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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술」에 당락이 판가름 났다던데(박갑천 칼럼)

    글쓰는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글이라고들 말한다.하기야 이 말은 어느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장사를 하는 사람도 그렇고 증권하는 사람,그림그리는 사람… 또한 그렇게 말할 것이다.처음에 쉬워보이는 일도 깊이를 더해 갈수록 자기철학에 빠져들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 할때 문혜군 앞에서 소를 잡은 백정의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그가 소를 잡는 동작은 무용이요,칼질함에 따라 나는 소리는 음악이었다.19년동안 몇천마리 소를 잡았건만 그의 칼은 방금 숫돌에 간것처럼 날카롭기만 했다.『정말 훌륭하구나.소잡는 재주가 여기에 미치다니』하고 문혜군은 탄성을 발한다(장자:양생주편).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러서도 소를 잡을 때마다 내심으로는 더더욱 어려움을 느꼈던것 아닐지. 『한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가지 말 밖에는 없다』­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와 모파상이 하는 이말은 글쓰기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극명하게 설명한다.그 「한가지 말」을 찾아내는 일은 바로피를 말리는 과정이다.동파 소식이 저 유명한 「적벽부」를 지었을때 마침 찾아간 한 친구가 짓는데 며칠이나 걸렸느냐고 묻는다.소동파 가로되 『며칠은 무슨 며칠.일필휘지 했지』.한데 그가 밖에 나간 사이 자리밑을 뒤져봤더니 고치고 고친 초고가 한삼태기쯤 쌓여있더라던가.과장된 얘기겠지만 그게 「한가지 말」을 찾기 위한 고뇌의 흔적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 문학사를 수놓는 이태준도 그의 「문장강화」(추교의 실제)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보여준다.『교문을 나선 제복의 두처녀,짧은 수병복밑에 쪽곧은 두다리의 각선미,참으로 씩씩하고 힘차 보인다.지금 마악 운동을 하다 돌아옴인지 이마에 땀을 씻는다.얼굴은 흥분하여 익은 능금빛 같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은 참으로 기쁘고 명랑해 보인다』.얼핏 흠잡을데 없어 보이는 이 예문을 내놓고서 그는 용어선택의 잘못에서부터 문장론에 이르기까지 세번 네번의 퇴고과정을 설득력있게 펼쳐 나간다.글쓰기 어려움을 절감하게 하는 글이다. OX 교육에 대한 성찰 끝에 대학입시에도 「논술」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올해 시험의 논제를 보자니 유럽쪽 나라의 칸트나 데카르트론을 본뜬 것인지 어려워 보인다.그걸 놓고 OX 사고방식에서 못풀려난 머리들이 쓸수록 어려워진다는 글을 쓴다.논술에서 당락이 판가름난 대학이 많았다는건 당연한 결과아닐는지.국어교육이 제길을 찾아야 한다.「잘쓰는 글」은 아니더라도 「바른글」쓸줄 아는 국민으로는 돼야겠다.
  • “한국의 통일 막을 사람 없다”/콜 총리/방한 이틀째 이모저모

    ◎김 대통령 “동독서 어떻게 서독TV 볼수 있었나”/청와대서 1시간20분 회담… 황 총리 예방… 만찬도 ▷정상회담◁ ○…김영삼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가진 1시간20분간의 한독정상회담에서 한반도및 국제정세와 양국간 경협방안등 우호협력문제에 대해 폭넓게 논의.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9시 콜총리가 청와대 본관에 도착하자 현관에서 맞아 『7년만에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오늘따라 날씨가 아주좋다』고 인사를 건넸으며 콜총리도 『정말 좋은 날씨』라고 화답. 두정상은 콜총리가 현관로비에 비치된 방명록에 서명한뒤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회담에 들어가기전 콜총리와 잠시 환담하면서 『86년 11월 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이후 7년만에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거듭 환영의 뜻을 표시. 김대통령은 독일의 통일과정에 관심을 표명,『동독국민들이 서독TV를 시청한 것이 독일통일에 큰 계기가 된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동독에서 서독TV를 시청할 수 있었는지를 좀 가르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전언. ▷독일경제인 접견◁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끝낸후 본관1층의 세종홀로 이동,콜총리를 수행한 독일경제인들을 접견.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우리 한국인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국민들의 근면성과 창의성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금번 방한이 양국간 경제협력등 활성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 콜총리는 경제인 접견행사가 끝난 상오11시15분쯤 청와대 본관 현관에서 김대통령의 전송을 받으며 황인성총리예방을 위해 정부종합청로 출발. ▷만찬◁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헬무트 콜 독일총리를 위해 베푼 만찬에서 『「역사는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독일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탁월한 지도력과 독일국민의 용기와 지혜에 경의를 표한다』고 인사. 김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독일을 가장 친근한 우방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으며 독일의 학문과 예술은 1세기전부터 우리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저 자신도 대학시절 독일철학을 공부했다』면서 『임마뉴엘 칸트의엄격한 자기규율정신은 오랜기간 야당지도자로서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나갈수 있던 극기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회고. 이에 콜총리는 양국과 민족을 이어주는 것은 분단의 운명뿐 아니라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한­독의 깊은 관계를 강조한뒤 독일의 통일경험 제공과 지원을 다짐. 콜총리는 이어 『양국 관계의 중점중 하나는 경제분야』라며 자연스레 경협문제로 화제를 옮기고는 『91년 서울에서 열린 「독일 하이텍박람회」는 Made in Germany가 특히 미래 지향적 기술분야에 있어서 품질과 성능이 뛰어남을 증명했다』는 말로 경부고속철도사업 참여 승인을 완곡히 요청. 하오7시부터 2시간동안 계속된 이날 만찬은 우리 정부의 간소화방침에 따라 초청인원이 종전의 3백명선에서 독일측 44명,한국측 48명,주한외교단 5명등 90명선으로 대폭 줄었고 복장도 평복으로 대체. ▷총리실방문◁ ○…콜독일총리는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황인성총리와 만나 약 30분동안 양국간 경협방안과 한반도통일문제등을 주제로 환담. 황총리는 이자리에서 『우리나라와 독일간의 교역량은 유럽지역에서는 제1위이고 전세계에서도 4위』라며 『앞으로 한독 양국이 정치·문화적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특히 경제협력과 무역분야에서 상호보완과 균형을 유지하며 더욱 증진되길 바란다』고 피력. 콜총리는 『일부 정치인들이 독일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이 불과 5년전이며 그로미코 구소련외무장관도 독일분단을 「역사의 심판」이라고 까지 말했지만 결국 통일이 됐다』며 『한국의 통일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휴전선 이북에 있는 노인(김일성을 지칭한 듯)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
  • 무엇이 시고 무엇이 비냐(박갑천칼럼)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사람들이 곧잘 악처의 대명사로서 입에 올리는 이름이다.많이 알려져 있는 일화 하나.­어느날 소크라테스가 제자 한 사람과 귀가한다.아내에게는 말 한마디없이 방에 들어가 제자와의 대화에만 열중하는 남편.아내는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다가 찬물 한통을 떠들고 가서 머리로부터 들이붓는다.「어리석은 잠」에서 깨어나라는 뜻으로.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이 철학자 왈 『아까부터 천둥 번개가 친다 싶더니 역시 소나기가 오는군』 이럴 수 있었던 크산티페는 물론 대가 세고 사나운 여자였음에 틀림이 없다.하지만 그만을 일방적으로 악처라면서 몰아세워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대목.이들 부부관계에 대해서는 훌륭했던 철학자를 보다 더 철학자답게 부각시키기 위한 후학들의 과장도 없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들 부부 관계를 크산티페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무능한 남편일 수가 없다.그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은 비싼 수업료를 받고 학생들을 그러모으거나 정부의 고관이 되어 호의호식한다.그렇건만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면서 생활비쪽에 무관심이다.그것도 화가 나는 터에 같잖은 고담준론 나눈답시고 까딱하면 제자들이나 끌고 들어오니 어디 참고 견딜 일인가.이렇다 할 때 크산티페가 악처라기보다 소크라테스 쪽이 「악부」였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하나의 사상을 두고도 어느 쪽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그래서 세상살이는 시끄럽다.모두 자기만 옳다고 할 수 있게 돼있기 때문이다.기왕 소크라테스 얘기를 끄집어 냈으니 말이지만,억지 죄목을 쓴채 「법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독배를 든 그에 대한 견해도 둘로 나뉜다.그 의연한 태도에 대해 칸트는 「이성의 권화」라면서 극찬하는데 비해 니체는 「인간의 본능을 깔아뭉갠 괴물」이라면서 타매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녀가 애를 밴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많은 사람이 좋잖게 생각한다.하지만 처녀로서는 할 말이 있다.살인을 한 사람의 경우 또한 같다.그러기에 도척같은 악한이 공자같은 성인에게 「사기꾼」이라 대갈하면서 일장 설교를 하는 것(장자:도척편)이 세상사.그래서인가.사회적으로 이미 장사 치러진 듯한 사람들이 시일이 지남에 따라 고개를 빳빳이 곧추세운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지난날에도 수없이 보았던 것인데 근자에도 본다.여간만 착잡해지는 마음이 아니다. 진정 무엇이 시고 무엇이 비라는 말인가.과연 시와 비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그것이 엇갈리고 섞갈려서 더욱더 시끄러워지는 세상이다.
