에 나무를 찾아오는 바람도 길을 잃었고, 나무가 내뿜는 숨결은 매우 거칠어졌다. 도시의 금싸라기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무가 어쩔 수 없이 견뎌 내야 하는 운명이다. 그 사이 성장과 개발의 숨 가쁜 흐름에서 나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줄기 앞에 이 동네 사람들이 동제를 올릴 때 쓰는 제단을 놓은 것부터 그렇다. 일정한 날을 정해 제사를 올리는 건 아니지만 동네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동네의 자랑인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기 위한 채비다. 주변 환경도 한결 깨끗해졌다. 울타리를 깔끔하게 정비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 옆으로 자리를 더 내어서 아담한 정자도 세우고,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와 몇 가지 체육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작지만 잘 꾸민 근린공원이 됐다. ●고단한 사람살이의 큰 위안으로 “저도 이런 큰 나무가 있는 줄 몰랐죠. 그런데 초등학교 때 ‘회화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낯선 어른들을 종종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알게 된 거죠.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나무 그늘에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최씨가 취업을 앞둔 어른으로 바뀌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한자리를 지키며 옛일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특히 신현동 회화나무는 상전벽해의 한가운데를 지키며 변함없는 사람 살이의 알갱이를 500년 동안 수굿이 지켜 왔다. 이제 학기말 고사를 마치면 최씨도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이 세상살이에 지칠 즈음 최씨도 어김없이 어린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 불현듯 떠오를 회화나무는 필경 지친 사람 살이의 큰 위안으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그렇게 그때 그 자리에 치유의 존재로 남을 것이다. 글 사진 인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인천 서구 신현동 131-7. 경인고속국도의 서인천나들목으로 나가면 가정오거리가 나온다. 비교적 복잡한 이 오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들어서서 700m쯤 간다. 언덕 너머의 가정삼거리에서 목재단지 쪽으로 좌회전해 700m쯤에서 나오는 사거리를 지나 오른쪽 두 번째 골목길인 롯데마트 옆길로 들어선다. 길 안쪽의 연립주택 건물 사이로 나무가 보인다. 나무 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골목은 비좁고 복잡하다. 골목길 가장자리의 노견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까지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 [옴부즈맨 칼럼] 소셜 미디어 vs 종합편성채널/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옴부즈맨 칼럼] 소셜 미디어 vs 종합편성채널/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12월은 언제나 분주하다. 게다가 미디어 전쟁도 시작되었다. 세상이 온통 종합편성채널 개국으로 난리가 난 듯했다. ‘TV조선’(조선일보), ‘채널A’(동아일보), ‘JTBC’(중앙일보), ‘MBN’(매일경제) 등 종합편성채널 4사와 보도전문채널 ‘뉴스Y’(연합뉴스)의 출범으로 모든 매체들은 종편 관련 기사로 넘쳐났다. 종합편성채널을 출범시킨 신문들은 하나같이 자사의 종편을 홍보하는 기사들을 쓰고 있고, 나머지 신문들은 ‘특혜방송’ ‘반칙방송’이라며 종합편성채널을 공격했다. 서울신문도 12월 1일 자 “종편 불안한 출범-신문·방송 거머쥔 ‘특혜공룡’ 출현… 미디어 생태계 위협” 기사를 통해 “‘특혜 종합선물세트’ 종편 무엇이 문제인가”를 심도 있게 파헤쳤다. 2일 자에서도 “잘못된 종편 -10분 만에 화면 깨지더니 종일 외화·다큐 틀었다” 를, 3일 자는 1면에 “시청률 0.3~0.5% ‘망신 특혜종편’”, 6면에 “종편, 시청률은 지상파의 6%…광고단가는 70% 요구”, 사설에선 “‘괴물방송’ 종편 감시 게을리해선 안 된다”라며 연일 질타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가 종편 출범에 반대하여 개국 당일 45개사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종편으로 볼거리가 늘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방송의 질적 저하와 미디어 생태계의 파괴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보수적 색깔의 언론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대주주인 점에서 신문의 논조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여론 편중이 더 심화될 것이다. 각종 특혜로 출범한 종편이 미디어 업계의 과당 경쟁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어 미디어의 공공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보수 및 친기업 편향이 우려되는 드라마와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여론을 왜곡할 것이다는 등 반대의 이유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매일 쏟아진다. 미디어 생태계는 이미 2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은 연말까지 2000만대 이상 보급될 예정이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용자는 중복사용을 포함하여 1000만명을 넘고 있다. 이 같은 소셜 미디어는 기존의 언론들이 다루지 않았던 소수 여론의 다각·다층화에 이바지하며 기존 언론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로운 사회여론 형성이 가능한 소셜 미디어의 발전은 기득권을 누려온 기존 언론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하락시킬 수밖에 없다. 해외 언론사들은 오래전부터 SNS를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앞으로 계속 그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매우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언론사가 SNS의 영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1일 자 서울신문은 “내년 총선 관전 포인트는 종편 vs SNS 대결?” 기사에서 20~40대 진보적 젊은 유권자들이 주도하는 소셜 미디어와 50대 이상이 선호하는 보수매체 중심의 종편 방송의 대결구도가 세대 간 대결양상을 강화시키며 내년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의 승부수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SNS의 등장으로 이미 세대 간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종편의 등장으로 이러한 세대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은 매우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종편의 출범 취지가 새로운 콘텐츠를 통한 ‘여론의 다양성 확대’인데, 개국과 동시에 종편과 SNS의 대결구도를 전망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관측이 아닐까. 종편은 이제 출범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정치적 편향성과 영향력을 평가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소셜 미디어 또한 현재와 같이 개인 및 소집단 중심의 발전만으로는 앞으로 기존 언론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종편이나 소셜 미디어를 소비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몫이다.
