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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쿠바 ‘해빙모드’ 먹구름?

    피델 카스트로를 잃은 쿠바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새로 맞이하는 미국 사이의 ‘해빙 모드’가 예측불허다.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에 반감을 보이는 까닭에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판단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카스트로가 지난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하면서 오랜 대립을 벗어나 반세기 만에 국교를 정상화한 미국과 쿠바 관계의 앞날이 양국 국민 사이에서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관심거리가 됐다.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된 라인스 프리버스는 2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쿠바가 사상·종교의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를 수용하지 않으면 적어도 트럼프 정부가 나서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주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프리버스는 “쿠바 정부 내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지금처럼) 일방적인 거래를 가지고 갈 순 없다”며 쿠바 내 변화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대선 유세에서 쿠바가 민주주의 가치 수호와 정치범 석방 등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유화정책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12월 쿠바와 관계 복원을 선언하면서 해빙 분위기의 물꼬를 텄다.지난해 7월엔 1961년 외교단절 이후 54년 만에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열었다.미국과 쿠바를 오가는 상업용 정기 항공편 운항도 반세기 만에 재개됐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후에도 쿠바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카스트로의 타계 이후 내놓은 성명에서 전 세계가 “야만적인 독재자”의 죽음을 목격했다며 “피델 카스트로의 유산은 총살형과 절도,상상할 수 없는 고통,가난,기본적인 인권의 부정이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는 아직 쿠바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인수위에 쿠바 정권에 비판적인 모리시오 클래버캐런 ‘쿠바 민주주의 정치활동위원회’ 위원장이 들어가면서 앞으로 미국의 쿠바 정책이 강경해질 것을 예고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다져놓은 양국의 긴장완화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AP통신은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로 “미국과 쿠바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심리적인 장벽이 걷혔지만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정권이 넘어가기에 앞서 (양국 관계의) 불확실성이 추가됐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1990년대에 트럼프가 당시 불법이던 쿠바에서의 사업 기회를 일축했던 일화를 전하면서 “미국과 쿠바의 데탕트(긴장완화)가 트럼프 정권 아래에선 불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카스트로는 아버지 같은 존재”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카스트로는 아버지 같은 존재”

     16년전 미국과 쿠바간 난민 송환 논란을 일으키며 양국 ‘반목’의 상징이 됐던 ‘난민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22)가 지난 25일(현지시간)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성인이 된 곤살레스는 27일 쿠바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에게 아버지였다.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가 날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는 “무언가를 새로 배우면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번은 피델이 공공행사에서 날 친구로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는 데 정말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곤살레스는 5살 때인 1999년 11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보트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 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 어머니와 일행이 모두 익사하고 홀로 표류하다 미국 어부에 의해 구조됐다.  해상에서 구조된 쿠바 난민은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미국 내 쿠바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송환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곤살레스는 일단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 마이애미의 친척과 쿠바에 남은 생부 사이에 벌어진 양육권 쟁탈전에 당시 카스트로 의장까지 가세하면서 곤살레스의 거취는 미국과 쿠바 간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이듬해 4월 외교 문제 비화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연방요원을 투입해 곤살레스를 끌고 나와 생부와 만나게 한 뒤 부자를 쿠바로 돌려보내면서 6개월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난민 소년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친척에 안겨 총부리를 겨눈 연방요원을 보면서 울던 곤살레스의 얼굴은 미국과 쿠바의 오랜 반목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기록됐다.  쿠바에 돌아가 생부, 할머니 등과 재회한 곤살레스는 이후 공산당에 가입하고 장교 임관을 목표로 군사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살레스는 이날 인터뷰에서 “피델은 힘든 시기에 내 가족과 아버지의 친구였다”며 “내가 쿠바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피델 카스트로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유산인 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이제 쿠바인들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카스트로 애도’ 논란 트뤼도 총리, 비난 후폭풍에 “독재자 인정”

    ‘카스트로 애도’ 논란 트뤼도 총리, 비난 후폭풍에 “독재자 인정”

     쥐스탱 트뤼도(45) 캐나다 총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한 온정적 논평으로 비난여론이 폭발하자 27일(현지시간) 서둘러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공식 입장자료를 내고 “타계한 옛 국가지도자를 기리기 위한 의도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이어 카스트로의 부정적인 면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그는 분명 분열적 인물이었고 인권 문제에서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면서 “나는 (그런 사실에) 열린 마음이고 그것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달 초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국제회의 참석차 방문 중인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한 트뤼도 총리는 ‘카스트로가 독재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오자 “그렇다”라고 수긍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는 “카스트로가 쿠바 국민의 마음속에 깊고 지속적인 충격을 남겼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트뤼도 총리는 전날 카스트로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전설적인 지도자”라고 부르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또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을 위해 거의 반세기를 봉사한 전설적인 지도자”라며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의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 쿠바 국민에 대한 그의 크나큰 헌신과 사랑을 인정할 것이다”라고 애도했다.  이후 캐나다 안팎에서는 카스트로의 독재자 면모를 외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내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인 보수당 일부에서는 캐나다 정부 인사가 카스트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北, ‘카스트로 사망’ 28~30일 사흘간 애도기간…“조기 게양”

