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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제주도 소나무를 지켜라…올레길 재선충병 방제 현장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제주도 소나무를 지켜라…올레길 재선충병 방제 현장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걷기 여행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대한민국 걷기 여행의 열풍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제주다. 올봄에도 많은 이들이 ‘올레’라고 부르는 제주도 걷기여행길을 찾고 있다. 올레길 어느 코스를 걷든 바닷바람과 어우러진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어서다. 이처럼 제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올레길이 지금 ‘소나무 고사(枯死)길’이 되어 가고 있다. 소나무 재선충병(材線蟲病)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제주도 전체에 있는 소나무 100만 그루 가운데 절반가량이 말라죽어 가고 있다. 재선충병으로 시름하고 있는 섬 전체가 방제에 비상이 걸렸다. 채 1㎜도 되지 않는 소나무 재선충병에 공격당한 제주도 전역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제주시 애월읍의 한 고사목 제거 현장은 기계톱 돌아가는 소음으로 귀청이 얼얼했다. 20m가 훌쩍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지끈’ 굉음을 내며 쓰러지자 작업자들은 익숙한 듯 다른 고사목을 찾아 재빨리 이동했다. 이날만 40그루가 넘는 소나무를 베어냈다는 한 벌목공은 “한마디로 전쟁입니다, 전쟁. 아무리 베어도 끝이 없어요”라며 작업을 서둘렀다. 고내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광령천 양 옆으로 벌겋게 말라죽은 소나무들이 즐비했다. 하천변에 쓰러진 고사목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듯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육지와 달리 제주도는 사실상 섬 전역이 피해 지역이다. 제주도 영주십경(瀛州十景)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굴사(山房窟寺).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 온 절 앞의 소나무도 재선충병을 피해가지 못하고 말라죽었다. 대대적인 고사목 방제작업이 이뤄졌던 산방산 허리 아래에는 발목이 잘린 소나무들이 징검다리처럼 열을 맞춘 듯 빼곡하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잘려나간 나무들의 빈자리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뿌연 잿빛으로 보였다. 산림조합중앙회는 제주도에서 피해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자 지자체 등과 함께 ‘재선충병과의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고사 소나무를 그대로 놔둘 경우 순식간에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앙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25개 지역조합의 임업기능인영림단을 긴급 투입해 본격적으로 방제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두성 산림조합중앙회 산림경영부장은 “재선충병은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기생하는 재선충의 감염에 의해 소나무가 말라죽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감염되면 100% 말라 죽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며, 솔수염하늘소가 부화하기 전인 4월 전까지는 무조건 방제작업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제작업이 가능한 기능 인력과 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고사목의 제거 방법은 훈증처리와 파쇄처리 등 크게 두 가지다. 훈증은 진입로가 좁고 산 위에 있는 감염목에 대해 시행하는 방법이다. 파쇄는 큰 도로 주변이나 대형 트럭의 접근이 용이한 지역에 있는 감염목을 대상으로 한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한천저류지에는 파쇄처리를 거친 톱밥들이 산처럼 높이 쌓였다. 고사목을 우드칩의 형태로 열병합발전소로 보내기 위해서다. 베어낸 소나무를 실어내 잘게 자른 뒤 압착해 덩어리로 만든다. 나중에 장작처럼 사용한다. 산림조합중앙회 산림경영부 이강주 과장은 “기계 분쇄기에 넣고 1.5㎝ 크기로 으깨면 재선충이나 솔수염하늘소 애벌레가 죽어 감염 전파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벌목한 고사목을 땔감으로 쓰기 위해 함부로 가져가면 처벌을 받는다. 위반 시 최고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무단이동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재선충병 안전지대였던 제주는 2004년 처음 재선충병이 관찰돼 긴급 방제작업을 벌였다. 이후 거의 사라지는 듯 했으나 2012년부터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고사한 소나무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지난해부터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소나무 숲(1만 6284㏊)이 제주 전체 산림면적(8만 8874㏊)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데다 주민 생활권 깊숙한 곳까지 소나무가 자리 잡은 탓이다. 오형욱 서귀포시산림조합 지도상무는 “조합이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귀중한 산림자원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며 “겨레의 나무인 소나무를 반드시 지켜 건강한 산림을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우리 민족의 심성을 빼닮은 소나무를 살려내는 데 온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한다. jongwon@seoul.co.kr
  • 산악자전거 타던 중 거대 곰 만난 두 남성 ‘아찔’

    산악자전거 타던 중 거대 곰 만난 두 남성 ‘아찔’

    울창한 산속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던 중에 거대한 곰을 만나 위태로웠던 사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해 8월 4일 브래드 파라스라는 이름의 남성과 그의 사촌 댄은 캐나다 앨버타주(州) 재스퍼국립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사건은 이들이 재스퍼 타운의 언덕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발생한다. 파라스가 언덕 정상에 도착할 무렵, 어디선가 맹수가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자전거 핸들을 돌리는 순간, 언덕 위엔 집채만 한 커다란 곰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곰의 출현에 몹시 당황한 그는 길이 없는 풀숲으로 자전거를 몰고 도망쳤다. 다행히 곰은 쫓아오지 않았다. 뒤이어 도착한 댄은 큰 소리를 질러 곰에게 겁을 주는 듯 하다가 가방에서 곰 퇴치용 스프레이를 꺼냈다. 언덕 위에 있던 곰들은 그를 향해 빠르게 내려오다 약 10m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댄이 들고 있던 곰 퇴치용 스프레이를 경계하는 듯 했다. 어미 곰과 새끼 곰은 잠시 그들을 응시한 후 언덕을 넘어 사라졌다. 당시 두 사람이 곰과 마주쳐 위태로웠던 상황은 이들이 착용한 헬멧 카메라에 모두 포착됐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곰을 만났을 때 대응방법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남자다”, “산에는 절대 혼자 가지 마세요”등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양재 화훼공판장 ‘꽃 경매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양재 화훼공판장 ‘꽃 경매장’을 가다

    봄 기운이 서리기 시작하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대지의 풀과 나무가 깨어나는 모습이 엿보인다. 전국의 꽃시장은 졸업과 입학시즌 대목을 맞아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시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 화훼공판장에서는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꽃들이 시민들의 반가운 손길을 기다린다. 지난 19일 밤, 화훼공판장 본관 1층 경매장은 자정부터 열리는 절화(折花)류 경매 준비에 한창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꽃들을 트레일러로 이동시키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딩동댕동.” 차임벨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빨간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 하얀 국화 등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2층 200개의 응찰석에 대기 중이던 사람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면서 손놀림이 빨라졌다. 경매방식은 경매사가 본인이 책정해 놓은 예정가를 전광판 신호와 함께 떨어뜨리면 중도매인이 적당한 시점에 매수 주문을 넣어 낙찰받는 ‘하향식’으로 진행된다. 쉴 새 없이 이동하는 트레일러에 실린 형형색색의 꽃의 상태를 보면서 최고가와 최저가가 매겨진다. 각자 낙찰받을 가격을 입력하면 그중에서 최고가를 매긴 사람에게 낙찰된다. 새벽에 이루어지는 경매 탓에 경매사들은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밤 9시에 출근하는 오수태 경매실장이 밤새 경매를 관장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대략 아침 8시쯤.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낮에는 잠을 자 둬야 한다. ‘올빼미생활’ 15년째인 그는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식구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 경매사는 “처음에는 생체리듬이 바뀌어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면서 “경매사는 나름대로 농가의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조정자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경매장의 또 다른 식구는 중도매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는 경력과 재산상태 등을 두루 고려해 중도매인 자격을 부여한다. 중도매인 경력 10년차인 박서강(45)씨는 오늘 따라 응찰기의 ‘전량확인’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보기보단 순발력이나 운동신경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는 계속 ‘한발 늦어서’ 원하는 물건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하지 못했다. 하지만 “꽃처럼 환하게, 나이보다 젊게 사니 좋다”며 껄껄 웃는다. 낙찰받은 꽃은 바로바로 차량에 옮겨 싣는다. 꽃의 신선도를 위해 전국 각지로 빨리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꽃은 도매시장에 가면 다시 바빠진다. 상인들은 낙찰받은 꽃을 예쁘게 손질하면서 손님맞이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양재동 꽃시장’으로 불리는 aT 화훼공판장은 올해로 개장 25주년을 맞았다. 화훼공판장에서 운영하는 경매장은 일요일을 제외한 일주일 내내 열린다. 이곳의 경매가격이 우리나라 화훼류 기준가격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본격적인 입학·졸업철을 맞아 꽃값이 강세라지만 화훼농가들은 늘어난 난방비 부담과 저조한 작황, 경기침체 영향으로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공판장 내 매장에서 난을 판매하고 있는 진수희(57)씨는 “경기가 안 좋으면 당연히 씀씀이를 줄이는데,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꽃 소비”라며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화환 보내는 것을 뇌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사실상 꽃을 거의 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꽃 소비금액은 1만 5000원대로 2011년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이 중 경조사용 꽃 소비금액이 85%에 이른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장미 한 송이 정도를 사는 셈이다. 송기복 화훼공판장장은 “꽃의 소비를 촉진하고 꽃을 생활화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특별한 날이 아닌 평상시에 꽃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꽃이 사치품이 아니라 생활 속에 함께 있어야 하는 필수품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꽃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미소짓게 만든다. 다가오는 봄에는 한 번쯤 꽃시장에 들러 누군가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 보자.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사임 1년 지난 명예교황 베네딕트 16세 현재

    사임 1년 지난 명예교황 베네딕트 16세 현재

    지난해 2월 11일(현지시간) 교황 사임을 발표했던 베네딕트16세(87)의 모습이 10일 카메라에 포착됐다. 미국 스플래시닷컴이 공개한 사진 속의 ‘명예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의 한 저택에서 흰 외투 차림에 지팡이를 집고 산책하고 있다. 베네딕트16세가 “고령으로 직무수행이 어렵다”며 전격 사임을 표명한 지 꼭 1년만이다. 같은 달 28일 퇴임했다. 동시에 ‘명예 교황’에 추대됐다. 종신직인 교황의 생전(生前) 사임은 중세인 1294년 첼레스티노 5세의 사임 이후 처음이었다 닷컴 측이 찍은 사진은 베네딕트16세가 비서신부와 함께 거닐거나, 평신도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한 여성은 베네딕트16세의 차(茶)를 위해 레몬을 따고 있는 장면이다. 베네딕트16세는 로마 부근 카스텔간돌포에서 평신도 자원봉사자 등과 함께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날씨에 울고 웃는 사람들… 기상청에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날씨에 울고 웃는 사람들… 기상청에 가다