  • [CEO 칼럼] ‘융합’이 진정한 경쟁력이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사장

    [CEO 칼럼] ‘융합’이 진정한 경쟁력이다/김영호 대한지적공사사장

    우리는 ‘경쟁’과 ‘경쟁력’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입시경쟁은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한 이후에도 형태를 달리해 계속된다. 기술경쟁, 가격경쟁, 제품경쟁, 학벌경쟁, 취업경쟁 등 무한경쟁에서 이기는 기업, 기관, 개인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각국 정부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 작은 정부, 자유 시장,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금융 위기를 계기로 공공과 민간부문을 불문하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은 양극화와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고조 등도 수반한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이념과 명분에 사로잡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왔다. 때문에 ‘시장경쟁’만이 능사가 아닌 상황이 온 것이다. 영국의 경제평론가 아나톨리 칼레츠키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자본주의 4.0’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4.0의 특징을 칼레츠키는 ‘적응성 혼합경제’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민간·공공부문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혼합경제이며,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경제 규칙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적응성 경제라는 것이다. 시장경쟁의 전능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정치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시장과 정치의 새로운 융합을 통해 자본주의의 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융합’ 바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산업 전 분야에서 불어 왔다. 최근에는 기업경쟁이 격화되는 한편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산업과 기술의 융합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경쟁하면서 협력한다(copetition)’는 신조어처럼 경쟁기업 간 전략적 제휴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외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 다양한 기술과 제품, 새로운 사업영역이 만들어진다. 특히 정보기술(IT)이 다른 산업분야와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지난 2005년 277억 달러(약 34조원) 규모이던 융합산업 시장이 오는 2015년 1628억 달러(약 202조원)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공간정보산업은 대표적인 융합산업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실시간 교통정보와 지리정보, 속성정보를 결합시켜 스마트폰으로 제공하는 등 ‘장소’를 기본값으로 하여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간정보산업의 특징이다. 며칠 전 ‘측량·지적 융합 시너지 창출 워크숍’이 국토해양부 주최로 열렸다. 대한지적공사를 비롯해 대한측량협회, 관련 학회 관계자들이 두 분야 간 상생협력 체계 구축방안을 논의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반측량은 위치를 측정하여 지도를 제작하거나 건설사업에서 요구하는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며, 지적측량은 토지의 소유권과 위치·경계·면적 등을 공적장부에 등록하기 위한 측량이다. 측량 결과의 다른 쓰임새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두 분야는 기준점 체계 및 기술자격의 중복운영, 측량 결과 상이, 기술개발(R&D)투자 저조 등의 문제점을 지적받아 왔다. 지적측량의 시장 규모는 연간 4500억원, 일반측량은 연간 1000억원 정도이다. 만약 두 영역이 서로 융합하고 첨단 IT기술을 접목해 국가공간정보 인프라를 창출하면 그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더구나 세계 공간정보시장은 2015년에 15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좁은 국내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싸우기보다 대승적인 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면 세계 공간정보산업의 주도권은 대한민국이 쥐게 될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1년을 보내면서 내년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융합과 화합의 바람이 세차게 불기를 기대한다.
  • 회색 도심 속 대안적 삶 좌충우돌 DIY 도전기

    회색 도시에 갇혀 사는 사람 치고 전원생활을 꿈꾸지 않는 이는 드물 터다. 집 뒤 텃밭에 야채가 자라고, 앞마당엔 닭들이 뛰노는 그런 생활. 돈도 없고 땅도 없는 이들은 주말농장이라도 찾아가 아쉬움을 달랜다. 그런데 이마저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 별 수 없다. 전원을 내 집으로 가져 오는 수밖에. ‘내 손 사용법’(강수정 옮김, 반비 펴냄)은 ‘DIY’(Do It Yourself) 운동을 주도하는 잡지 ‘메이크’의 편집장인 마크 프라우언펠더의 좌충우돌 ‘DIY 도전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정보기술(IT) 관련 칼럼과 책으로 업계를 주름잡던 인물이다. 그러다 ‘IT 버블’이 붕괴됐고, 그는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다. 저자가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은 도시 생활을 접고 남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희망에 부풀어 섬 생활을 시작했지만 “폐렴과 기관지염 그리고 발톱무좀과 사회적 고립에 만신창이”가 된 채 넉 달 반 만에 도시로 돌아오고 만다. 하지만 뼈저린 실패 이후에도 저자의 대안적인 삶에 대한 지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DIY’, 즉 자급자족의 수공업 생활이었다. 저자가 도전한 분야는 다채롭다. 닭 기르기, 나무 숟가락 조각하기, 벌 치기, 텃밭 가꾸기등.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위트 넘치는 글 속에 생생하게 담았다. “사람들은 뭔가를 고장 낼까 봐, 뭔가를 망가뜨릴까 봐 두려워 한다. 안타까운 건 그런 두려움이 타당하다는 것. 결국 그렇게 된다. 물건들은 고장 나고 망가진다. 하지만 그건 더 풍요로운 삶, 주변의 사물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야할 첫 번째 난관이다.” 이제는 DIY에 거의 중독된 상태라는 저자는 DIY를 통해 가족이 누리는 삶의 질이 확실히 향상됐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나 시스템과도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게 됐다고 말한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재범 칼럼] 나랏일에 앞장서는 분들께 드리는 고언

    [박재범 칼럼] 나랏일에 앞장서는 분들께 드리는 고언