    北, ‘카스트로 사망’ 28~30일 사흘간 애도기간…“조기 게양”

    북한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망과 관련해 3일의 애도 기간을 결정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11월 28∼30일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 중요기관 청사와 지정 장소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난 27일 결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CIA 634회 암살 시도說… 권총소지, 공산혁명 연설 땐 어깨에 비둘기 앉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는 뒷이야기도 많이 남겼다. AFP가 ‘피델 카스트로 : 인생의 여섯 가지 스냅숏’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카스트로의 비화들을 전하는 등 외신들은 특이한 그의 에피소드를 26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26년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투사로 변신했다.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멕시코로 건너갔다. 망명 중이던 멕시코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를 만났다. 결국 그는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을 시작했다. 쿠바의 공산혁명은 냉전 시대 미국으로선 코앞에서 ‘붉은 위협’을 마주한 모양새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모두 634회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암살 방법도 독약이나 독극물이 든 담배에서부터 화학 물질이 묻은 다이빙복 입히기 시도까지 다양했다. 카스트로는 만약을 대비해 브라우닝 권총을 거의 항상 차고 다닌다고 한때 고백하기도 했다. 방탄조끼를 입는다는 설은 부인했다. 카스트로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1979년 기자들에게 가슴을 까 보이면서 “나는 힘이 센 ‘도덕의 방탄조끼’를 갖고 있다. 그것은 항상 나를 보호해 준다”고 말했다. 강인한 인상의 카스트로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를 직접 두 번 본 한 여성은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사랑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을 했고 3명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7명의 자식을 뒀다. 그가 비밀스러운 불륜을 했고 더 많은 자식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카스트로는 1992년 “사생활은 홍보나 정치를 위한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사생활 보호를 강조했다. 카스트로는 스스로 “미 제국주의”의 반대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면서 미국과 대립을 반복했다. 가장 극한 대립은 핵전쟁 위기까지 갔던 1962년에 있었다. 그해 10월 14일 미국은 정찰기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10월 22일 미 해군에 쿠바를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14만명의 병력을 준비했다. 그해 10월 26일 구소련은 미국과 협상을 했다. 극한의 대치까지 갔던 쿠바사태는 결국 구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고 미국이 쿠바 해상의 봉쇄를 풀면서 타결됐다. 카스트로의 아디다스 체육복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올해 9월 쿠바를 찾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자신의 집에서 면담할 때 파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날 때도 카스트로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예복’으로 착용했다. 카스트로는 최장 유엔 연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유엔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1960년 9월 26일 4시간 29분 연설해 유엔에서 가장 연설을 오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는 1998년 2월 24일 쿠바에서 국가평의회 의장직에 재선출된 후에 7시간 30분간 연설을 한 기록도 갖고 있다. 카스트로가 1959년 공산혁명을 선언하는 연설을 할 때 그의 어깨에는 하얀색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그 이후 그는 쿠바인들에게 신화적 인물이 됐다. 쿠바인들은 카스트로가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카스트로가 불멸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도 결국 인간이었고 지난 2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시대의 상징” vs “야만적 독재자”… 엇갈린 평가도 역사 속으로

