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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새로운 사회, 새로운 예술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새로운 사회, 새로운 예술

    대각선으로 화면을 채운 붉은 말, 중세 종교화의 인물처럼 가늘고 긴 소년의 몸, 초록색 호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러시아 초원지대의 소년들은 말을 끌고 강가에 나가 목욕을 시키면서 물놀이를 했다. 쿠지마 페트로프봇킨이 자란 볼가 강변의 작은 마을도 그랬을 것이다. 풍속화에 어울릴 만한 일상생활이 페트로프봇킨의 손에서 타는 듯이 붉은 말과 차가운 누드가 어우러진 상징주의 그림으로 탄생했다. 그는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 정교회의 성상 화가에게 미술을 처음 배웠다. 고향의 한 상인이 학비를 대주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성화를 그렸는데, 그의 그림은 교회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상징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마찰을 빚었다. 이 그림의 붉은 말은 전쟁과 피를 상징하는 요한 묵시록의 붉은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냉담한 표정의 누드는 묵시록의 기사보다 고대 그리스와 맞닿아 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 그림에서 보색 대비, 면의 대담한 분할, 운동감 같은 추상적 요소에 주목했다. 소비에트 비평가들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붉은 말을 러시아의 미래, 다시 말해 볼셰비키 혁명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물에서 솟아올라 앞발을 치켜든 붉은 말과 방금 태어난 듯한 알몸뚱이 소년은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러시아 제국이 두 번의 혁명 사이에 있던 때였다. 페트로프봇킨은 반동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특별히 혁명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1905년 혁명이 실패하고 사회가 암울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화가가 다섯 해 뒤에 일어날 볼셰비키 혁명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그림의 진정한 혁명성은 정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러시아 전통을 아방가르드 형식과 결합한 데서 찾아야 한다. 국제적인 인물이었던 칸딘스키와 달리 페트로프봇킨은 러시아의 정신적 유산을 간직한 채 추상으로 나아갔다. 스탈린 치하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숙청당할 때 페트로프봇킨은 살아남았고 소비에트예술가협회의 초대 의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1910년대의 그림이다. 미술평론가
  • 삼육대 김용선 교수, 23번째 개인전 ‘사물과 꿈_ 책은 색깔이다’

    삼육대 김용선 교수, 23번째 개인전 ‘사물과 꿈_ 책은 색깔이다’

    삼육대 아트앤디자인학과 김용선(김천정) 교수가 ‘사물과 꿈_ 책은 색깔이다’라는 주제로 23번째 개인전을 열고 책의 물성과 미학을 탐구한다. 오는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인사아트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는 ‘책’과 ‘사람’을 화두로 한 김 교수의 회화작품 30여점이 전시된다. 작품 속 책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늘 경험하는 좌절과 한숨, 기쁨과 눈물, 꿈과 행복은 각기 다른 빛깔로 변주된 책의 목소리다. 그렇게 드러난 빛깔은 아픔이고 고통(괴테)이다. 김 교수는 작가 노트에서 “책의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요, 인간의 이해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고 끝내는 자신에 대한 이해”라며 “타인의 빛깔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김천정 작가의 책은 공감각(synesthesia)적으로 전환된 ‘색깔’”이라며 “칸딘스키의 추상회화가 바우하우스 학생들의 공감각적 실험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 제품으로 거듭났던 것처럼 ‘색깔’로 변신한 김천정 작가의 책을 보면서 우리는 ‘다채로운’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고 평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전성기만 못한 그림… 거장의 노년엔 무슨 일이 있었나

    [그 책속 이미지] 전성기만 못한 그림… 거장의 노년엔 무슨 일이 있었나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이연식 지음/플루토/304쪽/1만 6500원여기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왼쪽 그림은 선이 선명하고 묘사가 세밀하다. 오른쪽 그림은 형체가 뭉개지고 선도 투박하다. 전체적인 색감도 탁하다. 누가 봐도 왼쪽 그림이 더 낫다고 할 것이다. 왼쪽 그림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에드가르 드가가 35세 때인 1869년 그린 ‘쀼루퉁한 얼굴’이다. 드가는 정확한 소묘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으로 유명했다. 특히 초상화에서 뛰어났는데,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을 포착해 그리는 데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쀼루퉁한 얼굴 역시 불만을 드러내는 여성과 이를 회피하는 남성의 순간적인 모습을 그려낸 그림으로, 드가의 걸작으로 꼽힌다. 오른쪽 그림은 드가가 61세인 1895년 그린 그림이다. 작품명도 ‘쀼루퉁한 얼굴’이다. 노년의 드가는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리곤 했다. 이미 완성해서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선물한 그림도 다시 가져와 몇 주, 심지어 몇 년까지 놔두고 마음 내킬 때 붓질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드가가 나타나면 그가 그림을 가져갈까 봐 숨기기까지 했다.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는 전성기 때 화가의 그림이 노년에 어떻게 바뀌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터너, 모네, 르누아르, 칸딘스키 등 10명의 화가를 분석했다. 전성기 때와 달라진 그림을 바라본 늙은 화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감성에 일상 더한 TV’ 세계를 홀리다