    입춘(立春)이 지났다. 옛 조상들은 이 시기면 서서히 농사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날씨의 예측은 농작물의 파종에서 성장, 수확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천문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 준다는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큰 책무였다. 농경사회를 벗어났어도 일기예보는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정보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흘째 이어지던 입춘 한파가 누그러지기 시작한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본청. 예보실 안은 컴퓨터와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 쏟아져 들어오는 국내외 각종 기상자료를 공유하고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한반도 전체 기상상황을 지방기상청에 전달하고 세부적으로 논의하는 화상회의 시간. 기상청 예보관들은 지방청과 관할 기상대의 관측 자료를 분석한 후 영상토론을 통해 기상예보를 최종적으로 작성한다. 방송국 기상 캐스터가 발표하는 전국의 지역 기상예보는 이곳 자료들을 바탕으로 나온다. 기상예보관들은 1년 내내 하늘을 쳐다보며 마음 졸이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해 알려야 한다. 이들은 수시로 하늘과 땅을 살핀다.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 우리들의 숙명입니다.” 전준모 예보관의 말이다. 태풍·집중호우와 같은 재해기상(災害氣象)이 생기면 모든 예보관들은 비상근무에 돌입한다. 그러나 일기예보가 틀렸을 땐 원망의 대상이 된다. 전 예보관은 “정확한 예보를 하려고 하지만 틀렸다는 항의 전화에 시달릴 때가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기술적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는 한계에 대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고 말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적설량(강우량)과 안개 발생 유무다. 산악지형에 따른 기류변화가 심한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이다. 현재 비나 눈이 올지 안 올지에 대한 예보의 정확도를 92%가량까지 끌어올린 상태지만 국민들은 정확하게 비나 눈이 오는 시간까지 맞히기를 원하고 있다. “근무를 마치고 밤에 퇴근하면 피곤이 밀려와 일찍 잠들고 싶지만, 혹시나 예보가 틀리지는 않을까 걱정돼 잠 못 드는 일도 다반사”라고 일상을 전했다. 일기예보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오늘날 기상학은 미래를 예측하는 블루오션 산업이다. 식음료업체, 여행업계, 패션계 등 산업분야에서는 ‘날씨경영’을 도입한 기상마케팅을 한다. 일기예보의 사회적 가치는 무한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기상청의 예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예보는 관측과 감시, 자료 수집과 정리, 예측의 연속 과정이다. 날씨 예보는 슈퍼컴퓨터와 예보관의 협동 작업이다. 예보는 전 국민을 상대로 시험을 치는 일이다. 성적표는 몇 시간 뒤면 곧바로 나온다. 예보관들은 그래서 “1년에 두 살씩 먹는다”고 말한다.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는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이다. “예보관이 힘들수록 국민들은 더 편해진다는 생각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날씨예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조금만 후한 점수를 준다면 그들은 더 정확한 예보로 보답할지 모른다. 곧 남녘의 꽃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jongwon@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인천국제공항 전통문화의 공간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인천국제공항 전통문화의 공간을 가다

    관광객 1000만 시대에 발맞춰 지난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는 공항의 면세구역에서는 다양한 우리나라 전통문화 시연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공항이 한국을 다녀가는 외국 여행객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전해주면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 22일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3층 면세구역에서는 집박 소리와 함께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외침이 들렸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궁궐 안을 산책하는 모습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 행렬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공항 이용객에게 우리의 전통 궁중문화를 알리기 위해 하루 3차례씩 진행된다.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23명의 등장인물들이 스토리에 따라 다양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퍼레이드가 문화센터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 멈춰 서자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왕비와 같이 사진을 찍던 러시아 관광객 스비에타는 “감동적인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면세구역에는 전통문화체험관과 전통공예전시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2009년부터 출국장 동·서편 탑승구 통로에 ‘한국전통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센터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Free Event’(프리 이벤트) 푯말. 모든 체험과 공연은 무료다. 강정임 한국전통문화센터 매니저는 “일년 내내 판소리, 가야금, 대금 연주 등 다양한 장르의 전통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이 세 번째인 자메이카 관광객 프레터는 이곳에 오기 위해 탑승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가 체험해본 것은 한지탁본. 먹물을 머금은 솜방망이로 탁본 틀에 올린 한지를 툭툭 치자 틀에 있던 전통문양이 한지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우와~대단해요”라고 감탄하며 “한국에 오면 올수록 한국전통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출국장 4층 환승 라운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통공예전시관’은 단순한 볼거리 제공 차원을 넘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23년 만에 국경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을 기념하여 ‘한글, 세상을 물들이다’라는 한글 관련 전시물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학생인 루빈스타인은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이며, 표현이 무궁무진함에 놀랐다”고 말했다. 여객터미널 중앙 지역 4층 ‘한국문화거리’는 기와집과 정자 등 전통가옥으로 꾸며져 공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천공항은 한국과의 첫 만남의 장소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다. 한류 열풍과 올해 인천아시안게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늘어나는 외국 방문객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효과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혼이 깃든 공항’으로 거듭나기 위해 인천공항은 현재 변신 중이다. 글·사진 jongwon@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400㏄의 기적’…대한적십자사 ‘헌혈의 집’ ‘혈액원’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400㏄의 기적’…대한적십자사 ‘헌혈의 집’ ‘혈액원’ 가다

    해마다 되풀이됐던 ‘피 가뭄’ 현상이 해갈되는 듯하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헌혈자가 늘어나면서 혈액 비축량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모두 270만 8172명이 헌혈에 참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의 단체 헌혈에서 ‘헌혈의 집’을 통한 개인 헌혈로 정책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대한적십자사 ‘구로헌혈의 집’은 지하철역과 버스 환승장이 있는 교통 요지에 자리하고 있다. 날마다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엄청난 용량의 혈액이 흘러들고 또 나가는 곳이다. 헌혈자 기준으로 전국 1, 2위를 다투는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를 본다’. 헌혈의 집 박경미 간호사는 “인터넷, 책, TV를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헌혈을 할 수 있다”며 “쾌적한 실내는 물론 헌혈자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환경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를 나누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의 결심은 소중하지만 누구나 원한다고 다 헌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분 부족이나 체중 미달인 여대생, 전날 과음한 노래방 사장님, 귀에 피어싱을 한 지 1년이 채 안 된 가수 지망생 등등…. 퇴짜 맞고 돌아서서 나가는 이들의 아쉬운 모습은 헌혈의 집에서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100회 헌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 너끈히 400㏄의 혈액 팩 하나를 채우는 60대 할머니도 있다. 이처럼 한명 한명에게서 어렵게 모은 ‘귀하신 피’는 병원으로 가기 전 담당 지역 혈액원으로 보내진다. 병원에서 새 주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으려면 예쁘고 건강한 피로 뽑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검사 및 제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서부혈액원은 서울 강서 일대 병원을 책임지고 있다. 공급팀에서는 이제 막 들어온 혈액을 보관하기 위한 온도 측정이 한창이다. 적정 온도인 섭씨 1~6도를 맞춰서 보관했는지 재는 것이다. 이어서 제제팀으로 옮겨진 혈액은 동일한 무게를 달아 원심분리기 안에서 돌린다. 분리기를 거친 혈액은 두 가지 색깔로 변해 있었다. 김석완 제제팀장은 “종류별로, 비중 차이에 따라 ‘혈장 제제’ ‘혈소판 제제’로 나눠 병원에 공급한다”고 말했다. 헌혈할 때 샘플링한 혈액은 곧바로 검사실로 보낸다. 혈액형과 각종 바이러스 감염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신종플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혈액 재고가 바닥나 수술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김 팀장은 “바이러스 질환이 유행하면 헌혈을 꺼리는데 여러 검사를 통해 의심이 되면 제외하니 걱정 말고 헌혈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침 9시가 되면 혈액원 차량들은 일제히 ‘피 배달’에 나선다. 큰 수술이 많은 대형병원에는 서너 시간 간격으로 하루 4차례씩 혈액을 배달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서부혈액원 고중석 공급팀장은 “겨울철은 소위 헌혈의 비수기인데도 늘어나는 헌혈자 덕분에 병원으로 공급할 혈액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소아백혈병 병동에 입원 중인 종식(6)이는 다음 주 골수이식수술을 받는다. 종식이는 한 기업의 단체 헌혈을 통해 기증받은 혈액으로 수술을 할 예정이다. 종식이가 건강을 되찾게 되면 헌혈자들은 ‘400㏄의 기적’을 보게 된다. 최근 들어 다량의 혈액이 필요한 백혈병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환자들이 헌혈이라는 사랑의 힘에 의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헌혈은 우리 사회 안에서 순환하며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불이자 사랑의 힘이다. 400㏄의 혈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은 무한하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왜 찍어?’ 촬영중인 카메라 훔쳐 달아나는 게

    ‘왜 찍어?’ 촬영중인 카메라 훔쳐 달아나는 게

    카메라를 훔쳐 달아나려는 호기심 많은 게가 포착됐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2분 분량의 영상을 보면 어느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상황이 시작된다. 한 남성이 게의 생태를 촬영하기 위해 게 구멍 입구에다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조용히 게가 나오기 만을 기다린다. 잠시후 게 1마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게는 구멍 밖으로 외출한 후 천천히 옆으로 걸으며 이곳저곳을 산책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의식한듯 서서히 다가온다. 마치 자신을 촬영하고 있다는 걸 아는 듯 카메라 주변을 살피는 도중 갑자기 앞발을 들어 소형 카메라를 집더니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성은 깜짝 놀라며 한걸음에 달려와 구멍속 소형 카메라를 끄집어 내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사진·영상=유튜브 장고봉 PD goboy@seoul.co.kr
  • 美 전역 ‘퍽치기 게임’ 사건 잇달아…시민 불안감

