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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원·초·중·고 77% ‘석면 학교’

    유치원·초·중·고 77% ‘석면 학교’

    서울의 초·중·고교는 물론 유치원까지 포함해 10곳 가운데 7곳 이상의 교실에 석면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석면은 한 번 흡입하면 체내에서 보통 20년 정도의 잠복기 동안 머무르다 폐암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교육 당국은 “공기 중에 퍼질 가능성이 큰 1~2등급 시설은 교체해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석면에 노출되면 어릴수록 잠재적인 피해가 더 큰 만큼 당장 석면을 제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잠복기 20년… 1급 발암물질 17일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2010년 하반기 학교 석면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석면이 포함된 자재를 사용한 곳을 조사한 결과 전체 2163곳의 77.2%인 1669곳이 ‘석면 의심 시설’로 파악됐다. 이 중 석면이 의심되는 교실 수는 모두 4만 7694개로 전체 5만 4279개의 87.8%에 달한다. 서울 지역에서 처음 실시된 이번 조사는 교육과학기술부 의뢰에 따라 2009년 이후 1년간 서울 지역 전체 학교급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이번 조사는 학생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인 교실과 화장실, 복도 등 실내 공간 위주로 실시한 데다 석면 자재가 포함된 면적으로 따지면 전체 학교 공간(411만 4358㎡)의 80%가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실상 학교 시설 대부분이 잠재적인 석면 피해에 노출돼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학교급별로는 고등학교가 98.3%로, 사실상 모든 학교 건물에서 석면 자재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어 초등학교(86.2%), 중학교(84.7%), 유치원(80.8%) 순이었다. 석면 의심 건축 자재가 쓰인 곳은 천장이 89.4%로 가장 많았고, 이어 칸막이(8.9%), 바닥(1.1%), 벽면(0.1%) 등이었다. ●시교육청 “교체 예산 부족” 서울시교육청은 석면 우려가 잇따라 제기됨에 따라 2009년 말 관내 167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1차 표집조사를 실시, 이 가운데 석면 텍스(TEX)의 훼손 정도가 심한 1~2등급(훼손율 10% 기준) 건물이 있는 학교 71곳을 전면 보수 및 교체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3등급으로 분류된 석면 의심 건물에는 사실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전수조사라고 하지만 조사 대상 대부분이 실내 건물에만 한정돼 한계가 있다.”면서 “잠복기가 긴 석면의 특성상 청소년 시절에 한 번 노출되면 30~40대의 젊은 나이에도 폐가 서서히 굳는 석면폐증이나 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교체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사설] 석면으로부터 우리 아이들 구하자

    아이 키우기 어려운 나라에 또 하나 위험이 드러났다. 서울의 학교 건물 대부분에 석면이 포함된 건축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유치원 및 초·중·고교 교실 5만 4279곳 중 87.8%, 4만 7694곳의 천장과 칸막이, 바닥재와 벽면재에 석면 의심 건축재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또 학교 공사 전후에 실시한 공기질 검사에서는 실제 석면이 검출된 곳도 무려 829곳이나 됐다고 한다. 뜯어보지 않았을 뿐, 아이들이 교실의 석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석면이란 솜같이 부드러운 섬유 모양의 규산광물로 한 가닥 굵기가 머리카락 5000분의1에 불과하다. 내구·내열·전기 절연성이 뛰어나 건축자재나 전기제품 등에 사용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197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후 선진국에서는 퇴출되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60여개국은 석면 사용을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금지, 규제하고 있다. 2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이나 후두암과 석면폐, 늑막·흉막에 암이 생기는 악성 중피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조사가 잇따라 ‘침묵의 살인자’ 혹은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국내에선 1970년대부터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 등이 학교와 공공건물 등에 많이 사용됐다. 이들 건물이 낡으면서 공기 중에 석면 가루가 날려 위험하다는 경고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면역성이 약하고 민감한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 공간을 생각할 때 불안감은 커진다. 아이들이 꿈을 키워야 할 교실이 석면 물질을 방치한 위험한 곳이라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미래의 국가 인적 자산인 우리 아이들을 석면의 공포로부터 구하기 위해 아이들의 교실만은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앞으로 석면 제거를 위해 학교 건물의 철거와 폐기물 처리를 할 때도 세심한 관리가 이뤄지기를 촉구한다.
  • [사설] 금융감독권 ‘밥그릇 다툼’ 변질 안 된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및 부실검사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의 감독권 독점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논거를 앞세워 한국은행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금융감독권의 분산을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거시 건전성 강화를 위해 중앙은행의 직접조사권을 강화하고 있고,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 유지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감독권의 분산을 통한 협력과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저축은행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와 금감원 전·현직 직원의 개인적인 유착 비리에 있지 통합감독체계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참극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일 출범한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가 명칭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벌써 회의적인 시각마저 대두되고 있다. 지난 3년간 되풀이된 것처럼 한은과 금융당국 간의 ‘밥그릇 다툼’으로 변질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따라서 우리는 TF가 이해당사자의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금융시장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기본 취지에 맞춰 혁신안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헌법의 행정권 조항을 들어 감독권 분산에 반대하지만 행정 제재의 최종 결정권을 금융위에 부여하면 위헌의 소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상근감사제도 대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지금처럼 사외이사가 연고 중심으로 선임되어서는 상근감사보다 더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확인됐듯 금융영역별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금융상품은 감독당국이 미처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통합감독권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TF는 금융 검사 및 감독의 모든 부문을 검토대상에 올리되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그 이전에 감사가 대주주나 경영진의 그늘에서 벗어나 선량한 감시자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해당사자들은 더 이상의 장외투쟁을 자제하기 바란다.
  • 국정현안 이해도 높아… 일자리 창출·서민생활 안정에 중점

    국정현안 이해도 높아… 일자리 창출·서민생활 안정에 중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옛 재무부(기획재정부) 근무 경력은 1992년부터 2년이다. 행정고시 23회인 박 후보자의 공직 경력은 1983년부터 9년 동안 감사원(하버드대 유학 6년 포함), 재무부, 청와대 비서실 근무 등 17년가량이다. 이어 성균관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 등을 거친 다소 특이한 경력을 지닌 박 후보자로서는 재정부에 16년 만의 금의환향인 셈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교수 출신 장관(남덕우 부총리)이 임명된 적이 있지만 5년 단임 정권이 시작된 뒤 교수 임용은 처음”이라면서도 “박 장관 후보자를 딱히 외부 인물로 부르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의 재정부 장관 기용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무난한 선택이라는 반응들이다. 일단 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높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냈기 때문에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다. 겸손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박 후보자는 청와대 수석 시절에도 정책 부서와 꾸준히 의사소통을 해 왔기 때문에 재정부 간부진들의 부담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재정부 다른 관계자는 “개혁의 의지는 확고하지만 접근 방법은 온화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예상 밖 인물이지만 차관이 행시 23회(류성걸 2차관)와 24회(임종룡 1차관)인 점에서 조직 운영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시절에는 사무실에 간이 침대를 마련해 놓고, 경호처 근처에 방까지 잡아놓고 세종시 수정 문제를 다룰 정도로 워크홀릭이다. 청와대 불자 참모들의 모임인 ‘청불회’ 회장을 지냈다. 청와대 수석에게 지급되는 승용차를 마다하고 경차인 모닝을 타고 다녔으며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에는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타고 다녔다. 박 후보자의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 서비스산업 육성, 고물가속의 성장 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아울러 경제팀의 수장으로서 카리스마를 확보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는 일도 넘어야 할 숙제다. 그는 고용부 장관 출신답게 일자리 창출에 우선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박 후보자는 청와대의 내정 발표 직후 ‘후보자의 각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서민 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사심 없이 올인하고자 한다.”면서 “탁상과 현장, 거시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격을 줄이고 부처 칸막이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우리 경제의 체질을 착실히 다지겠다.”면서 “뜨거운 가슴과 찬 머리를 조화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의료·복지 등 서비스산업 선진화에 중점을 둘 전망이다. 집권 하반기에 접어든 만큼 새로운 사업을 실시하기보다 최근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는 유연근무제의 민간 기업으로의 확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추진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영리의료법인 추진이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박 후보자는 고용부 장관 시절 정부 부처 최초의 공무원 퇴출, 중앙노동위 상임위원(1급)에 대한 시간제 근무 시범 실시 등 고용부는 물론 공직사회를 뒤흔드는 인사실험을 시행했다. 한나라당 시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를 맡는 등 복지에 대한 관심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관계자는 “박 후보자가 보건복지에 대한 지식도 탁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임용으로 보건복지부와 재정부가 얽힌 현안에 있어서 재정부의 입김이 세어질 수 있다.”고 점쳤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공무원 기능·별정직 없어진다…직종 통합·단순화 추진

