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카스트로
    2026-03-24
    검색기록 지우기
  • 세종연구소
    2026-03-24
    검색기록 지우기
  • 성동구청장
    2026-03-24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 침체
    2026-03-24
    검색기록 지우기
  • 민주연구원
    2026-03-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59
  • [포토] 마지막 경례

    [포토] 마지막 경례

    군용 지프 차량 트레일러에 실린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화장된 유해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시민들의 배웅 속에 마탄사스를 지나고 있는 가운데 한 남자(가운데)가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수도 아바나를 출발한 유해는 전국 순회를 거쳐 3일 제2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하며 다음날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유엔 회원국 지위·외교활동까지 ‘흔들’

    北, 유엔 회원국 지위·외교활동까지 ‘흔들’

    北대사관 인력·은행 계좌도 제한… ‘외화벌이’ 외교 통로 위축 불가피 30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 232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북한은 석탄 수출 등 교역 외에 외교 활동에도 극심한 타격을 받게 됐다. 결의에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에 대한 경고와 함께 북한 외교관의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조치가 담기면서 북한은 다자·양자 외교 전반에서 활동 반경의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결의 2321호에는 대북 제재 결의 중 처음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 시 유엔 회원국 권리·특권의 정지가 가능하다는 경고가 담겼다. 이 조항에 따라 유엔이 실제로 북한의 추가 도발 직후에 회원국 자격 정지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경고만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상이 낮아지고 각종 외교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게 정부의 판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일 “회원국 권리 정지 경고는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결의에는 우리 정부가 지난 3월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꾸준히 펼쳐 온 ‘대북 압박 외교’의 기조가 각종 제재 조치로 구체화됐다. 결의는 유엔 회원국들이 각국 내 북한 대사관의 인력을 감축하도록 촉구하면서 공관의 은행 계좌도 1개로 제한토록 했다. 그간 북한 대사관이 기본적인 외교 활동과 체제 선전 외에 사실상 ‘외화벌이 전초기지’ 역할을 해 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의 양자 외교가 약화되면 외화벌이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 내 상대국 대사관에는 고작 3명이 근무하는데 북한은 상대국에 열댓명씩 주재원을 두기도 한다”면서 “외교관의 신분이지만 사실은 상당수가 밀무역 종사자”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결의에는 박춘일 주이집트 대사, 김석철 전 주미얀마 대사 등 대사급 인물들이 처음으로 제재 명단에 추가됐다. 주재국의 아그레망(임명 동의)을 받을 수 있는 대사급 인물이 많지 않은 북한 입장에서는 앞으로 ‘외교관 인력난’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실제 이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신임 주독일 북한 대사는 7개월 만에 아그레망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서거에 조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 심화된 이후 쿠바와 아프리카 국가 등을 대상으로 외교적 활로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포토] 피델 카스트로 유해, 쿠바 전국 순회 시작

    [포토] 피델 카스트로 유해, 쿠바 전국 순회 시작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화장된 유해가 30일부터 나흘간 전국을 순회를 위해 수도 아바나를 출발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카스트로 추모하는 베이징 시민

    [포토] 카스트로 추모하는 베이징 시민

    중국의 수도 베이징 주재 쿠바 대사관 앞에서 한 시민이 지난 25일 서거한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애도하며 꽃다발을 놓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카스트로를 추모하는 아바나 시민들

    [포토] 카스트로를 추모하는 아바나 시민들

    지난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기리기 위해 28일 시민들이 수도 아바나 도심에 모여 그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2016-11-28. AP
  • [포토] ‘편히 쉬세요’ 카스트로 추모하는 쿠바 여성

    [포토] ‘편히 쉬세요’ 카스트로 추모하는 쿠바 여성

    28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추모식에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카스트로의 유해는 오는 30일부터 쿠바 전역을 순회한 후 다음달 4일 산티아고 데 쿠바에 안장될 예정이다.A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카스트로 추모하는 쿠바 대학생들

