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고, 등록금 지원 약속 깬 사연은…
후원 기업 경영난에 지원 끊겨 시정명령한 공정위 “안타까워”
경기 악화로 3년 전 장학금 지급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방 공립고등학교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국내 상위권 대학 진학 시 4년 등록금 지원’이라는 신입생 모집 당시의 광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경북 봉화고에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봉화고가 학교를 대상으로 이뤄진 최초의 공정위 시정명령 대상이 된 데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농촌 지역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2007년 3월부터 봉화여고와 합쳐져 기숙형 공립고로 운영돼 왔던 봉화고는 대구나 인근 영주시로 유학을 떠나는 성적 우수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2012년 11월 1일부터 신입생 모집 안내를 하면서 “국내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경우 4년간 등록금을 지원하겠다”고 광고했다. 장학금은 봉화고 출신으로 중국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이창호 제성유압유한공사 대표가 대기로 했다.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해 전통을 이어 가고자 했던 봉화고의 생존 전략과 “가정 형편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후배가 없도록 돕고 싶다”는 이 대표의 바람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합격자는 등록금의 100%를,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양대, 인하대, 경북대, 부산대 합격자는 등록금의 50%를 지원받았다. 그 결과 2013년부터 매년 10명 넘게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제성유압은 최근 중국 경기의 악화로 사업부문을 축소해야 할 만큼 비상 상황을 맞았다. 장학 지원 규모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봉화고는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졸업생에게 1학년 첫 학기 등록금을 지원하면서 ‘향후 등록금을 계속 받으려면 학점 3.8 이상을 얻어야 한다’는 예전에 없던 조항을 제시했고, 부산대 입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장학제도가 입학 당시의 약속과 달라졌다”고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 공정위는 ‘거짓·과장광고를 했다’며 봉화고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조사를 담당한 박종일 공정위 대구사무소 소비자과장은 “지역 인재 육성으로 명맥을 이어 가려던 시골 학교가 힘을 잃게 될까 봐, 또 불경기에 어쩔 수 없이 모교 지원을 줄여야 하는 선배의 마음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