    ‘감성에 일상 더한 TV’ 세계를 홀리다

    2006년부터 11년 연속 세계 판매 1위. 삼성전자 TV가 세운 전무후무한 기록은 단연 ‘품질’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기술을 일상에 녹아들게 한 ‘디자인’과 ‘아트 마케팅’에 삼성전자가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PC,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TV를 대체할 만한 경쟁 제품군이 빠르게 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변화다.우수한 디자인에 힘입어 맨 처음 성공한 삼성전자 TV는 와인잔을 형상화한 ‘보르도TV’이다. 삼성전자 측은 “1970년 말 흑백TV 생산을 시작한 지 36년 만에 ‘보르도TV’ 인기에 힘입어 세계 판매 1위를 달성했다”면서 “이때 사내에 ‘디자인 경영’이 본격 자리 잡았다”고 22일 설명했다. 2008년엔 TV 프레임이 마치 유리 공예품처럼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신소재를 개발해 TV에 적용했다. 마치 올림픽 표어처럼 ‘더 얇게, 더 크게, 더 선명하게’ TV 제품 디자인 경쟁이 치열했다.2015년 더 얇고 선명한 화면을 지향하던 디자인 경쟁에 변화가 생겼다. 이때 나온 ‘세리프TV’엔 옆에서 봤을 때 로마자 ‘I’ 형태로 디자인을 입혔다. 올해 곧 출시될 ‘더 프레임TV’는 ‘아트 모드’를 설정하고 TV를 껐을 때 화면에 그림이나 사진이 나온다. 켜면 TV, 끄면 액자가 되는 셈이다. TV가 두꺼워짐에도 측면 디자인을 넣고, 켰을 때가 아니라 껐을 때 TV 디자인을 고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한승희 상무는 뉴스룸에서 “제품의 기능보다 제품이 어떻게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가치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TV 디자이너들은 이제 도면 위에 제품을 그리는 방식을 넘어 북유럽풍 디자인의 거실 세트를 만들고, 그 안에서의 어울림을 생각하며 TV를 디자인한다. ‘기술 디자인’보다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에 주목한 뒤 삼성전자는 해외 예술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세리프TV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밀라노 가구박람회, 프랑스 메종&오브제 등 세계 3대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세리프TV는 지난해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판매하는 첫 번째 TV라는 기록도 세웠다. 더 프레임TV는 지난 3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공개된 데 이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이완 작가의 작품을 보여 주는 디스플레이로 선정됐다. 유럽·일본 기업에 비해 TV 생산 후발 주자이면서도 다양한 ‘아트 마케팅’에 남들보다 먼저 눈을 뜰 수 있었던 배경은 사실 한국 예술계에 축적된 역량이 빛을 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비디오아트 거장인 백남준은 1985년에 이미 삼성전자 TV로 ‘TV뷰작’을 선보였고, 30여년 만인 지난해 7월 삼성은 백남준쇼에서 세리프TV 등을 제공했다. 같은 해 삼성전자는 국내 간송문화전, 러시아의 칸딘스키 서거 150주년 프로젝트에 쓸 TV를 공급하기도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조각 같은 외면…걸작 품은 내면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조각 같은 외면…걸작 품은 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의 5번 애비뉴와 88번가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최고 수준의 20세기 현대미술 소장품과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로 예술 애호가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미술의 든든한 후원자인 솔로몬 R 구겐하임(1861~1949)이 만든 구겐하임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미국 근대건축의 최고봉으로 추앙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설계했다. 미술사 및 건축 관련 책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하고 있고, 사진으로 숱하게 본 까닭에 이미 머릿속에서 익숙해진 미술관을 실제로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넓은 판을 나선형으로 꼬아 올린 듯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흰색 콘크리트 건물은 그 자체가 기하학적 조각품처럼 아름다웠다. 겨울 뉴욕의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미술관 건물은 순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달팽이 닮은 조각품… 시공간 잊게 만드는 외관 건축적 감동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욱 커졌다. 입구홀로 들어서자 천창에서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한 거대한 중앙 공간이 숨을 멎게 만들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그리고 벽을 따라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처럼 이어지는 그 유명한 나선형 전시 회랑이 풍경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내부 벽을 따라 한번은 안으로, 한번은 바깥으로 ‘S’자를 그리며 공간에 리듬을 주고 있었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어디 한 곳 걸리는 것이 없었다. 관람객은 많았지만 방해되지 않았고, 마치 예술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360도로 열린 공간은 산 정상에서 등고선을 바라보는 듯 더욱 장관이었다. 20세기 건축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구겐하임 가문은 유대인인 마이어 구겐하임이 1847년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면서 시작됐다. 광산업으로 큰돈을 번 마이어는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넷째인 솔로몬이 특별히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철강계의 거물이자 자선사업가로 이름을 알린 솔로몬 구겐하임은 1890년대부터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주로 프랑스의 바르비종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던 그는 1927년 독일에서 건너온 힐러 리베이 폰 에렌비젠(1890~1967) 남작부인을 만나면서 비구상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화가였던 힐러 리베이는 솔로몬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에게 비구상 예술을 알리고 로베르 들로네, 바실리 칸딘스키, 알베르 글레즈 등 새로운 회화를 실험하던 예술가들을 소개했다. 솔로몬은 이들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구겐하임의 소장품 리스트는 점점 길어졌다. 그의 응접실에는 칸딘스키 외에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 라슬로 모호이너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페르낭 레제 등의 작품이 가득했다. 힐러 리베이의 연인이었던 루돌프 바우어의 작품도 있었다.#철강 거물 구겐하임, 전설적 건축가와 손 잡다 자신이 수집한 예술작품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솔로몬은 1937년 구겐하임재단을 설립하고 힐러 리베이를 관장으로 ‘비구상 회화 미술관’을 열었다. 힐러 리베이는 1943년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뉴욕으로 초대해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했다. 구겐하임과 힐러 리베이의 주문은 예술을 위한 ‘신전 미술관’(Museum Temple)이었고 이는 라이트의 생각과 일치했다. 미술관이 단지 예술 전문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며 예술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라이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계단식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외형에 자연의 빛을 그대로 품고, 방들로 나눠진 기존 미술관과 달리 움직임의 단절이 없이 예술에 둘러싸일 수 있는 그런 미술관을 구상했다. 프레젠테이션을 받은 구겐하임은 말했다. “당신이 해 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해 낼 줄은 몰랐소.” 달팽이 모양의 외관에 430m의 나선형 회랑이 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가운데를 거대한 공간으로 남긴 미술관은 당시 뉴요커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주변 고급 주택가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망치며 소방법에도 위배된다는 등의 논쟁이 일었다. 아무리 전설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라지만 뉴욕 시 당국도 이 건축물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다. 1943년 설계를 시작한 미술관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과 솔로몬의 죽음, 뉴욕시와의 실랑이 등으로 16년을 보냈다. 1959년 센트럴파크 맞은편에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했다. 엄청난 비판과 반대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던 라이트는 안타깝게도 개관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개관을 보지 못했지만 미술관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개관과 동시에 뉴욕의 명소가 됐다.#나선형 로비 끝에서 올라가며 감상하는 게 안정적 비난을 한 사람들은 주로 미술관 큐레이터들이었다. 대개의 미술관에서는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감상하도록 작품을 설치하지만 라이트는 작품과 감상자의 거리를 좁히고, 예술작품으로 둘러싸이는 새로운 공간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구상했다. 큐레이터들은 빙빙 돌며 올라가는 경사진 회랑이 감상자의 균형감각을 잃게 하고 작품과의 거리가 좁아서 오히려 감상을 망친다고 비판했다. 큰 작품은 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물론 전부는 아니었지만, 건축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찬반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지만 논쟁 속에서도 수많은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안기고 있다. 사실 나선형 원을 돌 때의 불안정함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기에 완벽한 공간은 아닐 수 있다. 현관으로 들어가 좌측 모퉁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까지 올라가서 나선형 슬로프를 따라 내려오며 감상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로비의 오른쪽 끝에서 시작하는 나선형 긴 회랑을 따라 올라가며 감상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다. 소장품은 현대미술 장려와 진흥을 표방한 창립자의 의도대로 20세기 비구상, 추상 표현주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초기에 확보한 150여점의 칸딘스키 컬렉션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구글 ‘딥드림’·오토인코더 등 AI기술 접목한 예술작품 전시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대결 이후 인공지능(AI) 기술과 학문 간 융합을 기반으로 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의 결정체인 예술과 AI가 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국내외 아티스트와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창작자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리고 있다.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 AI와 휴머니티’ 전에서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예술과 인공지능의 접목 가능성, 예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상호 연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뉴미디어아트 작가 모리스 베나윤(홍콩 성시대학 크리에이티브미디어스쿨 교수)이 장 밥티스트 바리에, 토비아스 클랭과 공동으로 작업한 프로젝트 ‘브레인 팩토리’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을 마치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처럼 출력해 보여준다. 관객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의식을 집중한 뒤 사랑, 욕망, 고통 등 감정이나 의식과 관련된 단어들을 응시한다. 뇌파를 측정하는 헤드셋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작가가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3차원 형태로 변화되고, 최종적으로 3D프린터로 출력된다. 모리스 베나윤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감정의 본질과 그 역할에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MIT미디어랩 출신의 작가 하싯 아그라왈의 ‘탄뎀’은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의 시각언어를 교환하며 함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작품이다. 