  • 역경 딛고 민주화·개혁기수 40년

    ◎「거산」의 정치역정… 집권당총재가 되기까지/25세에 국회입문… 9선에 야총재 4번 역임/한때 연금 등 핍박… “구국일념” 3당통합 결행/대학땐 학생운동 몰두… 「6·25」 나자 의용대 지원도 「정치 거산」김영삼총재는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제1인자이다.신장 1백68㎝,체중 66㎏,아담한 체구,미소띤 동안의 그는 어떤 역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섰는가.65년동안 살아오면서 40년간을 민주화투쟁과 정치개혁의 일선에서 기수역할을 해온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9선의원에 야당총재를 4차례나 역임하고 다시 집권당총재로 선출된 그의 진기한 기록은 앞으로 찾기어려울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로 꼽힌다.그의 연륜과 불굴의 정치역정을 조감해보면 그가 왜 오늘 이자리에 섰으며 또한 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유복한 어린시절 ▷출생◁ 김총재는 1927년12월20일(음력)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씨(82·마산거주)는 당시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씨(60년작고)는 대가집며느리답게 손도 컸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령김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총재는 여동생만 다섯을 둔 외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김총재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정치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된것으로 보인다.어머니 박씨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김총재식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영·축구에 소질 ▷성장◁ 아호가 거산인 김총재는 거제 장목소학교를 거쳐 통영중학교에 진학하고 45년해방과 함께 부산에 있던 경남중학교(6년제)3학년에 편입했다.43년4월에 입학한 통영중학시절 김총재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수영과 씨름을 잘하는 학생으로 동창생들에게 기억되고있다.김총재가 당시 한국인학생들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일은 아직도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44년 전근하는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곡물자루에 구멍을 내고 잡동사니를 채워넣은 사건으로 영삼학생은 통영경찰서 고등계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해방이 되던해 11월 영삼군은 경남중으로 전학했다.학업성적은 중상정도였으며 문학과 역사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정치학수업 열심 ▷대학시절◁ 김총재는 47년9월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김총재가 철학과를 지망하게 된것은 당시 모교인 경남중 안용백교장의 영향이 컸던것으로 알려져있다.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인 안교장이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통해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김총재의 학과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철학과 동기생은 김총재와 이한조씨(서강대 명예교수)등 모두 7명.그들은 김총재가 대학시절 철학과수업보다는 웅변부에 가입하는등 학생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기억한다.당시 정치학과에 다녔던 이규원씨(현대문예사대표)는 영삼학생이 정치학과 수업에 열심히 나왔고 웅변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니던 손도심씨(작고·전서울신문사장)와 「순학회」라는 우익단체를 만들어 낭산 김준연,창랑 장택상씨등을 초빙해 강연회도 갖는 등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김총재는 51년5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 졸업논문제목은 「칸트에 관한 소고」였다. ▷군대시절◁ 김총재는 전쟁이 한창이던 50년10월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감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군번은 E135」.그러나 전투병으로 전쟁에 참가한것이 아니라 후방 정훈교육요원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대북방송담당으로 일했다.김총재는 이시절을 매일 1시간동안 직접 원고를 써서 군가를 섞어가며 대북방송을 했는데 날마다 다른말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북방송을 맡은지 8개월쯤 지난후 김총재는 당시 장택상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군생활도 마감했다.김총재는 80년봄과 87년 대선에서 군복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김총재의 복무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김상구씨(유도회총본부회장)등 학도의용대관계자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거제서 최연소 당선 ▷정치입문◁ 창랑 장택상과의 만남은 일찌감치 정치에의 꿈을 키워오던 김총재에게 현실정치입문의 계기가 됐다.서울대2학년때 정부수립기념 웅변대회에서창랑과 인연을 맺은 김총재는 50년 5월 경북 칠곡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창랑의 지원유세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몸에 익혔다.이후 51년 학도의용대 복무중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장택상씨가 총리가 되면서 인사담당비서관도 지냈다.53년 창랑이 총리직을 사임하자 김총재는 다음해 5월 실시될 3대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왔다.무소속출마를 준비중이던 김영삼은 선거 열흘전 유력한 무소속후보를 찾던 자유당의 눈에 띄어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첫 선거결과 김영삼후보는 총2만7백70표를 얻어 차점자인 1만4천1백10표의 서순영씨(작고)를 누르고 만25년6개월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사사오입에 반대 ▷야당시절◁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탈당한 김영삼청년의원은 당시 야당인 민국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가입함으로써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30여년 야당인이 된다.55년9월 민주당이 창당되자 김영삼은 중앙당청년부장겸 경남도당부위원장을 맡았다.당내에서는 선이 굵은 조병옥박사의 계보인 구파로 분류됐다.김총재는 이때 56년·60년 2차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조박사를 쫓아 다니며 승부사의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한다.3대의원시절 김영삼의원은 대구매일피습사건·김창용특무대장암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뛰어난 활약을 했다.58년 4대총선에서 민주당후보였던 김영삼은 부산서갑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당시 선거는 자유당말기로 선거부정의 공방이 치열했으며 김영삼후보는 선거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진행도중 4·19를 맞게된다. 4·19이후 5대 7·29총선에서 부산서갑에 다시 출마해 차점자를 무려 3배이상 표차로 제치고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김총재는 정치규제에 묶였던 11,12대를 제외하고 내리 9선에 달하는 헌정사상 최고다선을 기록했다. 김영삼의원의 활약은 5·16이후 구성된 6대국회부터 두드러졌다.김영삼의원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한일협정서명,공화당창당과 관련한 4대의혹사건,월남파병문제등 굵직굵직한 정치쟁점에 능숙히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대선 낙선,좌절도 74년과 79년 신민당총재에 두차례 선출됐고 87년 통일민주당 총재와 13대 대통령후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야당의 정상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기간중 두차례 2년간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총재직정지가처분및 의원직제명,정치활동규제등 핍박은 그를 불굴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선거에 낙선하고 이후 88년 4월총선에서는 제2야당으로 전락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다. ▷3당통합◁ 김총재는 90년 1월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당시 노태우민정당총재·김종필공화당총재와 3당통합을 결행,오늘날에 이르렀다. 89년 당시 민주당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해 미수교국과의 초당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90년 3당합당후 민자당대표로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하는등 정당외교사의 새지평을 열었다. 