    “시대의 상징” vs “야만적 독재자”… 엇갈린 평가도 역사 속으로

    애도기간 9일… 새달 4일 장례식 시진핑 “위대한 지도자 잃었다” 트럼프 “남긴 유산은 가난” 혹평 美이민 쿠바인들은 축제 분위기 ‘쿠바 공산주의 대부’ 피델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다음날인 26일(현지시간) 세계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AP는 수도 아바나의 식당이 모두 문을 닫고, 평소 크게 울리던 번화가 음악소리도 사라지는 등 쿠바 전역이 애도 분위기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기관지들은 검은색 잉크로만 지면을 제작해 그를 추모했다. 아바나대학 학생 수백명도 캠퍼스에서 쿠바 깃발을 흔들며 “피델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쿠바에서 불과 300여㎞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쿠바인 거주지역)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공산독재를 피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탈출한 쿠바인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서로 얼싸안으며 폭죽을 터뜨렸다. 쿠바계 버지니아 페레스 누네스는 USA투데이에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게 아니고 독재의 종말, 학살의 종말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은 그를 ‘독재자’로 비난했지만,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시대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야만적 독재자였던 그가 남긴 유산은 총살형과 절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난 그리고 기본권의 부정이었다”고 혹평했다.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이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성명을 통해 “역사는 그가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바계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공화당 상원의원은 “역사가 카스트로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바 정치범 부인들의 모임인 ‘레이디스 인 화이트’ 대표 베르타 솔레르도 라울 카스트로(85)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형 피델만큼이나 나쁘다며 “좋은 소식은 독재자가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것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그를 “전설적 지도자”로 평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독재자 면모를 무시했다’는 안팎의 비난에 시달렸다고 소개했다. 반면 쿠바의 최우방이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라울 의장에게 조전을 보내 “이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이름은 현대 세계사의 상징”이라고 애도했다. 소련 해체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카스트로는 20세기 식민지 체제를 파괴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인민은 쿠바 사회주의 창시자이자 쿠바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사회주의와 정의를 위한 반제 자주 위업 수행에 특출한 공헌을 한 정치활동가”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 대한 개인적 친밀함을 표하기 위해 교황청 명의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전보를 보내 유가족을 위로했다. 한편 쿠바 정부는 9일간의 애도 기간을 거쳐 다음달 4일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화장한 뒤 동남부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경제개혁 가속화… 美와 관계 정상화 지속엔 의문

    10년 전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 타계하면서 동생 라울 카스트로(85) 의장이 추진 중인 개혁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피델은 2006년 건강이 악화되자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 의장직을 넘겨주면서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 10년간 라울이 추진하는 개혁·개방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피델은 중국과 베트남식의 시장경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데 반대했으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지난 4월 쿠바공산당 7차 전당대회에서 주요 경제개혁 정책이 발표되는 것을 저지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런 연유로 라울은 형 피델의 타계 이후 진정한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쿠바의 은퇴한 교회사가 엔리케 로페스 올리바는 “(피델의 사망으로) 라울은 더 큰 자유를 느낄 것”이라며 “변화의 과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쿠바의 경제적 지원자였던 베네수엘라가 경제 붕괴 상태에 빠지면서 라울의 개혁 노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개방 정책의 핵심인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진 모양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카스트로 정권에 부여한 모든 양보를 차기 대통령이 철회할 수 있다”면서 “카스트로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양보를 거둬들일 것”이라며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재협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오바마는 자신의 업적 중 하나인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지속시키기 위해 남은 임기 두 달간 정상화 조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혁명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스포츠에 남긴 족적

    혁명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스포츠에 남긴 족적

     지난 25일 오후 10시 29분(이하 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쿠바 혁명의 아이콘´ 피델 카스트로가 스포츠 마니아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 8월 13일 아바나의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El Colegio de Belen´이란 학교를 다니면서 야구 팀의 투수로 활약했고 농구와 육상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1958년 체 게바라와 함께 풀젠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이듬해 최고지도자가 된 그는 스포츠를 쿠바 국민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1999년 볼티모어가 미국프로야구(MLB) 최초로 쿠바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를 때까지 미국과의 냉전 구도를 굳히는 데 이용했다. 혁명가과 독재자 이미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카스트로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아바나 공공 건물과 몇몇 외국 대사관에는 26일 조기가 게양됐지만 미국 대사관은 그렇지 않았다고 미국 ESPN은 전했다.    고인은 미국과 외교적, 군사적으로 적대할 때에도 야구 경기장이나 복싱 링, 우레탄 트랙에서 운동을 즐겼다. 스포츠에서 국가의 우월함을 고취하는 것이, 뉴욕시 인구보다 조금 많은 쿠바 인구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 강국 중 하나로 만드는 것이 권력 유지에 얼마나 많은 혜택으로 돌아올지 인식하고 있었다.  1906년부터 1968년까지 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던 쿠바는 1972년 뮌헨올림픽을 시작으로 1978년 몬트리올, 미국이 불참했던 1980년 모스크바에서 올림픽 강국의 입지를 다졌다. 복싱 헤비급의 테오필로 스테븐슨은 3연속 금메달을 땄고 육상 영웅 알베르토 후안토레나는 남자 400m와 800m를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카스트로는 1991년 쿠바가 팬암 대회를 개최했을 때 어느 선수보다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거의 모든 경기장에 나타나 모든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이듬해 쿠바 야구대표팀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쿠바 선수들이 대거 MLB로 옮기기 위해 망명 보트에 오르는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도 쿠바인들은 쿠바 야구를 망가뜨리는 데 카스트로의 역할이 있다고 믿고 있다.   조금 더 최근에는 야구가 미국과의 화해 기류를 조성하는 데 역할하기도 했다. 1999년 쿠바 망명객들이 많이 모여사는 플로리다에서의 극렬한 반대에도 볼티모어가 쿠바대표팀과 두 차례 대결, 아바나에서 열린 1차전을 이기고 볼티모어에서 열린 2차전을 졌다.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2008년 고인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외교관계 복원을 천명하고 지난 3월 22일 아바나의 에스타디오 라티노아메리카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 레이첼 로빈슨이 지켜보는 가운데 탬파베이가 쿠바 대표팀을 4-1로 눌렀다.    피델은 당시 참석하지 않았는데 친선경기 사흘 뒤 칼럼에다 “우리에게 뭐든지 주겠다는 제국은 필요없다”고 적었다. 혁명가의 고집스러운 말년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피델 카스트로, 향년 90세로 타계…“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 있다면 내가 금메달”

