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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집중과 허송세월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집중과 허송세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을 쓰기 위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4주간 집중했다고 영국 신문 가디언에 발표한 적이 있다. 점심 1시간과 저녁 2시간을 제외하고는 전화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아무도 집에 오지 못하게 집중했다는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보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더 강력하게 회자되던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하루에 3~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글을 쓴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서 자기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다른 일은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이나 2년간 집중해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작가들은 적지 않다. 아마 그 대표자로 프랑스 문학의 거장인 오노레 드 발자크를 들어도 무방할 것이다.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을 읽다 보면 기이하다 못해 다소 괴기스럽기조차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집에 틀어박혀 수도사들이 입는 긴 옷을 입고 하루에 50잔가량의 커피를 마시며 15시간씩 글을 쓰다가 빚쟁이가 들이닥치면 그대로 도망치곤 하면서 20년 동안 97권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로서는 특이하게 소설 ‘강화도’를 발표해 최근 제10회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한 송호근 서울대 교수도 대통령 탄핵 표결 직후 농가에 칩거해 가슴속에 답답한 것을 응어리로 남겨 놓는 대신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하루에 10시간씩 집중해 두 달 만에 장편소설의 초고를 탈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집중력에 대해 하루키는 훈련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맞는 것 같으나 문제는 집중력을 획득,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더 중요치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지럽지 않았다면 송 교수는 사회과학 논문이나 쓰지 결코 소설 쓰기에 집중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801년부터 6년간 기장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심노숭은 아내가 병사하자 너무도 슬퍼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밤낮으로 시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슬픔 때문에 잠은 들지 못했지만, 시문 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씩 잠이 많아지고 슬픔은 적어져 어느덧 슬픔을 잊은 채 잠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2년여 동안 쓴 작품이 시 26편, 문 23편이었다. 심노숭에게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불면증이 집중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아마도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추사 김정희의 말만큼이나 집중력을 잘 드러낸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희가 이렇게 집중해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제주도 유배 덕분이었다. 제주도 유배가 계기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듯 집중할 수도 없었고 추사체도 완성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무시해도 될 일이 무엇인지를 판별할 줄 안다는 말이다. 이는 곧 중요하지 않은 일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으로 인생은 짧고 세상사는 혼란스럽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개인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촛불 민심을 계기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그 계기를 명심해 지엽적인 것에 휘둘리거나 우왕좌왕하지 말고 본질적인 민생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이든 정부든 계기가 주어졌음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다면 그것은 분명 또 다른 죄악이다.
  • 하루키는 아니어도…일본계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흥분한 日

    하루키는 아니어도…일본계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흥분한 日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이 흥분하는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를 통해 이시구로 작가와 일본과의 인연 등을 강조했다.NHK와 교도통신은 이날 이시구로 작가의 수상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작가와 일본의 인연, 과거 인터뷰, 시민들의 반응 등을 전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 작가는 5살 되던 해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이직하면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일본계이긴 하지만 그는 현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NHK는 이날 수상 직후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의 출생지인 나가사키를 포함해 거리 시민들의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서점의 분위기를 소개하며 수상 발표가 나오자마자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 신바시역에서 인터뷰한 한 남성은 “일본인으로서 자랑”이라며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읽고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의 한 시민은 “나가사키 출신이 노벨문학상을 타서 자랑스럽다”며 “두근두근하다”고 기뻐했다. NHK는 도쿄 신주쿠 한 서점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이 서점이 수상 발표 직후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을 모은 코너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해당 서점은 당초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되던 무라카미 하루키 코너를 마련했지만, 수상자 발표 이후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을 급히 모아 전시하고 있다. NHK는 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 장면을 편집해 방송하기도 했다. 이시구로 작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일본에 와서) 거리를 걷고 식사를 하니 어릴 적 일본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일본과의 인연을 말했다. 교도통신은 “사전 예상에서는 상위에 오르지 않았던 나가사키 출신 영국인 소설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보도하며 “당연히 수상해야 할 작가인데, 좀처럼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었다”는 출판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예상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였다”며 “수상자의 이름을 듣고 재고를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신속하게 호외를 만들어 거리에서 배포했다. 아사히는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 중 ‘창백한 언덕 풍경(1982년)’과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년)이 일본을 무대로 하고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그가 일본어는 못하지만 일본 영화를 좋아해 일본 영화 감독 오즈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이시구로 작가의 수상 소식과 관련해 “일본에도 많은 팬이 있다. 함께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응구기·하루키·애트우드 3파전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응구기·하루키·애트우드 3파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5일 오후 8시 발표된다. 지난해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상 메달을 걸어준 스웨덴 한림원이 또다시 파격을 이어갈지, 순문학 분야의 명망 있는 작가에게 상을 주는 전통으로 돌아갈지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스웨덴 한림원이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럽 현지에서는 응구기와 티옹오(케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등 3명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응구기는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지난해 토지문화재단으로부터 제6회 박경리문학상을 받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응구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986년 윌레 소잉카(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흑인 작가로는 두 번째 수상자가 된다.하루키는 2006년 카프카상, 2009년 예루살렘상을 받으며 최근 10여 년 동안 유력 후보로 꾸준히 언급됐다. 사회적 발언을 부쩍 늘리고, 올해 2월 발표한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대학살과 동일본대지진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것도 노벨상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꼽히는 애트우드는 ‘눈 먼 암살자’로 2000년 부커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카프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설·평론·동화 등 장르를 오가며 페미니즘·환경·인권·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쓴다는 평가다. 영국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응구기의 배당률을 4대1, 하루키와 애트우드를 각각 5대1과 6대1로 잡으며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 3명으로 꼽았다. 한국의 고은 시인과 중국 작가 옌롄커가 이들의 뒤를 이어 나란히 4위를 달리고 있다. 배당률은 각각 8대1이다. 고은 시인은 당초 10위였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확정된 지난 2일 순위가 올랐다.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이탈리아), 하비에르 마리아스(스페인)가 각각 배당률 10대1로 뒤를 이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한림원 ‘보수적 선택’ 전망 우세

