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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의장 사저 이사… 정치매듭 풀릴까

    ◎격앙된 심기 진정… 남미여행도 취소/민자,「임시국회전 의원직사퇴」 기대 박준규국회의장이 20일 이삿짐을 옮겼다.공관을 떠난 박의장의 새 거처는 서울 서빙고동의 S아파트.전세로 급히 얻기는 했지만 60평 규모로 작은 편이 아니다. 의장공관이라는 공적 공간에 칩거하던 박의장이 사저에 머물게 됐다는 것은 그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꼬여있던 정치매듭이 풀릴 계기가 될수 있다. 정가의 현재의 관심은 『박의장,정말 화났는가』이다.박의장이 공관칩거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은 것은 그의 심경이 냉랭함을 시사해왔다.박의장은 의장직사퇴의사 표명이후 김종필 민자당대표가 몇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영구총무도 측근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 의장직 사퇴의사표명을 전후,박의장의 심사는 상당히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공직사퇴서에 「원의를 물어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었다.사퇴직전 김 민자대표와의 통화에서도 『너무 하는 것 같다.임시국회가 열리면 나의 입장을 신상발언을통해 충분히 소명하겠다.사퇴서가 처리되면 6개월 정도 외국여행이나 한뒤 의원직사퇴를 고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박의장의 태도가 최근 눈에 띄게 누그러지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재산공개파문과 관련한 관계당국의 내사때문이 아니라 한때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측근들이 전한 박의장의 최근 어록은 다음과 같다. 『나 하나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불가항력으로 나왔지만 민자당에 대한 애정도 식지않았다.의원직이나 의장직에도 더 이상 욕심은 없다.다만 투기꾼으로 몰려 30년 정치생활을 마감하기는 싫다.명예를 지키고 싶다』 박의장은 함께 민자당을 탈당한 정동호의원이 지난 19일 돌연 출국,도피의혹이 일자 의장직 사퇴후 계획했던 남미여행을 취소했다.그만큼 여론의 동향에도 신경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민자당 지도부와 박의장간의 직접 접촉은 없으나 간접교감에 따른 박의장문제처리방향은 세갈래로 상정된다.①임시국회전 의원직사퇴 ②임시국회 본회의 불참,사퇴성명서 배포후 의장직사퇴표결→추후 적절시점 의원직사퇴 ③본회의에 참석해 소명발언 등이다. 민자당지도부는 ①안을 선호하고 있다.국회 표결없이 박의장문제가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제헌국회이래 국회의장이 임기중 사의를 표명한 예는 박의장을 포함해 모두 6차례.박의장이전의 경우중 지난 79년 10·26직후 백두진의장의 사퇴서가 「정치상황에 따라」무리없이 통과된 이외에 나머지는 모두 반려되거나 부결됐다. 그러나 박의장은 임시국회전 의원직사퇴는 자신의 불명예와 직결된다고 믿고 있는 눈치이다.어떡하든 소명기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당내 민정·공화계의원들의 반란표가능성과 민주당측이 박의장사퇴서 처리를 이동근의원석방결의안과 연계시키고 있는 점등을 감안,①안이 안되면 ②안의 차선책을 추구하고 있다.박의장의 한 측근도 『민정·공화계에서 반란여지가 보이면 박의장이 직접 나서 설득할 것』이라고 ②안의 합리성을 거론했다. 이삿짐을 옮긴 박의장은 「적당한」예우절차를 거쳐 21일 3년동안 정든 공관을 떠난다.사저라는 「자유공간」확보와 함께 조정의 명수 김윤환의원의 귀국은 박의장 문제처리전망을 밝게 한다.
  • 4·19주역들 정치권 실세로 부상/33돌 계기로 본 그때 그사람들

    ◎박관용실장·최형우의원 여 핵심에/4·18결의문 읽은 이기택 야 대표로 정치인들이 학창시절을 회고하면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경력이 있다.「4·19세대」와 「6·3세대」가 바로 그것이다. 4·19세대는 지난 60년 4·19혁명을 주도했던 57∼60학번사이의 대학생출신으로 지금은 50대중반의 연령층이다.이들보다 3∼4년 늦게 한일국교정상화반대데모에 적극 가담했던 50세전후의 인사들을 「6·3세대」로 불린다. 혁명이나 학생운동을 이끌며 정치지향성을 보였던 이들중 다수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4·19」혹은 「6·3세대」중 일부는 3·5공의 군사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풍기는 이미지는 「개혁적」인 동시에 「반체제적」이었다. 김영삼정부출범후 이들 세대는 정치의 중심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다.4·19의 재평가라는 김대통령의 시대인식과 과감한 개혁추진이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과거 야당에 몸담았던 최형우의원,박실용 청와대비서실장(4·19세대)김덕용정무1장관(6·3세대)등이 문민정부시작과 함께 여권의 핵심실세로 자리잡았다.민주당의 이기택대표·이부영최고위원,신정당의 박찬종대표등 야권 차기대권주자들도 4·19나 6·3학생운동을 거쳤다. 19일은 4·19혁명 33주년 기념일이다.그 당시 학생혁명을 주도했던 대학은 고려대였다.고대학생들은 60년4월18일 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대대적 시위를 벌였다.이 시위의 선언문작성자가 이재환의원(민자)이며 이세기의원(민자)이 정경대학생위원장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다.이기택 민주당대표(당시 상대학생위원장)는 이승만정권을 타도하자는 결의문으로 사자후를 토했다. 신경식 민자당총재비서실장도 당시 영문과 4학년으로 시위에 앞장섰고 김중위·문정수의원등 민자당 중진 상당수가 4·19의 주역이었다.야당의원을 지낸 정재원·강경식씨도 고대출신 4·19세대이다. 서울대에서는 이수정전문화부장관이 선언문을 초안했고 같이 문구를 다듬었던 윤식씨는 유정회의원을 지낸뒤 현재 미하와이에 체류하고 있다.선언문을 복사·배포하는 일을 맡았던 황선필씨는 5공정부에서 청와대대변인,문화방송사장을 역임했다. 민자당의 박범진·강우혁,민주당의 박실의원과 이장춘 전오스트리아대사도 서울대시위를 주도했다.그러나 서울대 출신 4·19세대들중 문리대 학생회장을 지냈던 안병병씨를 비롯,이영일·염길정·정남씨 등은 구민정당의원을 지냈으나 3당통합후 공천탈락·선거패배로 「쓸쓸한」시절을 보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특히 학보사기자였다가 나중에 총학생회장까지 오른 이대섭씨는 과기처·정무장관과 3선의원을 역임하다 수서사건에 연루,옥고를 치른 끝에 칩거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유영철 당시 학생위원장이 3공에서 4·19유공포장을 거부하고 경제계에 진출,동아건설사장에 재직하고 있다.정계에서는 김봉조의원이 민자당내 민주계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정창화 전국회농림수산위원장도 연대 학생시위의 주도자였다. 새정부출범이후 「정치명문대」로 떠오른 동국대 4·19시위는 민자당의 김영구총무와 최형우의원,야당의원을 지낸 고 장충준씨 등이 이끌었다.최의원은 민자당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실세로 떠오르다 아들의 부정입학의혹으로 주춤하고 있으며 장전의원은 지난해 여름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전통적 야도 부산에서는 김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인 박관용비서실장과 서석재 전의원이 동아대학생으로 4·19시위에 가담했다.서전의원은 동아대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 김정수 부산대 약대학생위원장과 허재홍 수산대학생위원장도 지금은 어엿한 집권여당의 4선·2선의원으로 각각 자리잡고 있다. 경북대 총학생회장으로 4·19이후 수습을 주도했던 인사가 이치호 민자당 당무위원이고 유인학·신기하의원(민주)등은 전남대에서 총학생회·법대학생회를 이끌며 반독재투쟁을 벌였었다.
