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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개월 함께 산 남편 알고보니 여자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내 남편, 알고보니 여자?! 인도의 한 여성이 6개월이나 함께 산 남편의 정체가 여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타임즈 인도판이 보도했다. 인도 오리사주 북서부의 로우르켈라에 사는 미나티 카투아라는 27세 여성은 시타칸트 로트레이(28)라는 남성과 결혼한 뒤 6개월이나 그의 정체’를 모르고 살았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신체적인 접촉을 원하지 않았고, 단지 ‘종교적인 이유’라고 변명해 왔다. 하지만 궁금증과 의심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남편이 샤워를 하는 사이 억지로 욕실 문을 열었고, 여성인 그의 몸을 목격했던 것. 카투아에게 정체를 들킨 그(또는 그녀)는 아내의 명의로 빌린 대출금과 자동차·보석류 등을 챙겨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카투아의 신고를 접수하고 수배령을 내리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G20 지도 이념’으로서의 공정한 경쟁/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G20 지도 이념’으로서의 공정한 경쟁/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최근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김탁구’ ‘자이언트’ ‘동이’를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정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김탁구’는 치열한 두 경쟁자가 화해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 온 제3자에게 대표직을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중심 주제였던 것이다. 다른 두 개의 드라마 역시 불공정한 경쟁자를 징벌하는 방향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 사회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그렇다면 ‘실용정부’를 표방하였던 이명박 정부가 8·15 국정연설을 통하여 ‘공정한 사회’를 후반기 국정 화두로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자의 정치적 이상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자·플라톤·세네카는 이상국가 건설에 실패했으며,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 역시 헨리 8세가 휘두른 권력의 칼날에 희생되고 말았다. 하이데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총장 취임 연설문 ‘독일 대학의 자기주장’은 히틀러 정권을 순화하기에 역부족이었고, 박종홍의 ‘국민교육헌장’ 역시 박정희 유신 독재를 바로잡지는 못하였다.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실천 정신이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버드대의 정치철학자 롤스에 의하면 국가 사회에서의 정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들이 이전보다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만 받아들일 수 있는 ‘차등의 원칙’에 의하여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또한 차등의 원칙은 ‘원초적 상태에서의 무지의 장막’과 ‘기회균등의 원칙’을 전제하는 경우에만 공정하다고 인정된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의 특채 과정에서처럼 특정인을 선발할 목적으로 마련한 채용기준은 이 두 가지 전제를 무시한 불공정한 것이다. 따라서 롤스의 정의론에서는 현재의 특권적 지위를 공정하게 확보했는가에 대한 검증 요구가 무한정 소급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에서도 베스트 셀러로 부상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이르는 세 가지 방식, 즉 공리·자유·미덕을 소개하고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그 경우에 소수자의 권리를 위축시키거나 부정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타인이나 공동체의 지향 가치와 충돌할 경우에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뒤따른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좋은 삶’에 도움이 되는 선과 미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의 자유를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샌델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모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그 스스로는 공동체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노정한다. 샌델이 제시한 세 가지 길은 정의에 이르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주의와 입장을 선택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정의 그 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정의를 자신의 입장에서만 규정할 경우,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언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정한 사회’의 이념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할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 하원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환율조작을 겨냥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발의하면서, 이 문제를 G20에 상정할 태세를 갖추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우리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정한 경쟁’을 G20의 지도 이념으로 제시한 그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유엔의 창설 정신이 되고, 한스 큉의 ‘세계윤리’ 구상이 세계적인 경영자들의 지도 이념이 된 것처럼, 우리 정부가 제시한 ‘공정한 경쟁’이 G20의 지도 이념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 이념적 토대와 실천 강령 구축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의 민족 간 유혈 충돌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도정부가 오시에 이어 13일(현지시간) 인근 잘랄라바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가 키르기스 내 자국 공군 기지에 공수 부대를 추가로 보내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도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폭도들 경찰서 장악 무기탈취 오시에서 지난 10일 시작된 민족 분규는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다. 잘랄라바드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 김은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리에서 총성이 계속 울리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시민은 시내 곳곳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고 전했다. 폭도들은 경찰서를 장악하고 지역 군부대에서 장갑차와 무기류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르기스 정부와 군 발표를 종합하면 지금까지 최소 116명이 숨지고 1247명이 다쳤다. 여기에는 잘랄라바드의 수자크 마을에서 사망한 우즈베크계 주민 30명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학생 1명이 살해됐으며 15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파키스탄 외무부가 밝힘에 따라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 내부 문제를 넘어서게 됐다. 여성과 어린이 등 수천명의 우즈베크 소수민족이 총격을 받으며 국경으로 피신했고, 국경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린이들의 주검 등이 나뒹굴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지금까지 7만 5000명이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혔다. 사태가 확산되자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이날 오시와 인근 카라수, 아라반 지역에 통행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잘랄라바드 등지에 비상사태를 선포, 예비군을 동원하고 특수부대원들을 급파했다. 