    美 전역 ‘퍽치기 게임’ 사건 잇달아…시민 불안감

    미국 전역에서 이른바 ‘퍽치기 게임’(knockout game)이라고 불리는 ‘묻지마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시민들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퍽치기 게임’이란 일단의 10대 청소년들이 길을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 사람에게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고 난 후 도망가는 게임을 일컫는 것으로 일부 청소년들은 이 장면을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대범함까지 보이는 등 날로 모방 범죄가 늘고 있어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뉴욕시에서는 78세의 할머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나가던 청소년들로부터 갑자기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지난 19일에는 워싱턴 DC에서 뉴욕주 의원인 그레이스 맹 여성의원이 길을 걸어가던 중 갑자기 뒷머리를 얻어맞고 가방을 날치기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들은 이 사건이 이른바 ‘퍽치기 게임’과 연관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피츠버그시에서 길을 걸어가던 고등학교 교사가 갑자기 지나가던 청소년이 날린 주먹에 의해 쓰러지는 장면(사진)이 생생히 감시카메라에 잡혀 미국 전역에 충격을 준 바 있다. 경찰 조사 끝에 폭력을 행사한 범인은 15살의 학생으로 드러나 체포되었다. 이 밖에도 지난달 30일 필라델피아 주에서는 19살의 두 청년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던 63세의 남성에게 묻지마 폭력을 행사하여 체포되었으며, 지난 9월에는 뉴저지주 저지시티에서 13살과 14살 된 청소년이 지나가던 46세의 남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도망을 쳤다가 체포되었다. 이 남성은 결국 목뼈가 부려져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미 전역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이와 같은 이른바 ‘퍽치기 게임’ 사건의 확산에 관해 레이먼드 겔리 뉴욕경찰(NYPD) 국장은 “일부는 단순 폭력 사건으로 보이지만,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공화당 소속 한 의원도 “지나가는 무고한 사람을 노리며 확산하는 이러한 현상은 그 대상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심각함이 있다”면서 “삶은 비디오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짓”이라며 일부 빗나간 청소년들의 자성을 촉구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사진=지나가던 고등학교 교사 갑자기 휘두른 주먹에 쓰러지는 장면 (유튜브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명인·명물을 찾아서] 렘 쿨하스·아이 웨이웨이가 도심에… 명품 예술, 문화자산 활용

    [명인·명물을 찾아서] 렘 쿨하스·아이 웨이웨이가 도심에… 명품 예술, 문화자산 활용

    광주시가 시내 곳곳에 설치한 ‘광주폴리(소형 공공 건축물)’가 새로운 도심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선보인 8곳의 ‘2차 폴리’와 2년 앞서 설치된 11개의 ‘1차 폴리’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견학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의 대학생들도 ‘광주폴리 투어’에 참여하는 등 도심 속에 꾸려진 삶과 교육·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일 북구 임동 광주천 두물머리에서는 ‘광주주 폴리Ⅱ’ 개막식이 열렸다. 이곳 둔치에 세워진 ‘광주천 도서관’은 특이한 모형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데이비드 아자예와 미국 소설가 타이에 셀라시가 한국의 정자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4개의 기단 위에 목재 지붕을 얹은 형태다. 천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옛 도심인 동구 충장로 광주학생독립기념회관 뒷골목에 설치된 ‘투표’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렘 쿨하우스와 잉고 니어만의 공동 작품이다. 긴 가로등 형태의 배너에서 질문을 던지고, 참여자가 원하는 답변이 적힌 통로를 통과하게 되면 카메라가 자동 인식해 찬반을 집계하는 방식이다. 서도호씨와 서카이텍스의 작품인 ‘틈새 호텔’은 역시 옛 도심인 동구 불로동 15-3과 21-18 건물 사이에 배치됐다. 일인용 침대와 접이식 테이블 선반이 있으며 화장실도 쓸 수 있다. 광주역 교통섬에는 ‘혁명의 교차로’가 있다. 에얄 와이즈만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재스민 혁명 등 민주혁명의 진원지였던 교차로나 원형 광장의 의미를 반영했다. 여러 개의 원을 그리고 그 사이에 세계 각지의 민주혁명을 새겨 넣었다. 덴마크 출신 3명의 아티스트 그룹인 수퍼플렉스는 광주 공원 입구의 낡은 화장실을 철거하고 ‘유네스코 화장실’ 설치했다. 유네스코 본부의 상임위원화장실을 본떴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는 동구 푸른길 주변에 사각형 모양의 작은 ‘포장마차’를 설치했다. 4각형 형태로 외부에 모든 조리용품을 걸 수 있도록 기능성을 높였다. 도심을 걸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만들고 즐길 수 있는 열린 사랑방으로 활용된다. 인도 출신 예술가 그룹인 락스 미디어 콜렉티브의 ‘탐구자의 전철’도 눈길을 끈다. 지하철 1호선 1개 차량 내부를 각종 시각예술품으로 꾸몄다. 자유롭게 휘갈긴 듯한 검은색 선을 시트지로 붙였으며, 영상·빛 등이 혼합되면서 지하철을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탑승객들은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를 통해 영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열린 광주폴리 공모전 최우수상작인 고석홍과 김미희의 작품으로 금남지하상가에 설치된 ‘기억의 상자’는 가로 38㎝ 세로 34㎝ 높이 29㎝의 총 448개 소형 박스로 구성됐다. 시민들에게 분양된 메모리 상자는 광주와 시민들의 기억을 담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주도한 이번 2차 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승효상 총감독이 진행한 1차 폴리와 연계된 사업이다. 광주시는 당시 옛 도심 재생에 중점을 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에게 작품설치를 맡겼다. 이번에 시내 전역으로 범위를 넓힌 2차 폴리와는 달리 구 도심인 옛 광주 읍성 둘레에 모두 11개의 폴리를 설치했다. 동구 장동, 궁동, 금남로, 충장로 등지에 명소를 만들고 이를 후세에 남길 수 있는 문화자산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2차 폴리는 1차 폴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추가로 진행됐으며, 연차적으로 시내 곳곳에 100여개가 설치된다. 1차의 경우 스페인의 건축가 후안 헤레로스가 동구 장동 사거리의 가로수 사이에 ‘소통의 오두막’이란 조형물을 세우는 등 옛 광주읍성터를 에두르는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각종 조형물이 설치했다. 1차 프로젝트에는 후안 헤레로스를 비롯, 알레한드로 자에로 폴로(스페인), 플로리안 베이겔(독일), 나데르 테라니, 프란시스코 산인, 피터 아이젠만(미국), 도미니크 페로(프랑스), 요시하루 쓰카모토(일본), 조성룡, 승효상, 정세훈&김세진 등 6개국 11개 팀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1차 폴리가 건립된 이후부터 각 지자체의 도시 디자인과, 문화기관 등의 답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폴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관람객이 몰리자 ‘폴리투어’, ‘폴리데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광주폴리는 획일화된 도시에 건축과 예술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인문학적 도시 계획’의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용어 클릭] ■폴리(Folly)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파빌리온의 공간과 가로 시설물의 공공기능, 장식적 역할을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제품 시험인증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제품 시험인증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을 가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난방제품의 사용이 늘고 있다. 최근 과도하게 온도가 올라 화상 위험이 있는 불량 전기 찜질기 제품이 무더기 리콜 조치됐다. 제품이 시판되기 전에 받는 시험인증 안전도 검사 때와 달리 값싼 부품을 쓰거나, 아예 온도 상승을 막는 핵심 부품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제품의 질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험인증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출고 전에, 수입제품은 통관 전에, 일정한 기준의 시험인증을 거쳐야만 팔 수 있다. 해외로 수출하려는 제품은 해당 국가나 해당 기관의 인증마크를 취득하기 위한 시험과 제조공장에 대한 공장심사가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은 국내 대표적인 시험인증기관이다. 처음 안내를 받은 곳은 시험원의 기계역학표준센터.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시험장비들 사이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연구원들의 표정이 부담스러울 만큼 기계적이다. 압력조절로 대기 중의 먼지를 밖으로 날려버리는 시스템을 갖춘 이곳에서 제품의 길이와 힘, 각도, 소음 등을 측정한다. 음향파워측정실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신제품 헤드폰의 음색과 음압을 측정하고 있었다. 마치 녹음실에서 신곡을 취입하고 있는 가수처럼 보인다. 실험실에서는 전자파 발생량도 측정한다. 가시처럼 튀어나온 사각뿔 모양의 탄소 스펀지로 둘러싸인 ‘실드룸’(shield room)은 외부의 방해전파를 완벽히 차단한다. 어쩐지 새로 산 휴대전화가 내내 불통이다. 로봇에게 CD를 틀어 주던 이선경 연구원은 “정밀한 데이터를 재기 위해 기계를 쓰고 있지만 꽤나 낭만적인 연구실”이라며 웃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세탁기나 식기세척기 등 물을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방수 및 방전 테스트를 하는 방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 업무특성상 주부습진까지 걸렸다는 문상헌 연구원은 “내 아내와 어머니가 쓸 수 있는 제품이라 더욱 꼼꼼히 검사한다”고 말했다. 안내를 맡았던 강전일 연구원은 “안전도, 표준화, 환경테스트 등 각종 시험인증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제품에 인증마크가 부착된다”고 설명했다. 시험인증산업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아기들이 물고 빠는 장난감에서 수은 성분이 얼마나 검출되는지, 장애인 전동차가 몇 도의 경사각에서 구르는지, 형광등은 일생 몇 번이나 깜박거리다가 수명을 다하는지 등등 공산품 분야에서부터 환경, 농업, 정보, 원자력 등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인증(認證)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문서나 행위가 정당한 절차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공적 기관이 증명하는 것’이다. 각종 취업이나 입시에서 토익이나 토플 등 공인어학인증시험성적표가 필요한 것처럼, 시험인증은 제품 및 서비스가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지 공인기관이 시험하고 인증해서 성적표를 발급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이외에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시험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표준인증제도와 소비자제품 안전정책을 총괄 운영하는 정부 주무부처다. 기술표준원에서는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및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등 6개의 민간심사기관에 시험인증을 위탁하여 진행하고 있다. 현재 연 130조원 규모의 숨겨진 ‘황금어장’인 시험인증산업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4조~5조원대인 국내 시장은 스위스의 SGS 그룹 등 외국 시험인증기관이 60~70%를 점령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험인증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 강국=시험인증산업 강국’인 점에 비춰볼 때 제조업에 강한 우리나라는 시험인증산업을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글 사진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쉼을 품은 나… 가을의 선물 남도 단풍