  • 개혁드라이브 강력 뒷받침/재산공개파문 매듭의 의미와 효과

    ◎때묻은 인사 물갈이로 도덕성 확보/새 공직사회 구축… 「창조의 정치」 지향 「신춘정국」을 9일째 강타한 재산공개파문이 30일 박준규국회의장등 6명의 의원에 대한 징계와 강신태철도청장등 5명의 차관급에 대한 문책인사로 사실상 판막음했다. 김영삼대통령은 파문이 매듭된뒤 이를 영국의 명예혁명에 비유했다.그만큼 의원재산공개가 있던 지난 22일부터의긴박한 상황전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했다.이 작업의 당측 사령탑이었던 최형우사무총장은 『오늘로써 제발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을 정도다.이른바 「개혁주체」인 최총장조차 괴로움을 토로할만큼 숨가쁜 시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깨끗한 정부」와 「윗물맑기운동」을 천명한 김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통치권 차원의 반부패운동으로 볼 수 있다.또 문민정부의 공직자상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청백이선언」인 것이다.나아가 이번 파문으로 헌정중단 상황이 아니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부 때묻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물갈이를실현함으로써 헌정사상 초유의 「청정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김영삼정부」는 이번 조치로 역대 어느 정권과 달리 도덕적 기초위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됐다.이는 김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와 경제회생을 위한 고통분담에 국민의 폭넓은 동참을 의미하기도 한다.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잡음없이 뒷받침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기 때문이다. 재산공개는 지난달 27일 김대통령의 재산공개가 그 시발점이었다.당시 김대통령의 재산공개는 『퇴임후 상도동 집에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대선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그 이면엔 「정치권의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함축하고 있었다는 게 정가의 일치된 지적이다. 그뒤 지난 6일 국무총리와 감사원장,12일 민자당대표및 당3역,18일 장관및 청와대비서관순으로 이어졌다.고위공직자들의 엄청난 재산이 속속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고 일부 장관이 해명서를 내는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다 22일 평균 25억여원이라는 민자당의원들의 재산이 공개됐고,비등하던 여론은 『역시 정치권』이라며 최고조로 치달았다.재산형성 과정에서의 갖가지 비리가 드러났고 부정이 파헤쳐졌다.공개 준비과정에서부터 적정규모를 놓고 고민하던 흔적이 역력했는데도 불구,이 정도로 드러나자 「징계론」이 제기됐다.일부에서는 「정치권물갈이」까지 들먹이는 상황으로 급전했다. 급기야 민자당은 공개 이틀뒤인 24일 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를 구성,실사에 나섰고 박의장이 빗발치는 여론에 굴복,국회의장직 사퇴를 선언하고 칩거에 돌입했다.27일에는 유학성,김문기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치의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국민감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 일부의원들이 사퇴하면서 비교적 순탄하게 정리될 것 같았던 문제의원 징계는 절차를 요구하는 박의장과 탈당을 거부한 정의원의 당명불복이 막판 걸림돌로 작용,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민자당의 권해옥특위위원장과 위원들이 대상의원들을 접촉,당의 강한 뜻을 전달했고 해당부처장관들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차관들을 불러 해결의 가닥을 잡아나갔다.최종발표 하루전인 29일 당쪽에서는박의장과 임의원이 탈당을 발표했고 김재순전국회의장은 정계를 은퇴했다.정부쪽에서는 정성진대검중수부장과 최신석강력부장이 자진사퇴함으로써 대단원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종 발표에서 정부는 차관급 경질대상을 5명으로 최소화했다.정밀 실사대상이 15명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5명으로 압축한 점은 공직사회의 위축과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게다가 문책 형식을 당사자가 자진사퇴하고 이를 정부가 수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공직사회의 사기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축재의혹은 엄중히 다스리되 개혁의 한 축인 공직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김대통령은 스스로 이번 파문의 진행 과정을 보고 『5공청문회보다 몇백배 낫다』고 자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새로운 공직사회의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로 평가된다.이제 남은 것은 이를 제도화하고 관행으로 만듦으로써 「창조의 정치」로 가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 박 의장·임 의원 사법처리 검토/탈당파문이후 여권의 대응

    ◎동정여론 일 가능성에 조심스런 행보/“파문확산 방지” 사퇴설득 노력도 계속 박준규국회의장을 비롯한 민자당 탈당 의원들의 향후거취는 호기심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새정권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그 가운데서도 박의장에 대한 처리방향은 현정권의 개혁및 기강확립 의지등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수 있다. 그것은 박의장과 임춘원의원등이 재산공개파문으로 여론으로부터 호된 비난의 화살을 받은 것은 물론 청와대의 의원직 사퇴종용을 거부하고 탈당을 「감행」했기 때문이다.박의장은 청와대측으로부터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종용을 받자 칩거대응끝에 지난 27일 탈당이라는 예측불허의 카드를 내놓고 협상을 시도하다 일방적으로 탈당을 선언했었다. 