또 정부군과 경찰에 필요할 경우 폭도를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세력들이 27일 실시될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오시에서 이번 소요를 부추겼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배후설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1일 오툰바예바 대통령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한 러시아가 이날 키르기스 주재 러시아 공군기지의 보안 강화를 위해 낙하산부대 1개 대대를 추가로 파견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키르기스 칸트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20㎞ 떨어져 있으며 미군 기지와는 30㎞ 거리에 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키르기스 과도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으나 시위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러시아 긴장 고조 미·러 간 각축은 지난 4월 친미 성향의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유혈시위로 몰아낸 뒤 집권한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이 ‘러시아 접근 카드’를 흔들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물류 수송 등 전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하버드 최고 명강의 ‘정의’를 만나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미국 중앙정보국 지역 국장이다. 테러 용의자를 붙잡았다. 맨해튼을 폭파할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폭탄을 설치했다고 의심할 근거도 있다. 시계는 째깍거리는데 용의자는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며 폭탄 위치를 털어놓지 않는다.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폭탄 설치 장소와 제거할 방법을 자백할 때까지 그를 고문해야 옳을까. 다음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군인 4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어린 아이가 끼어 있는 현지 염소치기들을 만났다. 이들을 그냥 풀어주면 소재가 탈레반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미군들은 이들을 사살하느냐, 풀어주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염소치기들을 놓아줬으나 미군들은 곧 중무장한 탈레반 병사들에게 포위됐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군 16명까지 숨졌다. 염소치기들을 사살했어야 옳았던 것일까. 자유 민주 사회에선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한다. 요즘 우리 사회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너무 혼란스럽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대한 여러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를 통해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논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27세에 하버드 최연소 교수가 된 샌델은 지난 30년 동안 정치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정치적 논쟁을 다루며 최근 20여년 동안 하버드 최고 명강의로 꼽혔던 그의 ‘정의’ 수업을 글로 옮긴 것이다. 책의 미덕은 독자들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평등을 옹호하는 평등주의 등 저마다 정의를 대변하는 이론들의 장단점을 다양한 각도의 질문과 논쟁을 통해 스스로 살펴보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의를 바라보는 방식을 행복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로 정리하며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현대의 이마누엘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두루 섭렵한다. 샌델 교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 정의에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의 뿌리가 깊은 것이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 페이지 북’을 아시나요

    ‘원 페이지 북’을 아시나요

    ‘원 페이지 북(One Page Book)을 아시나요?’ 원페이지북은 400~500쪽이 훌쩍 넘는 두툼한 책의 줄거리, 핵심 가치 등을 한두 쪽으로 요약 정리해 놓은 일종의 서평(書評)이자 ‘서머리(Summary) 북’이다. ‘죄와 벌’, ‘노인과 바다’, ‘구운몽’, ‘홍길동전’ 등 고전 문학들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훤하고, 공자·묵자·소크라테스·칸트·푸코 등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읊조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할 시간은 빠듯하고 알아야 할 것은 많은 그 시절, 두껍고 난해한 책을 몇 장으로 정리해 놓은 서머리북은 ‘효율적 지식 체득’에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나중에 해당 책을 찾아 읽게 하는 유인 효과도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한 선의(善意)가 자칫 수박 겉핥기식에 머물며 ‘부박한 교양인’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국민독서문화진흥회는 ‘제1회 전 국민 독서요약 대회’를 연다. 홈페이지(www.1pagebook.com)에서 독서요약 양식을 다운받은 뒤 선정도서 목록 가운데 1권을 선택해 읽고 요약, 다음달 22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1차 심사를 거쳐 6월5일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본선 대회를 갖는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노트북 등 상품도 있다. 대회 취지는 이미 만들어진 원페이지북을 널리 읽히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 학생, 일반 모두 책을 꼼꼼히 읽고 원페이지북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하자는 의도다. 대회에 참가하기만 해도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독서 요양 훈련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정정식 원페이지북 국민독서운동본부장은 “남이 정리한 내용을 이용하기만 하는 것은 원페이지북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자신이 직접 책을 읽고 자신만의 원페이지북을 만든 뒤 늘 가깝게 놓고 펼쳐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사상과 유사하지만 진일보한 것으로, 현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 가까운 구상이었다는 주장이 일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24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을 통해 “안 의사가 유교와 기독교(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교도들처럼 부정한 명령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군주제를 수립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칸트의 국가론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었으며, 이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의사 평화회의는 EU에 가까운 구상” 안 의사의 구상은 뤼순을 한·중·일 3국의 군항으로 삼고, 이곳에 ‘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것으로, ‘평화회의’가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軍團)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이는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 전쟁을 방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세계정부’를 추구하지 않은 칸트의 사상과 비교될 수 있다고 사사가와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평화회의’는 군사·재정적 권한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EU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이 구상이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기 위해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주최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 사법관할이나 심리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한·중 학자들의 주장도 발표됐다. ●“안중근 재판 불법적으로 이뤄져”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와 두원중(杜文忠) 중국 서남민족대 교수는 공동논문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 및 그에 대한 검토’에서 “안중근 저격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난 만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법정이나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했는데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며 “사법관할상 합법적이지 않은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 의사의 저격은 군인이 전투 중에 적의 수뇌를 사살한 것이지 사사로운 살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정원 국민대 교수도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 형법을 적용한 안 의사의 재판은 1905년 2차 한일협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은 일본에 단지 외교권을 넘긴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민병과 의용병 등의 교전자격을 인정한 1907년 헤이그협약에 따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 의사가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열린세상] 신의의 정치와 계몽의 정치/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신의의 정치와 계몽의 정치/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히틀러의 독일제국이 몰락한 후에야 독일 국민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행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나 칼-오토 아펠, 그리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전쟁 동안 그들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의식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독일이 국민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무렵에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는 ‘계몽’을 강조하였다. 