    요즘 세태를 보면 너무나 거칠다.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 등 국민의 현재 삶과 앞날을 걱정한다는 모든 정치적 세력들의 공방이 지나치게 원색적이다. 게다가 신구(新舊)의 양자 대결구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뉴 디바이스에 힘입어 속도 빠르게 진행, 축록전의 열기를 달군다. 아쉬운 것은 이들의 언어가 정제돼 있지 않아 본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 조롱과 막말은 예사다. 주먹을 휘두르고 ‘약을 올렸으니 맞아도 싸다.’고 한다. 형식이 내용을 상당폭 규정하는데 내용만 좋으면 만사 OK라는 식이다. 최근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우리가 법치사회에 살고 있는지,무법천지에 있는지 헷갈린다. 핫이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국회 통과를 놓고 국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의해 최루탄이 터뜨려졌다. 법의 산실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눈을 감고 있다. 법을 만든다고 법을 깔아뭉개도 되는지 묻고 싶다. 뜻이 떳떳했다면 처벌을 자청하는 게 당당하다. 그뿐이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간부가 시위대에 의해 계급장이 뜯겨나갔음에도 한낱 말씨름의 소재가 되고 있다. 역시 법의 최종 해석자인 판사가 SNS를 통해 대통령을 조롱해도 결말은 흐지부지된다. 피고나 변호사가 판사를 조롱할 때 판사는 발연대로(勃然大)할 것이다. 자신이 대접받고자 한다면 타인도 대접해야 한다. 입법, 행정, 사법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들 사안을 보면 ‘정치적인 것’이 인간사회의 모든 것에 앞선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현자들은 세상사에 대해 나와 나 이외의 사람과 사물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풀이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으로, 신채호는 아(我)와 비아(非我)로 이런 이치를 설파한 것으로 보인다. 주먹을 휘두르다 보면 자신도 반드시 주먹에 얻어맞는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이 삶의 모든 부분을 좌지우지할 때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는 경험으로 알려준다. 이미 우리 곁에는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자리잡았다. 아무리 빗장을 치려 해도 한국의 경제가 망가지지 않는 한 국내 거주 외국인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1등 제품 390여 가지를 만들어 팔고 있다. 한국전쟁 61년 만에 일궈낸 이런 성취를 평가받아 주요20개국(G20) 서울회의와 세계육상대회를 열었다. 동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게 됐다. 한국은 세계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끌려가는 처지가 아니라 세계를 이끌어가는 위치로 위상이 달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향상시킬 것인가. 조롱과 무례함과 폭력으로 가능할까. 동양의 고전 서경(書經)은 첫머리에서 요임금의 덕치를 칭송하고 있다. 추정해 보면 수천년 전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험악했을 것이다. 수년 전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의 사진을 보면 길거리에 해골이 뒹구는 장면이 비일비재하다. 당시 상황도 이에 못지않았을 수 있다. 그런 시절을 딛고 요는 태평성대를 일궈냈다. 서경은 이렇게 적고 있다. ‘지극히 공손하고 끝없이 겸양하는 윤공극양(允恭克讓)’. 성장과정이나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끼리 이해갈등을 조정해 평화를 일구는 첫발이 공손하고 겸양하는 태도임을 적시하고 있다. 사기열전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에피소드가 여러 개 실려 있다.그중 하나가 왕이나 대신들이 큰 마차를 타고 뻐기는 것을 좋아하자 서민들까지 따라하는 풍토를 꼬집은 대목이 있다. 국회의원과 판·검사, 나랏일에 큰 목소리 내는 모든 분들은 서민의 모범이 돼야 할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체가 욕설과 폭력에 만연된 것은 이른바 국가의 일에 나서는 사람들의 몫이 크다고 본다. 나랏일을 걱정할수록 내용은 치열하게 따지되 상대방에 대한 태도는 윤공극양을 지켜, 우리 사회에서 욕설과 폭력·조롱이 줄어들게 하는 데 앞장서 줬으면 싶다. jaebum@seoul.co.kr
  •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며칠 전 일본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국 학부형이 분노한 사연을 들었다. 학교 측으로부터 아이들의 급식에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후쿠시마 채소를 사용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먹거리에 대한 우려가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황에서 학교 측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즉시 전화를 걸어 학교 측에 후쿠시마현에서 생산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경우 급식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학부형의 항의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부터 일본 학부형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러잖아도 급식에 후쿠시마현 채소를 사용한다는 게 꺼림칙했는데 자신들을 대신해 항의를 해 줘서 고맙다는 말들을 해 왔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소 남을 의식해 드러나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학교 급식 대신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손에 들려 보내는 학부형들이 늘고 있다. 원전 사고 이후 생수 판매율도 급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음료용은 물론 생수로 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생수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한국 생수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생수 등 음료수의 경우 수입식품에는 일본어 표시 라벨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법 규정까지 완화해 외국산 생수가 자국 상표와 라벨 그대로 수입된다.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에서 삼다수, 진로생수, 스파클 등 한국 상표를 부착한 생수와 음료수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생수업체들은 원천수를 지하 100m 이하에서 퍼올리기 때문에 관동지역에서 채수된 생수도 방사능 물질에 오염될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더 이상 업자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기자도 한국 업체로부터 생수를 주문·배달시키고 있다. 매달 생수값만 약 6000엔(9만원)이 든다. 