    공무원 기능·별정직 없어진다…직종 통합·단순화 추진

    일반직, 기능직, 별정직 등 7개로 분류된 현행 국가공무원 직종이 대폭 통합, 단순화 된다.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서다. 행정안전부는 28일 공무원 인사제도개선 당정협의를 거쳐 세분화된 공무원 직종을 근무특성에 맞게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침이 확정된 것은 아니나 기능직, 별정직 등 일부 소수 직종이 업무성격이 유사한 일반직으로 전환,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간소화는 왜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현행 공무원 직종은 1981년에 확립된 것으로, 분류체계가 복잡해 변화하는 행정환경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면 개편 필요성을 언급, 주목됐다. 서필언 인사실장은 이와 관련, “최대한 직종 간 장벽을 없애 인사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은 관가 안팎에서 이미 공유된 분위기”라면서 “그러나 30여년 이어져 온 공무원 직종 체계를 손보는 대형 작업인 만큼 앞으로 토론회 개최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해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복잡하길래 현행 공무원 직종은 크게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구분된다. 경력직에는 일반직, 특정직, 기능직이 포함되며 특수경력직은 정무직, 별정직, 계약직, 고용직으로 나눠진다.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고용직은 기능직으로 통합, 이미 폐지 작업이 진행 중이다. 10개 직군에 21개 직렬이 있어 인사실무담당자들도 인사관련 책자를 펴놓고 업무를 해야 할 정도다. 이 때문에 공무원 직종 통합에 대한 용역보고서가 1999년, 2003년, 200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나왔다. 보고서에서는 직종별로 승진, 전보 등 인사관리 체계가 다른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직종 간 이동을 하려면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야 할 정도로 칸막이가 높다. 기능직과 별정직 등 소수 직종은 승진기회가 낮아 상대적 박탈감이 크고, 그 같은 차별이 직종 간 갈등요인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바뀔까 2006년 용역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새롭게 분류될 직종은 정년까지 근무 여부에 따라 크게 ‘경력직’과 ‘비경력직’으로 단순화될 전망이다. 일반 행정직과 기술직이 통합해 ‘행정직군’으로 분류되고 동일 인사규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직과 직무 성격이 거의 비슷한 별정직 공무원은 경력직으로 대폭 흡수되며, 행정직군과 동일한 직무등급 및 급여체계를 적용받게 된다. 계약직도 지금처럼 별도의 직종으로서가 아니라 임용 형태의 하나로 개념이 달라진다.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 3년째 시행 중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은 올해로 3년째 진행 중이다. 해마다 기능직 가운데 10~15%의 인력이 공개시험을 거쳐 일반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능력있는 기능직에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승진기회도 부여하자는 취지”라면서도 “현행 직종 분류를 바꿀 경우 기존의 기능직, 별정직 공무원들이 어느 부분에서 얼마만큼이나 일반직으로 통합될 수 있을지는 면밀한 분석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방직공무원으로서 기능직인 경우, 이르면 연말부터 일반직 전환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현재 지방직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지난해 말 현재 국가공무원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은 각각 61만 9371명, 3366명이다. 이 가운데 기능직은 4만 641명, 별정직은 1712명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 여야 캠프 가보니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 여야 캠프 가보니

    ■ 한나라 엄기영 후보 캠프 - 2000명 ‘대선급 선대위’ 출격 ‘민심을 크게! 강원도를 크게!’라고 쓰여진 파란 바탕의 홍보용 플래카드가 걸려져 있지 않았다면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12일 춘천 구도심인 소양로 3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한나라당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 캠프를 찾았다. 정확하게는 한나라당 강원도당 사무실이다. 허름한 4층짜리 상가의 2층이 도당 사무실 겸 선거 캠프다. 선거 캠프라고 짐작하게 하는 건 한쪽 칸막이에 붙어 활짝 웃으며 손을 들고 있는 엄 후보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 석장이 고작이다. 방종현 도당 사무처장은 “엄 후보가 경선 때는 원주를 본거지로 했는데, 이쪽(춘천)에 언론이나 도청 등 주요 관공서가 많다 보니 도당을 선거 전략 본부로 사용하게 됐다.”면서 “공식 캠프인 원주 사무실은 자원봉사자 등이 주로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6·2 지방선거 참패의 설욕을 벼르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중앙당과는 달리 혼자 지역 후미진 곳을 누비는 엄 후보의 ‘낮은 자세’ 선거 전략을 반영한 셈이다. 선거 사무실의 ‘수수한’ 모습과 달리 선거 참모들은 무척 바빠 보였다. 한 무리의 양복 부대가 소파에 둘러앉아 선거 차량 대여 등 선거 운동 방향을 상의하고 있었다. 전화도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입당 절차를 묻는 내용인 듯했다. 서울의 107배, 남한 전체 면적의 16.7%나 될 만큼 광활한 강원을 품에 안으려면 각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인사 영입이 필수다. 선대위 우두머리 격인 조순(강릉)·한승수(춘천) 전 총리 등 상임고문단과 명예선거대책위원장 김진선 전 지사, 선대 부위원장인 조규형(강릉) 전 브라질대사, 권혁인(강릉) 전 행자부 차관보, 조명수(춘천) 전 정무부지사 등의 공통분모 역시 ‘강원 출신’이다. 여기에 경선에서 엄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최동규(평창)·최흥집(강릉) 전 후보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선대위 규모로는 2000명이 넘는 대선급 조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도내 8개 당협위원회는 또 별개다. 엄 후보는 14일부터 지역 곳곳의 공무원 계층을 파고들 계획이다. 언론사별로 5~18% 포인트 앞선 초반 판세를 굳힐 수 있는 결정타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고민도 적지 않다. 가늠하기 힘든 투표율 때문이다. 방 사무처장은 “투표율 40% 안팎을 예상하지만 45% 이상 올라가면 어려워질 수 있다. 2% 포인트 안팎의 박빙 승부가 될 수 있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춘천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민주당 최문순 후보 캠프 - 시민 참여형 ‘SNS 표심잡기’ 남춘천역을 나와 200m쯤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이마트 춘천점이 나온다. 그 맞은편에 민주당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의 웃는 얼굴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띈다. 현수막이 걸린 비교적 깔끔한 10층 상가의 5층이 최 후보의 선거 캠프다. 12일 캠프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든 벽면이 최 후보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다. 출입문 오른쪽에는 얼마전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찍은 최 후보의 큰 사진 위로 노란 메모지들이 촘촘히 붙어 있다. 최 후보의 팬카페인 ‘내친구 문순C’ 회원들이 개소식 때 찾아와 희망글을 적어 놓은 것이다. 그 옆으론 강원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오고 MBC 기자·노조위원장·사장,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이력과 사진들이 벽을 메웠다. 벽 정중앙에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도 빼놓지 않았다. 마라톤, 번지점프, 자전거타기, 4륜 오토바이타기, 이날 오후 후보단일화 세리머니로 기획한 수상스키 등 최근 최 후보의 이색 선거운동 시리즈 모두 이 사무실 구석의 원탁에서 구상됐다. 민주당 이성남·박우순·박은수·최영희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파견 인력으로 내준 보좌관들까지 합류해 매일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민주계 거물들의 합류도 줄을 잇는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총리는 지난 주말부터 강원에 상주하며 지원에 나섰다. 재작년 미디어 관련법 처리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포장마차 전국 투어에 동행했던 천정배 최고위원도 강원에 머물며 유세를 도울 예정이다. 또 무소속이던 송훈석(고성) 의원, 송영철(강릉) 변호사, 기세남 강릉시의회 부의장 등이 민주당에 합류하며 열세 지역인 영동권의 전력도 보강됐다. 도내 안팎의 대학 현직 교수 70여명이 정책자문위원단으로 선대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 최 후보의 인맥이다. MBC 노조위원장으로 해직까지 당했던 전력 덕분에 지역 언론 노조 출신 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끈끈하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열세인 최 후보 측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한 시민참여운동, 불교계 끌어안기로 막판 뒤집기를 벼르고 있다. 최 후보 측은 투표율 50% 달성을 승리 공식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에게 밀리는 인지도 만회가 쉽지 않다. 한 캠프 참모는 “손학규 대표가 직접 분당을 보궐선거에 뛰어들면서 강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 걱정이다. TV 토론과 20~30대의 투표 참여에 승부를 걸 작정”이라고 말했다. 춘천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CEO 칼럼] 융합산업의 르네상스를 위하여/기옥 금호건설 대표이사

