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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홈플러스, 亞 유통사 첫 ‘유럽유통연합’ 가입

    고품질 상품을 저렴한 PB로 제공 전망 홈플러스가 해외시장 공략을 향한 첫발을 뗐다. 아시아 유통 회사로는 처음으로 유럽 최대 유통사 연합인 유럽유통연합(EMD)에 가입하면서 영국 테스코와 결별 후 주춤했던 글로벌 경쟁력을 다시 되찾을 가능성을 키웠다. 홈플러스는 스위스 파피콘 파노라마호텔에서 EMD와 회원 가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EMD는 1989년 설립된 유럽 최대 규모 유통연합으로 독일 마칸트, 노르웨이 노르게스그루펜, 스페인 유로마디 등 20개 국가 20개 유통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회원사들의 연간 매출은 지난해 기준 총 258조원이다. 월마트를 제외하면 세계 최대 유통그룹이다. 이번 가입으로 홈플러스는 EMD의 막강한 유통망을 이용해 유럽의 고품질 상품을 공동으로 대량 매입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자사 브랜드(PB) 상품을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국내 우수 제조사들의 유럽 수출 발판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홈플러스는 우선 연내 시리얼, 배터리, 맥주, 감자튀김, 치즈, 파스타 등 일부 식료품 및 잡화 상품에 대한 공동 소싱을 검토 중이다. 3월에 론칭이 확정된 시리얼은 시중 브랜드 대비 최대 40% 저렴한 수준에 선보일 예정이며, 다른 상품들도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할 방침이다. 이후 매년 EMD와의 거래 규모를 10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2015년 테스코의 홈플러스 매각 후 홈플러스는 글로벌 소싱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가입을 계기로 2021년까지 글로벌 소싱 규모를 1조원대로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국내 1위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은 “다양한 글로벌 구매 채널을 확대해 고객에게 즉각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내 협력회사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 EMD와 긴밀하게 협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강남순의 낮꿈꾸기] 칸트마저 피할 수 없었던 인식의 사각지대… 당신은 어떤가요

    합리적 존재 범주에 여성은 포함 안시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 믿어 의심치 않아 한 종류의 차별에 민감성 높다 치더라도 다층적 차별 따른 인식 사각지대 불가피 지속적인 학습 과정 통해 인지 확장 필요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흑인 학생은 반인종차별을 위한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해 온 인권운동가이다. 백인 학생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위한 활동을 해 오던 사람이다. 발제 시간에 섹슈앨러티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발제 후 흑인 학생의 코멘트가 논쟁의 발단이다. 흑인 학생은 자신이 이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지난 한 학기 동안 ‘섹슈앨러티’와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들은 횟수가 평생 들은 것보다 더 많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발제자에게 ‘당신 같은 백인이 도대체 흑인들이 당해온 인종차별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라며, ‘성소수자 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큰 문제인 양 과장하는 것을 듣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백인 학생이 ‘당신은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고 파괴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도대체 아는가?’라며 대응했다. 급기야 이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상대방의 인식 한계를 지적하였다. ●인식론적 사각지대에 대한 성찰 필요 누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격한 논쟁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백인 학생이 ‘더이상 이런 분위기를 참을 수 없다’며 일어서서 책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안 끝났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가방을 싸던 학생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나는 예정에 없던 즉흥 강의를 해야 했다. 첫째,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 그리고 둘째,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차별들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지닌 다층적 위험성에 관한 것이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한 종류의 차별구조를 잘 안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차별에 대한 인지가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성 차별, 장애 차별, 계층 차별, 인종 차별, 나이 차별, 종교 차별, 외모 차별 등 현실세계에서 작동되고 있는 다양한 얼굴의 차별들은 각기 독특한 양상을 띠며 매우 복합적인 구조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반드시 학습해야만 한다. 다층적 차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는 지속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조금씩 형성되기 때문이다. 논쟁을 하던 두 학생은 격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세미나가 끝난 후 서로 악수하며 미안하다는 사과를 나눔으로써 상황은 매듭지어졌다. 그런데 이 두 학생의 경우가 강의실에서만 있는 것인가. 아니다. 곳곳에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코스모폴리턴 사상을 사회정치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모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왕국’(Kingdom of Ends)을 설파한 철학자다. 칸트의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세계화 시대에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 정의, 환대, 권리를 상기시킴으로써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치 철학적 토대를 놓은 중요한 공헌을 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사상을 확산시킨 칸트도 인식의 사각지대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인간됨을 구성하는 ‘합리적 존재’의 범주에 여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인간 지리학(human geography)을 가르치면서 열대지방에서 태어난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의심치 않는다. 칸트가 중요한 철학적 공헌을 했다고 해서, 그가 지닌 여성 혐오 사상과 인종차별과 같은 인식의 사각지대의 문제들이 덮여서는 안 된다. 예술, 문학, 철학의 이름으로 또는 종교나 정치의 이름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와 경시를 정당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이러한 인식의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확장의 역사이기도 한 이유이다. ●차별·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에 희망 지난 10월 L 작가가 ‘단풍’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단풍은 ‘저 년’이라는 비하된 ‘여자’로 호명된다. 더 나아가 그 ‘저 년’은 남자를 유혹하는 ‘화냥기’를 지닌 여자로 재호명된다. ‘화냥기’ 있는 ‘저 년’을 ‘절대로 거들떠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성 비하는 물론 노골적인 자연 비하까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이 전제하는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단풍을 바라보는 주체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상식조차 전적으로 배제된 서사이다. 이 글에서 남성은 이 세계에서 ‘발화(speaking)의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보기(seeing)의 주체’이며, ‘쓰기의 주체’로 자연스럽게 호명되고 각인된다. 남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남성중심적 발화, 보기, 그리고 쓰기 행위를 통해서, 단풍을 ‘화냥기’를 지닌 ‘저 년’이라고 한 표현이 담고 있는 여성 혐오와 자연 비하는 마치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자연화된다. L 작가는 자신이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 우월을 표출한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차별, 폭력, 혐오 행위는 행위주체의 ‘의도성’ 여부에 의해서 그 부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어라고 해서 또는 은유라고 해서 여성, 인종, 장애, 나이, 성적 지향, 특정 종교 등 어떤 특정한 사회적 소수자 그룹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공적 세계에 발표되는 글들은, 그 장르가 무엇이든 그 글이 담은 가치를 확산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적 세계에서의 글과 말이란 이미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지닌다. L 작가의 비성찰적 변명과는 달리,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비판적 수정작업을 한다. 시집 ‘여수’로 2018년 20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가 된 서효인 시인은, ‘여수’를 출간하면서 과거에 썼던 시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이 아니라, ‘공장에 다니는 젊은이들’로, ‘우리 모두 아줌마가 되면’을 ‘우리 모두 학부모가 되면’으로 바꾸었다(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왜 ‘여성혐오적’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면, 젠더 문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 ●다층적 혐오 넘어 모든 생명 존중하는 세계로 또한 여성 혐오적 표현이 있는 시들 몇 편은 시집에서 아예 빼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차별과 혐오의 면책 특권 영역이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어떠한 종류의 글이든 이러한 비판적인 수정 작업의 대상임을 이 시인은 보여준다. “그때는 몰랐던 여성 혐오가 지금은 보여”서 빼거나 수정하는 비판적 인식 확장 작업은 문학, 종교, 철학,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는 ‘여수’에서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로 ‘시인의 말’을 매듭짓는다. 인류의 역사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지 확장의 역사’임을 서효인 시인의 수정 시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인류의 역사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는 남성이었다. 여성은 오직 ‘발화의 객체’(spoken object)로만 존재해 왔다.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주변부인들을 향한 언사가 비하적이든 혐오적인 것이든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좋은’ 글이란 지금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담고 있는 글이다. 그 글이 전하는 새로운 세계가 지금보다 나은 세계라는 것은, 다층적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배제를 넘어서서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 모든 종류의 생명이 존중되는 세계, 그리고 나이, 계층, 생김새, 성별, 장애 여부, 피부색, 교육 배경, 또는 종교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고귀한 생명임을 의식 속에, 그리고 제도 속에 담아내는 세계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여기는 인도] “14개월 아기 성폭행한 男, 산 채로 불태우자” 제안한 정치인

    [여기는 인도] “14개월 아기 성폭행한 男, 산 채로 불태우자” 제안한 정치인

    인도의 한 여성 정치인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성폭행범에게 휘발유를 뿌려 공식 처형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 현지 언론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제니벤 타코르라는 이름의 여성 정치인은 갓난아기를 성폭행 한 성 범죄자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처벌을 내리자고 제안했다. 최근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州) 사바르칸트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남성이 생후 14개월 신생아를 성폭행한 뒤 체포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의원 타코르는 해당 사건의 범인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녀가 직접 이러한 주장을 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한 뒤 인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30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타코르는 끔찍한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들을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인도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성폭행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휘발유를 뿌린 뒤 불태워 죽여야 한다”면서 “성폭행범들을 경찰에 넘기기 보다는 직접 끝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을 들은 여성 청중 일부는 “이미 몇몇 성폭행범들을 불태워 죽이는 직접 처형을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타코르는 자신의 SNS에 “14개월 된 신생아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화가 난 채로 날 만나러 왔다”면서 “(성폭행범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자는)나의 주장은 이 여성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먼저 나서 법을 무시하고 직결 처형을 내리자는 주장은 일파만파로 퍼지며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인도 의회 대표인 아미트 차브다는 “성폭행을 당한 후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만 엄연히 법이 있으며, 대중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법을 반드시 신뢰해야 한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인도에서는 총 3만 9000건의 성폭행이 발생했다. 13분 30초에 한 번 꼴로 일어난 셈이며 이는 전년도 대비 12%이상 증가한 것이다. 인도가 ’강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유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리은하 형태, 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 400년의 기록

    [이광식의 천문학+] 우리은하 형태, 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 400년의 기록