계몽이란 미성년에서 성인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칸트와 당시 계몽주의자들은 자유, 세속주의, 인류애, 세계주의의 가치를 중시했다. 독일제국이 유대인 학살 등 휴머니즘을 경시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상 전례 없는 도탄과 기아상태에서 국가 재건의 기치를 내걸면서 다른 계몽적 가치들을 무시했던 사실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이성의 ‘사적’(私的) 사용이 주도적이었던 데 반하여 이성의 ‘공적’(公的) 사용은 너무나 미미했다는 점이다. 칸트가 말한 이성의 사적 사용이란 법 규정을 기계적으로 준수하는 것이다. 공직자나 성직자는 부여된 임무를 규정에 맞게 수행할 책무가 있으며, 규정에 저항하거나 부정할 경우에는 문책을 감수해야 한다. 히틀러 제국의 대다수 독일 국민들은 이성의 사적 사용에 충실한 삶만을 살았다. 해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수준에 해당된다. 반대로 이성의 공적 사용은 규정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전체 공동체나 세계시민사회, 그리고 진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학자는 규정이나 제도의 문제점을 성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반성적 활동은 무제한의 자유가 요구되는 ‘신성한 책무’이자, 성숙한 어른이 책임 있게 판단하는 계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건전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의 조화가 요구된다. 약속이나 법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태도나, 법 체계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태도는 동시에 요구되는 가치들이다. 그중 하나만을 집착하면 국가적 재난과 비극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칸트는 한 시대가 다음 세대에게 잘못을 고칠 수 없게 하고 계몽을 수행할 수도 없게 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침해이며, 따라서 후속 세대들은 그런 불법적인 결정을 거부할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계몽의 과정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구상된 수도권 해체전략 카드가 차기 대권구도를 판가름할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정치권은 거의 코마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신의론’과 ‘국토 균형 발전론’을 내세워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결정을 고수하는 것만이 신의를 지키는 일이고, 수도권의 해체를 통해서만 국토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국민에 대한 약속, 즉 신의는 세종시 문제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며, 다른 핵심가치에서도 존중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 박근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인으로서 성실 의무를 다하는지를 물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지지 정당을 별도로 꾸리는 것이나 당내 계파 정치인들에게 일방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원칙과 신의에 맞는 일인가? 생태군락은 특정 생물 종이 가장 살기 좋은 곳에 형성된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적소(適所, niche)라고 한다. 오늘날 수도권의 번영은 지난 6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일구어낸 다각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노무현 정부의 수도권 분산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조차도 시행한 적이 없는 과격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유지정치가 이회창과 박근혜 두 정치인에 의하여 계승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아이러니이다. 적소가 훼손되면 생태군락도 사라진다. 따라서 국토의 균형발전은 수도권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역 혁신도시의 적소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 [문화마당] 숙련공/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숙련공/신동호 시인

    ‘노동’이란 단어에 다시금 경외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노동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정직함, 인간생활의 저변을 떠받치는 묵묵함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을 부정적 이미지로 바꿔버리는 데 안간힘을 쏟는다. 어느 정도는 성공을 해서, 노동은 언제부턴가 파업이라든지 갈등 같은 단어와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었고 요즘에 들어서 노동조합은 이익집단으로 취급당하기까지 한다. ‘노동’이란 단어가 들어간 정당, 단체, 활동들에 대한 이 지독한 반감을 단지 대중조작 소비사회의 특성쯤으로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과 감각은 재료를 유익하게 뚝딱 바꿔 놓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을 노동자라 불렀다. 세월의 힘과 노동에 대한 자긍심이 더해진 노동자는 이윽고 숙련공이 되었다. 숙련공들은 존경 받았고 수많은 견습생들의 지표였다. 나는 그들이 위대한 예술가와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선반 위에서 깎아낸 나사 선의 곡선은 실로 아찔하다. 광부들이 굉도에 세운 절묘한 버팀목과, 필경사들이 눈이 멀도록 옮겨 적은 지식의 보고들 모두 숙련된 노동의 산물이다. 물론 서명 따위는 없다, 고려청자처럼. 손톱 밑에 흙이 낀 도공의 손길이 부드러운 어깨선을 빚을 때 청자는 문화재가 아니었다. 효용을 위해 생산된 일상용품에 불과했다. 그래서 모든 청자는 무명 도공의 작품이지만 우리는 지금 청자를 예술품으로 여긴다. 고장난 라디오의 전자기판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 시절이 있었다. 합리적인 배치로 자리잡은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들을 고사리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본 기억이 난다. 마치 감시인 몰래 살짝 손을 대 본 귀중한 문화재처럼 짜릿했다. 극장도 갈 수 없고 전시회도 없는 향리에서 오래된 괘종시계의 톱니바퀴와 방앗간의 덜컹거리는 기계들은 고상한 예술품을 대신했다. 오토바이를 수리하던 큰아버지의 손놀림을 하루종일 구경하기도 했다. 마음속에 야릇한 감정이 전해 왔지만 그것이 미적 감흥인지는 몰랐다. 미(美)라는 건 교과서 한쪽에 조그맣게 실린 피카소나 로댕의 창조물에서만 느껴지는 거라 배웠기 때문이었다. 미의 역사는 노동의 축적이며 기술의 발전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여기에 숙련이 더해져 예술이 태어난다. 숙련공의 손은 조금 더 거칠 뿐 몸의 기억이 사회적 가치와 문화를 창조한다는 면에서는 거듭된 연습으로 완성된 화가나 피아니스트와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예술이 숙련공의 기술에 더 기대왔다. 더불어 무효용의 미를 주장한 칸트와 달리 기능성을 가진 것들도 미적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걸 나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작가 쥘 베른을 통해 확인했다. “나는 공장에 들어가서 기계들이 작동하는 걸 몇 시간씩 지켜보곤 했다. 이런 취미는 평생 동안, 그리고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지금도 멋진 기관차나 증기기관이 작동하는 걸 들여다볼 때면, 라파엘로나 코레즈의 그림을 응시할 때 느끼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그는 고백했다. 예술종합학교의 강의실에서 입술이 셋인 여학생을 보았다. 대금연주의 연습이 반복되면서 아랫입술 아래로 굳은살이 솟아 생긴 입술이었다. 끝내 그 아름다운 입술이 국악을 국민들 곁으로 가져가리라 나는 의심치 않았다. 생산을 위해 숙련된 노동이 새로운 문화와 미적 감흥을 우리 사회에 선사할 것 또한 나는 믿고 있다. 노동은 생산할 때 힘이 있다. 모든 미와 문화가 자본의 소유인 것 같지만 결국은 새로 태어나고 가치는 변화한다. 자본의 문화를 모방하느라 스스로 숙련공이 되기를 포기했던 건 아닌지, ‘노동’이란 단어를 붙인 정당, 단체, 활동들은 뒤를 돌아다 보아야 한다. 이 소비적이고 상업화된 문화에 국민들도 조금은 지쳐 있다. 소비할 줄만 아는 이들에게 연민을 가져도 좋다. 주말의 미술관 나들이도 좋겠지만 기름칠로 빛나는 자동차 엔진을 미술품과 등가로 놓는 자부심도 무방하다. ‘노동’이란 단어의 의미를 되찾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충분히 부자다.