구글의 AI 이미지 소프트웨어인 ‘딥드림’ 알고리즘의 일부를 활용한 것으로 관객이 터치스크린 위에 그림을 그리면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표현한 새로운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테렌스 브로드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기계학습의 가능성을 연구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번에 선보인 ‘오토인코딩 블레이드러너’는 인공신경망의 하나인 오토인코더로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스토리 프레임을 학습한 뒤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기억을 통해 영화를 재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화면 속의 일그러진 이미지와 변조된 음성이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도 전시 중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프로그래머이자 아티스트인 진 코건은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관객의 모습을 ‘큐비스트’, ‘칸딘스키’ 등 미술사조 혹은 작가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실시간 송출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선보였다.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해 온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흥미롭다.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신승백과 김용훈의 ‘동물분류기’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분류의 자의성과 불완전성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이다. 양민하 작가의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는 과학 철학가들과 이론가들이 사유한 언어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어떤 언어로 생성해 내는지, 사유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해 본 결과물이다. 양 작가는 “과학철학서적 9권을 기초로 35만 문장을 3개월 걸려 입력시켰지만 생성된 문장들은 대부분 무의미하고 불완전한 조합들이었다”며 “AI가 인간의 사유능력을 따라잡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승준 작가의 ‘학습을 학습하기-연결과 흐름’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연구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결국은 AI도 인간이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므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를 참관한 IBM왓슨의 아르만도 아리스멘디 부사장은 “아직은 예술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프로그래머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AI와 예술사에서 중요한 실험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는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연구하는 창작연구소 나비 E I랩의 아트토이 ‘로보판다’, 소음을 음악으로 만드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시스템 ‘브레멘음악대’, 로봇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에어하키게임’, 인공지능을 접목한 재활치료기구 ‘네오펙트’도 선보였다. 아트센터 나비(관장 노소영)는 2000년 설립 이래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여 왔으며 최근 3년 동안은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작품 제작과 전시를 진행해 왔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도쿄의 우에노공원을 찾은 것은 5월 하순의 토요일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공원 안쪽 어딘가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래 목적 했던 국립서양미술관은 공원 입구쪽에 위치해 있는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국립서양미술관 개관 시간까지는 좀 여유가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공원 안 쪽에 위치한 도쿄도 미술관(東京都美術館) 앞에 줄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자쿠추 탄신 300년 기념전’(2016년 4월 22일~5월24일)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210분 이상 대기’라고 쓴 판을 들고 안내원들이 곳곳에 서서 확성기로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이채로웠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놀랍기만 했다. 자쿠추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이토 자쿠추(1716~1800)는 동물, 식물, 야채, 그리고 불교화에 능통했던 에도시대 중엽의 화가다. 교토의 야채상 집에서 태어나 집안일을 도우면서 살다가 40세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조선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모방만으로 자기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집중적인 자연관찰을 통해 터득한 미감을 바탕으로 세밀하고,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작품을 그렸다. ‘일본적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들을 남긴 화가의 탄신 300년을 기념해 미술관에서는 초기부터 만년까지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이토가 교토의 쇼코쿠지에 기증한 ‘석가삼존상’ 3폭과 궁내청 소장의 ‘동식채회’ 30폭이 처음으로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였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갔다. 마침 그곳을 찾았던 때가 특별전시 마지막 주말이어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것이었다.  너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자쿠추의 전시는 관람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자쿠추라는 화가와 도쿄도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쿄도 미술관은 1926년 5월 1일 개관해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일본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기업가인 사토 케이타로(佐藤慶太)가 100만엔(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0억엔 이상)을 기부해 설립됐다. 개관 당시의 이름은 도쿄부 미술관. 개관 때부터 소장품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전람회와 신인공모전 등을 주관했다. 그런 이유로 개관 당시 미술가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미술관 건물은 근대 일본에서 양식건축의 대가로 맹활약했던 오카다 신이치로(1883~1942)가 설계했다. 오카다는 도쿄제국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과 도쿄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교육자이자 건축가다. 오사카시 중앙공회당(1917년), 도쿄의 가부기좌(1924년)와 메이지 생명관(1924) 등이 그가 설계한 건물로 모두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술관 건물은 ‘예술의 신전’을 오르듯이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열린 공간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다. 조각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의 주변으로 공예 전시장, 사무실과 카페테리아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위층이 메인 공간인 회화갤러리다.  1975년 현재의 붉은 벽돌과 유리파사드가 조화를 이룬 미술관 건물이 들어선 이후 미술도서실을 운영하고 대규모 기획전을 열기 시작했다. 조각 작품을 제외한 현대미술 소장품이 1995년 개관한 도쿄도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면서 다시 공모전 및 기획전 대관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2년 전시실을 전반적으로 리뉴얼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문화예술교육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미술관 설립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토 케이타로의 이름을 딴 아트라운지도 이때 마련됐다.  6월 현재 이곳에서는 자쿠추전에 이어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가 소장한 1906년에서 1977년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퐁피두센터 걸작전’이 열리고 있다. 피카소, 마티스, 들로네, 칸딘스키, 보나르 등 20세기 거장들의 회화, 조각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다음으로 올 가을 시즌에는 ‘반고흐와 고갱’전이 기다리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파리를 매일 걷고 걸으며 오늘의 파리와 만났다.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걷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 속절없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내가 걸어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았다.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 한가운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단테의 ‘지옥’에 매혹되었을까? 부티크호텔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에펠탑. 왼편 아래 건물은 이브 생 로랑의 저택이다샹젤리제 인근 나폴레옹호텔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개선문과 프히들렁 거리파리에선 길을 잃어도 좋아. 파리에 대한 낯간지러운 찬사다. 좀 민망하지만 과장은 아니다. 파리는 어디를 가나 황홀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할로겐 가로등 덕분인지 거리에 덩그렇게 놓인 쓰레기통조차 예쁜 도시. 세상에 이런 도시가 또 있을까? 파리에서 만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파리의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해져요. 봐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요.”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도 그랬으니까. 파리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어제와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걸었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길이었다. 이런 간절함 때문일까. 나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파리와 만났다. 파리는 매일 변한다. 나는 파리에서 3주간 머물렀지만 에펠탑이나 루브르, 개선문은 내내 뒷전이었다. 과거의 파리가 아닌 오늘 이 순간의 파리를 보고 싶었다.1977년에 지어진 퐁피두센터는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이며 도발적이다. 20세기 건축의 아이콘퐁피두센터 안에는 국립근현대미술관도 있고 도서관, 사진 갤러리도 있다. 기획전을 제외하면 무료다퐁피두센터 바로 옆,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조각가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가 함께 만든 ‘니키 분수’가 자리했다퐁피두센터 설립을 결정한 프랑스 전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는 파리 한가운데 있는 근현대미술관이자 복합문화시설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퐁피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며칠을 지냈다. 중정中庭을 가진 좋은 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안한 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자연스레 퐁피두와 마주쳤다. 저 앞에 턱하니 자리 잡은 퐁피두를 뒤로하고, 동네 주민인 척 퐁피두의 뒷골목을 걸어 다녔다. 바게트를 사서 반으로 ‘접어’ 에코백에 넣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가벼웠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파리지엥인 척하는 시간의 한가운데 퐁피두가 있어 내가 지금 파리에 있음을 더욱 실감했다. 파리에 오지 못한 기나긴 시간 동안 파리를 떠올릴 때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가장 그리운 곳이 퐁피두였다. 퐁피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 지워지지 않은 시간 때문이다.아주 오래 전 퐁피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퐁피두에서 ‘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를 느꼈다. 퐁피두 앞 광장에서 파리의 싱그러운 청춘들을 보았다. 외부에 노출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퐁피두 6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가지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도 잊을 수 없다.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같은 파리의 풍광 속에 한껏 젖어 들었다. 여기가 파리구나. 