    숲속에선 숲의 형태를 알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의 형태가 나선팔을 가진 원반 꼴임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 중앙에 막대 구조가 있는 것까지 밝혀져 우리은하는 분류상 막대나선은하에 속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은하의 형태와 크기를 알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천문학자들의 400년에 걸친 노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숲속에서 그 숲의 전체 형태를 잘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하 내부에 살면서 그 은하의 모양을 알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 중 그 누구도 우리은하 바깥으로 나간 이는 아직 없다. 우리은하의 단면적인 모습을 알려면 은하수를 보면 된다. 밤하늘에 동서로 길게 누워 가는 이 빛의 강, 은하수를 일컬어 서양에서 밀키웨이(milky way)라 하는 것은 헤라 여신의 젖이 뿜어져나와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에 기원한다. 이처럼 일찍부터 인류와 친숙한 은하수지만, 이 은하수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놀랍게도 400년 밖에 안된다. 은하로의 먼 여정을 향해 첫 주자로 나선 사람은 17세기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1610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을 은하수에 들이대어 관측한 결과, 흐릿하게 성운처럼 보이는 은하수가 실제로는 개개의 별들로 분해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리하여 갈릴레오는 은하수가 무수한 별들의 집적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고 그것을 인류에 보고하는 영예를 얻었다. ​ ‘은하수’를 밝혀낸 철학자 그 다음 은하수에 관해 놀라운 추론을 한 사람이 1세기 후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였다. 1755년에 발표된 칸트의 박사학위 논문은 철학이 아니라 천문학 이론으로, 그 제목부터가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이었다. 하긴 그 시대는 철학과 천문학 사이에 명확한 선이 없던 때이기는 했지만 칸트의 논문은 명확히 천문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도 우리 태양계의 생성에 관한 학설로, 흔히 성운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현대 천문학 교과서에도 ‘칸트의 성운설’(Kant’s Nebula Hypothesis)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태양계 성운설을 제창한 칸트는 태양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원리로 우리은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즉 회전하는 거대한 성운이 수축하면서 원반 모양이 되고 원반에서 별이 탄생했으며, 은하수는 원반 위에 있는 관측자가 본 우리은하의 옆모습이라는 정확한 설명을 내놓았다. “지구가 은하 원반 면에 딱 붙어 있어 지구에서 은하수를 보는 시선방향이 우리은하를 횡단하게 된다. 따라서 지구에서 볼 때 중심부와 먼 가장자리 별들이 겹쳐져 보이므로 그처럼 밝은 띠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원반이 얇으므로 아래 위쪽은 당연히 성기게 보인다.” ​200년도 더 전에 나온 철학자 칸트의 이 같은 은하수 설명은 참으로 놀라운 예지와 직관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기도 한 칸트는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로서, 우리 은하 바깥에도 우리 은하처럼 수많은 별로 이뤄진 독립된 은하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으며 우리 은하는 이처럼 수많은 은하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섬우주론을 주장했다. 허셜이 시도한 ‘하늘의 구축’ 칸트 다음으로 은하수 여정에 오른 사람은 칸트와 동시대인으로 천왕성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이었다. 은하수의 실제 모습과 태양이 은하수 내에 어디쯤 위치하는지 알아내려는 시도는 이 허셜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784년, 그는 전인미답의 영역, 은하계 구조 연구에 착수했다. 이전의 어떤 천문학자도 시도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허셜은 이 계획을 ‘하늘의 구축’이라 이름했다. 그는 하늘을 여러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에 있는 별의 수를 헤아려 우리은하의 별 분포를 조사했다. 통계적으로 밝은 별은 가까운 별, 어두운 별은 먼 별임을 전제하고, 3400개의 성단들에 있는 별들의 수를 센 결과, 별의 분포는 타원체를 이루며 은하수에 있는 별들이 모두 3억 개라는 수치가 나왔다. 허셜은 별들이 은하수에 가까울수록 많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태양계는 은하계의 일부분으로, 태양은 은하의 중심부분에 위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은하계는 수레바퀴 모양의 별의 집단을 옆에서 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수레바퀴의 긴 지름이 짧은 지름의 4배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은하수의 정체와 구조가 밝혀진 셈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우주 안에서 별들이 모여 있는 유일한 집단이 아니며, 거대한 체계를 이루는 집단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허셜은 나아가 우주의 규모를 언급했다. 당시 가장 가까운 별들 간의 거리도 제대로 모를 시기에 그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들의 거리를 200만 광년으로 잡았다. 물론 오늘날 보면 턱없이 작게 잡은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현기증 날 만큼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사람들은 우주의 광막한 크기에 입을 딱 벌렸다. 요컨대, 허셜은 역사상 최초로 인류 앞에 광대한 우주의 규모를 펼쳐보여 주었던 것이다. 1920년에는 네덜란드의 야코뷔스 캅테인이 허셜의 방법에 따라 더 정교하게 별들의 분포를 관찰한 후, 1922년에 출간된 그의 필생 사업인 <항성계의 배열과 운동이론에 관한 최초의 시도>에서 우리은하를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의 밀도가 감소하는 렌즈 모양의 섬우주로 묘사했다. 캅테인의 섬우주 모형에서 우리은하의 크기는 약 4만 광년, 두께가 6500광년이며, 태양의 위치는 우리은하 중심에서 2000광년 떨어진 지점이었다. 태양계의 위치는 여전히 크게 벗어난 것이지만, 우리은하의 실제 규모에 상당히 근접하는 값을 내놓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 이 허셜-캅테인 모형의 반대편에는 미국의 할로 섀플리의 우리은하 모형이 있는데, 섀플리는 1919년 늙은 별들의 집단인 구상성단들을 관측한 끝에, 그것들이 거의 구형으로 분포하며 지름이 30만 광년이고, 그 중심으로부터 태양은 약 4만5000광년 떨어져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구상성단들의 분포 중심이 우리은하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섀플리의 우리은하 모형은 허셜-캅테인 모형과는 달리 태양이 우리은하의 중심에 있지 않은 셈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못지않은 우주관의 변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섀플리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포함한 모든 천체가 우리 은하 안에 있으며 우리 은하 자체가 우주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이러한 섀플리의 주장은 얼마 후 에드윈 허블이라는 신참 천문학자에 의해 무참히 퇴출되었다. 1924년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변광성을 관측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아냄으로써 그것이 우리은하 밖의 외부 은하임을 밝혔다. 허블이 섀플리에게 자신이 발견한 결과를 편지로 알리자, 섀플리는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은하의 구조에 대해서는 섬우주론에서 채택한 허셜-캅테인 모형이 틀리고, 태양이 은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섀플리 모형이 더 타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전파로 은하중심을 헤집다 1940년대 들어 전파천문학이 발전함에 따라 천문학자들은 전파의 각 파장대의 특성을 이용한 관측으로 우리은하에 네 개의 주요 나선팔이 있으며, 이들이 어떤 분포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냈다. 그 결과, 우리은하는 전형적인 나선은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은하에 막대가 있을 거라는 주장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일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러나 확실한 관측에 바탕을 둔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대구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은하의 중심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난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은하 중심이 눈부시게 밝을 뿐만 아니라, 은하 원반의 성간 먼지나 가스, 별 등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산란이 적은 적외선 망원경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2005년 스피처 적외선 우주망원경이 마침내 은하 중심을 육박했다. 이 스피츠의 관측에 의해 우리은하 중심부에 2만7000광년 길이의 막대구조가 들어앉아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은하의 팔도 막대구조 끝에서 뻗어나온 2개의 나선팔과, 여기서 가지치기한 2개의 작은 나선팔이 더 있는 전형적인 막대나선은하 형태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우리은하 형태를 결정짓는 화룡점정이 이루어졌고, 덕분에 2005년 이후 우리은하의 형태는 막대나선은하로 확고히 자리매김되었다. 우리은하의 ‘맨얼굴’ 우리은하를 옆에서 보면 프라이팬 위에 놓인 계란 프라이와 흡사한 꼴이다. 가운데 노른자 부분을 팽대부라 한다. 거기에 늙고 오래 된 별들이 공 모양으로 밀집한 중심핵(Bulge)이 있고, 그 주위를 젊고 푸른 별, 가스, 먼지 등으로 이루어진 나선팔이 원반 형태로 회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곽에는 주로 가스, 먼지, 구상성단 등의 별과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헤일로(Halo)가 지름 40만 광년의 타원형 모양으로 은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천구상에서 은하면은 북쪽으로 카시오페이아자리까지, 남쪽으로 남십자자리까지에 이른다. 은하수가 천구를 거의 똑같이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곧 태양계가 은하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은하수는 중심부가 있는 궁수자리 방향이 가장 밝게 보인다. 이 중심부에 태양질량의 약 400만 배인 지름 24km짜리 크기의 블랙홀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뿐더러, 이 블랙홀 근처에 작은 블랙홀이 하나 더 있어 쌍성처럼 서로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이것은 바로 과거에 우리은하가 다른 작은 은하를 잡아먹었다는 증거다. 우리은하가 약 10억 년 전 젊은 다른 은하와 충돌, 합병하여 현재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 가장자리는 5000광년, 중심 부분은 2만 광년이다. 은하가 이처럼 납작한 이유는 은하 자체의 회전운동 때문이다. 이 안에 약 4000억 개의 별들이 중력의 힘으로 묶여 있다. 태양 역시 그 4000억 개 별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으로부터 2만8000광년 거리에 있으며, 나선팔 중의 하나인 오리온 팔의 안쪽 가장자리에 있다. 우리 태양계는 물론, 우리은하 전체가 중심핵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다. 태양이 은하중심을 도는 속도는 초속 220km나 되지만, 그래도 한 바퀴 도는 데 2억5000만 년이나 걸린다. 태양이 태어난 지 대략 50억 년이 됐으니까, 지금까지 미리내 은하를 20바퀴쯤 돈 셈이다. 앞으로 그만큼 더 돌면 태양도 종말을 맞을 것이다. 물론 인류는 훨씬 이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흥미진진 견문기]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옛 영화가 세월에 잠든 느낌”