    쉼을 품은 나… 가을의 선물 남도 단풍

    여기저기서 단풍 예찬이 한창이다. 일상이 바쁜 당신, 어떻게든 시간을 내 가 보고는 싶은데 명소가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고민을 덜어 주는 단풍 명소들이 있다. 언제 가도 아름답고 단풍철이면 더 고혹적인 곳, 전북 고창의 선운사와 전남 장성의 백양사다. 명소를 넘어 ‘단풍의 전설’이 돼 가는 두 절집을 다녀왔다. 지난주에도 절정은 아니었다. 절집 안팎을 둘러친 ‘애기단풍’들은 이제야 발그레해지기 시작했다. 두 절집 간 거리도 멀지 않아 1박 2일로 묶어 돌아볼 수도 있다. ‘애기단풍’들은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 한껏 무르익은 자태를 선보일 듯하다. 남도 단풍은 이제부터가 절정이다. ‘구름 속에서 참선하기’(선운·禪雲)란 애당초 글렀다. 사방을 둘러친 단풍 숲의 자색이 이리 고우니 참선은 고사하고 정신줄 놓지 않게 꽉 붙들어 매야 할 판이다. ‘호남의 내금강’ 선운산 이야기다. 선운산은 낮다. 최고봉이 불과 336m다. 그 주변으로 300m 안팎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크레용팝’의 춤사위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근동에선 내금강 운운하며 제법 명산 대접을 받는다. 수려한 산세와 웅장한 암벽 등 산에 깃든 옹골찬 풍경 덕이다. 산의 원래 이름은 도솔산이었다. 불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미륵보살이 머무는 정토(淨土)다. 산 아래로 흐르는 개천은 도솔천, 그 주변은 도솔계곡이다. 이게 선운산으로 바뀌었다. 도솔산 들머리를 타고 앉은 절집 선운사가 명찰의 반열에 오르면서 주변 산의 이름마저 바꿔 놓은 거다. 높이로만 따진다면 선운산의 체급은 경량급이다. 한데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는 중량급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절정은 역시 단풍철이다. 선운사 주변 도솔계곡 일대가 물감을 칠한 듯 붉고 노랗게 변한다. 이 장면을 도솔천이 또 한번 비춰 낸다. 감동 두 배의 풍경이다. 산이 높지 않으니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동네 야산을 산책하는 것보다 조금 더 힘을 쓰는 정도다. 예닐곱 시간씩 걸리는 선운산 일주산행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선운사에서 도솔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도솔암~내원궁~낙조대~천마봉을 거쳐 다시 도솔암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풍경과 역사를 고루 엿볼 수 있는 핵심 코스다. 거리는 주차장에서 천마봉까지 약 4.7㎞. 빠른 걸음으로 3시간 안팎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선운사와 도솔암, 내원궁 등을 천천히 돌아본다 해도 4~5시간이면 충분하다. 개중엔 도솔암 내원궁까지만 보고 되돌아가는 경우도 흔하다. 한데 천마봉 오르는 길에서 굽어보는 풍광을 놓친다면 단언컨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도솔암 뒤편 산자락을 10분 남짓 오르면 낮은 산이 선사하는 큰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도솔계곡이 왜 국가 지정 명승이 됐는지도 여실히 알게 된다. 선운사 주차장에서 보행자 전용 통로를 따르면 곧 일주문이다. 여기 단풍도 좋다. 노란 은행나무와 애기단풍 등이 잘 어우러졌다. 길은 도솔계곡과 절집 담장 사이로 이어진다. 울긋불긋 제 빛깔을 내는 단풍나무도 있긴 하나 선운사 단풍의 백미로 꼽히는 도솔계곡 주변의 거목들은 여태 푸른빛을 띠고 있다. 이번 주말쯤 완전히 붉어진 뒤 이달 중순까지는 절정의 자태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선운사의 아침은 사진작가들이 연다.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면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작가들로 도솔계곡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진작가들 가운데는 홍콩, 중국 등에서 온 외국인도 있다. 남도 단풍의 빼어난 자태가 인근 나라들에도 알려진 것. 바야흐로 ‘단풍 한류’가 도래하려는 게다. 사진작가들처럼 특정한 시간대에 선운사를 찾지 않아도 되는 여행자라면 점심 무렵 방문하기를 권한다. 머리 위까지 올라온 해가 도솔계곡 이곳저곳에 고르게 볕을 비출 때라야 단풍의 제 빛을 감상하기 좋다. 느릿느릿 선운산 단풍을 눈에 담은 뒤엔 낙조대에 오른다. 물론 해 지기 전에 올라야 한다. 운이 좋다면 멀리 서쪽 바다 너머로 펼쳐지는 기막힌 저물녘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선운사를 휘휘 돌아 계곡 옆으로 나오면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과 만난다. 길은 평탄하다. 야트막한 오르막은 있지만 된비알은 없다. 무엇보다 단풍 든 풍경과 동행할 수 있어 좋다. 도솔암까지 줄곧 이런 길이 이어진다. 선운사길은 보은길 혹은 소금길로도 불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선운산 주변엔 산적들이 들끓었다. 검단선사는 이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도적질을 그만두게 했다. 양민이 된 산적들은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검단선사에게 보은염(報恩鹽)을 보냈다. 그때 소금을 운반했던 길이 바로 선운사길이라는 거다. 지금도 선운사 일대에선 이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선운산은 문화재를 여럿 품고 있다. 동백나무숲(184호), 장사송(354호) 등은 천연기념물이고 선운사 대웅전(290호)과 도솔암 마애불(1200호) 등은 보물이다. 도솔계곡 자체가 ‘보물’이기도 하다. 국가지정 명승(54호)이다. 이 모습은 계곡 밖에서 봐야 한다. 도솔암에서 천마봉 쪽으로 난 철제 계단 옆의 무명 바위가 전망 포인트다.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기댄 도솔암 내원궁과 늙은 호박처럼 동글동글하게 어깨를 마주한 암벽들, 그 아래로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도솔계곡 단풍들이 눈에 들어찬다. 절정의 풍광이다. 예서 천마봉까지는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천마봉 정상은 너른 너럭바위다. 다리쉼하기 딱 좋다. 내원궁은 도솔암 위쪽, 천마봉 맞은편에 있다. 이번 단풍 여정에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곳이기도 하다. 내원궁은 수령이 오래된 단풍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작은 암자다. 단풍나무 잎은 어린아이 손톱만 하다. 이른바 애기단풍이다. 한데 나뭇잎들이 파랗다. 저 나무들이 죄다 붉은 옷으로 갈아입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객이 쏟아내는 탄식으로 암자 앞 뜨락이 가득 찰 판이다. 내원궁까지는 161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 108번 참회하고 53번 선지식을 친견하는 심정으로 디뎌야 마음이 정갈해진다는 뜻에서다. 내원궁에서 마주하는 천마봉과 낙조대 등의 풍광도 제법 옹골차다. 도솔암의 자랑은 마애불이다. 내원궁을 떠받친 암벽 칠송대(七松臺)의 한쪽 벽면에 조각돼 있다. 높이는 13m, 너비는 3m다. 고려 초에 유행한 거불 양식이 잘 살아 있는 미륵불이다. 여태 선명한 얼굴과 두 손을 보자니 수백년 세월이 새삼스럽다. 불상의 배꼽에는 검단선사가 봉해 둔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미당시문학관이 있는 선운리 돝움볕마을(안현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마을 뒤편 산자락이 국화와 구절초 등으로 화사하게 단장됐다. 시인 서정주의 묘도 이 산기슭에 있다. 온통 샛노란 국화꽃밭에 서면 벽화마을로 이름난 돝움볕마을과 그 너머 하전갯벌 등이 아슴아슴 펼쳐진다. 선운사에서 8㎞쯤 떨어져 있다. 대산면 성남리 일대에서도 오는 18일까지 국화축제(063-564-9779)가 열린다. 그야말로 수억 송이의 국화와 만날 수 있다. 입장은 무료다. 글 사진 고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나가 선운사 방면으로 좌회전하고 다시 삼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곧장 가면 선운사다. 선운산관리사무소 (063)560-8681. 백양사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담양 방면으로 9.6㎞를 달리다 장성군 북하면 소재지에서 891번 지방도로를 타고 4㎞ 정도 더 가면 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백양사무소 (061)392-7288. →맛집 선운사 주변은 죄다 장어구이집이다. 어림잡아 40곳은 족히 넘는다. 연기식당, 할매집, 신덕식당, 산장회관, 명가풍천장어 등이 알려졌다. 백양사 초입 별궁민속식당은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풍미회관은 한정식, 단풍두부는 두부전골, 산골짜기는 꿩샤부샤부로 각각 이름났다. →잘 곳 선운사 초입에 선운산 관광호텔(063-561-3377)과 선운사 유스호스텔(063-561-3333)이 있다. 송악모텔, 청원모텔 등도 깔끔하다. 백양사 쪽에선 백양관광호텔(061-392-2114), 은혜가족호텔(061-392-7200) 등이 깨끗하다.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예방부터 관리까지… 진화하는 서울 자치구 보건소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예방부터 관리까지… 진화하는 서울 자치구 보건소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요즈음 감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보건소들마다 독감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보건소를 예전의 낙후한 시설에 간단한 채혈검사나 독감 접종 등을 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보건소는 예방접종은 기본이고 건강검진 및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의료·건강 프로그램을 앞세워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서길복 (56·종로구)씨는 지난주 종로구보건소에서 단돈 5000원으로 20여개 항목에 걸친 검사를 받았다. 체위검사, 흉부방사선촬영, 소변검사, 혈액검사 등을 토대로 전문의들에게 진료도 받았다. 서씨는 “회사생활을 할 때 매년 받던 건강검진 못지않다”며 만족해했다. 각 지자체 보건소들은 경쟁적으로 거액의 예산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꾸고, 고가의 의료 장비로 프리미엄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깨끗하고 세련된 내부에 산모들을 위한 수유실, 그리고 치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까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다. 심전도 측정기나 초음파 진료기 등의 장비는 물론이고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에 따라 첨단장비를 갖춘 곳도 많아 웬만한 종합병원 부럽지 않다. 아픈 사람을 진료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예방차원의 보건업무도 많다. 중구보건소에서는 비만클리닉, 금연클리닉, 당뇨클리닉, 급성 전염병관리 등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홍세연(52·중구)씨는 매주 토요일 집 근처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비만클리닉에 다니고 있다. 한 달 만에 체중이 5㎏이나 빠진 홍씨는 “체계적인 프로그램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살을 뺄 수 있었다”고 말했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보건소의 모든 진료가 무료다.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하는 곳도 여럿 생겨났다. 바쁜 직장인을 위해 야간진료와 토요 진료도 확대되는 추세다. 뜸 치료를 받기위해 강동구보건소를 찾은 박길자(78) 할머니는 “친절하고 예쁜 한의사 선생님이 친딸처럼 말벗도 되어주니 너무 감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치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프로그램 뿐 아니라 건강 예방과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고 있다. 부위·방식에 따라 다른 살빼기 강의를 내놓는가 하면, 조부모가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키우는 세태에 맞춰 할머니·할아버지를 위한 육아교실을 계획하는 곳도 있다. 임산부 교육은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베이비마사지, 태아 두뇌발달을 위한 독서 태교, 신생아 제대관리, 임산부 성교육 등을 다채롭게 실시 중이다. 변화한 보건소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실시한 의료기관 만족도 조사에서 보건소 의료서비스가 만족도 64.3%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인 종합병원 만족도 53%보다 11% 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이향숙 중구보건소 의약과장은 “지역병원들이 보건소와 연계해 진료활동을 하거나 무료봉사와 강의를 하는 곳도 있어 앞으로 주민들의 보건소 이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건소가 저비용 고품질로 주민들의 건강종합복지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건강한 행복도시를 앞당기는 전령으로, 보건소의 진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옆 반려견 놀이터 가보니