그때 파리에 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퐁피두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퐁피두 앞 광장에 않아 주변을 살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퐁피두의 외관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느새 기분이 유쾌해진다. 퐁피두를 난생 처음 보는 관광객은 “왜 파리 한가운데 공장이 있죠?” 하고 묻기도 한다. 공장이 아니라고 하면 공사 중인 건물이냐고도 묻는다. 그만큼 겉모양이 파격적이다. 얼핏 건물은 안이 다 들여다보이고 에스컬레이터뿐만 아니라 수도관, 가스관, 철근 등이 모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발전하는 공간의 도해Evolving Spatial Diagram.’ 퐁피두란 공간의 의미는 시각적으로 이렇게도 표현된다.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인 이 건물이 정작 1977년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감동은 배가된다.1977년 문을 연 퐁피두센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렌조 피아노와 영국 출신의 리처드 로저스가 지었다. 전 세계 공모를 통해 모인 49개국 681점의 설계안 중에서 이들이 선정되었을 때 렌조의 나이는 겨우 서른다섯이었다. 작년 초 입주한 광화문의 KT 신사옥을 설계한 이가 바로 렌조 피아노다. 퐁피두는 강철과 유리로 지은 건물이다. 1만5,000톤의 강철과 표면 면적 1만1,000㎡에 달하는 유리가 사용되었다.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건물 안과 밖이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한다.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가운데가 아닌 바깥쪽으로 빼내 내부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내부에 기둥 또한 없어 자유롭게 공간을 변경해 사용할 수 있다.지금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의 하나가 되었지만 건립 당시에는 논란이 많았고, 반대도 거셌다. “안이 다 들여다보이잖아요!” “외부의 벽을 다 벗겨낸 것 같다고요!”퐁피두의 반대자들은 이단아 같은 퐁피두의 외양이 클래식한 도시, 파리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파리 중심부를 재개발하면서 퐁피두 설립을 강력한 의지를 갖고 결정한 이는 프랑스 전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다. ‘퐁피두’란 이름은 바로 그에게서 따왔다. 그 후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퐁피두는 외관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대통령이 가져야 할 혜안이고,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이다.퐁피두센터는 유럽 아트신scene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재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많은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건축, 사진 그리고 뉴미디어 작품까지 포괄한다.가로 166m, 세로 60m, 높이 42m의 공간에 7만점의 작품이 정기적으로 교체되며 매년 스무 개 정도의 새로운 전시를 이어간다. 그러니 지난달에 퐁피두를 갔다 해도 이번 달에, 다음 달에 또 가야 할 일이다. 퐁피두에선 전시뿐만 아니라 음악, 댄스, 연극, 공연과 영화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갖가지 장르의 이벤트와 순수미술의 접점, 상호작용은 퐁피두의 큰 관심사다.퐁피두는 1989년을 경계로 과거와 새로운 시대를 구별한다. 1989년 11월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 미술계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한편 유럽은 천안문 사태를 통해 엿보게 된 중국의 새로운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럽의 시선으로 볼 때 새로운 예술적 영토가 생겨났다.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 같은 인터내셔널한 아트신에 불현듯 등장하면서 세계 예술계의 지형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퐁피두는 이처럼 세계 예술계의 변화된 지형에 포커스를 맞추고 특히 동유럽, 중국, 레바논과 여러 중동 국가, 인도, 아프리카, 남미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파리에 여행을 왔는데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나는 루브르나 오르세보다 퐁피두를 권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몬드리안, 미로 등 다양한 작품을 짧은 시간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퐁피두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기념품 숍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파리 청춘들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기 좋다. 퐁피두 옆, 프랑스 조각가인 니키 드 생팔이 만든 ‘니키 분수’도 놓치면 안 될 볼거리다.쿠바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 아버지와 콩고 출신 어머니를 둔 작가, 위프레도 람Wifredo Lam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퐁피두센터는 전통적인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 장르의 믹스 같은 다양한 컨템포러리 아트에 관심을 기울인다퐁피두센터Place Georges-Pompidou, 75004 Paris, France +33 1 44 7812 33 11:00~22:00 (화요일 휴무) 성인 14 www.centrepompidou.fr로댕박물관은 한때 로댕, 장 콕토,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이 살았던 저택이다높이가 6.5미터에 달하는 주조물인 ‘지옥의 문’은 로댕 박물관의 장미정원에서 볼 수 있다루브르보다 로댕이 좋은 이유로댕박물관Musee Rodin이 2015년 11월12일에 새로 문을 열었다. 3년간의 리노베이션으로 전에 비해 좀 더 박물관답게 면모했다. 로댕이 살았던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전면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긴 처음이다. 매년 70만명이 지나다닌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의 많은 부분이 말끔히 교체되었다. 석고, 회반죽, 흙을 섞어 물로 갠 플라스터를 재료로 쓴 작품도 새로이 전시되었다. 그동안 수장고에서 잠자던 작품들이다. 플라스터 작품들은 로댕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로댕박물관 건물은 18세기 초에 지은 저택이다. 로댕이 한때 살았던 집이다. 1908년 로댕은 자신의 비서였던 릴케의 소개로 1층에 있는 4개의 방을 빌려 4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로댕뿐만 아니라 작가 장 콕토, 화가인 앙리 마티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한때 이 집에 살았다. 로댕박물관의 컬렉션과 작품만큼 박물관 건물 자체가 특별한 역사를 가진 셈이다.나로선 사이즈만 보면 루브르보다 로댕박물관 같은 곳이 더 좋다. 물론 루브르는 명실공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힌다. 일단 관람객이 너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제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도 모나리자 그림에서 5m 이내에 접근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루브르의 모든 관람객이 모나리자를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루브르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면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다. 봐야 할 예술품이 너무 많은 것도 때로는 고역스럽다. 미로 같은 박물관에서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작정 걷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루브르에 갈 때는 자기만의 테마를 갖고 작품을 선별적으로 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불평이 길었지만 루브르가 좋을 때도 있다. 늦은 밤, 루브르 호텔 옆 파사쥬 리슐리외 입구를 지나 유리창 너머 루브르를 보았을 때처럼 관람객이 한 명도 없는 루브르는 의심할 바 없는 예술의 신전이다.로댕은 말년에 이르러 자기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 수집한 예술품, 여기에 수반하는 저작권을 모두 국가에 기부했다. 로댕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로댕박물관이라고 해서 로댕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처럼 로댕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의 작품도 있고,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볼 수 있다. 로댕미술관에서 그의 조각만큼이나 내 눈길을 잡아끈 건 로댕의 데생 그림들이다. 로댕은 장장 7,000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는 흑연과 목탄, 브라운 컬러의 수채물감으로 종종 여성 또는 인체의 움직임을 그려냈다. 조각뿐만 아니라 데생에서도 로댕은 자기의 두 손으로 인간을 완전히 창조했다. 그는, 신이 조각가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신의 손’을 가진 조각가라고 여겼을 것이다.새롭게 단장된 로댕박물관은 로댕의 연대기와 테마에 따라 18개 전시실로 구성된다. 예컨대 ‘비롱 저택의 로댕Rodin at the Hotel Biron’이란 방은 로댕이 실제 살았던 시기의 모습으로, 당시 사용한 가구와 그가 수집한 작품으로 정교하게 복원되었고, ‘로댕과 고대Rodin and Antiquity’란 방은 로댕이 앤티크 딜러에게 사들인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으로 꾸며졌다. 로댕은 수많은 그리스, 로마의 조각 파편을 수집했고, 그중 100여 점이 이곳에서 전시 중이다. 로댕은 젊은 시절부터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옥’이란 테마에 매혹된 계기가 된 것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게 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때문이다. 그의 작품 ‘워킹 맨The Walking Man’의 경우처럼 로댕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을 그의 컬렉션으로 표현했다.로댕박물관 건물 자체는 크지 않지만 정원은 크다.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생각하는 사람’처럼 로댕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조각품을, 좁은 박물관 실내가 아닌 한가로운 정원에서 볼 수 있다. 고요한 정원은 아무도 없는 심야의 루브르처럼 평화롭지만 ‘칼레의 시민’이나 ‘지옥의 문’ 같은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내게 칼레의 시민은 칼레시를 구하기 위한 영웅들이 아니라 죽음에 직면한, 죽음을 자기의지로 선택한 사람들로 보인다. 모든 인간이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순간이다.‘지옥의 문’은 또 어떤가? 지옥에서 입맞춤하고, 생각하고‘생각하는 남자’의 전신, 달아나고, 떨어지고, 순교하고, 타락하는 인물상의 모습에서 폭력, 절망, 열정 등 지옥이란 또 다른 세계에 매혹된 로댕의 심경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지옥의 문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만나는 장미정원의 왼쪽 끝에 있고, 오른편 끝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로댕이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아 지옥의 문을 만든 거라면 그는 지옥 자체가 아니라 지옥 다음에 이어질 ‘연옥’과 ‘천국’이란 세계 또한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의 문’ 건너편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 자연스럽다.위대한 조각가에게도 세상사의 부침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로댕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8살 때 가사를 돕기 위해 석고 세공업자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각을 시작했지만 그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년에 이르러 자기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부하고자 했지만 그것도 간단치 않았다. 프랑스 국회는 로댕의 작품 기증 건을 표결에 붙였는데, 찬성 391표, 반대 52표로 개운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삶만큼이나 죽음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1917년 1월29일, 평생 자신의 모델이 되어 주고 함께해 준 로즈 브레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불과 보름 후인 2월14일에, 로댕은 같은 해 11월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스물네 살의 청년, 로댕이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수업을 듣다 우연히 만난 여자가 로즈 브레다. 로댕박물관은 로댕이 세상을 떠나고 2년 후인 1919년에 오픈했다.로댕박물관에는 로댕의 조각뿐만 아니라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있다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매우 현대적인 제스처의 ‘워킹 맨The Walking Man’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뜬 소문’‘칼레의 시민’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과감하게 확대, 묘사해 극적인 효과를 준다로댕박물관 77 rue de Varenne, 75007 Paris, France +33 1 44 18 61 10 10:00~17:45(월요일 휴무) 성인 €10 www.musee-rodin.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 세계 최고 와인과 라벨 그린 이우환 화백