    [흥미진진 견문기]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옛 영화가 세월에 잠든 느낌”

    명절을 앞둔 주말이었지만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단은 ‘대가족’이었다. 싱글벙글 환한 얼굴의 윤현경 해설사는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밝은 톤의 목소리로 투어단을 이끌었다.중앙아시아 골목의 사마르칸트 식당 앞에서 커다랗고 둥근 빵을 파는 젊은이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자주 보았지만 국립의료원 바로 옆이 이순신 장군이 과거시험을 보다 말에서 떨어졌던 장소인 훈련원공원이란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됐다. 역시 아는 만큼 보게 되는가 보다. 한국전쟁 때 21개 지원국에서 온 의료진이 210만명의 부상자를 치료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에서 의료봉사의 고귀함을 느꼈다. 특히 1958년부터 10년간 현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스칸디나비아 3개국에는 큰 빚을 진 것 같다. 일행은 물이 흐르듯 유연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물을 따라 이간수문으로 흘러갔고, 조명탑 아래 동대문운동장기념관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국가의 큰 행사와 공연을 치른 문화의 중심지였다. 옛 영화가 세월 속에 잠든 느낌이었다. 즐비한 빌딩 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광희문 도심 성곽길을 걸었다. 한양도성 성곽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골목에서는 성곽을 집의 축대로 지은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지켜 내지 못한 행정의 아쉬움과 함께 집 한 채 지을 공간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투쟁했을 전 시대인의 팍팍한 삶이 그려졌다.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태극당을 끝으로 투어를 마쳤다. 쇼핑을 위해 자주 오는 곳이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면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투어였다. 세계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들이 많았다. 김은선 책마루 연구원
  • “문화유산 관심 높일 콘텐츠 만들기가 우리의 사명”

    “문화유산 관심 높일 콘텐츠 만들기가 우리의 사명”

    VR·AR 등으로 문화재 디지털 변환 연 매출 20억… 우즈베크 벽화도 복원 ‘미지의 땅’ 북한 문화재 꼭 알리고 싶어 “옛것 사랑하지만 새로운 것에 목말라”“문화재도 자꾸 보고 애정을 가져야 좋아할 수 있죠.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저희의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문화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환기시키는 게 저희의 사명이니까요.” 지난 14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문화재 기업체 전문 전시회 ‘국제문화재산업전’에서 만난 손태호(39)·김지교(36) 문화유산기술연구소(TRICH) 공동 대표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문화유산 콘텐츠 개발 업체인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2009년부터 문화재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홀로그램, 초대형 미디어쇼(프로젝션 맵핑)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로 변환해 제작하고 있다. 결과물은 전시, 방송, 관광,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문화재 실물을 복원할 때는 형태를 훼손할 가능성도 있지만 디지털 복원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거나 새로운 자료를 업데이트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많이 활용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직원 평균 연령 35세의 이 젊은 회사는 기획, 디자인, 개발, 복원, 복제 등 문화재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유실되고 훼손된 문화재의 잃어버린 얼굴을 첨단기술로 되살린다는 차원에서 ‘얼을 복원한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김 대표는 “예를 들어 무너진 탑을 복원할 때 형태만 디지털로 복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탑돌이처럼 탑 주변에서 벌어졌던 모든 행사와 해당 문화재에 얽혀 있는 이야기, 옛사람들의 움직임과 정신까지 복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연구소는 연간 매출 약 20억원을 기록하며 문화재 콘텐츠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3년 세계 4대 박물관인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린 ‘신라 특별전’에 석굴암을 초고화질(UHD) 디지털로 복원한 콘텐츠를 전시하는가 하면 2014년에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 벽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전시관에서 매머드와 매머드가 서식했던 고생대 생태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도 선보였다. 지금까지 다양한 작업물을 선보여 왔지만 앞으로 꼭 복원하고 싶은 문화유산은 따로 있었다. 이들에게 ‘미지의 땅’이자 ‘미개척의 땅’인 북한의 문화재다. 김 대표는 “앞서 2014년에 평양 청암리에 있는 고구려 절터인 청암리사지를 디지털로 복원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도 우리가 직접 가보지 못하고 접근하기 힘든 문화재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로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옛것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마르다’는 이들의 꿈이 궁금했다. 손 대표는 “콘텐츠의 양이나 질, 형태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유산을 대하는 진정성이 결국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획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지만 진정성만큼은 늘 같아야 한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콘텐츠 회사로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주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적수는 없었다… 이대훈 태권도 첫 3연패

    적수는 없었다… 이대훈 태권도 첫 3연패

    광저우·인천 이어 한 체급 올려 金 획득 준결승까지 3경기 연속 큰 점수차 승리결승서 승부 가른 시원한 ‘3점 헤드 킥’늘 의연히 ‘종주국 자존심’을 지켜온 이대훈(26·대전시체육회)이 아시안게임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3연패 쾌거를 일궜다. 이대훈은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태권도 겨루기 남자 68㎏급 결승에서 아미르 모함마드 바크시칼호리(이란)에게 12-10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 남자 63㎏급에서 잇달아 정상에 오른 이대훈은 이번 대회 한 체급을 올려 세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아시안게임 태권도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없었다. 이대훈은 무하마드 무하마드(인도네시아)와의 16강전을 26-5, 아르벤 알칸트라(필리핀)과의 8강전을 같은 점수로 눌렀다. 이대훈은 준결승에서는 예라실 카이이르베크(카자흐스탄)를 32-10으로 대파하는 등 세 경기 연속 20점 이상 여유 있게 이겼다. 결승 상대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를 준결승에서 10-8로 꺾은 바크시칼호리였다. 이대훈은 1라운드에서 2점짜리 몸통 발차기를 두 차례나 허용했지만 상대 감점으로만 1점을 얻는 데 그쳐 1-4로 끌려갔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은 그는 2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몸통 공격을 한 차례씩 주고받은 뒤 3회 연속 주먹 지르기 득점으로 6-7까지 따라붙었다. 3라운드 초반 다시 상대 몸통에 주먹을 꽂아 7-7 균형을 맞췄고, 이어 3점짜리 헤드 킥을 날려 승부를 갈랐다. 감점으로 상대에게 한 점을 내줬지만 몸통 발차기에 성공하며 12-8로 다시 달아난 뒤 감점으로 추격을 허용했으나 리드는 지켰다. 이로써 한국은 닷새 동안 열린 태권도 경기에서 금 5, 은 5,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겨루기에서 금 3, 은 4, 동메달 1개를 획득했고 처음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품새에서 금 2, 은 1개, 동메달 1개를 따 겨루기와 품새 모두 금메달은 목표의 절반에 그쳤다. 한편 구본길(29), 김정환(35·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오상욱(22·대전대), 김준호(24·국군체육부대)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이날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이어진 단체전 결승에서 이란을 45-32로 격파하고 정상에 올라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구본길은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 금메달도 가져가 두 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2관왕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한국어 배우며 정체성 혼란 극복… 한국 친구들과도 친해졌어요”

    “한국어 배우며 정체성 혼란 극복… 한국 친구들과도 친해졌어요”

    심장병 치료·부모님 따라 이주 등 다양 “말 통하지 않아 집에만 갇혀 지내기도” 서울온드림센터, 3년간 638명 교육 공교육 진입 등 한국사회 적응 도와외국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한국으로 오게 된 ‘중도입국 청소년’은 국내 이주민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힌다. 어른과 달리 미성숙한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정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어 배우기’다. 또래 한국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이 성장기에 정체성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서울온드림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해 내는 ‘중도입국 청소년’을 만났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사소통’을 꼽았다. 허량(14)군은 2016년 심장병을 치료하고자 부모와 함께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허군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편의점에 갔는데 가격을 물어보지 못해 그냥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면서 “병을 고쳐 준 의사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도 직접 못하고 아버지를 통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2013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압둘라이브 바히전(19)군도 “이슬람교를 믿어서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데, 한글을 몰라 음식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은 한국어가 익숙하지만 처음 왔을 때에는 ‘가격이 얼마예요’라는 말도 못해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바히전군은 “금방 모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체류기간이 길어져 온드림센터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1년 만에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글을 읽고 쓰는 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허군과 바히전군은 “한국어를 배운 후에는 서먹서먹했던 한국인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고 심리적인 안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3년 중국에서 온 이승현(17)군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먼저 중국에서 이주해 온 친구의 도움이 절실했다”면서 “이제 혼자서도 영화관뿐만 아니라 각종 공공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이런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고자 2015년 9월 영등포구 대림동 서남권 글로벌센터 건물 3층에 온드림센터를 개소했다. 온드림센터는 서울에서 유일한 중도입국 청소년 지원기관이다. 지금까지 638명의 중도입국 청소년이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사회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수영 센터장은 “중도입국 청소년 대부분이 한국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면서 “심리적으로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이주를 경험하기 때문에 다른 이주민보다 더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을 공교육에 진입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돕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도입국 청소년을 공교육으로 편입시키는 데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본국에서 각종 증명 서류를 떼어 와야 하는 등 서류상의 절차가 복잡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곧바로 국내 중고교에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센터장은 “검정고시에 합격하더라도 학교장이 학생을 받아들여 줘야 입학할 수 있다”면서 “입학이 세 차례 거절당한 끝에 겨우 학교에 들어간 청소년도 있었다”고 전했다. 허군은 지난 4월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해 한국 중학교에 입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한국 땅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바히전군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모국어로 한국을 소개하고 한국인에게는 한국어로 우즈베키스탄을 소개할 수 있는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인에게는 사마르칸트라는 우즈베키스탄의 유적지를 알려주고 싶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밥을 먹으면서 게임도 즐길 수 있는 한국의 PC방을 소개해 주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허군은 “제가 심장병 때문에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저처럼 아픈 사람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군은 “항공 정비사가 되고 싶다”면서 “김포공항이 집에서 가까워 이사하는 데 돈이 적게 들 것 같다”며 우스꽝스러운 이유를 댔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책에는 모바일서 얻을 수 없는 통찰력이 있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책에는 모바일서 얻을 수 없는 통찰력이 있죠”