민자당출범후 2년반여동안 계파간 갈등속에서도 꾸준히 여권2인자의 자리를 지켜 드디어 대통령후보경선을 치렀고 총재에 선출됐다. ▷가족관계·사생활◁ 김총재는 51년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혜영(39·연대 도서관학과졸)·혜경(37·이대 음대졸)·은철(36·한대 열공학과졸)·현철(33·고대 사학과졸)·혜숙씨(31·이대 음대대학원졸)등 2남3녀를 두고 있다. 25년째 상도동 인근 산에 올라 4㎞씩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술은 마주앙 1∼2잔 정도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과거 양주2병에 하루 서너갑씩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나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과감히 끊어버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현재 충현교회 장로이다. 좌우명은 「대도무문」으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붓글씨를 써넣어 구운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 그 놀랍고 뜨거운 권역 순방르포(팽창하는 이슬람:1)

    ◎프롤로그/“제2부흥기” 중앙아에 재응집 바람/탈이념 물결·소몰락으로 압제 벗어나/아제르공등 6개국 회교세력 “뭉치자”/「무주공산」 연고권 노려 이란·터키 외교전 중앙아시아에 거센 이슬람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새로 탄생한 구소련내 회교공화국들은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 연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란·터키등 강국들은 소련의 퇴장으로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에서 맹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과거의 연고권을 내세우며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서방에선 소련의 몰락이 가져온 일시적 「이념의 진공상태」가 이란식의 반서방 회교원리주의나 범터키 회교주의로 메워질 경우 소위 냉전후의 신세계질서는 예측불허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진단 이 대두되고 있다.본사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이 이란·터키와 구소련 중앙아 공화국들을 찾아 이슬람바람의 실체와 함께 변화하는 사회상들을 취재,시리즈로 보도한다. ○회교사원 수리 한창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세력들이 다시 「사라센의 칼」을 뽑아들고 있다. 예언자마호메트의 깃발아래 새로운 종교 이슬람교가 아라비아사막에 출현한 것은 서기 7세기초.그로부터 1천4백여년만에 당시 주변 3개 대륙으로 마치 「천지개벽하듯」뻗어나가던 바로 그 기세로 코란경전의 봉독소리가 이 일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기세의 파장은 북아프리카 해안의 모로코에서부터 중앙아 초원지대를 이미 지나고 있다.아프가니스탄에는 13년만에 다시 이슬람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군사쿠데타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알제리인들은 지난 1월총선을 통해 이미 회교국 수립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했다. 이슬람「제2부흥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지각변동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이념대립체제의 붕괴와 소련방의 해체.지난 70년동안 공산 소련의 굴레에 묶여 겉으론 무신론자로 살아야했던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등 6개 신생독립국들의 회교도들이 남쪽 카스피해 너머의 이슬람형제들을 찾아나서면서 부터이다.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신생 5개국 5천 7백만 주민은 인종적으로는투르크계이며 7백년전 아시아대륙을 휩쓴 몽골인들의 후예로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르크계언어를 쓰고 있다.타지크인들은 이란인이 쓰는 파르시어를 쓴다.앙카라의 한 외교관은 『중앙아시아주민 대부분이 터키에 와서 2주일만 배우면 터키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한지 불과 반년이 채 안된 지금 알마아타·타슈켄트·사마르칸트·듀산베등 중앙아 각 도시들에서는 폐허가 된 모스크(회교사원) 수리공사가 한창이고 각급학교는 회교교리를 배우는 학생들로 초만원이다. ○미등 서방에 적대적 다시찾은 이들 이슬람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역할을 맡은 선두주자는 바로 원리주의 회교를 표방하는 이란과 세속주의 회교를 앞세운 터키 두나라이다. 전세계는 이 지각변동의 파장을 우려와 의혹의 눈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서방의 몇몇 미래학자들은 소련제국의 멸망과 함께 앞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이 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서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지자세계를 지배할 유일한 이념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였다.그런데 테헤란의 한 서방외교관의 말처럼 『서방인들의 눈에 테러·보복·혁명수출이나 일삼고 시대착오적인 신정일치를 고수하는 이슬람원리주의가 기세를 더하고 있으니』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서방국 중에서도 특히 이슬람의 부흥에 우려를 가진 나라는 바로 미국.미국의 우려는 바로 이슬람이 갖고있는 반미·반서방 목소리와 기질에 기인한다.이슬람이 「성전」을 외치며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지난 1979년 호메이니옹의 주도로 이룩된 이란혁명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이란혁명의 주된 구호중 하나가 바로 「대악마」로 지칭된 미국과 서방에 대한 원색적인 적대감이었다.테헤란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변이나 테헤란시내 관광호텔 로비에는 지금도 「미국을 타도하자」는 대형 플레카드들이 내걸려 있다.이란혁명 직후 과격학생들에 의해 4백44일간 점거당했던 과거 테헤란주재 미국대사관 담벼락에는 「미국에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자」「미국이추구하는 힘은 정글의 법칙」등의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미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증오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테헤란의 한 언론인은 『이슬람이 서방에 비판적인 것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불만때문이다.서방제국주의는 이슬람의 전통을 왜곡시키려 했고 이슬람이 열등한 문화라는 인식을 전파시켰다.그들은 이슬람세계에 억압적인 세속정권을 수립했으며 이스라엘 건국을 통해 긴장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서방국뿐아니라 이집트·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 등 억압적인 민족주의와 왕정을 고수하고 있는 「온건」아랍국들도 코란·종교전통에 바탕둔 회교 원리주의 정치적 바람에 놀라고 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 파벌들은 새 국가를 이끌 법률토대를 회교율법 「사리아」에 두기로 합의했다.중앙아 구소련 신생독립국의 회교원리주의자들 또한 아프간의 뒤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다.중앙아 지역서 회교부활을 위해 싸우는 타지키스탄 이슬람 복원회의 한 간부는 『우리사회의 모델은 예언자 모하메트가 제시했던 교리이며 모든 것은 알라신이 지시한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탈선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접경지역 영향 중국도 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3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슬람교도가 태반인 서부 신강자치주등에 이슬람 원리주의·민족주의의 여파가 미칠까 걱정이다. 이란·터키 정부관리들은 하나같이 중앙아 회교형제국들과의 관계개선은 오로지『형제국끼리의 우애와 경제적 도움을 나누기 위한 것일뿐이지 결코 외국인의 목을 자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며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테헤란의 한 몰라(종교지도자)의 말처럼『이슬람은 기독교 못지않게 평등·사랑등 보편적 가치를 신봉하며 증오·보복을 일삼는다는 것은 서방,특히 미국이 퍼뜨린 편견』일지도 모른다. 중앙아 일대에서 일기 시작한 이슬람 바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그리고 이 바람의 여파는 과연 우려할만한 것인가.