    세계 최고 와인과 라벨 그린 이우환 화백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세계 최고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 무통 로칠드 2013’ 라벨 원화가 공개됐다. 올해의 라벨 작가인 한국의 이우환(오른쪽) 화백과 샤토 무통 로칠드의 오너인 줄리앙 드 보마르세 드 로칠드 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샤토 무통 로칠드 라벨 컬렉션은 피카소, 달리, 칸딘스키,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명작으로 선보여 왔다. 연합뉴스
  • [설 선물 특집] 애경, 장애인 작가의 ‘희망 디자인’ 사랑을 전해요

    [설 선물 특집] 애경, 장애인 작가의 ‘희망 디자인’ 사랑을 전해요

    애경은 기업 이념인 ‘사랑’(愛)과 ‘존경’(敬)의 의미를 담은 종합 설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애경은 장애인 작가와 협업하는 한편 세계적인 거장의 명화를 담아 설 선물세트를 구성하며, 나눔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종합선물세트인 ‘희망세트’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캘리그래퍼 송은주 작가와 디자인을 협업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구를 송 작가의 감성적인 캘리그래피로 담아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서정적 감성이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물로 제격이다. ‘마리몬드’와의 디자인 협업을 한 ‘케라시스 마리몬드 설 선물세트’도 눈에 띈다.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을 꽃으로 승화시키고 꽃의 패턴을 활용한 디자인 제품으로 인간의 존귀함을 회복해 준다는 이야기를 가진 브랜드다. 케라시스 마리몬드 설 선물세트는 오이풀 디자인을 적용했다. 오이풀의 꽃말인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아 선물의 가치를 높였다. 세련된 꽃 패턴과 다양한 향기의 케라시스 퍼퓸샴푸의 조화로 여성이나 젊은 층 대상의 선물로 좋다. 애경은 모네, 클림트, 칸딘스키 등 세계적인 거장의 명화를 담은 고품격 선물세트도 출시했다. ‘명화 선물세트’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이 있는 아를 풍경’ 등을 디자인에 담았다. 애경의 이번 설 선물세트 가격은 9000원에서 4만원대까지 다양하다. 1만원대의 ‘희망 3호’는 케라시스 샴푸와 린스, 덴탈크리닉 2080 치약 등이 포함됐다.
  •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 마법 아닌 노동의 다른 이름

    창조의 탄생/케빈 애슈턴 지음/이은경 옮김/북라이프/416쪽/1만 6800원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아름다운 음악들을 단지 통찰력으로 악보도 없이 작곡했다며 그의 천재성을 신화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모차르트 전기작가 오토 얀은 모차르트가 타고난 재능과 일생에 걸친 연습 덕분에 빠르고 능숙하게 작곡할 수 있었을 뿐 작곡 과정은 노동 그 자체였음을 증명해 냈다. 비단 모차르트뿐 아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나 발명가, 세상을 바꾼 혁신가들이 눈부신 영감으로 가득하고, 누구도 갖지 못할 독창적인 시각과 미래를 읽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다. ‘창조의 탄생’은 이런 신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21세기에 우리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사물인터넷’을 창시한 정보기술(IT) 분야의 거두 케빈 애슈턴이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책을 통해 ‘창조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의 탄생을 둘러싼 신화가 늘 존재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창조를 할 수 있고 성공한 창조자라면 누구나 극적인 통찰력의 순간을 경험한다. 희귀한 소수만이 창조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저자 역시 이런 창조성 신화에 빠져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당사자가 되면서 우리 의식 속에 기정사실처럼 돼 있는 창조성 신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창조’ 및 ‘창조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실제 그가 오랜 시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이디어는 단계적으로 찾아왔고 사람들은 비난으로 반응했으며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스스로 패배자의 기분을 수없이 맛봤다. 그는 “마법은 없었고 영감이 번쩍이는 순간도 없었으며 오로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일을 해야 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창조가 비약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마치 걸음을 걷는 것처럼 단계를 밟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창조는 목적지일 뿐 하나하나 하찮게 보이는 행동들이 오랜 시간 축적됐을 때 비로소 결과가 세상을 바꾸게 된다는 설명이다. 책은 모차르트부터 우디 앨런, 아르키메데스, 스티브 잡스 등 ‘새로움’을 만든 신화적인 인물들과 그들의 창조와 발명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려준다.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들고 예술, 과학, 철학, 기술, 산업 분야를 망라하며 창조성 신화에 가려졌던 진정한 창의성과 영감의 비밀을 밝힌다. 에드몽이라는 흑인 노예 소년이 수백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바닐라 인공재배의 실마리를 풀어 낸 것을 사례로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생각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일러 준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비행기를 처음 생각해 낸 인물은 아니었지만 새처럼 ‘말을 날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단계적 실험을 거듭하며 한 걸음씩 하늘로 걸어갔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기념비적인 작품 ‘하얀 테두리가 있는 그림’에 이르는 방법과 이론을 몇 년에 걸쳐 연구했다. 얼핏 보면 즉흥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다섯 달 만에 완성한 스물한 번째 스케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100년 동안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해 노벨상을 탄 로빈 워런의 경우는 ‘주목하는 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창조성 신화가 깨지는 것은 섭섭할지 모르지만 창조는 어떤 영웅적인 인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다분히 희망적이다. “창조 행위는 마법이 아니다. 창조는 노동에서 나온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세상 감싸 안은 노화가의 동심

    세상 감싸 안은 노화가의 동심

    굵은 붓으로 자유롭게 그은 선은 새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물고기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천진함이 묻어나는 그림 속에서 물체들은 생명력이 넘친다. 자연적인 소재를 독특한 표현방식과 기법으로 재해석해 내는 화가 노은님(69)의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미헬슈타트, 미국 LA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는 4년 만에 서울에서 갖는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의 신작과 도자기, 모빌 설치 등 60여점을 선보인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파독간호사로서 독일로 이주했다. 함부르크의 병원에서 중환자,행려병자 등을 보살피는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면서 향수를 달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감기에 걸려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된 그의 집을 방문한 병원 간호장이 우연히 쌓여 있던 그림을 보게 됐다. 이를 계기로 병원 한쪽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고 1973년 27살의 나이에 국립함부르크미술대학에 진학해 칸딘스키의 직계 제자인 티만 교수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으며 6년간 수학했다. 시에서 장학금을 받고,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던 노은님은 1990년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의 교수직을 맡아 201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에너지를 품은 노은님의 그림은 규격화된 미술 교육을 받은 이들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함부르크에 있는 19세기에 지어진 알토나 요한니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노은님은 물, 공기, 흙, 불이라는 4대원소를 통해 모든 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화랑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에 발표한 신작 가운데 ‘봄’은 뉴욕에 있는 지인이 목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짐처럼 느껴진다는 그의 머리를 생각하며 점을 찍고, 그 점에서 선들이 이어져 나와 순식간에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다’는 개인전 제목은 노은님이 제18회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에서 가져왔다. 전시는 3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20세기 조형예술 꽃피운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20세기 조형예술 꽃피운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20세기 예술과 건축, 그래픽, 산업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 시각예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합미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무대예술과 퍼포먼스 자료를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 바우하우스 데사우재단과 공동 기획한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전으로 내년 2월 22일까지 계속된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에 의해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예술·디자인학교다. 전통적 교육 방식에서 탈피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조형 이념을 내걸고 동시대가 요구하는 교육 개념을 발전시켰다.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라슬로 모호이너지 등 쟁쟁한 명성을 지닌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무용가, 사진작가, 미술교육가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해 예술의 사회참여와 혁신을 창출할 인재를 길러 내며 그들의 예술을 꽃피웠던 바우하우스는 바이마르(1919~1925년)에서 데사우로 이전해 1932년까지 머물다 베를린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나치 정권의 압박으로 베를린으로 옮긴 지 1년 만인 1933년 폐교됐다.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주축으로 삼고 있지만 모든 예술의 통합을 목적으로 도시 계획, 회화, 조각, 공업 디자인 등 모든 시각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무대예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용가 오스카 슐레머를 중심으로 인간, 공간,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서 무대의 역동적인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지난해 12월 독일 데사우 바우하우스를 시작으로 지난 5월 노르웨이 헤니온스타드 아트센터를 거쳐 서울관을 찾은 전시에서는 1919년 바우하우스 설립 이후 1933년 폐교까지 행해졌던 다양한 무대실험예술과 퍼포먼스 자료를 보여 준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신체조화, 분위기 장치, 구성주의적 형상, 신기한 무대기술, 조각적인 안무, 총체극장, 집단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바우하우스는 학교인 동시에 20세기 초 특별한 조형 이념을 내걸고 추진된 예술운동의 중심지였다. 폐교 이후 설립자 그로피우스, 폐교 당시 교장이었던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 등이 미국으로 이주해 바우하우스의 조형 이념을 전승시켰다.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김영나, 백남준, 안상수+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오재우, 조소희, 한경우 등 6명의 국내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이들의 작품은 바우하우스가 일정한 시기에 발생했던 특정 조류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들 본연의 창작 태도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건물, 데사우 학교 건물과 교수진의 주택단지인 마이스터 하우스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바젤, 현대미술의 메카로 키운 진정한 미술애호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바젤, 현대미술의 메카로 키운 진정한 미술애호가