    [CEO 칼럼] 융합산업의 르네상스를 위하여/기옥 금호건설 대표이사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는 것이 있다.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후 여러 분야의 예술가, 철학자, 학자들의 공동작업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피렌체 공화국을 중심으로 전 유럽에 문화와 예술의 부흥기,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메디치 효과’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이 결합해 뛰어난 작품을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르네상스 시대의 성공을 이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다양한 분야 간의 결합, 즉 ‘융합’(融合)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수세기 전 르네상스 시대의 태동을 이끌었던 ‘융합’이라는 개념이 21세기 경제·산업 분야의 새 화두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1세기 세계경제는 ‘융합의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융합기술을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융합기술을 국가적 최우선 사항으로 규정하고, 정부 주도하에 청정에너지기술과 최첨단 자동차 원천기술, 의료 정보기술 개발 등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역시 의료, 환경,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몇년 전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미래는 융합기술에 달려 있다.”고 했으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한국의 미래 경제는 융합만이 살 길이며, 융합시대에 정부와 민간 모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우리의 융합산업도 최근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원 아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 나가고 있다. 지식경제부의 주도하에 발의된 ‘산업융합촉진법’이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달 공포돼 하반기 시행에 들어간다. 한국산업융합협회와 같은 민간 연구기관의 설립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도 긍정적이다. 건설업은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삶과 기술이 집약된 산업이므로 융합산업 시대의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갖춰져 있다고 본다. 건설업이 창조한 융합산업의 대표적인 생산물이 ‘u-시티’(ubiquitous-city)다. u-시티는 건설, 가전, 문화 간의 융합(컨버전스)을 실현하는 21세기 한국형 신도시다. 최근 건설되고 있는 u-시티에는 첨단 정보기술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태양광 발전, 친환경 자재 등 자동차,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기술이 실현되고 있다. 우리의 삶과 공간을 창출하는 건설업에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융합기술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증거이다. ‘녹아서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를 가진 융합이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이종(異種) 간의 융합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각 종(種)이 배타적인 속성을 버리고 하나로 결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존에 칸막이식으로 구분된 산업의 틀과 각 산업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속성으로 인해 세계경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현재의 상황에서, 융합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결국 융합산업의 미래는 우리들 개개인의 의식 전환으로부터 시작되며, 열린 마음으로 서로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한다면 우리는 21세기 융합산업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지진과 원전의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에 너 나 할 것 없이 아낌없는 온정을 보내 준 우리나라 국민들을 보며, 우리 마음속의 ‘융합’은 이미 큰 도약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며,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21세기 융합산업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 ‘한국의 칸막기 문화’···강준만 교수의 ‘룸살롱 공화국’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룸살롱을 갖고 한국사회의 폐부를 해부했다. 펴낸 책은 ‘룸살롱 공화국’(인물과 사상사 펴냄).  강 교수 이 책에서 “한국은 ‘음주공화국’ ‘접대공화국’인 동시에 ‘칸막이공화국’이다.칸막기 현상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필요로 하며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칸막이를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라면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엔 정당,국회,검찰 등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와 기구보다는 룸살롱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 책은 룸살롱의 전신인 ‘요정’이 전성시대였던 해방 정국부터 오늘날까지 시대별로 룸살롱의 변천사를 살폈다. 강 교수는 “해방 후 미군에 영합해 한자리를 얻어내려 한 현장이 바로 요정이었으며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그 주동세력이 다시 룸살롱의 새로운 고객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후 198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고 밀실 권력과 지하 경제의 무대이자 산실로 자리 매김했다고 지적했다.  룸살롱으로 상징되는 ‘칸막기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강 교수는 먼저 조직평가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막기 문화는 자기 조직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존 평가 시스템의 개선 없이 칸막이 문화 자체만을 개혁 대상으로 삼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양건 감사원장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

    국회는 10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양건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재석 267명 중 찬성 201명, 반대 62명, 기권 4명으로 의결했다. 이와 함께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특별법’을 비롯한 84개의 법안과 결의안을 처리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 특별법’ 법안은 전화나 메신저를 통한 금융사기를 당한 경우 금융회사에 바로 피해사실을 알리면 피해금 지급이 정지되고 빠르게 돈을 되찾을 수 있는 절차를 명시했다. 법이 시행되면 사기 피해자의 요청으로 금융회사가 피해금을 송금받은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요청을 할 경우 금융감독원은 이 사실을 2개월 동안 공고하고, 이의가 없으면 정해진 절차를 밟아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이와 함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대한노인회의 조직과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거나 업무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한노인회 지원법안도 통과됐다. 정부가 2월 임시국회 중점법안으로 꼽았던 산업융합촉진법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산업융합촉진법은 개별법에 의한 업종별 칸막이식 산업발전전략의 한계를 보완하고 융합신시장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지식경제부가 핵심 어젠다로 추진한 법안이다. 이 법을 통해 융합신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기준이 없거나 불합리한 기준 등으로 인증을 받지 못해 시장 출시에 애로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최장 6개월 안에 적합성 인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국회는 민생법안 외에 5건의 결의안도 처리했다. 리비아 정부의 유혈사태를 비판하는 ‘리비아 정부의 유혈진압 규탄 및 중동 지역의 민주화 지지 결의안’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철회 촉구 결의안’, ‘한·일 양국 과거사 정리 및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촉구 결의안’ 등도 통과됐다.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도록 국회 차원의 지지를 보내는 결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내용의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과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설치해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자금을 투입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등은 11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나홀로 식사族’ 증가… 1인 전용식당 오픈 줄이어

    ‘나홀로 식사族’ 증가… 1인 전용식당 오픈 줄이어

    7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의 A일본식 음식점. 입구에 들어서자 1인석과 커플석의 빈자리를 알려 주는 ‘공석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홀에는 테이블이 없다. 대신 정면 벽쪽에 커튼이 쳐진 4개의 ‘구역’이 보인다. 커튼을 걷고 들어가면 마치 독서실 책상처럼 생긴 1인용 식사 공간들이 드러난다. 이곳에 마련된 1인석은 11곳, 커플석도 6곳이 마련돼 있다. 폭 40~50㎝의 식사 공간 좌우에는 칸막이가 설치돼 옆 사람 얼굴을 볼 수 없다. 20~30대로 보이는 손님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 등을 보며 라면 등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손님 이진희(25)씨는 “일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어색한데 이곳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안에 위치한 B우동 전문점. 2009년 문을 연 이곳 역시 ‘1인 전용 식당’이다. 내부는 혼자 온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반 식당이 마주 보는 2인용 좌석을 갖추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의 테이블은 모두 손님 쪽 방향으로만 앉을 수 있는 바(BAR) 형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덮밥 종류와 일본 라면, 우동 등이다. 식당 주인은 “점심 때는 대학생과 학원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저녁 때는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다.”면서 “손님들이 주문한 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데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혼자 음식점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나홀로 식사족(族)’이 늘고 있다. 이런 수요층을 붙잡기 위한 1인용 음식점이 속속 생겨나면서 새로운 요식업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30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과 신촌, 종로 등에서 1인용 음식점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만의 식사 시간을 즐기려는 젊은 층과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신촌에서 1인 전용 C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명재 점장은 “2009년 문을 열 당시 나홀로 손님이 10~20%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 가까이 비중이 높아졌다.”면서 “현재 평일 하루 매출이 120만~130만원인데 수요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올여름쯤에는 150만~160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나홀로 식사족이 늘어나는 이유는 1인 자녀와 싱글족 증가로 인한 개인주의의 심화, 경제적 부담 등이 꼽힌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형제 없이 성장한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성장해도 대인관계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은 사회적 현실이 식사문화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여럿이 같이 식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게다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주목할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최두희기자 dh0226@seoul.co.kr
  •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손톱 밑의 검은 때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커피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숙인 생활을 그만둔 지 반년쯤 된 그에게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대접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다. 그가 아침 일찍 거리에 나와 종종걸음치는 직장인들에게 노숙인 자활 잡지를 사달라고 1시간 30분이나 외친 뒤였다. 기자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외모. 그런데 조심스레 물어 보니 아홉살 아래란다. 삶의 굴곡이 얼굴에 잔뜩 생채기를 남긴 듯했다. 삿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초리에 언뜻 천진난만함이 깃들던 순간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달이 바뀔 때면 새로 나온 잡지를 들고 거리에서 목멘 외침을 늘어놓을 그를 그리워하게 됐다. 기자는 서울신문 편집국 소속이지만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이란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21년 전 입사했을 때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9개월이 됐고 4일 저녁 40회분이 방영된다. 여전히 촬영 현장에 나가면 “서울신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웬 동영상 카메라?”라면서 당황하는 취재원들을 본다. 조금만 설명하면 취재원들도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신문 동네가 영 신통치 않으니 곁방살이에 힘겹겠구나 하는 동정도 읽힌다. 기자 또래보다 방송과 영상 전달 방식에 훨씬 친숙할 후배들마저 지면 일과 방송 제작을 병행하느라 벅차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기자들을 괴롭혀 가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주 1회, 한 주가 끝날 무렵에 방송을 내보내다 보니 피할 것도 많고 조심스러운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꾸리다 보니 지상파나 기존 보도전문 채널에서 제공하는 뉴스보다 여러 모로 손방이다. 그런 속에서 조그만 위안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장삼이사(張三李四)와의 만남이다. 출입처에 매인 처지였다면 결코 만나기 쉽지 않았을 이들에게서 진한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쪽방촌에도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정말 1980년대 달동네로 시간이동한 것 같았다. 두 손자를 건사하며 힘든 나날을 잇고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했고,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을 찾았다. 25년째 그곳에서 자원봉사하는 안정자씨는 병을 얻어 “이대로는 죽겠다싶어” 구로구 개봉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말이 이사지 실은 피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내 어르신들이 전화로 찾아대는 통에 왕복 3시간의 버스 출퇴근을 3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행복감을 쉬 잊지 못한다. 이 시설을 세우고도 그 흔한 사진 한장 걸어놓지 않고 한달에 한번 신용카드를 건네며 “어르신들께 맛난 것 만들어드리게 마음껏 장을 봐라.”고 당부한다는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잊기 어렵다. 임 교수는 이따금 이곳을 찾을 뿐 언론에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겸손함으로도 커다란 존경을 얻고 있다. 노숙인들의 ‘큰형님’ 이명식 중랑구청 주무관이 동상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노숙인 발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또 어떤가. 후배 PD가 촬영한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출입처 칸막이 안이라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평범한 이웃의 고단한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과거 출입처에서 만났던 취재원들이 참 재미없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펜이나 컴퓨터 자판 대신 마이크를 잡다 보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됐다. 일전에 편집국 제작회의에서 많이 부족한 우리 프로그램 이름을 들먹이며 “많은 시청 바랍니다.”라고 말해 실소를 산 일도 있다. 감히 독자 여러분께 같은 말씀을 여쭌다. bsnim@seoul.co.kr
  •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 통해 ‘삶의 원형’을 보다