  • ‘양서류’ 적 사유로 ‘지금, 여기’ 가치 찾기

    꼬박 10년 만에 다시 책을 내놓았다. 변화된 개정증보판을 내놓는 것이 출판계에서 밥먹듯 이뤄지는 일인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철학에세이를 표방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김용석 지음, 푸른숲 펴냄)이 새천년의 첫 10년 한 토막을 보낸 뒤 2010년 2월, 다시 선보이게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새천년이 막 시작되는 2000년 1월, ‘열림과 닫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 땅의 철학도, 사회과학도, 인문학도들, 심지어 건축, 디자인 분야 연구자들에게 지적(知的) 충격을 던져줬다. ‘피노키오’, ‘미운 오리새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익히 알려진 동화를 재료로 삼아 칸트와 헤겔은 물론, 19세기 후반 독일 문화철학자 게오르그 짐멜,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 그리고 칼 마르크스 등까지 넘나들며 깊이있는 사유를 선보인다. 저자의 첫 저작이었지만 입소문을 타며 여기 저기 대학의 철학과 강의 교재로 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절판됐고, ‘지금, 여기’의 학문적 과제에 대한 ‘순결한 책임’을 내세운 저자의 반대로 이 책을 더이상 서점에서 찾기 어렵게 됐다. 김용석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는 “책으로서 현재적 가치가 살아있어야 재판을 찍고, 개정판을 내는 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재판을 내는 것을 반대하다가 이번에 동의한 것은 10년 전 책을 통해 내놓았던 전망이 상당히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미래 예측적 표현들은 현재 확인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한 재판 책의 서문은 어지간히 얇은 책 분량에 가까울 정도로 두꺼워졌고, 여기에 친절한 주석까지 덧붙여졌다. 서문의 주석이라니…. 김 교수는 일러두기를 통해 “주석의 중요성은 정보의 원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면서 “관심이 있으면 주석의 보충 설명을 읽어도 좋고, 본문만 읽고 넘겨도 무리없이 이어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가 10년을 관통하는 동안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양서류적인’ 글쓰기와 ‘양서류적인’ 독서다. 두꺼비나 개구리 등 양서류가 물과 뭍 양쪽을 넘나들 듯 문화담론, 인간론을 갖고 철학·사회과학을 조화롭게 얘기하고 사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책은 의도적으로 개념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헤겔이 던진, ‘황혼에 날개를 펼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상징되는 철학자들의 겸손한 천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명에까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으로 연결됨을 강조한다. ‘열림과 닫힘’에 대한 통찰이다. 이렇듯 책을 관통하는 개념의 일관성은, 끊임없이 앞 장의 내용을 확인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절묘함이 있다. 근대 서구 철학의 기계적인 적용 또는 좌절로 고민하던 이들에게 진정한 ‘지금, 여기’의 가치를 알려주는 철학적 사유, 인문학적·자연과학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 민족에 머무르지 않으며, 무작정 서구에 손 벌리지 않는 ‘우리식 철학’의 맹아가 김용석 교수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함께 출간된 ‘메두사의 시선’(푸른숲 펴냄) 역시 신화와 과학, 철학이 한 뿌리를 갖고 엉켜있음을 보여준다. 1만 7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생명의 窓]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며/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

    [생명의 窓]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며/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

    오는 14일은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출생 135주년이 되는 날이다.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들어가 환자들을 돌보며 반평생을 보낸 의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의사이기 전에 칸트의 종교론을 비판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철학박사였고, ‘예수전연구사’라는 책을 써서 유럽 신학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신학박사였으며, 오르간 연주 및 수리 전문가로서 특히 J S 바흐 연주의 제1인자였을 뿐 아니라 바흐에 관한 책들을 낸 음악인이기도 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 명예교수오늘 그의 생일이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슈바이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경제 만능 사상이 불러온 인류의 고통이나 생태계의 위기로 ‘생명·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위협받고 있는 오늘 그의 박애와 ‘생명 경외’ 사상이 너무나도 절실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의 고통을 그냥 볼 수 없는 불인(不忍)의 마음이 있었다. 어릴 때 친구와 함께 새총을 만들어 새를 잡으러 갔다가 새를 향해 막 새총을 쏘려고 하는데, 저 멀리 교회에서 수난절을 알리는 종소리가 마치 하늘의 소리처럼 들렸다.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 새들을 쫓아버렸다. 어릴 때 자기 전 어머니가 자기 침대 머리에 와서 기도해 주는데, 언제나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듣고,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다른 생명체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머니가 나간 다음 ‘숨 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축복해 주시라는 기도를 덧붙였다. 1896년 21세 되는 부활절 아침 침대 머리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받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동시에 자기가 누리는 이런 특권을 혼자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도 되는가 자문하면서 앞으로 10년간은 자기가 원하는 학문과 예술에 바치지만, 30세부터는 직접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이 결심에 따라 30세가 되었을 때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 7년 만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던 학문과 예술을 뒤로한 채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가서 의료봉사에 전념했다. 영어로 ‘자비’라는 말 ‘compassion’은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슈바이처는 실로 불우한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자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사람들의 아픔만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40세 때 아프리카에서 짐배를 타고 오고웨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3일째 되던 날 해질 무렵 배가 하마 떼 사이로 지나가는데, 갑자기 전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문구가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생명 경외!’ 그 순간 철문이 열리고 숲속으로 길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은 신성하므로 모든 생명을 경외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녁 시간 방에서 등불을 켜고 공부할 때도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었다. 날파리들이 등불에 날아와 타죽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뭇잎을 따지도 않았고, 꽃을 꺾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가 수술할 때 병균을 죽여야만 하는 것도 안타깝게 여겼다. 말년에는 아인슈타인,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어머니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반대하는데 혼신의 힘을 경주했다. ‘무생물의 생명(?)’까지도 경외하려는 철저한 생명 사상가 겸 운동가가 아닌가? 우연히 최근에 책 세 권을 받았다. 세계 어디나 긴급구호가 요청되는 곳이라면 찾아가 아파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그건, 사랑이었네’(한비야), 인간은 결국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강조한 ‘호모 심비우스’(구미정),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아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동물의 권리와 복지’(김진석). 이 책의 저자들도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슈바이처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 경외.’ 이 시대의 화두로 다시 등장하라.