  • 우즈베크공 한인2세 빅토르 첸 장관(인터뷰)

    ◎“투자 원하는 한국기업 적극 지원”/아버지때 극동서 이주… 89년말 입각/목화가공·섬유산업 대한합작 유력 『아버지의 나라를 직접 보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을 수행하고 방한한 빅토르 첸 우즈베크공화국 지방산업성장관(47)은 18일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즈베크는 농업생산이 풍부하고 석유·금 등 천연자원이 많아 한국기업들의 합작사업 파트너로 매우 적합하다』면서 『투자를 원하는 한국기업들의 정보수집및 시장조사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첸장관은 지난 37년 구소련의 소수민족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극동에서 건너간 아버지 아나톨리 니콜라이비치 첸씨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 2세.아버지의 성이 「전」인 것 같다고. 45년 우즈베크에서 출생,중학교를 졸업한뒤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68년 사마르칸트대를 졸업했다.전공은 기계공학으로 기계제작공장과 냉장고공장 등에서 일하며 학업을 계속,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년6개월전 우즈베크내 3백50개 기업을 관장하며 합작사업등 대외관계도 담당하는 지방산업성장관에 임명됐다. 첸장관은 『우즈베크에는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전혀 없다』면서 『우리 동포 20만명 가운데 37%가 고등교육을 마칠 만큼 높은 교육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학자,기업지도자,정부관리 등으로 각계에서 활약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첸장관은 『우즈베크는 현재 유럽및 중국과 2백50건 이상의 합작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목화가공,섬유,석유산업등이 유망한 합작분야』라고 귀띔했다. 첸장관은 이어 『한국기업들과의 상담결과 삼성과 대우가 우즈베크와의 합작투자에 제일 먼저 참여할 것 같다』고 전망하고 『이들 기업들은 목화가공및 TV,라디오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첸장관은 『한국의 성공적 경제성장을 직접 눈으로 배우게 된 것이 방한의 가장 큰 성과』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고 『노대통령등 한국지도자들이 우즈베크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하기 위해 16일 내한하는 우즈베크공화국의 이슬람 카리모프대통령은 공산당 제1서기 출신으로서 권력기반도 과거 공산당세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그는 전임자들에 비해 개방적이기는 하나 매우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전문가들은 현재의 우즈베크 정치체제를 가리켜 스탈린주의와 호메이니주의를 결합한 형태라고 말한다.한때 미국은 우즈베크의 정치체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수교를 거부했다가 지난2월 카리모프대통령으로부터 민주화 약속을 받고서야 수교와 공관개설에 응했다.◆우즈베크라는 용어가 민주명으로 최초로 사료에 등장한 것은 14세기 후반이다.그러나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켄트와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는 실크 로드의 중심지로서 옛날부터 우리 귀에 익은 곳이다.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지배권에 들어간후 세계적인 면화 산지가 된 우즈베크는 지금도 구소련 전체의 60%를 상회하는 면화를 생산하고 있다.우즈베크엔 매장량이 세계 10위내로 추정되는 석유를 비롯,석탄·금등 각종 천연자원이 풍부하다.이같은 자원에 한국의 개발 경험을 접목시켜 경제발전의 불을 댕겨보겠다는 것이 취임1년도 안된 카리모프대통령이 독립국연합 11개국 지도자 가운데 최초로 한국을 찾게된 이유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구소련내 한인 최다거주 지역인 우즈베크엔 현재 약 2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이들은 지난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분산정책에 따라 극동지역으로부터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의 후예로서,다른 민족들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말을 거의 잊은채 우리문화와 풍습의 일부만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정부는 이들의 민족교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5월 타슈켄트에 한국교육원을 설립했다.이젠 우즈베크에 상주 공관을 서둘러 개설하고 적극적인 경제협력정책과 교민보호시책을 펴나갈 때가 아닌가 싶다.
  • “침은 기흐름 균형맞추는 과학”

    ◎전고대교수 김용옥씨,연대서 이색강연/한의학은 만병근원 복부에 있다고 인식/체질에 따라 치료… 양의학보다 과학적/6년만에 강단에… 동서양의학 균형·조화 역설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려온 철학자 도올 김용옥씨(44·전고려대철학과교수)가 한의대생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수업한 한의학에 기초한 「한의학의 과학화」를 조명하는 특강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지난6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문화인류학 특강」으로 열린 「침은 과학이 될수 있는 가」란 강의에는 정치인·일반인·학생들이 1·2층을 가득메워 그의 한의학에 대한 특유의 접근방식·독설·기인적 행태 등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입증했다. 현재 원광대 한의대본과 1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특강 교재인 「신한국기」의 저자 자격으로 출강한 이날 강의에서 현시점의 역사적 국면을 이해하는 방법,한의학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침의 성립배경및 발전양태 등을 특유의 접근법으로 풀어나갔다. 그는 현재의 역사적 국면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두축이 만나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으로 규정했다.먼저 동양권에서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와 인도의 불교문화가 합해져 위진남북조를 거쳐 당제국의 문예부흥기로 이어지다가 송·명대에 새로운 공자적 유교관인 주자학관과 양명학관으로 갈라져 현대문화를 형성해 현재에 도달했다.서양권에서는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과 기독교문화의 헤브라이즘이 합해져 중세(이때를 암흑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잉태기로 봄)를 거쳐 문예부흥기(아랍문명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고 봄)로 이어져 경험을 중시하는 엠피리시즘과 이성중심의 레이셔니즘으로 분리됐다가 칸트가 체계화한 현대문화양식으로 발전해와 오늘날에 이르렀으므로 동시대인인 우리들의 과제는 동서양 보편자의 만남을 변증법적 통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인연을 맺은 사연도 독특하다.아버지가 세브란스의전출신의 의사로 어릴때부터 기독교의 정서와 근대적 정신속에 푹빠져 자라난 김씨는 지난 68년 관절염에 걸려 학교를 중단하기까지하는 방황을 하던중 권도원선생을 만나 침을 맞으면서 기의 운행을 체험하게 돼 한의학에 대한 인류의 보편성을 경험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이 서로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이론적 체계)속에 이뤄진 산물이므로 달라야 한다는 그는 서양의학은 느낄 수 있는 오관을 통해 얻어지는 단지 계측된 사실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의 과학적 측면을 재단할 수 없다면서 한의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체계·인식언어로 이해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예컨대 간과 Liver는 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동일한 대상은 될수 있지만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인데 동일시함으로써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한의학을 과학화 할수 없는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한다. 한의학이 만병의 근원은 복부에 있다는 인식체계의 언어라면 서양의학의 경우는 중추신경이 있는 뇌중심 인식체계의 언어에 기인한다면서 모든 사람의 체질을 같은 것으로 인식,보편화된 치료법을 쓰는 서양의학보다는 인간의 체질은 다르므로 체질에 맞게 치료법을 적용하는 한의학이 더욱 과학화된 의학이라고 강조한다.그 대표적인 예가 인간의 체질을 희노애락과 연계해 설명하는 총체적 의학결정품인 이재마의 「사상의학」. 우리 몸속에는 팔과 다리에 오수혈(흔히 오행이라 함)의 일정한 기의 흐름이 있는데 침은 강한 부분은 약하게,약한 부분은 강하게 해 오행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라는 그는 이 균형을 맞추는 것,즉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하는 것이 바로 치료의 요체라면서 서양의학을 유선체계로 보면 한의학은 팩시밀리와 같은 무선체계라고 밝힌다.따라서 침을 과학화하는 것은 어떤 부위에 얼마나 정확하게 반복하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서양의학은 인체를 검사하는 기술이 굉장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검사하는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꼭 치료를 해야 한다는것이므로 이러한 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이란 몸전체 기의 매커니즘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것이므로 질병이 아니라는 그는 기는 하나의 언어이므로 무한하게 공부할수 있으며,색다른 과학화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 엔진결함 수출용 보트 내수둔갑/현대정공