    [포토] 카스트로 추모하는 쿠바 대학생들

    28일 쿠바 아바나에서 지난 25일 별세한 고 피델 카스트로를 추모하며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카스트로, 49년간 8190명 죽였다” …쿠바 인권단체 발표

    “카스트로, 49년간 8190명 죽였다” …쿠바 인권단체 발표

    최근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 후 최소한 8000명 이상을 죽였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쿠바의 인권범죄를 기록해온 민간단체 '쿠바 문서'는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카스트로의 만행을 고발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1959년 정권을 잡은 카스트로 49년간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5775명을 사형했다. 1234명은 재판조차 받지 않은 채 살해됐다. 나머지 984명은 교도소 등 수용시설에서 살해된 경우였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200명을 헤아린다. '쿠바 문서'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집권 초기부터 공포정치를 폈다. 재판은 인민재판처럼 순식간에 사형이 결정됐고, 사형은 집단으로 집행됐다. 처형된 주민의 시신은 동네를 돌고, 그런 시신을 보면서 주민들은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고하게 죽어간 주민들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쿠바 문서'는 농민, 부녀자 등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며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심지어 임신한 여인까지 처형하곤 했다"고 폭로했다. 카스트로 정권은 처형된 주민에 대한 통계를 공개한 적이 없다. '쿠바 문서'는 유족 인터뷰 등을 통해 카스트로 정권에서 살해된 주민의 수를 집계했다. '쿠바 문서'는 "칠레의 철권 통치자 피노체트보다 더 많은 국민을 죽인 게 카스트로였다"며 "실제로는 더 많은 주민이 학살을 당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쿠바에서 탈츨을 시도하다가 사망한 주민은 2만 명을 헤아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 문서'는 "그간 대다수 국가가 카스트로의 만행에 침묵했다"며 "이제라도 그의 잔악함을 세계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피델 카스트로 여동생 “오빠 장례식 참석 안 해”

    피델 카스트로 여동생 “오빠 장례식 참석 안 해”

    지난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쿠바 사회주의 아버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여동생 화니타 카스트로(83)가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오빠의 장례식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1964년 미국으로 망명해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살고 있는 화니타는 26일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장례식을 위해 쿠바에 간다는 소문이 도는데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긴 하지만 절대로 쿠바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델의 일곱 형제 가운데 쿠바 혁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유일한 인물인 화니타는 오빠인 카스트로 전 의장의 공산주의 이념을 거부하고 반공 운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쿠바 정부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특히 그는 2009년 회고록 ‘내 오빠 피델과 라울, 그 은밀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에서 중앙정보국(CIA)를 돕는 스파이활동을 한 사실을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로지 공산주의자에 맞서기 위한 첩보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을 떠나보냈다. 이것은 남동생 라몬과 여동생 안젤리타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슬프다”고 덧붙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쿠바 ‘해빙모드’ 먹구름?

    피델 카스트로를 잃은 쿠바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새로 맞이하는 미국 사이의 ‘해빙 모드’가 예측불허다.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에 반감을 보이는 까닭에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판단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카스트로가 지난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하면서 오랜 대립을 벗어나 반세기 만에 국교를 정상화한 미국과 쿠바 관계의 앞날이 양국 국민 사이에서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관심거리가 됐다.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된 라인스 프리버스는 2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쿠바가 사상·종교의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를 수용하지 않으면 적어도 트럼프 정부가 나서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주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프리버스는 “쿠바 정부 내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지금처럼) 일방적인 거래를 가지고 갈 순 없다”며 쿠바 내 변화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대선 유세에서 쿠바가 민주주의 가치 수호와 정치범 석방 등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유화정책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12월 쿠바와 관계 복원을 선언하면서 해빙 분위기의 물꼬를 텄다.지난해 7월엔 1961년 외교단절 이후 54년 만에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열었다.미국과 쿠바를 오가는 상업용 정기 항공편 운항도 반세기 만에 재개됐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후에도 쿠바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카스트로의 타계 이후 내놓은 성명에서 전 세계가 “야만적인 독재자”의 죽음을 목격했다며 “피델 카스트로의 유산은 총살형과 절도,상상할 수 없는 고통,가난,기본적인 인권의 부정이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는 아직 쿠바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인수위에 쿠바 정권에 비판적인 모리시오 클래버캐런 ‘쿠바 민주주의 정치활동위원회’ 위원장이 들어가면서 앞으로 미국의 쿠바 정책이 강경해질 것을 예고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다져놓은 양국의 긴장완화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AP통신은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로 “미국과 쿠바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심리적인 장벽이 걷혔지만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정권이 넘어가기에 앞서 (양국 관계의) 불확실성이 추가됐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1990년대에 트럼프가 당시 불법이던 쿠바에서의 사업 기회를 일축했던 일화를 전하면서 “미국과 쿠바의 데탕트(긴장완화)가 트럼프 정권 아래에선 불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카스트로는 아버지 같은 존재”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카스트로는 아버지 같은 존재”

