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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한다면 투표하라” 철학으로 되짚어 본 정치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다. 관심이 정치에 쏠려 있고 선거와 투표, 민주주의 등을 진단하는 책도 많이 나온다.‘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장 폴 주아리 지음, 이보경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는 선거에 담긴 함의를 가장 잘 풀어낸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프랑스 철학자인 저자가 2007년 프랑스 대선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이 책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외국 철학자가 자기 나라 선거를 겨냥해 쓴 글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질 수도 있겠다. 저자 역시 한국과 프랑스가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의 임명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 해도 선거가 끝난 뒤 체제가 이들에게 부여하는 권력을 화해시키고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문제를 갖는다 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어 “사회가 무엇에 기초하고 있으며 정치가 어떤 필요성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제도들은 독단적인 것이 되고, 모든 권력과 정부 형태는 가치를 잃는다.”면서 “책은 이런 고찰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투표를 해야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무조건 투표’를 주장하지 않는다. ‘가장 숭고한 의미’에서 인간이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순간, 공동체 형성, 규율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사람은 사회적이지만 이익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공동 규율을 거스를 수 있다는 칸트의 ‘비사회적인 사회성’을 들어 권력자들의 행태를 분석하고, 공동체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과 ‘원수를 사랑할 것’이라는 신약성서의 지혜가 갖는 의미를 따진다. 고대 스토아학파나 로마시대 노예이자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를 이야기하며 권력자들이 민중을 무기력하게 만든 역사를 되짚는가 하면 “국회의원은 단지 법이 정한 바를 실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라는 루소의 말을 설명하면서 당선자들이 말하는 ‘국가의 이름으로’라는 말 속에 얼마나 큰 오류가 담겨 있는지 밝힌다. 그리스부터 중세와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정치 철학을 살피면서 본론에 다가간다. 오래전부터 예견된 정치인의 타락과 민중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열쇠는 역시 투표권 행사뿐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진리는 국민 스스로 하는 행동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면서 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치사상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시대에 적용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주제에 따라 흐름을 읽어내기에 좋다. 그 이후에는 제목을 뒤바꿔 ‘나는 사고하므로 투표한다’는 행동으로 이어갈지는 읽는 이의 몫이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다. 구미 선진국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 과정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때는 주권마저도 빼앗겨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전통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급격한 외래 문물의 유입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또다시 걸림돌로 인식돼 우리 것은 점점 멀어지고 버려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그간 우리는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든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안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후진국 수준이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원 폭력 문제도 그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상들의 삶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선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 우애가 넘쳤으며 가정은 화목했다. 또한 사회는 예의가 넘쳐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그것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배려와 양보를 솔선수범하며 몸으로 가르친 어른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인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은 방대한 문헌 기록을 통해 전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인들이 남긴 기록 자료는 보석보다 값진 유산이다. 문제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들 자료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 다른 것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돼 있어 국역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고문서는 초서(草書)가 대부분이어서 탈초(脫草)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예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겪지 않는 우리만의 고충이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그들의 현재 문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칸트의 저작을 읽을 수 있고, 중국과 일본 사람도 지금의 문자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그들 조상의 기록과 만날 수 있다. 유독 우리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오늘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귀감으로 삼는 데 탈초와 국역이 필수불가결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전통적인 교육을 충실하게 익힌 한학 원로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지만 그들을 이어 갈 세대의 배출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 보물을 포클레인이 아닌 숟가락으로 퍼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이런 가운데 임진년 새봄을 맞아 지방에서 한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개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몇 년 전 개원한 전주분원에 이어 밀양분원을 세우고, 한국국학진흥원은 한문교육원 대구강원을 연다. 그동안 한문 교육기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 지방 한문 교육기관의 등장으로 선현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 활용할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국역 전문가 양성은 인성 함양, 화목한 가정의 회복, 예의 염치가 통하는 사회의 구현 등 오늘 우리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고, 옛 기록 속 이야기 소재의 발굴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이다. 그 중심에 새롭게 길러질 국역자가 있다. 국역 관련 인재 양성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과 관심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 1930년대 모던보이 마르크스와 通하다

    1930년대 모던보이 마르크스와 通하다

    박종홍(1903~1976). 한국의 서양철학 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시각은 곱지 않다. 박정희 정권 때 대통령 특보로서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등 유신체제에 협력했다는 경력 때문이다. 안호상(1902∼1999) 역시 한국의 서양철학 1세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당시 문교부 장관을 지내면서 정권의 지도 이념인 일민(一民)주의를 내세운 학자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평가가 후할 수 없다. 시대에 반하는 상상을 하는 철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치우(1909~1949)는? 안호상, 박종홍과 동시대에 활동한 서양철학 1세대다. 그의 이름은 익숙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박헌영의 남로당에서 활동했고 해방 공간에서 월북했다. 그 뒤 빨치산 활동을 위해 남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의 최후는 동아일보 1949년 12월 4일 자 기사에 실린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으로 전해질 뿐이다. “약 2주일 전 태백산 전투에서 적의 괴수 박치우를 사살하였다.” 잊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런 그가 한때 불쑥 재등장한 때가 있다. 1980년대다. 어떤 경위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그간 써낸 논문들을 모아 1946년 냈던 ‘사상과 현실’이 1980년대 대학가를 떠돌아다닌 것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치우가 이 책을 써냈을 당시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저자 역시 왜 박치우에게 관심을 가졌느냐는 질문에 “해방 공간에서 여러 문건과 책들이 나돌았는데, 그 가운데 그의 책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재밌는 것은 심지어 박종홍도 한 일간지에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는 점이다. 그것도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정도(正道)를 제시한다.”는 대단한 호평이었다.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사상’(위상복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은 바로 이 박치우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같은 시대를 산 철학자들의 다른 선택이다. 그들이 추구한 철학 그 자체에 이미 다른 선택이 내재됐다고 지적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양철학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대한 그들의 이해 방식에 내재됐다고 본다. 저자는 “박종홍을 두고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 헤겔의 국정철학 전개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나친 비교일 뿐 아니라 박종홍의 정치 권력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이데거나 헤겔을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보기에 당시 주류였던 독일 철학을 배우면서 박치우는 “합리주의적 이성에 근거한 변증법”을 신뢰했고, 박종홍은 “비합리주의적 실존철학의 길”을 좇았다. 박치우는 일제 식민지라는 조건 때문에 이에 대한 합리주의적 변증법에 따라 당대의 제국주의,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 박종홍은 박치우가 민족의 정도를 제시했다고 극찬해 놓고도 다른 길을 택했다. 비합리적 실존을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도약으로서의 결단이다. 이는 권력에의 복무다. 이미 한번 드러난 바도 있다. 경위와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제 말 1943년쯤 박치우는 중국으로 건너간다. 더는 일제하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박종홍은 총독부 학무국 촉탁직을 맡는다. 이후 박종홍의 도약과 결단, 실천은 “일제 말기 촉탁이 되길 선택한 길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저자는 박치우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본다. 