    ◎미서 인수거부한 호화선 헐값 판매/매입 레저업체들,회원모집 불법영업/대형해상참가 유발 위험/부산수영항 【부산=이기철기자】 현대그룹계열의 (주)현대정공이 수출용으로 제작했던 수억원대의 호화모터보트를 선체결함으로 수출이 불가능해지자 국내 해양레저업체에 헐값으로 팔아넘긴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있다. 특히 (주)현대정공으로부터 불량모터보트를 인수한 해양레저업체들중에는 선체에 결함이 있는데도 거액을 받고 회원들을 모집,버젓이 불법회원제 영업을 하고있어 선체결함에 따른 안전사고의 위험마저 뒤따르고 있다. 문제의 배는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내 입주업체인 (주)환타피아(대표 권태인),(주)동방주택(대표 이명복),(주)부산요트(대표 임득만)등 레저업체들이 현대정공으로부터 구입해 보유하고 있는 19·5t급 「소나타 5300형」으로 당초 수출용으로 제작됐었다. 13일 이들 레저업체들에 따르면 (주)현대정공은 이 모터보트가 계약서상 최고 속력이 18노트인데도 실제로는 7∼8노트 밖에 속력을 내지못하는등 엔진부분 결함으로외국의 수입계약사로부터 인수를 거부당해 수출길이 막히자 내수용으로 헐값에 판매했으며 판매후에도 부속품공급은 물론 사후 서비스도 제대로 해주지않아 배 운영에 애로를 겪고있다고 밝혔다.소나타 5300은 지난 87년 (주)현대정공측이 미국 엘레칸트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미디트로이터 엔진을 장착해 수출용으로 제작했으나 엘레칸트사에서 엔진결함등을 이유로 클래임을 걸어 판로가 막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현대정공은 이에따라 대당 4억원대인 이배를 지난 89년 (주)환타피아에 대당 2억3천만원씩에 2척을 판매했으며 (주)동방주택에는 시험항해후 10여척의 배를 추가로 판매키로하고 1척을 역시 헐값에 팔아넘겼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주)부산요트에 1대를 추가로 판매한데 이어 지난해 8월 (주)환타피아가 엔진시동이 잘 걸리지않는 결함과 서비스불량을 이유로 (주)현대정공에 반납한 배를 (주)해동마리나에 다시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수영만 요트경기장에다 불량보트 1척을 견본용으로 계류시켜 놓고있다. (주)현대정공으로부터불량보트를 사들인 레저업체중 일부업체는 이 배들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대기시켜놓고 선체결함을 숨긴채 1인당 6백만∼1천만원까지의 가입비를 받고 1척당 20여명의 회원들을 모집,영업행위를 하고있어 선체결함에 따른 안전사고의 위험이 항상 뒤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대해 (주)현대정공측은 『「소나타 5300」의 모델이 구형으로 외국판매상이 구입을 기피해 내수용으로 판매했을뿐 선체에는 결함이 없다』며 『수출용을 내수용으로 돌린점도 관세와 특소세등을 전액 물었기 때문에 법적하자는 없다』고 주장했다.
  • 본사 송정숙 논설위원 타슈켄트 기행:하

    ◎한인촌의 「국시집」은 소인에 더 인기/도심외곽서 황해도식 「개탕집」도 성업/교민들,경어없는 옛 함경도말투 사용 타슈켄트에는 요즈음 새로 한국 음식점이 생겼다.「삼양」이라는 상호를 가진 집이다.전속 밴드도 있어서 서울서 유행하는 최근의 가요를 부르고 떠듬떠듬이나마 우리말을 하는 웨이터 웨이트리스들도 있다. 식당주인인 양사장은 40대의 의욕적인 한인 2세다.물론 서울을 다녀온 적도 있다.그는 성업중인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지만 건설업도 하고 있다.연립주택형식의 집을 지어서 분양하는 형식의 건설업이다.인민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국가가 대지를 빌려주고,집을 지어 세를 놓기도 하고 팔기도 하게 허락한 사업이다.물정에 밝고 두뇌회전이 빠른 한국인들은 이런 종류의 모험기업에 도전하는 용기가 다른 민족보다 강한 것이다. 나른하게 늘어진채 급하게 서두르는 법도 없고,열심히 매달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우즈베크민족이나 주변민족에 비하면 날쌘 몸가짐으로 이리닫고 저리 닫고 하는 「양사장」의 모습은 특별해 보였다. 한국손님들 테이블을 일일이 돌아보며 『많이 먹소,일없소,나 서울 또 가지…』 성의껏 인사를 하느라고 애쓰는 모습이 여러모로 젊은 사업가적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그러나 그는 경어를 쓰지는 못했다.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쓰는 말은 1900년대 초기의 함경도말이 타임캡슐에 보관되었다 나온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루블을 세면서도 우리말로 표현할 때 그들은 「냥」이라고 한다.「두냥 반」 「이백냥」…따위로 표현한다.그들의 말을 지금의 우리가 알아듣기는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 비하면 60년대 중반에 북한을 탈출한 몇몇 동포인사들의 말투는 「서울말」과 거의 같고 서로 나누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얼마전 재미작가 한분이 중앙아시아의 동포를 찾아 철도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동포소식을 전해준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었다.그때 그 작가가 한인동포를 상대로 자꾸만 반말을 쓰고 있다고 못마땅해 한 시청자들도 있었다.타슈켄트 동포들의 반동강 한국말을 들으면서 그 작가가 경어를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나「습니다」라는 경어 어미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쪽만 경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런 말을 그들은 알아듣기 불편해하고 번거로워하는 것 같았다. 음식점 「삼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묵이었다.고사리나물과 함께 도토리묵이나 청포묵이 양념간장에 무쳐져서 번번이 상에 오른다.강제 이주하여 그곳에 던져졌을때 첫겨울을 나고 맞은 봄을,그들은 산나물과 미나리나물같은 것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타슈켄트의 한인 음식중에 또 유명한 것에는 「개탕」(보신탕)이 있다.「고려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 요즈음은 소련사람들도 좋아해서 그쪽 고객이 더 많다고 했다. 소련에서 한인출신으로 유일한 전쟁영웅이 있다.알렉산드르 민이다.카자흐공화국 출신인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타슈켄트에는 있다.도심을 약간 벗어난 거리다.이곳은 고려인촌이기도 하다.「개탕집」은 그곳에 모여 있다.간판도 없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나라에다 돈을 내고 한다.「세금」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은채 의무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한그릇에5루블 받는 「개탕」과 한탕기에 6루블하는 수육을 팔고 있었다.하루에 5∼10마리분을 판다는 집에 들러 보았다.일행중 한분이 타슈켄트에 도착한후 「김치사발면」만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었는데,별로 기대를 하지않고 찾아가서 주문해본 「개탕」을 그분은 아주 포식했다.그분 입맛에 의하면 그 「개탕」은 그분이 옛날 자신의 고향에서 먹던 바로 그맛이었다고 했다.그분의 옛고향은 황해도다. 소련사람들에게 훨씬 인기가 있다는 「국시집」도 있었다.이를테면 냉면집이었다.국수는 메밀이 아니라 호밀 밀가루로 만든 듯 했다.그것과 작은 만두를 만들어 파는 그집도 한인 아주머니가 하고 있었다.동류바라는 이름의 이 아주머니는 본디 국영 음식점이었던 이 점포를 「시험삼아」인수 받았다.국수 한그릇은 3「냥」(루블)이고 만두는 2개에 1「냥」이다.맛있다고 사람들이 많이 먹으러 오는 것에 신이 나 있는데 4만「냥」만 내고 이집의 경영권을 아주 인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공화국정부는 아직 아무런 언질을 안준다고 한다.국영으로 「조선 음식집」을 했던 자리인데 그때에는 영업이 안돼서 폐쇄했어야 했던 집이다. 모든 국영상점은 장사를 제대로 못하지만 민간이 맡으면,특히 한국인이 맡으면 영업이 된다는 것을 정부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인의 이런 활력에 우즈베크공화국도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운 때문인지 타슈켄트나 사마르칸트같은 도시에서는 「한국어 배우기」가 열성적으로 진행중이다.이 일을 전폭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것은 한국측에서 간 종교세력이다.개신교계의 교파가 「적어도 수십개」는 들어가 있고 천주교·불교도 선교의 발판을 마련해놓고 있다. 소련을 「우리조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심이 없는 청소년들이 「서울」이라는 멀고 동경스런 조상의 땅을 생각하며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있다.이 황량한 대륙에서 한번도 「주인」으로서의 당당함을 누려보지는 못했을 그들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조상나라」가 허망한 신기루처럼 혼란을 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것이 지금 우리 서로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았다.