후쿠시마현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채소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일본의 장래를 걱정하는 일부 소비자들은 이들 지역의 생산품을 구입해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일본방송계에서 국민적 아나운서로 인기를 끌고 있던 오쓰카 노리카즈(63)가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방사능 때문이라는 괴담도 돌고 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원전 피해 소문을 불식하기 위해 TV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산 아스파라거스, 버섯, 토마토, 완두콩 등으로 요리한 음식을 직접 먹으며 후쿠시마를 응원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순종적인 국민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인들은 이제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후쿠시마현의 사토 유헤이 지사는 지난 10월 쌀의 방사성물질 조사 결과 벼농사 금지구역을 제외한 후쿠시마의 쌀이 안전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후쿠시마현 오나미 지구와 다테시 농가에서 생산한 쌀에서 기준치(1㎏당 500베크렐)를 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후쿠시마 농작물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쌀을 먹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소를 보낼 뿐이다. 일본 내 먹거리에 대한 우려는 빈부간 갈등도 빚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들이나 워킹푸어(연수입 200만엔 이하 정사원 및 정사원급 직원의 세대)들은 쌀과 음료수를 지역에 따라 골라 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 생활보호 대상자가 지난 7월 말 현재 205만명을 넘어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에 달했다. 워킹푸어층의 하루 식비는 평균 768.2엔(약 1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불신을 낳고 계층 간 갈등을 낳는다.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먹거리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도쿄 하늘 아래에서 실감하는 요즘이다. jrlee@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6)괴산 삼송리 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6)괴산 삼송리 소나무

    농경을 살림살이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개의 민족들은 나무를 비롯한 자연물을 경배의 대상처럼 신성하게 여겨왔다. 애국가에 소나무를 등장시키는 우리도 물론이다. 유난히 소나무를 좋아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무 가지를 꺾어 태어났음을 알리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면서, 소나무 장작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자라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죽는다.”는 말을 할 정도로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를 빼놓고 우리의 정신문화나 살림살이를 표현할 방법은 찾을 수 없다. 사정은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난해의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소나무라고 대답한 우리 국민은 전체의 67.7%나 될 정도다. 소나무라는 이름에서부터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소나무는 나무 앞에 ‘솔’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인데, ‘솔’은 ‘우두머리’ ‘으뜸’을 뜻하는 순우리말 ‘수리’에서 나왔다. 소나무를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본 것이다. 그런 소나무 가운데에서 ‘왕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나무도 있다. 그야말로 ‘으뜸 중의 으뜸’인 나무다. 천연기념물 제290호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소나무가 그렇다. 물론 왕소나무라는 별명은 이 지방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어서, 굳이 이 나무가 왕이어야 할 합리적 까닭을 찾는 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이 나무를 ‘왕’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귀하게 여긴 사람들의 충정에 깊은 뜻이 있을 뿐이다. ●소나무의 으뜸으로 여기며 지킨 나무 나무가 있는 삼송리는 글자 그대로 오래전에 세 그루의 훌륭한 소나무가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 그루 가운데 두 그루는 고사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왕소나무’로 부르는 한 그루의 소나무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 붙인 별명이라고는 하지만, 삼송리 소나무는 실제로 왕으로 불러도 될 만한 의젓한 분위기를 갖추었다. 왕소나무는 마을 뒤편의 낮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그 곁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둘러서 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솔숲처럼 보인다. 왕소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소나무들도 족히 100살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다. 마치 가운데에 위엄을 갖춘 임금이 자리를 잡고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듯한 분위기다. 호위무사처럼 둘러선 소나무들은 모두 18그루였다. 그러나 최근 이 나무들 가운데 4그루가 사라졌다. ●왕을 위해 희생된 4그루의 호위무사 왕소나무에 바짝 붙어 서 있던 4그루의 나무가 예리한 톱날로 잘린 밑동만 드러낸 채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 바람에 멀리서 보아 순한 곡선을 이루었던 솔숲은 가운데가 잘려나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솔숲 전체적인 모습이 흉측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생경한 모습이다. “그냥 보기에는 예전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왕소나무의 생장에 문제가 있었어요. 한쪽에 높은 키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 때문에 왕소나무는 반대편으로만 가지를 뻗었잖아요. 그렇게 오래 놔두면 왕소나무는 균형을 잃게 될 수도 있겠지요.” 괴산군청 문화관광과의 문화재 관리 담당인 김영근씨의 이야기다. 실제로 왕소나무를 볼 때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있었다. 멀리서는 무성한 솔숲이 좋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솟아오른 왕소나무의 줄기가 조금은 불편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나뭇가지를 한쪽으로만 펼친 것도 그랬다. 하지만 바로 곁에 늘어선 다른 소나무들이 꽤 큰 나무여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8년이었지요. 전문가들의 조사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요. 왕소나무를 더 오래 보존하려면 생육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했지요. 