    [주말 인사이드]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옆 반려견 놀이터 가보니

    10개월 된 진돗개 ‘곰돌이’와 네 살 화이트테리어 ‘나리’ 아빠인 강효섭(60)씨는 “반려동물로 등록한 뒤 한 달을 벼르다 찾아왔는데 역시 애들이 너무 좋아하네요”라며 웃었어요. 한 살 된 포메라이안 ‘노래’와 나들이 나온 하원호(34)씨 부부는 “사회성을 키워야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덜 짖고 온순해지거든요. 앞으로 자주 와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1호 반려견 놀이터입니다. 반려견을 위한 복지시설이죠.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옆에서 7월 31일 문을 열었어요.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2번 출구에서 구의문 사거리 쪽으로 걸어서 10~15분 거리랍니다. 비 오는 날 빼고는 매주 수~일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문을 열어요. 12~2월엔 쉬어요. 제가 이래 봬도 은근히 인기랍니다. 16일까지 3405마리나 놀다 갔어요. 함께 온 견주는 4861명이에요. 개장일이 54일이니 하루 평균 63마리, 90명이 이용한 셈이죠. 주말엔 정말 붐벼요. 지난달 1일에는 200마리가 넘었어요. 다른 곳에선 반려견들 고생이 숱하지 뭡니까. 산책을 나갔다가 자동차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죠. 더러는 교통사고도 당해요. 호기심과 유혹 탓에 길을 잃곤 하더군요.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다른 친구들과 얘기 나누기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제게 오면 그야말로 ‘걱정 끝, 행복 시작’입니다. 건강을 챙기는 건 덤이죠. 반려견들만 친목을 다지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도 이야기꽃, 웃음꽃을 활짝 피웁니다. 유쾌한 수다가 밤늦게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거의 매일 들르는 김성순(45·여)씨는 “애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죠”라고 귀띔했어요. 함께 다니는 6개월 된 코카스파니엘 ‘도리’는 벌써 놀이터 터줏대감 노릇을 해요. 제일 작은 편인데 아주 싹싹해서 견주는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짱’이죠. 애견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임병찬(37)씨는 네 살 된 알래스카 말라뮤트 ‘참치’를 데리고 일주일에 서너 차례 찾아와요. 카메라까지 들고 와 다른 친구들 사진도 공짜로 찍어 준답니다. 재능 기부를 하는 셈이죠. 전 지난해 9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시에 동물보호과가 생긴 덕분에 태어났어요. 이곳에서 반려견들이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어울리도록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죠. 큰 기대를 갖고 오시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어요. 농구 코트 두 개를 합친 크기(747㎡·227평)에 불과해요. 나무가 우거진 자연 그대로의 녹지에 벤치와 그루터기 의자 서너 개, 반려견을 위한 수도 시설과 간이 화장실을 들여놓고 녹색 울타리를 쳐놓은 정도예요. 그래도 공짜 입장이란 것 잊지 마시길. 하지만 정식 등록된 반려견만 들어올 수 있답니다. 또 간단한 신상정보를 작성하면 신장측정표 앞을 지나게 돼요. 중소형견과 대형견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거든요. 키 40㎝가 기준입니다. 원래 큰 쪽(459㎡)이 중소형, 작은 쪽(288㎡)이 대형을 위한 공간이었는데 비탈 문제도 있고 해서 견주들 의견에 따라 바꿨어요. 중소형견이 8~9배 많이 와요. 그런데 실제 크기 구분은 무의미하답니다. 처음 방문한 중소형견이 작은 쪽에서 분위기를 익히다 보면 큰 쪽으로 옮겨와 뛰어놀려고 하거든요. 위험하지 않냐고요? 처음 마주쳤을 때 으르렁하기도 하지만 곧 친해지죠. 문제가 생겨 퇴장당한 경우는 아직 없답니다. 시범 운영이라 부족한 부분도 있어요. 흙바닥이라 견주들이 아쉬워해요. 특히 바닥을 풀밭으로 바꾸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와요. 그런데 그늘 지역이라 잔디가 자라기 힘들대요. 시에서는 비가 온 뒤 질척거리는 것을 막으려고 마사토를 까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 중이랍니다. 폐타이어나 목재를 이용해 간단한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는데요, 일부에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도 하지요. 붐빌 경우 견주들이 쉴 수 있는 시설도 부족해요. 물론 더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면 간단한 시설들은 당연히 설치되겠죠? 80~90%가 능동, 군자동, 구의동, 중곡동 등 주변 동네에서 찾아와요. 신림동이나 구로동 등 이따금 먼 곳에서 소식 듣고 방문한 견주들은 무척 부러워하죠. 개들이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선 아직까지 저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면목동에서 4개월 된 리트리버 ‘라리’와 함께 한 시간 정도 걸어왔다는 구본형(30)씨는 “더 작은 규모라도 집 근처에 생기면 정말 좋겠다”고 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반려견 놀이터를 공원 시설에 포함하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상태래요. 다음 달 공포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앞으로 저와 비슷한 공간이 조금씩 늘어날 것 같아요. 아주 작은 공원들은 민원 때문에 힘들고, 30만㎡ 이상 대형공원을 중심으로 생길 것 같아요. 벌써부터 즐거워하는 견공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얼마 전 이런 기사가 났더군요. 여신금융 업계가 올해 8월 애완동물 시장에서 쓰인 카드 사용액을 조사했더니 모두 831억 9000만원이었대요. 시장 전체 규모가 1조 8000억~2조원에 달한다네요. 예전엔 관련 시장이 사료나 용품, 미용, 의료 정도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전용 호텔과 해수욕장, 유치원, 놀이터, 카페, 장례식장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애완동물 팔자가 상팔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해요. 이렇다 보니 애완동물 장의사나 옷 디자이너, 브리더(번식사), 핸들러(도그쇼 매니저), 트리머(미용사) 등 새로운 직업도 생기고 있어요. 2020년에는 시장 규모가 6조원까지 뛴대요. 정말 놀랄 노자죠. 애완동물을 요즘엔 가족의 개념을 담아 반려동물이라고 부르잖아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전국적으로 1000만명은 족히 넘을 거래요. 서울만 따져 보면 반려동물이 152만 마리라네요. 전체 가구수의 27%예요. 네 집 중 한 집꼴로 반려동물이 있다는 뜻이지요. 이 가운데 반려견은 50만 2890마리로 추정된답니다. 이쯤 되니 반려견 복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듯해요. 제가 자부심을 갖고 뽐낼 만하지 않나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식물의 색감으로 펼치는 대지의 예술 ‘가든 디자인’ 현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식물의 색감으로 펼치는 대지의 예술 ‘가든 디자인’ 현장을 가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어릴 적 살던 한옥집 마당엔 작은 꽃밭이 있었다. 초가을 이맘때면 채송화의 꽃씨를 받아 말리며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으로 가옥의 형태가 바뀌면서 꽃밭이 들어설 마당이 있는 집이 드물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속도와 스펙터클에 지친 사람들은 자연의 숨결을 그리워한다. 누구나 집에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꿀 수 있는 ‘정원’(庭園)을 꿈꾼다. 최근 집안을 꾸미듯 정원에 나무와 꽃을 계획적으로 배치해 아름답고 실용적인 공간을 만드는 ‘가든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영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상업화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가든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임춘화(아이디얼가든 대표)씨는 가든 디자인을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대지 위에 식물의 색감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예술”이라고 설명한다. 정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林春花)이 예사롭지 않은 그는 “장소와 필요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야 한다”며 디자인의 ‘디테일’을 강조한다. 정원의 기능은 과거 관상 위주에서 휴식과 치유, 소통 공간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끊임없이 변하는 식물의 특성과 4계절 동안의 라이프 사이클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가든 디자이너는 식물의 식재(植栽)까지 완벽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수원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은 경기도농림재단과 함께 조경가든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조경관리대학 5기생들의 식재과정 교육 시간. 교육생들은 미래의 가든 디자이너를 꿈꾸는 전업주부에서부터 귀촌을 희망하는 퇴직자들까지 다양하다. 서수현 강사는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조경기술을 체계적으로 알려 주는 과정이 우선”이라며 식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든 디자인의 좋은 소재 중 하나로 ‘도시농업’을 들 수 있다. 도시농업은 시민들이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면서 살아 있는 식물과 교감하는 인간 중심의 생산적인 여가 활동이다. 가꾸는 기쁨과 건강한 먹거리를 이웃이나 가족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큰 매력이다.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하다. 빌딩이나 주택의 옥상 또는 가로변의 유휴지에서도 도심 속 텃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승원 농촌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 연구사는 “정원에 텃밭을 넣을 때 이왕이면 보기에도 예쁜 채소를 꽃들과 함께 배치한다면 더욱 싱싱하고 살아 있는 정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상자텃밭, 옥상텃밭, 벽면텃밭, 이동식텃밭 등 ‘텃밭정원’의 변신은 다양하다. 이 외에도 도시농업은 마을공동체를 부활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한 연구사는 “도심의 자투리 공간을 내 정원처럼 매만지는 손길이 늘어나면서 우리를 생각할 줄 아는 공동체 문화가 회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사색하면서 발전해 왔다. 미래의 도시 개발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숲과 정원을 모티브로 그려 낸 풍부한 녹지공간에서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 가든 디자인은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소중한 일이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더스틴 호프만의 ‘묘한 시선’

    더스틴 호프만의 ‘묘한 시선’

    할리우드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묘령의 금발여인과 함께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시뉴스닷컴은 2일(현지시간)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만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더스틴 호프만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 말리부 저택 인근에서 금발여인의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고 홀로 산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

