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레짐 체인지/이기동 논설위원
엄밀히 말할 때,‘정권(Regime)’은 ‘정부(Administration)’와 구분되는 용어다. 따라서 김정일정권이라고 할 때, 이 말에는 북한체제의 독재성, 폐쇄성이 함께 담겨있다.‘노무현정권’ ‘부시행정부’라고 할 때와는 다른 의미다. 미국의 보수주의 학자 니컬러스 에버스타트가 말하는 북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북한의 억압체제를 바꾸자는 것이지, 단순히 김정일을 다른 독재자로 바꾸는 통치자교체가 아닌 셈이다.
전세계적으로 정권교체의 전성기는 냉전시절.2차대전 뒤 동유럽의 공산정권 수립배경에는 소련의 정권교체 작업이 있었다. 토착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중국이 북한,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공산정권들을 가리켜,‘모스크바에서 열차로 수출된 공산정권’이라고 비하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으로 대표되는 전후 서방세계의 정권교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의 정권교체 공작이 가장 활발했던 곳은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 지역. 쿠바, 파나마, 아이티, 도미니카, 그레나다, 니카라과가 모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활동무대였다. 중동, 아시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회교혁명으로 쫓겨난 이란의 레자 팔레비는 1953년 CIA의 공작으로 왕위에 올랐던 인물이다.1992년 피플파워로 물러난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집권과 축출 배후에 모두 CIA가 개입한 경우다.
냉전때 미국의 정권교체 목적이 소련과의 경쟁 때문이었다면, 냉전 이후에는 테러, 독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로 주목적이 바뀌었다.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소위 ‘불량정권’이 잠재적 정권교체 대상이 됐다. 이중 이라크의 후세인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이 무력사용의 첫번째 타깃이 됐다. 그리고 그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이 바로 9·11 이후 등장한 선제공격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북한의 정권교체에 반대의사를 밝힌 배경은 분명치 않다. 현재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붕괴는 북한 핵무기 해결이나, 남북통일 방법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의 발로로 짐작될 뿐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북한 정권교체는 무력이 아니라 인권문제, 주민불만을 이용한 체제붕괴다. 그 첫째 무기가 바로 지난달 발효된 북한인권법인 셈이다. 김정일위원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사실은 미국의 무력사용 위협이 아니라, 이 ‘소리 안 나는 무기’의 위력이 아닌가 싶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