     16년전 미국과 쿠바간 난민 송환 논란을 일으키며 양국 ‘반목’의 상징이 됐던 ‘난민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22)가 지난 25일(현지시간)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성인이 된 곤살레스는 27일 쿠바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에게 아버지였다.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가 날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는 “무언가를 새로 배우면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번은 피델이 공공행사에서 날 친구로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는 데 정말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곤살레스는 5살 때인 1999년 11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보트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 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 어머니와 일행이 모두 익사하고 홀로 표류하다 미국 어부에 의해 구조됐다.  해상에서 구조된 쿠바 난민은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미국 내 쿠바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송환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곤살레스는 일단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 마이애미의 친척과 쿠바에 남은 생부 사이에 벌어진 양육권 쟁탈전에 당시 카스트로 의장까지 가세하면서 곤살레스의 거취는 미국과 쿠바 간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결국 이듬해 4월 외교 문제 비화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연방요원을 투입해 곤살레스를 끌고 나와 생부와 만나게 한 뒤 부자를 쿠바로 돌려보내면서 6개월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난민 소년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친척에 안겨 총부리를 겨눈 연방요원을 보면서 울던 곤살레스의 얼굴은 미국과 쿠바의 오랜 반목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기록됐다.  쿠바에 돌아가 생부, 할머니 등과 재회한 곤살레스는 이후 공산당에 가입하고 장교 임관을 목표로 군사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살레스는 이날 인터뷰에서 “피델은 힘든 시기에 내 가족과 아버지의 친구였다”며 “내가 쿠바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피델 카스트로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유산인 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이제 쿠바인들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카스트로 애도’ 논란 트뤼도 총리, 비난 후폭풍에 “독재자 인정”

    ‘카스트로 애도’ 논란 트뤼도 총리, 비난 후폭풍에 “독재자 인정”

     쥐스탱 트뤼도(45) 캐나다 총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한 온정적 논평으로 비난여론이 폭발하자 27일(현지시간) 서둘러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공식 입장자료를 내고 “타계한 옛 국가지도자를 기리기 위한 의도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이어 카스트로의 부정적인 면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그는 분명 분열적 인물이었고 인권 문제에서 큰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면서 “나는 (그런 사실에) 열린 마음이고 그것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달 초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국제회의 참석차 방문 중인 마다가스카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한 트뤼도 총리는 ‘카스트로가 독재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오자 “그렇다”라고 수긍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뤼도 총리는 “카스트로가 쿠바 국민의 마음속에 깊고 지속적인 충격을 남겼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트뤼도 총리는 전날 카스트로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전설적인 지도자”라고 부르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또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을 위해 거의 반세기를 봉사한 전설적인 지도자”라며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의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 쿠바 국민에 대한 그의 크나큰 헌신과 사랑을 인정할 것이다”라고 애도했다.  이후 캐나다 안팎에서는 카스트로의 독재자 면모를 외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내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인 보수당 일부에서는 캐나다 정부 인사가 카스트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北, ‘카스트로 사망’ 28~30일 사흘간 애도기간…“조기 게양”