    바젤 아트페어와 바이엘러 재단을 설립한 에른스트 바이엘러(1921~2010)는 세계적인 화상(畵商)이면서 미술품 수집가로 명성을 날린 현대미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남다른 식견으로 세계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바젤을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그의 긴 여정은 바젤의 작은 시골마을 바움라인가스의 작은 고서점에서 출발했다. 철도 인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오스카르 쉴로스라는 노인이 운영하는 고서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서점을 운영해 온 쉴로스는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청년 에른스트 바이엘러를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그에게 역사, 미학, 문학, 철학 등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쳤다. 1945년 쉴로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에른스트는 은행 빚 6000프랑을 내어 고서점을 인수한다. 자금 회수를 위해 잘 팔리는 책을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잘 팔리지 않는 책들을 처분하기 위해 고서점에서 판화와 도판 전시회를 열었다. 차츰 발전해 미술 전문 갤러리로 자리 잡게 됐고 현대미술로 분야를 특화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키워 나갔다. 바이엘러는 명작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과 기지, 겸손함, 신사다움을 겸비한 화상으로 미술계의 신뢰를 받았다. 다른 딜러들이 며칠씩 걸려서 작품값을 측정해 내는 것을 그는 앉은 자리에서 서로가 원하는 조건대로 협상을 이끌어내고 상호만족하는 선에서 거래를 성사시키곤 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각국의 미술관들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데 그의 안목과 중재력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피카소의 화실에서 직접 작품을 고를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유일한 아트딜러였다. 칸딘스키의 아내는 남편이 남긴 유작의 대리인으로 바이엘러를 지목하며 ‘최고의 아트딜러’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다른 20세기 초의 유명한 갤러리스트들에 비해 시대를 창조하지 못했다. 나는 인상주의 작품부터 팝아트까지 좋은 작품들이 널리 알려지도록 보급하고, 좋은 작품을 선택하도록 도와준 것일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그가 더욱 존경받는 이유는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을 지닌 아트딜러이기 이전에 진정한 예술애호가로서 예술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나 스위스 제네바 등 당대 미술의 중심지를 찾아 떠나지 않는 대신 바젤을 현대 미술의 메카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1971년 당대의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아트바젤을 주도해 만들었다. 첫 회에는 10개국 90개 화랑이 참가하는 데 그쳤지만 지리적 이점과 지역 화상들의 노력으로 아트바젤은 곧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로 발전했다. 자코메티, 칸딘스키, 클레, 피카소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교류하며 스스로도 대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던 그는 1982년 갤러리 비즈니스를 재단으로 전환시키며 바젤시에 많은 작품을 기증했다. 하지만 전시할 장소가 마땅치 않자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을 지어 1997년 10월 개관했다. 그의 나이 76세였지만 여전히 현역이었다. 왜 은퇴하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또 다른 좋은 작품을 찾기 위해서”라고 답했던 그는 2000년부터 아트바젤의 디렉터를 맡았던 사뮈엘 켈러를 2008년 바이엘러 재단의 디렉터로 스카우트했다. 60여년 전 그의 멘토였던 쉴로스처럼 아들 같은 켈러의 멘토가 되어 미래의 주역에게 진정한 아트 비즈니스의 정신을 심어주고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의 언론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음악가 집안서 태어난 추상 회화의 시조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음악가 집안서 태어난 추상 회화의 시조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스위스를 대표하는 화가 파울 클레(1879~1940)는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추상회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표현주의,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예술 사조를 받아들이며 선과 형태, 색채의 탐구에 몰두한 그는 신비로운 색채와 음악적인 운율을 지닌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파울 클레는 1879년 스위스 베른 교외의 뮌헨부흐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이주한 베른사범학교의 음악교사, 어머니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으로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가 집안이었다.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파울 자신도 7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프로급 연주실력을 갖췄고, 훗날 뮌헨에서 만난 부인 릴리도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정작 그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미술이었다. 그는 1900년 뮌헨미술아카데미에서 상징주의의 대가 프란츠 폰 슈투쿠의 지도를 받았다. 이곳에서 함께 수학한 바실리 칸딘스키 등과 1911년 뮌헨에서 ‘청기사’파로 활동하기도 했다. 흑백의 판화, 단색조의 템페라 등에 한정됐던 그는 1914년 봄부터 여름까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한 튀니지 여행에서 선명한 색채를 자각한다. 인간이 색채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가 인간을 뒤흔드는 느낌을 받은 그는 색채와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강한 느낌을 체험한다. 1차 대전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의 색채에 대한 자각은 추상에 대한 사고로 다채롭게 전개되며 평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미술사, 예술이론 등 미술 관련 인문학 외에 식물학, 천문학, 심리학, 과학 등에도 박식했던 그는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추상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벽화 워크숍,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가르치며 그는 모던아트, 추상미술, 색채론 등을 담아 ‘형태와 디자인 이론에 대한 논고’라는 강의노트를 남겼다. 바우하우스에서 재회한 칸딘스키와 활발하게 추상회화 작품활동을 하는 한편 ‘자연연구의 길’,‘교육적 스케치북’ 등 이론적 저술작업을 완성했다. 또한 음악과 회화의 상응관계를 연구하며 색채의 구조를 파악하고, 대위법의 응용 등 조형적 요소들이 음악적 운율을 갖게 하는 회화를 시도했다. 또한 바우하우스 시절의 이집트여행은 원시·고대문명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언어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그의 추상회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31년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나치는 그가 갈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교수직을 박탈했다. 탄압이 심해지자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은 곳곳에서 시체 냄새가 난다”는 말을 남기고 독일을 떠났다. 스위스 베른으로 돌아와 더욱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이어 나간 그는 자연과 종교를 깊이 탐구했고 특히 ‘천사’를 주제로 28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만년에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난치병에 걸려 로카르노의 병원에서 60세의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처럼 평생 독일 국적을 지니고 있던 그는 독일을 떠난 직후 스위스로 귀화를 신청했지만 사망하고 며칠 뒤에야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베른시 외곽에 위치한 쇼스할덴 공동묘지에 있는 파울 클레의 묘비명은 형상의 근원을 기호적 언어로 환원할 줄 알았던 예술가의 진정한 가치와 끝없는 열정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일기에서 발췌한 글이다. ‘나는 이 세상의 언어만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창조의 핵심에 가까워지기는 했으나 아직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6) 佛 파리 퐁피두센터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6) 佛 파리 퐁피두센터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미술관·박물관으로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 그리고 퐁피두센터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건축학적으로 볼 때 가장 독특한 곳이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퐁피두센터다. 원래 배관 설비나 전기 시설 등은 벽 뒤나 바닥, 천장에 숨겨 두기 마련인데 이 건물은 배관 설비와 통로, 전기 시설 등을 빨강, 노랑 등 눈에 띄는 색으로 강조하면서 바깥으로 드러내 놓았다. 외벽을 투명한 유리로 두르고, 에스컬레이터를 건물 정면에 층층이 배치했으며 환풍구의 구부러진 금속 굴뚝은 지면에서 위로 솟아올라 있다. 기계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공장 건물 같기도 하고, 추상적인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파격적인 건축물이 1977년에 완성됐다고는 믿기 어렵다. 