    노벨문학상 오늘 발표…한림원 ‘보수적 선택’ 전망 우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8시 발표된다.지난해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에게 노벨상 메달을 걸어준 스웨덴 한림원이 파격을 이어갈지, 순문학 분야의 명망 있는 작가에게 상을 주는 전통으로 돌아갈지가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스웨덴 한림원이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유럽 현지에서는 응구기 와 티옹오(케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등 3명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응구기는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 등 여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지난해 토지문화재단으로부터 제6회 박경리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응구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986년 윌레 소잉카(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흑인 작가로는 두 번째 수상자가 된다. 하루키는 2006년 카프카상, 2009년 예루살렘상을 받으며 최근 10여 년 동안 유력 후보로 꾸준히 언급됐다. 사회적 발언을 부쩍 늘리고, 올해 2월 발표한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대학살과 동일본대지진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것도 노벨상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꼽히는 애트우드는 ‘눈 먼 암살자’로 2000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카프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설·평론·동화 등 장르를 오가며 페미니즘·환경·인권·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쓴다는 평가다. 영국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응구기의 배당률을 4대1, 하루키와 애트우드를 각각 5대1과 6대1로 잡으며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 3명으로 꼽았다. 한국의 고은 시인과 중국 작가 옌롄커가 이들의 뒤를 이어 나란히 4위를 달리고 있다. 배당률은 각각 8대1이다. 고은 시인은 당초 10위였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일이 확정된 지난 2일 순위가 올랐다.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이탈리아), 하비에르 마리아스(스페인)가 각각 배당률 10대1로 뒤를 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발표 이틀 앞둔 노벨문학상....올해는 ‘파격’ 대신 ‘안정’ 택할까

    발표 이틀 앞둔 노벨문학상....올해는 ‘파격’ 대신 ‘안정’ 택할까

    지난해 노벨문학상은 ‘반전’과 ‘파격’이었다. 당시 “밥 딜런”을 호명한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두고두고 뒷말을 남겼다. 때문에 올해는 노벨상위원회가 세계 문단에서 대체로 공감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는 5일(현지시간 오후 1시, 한국시간 오후 8시)로 예정됐다. 문학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점차 소멸되는 시대, 잠시라도 문학으로 눈길을 돌려세울 올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노벨문학상 후보군은 물론 수상자는 발표 직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다. 하지만 매년 입길에 오르내리는 유력 후보는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1년 내내 전문가 그룹을 두고 수상 가능성 높은 후보를 가늠하는 영국 베팅사이트 래드브록스는 올해도 작가들을 줄세웠다. 3일 현재 가장 배당률(4대1)이 높은 후보는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77)다. 지난해 10월 말 박경리문학상 수상차 내한한 티옹오는 당시 노벨문학상 수상이 무산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세계인들이 제 작품의 진가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고 벅차오릅니다. 해마다 노벨상 발표 때면 취재진이 집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려요. 기자들을 집에 들여 커피를 대접하며 오히려 내가 그들을 위로해 주죠(웃음).” 수상이 좌절되도 외려 기자들을 위로했던 티옹오가 올해는 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거장인 그는 케냐 토착 문화에 뿌리를 둔 서사에 서구 문학의 기교를 가미해 식민체제 아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아프리카인들의 분투를 작품에 그려 왔다. 올해 새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해 전 세계 ‘하루키스트’들을 집결시킨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배당률 5대1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 하루키가 수상하면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오에 겐자부로(1994년)에 이어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품게 된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78)는 올해 유독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급부상한 상태(배당률 6대1)다. 소설과 시 같은 순문학 분야뿐 아니라 드라마 극본, 동화, 평론 등 장르의 경계를 자유로이 횡단하는 그는 남성 지배적인 사회를 재치있게 조롱하는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불린다. 이밖에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이탈리아 작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이하 배당률 10대1),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배당률 12대1) 등이 수상권에 가까운 후보로 이름이 올라 있다. 미국 작가 돈 드릴로, 중국 작가 옌롄커(이하 배당률 14대1),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16대1)이 뒤를 잇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 문학 대잔치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 문학 대잔치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이 오는 13∼15일 제주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제주시가 주최하고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문학의 숨비소리, 제주’라는 슬로건으로 제주목관아와 오리엔탈호텔 등 제주 일원에서 진행된다.강연과 발표, 토론자, 국내외 초대작가 50여명이 참여한다. 포럼 첫날인 13일에는 오후 2시부터 오리엔탈호텔에서 2개의 문학 세션과 이어 개막식이 진행된다. 제1세션에서는 ‘한국문학, 한국문학, 외연과 경계를 말하다-재일제주인 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김길호, 평론가 곽형덕·김동현·조은애가 발표자로 참석해 재일제주인 문학의 특수성과 한국문학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제2세션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미래 ’란 주제로 시인 문효치 ·김원욱, 희곡작가 강용준, 수필가 지연희가 인문학의 위기 속 문학의 나아갈 길에 대해 주제발표, 토론 등을 진행한다. 개막식에서는 제42회 오사라기 지로상, 제41회 다카미 준 문학진흥회 문학상을 받은 김시종 시인이 ‘시는 현실인식에 있어서의 혁명’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둘째날에는 제주 목관아에서 3개의 문학 세션과 문학콘서트·제주시민 문학백일장·목관아 토요북카페가, 마지막 날에는 포럼 참여 작가들과 함께 4·3 평화기념관, 서귀포 시비공원 등 제주문학 관련 현장답사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사전 프로그램으로 ‘문학수다 콘서트’, ‘詩월, 詩詩한 낭독’, ‘북콘서트-평화를 말하다’가 열린다. 문학인 제주포럼은 시민과 관심이 있는 관광객도 참여할수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올해 노벨문학상도 ‘밥 딜런’급 이변?…문학계 “올해는 보수적인 선택할 듯”