    피델 카스트로, 향년 90세로 타계…“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 있다면 내가 금메달”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 향년 90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 29분 세상을 떠났다고 26일 0시가 좀 지나서 국영 TV를 통해 발표했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6일 피델의 유골이 유언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최근 모습은 올해 9월 쿠바를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면담하는 장면이 쿠바 국영매체에 소개된 게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90세 생일이었던 지난 8월 13일에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나는 곧 아흔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며 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는 사실상의 고별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1959년 1월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공산 혁명에 성공한 뒤 반세기동안 쿠바를 이끌면서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체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1926년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인 1955년 특사로 석방된 그는 멕시코로 건너간 뒤 쿠바 정권을 공격할 조직을 건설하고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총리, 공산당 제1서기, 국가평의회 의장을 연이어 맡으며 쿠바를 이끌다가 건강 문제로 2006년 친동생 라울에게 정권을 넘겼다. 2008년엔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피델은 관계 단절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암살 위협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 쿠바가 냉전 시대의 오랜 단절을 끝내고 국교를 회복하는 역사의 전환기도 생전에 지켜봤다. 미국과 쿠바는 2014년 12월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3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3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쿠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0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29분 세상을 떠났다고 국영TV를 통해 발표했다. 1926년생인 피델은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에 성공했다. 1976년 그는 각료 회의 의장과 더불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한다. 또 쿠바군의 최고위 군사직인 ‘코만단테 엔 헤페’(최고 사령관)에 취임했다. 2006년 7월 장 출혈 수술을 받기 위해 친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방장관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한 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이 돌기도 하였으나, 10월 말 국영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이면서 사망설을 일축하였다. 2008년 2월에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권력을 라울 카스트로에게 넘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

    [속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텔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2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텔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2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타계했다고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90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야구] 스튜어트·필 떠나고… 니퍼트·소사 남는다

    [프로야구] 스튜어트·필 떠나고… 니퍼트·소사 남는다

    재계약에 실패한 ‘준척급’ 외국인 선수들의 타 구단 이동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O리그 10개 구단은 25일 내년 보류선수명단을 KBO에 제출했다. KBO는 명단을 검토한 뒤 오는 30일 공시할 예정이다. 관심을 모은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 여부가 드러났다. 전체 31명 중 절반인 17명이 재계약 통보를 받았다.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한 선수는 국내외 모든 구단과 입단 계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구단이 재계약 의사를 밝혔으나 계약이 불발된 선수는 향후 5년간 국내 다른 구단 입단이 불가능하다. 두산은 투수 니퍼트와 보우덴, 타자 에반스 등 3명을 모두 재계약 대상에 올렸다. LG도 투수 허프와 소사, 타자 히메네스와의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NC는 거포 테임즈와 에이스 해커를 재계약 대상에 포함시키고 스튜어트를 제외했다. 당초 NC는 러브콜이 잇따르는 테임즈와 부진했던 해커를 빼고 12승8패로 호투한 스튜어트를 잡을 것으로 점쳐졌다. 검증된 스튜어트가 나오면서 타 구단의 뜨거운 시선을 받을 전망이다. 헥터와 재계약 방침을 일찍 정한 KIA는 결국 준척급 투수와 타자인 지크, 필과 결별했다. 하지만 둘도 기량을 충분히 입증한 만큼 국내 구단의 입질이 예상된다. 이날 미국 현지에서는 빅리그에서 타율 .236에 28홈런을 친 로저 버나디나(32·네덜란드)가 KIA와 입단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롯데는 ‘원투펀치’ 린드블럼과 레일리를 보류선수명단에 넣었다. 둘은 동반 부진에 빠졌지만 이들을 능가하는 투수를 확보하기 쉽지 않아 일단 명단에 올렸다. kt는 투수 피어밴드와 주포 마르테를 보류선수에 올리고 투수 밴와트, 로위를 제외했다. 넥센은 밴헤켄, 타자 대니돈과 재계약할 방침이다. 대니돈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기대치를 웃돌아 잡기로 했다. 이날 넥센은 우완 션 오설리반과 총액 110만 달러(약 13억원)에 계약했다. SK는 투수 라라와 타자 고메즈를 포기했다. 최근 투수 켈리와 재계약하고 타자 대니 워스를 영입한 SK는 김광현 거취에 촉각을 모은 상황이다. 우완 장신(204㎝) 앤서니 레나도를 영입한 삼성은 나바로 복귀에 힘을 쏟고 있다. 한화는 투수 서캠프와 카스티요를 빼고 타자 로사리오만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로자리오도 테임즈처럼 미국행이 유력해 계약 성사는 어려워 보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윤여정, 박카스 할머니 역으로 아태영화상 심사위원 대상 수상