    “13세기 유목민의 삶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21세기 삶의 원형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단순한 역사 속 영웅, 그것도 침략자로 일컬어지는 다른 나라의 영웅을 그려내는 역사소설인 것만은 아닌 이유죠.” 지난해 7월 몽골로 떠나 울란바토르 외곽에 허름한 방 한칸 구해 놓고 글을 쓰다 잠시 귀국한 소설가 김형수(52)를 지난 22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작가블로그(blog.yes24.com)에 장편소설 ‘조드’를 연재하고 있다. ‘조드’는 12~13세기 몽골 유목민의 삶이 담긴 대륙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칭기즈칸 이야기다. 그러나 숱한 칭기즈칸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 한다. ‘조드’는 초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를 일컫는 몽골어다. 김형수는 1999년 이후 무려 열두 차례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 머무는 동안에는 툭 하면 차 빌려서 초원으로 취재 여행을 나갔다. 그렇게 취재한 유목민의 풍속과 삶이 소설로 들어왔고, 초원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 늑대의 심상까지 몽땅 담았다. 이것들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의 투박함을 닮은 대륙의 서사(敍事)가 되어 김형수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에 담겨 유장히 흘러간다. 그렇더라도 연재 초에 스스로 밝힌 것처럼 ‘침략자 미화’라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터. 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활약은 너무도 대단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서사에서 그를 단순한 정복자 또는 전쟁 영웅으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풀어왔던 것은 그가 벌인 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던 탓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설명. “칭기즈칸의 전쟁은 소통과 교류를 막고 있는 세상의 칸막이를 무너뜨려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예컨대 일제의 침략 지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부족민을 지구인으로 바꾸는 작업, 그 자체였던 겁니다.” 프랑스의 세계적 지성 자크 아탈리가 설파한 ‘디지털 유목민’의 원형은 이렇듯 700~800년 전 칭기즈칸의 사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는 “칭기즈칸이 침략자라는 오해는 소설을 다 읽으면 충분히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조드’를 읽다 보면 지구와 인간의 관계, 수천년에 걸쳐 나뉘어진 유목민과 농경민의 삶의 방식으로 사유가 연결된다. 그리고 어느새 인류의 시원(始原)까지 생각의 걸음이 닿는다. “네티즌들의 댓글마다 꼬박꼬박 답글 달며 우리 시대의 소통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답글도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매일 댓글 다는 스무명 남짓의 열혈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답한다. ‘반가워요. ○○님’라든가 ‘또 오셨네요. ◇◇님’ 같은 의례적 답글이 아니라 치열한 사유를 쉼없이 확장시키는 공간이자 방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취재 일기’와 ‘작가 노트’까지 중간 중간 달린다. 고향의 기억을 자극하는 시편들까지 읽을 거리로 등장하니 ‘조드’는 그냥 연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학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문학평론가다. 그에 앞서 담론 생산자이기도 한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주적 문예운동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지금의 30~40대 작가 가운데 한때나마 사실주의 문학을 접했다면 김형수의 자장(磁場) 언저리에서 글을 쓰고 배웠을 것이다. 김형수는 “올 5월 정도면 일단 초원을 통일하는 데까지 완성될 것 같다.”면서도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서사가 시작하는 연작 장편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의류매장 자판기 눌렀더니 우산이?

    의류매장 자판기 눌렀더니 우산이?

    올해 한국에 직접 매장을 낼 것으로 알려진 미국 캐주얼 브랜드 ‘아베크롬비&피치’의 매장은 놀이하는 소비자, 즉 플레이슈머(playsumer)를 위한 놀이터에 가깝다. 미국의 아베크롬비&피치 매장에 들어서면 조명은 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음악이 쾅쾅 울려 마치 클럽에 온 듯하다. 매장 입구에는 상의를 벗은 근육질의 남성 모델들이 고객과의 사진 촬영을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명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옷을 단순히 전시·판매하는 데서 진화해 문화생활 공간에 가까운 의류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명동에 매장을 연 ‘스파이시칼라’는 국산 제조 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다. 오감 체험 만족을 주제로 한 스파이시칼라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형 자판기다. 자판기 단추를 누르면 우산, 텀블러(휴대용 컵) 등을 살 수 있다. 자전거, 소파 등이 매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자오락도 즐길 수 있다. 김해련 스파이시칼라 대표는 “의류뿐 아니라 향초, 접시, 머그컵, 속옷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함께 판다.”면서 “즐겁고 행복한 체험을 제공하는 패션 놀이터가 (매장) 컨셉트”라고 말했다. 제일모직의 ‘구호’도 출시 12주년을 맞아 매장을 마치 갤러리처럼 새롭게 바꾸고 있다. 매장 밖에서는 상품을 전혀 볼 수 없고, 옷걸이를 칸막이처럼 제작해 한 벌씩 골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구호’ 디자이너 정구호 전무는 “독일의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품과 매장을 새롭게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건전·부실銀 투트랙관리 ‘속도전’

    정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부실화된 저축은행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했다. 삼화저축은행에 내린 영업정지 조치가 신호탄이었다면 17일 대전저축은행과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동시 영업정지 조치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는 부실한 저축은행과 건전한 저축은행을 완전히 분리해서 ‘투 트랙’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부실한 곳은 싹 도려내고 건전성 관리가 가능한 곳에는 자금 숨통을 틔워줌으로써 일부 저축은행의 부실 위험이 전체 시장으로 번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건전성이 좋은 곳, 나쁜 곳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저축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갔다.”면서 “건전한 저축은행에 파급 효과가 미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칸막이’를 확실히 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국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를 통해 우량 저축은행까지 함께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막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실 저축은행의 명단까지 전격 공개했다.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삼화저축은행을 제외한 104개 저축은행 중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에 미달되는 등 재무상태가 나쁜 10개 은행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나머지 94개 은행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냄으로써 예금자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의 생각대로 저축은행 정상화가 진행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예금보험공사 기금에 공동계정을 설치해 10조원 안팎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번 영업정지 조치가 부실 저축은행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부산·대전저축은행이 향후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매각 절차가 진행된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저축은행 구조조정 단호·신속하게 하라