민자당의 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의 한 관계자는 30일 이와관련,『청와대의 기본구도가 박의장의 의원직 사퇴였으니만큼 방법이 어떠하든간에 박의장을 사퇴시키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김종필대표의 한 측근도 『박의장등이 여론과 청와대의 기류를 너무 모른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의장 문제와 관련,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법처리를 함으로써 의원직을 박탈하는 방법이다.일각에서는 박의장에게 사법처리할만한 혐의가 있겠느냐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으나 전문임대업을 하고 있는 박의장의 아들등을 조사하면 세무포탈등의 혐의를 잡을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보다 유력하다.한 소식통은 『청와대쪽에서 언론등에 공개되지 않은 비장의 무기를 갖고 박의장에게 의원직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안다』며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사법처리는 다소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잘못이 어떠했든간에 입법부의 수장을 민주적인 절차없이 강제로 사퇴시킨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여론의 동정을 살수도 있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의장이 TK의 원로급 수장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두번째로는 사법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몰고가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사법처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고 볼때 정부당국으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번째로는 계속해서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현정부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정부 당국으로서는 하루빨리 재산공개파문을 마무리하고 계획에 따라 개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재산공개파문이 4월 임시국회에서 박의장이 원의를 묻는데까지 계속되면 개혁에 차질을 빚고 국가기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박의장은 가급적 이 방식이 채택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 측근은 『박의장이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다만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체모를 세울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때려잡는 식은 안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청와대측은 임춘원의원도 의원직을 사퇴시킨다는 방침이었다.임의원은 박의장의 탈당이 알려지자 곧바로 탈당을 선언하고 문제가 된 군산관광호텔 주식,장인소유의 주택등을 의료재단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임의원이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밝혔으니만큼 사법처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그러나 임의원에 대해서도 정부당국의 의원직 사퇴노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오히려 박의장의 경우보다 강도 높은 방법이 동원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임의원은 의원직을 내놓고도 업무상횡령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문기의원과 비교해볼 때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31일 출당될 정동호의원도 임의원의 경우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청와대측은 정의원이 공직을 이용해 축재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민자당의 한관계자는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정의원이 권력의 생리를 잘 알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모르는 것 같다』며 사법처리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박의장을 비롯,임·정의원이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않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그리고 그 잣대는 여론이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현정권의 기강확립 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와관련,김영삼대통령의 여론중시및 정면돌파하는 성향을 주목해야 할것으로 여겨진다.
  • 선목판화가 이철수씨 신작전

    ◎서울·부산·광주·대구서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선보여/선적 자연세계·시정 담은 1백점/투박한 선처리 역동적 칼맛 일품 민중판화가에서 선목판화가로 변신한 국내 대표적인 목판화가 이철수씨(40)가 서울 부산 광주 대구에서 신작판화전 「산벚나무 꽃피었는데」를 동시에 개최키로 해 눈길을 끈다. 전시는 오는30일부터 4월10일까지 서울 학고재(737­7941),부산 월드화랑(051­751­8855),광주 갤러리아그배(062­228­4211),대구 기림갤러리(053­423­1605).이번 초대전에 발표하는 신작판화들은 자연과의 교감에서 오는 고요한 관조의 세계와 선적 명상과 시정을 담은 선화 1백점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계에서 활약하다 작고한 오윤,중견 이상국과 함께 대표적 민중판화가로 이름을 날린 이철수는 정규 미술대학 출신이 아닌 미술권 밖에서 커온 자수성가형 화가. 투박한 선과 역동적이고 힘있는 칼맛이 일품인 그의 목판화는 「창작과 비평」사등에서 나온 많은 책들의 삽화를 장식했고 그는 민중미술전의 단골작가가 됐다.그런 이씨가 변화를 맞기시작한 것은 지난89년9월부터 90년1월까지 독일과 스위스 순회 개인전때 맞닥뜨린 동구의 몰락과 유럽자본주의 문화를 체험하고부터다. 그 이후 자본주의의 물량과 돈에 이기는 싸움은 무엇이며, 민중미술운동은 한 시대의 유용성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격과 회의를 안고 귀국했다.그리고 그동안 고수해온 자신의 작업과 민중미술운동에 대한 신념을 돌이키기 시작했다.결국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칩거한채 불가의 선에 심취한 그는 헤어나기 힘든 현실문제를 선사의 깨달음으로 극복할수 있었다.그런 신념에서 「민중미술로서의 선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선화적 내용을 담은 여러번의 개인전과 판화집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정신적으로 대처」하기위해,또 「미술운동의 중대한 고비」를 극복하기위해 이 작가가 천착해온 선화의 깊은 멋.그의 그림을 대할 관객은 「인간의 우매함」과 「자연의 섭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될 것이다.
