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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토피아? 공산주의 실험? 스페인 남부 마을의 ‘이상한’ 협동조합을 가다

    유토피아? 공산주의 실험? 스페인 남부 마을의 ‘이상한’ 협동조합을 가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댄 핸콕스 지음 윤길순 옮김/위즈덤하우스/288쪽/1만 5000원 스페인 남부 인구 2700명의 마을 마리날레다는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공산주의 테마파크’인가.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작은 도시 마리날레다는 별다른 산업 시설이나 관광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가꿔 가공하는 농장과 공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면서 이를 수출까지 하는 곳이다.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 6시간 반을 일하며 모두 똑같이 월 1200유로(약 172만원, 스페인 최저 임금의 2배)를 받는다. 협동조합은 주민들에게 임금을 주고난 뒤 이윤이 생기면 분배하지 않고 재투자해 일자리를 늘린다. 그래서 마을에 최근 이주해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실업률이 제로다. 또 마을 주민들은 지방 정부로부터 건축 자재를 지원받아 방 3개짜리 집을 직접 짓고 한 달에 15유로(약 2만 1500원)의 월세를 낸다. 집은 공동체 소유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는 없다. 이 마을엔 경찰 병력도 없다. 치안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확립하고 경찰 예산은 학교나 주민 복지를 위해 쓴다. 마을엔 축구 경기장, 야외 수영장, 종합 실내 스포츠 센터 등 운동 공간이 있다. 대개 무료인 레저시설들은 마을 규모에 비하면 대단히 넓다. 나투랄 공원에는 정원과 벤치, 테니스 코트, 야외 체육관, 석조 원형 극장이 있다. 원형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은 물론 각종 축제나 록 콘서트도 열린다. 자체 텔레비전 방송국도 있다. 카뮈가 ‘반란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역사에서 줄곧 빈곤과 소외의 지역이었다. 1970년대 후반 마리날레다의 소작농들은 일년에 한두 달밖에 일거리가 없어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그러다 1979년 시장에 당선된 산체스 고르디요는 주민들과 함께 투쟁에 나선다. 1980년 이 지역의 실업률이 60%를 넘자 분노한 주민 700명이 9일 동안 ‘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 즉 단식 투쟁을 했고 국가로부터 생계 보조금을 얻어 냈다. 그러나 이들은 미봉책인 보조금에 만족하지 않고 토지 개혁 및 재분배를 요구하며 10년 넘게 싸웠다. 1980년대 내내 그들은 안판타도 공작의 땅인 우모소를 100차례 넘게 점거했고 여름에는 매일 16㎞씩 행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점거하고 쫓겨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들의 불굴의 저항에 진이 빠진 정부가 1991년 마침내 굴복해 1200만㎡(약 360만평)에 대해 공작에게 일정한 보상을 한 뒤 마리날레다에 공유지로 주었다. 그동안 놀리던 땅으로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농경지였다.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이 땅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고르디요 시장이 있다. 역사 교사였던 그는 정치가이자 노동자 단결을 위한 집단인 안달루시아 좌파연합의 대표이다. 그는 “나의 정치적 신념은 예수와 간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가 뒤섞인 것에서 왔으며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공산주의자 또는 공동체주의자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 정치·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영국의 언론인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문화 In&Out] 출판계 ‘이방인 번역’ 논란 왜?

    [문화 In&Out] 출판계 ‘이방인 번역’ 논란 왜?

    출판계에 때아닌 ‘번역 논란’이 일고 있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이방인’이 국내에선 원작과 다르게 번역돼 읽혀 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팔린 고전 중의 고전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는 이정서라는 필명을 지닌 블로거다. 이씨는 최근 카뮈 권위자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카뮈전집을 완간한, 프랑스 문학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다. 이씨가 최근 펴낸 ‘이방인’(새움)은 340쪽이 넘는 책의 절반 이상을 역자노트로 채웠다. 작가는 “원래 카뮈의 ‘이방인’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고 감탄할 수 있는 (쉬운)소설이었다. 어느 한 문장 이해되지 않는 곳이 없는 완벽한 글”이라고 강조한다. 이씨는 김 교수의 번역본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김 교수의 번역본에서는 주인공(뫼르소)이 태양빛이 너무 찬란해 아랍인에게 총을 쏘지만, 이씨의 책에선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을 보고 위협을 느껴 총을 쏜다. 이씨는 주인공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해석한 것이다. 이씨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권위와 번역자의 위상에 이중으로 짓눌려 지금껏 작품의 실체를 제대로 뜯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방인’ 번역본과 김 교수의 번역본, 원문을 나란히 놓고 김 교수 번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는 “책을 내면서 본명과 약력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실제 문장만을 집중해서 보자는 취지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문단에선 원작과 괴리된 번역이 종종 문제점으로 지적돼 오고 있다. 해외 원작을 번역하는 데 있어 역자의 문학적 재량은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돼야 하며, 그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는 앞으로 출판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살의 역사/조르주 미누아 지음/이세진 옮김/그린비/516쪽/2만 9000원 세계적인 자살률, 처지를 비관한 자살, 나약한 의지의 발로…. 연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진다. 생활고, 실연, 치욕, 폭력, 이런저런 이유에 우울증까지 갖다 붙이면서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꼽아낸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말처럼 이유를 단순화할 수 없다. 오히려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자살은 “심각하고 유일한 철학적 문제”다. 과연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로 소급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가 쓴 ‘자살의 역사’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오랜 논쟁 중에서도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이 시기를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때로 봤다. 