    올해 노벨문학상도 ‘밥 딜런’급 이변?…문학계 “올해는 보수적인 선택할 듯”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특히 올해는 노벨문학상과 평화상이 누구에게 돌아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문학상의 경우 지난해 미국의 가수 겸 시인 밥 딜런의 깜짝 수상 때문에, 평화상의 경우 로힝야족 ‘인종청소’를 방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1991년 수상)의 수상 철회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이유다. 문학상을 놓고 스톡홀름 문학계는 올해의 경우 모두가 수긍할 만한 보수적 선택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 비요른 위만 문화부장은 “지난해에 일어난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올해 수상자는 유럽 태생의 남성 소설가나 수필가일 것 같다. 내 생각에 밥 딜런과 정반대되는 인물일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AFP통신이 28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포르투갈 소설가 안토니우 로보 안투네스와 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를 꼽고 “모두가 ‘그들은 당연히 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베팅업체 래드브룩스의 전망은 조금 다르다. 29일 현재 케냐 출신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오의 배당률이 4대1로 가장 높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5대1), 캐나다 출신 마거릿 애트우드(6대1)가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의 고은 시인은 16대1이다. 이 외에도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이스라엘의 아모스 오즈와 데이비드 그로스먼,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등이 매년 거론되는 주요 후보들이다. 해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노벨평화상의 경우 올해 개인 또는 단체 318명이 후보에 올랐다고 AFP는 전했다. AFP는 특히 최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북·미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 문제와 관련된 인물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 예측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의 헨리크 우르달은 이란 핵합의를 조율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유력한 수상 후보로 전망했다. 그는 “북한 문제도 걸려 있는 만큼 핵무기 개발과 확산을 경계하는 계획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평화상 수상 후보에는 또 시리아 내전에서 수만명의 목숨을 구한 시리아시민방위대 ‘하얀 헬멧’, 미 정부의 무차별 도·감청 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등이 올해도 포함됐다. 익명의 미국인이 추천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후보에 포함됐다고 AFP는 전했다. 한편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은 900만 크로나(약 12억 70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고 노벨재단 이사회가 최근 밝혔다. 종전 800만 크로나보다 100만 크로나 인상된 금액이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지금, 이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지금, 이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열등감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군가 잘났다 해도 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어딘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열등감은 상대적이다.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주인공 47세 브래드(벤 스틸러)는 어땠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그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대학 동창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대학 다닐 때는 엇비슷했는데 (실은 내가 제일 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들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베스트셀러 저자로 매스컴에 수시로 얼굴을 비친다. 브래드는 배가 아프다. 이들과 비교하면 자기 인생은 대학 졸업 후 줄곧 내리막길이었던 듯싶다. 그의 희망은 하버드대학 진학이 유력한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럼스)뿐이다. 브래드는 한껏 기대에 부푼다. 아들의 하버드대 합격이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단번에 우월감으로 바꿔 놓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안다. 자식이 명문대에 입학한다고 아버지의 열등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트로이가 하버드대에 들어가든 말든 ‘브래드의 지위’(이 작품의 원제)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 그럼 그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어떡해야 할까. 이대로 끙끙대면서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일까. 감독 마이크 화이트는 이런 대안을 제시한다. 브래드가 부러워하는 대학 동창들의 삶이 실제로는 별 볼 일 없고, 그들이 각자의 문제에 부닥쳐 고통스러워한다는 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브래드는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이를테면 가족의 소중함 등을 깨닫는다.하지만 이 영화가 제시하는 열등감 극복 방법은 조금 아쉽다. 결국 타인과의 비교―타인의 결점을 확인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와는 다른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대담집을 내기도 한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가 ‘콤플렉스’라는 저서에 쓴 처방은 이렇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예컨대 야구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선발투수가 되지 못해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갖는다. 그것을 해결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훈련을 열심히 해서 야구를 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야구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와 브래드가 대학 동창들처럼 엄청난 부자나 유명 인사가 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러니까 전자는 제외하자.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후자밖에 없다. 대학 동창들처럼 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해방하는 것과 구속하는 것이 같은 마음의 움직임, 같은 삶의 자세에서 온다”는 인문학자 김우창의 통찰에 따르면 이것은 체념이되 절망은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하나의 잣대로 서로를 비교할 이유도 없다. 돈이나 명성, 학력 따위는 지위의 필수 요소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버드대생 아나냐(샤지 라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브래드야말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를 이렇게 여기는 사람이 세상에 그녀만은 아닐 것이다.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해외에서 온 편지] 느리지만 꼼꼼한 일본인… 위기 때 발빠른 한국인

    [해외에서 온 편지] 느리지만 꼼꼼한 일본인… 위기 때 발빠른 한국인

    한국인이 일본사회와 일본인에 대해 평가하는 말로는 ‘업무 처리가 꼼꼼하다’, ‘업무 처리가 느리다’, ‘시간을 잘 지킨다’, ‘민원 등 일반시민들의 요구가 너무 없다’ 등이 많다. 부모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17년 동안 상사와 동료가 일본에 온 지 얼마 안된 한국인인 직장에서 일하며 객관적으로 본 일본 사회를 분석하고자 한다. 일본 사람과 같이 일을 할 때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신중한 일본인? 수도 이전 논의만 100여년 한국 사람이 하는 일 처리와 비교하면 일본 사람은 사전 정보 수집이나 서류준비 점검 등을 정말 꼼꼼하게 한다. 너무 신중해서 귀찮은 부분도 많아 한국인들이 답답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사업 당일에는 그 면밀한 준비를 한국인도 느끼게 돼 칭찬하는 소리를 매번 들었다. 일본인들이 사전 준비를 잘한 만큼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꼼꼼한 일 처리의 안 좋은 면도 있다. 행사장에서는 매번 돌발 사태가 발생하는 법이다. 일본인들은 사전준비에 없는 사태가 일어나면 공황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을 몇 번 목격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돌발 사태에 익숙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고 이런 부분은 우리 강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평상시에는 일본인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돋보이지만 위기에는 한국인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일본의 신중하고 느린 일 처리의 대표적인 예가 수도 이전이다. 일본도 도쿄가 포화상태이고 대지진 우려도 있어 수도 이전 논의를 아주 옛날부터 했지만 현재까지 수도는 도쿄다. 겨우 문부과학성과 외국 문화청 등 일부가 최근에 교토로 이전했다. 신중하게 논의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은 좋은데 추진력이 없는 것이 일본의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시 수도 이전을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할 때 관습헌법을 들었던 것처럼 일본도 수도를 규정한 법은 없고 관례로 도쿄를 수도로 같이 다루고 있다. 과거 1000년 가까이 교토가 일본의 수도였는데 교토시민 가운데는 일왕이 도쿄에 ‘출장’ 중이고 진짜 일왕 집인 황거는 교토에 있으니 아직도 교토가 진정한 수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일왕을 도쿄로 이사시켰을 때 크게 반발한 교토시민들에게 “천황 폐하는 도쿄에 일시 출장 가신다”고 설명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본의 수도는 1000년 이상 전부터 계속해서 교토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가끔 나타난다. 역사상 수도 이전인 천도를 할 때마다 일왕 즉위식을 거행하는 공식 일왕 전용의자 다카미구라도 새로운 수도로 옮겼다. 그런데 현재까지 이 의자는 교토에 그대로 있다. 교토가 아직 일본의 수도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말이다. #시간 잘지키는 일본인? 시초는 全국민 징병제 일본인들은 과연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옛날부터 시간을 잘 지켰을까. 에도시대 말기인 19세기 말 서양식 해군교육을 도입하고자 네덜란드 해군에서 초빙한 강사 빌럼 카덴데이케는 저작 ‘나가사키 해군 전습소 나날’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인들이 시간 안 지키는 것이 기가 막히는 수준”, “공장에 한 번만 얼굴 보여 주고 두 번 다시 안 나타난 직원들”, “설 인사한다고 2일 동안이나 사라진 마부”. 그 당시 여러 서양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 농경민족답게 느긋하게 일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처럼 철저한 시간관념이 생긴 것은 메이지 시대에 근대화를 하면서 징병제 도입으로 전 국민이 군인이 된 이후라고 한다. 군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면 바로 전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민원 안 하는 일본인? 종일 기다려도 화 안 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학교교육은 일부를 제외하면 군국주의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민원과 같은 일반시민의 요구가 너무 없는 것도 윗사람(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군인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행정수속을 할 때 공무원이 온종일 기다리게 해도 가만히 있는 일본 민원인들을 보고 한국 공무원들은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공무원 자체를 높여서 ‘오카미’라고 부를 때도 있으니 한국 공무원들은 당연히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런데 징병제가 있는 한국은 왜 일본과 같은 분위기가 없는지 재일교포 3세인 필자에게는 불가사의하다. 이귀회 시도지사협 日사무소 위원
  • [자치단체장 25시] 낮은 곳부터 발품팔기 7년째… 관악 ‘스토리 행정’ 해피엔딩