건물을 설계한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의 앞서 가는 아이디어는 당연히 탄복할 만하지만 그보다도 40년 전에 이런 새로운 개념의 초현대식 건축물을 선뜻 수용한 프랑스라는 나라가 참 대단하다. 파리의 중심부에 있는 퐁피두센터를 가려면 파리 시내와 외곽을 연결하는 급행철도인 RER의 A, B, C 선이 교차하는 환승정류장 샤틀레레알에서 내려야 한다. 정거장 이름에 붙은 ‘레알(Les Halles)’은 예전에 이 지역에 있었던 중앙시장을 가리킨다. 철제로 된 건물 레알은 수세기 동안 파리지엔들의 먹거리를 책임졌지만 너무 비좁고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1971년에 헐렸다. 그 자리에는 옛 철제 건물을 대신해 유리와 강철로 외관을 처리한 현대적인 쇼핑몰 ‘포럼 데 알’이 들어서고, 인근 보부르 지역에는 21세기형 복합문화공간이 자리 잡게 된다. 이 일을 추진한 이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조르주 퐁피두였다. 퐁피두는 샤를 드골 대통령 행정부에서 모두 6년 3개월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내다 1969년 4월 드골이 갑자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제5공화국 2대 대통령이 됐다. 기본적으로 드골의 자주 노선을 계승했지만 실용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던 그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펴고 경제개발에도 앞장서 TGV 개통과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의 성과를 이뤘다. 한편 퐁피두는 근대 이후 예술가들의 도시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던 파리가 급속도로 부상하는 뉴욕이나 런던에 밀리고 있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밤잠을 설치고 고민하던 그는 1969년 12월 파리를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로 부상시킬 문화센터를 레알 주변의 보부르 지역에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직접 지휘하고 감독하며 국제 설계 공모를 하자 세계 곳곳의 건축가들이 공모에 참여했다. 49개국에서 제출된 681점의 응모작 가운데 국제무대에서는 신인급인 두 건축가의 디자인이 뽑혔다. 훗날 새로운 소재를 건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세련되고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하이테크 건축으로 유명해진 이탈리아인 렌초 피아노와 영국인 리처드 로저스였다. 이들이 공동 설계한 디자인은 당시로선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이들은 그때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특별한 디자인의 건물을 기획했다. 배선, 냉난방, 배관 등 기능적 설비를 모두 건물 바깥으로 빼냈다. 건물의 조연들을 무대에 내세운 다음 각자 기능에 맞게 색깔을 부여해 독특한 미를 창출하는 식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데에는 퐁피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막중한 사업을 신인급 건축가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과거 레알의 철제 건물 이미지를 담으면서도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초현대식 건물 디자인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계획 발표부터 8년간의 대공사 끝에 1977년 마무리됐다. 센터의 창설에 열정적이었던 퐁피두 대통령은 1974년 4월 2일 매크로글로브린혈증이라는 희귀병으로 갑자기 사망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완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센터 명칭에는 그의 이름을 남겼다. 그의 열정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 미술관에는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 짧게는 퐁피두센터로 이름이 붙여졌다. 피아노와 로저스가 지은 건물은 너비 166m, 폭 60m, 높이 42m 규모인데 각 층의 넓이가 7500㎡로 꽤 넓은 편이다. 공간이 이렇게 넓은 것은 배관설비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정면 광장에서 볼 수 있도록 바깥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강철 트러스와 유리의 차가운 느낌을 원색으로 커버해 난방장치와 환풍기 등 공기가 통하는 곳은 파란색, 배수관은 초록색, 전기시설은 노란색,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등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빨간색을 칠했다. 게다가 안벽을 한쪽으로 밀거나 치울 수 있어 자유롭게 용도에 맞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안에 들어가야 할 것은 밖으로 빼고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한 이 건물의 운영이나 기능은 ‘예술작품의 공동묘지’라고 하는 전통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건물 안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MNAM) 외에 예술전문 자료를 갖춘 칸딘스키 도서관, 도서열람실과 컴퓨터실을 갖춘 공공정보도서관(BPI), 산업디자인창작센터(CCI), 방대한 영화 필름과 시청각 시설을 갖춘 음악·음향연구소(IRCAM), 어린이들이 그림과 공예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파리시가 미술관도 되고 다른 창조적 공간도 되고, 미술이 음악과 영화, 도서, 시청각 연구 등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문화예술센터를 갖기를 열정적으로 원한다”고 했던 퐁피두 대통령의 혜안과 열정이 만들어 낸 ‘21세기형 문화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는 개관 당시 파리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비난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변은 언제나 젊은이와 관광객들로 활력이 넘친다. 완공한 지 20년 만에 건물의 안전을 점검하기 위해 3년여간 문을 닫아야 했지만 2000년 재개관 이후에도 줄곧 하루 2만 5000명 이상이 찾는 현대미술의 메카로 파리의 사회와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피카소·샤갈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 소장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피카소·샤갈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 소장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MNAM)은 당초 회화 작품을 전시하던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출발해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지어진 팔레 드 도쿄에 있다가 1977년 퐁피두센터가 개관하면서 옮겨와 둥지를 틀었다. 미술관 작품 구성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결정에 따라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 컬렉션 중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신인상파, 나비파의 작품들은 개관을 준비 중이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뤽상부르 미술관과 팔레 드 도쿄를 거쳐 이관된 작품과 새롭게 구성한 피카소, 샤갈, 마티스, 브라크, 브랑쿠시, 클레, 보나르 등 근·현대 미술 컬렉션 5만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회화에서부터 사진, 뉴미디어, 조각, 디자인, 건축에 이르는 거의 모든 종류의 현대미술 장르를 다룬다. 피카소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이 20세기 초반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덕분에 20세기와 21세기 현대미술작품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4층과 5층의 상설전시실, 2층과 6층의 기획전시실 등 총 전시면적은 1만 7000㎡. 5층에는 1905년부터 1960년 사이에 완성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입체파(큐비즘) 작가들의 작품은 특히 풍부하다. 피카소의 ‘기타리스트’, 조르주 브라크의 ‘과일 접시와 카드들’과 같이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작품부터 라울 뒤피의 ‘수잔나와 노인들’, 페르낭 레제의 ‘결혼식’ 등 후기 입체파까지의 작품들이 미술관 벽에 빼곡하다. 마티스의 ‘왕의 비탄’, ‘붉은 실내’, ‘루마니아풍 블라우스’, 1차 대전 이후 파리에서 활약한 파리파의 대표적 화가인 모딜리아니의 ‘마담 헤이든의 초상’,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도 빼놓을 수 없다.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의 ‘보이지 않는 잠자는 여인, 말, 사자’,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칸딘스키의 ‘노랑빨강파랑’과 ‘파란하늘’ 등 추상 작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심연’, 몬드리안의 ‘뉴욕’ 등 걸작들을 관람할 수 있다. 4층은 196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실험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쉬포르쉬르파스, 플럭스, 미니멀아트, 개념미술의 대표 예술가들인 리히터, 폴케, 백남준, 보이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이탈리아 작가 페노네, 설치미술가 볼탄스키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상설전시 외에 6층에서 열리는 퐁피두의 특별기획 전시는 언제나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다. 예술가, 예술가의 가족 및 후원단체 등의 기부를 통해 다양해진 컬렉션으로 특별한 주제 혹은 예술가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퐁피두센터 개관 특별전을 장식한 마르셀 뒤샹을 비롯해 달리, 보나르, 마티스, 베이컨, 피카소, 뒤뷔페 등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했으며, 올해에는 가장 프랑스적인 사진을 남긴 앙리 카르티에 브르송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별 전시는 ‘파리-뉴욕’, ‘파리-파리’, ‘팝아트의 시간들’, ‘히치콕과 미술’ 등이 있었다. lotus@seoul.co.kr
  • “바흐 곡이 어제 작곡된 것처럼 들려 주는게 베를린필 목표죠”