박치우가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한 것은 옳다. 그러나 다시 실천을 위한 이론으로서는 볼셰비즘과 파시즘이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상 박종홍을 겨냥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해방은 됐지만 “사상적으로 계속해서 파시즘이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대두될 가능성을 예견했던 것이며 바로 안호상이나 박종홍의 민족주의가 그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상과 현실’에 실렸던 ‘연구의 발표와 자유’라는 논문에서 박치우는 아예 이렇게 못 박아 뒀다. “이렇게 보면 벌써 그는 학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상인 내지 투기업자 이외의 아무것도 못 되는 것이다. 단군론이 동조동근(同祖同根)론으로 바뀐다든지, 하이데거를 팔굉일우설과 강제 결혼을 시킨다든지 하는 종류의 것이 그것이어서 진실한 의미에서의 개종이라기보다는 변절일 것이다.” 탈민족주의 입장에서 귀가 번쩍 뜨일 지적이다. 그러나 파시즘과 볼셰비즘의 대결에서 박종홍이 파시즘의 길을 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박치우가 볼셰비즘을 택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을까. 볼셰비즘이란 것도 박치우가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전체주의의 하나였던 것으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저자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그런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이분법은 다소 과격했던 것 같다.”면서도 “요즘 우리 시대에서는 공공연한 결과였지만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던 1930~40년대 즈음 지식인들의 풍향계가 그러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평하는 것은 평가의 문제이고, 평가 이전에 그 시절 지식인들의 분위기와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해서 이런 철학 논쟁의 가외로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1920~30년대 조선에 불어닥친 마르크스주의 광풍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란, 눈 덮인 땅에 홀로 지게를 메고 걸어가는 가난한 소작농의 이미지가 강했던 러시아가 거대 산업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건강한 산업 노동자의 이미지가 가득한 소련으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실상이야 어쨌건 정보통신기술 사정이 열악했던 당시 제3세계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이미지가 강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이런 분위기가 유입되게 놔둘 리 없었다. 해서 1924년 경성제대를 세웠을 때 교수진은 빵빵하게 구성하되 대개 칸트와 헤겔 전공자로 채웠다. 그런데 묘하게도 학생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열광했다. 처음 학생들이 낸 잡지로 ‘신흥’이 있는데 여기 실린 논문을 보면 칸트와 헤겔은 마르크스로 가는 징검다리쯤으로 취급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나중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게 되는 유진오(1906~1987)조차도 법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변혁적 철학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이는 요즘 근대성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제시대에도 ‘모던 뽀이’ ‘모던 걸’이 있었노라는 얘기들에 의문부호를 붙이게 한다. 혹시 그들은 ‘막스 뽀이’ ‘엥겔스 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 단어가 1930년대 지식인을 표상하는 대표적 단어”라는 의미다. 4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간 심연 들여다본 심리 서적 3권] 고독은 일생의 임무, 피하지 마세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고조로 불리는 덴마크 출신 사상가 키에르 케고르(1813~1855)는 고독과 절망으로 인한 자기상실을 신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죄로 여겼다. 기독교 사상가였던 그는 그래서 신앙에 의해서만 그 죽음의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기독교 사상 측면에서 고독과 절망은 멀리하고 끊어야 할 악인 셈이다. 비단 키에르 케고르 말고도 고독은 사회와 집단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부정의 개념으로 널리 통한다. 고독은 정말 사회와는 배척되는 죽음의 병일까. 사회와의 원만한 교접과 관계를 이어주는 친밀한 인간관계는 건강과 행복의 큰 기준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 심리학자들은 대개가 고독을 사회적 관계에서의 일탈이자 병리적 현상으로 관측하곤 한다. ‘풍요로운 인생이란 고독한 순례자의 것’이란 주장은 그런 사상과 학설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생뚱맞은 괴담으로 꺼려질 법하다. ‘고독의 위로’(앤서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는 ‘친밀한 인간관계가 행복의 주된 요소’라는 통념에 정색하고 이의를 제기한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고독은 단순히 인간관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며 뿌리깊은 욕구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고독은 개개인의 행복과 창조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안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로 사람은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지론이다. 세계적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학자며 예술가들의 삶이 고독의 관점에서 풀어지는 게 독특하다. 칸트, 비트겐슈타인, 뉴턴, 카프카, 베토벤, 바흐, 고야의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책은 ‘고독이란 일생의 임무’라면서 자기에게로 떠나는 여행의 권유로부터 시작된다. 죽은 자와 헤어져야만 하는 그리스인들의 독특한 장례문화며 매일 오후 일정한 시간 혼자만의 공간으로 옮겨 휴식을 취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도 흥미롭다. 고독 속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과정은 진정한 유대감을 획득하는 확실한 경로임을 부담스럽지 않은 사례들을 들춰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글쓰기의 방법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별의 슬픔 같은 생의 고통과 마주하게 될 때 그와 직면해서 물러나고 벗어나기까지의 단계를 제시하는 고독의 카타르시스도 시선을 끈다. 결국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자신의 인생을 고독으로 다채롭게 채우는 사람만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고 혼자 있는 능력을 알차게 키워낼 때 내면세계와 외부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튼튼해진다.” 1만 6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은 많다. 특히 어떤 항공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여정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벨기에의 브뤼셀로 들어가 독일과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자칫 일반적인 유럽 여행이 될 수 있는 동선이지만 여기에 특별한 ‘스톱오버’가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줬다. 중동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광활한 사막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카타르에서의 ‘스톱오버 투어’는 새로운 느낌의 유럽 여행을 연출하게 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카타르항공 www.qatarairways.co.kr 1 벨기에 브뤼셀의 골목길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2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상징과도 같다 3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가득한 하이델베르크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또 하나의 목적지 Doha도하 늦은 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즈음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하는 온통 모래빛깔이다. 땅도 건물도 모두 사막을 닮았다. 그 옆으로 넘실거리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카타르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정도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합쳐도 200만 명에 불과하단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카타르를 무시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자그마치 152억 배럴의 원유와 5,700조 배럴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부자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2006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됐고, 2022년 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도하의 거리로 나서면 이슬람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웨스트베이 지역에는 우후죽순처럼 마천루들이 솟아오르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고급 승용차들이다. 건너편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 지역은 마치 미래 도시처럼 사막 한가운데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것만 같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값비싼 스포츠카를 끌고 도하시티센터(도하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로 달려와 명품 쇼핑을 하는 풍경은 이국적이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매력은 역시나 가장 카타르다운 것에 있었다. ‘올드 수크Old Souq’라 불리는 재래시장에는 중동의 색채가 담뿍 묻어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네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채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여유롭게 물담배를 피우거나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장을 보러 나온 이슬람 여성들이 어우러진다. 이름 모를 향신료가 코를 간질이고, 원색적인 양탄자는 올라앉으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용잡화에서부터 앵무새와 토끼 등 애완동물과 고풍스러운 골동품까지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올드 수크와 함께 도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바로 ‘사막 사파리 투어’이다. 사륜 구동 SUV를 타고 도하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광활한 모래사막이다. 사막에 진입하기 직전,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면 준비 완료.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사막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사구를 달리는 차는 위아래로 숨 가쁘게 출렁거린다. 차가 뒤집힐 듯한 아찔한 상황을 수도 없이 연출해내면서도 운전기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경사가 80도에 가까운 사구 정상에서 추락하듯 달려가는 데에 이르면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요동치던 차를 멈추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이 눈을 아련하게 한다. 그리고 사막 끝에 드러나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는 사막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잡는다. 숨 막히는 사막의 더위를 깜빡 잊을 만큼 장관이 아닐 수 없다. T clip.