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①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표정을 하고 산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행복한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해서일까? 따지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내 자신 옆에 붙어 있다. 큰 일로 인해서 행복해진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아주 작은 일로부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아주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시시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크게 행복하게 만들었던 일들을 모아본다.
1. 해바라기 100개
1969년인가, 1970년인가에 제작된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Sunflower)”를 나는 개봉하자마자 일본 동경에서 봤다. 구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10년 후쯤 개봉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토리오 데시카라는 거장감독이 연출을 했고, 영원한 배우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출연하는 매우 서정적인 영화였다. 우크라이나에 피어있는 수십만 송이의 해바라기를 보면서 나는 숨이 멎었다.
이상하게도 한 개 두 개 있을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꽃인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피어 있으니까 큰 감동을 주었다. 다른 꽃들과 달라서 모두가 한쪽(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해바라기를 향일화(向日花)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영화는 2005년에 중국에서, 200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상영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 다 큰 사랑을 받았다. 해바라기-수십만 송이는 아니더라도 100송이만 심어놓고 봤으면 좋겠다.
2. 마늘빵 두 개
자장면이 중국음식이 아니라 한국음식으로 인식되듯이, 피자도 이탈리아 음식이 아니라 미국음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내 입에는 이탈리아 음식이 잘 맞는다. 그래서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식당에 가끔 간다. 주로 파스타를 시켜먹는데, 국수도 좋거니와,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은 마늘빵(Garlic Bread)이다.
중국식당에서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잘해야 맛있는 식당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내 생각). 그렇다면 이탈리아 음식은 마늘빵과 파스타를 잘해야 좋은 식당이 아닐까? 그 마늘빵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집은 마늘을 너무 많이 바르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어떤 집은 너무 바싹 구웠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어떤 집은 빵이 너무 두껍고, 어떤 집은 그 반대고...
그러고 보니까 식당 해 먹기도 쉽지 않겠군. 아무튼 와인 석 잔에 잘 구워진 마늘빵 두 개는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3.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00년, 미국 남부지역인 조지아주의 한 가정에 예쁜 딸이 태어난다. 이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등교거부의 이유는 수학공부가 싫고, 특히 수학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부모들은 며칠 동안 딸을 설득해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밤 12시께, 어머니는 어린 딸을 마차에 태워서 30분 정도를 달려갔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더니 어머니는 딸에게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이제 다 봤니? 그럼 가자!”
딸을 데리고 마차를 달려서 다시 30분 정도 되는 마을에 당도했다. 이곳은 불에 타지 않고 건강한 모습의 큰 집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머니는 역시 딸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마을을 구경시켰다. 그리고 마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침 어린 딸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한참 잠 잘 시간에 자기를 데리고 폐허가 된 마을과 잘 사는 마을을 구경시키고 아무 설명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왜 그러셨어요?”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니? 그렇다면 내가 설명해주마. 먼저 찾아간 폐허마을은 자체적으로 힘이 없어서 남북전장 때 북군의 침략을 받고 불에 타버린 곳이다. 나중에 본 곳은 스스로 자체방어를 잘 해서 피해를 보지 않고 잘 살고 있단다. 네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마라. 그러나 네 자체 힘을 기르지 않으면 폐허마을처럼 살 수 밖에 없단다. 결정은 네가 해라.”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이 어린 딸은 그 날부터 열심히 학교에 다녔고, 훗날 신문기자 생활을 하게 된다. 몇 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이 여인은 6년 반에 걸쳐 대하소설을 완성한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설책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큰 감동을 주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그 소설이고, 이 작가가 바로 마가렛 미첼이다.
나는 이 소설과 영화에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보다도 “어머니와 딸”이야기가 더욱 큰 교훈을 주기 때문에 이 소설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4. 밀짚모자
여름철 이것보다 더 시원한 모자는 없다. 시원한 것뿐만 아니라 보기에 모양도 멋있다. 밀짚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점점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 6·25전쟁 이후 밀짚모자 테두리는 영락없이 영화필름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 바람에 영화필름이 아주 많이 없어졌던 것이다.
전에는 밀짚모자가 헐값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지금은 귀한 존재가 되어 있다. 사람도 나이 들면서 귀한 존재가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글 정홍택 상명대학교 석좌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