    모바일 시대, 강동권 이학사 대표가 말하는 ‘책 읽는 이유’ “아무리 디지털시대, 모바일시대라고 해도 인간이 책을 필요로 하는 이상, 출판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모바일을 넘어서는 깊은 지식과 통찰력, 새로운 해석과 비판적 사유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두꺼운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하는 이학사의 강동권(59) 대표는 “책에는 질감과 형태, 편의성과 사용성 등과 같은 독특한 물성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와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강조와는 달리 출판업계는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출판업계, 적어도 책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단순한 지식이나 사실은 책에서 찾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됐다”며 “책의 역할이나 효용이 달라졌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출판 영역을 잠식하지만 그도 한때는 마이다스동아일보(현재의 동아닷컴)과 싸이월드에서 6년간 이사를 지냈다.16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주택가에 위치한 그의 출판사인 이학사를 찾아갔다. 몇 개월 전에는 안국동에서 만났지만 지난 4월에 연건동으로 옮겼다. 그는 안국동에서 20년간 출판사를 운영했다. 새 출판사로 찾아가는 골목길 앞 담벼락엔 ‘길 막힘’이란 경고문이 있어 되돌아 나갔다. 몇 번 헤맨 끝에 경고문을 넘어서 들어가니 가정집 같은 건물에 ‘이학사’ 문패를 만났다. 북촌이 관광지로 뜨는 바람에 임대료가 올라 이사를 했다. 출판사 면적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보유한 책을 많이 기증도 했지만 1만 5000여권을 폐기처분했단다. 이학사의 이런 상황이 우리 출판업계의 현주소를 상징하듯 다가왔다. 강 대표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이미 출판한 책이, 다른 쪽 벽에는 번역하고자 하는 원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 그동안 출판한 책 제목을 보면 상당히 어렵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철학, 종교학, 미학 책을 가장 많이 냈습니다. 이런 분야가 인간의 삶과 문화, 학문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이쪽을 천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왜, 이리 어려운 책을 내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요. 우리나라의 지성계와 인문사회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굳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낸 책을 보면 ‘메타 정치론’ ‘아우라의 진화’ ‘정신과학의 철학’ ‘비미학’ 등으로 그의 출판 성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비전공자나 일반 독자 처지에서는 어렵게 보이겠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을 고릅니다. 이런 경향은 번역하는 여러 선생님과 제가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겠지요.●“어려운 책도 누군가 꼭 할 일···새로운 통찰력 기준” 출판할 책을 고르는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고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거나 새로운 통찰과 해석, 비판적 사유를 담은 책을 내려고 합니다. 남이 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내용의 책은 피합니다. 그리고 우리 출판사가 어려운 책만 낸 것은 아니고 쉬운 책도 제법 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베스트셀러 내지 스테디셀러, 어떤 게 있나요.☞ 베스트셀러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스테디하게 나간 책들은 좀 있습니다.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정의론’(존 롤즈), ‘제국’(네그리, 하트), ‘처음 읽는 헌법’(조유진) 등이 그런 책들입니다. 처음 읽는 헌법이 꾸준하게 나가지만 요새는 워낙 책이 안 나가서 스테디셀러라고 할 만한 책도 드물어집니다. ●“제국, 세계종교사상사···우리 지성사에 큰 울림 남겨” 특히 ‘제국’과 ‘세계종교사상사’(전 3권) 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국은 우리 지성계에 굉장한 울림을 주면서 출판사의 이름을 크게 알린 책입니다. 근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사건과 현상을 횡단하면서 맥도널드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현대의 초국적 기업까지 조명했던 책입니다. 세계종교사상사는 20세기 최고의 종교학자 엘리아데(1907~1986)가 종교 사상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룬 현대의 고전인데요, 우리 같은 작은 출판사가 7년 노력 끝에 2100쪽이 넘는 대작을 제대로 소개한 것이지요. 이것들은 올해의 출판인상(2014년)과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2006년)을 안겨줬습니다. - 출판하는데 가장 큰 애로점은.☞ 출판인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책을 냈는데 판매가 받쳐주지 않을 때 힘듭니다. 요새 흔히 출판을 문화산업이라고 합니다만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 - 문화에 찍느냐, 산업에 찍느냐 - 에 따라 책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우리 출판사는 아무래도 문화를 강조하다보니 판매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주로 전문적이고 두꺼운 책을 내다보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 판매가 따라주지 않으면 실망을 많이 하지요. 그런 책으로 ‘낯익은 시 낯설게 읽기’, ‘요가(엘리아데) ‘ 법이론’(임마누엘 칸트) 등이 기억납니다. - 과거 싸이월드 이사도 지내셨는데, 오프라인의 대명사 격인 책 출판을 하는 이유는.☞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책 내는 일을 하고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며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여전히 이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30대 중반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좀 했습니다. 그때 회사를 다시 다니기는 싫고,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출판의 ‘출’자도 모르고 덜컥 창업했지요. 그러다 제게 ‘꼭 나와달라’는 회사가 있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출판사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제게 출판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 그래서 열린 세계,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출판사가 내는 책 한 권이 그 분야의 모든 것에 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다만 새로운 인식, 새로운 통찰,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한 권의 책을 냄으로써 세계를 읽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던지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많아질 때 인간은 풍요로워집니다. - 모바일 시대에 책의 의미는 뭘까요.☞ 스마트폰 시대에는 단순 팩트나 지식은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해결해 줍니다. 모바일에 부정확한 정보도 많지만 몇 번만 검색해 비교하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에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주는 데다 인구까지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은 더욱 어렵습니다. 옛날엔 ‘10년에 100종을 내면 안 망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는 23년간 250여종을 냈습니다. 그래도 어려우니···. ●“책을 낸다는 건 열린 세계, 다양한 세계 만드는 일” 그러나 책에는 깊은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은 ‘본다’고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스캔’하는 것이지요. 반면은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거나 스캔해서는 비판적 사유, 종합적 통찰을 기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합적 통찰력을 기르는 최선의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시인 퐁주(1899~1988)가 한 말,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을 철학자 사르트르(1905~1980)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있다는 것, 인간을 기다리는 티 없는 미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마도 이 미래는 인간이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세계, 자신의 존재와 가치, 자유와 평등 그 자체로 사는 세계일 것입니다. 제게 책은 바로 그런 열린 세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입니다. - 일반 독자들이 여름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 소개를 부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있다가 요즘 좀 조용해졌습니다만 ‘처음 읽는 헌법’(조유진 지음)을 추천합니다. 민주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덕목과 함께 우리 헌법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입니다. 또 ‘서양철학사’(시르베크, 길리에 지음. 윤형식 옮김) 일독을 권합니다. 애초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학생을 위한 교재로 만들어졌기에 쉽고 잘 읽힙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고경영자(CEO) 추천도서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국내에서 나온 다른 철학사 책들과는 달리 명료한 서술, 참신한 접근, 새로운 시각이 특징입니다. 또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다룬 ‘메시지가 미디어다’(유승찬 지음)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한국어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책과 출판은 산업의 시각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어가 중요하지요. 한국인의 삶과 문학,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한국어입니다. 일제시대 한글 사용을 금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어가 사라지면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 영혼 즉 정체성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한국어를 담는 그릇이 책이고,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출판입니다. ●“한국어와 출판은 문화간접자본···보호책 마련해야” 책과 출판은 도로와 교량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SOC)과 마찬가지인 ‘문화간접자본(COC)’입니다. 문화간접자본이라는 말은 제가 만든 말인데, 이 토대 위에서 연극 영화 드라마 공연 등 다양한 문화가 발전합니다. SOC에서 경제가 꽃피듯 문화간접자본이 튼튼해야 우리 문화가 풍성해 질 것입니다. 최근 인구가 줄면서 또 앞으로 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한국어를 쓰는 인구가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어의 위기가 오면 한국인의 삶과 문화, 정신을 규정하는 정체성 위가 올 것입니다. 한국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과 출판을 문화간접자본으로 규정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구정책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당국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요즘 주로 하시는 일은. ☞ 이사 뒷정리한다고 두어달 보냈습니다. 우리 출판사는 오래 전부터 주 39시간 근무를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출근해서 책 보고, 원고 보고 선생님들 만납니다. 출퇴근 지하철과 집에서는 대개 원고를 봅니다. 우리는 편집자 한 명이 책을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원고를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1교자와 2교자가 다릅니다.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지요. 한 원고를 최소 3명(필자와 편집자 2명)이 보면 오류를 거의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난해한 책은 7교, 8교까지 볼 때도 있습니다. 요즘엔 하버드대 교수를 지냈던 존 롤즈(1921~2002)의 ‘도덕 철학사 강의’를 2교째 보고 있습니다 매월 첫째, 셋째, 다섯째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당일치기 백두대간 종주를 합니다. 작년 9월 시작해 상주까지 북진해 왔습니다. 산행할 때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아침 한시간씩 허벅지와 무릎 근력을 키우는 운동도 합니다. 그리고 대간에 가는 주에는 수요일 이후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 같지요? 둘째 토요일은 청계산 산행 모임에 나갑니다. 한 달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조만간 어렵지만 흥미로운 주제인 타자 문제를 다룬 ‘인류학을 넘어서(Beyond Anthropology)’라는 책과 알랭 바디우가 쓴 존재론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강 대표는 자녀에게 읽히라며 ‘처음 읽는 헌법’과 ‘서양철학사’를 한 권씩 건네주었다. 기자들도 책을 좀 읽고 살아라는 뜻이 담긴 듯해서 받아들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쌍머리독수리 세리머니에 비친 발칸의 슬픈 분쟁사