    “바흐 곡이 어제 작곡된 것처럼 들려 주는게 베를린필 목표죠”

    “모든 음악이 ‘컨템퍼러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흐의 작품이 마치 어제 작곡된 것처럼 들릴 수 있도록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게 베를린필의 목표죠.” 음악의 경계가 사라지고 현대음악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요즘, 마에스트로 사이먼 래틀(58·영국)이 꿈꾸는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역할이다. 독일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인 래틀이 11~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2002년 취임 이후 네번째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국만큼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심오하게 이해하는 청중은 드물다”며 “클래식을 열렬히 사랑하는 한국 관객을 다시 만나 기쁘다”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베를린필은 이번 공연에서 독일 낭만파 음악의 대명사인 슈만에서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 불레즈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이 멋진 로스트 미트라면 불레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노타시옹’은 맛좋은 수프, 또는 맵고 즉각적으로 강한 맛을 내는 김치의 역할을 하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룹니다. 불레즈의 곡이 미로, 칸딘스키의 작품이라면 브루크너의 곡은 어둠을 품은 렘브란트의 그림과도 같죠.” 이번 공연에는 지난 5월 베를린필 아카데미(1972년 카라얀이 설립한 2년제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한 한국인 연주자, 오보이스트 함경(20)과 바순 연주자 장현성(22)도 합류한다. 래틀은 이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매우 난해한 곡이지만 우리는 익숙해서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연습 기회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연주자들은 음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래틀이 오는 2018년 베를린필을 떠나겠다고 공언한 만큼 그의 향후 행보에 세계 클래식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외신들은 그가 영국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래틀은 “(남은) 5년은 긴 시간이고 아직 베를린필 식구들과 이뤄야 할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며 “런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다른 오케스트라로 갈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다”고 밝혔다. “당장은 미래에 정확히 뭘 할지 생각할 특권을 갖고 싶다”는 그는 비틀스의 노래를 언급하며 농담을 곁들였다. “비틀스의 노래 중에 ‘내가 64세가 되면(When I am sixtyfour)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5년 뒤면 저도 64살입니다. 그때도 저를 계속 원할 것인지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웃음) 지휘자의 출중한 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래틀은 테이블 밑으로 숨는 제스처를 취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첼로 수석 울프 마이어는 “래틀과의 작업은 ‘판타스틱’하다”며 “래틀은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범주의 레퍼토리를 다 아우르고 ‘와이(Why)와 왓(What)’, 즉 어떤 부분에 있어 왜 그렇게 하는지 연주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묻고 얘기할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자연을 닮은 의자 예술·과학을 품다

    자연을 닮은 의자 예술·과학을 품다

    의자의 틀 자체를 ‘뼈’에서 가져왔단다. 선뜻 앉기가 망설여진다. 유리구슬이나 긴 막대기 하나쯤은 쥐고 앉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마법적인 이미지와는 오히려 정반대다. 미래 공상과학(SF)적 이미지다. 출발점은 자동차 디자인이었다. 자동차 디자인이다 보니 조건은 간단하다. 공간과 연비를 위해 날렵하고 가벼우면서도, 안전성을 위해 탄탄해야 한다. 동시에 양산을 위해 대중적인 소재를 써야 한다. 이런 조건을 적당히 배합시켜 미리 제작해 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썼다. 작가는 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껴 예술작품을 만들기 적당한 방식으로 고쳤다. 최소 요소로 최대 안전을 뽑아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대답은 인간의 뼈대였다. 사각형 입방체를 두고 조건을 주입하면 뼈대 모양만 남기고 깎아내고 녹여내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에 일정 조건을 투입한 뒤 거기에 나온 대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사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따른 것이라 저도 어떤 모양이 나올지 알 수 없어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컴퓨터와 제가 계속 핑퐁게임을 하는 거죠.” 자신의 작업실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랩(Lab·연구실)이라 부르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과학자, 기술자들의 작업을 조사한 뒤 그들의 실험을 디자인 언어로 전환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앉아보면 알 수 있다. 등받이가 뒤로 누운 각도와 몸통을 잡아주는 탄탄함이, 시동을 걸면 내 몸 안의 뼈대와 내 몸 밖의 자동차 뼈대가 같이 울리는 스포츠카 같다. 후반작업도 만만치 않다. 용접 없이 일체형으로 만들기 때문에 틀에 찍어내야 한다. 재료도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조금 덜 대중적인 재료를 쓴다.”는 말처럼 각종 대리석, 합성수지, 텅스텐, 알루미늄 같은 것들이다. 이를 갈고 닦아 최종적으로 다듬고 광을 내려다 보니 후반 작업에만 “작품당 기본 200시간 이상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을 거쳐 처음 작품이 나온 것이 2004년. 본(Bone) 시리즈의 탄생이다. 이 작품들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기존 디자인 개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여는 네덜란드 작가 요리스 라르만(32) 얘기다. 전시에 맞춰 내한, 기자들과 만났다. 라르만이 힘을 빌린 곳은 자동차 디자인만이 아니다. 뼈 성장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논문도 참고했다. “인체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뼈는 더 강화되고 불필요한 뼈는 축소되고 사라지는 과정이 경이로웠어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진화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최적을 찾아가는 것이 “자연적 의지의 진화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만약 의자라는 것이 자연진화 과정을 통해 지금 시대에까지 이르렀다면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2층으로 올라서면 눈이 한결 더 상쾌해진다. 탁자들이 쭉 놓여 있다. 최근작 숲(Forest) 시리즈다. 여기서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빠지지 않는다. 작가는 “세포분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착안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모양새가 마치 유명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작업과도 닮아 있다. 프랙털(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형상)도 떠오르지만, 테이블이란 점을 감안하면 말풍선 같기도 하다. 예술에, 과학에, 인문학까지 한데 모아둔 셈이다. 탁자 밑은 더 환상적이다. 큰 나무기둥을 본떠 만들었다. 덕분에 테이블 사이를 걷노라면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맛볼 수 있다.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더 쉽게 더 재미있게~ 오페라 ‘3色 향연’

    더 쉽게 더 재미있게~ 오페라 ‘3色 향연’

    오페라단의 화두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 있다. ‘오페라는 어렵다. 그래서 그들만이 즐긴다.’는 편견이다. 공략법은 저마다 다르다. 귀에 익숙한 아리아를 모은 종합선물세트를 내세우거나, 누구나 알 만한 원작소설을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발레, 미술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수용층을 만들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한국오페라단은 19~2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골든 오페라-오페라 갈라’를 공연한다. ‘울게하소서’로 알려진 헨델의 ‘리날도’(1711), 모차르트의 ‘마술피리’(1791), 비제의 ‘카르멘’(1875), 푸치니의 ‘라보엠’(1896) ‘투란도트’(1926),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1853) 등 오페라와 담을 쌓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아리아를 한데 모았다. 1980년대 루치아노 파바로티 콩쿠르와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를 휩쓸었던 김영미(소프라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박현재(테너) 서울대 교수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MBC 오디션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출연한 카운터 테너(여성의 소리처럼 높은 음역을 내는 남성 가수) 루이스 초이도 무대에 선다. 3만~18만원. (02)587-1950. ‘여섯 살 옥희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와 사랑방 손님의 속마음은 어떤 걸까’. 이런 궁금증이 주요섭의 단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창작오페라로 만들었다. 서울 강동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생긴 상일동 강동아트센터 개관기념으로 21~22일 무대에 오른다. 창작 오페라이지만 원작의 명성 덕에 낯설지는 않다. 옥희의 시선으로 어머니와 그녀를 바라보는 사랑방 손님의 감정선을 좇는다. 여섯 살짜리에게 무대를 맡길 수는 없을 터. 초등학교 4·5학년 최예진·황시은이 옥희 역을 맡았다. 둘 다 수많은 동요제를 휩쓸고 다닌 실력파라는 게 강동아트센터 측의 설명이다. 창작오페라라고는 하지만 티켓 가격(1만~3만원)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02)440-0500. 29~30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선보이는 ‘하이브리드 오페라 갈라콘서트-라보체’는 미디어아트와 오페라의 결합을 시도한다. 1부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연주와 사회를 맡는다.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장면을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의 목소리와 서울발레시어터 전효정·장운규의 몸놀림으로 구현한다. 2부는 음악평론가 장일범이 사회를 맡아 ‘보는 아리아, 듣는 명화’라는 컨셉트로 진행한다. 성악가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무대 뒤로 바실리 칸딘스키, 펠릭스 발로통 등의 명화가 스크린에 투사된다. 단순한 배경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오페라의 아리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소프라노 강혜정·서활란, 베이스 이진수, 테너 박성규, 바리톤 성승민이 선다. 1만~10만원. (02)3446-965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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