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사막 사파리 투어 4륜 구동 SUV를 타고 카타르 남쪽 사막을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65달러, 4명은 1인당 55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도하 시티투어 가이드를 겸한 한국인 운전자와 승용차를 타고 올드 수크, 매시장, 웨스트베이 등 도하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75달러, 4명은 1인당 63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카타르 비자는 공항에서 신용카드(30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 문의 페가수스코리아(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예약 대행사) 02-733-3441 1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는 마치 신기루 같다 2 상상력을 자극하는 올드 수크의 양탄자들 3 이슬람 전통복장을 한 공예품들이 지갑을 열게 한다 4 사막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 카타르항공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기점으로 하는 카타르항공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낯선 항공사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한국인 승무원이 배치되어 있어 언어에 따른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쇠고기와 닭고기로 구성된 메인 요리는 한식 스타일로 조리되어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또 여유로운 좌석이 비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카타르항공은 현재 98대의 항공기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102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특히 도하를 경유하여 유럽 25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어 유럽을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다. 항공 리서치 전문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6개뿐인 5성급 항공사인 만큼 기내 서비스도 수준급이며, 경쟁력 있는 요금도 매력적이다.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 고객이라면 도하국제공항의 ‘프리미엄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9,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지난 2006년 완공한 프리미엄 터미널은 여느 항공사 라운지에서 맛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줄을 설 필요 없이 별도의 체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스파, 수면실, 샤워실,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경유지 도하에서의 스톱오버 프로그램은 덤이다. 문의 카타르항공 02-3708-8571, www.qatarairways.co.kr 유럽연합의 작은 거인 Brussels 브뤼셀 카타르 도하를 뒤로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도착한 곳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자리한 벨기에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스쳐가거나 건너뛰는 작은 나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가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남다른 저력을 발휘하는 국가이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가 브뤼셀에 자리잡고 있어 벨기에의 수도뿐 아니라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수준에 있어서도 여느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와플, 초콜릿, 맥주 등 벨기에의 먹을거리는 유럽에서도 유명하며, 최근 할리우드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도 벨기에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갔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브뤼셀의 상징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벨기에로 이끈다. 그랑플라스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예스러움과 현대인들의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음악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사람들은 과일과 시럽을 잔뜩 올린 와플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가게와 거리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199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대광장, 즉 그랑플라스이다. 직사각형의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정교한 조각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 건축물 대부분이 15~17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6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시청사이다. 그랑플라스의 건축물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한 외벽 조각으로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첨탑 꼭대기에는 브뤼셀의 수호천사인 미카엘 대천사가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있다. 시청사 옆길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브뤼셀의 또 다른 상징인 ‘오줌싸개 동상(마네캥-피스Manneken-pis)’을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 먼저 동상을 본 여행객들이라면 “애걔!”라는 실망스런 감탄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는 60cm에 불과한 데다, 여느 유럽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조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오줌을 누고 있는 이 꼬마 녀석에 얽힌 이야기는 자못 대단하다. 프랑스 군대가 브뤼셀에 불을 질렀을 때 이 꼬마가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고 하며, 14세기에 한 제후의 왕자가 오줌을 누며 적군을 모욕한 것이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줌싸개가 벨기에의 ‘수호 꼬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오줌싸개 동상은 수차례 약탈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벌거벗은 꼬마의 옷이 수백 벌에 달한다는 것. 외국 정상들이 브뤼셀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한 옷들로 그랑플라스의 왕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꼬마의 옷 중에는 한복도 있다고. 1 그랑플라스 시청사의 섬세한 외벽 조각 2 벨기에에 왔다면 와플은 꼭 맛봐야 한다 3 오줌싸개 동상 앞에 모인 여행객들 T clip. 벨기에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와플’이다. 와플이란 이름은 독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조는 벨기에이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벨기에 수도 이름을 딴 ‘브뤼셀 와플’과 동부 도시의 이름을 딴 ‘리에주 와플’이 그것이다. 브뤼셀 와플은 바삭바삭하고, 리에주 와플을 부드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랑플라스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플 가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바나나, 딸기, 크림, 초콜릿 시럽 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푸짐한 토핑을 올린 와플은 여행 중 간식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가격은 1~3유로 정도. 1 웅장하다 못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쾰른 대성당 2 쾰른 대성당의 아치형 중앙 회당 3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을 바라보고 있다 4 담소를 나누는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웅장한 자태에 반하다 Ko”ln 쾰른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쪽 국경을 넘어 독일의 쾰른으로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때문이다. 시내 중심에 157m의 높이로 솟아 있는 두 개의 첨탑은 웅장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건물 외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1996년 유네스코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쾰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쾰른 대성당이 지어진 것은 1248년부터이다. 1164년 한 대주교가 동방박사 세 명의 유해가 담긴 성물함을 가져왔고, 이를 안치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1880년 완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650년에 이른다. 이 때문에 건물 외벽의 색깔이나 석질이 조금씩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현재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첨탑이 서 있는 서쪽 입구로 들어서면 아치형의 중앙 회랑이 144m의 길이로 소실점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43m이며, 기둥에 조각된 석상들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다. 좌우 창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엄숙하고 경건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성당 내부에 서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게 된다. 젊은 낭만의 도시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룩셈부르크로 들어가기 전 들른 도시는 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이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 강을 따라 달리던 차가 하이델베르크에 들어서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도도히 흐르는 옥빛 강물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을 연결하는 고풍스러운 하우프트 거리 등이 방문객들을 낭만 여행으로 이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가 10여 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이 가운데 대학생이 약 3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1386년에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히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기 때문. 수백년의 세월 동안 학구열을 불태운 이 도시는 칸트, 괴테, 야스퍼스 등 세계적인 학자와 문학가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네카어강을 건너 독일의 유명 철학자들이 즐겨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게 된다. 하이델베르크가 ‘대학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중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눈에 들어온다. 세모꼴에 울긋불긋한 마을 지붕들 너머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고성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13세기에 축조되기 시작한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군주를 거치며 파괴되고, 복원되고, 증축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형식의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하다. 