    쌍머리독수리 세리머니에 비친 발칸의 슬픈 분쟁사

    러시아월드컵에서 발칸 반도의 슬픈 역사가 새삼 조명되고 있다. 스위스 대표팀의 그래니트 샤카와 세르단 샤키리는 23일 새벽 러시아 아닌 러시아 땅인 칼리닌그라드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대회 조별리그 E조 2차전에 나란히 그물을 출렁여 2-1 승리에 앞장섰다. 그런데 둘은 약속이나 한듯이 두 손등을 맞댄 뒤 손가락을 이용해 날갯짓하는 보기 드문 세리머니를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알바니아계 혈통인 자신들의 조국 알바니아 국기에 새겨진 쌍머리독수리를 연출하려 한 것이었다. 둘의 가족 모두 코소보 출신이다. 세르비아 정부가 알바니아계 주민을 상대로 자행한 인종 청소 때문에 199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군사 개입을 불러낸 곳이다. 샤카의 아버지는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3년 반이나 옛 유고연방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 샤키리는 코소보에서 태어났고 가족들은 스위스로 탈출, 난민 생활을 견뎌야 했다. 코소보의 다수인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2008년에 독립을 선포했지만 세르비아와 러시아, 코소보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샤키리는 축구화 한쪽에는 스위스 국기를, 다른 쪽에는 코소보 국기를 새겨넣었다. 하지만 세르비아 대표팀의 공격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는 “그가 정말 그렇게 코소보를 사랑한다면 왜 그 나라 대표로 뛰는 걸 거부하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당장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과 알바니아계 주민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또 스위스 대표팀 안에서도 세르비아 출신과 알바니아 혈통 선수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하지만 둘다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다고 변명했다. 경기 도중 자신들에게 야유를 쏟아낸 세르비아 서포터들에게 쌓인 울분을 토로한 것이었다. 샤키리는 나중에 “감격에 복받쳐 그런 것이었다. 골을 넣게 돼 기뻤다. 그 이상은 없었다. 이 건에 대해 지금 당장 얘기할 것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역시 보스니아 출신인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스위스 감독은 “정치와 축구를 뒤섞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 뒤 역시 보스니아 혈통의 믈라덴 크르스타지치 세르비아 감독은 코멘트를 거절했다. 대다수 세르비아 매체는 세리머니가 도발이긴 했지만 분노를 일으킬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 RTS 방송의 베세른지 노보스티는 미트로비치가 두 스위스 선수들과 레슬링 하듯 뒤엉켜 넘어졌을 때 왜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았는지를 세르비아축구협회가 더 문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샤키리의 축구화, 골 세리머니, 관중석에 알바니아 국기가 펼쳐진 것 등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축구로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기나긴 고통의 역사가 들춰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알바니아 국기가 내걸린 드론 한 대 때문에 드잡이가 벌어져 발칸 국가들의 대회가 취소됐다. 알바니아계 팬들 가운데는 평생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날 경기가 열린 칼리닌그라드 역시 이마뉘엘 칸트 등 위대한 지성을 배출했던 쾨니히스베르크로 불리던 동프로이센 수도였다가 옛 소련에 병탄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부동항이 필요했던 옛 소련은 1945년 포츠담 조약에 의해 이곳을 집어삼킨 뒤 독일계 주민들을 내몰았다. 그래서 어느 쪽 경계도 러시아 영토와 연결돼 있지 않으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포위 당한 채 고립돼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여기가 러시아라고?” 잉글랜드-벨기에 맞붙는 칼리닌그라드

    “여기가 러시아라고?” 잉글랜드-벨기에 맞붙는 칼리닌그라드

    ‘여기가 러시아 땅이라고?’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17일(이하 한국시간) 크로아티아-나이지리아, 23일 세르비아-스위스, 26일 스페인-모로코, 29일 잉글랜드-벨기에 경기에 나서는 선수단이나 원정 응원단들은 모두 이런 의문을 품게 될 것 같다. 영국 BBC가 개막을 2주 앞둔 러시아월드컵 경기장 가이드를 게재했는데 그 지도를 살펴보다 정말 이상한 경기장 하나를 발견했다. 북동쪽으로 리투아니아, 남쪽으로 폴란드에 둘러싸여 있고 서쪽으로 발틱해를 접하고 있다. 러시아 본토와는 벨라루스,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가 막고 있는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움이다. 러시아월드컵을 치르는 12개 경기장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는, 우랄 산맥의 에카테린부르크에서 2896㎞, 모스크바로부터 1239㎞나 떨어져 있다. 영어로 ‘exclave’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월경지’라고 한다. 프로이센 공작령의 중심지였다가 동프로이센의 주도였으며 1945년 포츠담 회담의 결과에 따라 옛소련에 양도됐다. 옛 이름이 쾨니히스베르크라고 하면 무릎을 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1255년 튜튼기사단이 세웠으며 동프로이센의 가장 북쪽지역이었다. 1724년 에마뉘엘 칸트가 이 도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숱한 전쟁을 겪은 도시이며 나폴레옹에 봉기한 도시로도 자긍심이 대단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의 포위 공격을 견뎌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적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독일인들은 추방됐다. 1946년 마침 세상을 떠난 소비에트 최고회의 의장 미하일 칼리니의 이름을 따 지금의 도시 이름을 얻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45만명인데 경기장 수용 인원은 3만 5000여명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를 어설프게 본떠 설계돼 올해 개장했다. 하지만 초기 설계에 간여했던 회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되고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에는 비가 오면 덮이는 지붕이 딸린 4만 5000석 규모로 지으려다 지붕 없이 3만 5000석 규모로 짓게 되면서 조별리그 네 경기만 치르게 됐다. 그나마 월드컵이 막을 내리면 1만석을 철거한다. 이곳을 홈구장으로 쓰게 되는 러시아 프로축구 2부리그 발티카 칼리닌그라드의 지난해 평균 관중이 3500명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한편 벨기에 대표팀은 3일 브뤼셀로 불러들인 포르투갈과의 평가전을 0-0으로 비겼다. 뱅상 콤파니가 허벅지 통증으로 다쳐 걱정을 낳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휴가 때문에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인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 개리 케이힐과 해리 케인의 연속 골을 앞세워 2-1로 이겼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교수 2명 동시 강의 ‘파격’… 순천 인재 양성소로 ‘점프’

    교수 2명 동시 강의 ‘파격’… 순천 인재 양성소로 ‘점프’

    국립 순천대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 계몽과 인재 양성을 위해 순천 출신 교육사업가 우석 김종익(金鍾翊) 선생이 기부해 설립됐다. 1935년 공립농업학교로 문을 연 순천대는 올해 개교 83주년을 맞아 ‘동북아시아의 꿈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전남 동부권 지역민의 염원으로 문을 연 순천대는 지방분권화 시대에 맞게 지역의 주요 정책과 현안을 지자체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순천시 역점 사업인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성공 개최 등 주요 핵심 사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손을 잡고 대학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역 중견기업인 ㈜파루의 후원으로 창설한 순천대 파루인문학당은 시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인문 석학 강연장으로 인기가 높다. 순천대는 이 같은 협업과 시너지 창출로 지자체와 공동 발전하는 대학의 ‘모범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잘 가르치는 대학 ‘ACE’ 우수상 수상 순천대는 2015년부터 ‘잘 가르치는 대학’(ACE)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전국 32개 대학 중 교육과정 분야 우수상(2위)을 받았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평생교육, 생명 산업 및 인문 연구, 문화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국책 사업에 선정됐다. 대학이 교육·연구와 인재 양성이라는 책무를 넘어 학생과 교직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청렴을 통해 공교육 기관으로 모범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순천대는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4대 폭력 예방교육 최우수 기관’으로 뽑혀 전국 408개 대학 중 유일하게 장관상을 거머쥐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한 국공립대학 청렴도 평가에서 계약 분야 1위를 기록했다. 광주·전라 지역 종합 청렴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학령인구 감소 등 급변하는 대학 환경에 대비하고자 ‘SCNU 비전 2030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수요자 중심의 단계적인 학사 구조 개편, 대학 예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재정건전성 과제 발굴 태스크포스(TF)’ 등 여러 가지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교양융합대학’ 신설… 통섭형 인재 양성 그중 지난달 전국 국공립대학 최초로 ‘교양융합대학’을 신설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립대학 특성상 쉽지 않은 시도였으나 뚝심 있게 추진했다. 학생 중심 교양 교육의 질적 향상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통섭형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구성원 모두가 혁신적인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특히 융합형 교과목인 ‘공자와 칸트’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전공 교수 2명이 동시에 강의를 진행하는 새로운 시도다. 학교 측은 앞으로도 이같이 다양한 트렌드를 반영한 교과목을 계속 발굴한다는 방침이다.●창업 선도·글로벌 역량 강화 순천대는 교육부 주관 ‘2018년 대학의 평생교육 체제 지원사업’에 2년 연속 선정됐다. 호남·제주권 국립대학으로는 처음인 실적으로 올해 안에 단과대학 체제인 평생교육대학으로 진행한다. 관련 학과로는 산업동물학과, 정원문화산업학과, 물류비즈니스학과, 산업융합학과를 운영한다. 2019학년도에는 사회서비스상담학과를 추가 신설해 총 5개 학과(정원 100명)로 확대 개편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지역 성인 학습자와 평생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모든 세대가 배움을 통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2018년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 주관기관으로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4년 연속 선정돼 올해 20억원의 국비를 지원받는다. 또 지역 기업과 대학이 상생 발전하는 산학 연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160억원을 지원받아 2020년 12월 산학협력관을 완공한다. 지난 2월에는 고용노동부 주관 ‘대학 일자리센터’ 사업 운영 대학으로 선정되는 등 취업과 창업을 선도하고 있다. ●“즐거운 대학·지역 중심 강소 대학으로” 순천대의 가장 큰 강점은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저렴한 등록금과 학생 1인당 평균 등록금 대비 66%에 달하는 장학금이다. 재학생 2100여명을 수용하는 쾌적한 학생 생활관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도 특별한 혜택이다. 학사 제도도 학생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학점이 3.0 이상 돼야 하는 전과제도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전과 가능 기한을 4학년까지 확대했다. 이는 재학생 누구나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아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도서관 일부 자유열람실을 지난달부터 상시 개방하는 등 면학 분위기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 같은 학습 환경 지원은 지난해 공공인재학부의 공무원시험 합격자 21명 배출, 교사 임용고시 43명 합격, 약학과·간호학과 국가시험 전원 합격 등 여러 분야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중 해외교육문화탐방은 학점, 토익 점수 등 선발 기준을 객관화해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생 150여명이 세계 속에 위상을 드높였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연 2회 운영하는 토익 사관학교 프로그램도 인기가 높다. 수료생 전체 평균 토익 성적이 200여점 이상 크게 향상돼 참여 학생 설문 결과 95%가 ‘매우 만족’이라고 답할 정도다. 박진성 순천대 총장은 “지역 사회를 리드하는 융합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대학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이를 통해 학생이 즐거운 대학, 동북아 시대를 견인하는 지역 중심 강소 대학으로 우뚝 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체험과 직관의 위험성