결국 곁의 다른 소나무들을 베어내야 했지만, 그 나무들도 큰 나무여서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4그루를 희생시키기로 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4그루를 위한 고사를 지낸 뒤에 신중하게 베어냈지요.” 왕소나무를 호위하며 수백 년 동안 왕의 위엄을 지켜준 소나무들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래도 왕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던 소나무를 위해 고사를 지내며 명복을 빌어준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싶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왕소나무에서 마을 당산제를 지냈고, 그 주위의 소나무들도 신성하게 여긴 나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웅장·기묘… 또다른 별명 ‘龍松’ 600살쯤 된 것으로 짐작되는 왕소나무는 키 13.5m, 줄기 둘레 4.91m의 매우 듬직한 수형의 소나무다. 땅에서 3m쯤 되는 높이에서 나무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지를 펼친 왕소나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뿐만 아니라, 수천의 가지들은 하나같이 기묘하게 비틀리고 배배 꼬이면서 뻗어나갔다. 급하지 않고, 웅장하되 매우 기묘하다. 신화 속의 용이 하늘에 오르는 형상이 꼭 이렇지 싶다. ‘용송’(龍松)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은 것도 그래서다. 보면 볼수록 이 나무를 왜 ’왕소나무‘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장엄한 모습이다. “당장은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빈 공간으로 왕소나무가 가지를 뻗을 겁니다. 물론 시간이야 적지 않게 걸리겠지만 왕소나무뿐 아니라, 곁의 소나무들까지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조금 불편하고 아쉽더라도 다음 세대를 내다보며 한 그루의 나무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걱정과 지혜로운 수고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글 사진 괴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옴부즈맨 칼럼] 온라인 뉴스의 가치 높이기/임종섭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온라인 뉴스의 가치 높이기/임종섭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자가 새로이 만들어 내는 경제 가치는 거의 없다.” 미국의 매체경제학자인 로버트 피카드가 미국 언론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던진 말이다. 더 나아가 기자가 경제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기자의 임금 수준은 낮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도발적인 이 주장은 국내 온라인 뉴스시장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종이신문은 구독료와 광고비용으로 수익을 내지만 대부분 온라인신문은 구독료 없이 무료로 제공되며, 온라인신문의 광고단가는 종이신문보다 상당히 낮다. 이 상황에서 온라인신문은 수익을 내려고 기사 본문에 광고를 링크시키고 기사 화면에 자극적 상업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이 현상은 보수, 진보 매체라는 정치 성향이나 편집방향과 상관없이 서울신문 홈페이지를 포함해 국내 온라인매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나은 점은 서울신문의 온라인 기사 본문에 광고 링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현장 기자들은 수익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광고주는 광고한 언론사에만 줄 수 없어서 같은 광고들이 여러 매체에 게재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과연 온라인 기사가 창출하는 경제 가치는 무엇일까? 언론사들은 온라인 기사로 어떤 수익을 내고 있는가? 지금같이 기사 화면이 자극적인 광고의 게시판이 되는데 기사의 경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겠다. 로버트 피카드는 전통 뉴스시장에서 기사의 경제 가치는 희소성을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 제공과 지역사회 소속감 증대, 의견 제시의 기회 제공으로 창출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온라인 뉴스의 등장으로 이 희소성이 줄었다. 기자들이 경제 가치를 만들어 내려면 다른 매체에 없는 좋은 기사를 많이 생산해야 한다. 또 다양한 계층의 알 권리 충족과 함께 이들을 교육하는 일도 언론의 임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20세기 사회·정치 철학자인 칼 포퍼는 사회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겠다는 시도는 무모하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언론에 적용하면 기사 제목과 기사 본문의 용어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최근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소리 나는 대로 쓰는 모습이 학계와 TV토론, 대학생의 보고서, 온라인 글 등 사회 담론의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적는 게 이해하기 쉬워 문제 될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렸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표현의 정확성을 위해서라면 영어로 말하는 게 어떨지? 언론은 이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지 이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ISD처럼 생소한 용어는 본래 표현을 제시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신문 홈페이지에서 ISD를 검색하면, ‘투자자국가소송제도’로 번역했을 뿐, 이를 설명한 기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언론의 교육기능은 여기서 발휘되어야 한다. ISD의 원래 표현(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과 의미를 정리한 기사는 관심 있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는 작은 것으로 언론의 교육기능을 잘 살리고 있다. 온라인 기사를 읽다가 어려운 단어가 있으면 이 단어에 컴퓨터 마우스로 강조하면 물음표가 나타난다. 이 물음표는 해당 단어의 의미와 발음을 제시하는 별도 창으로 연결된다. 기사를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도 배우는 것이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와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인들의 읽기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이 작은 노력이 보탬이 될 것이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은 우리말 표현을 배우는 데 상당한 애를 먹는다. 평소에 이들 용어를 자주 접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기사는 빠르기와 접근성이 좋은 만큼, 온라인 기사에 순수 우리말과 정확한 어법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처럼 별도 창으로 연결해 제공하면 어떨까? 독자들이 기사를 읽으면서 배우는 기회도 얻는다면 온라인 기사를 유료화해도 핵심 독자층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자, 작은 것부터 시작해 기사의 경제 가치를 높여 보자.