고성에 오르면 종탑, 성문탑, 루프레히트 궁, 프리드리히 궁 등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30년 전쟁과 왕위계승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성의 아름다움은 세월 속에서 더욱 여물어 여행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 Luxembourg 룩셈부르크 파리로 향하는 길에 방문한 룩셈부르크는 유럽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가,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아오며 중세 400년 동안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됐다. 룩셈부르크 독립의 꿈은 1839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지금은 유럽재판소, 유럽의회 사무국 등이 룩셈부르크에 자리하고 있어 브뤼셀과 함께 EU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외침에 대항해 단단한 방패를 들듯, 높은 성벽과 포대가 완고하게 도시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와도 같은 형국이다. 가장 유명한 성채는 ‘복포대Casemates Du Bock’이다. 군사적 요충지는 전망 또한 좋기 마련이어서 복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알제트 운하가 회색지붕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고, 숲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룩셈부르크의 지난했던 역사를 잠시 잊게 한다. 1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황금의 여신상이 있는 ‘헌법광장Constitution Square’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다. 페트루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그 중간 즈음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아돌프다리Pont Adolphe’가 멋들어진 아치를 자랑한다. 1903년에 완공된 아돌프다리는 높이 46m, 길이 153m에 이르는 석조 다리이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헌법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노트르담대성당Notre Dame Cathedral’이다.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 비교하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단정하고 간결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성모마리아 조각이 중심에 있는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외관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중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 그리고 벽면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들이 반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럽의 문화 수도 Paris 파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파리는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빠질 수 없는 곳일 뿐더러 몇 번을 방문한다고 해도 질릴 리 없고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고, 세계 최대의 개선문으로 꼽히는 에투알 개선문의 당당한 자태는 변함이 없었다. 세계 각국의 유물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루브르박물관과 19세기 인상파 작품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 역시 파리를 방문했다면 놓칠 수 없는 명소이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따라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뤽상부르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인 만큼 여유로운 휴식과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로 했던 것. 뤽상부르공원은 1615년 건축된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프랑스식 정원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며,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화창한 날씨라면 뤽상부르공원은 온통 일광욕을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공원 곳곳에 놓인 벤치와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햇볕을 만끽한다. 스케치북에 공원의 모습을 담는 젊은 미술학도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그늘진 숲길과 넓은 잔디밭, 수많은 조각상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햇볕 다사로운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 보자. 짧은 시간이지만 파리지앵이 되어 보는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몽마르트르는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흘러넘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얗게 빛나고, 계단 옆 잔디밭에는 햇볕에 취한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다. 언덕의 높이는 130m에 불과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오른편으로 가면 에펠탑까지 조망할 수 있다. 언덕 한쪽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예술의 향기를 뿜어낸다. 여행객들과 그들의 초상화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려내는 화가들은 몽마르트르의 고유한 풍경이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나 와인을 음미하며 이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술은 한 잔이면 족하다. 몽마르트르의 독특한 분위기에 먼저 취하기 마련이니까. 1 숲과 마을 그리고 알제트운하가 장관을 이루는 복포대 2 마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3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는 화가 4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외관은 단정하고 간결하다 5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다리 6 뤽상부르공원은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다 7 샹젤리제 거리를 오가는 파리지앵들 8 센강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파리시내의 야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안정적 가스源 확보… 자원시장 선점

    안정적 가스源 확보… 자원시장 선점

    23일 한·우즈베키스탄 정상회담 직후 계약이 체결된 ‘수르길 프로젝트’ 사업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수교 이후 에너지 분야 최대 협력 사업이다. 수르길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전략적 동반자 선언을 하면서 양국이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양해각서(MOU)와 합작투자회사 설립 협정서 등이 체결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기를 맞았었다. 수르길 프로젝트는 한국 컨소시엄(한국가스공사·호남석유화학·STX에너지)과 우즈베키스탄 국영석유회사 ‘우즈베크네프트가즈’가 5대5의 지분으로 참여한 합작회사를 통해 진행된다. 41억 6000만 달러에 이르는 사업비 중 70% 정도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나머지는 참여 회사의 지분출자 방식으로 조달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호남석화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우즈베크 측과 수르길 가스전에 대한 사업성 평가를 진행했고, 평가가 완료되면서 첫 삽을 뜨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의의는 안정적인 가스 공급원 확보라는 점이다. 수르길 가스전의 매장량은 액화천연가스(LNG)로 환산할 경우 9600만t 정도. 한국이 3년 7개월간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또 석유화학 플랜트에서는 고부가 석유화학제품도 생산, 우즈베크는 물론 인근 독립국가연합(CSI)과 유럽, 중국 등에 판매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이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자원 확보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가는 것은 물론 석유화학 제품의 판로 확대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양국 실무자들은 ‘한·우즈베키스탄 한시적 근로활동에 관한 협정’, ‘산업·에너지 협력 파트너십을 위한 MOU’에도 서명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에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영빈관에서 엄 안토니나 사마르칸트 한국어학과장 등 한·우즈베크 문화교류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2012년 수교 20주년을 맞아 양국 문화계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약 18만명의 고려인 동포와 1700여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카리모프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난 뒤 2008년 2월 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데 이어 2010년 다시 한국을 찾는 등 지금까지 이 대통령과 모두 다섯 차례 만남을 가지며 돈독한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24일까지 국빈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머문 뒤 카자흐스탄으로 떠난다. 타슈켄트 김성수기자·서울 이두걸기자 sskim@seoul.co.kr
  • 사후생 인정할 때 완성되는 삶

    ‘인간의 도덕이 성립하려면 사후 생의 존재가 요청된다.’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성에 의존한 합리주의의 정점에 있었던 칸트의 사상에선 조금 비켜난 듯한 이 말은 지금의 생이 전부가 아니며 죽음 뒤의 또 다른 생을 인정하는 파격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도 ‘잘 죽는 법’(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고 실천의 움직임이 요란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죽음의 순간, 즉 임종까지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그에 비해 인류는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생을 알고 대비하기 위한 연구이며 노력을 끊임없이 해온 역사를 갖는다. ‘티베트 사자의 서’며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은 그 부문에서 걸출한 텍스트로 여겨진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과 영혼’ ‘식스 센스’ ‘디 아더스’ 같은, 죽음 이후의 영역을 다룬 책과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 사후 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고민의 정도가 어떤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관심과 천착의 흔적들은 대부분 종교적, 혹은 집단의 성향에 눌려 객관적이고 실천적인 지침과 가이드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가 내놓은 ‘죽음의 미래’(소나무 펴냄)는 사후 생을 인정하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방법을 소신있게 제시한 독특한 책이다. 사학자이면서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딴 종교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한국죽음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국내 죽음학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 책은 그간 나왔던 관련 저술이며 학술 논문, 예술작품을 비교해 죽음 직후 가게 된다는 , 영계(靈界)를 중심으로 한 사후 생을 소개하는 구성이다. 이미 발표되고 소개됐던 결과물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제시하는 접점들을 요약 정리하고 있지만 죽음학, 특히 사후 생에 대한 그의 학문적 관심과 노력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 준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임종의 순간부터 몸을 벗고 영계에 진입하는 모습, 그리고 영계에서 또 다른 생을 준비해 환생하는 과정을 임사체험이며 최면을 통해 비교적 사실적으로 짚어낸다는 점이다. 