  • “전 전대통령 치적 불구 산사칩거 등 가슴 아파

    ◎노 대통령,헌정사에 되풀이돼선 안돼” 노태우대통령은 31일 전직 국가원수가 의회에서 증언하거나 산사에 칩거하는 일은 우리 헌정사에서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특별회견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5·6공 화해문제에 대해 언급,『5공의 업적은 6공의 민주화과업에 초석이 됐다』면서 『전두환전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많은 치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의회증언이나 산사칩거등 어려움을 겪었던 점에 대해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새정부가 들어서면 과거정부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개선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야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과거 새정권이 들어서면 전정권을 단죄해버리는 일이 빈번해 기성세대를 죄인으로 양산하는등 모두가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 희곡작가 박조열씨(이세기의 인물탐구:12)

    ◎연극계에 신풍일으킨 “지적작가”/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 일색/특유의 표현력으로 주제부각… 관객들 매료/「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상대상·희곡상 수상 박조열이란 이름은 몰라도 희곡 「오장군의 발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이 희곡은 74년당시 예륜의 「공연불가」판정으로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88년 해금되어 문예극장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을때 「역시 박조열 희곡」 찬탄을 금치못하게 했다. 탄탄한 극적 구성과 그 소재의 특이성,해학적이라 할 작가특유의 언어 표현의 탄력성은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작가적 자존심은 연극의 어디에서도 잔재주를 부리거나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다.진지하게 대상에 정면 대결하면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연극속에 용해시켜 설득력있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고있다.어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던 극의 테마를 작품 전편에 도도하게 깔고있으면서도 지성의 감성을 잃지않는 것도 대단하다.감상과 정조에 탐닉한 나머지 작품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정된 공간속에서 빚어지는 여러종류의 갈등을 저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한다.그는 연극의 격조뿐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관객을 그만큼 존중해주는 작가다. 연극계데뷔 28년만인 91년,첫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을 펴냈을때 평소 그를 총애해 마지않던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씨는 그의 희곡집출간을 「기특하다」고 표현했었다.「기특하다」는 표현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독하리만큼 「과작」인 그가 과연 「책한권」이 될만한 분량의 희곡작품을 썼느냐는 것이다.두번째는 「남달리 깐깐하고 결벽성이 강한 그가 자작품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겠는가」하는 평소의 그의 사람됨과 성품을 꿰뚫어 알고있는 입장에서의 소견이다. 어쩌면 수년후로 미루거나 또는 영영 이루지 못했을 이 창작희곡집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이긴 소산인 셈이다. ○30년간 쓴 희곡 9편뿐 박조열은 연극계에 몸담은지 30년동안 단 9편의 희곡을 썼을 뿐이다. 단9편의 희곡만으로 그는 연극계의두드러진 존재가 되었고 그의 희곡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많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이는 뛰어난 작품성과 글에 대한 완벽주의,확고한 주관의 작가정신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세속적인 것에 대한 일체의 거부,불의와 뻔뻔스러움을 용납치않는 단호한 의지는 희곡을 쓰지않는 동안의 여러 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오장군의 발톱」을 들수있다. 「오장군­」은 문예진흥원이 주는 첫번째 창작희곡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작품이다. 성은 「오」이고 이름은 「장군」인 이 땅의 무식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한 농부와 군대에 간 아들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따뜻하고 다감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없이 단지 주인공이 「소총병」이며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연극은 연습도중 발이 묶여 긴 어둠속에 사장됐었다. 공연이 좌절됐다는 실망도 실망이지만 이에 충격받은 작가는 이때부터 창작의욕을 잃고 붓을꺾다시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그의 희곡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관객의 호응과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때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운 지적 작가」로 지적되곤 했다. 데뷔희곡인 「관광지대」는 당시의 국시인 「유엔을 통한 남북통일 정책을 위반」했고 「미국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되면서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등 젊은 연극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희곡의 재미」를 체험케하여 극작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된 계기가 되게했다. 다음작품인 「토끼와 포수」는 달리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다.이 연극은 「우리 연극계에 일대 신풍을 일으킨 무대」로 평가받았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진행과 대사와 대사의 숨막힐 듯한 불꽃대결,연극만의 특권인 대사해학과 동작변화의 반전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 연극은 김정옥연출로 극단 민중극장이 초연하여 동아연극상대상·연기상·극본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각 극단들이,그리고 지방극단·대학극에서 다투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일색이었다.그중에서도 「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는 이른바 우리연극에서의 반연극·불조이극의 시범이라 할수있는 극작법이 특징이다. 통일문제가 극도로 터부시되던 시절,그 벽을 뚫기위한 방법으로 동문서답식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의도적으로 구사하여 작품이 말하려는 진의를 맨끝장면에서 관객이 깨닫게하는 은유법으로 극을 만들어나갔다.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흥미롭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관극경험을 할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자극적 「오장군­」의 「공연불가」방침에 못지않게 그를 분노케한 것은 오장군에 대한 연극계의 비겁한(?)