    [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체험과 직관의 위험성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운하를 만드는 등 건축과 토목에 정성을 기울였다. 목재를 등분하거나 직각으로 교차하는 작업이 자주 출현했는데, 정확한 직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밧줄을 사용했다. 균등한 간격으로 12개의 매듭을 지은 밧줄을 만들고, 3개의 매듭에서 꺾고 다시 4번째 매듭에서 꺾어서 팽팽한 삼각형을 만든다. 그러면 3매듭과 4매듭 사이가 더도 덜도 아닌 90도를 이룬다. 각 변의 길이가 3, 4, 5인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라는 사실을 피타고라스가 명쾌하게 논증한 것은 무려 천 년 이상 지난 뒤다. 이집트 공사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던 이 12매듭 밧줄을 요즘은 이집트삼각형이라고 부른다. 원과 정사각형이 비슷한 면적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지름이 9인 원과 한 변이 8인 정사각형은 대충 비슷한 면적을 갖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비율을 사용해서 원주율을 계산하면 3.16쯤 나오니까 상당한 근사치다. 중세 이후 무한급수나 미적분을 사용해 원주율을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이 나왔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는 기대 난망이다. 이쯤 되면 구태여 논증의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경험과 직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인류는 왜 직관을 신뢰하지 않고 논증의 험로를 걸어온 걸까. 대답은 많다. 제한된 경험에 의지하다 보면 쉽게 일반화해서 틀린 결론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 근거 없는 직관과 신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으니까. 평생 하얀 백조만 본 사람이 블랙스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이며,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고 무조건 믿는 사람이 라돈 침대의 위험성을 어떻게 꿰뚫어 보겠는가. 기하(幾何)는 한자로 ‘몇 기’와 ‘어찌 하’의 결합이라서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의 수필인 ‘몇 어찌’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고대 시가 연구의 시조 격인 무애 선생은 스스로를 국보 1호라고 칭하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남겼다. 조선 최고 천재로 불렸던 무애의 ‘몇 어찌’는 예전 국어 교과서에 수록돼서 내 세대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는 수필이다. 한학을 공부하던 무애는 늦은 나이에 서양 학문을 공부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기하, 즉 ‘몇 어찌’라는 뚱딴지같은 과목을 접했다. 기하는 영어 ‘geometry’를 음차한 용어라서 한자의 뜻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되는데, 늦깎이 학생이 알 턱이 없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의 ‘땅’과 ‘측량’이라는 단어의 결합이니 사물의 ‘모양’을 다루는 분야라는 뜻이다. 좌절감에 빠진 무애는 ‘몇 어찌’를 이해해 보리라 독하게 맘먹고 몇 날을 밤새우다가 그 논리성과 명징성에 빠져들었다. 유클리드의 논증 기하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그 벅찬 마음을 글로 적어 수필로 남겼다. 이집트인들은 실용적 필요와 예술적 욕구로부터 수학을 발전시켰지만 전승되면서 심화하고 발전되지 못했다. 하지만 유클리드의 기하는 논증을 통해 결론에 다다르는 사유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 서양 지성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이나 미국 독립선언서도 유클리드적 논증 전개의 사례로 꼽힌다. 아인슈타인은 유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과 유클리드 원론을 들곤 했다. 교육은 경험과 직관의 전수라기보다는 합리적 사유의 방식을 전수하는 행위다. 합리적 사유 방식을 가르치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방식인 논증이 우리 교육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서초에 가면 모차르트와 산책한다

    서초에 가면 모차르트와 산책한다

    양재역 12번 출구 빈 터에 산책로 어린 모차르트·피아노 조형물 LED 악보 조명등·스피커 설치 서울 서초구에 ‘칸트의 산책길’, ‘연인의 거리’에 이어 또 하나의 문화 산책로가 조성됐다.서초구는 양재역 12번 출구 유휴공간에 주민들이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모차르트의 음악 산책길’을 만들었다고 14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모차르트가 1784년 작곡한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를 모티브로 산책길을 만들었다”며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와 서초구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안내 표지판과 피아노 조형물이 나와 산책길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산책길엔 안내 표지판, 가로 5.5m·세로 10m 크기의 반원형 나무데크,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린 모차르트 조형물, 다양한 악기가 부조로 새겨진 아트벤치, 야간에 빛을 내는 발광다이오드(LED) 악보 조명등, 음악이 흐르는 스피커 등이 설치됐다. 구 관계자는 “모차르트 조형물의 피아노는 흑백 건반 위치가 반대로 돼 있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살던 18세기 피아노 형태인 쳄발로 건반 형식을 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트벤치 2개엔 호른·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새겼는데 이들 악기는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의 악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로등 형태의 스피커에선 오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터키행진곡’, ‘피가로의 결혼’ 등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들이 나온다. 장재영 서초구 도시디자인과장은 “상반기 중 고속버스터미널~이수교차로 구간 반포천변에 ‘피천득 산책로’도 조성할 예정”이라며 “다양한 산책로를 조성,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욱의 파피루스] 4차 산업혁명은 판단력의 문제다

    [서동욱의 파피루스] 4차 산업혁명은 판단력의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등을 기반으로 삶에서 이루어지는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다. 이 혁명의 핵심에 ‘판단력’이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흔히 ‘결정’ 장애를 호소한다. 판단을 내리는 일만큼 어렵고 중요한 것이 없음을 알려 준다. 판단력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구구단이나 역사적 사실이나 영문법은 가르치지만 판단력은 가르칠 수 없다. 자수성가한 재벌 1세보다 2세는 경영학의 원리를 많이 학습하지만 회사를 말아먹는 경우가 있다. 원리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사례에 적용하는 판단력이 관건이고, 원리는 학습할 수 있으나 판단력은 학습되지 않는 까닭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판단력을 훔치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력 비판’의 저자 칸트는 판단력을 ‘천부의 자질’이라 했다.판단력은 그것을 지도하는 상위의 교본이 없는 근본 지위에 있는 것이다. 가령 의학상의 규칙, 치료 요법 전체를 잘 공부한 의사를 생각해 보자. 그 의학 지식과는 별도로 환자에게 어떤 의학 지식, 어떤 치료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그의 능력에 달렸다. 그 능력을 판단력이라 부른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사례에 어떤 보편적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결정하는 능력 말이다. 명의와 의료 사고를 내는 의사가 갈리는 지점은 바로 저런 판단력의 유무다. 판단력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히틀러의 법학자인 칼 슈미트가 몰두했던 것 역시 내가 보기엔 ‘판단력의 문제’다. ‘정치신학’에서 ‘독재’를 옹호한 이 법학자는 규칙은 완벽히 합리적으로 구성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가령 국가에 예산법이 없는데,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예외 상태에 대해 법은 답하지 못한다. 국법은 거기서 끝난다. 그러면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못할 때 누가 법 대신 결정하는가? 바로 법 위에 있는 통치자가 결정한다. 인류는 오래도록 법이 예외 상태와 맞닥뜨려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완벽히 합리적이도록 법을 다듬어 나갔다. 슈미트의 주장은 그래 봤자 법은 예외 상태와 마주쳐 어쩔 줄 모르며, 법이 무용지물이 된 이 예외 상태는 법 위에 있는 통치자의 결정, 재량, 바로 독창적인 판단력에 따라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법 위에 한 인격의 천부의 재능인 판단력, 결정하는 능력이 놓인다. 이렇게 규칙 위에 통치자의 판단력을 위치 짓는 이 사상은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위한 법철학이다. 규칙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마련되더라도 규칙은 그 자체로는 영위될 수 없고 결국 인격이 지닌 천부의 재능인 판단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인간이 걸어온 합리주의에 대한 의심이다. 인류는 한 인격(또는 공모적인 몇몇 인격)의 판단력이 인간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인격에 의존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예외 없이 작동하는 익명의 규칙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민주주의 자체가 이 예외 없는 익명적 규칙을 존중하며, 여기에 예외를 두고 끼어드는 한 인격의 판단력(독재자가 행사하는 유신이나 긴급권)을 못 참는다. 4차 산업혁명의 의의는 바로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 능력인 판단력의 자리를 넘본다는 데 있다. 예외가 생겨 무너지는 합리적인 규칙을 완벽하게 만들고, 완벽하게 개개 경우에 적용하는 혁명으로서 의의 말이다. 가령 알파고는 돌이 놓일 가장 좋은 자리를 판단한다. 그 판단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즐거워하지만, 인공지능은 곧 그 예외를 합리성으로 만회한다. ‘딥러닝.’ 바로 기계학습을 하는 까닭이다. 점점 더 예외 상태(적용돼야 할 규칙이 무용하게 되는 상태)가 발생하는 치욕은 사라지고, 합리성의 자리를 한 인격의 판단력(총기를 잃었을 때는 변덕, 객기, 우유부단)에게 내주는 일은 없어진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잘못 판단하는 사태(인간에 대한 공격)를 우려한다. 그것은 사실 인간의 재앙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겪는 재앙이다. 인공지능 스스로 예외 상태를 허용해 다시 한 인간의 판단력에, 존 오코너 같은 원시적 영웅의 결단에 자기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인공지능을 다독이며 다시 합리성을 향한 길로 나가 차세대 판단력 혁명을 준비할 것이다.
  • 터키항공, 세계 최다 취항 항공사 자리매김