    北, ‘카스트로 사망’ 28~30일 사흘간 애도기간…“조기 게양”

    북한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망과 관련해 3일의 애도 기간을 결정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11월 28∼30일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 중요기관 청사와 지정 장소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난 27일 결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CIA 634회 암살 시도說… 권총소지, 공산혁명 연설 땐 어깨에 비둘기 앉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는 뒷이야기도 많이 남겼다. AFP가 ‘피델 카스트로 : 인생의 여섯 가지 스냅숏’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카스트로의 비화들을 전하는 등 외신들은 특이한 그의 에피소드를 26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26년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투사로 변신했다.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멕시코로 건너갔다. 망명 중이던 멕시코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를 만났다. 결국 그는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을 시작했다. 쿠바의 공산혁명은 냉전 시대 미국으로선 코앞에서 ‘붉은 위협’을 마주한 모양새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모두 634회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암살 방법도 독약이나 독극물이 든 담배에서부터 화학 물질이 묻은 다이빙복 입히기 시도까지 다양했다. 카스트로는 만약을 대비해 브라우닝 권총을 거의 항상 차고 다닌다고 한때 고백하기도 했다. 방탄조끼를 입는다는 설은 부인했다. 카스트로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1979년 기자들에게 가슴을 까 보이면서 “나는 힘이 센 ‘도덕의 방탄조끼’를 갖고 있다. 그것은 항상 나를 보호해 준다”고 말했다. 강인한 인상의 카스트로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를 직접 두 번 본 한 여성은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사랑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을 했고 3명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7명의 자식을 뒀다. 그가 비밀스러운 불륜을 했고 더 많은 자식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카스트로는 1992년 “사생활은 홍보나 정치를 위한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사생활 보호를 강조했다. 카스트로는 스스로 “미 제국주의”의 반대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친미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면서 미국과 대립을 반복했다. 가장 극한 대립은 핵전쟁 위기까지 갔던 1962년에 있었다. 그해 10월 14일 미국은 정찰기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10월 22일 미 해군에 쿠바를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14만명의 병력을 준비했다. 그해 10월 26일 구소련은 미국과 협상을 했다. 극한의 대치까지 갔던 쿠바사태는 결국 구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철거하고 미국이 쿠바 해상의 봉쇄를 풀면서 타결됐다. 카스트로의 아디다스 체육복 사랑도 남다르다. 그는 올해 9월 쿠바를 찾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자신의 집에서 면담할 때 파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날 때도 카스트로는 아디다스 체육복을 ‘예복’으로 착용했다. 카스트로는 최장 유엔 연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유엔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1960년 9월 26일 4시간 29분 연설해 유엔에서 가장 연설을 오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는 1998년 2월 24일 쿠바에서 국가평의회 의장직에 재선출된 후에 7시간 30분간 연설을 한 기록도 갖고 있다. 카스트로가 1959년 공산혁명을 선언하는 연설을 할 때 그의 어깨에는 하얀색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그 이후 그는 쿠바인들에게 신화적 인물이 됐다. 쿠바인들은 카스트로가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카스트로가 불멸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도 결국 인간이었고 지난 2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경제개혁 가속화… 美와 관계 정상화 지속엔 의문