침묵이었다.그것이 부당한 판정임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부당함을 말하려하지 않았다. 생계수단으로 방송극에 손대는 동안에도 그는 그에게서 「연극」을 빼앗아간 분노가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이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불탔다.정신적으로 왕성하던 시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희곡에 손댔고 얼마든지 샘물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누군가 그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창작의 샘물줄기를 잔혹하게 절단시켜버린 것이다.그는 비수같은 노여움을 죽이고 오로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86년 연극협이 처음 설치한 극작분과위 초대위원장에 추대되자 먼저 「규제 작품」들을 구제하는데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규제의 한계가 불투명하고 기껏 「단어 한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그 법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첫번째 시도로 그해 「한국연극」(4월호)에 「표현에 대한 한계장황과 개선책」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글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공연법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임을 전제,「공연윤에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가시적인 잣대로 규제하려들기보다 이를 오히려 자정기능에 맡기라」고 은근히 꼬집었다. 이를 기화로 신문·방송과 각분야전문지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다투어 보도하는등 이를 다각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제11회 서울연극제 심포지엄에서도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자』고 역설,이어서 「한국연극」 「공간」 「예술과 비평」지 등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일본연극전문지 「신극」에도 이후 4년간 한국연극계 동향에대한 평문을 기고하여 일반과 전문기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당위성과 인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그는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오쿠다이라 야스히로(오평강홍)의 「표현의 자유」(전3권)등의 저서를 구입하여 밤새도록 세밀분석으로 독파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4후퇴때 월남 88년 비로소 긴 어둠에 갇혔던 「오장군­」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로 어렵게 막올린 「오장군­」 공연은 그의 가슴속의 울분을 속시원히 씻어줬을 뿐만아니라 전례없는 대호평으로 그해 백상예술상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그는 연극계에 돌아왔다.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연극계 중심부에서 이제는 리더의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조열은 함남함주에서지주의 외아들로 출생,문학하는 친척이 집안에 있어 쉽사리 문학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다.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버나드 쇼와 몰리에르에 심취하여 그때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를 꿈꿨을뿐 극작가가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주신분」을 숨긴 것이 드러나 산간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남쪽으로 가는 LST에 승선했고 묵호항 정착후 육군에 지원,12년간의 군복무시절의 삽화를 정리한 것이 연극 「오장군­」이다. 험준한 산악 최전방 소대원으로 근무하던 51년,허약체질인 그가 고된 산중의 강행군을 견디다못해 「자결」을 결심하려던 순간,어디선가 그를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결한 아들의 소식」을 듣게될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그때 산중의 목소리는 「생사조차 알길없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념이 천리길 첩첩산을 넘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그에게 와닿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믿는 부인 최선분여사(58)와 공부잘하는 외아들(현섭씨·31·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어머니 그리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 마시며 눈물지을 때가 잦다고 말한다.그리고 고향을 등진지 4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일처럼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두고온 산하,고향의 얼굴들이 잊힐리야 없다.따라서 남북통일문제는 그의 희곡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커다란 기둥줄기가 될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요즘 15년만에 국립극장 가을공연 위촉작품과 태평양국제연극제를 위한 새 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의 손으로 찾은 「표현의 자유」이후 주제를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 될것이다.작가의 사명감과 투철한 작가정신,깐깐하고 곧고 불의와 세속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연극의 자존심을 돌이켜 아마도 또하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보 ▲1930년10월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 지주인 박승훈씨와 최한익여사의 1남4녀중 장남 ▲47년함남중학(구 함남고보)졸업 ▲49년 중등교원 자격시험합격(문학),원산공업학교교사­마전리중 전근 ▲50년 흥남철수때 월남,육군지원입대이후 12년간 군복무 ▲63년 육군예편,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극작수업),단막희곡 「관광지대」(단막희곡 28인선 수록) ▲64년 장막희곡 「토끼와 포수」극단 민중극장 초연 ▲65년 희곡 「소식」극단 민중극당 초연 ▲66년 단막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극단「탈」초연 ▲67년 단막희곡 「불임증 부부」(저승에서 만난 부부)극단 「탈」초연 ▲70년 희곡 「흰둥이의 방문」 ▲74년 희곡 「오장군의 발톱」예륜 「공연불가」판정 ▲75년 여석기씨와 함께 한국극작워크숍 창설 ▲76년 희곡 「가면과 진실」(문예진흥원 창작희곡지원작가),희곡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79년 한국최초의 FM 음악드라마 「음락가의 소상」(11개월 집필) ▲80년 독립투쟁과 사상분열사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땅의 아들들」(10개월 집필) ▲83년 일본연극계 견문 ▲86년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 초대위원장 ▲88년 「오장군의 발톱」해금(극단 미추 초연) ▲89년 ITI(국제연극협회)헬싱키총회 참석 ▲9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한국연극계의 글라스노스치」강연,일본마에바시(전교)예술제 심포지엄서 「한국의 현대연극」강연,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의 「오장군의 발톱」공연참관 ▲88∼현재 숭의여전 문창과 출강 동아연극상 대상(희곡상),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백상예술상 대상(희곡상) 「오장군의 발톱」「총독 돌아오다」「한국현대단막극선」