중세 말인 16세기까지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살인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자살자의 시신은 가혹행위를 당하고 재산은 몰수됐다. 감춰야 할 일이었던 탓에 당연히 기록도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시인 루크레티우스, 정치가 브루투스나 세네카 같은 유명한 자살 사례가 중세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고 자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에게는 간접 자살이라는 대체행위가 있었다. 유희적 자살이라고 불리는 마상시합이나 자발적 순교로 포장한 전쟁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자살은 대체로 비난을 받았지만 문학과 연극판에서는 그에 대해 다른 시선을 보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루크레티우스, 브루투스, 세네카 등의 전기물이 읽히면서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왜 자살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햄릿’과 같은 연극무대를 통해 생과 사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거듭 투영되면서 자살이 하나의 개인행동이라는 의식이 싹텄다. 계몽주의로 넘어가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기 살해’를 ‘자살’(suicide)로 불렀다. 영국에서 매주 ‘사망 내역’을 실은 신문이 발간됐고 유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실연, 가정불화, 수치, 회한 등 일반적인 인생사가 자살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자살에 대한 평가는 다른 양상이었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살의 ‘계급 차별’이다. 귀족이나 지성인의 자살은 명예 회복의 길이요, 지적 성찰과 회한의 결과로 봤다. 그러나 평민의 자살은 비참하고 지난한 현실의 결과나 책임 회피로 치부됐다. 책은 19~20세기 자살의 원인과 평가도 언급하면서 차근차근 핵심으로 다가간다. 자살 논쟁이 치열했던 16~18세기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지만, 19~20세기에는 자살에 사회·심리학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개인의 죄의식을 부추기고 집권층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자살을 은폐해 오히려 논쟁과 고민이 퇴행됐다고 분석한다.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전제로 고통을 견디고서라도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지, 자살의 과거사를 탐구하면서 ‘죽음 윤리’를 환기시킨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눈부신 프로방스의 여름… 카뮈와 함께 걷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 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1975년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른다섯 살의 김화영은 ‘행복의 충격’을 이렇게 끝맺었다. 엑스대학교 프랑스 현대문학과 사무실에 찾아가 어눌한 불어를 더듬거리며 얼굴을 붉힌 지 6년 만이었다. 고국을 등으로 밀어내며 떠나 청춘의 폭풍을 말하던 젊은 불문학도는 어느새 일흔이 훌쩍 넘었다. 풍경은 달라졌다. ‘40년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기숙사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던 그 높고 아름다운 석축의 육교는 어디쯤일까? (중략) 그때 가슴 졸이던 젊음은 어느 모퉁이로 돌아갔을까?’(15쪽) 김화영(72)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의 산문집 ‘여름의 묘약’은 ‘행복의 충격’의 속편 격이다. ‘행복의 충격’보다 시간에 대한 명상과 관조는 깊어졌지만, 새로운 세계에 기꺼이 유혹당하고 삶의 기쁨에 약동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행복의 충격’이 일종의 여행기였다면, ‘여름의 묘약’은 휴가기에 가깝다. 책은 김 교수가 2011년과 2012년 프랑스에 머물며 보고 느낀 내용을 담았다. 그가 23년에 걸쳐 전집을 번역한 알베르 카뮈의 생가를 찾아 딸 카트린 카뮈를 만나고 말라르메와 발자크, 장 지오노의 흔적을 찾는다. 불현듯 써내린 그의 단편적 감상들에서 프랑스 문학과 예술에 일생을 천착한 학문의 깊이가 감지된다. 낮잠을 자려다 살바도르 달리의 ‘열쇠를 가진 잠’ 이야기를 생각하고, 수영에서 돌아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는 식이다. 프랑스의 공간과 음식, 문화에 대한 풍부한 설명도 녹아 있다. 여행을 마친 김 교수는 “빛나는 여름, 너무나 짧았던 여름은 끝났다”고 적는다. 그것은 물론 프로방스의 여름과 함께 뜨거웠던 젊음을 뒤돌아보는 노 학자의 담담한 회고로 읽힌다. 불문학자답게 그는 보들레르를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싱싱한 빛이여!’ 짧았기에 더 잊을 수 없는 그 빛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리라.’(156쪽)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도서전에 간 박 대통령/이순녀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도서전에 간 박 대통령/이순녀 문화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전시장에서 손수 책을 구입하자 출판계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올해 19회를 맞은 서울국제도서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47년 경기도 학무국이 주최한 교육전람회가 시초다. 1954년 도서전으로 이름을 바꿔 2회 행사를 치른 뒤 매년 전국도서전을 열어오다 1995년 국제도서전으로 외연을 넓혔다. 현직 대통령이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 199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14년 만이니 출판계가 흥분할 만하다. 박 대통령도 1978년 청와대 시절 도서전을 찾은 이후 35년 만의 방문이니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책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구현하는 인프라”라면서 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출판산업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도 했다.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기는커녕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출판업계로선 가뭄 끝에 단비나 다름없다. 책에 대한 애정과 지원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 못지않게 박 대통령은 이날 중요한 메시지 두 가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하나는 인문서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전시장에서 인문서 출판사 ‘책세상’ 부스에 들러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답성호원’, ‘철학과 마음의 치유’, ‘유럽의 교육’,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일러스트판 등 다섯 권의 책을 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인문서적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출판계가 고무돼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986년 설립된 ‘책세상’은 사장까지 포함해 총 직원이 11명에 불과한 작은 출판사이지만 인문·사회과학, 문학, 예술 분야에서 양질의 책을 내는 것으로 평판이 높다. 