영계 또는 사후 세계로 표현되는 죽음 너머의 삶과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안내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책에서 또렷이 드러나는 메시지는 역시 ‘사후 세계를 이해해야 지금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사후 생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이며, 앎을 바탕으로 죽음 뒤의 생을 설계하라.” 1만 3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시론] 빈라덴 제거, 무엇을 가르쳐 주나/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시론] 빈라덴 제거, 무엇을 가르쳐 주나/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미국 정보공동체의 추적을 받아 오던 21세기 최고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사살되었다. 언론은 검거과정에서의 의문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악독한 어느 테러리스트의 죽음에서, 국가운영의 참된 모습을 보이고 무고한 국민의 원혼을 위무함으로 말미암은 정의의 구현보다, 미국이 처음부터 빈라덴 살해를 정당화하고자 기획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테러범의 살해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법치국가에서 무고한 시민 단 한 사람에 대해서라도 공권력의 압제적 대응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빈라덴은 누구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테러를 자행해 온 그는 2001년 9월 11일 새벽, 연료 가득한 대형 점보비행기 4대를 하이재킹하여 미국 세계무역센터빌딩, 펜타곤 그리고 의회의사당으로 돌진시켰다. 무려 2996명의 민간인을 사망케 한 전대미문의 테러를 기획하고 지시한 사람이다.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외부세력에 의해 본토 공격을 당했다. 빈라덴은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비무장의 민간인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한 테러를 자행했던 것이다. 일찍이 인류에게 인간이 왜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자유와 인권이 왜 그렇게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었던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영원한 도덕법칙의 하나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할 것이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러는 본질적으로 특정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분노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민간인에게 퍼붓는다는 점에서 인간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상실케 하는 종결자적 범행이다. 국가경영자들은 냉정해야 한다. 그동안 ‘그라운드제로’를 상징물로 남겨두면서 처절하게 그 비참함을 되뇌던 미국은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분노를 잊지 않고 정의의 구현이라는 목표로 임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범 응징의 각오를 밝혔다.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감행하며 응징에 나섰다. 연방수사국(FBI)은 전 세계 10대 지명수배자의 1순위에 빈라덴을 올려놓고 그의 목에 최고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빈라덴은 휴대전화기나 팩스, 메일 같은 현대 전자 장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비밀의 손으로 불리는 CIA는 10년간의 추적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 관타나모 테러범 수용소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잡은 것이다. 미국 정보공동체는 빈라덴의 심복이 옛 친구에게서 “어떻게 지내느냐. 보고 싶다.”라는 안부전화에 대해 “예전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다시 같이 지내고 있다.”라는 대답을 단서로 빈라덴의 은신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원래 국가 위신과 명예는 국가안보의 중요한 속성이다. 미국은 여와 야를 초월하여 10년 가까이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를 추격했고 드디어 목적을 이루었다. 일관된 국가안보정책의 결과물이었다. 부시와 오바마는 정당과 정치관이 다름에도 초국가적 안보위협세력인 대(對)테러 정책에 대응하는 문제에서는 합일된 모습을 보였다. 빈라덴을 정의 앞에 데려 오거나, 정의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무릎 꿇리거나의 양자택일에 대해서 미국의 여·야는 일치했다. 빈라덴의 저격은 유사한 수준의 테러리스트 반열에 있는 북한 김정일 체제에도 경각심을 일깨워 그에 대한 경호가 한층 강화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은 또다시 영문 모를 불편을 겪을 것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외교·안보 정책이 바뀌고, 정보기구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정보활동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진정한 교훈이 있다. 미국 정보공동체가 보여준 빈라덴에 대한 대처는 바로 우리의 문제이고, 참된 국가경영의 첫 단추는 국가실패 사례를 잊지 않고 합일된 마음으로 국민의 분노를 위무해 주는 것임을….
  •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 대지진은 신의 징벌인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3·11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의 침몰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과 대형 쓰나미는 수만명의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폭발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불러왔다. 이러한 대재앙에 대해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경고’로, 그리고 이시하라 도쿄 시장은 ‘천벌’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세인의 빈축을 샀다.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는 최면상태에서 LA, 샌프란시스코, 뉴욕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았으며, 일본의 대부분도 물속에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과 중국의 민주화를 예언한 바 있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의 풍수사상가인 남사고 선생이나 19세기 조선 헌종 때의 예언가인 송하노인도 일본 침몰을 거론한 바 있다. 특히 1983년 자신의 임종을 예고했던 탄허 스님은 일본의 3분의2 이상이 바다로 침몰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히구치 신지 감독이 2006년에 발표한 영화 ‘일본침몰’은 바로 그 같은 일본국민의 잠재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스루가만에서 진도 10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한 후 도쿄, 규슈 등 일본 전역에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가라앉는다는 내용이다. 지금 그 영화의 내용은 일본인들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대형 자연재해는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일까? 이 물음은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에서도 핫이슈였다. 리스본 대지진은 가톨릭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대축제인 만성절의 오전 미사 중에 발생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전염병이나 대형 자연재해를 신의 징벌로 인식했으며,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죄악에 물든 리스본이 신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25만명의 리스본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2만~3만명의 사망자를 낸 대지진은 동시에 가톨릭에 대한 심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은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신의 징벌이 아닌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칸트조차도 말년의 저술 ‘만물의 종말’에서 자연재해와 같은 종말적 사건을 불의에 대한 징벌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 500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침략을 당한 우리 국민들로서는 일본 대지진 ‘징벌론’을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불편한 과거를 초월한 일본 돕기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까지 동참했다. 우리 국민들의 반응에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조차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속셈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대재앙 속에서도 독도를 자국 영토로 수록한 교과서 검정을 단행했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부장은 한국이 지진 참사를 당한 일본에 독도를 내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망언까지 했다. 자국 영토가 침몰하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독도를 탐하는 후안무치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 지성인의 모습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일본론’이라는 글에서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오규 소라이(荻生 일본 정치인들이 3·11 대지진을 자신들의 부당행위에 대한 신의 징벌로 인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 [글로벌 시대] 맛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장홍 프랑스 알자스 주정부개발청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맛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장홍 프랑스 알자스 주정부개발청자문위원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난세에는 적절한 분석일지 모르나, 평화의 시대에 권력은 맛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즉 맛으로부터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부터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속적으로 이런저런 맛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 어머니의 손맛에서부터 다국적 거대 식료품기업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때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양하고 새로운 맛에 길들여지며 살고 있다. 오늘날 다섯 살짜리 꼬마는 자신의 증조부가 평생 섭취했던 당분보다 더 많은 당분을 이미 소비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맛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면에는 식료품산업 분야의 거대 다국적기업의 이윤과 그 이윤을 바탕으로 한 부와 권력의 논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미각을 길들여 노예로 만들려 한다. 이는 맥도날드나 코카콜라를 예로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맛이란 비단 음식이나 음료에 한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미감을 표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적용하면 정치적 성향이나 예술적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정당의 정치적 성향이나, 어떤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취향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자신이 지닌 맛 혹은 성향을 드러내는 행위는 곧 자신의 자유와 권력을 표현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맛을 소유한 자에게 자연스레 권력이 다가오는 것이다. 일찍이 칸트는 “맛에 대한 분별력은 인간의 독립성과 도덕적 자유의 상징”이라고 설파했다. 