    터키항공, 세계 최다 취항 항공사 자리매김

    터키항공이 서아프리카의 문화 중심지인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과 요르단의 항만도시 아카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로 신규 취항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로써 터키항공은 운항 지역을 121개 국 304개 도시로 확장하며 세계 최다 취항 국가 수의 항공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은 이 항공사의 52번째 아프리카 지역 취항지다. 이색 탐험을 즐기는 국내 여행객들에게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아카바는 요르단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핵심 도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풍부한 문화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터키항공은 요르단 아카바 취항을 기념해 마일스앤스마일스 회원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터키 출발은 6월 11일까지, 아카바 출발은 6월 12일까지 평상시보다 25% 적은 마일리지로 티켓 구매 및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 터키항공 한국지사 1800-8490.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광장] 법은 귀한 자에 아부하지 않는다/박건승 논설위원

    [서울광장] 법은 귀한 자에 아부하지 않는다/박건승 논설위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 이후 뇌리에 박힌 것이 ‘법불아귀’(法不阿貴)다.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다는 한비자의 법언(法言)이다. 법이 권력자나 부자를 피해 가면 이미 법이 아님을 함축한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책임질 인물로 발탁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구속한 첫 총장이 된 것은 역설적이다. 평소 법불아귀를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고통치권자를 수사하는 검찰의 자세를 논할 때마다 빌려 쓴 말이 법불아귀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틀 만에 사표를 냈다. 임기를 7개월 남겨 둔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한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그의 법불아귀론은 그렇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고 외친 사람은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다. 예전에 법대생들이 귀에 싹이 날 정도로 들었을 말이다. 글을 교묘하게 꾸며 법을 농간한다는 ‘무문농법’(舞文弄法)이란 법리도 있다. 붓을 함부로 놀려 법조문을 곡해하고 법률을 제 형편에 좋도록 적용한다는 뜻이다. ‘사기’에서는 법을 잘 아는 관리들이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무문농법이라 했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편법과 불법의 주범임을 꼬집는다. 그렇다면 국정농단 방조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우 전 수석에게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것은 법불아귀를 적용하지 못한 탓인가, 무문농법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두 개가 더해져 생긴 합성물인가. 검찰의 8년 구형에 한참이나 못 미친 1심 선고에 찜찜하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항소하고 미결구금(未決拘禁) 일수까지 더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형량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낮다. 최순실씨에게는 징역형 20년을 선고한 법원이 적극 공모자인 그에게 8분의1 수준의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법률 지식에 해박하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찰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쳤다.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번번이 검찰의 소환과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를 교묘하게 빠져나간 장본인이다. 재판부는 “(국정농단의)진상 은폐에 가담해 국가적 혼란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며 피고인석에 앉은 그를 준엄히 꾸짖었지만 종국에는 9개 혐의 중 4개만 유죄로 인정했을 뿐이다. 더구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다. 형법 제123조에 따르면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누군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성립된다.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에 CJ E&M을 무리하게 고발하도록 요구한 혐의만 직권남용으로 봤다.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의 부당 좌천 혐의나 K스포츠클럽 사업에 대한 부당 감찰 시도 혐의는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 전 수석은 직권남용 혐의를 어떻게 무죄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그저 고개가 갸우뚱해질 일이다. 국정농단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실장은 물론이고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안종범 전 경제수석도 직권남용 혐의는 피해 가지 못했다. 설령 그가 최씨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직무의 위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지시라고 해도 부당한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통 크게 구형하면서도 정작 법원이 판단할 만한 핵심 골자는 주지 못한 검찰의 행태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의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갈음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우 전 수석 본인과 검찰, 사법부 3자가 빚어낸 합작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땅에 법불아귀는 온데간데없고 무문농법만 횡행한다는 것은 ‘우병우 1심 선고’가 던져 준 교훈이다. 이제 칸트의 말을 바꿔 모두 외쳐 보자. ‘하늘이 무너져도 법불아귀는 세워라’고 말이다. ksp@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1960·70년대 은어(隱語)

    [그때의 사회면] 1960·70년대 은어(隱語)

    지난해 7월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역대급’이라는, 우리 국어사전이나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사용해 화제가 됐다. 신조어, 은어, 속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재순이(재수생) K양은 주다야싸(주간 다방 야간 살롱)에서 가리지날(가끔 만나는 남자)을 만나 양서를 함께 보고(맥주를 함께 마시고) 발바닥도 비볐다(고고춤을 추었다). 고팅(고고 미팅)에서 만난 가리지날은 약간 등대지기(성관계를 밝히는 사람) 기질이 있는데 K양과는 누가봐 데이트(삼각관계) 중.”(동아일보 1978년 4월 21일자) 지금 ‘뇌섹남’이 있다면 1962년 무렵엔 ‘미스터 마가린’이 있었다. ‘수목(樹木)처럼 산뜻하고 멋있는 신사’라는 뜻이었다. 마가린이 식물성 식용품이어서 그런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경향신문 1962년 7월 13일자).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원투(일리) 있어’, ‘솥뚜껑 운전수’(식모), ‘재건 데이트’(돈 안 들이는 데이트), ‘KBS’(갈비씨) 등의 은어는 차라리 애교스럽다고 하겠다. ‘생고무 셔츠’(웃통을 벗은 남자), ‘부속물’(남자들이 놀러갈 때 함부로 따라가는 여자), ‘포장공사’(화장), ‘12시’(데이트: 시곗바늘이 서로 만나므로), ‘잠수함’(국속에 든 멸치), ‘엄마 자장가’(여선생의 강의), ‘청춘복덕방’(교회), ‘속도위반’(결혼 전 임신), ‘루트3’(난해한 애인편지), ‘박호순’(순호박), ‘새발의 워커’(당치도 않은 소리), ‘스팀 아웃’(김샜다) 등의 은어는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청소년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어르신들이 고등학교에 다녔던 1960년대 중반에 썼던 유행 은어들이다(동아일보 1964년 9월 24일자). 그런가 하면 ‘검은 도서관’(영화관: 도서관 이상으로 영화관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뭔가 배운다는 뜻) 같은 풍자형 은어도 있고 ‘애플두’(사과해), ‘1414’(왔네 왔네), ‘33두’(삼삼하다), ‘2분의1’(반했어), ‘드라이문’(건달)은 현재의 인터넷 신조어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쩨’(외제), ‘EDPS’(음담패설), ‘칸트’(고민), ‘스키타다’(키스하다), ‘4·8작전’(커닝), ‘오촌오빠’(여자의 애인), ‘18금’(데이트비용 공동 부담시키는 남자), ‘아르데이트’(아르바이트 겸 데이트), ‘교양필수과목’(미팅), ‘ABCD’(남자의 4대 조건: 술, 당구, 담배, 데이트)는 1970년대 대학생 사이에서 유행한 은어들이다. ‘꺾자’(술 마시자), ‘설 푼다’(말을 많이 하다), ‘형광등’(반응 속도가 느린 사람), ‘지방방송’(옆에서 떠듦), ‘코스모스 졸업’(후기 졸업), ‘섬씽’(연애사건) 등은 수십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쓰인다. 사진은 1966년 당시 여고생들의 은어 사용 실태를 보도한 기사.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투명한 정책ㆍ인사 큰 성과”… 올해도 ‘청사초롱 ’ 불 밝히는 서초