벌써 ‘대통령이 산 책’이라는 후광 효과로 주문이 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가로 책을 산 것이다. ‘책세상’의 이영희 부장은 “도서전 기간에는 할인 행사를 하지만 대통령께는 정가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요즘 정가제가 문제 아니냐’고 관심을 보이면서 정가로 구입하셨다”고 전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해묵은 현안이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 도서만 최대 19%까지로 할인율을 제한하고, 그 이후의 책값 할인은 무제한이다. 하지만 갓 나온 신간마저도 온라인 서점의 온갖 편법과 마케팅 술책에 할인 규정이 유명무실해지면서 경영난을 못 견딘 출판사와 중소서점이 줄도산하는 등 출판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이에 따라 기간에 상관없이 무조건 할인율을 10%로 제한하는 개정안이 입법 추진되고 있지만 온라인 서점의 반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가로 책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도서정가제 개정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 대통령이 도서전에서 이벤트성으로 ‘인문서’를, 그것도 ‘정가’로 구입한 것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한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인문서에 등 돌린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도서정가제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의 계기를 제공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까. coral@seoul.co.kr
  • 朴대통령, 도서전서 책 구매 까닭은

    朴대통령, 도서전서 책 구매 까닭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박근혜(얼굴) 대통령이 5권의 책을 구입해 관심을 끈다. 박 대통령은 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한 뒤 도서상품권으로 조선시대 유학자인 율곡 이이가 우계 성혼과 주고받은 서신을 정리한 ‘답성호원’을 비롯해 5권의 책을 직접 샀다고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조선시대 정조가 세자 시절 실학자 홍대용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을 기반으로 김정현 원광대 교수가 철학 상담 치료에 관해 적은 ‘철학과 마음의 치유’,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일러스트 카뮈’,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로맹가리의 데뷔 소설인 ‘유럽의 교육’ 등이 포함됐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도서전 주빈국인 인도의 인적자원개발부 장관으로부터 ‘스리라트나 김수로-한국의 인도 공주 전설’을 선물받기도 했다. 이 책은 가야국 시조인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결혼 등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막식 축사를 통해 “새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구현하는 데 책은 소중한 인프라”라면서 “우리 출판산업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좀 더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책을 기반으로 영화와 애니메이션, 음악과 뮤지컬,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연계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어 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은둔’ 무라카미의 생각 엿보기

    무라카미 하루키(64)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만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낙서 몇 장만 끄적거려도 단박에 화제가 되는 베스트 셀러 작가의 고고한 일상과 속내가 독자들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낯가림이 심해 인터뷰조차 안 하기로 유명한 무라카미는 독자와의 소통 창구를 하나 열어 놨다. 바로 에세이다. 그는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하필 우롱차일까. 무라카미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밖에 안 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왕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비채 펴냄)는 전 세계 50개국에서 번역된 무라카미의 에세이집 ‘무라카미 라디오’의 마지막 세 번째 책이다. 일본 패션 주간지 ‘앙앙’에 연재됐던 에세이들을 모았다. 썰렁하고 퇴폐적인 무라카미식 농담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배꼽을 잡고 웃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쿨하고 때론 감성적인 문장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전해 준다. 그는 에세이에서 자신을 못 생기고 후줄근한 아저씨 정도로 치부한다. 그리고 소탈하게 속내를 까발린다. 이를 테면 헬스장에서 바이크 머신 페달을 밟으며 에너지를 그냥 흘려보낼 게 아니라 차곡차곡 모아 사거리 신호등 전력에라도 보태자는 발칙한 상상이다. 길모퉁이에 바이크 머신을 놓고 자원봉사자가 페달을 밟아 발전하면 에너지 포인트를 제공하는 식으로 원자력 발전을 대체하자는 주장도 펼친다. 성욕이 넘치는 고교생에게 ‘헌욕(獻慾) 수첩’을 만들어 ‘헌욕 센터’에서 전력화하자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꺼내 놓는다. 자학 개그를 연상시키는 터무니없는 수다 속에선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헨리 밀러, 알베르 카뮈 같은 대문호들을 만날 수도 있다.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 네 가지를 이루어야 한다’는 헤밍웨이의 말과 함께 자신이 책을 쓰는 것 외에 나무를 심거나 투우를 하고, 아들을 낳는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란 자책을 늘어놓는다. 이어 도호쿠 지방의 목장에서 만난 황소 이야기를 소개한다. 무라카미의 에세이는 “새삼스럽지만 세상은 정말 다양하다”는 작가의 말을 각인시킨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명화 21편에 비친 우리 삶, 그리고 ‘인문학적 투쟁’