    대입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코앞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곳곳에서 연일 입시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설명회장은 찜통더위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의 입시 풍경이다. 하지만 교육열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놀라운 나라치고 우리나라처럼 독서에 인색한 곳도 드물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은 약 10권으로, 4년 전보다 두 권이 줄었다. 최근 책 읽는 사회 풍토를 만들기 위한 ‘도서관의 변신’이 눈길을 끌고 있다. 칸막이에 고개를 푹 숙이고 공부하던 과거의 꽉 막힌 도서관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공부하는 공간에서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찾아가는 공간에서 찾아오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서울시의 ‘숲속 작은 도서관’은 더위를 식히며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야외 도서관이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서울숲공원, 월드컵공원, 남산공원 등 20개 공원 곳곳에 작은 도서관과 무인 책장들이 설치돼 있다. 그중 서울숲공원의 ‘책수레’가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주말마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공원 중앙에 책 1000여권을 담은 책 수레를 비치해 놓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돌려 놓도록 했다. 서울숲사랑모임의 김경현씨는 “관리자도 없고 독촉 전화도 하지 않지만 회수율이 85%를 웃도는 ‘양심 책수레’”라고 말했다. 책수레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원을 찾는 지역 주민들의 발길도 늘어났다. 공원에 매주 온다는 최승윤(서울 성동구)씨는 “시원한 그늘, 새와 풀벌레 소리가 있는 공원은 책을 읽는 데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은 도서관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컨테이너로 만든 이동식 도서관, 한강공원에서 만나는 전기차 책방, 공중전화 부스를 개조한 무인 도서관, 버스정류장에 설치한 작은 책방까지…. 장상태(서울 송파구)씨는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 않다”며 “책을 읽으며 여유로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의 관산도서관은 전국 최초로 도서관 내에 ‘한옥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개관한 한옥도서관은 한식 대문과 대청마루, 누마루, 도서열람용 전통식 방, 정자 등을 갖춘 한옥으로 지어졌다. 김미정 관장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옥체험, 견학 프로그램, 전통문화 체험교실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청들도 청사 안에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앞다퉈 만들며 구청 문턱 낮추기에 나섰다. 대다수의 서울시내 구청들은 전망이 좋은 꼭대기 층에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민원실 앞에는 대기 시간 등에 읽을 수 있도록 어린이 도서에서 교양·전문 서적까지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을 비치했다. 서여경(서울 용산구)씨는 “집에서 가깝고 커피값도 저렴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책 읽는 택시’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이색 프로그램이다. 금미경 송파구 독서문화팀장은 “택시 안에서 운전사와 승객이 함께 EBS FM(104.5㎒) ‘책 읽어 주는 라디오’를 듣도록 해 책 즐기기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대학 도서관들도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 이벤트로 학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영화 상영, 스터디룸 제공은 기본이고 학생열람실도 학생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다양하게 꾸미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박관영 성신여대 홍보팀 주임은 “최근 제작한 비행기 좌석 형태의 열람실이 인기”라며 “각 대학 도서관마다 친근한 이미지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이제 책 읽는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고 있다. 가족·연인과 때로는 홀로 여유를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서관이 진화하면 시민의식이 발전하고, 성숙한 시민은 미래를 밝히는 촛불이 된다. 도서관의 진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新 대한민국 24시] (4) 포경에서 관경으로… 진화하는 고래산업