  • 타슈켄트 한인들의「위대한 삶」(본사 송정숙 논설위원 현지탐방:상)

    ◎사막에 일군 「콜호즈」는 타민족의 귀감/만나는 동포마다 “서울 한번 가보고 싶소”/「황성옛터」 부를땐 백발노인 몸떨며 통곡 『나의 조국,대한민국을 사랑하리.영원토록 사랑하리…』 4천석의 좌석은 물론,입석까지 그득히 메운 「레닌인민궁전」극장에서 한국의 가수 태진아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기쁨에 차서 목청껏 불렀다.이틀 연속 공연으로 연인원 1만명이 동원된 관객들은 노래마다 박수로 장단을 맞췄고 무대마다 긴 갈채로 화답을 보냈다. MBC가 기획한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를 찾아서」의 타슈켄트공연.레닌동상이 광장마다 서있고 사회주의식 구호가 붉은글씨로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 멀고먼 중앙아시아땅에서 우리의 가수 코미디언들의 공연이 이토록 성황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웃기기 잘하는 가수 김상국씨가 「황성옛터」를 부르던 마이크를 들이댔을때 객석에 앉아있던 성이 「짐가」라는 백발의 노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통곡을 했다.쉽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을 것처럼 앉아있던 이 「고려사람」은 「원동」으로부터 그 악몽의 「강제이주」를 당해온 당세대의 한인이다.이곳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모두가 그때의 당사자거나 그 2세거나 3세였다. 타슈켄트는 소연방 15개 공화국중의 하나인 우즈베크 공화국의 수도다.이 공화국에만 「고려사람」 20만명이 산다.수도 타슈켄트시에만도 5만명이 살고 있다.그들은 애당초 「유랑하는 가축」처럼 살길을 찾아 모국땅을 떠나온 한인들이었다.1900년대 초기부터 부지런하고 쌀농사 재능이 뛰어났던 그들은 혁명러시아의 토지법에 의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많은 악조건을 물리치고 성공적인 정착을 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7년 9월,그들은 아직도 확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스탈린의 음모에 의해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농사도 몽땅 버리고 다시 「가축」같은 신세가 되어 화차에 실린채 맨몸으로 서른날씩 마흔날씩 걸려 이곳 중앙아시아로 실려와 염분섞인 땅,갈대만 우거진 늪지대에 던져졌었다.지금의 중앙아시아에 사는 35만명은 그들과 그 자손들이다. 「치모페이」「웬체슬로바」「와렌티나」「보리스코프」…소련식 이름을 단 그들 「카레이스키」(한국인)2,3세들은 토굴을 짓고 산 할아버지 이야기,고사리와 미나리죽으로 봄기근을 이겨준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가슴속에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앙아시아의 한국인들은 숱하게 많은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한결같이 잘살고 있다.타슈켄트에서도 사마르칸트에서도 알마아타 푸른제에서도 영특하고 지혜롭게 잘살고 웬만한 집에서는 다 아들 딸 모두들 대핵고(대학교)까지 필업(졸업)시켰고 도시의 직장에 진출시켰다. 이유없이 「적성민주」의 딱지를 붙여 공민권을 빼앗고 이주의 자유도 여행의 자유도,친척끼리 모여 사는 일도 허락받지 못했던 시기에도 그들은 사막땅을 일궈 쌀농사를 짓고 목화를 심어 혁명러시아가 산업화해가는데 원자재를 대고 전쟁중에는 인민의 식량을 보탰다.1%도 안되는 소수민족의 신분으로 이만큼 공헌한 사람들은 카레이스키(고려인)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타슈켄트의 도심을 벗어나면 포리토구역에 잘사는 한인 콜호즈(집단농장)가 있다.많은 사람들이 이 성공적인 콜호즈를 찾아온다.2만1천명이 일하는데 그중 조선인은 4천명밖에 안된다.그래도 이 농장은 「한인콜호즈」로 불린다.애당초 이 농장은 강제이주된 조선인들만으로 만들어졌던 집단농장이다.그들의 「일 좋아하고 부지런한」특성때문에 벼농사 삼베농사 목화농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타민족보다 부유해졌다.그러자 1951년 소련정부는 그들을 타민족의 콜호즈와 병합시켜 버렸다.말하자면 가난한 콜호즈와 병합시켜 하향 평준화시킨 것이다.능력없는 민족까지 이끌고 발전시키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콜호즈의 한인마을에는 전용회관이 있다.러시아어간판 옆에 「어서 오십시요」라는 간판도 붙여 놓았다.우리 일행이 찾아갔을 때는 전속 가무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어린이들이 꼭두각시춤도 추고 아주머니들이 우리말 노래도 불렀다.2∼3년에 한번쯤 평양에서 「선생님」을 모셔다가 지도를 받아오는정도이고 스스로 엮어가는 가무단이라 가무가 약간 국적불명이긴 하다. 박이나겐치부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해 이 농장의소득은 농사지은 것 모두에 대해 국가가 수매해준 대금 1천7백80만루블이었다.배당하는 방법은 1인당 월급을 2백70∼3백루블씩 받고 그 나머지분을 배당금으로 나누게 된다.지난해에는 1인당 1년에 8천루블쯤 돌아갔다.노동자 평균임금이 월2백50루블이고 고급층 월급이 5백루블이상인 그나라 수준으로는 높은 소득이었다. 소득이 그만못한 또다른 솔호즈(국영농)로 우리를 안내해준 사람은 보리스라브 강씨였다.타슈켄트의 한인문화센터 일을 맡고 있는 건축설계 전문가다.40대초반인 그 역시 「37년 강제이주」한 고려인 2세이고 솔호즈에서 자랐다.그가 자란 곳인 솔호즈 근처에는 「강우주거리」라는 길이 있다.강우주는 바로 그의 아버지라고 한다.15년동안 솔호즈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헌한 것을 평가받아 거리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솔호즈에 이를 무렵,한집안에서 흥겹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중앙아시아식 경쾌한 음악에 맞춰 우즈베크계의 농민들이 춤추고 있었다.아마도 그들 민족 전통방식의 결혼식이 있는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그 집의조그만 아들형제가 할례를 받아 그 잔치를 벌인 것이라고 했다.솔호즈 유지자격으로 한인회장도 참석하고 있었다. 예고없이 찾아든 한국인 여행객을 정도이상 반기면서 음식을 안기고 연설을 해라,춤을 춰라 하며 놓아주지 않았다.한인회장도 「시늉이라도 해야」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요령을 일러주었다.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때에는 아이들의 큰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친척들이 줄줄이 한참동안을 따라 나왔다.그중의 할아버지뻘인 우즈베크노인 하나는 술에 취한채 조선말로 『우리집에 갑세…』를 연신 외쳤다.그 사회에서의 한국인 위치가 지도자적인 자리임을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였다. 공민권도 뺏고 삶의 터전도 뺏고 어느날 느닷없이 「적성민주」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열사의 사막 한복판에 실어다 버린 형국이었던 「카레이스키」들이 반세기가 지난뒤 그 선혈섞인 땀으로 이뤄낸 오늘의 위치는 위대한 것이라고 말해서 전혀 과장된게 아니다. 거기다가 새로 떠오르기 시작한 고국 「한국」은 중앙아시아의 몇개 공화국에 사는 「강제이주된 고려사람들」의 지위를 점점 더 높여주고 있다.그래서 만나는 동포마다 은근한 목소리로 『서울에 한번 기차게 가보고 싶소』라고 말한다.