    최근 한국은 ‘사상가’ 열풍에 빠졌다. 각종 인문학 콘서트도 인기다. 그런데 대체 이런 것들이 나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나. ‘삶으로부터의 혁명’(정지우·이우정 지음, 이경 펴냄)은 이 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이 밝혔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한 인문학적 투쟁”이 책의 근간이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는 적시되지 않았으나, 흐름상 ‘청춘, 그 수많은 군상’ 쯤으로 이해하면 맞지 싶다. 책은 일관되게 삶을 강조하고 있다. 삶의 대척점 또한 자살이 아닌 현실이다. 저자들은 현실만 강조되던 시대는 이미 근대가 됐고, 삶을 중심에 둔 현대로 넘어왔으니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삶,그리고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청춘에 대한 사회적 동정보다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문학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외친다. 저자들이 책 속으로 끌고 들어온 분석의 틀은 방대하다. 프로이트, 쇼펜하우어 등 전통적인 철학자들을 낡은 책장에서 끄집어 냈다. 마이클 샌델과 슬라보예 지첵, 한병철 등 우리 시대를 뒤흔들고 있는 담론들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사르트르나 카뮈 등 소설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추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빅 피시’ 등 21편의 명화들을 인용해 현대 사회의 프레임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예컨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를 통해 저자들은 주인자아와 노예자아, 그리고 제3의 자아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를 꿈꾸던 주인공 앤드리아 삭스는 우연히 최고의 패션 잡지사에 취직을 한다. 그의 역할은 패션 잡지계 최고의 편집장으로 꼽히는 미란다 프리슬리의 비서다. 여기서 그의 주인자아는 패션 잡지사가 자신의 현실이라 받아들였고, 노예자아는 흔들림 없이 온갖 수모를 다 이겨내는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곧 변수가 생긴다. 남자 친구다. 그 탓에 영화는 통속극에서 흔히 보던 설정, 그러니까 바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은 뒤, 현실에서의 성공을 뒤로 한 채 다른 삶으로 돌아선다는, 뻔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저자들은 이 과정에 개입한 것이 제3의 자아라고 했다. 제3의 자아는 주인자아-노예자아의 관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그게 옳은지 끊임없이 되묻는 역할을 한다. 현실을 ‘당연히 그러해야 할 어떤 것’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끊임없이 되짚어 봐야 삭스처럼 ‘삶’이 있는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1만 65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냉혹함 속에 묻어나는 ‘사람 냄새’

    냉혹함 속에 묻어나는 ‘사람 냄새’

    태양이 너무 이글거려 총을 쐈다는, 대책 없는 뫼르소의 부조리한 삶을 그려냈던 ‘이방인’이 ‘일러스트 이방인’(알베르 카뮈 지음, 호세 무뇨스 그림,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으로 다시 나왔다. 제목 그대로 포인트는 일러스트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명확한 반대와 식민지 알제리의 완전 독립에 부정적이었다는 이유로 전후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에게 경멸받았으나 그 덕분에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평가받고 있다는 카뮈보다, 그림 그린 호세 무뇨스가 더 눈길을 끈다. 혹시 ‘신 시티’, ‘300’ 같은 영화를 기억하는지. 극강의 마초풍 그림에 대한 호불호야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찌됐건 간에 다소 퇴폐적일 정도로 탐미적인 화면을 선보인 영화말이다. 미국 최고의 그래픽노블 작가 프랭크 밀러가 원작자인데, 이 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흑백일러스트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무뇨스다. 강렬한 흑백 판화풍의 그림으로 냉혹함 가운데서 사람 냄새를 뽑아내는 무뇨스의 그림은, 어쩌면 뫼르소의 내면풍경과 아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시원한 그림에 맞춰 본문은 자잘한 글씨체로 자유롭게 배치해 뒀는데, 그런 자유스러움 덕분에 생겨난 하얀 여백에서 쉼표, 말줄임표, 의문부호 등 다양한 문장이 읽히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이방인’ 출간 70주년,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출간됐다. 그림을 소화해 내려다 보니 책이 훌쩍 커졌다. 출판사에선 사륙배판변형이라는데, 일반책 두 배보다 더 크다는 얘기다. 웬만한 월간지보다 더 큰데 길쭉한 모양새에다 얇다 보니 들기에 부담스럽진 않다. 그러고 보니 1월 4일은 카뮈의 기일이었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방향없는 몸짓 어정쩡한 시선 그게 우리더라

    방향없는 몸짓 어정쩡한 시선 그게 우리더라

    “맞아요. 저 표정,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저 표정, 그게 어떤 연기나 쇼가 아니라 진짜 사람의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이라고 봤습니다. 양가성을 가진 표정이지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 오원배(59) 작가를 서울 필동 동국대 작업실에서 만났다. 학교 내 작업실인데 복층 공간이라 높이가 상당했다. 원래 보일러실 옆에 붙은 창고 같은 공간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차지하게 됐고, 학교에서 이리저리 손봐준 데다 사비까지 얹어서 작업실로 고쳐 쓰고 있다.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도 “작업실을 오가려면 시간이 낭비되니까,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학교 안에 큰 작업실이 있는 게 꿈이에요. 저야 복받은 거죠.”라고 받아넘긴다. 이번 전시 제목은 ‘회화적 몸의 언어’. 몸의 언어를 내건 전시답게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동작은 아주 크고 다이내믹하다. 다만 뭔가 방향성은 없어 뵌다. 초점 없이 흐릿한 눈처럼, 어두운 굴 속을 더듬더듬 짚어 나가는 모습들이다. 무얼 찾아 나가나 싶어 표정을 살펴볼라치면, 그냥 중립적이다. 당황하거나 겁먹었다든지, 저기 멀리 어디선가 출구에서 나오는 빛을 발견했다든지 하는 표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온몸의 신경세포를 곤두세워 주변 상황을 더듬어 나가는 데만 몰두하는 표정들이다. 작가가 자살이냐, 반항이냐, 희망이냐를 두고 고민했던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이유다. 또 작가의 작품을 두고 ‘실존’, ‘소외’ 같은 단어들이 따라붙는 이유다. ●700~1000호짜리 20점… 미술관 전관 채워 그림은 또 압도적으로 크다. 사실 금호미술관 전관을 다 쓰는 전시라는 말, 그리고 전시하는 작품 수가 20여점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워낙 대작을 많이 선보여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 넓은 공간을 다 채우나 싶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림 하나가 700~1000호다. 캔버스 두 개를 덧대어 만든 작품도 여럿이다. 젊었을 때야 신났더라도 나이 들면서는 은근 후회하지 않았냐 했더니 “이상하게도 대형 작업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고 웃더니 “1980년대 프랑스 유학 때 아주 강렬한 대작들을 많이 봐서 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또 대학에 자리잡은 작가다 보니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작품성 있는 그림을 선보여야 한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앞으로 몇년간은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내리겠는데, 더 나이가 들면 전동리프트를 사서 그걸로 오르내려야 할 것 같다.”