    윤여정, 박카스 할머니 역으로 아태영화상 심사위원 대상 수상

     배우 윤여정이 제10회 아시아태평양 스크린 어워즈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노인을 비롯한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재용 감독의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성매매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했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영화제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24일(현지 시간) 호주 브리즈번에서 진행된 시상식에 참석한 윤여정은 “이재용 감독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며 “배우 활동을 한 지 50년이 됐지만 감독이 없다면 배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감독들에게 감사하다”며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70여개국의 좋은 영화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호주 브리즈번시와 유네스코, 국제영화제작자협회가 꾸리는 시상식이다. 앞서 한국 배우로는 전도연, 김혜자, 윤정희 ,조민수, 이병헌 등이 남녀주연상 등을 받았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걷는 게 인생의 꿈” …체중 500kg 고도비만 멕시코男

    “걷는 게 인생의 꿈” …체중 500kg 고도비만 멕시코男

    극도의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 남자가 스스로 걷겠다는 꿈을 위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살고 있는 후안 페드로 프랑코(32)가 그 주인공. 프랑코는 15일(현지시간)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코는 초고도비만으로 아예 걷지를 못한다. 엄청난 체중 때문이다. 그는 지난 2년간 한 번도 몸무게를 재보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프랑코의 몸무게가 최소한 500kg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프랑코에게 초고도비만이 시작된 건 2001년 전후다. 프랑코는 6년째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생활하고 있다. 무기력하게 누워지내던 프랑코는 최근 "걸으면서 살자"고 작심하고 병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병원에 들어서며 프랑코는 "걷는 게 인생의 꿈"이라면서 "병원 치료를 받는다는 건 걷게 될 수 있다는 꿈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은 치료를 낙관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게다가 프랑코는 당뇨를 앓고 있으며 갑상선 기능 저하증도 겹친 데다 만성 폐쇄성 관상 동맥 질환까지 갖고 있다. 그를 살펴본 의사 호세 안토니오 카스타녜다는 "초고도비만에 만성 질환도 겹쳐 프랑코는 매우 민감한 사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당장은 프랑코의 정확한 몸무게를 파악하는 게 급하다. 현지 언론은 "500kg 이상을 잴 수 있는 저울을 보유하고 있는 과달라하라의 동물원에서 프랑코가 정확한 몸무게를 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멕시코에선 지난 5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남자로 기네스에 올랐던 마누엘 우리베가 사망했다. 기네스에 오른 2007년 597kg까지 체중이 불어났던 우리베는 살을 빼려 위절제 수술까지 받았지만 돌연 사망해 안타까움을 샀다. 사망 당시 우리베의 몸무게는 394kg였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10년 만에 정상 선다

    10년 만에 정상 선다

    내일 알아인과 결승 1차전 대표팀 6명 합류 후 훈련 박차 한국 프로축구 최강자 자리를 FC서울에 내준 전북이 아시아 챔피언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10년 만에 두 번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전북은 19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명문구단 알아인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을 치른다. 결승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만큼 전북은 홈에서 되도록 많은 점수 차로 승리를 챙겨야 오는 26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2차전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전북은 지난 6일 2016 K리그 최종전에서 서울에 0-1로 패하며 다 잡은 우승 기회를 날려버렸다. 사흘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전북 완주 클럽하우스에서 훈련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김신욱을 비롯해 6명이나 대표팀에 차출되는 바람에 그동안 훈련을 제대로 못한 게 걱정이다. 6명이 16일 합류해 단 이틀 동안 손발을 맞춘 뒤 경기에 나서야 한다. 최강희 감독으로선 이들 6명이 체력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뛰진 않은 데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컨디션 조절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김보경은 캐나다를 상대로 골도 넣었고, 김신욱은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서 결승골을 도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북은 10년 만에 두 번째 우승컵에 도전한다. 전북은 2006년 알카라마(시리아)를 1, 2차전 합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알사드(카타르)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가 출범한 2003년 이래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이티하드(2004·2005년)와 중국의 광저우 헝다(2013·2015년)뿐이다. 전북이 이번에 우승하면 명실상부 아시아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에 출전해 세계 최고 클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회도 생긴다. 전북을 상대하는 알아인은 아랍에미리트 프로리그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강팀이다. 알아인은 2003년 태국의 BEC 테로 사사나를 이기고 AFC 챔피언스리그 초대 챔피언이 됐고, 2년 뒤에는 알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에 패해 준우승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 오마르 압둘라흐만을 꼽을 수 있다. 브라질 출신 공격수 디안프레스 더글라스와 카이오 루카스 듀오도 경계해야 한다. 두 선수는 올 시즌 각각 35경기 25골과 11경기 6골을 기록했다. 한국 대표팀 출신 이명주도 알아인에서 뛰고 있다. 결승전인 만큼 신경전도 치열하다. 알아인은 최근 긴 이동 거리와 잔디 상태를 이유로 전주 대신 서울에서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AFC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또 중동의 부국답게 선수단과 응원단은 지난 16일 전세기를 동원해 직접 무안공항으로 입국했다. 이에 전북은 4만 2000석의 관중석을 팬들로 가득 채워 알아인의 기선을 제압한다는 복안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신비의 마야 피라미드…‘삼중 피라미드 구조’ 첫 확인