    [자치단체장 25시] 낮은 곳부터 발품팔기 7년째… 관악 ‘스토리 행정’ 해피엔딩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2013년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 선생이 손도장과 함께 남긴 글이다. 사망 한 달 전이었다. 유종필(60) 서울 관악구청장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유명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있다. 연재 아닌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최인호 선생의 손도장과 마주한 기억을 꺼낸다. “2014년 이맘때쯤 서울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 최인호 선생의 1주기 추모전이 열렸어요. 죽기 한 달 전 선생이 남긴 손도장과 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빠진 손톱을 대신하던 고무 골무를 봤습니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입니다. 제가 쓰는 글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직자로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일종의 의무지요. 아니, 기록의 특권을 누리려고 합니다.”2014년 6월 이후 멈춰 있던 유 구청장의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온 건 지난 7월 19일이었다. 첫 글 이후 지금까지 모두 아홉 개의 글이 모였다. 글을 아우르는 제목은 ‘유종필의 관악 소리’. 평소 자기만의 색깔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헤드(Head)보다는 헤어(Hair)’를 외치는 그답게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을 때의 얼굴 사진을 오려 대문에 익살스럽게 붙였다. 글에 한도를 두지 않았다. “직무와 관련됐거나 무관한 이야기를 부정기적으로 포스팅하려 합니다. 길이도 다 다르고요. 스스로 지난 7년을 돌아보고 나머지 기간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방법이지요.”실제로 구청장 불출마 선언, 장애인, 반려동물과 관련된 주요 사업 등과 같은 구청장 유종필의 이야기부터 휴가에 대한 단상, 대중교통의 날에 본의 아니게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에피소드 등 인간 유종필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다. 하지만 아홉 개의 글에 나름의 원칙이 엿보인다. 글마다 생생한 에피소드가 있고 그의 전매특허인 유머도 살아 있다. “글이나 말을 할 때 3가지 원칙이 있는데요. 첫째가 ‘가급적 단순할 것’이고요. 둘째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이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입니다. 스웨덴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이나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유머가 있으면 금상첨화지요. 몇 번을 읽어 보고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합니다.” 그중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내 영혼의 일부는 잠든 상태로 있었다’는 글은 서울대 고시촌에서 만난 ‘캣맘’(길고양이에게 주기적으로 사료를 챙겨 주는 사람)들과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지난해 관악구는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팀을 만들고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행복한 관악’을 선포했다. 반려동물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기 위함이다. 유 구청장은 임기 동안 동물매개활동과 서울대 동물병원과 협업 사업 등을 펼쳤다. “동물매개 활동이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즐겁게 지내면서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찾고 신체적 발달을 촉진할 수도 있는 활동입니다. 교육을 수료한 사람과 반려견이 홀몸노인이나 한부모 가정 자녀 등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찾아가 자연스럽게 마음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일본의 유명한 치료견 ‘지로리’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유기견이었지만 치료견으로 13년간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 준 일이 있었다. 관악구의 동물매개 활동으로 지난해 봉사자 16명, 봉사견 19마리가 수료했고 올해는 봉사자 6명, 봉사견 5마리가 교육을 받았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동물병원과 함께하는 ‘반려동물과 사람이 행복한 관악 만들기’ 사업도 큰 인기다. 교수들이 직접 주민들에게 반려동물의 건강과 양육에 관한 상식뿐 아니라 반려견의 주요 행동 원인과 해결 방법, 반려동물 마사지 방법, 강아지 언어 등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학대행위 방지 등을 위한 동물보호 조례도 만들어졌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편의시설인 ‘개판 5분 전’도 도림천 인근 200㎡(약 60평)와 낙성대 야외놀이마당 내 250㎡(약 75평)에 조성됐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글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로 시작된다. 발달장애인은 어른이 돼도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이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다는 게 요지였다. 유 구청장은 어머니들의 바람을 실현했다. 관악구에는 내년 발달장애인들이 성인이 돼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센터가 완공된다.“2010년 구청장 출마 때 장애인종합복지관 설립을 공약했더니 대다수 장애인이 냉소적이었죠.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거였죠. 실제로 예산을 뽑아 보니 130억원 정도인 걸 보고 한숨만 나왔습니다. 당시 재정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일단 첫걸음을 떼는 게 중요했습니다. 장애인복지관 기금 마련 조례를 만들고 매년 10억원 정도를 기금으로 적립했어요. 3년 정도 후에 중앙정부의 로또복권기금을 따내고 서울시 지원을 90억원 가까이 확보하면서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유 구청장의 두 번째 취임식은 특별했다. 그는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르길 포기하고 휠체어를 탔다. 그리고 장애인들과 관악산 무장애등산로를 올랐다. 경사도 8도 미만의 1.8㎞ 무장애등산로는 유 구청장이 중점적으로 기획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이 251만명이고 관악구만 해도 2만여명이 장애인입니다. 이 중 90%가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장애인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자기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유 구청장이 즐기는 농담 중에 ‘경로당’ 레퍼토리가 있다. 유 구청장은 노인들에게 “제가 무슨 당이지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저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경로당입니다. 제가 경로당 청년부장의 자세로 어르신들을 모시겠습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어르신들은 유 구청장의 농담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유 구청장의 9번째 포스팅은 노인복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유 구청장은 지역 내 전체 112개 경로당 순회를 마쳤다. 구청장으로 있는 동안 경로당에 방문한 횟수만도 500회가 될 정도다. 그는 경로당의 보일러, 에어컨을 점검하고 냉장고와 찬장까지 열어 본다. 자주 경로당을 찾다 보니 예산 배분의 문제점도 직접 발견했다. “경로당 보조금 지원을 면적 기준으로 하다 보니 비좁은 곳은 오히려 보조금이 적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전형적인 행정편의 사례였죠. 그래서 4가지 기준을 만들었어요. 가령 임대아파트는 지원 등급을 올리는 식입니다. 무조건 임대아파트부터 우선순위로 하자고 했어요.” 유 구청장은 종종 관악구 곳곳에 피어 있는 능소화 이야길 한다. 지난 7월 유 구청장은 다음 구청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능소화는 시들기 전에 스스로 꽃을 떨군다.… 불출마 선언 안팎’이라는 글에 자신의 심경을 능소화에 빗대 썼다. 능소화는 시들 때까지 피어 있지 않고 절정의 시기에 스스로 꽃을 떨군다. “저는 성공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불문율 비슷한 걸 가지고 있는데 관악구청장으로 8년은 내 인생에서 최장기간이니 떠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로컬에서 일했던 만큼 앞으로는 내셔널하게 활동해야지요.”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춤, 젊어지다