며 웃는다. 그렇게 큰 캔버스 위에 그려놓다 보니 인물들은 “실제 인체의 3배 크기”라고 한다. ●“닳고 닳은 몽당 붓 거친 느낌 그림 맛 살지…” 또 작가는 몽당 붓을 선호한다. 아니 공사장에서 쓰는 붓도 제법 쓴다고 했다. 부드러운 붓으로는 뭔가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다 직접 물감을 만들어 쓴다. “남들은 천연안료 쓰냐고 부러워하는데 내가 쓰는 건 다 화학약품”이라며 웃었다. 몸에 해로울 법도 한데 아직 별 이상이 없는 걸 보니 더 작업해도 될 것 같단다. 이번에는 독특한 공간도 선보인다. 그간 작업에서 배경이 주로 추상적인 공간이었다면, 이번엔 정밀한 기계식 공장의 풍경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빽빽하게 기계설비가 들어찬 공간이다. 인천 지역 공장 풍경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우연한 기회에 공장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분위기와 공간 분할 같은 것들이 시선을 붙잡아 끌었다.”고 했다. 기기묘묘한 철골구조와 요즘은 웬만한 공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벨트 구동 기계들이 쭉 깔려 있다. 특유의 검은색 배경에 비하자면 밝아졌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기계류들이라서 그런지 쇳가루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대작 외에도 틈틈이 그려온 드로잉 200여점도 한데 모아 전시한다. 대작을 보다, 이러다가 회고전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농담 삼아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자들이 많은데, 작품을 위해 이들을 찍어둔 사진을 함께 공개해 버리겠단다. 그림에서 보듯 당연히 인물들은 헐벗고 있다. 긴장하는 게 좋겠다. (02)720-5114.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국제정원박람회 성공을 기대한다/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제정원박람회 성공을 기대한다/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이방인’의 작가 카뮈는 “런던은 아침마다 새들이 잠을 깨우는 정원의 도시”라고 말했다. 영국인의 정원 사랑은 대단하다. 영국인의 70%가 주택에 살며 정원을 가꾼다.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도 마찬가지다. 정원은 주인의 지성, 사회적 지위, 나아가 라이프 스타일을 뽐내는 무대로 여겨진다. 영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취미 중 하나가 정원 가꾸기이다 보니 BBC를 비롯한 영국 방송들은 정원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송한다. 런던에서 매년 5월에 개최되는 ‘첼시 플라워 쇼’는 월드컵 경기보다 더 인기가 있을 정도다(최은숙, 2010). 정원에 관한 세계적인 축제가 국제정원박람회다. 효시는 영국이다. 정원박람회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독일과 프랑스를 거쳐 미국과 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정원문화는 서구 귀족·상류사회에서 점차 일반화되어 지금은 많은 서구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원문화에 익숙한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한국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을 제법 안다고 하는 유럽의 지식인들을 만나 보면 한국의 역동성에 대해 자주 칭송한다. 북한 변수로 인해 늘 불안정하면서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기간에 고도성장한 국가, 반도체 등 세계 일류 제품을 생산해 내는 국가 등 경제 중심의 국가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들도 많지만, 경제 일변도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제법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새롭게 인식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국제이벤트가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된다. 내년 4월부터 전남 순천만 일원에서 개최되는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바로 그 행사다. ‘지구의 정원, 순천만’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개최되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순천시는 22만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470만명의 관람객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박람회의 경제적 효과는 생산유발효과가 1조 3300억원, 부가가치가 6800억원이 될 것으로 시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국제행사가 지금 순조롭게 잘 준비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염려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당장 두달 후에 개최되는 여수 세계박람회는 유치단계부터 국민적 관심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 유치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순천은 여수보다 부족한 것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 것이다. 여수 세계박람회를 위해 준비한 인프라를 인접한 순천이 함께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행사장 준비에서부터 취약한 숙박시설, 수많은 국내외 관람객을 맞기 위한 시민의식을 높이는 일, 나아가 국제 홍보,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순천시와 조직위원회가 세밀히 챙겨야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 앞으로 남은 1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천에도 정치 바람이 거세다. 정치의 계절이 되다 보니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작년 12월부터 시장이 공석 상태이다.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는 유치과정이 어떻든, 순천시 차원보다 국가차원에서 보다 큰 의미를 갖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박람회는 ‘정원’이라는 테마가 주는 강점도 있지만, 행사 개최 장소가 ‘하늘이 내린 정원’이라는 광활한 순천만 갈대밭 인근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의 하나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를 찾는 외국인들이 박람회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생태 보고를 직접 둘러본다면 아무리 가는 길이 멀고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순천을 다시 찾을 것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국이 경제에만 매달리는 국가가 아니라 한류와 같은 문화 콘텐츠가 있고, 나아가 세계적인 자연 콘텐츠까지 갖추고 있는 멋진 국가라는 이미지를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만들어 갈 수 있다. 국가 이미지의 중요성을 어느 정부보다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보다 깊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청된다.