    신비의 마야 피라미드…‘삼중 피라미드 구조’ 첫 확인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가 여러 겹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는 마치 러시아의 목각인형 같다고 관련 학자들은 설명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유카탄주(州) 치첸이차 유적에 있는 높이 30m짜리 쿠쿨칸 피라미드는 삼중구조로 돼 있었다. 지금까지 이 피라미드 내부에는 높이 20m 피라미드가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새로운 연구에서 다시 그 내부에 높이 10m 새로운 피라미드가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관련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가장 작은 피라미드의 건설 시기는 550~800년으로 보이며, 1930년대 발견된 중간 크기의 피라미드는 800~1000년, 가장 큰 피라미드는 1050~1300년에 각각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발견은 ‘엘 카스티요’(El Castillo·스페인어로 ‘성’의 뜻)로 알려진 이 피라미드가 세 차례에 거쳐 건설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 연구의 책임자인 멕시코국립자치대의 지구물리학자 르네 차베스 세구로는 “피라미드의 구조는 러시아 목각인형과 같다”면서 “큰 것 아래에 다른 것이 있고 그 아래에 또 다른 것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인 멕시코 국립인류역사연구소(INAH)의 데니스 로레니아 아르고테는 “각 구조물이 중첩 상태에 있는 이유는 구조물의 손상과 지도자의 교체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은 피라미드 구조물의 손상 없이 내부에 빛을 조사해 관찰하는 비침습성 기술을 사용해 이뤄졌다. 이에 대해 아르고테 연구원은 “이번 발견으로 멕시코 중부에 들어온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 전인 초기 마야인들의 문명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사진=ⓒ Premium Collection / Fotolia(위), 아즈테카 노티시아스(azteca noticias)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공 빼앗기자 상대선수 바지 내린 축구선수

    공 빼앗기자 상대선수 바지 내린 축구선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공격수 에딘 제코(AS로마)가 상대 선수의 바지를 벗겨 퇴장을 당했다. 제코의 이같은 돌발행동은 지난 13일(현지시간) 그리스 페이라이오스 카라이스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 H조 4라운드 보스니아와 그리스의 경기에서 나왔다. 이날 보스니아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제코는 후반 34분 그리스 진영에서 상대 수비수 파파도폴로스와 경합을 벌이다 쓰러졌고, 시간을 벌려고 공을 손으로 잡아 주심에게 옐로카드를 받았다. 0대 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리스의 파파도폴로스는 공을 끌어안은 제코의 공을 빼앗았고, 제코는 파파도폴로스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더니 급기야 바지를 내려버렸다. 제코의 돌발행동에 파파도폴로스는 멍하니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고, 순식간에 양 팀 선수들은 몰려들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에 주심은 부심과 합의 끝에 제코에게 또 한 번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고, 결국 제코는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보스니아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인 파파도폴로스 역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그리스가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골을 넣으면서 1대 1 무승부로 끝났다. 사진·영상=La10.Pe/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m
  • ´29세에 무슨 감독을?´ 비아냥 딛고 호펜하임 리그 3위에 올린 나겔스만