    춤, 젊어지다

    올 하반기 무용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주요 작품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한국 무용과 현대 무용의 신선함과 실험성을 겸비한 국내 안무가의 공연부터 세계적인 발레단과 외국 국립무용단의 작품까지, 한국 무대를 찾아 열정적인 춤사위로 무대를 수놓을 예정이다.●아이유·어반자카파가 춘향전과 만나 ‘춘상’ 국립무용단의 ‘춘상’(21~2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젊고 신선한 한국무용이다.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작으로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폭넓은 춤 스타일로 세계 무용계에서 호평받아 온 안무가 배정혜의 작품이다. ‘단’, ‘묵향’, ‘향연’ 등을 통해 국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춰 온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과 무대·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봄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념’이라는 의미의 ‘춘상’은 스무 살 청춘들이 겪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8개의 에피소드로 엮었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시공간을 현대로 옮겨 고등학교 졸업파티에서 첫눈에 반하는 춘과 몽의 주인공이다. 음악 역시 요즘 노래로 채워진다. 아이유, 정기고, 넬, 볼빨간사춘기, 어반자카파, 선우정아 등의 노래를 편곡해 신선한 감성을 더했다. 2만~7만원. (02)2280-4114.●두 남자 안무가의 신작 무대 ‘맨 투 맨’ 국립현대무용단은 국내외 안무가들의 작품을 초청하는 픽업스테이지 세 번째 무대에 ‘맨 투 맨’을 올린다. 10월 13~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오르는 ‘맨 투 맨’은 작품명에서도 보듯 두 남자 안무가의 신작 무대다.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박순호의 ‘경인’과 클래식 발레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조슈아 퓨의 ‘빅 배드 울프’다. 박순호는 물질적인 욕망과 정서적 결핍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서울 사람을, 조슈아 퓨는 말 잘 듣는 아이를 만들 요량으로 무서운 이야기 속 공포스러운 존재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한 고찰을 춤으로 표현한다. 2만~3만원. (02)580-1300.●마린스키발레단 김기민과 ‘백조의 호수’ 국내외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과 무용단이 선보이는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은 고전발레의 정수 ‘백조의 호수’를 들고 한국을 찾는다. 11월 9~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일 이 공연엔 수석 무용수 김기민이 지그프리트 왕자 역으로 오랜만에 고국팬들에게 인사한다. 김기민은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무용수 상을 받기도 했다. 5만~28만원. (02)598-9416.●스페인 최우수 안무상에 빛나는 ‘카르멘’ 스페인국립무용단의 ‘카르멘’(11월 9~1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도 놓치면 아쉬운 작품.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매력의 욕망 가득한 여성 카르멘이 스웨덴 안무가 요한 잉거의 손길을 거쳐 새 옷을 입었다. 카르멘과 군인 돈 호세, 투우사 에스카미요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명적 삼각관계가 한층 세련되고 정열적인 춤사위로 표현된다. 2년 전 스페인에서 초연된 이 작품으로 잉거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안무상을 받았다. 4만~12만원. (02)2005-0114. 국내 양대 발레단이 러시아 대문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명작을 만날 기회도 마련된다. ●평창올림픽 기념하는 ‘안나 카레니나’ 국립발레단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11월 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크리스티안 슈푹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를 입혀 2014년 스위스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아시아 무대는 처음이다.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와 젊은 백작 브론스키의 비극적 사랑이야기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정제된 고전 의상과 어우러져 눈과 귀가 즐거울 무대다. 5000~5만원. (02)587-6181.●국내 무대에 네 번째 오르는 ‘오네긴’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네긴’을 준비했다. 푸시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바탕으로 드라마 발레의 선구자 존 프랑코의 안무로 1965년 초연된 작품이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도시 귀족 오네긴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시골 영주의 딸 타티아나의 엇갈린 비극적 사랑과 그에 따른 심리변화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국내엔 2009년 처음 소개됐으며 2011년, 2013년에 이어 네 번째 무대다. 11월 24~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2만원. 1545-1555.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질문의 정치학

    [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질문의 정치학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의문이 생기더라도 상대방에게 잘 묻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와 하루키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철학인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의 반영으로 보인다. 물론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계속 그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법상의 요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주인공이 한 중년 여성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궁금해하면서도 묻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묻지 않는 것이 왜 특이하게 보일까라는 자문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호기심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은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호기심을 치하하고 질문을 권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다. 하지만 질문에는 거의 정치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복잡한 현상이 존재한다.질문은 생각만큼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묻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상하관계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다분히 정치적 행위다. 국정조사에서 국회의원들의 흔한 호통이나 검찰의 취조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질문이 정보를 요구하는 행동이며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의 비대칭성에 의해 상하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하는 상황이나 낯선 곳에서 길을 물어야 할 때, 묻는 사람이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상하관계는 정보를 가진 자와 필요로 하는 자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묻는 사람은 답해 줄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위치에 있게 되고, 정보를 제공해 줄 경우 존경이나 감사와 같은 어떤 보상을 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질문의 정치학은 성립된다. 교육현장에서와 같이 질문이 분명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며 상대의 도움을 원하는 가운데 나온 행동이라 하더라도 질문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질타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특히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대답의 의무가 존재하고 이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길을 묻는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못했을 때 죄송하다고 말하게 된다. 질문이 가진 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정은 사실상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문을 들었을 때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답을 먼저 말하려는 충동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질문은 종교나 영업, 혹은 호감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말을 트고 뭔가를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기술이 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데 급급해 그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쉽게 잊는다. 하지만 질문에 답을 찾기보다 질문이 적절한 것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매카시즘의 피해자였던 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영화인 ‘트럼보’에서 주인공은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있느냐는 청문회 질문에 자신이 범죄의 피고인지를, 곧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를 되묻는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주인공이 마침내 그 여성에게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물었을 때, 그녀 역시 하루키 소설의 인물답게, 답하되 답하지 않는 기발한 답을 말한다. 자신은 읽고 있는 책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그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말하며 책의 제목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일방적인 상하관계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훌륭한 답이 아닐 수 없다.
  • 2차 대전 중 추락한 비행기 온전한 상태로 발견