  • [씨줄날줄] 자살/주병철 논설위원

    자살은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라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자살의 원인과 의도 등에 따라 정의와 한계는 모호하다. 시비(是非)에 관한 윤리관과 종교관에 따라서도 자살 긍정론자와 자살 부정론자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지만 염세주의자가 아닌 한 자살을 미화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플루타르크는 영웅전에서 자살을 이렇게 비유했다. “자살은 명예를 빛내기 위하여 할 일이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수치스러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알베르트 카뮈는 “자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멜로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종의 고백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시지푸스의 신화) 이런 일화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가 루소를 만나기 위해 몽모랑 시의 별장으로 갔을 때 루소는 연못 주위를 산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게, 나는 스무 번이나 이 연못에서 투신자살하려고 했네.”, “그러면 왜 이때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소.”, “물속에 손을 넣어 보니까 차가워서 견딜 수 있어야지.” 역사적으로 자살은 권력자, 문인, 예술가 등의 전유물이었다. “어머니를 땅에 묻은 뒤 한 번도 운 적이 없다.”는 ‘냉혈한’ 히틀러도 결국 자살했고, 나폴레옹도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기원전 30년에는 자신의 운명이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자살하자 그의 연인이자 옥타비아누스에 대항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도 뒤따라 자살했다. 동반자살의 효시쯤 된다. 작곡가 슈만, 극작가 단테, 화가 고흐 등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자살하기 전 자신의 사망 기사를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17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25살의 나이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자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는데, 20세기에는 자살 모임까지 등장했다. 독일에서 자살 통계를 작성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인터넷 보급이 빠른 우리나라에서도 자살 사이트가 생겨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근년에는 최진실·장자연 등 유명 연예인들이 우울증 등으로 줄줄이 목매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제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툭하면 처지를 비관하거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자살하곤 한다.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자살을 고백으로 여겨선 안 될 일이다. 생명은 고귀하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열린세상] 아웃사이더가 이끈 세상에 대하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웃사이더가 이끈 세상에 대하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아웃사이더, 하면 반항적인 10대의 모습을 그린 힌턴(Susan E. Hinton)의 소설을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웃사이더란 제목의 평론집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 있다. 당시 24세의 콜린 윌슨이다. 소설 아웃사이더는 1967년에 나와 1983년 영화로 제작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19 56년에 나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을 감동시켰다. 이 책으로 청년 윌슨은 세계적 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윌슨은 영국 레스터 지방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업학교를 다닌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졸업 후 16세 소년 윌슨은 공장을 전전하며 노숙을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책읽기에 열광했다. 런던 대영박물관이 그의 독서공간이었다. 카뮈, 카프카, 샤르트르, 도스토옙스키 등 최고 문인과 철학자의 작품을 섭렵한 끝에 아웃사이더를 내놓았다. 배움이 짧은 애송이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에 세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윌슨은 이 작품에서 존재가치조차 없는 하잘것없는 사람에게서 가치를 찾으려 했다.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도 바르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사이더는 제도권 내 사람이고, 아웃사이더는 제도권 밖의 사람이다. 인사이더는 힘이 있고, 아웃사이더는 힘이 없다. 그래서 인사이더는 이끌고, 아웃사이더는 따른다. 이것이 보통 사회인데, 윌슨은 다른 시각에서 아웃사이더를 바라보았다. 윌슨의 눈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이 역전되기도 한다는 현실에 꽂혔다. 인사이더가 스스로의 역할을 하지 못해 아웃사이더가 나설 때 그렇다. 이 상황이 오면 아웃사이더가 사회를 이끌고 인사이더는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한다. 어느 순간 아웃사이더는 윌슨이 활동했던 영국의 문인클럽, ‘분노의 젊은 사람들’(Angry Young Men)처럼 세상을 향해 진실을 토해내고, 부조리를 고발하며, 행동에 나선다. 2011년 지구상에 행동하는 아웃사이더가 출몰했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아랍의 봄(Arab Spring) 시위를 이끌었다. 그 시위는 튀니지에 이어 알제리, 수단,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튀니지와 이집트 독재자가 축출되었고, 리비아에서는 내전 끝에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를 선정할 만큼 아웃사이더의 역할은 컸다. 아랍의 봄 시위자들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아웃사이더의 역할은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이끌었다. 제1야당임에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해 불임정당이라 조롱받던 민주당으로 하여금 야권 통합을 이끌도록 동력을 제공했다. 한나라당에는 당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새로운 인물 안철수를 내세웠다. 재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반값 등록금 시위에서 보듯 가진 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사회 인사이더는 정치를 주름잡았고, 경제를 주물렀다. 엄청난 돈을 만지며 승자의 축배를 들었다. 정치적으로 인사이더는 리더였고, 아웃사이더는 추종자였다. 경제적으로 인사이더는 가진 자였고, 아웃사이더는 머슴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사이더는 위너(winner)였고, 아웃사이더는 루저(loser)였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힘을 이기적으로 썼을 뿐 사회를 위해 활용하지 못했다. 돈으로 그들만의 아성을 쌓았을 뿐 나누기에 인색했다. 위너였음에도 루저를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천하를 손에 쥔 대통령은 인재 활용에서 내 편으로 도배질을 했고, 여의도 정치권은 잘난 사람의 영입에 소극적이었다. 재벌은 3대 세습에 열을 올렸다. 24세 청년 윌슨은 아웃사이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병에 걸린 것을 깨닫지 못하는 문명사회에서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 아웃사이더라고 말이다. 2012년, 인사이더도 환자임을 자각하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동참하는 행동을 보이면 참 좋겠다.