    금융위원회가 어제 업계 자산순위 1위인 부산저축은행 계열의 저축은행 2곳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6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지난달 14일 삼화저축은행에 이어 한달여 만이다.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은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 이후 예금인출 사태가 지속되면서 유동성 부족으로 더 이상의 예금 지급이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지도기준인 5%를 밑도는 5개 저축은행의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예금자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미리 칸막이를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급속도로 부실화되자 구조조정을 비롯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력히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2008~2009년 1조 7000억원, 지난해 2조 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PF를 매입해 주는 등 땜질식 대응으로만 일관해 왔다. 급기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PF 대출 연체율이 24%를 웃도는 등 전체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급부상하자 시장분리 조치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서민금융의 상징인 저축은행은 반드시 정상화돼야 한다. 그러자면 곪은 상처가 멀쩡한 부위로 옮지 않도록 신속·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관련법을 개정해 공적자금을 다시 투입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금융권 부실은 1차적으로 금융권이 책임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금보험기금의 공동계정을 활용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다만 부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 특히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를 상업은행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저축은행의 부실이 이처럼 커지도록 방치한 감독당국의 책임도 반드시 규명할 것을 촉구한다. PF 부실 이전의 규제완화 및 시정조치 실기 등을 되짚어 보면 감독당국이 로비나 외압에 휘둘린 정황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더 이상 낭비되지 않으려면 당시 규제 완화가 적절했는지,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 등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 “스마트 사무실 일할 맛 나네요”

    “스마트 사무실 일할 맛 나네요”

    포스코가 11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24층 인재혁신실 사무실을 스마트 오피스로 시범 개조해 공개했다. ‘똑똑한 사무실’을 표방한 스마트 오피스는 좌석이 고정돼 있지 않고 업무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하거나 옮길 수 있는 구조다. 개인 PC나 스마트폰에 설치된 화상 카메라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하며, 여유공간에 마련된 도서실에서 책을 보거나 휴게실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포스코는 각 부서별 칸막이와 통로 등 죽은 공간을 최소화해 25% 이상의 신규 공간을 창출하는 한편 온라인 보고 체계 획립으로 인쇄물 발생량을 9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병국 문화장관 인터뷰 “소통으로 문화예술 힘 복원”

    정병국 문화장관 인터뷰 “소통으로 문화예술 힘 복원”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국실별 업무 보고도 현장에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함께 듣겠습니다.” 정병국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7일 잇따라 열린 취임식과 언론브리핑에서 “부처 내 모든 칸막이를 없애고 소통과 현장 중심의 행정을 통해 위대한 문화예술의 힘을 복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장관은 “문화는 이념과 종교, 인종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사회 분열과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10여년 동안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서 활동하며 깨달은 것은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 머리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런 차원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신임 장관의 실국별 업무보고를 받지 않고 관련 업계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문화부의 업무를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2월 10일 콘텐츠 업계를 시작으로 현장 업무보고회를 열 계획이다. 아울러 정 장관은 ▲문화예술인들이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제도 정착과 불필요한 규제 개선 ▲문화산업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킬러 콘텐츠’ 양성 ▲계층간 문화 격차 없애기 위한 ‘문화안전망’ 구축 ▲엘리트 체육과 국민 체육 병행 ▲외래관광객 1000만 시대를 맞은 관광산업의 질적 향상 도모 등을 중점 추진 정책으로 제시했다.삼호주얼리호 인질 구출작전의 엠바고 요청을 거부한 언론사의 정부 부처 출입정지 조치에 대해서는 “국정홍보가 일방적이어선 안 되겠지만, (언론사도)협조할 건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인촌 전 장관 시절 이뤄진 진보성향의 산하기관장 경질 문제에 대해서는 “법으로 해야 할 부분과 인간적 소통을 통해 할 것이 있다. 사과 문제를 포함해 충분한 대화로 풀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28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등을 위해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카자흐스탄으로 첫 해외 출장을 떠난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새해 결심·정리정돈 도우미 총집합