  • 올 출판계 ‘쉬운 인문학, 쉬운 고전’이 달군다

    올 출판계 ‘쉬운 인문학, 쉬운 고전’이 달군다

    2010년, 호랑이 눈으로 ‘지금, 여기’를 직시할 때다. 그리고 삶의 좌표 또한 정확히 설정해야 할 때다. 하지만! 어렵다.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10대도, 88만원 세대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20대도, 효율성의 잣대와 해고 위협 속에 전전하는 30~40대 직장인도,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에 빈껍데기만 남았다는 자괴감에 빠진 50대 주부도 모두 마찬가지다. 눈앞의 목표가 아닌,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인문학(人文學)과 고전(古典)이 새삼 강조되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출판계의 키워드는 ‘쉬운 인문학, 쉬운 고전’이다. 문학동네가 새해 첫 기획물로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다섯 권을 1차분으로 내놓았다. 앞서 민음사도 지난해 말 ‘민음 지식의 정원’ 시리즈를 펴내며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출판사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눈높이를 대중들에게 맞춰 쉽게 풀어쓰는 데 중점을 뒀고, 또 겨울 외투 안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문고판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형식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그러나 깊이를 담고 있는 인문학이다. ‘키워드 한국문화’는 고전 시리즈가 흔히 범하는 시대별, 지역별 안배의 형식틀을 벗어던졌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방식도 배제했다. 대신 하나의 구체적인 소재를 선택, 이를 통해 그 시대와 그 시대 사람이 일궈낸 문화의 정수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리즈의 첫 문을 연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박철상 지음)는 추사 김정희의 숱한 그림 중 한 점인 ‘세한도’를 키워드로 골라 그의 수난과 우정 등 영욕의 개인사는 물론, 세한도 완상법과 조선 후기의 학문과 예술, 역사 등을 꼼꼼히 풀어내고 있다. 이 밖에 ‘정조의 비밀편지’(안대회 지음), ‘구운몽도’(정병설 지음), ‘왕세자의 입학식’(김문식 지음), ‘조선인의 유토피아’(서신혜 지음)등 아주 작은 사료와 소재에서 출발해 그 시대와 정신을 통찰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40~50권까지 기획된 상태. 향후 ‘기생’, ‘축음기’ 등 일제강점기, 당대 등까지 압축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을 예정이다. 신수정 기획위원은 “깨달음과 배움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은 소재로 출발했고, 그 방법으로 내러티브(서사) 방식을 도입했다.”면서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다 범했던 기존 연구의 미시적 오류를 바로잡는 성과도 있다.”고 말했다. ‘민음 지식의 정원’ 역시 철학편, 사회편, 경제편 등으로 나눠 먼저 여섯 권을 펴냈다. ‘황야의 총잡이는 마을을 왜 떠나야 했는지’, ‘그녀가 구입한 명품가방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거짓말은 무조건 안 되나’ 등 일상 속 의문을 던진 뒤 철학으로 풀어낸다. 난해하고 골치 아픈 것으로 여겨지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헤겔, 프로이드, 푸코 등도 어느 순간 눈높이로 바짝 당겨지고 친숙해진다. 올해 일단 20권 정도 기획됐다. 쉽지만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5명의 소시민 ‘혁명 놀이’를 시작하다

    ‘혁명’이란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도 있겠고, 인상부터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떠나 과연 이 시대에 혁명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어떤 형태가 돼야 할까. 소설가 김연경의 첫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민음사 펴냄)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소비에트연방의 ‘11월 혁명’에 대한 오마주 성격이 짙은 이 작품은 혁명을 계획하는 몇 명 인물을 통해 ‘이 시대의 혁명’에 대한 가능성과 그 형태를 타진한다. ●러시아 11월혁명에 대한 오마주 2000년대의 혁명은 ‘PtRe(Proletariat Revolution의 약자)’라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끝나 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가슴 속에 세계 변혁을 위한 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영구 혁명을 꿈꾸는 몽상가들의 모임에 가입하십시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거창한 소개글을 달고 있지만 이 카페의 활동은 보잘 것 없다. ●이 시대의 혁명은 생활혁명 게시글은 물론 댓글도 잘 달지 않는 이곳의 활동인원은 고작 다섯. 유복한 가정의 복학생 권민우, 세 딸을 둔 아버지 강주임, 서른일곱살 백수 김철수, 세련된 여대생 안정현, 그리고 베일에 싸인 카페 마스터의 대리인인 일곱살 딸기가 전부다. 소설은 이들 인물에 권민우의 아버지 권율, 권율의 어린 아내이자 백수 김철수의 연인인 정윤희 등을 섞어 넣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저그런 사람들이 모인 카페이지만 PtRe의 혁명은 ‘장난’이 아니다. 이들의 거사일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1월7일. 자본주의가 만연해 있는 대형 지하 아케이드를 폭파시킨다는 ‘테러’에 가까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사제 폭탄까지 만들지만 권민우의 고양이 ‘칸트’의 실수로 혁명은 고작 책상 하나를 태우고 끝이 난다. 혁명은 시시하게 끝이 났지만 소설은 냉소적인 문체로 이 시대의 혁명은 ‘체제의 혁명’이 아닌 ‘생활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 초라한 혁명은 애초에 투철한 혁명사상보다는 재미로 ‘혁명 놀이’를 시작한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유발한다. 권민우는 무기력한 생활을 접고 로스쿨에 진학하며, 백수 김철수는 논술학원 강사가 된다. 강주임도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며 세 딸의 나은 미래를 위해 팔을 걷는다. 이 변화들은 모두 생활의 변화이지만 생활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다. 이 초라한 혁명가들은 좋아하는 남자를 두고 ‘쪼다 같고 바보스러운 웃음’을 짓는 정현과 같이, 모두 삶을 향해 ‘쪼다 같고 바보스러운 웃음’을 흘린다. 그러면서 혁명의 성공 여부를 떠나 삶은 지독스럽게도 계속되며 생활은 혁명보다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도스토옙스키 ‘악령’서 영감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김연경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과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의 몇몇 모티브가 작품에 활용됐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작품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지하생활자’, ‘안나 카레니나’, ‘롤리타’ 등 러시아 문학의 흔적은 부수적인 재미를 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문화마당] 21세기 실학,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학/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21세기 실학,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학/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가 바로 옆에 지난 23일 실학박물관을 개관했다. 실학이란 무엇인가. 실제 현실로서의 역사인가, 아니면 후대의 역사가가 만든 허구로서의 개념인가.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수많은 실학에 대한 연구와 논쟁을 통해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은, 실학은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이 18세기 변화된 현실에 직면하여 여명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이라는 점이다. 18세기는 서구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시기다. 이때 서구에서는 계몽사상이라 불리는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이 등장해서 프랑스혁명을 추동하는 동력이 됐다. 이 시대의 화두는 계몽이었다. 칸트는 계몽을 “너 자신이 책임이 있는 미성숙(미숙)함으로부터 벗어남”이라고 정의하고, 이제 인간은 감히 알려고 하는 용기를 갖고 이성적 비판에 근거해서 세계를 인식론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순수이성비판’을 썼다. 