  •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올해로 연출 50년을 맞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 김정옥(79) 연출가. 우리 나이로 팔순인 그가 요즘 ‘젊음의 거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 100번째 연출 작품이자 50주년 기념작인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이하 ‘흑인 창녀’)을 올리는 것.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쁜 그를 지난 16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를 멋지게 눌러쓰고 나타난 그는 국내 아이폰 최고령 사용자로 조사됐을 만큼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즐기는 이다. 그런 그가 100번째 작품에서는 유난히 고집을 피웠다. 여주인공 캐스팅을 두고서다. 그는 배우 김성녀(61)를 고집했다. ‘템플’은 과거에 얽매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런데 환갑을 넘긴 김성녀라니, 주위에서 곤혹스러울 만도 했다. ●美 포크너 소설을 佛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 “내가 인생을 80년 살았지. 그중 50년을 연극했고…. 그런데 겪어 보니까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한 50~60대 배우들밖에 없더라고. 젊은 연기자들은 매력적으론 보일 수 있지만 성숙한 재미를 보여주지 못해. 인생의 전성기는 예순부터야. 안팎으로 성숙함이 깃드는 시기거든. 여배우도 50~60대 때 가장 아름다워. 무대 위에서 아주 빛나고 우아하지. 그런 면에서 김성녀만 한 적임자가 또 어디 있겠어.” 그렇다면 왜 하필 ‘흑인 창녀’를 100번째로 선택했을까. “99개의 작품을 연출해 봤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문학과 연극의 만남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작품이지. 배역도 중요한데 작품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산만해져. 배우 구하기도 어렵고…. 알맹이가 있으면서 압축된 무대를 만드는 데 이 작품이 제격이었어.” ‘흑인 창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소설가 월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상류층 백인 여성 템플이 자신의 아기를 죽인 흑인 하녀 낸시를 구명하기 위해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내용의 추리극이다. 1969년 국내 무대에 처음 소개한 이가 다름 아닌 김정옥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을 받았다. 이후 1978년까지 배우를 달리하며 여러 번 무대에 올렸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제목이 다소 파격적이다. “원작 제목은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그런데 작품에 수녀는 나오지 않아. 포크너와 카뮈는 작품 속 흑인 창녀를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수녀라고 생각해 그런 제목을 붙인 거 같아. 하지만 연극은 흥행성도 생각해야지.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는 다르거든. 그래서 고민 끝에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라고 제목을 바꿨지.” 그 과정에 ‘시련’도 많았단다. “서슬이 시퍼렇던 1960년대 말 아니야. 어느 날 검열에서 창녀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 ‘흑인 수녀를 위한 고백’으로 바꿨지. 그랬더니 관객이 확 줄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 공연땐 ‘흑인 O녀의 고백’으로 고쳤어. 검열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 의미도 있었지. 하하.” 당시에는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1978년 이후 무대에서 사라진 만큼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하다. 노()연출가는 그런 관객들을 위해 관전 포인트를 친절하게 짚어줬다.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겉치레가 아니라는 게 주제야. 난초는 추위를 겪어야 제대로 꽃을 피운다고 하지 않나. 인간도 고통과 고뇌를 겪음으로써 향기를 갖게 되지. 주변을 보게나. 사람들이 점점 거짓에 포장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을 되돌아 보게 해줘.” 그는 여러 번 연출한 작품이지만 할 때마다 새롭다고 했다. 그때마다 연극의 성숙한 맛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도 했다. ●국내 최고령 스마트폰 애용자?… 베레모 즐겨 써 그에게 있어 연극은 ‘삶’ 그 자체이자 ‘종합예술의 결정체’다. 1932년 광주광역시의 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서울로 올라와 수도극장 등에서 영화와 쇼를 보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때는 문학 동인회에서 활동하며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영화도 공부했지만 최종 종착지는 ‘연극’이었다. “내 유년기는 일본강점기 때였어. 광주에선 동맹 파업, 좌익 독서회 사건 등 많은 일이 있었지. 나름대로 그때 내가 건방졌어. 서울에 와서 혼자 공부도 하고 그랬지. 연극을 하나 만든다는 건 한 세계와 한 인생을 만드는 거잖아. 영화는 스폰서가 있어야 했지만 연극은 동호인들끼리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게 됐지.”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학장을 거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그는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을 세 차례나 연임했다. 예술가에서 예술경영인으로, 그리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온 그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향한 열정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전 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수여됐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을 순금으로 도금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서 1위부터 3위까지와 특별상을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부모·남편·언니 모두 노벨상… 종군 기자로 엄친딸 극복했죠”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면서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 퀴리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수상 거부 진정한 이유?… 질투 아닌 자유”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 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도둑맞은 DNA 연구성과… 지하에서 울었죠”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가 그들에게 제가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 “해파리 연구 헌납하고 셔틀버스 기사로 헌신”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밝힌 유전자의 비밀[WHO&WHAT] 아쉽게 놓친 노벨상’가상 수기’ 공모해보니
  •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공고 “전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주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으로 도금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을 1위부터 5위까지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모든 과학자들의 꿈인 최고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도 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심사평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그 윌킨스가 두 사람과 친했죠. 윌킨스는 그들에게 제가 심혈을 기울여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심사평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단호하게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심사평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라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심사평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자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 프로방스서 전해온 감성·사유

    너나없이 쓸 수 있는 일기 또는 여행기다. 하지만 이 평범한 형식의 산문은 예술의 공간과 인물을 넘나들며 금세 몸을 뒤튼다. 알베르 카뮈의 글과 흔적과 접속하며 문학의 향기를 잔뜩 피워내나 싶더니 빈센트 반 고흐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는 빛과 색의 만찬을 한상 가득 차려낸다. 본업인 사회학적 사유 역시 빠질 수 없다. 경계짓기에서 자유로운 산문이 예술의 일부분이자 학문의 영역에 속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 펴냄)은 재불 사회학자이자 ‘전문 산책자’를 지향하는 정수복(57)이 발걸음을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로 옮겼다. 프랑스의 공간에 대해 쓴 세 번째 책이다. 정수복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1990년대 환경운동연합, 사회운동연구소 등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정신적 망명객’으로서 프랑스로 터전을 옮겨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는 2005년 여름 꼬박 한달 동안 프로방스 지역의 몇몇 작고 한적한 마을들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자가 아닌 정주자(定住者)가 돼 느릿하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햇빛과 바람, 문학과 미술을 만끽하며 가진 성찰과 사유를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일기 중간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예술로서 사회학적 사유’의 글들이 들어 있다. 이는 ‘정수복식 글쓰기’를 완성케 하는 대목이자 그의 책이 단순한 여행기 또는 산문집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인문학적 산문집으로 자리매김되는 이유이다. 카뮈가 마지막에 살았던 루르마랭,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무대가 된 뤼베롱 산, 고흐가 말년을 지낸 아를 등의 기억은 이미 전작(前作)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과 또 다른 감성을 건넨다. 파리에서의 치열했던 지성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프로방스는 완전한 휴식의 시간과 공간이니까. 그는 “한국은 빨리빨리 병으로 인해 획일화됐고 그런 모습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영감을 메마르게 한다.”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느림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연극 ‘악령’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도스토옙스키가 쓰고 카뮈가 각색한 작품으로 국내 초연작이다. 서울국제예술공연제 참가작. 2만~5만원. (02)889-3561~2. ●음악극 ‘천변 카바레’ 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트로트 가수의 전설 배호의 이야기를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내 연극과 접목시킨 작품. 4만원. (02)708-5001. ●연극 ‘천국에서의 마지막 계절’ 4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일가족의 얘기를 블랙코미디로 버무렸다. 전석 2만원. (02)889-3561~2.