    ´29세에 무슨 감독을?´ 비아냥 딛고 호펜하임 리그 3위에 올린 나겔스만

     그가 태어난 1987년 7월 23일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45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취임한 지 8개월쯤 됐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37세로 모나코 감독으로서 첫 달을 보내고 있었다. 루드 굴리트는 AC 밀란에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며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 600만파운드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거스 히딩크는 40세로 PSV 에인트호번 감독이었다. 또 카를로 안첼로티 바이에른 뮌헨 감독은 선수로 뛰며 4개의 이탈리안컵과 하나의 세계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난 2월 독일 프로축구 호펜하임의 사령탑에 부임한 율리안 나겔스만(29) 얘기다. 지난해 10월 그를 사령탑에 임명한다고 구단이 발표하자 현지 매체들은 “홍보를 노린 스턴트”라거나 “괴짜 아이디어”란 폄하를 쏟아냈다. 부임할 때는 서양 나이로 28세였으며 한 차례도 성인 팀을 지휘해본 경력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지난 9개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분데스리가에서 9회 연속 버텼고, 올 시즌 5승5무(승점 20)의 3위로 올려놓았고 유럽 5대리그에서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5개 클럽에 포함됐다. 영국 BBC는 14일(현지시간) 그가 이토록 짧은 기간 호펜하임을 바꿔놓을 수 있었던 비결을 집중 조명했다.    별명 ´아기 무리뉴´  이미 그에게는 ´아기 무리뉴´란 별명이 붙여졌다. 호펜하임과 독일 대표팀의 골키퍼였던 팀 바이스가 수비수 출신 나겔스만이 고질적인 발목 부상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별명을 붙여줬다. 조제 무리뉴 맨유 감독처럼 나겔스만도 톱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스무살 젊은 나이에 토마스 두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이 지휘하는 아우크스부르크 2군에서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그가 바이에른 뮌헨의 레이더에 들어온 것은 호펜하임 유스팀을 지휘해 2014년 19세 이하(U-19) 독일선수권을 제패하면서였다. 그리고 호펜하임에 몸 담은 지 6년 만에 사령탑에 올랐다. 나겔스만은 BBC 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에 임명됐을 때 나이가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며 ”내가 어느 기업에 취업했더라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얘깃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등권에서 3위로  그가 부임했을 때만 해도 20경기 가운데 2승만 올렸을 뿐이었다. 지역 신문들의 비아냥에 알렉산데르 로젠 구단 이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줄리안의 나이를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우리 구단에서 6년을 몸 담았고 우리는 그가 해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구단 선수들과 자연스러운 느낌을 공유한다. 에너지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재능으로 보우했다“고 말했다.    당초 그의 계약조건은 분데스리가에 잔류한다면 올 여름 지휘권을 넘겨받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 초반 1승3무6패로 부진하자 마르쿠스 기스돌 감독을 경질하고 후프 슈테벤스 감독을 선임했는데 그 뒤에도 1승5무4패로 부진하고 슈테벤스가 심장 불편을 호소하자 나겔스만이 지난 시즌의 말미 3개월을 지휘했다. 그렇게 남은 14경기에서 7승을 거둬 강등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팀보다 승점 1이 많아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전술 측면에서의 노하우와 사람을 잘 관리하는 능력 덕분에 우려는 찬양으로 바뀌었다. 라인 넥카르 차이퉁의 호펜하임 담당 기자인 조아킴 클라엔은 ”코치 경험은 조금 있었지만 감독 역할은 아니었다“며 ”부임하기 전 팀은 커다란 곤경에 처해 있었다. 겨울 휴식기 동안 하위권에 머물렀고 모두가 매치 플랜을 갖지 않으면 더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율리안의 지휘 아래 센세이셔널한 일들이 있었다. 이제 그는 이 지역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이었던 팀의 리빌딩 호펜하임이 9연속 시즌을 분데스리가에서 보내게 되자 나겔스만은 지난 여름 팀의 리빌딩에 착수했다. 로베르트 피르미노가 지난해 6월 리버풀로 떠나 대형 스타도 없었다. 대신 열심히 뛰는 선수들로 스쿼드를 꾸렸고, 구단은 젊은 유망주들을 불러모았다. 당시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셋이었다. 후보 골키퍼 알렉산데르 스톨츠(33)와 폴란드 미드필더 유겐 폴란스키(30), 감독보다 136일 먼저 태어난 스위스 미드필더 피르민 슈베글러였다. 로젠 이사는 ”1군 스쿼드에는 우리 유스아카데미 출신이 8명이었다. 과거 3년 동안 우리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젊은 스쿼드를 꾸렸다“    크로아티아 공격수 안드레이 크라마리치(25)를 레스터 시티 임대 신분에서 영구 이적으로 전환했고, 미드필더 루카스 러프(25)를 슈투트가르트에서, 케빈 보그트(25)를 쾰른에서, 바이에른 뮌헨 공격수 출신 산드로 와그너(28)를 다름슈타트에서 데려왔다. 대신 본인의 철학과 맞지 않은 선수들은 과감히 배제했다. 2년 연속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을 차지한 칠레 공격수 에두아르도 바르가스(27)가 벤치 신세를 질 정도였다.    호펜하임은 리그 24경기에서 두 경기만 빼고 모두 43골을 득점하는 공격적인 팀으로 변신했다. 심지어 세 차례나 챔피언스 트로피를 들어올린 안첼로티 감독이 지휘하는 바이에른 뮌헨보다 위에 위치하기도 했다. 로젠 이사는 2연패, 3연패라도 하면 이런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제 리그와 컵 경기를 26경기를 치렀을 뿐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늘 옆줄만 지킨다 훈련장에서 나겔스만은 늘 반대편 감독 자리에만 죽치고 있는다고 입방아에 올랐다. 바이에른 레버쿠젠의 로저 슈미트 감독은 지난달 호펜하임과 경기 도중 나겔스만을 향해 미치광이라고 욕설을 퍼부어 출전 정지와 벌금 징계를 받았다. ”난 옆줄에서 감정을 억누르려 한다. 나 역시 충동적인 사람이며 선수들에 관해 이러쿵저러쿵한다. 하지만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이라고 말했다. ”실수를 하거나 라커룸에서 시끄럽게 한다고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물론 때로는 경기를 분석하며 화도 나고 목소리도 커지지만 모든 것을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첼로티 감독은 ”이 일에서 그렇게 젊은 감독을 보는 일은 희귀하다. 그가 언젠가 세계 최고의 팀은 훈련시킬 날을 보고 싶다“고 했고, 두켈 감독은 ”아주 열심인 젊은 감독이다. 유스축구에서 예외적인 성공을 누렸다. 난 매우 그의 성과에 기쁘고 그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로젠 이사는 ”율리안은 29세, 난 37세, 둘이 합쳐야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보다 한살 어리다“고 말했다. 76세 구단주 디트마르 호프는 ”그가 너무 잘해 우리가 그를 따라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최고일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시간이 오래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6부리그에 속한 팀이었던 호펜하임은 소프트웨어 기업인 호프의 지원으로 차근차근 높은 무대로 뛰어올랐다. 구단은 성장 과정에서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선수 영입에 과한 출혈을 하지 않았고, 그 대신 검증된 지도자를 선임해 팀에 맞는 체질 개선을 유도했다. 젊은 축구지도자를 과감히 발탁한 구단주의 혜안과 결단력도 주목받고 있다. 나겔스만이 태어났을 때 인구 3300명에 불과했던 호펜하임을 연고지로 했던 구단은 이제 서포터 숫자만 3만 3000명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분데스리가 구단으로 성장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짙은 눈썹 놀림 받던 ‘왕따’ 17세 소녀, 패션모델 활약