    2차 대전 중 추락한 비행기 온전한 상태로 발견

    2차 세계대전 중 추락한 정찰 비행기가 최근 온전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9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남태평양 팔라우 제도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아이치 E13A 정찰기가 물에 잠긴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아이치 E13A 정찰기는 코로르 주인 코로어 섬 니코 베이(Nikko Bay)의 얕은 물에 수장된 채 발견됐으며 녹이 슬었을 뿐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한 상태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이용자 토니 셰르바스(Tony Cherbas)가 게재한 사진에는 물속 아이치 E13A 정찰기 주변서 물속 비행기를 구경하며 카약을 타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항공 역사학자이자 수상비행기 조종사 폴 비버(Paul Beaver)는 메일온라인 트래벌과의 인터뷰를 통해 “물속에서 발견돼 비행기는 일본의 아이치 E13A 수상 정찰기로 뒤집혀 있는 상태로 추락했기 때문에 부유물들을 잃어버린 상태였다”며 “이는 매우 희귀한 유물”이라고 전했다. 아이치 E13A 정찰기는 아이치 항공기가 개발해 쇼와 15년(1940년)에 정식으로 배치된 일본군 해군의 수상기로 정식명칭은 영식수상정찰기다. 수면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수상기이며 태평양 전쟁에 투입되어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수상 정찰기로 활약했다. 전쟁의 상황에 따라 폭격을 위한 용도로 사용됐으며 카미카제 특공대의 특공기로 사용되기도 했다.(참고: 나무위키) 한편 팔라우는 1914년 일본군이 제도를 차지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해군의 주요기지로 사용됐다. 1944년 미군에 의해 점령되다 1947년 미국의 통치를 받는 국제연합(UN)의 태평양제도 신탁통치지역이 된 바 있다.(참고: 다음 백과) 사진= Tony Cherbas Reddit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문화마당] 그 흔한 취미/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그 흔한 취미/강의모 방송작가

    “취미가 뭐예요?” 미팅이나 소개팅, 혹은 어색한 만남에서 상투적으로 나오는 질문이다. 묻기는 쉬워도 답은 늘 어려웠다. 하나의 취미로 나의 정체성을 규정짓는다는 게 부담도 되고, 딱히 내세울 게 없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취미 칸을 채우는 것도 고민이었는데, 그나마 가장 무난한 건 독서와 음악감상이었다. 20대에 접어들기 전 대학입시가 끝나자마자 작은 전파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님이 적어 준 목록대로 LP에서 노래를 골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는 일이었다. 송창식, 김정호, 양희은, 존 덴버, 킹 크림슨, 이글스 등의 음반을 찾아 한 곡 한 곡 고르고 듣는 건 물론 나름 신경을 써서 A, B면의 노래 순서를 정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되어 다리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공부 외에는 처음 해보는 일인 데다 주로 서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보통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위로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취미가 일이 되면 원래 힘든 거야.” 결국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됐는데, 그래도 사장님은 열심히 일한 게 기특하다며 월급을 후하게 쳐주셨다. 거기에 용돈을 조금 더 보태어 그 사장님께 조립 전축을 맞췄다. 내 생애 첫 오디오를 장만한 것이다. 취미를 살려 일을 하고, 그 일로 돈을 벌어 취미를 고양했달까. 인생은 돌고 돈다더니 우여곡절 끝에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작가로 뒤늦게 입문했다. 선곡표를 들고 음반실에 가서 CD를 고를 때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생방송 중에 즉시 선곡된 노래를 찾으려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피디가 그랬다. ‘나이는 많은데 행동은 제일 빠른 것 같다’고. 그만큼 신나는 작업이었다. 지금은 그런 시절도 다 추억에 묻혔지만, 노래 한 곡에 젊은 날의 한 장면이 오버랩될 때마다 짜릿한 흥분을 즐기는 건 여전한 나만의 행복이다. 그러고 보면 나이 들수록 가장 매혹적인 취미가 바로 ‘추억의 되새김’인지도 모르겠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덕담 중 하나가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취미생활이나 즐기시지요”다. 곧 퇴직하게 될 선배 하나는 그런 얘기 들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했다. 이제까지는 취미 생각할 틈이 없다고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앞으론 그게 통할 리 없으니 슬프다는 말도 했다. 프리랜서인 나의 은퇴는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일이 하나씩 빠지며 시간은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든다. 커지는 것과 작아지는 것, 어느 쪽에 시선을 두느냐는 오직 내 맘에 달렸다. 은퇴 후 시골로 낙향한 지인은 노후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취미로 원예, 여행, 자원봉사를 꼽았다. 내게 적용하자면 집안에서 화분 서너 개 돌보는 것도 원예고, 멀지 않은 곳에 가서 트레킹을 즐기는 것도 소소한 여행의 행복이니 크게 돈 들 일이 없다. 자원봉사 역시 여생의 숙제로 삼아 계속 탐색 중이다. 무라카미 류는 ‘무취미의 권유’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취미의 세계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이제껏 나는 삶을 요동치게 할 즐거움 따윈 결코 기대해본 적이 없다. 느닷없이 업어치기 메치기를 당하는 게 인생이기에 지루하더라도 잔잔한 평화가 좋다. 그래서 여전히 나의 취미는 그 흔한 독서와 음악감상이다.
  • [책꽂이]

    [책꽂이]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오쓰카 에이지 지음, 선정우 옮김, 북바이북 펴냄) 서브컬처 평론가인 저자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분석했다. 312쪽. 1만 6000원.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폴 크루그먼 지음, 이윤 옮김, 창해 펴냄)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저자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론적 업적인 지리경제학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엮었다. 244쪽. 1만 6000원. 스무 살 아들에게(김별아 지음, 해냄 펴냄) 소설가 김별아가 스무 살 아들이 입대한 날부터 훈련소 수료식까지 38일 동안 매일 써 내려간 편지와 아들의 백일과 첫돌에 쓴 편지까지 총 40편의 글을 담았다. 228쪽. 1만 4500원. 어린이 대학 시리즈(이은희 외 3명 지음, 김소희 외 3명 그림, 창비 펴냄) 최재천(생물), 이만열(역사), 오세정(물리), 이정전(경제) 등 평생 해당 학문을 연구한 석학들이 어린이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각 128~132쪽. 각 1만 2000원. 블룸 앤 구떼 스타일(조정희·이진숙 지음, 비타북스 펴냄) 파티시에 조정희와 플로리스트 이진숙이 가로수길 카페 블룸앤구떼를 13년간 운영하며 터득한 인기 디저트 비법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240쪽. 1만 5800원. 콧구멍을 탈출한 코딱지 코지(허정윤 지음, 주니어RHK 펴냄) ‘코딱지 코지’를 쓴 저자의 두 번째 클레이 그림책으로 콧구멍을 나온 코지가 서영이네 집에서 본격적으로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44쪽. 1만 3000원.
  • “소설, 흑백 역사관·단편적 사고 맞서는 존재”