어떤 의미에서 맛의 표현은 가장 원초적이고 심오한 개인적 선택이자 자유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포기할 수 없듯이 어쩌면 그보다 더 고유한 맛에 대한 선택과 표현의 자유를 쉽게 포기해서도, 남에게 일임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여류시인 시모니드 드 세오스(Simonide de Ceos)는 부자로 태어나는 것이 나은지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 나은지를 묻는 한 여왕에게 대답한다. “부자죠. 왜냐하면 부잣집 근처엔 언제나 천재들이 모이니까요.” 그렇다. 천재들이 그랬듯이 맛도 언제나 권력의 시종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즐기면 시간과 더불어 일반 대중들도 따라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극적인 아이러니는 매번 진정한 맛이 표출될 때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가 온전히 드러날 때마다 권력은 전복의 위기를 맞는다는 사실이다. 1848년 프랑스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 때 개혁파들은 지방을 돌면서 방켓(banquets·연회)을 열었고, 이를 근간으로 개혁파들은 ‘7월 왕정’을 뒤엎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발판으로 삼았다. 그 이후로 “공화국은 식탁 위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격언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선거나 기관의 행사에는 소위 ‘공화국 방켓’이 베풀어지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데, 맛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와인과 외교’의 저자인 일본의 언론인 니시카와 메구미는 같은 책에서 ‘향연은 외교의 중요한 도구 중 하나’ 혹은 ‘형태를 바꾼 정치’라 전제하며, “향연에는 다양한 정치적 시그널과 메시지가 가끔은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포함된다.”라고 주장하는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최근 들어 한식의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맛의 중요성에 대한 정치권의 뒤늦은 눈뜸이라 할까.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기간 동안 외국의 귀빈 등에게 한식을 알리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자동차 등의 산업도 중요하지만, 음식은 언어 다음으로 문화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지고 집약된 한 나라의 상징이란 점에서 볼 때, 한식의 세계화는 체계적으로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일본의 스시,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나 피자에 버금가는 한식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 [열린세상] 국가와 종교의 관계/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국가와 종교의 관계/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얼마 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드린 통성 기도가 이른바 종교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종교 의례에서 빚어진 이 해프닝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이 신앙의 자유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 왜 대통령 개인의 신앙 표현을 ‘국격’의 문제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일까? 세계적인 종교신학자 한스 큉은 세계 평화는 종교 대화와 종교 평화를 전제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 신앙들이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 대화를 통한 일치와 화해 노력은 그만큼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에 앞서 칸트는 종교 대화의 단초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 신앙의 방식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의 참된 종교’만이 있다는 사실에서 찾으려고 했다. 일국의 왕이나 대통령이 국가 발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자신의 종교가 가장 우월하다는 근본주의적 신앙의 차원에서 본다면 논쟁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각자의 신앙 행위를 존중하는 이른바 ‘참된 종교’의 차원에서 본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의 ‘무릎 기도’가 갈등 요인으로 등장한 것은 서로 다른 신앙 방식들의 종파적 관점 때문이다. 이른바 ‘무릎 기도’ 사건은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을 저지하려는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 대통령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기획했다는 음모론까지 유포되고 있다. 정작 개신교계 내부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대통령이 국가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왜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러나 불교계의 반응은 개신교와는 달리 매우 비판적이다. 그것은 ‘국가 수장으로서 지도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이며, ‘일부 공직자들의 종교편향’을 정당화하는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불교계 행사에서도 대통령이 108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불교계에서는 이 사건을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 통제, 봉은사 땅 밟기, 템플스테이 증액 예산 누락처럼 차별과 무시의 관점에서 읽으려는 것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의 신앙 행위에 대한 두 종교의 상이한 해석은 종파적 관심의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종교 다원화 사회에 걸맞도록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우리 사회도 종교 갈등이 심화될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신앙 행위로 인하여 종교 갈등이 확산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 국민 모두가 정교분리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에, 종교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정치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다종교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 국가적 종교의례에서 대통령 개인의 신앙 표현을 지양하여 단지 ‘참관’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정치와 종교의 밀월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은밀한 거래는 ‘표’와 ‘돈’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종교계 인사들이 스스로 납세의무를 이행하고 정부에 대하여 억지예산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부당거래는 원천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역시 고유한 종교 활동에 대한 국세 지원은 삼가야 한다. 최근 불교계가 불만을 토로한 ‘템플 스테이’ 예산이나 서울지역 일부 대형교회의 음향기기 예산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특정한 종교단체가 국가 정책을 뒤흔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최근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정부가 추진한 이슬람채권법을 좌초시킨 것과 같은 일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의 수피즘이 강조하는 ‘자기 비움’은 기독교의 ‘거듭남’이나 불교의 ‘무아’와 같은 것이다. 종교가 그 본연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다른 종교 신앙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벌거벗은 당당함 덩달아… 훌렁 벗고 싶다

    벌거벗은 당당함 덩달아… 훌렁 벗고 싶다

    ‘참된 것’, ‘착한 것’, ‘아름다운 것’을 분리한 사람은 널리 알려졌듯 철학자 칸트다. 진/위, 선/악, 미/추의 판단영역은 서로 다른 범주라는 것. 참되고 착해야만 아름답다는 선입관을 버려야 인식론, 윤리학과는 별개의 영역인 미학이 탄생한다. 질문도 하나 던진다. 아름답기 위해 반드시 참되고 착하게 꾸며야 하는가. 위대하다는 철학자의 말씀이니 일단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긴 한데, 보기에 불편한 작품 앞에 직접 서게 되면 “아름답다.”는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11일 개막해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안창홍(58) 개인전 ‘불편한 진실’에 도전해 볼 만하다. 옛 사진관의 인물사진을 찢거나 구멍 내는 방식의 기괴한 인물 작품들을 선보여 왔던 작가는 이번엔 노골적인 누드화를 들이밀었다. 한껏 발기된 남자 성기에다 여자 성기의 벌건 속살까지 그렸다. 크기도 한껏 키워 그림 속 인물은 실제 인체 크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모델도 모두 주변의 일반인. 설득 끝에 모조리 벗겼다. 누드 인물의 주된 배경은 휴지통이 엎어져 있거나 심지어는 죽은 쥐가 나뒹구는 작업실이다. 인간 존재의 혼란스러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벌거벗은 몸뚱이에는 파리를 붙이기도 하고 아예 해골 인간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는 ‘메멘토 모리’, 즉 유한성을 잊지 말라는 경고다. 이렇듯 살벌한 풍경 속에 벌거벗긴 채 서 있음에도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당하다. 눈빛도 뜨겁게 살아 있다. 혼란과 죽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자의식의 발로다. 고졸 학력으로 기성 화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작가 자신의 자존심이 투영됐다. 때문에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훌렁 옷을 벗어 던져야만 할 것 같다. 그림이 주는 불편함의 진짜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기존 누드화의 모델 포즈는 관람자가 바라보는 모습으로 구성됐다면, 내 누드화는 모델 스스로가 관람자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구성됐다. 그래서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전시장에서 만난 안 작가의 얘기다. 그와 좀 더 얘기를 나눠 봤다. →일반인을 벗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게 내 능력이다. 잘 꼬드기는(웃음). 누드화는 모델과의 공감이 제일 중요하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다 결국 친구가 된다. 부부 누드화의 남자 모델은 문신업자인데 처음엔 저항하더니 나중엔 재미 붙여 부인하고 같이 모델이 돼 줬다. 지금은 아이들까지 데려와서 가족 누드화를 그리고 있다. 스케치는 해 둔 상태고 다음 전시 때 보여주겠다. 할아버지 모델은 설득에만 10년이 걸렸다. 도시의 정신노동자가 갖고 있지 않은, 농촌의 오래된 육체노동자의 몸이 가진 숭고함을 그려내고 싶어서 오랜 기간 매달렸다. 그렇게 힘들게 모델이 되어 주셨는데 정작 할아버지는 완성된 그림에 별 관심이 없더라. 하하. →모델료는 두둑히 주나. -그냥 마음으로…. 흐흐. 거듭 말하지만 누드화는 공감이 제일 중요하다. 대가를 주고받는 것보다는 친구가 돼서 함께 하는 거다. →어렵게 일반인들을 섭외하는 이유는. -몸 자체가 정직하지 않나. 모델들은 신경 안 쓴다고 해도 관습적인 포즈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냥 길거리를 다니다가 저 몸을 한번 그리고 싶다, 그리고 싶어 미치겠다 싶으면 쫓아다니면서 설득한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기대했던 매력이 안 나오는 몸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몸도 있고 그렇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국내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마이너리티로 어렵지 않은가. -그게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라고 본다. 예쁘고 고운 것만 찾다 보니 전반적으로 작품이 하향평준화되는 느낌이다. 예술이라기보다 그냥 공예품 같은 느낌…. 