    10년 전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 타계하면서 동생 라울 카스트로(85) 의장이 추진 중인 개혁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피델은 2006년 건강이 악화되자 동생 라울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 의장직을 넘겨주면서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 10년간 라울이 추진하는 개혁·개방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피델은 중국과 베트남식의 시장경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데 반대했으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지난 4월 쿠바공산당 7차 전당대회에서 주요 경제개혁 정책이 발표되는 것을 저지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런 연유로 라울은 형 피델의 타계 이후 진정한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쿠바의 은퇴한 교회사가 엔리케 로페스 올리바는 “(피델의 사망으로) 라울은 더 큰 자유를 느낄 것”이라며 “변화의 과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쿠바의 경제적 지원자였던 베네수엘라가 경제 붕괴 상태에 빠지면서 라울의 개혁 노선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개방 정책의 핵심인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진 모양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카스트로 정권에 부여한 모든 양보를 차기 대통령이 철회할 수 있다”면서 “카스트로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양보를 거둬들일 것”이라며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재협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오바마는 자신의 업적 중 하나인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지속시키기 위해 남은 임기 두 달간 정상화 조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시대의 상징” vs “야만적 독재자”… 엇갈린 평가도 역사 속으로

    “시대의 상징” vs “야만적 독재자”… 엇갈린 평가도 역사 속으로

    애도기간 9일… 새달 4일 장례식 시진핑 “위대한 지도자 잃었다” 트럼프 “남긴 유산은 가난” 혹평 美이민 쿠바인들은 축제 분위기 ‘쿠바 공산주의 대부’ 피델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다음날인 26일(현지시간) 세계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AP는 수도 아바나의 식당이 모두 문을 닫고, 평소 크게 울리던 번화가 음악소리도 사라지는 등 쿠바 전역이 애도 분위기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기관지들은 검은색 잉크로만 지면을 제작해 그를 추모했다. 아바나대학 학생 수백명도 캠퍼스에서 쿠바 깃발을 흔들며 “피델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쿠바에서 불과 300여㎞ 떨어진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쿠바인 거주지역)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공산독재를 피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탈출한 쿠바인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서로 얼싸안으며 폭죽을 터뜨렸다. 쿠바계 버지니아 페레스 누네스는 USA투데이에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게 아니고 독재의 종말, 학살의 종말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은 그를 ‘독재자’로 비난했지만,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시대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야만적 독재자였던 그가 남긴 유산은 총살형과 절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난 그리고 기본권의 부정이었다”고 혹평했다.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이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성명을 통해 “역사는 그가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바계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공화당 상원의원은 “역사가 카스트로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바 정치범 부인들의 모임인 ‘레이디스 인 화이트’ 대표 베르타 솔레르도 라울 카스트로(85)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형 피델만큼이나 나쁘다며 “좋은 소식은 독재자가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것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그를 “전설적 지도자”로 평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독재자 면모를 무시했다’는 안팎의 비난에 시달렸다고 소개했다. 반면 쿠바의 최우방이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라울 의장에게 조전을 보내 “이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이름은 현대 세계사의 상징”이라고 애도했다. 소련 해체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도 “카스트로는 20세기 식민지 체제를 파괴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인민은 쿠바 사회주의 창시자이자 쿠바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사회주의와 정의를 위한 반제 자주 위업 수행에 특출한 공헌을 한 정치활동가”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 대한 개인적 친밀함을 표하기 위해 교황청 명의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전보를 보내 유가족을 위로했다. 한편 쿠바 정부는 9일간의 애도 기간을 거쳐 다음달 4일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화장한 뒤 동남부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혁명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스포츠에 남긴 족적