    “소설, 흑백 역사관·단편적 사고 맞서는 존재”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설은 그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고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최근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출간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출판사 문학동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서다. 국내에서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하루키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7년 만의 신작은 여름철 서점가를 강타, 이번에도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했다. 문학동네는 지금까지 4쇄, 40만부를 찍었다. 하루키는 이번 신작에서 난징대학살을 다뤄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은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좌우 갈등을 겪었다. 양국에서 역사관의 대립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소설은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일종의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이냐 백이냐’ 하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버리죠.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대고요. 이것은 매우 슬프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말을 따뜻한 것, 살아 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양식’(decency)과 ‘상식’(common sense)이 요구됩니다.”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면서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념의 도구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신작에서 그가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것처럼 한국에선 세월호 사태라는 재난 이후 문학의 역할론이 대두됐다. 그는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유효하게 표현하고 치유하는 일이 문학의 역할이긴 하나 “‘어떤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처 치유는)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진 중대한 과제다.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거나(혹은 지워버리는),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9세에 첫 소설을 쓴 그는 “그땐 ‘소설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예순여덟이 되고 보니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글쓰기는 악기 연주처럼 예나 지금이나 즐겁다고 강조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하루키 ‘게임’ 시작됐다… 국내도 신드롬 상륙할까

    하루키 ‘게임’ 시작됐다… 국내도 신드롬 상륙할까

    하루키의 게임이 시작됐다. 작품 곳곳에 수수께끼를 숨겨놓는 무라카미 하루키(68). 12일 그의 새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문학동네·전 2권)가 깔린 서점가는 그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려는 독자들의 발길로 분주했다.하루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본다는 회사원 이슬기(29)씨는 “하루키는 호불호를 떠나 그 자체로 현상인 느낌이어서 읽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며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이 거슬릴 때도 있지만 칠순의 나이에도 트렌드에 기민해 그의 소설에 나오는 공간, 음악, 맛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직접 경험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고 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빨랐다. 지난달 30일부터 진행한 예약 판매에서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 2위에 오르자 출판사 문학동네는 정식 출간되기도 전에 3쇄, 30만부를 찍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2월 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130만부가 팔려나갔다. 때문에 이번 작품은 선인세가 30억원에 이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신작은 그가 전작에서 쌓아올렸던 ‘하루키 세계’의 압축판으로 평가된다. 소설은 여성과의 이별, 초월적인 존재와의 교류, 불가사의한 사건, 반복되는 성애 묘사 등 하루키 소설의 특징들을 어김없이 변주하며 상실과 회복이라는 원형의 주제를 구현한다. 조주희 한양여대 교수는 “아내와의 이별, 우물에 들어가서 기이한 체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아버지 세대와 결별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해변의 카프카’, 남의 자식에 대한 보호의식과 책임감은 ‘벌꿀파이’, ‘1Q84’에서 봐왔던 정경들”이라며 “이번 소설은 지금까지 하루키가 써온 작품들을 총망라한 종합 소설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야기는 서른여섯의 초상화가 ‘내’가 아내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집을 나오면서 시작되는 여정이다. 친구의 제안으로 그의 아버지인 유명 일본화가 야마다 도모히코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 ‘나’는 집 안에 숨겨져 있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고 마음을 사로잡힌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인물들을 일본화로 옮겨놓은 그림은 청년이 노인의 가슴 한복판에 검을 깊이 찔러넣는 순간을 포착한 것. 이 역작과 마주한 이후 ‘나’에겐 기이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다가온다. 집 뒤편 사당 돌무덤에서는 밤마다 정체 모를 방울소리가 울린다. 소리의 정체를 찾아 돌무덤을 파헤치자 그림 속 기사단장이 60㎝ 크기의 형체로 나타나 말을 건다. 그에게 그림을 배우던 이웃의 소녀는 자취를 감춘다. 상실에 잠겨 있던 ‘나’는 ‘세계의 이음매에 미세한 어긋남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구를 찾아 나선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솜씨 좋게 기우는 하루키는 일본 괴이담(怪異談)을 연상시키는 사건, 기사단장이라는 초현실적 존재 등을 내세워 궁금증을 점점 증폭시킨다. 이전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부조리한 역사에 대한 비판 의식이다.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연인, 동생 등 소중한 이들을 잃은 아마다 도모히코를 통해 나치의 만행, 난징대학살 등 과거 군국주의의 광기와 폭력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집에서 나온 ‘내’가 떠도는 곳은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도호쿠 지역으로, 작가는 당시의 상흔도 상기시킨다. 최재철 한국외대 교수는 “집단의 기억으로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하루키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선 노벨문학상을 의식한 것이라고 하는데, 원숙한 작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전보다 더 의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초기작에 사회와의 연결이 단절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했다면 이번 작품은 가족의 구성, 유사 부자 관계 등 열린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나’의 이웃 멘시키는 난징대학살을 이렇게 언급한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명과 십만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2권 88쪽) 이 때문에 소설 출간 직후 하루키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지난 4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라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 집합적인 기억이므로 이를 과거의 일로 치부해 잊으려 하거나 바꿔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소설가에게 가능한 일은 한정돼 있지만 이야기라는 형태로 싸워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일침을 놨다.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는 이야기를 고조시키거나 사건의 뉘앙스를 감지하게 하는 연결고리로 특유의 감각적인 선곡을 펼쳐보인다. 멘델스존의 8중주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텔로니어스 멍크의 재즈 등 클래식, 팝을 넘나드는 소설 속 선곡, 그림이나 음식에 대한 묘사는 독서의 흥취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하지만 “초기작에 선보였던 참신한 비유는 사라지고 비슷한 내용의 문장이 거듭되는 부분들이 있어 읽는 속도가 다소 늘어진다”(최재철 교수)는 평도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포토]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서울포토]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펼쳐든 채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뉴턴·헤밍웨이·처칠… 고양이를 사랑한 캣맨