이 선언은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신혁명을 의미한다. 이는 철학사에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우주관이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 말해진다. 같은 시기에 조선에서 성리학이라는 전통사상의 토양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근대의 사상적 맹아가 바로 실학이다. 성리학은 학문의 목적을 격물치지(格物致知), 곧 세상 만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파고들어가 확고한 지식에 이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만물의 이치를 깨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닦아야 하고, 정신수양이 공부의 목적이었다. 여기서 공부란 바깥 사물 그 자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깨끗이 닦아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성리학은 학문과 도덕을 일치시켜서 자기 내면을 닦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격물치지와 대조가 되는 공부방식이 완물상지(玩物喪志), 곧 하찮은 물건에 집착함으로써 뜻을 잃는 것이다. 이 같은 성리학적 학문관에 따르면, 당위를 배제하고 사물 그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탐구하는 근대 과학은 완물상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외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축적해도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바른 마음과 지혜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시대 공부가 자기 본성을 깨닫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중점을 두었다면, 근대에는 과학을 통해 주로 밖의 사물을 탐구하고 타자를 향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오늘날 인문학이 삶을 이끄는 지도가 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한 근본원인이다. 전통시대의 학문이 완물상지를 배격하고 격물치지를 강조했다면, 근대 과학은 ‘격물’에서 ‘완물’로 지식 추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으로 성립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하지 않고 내면적 성찰에만 빠져 있는 것은 공허하고, 내면적 성찰 없이 바깥 사물에 대한 지식만을 축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탈근대에서는 이 둘의 변증법을 이룩할 수 있는, 완물상지가 아니라 ‘완물치지(玩物致知)’에 이르는 새로운 과학 모델을 세울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마음공부와 서양의 자연과학의 융합이 우리시대 학문의 화두가 돼야 한다. 21세기 인문학자들은 18세기 관념화된 성리학을 ‘실사구시의 학’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던 실학자들의 ‘지나간 미래’를 현재에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 18세기 지식인들의 꿈이 좌절된 이유는 여럿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민중과 함께할 수 있는 실천학문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남양주시에 건립된 실학박물관이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인문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를 기원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사상 다각도 조명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일인 26일을 전후해 안중근의 사상과 의거의 의미, 영향 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안응모)는 23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실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재조명’(이태진),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칸트의 영원평화론’(마키노 에이지), ‘안중근의 독립운동과 의거의 성격’(장석홍) 등이 발표된다. 안중근·하얼빈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26~27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미래’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남긴 미완의 원고 ‘동양평화론’이 집중적으로 재조명된다.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하고, 이어 ‘한국 근대 동양평화론의 기원과 계보’(서영희), ‘일본의 만주 진출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쑤용), ‘안중근 재판의 불법성과 동양평화’(도쓰카 에즈로) 등 5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중국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과 공동으로 27일 하얼빈에서 한국과 중국의 연구자 9명이 참가하는 학술회의를 연다. ‘안중근의 사상 형성 과정을 통해 본 평화사상의 의미’(김대호), ‘안중근의 연해주 의병투쟁 연구’(박민영), ‘일본에 의한 안중근 재판의 불법성과 그 정치적 의도(한성민)’, ‘안중근의 이토 사살과 러·일관계’(홍웅호) 등이 발표된다. 앞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2일 고려대100주년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안중근의 민족운동’, ‘안중근의 사상’, ‘안중근과 국제평화’, ‘안중근 정신의 실천적 과제’ 등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고독의 시간이 천재를 만든다

    천재는 타고 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팔자대로 살아가는 서민들이야 뭐가 되든 상관 없겠지만 ‘천재의 시간’(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 펴냄)을 읽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과학 전문작가이자 수학 관련 TV 교양프로그램 진행자인 글쓴이는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운을 뗀다. 그 전제 조건은 바로 ‘고독의 시간’. 지도교수의 미움을 산 죄로 학계에서 추방된 아인슈타인은 그때 오히려 자신만의 연구 영역을 개척했고, 칼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후 내면으로 침잠하며 ‘분석심리학’을 세웠다. 스티븐 호킹은 신체적 유폐 때문에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몰입이 가능했다. 책은 뉴턴, 다윈, 칸트, 비트겐슈타인, 라마누잔, 에셔 등 역사 속 대표적인 천재 10인의 생애를 일화와 더불어 소개하며, 고독을 딛고 천재가 되는 비법을 전한다. 책에 따르면 고독이 괴로워 몸부림 칠 이유가 없다. 그것만 이겨내면 천재가 될지도 모르니까. 천재들의 업적과 관련된 다양한 삽화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1만 1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국철도 기술 배우러 왔어요”

    한국철도의 기술을 배우기 위한 해외 관계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고속열차를 직접 탑승해 보고 건설 현장도 방문하는 등 한국의 기술력을 자국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1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9월에만 우즈베키스탄과 몽골, 브라질 정부 관계자, 의원 등이 잇따라 방문했다. 지난 5월 철도분야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우즈베키스탄은 지난달 15일 슈쿠로브 아크버 부사장 일행이 방한, 타슈켄트~사마르칸트(350㎞) 간 고속화사업 추진에 대해 협의했다. 현지 조사 중인 이 사업이 결정되면 양국은 전문가로 프로젝트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타당성 조사 등을 벌일 계획이다. 이어 16일에는 몽골의 라쉬 라드나바자르 의원과 교통부 차관 일행이 공단을 찾았다. 교통부장관 출신인 라쉬 의원은 지난 8월에도 방한해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과 한·몽골 의회 간 철도협력 MOU를 체결한 바 있다. 양국은 한·몽 철도 및 에너지 협력 회의에서 타반톨고이 광산연계 철도건설방안과 몽골철도 현대화사업 재원 확보를 위한 공동 자원개발 방안 등을 논의했다. 제이미 마틴 브라질 연방하원 교통위원장 일행도 지난달 22일 공단을 방문했다. 브라질은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캄피나스(520㎞) 간 고속철도를 건설할 계획이어서 선진국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시설공단과 코레일, 로템 등 민간기업들로 브라질 고속철도사업 한국추진단을 구성했다. 브라질 방문단은 보수기지와 경부고속철 2단계 건설현장을 찾아 한국 철도의 우수성을 확인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서구 종교·정치 밀월관계 파헤쳐