  • 카뮈 전집, 23년만에 완역

    1987년 산문집 ‘결혼·여름’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프랑스의 앙가주망 지식인의 한 사람인 알베르 카뮈(1913~1960)에 대한 평범한 번역서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소설 ‘이방인’이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무려 23권에 이르는 카뮈의 모든 저작 리스트가 책에 ‘출간 예정’으로 소개됐다. 그리고 꼬박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시사평론’(카뮈 지음, 책세상 펴냄) 번역을 마치면서 이 지난하고 방대한 노작(作)에 마침표를 찍었다. 카뮈와 관련된 모든 책은 책세상과 독점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카뮈 전집의 상당수는 국내 초역이고, 완역이다. 카뮈 타계 50주년이 되는 2010년 1월4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이뤄낸 성과다. 그동안의 고단함은 고스란히 김 명예교수의 몫이다. 그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카뮈 연구자로 꼽힌다. 1974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카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원전에 충실한 번역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려한 글쓰기가 그의 강점이다. 40대 중반의 피끓는 젊은 문학평론가였던 그는 카뮈와 함께하며 어느덧 일흔을 앞둔 노() 학자가 됐다. 그는 서문을 통해 “카뮈의 책 가운데서도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산문,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온전한 번역이 나와 있지 않은 책을 번역한다는 즐거움에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던 1942년 소설 ‘이방인’을 발표,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신문기자이자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적극 가담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됐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1960년 1월4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카뮈 20권 전집에서 빠진 마지막 3권은 ‘시사평론’ 2·3,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서한집’이다. 책세상 측은 “이 책들에 대한 한국 독자의 관심이 너무 떨어져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마당]‘자살공화국’과 인문학의 위기/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자살공화국’과 인문학의 위기/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얼마 전 한국을 대표하는 모델이 프랑스의 자기 집에서 자살했다. 외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최근에는 대통령과 톱스타에 이르기까지 자살이 만연한 ‘자살공화국’이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삶의 재앙이 자살이다. 자살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우리사회에서 빈민, 기업가 등 거의 모든 계층에 퍼져 있는 전염병이다. 죽어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문제를 고뇌해야 한다. 특히 중세 말 흑사병이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2000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세상의 종말이 도래한 것처럼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여 교회와 기득권 세력들은 마녀사냥과 같은 광기를 부추겨서 민중을 통제하고 권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죽음의 손길은 추기경과 왕, 귀족과 기사, 농부와 거지 그리고 은둔한 성자까지 모든 사람을 끌고 간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중세인들은 이 같은 인간 운명을 ‘죽음의 춤(dance macabre)’이라는 예술적 형태로 승화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죽음을 의인화한 해골들이 등장해 산 자들을 ‘저 세상’으로 데려가면서 춤을 추는 것으로 표현하는 드라마, 시, 음악과 회화 등이 창조됐다. 이 춤의 메시지는 죽음의 불가피성과 공정성이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평등은 죽음으로 구현되고, 인간은 결국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을 가졌다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나왔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언제 죽느냐다. 이렇게 불확실한 죽음의 때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자살이다. 자살이란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으로서 가장 어려운 결단이다. 자살에 대한 가장 높은 인문학적 성찰을 한 사람이 알베르 카뮈다. 그는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자살이라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뮈가 자살을 옹호했느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성찰이 인문학의 존재이유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이 인생이다. 그 차이를 심각하게 느낄 때 사람은 우울해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글루미 선데이’는 이런 사람의 모습을 잘 그려낸 영화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을 듣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영화에서 누군가가 했던 말처럼 저주의 노래인가. 아니다. 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기 존재의 심연을 보고 자기 삶의 덧없음에 절망하여 죽음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감기에 걸리듯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병을 앓는다. 이러한 실존적 감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인문학은 현상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없는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성찰하는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위기에 빠진 인문학의 길을 물어야 하는 동시에 인문학에 길을 물어야 하는 창과 방패의 모순에 직면해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우리 시대 인문학자들은 자살이라는 우리 사회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유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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