  • [CEO 칼럼]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장영철 캠코 사장

    [CEO 칼럼]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장영철 캠코 사장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랫말처럼 사람들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데 상대방을 언제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 즉 만남에 있어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1912년 4월 영국을 출발해 미국 뉴욕을 향하던 타이타닉호는 인근을 지나던 캘리포니아호에서 보낸 빙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전속 항해를 계속했다. 결국 빙하와 충돌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선박 역시 캘리포니아호였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타이타닉호는 사고 현장에서 16㎞ 거리에 있던 캘리포니아호를 향해 조명탄과 무선통신을 활용해 구조신호를 보냈으나, 캘리포니아호는 조명탄을 선상 불꽃놀이로 잘못 인식했다.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무선사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결과 타이타닉호의 승객 15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불행이 일어나고, 캘리포니아호 또한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가장 가까이에서 방조한 배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만약 불꽃을 조명탄으로 제대로 인식하고 무선사도 사고 당시 제자리에 있었다면 많은 사람이 구조됐을 것이다. 사업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긴다. 1970년대 서울에 볼링장이 단 두 곳밖에 없던 시절에 한 지인이 그중 한 곳을 경영한 적이 있었는데,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소득 및 여가생활 수준에서 볼 때 볼링장은 다소 이른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이 올라가고 여가문화가 활성화된 10년 후였다면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사업을 할 때 사회환경적인 여건과 적절한 사업 개시 시점을 항상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백년 동안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고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 같은 발전은 그동안 한반도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지만 기마민족의 DNA가 정부의 강력한 수출산업 육성정책, 그리고 개방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과 우리 민족의 기질이 잘 맞아떨어져 일어난 시너지 효과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가들과 관계를 잘 정립한 것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성공 요인이라고 본다. 2차 대전 종전 당시 세계 5대 강국으로 평가받던 아르헨티나가 수입대체산업 육성과 같은 내부지향적 정책으로 시대 흐름을 놓치고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만 보더라도 개방적인 관계 형성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 경험을 갖고 있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당나라와 콜럼버스보다 80여년 빠른 시기에 동아프리카 연안까지 진출했던 명나라는 국제적인 감각과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세계 최고 국가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이후 문호 개방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내부 분란과 함께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우리 역사에서도 구한말의 쇄국정책이 나라를 쇠퇴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일본은 선도적인 개화와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한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불가에서는 모든 사람과 현상이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관계하는 인연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도 만물을 주재하는 신과의 관계가 모든 것의 연결고리로서 작용한다고 본다. 이러한 연결이 선하게 발전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에 있어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시간적 스펙트럼으로 국가의 미래를 조망하고, 대내외적 비전을 구현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선한 관계로 연결되고, 우리의 이웃 국가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면 국가의 미래 또한 더욱 발전되리라고 믿는다. 아울러 지난 1년간 본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면서, 필자와 여러분 간에도 좋은 관계가 이루어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새달 1일 칼럼집 출판기념회

    박상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오는 12월 1일 오후 2시 인천 하버파크 호텔에서 칼럼집 ‘세상의 중심을 꿈꾸다’ 출판기념회를 연다. 수익금 전액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성금으로 기부된다.
  • 석학들이 그린 미래 모습

    미래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나. 무엇이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기회를 잡아야 하나. ‘더 퓨처’는 중국의 중견 저널리스트 두 명이 세계 석학 172명의 분석과 발표 등을 기초로 이 같은 물음에 대해 대답한 책이다. 쑤옌(蘇言)은 신화통신, 광저우일보 등의 칼럼니스트이자 미래학 저널리스트이다. 공저자 허빈(賀瀕)은 시나닷컴, 환추닷컷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이 책은 중국, 아시아, 지구촌, 현대인류의 미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래라는 거대한 퍼즐을 세계 석학들의 말과 분석, 각종 지표 등을 근거로 풀어나가고 있다. 8개의 분야로 주요 주제를 나눴고 그 안에 27개 장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어떤 통일된 결론을 주장하기보다는 정리된 각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을 독자가 보고, 판단하도록 근거를 제시할 뿐이다. 다만 미래를 낙관하지는 않았다. 1·2부에서 세계경제와 패권구도를 다뤘다. 제2의 대공황 시대가 도래하는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와 위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평가를 소개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침체가 국가 파산을 어떻게 앞당기고 있고, 화폐가 범람하는 와중에 불고 있는 환율전쟁 조짐과 새로운 국제금융 시대의 도래 가능성 등도 소개했다. 2부에서는 중국이 기존의 선진국을 대신하면서 세계 제1의 패권을 차지할 것인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2020년의 시나리오 등 세계적인 싱크탱크들의 분석을 근거로 2020년 이후의 세계 패권 가상도를 펼쳐 보였다. 유전자변형작물의 안전성, 의학의 발전을 비웃고 있는 슈퍼바이러스의 진화, 노령화의 급진전과 유전자 지도에 맞게 맞춤형 의학시대로 진화하는 의료서비스, 생화학 무기 개발의 가속화와 인류 최대의 위협이 될 바이오테러리즘의 확산 등을 담은 3부에서는 무엇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를 짚었다. 1만 9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정론직필 언론인 ‘송건호 평전’ 파란과 곡절의 이야기 오롯이