  • “2천억 백지화” 파문… 국민당의 앞날

    ◎물건너간 “공당화”… 존폐기로에/사당운영 지속 포석·2선퇴진 수순 두갈래 추측/당내 반발로 정계은퇴 선언땐 공중분해 가능성 정주영대표의 아리송한 발언과 실언이 거듭되고 민자당의 선거사범 엄중수사촉구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국민당의 행로가 불투명하다. 게다가 정대표가 12일 또다시 대선기간중 약속했던 당발전기금 2천억원조성의 백지화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힘에 따라 더욱 깊은 미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발전기금조성은 국민당의 「공당화」를 이루는 필수적 고리라는 인식을 당내외 모두가 해왔는데 정대표가 이 약속마저 파기해 버림에따라 국민당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다고 볼수 있다. 이제 국민당의 향후 진로는 둘중 하나로 판가름 나리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첫째는 정대표가 기금을 내놓지 않는 대신 지금까지 처럼 자신의 사재로나마 당을 운영하리라는 분석이다. 정대표도 이날 경주로 내려가기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계속의사를 분명히 했다.2천억원 기금조성이 「공당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면서 당을 대표인 자신을 중심으로해 최고위원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당화기금을 못내놓겠다」는 것과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발언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대선이후 정대표가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바로 정치발전기금출연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대표의 기금조성백지화발표는 정계은퇴 혹은 2선퇴진을 위한 수순밟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정대표의 행동이 정계은퇴수순이라면 문제는 보다 심각해진다.정대표가 일련의 돌출행동처럼 어느날 갑자기 정계은퇴를 선언한다면 국민당은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정대표의 12일 기자간담회내용을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면 「당발전기금을 못내놓겠으나 당권은 계속 갖겠다」는 최후통첩으로 여겨진다. 정대표가 기금출연은 않으면서 당을 일선에서 지휘하겠다는 것은 「사당적」운영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이자헌·박철언의원등 「공당화」를 전제로 대선기간중 새한국당에서 입당한 인사들로서 수용하기 힘든상황이다.정대표의 독선적 당운영에 불만을 품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김동길최고위원을 비롯,김효영총장·김정남총무등 창당파들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 다수 인사들이 정대표의 결정에 집단 반발한다면 국민당은 치유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이러한 틈을 비집고 민자당측은 김복동·박철언·김용환의원등의 중진들을 포함,국민당 창당에 참여한 다수 초선의원들에게 은근히 입당교섭의 손길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국민당내에서는 「파국은 피해보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대표가 오는 4월 전당대회때까지 한시적으로 2선 퇴진하는 방안,당발전기금의 일부조성 혹은 매월 정액으로 조달하는 방법등이 절충안으로 거론된다. 결국 내부조정기간을 거쳐 정대표가 대선이후 두번째 경주칩거에서 귀경하는 금주말·내주초가 국민당 정상화나 당붕괴 또는 일부 이탈등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관계당국과 민자당의 대선사범 엄격처리는 국민당 내부 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당일각에서는 정대표의 경주칩거가 검찰소환사실을 미리 알고 그를 피하려는 행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정대표의 2천억원 발전기금 백지화선언이 국민당 입지를 미리 약화시킴으로써 민자당과 검찰의 예봉을 피해보려는 고육책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대두한다. 국민당은 수사의 형평문제를 들어 일단 정대표가 검찰소환에 불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국민당과 민자당및 관계당국간의 긴장이 고조될 전망이다.
  • 정 대표 말뒤집기/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주영 국민당대표의 오락가락하는 언행을 보면서 「안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이나라가 어찌 됐겠는가.정대표를 안 찍은 유권자들은 물론 그에게 귀중한 한표를 던졌던 이들중 상당수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대선참패이후 정대표의 행적을 보면 상식으로 이해안되는 대목이 수두룩하다. 개표직후 정대표는 선거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하지만 며칠동안 지방에 칩거하다 상경해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전민주당대표를 전격방문,선거불복소송을 내자고 제안했다. 새해들어서는 새한국당과의 통합약속을 일방 파기하는가 하면 대선때 밝혔던 「한은의 민자당선거자금 3천억원발권주장」을 취소하고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선거패배에도 불구,정치를 계속하겠다며 국민당의 「공당화」추진을 거듭 강조했지만 실제 2천억원 정치기금조성과 현대와의 단절물제에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급기야 지난 6일에는 『대선막바지 새한국당과의 통합선언당시 이종찬의원에게 50억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비록 통합을 전제로 부채변제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달기는 했지만 50억원수수설이 사실이라면 후보사퇴를 위한 금품제공으로 범죄행위의 성격이 짙다.어찌 보면 스스로 범법을 인정한 셈이다. 국민당 당직자들은 정대표의 실언연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 중론이다.일부 당직자들은 『일반 회사에 「사고처리담당 중역」이 있다는데 우리가 그 꼴』이라며 정대표의 무분별한 언행을 수습하는데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기업이라도 수단·당법을 가려가며 돈을 벌어야 한다.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정치는 「명분」을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에서는 9단일수 있으나 정치에서는 아직 입단조차 못했음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을 외면해선 안된다. 정대표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한다.약속대로 정치기금을 내놓고 참신한 인사가 정치발전을 위해 앞장설수 있도록 후견인이 되는데 만족해야한다.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3백80여만명의 유권자들을 욕되게 해서는 안된다.