    “미국에 신권(神權)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정치철학자인 마크 릴라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7년 8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이처럼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자유와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신정국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학계를 뒤흔들었다. 그에 따르면 부시 정권의 탄생과 재선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지가 강화됐고, 그들의 신앙과 신념이 정책을 좌우하면서 정치가 종교적 열정에 휘둘리게 됐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릴라 교수의 ‘사산된 신’(마이 오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은 “21세기의 국제정치 지형이 16세기식의 종교논쟁으로 돌변했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서구 사회에서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불온한 관계를 맺어왔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파헤친 책이다. 1000년 넘게 이어져오던 정치와 종교의 밀월은 16세기 로크와 흄, 홉스 같은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회의의 대상이 됐고, 이로부터 정교분리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18세기 칸트는 종교가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종교를 다시 정치에 접목시켰고, 헤겔도 종교를 사회적 화합의 힘으로 치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독일에선 종교가 이전처럼 정치를 위협하거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재앙은 그들이 꿈꾸던 신이 ‘사산된 신’이었음을 드러냈다고 릴라 교수는 지적한다. ‘종교는 왜 정치를 욕망하는가’가 부제인 이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그의 삶 그의 꿈]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그런데 먼 앞날을 내다보고 세워야 할 중요한 계획이 목표부터 잘못된 듯하다. 일류대 진학이 교육의 목표가 되면서 학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안하무인 독불장군을 배출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무한경쟁과 1등제일주의가 교육의 다른 말이 된 오늘날, 우리에게 인성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정보통신 발전,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삼보컴퓨터 창립자인 이용태 박사가 인성교육 전도사로 변신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용컴퓨터(PC)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1980년부터 삼보는 국내 컴퓨터 시장을 성장시켜 온 선두주자였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대국이 된 과정과 삼보컴퓨터의 발자취는 맥락을 같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보의 역사는 바로 이용태 박사의 역사이기도 하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이용태 박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은 1969년. 귀국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1970년, 그는 인텔에서 발명한 IC 컴퓨터를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1세대 컴퓨터의 구성소자는 진공관입니다. 진공관은 가지만한 크기인데 이때의 컴퓨터는 공장과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다음에 나온 게 콩만한 크기의 트랜지스터인데 이 컴퓨터는 장롱 10개를 펼쳐놓은 것만 했죠. 그리고 1970년에 나온 게 3세대 컴퓨터입니다. 손톱만한 칩 안에 수천 개의 트랜지스터를 인쇄해 놓았어요. 엄청난 혁명이죠.” 복잡하고 거대한 컴퓨터의 시대가 종식되는 것을 목격한 이용태 박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흥분했다. 하나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겠구나’, 또 하나는 ‘국산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보통신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다들 로켓트 만들어 달나라 가자는 사람 취급했지요. 정부와 재벌을 상대로 10년을 설득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직접 만드는 수밖에요. 1980년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 원 가지고 삼보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국산 컴퓨터 개발, 정부기관의 행정전산망 통일, 초고속 인터넷 보급….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으로 그 모든 일을 해온 그가 2005년 삼보컴퓨터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인성교육 전도사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보산업 발전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컴퓨터 만드는 일보다 인성교육 사업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IT 산업보다 더 중요한 인성교육 이용태 박사가 1996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박약회는, 초대 회장인 포항공대 김호길 총장과 지인들이 도산서원 내 박약제(搏約劑:학문은 넓히고 예술은 줄이다)에 모여 퇴계 이황 선생에 관한 스터디모임을 가진 것이 시작이었다. 모임의 횟수가 거듭되면서 회원이 늘어났고, 이용태 박사가 회장이 되었을 때는 회원 수가 3,000명에 이르렀다. 그는 박약회 회장으로서 오늘날의 선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해 고심했다. “과거와 미래 중에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문집을 간행하고 서원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과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미래는 후진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죠. 저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5년 삼보컴퓨터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손자 손녀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 인성교육 사업의 첫 걸음이었다.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변화를 본 그는 ‘인성교육을 국민운동 차원으로 벌이자’, ‘나부터 인성교육의 전도사가 되자’라고 결심했다. 먼저 박약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법을 강의했고 22개 박약회 지회에서 젊은 어머니들에게 전도했다. 이것이 인성교육 사업의 1단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 동래교육청으로부터 인성교육을 특별사업으로 실시할 계획이니 강연을 해달라는 전갈이 왔다. 2007년 그는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해 동래교육청의 공무원, 초등·중학교 교장,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그리고 2008년 동래교육청에서 본격적으로 인성교육을 시작하면서 각 가정으로 인성교육에 관한 안내문을 보냈고 900여 가정이 신청했다. 이로써 인성교육 사업 역시 2단계로 접어들었다.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 그가 말하는 인성교육법은 쉽다. ‘한 달에 한 시간, 교훈 하나 이야기 두 개’면 충분하다. “인성교육을 신청한 가정에 한 달에 한 번 교훈 하나와 교훈에 맞는 이야기 두 개를 보냅니다. 그걸 가족들이 다 함께 읽은 다음에 토의합니다. 정말 쉽죠?” 이토록 간단한 인성교육의 실천사례는 실로 놀랍다. 동래교육청과 박약회가 펴낸 《감화이야기를 통한 가정 인성교육 실천사례》를 읽어보면, 새옹지마에 관한 교육 후 실패를 두려워하던 아이가 실수를 하고도 자신감을 잃지 않아 기쁘다는 어머니, 양보와 배려에 관한 교육 후 싸움이 잦던 연년생 형제의 사이가 좋아져 뿌듯하다는 어머니 등 감동적인 실천사례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이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인성교육의 날을 정하고 가족이 둘러앉아 토의의 시간을 가지면서 평소에도 가족 사이에 대화가 늘었다.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그달의 교훈을 실천하다 보니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감화사례도 있다. 