  • 붉은장미 공중투하 속 애도행렬 인산인해/피살 간디 장례식 이모저모

    ◎상가 철시·전 관공서 휴무… TV선 생중계/“인류의 커다란 손실”… 후세인도 조의 표시/“간디는 콤퍼지션 폭약에 절명”/힌두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장례식은 24일 하오 4시경(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3군 군악대의 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조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뉴델리시 야무나강 제방에서 힌두교 의식으로 엄수됐다. 간디의 아들인 라훌(17)이 관습에 따라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으며 인도 TV방송은 간디의 장례식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날 하오 1시경 간디의 장례행렬이 빈소가 마련됐던 탄 무르티하우스(네루기념관)를 출발,장례식장을 향해 뉴델리 도심 16㎞를 행진하는 동안 외국조문사절을 비롯,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뒤따랐다. ○…라지브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제단 조성에는 약 2백50명의 인부들이 동원됐다. 이들 인부들은 23일 하오 7시(한국시간 하오 10시30분)부터 작업을 시작,밤을 꼬박 새며 6만여 개의 벽돌과 장작을 쌓아 제단을 완성했다. ○…라지브 간디의 장례식이 거행된 24일 뉴델리의 많은 상점들과 학교는 문을닫았으며 정부 관청들도 모두 휴무했다. 인도정부는 장례식 때 일어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6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요소요소에 배치했으며 군에도 최고경계태세에 들어가도록 명령을 하달. 경찰은 운구행렬이 지나는 도로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으나 뉴델리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고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니아 여사는 24일 창백하지만 침착한 모습으로 자녀들에 기댄 채 간디의 유해가 틴 무르티 하우스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편의 유해를 어루만졌다. 대형 인도국기에 덮인 간디의 운구행렬이 틴 무르티 하우스를 출발하자 헬기 한 대가 저공비행을 하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붉은 장미꽃을 뿌렸다. ○…간디 전 총리는 군작전용으로 쓰이는 콤퍼지션폭약에 의해 폭사당했다고 사고 지역인 타밀나두주에서 발행되는 힌두지가 24일 보도. 이 신문은 또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암살은 매우 전문적 기술을 가진 1명 이상의 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힌두지는 꽃다발을 들고있다가 암살을 감행한 것으로 믿어지는 한 젊은 여자의 산산히 찢겨진 사체 사진을 공개. 이 신문은 범인이 C1·C2·C3 등으로 알려져 있고 조형성이 좋은 군용 콤퍼지션 폭약을 허리둘레에 감고 있다가 허리를 숙이면 폭발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추정. 인도 중앙정부의 내무담당 국무장관인 수보드 칸트 사하이도 이 여인의 사체에서 전선·용수철·수입된 건전지 등이 발견됐으며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고 밝혔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암살당했을 당시 격한 분노와 보복 심리로 시크교도 3천명이 죽음을 당한 것과는 달리 현재의 분위기는 그가 이끌던 국민회의당에 대한 지지를 규합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안정을 위해 국민회의당에 투표하자」는 포스터가 붙은 틴 무르티 하우스의 담장을 지나 고 라지브 간디의 관을 보고 나온 많은 시민들은 추후 다시 실시될 총선에서 국민회의당을 지지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집단에서는 그의 죽음을 축하의 기회로 삼고 있는 표정으로,힌두교와 회교도간의 갈등이 일고 있는 카슈미르 출신의 한 회교도는 『10대의 내 아들이 카슈미르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라지브 간디가 당시 총리였다』고 말하면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은 거지에게 자선을 베풀었다고 소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의 죽음이 제3세계로서는 커다란 손실이라고 지적.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에게 보낸 조전을 통해 『우리는 라지브 간디의 가슴아픈 죽음을 깊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간디의 죽음은 제3세계와 인류애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걸프사태 동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기는 했으나 중립적인 자세를 보였었다. ○…라지브 간디의 외할아버지이며 인도 독립 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이름을 딴 자와할랄 네루 대학에서 만난 일단의 학생들은 이번 혼란의 원인은 그의 어머니인 고 인디라 간디 전 총리가 야기한 권위주의적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사학과 대학원생인 빔라찬드양은 『우리는 간디가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국민회의당이 이탈리아 출신의 카톨릭 교도인 소니아 여사를 당 총재로 지명한 것은 동정표를 모으려는 처사라고 공박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23일 간디의 미망인 소니아 여사(44)의 비극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크게 다루면서도 소니아 여사가 남편이 이끌던 국민회의당의 총재직을 거부하는 것이 그녀 자신과 인도를 위한 최상의 길이란 점을 숨기지 않고 피력. 간디의 피살로 언론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한 평범한 여성을 세계의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의 퍼스트 레이디로 만든 동화 같은 결혼 이야기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신문들도 이날 국민회의당이 소니아 여사에게 당 총재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 인 전역에 “분노물결”… 곳곳 유혈시위

    ◎“꽃다발 건네준 여인몸에 폭탄장치”/타밀족 검거선풍… 민병대 50명 체포/애도행렬 2㎞ 장사진… 현장에 병력 배치/간디피살 파장,정정 갈수록 악화 ○…인도 경찰은 23일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사건이 스리랑카인 자살특공대원의 소행인 것으로 심증을 굳히고 인도 남부의 타밀 민병대원들에 대한 검거작전에 본격 착수,마드라스의 해변가에 있는 타밀민병대 막사를 급습해 50여 명을 체포. 경찰 소식통들은 간디 전 총리를 숨지게한 폭탄이 꽃다발을 들고 간디에게 접근했던 한 중년 여인의 몸에 묶여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15명의 사망자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여인만이 아직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 수보스 칸트 사하이 인도 내무담당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현재까지 간디의 암살에 관해 수집된 모든 증거는 한 여인이 그녀의 몸에 폭발장치를 묶고 간디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몸을 숙이는 사이에 폭발한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해 주었다』고 말했다. 암살범은 「검은 호랑이」라고 불리는 스리랑카 타밀 반체제 단체인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의 자살특공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수브라마니암 스와미 법무장관이 말했다. ○장례규모 축소될 듯 ○…간디 전 총리의 유해는 24일 화장에 앞서 뉴델리에 있는 외조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의 저택 겸 박물관인 틴 무르티로 옮겨졌는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 수천여 명이 모여들어 2㎞에 이르는 행렬을 이뤘으며 현장 주변에는 치안유지 병력들이 대거 배치됐다. 보안병력들은 공포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군중통제에 나섰으나 애도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역부족,최소 2백여 명이 철문과 담장을 넘어 저택내의 공식 접견실까지 들어갔으며 보도진들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간디 전 총리는 7년전 그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가 화장됐던 곳에서 전통의식에 따라 24일 화장될 예정이나 장례식 규모는 총선 기간중임을 감안,어머니때보다 훨씬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유세 중 폭사한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장례식을 하루 앞둔 23일 세계 각국의 저명 조문 사절들이 속속 뉴델리에 도착하고 있다. 