    ‘글 쓰는 사람은 절대로 기분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횡설수설을 해서는 안 된다. 그 글에는 논리가 일관되어 있어야 하고 전에 쓴 글과 다음에 쓴 글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런 소리를 하고 어떤 때는 또 저런 소리를 하는 식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은 사람의 인격 표현이라고 했다.’ 평생 정론직필을 추구하면서 참 언론인으로 살다 간 청암 송건호(1926~2001)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질타하고 진실한 글쓰기를 요구하고 실천했다. 청암이 언론인으로 활동한 30여년은 이승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시대와 온전히 겹쳐 있어 평생을 독재와 싸우느라 많은 수난을 당해야 했다. 30대 초반부터 논설위원으로서 역사와 정세의 맥을 관통하는 사설과 칼럼을 집필하면서 필명을 떨치고 신망을 쌓았다. 그래서 늘 독재정권의 포섭대상 1순위였고 그럴수록 청암은 “나는 분단조국에서는 관리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로 유혹을 물리쳤다. 충북 옥천 태생인 청암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75년 언론현장을 떠나 본격적인 현대사 탐구와 왕성한 필력으로 ‘민족지성의 탐구’ 등 주요 저서를 잇따라 저작했다. 그러던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고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에 선임돼 언론자유수호 투쟁의 선봉에 섰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언론독립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1993년 야인으로 돌아간 청암은 애장도서 1만 5000여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이러한 파란과 곡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은 ‘송건호 평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이 따끈따끈하게 최근 나왔다. 청암 작고 10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정론정신을 기리는 헌사이자 현직 언론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저자는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과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번 책은 저자의 한국근현대인물평전 14번째에 이른다. 2만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5)무주 삼공리 반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5)무주 삼공리 반송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 제 삶에 어울리는 격이 있다. 어떤 생명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고 크게 자라는 데에 제 격이 있고, 어떤 생명은 작아도 독특한 모양새에 제 멋이 들어 있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어울릴 때에 비로소 우리 사는 이곳이 진정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다. 온 생명의 어울림이 빚어내는 결과다. 나무도 그렇다. 잎이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꽃이 좋은 나무가 있고,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봄에는 꽃이 좋은 나무,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 가을 겨울이면 상록성나무의 초록 잎이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이 땅의 사철이 어느 때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근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반송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는 소나무도 그렇다. 소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소나무로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제가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육지의 소나무와 바닷가의 곰솔은 비슷한 소나무이지만 서로 다른 멋을 지닌다. 소나무의 한 종류로,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반송(盤松)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반송은 뿌리 부분에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진 줄기가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지며 자라는 특징을 가졌지만, 잎이나 열매를 포함한 모든 특징은 소나무와 같다. 반송은 크게 자라지 않고, 수형이 아름다워 조경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어 키운다. 대개의 반송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활짝 펼쳐지는 가지가 이뤄내는 생김새가 아름답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우리나라의 반송 가운데에 천연기념물 제291호인 무주 설천면 삼공리 반송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반송이라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는 게 반송의 특징이라고는 했지만, 이처럼 많은 가지로 갈라지면서도 반듯하게 자란 경우는 흔치 않다. 낮은 산기슭에 우뚝 선 이 나무는 150년 전에 이 마을에 사는 이주식이라는 사람이 옮겨 심었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가 350살쯤으로 여겨지는 것에 비춰 보면 200살쯤 됐을 때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다. 적잖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사실 큰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은 이식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고난도의 공사에 속한다. 150년 전이라면 기술과 장비가 흔치 않았을 때다. 심지어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나무가 있는 자리까지 큰 나무를 싣고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게다. 좁다란 산길은 지금의 중장비도 오르기에 매우 급한 비탈이기 때문이다. ●만지송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멋 “이주식이라는 어른의 후손이 우리 마을에 살아 계세요. 이종만이라는 분이지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나무를 옮겨 심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진 게 없어요. 마을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전해내려온 것이지요.” 나무 바로 옆에 조성한 가족 묘원을 둘러보러 나온 김철규(57)씨의 이야기다. 나무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의 첫 번째 집에 사는 김씨는 마을에 나무의 근본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이 나무가 이 자리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모두가 귀하게 여겨온 나무라고 덧붙인다. “가지가 많아서 구천송이라고도 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셈이에요. 워낙 잘생긴 데다 튼튼하기도 해서 별 걱정이 없었죠. 그런데 옛날에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어요. 큰 가지 위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으니 나뭇가지가 휘청거리면서 부러지겠더라고요. 그때 마을 어른들이 군에 이야기해서 쇠줄을 쳐서 가지를 보호했어요. 그게 한 삼십 년쯤 전입니다.” 