    혁명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스포츠에 남긴 족적

     지난 25일 오후 10시 29분(이하 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쿠바 혁명의 아이콘´ 피델 카스트로가 스포츠 마니아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 8월 13일 아바나의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El Colegio de Belen´이란 학교를 다니면서 야구 팀의 투수로 활약했고 농구와 육상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1958년 체 게바라와 함께 풀젠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이듬해 최고지도자가 된 그는 스포츠를 쿠바 국민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1999년 볼티모어가 미국프로야구(MLB) 최초로 쿠바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를 때까지 미국과의 냉전 구도를 굳히는 데 이용했다. 혁명가과 독재자 이미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카스트로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아바나 공공 건물과 몇몇 외국 대사관에는 26일 조기가 게양됐지만 미국 대사관은 그렇지 않았다고 미국 ESPN은 전했다.    고인은 미국과 외교적, 군사적으로 적대할 때에도 야구 경기장이나 복싱 링, 우레탄 트랙에서 운동을 즐겼다. 스포츠에서 국가의 우월함을 고취하는 것이, 뉴욕시 인구보다 조금 많은 쿠바 인구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 강국 중 하나로 만드는 것이 권력 유지에 얼마나 많은 혜택으로 돌아올지 인식하고 있었다.  1906년부터 1968년까지 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던 쿠바는 1972년 뮌헨올림픽을 시작으로 1978년 몬트리올, 미국이 불참했던 1980년 모스크바에서 올림픽 강국의 입지를 다졌다. 복싱 헤비급의 테오필로 스테븐슨은 3연속 금메달을 땄고 육상 영웅 알베르토 후안토레나는 남자 400m와 800m를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카스트로는 1991년 쿠바가 팬암 대회를 개최했을 때 어느 선수보다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거의 모든 경기장에 나타나 모든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이듬해 쿠바 야구대표팀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해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쿠바 선수들이 대거 MLB로 옮기기 위해 망명 보트에 오르는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도 쿠바인들은 쿠바 야구를 망가뜨리는 데 카스트로의 역할이 있다고 믿고 있다.   조금 더 최근에는 야구가 미국과의 화해 기류를 조성하는 데 역할하기도 했다. 1999년 쿠바 망명객들이 많이 모여사는 플로리다에서의 극렬한 반대에도 볼티모어가 쿠바대표팀과 두 차례 대결, 아바나에서 열린 1차전을 이기고 볼티모어에서 열린 2차전을 졌다. 2014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2008년 고인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외교관계 복원을 천명하고 지난 3월 22일 아바나의 에스타디오 라티노아메리카노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 레이첼 로빈슨이 지켜보는 가운데 탬파베이가 쿠바 대표팀을 4-1로 눌렀다.    피델은 당시 참석하지 않았는데 친선경기 사흘 뒤 칼럼에다 “우리에게 뭐든지 주겠다는 제국은 필요없다”고 적었다. 혁명가의 고집스러운 말년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피델 카스트로, 향년 90세로 타계…“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 있다면 내가 금메달”

    피델 카스트로, 향년 90세로 타계…“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 있다면 내가 금메달”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 향년 90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 29분 세상을 떠났다고 26일 0시가 좀 지나서 국영 TV를 통해 발표했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6일 피델의 유골이 유언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최근 모습은 올해 9월 쿠바를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면담하는 장면이 쿠바 국영매체에 소개된 게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90세 생일이었던 지난 8월 13일에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나는 곧 아흔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며 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는 사실상의 고별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1959년 1월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공산 혁명에 성공한 뒤 반세기동안 쿠바를 이끌면서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체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1926년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인 1955년 특사로 석방된 그는 멕시코로 건너간 뒤 쿠바 정권을 공격할 조직을 건설하고 1959년 1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총리, 공산당 제1서기, 국가평의회 의장을 연이어 맡으며 쿠바를 이끌다가 건강 문제로 2006년 친동생 라울에게 정권을 넘겼다. 2008년엔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피델은 관계 단절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암살 위협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미국과 쿠바가 냉전 시대의 오랜 단절을 끝내고 국교를 회복하는 역사의 전환기도 생전에 지켜봤다. 미국과 쿠바는 2014년 12월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3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3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쿠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0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29분 세상을 떠났다고 국영TV를 통해 발표했다. 1926년생인 피델은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에 성공했다. 1976년 그는 각료 회의 의장과 더불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한다. 또 쿠바군의 최고위 군사직인 ‘코만단테 엔 헤페’(최고 사령관)에 취임했다. 2006년 7월 장 출혈 수술을 받기 위해 친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방장관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한 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이 돌기도 하였으나, 10월 말 국영 텔레비전에 모습을 보이면서 사망설을 일축하였다. 2008년 2월에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권력을 라울 카스트로에게 넘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텔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2보)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텔 카스트로 타계…향년 90세(2보)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타계했다고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90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