주요 인사들로서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 총리,중국의 오학겸 국무원 부총리,미국의 댄 퀘일 부통령,소련의 야나예프 부통령,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방글라데시의 할레다 지아 총리,호주의 가레스 에번스 외무장관,영국 노동당의 네일 키녹 당수,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네팔의 크리시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총리 등이 간디 장례식 참석차 뉴델리에 도착. ◎인도의 힌두교 장례의식은/“망자영혼 해방”… 화장 뒤 두골 부숴 【뉴델리 AP 연합】 인도의 전통 장례식은 망자의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해 화장한 뒤 두골을 막대기로 부수게 되는데 이 의식이 행해질 때는 심지어 이러한 장례식에 익숙한 힌두교도 들조차 눈을 돌리게 된다. 전통 장례식에 따를 경우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독자인 라훌이 아버지 유해의 머리 부근의 장작에 불을 붙이게 된다. 힌두교도들은 망자를 화장터로 옮기는 데 관을 사용하지 않으며 시신은 흰천에 싸여 대나무 들 것에 실린다. 장례행렬의 선두에는 장남이 화로를 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동전과 설탕을 뿌리며 간다. 미망인은 이 행렬에 끼어서는 안된다. 시신을 장작 제단에 올리기 전 승려가 나와 수백만 힌두교의 신들 가운데 일부를 불러 영혼을 억겁의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빈다. 망자가 여성일 때 시신의 발 부근에서부터,남성일 때에는 머리 부근에서부터 불을 붙인다. 화장하기 전 아들과 남자 친척들이 제단 주위를 일곱번 돈 뒤 불이 시신을 잘 감싸도록 정화된 버터를 끼얹는다. 3일이 지나면 친척과 문상객들은 화장터로 되돌아가 유해를 납골 단지에 모아담은 뒤 신성한 강물에 뿌리거나 망자의 유언에 따라 처리한다.
  • 「통독」을 보는 현지의 시각/아스거 라슨(특별기고)

    ◎“거대 독일”… 명암 엇갈리는 유럽/“EC 통한 평화적 유럽통합의 새 전기” 기대/“독일 중립화 땐 큰 재앙 초래” 우려 목소리도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유럽의 성쇠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점해 왔다. 정치적ㆍ사회적 대변혁의 음모 뿐만 아니라 심오한 사상도 독일에서 생성됐다. 문화적ㆍ과학적 주요 경향들은 루터 칸트 쇼펜하워 니체 아인슈타인 괴테 마르크스 헤세 베토벤 바흐 등과 같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제국에서 비롯됐다. 독일은 전후 「경제기적」을 이룩한 나라이면서 또한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이 있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에 있어 독일은 경모의 대상이면서 증오의 상징이며 본받을 존재이자 두려운 상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의 붕괴 이후 지금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독일재통일 문제는 주변국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은 전후 서독과 동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백일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1백일 동안 독일에서는 숨막힐 정도의 격변이 열광과 두려움 속에서 진행되었다. 열광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패하고 싫증난 동독에 불어닥친 자유화바람 때문이었으며 반면 두려움을 갖게된 것은 거대하고 강력한 독일의 경우 제국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혀 왔다는 과거 경험 때문이었다. ○유럽성쇠의 중추역 비록 동독은 지금 피폐된 자국의 경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1천7백만의 동독인과 6천1백만의 서독인이 합치면 유럽대륙에서 인구가 제일 많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동독인들이 진실로 그들의 동포인 서독인들과 재통일을 이루고 싶어한다는데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산주의의 상징은 동독의 3색국기에서 이미 뜯겨 나갔으며 거의 매일 대규모 시위 군중들은 『공산주의는 영원히 죽었다. 이제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비밀경찰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동베를린 라이프치히 등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또 전 공산당 지도자들은 전에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TV에나와 『자유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원들은 달아나기에 바쁘며 2백30만에 달하던 당원수는 최근 1백일 동안에 불과 7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동독 공산당의 한 고위관리는 『이달 18일로 예정된 자유총선에서 공산당은 겨우 10% 정도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통독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문제는 동독인들의 지나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지난 1백일동안 자신들이 직접 동서독간의 엄청난 경제적 차이를 실감했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이제 시장경제와 혁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지위변화 불원 오늘의 유럽은 50년 전의 상황과 한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서독이 지금 나토와 EC에 있어 주요핵심국가라는 사실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룩했을 경우 또다시 주변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국인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도 이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일부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통일독일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현재의 서독보다 훨씬 막강해진다는 사실이다. 또다른 우려는 통일독일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독일의 중립화는 유럽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는 나토동맹국들은 물론 아마 소련까지도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소련은 20세기 전반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이 유럽의 한부분으로 귀속되지 않으면 몹시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 2차대전의 전승4개국인 미ㆍ영ㆍ소ㆍ불 등은 독일사태의 진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고르바초프는 서독 콜 총리와 회담에서 독일의 재통일은 전적으로 독일국민의 문제라고 확인했다. 통일된 독일은 나토군이 현재의 동독땅에는 주둔하지 않은채 나토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EC에도 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ㆍ민주적 선거와 함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통일을위한 전제조건이며 마르크화를 단일통화로 하는 것은 피폐된 동독경제 재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10만명 정도의 동독인들은 지난 몇달동안 서독으로 이주했으며 9만5천명에 이르는 비밀경찰과 10만9천명의 정보원들은 보복을 피해 달아났다. ○탈 이테올로기 시급 서독 콜 총리는 『늦어도 내년에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의 경제지원을 위해 각각 40억달러와 60억달러의 차관을 승인했던 EC는 『동독경제문제는 독일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세기에 들어 베를린의 주요 쇼핑거리인 「운테르 덴 린덴」은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이 군화소리로 메아리 졌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유럽은 더 이상 분단된 대륙으로 존재할 수 없다. EC를 통한 유럽통합은 독일통일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가능케 하고 있다. 이는 또 사회주의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제 갈길을 찾아가야 하는 동구국가들을 포함한 전유럽의 평화적 통합에도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이같은 통합과정이 외부의 간섭 없이 지속되기 위해 유럽은 이제 탈 이데올로기화하고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갖춰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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