삼공리 반송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건 아무래도 활짝 펼쳐진 가지와 가지 사이를 견고하게 잡아쥔 굵은 쇠줄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을 옥죄는 쇠창살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옆으로 펼쳐진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나뭇가지에 무게가 실리면서부터 바람이 세게 불거나 눈이 쌓이면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무주의 대표적 명승인 구천동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어서 삼공리 반송은 구천송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또 하늘로 펼쳐진 나뭇가지가 1만 개에 이른다고 해서 만지송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만지송은 모든 반송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지만, 만지송이라는 이름이 삼공리 반송만큼 잘 어울리는 나무도 없지 싶다. 순하게 그린 동그라미 모양으로 솟아오른 나무의 높이는 14m나 된다. 또 여러 개의 줄기로 나눠진 뿌리 근처의 둘레는 7m 가까이 된다. 크게 자라지 않는 반송의 특징에 비춰 봤을 때 이 정도면 매우 큰 나무에 속한다. 우리나라 반송 가운데에는 가장 큰 나무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나무 “이 자리는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곳이에요. 언덕 아래에서 바람이 웅크리고 힘을 모아서 한꺼번에 휘몰아치거든요. 심할 때에는 그냥 서 있기도 힘든 자리지요. 이런 자리에서 수백 년 동안 자랐다는 것만도 놀라운 일 아닌가요? 게다가 이만큼 건강하고 멋들어지게 자랐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지형지물이 전무한 까닭에 나무는 언제나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한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나무는 지난 350년 세월을 잘 버텨왔다. 이제 삼공리 반송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다고 김씨는 강조한다. 그러나 더 고마운 건,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부러질까 저어하며 지켜낸 삼공리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다. 바람 부는 언덕 위에 나무는 홀로 서 있지만 이제는 큰 사랑을 받는 나무가 됐다.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며 빚어낸 넉넉하고도 아름다운 결과다. 글 사진 무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31. 통영대전고속국도의 무주나들목으로 나가서 장수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7㎞ 남짓 가면 덕유산국립공원과 장수 방면으로 가는 길이 나눠지는 사산삼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덕유산국립공원 가는 길로 들어서서 14㎞쯤 가면 왼편으로 구천초등학교가 나온다. 1㎞쯤 더 가면 길가에서 삼공리 반송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왼편의 비좁은 마을 길로 들어서서 길 끝까지 오르면 나무가 있다. 나무 앞까지 자동차로 접근할 수는 있지만,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서, 초보운전자는 조심해야 한다.
  • [옴부즈맨 칼럼] 통계의 신뢰성과 효율성/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통계의 신뢰성과 효율성/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고용 대박’이란다. 수치만 보면 경제학적으로 ‘완전고용’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완전고용이라는데 주변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장관만 신이 나고 전국의 수만 구직자들은 분노했다. 20대가 겪는 취업난과 고용 현실에는 눈감은 채 입맛에 맞는 통계수치에만 눈 돌린 결과다. 이처럼 통계는 잘 쓰면 주장의 신뢰와 객관성을 담보하는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한다. 이번 경우야 장관의 말실수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때로는 엄청난 규모의 혈세가 낭비되는 사태를 빚기도 한다. 서울신문 15일 자 2면에 실린 용인 경전철 사례가 대표적이다. 엉터리 용역이 낳은 잘못된 통계는 국민 세금 2조 5000억원으로 실패학 교재에 들어갈 사례 하나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통계는 신뢰를 잃는다. 잃어버린 통계의 ‘신뢰’를 찾아주는 것도 신문의 역할 중 하나다. 정부기관과 이해집단이 자기 입장에 유리하도록 통계 결과를 아전인수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이러한 시도를 모두 방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독자를 통계의 덫으로부터 구하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계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석’은 단순히 제시된 자료에 대한 해석이 아닌, 통계와 함께 제시된 해석에 대한 2차 해석도 포함한다. 정부가 고용상황 개선에 대한 증거로 자료를 제시했다면 과연 그 자료가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적합한 것인지, 이번 일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는 아닌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통계의 신뢰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가 통계와 수치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통계의 숨은 의도에 휘둘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쇄매체의 특성상 신문은 자료에 나타난 수치를 지면에 상세하게 싣기도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기사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16일 자 6면의 ‘코스닥 상장사 3분기 순이익 급감’ 기사에서는 매출액 감소를 수치로 죽 나열했는데 읽기가 쉽지 않다.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내려가는 숫자를 읽고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뿐더러 일일이 다 읽지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래픽으로 나타내거나 한두 문장 정도로 의미를 요약한다면 기사의 주제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표를 제시할 때 해당 지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도 좋다. 21일 자 1면의 ‘엥겔계수’는 전체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쉽게 와 닿는다. 이번에 논란이 된 실업률은 고시생 같은 취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기준을 밝히면 그 맥락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수치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의도 면적의 몇 배’와 같은 표현이 있는데, 정확성은 둘째치고라도 독자가 머릿속으로 그 규모를 떠올려 볼 수 있기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치를 제시할 때 참신하고 구체적인 비유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통계자료의 신뢰성에 나름의 ‘등급’을 부여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검증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결과는 불분명한 누리꾼 조사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시행기관과 같은 공식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임의적인 통계 신뢰등급을 만들어 활용한다면 보다 간편하게 통계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 22일 자 신문을 펼쳐본다. 30개 가까운 지면에 10개가 넘는 통계와 그래프가 등장한다. 통계 및 수치자료를 자주 활용하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문 또한 인용된 자료에 일정부분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통계를 보도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료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여 기사에 힘을 더하는 양날의 검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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