    새해 결심·정리정돈 도우미 총집합

    새로운 마음가짐은 주변 정리에서 시작된다. 집보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에게 업무 공간과 시간을 쾌적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아주 작은 소품 하나로 내 앞의 작은 공간은 물론 마음속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다. 책상 위에 계속 쌓이는 서류가 가장 골칫덩어리. 생활용품숍 다이소의 ‘서류정리함’은 하나씩 구매해 층층이 쌓아 서류가 늘어나는 만큼 정리함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번에 2~4단까지 좁은 공간에서 많은 서류를 깔끔하게 보관하기 좋다. 분홍, 주황, 파랑, 연두 등 색상을 입어 칙칙한 업무 환경을 산뜻하게 변화시킨다. 2000원. ●골칫덩어리 서류 2~4단 정리함에 다이소의 ‘목재 펜케이스’는 기존 펜꽂이와 달리 앞쪽이 낮고 뒤로 갈수록 계단처럼 높아지는 형식이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연필, 볼펜을 정리해 꽂고 앉은 자리에서 쉽게 펜을 뽑을 수 있게 배려한 제품이다. 1000원. 서랍 속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칸막이가 필요하다. 후추통(www.hoochootong.com)에서 판매 중인 ‘서랍장 칸막이 파티션’은 서랍의 크기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어 실용적이다. 5000원. ●미니 피그 청소기로 깔끔한 책상 책상 위 먼지, 과자 부스러기는 전용 청소기로 말끔히 치우자. 디앤샵(www.dnshop.com)의 ‘피그 미니 청소기’는 작지만 먼지를 빨아들이는 힘이 강력하고 브러시도 달려 있어 더러움을 말끔히 해소해 준다. 돼지코 부분을 비틀어 안에 쌓인 쓰레기를 청소할 수 있어 편리하다. 색상과 디자인도 상쾌하다. 8500원. 건조한 실내에서 요즘 개인 전용 가습기는 기본. 디앤샵의 ‘USB 미니 컵 가습기’는 테이크아웃 커피 잔처럼 생겨 일단 생김새에서 점수를 딴다. 작은 몸집 대비 가습 효과도 뛰어나다. 전기코드 없이 USB 단자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어 간편하다. 자동차에서도 시거잭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1만 2500원. ●‘스터디 플래너’로 빈틈없는 계획을 우울증을 막는 특효약은 햇빛이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에서 파는 ‘플립플랩 태양열 움직이는 인형’은 햇빛을 받으면 머리를 갸웃갸웃 움직이는 소품. 따로 건전지가 필요 없이 햇빛이 드는 곳을 따라 두면 된다. 토끼, 원숭이, 판다 등 다양한 캐릭터가 기분 전환은 물론 사무환경도 바꿔 준다. 6000원. 볼펜, 노트, 메모지 등 문구류를 바꾸는 걸로 새해 결심과 마음을 정리하는 이들이 많다. 메모지가 쌓이다 보면 지저분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 GS샵(www.gsshop.com)에서 파는 나뭇잎 모양의 접착식 메모지 ‘리프 잇 포스트 잇’은 메모지가 쌓일수록 숲이 만들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2800원(80장입). 빈틈없는 계획은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데 필수다. 새해 결심에 빠지지 않는 게 어학 공부와 자격증 취득. 여기에 알뜰한 금전관리도 빠질 수 없다. 차근차근 꾸준히 공부할 수 있게 해 주는 디자인 다다의 ‘앳홈스터디플래너’(4800원), 꼼꼼한 금전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텐바이텐(www.10x10.co.kr)의 ‘알뜰살뜰 캐쉬북’(5500원)도 새로운 목표를 세운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이는 5개월짜리. 5개월 전에 아저씨의 정액이 아내의 질을 파고들어 거센 산성반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수정란을 착상시켰다. 5개월 전이라면 아저씨와 내가 종로 3가 나이스 모텔 205호에서 새벽 내내 서로의 배꼽 속에 손을 넣었던 때다. 나와 만나기 전날이거나 혹은 다음날에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고 기계적인 성교를 했을 것이다. 아저씨의 아내는 궁색한 가짜 신음소리 내기에 바쁜 여자니까. 아저씨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신음소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편집증 환자처럼 집착한다. 그런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 나는 가짜 신음소리 따윈 내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 나는 진짜에게만 연다. 그것이 성대든 밑구멍이든 간에. 오늘 만나. 삐리릭. 교실 한구석에서 체육복을 베개 삼아 누워 있던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가방을 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메고 나는 교실 밖으로 향한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아저씨에게 한 번 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매우 절약적인 문자. 럭셔리 라운지 모텔 507호. 아홉 시. 아홉 시까지,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다. 아저씨와 만나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세찬 바람이 분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나? 아저씨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치마 밑단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얘, 허벅지 다 보인다.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넌 참 미쳤구나. 그래서 이름이 미치인가 보구나.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장례를 다 마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고 있었다. 넌 그새 또 어디 갔다 왔니. 그냥 잠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였다. 엄마, 할머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 내 방 문 틈새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굽은 등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며 일정한 리듬에 맞춰 떨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아저씨를 만났다. 삼성동 명아장 모텔 313호.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교복 와이셔츠를 벗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여덟시 오십 오 분에 모텔에 도착했다. 내가 313호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다 벗은 몸으로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아저씨가 인사했다. 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쾌적한 향내가 풍겼다. 오히려 첫 번째 갔던 곳이 적당히 촌스러우면서 마음이 편했다. 옷을 못 벗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듯이 만져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참았다. 나는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몸을 열고 젖히고 오므리고 뒹굴었다. 두툼한 손가락처럼 두툼한 아저씨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내 피부에 닿았다. 남의 살을 맞대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저씨의 거죽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물론 아저씨가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냥 남의 살결, 살 틈으로 새어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한 차례 사정이 끝나고 난 뒤에 아저씨는 모로 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가 슬쩍 내게 말을 건넸다. 미치. 미치예요. 아아, 그래. 그래서 내가 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었지. 네에. 근데 전 미치진 않았어요. 그냥 미치일 뿐이에요. 음, 그래. 하지만 좀 특별한 이름이구나. 네에. 미카엘 같은 거랑 연관된 건 아니에요.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미치는 무슨 뜻이니? 미치는 그냥 미치인데요. 별 뜻은 없어요. 음, 그렇구나. 아저씨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대화를 끝내겠단 듯 자세를 고쳤다. 등 돌린 아저씨의 넓은 등짝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아저씨의 담배를 빌려 등짝에 무어라 쓰고 싶었다. 등신이라고. 그때 아저씨 이름을 물어보면 좋았을 걸. 아직도 나는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 장씨, 김씨, 윤씨, 최씨. 개중에 하나겠지. 여하튼 내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씨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저씨의 두툼한 손가락과, 출렁이는 뱃살, 수염자국이 난 얼굴피부뿐이다. 정수리 근처가 조금 휑한 거나 금이빨로 된 어금니가 하나 있다는 것, 배꼽부터 무성한 털이 하반신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발이 아담한 것, 그리고 오른쪽 팔뚝에 개에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는 것까지. 아저씨의 흉터는 곧 아저씨의 이름이었다. 아저씨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서울 전역. 아저씨는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고심하여 장소를 물색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동네, 같은 모텔을 반복해서 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다. 구석구석 늘어선 골목과 로터리가 답답할 정도로 복잡했다. 위로 세우고 벙커를 만들고, 한정된 공간의 쪽수를 넓히거나 한 칸짜리 공간을 좁히거나 하는 식으로 자꾸만 넓어져 가는 서울. 뚝딱뚝딱 완공이 끝나면 어디에선가 증축이 시작되고, 어딘가가 매끈해지면 다시 어딘가가 더럽혀졌다. 더럽혀진 부분을 메우는 동안 또 어딘가가 파괴되고 무너져 갔다. 할아버지는 폭설이 내리던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져 죽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병원으로 후송된 지 십 칠 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은 오래 살다 가셨으니 여한 없으시리라 판단, 호상이라 여기며 잔칫집처럼 장례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고 화투 패를 돌리고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삼일 중 이따금씩 곡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매우 형식적이었다. 하하호호 웃다가 누군가 곡소릴 내면 얼마간 따라 울어주고, 딸꾹질 멈추듯 뚝 그치면 다시 하하호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내가 밖으로 빠져나와 교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순간, 아버지가 홀연히 담배를 물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별은 참 폼이 안 나. 아빠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셨다. 아빠의 왼손에 달린 담배가 빨간 불씨를 태우며 양복바지를 위협했다. 그거 탈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염병할 양반. 보도블록에서 고꾸라지기는. 아빠는 색색의 벽돌이 지그재그로 놓인 보도블록을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가닿은 가래침은 희부연 노란빛을 풍겼다. 아빠는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와 함께 종이컵을 집어 던졌다. 소주가 바닥을 치고 튀었다. 아빠는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식장 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저씨 뭐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실은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적이 없었다. 뭐하냐고. 역시 묵묵부답. 차라리 보내지 말 걸, 두 번씩이나 씹혔다. 쪽팔리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미친이구나. 오늘 만날까? 미친이라니, 내가 분명 미치지 않았다고 했을 텐데. 미친 아저씨. 나는 눈에 젖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곧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는 동안 아빠는 병원 건물 귀퉁이 어딘가에서 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대충 토하는 것을 마치고는 보도블록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 표면이 토사물 범벅이었다. 아빠의 긴 속눈썹에 연주황색으로 변한 실파가 붙어 있었다. 더럽게시리. 나는 다시 대로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나는 얼마간 더 병원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한쪽 손을 기계처럼 흔들면서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말대로 별 몇 개가 우스운 크기로 떠 있었다. 저게 무슨 별이야. 그러는 사이에 택시가 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택시 아저씨에게 별 보러요, 라고 말할 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섹스가 전부였고, 섹스가 끝나고 치르는 비릿하고 울적한 냄새들을 소멸시키는 일에 신경 쓰느라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을 교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자락을 빙글빙글 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대꾸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저씨에게서 아내 얘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왜 애를 가졌어요? 내가 아저씨 배꼽에 손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간지러웠는지 실실 웃으며 좌우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가진 건 아니고 아내가 가진 거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꺼가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거랑 그거랑 같은 일로 봐서는 좀 그렇지. 그거랑 그거랑 원래 같은 거 아니에요? 그걸 해야지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에이, 하지만 언제나 그걸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니잖아. 아아, 하긴. 우리도 그거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으응, 그래 맞아. 골치가 아픈 일이지, 그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거를 사용했고, 나중에 가서는 굳이 그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까지 그거 타령을 했다. 그러다가 대화의 종반부에서는 그거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에서부터 그거를 그거로 불렀는지, 그거가 그거가 아닌 다른 그거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등을 돌려 누웠을 때, 아저씨의 등과 내 등이 맞닿았다. 나는 차갑고 아저씨는 뜨겁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저씨가 차가워지고 내가 뜨거워진다. 척추를 나란히 두고 우리는 열과 냉을 반복적으로 옮겼다.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도 참 후졌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의 등줄기가 움찔했다. 글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아내가 만든 거라니까. 아저씨가 발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다. 굳은살이며 티눈이 박인 피부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생각을 해요? 너무 구려. 너무 너무 구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떤 시대기는, 잘 먹고 잘사는 시대지. 너무 구려. 태어나는 일 자체가 구린 시대예요, 지금 이 시대는. 미치. 너는 너무 어린데,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잖아요. 