    [新 대한민국 24시] (4) 포경에서 관경으로… 진화하는 고래산업

    지난 8일 오전 9시 울산 남구 장생포항. 3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에도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 350여명으로 부두가 떠들썩하다. 출항을 앞두고 들뜬 관광객들은 크루즈 선박 ‘고래바다여행’(550t·정원 399명)을 배경으로 벌써부터 기념사진 촬영에 홀린 듯하다. 한 차례 나가면 세 시간 남짓 물살을 가르는 이 배는 1~2개월 전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전까지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장생포가 ‘포경’(捕鯨)이 아닌 ‘관경’(觀鯨·살아 있는 고래 구경)으로 재도약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여행선은 오전 10시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을 뒤로하고 선착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관광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동해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뱃머리에서 눈을 좌우로 돌리자 연안 경관이 그림처럼 와 닿는다. 무더위에 찌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진다. 동방파제를 지난 여행선이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울기등대 쪽에서 고래 탐사가 시작됐다. 옅은 안개가 잔뜩 끼었다. 2m 높이의 파도도 여행을 가로막지 못했다. 금세 곳곳에서 “야, 고래다”라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행선은 20여분이나 바다를 선회했다. 그러나 허옇고 짙푸른 너울을 고래로 착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소동은 수그러들었다. 울산 남구가 2009년 7월 우리나라 관경산업에 첫발을 뗐다. 고래바다여행선 운항 첫해 3512명이었던 탑승객이 올해 4개월 만에 3만 3110명으로 늘어났다. 허문곤(54) 선장은 “한때 포경산업 덕분에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富)를 누렸던 장생포는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급속히 쇠락했다. 그런데 고래관광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관경산업은 2005년 5월 개관한 고래박물관으로 가능성을 활짝 열었고 고래바다여행선 운항으로 본격화됐다는 게 허 선장의 설명이다. 장생포를 찾은 누적 관광객은 2009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제 연간 50만명 이상 몰린다. 3층 갑판에 모인 어린 승객들은 선체에 부딪히는 파도를 놀이기구 삼아 하얀 물보라에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는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솟아오를 것 같은 고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잠시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담으려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영창(36)씨는 “여행선을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 네 살배기 딸이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선이 북쪽으로 기수를 돌리면서 울산항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대형 화물선들도 손가락만큼 작아졌다. 승객들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 대형 화물선도 손에 잡힐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울산항 앞바다에는 매일 10여대의 화물선이 입출항을 위해 정박한다. 허 선장은 “수온이 20도 이상 올라야 전갱이와 오징어 등 고래 먹잇감이 돌아와 고래를 볼 확률도 높아지는데 고래를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선은 2009년 4월 시험 출항에서 1500여 마리의 참돌고래 떼를 발견한 이후 몇 차례 고래 떼 발견 소식을 전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고래 발견율은 30%에도 못 미친다. 운항 첫해 9.7%에서 이듬해 28.4%, 2011년 9.6%, 지난해 25%로 회복했지만, 올 들어 7월 말 현재 8.6%로 들쭉날쭉하다. 평균 14%다. 고래가 먹이를 따라 움직이는 회유성 동물인 데다 수온이 낮아지면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설령 고래를 발견하지 못해도 지루하지는 않다. 밴드 연주와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이 이어진다. 음료를 마시거나 군것질도 2·3층에 마련된 스낵코너, 커피점, 매점 등에서 해결할 수 있다. 연안 야경 투어 땐 연인과 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커플 데이’,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비어 파티’, ‘선상 재즈카페’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된다. 관광객 정종철(71·충남 서산)씨는 “서산 마룡마을에서 주민 24명과 함께 고래를 보러 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고래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할 고래관광 유람선을 탈 수 있어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허 선장은 “얼마 전 단체관광에 나선 경남 산청의 한 마을 어르신들이 고래를 봤다”면서 “입소문이 이웃 마을로 퍼져 산청군 지역 3개 마을 주민들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출항 1시간쯤 지나 장생포 동남방향 8.9마일(약 14.32㎞) 해상에 도착했다. 평소 고래가 자주 목격됐던 지점이라 승무원들의 눈빛도 빨라졌다. 승객들도 검푸른 바다를 주시했다. 배는 다시 항로를 확인하며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울주군 간절곶 앞바다로 이동하는 1시간여 동안에도 승객들의 고래 찾기는 계속됐다. 조타실에서 만난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연구사는 “울산항 앞바다는 대형 화물선의 운항이 많아 소리에 민감한 고래를 다른 곳으로 쫓아 보내는 나쁜 영향을 주고, 여행선이 다니는 연안도 고래 서식지가 아닌 지나는 길목이라 발견율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래 발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상 15마일(약 24.13㎞) 이상 나가야 하는데 여행선의 안전 문제상 먼 거리 출항이 허가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관경산업이 활성화되려면 혹등고래와 향고래, 긴수염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등 덩치가 크고 천천히 이동하는 고래가 많아야 한다”며 “이런 고래는 열대나 극지방에 주로 서식하면서 연안 아주 가까이에 머물 뿐 아니라 산란기에는 이동도 적어 60~70% 이상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생포는 여행선과 연계한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마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그나마 낫다”면서 “돌고래류와 밍크고래가 동해안을 따라 이동하지만, 혼자 다니는 밍크고래보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돌고래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관광객들은 안개 낀 궂은 날씨 때문에 이날 아쉽게도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고래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은 사뭇 밝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고래 이야기를 듣고, 배 위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래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래를 못 본 관광객들에게는 고래박물관 무료입장권이나 고래생태체험관 40% 할인 입장권이 주어진다.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은 어린이체험관·포경역사관·귀신고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고래를 잡던 포경선과 대형 브라이드 고래뼈를 전시하고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살아 있는 돌고래 4마리를 수족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남구는 고래관경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장생포 일대를 고래특구로 조성하고 있다. 공사가 한창인 ‘고래문화마을’은 내년 준공될 예정이다. 포경 전진기지였던 장생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영화 세트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옛 장생포 마을’, 고래이야기와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고래산책로’ ‘고래뱃속 체험장’ 등이 들어선다. 고래전망대는 울산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래전망대에서는 현재 건설 중인 울산대교, 장생포항, 석유화학공단, 시내 전역을 볼 수 있다. 실물 크기의 고래조형물, 어린이를 위한 고래놀이터, 자연생태학습장인 수생식물원도 조성된다. 고래관광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행선은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한 차례 운항한다. 토요일엔 오후 1~4시와 7~9시, 일요일엔 오전 10시~오후 1시와 오후 2시 30분~5시 30분 각각 두 차례 운항한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배낭 멘 여행길에선 낯모르는 이와 “안녕” 하고 입만 벙긋하는 인사만으로도 말꼬리가 길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아주 사소한 호감부터 “너 지금 행복하니?”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는 꿈꾸듯 거닐며 수많은 이방인들과 옷깃 스치는 인연을 맺었다. 이를테면 옷깃스침 동행이랄까. 유럽 땅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나는 마냥 행복했다가 돌연 쓸쓸해지고 그지없이 황홀했다가 못내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순간순간을 맞이한다. about ‘동행’ 본 기사는 SJR EUROPE에서 론칭한 ‘동행’ 상품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총 6개국 18개 도시를 탐방했다. tip 1 동행 상품가 외에 옵션투어 비용, 식비, 자유 여행을 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각종 입장료 등 15박 17일의 현지에서 지출한 여행경비는 120만원 남짓. 기념품 구입 또는 개인 쇼핑 품목이 많을 경우에는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tip 2 파리의 라스파일 시장과 몽파르나스 묘지, 뮌헨의 영국정원과 슈바빙,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비엔나의 레오폴드 뮤지엄, 베네치아의 리도섬과 부라노섬 등은 기본 투어가 아닌 자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했다. 기본 투어에 해당하는 파리,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등의 주요 도시 투어 역시 일부 구간 동행 후 자유로이 움직였고, 옵션 투어 가운데 바티칸 시국은 개별적으로 방문했다. France Mont Saint Michel, Paris 파리에서 지도 없이 걷기 기어코 파리. 파리는 독보적이다. 자정 가까이 늦은 밤에 도착한 파리였지만 여행에 앞서 만난 선배의 말이 실감이 됐다. “아마도 네 마음과 부단히 싸우는 여행이 될 거야.” 어디부터 갈까, 뭐부터 할까, 마음은 급한데 결정은 못하고, 그럼에도 파리에서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여행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가까이에 위치한 호텔Campanile Maine Montparnasse 로비에서 15박 17일간의 동행들과 만났다. 며칠 전에 도착해 이미 파리에 푹 빠진 이도, 스페인이며 어디며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동행을 태운 버스는 파리를 조금 아껴두고 4시간여를 달려 프랑스의 끄트머리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 닿았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신성한 산성, 몽생미셸은 노르망디Normandie 해변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자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도원이다.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다.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바위섬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워낙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썰물의 간격이 짧아 많은 이들이 휩쓸려 버린 탓에 ‘몽통브mont tombe’, ‘무덤 산’이란 고약한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8세기 초반의 어느 날, 인근 아브랑쉬Avranches 지역 오베르St. Aubert 대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예배당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후 서서히 모습을 달리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전투 요새로, 18세기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몽생미셸은 고되고 혼란스러운 노르망디의 역사가 쓸려가고 다시금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밀려오는 축복의 성지다. 그 물살에 실려 동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리는 몽생미셸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섬 꼭대기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호텔과 기념품 가게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는 짧은 물때를 맞추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는 이곳의 대표음식 오믈렛과 사과 파이, 발효주 시드르Cidre 등을 즐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선 수도원에서 갯벌 뒤로 어디서부터가 바닷물인지 모를 그저 눈부신 노르망디 해안을 실눈으로 조망한다. 드디어 정말, 파리의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진작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조식 서비스를 마다하고 향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er.’ 카페 홀을 등지고 바깥 거리 쪽 테라스 좌석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파리지엔의 밥상을 받아든다. 그러나 난 이따금씩 꿈꿨다.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파리지엔들마저 도시의 풍경으로 소비되는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이 도시의 산보객이 되는 순간을.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한가한 무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바로 옆 서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막 문을 여는 참이다. 출근하는 서점 직원들을 따라 들어가 바바리코트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들과 책 구경을 한다. 파리를 담은 사진집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라스파일 시장Marche Biologique Raspail’에 이른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의 오일장처럼, 라스파일 도로변에 장이 선단다. 일요일에는 파리 근교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파는 유기농마켓이 열린다. 운이 좋다. 마침 장날이다. “봉쥬르.” 늘어선 가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인사와 한 손에는 애견,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동네 할머니와의 연속된 조우. 그리고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올리브를 맛보기로 건네는 손길까지 의도치 않게 살가운 일상을 공유한다. 예상치 못했던 진짜 파리지엔의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몽파르나스 묘지Montparnasse Cemetery에는 안내지도를 들고 명망가들의 묘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시장에서 산 빨간 딸기를 베어 먹으며 보들레르 묘 앞에 마주앉은 나는 잠시 시간여행자로 전환된다. 아, 파리에서의 3일은 턱없이 짧다. 나는 파리를 빠르게 읽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튈르리 정원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그 긴긴 길 위엔 셀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의자가 줄지어 있고 그 위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그날 밤, 중세 파리 투어를 했던 동행 몇몇이 해질녘 몽마르트르에서의 낭만을 안주 삼아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장소가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다음날, 동행들로부터 귀동냥한 정보를 중얼거리며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 역시 조식 서비스 대신에 공원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크레이프와 커피로 덜 깬 잠을 달랜다. 조깅하는 파리지엔과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 뒤를 쫓는 단체여행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까짓것 부지런해져 보지 뭐. 반의반, 그 일부만이라도 보겠다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갔다. 역시나 나의 관심사는 미술작품보단 ‘오르세’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므로 두어 시간이면 될 거라는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르세는 물론 파리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다. 그냥 넋 놓기로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한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낯선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에게 초상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2~3분 만에 옆모습 실루엣을 종이에 오려 준다는 거리 예술가 앞에 앉았다. 대개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인지 예술가의 손놀림인지 모르겠더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민망함을 누르는 동안에 완성된 나의 실루엣. 하나도 안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탐이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은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위에서의 센강 유랑이다. 저마다의 파리를 즐긴 동행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듣는 이는 드물다. 알알이 불씨 오른 에펠탑이 가까워진다. 탄성이나 호들갑 없이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리의 밤이 강물 따라 흘러간다. ▶travie info 동행 프로그램은 여행하는 도시 가운데 주요 도시에서 지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1일 투어를 기본 일정에 포함하고 있고 파리에서는 2가지의 옵션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옵션 투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지식 가이드 투어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개인의 여행 기호를 존중하여 얼마든 자유 여행이 가능하다. route 1. 루브르 박물관+중세 파리투어 샹젤리제 거리→개선문→루브르박물관→중식→시테섬→노트르담성당→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시청사→퐁피두센터→사요궁전(에펠탑 조망) route 2. 오르세 미술관+파리 인상파 투어 오르세 미술관→로댕미술관 정원→몽마르트르 언덕(성심성당, 예술인의 광장, 피카소의 작업실, 물랭루즈(조망))→개선문(샹젤리제) Switzerland Interaken,Luzern,Mürren,Mürren 만년설 위로 반짝이던 하루 파리 유랑을 끝낸 동행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꼬박 8~9시간 몸을 구겨 잠을 청해야 한다. 다들 오랜 시간의 쪽잠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잠에 빠진다. 조금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낯선 도로 위다. 예상치 못한 거센 눈발로 좀더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번 여정은 이 야간이동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라하까지 여정의 절반 이상을 이 버스 한 대로 움직인다. 유럽 배낭인데 유레일이 아니고 버스라니 처음엔 갸웃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시간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보다 한두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인터라켄이다. 도시락으로 요기한 동행 대부분이 ‘Top of Europe’ 융프라우에 오를 채비를 한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터라켄에서 나는 과감히 융프라우를 포기했다. 이미 올랐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파리 파노라마가 가시기 전 유럽의 지붕 아래서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놓쳤던 청정마을 뮈렌Murren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착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기 전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홈메이드 스프 한 그릇을 먹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눈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뮈렌에서 단출한 워킹화에 의지하여 곧 미끄러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다. 날쌔게 지나가는 스키어들은 물론 눈썰매 힘껏 지치는 어린 아이들도 탄탄한 기운을 뿜어낸다. 변덕스런 날씨로 여행자 애태우기 일쑤인 그날의 융프라우는 다행히 쾌청했다고 동행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다들 세상 모르고 잠이 들겠지. 하얀 솜사탕처럼 멀리 뭉게뭉게 겹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품속에서 그만큼 달달한 꿈을 꾸면서. 이른 아침인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프스 높은 곳 어디에선가 발을 뗐을 패러글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천이 눈꽃, 상고대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새 루체른Luzern이다. 호반 위로 얌전히 뻗은 카펠교Kapellbrucke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고즈넉함을 맛본다. Germany Füssen, Munich 찰나지만 더없이 벅찬 순간 몇 시간 후 국경을 넘어 독일 퓌센Fussen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전후인데 벌써 어둑하니 날씨가 궂다.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모습이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상당수 장면의 배경이니 말이다. 성의 일부가 보수공사 중인 데다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는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라 아랫마을에서 성의 초입까지 짧은 산책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방향을 틀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뮌헨Munich은 몹시 차분했다. 물론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는 달랐다. 동행들과 우르르 몰려간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홀답게 사람도, 맥주도, 열기도 거품이 일 듯 넘쳐났다. 뮌헨에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동행들이 삼삼오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파리에서의 3박 4일이 짧다 투덜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뮌헨에선 아주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슈바빙Schwabing과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의 잔상 때문이었을 게다. 이젠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바빙과 영국정원의 모습만은 또렷했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전, 자유로운 3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리셉션에서 지도 한 장과 함께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받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곧 멎을 것처럼 숨이 찼음에도 자전거와 유모차가 차례로 엇갈려 지나가고 오리와 거위가 벤치를 돌며 길동무 해주는 영국정원에서 더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그리곤 지그재그로 훑어 내려간 슈바빙. 짧아서 아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다. 전혀. 그곳에 내가 존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차기만 한 걸. 찰나일지라도. 다시 올라탄 동행 버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 깜빡일 때마다 영화 스틸 컷이 된다. 할슈타트로 가는 길이다. 휴대전화로 알림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네트워크 설정을 알리는 메시지. 버스가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네트워크 설정이 달라진다. 독일 통신망을 잡았다가 오스트리아 통신망을 잡았다가. 이윽고 조용해졌다 싶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그곳, 할슈타트 끄트머리에 있었다. Austria Hallstatt, Salzburg, Vienna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가다 여전히 하얀빛을 발하는 눈이 마을을 살포시 덮고 있다. 그만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쾌하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분. 깜빡 졸다 깨나니 어느새 할슈타트Hallstatt 호수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다. 할슈타트를 포함하여 이 일대를 보통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작은 마을들은 알프스 아래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다.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호숫가로 내달린다. 공기 중엔 감탄만이 존재한다. 떠나오기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모차르트, 클림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그들이 태동한 마을, 도시, 공간 그 자체였다. 할슈타트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이후 잠깐의 산책이 허락됐다. 호수 가장자리 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할슈타트의 집들. 집 위에 집, 그 위에 다시 집이 층층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그런 까닭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탈 아래 집의 다락방 또는 굴뚝과 눈이 마주친다. 집 앞 정원, 뒤뜰은 물론이고 담장, 벽면, 창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손질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맞닿은 벽면에 벤치를 놓은 집들이 많다. 허락 없이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등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마을을 관찰한다.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밀려온다. 이미 때는 놓쳤고 아쉬운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투박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한다. 할슈타트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동행 버스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캐리어를 호텔 방에 밀어두고 저녁나절 동행의 지식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을 지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까지 단숨에 잘츠부르크 구시가를 가로지른다.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차례로 맛보며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만찬을 가져볼까 잠시 고민. 하지만 생선요리를 판매하는 이곳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포장하고 기차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슈니첼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장을 본다. 호텔 방 안에 차려낸 배낭여행자의 잘츠부르크식 만찬에 흡족해하며 여행 친구들과 꽤 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Czech 에곤 실레 그리고 카프카 할슈타트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좁다란 골목골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하나. 모차르트 엄마 그리고 에곤 실레 엄마의 고향이 각각 할슈타트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것.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다. 두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포인트. 특히나 엄마의 고향 체스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체스키를 표현한 작품도 상당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익은 에곤 실레의 초상과 작품으로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도 있다. 굴라쉬 브런치를 즐긴 다음 그가 걸었을 법한 골목을 따라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자주 걸음을 멈췄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시야가 트이는 성벽길에 접어들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그 너머의 마을 가장자리를 둥그스름하게 에두르고 그 안쪽에 중세의 시간을 간직한 집들이 소복히 모여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마을엔 아늑한 기운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프라하Prague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화약탑, 천문시계, 카렐교까지 프라하 구시가를 동행 매니저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렐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들을 뒤로하고 다리 난간에 바싹 붙어 프라하 성을 바라본다. 카렐교 건너의 펍에서 벨벳 맥주 한 잔. 부드러운 벨벳 거품이 입술에 닿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나. 잔이 빌 때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셈하게 된다. 달게 자고 일어난 프라하의 아침은 지난밤만큼 아름다웠다. 성비투스성당, 황금소로가 이웃하고 있는 프라하 성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동행 가이드 투어 이후엔 홀로 프라하 시가지를 쏘다녔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끝내 제 발로 찾아갔다, 카프카Franz Kafka를.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내도 아쉬움 가득할 여행길에서 가슴 철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나는 카프카 뮤지엄Franz Kafka Museum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닙니다. 꺼져 가는 꿈과 열정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시간이라는 태양의 갈라진 바닥을-잠수종 속에서처럼-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구스타프 야노우호의 <카프카의 대화> 인용문 中 카프카가 남긴 기록을 보는 사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프라하는 한순간에 반전된다. 숨이 턱 막힌다. 달달한 체코 전통빵 뜨르들로Trdlo를 뜯어먹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곧 프라하를 떠난다. 숨 가쁘게 도착한 다음 여정은 비엔나Vienn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꼭 맛보아야 한다는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에곤 실레와 맞바꾸고 나는 다시금 배고픈 여행자가 된다.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에곤 실레의 체스키는 내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어둡고 울적했지만 나로선 참 반가운 장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간이 다르고 에곤 실레와 나 사이의 시간 또한 다르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풍경이 있고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의 순간에 감사한다. ITALY Vaticano,Rome,Veneziam,Sorrento,Sorrento,Sorrento 냉정해질 수 없는 이탈리아 여행 오늘 나는 생애 첫 야간열차를 경험한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꼬박 12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원했던 베네치아에 닿는다. 이번 동행길에서 가장 기대한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6개의 간이침대가 세 개씩 양 벽면을 의지해 층을 이룬 열차 칸은 비좁았다. 부피 큰 캐리어는 침대 아래 보관함에 들어가지 않아 양쪽 침대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세웠다. 그 위로 다시 작은 짐들을 포갠다. 이제 열차 칸의 여섯 명은 발 디딜 공간 하나 없이 밤을 달린다. 열악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모든 것이 야간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 감행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두근두근했던 그 느낌. 한참 줄을 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슈니첼 한 덩이를 패티로 넣은 버거와 커피 한 병. 자정 가까이 돼서 맛보는 제대로 된 첫 끼니다. 꿀맛. 푸르렀다. 물이 곧 땅인 베네치아Venezia에서는 모든 것이 맑고 푸르렀다. 동행들과 베네치아 본섬 투어에 나섰다. 떠밀리듯 걸을 수밖에 없을 만큼 본섬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 북적임이 베네치아를 더욱 활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물결을 따라 조금 멀리 나가 보자. 배에 올랐다. 리도 섬Lido으로 가는 배다. 매년 가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섬 리도의 4월은 따사로웠다. 흐드러진 벚꽃과 나뭇가지마다 터져 나온 초록 잎사귀들로 봄기운이 물씬했다. 한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세계의 끝은 낮고도 깊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반짝이는 해변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흡수한다.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 양동이와 집게를 들고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사과를 베어 문 젊은 연인. 영화와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다. 리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부라노 섬Burano은 색색이 선명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데칼코마니 풍경을 찍어내는 부라노의 색채는 바다로 나간 이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알록달록 칠을 한 것이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 거품이 절반이나 되는 폭신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녕, 부라노. 안녕, 베네치아.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베네치아의 축복 속에 헤엄치던 나는 어느새 피렌체Firenze 산타마리오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한 마디로 두오모Duomo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두말 할 것 없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곱씹으면서. 찰나에도 시작과 끝은 있다.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인다. 동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로마 떼르미니. 악명 높은 떼르미니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동행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여행지니 모두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지. 주변을 살피고 짐 가방 단속도 단단히 한다. 이제 로마Rome의 법을 따를 시간이다. 이튿날 아침, 로마의 여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나보나 광장까지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의 중심을 통과한다. 촌스럽게 무슨 동전 던지기를 하냐고 피식 비웃었던 나는 어둔 밤 조명 밝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앞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들었고, 칠칠치 못하게 거리에서 무슨 젤라또를 날름거리냐고 흉봤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맛있다는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강 건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마을에 이르러서야 느긋한 한때를 보낸다. 중세로부터 이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라고 했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라도 동네 어귀 작은 카페며 레스토랑 어디엘 들어가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웬만한 부침개보다 훨씬 큰 피자 한 판도 머릿수대로 주문하는 것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와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틈에서 매끄러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훅 들이킨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과 노천카페가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광장으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진다. 조바심쟁이가 모처럼 너그러워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나폴리 항을 곁눈질한 끝에 도착한 폼페이Pompeii에서는 그 폐허 위로 핀 들꽃처럼 가슴 뛰는 생명력을, 아말피 코스트Amalfi Coast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쏘렌토Sorrento에서는 나른해서 더 달콤한 지중해 마을의 여유로움을 삼킨다. 꿈은 아니겠지. 마지막은 아니겠지. 바티칸에서 뜻밖에도 새로이 선출된 교황님의 알현식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이번 여행, 정말 제대로다. 떼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Leonardo Express 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진 폴더 안에 새로이 추가된 이미지 파일만 3,000장. 힘들었던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애틋하게만 기억되는 동행. 나는 지금 또다시, 더없이, 여행을 안달하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SJR EUROPE www.sjreurop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삽자루의 유럽 ‘동행’ 15박 16일 2013년 SJR EUROPE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나는 15박 16일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은 개인의 기호와 예산에 맞게 선택, 자연스럽게 동행 일정 전후로 자신만의 여행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일정 내내 전문 지식 가이드 출신의 인솔자가 동행하여 주요 도시에서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한편 여행자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여행 정보와 노하우는 물론 충분한 자유 일정을 지원한다. 함께하는 낭만과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가장 큰 매력.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퓌센, 할슈타트, 체스키 등 자유 여행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를 경유하는 것도 동행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남부지중해 투어, 바티칸 투어 등 다양한 옵션 투어도 마련해 두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여행자 또는 안전과 도시간 이동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상품이다.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금속활자·활판인쇄 현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금속활자·활판인쇄 현장을 가다