  • “정 대표 외엔 대안 없다”/진로모색 국민당 의총 속기록

    ◎내각제개헌 목표로 다시 뛰자/민주와 공조­정책연합 추진을/지구당 지원자금 공개해 오해 씻자 국민당이 정주영대표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대선패배충격의 조기수습에 나섰다. 「12·18」대선에서 참패한 직후 국민당 일각에서는 정대표 2선퇴진주장이 제기됐고 당자체가 「공중분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대두했었다. 그러나 당운영자금조달이나 당내 이질성극복을 위해서는 「정대표체제」를 보다 확고히 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당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23일 경주현대호텔에서 정대표 주재로 열린 의원 총회 토론내용도 주로 정대표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날 의총에서 나온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김정남총무=경주에서 의원간담회를 갖는것은 이곳에 칩거중인 정주영대표가 하루빨리 상경,당무에 복귀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소속의원들의 뜻을 직접 찾아뵙고 전하는게 도리일것 같아서이다. 또 대선이후 국민당의 역할이 오히려 더 커졌다.이런 취지에서 여러분들의 뜻을 말해달라. ▲정주영대표=이렇게 찾아줘 감사하다.우리는 대선에서 선전했다.그러나 김영삼당선자가 여권의 모든 기능을 동원,우리의 숨통을 죄는 바람에 졌다.나라경제를 위해 결과에 승복한다. 과거 야당과는 달리 옳은 정책,특히 경제정책은 여당을 지원하겠다. ▲김해석의원=당발전을 위해 당직과 기구개편이 필요하다.총재직을 신설하고 그 밑에 약간명의 최고위원을 두자. ▲한영수최고위원=오늘 회의가 중요하니만큼 의원총회로 격상시키자(채택).대선승복과는 별도로 민자당의 선거과정에서의 잘못을 국회에서 짚고 넘어가자. ▲김동길최고위원=이번 대선패배는 실패가 아니라 시련이다.이런 시련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것이지만 우리당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자헌최고위원=이시점에 중요한것은 결속이다.결속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하고 우리의 목표는 내각제개헌,선거공영제,중·대선거구제 실시등 헌정개혁을 통한 난국수습이다.이런 목표를 가진 다른 정치세력과 힘을 합치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문창모의원=정대표는 조속히 일선에 복귀,당을 이끌것을 제의한다.(전원박수로만장일치통과) ▲정대표=국민당을 계속 공당으로 발전시킬것을 약속하고 당을 어떻게 이끌것인지는 여러분들과 논의하겠다.오는 28일 당무에 복귀하겠다. ▲조순환의원=우리당이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맞고 있지만 국민들이 양금청산과 지역감정 해소를 원해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이 있다. ▲양순직최고위원=우리당의 사활을 결정하는 기로에 서있다.당원들도 사기가 처져있으니 단합해야한다. ▲최영한의원=정대표가 재벌총수였다는 이유로 지구당위원장들이 일부 당원들로부터 상당한 의혹을 받고있다.지구당에 지원한 자금을 차라리 공개하면 오해를 씻고 당원들의 결속에 도움이 되겠다. ▲김용환최고위원=대선에 승복하지만 중립내각의 편파성은 짚고 넘어가자.진로문제에 대한 비관은 버리고 당의 색깔과 정책을 분명히 하자. ▲박철언최고위원=지도체제의 정비가 필요하다.3월 전당대회에서 당원·당규를 정비하자.최고위원 수도 너무 많다.당을 제도가 움직이는 공당으로 변화시키는 한편 야권대통합을 모색하자.민주­국민 양당간의 공조·정책연합을 추진하자. ▲이종찬의원=정치적으로는 이미 국민당과 새한국당은 통합됐다.따라서 정대표의 회의참석 요청도 있어 같은 입장에서 참석했다. 양당의 통합정신을 수용해준다면 당의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 ▲정대표=회의에 참석한 모든 의원들이 백의종군하겠다는 각오로 일심동체로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여러분들의 이런 각오를 받들어 당을 이끌겠다.
  • 정주영씨 “재출마 않겠다”/칩거 5일만에 경주서 회견

    ◎소속의원 결의 따라 복귀… 당직 현체제 유지/정치발전기금 2천억 약속대로 내놓을터 대선패배후 지방에 머물던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가 23일 경주현대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의 심경과 당의 진로등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지난 19일 새벽 대선결과수용발표문을 간단히 낭독한 뒤 서산농장과 경주에서 칩거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던 정대표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정치재개의사를 분명히 해 대선패배충격에서 벗어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대표와의 일문일답요지는 다음과 같다. ­국민당의 향후 진로등에 대한 구상은 정리됐는가. ▲의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당에 복귀하라고 해서 의원들의 결의에 따르기로 했다.물질적인 것을 초월해 전부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복귀하기로 결심했다.5년후 잘 되도록 도와달라. ­다시 출마하겠다는 뜻인가. ▲한번 떨어지면 그만이지 다시 할 생각은 없다. ­당직개편과 지도체제문제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중히 하겠다.당직자들은 내가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은 이상 당분간 현체제대로 가야할 것으로 본다.민자당도 조각이나 당직개편을 할 것이고 민주당도 전당대회를 열기 때문에 다른 당이 하는 것을 관망한 뒤 결정하겠다.이 다음에는 꼭 이길수 있는 체제를 갖추도록 하겠다. ­새한국당과의 통합문제는. ▲정치적으로 합당이 됐고 절차만 남아 있다.이종찬의원도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전당대회는 언제 열것인가. ▲천천히 하겠다. ­정치발전기금 2천억원 조성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약속했으니 내놓아야지.월요일(28일)당무회의에서 기금조성과 사용방법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히겠다.주식을 현금화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마련해갈 생각을 하고 있다.
  • 정주영후보/“성사재천” 승복의 변

    ◎“김 후보 당선 진심으로 축하” 국민당의 정주영후보는 19일 새벽 광화문 당사에서 김동길최고위원 채문식고문,김효영사무총장등이 배석한 가운데 침통한 표정으로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갖고 패배를 시인하며 김영삼민자당후보의 당선을 축하했다. 정후보는 이날 미리 준비한 발표문을 통해 『선거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 『온갖 고난속에서도 나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후보는 또 『당선이 확정된 김영삼후보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후보는 대선결과에 대한 책임과 자신의 거취에 대해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후보는 이어 정세영현대그룹회장 정순영성우그룹회장등 가족들과 자신의 집무실에서 30여분간 대화를 나눈뒤 양순직최고위원과 김정남원내총무등 당직자들의 면담도 거절하고 당사를 출발,서산농장으로 내려가 칩거하고있다. 한편 김효영사무총장은 선거결과에 대해 『뜻밖의 참패에 할말이 없다』며 『결과에는 승복한다』고 밝혔다. 김사무총장은 『패전지장으로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면서 『그러나 향후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관권의 부당한 특정정당에 대한 편파수사 일부언론의 폭거등이 시정돼야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민당은 이날 새벽 1시30분에 긴급선거대책본부회의를 가진데 이어 하오 4시 다시 회의를 재소집,대선참패에 대한 원인및 대책을 논의했다.