씨발. 나는 울먹였다. 아저씨가 발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 애 낳으면 나 꼭 보게 해줘요. 음,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해보지. 아저씨는 말을 이으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똥 누러. 아저씬 왜 만날 그렇게 똥을 싸요? 모르겠어. 난 너만 보면 똥이 마려워. 아내 앞에서는요? 집이건 회사건 똥 싸는 일이 고역인데, 난 너만 보면 똥구멍이 빠져버릴 거 같아.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똥을 싸고 싶어 재빠르게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아저씨. 나는 또 한번 아저씨에 관한 흉터를 진하게 새겼다. 똥냄새를 풍기며 침대로 돌아온 아저씨와 뒹굴다가 말고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든 여덟의 할아버지와 함께 육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는 일흔 일곱. 열한 살 연상의 남편을 마주 대하며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유순한 고집과 무지한 강직함으로 이겨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지냈던 고향을 저버린 것은 할머니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진 탓이었다. 밭을 안 일구면 되지 않냐, 그냥 일 안 하고 시골에 계속 계시면 안 되냐, 하고 심술을 툴툴 부린 내게 엄마는 꿀밤을 먹였다. 네가 시골에 가서 한 번도 살아보질 못해 이러는구나. 시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야. 등불이 없는 동굴 같은 곳이라고.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과 함께 부대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 따로 모실 거니까. 따로 사는 데엔 나보다 엄마 몫이 더 컸다. 아빠는 미적지근하게 그러지 뭐, 하며 우리 집 근처에 값이 싼 아파트를 골라 전세계약을 했다. 십육 평형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며 월마다 꼬박꼬박 작동 점검을 하는 엘리베이터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할머니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끔 식용유나 세제 같은 걸 사들고 가는 아빠에게 거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산해, 라고 말하면 아빠는 내 콧잔등을 쿡 치면서 노인네들 잠자리 뒤숭숭하게 함부로 말 놀리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깟 귀신, 어차피 동년배들 아니겠어?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 집 전세계약이 얼마 안 있어 끝날 참이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있던 엄마는 되레 계약기간 전에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조금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짐들이 가득 들어찬 다용도실을 대충 비워내고 할머니가 덮을 이불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풀지 않은 짐짝처럼 더욱 몸을 웅크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내가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면 건넌방에 있던 할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왜요? 라는 기색으로 노려보면 이내 주춤거리는가 싶게 눈을 피하다가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금 내 쪽을 살폈다. 내가 한 번 더 뭘 봐요? 라는 표정으로 찌릿, 눈빛을 쏴주면 그제야 다 알겠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기분 나빠. 내가 닫힌 방문 틈새로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그럼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별 몇 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졸하게 쪼그라든 것이 언젠가는 점점 작게, 그보다 더 작게, 그래서 결코 보이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질 것만 같았던 별들. 마치 할머니의 쪼그라든 유방처럼. 너네 엄마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안방에서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이 또 시작됐다. 카악, 퉤. 아빠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뱉어 진짜? 엄마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소릴 질렀다. 카악, 퉤. 카악, 퉤. 의식적으로 가래를 뱉다가 사래 걸린 아빠가 연신 밭은기침을 토했다. 조금 과장이다 싶게. 나는 방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모텔과는 다른 차원의 이불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말고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는 아무래도 버려진 짐짝처럼 놓인 할머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미친 엄마 아빠. 나는 방문을 열고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를 살핀다. 방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직접 살짝 문을 열어 놓았을 터. 문과 문턱이 아귀가 딱 맞게 붙어 있지 않고 약간 틈을 벌리고 있다. 그 미세한 틈처럼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는지 몰랐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물세례에 허덕이듯이. 할머니 서럽겠다. 짝이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 네 아저씨는요? 아저씨의 귓불을 빨면서 내가 물었다. 그건 여자에게만 국한된 일이야. 남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아예 머릿속에 그런 게 없어. 이 사람 없으면 죽겠다 싶은 그런 게. 결혼 왜 했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뜸을 들였다. 글쎄, 돈을 모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 남자란 게 그래. 챙겨주고 입혀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좆나 후졌네, 남자들이란.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가 깔깔 웃었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미친 아저씨. 뭐 이런 게 다 있지? 덜 말린 해초처럼 무성한 아저씨의 풀숲을 헤치다 말고 나는 입을 뗐다. 입술에 빳빳한 음모가 달라붙었다. 에이, 좀더 해주지 그래.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말했지만 나는 그냥 일어났다. 반투명한 유리 칸막이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을 빡빡 문질러대며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따라 들어왔다. 에이, 미치. 섭섭하게 왜 그래. 아저씨가 내 팔뚝에 묻은 거품을 닦으면서 품에 안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샤워기를 아저씨 방향으로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아저씨 살갗에 닿았다. 앗 뜨거워.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안 할래요, 피곤해요. 저리 가요. 이제 만지지 마요. 아저씨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아저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미치. 앞으로 삼주 정도 못 봐. 나는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아내랑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애 낳기 전에 좀 돌아다녀야 될 것 같아서. 애가 나오면 피곤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매만지며 물기를 닦았다. 외국을 다녀올까 해. 연차랑 휴가 당겨쓰니까 삼주 정도 여유가 생기더군. 나는 대충 로션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 속에 든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아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다네. 난 애초에 더블린이 어디 박혀 있는 덴지도 몰랐다니까. 그냥 동남아 일대나 둘러보고 올 것이지, 무슨. 대충 스타킹까지 신었다. 주머니를 쑤셔 담배를 찾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건넸지만 무시했다. 삼주 뒤엔 웃으며 보자.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명랑해서야. …… …… 삼주 동안 똥 못 싸서 어떡해요?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아저씨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픽 웃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들어 침대 중앙으로 눕혔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내가 말해도 묵묵부답. 아저씨가 좋아하는 보라색 원피스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부득이하게.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음소리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엉덩이에 푸른 멍이 흉터처럼 들어 있었다. 언제고 지워질 것이 빤한 흉터가. * 아저씨는 정말 삼주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잘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들었다. 의자에 등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역시 좀이 쑤셨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쳤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애들이 자리로 가 책상을 정돈했다. 아직 선생이 오질 않았다. 틈을 타 가방을 몰래 들고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든 갈 곳을 찾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쎄미였다. 나도 데려가. 미친년. 귀찮게시리.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어디 갈 건데? 몰라. 뭐야, 시시하게. 그럼 나 따라와. 그러든지. 우리는 번화가 로터리에서 내렸다. 쎄미는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역사 안 물품보관함에서 옷을 꺼냈다. 초록색 미니 원피스였다. 넌 갈아입을 거 없어? 나는 가방 안에 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꺼내 보였다. 우리는 쌍방울자매처럼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쎄미가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우리는 피시방으로 갔다. 모니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나는 쎄미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다가 졸았다. 얼마 안 있어 쎄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나가자.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번화가 로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온갖 조명 세례에 비둘기들은 나뭇가지 위로 종적을 감췄다. 보도블록은 연이어 뱉은 껌들과 담배꽁초로 넘쳐났다. 쎄미는 로터리 변방에 있는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색이 누런 간판에 조명도 시원찮은 것이 딱 학생들이 숨어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짜리몽땅한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쎄미가 샐쭉이 웃어 보이며 익숙하게 소주 두 병과 부대찌개를 시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태연히 일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던 담배를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태반이 고등학생들처럼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며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쎄미는 재떨이를 제 앞에 가져다 놓고 그새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나도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쎄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미, 오랜만이다. 쎄미가 남자애 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옳다구나, 같이 놀자는 소리로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가 큰 자식이 쎄미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뒤이어 눈썹이 숯덩이처럼 진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새 할머니가 전골냄비가 올라간 부르스타를 들고 와서는 퉁명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쎄미와 그 옆에 앉은 꺽다리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취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숯덩이 눈썹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박한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햄 조각과 두부, 콩나물과 양파. 찌개는 어쩐지 팔팔 끓여도 맛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앞에 두 사람이 기어이 취한 척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을 때쯤 나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랬더니 옆의 숯덩이도 냄비에 제 수저를 꽂았다. 나는 맥주에 콜라와 소주를 조금씩 섞어 숯덩이에게 주었다. 숯덩이가 고마워하며 답례로 자신도 타주겠다고 했다. 각자 서로가 타준 폭탄주를 마셨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쎄미와 꺽다리는 팔짱은 물론 어깨동무며 심지어는 서로에게 입술까지 드밀며 야단이었다. 소주를 일곱 병쯤 마셨던가. 그 와중에도 쎄미가 자리를 뜰까봐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꺽다리가 숯덩이에게 눈질을 보냈다. 무언의 암시 같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행된 약속이 있었던 듯싶다. 쎄미는 비에 젖은 이불처럼 꺽다리의 팔뚝에 안긴 채 실려 나갔다. 이윽고 숯덩이와 나만 남았다. 숯덩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렸다. 우리도 일어나지 뭐. 벌써 가게? 그럼 더 있으려고? 시간 별로 없어. 밤은 못 새. 숯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유치한 반응. 어디로 갈 건지는 정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숯덩이. 아, 이래서 어린애들은 귀찮다. 다 정한 거 알고 있거든. 모텔로 갈 거 아니야? 일 치르곤 만나 해장할 거 아니었어? …… 그리곤 쎄미랑 나랑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낄낄거리겠지, 뭐. 안 봐도 빤해. …… 빨리 계산하고 나와. 너구리굴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을 헤집고 나와 건물 앞에서 숯덩이를 기다렸다. 숯덩이는 쭈뼛거리며 나왔지만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았다. 앞장 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돼? 어, 원래 이러려고 했잖아. 내가 인상을 쓰자 숯덩이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잡지 마. 숯덩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자. 숯덩이가 말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들어갔다. 심야시간대에 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잠시 졸았다. 