    보존 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인 울산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역사그림책’이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최초에 사용한 방법은 암석이나 동물의 뼈 등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문자의 기원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자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의사전달과 보존을 위한 표현 방법이라는 점에서 ‘인쇄의 기원’으로도 볼 수 있다. 이후 막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등장한 인쇄술은 인류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이를 실용화했다. 고려시대인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불교 서적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현재 충북 괴산군 연풍면 무설조각실에서는 직지를 인쇄했던 금속활자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101호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직지 금속활자 복원을 책임지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 밀랍에 새겨진 글자를 파내고, 황토에 싸서 구운 뒤 쇳물을 부어 활자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쇳물을 주형에 붓는 타이밍이 적절해야 활자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임 활자장은 “어느 한 공정이라도 방심하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얻을 수 없다”며 “질 좋은 밀랍을 얻으려고 작업실 주변에서 아예 토종벌을 직접 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직지 하권을 마무리한 뒤 상권 37장(목판본 기준) 가운데 7장을 복원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의 고인쇄 문화를 보다 실증적으로 밝혀내서 그 위상을 한 차원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주조술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경기 파주출판단지의 ‘활판공방’은 금속활자의 명맥을 계승한 국내 유일의 납 활자 인쇄공장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여느 인쇄소와는 사뭇 다르다. “철커덕 철커덕….” 50년은 훌쩍 넘은 듯한 낡은 주조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 그 흔해 빠진 컴퓨터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조판을 걸어 둔 활판 인쇄기에서 나는 비릿한 윤활유와 잉크 냄새가 뒤섞여 콧속이 얼얼했다. 백열등 아래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령의 숙련된 기술자가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한 손에 쥔 문서를 봐가며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빼곡히 꽂힌 납 활자를 하나하나 뽑고 있다. 마치 1960, 70년대 조판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했다. 활판공방은 2007년 박건한(72) 활판공방 편집주간과 박한수(46) 시월출판사 대표 등 ‘활자문화 지킴이’들의 노력으로 문을 열었다. 활판인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전국을 떠돌며 인쇄기를 어렵게 구하고 기술자들도 수소문한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박건한 편집주간은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가마솥밥 같은 ‘따끈따끈한 책’을 만든다”고 말했다. 명품에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듯 활판인쇄의 모든 과정은 수작업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기계가 못 하는 섬세한 작업은 사람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박한수 대표는 “금속활자 종주국의 전통을 계승하여 장인의 맥을 잇고 싶다”며 옛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금속활자를 쓰는 활판 인쇄술의 발명은 인간사의 혁명이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인류문명을 발달시킨 위대한 결정체이다. 따라서 활판 인쇄의 부활은 우리 문화의 진수를 확인하는 일이자 활자 종주국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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