이용태 박사는 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데 ‘한 달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한 달에 한 시간, 일 년이면 열두 개의 교훈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덕목은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열 가지면 충분하죠. 3년이면 열 가지 이야기를 서너 번쯤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왜 인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취업할 때에는 일류대 나온 게 중요할지 몰라도 입사 후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가, 열의와 의지가 강한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가, 하는 것이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수한 사원은 인성으로 판가름 나는 셈이다. 사회활동만이 아니다.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도 결국 가족 구성원의 인성 문제다. “부부 사이에 불만이 있다면 상대가 라틴어 문법을 몰라서도 아니고 칸트의 철학을 몰라서도 아닐 겁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아서, 함부로 말해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서 불만인 거예요. 그게 바로 인성 아닌가요?”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전후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범죄률과 자살률이 날로 높아가는 현재, 우리가 정말 예전보다 행복한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이용태 박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GDP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반듯한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예전에 저는 우리가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선진국을 숨 헐떡이며 쫓아갈 게 아니라 그들 앞으로 껑충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컴퓨터였고요. 지금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에 있어 세계 1등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앞서 가기 위해서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교육이에요. 그래서 인성교육 사업이 제게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교육의 목적이 일류대에 진학하는 것이 되어버린 세태가 안타깝다. 크게는 사회에 유용한 인간을 기르고 작게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을 만드는 게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법과 스스로를 경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서양학문엔 없지만 예부터 우리 교육이 중시해 왔던 게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5년간의 인성교육 사업이 호응을 받고 있어 그는 요즘 너무 기쁘다. “아침부터 밤까지 만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반듯하고 착하면 그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글_ 하재경 소설가
  • 카자흐인에 주몽 후예의 혼을 심다

    카자흐인에 주몽 후예의 혼을 심다

    │아스타나(카자흐스탄) 이순녀특파원│ “어, 주몽이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대통령문화회관 박물관 5층 전시장.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회를 둘러보던 10대 여학생 2명이 행사장 한쪽에 걸린 한국 드라마 ‘주몽’의 포스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4월 현지에서 종영된 ‘주몽’을 재밌게 봤다는 하쿠(15)와 알마(15)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고구려 역사를 좀더 알고 싶어서 전시장을 찾았다며 반가워했다. 이들은 동방신기, 비,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스타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한국말로 간단한 인사까지 건넸다. ●드라마 ‘주몽’ 포스터 보고 환호 역사를 전공했다는 20대 청년 피르다우시(23)는 “드라마 ‘장보고’와 ‘해신’을 통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전시된 고구려 고분벽화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마문화와 씨름 장면 등에서 카자흐 전통 문화와의 유사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5세기 동북아시아 4강의 일원으로 실크로드 초원의 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교류한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가 1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실물에 가깝게 복원한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벽화 그림을 중심으로 고구려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동아시아 고대 문화의 빛, 고구려’전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지난 22일 성황리에 개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고구려 고분벽화 몽골-튀르크벨트’ 순회 전시회의 하나로 마련됐다. ‘몽골-튀르크벨트’는 몽골에서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에 이르는 고대 유라시아 동서 문물교류의 통로이며,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에서 고구려가 주도한 문명교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적이다. 순회 전시회는 지난달 몽골에서 시작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9월)에 이어 내년에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터키에서 종지부를 찍을 예정이다. ●몽골-튀르크벨트 문화교류 흔적 남아 전시 기획을 담당한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몽골-튀르크벨트는 고구려 북방동맹의 통로이자 문화교류의 가교로 동서세력 연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잊혀졌던 역사속 문화교류의 통로를 새롭게 연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고구려 역사지도, 성(城), 고분, 무기,토기, 와당 등의 사진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2년간 디지털로 복원한 북한 남포시 소재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벽화 그림 등 40여점이 소개됐다. ●“암각화와 벽화그림 유사”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한류 드라마의 영향으로 부쩍 높아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현지 관계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대통령문화회관 박물관 큐레이터인 바흣 발타바예바는 “고구려 벽화의 문양이 카자흐스탄의 암각화에 그려진 산양 뿔 무늬와 비슷하고, 고분 석실의 고깔 형태도 카자흐스탄 전통 집 모양인 유르타와 닮아 문화적 유대감을 느꼈다.”면서 “고구려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반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와 언어학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카립자노바 로자 문화부 부위원장도 “양국간 문화교류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10만명이 넘는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한 한인 후손 2~4세대로 최유리 상원의원을 비롯해 정·관계 고위직, 학계,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로만 고려인협회장은 “카자흐스탄은 고향이지만 내 피는 한인”이라며 “우리 선조인 고구려인의 문화유적을 이곳에서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감회를 밝혔다.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암각화와 고분 벽화속 개마무사 사이에 유사성이 확인되고, 카자흐스탄 언어와 한국 고대 언어 사이에도 연결성이 발견되는 등 고구려와 중앙아시아 유목국가는 상당히 긴밀한 문화교류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한국과 카자흐간 오랜 교류의 기원을 찾고, 앞으로 교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전시회는 새달 20일까지 계속된다. 글 사진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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