조는 내내 숯덩이가 내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박력 없기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숯덩이가 팝콘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쯤에 나는 숯덩이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고는 그를 이끌었다. 어디 가려고? 심심한데 그냥 DVD방이나 가든지. 우리는 영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DVD방으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계산을 하는 숯덩이 몰래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숯덩이와 몸을 섞고 난 뒤에도 아저씨에게선 답문이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나. 나는 검은 소파에 누워 말했다. 숯덩이가 휴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곤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긋거렸다. 화면에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게 비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러닝타임이 긴 시리즈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숯덩이가 슬금슬금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 이만 가봐. 싫은데. 그럼 걍 닥치고 가만히 있든지. 어차피 나도 뺑이 치는 거야. 오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거든. 학교는 안 다니니? 너야말로 학교 다니는 년이 이러고 다니냐? 등신. 너만큼 구린 애 아니거든, 나. 웃기고 있네. 됐다. 그만 말해, 입만 아파. 딱 봐도 사이즈 나와. 나는 뭐 누나들이랑 안 놀아본 줄 아냐. 뭐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대충 윗옷을 걸쳐 입고 DVD방을 나왔다. 숯덩이는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거리는 아직 깜깜했다. 추위 탓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건물 앞 계단에 누워 토사물을 흘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리는 한적했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진 셔터에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숯덩이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던 아저씨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내 몸에 남겨진 아저씨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쪽팔리게, 정말 후지게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아저씨를 만난 건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아담했지만 역사가 오래된 레코드 가게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섹션별로 잘 나눠진 음반들은 가게 주인의 손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됐다. 주인은 내가 오면 리패키지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내가 모르는 희귀 앨범을 꺼내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존 레넌의 사망주기 30년을 맞아 아저씨는 비틀스의 앨범을 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LP로 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을 꺼내주었다. 아저씨는 보물 다루듯 LP를 매만졌다. 그거 복사본 같은데. 내가 다가가 이 말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쪽을 살피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데요. 20년 전에 들어온 건 정식판 거의 없어요. 다 해적판이지. 그리고 진퉁이라 쳐도 몇 억 넘을 걸요? 그냥 작년에 나온 리마스터 앨범 사세요. 저 같으면 그거 안 사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LP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아저씨는 앨범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 진퉁. 같이 나가지? 그리고 우리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미치.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니? 비틀스 노래 제목이잖아요. 후추상사의 밴드. 물론 한국에 그 제목을 딴 인디밴드가 있단 건 알아요. 아니.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가 낸 책이 있어. 그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 속에 든 여자주인공 이름도 역시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거야. 루시나 리타 같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밴드가 남아프리카 출신들이란 거야. 그래서 번역본을 구하긴 힘들어. 그 튼실한 내용의 책은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고 해. 더 신기한 건 뭔 줄 아니? 소속된 밴드 팀원이 단 한 명이란 거야. 뭐야. 나머지는 다 세션이에요? 그 밴드는 공연 안 해요? 응. 그 밴드는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이 없어. 그 밴드의 업적이라곤 책 낸 게 끝이야. 그게 뭐가 밴드예요. 그냥 작가지. 그러게. 하지만 그 사람이 우기면 밴드겠지. 마치 네 이름이 미치가 아닌데도, 네가 줄곧 미치라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야. * 아침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어쩐지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둘러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미친년. 집에 들어오기만 해.], [네 방에 있는 CD 다 갖다 버리기로 결단 내렸다.], [평생 네 멋대로 하다가 죽어. 여한 없이 그렇게 살아라. 부럽다.], [엄마아빠 오늘 등산 가니까 네가 할머니 밥 좀 챙겨드려. 것까지 안 하면 넌 정말 죽는다.] 나는 할머니 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미역처럼 장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기척도 못 느끼셨는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큰 소리로 두어 차례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야 어깨를 움찔하는 할머니. 저 왔어요. 밥 드셔야죠.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차. 원피스를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생각해 보니 허접한 실력으로 그린 아이라인도 엄청 번져 있을 것이었다. 밥 챙겨드릴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할머니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오라는 눈치인가 싶어 나는 대충 눈 밑에 번진 아이라인을 손으로 닦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의 주름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 어깨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꺼끌꺼끌했다. 뭐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자 몇 차례 여쭈어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몇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의 눈동자는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질문하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장롱에 머리를 기대었다. 할머니는 조만간 부서질 박제나비 같았다. 할머니의 눈가와 손,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이 가뭄처럼 답답하고 숨 가쁠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마다 이렇게 장롱에 머릴 기대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 있긴 한 걸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희정아.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어쩐 일인지 눈꺼풀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이해가 안 됐으나 눈물은 더 솟구쳤다. 접을 수 있다면 잠깐 시간을 접어놓고 싶다. 정말 구리고 후지다. 나는 집전화기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받는다면 나는 다 폭로할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비틀스를 공유한 사이라고요.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세요? 남아프리카에 있는 원맨밴드를 아시냐고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임신은 왜 해요? 그렇게 안정적인 게 좋으면 차라리 소파랑 결혼을 하셨어야지.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요. 신호가 계속 가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받는다면 이제 아저씨와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야지. 아저씨의 똥배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라고. 아저씨도 똑같아. 부인 앞에선 똥도 못 눈다면서 여행은 왜 같이 가요? 왜 나한텐 아저씨 이름도 안 알려줘요? 치사하게 산다. 치사 빤쓰다, 정말…… 그리고 달칵.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한창길입니다. 아저씨 목소리다. 한창길이라는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건 분명 아저씨의 목소리다. 내가 수없이 핥았던 목에서 나는 그 소리 맞다. 허나 나는 한창길이란 이름을 모른다. 그런 이름일랑 들어본 적도 없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요, 아저씨. 저예요, 미치……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아저씨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내게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뿔싸. 이렇게 깔끔할 수가.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걸 지워야지. 아저씨의 배꼽이 따뜻했다는 것 정도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열여덟이라는 전투의 군사기밀이라 생각하고 블랙박스에 가두어 사장시켜야지. 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집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짜증나게. <끝〉
  • [열린세상] 지속성장 기반구축의 전제조건/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열린세상] 지속성장 기반구축의 전제조건/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우리 경제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이면에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다변화된 성장동력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추세는 글로벌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성장의 결실이 집중되는 문제 외에도 더 큰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제반 요소가 자체적으로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중국의 대두로 심화되고 있는 경쟁을 이겨내려면 아웃소싱과 글로벌 전략구사가 불가피하다. 성장탄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글로벌 네트워크로 영위되는 글로벌 기업과 정부의 보호막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집단의 양분화를 초래하고 있다. 경제의 이중구조 하에서 당장 복지예산을 늘려 중산층의 몰락을 막고 서민층의 고통을 완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성장 패러다임의 근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변화의 초점은 대기업 위주의 글로벌화 추진으로 커져 버린 지배구조상의 공백을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의 역할로 메우는 것이다. 최근 경험하였듯이 일련의 민영화나 인수 합병에 있어 근본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는 주 원인은 시장에 독자적인 민간주체나 자본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표상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심화되는 중산층의 몰락은 양극화된 경제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참여자들의 발굴과 이들의 활발한 시장 진입은 주어진 틀에서의 효율성 추구보다 중요하다. 이미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된 우리 경제가 안정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건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시장참여 기회이다. 통합된 네트워크에서 몇몇 글로벌 기업 내지 금융그룹 의존도가 과도할 경우 대마불사로 위험 관리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양극화는 심화된다. 따라서 정작 보호되어야 할 부문의 재원이 글로벌 기업의 지원을 위해 역류하는 현상이 현저해진다. 중산층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는 성장 기반의 조성 노력은 실체마저 희미해진다. 첫째, 적합성이 저하되고 있는 성장 패러다임의 유지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는 구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 원칙은 기존 이익의 보호보다는 낙후 부문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특히 다양한 보호장치가 구비된 영역일수록 진입 장벽을 낮추어 신규 고용 확대의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 각종 칸막이로 인해 흐름이 정체된 부문에 시장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고용에 의존한 중산층을 살리는 첫 단추이다. 둘째, 구조적 문제에 대해 증상완화적 처방으로 일관하는 정치적 타협이 배제될 수 있도록 제반 이슈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제고되어야 한다. 우리의 돈으로 대리인이 생색내는 정치 순환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유권자의 현실 이해와 판단이 필요하다. 전문가 그룹들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분석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정치 명제로 묵살되고 간과되는 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시계 확보는 불가능하다. 단기적인 정치 이익에 속박되는 환경 하에서 기득권의 자기보호 유인은 더욱 강화될 뿐이다. 셋째, 고용창출 여력을 현실화하면서 다양한 참여자들의 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금융, 교육이나 보건복지 서비스 등 비교역재 부문의 진입장벽을 낮추어야 한다. 부문별 생산성의 낙후는 그 자체로 성장탄력을 저해하고 생산 요소의 효율적 결합을 어렵게 하여 결국 재정부담을 늘리는 원인이 된다. 즉, 부문별 생산성의 차이는 금융이나 교육시스템의 아웃소싱을 불가피하게 하여 서비스수지 악화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앞으로도 거대 시장의 혜택 없이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뒤처진 부분에 대한 시장참여 확대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내부적 갈등 심화로 심각한 교착상황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을 육성하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새로운 사회 지배구조가 형성되면서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참여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열린 지도층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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