    [자치단체장 25시] “투명한 정책ㆍ인사 큰 성과”… 올해도 ‘청사초롱 ’ 불 밝히는 서초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은 2014년 7월 민선 6기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 결심했다. 서초구를 서울 25개 자치구 중 청렴도 꼴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슬로건도 ‘청렴과 친절로 구민을 섬기겠습니다’로 정했다. 취임 첫해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서울 자치구 중 12위를 기록했다. 2015년 9위, 2016년 7위, 해마다 꾸준히 오른 데 이어 지난해 12월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지난 19일 구청에서 만난 조 구청장은 “청렴도 발표가 있던 날 1위라는 사실보다 청렴도 꼴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땀을 쏟았던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왜 청렴도 향상에 주력하고자 한 건가요. -주민들이 공무원에게 가장 바라는 게 뭘까요. 바로 청렴입니다. 청렴해야 행정도 신뢰를 받을 수 있어요. 구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직자가 어떻게 구민을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공자께서도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공직자에 대한 주민 신뢰는 청렴에서 나와요. 그리고 청렴도 꼴찌라는 게 서초구의 명성·브랜드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으로 있을 때 서울시장과 함께 서울시 청렴도를 꼴찌에서 1등으로 끌어올렸어요. 당시 경험을 밑거름 삼아 직원들과 의기투합했습니다. ▶3년여 만에 꼴찌에서 1등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특단의 대책이 있었나요. -투명성부터 확보하려 했습니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을 추진할 때도 주민 의견을 수시로 반영했어요. 건축·보조금 지원 등 부패 취약 분야는 민원인들이 직접 모니터링하게 했고, 금품·향응 같은 비리는 징계 수위를 대폭 높였어요. 음주운전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 아예 싹을 잘랐죠. 지난해 3월 시작한 ‘체인징데이’도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국·과장들이 서로 업무를 바꿔 근무하는 건데, 홍보과장이 건축과장이 되고 건축과장이 주거과장이 되는 식이죠. 내 업무를 다른 국·과장들이 보기 때문에 비리가 싹틀 여지가 없어요. 타 부서의 ?어려움을 알 수 있어 협업도 더 잘 이뤄지게 됐습니다. 퇴근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금지와 부당한 업무지시 근절 내용을 담은 ‘청렴실천결의문’을 선서하기도 했습니다.▶무엇보다 인사 투명성 확보가 중요했을 듯한데요. -권익위 평가에서 인사청렴지수가 전국 최고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투명한 인사제도로 청탁을 배제하고 예측 가능한 정기인사를 했더니 직원들 표정이 한결 밝아지더군요. ▶청렴도가 향상되면서 공직 내부 분위기도 바뀌었나요. -직원들이 더욱 친절해지고 부패에서 멀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어요. 조직문화가 유연해지면서 직원들 근무 만족도도 높아졌고요. ▶지난 연말 마지막 확대간부회의에서 직원들에게 큰절까지 했는데.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죠. 함께 뭉쳐 꿈같은 기적을 이뤄낸 직원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직원들에게 제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청렴도 1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일 텐데. -올해 구정 모토를 ‘청사초롱’으로 정했습니다. ‘청’렴 1등 ‘사’수해 푸른 서‘초’ ‘롱’런하자는 뜻을 담고 있어요. 청렴도 1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내부 결속을 다지자는 의미에서 정했는데, 요즘 직원들 사이에 ‘청사초롱! 불 밝히자!’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만큼 직원들의 청렴 의지가 높다는 거죠. 그리고 올핸 ‘데이터 감찰제’를 도입하려 해요. 제보에 의한 사후 조사 대신 홈페이지 민원창구인 ‘구청장에게 바란다’ 등 각종 소통 창구의 데이터를 분석해 비위 행위를 사전에 근절하려고 해요. 조 구청장은 지역민들에게 ‘복손’으로 통한다. 취임 후 수십년 숙원 사업들을 척척 해결, 지역민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37년간 풀리지 않았던 정보사부지 관통 터널 착공, 서초구 마지막 판자촌인 방배동 성뒤마을과 국회단지 개발, 위탁개발 방식으로 건립기금 1000억원을 아낀 서초구청사 복합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조 구청장은 “취임 직후 기존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발상 전환을 통해 과감하게 새로운 프레임을 짜 숙원사업들을 해결했다”고 했다. ▶숙원사업을 거의 다 해결했는데, 앞으론 어떤 사업에 역점을 둘 건가요. -30년 만에 도시계획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려고 해요. 서초구는 1988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남구에서 분구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도시계획이 바뀐 적이 없어요. 21세기 대한민국 도시재생 모델인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4차 산업혁명 산실인 ‘양재 R&CD 특구’ 지정, 단절됐던 서초의 동·서를 연결하는 ‘서리풀터널’ 착공, 65건의 재건축 등 다양한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해 30년간 정체돼 있던 도시계획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해요. ▶굵직한 숙원사업뿐 아니라 대형그늘막인 ‘서리풀원두막’ 같은 생활밀착형 행정들도 지역 안팎에서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주민들이 횡단보도 등에서 교통신호를 기다리며 따가운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서리풀원두막을 설치했는데, 주민들이 ‘도심 속 오아시스’라며 아주 좋아하셨어요. 서울의 다른 자치구들은 물론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했어요. 서리풀원두막으로 지난해 유럽연합(EU) 등에서 공식 인정하는 친환경상인 ‘그린애플 어워즈’(The Green Apple Awards)도 받았어요. ▶큰 히트를 친 서리풀원두막이 서울시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서리풀원두막을 설치하려 했을 때 서울시에서 도로 위에 세우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하지만 주민 편의를 위해 강행했죠. 주민 호응이 ?커지자 도로 위에 설치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이 내려왔어요. 반대한다고 안 했다면 전국으로 뻗어나간 서리풀원두막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뒷골목 모기를 박멸하는 ‘서초 100인 모기보안관’, 도시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입힌 ‘양재천 칸트의 산책길’, 노점상 없는 거리를 만든 ‘강남대로 푸드트럭 존’ 등도 큰 호응을 얻은 생활밀착형 행정으로 꼽히는데, 이런 행정은 어떤 철학으로 추진하나요. -마음을 읽으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게 됩니다. 행정도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해요. 한여름 땡볕을 가려주는 작은 배려인 서리풀원두막처럼 마음이 담긴 행정, 체온이 묻은 사업들은 주민 호응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죠. 주민 눈높이에 맞춰 주민들이 직접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핵심입니다. 주민들은 구청장이 집안의 작은 일도 챙기는 엄마처럼 골목의 고장 난 가로등, 공원의 낡은 벤치 등 작지만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것들을 찾아내 꼼꼼하게 처리해 주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조 구청장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독일의 첫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롤 모델이다. 부드럽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면서도 뚝심 있게 정책을 펼쳐서다. “서초의 변화는 응원과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45만 서초구민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물은 100도에 끓는데, 1도만 보태면 기체가 됩니다. 서초는 다른 자치구와 달리 1도가 더 있어요. 무한한 잠재력과 에너지를 지닌 구민들이 바로 1도입니다. 그 에너지를 모아 서초의 100년 미래를 그려 나가겠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조은희 구청장은 누구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20대 후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대 중반에 청와대 행사기획 비서관, 문화관광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이어 대학교수, 비정부기구(NGO) 대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1급), 서울시 최초 여성 정무부시장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4년 7월 민선 6기 서초구 첫 여성 구청장으로 취임, 강력한 추진력으로 서초의 해묵은 난제들을 풀어내고 있다. 독일 메르켈 총리의 ‘무티 리더십’을 바탕으로 서초의 100년 미래를 위한 그림을 ‘엄마행정’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신해철,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 80년대에 바침

    “박 대통령께서는 총탄을 맞으신 직후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서 급거 군서울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 도착하시기 직전에 운명하신 것으로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습니다.”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가수 고(故) 신해철씨가 1996년 내놓은 노래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 사망 소식을 전하는 당시 정부 발표 내용으로 시작된다. ● 한발의 총성으로 막 내린 1970년대,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등을 불러 술자리를 즐기던 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을 거뒀다. 김재규는 이후 법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저격한 것이다”라고 외쳤다.당시 11살이던 신해철은 훗날 노래를 통해 이렇게 회상했다.“한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은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신씨의 회상처럼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으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친애하는 민주정의당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각계 귀빈 여러분. 새역사, 새시대, 새정치를 개척해 나가자는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부름을 받고 나는 오늘 심심한 사유와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정당의 총재라는 위치,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라는 위치가 얼마나...”국민들은 민주화를 꿈꿨지만 그 결과는 신군부 전두환 정권 등장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이튿날인 18일 민주화운동이 들끓었던 광주에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을 투입해 국민을 향한 잔혹한 학살까지 자행했다. ● 전두환과 1980년 5월 광주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보다는 영화를 통해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1987년 단편 ‘칸트씨의 발표회’를 시작으로 이후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26년’ 등 영화인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방식으로 정권의 폭압성과 민중의 저항을 그렸다. 영화 관객, 더 넓게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는 단연 2017년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꼽힌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큰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압과 학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누적 관객 1218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역대 국내 개봉 영화 관객수 9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광주 5·18’이라는 시대적 배경 외에도 상당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소속 일본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19일 오전 ‘계엄령이 내려진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내용의 일본 언론보도를 보고 당일 오후 서울로 향했다.서울에 도착한 힌츠페터는 이튿날인 20일 오전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영화 속 ‘만섭’은 이후 실존인물 김사복으로 확인됐다.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 현지 취재에 성공한 힌츠페터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세계에 고발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진실은 한국에만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한국에서는 국가의 감시를 피해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만 힌츠페터의 다큐멘터리가 비밀스럽게 상영됐다. 부산에서는 1987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이 영상이 상영됐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 ‘탁’ 치니 ‘억’하고 죽어야만 했던 1987년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면서 정치권의 화두로도 떠오른 영화 ‘1987’ 속 대사다. 이 영화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부터 이한열 열사 사망까지 실제 1987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1987년 1월 13일 밤 12시 무렵.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박종철은 경찰의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에도 선배 박종운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 저항하다 의식을 잃었고 14일 오전 11시 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중앙일보 기자가 검찰을 통해 ‘서울대생 사망 사건’의 단서를 포착했고, 15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16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고, 박종철군의 친구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했다”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사망 당일 밤 고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으나 이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최환 검사는 부검을 지시하며 ‘사체보존명령’을 내렸다.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최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딱 보는 순간 ‘이건 고문이다’는 직감이 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모를 폭로했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했고, 고문 가담 경관은 2명이 아닌 5명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고문 살인 규탄 및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노무현·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이끄는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6월 항쟁을 이끌었고, 서울에서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왔다.6월 9일 서울 연세대에서는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한 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이한열이다. 이한열은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숨을 거뒀다. 당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이 부축당한 채 피 흘리는 사진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며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을 세계에 고발했다.전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군부정권은 결국 6월 29일 백기를 들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이날 국민이 요구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6·29 선언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선이 이뤄지면서 길었던 군사정권 시대가 저물고 민주화가 오는 듯 했으나, 당시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의 두 거목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각각 출마하며 여당 후보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라는 역대 대선 최저 득표율로 당선됐다. ‘실질적 민주화’ 역시 5년 뒤로 유예됐다.●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다 대한민국은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형식적·실질적 민주 국가로 거듭났으나 이후 경제성장과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과거 박정희 향수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힘입어 탄생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훼손됐다. 결국 헌법까지 유린하며 국정을 흔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뒤 구속됐고,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8년 국민들은 다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신해철씨는 노래에서 1970년대를 ‘옳고 틀림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대답은 무엇일까. 70~80년대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던, 이제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은 이렇다.“6월 항쟁, 또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독재권력 이게 힘들었지만 못지않게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 그런 말이었다. 지금도 ‘정권 바뀌었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게 있느냐’ 그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이 영화(1987)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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