작품의 상업성엔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나만의 철학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 꼭 당대가 아니더라도 결국 평가받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예술가는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 혜택을 받았으니 생활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회에 재산을 남긴다는 각오로 작품에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고 보니 부인 누드화가 없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설득해도 안 된다. 하하.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6개월 함께 산 남편 알고보니 여자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내 남편, 알고보니 여자?! 인도의 한 여성이 6개월이나 함께 산 남편의 정체가 여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타임즈 인도판이 보도했다. 인도 오리사주 북서부의 로우르켈라에 사는 미나티 카투아라는 27세 여성은 시타칸트 로트레이(28)라는 남성과 결혼한 뒤 6개월이나 그의 정체’를 모르고 살았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신체적인 접촉을 원하지 않았고, 단지 ‘종교적인 이유’라고 변명해 왔다. 하지만 궁금증과 의심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남편이 샤워를 하는 사이 억지로 욕실 문을 열었고, 여성인 그의 몸을 목격했던 것. 카투아에게 정체를 들킨 그(또는 그녀)는 아내의 명의로 빌린 대출금과 자동차·보석류 등을 챙겨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카투아의 신고를 접수하고 수배령을 내리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G20 지도 이념’으로서의 공정한 경쟁/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G20 지도 이념’으로서의 공정한 경쟁/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최근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김탁구’ ‘자이언트’ ‘동이’를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정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김탁구’는 치열한 두 경쟁자가 화해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 온 제3자에게 대표직을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중심 주제였던 것이다. 다른 두 개의 드라마 역시 불공정한 경쟁자를 징벌하는 방향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 사회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그렇다면 ‘실용정부’를 표방하였던 이명박 정부가 8·15 국정연설을 통하여 ‘공정한 사회’를 후반기 국정 화두로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철학자의 정치적 이상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자·플라톤·세네카는 이상국가 건설에 실패했으며,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 역시 헨리 8세가 휘두른 권력의 칼날에 희생되고 말았다. 하이데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총장 취임 연설문 ‘독일 대학의 자기주장’은 히틀러 정권을 순화하기에 역부족이었고, 박종홍의 ‘국민교육헌장’ 역시 박정희 유신 독재를 바로잡지는 못하였다.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실천 정신이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버드대의 정치철학자 롤스에 의하면 국가 사회에서의 정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들이 이전보다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만 받아들일 수 있는 ‘차등의 원칙’에 의하여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또한 차등의 원칙은 ‘원초적 상태에서의 무지의 장막’과 ‘기회균등의 원칙’을 전제하는 경우에만 공정하다고 인정된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의 특채 과정에서처럼 특정인을 선발할 목적으로 마련한 채용기준은 이 두 가지 전제를 무시한 불공정한 것이다. 따라서 롤스의 정의론에서는 현재의 특권적 지위를 공정하게 확보했는가에 대한 검증 요구가 무한정 소급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에서도 베스트 셀러로 부상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이르는 세 가지 방식, 즉 공리·자유·미덕을 소개하고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그 경우에 소수자의 권리를 위축시키거나 부정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타인이나 공동체의 지향 가치와 충돌할 경우에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뒤따른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좋은 삶’에 도움이 되는 선과 미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의 자유를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샌델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모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그 스스로는 공동체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노정한다. 샌델이 제시한 세 가지 길은 정의에 이르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주의와 입장을 선택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정의 그 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정의를 자신의 입장에서만 규정할 경우,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언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정한 사회’의 이념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할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 하원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환율조작을 겨냥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발의하면서, 이 문제를 G20에 상정할 태세를 갖추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우리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정한 경쟁’을 G20의 지도 이념으로 제시한 그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현실 문제가 된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유엔의 창설 정신이 되고, 한스 큉의 ‘세계윤리’ 구상이 세계적인 경영자들의 지도 이념이 된 것처럼, 우리 정부가 제시한 ‘공정한 경쟁’이 G20의 지도 이념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 이념적 토대와 실천 강령 구축에 만전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최악 치닫는 키르기스 민족분규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의 민족 간 유혈 충돌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과도정부가 오시에 이어 13일(현지시간) 인근 잘랄라바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가 키르기스 내 자국 공군 기지에 공수 부대를 추가로 보내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도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폭도들 경찰서 장악 무기탈취 오시에서 지난 10일 시작된 민족 분규는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다. 잘랄라바드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 김은 AFP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리에서 총성이 계속 울리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시민은 시내 곳곳의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고 전했다. 폭도들은 경찰서를 장악하고 지역 군부대에서 장갑차와 무기류를 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르기스 정부와 군 발표를 종합하면 지금까지 최소 116명이 숨지고 1247명이 다쳤다. 여기에는 잘랄라바드의 수자크 마을에서 사망한 우즈베크계 주민 30명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가운데 파키스탄 학생 1명이 살해됐으며 15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파키스탄 외무부가 밝힘에 따라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 내부 문제를 넘어서게 됐다. 여성과 어린이 등 수천명의 우즈베크 소수민족이 총격을 받으며 국경으로 피신했고, 국경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린이들의 주검 등이 나뒹굴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지금까지 7만 5000명이 국경을 넘어왔다고 밝혔다. 사태가 확산되자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이날 오시와 인근 카라수, 아라반 지역에 통행금지 조치를 내리는 한편 잘랄라바드 등지에 비상사태를 선포, 예비군을 동원하고 특수부대원들을 급파했다. 또 정부군과 경찰에 필요할 경우 폭도를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세력들이 27일 실시될 새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오시에서 이번 소요를 부추겼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배후설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1일 오툰바예바 대통령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한 러시아가 이날 키르기스 주재 러시아 공군기지의 보안 강화를 위해 낙하산부대 1개 대대를 추가로 파견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키르기스 칸트에 있는 러시아 공군기지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20㎞ 떨어져 있으며 미군 기지와는 30㎞ 거리에 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키르기스 과도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으나 시위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러시아 긴장 고조 미·러 간 각축은 지난 4월 친미 성향의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유혈시위로 몰아낸 뒤 집권한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대통령이 ‘러시아 접근 카드’를 흔들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물류 수송 등 전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하버드 최고 명강의 ‘정의’를 만나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미국 중앙정보국 지역 국장이다. 테러 용의자를 붙잡았다. 맨해튼을 폭파할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폭탄을 설치했다고 의심할 근거도 있다. 시계는 째깍거리는데 용의자는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며 폭탄 위치를 털어놓지 않는다.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폭탄 설치 장소와 제거할 방법을 자백할 때까지 그를 고문해야 옳을까. 다음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군인 4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어린 아이가 끼어 있는 현지 염소치기들을 만났다. 이들을 그냥 풀어주면 소재가 탈레반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미군들은 이들을 사살하느냐, 풀어주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염소치기들을 놓아줬으나 미군들은 곧 중무장한 탈레반 병사들에게 포위됐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군 16명까지 숨졌다. 염소치기들을 사살했어야 옳았던 것일까. 자유 민주 사회에선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한다. 요즘 우리 사회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너무 혼란스럽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대한 여러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를 통해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논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27세에 하버드 최연소 교수가 된 샌델은 지난 30년 동안 정치철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정의를 다룬 뛰어난 철학서를 소개하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오늘날의 법적·정치적 논쟁을 다루며 최근 20여년 동안 하버드 최고 명강의로 꼽혔던 그의 ‘정의’ 수업을 글로 옮긴 것이다. 책의 미덕은 독자들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평등을 옹호하는 평등주의 등 저마다 정의를 대변하는 이론들의 장단점을 다양한 각도의 질문과 논쟁을 통해 스스로 살펴보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의를 바라보는 방식을 행복의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로 정리하며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근현대의 이마누엘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두루 섭렵한다. 샌델 교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 정의에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의 뿌리가 깊은 것이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1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 페이지 북’을 아시나요