    짙은 눈썹 놀림 받던 ‘왕따’ 17세 소녀, 패션모델 활약

    크고 짙은 눈썹 탓에 따돌림을 당해온 한 17세 소녀가 패션 모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어 화제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13일(현지시간) 최근 패션업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모델 나탈리아 카스텔라(17)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외모로 주변에서 따돌림을 받아왔다고 최근 패션 매거진 더블유(W)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최근 유명 모델 에이전시 넥스트 모델스와 계약을 체결한 그녀는 이제 자신을 모델로 활약할 수 있게 해준 자신의 크고 짙은 눈썹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더 어렸을 때 내 눈썹을 본 모든 사람이 지적했다”면서 “사람들은 내 눈썹이 길고 두껍다는 이유로 나를 심하게 따돌렸기에 난 내 눈썹을 밀어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난 내 눈썹이 유행에 맞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사랑하게 됐다”면서 “내 눈썹은 나를 다른 모델들과 차별화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현재 여성용 가방 브랜드 만수르 가브리엘과 메이크업 브랜드 나스의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내 눈썹은 내 트레이드마크이며 난 내 눈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대 네티즌들은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그녀의 눈썹을 두고 악플을 생성하고 있다고 한다. 한 악플러는 “그녀의 눈썹이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악플러는 “나 역시 숱 많은 눈썹을 갖고 있지만 난 그녀의 눈썹이 좋지 않다. 그 눈썹은 너무 짙다”고 말했다. 반면 팬들은 그녀의 눈썹이 그녀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 네티즌은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또 다른 네티즌은 “내 큰 눈썹에 자신감을 느끼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탈리아는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州)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모델 활동뿐만 아니라 예술과 운동 등 다양한 활동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모델 일과는 별개로 난 매우 평범한 10대 소녀다”면서 “난 영화를 몰아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즐기고 옷을 차려입거나 꾸미길 좋아하며 헤리 스타일스의 팬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넥스트 모델스와 가족이 돼 매우 흥분된다. 난 모델로써의 여정과 일을 기다릴 수 없다”면서 “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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