    [그 책속 이미지] 뉴턴·헤밍웨이·처칠… 고양이를 사랑한 캣맨

    그 남자의 고양이/샘 칼다 지음/이원열 옮김/북폴리오/101쪽/1만 5000원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고양이들을 자주 불러낸다. ‘해변의 카프카’ 속 인물 나카타는 기억을 잃고 고양이들과 대화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1Q84’에서는 고양이들이 사는 마을에서 밤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년 전 팬들의 질문을 받는 임시 웹사이트에는 고양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법을 일러 달라는 한 독자의 말에 하루키는 이렇게 답했다. “고양이는 가끔 그냥 없어집니다. 주위에 있을 때 사랑해 주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최근 국내 최초의 퍼스트 캣이 된 고양이 ‘찡찡이’가 화제가 되면서 ‘집사’ 문재인 대통령의 고양이 사랑이 눈길을 끌었다. 책은 고양이를 사랑했던 역사 속 ‘캣맨’들의 이야기를 도회적이면서도 다감한 일러스트와 함께 짝지웠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과학자 아이작 뉴턴, 작가 마크 트웨인·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곡가 모리스 라벨,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배우 말런 브랜도, 뮤지션 프레디 머큐리 등 유명 캣맨 30명의 고양이 예찬을 위트 있는 에세이로 들려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8. ‘애매한 관계’에 관하여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38. ‘애매한 관계’에 관하여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나만 볼 듯 애매하게 날 대하는 너~ 소유, 정기고 ‘썸’ 가사 中 친구 또는 연인, 이라는 명사로는 설명이 안 되는 애매하고도 요상한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친구 또는 연인 사이. 혹은 그것도 아닌. ◆ 백년밥손님은 매주 금요일 청량리로 간다 백년밥손님(30·여)은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청량리로 간다. ‘엑스(전 남자친구)’의 자취방이다. 요리에 도통한 엑스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주인 마냥 솜씨 좋게 한 주를 마감하는 저녁을 차려낸다. 비계까지 바삭바삭 잘 구운 삼겹살, 콧속을 후벼파는 내음의 찜갈비, 국물이 자작한 국물닭발 등이다. 훈기 나는 밥을 한 가득 먹은 뒤, 이 헤어진 연인은 유튜브를 보거나, TV를 보는 등 따로 또 같이 무언가를 한다. “그러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 잠을 잘 때도 있지만 그냥 잠만 잘 때도 많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걔가 볶음밥을 해줘. 그 볶음밥을 먹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거야.”자기 일에는 ‘프로페셔널’이어도 살림에는 젬병인 밥손님에게, ‘심야식당’은 자꾸 뭔가를 해주고 싶나 보았다. 심야식당은 청소기를 선물하거나,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는 밥손님을 걱정하기도 한다. 연민일까, 정일까. 근 1년째, 그들은 그러고 있다.   ◆ ‘애매한 관계’의 정의는 정말 ‘애매하다’는 것이다. 밥손님과 심야식당 같은 ‘애매한 관계’의 정의는 정말 ‘애매하다’는 것이다. 쉽게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 라는 말도 되겠고 스스로도 설득이 잘 안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아슬아슬’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명시적인 연인은 못 된다. ‘썸’이거나, 혹은 당사자조차 인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썸이거나, 소위 ‘감정은 없다’고 말하는 섹스 파트너 등도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이러한 관계들은 보통 겉으로 ‘쿨’을 가장한다. 남들 보기에 이상해도 우리는 ‘쿨하니까’ 괜찮다는 식이다. 절대로 누구에게 어떤 ‘관계’가 되길 원치 않으면서, 그 자체로 내 인생의 여자들을 사랑하겠노라고 밝힌 한 남자가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독립기관’에 등장하는 중년의 의사 ‘도카이’다. 비혼의 그는 여러 ‘여자친구들’을 한꺼번에 거느리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그의 여자친구들은 대개가 기혼인데, 그녀들을 절대로 소유하지는 않으면서 그녀들을 존중한다는 게 도카이의 철학이다. 그러나 나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그녀가, 또 다른 불륜남과 야반도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카이는 시름시름 앓는다. 앓다가, 죽는다. 도카이는 좀 극단적 사례라고 하더라도, 일면 ‘쿨’해 뵈는 관계의 이면이 이러하다.   ◆ 아무리 쿨해도…누군가는 ‘더 애달프다’ 애매한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누릴 줄 알아야 연애를 잘하는 건(끊임없이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애매한 관계에서 “우리가 대체 무슨 관계냐”며 관계 정립을 시도하는 것만큼 섣부른 생각이 없다. ‘칼 같이’ 정리를 잘하는 나에 비해, 항상 ‘썸남’이 끊이질 않았던 친구는 애매한 관계를 양산하는 데 선수였다. 그녀는 정말로 뭇 남성들(이성애자였던 그녀지만 뭇 여성들 앞에서도) 앞에서 풍성한 ‘성적 매력’을 잃지 않았다. 친구이거나 일적으로 만난 이들 앞에서는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문처럼 되뇌이던 나와는 달랐다. 반면 친구는 한 사람에 집중하는 걸 잘 못했다. 누구에게나 풍성한 성적 매력을 드러냈지만, 그게 집약되지는 못했고 늘 관계에 목말라 했다. 책 ‘유혹의 학교’에서 작가 이서희씨는 애매한 관계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건전하게 즐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그게 쉬운가. ‘애매한 관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덜 애달픈 한 쪽과, 더 애달픈 쪽이 존재한다. 끈끈이주걱 같은 ‘관계 지옥’의 구렁텅이로 자신도 모르게 빠지기가 일쑤다. 특히 관계에서의 멀티가 안되는 축들은 더더. 근 10년째, 베프인듯 베프아닌 베프같은 남녀를 안다는 한강원터치텐트(29·여)는 말했다. “남자애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그 여자애한테 인사를 시켜요. 그럼 둘이 다정한 모습을 보고 항상 여자친구가 삐지고, 결국 헤어지죠.” “그럼 그 여자애는 남자애한테 남자친구 소개 안 시켜?” “아니요. 걔는 걔 좋아하니까...” “아...” 그렇게 근 10년 살면, 속이 터져 죽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심야식당’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줄 알았던 밥손님도 말했다. 본인의 의지로 이어가는 관계라고. 밥손님은 심야식당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밥손님은 또 다가오는 금요일이면 또 밥을 먹으러 청량리로 갈 것이다. 어떡해야 할까. 나는 진심 그는 그대로, 내 친구는 내 친구대로 골병 들까 걱정이 된다. 줄 타는 광대 마냥,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자, 줄을 타라. 사랑은 빠지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추락사할 여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도카이처럼.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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