    ‘원 페이지 북’을 아시나요

    ‘원 페이지 북(One Page Book)을 아시나요?’ 원페이지북은 400~500쪽이 훌쩍 넘는 두툼한 책의 줄거리, 핵심 가치 등을 한두 쪽으로 요약 정리해 놓은 일종의 서평(書評)이자 ‘서머리(Summary) 북’이다. ‘죄와 벌’, ‘노인과 바다’, ‘구운몽’, ‘홍길동전’ 등 고전 문학들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훤하고, 공자·묵자·소크라테스·칸트·푸코 등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을 읊조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할 시간은 빠듯하고 알아야 할 것은 많은 그 시절, 두껍고 난해한 책을 몇 장으로 정리해 놓은 서머리북은 ‘효율적 지식 체득’에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나중에 해당 책을 찾아 읽게 하는 유인 효과도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한 선의(善意)가 자칫 수박 겉핥기식에 머물며 ‘부박한 교양인’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국민독서문화진흥회는 ‘제1회 전 국민 독서요약 대회’를 연다. 홈페이지(www.1pagebook.com)에서 독서요약 양식을 다운받은 뒤 선정도서 목록 가운데 1권을 선택해 읽고 요약, 다음달 22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1차 심사를 거쳐 6월5일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본선 대회를 갖는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노트북 등 상품도 있다. 대회 취지는 이미 만들어진 원페이지북을 널리 읽히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 학생, 일반 모두 책을 꼼꼼히 읽고 원페이지북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극복하자는 의도다. 대회에 참가하기만 해도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독서 요양 훈련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정정식 원페이지북 국민독서운동본부장은 “남이 정리한 내용을 이용하기만 하는 것은 원페이지북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자신이 직접 책을 읽고 자신만의 원페이지북을 만든 뒤 늘 가깝게 놓고 펼쳐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사상과 유사하지만 진일보한 것으로, 현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 가까운 구상이었다는 주장이 일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24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을 통해 “안 의사가 유교와 기독교(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교도들처럼 부정한 명령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군주제를 수립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칸트의 국가론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었으며, 이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의사 평화회의는 EU에 가까운 구상” 안 의사의 구상은 뤼순을 한·중·일 3국의 군항으로 삼고, 이곳에 ‘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것으로, ‘평화회의’가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軍團)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이는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 전쟁을 방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세계정부’를 추구하지 않은 칸트의 사상과 비교될 수 있다고 사사가와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평화회의’는 군사·재정적 권한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EU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이 구상이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기 위해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주최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 사법관할이나 심리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한·중 학자들의 주장도 발표됐다. ●“안중근 재판 불법적으로 이뤄져”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와 두원중(杜文忠) 중국 서남민족대 교수는 공동논문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 및 그에 대한 검토’에서 “안중근 저격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난 만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법정이나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했는데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며 “사법관할상 합법적이지 않은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 의사의 저격은 군인이 전투 중에 적의 수뇌를 사살한 것이지 사사로운 살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정원 국민대 교수도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 형법을 적용한 안 의사의 재판은 1905년 2차 한일협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은 일본에 단지 외교권을 넘긴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민병과 의용병 등의 교전자격을 인정한 1907년 헤이그협약에 따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 의사가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신의의 정치와 계몽의 정치/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열린세상] 신의의 정치와 계몽의 정치/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히틀러의 독일제국이 몰락한 후에야 독일 국민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행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나 칼-오토 아펠, 그리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전쟁 동안 그들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의식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독일이 국민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무렵에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는 ‘계몽’을 강조하였다. 계몽이란 미성년에서 성인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칸트와 당시 계몽주의자들은 자유, 세속주의, 인류애, 세계주의의 가치를 중시했다. 독일제국이 유대인 학살 등 휴머니즘을 경시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상 전례 없는 도탄과 기아상태에서 국가 재건의 기치를 내걸면서 다른 계몽적 가치들을 무시했던 사실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이성의 ‘사적’(私的) 사용이 주도적이었던 데 반하여 이성의 ‘공적’(公的) 사용은 너무나 미미했다는 점이다. 칸트가 말한 이성의 사적 사용이란 법 규정을 기계적으로 준수하는 것이다. 공직자나 성직자는 부여된 임무를 규정에 맞게 수행할 책무가 있으며, 규정에 저항하거나 부정할 경우에는 문책을 감수해야 한다. 히틀러 제국의 대다수 독일 국민들은 이성의 사적 사용에 충실한 삶만을 살았다. 해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 수준에 해당된다. 반대로 이성의 공적 사용은 규정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전체 공동체나 세계시민사회, 그리고 진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학자는 규정이나 제도의 문제점을 성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반성적 활동은 무제한의 자유가 요구되는 ‘신성한 책무’이자, 성숙한 어른이 책임 있게 판단하는 계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건전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의 조화가 요구된다. 약속이나 법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태도나, 법 체계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태도는 동시에 요구되는 가치들이다. 그중 하나만을 집착하면 국가적 재난과 비극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칸트는 한 시대가 다음 세대에게 잘못을 고칠 수 없게 하고 계몽을 수행할 수도 없게 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침해이며, 따라서 후속 세대들은 그런 불법적인 결정을 거부할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계몽의 과정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구상된 수도권 해체전략 카드가 차기 대권구도를 판가름할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정치권은 거의 코마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신의론’과 ‘국토 균형 발전론’을 내세워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결정을 고수하는 것만이 신의를 지키는 일이고, 수도권의 해체를 통해서만 국토의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국민에 대한 약속, 즉 신의는 세종시 문제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며, 다른 핵심가치에서도 존중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 박근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인으로서 성실 의무를 다하는지를 물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지지 정당을 별도로 꾸리는 것이나 당내 계파 정치인들에게 일방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원칙과 신의에 맞는 일인가? 생태군락은 특정 생물 종이 가장 살기 좋은 곳에 형성된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적소(適所, niche)라고 한다. 오늘날 수도권의 번영은 지난 6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일구어낸 다각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노무현 정부의 수도권 분산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조차도 시행한 적이 없는 과격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유지정치가 이회창과 박근혜 두 정치인에 의하여 계승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아이러니이다. 적소가 훼손되면 생태군락도 사라진다. 따라서 국토의 균형발전은 수도권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역 혁신도시의 적소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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