  • 구심점 상실… 신당창당 타격/박태준씨 “불참”선언 파장

    ◎합류약속 인사들마저 태도 돌변/추진력 약화로 일정 수정 불가피/「광양담판」후 이미 결심… 주변정리 거쳐 공표 포항에서 칩거중인 박태준 민자당전최고위원이 17일 측근을 통해 신당불참여를 공식선언 함으로써 그의 행보를 둘러싼 항간의 구구한 억측들이 사라지게 됐다. 비록 측근을 통한 간접적인 입장표명이긴 하나 『더 이상 혼탁한 정치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박의원의 최종 심경이 확인된 셈이다. 박의원이 이같은 결심을 하게된 것은 지난 10일 김영삼총재와의 「광양담판」이후라고 측근들은 전한다.정치판에 발을 잘못 디뎠으나 앞으로는 마음을 모두 비우겠다는 것이 「박심」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박의원의 핵심측근인 조용경보좌역은 『최고위원직사퇴와 탈당선언은 사실 더 이상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않고 당당하게 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고 말해 정치권 일부의 추측처럼 「외압」이 아닌,「박의원 스스로의 선택」임을 강조했다. 이는 정치권 일각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지난 15일 정석모의원과의 단독 요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박의원행보의 큰 흐름은 지난달 29일 광양제철 4호기 준공식 직후 고박정희대통령묘소를 참배,박의원이 읽은 「준공보고」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가의 정설이다.박의원은 당시 「보고」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박대통령의 혼령이 계시다면 이 박태준이가 흔들리지 않고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는 내용의 상당히 이례적인 말을 했었다. 물론 신당추진인사들이 내건 현실 정치개혁 부분을 박의원이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신당참여 가능성이 증폭된 점도 없지 않다. 이와관련,박의원의 또 다른 측근은 『신당추진인사들과 같은 방향으로 생각해온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어느 정치인이나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길만이 현실정치에 꿈을 심을수 있다는 게 박의원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고 언급,박의원이 처음부터 신당행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이룩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망과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때문에 박의원이 11일째 포항과 광양을 오가며 향후 거취를 놓고 고심해온 것은 틀림없다. 박의원이 10일 넘는 이러한 「장고」끝에 신당불참여,즉 「정치2선 후퇴결심」을 내리게 된 동인은 포철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과 회의때문인 것으로 측근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번 결심이 정계은퇴로까지 이어 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조용경보좌역은 이에대해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등 공인으로서 맡고 있는 일들이 많아 이런 소임은 계속 추진할 것 같다』고 언급,박의원이 당장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밝혔다. 신당추진세력들은 박태준 전최고위원의 신당불참의사 표명으로 신당창당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 틀림없다. 당초 신당추진세력들은 박의원의 합류에 이어 박의원 또는 강영훈전국무총리를 국민후보로 추대해 신당의 골격을 갖추고 국민당과의 통합을 이룩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관건이었던 박의원합류가 어려워짐에 따라 추가탈당자영입교섭은 커녕 오히려 합류를 약속했던 인사들 조차도 주춤거리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17일낮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의 12인 신당추진세력모임도 원래는 이 자리에서 창당실무작업팀을 구성할 예정이었으나 이 보다는 「박의원을 좀더 설득하자」「박의원 없이 창당작업을 계속하자」는 원론수준의 논의가 주조를 이뤄 퇴보한 느낌이었다.특히 이날 참석할 예정이었던 12인중 이종찬·박철언·이자헌·장경우·한영수·유수호·정호용·김용환·강창희의원등 9명은 참석했으나 이재환·성무용·임춘원의원은 불참,위축된 분위기를 반증했다.참석자중 정호용·강창희의원은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까지 밝혀 신당창당 작업의 앞길이 험난할 것임을 시사했다. 따라서 박의원의 불참의사표명은 박의원의 동참을 창당기폭제로 삼으려는 신당추진세력에 타격을 주었음은 물론 내주초 창당준비위 발족,이달말 창당이라는 기본일정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그러나 신당추진세력들은 신당 창당을 절대목표로 삼고있는 만큼 세력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라도 계획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 “후속탈당 스톱” 신당바람 주춤/창당작업 어떻게 돼가나

    ◎동조 예상의원들 대부분 당잔류 결정/구심없어 위축… TJ동참 한가닥 기대 박태준위원의 탈당이후 초반 상승세를 타던 「신당바람」이 주춤거리고 있다. 지난14일 이자헌 박철언의원등 현역5명의 민자당탈당에 이어 이번주말쯤 추가탈당할 것으로 알려졌던 동조예상의원 대부분이 당잔류의사를 표명했거나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다. 박철언의원이 이끄는 월계수회의 핵심멤버인 강재섭의원이 이미 당잔류를 공식선언했고 이긍령 김인영 조영장의원등 다른 멤버들도 신당행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또한 박범진 박명환 강우혁 이영문의원등도 「탈당의사가 전혀 없음」을 당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평소 반금성향이 강한 노재봉 김종인 최병렬 안무혁의원등 이른바 「노심」판독의 바로미터인 노대통령직계인사들도 탈당여파와 관련,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최재욱의원 정도만이 최고위원비서실장이라는 특수한 관계로 자신의 거취에 유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이들이 잔류명분으로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민자당과 김영삼후보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즉,신당바람에 잘못 휩쓸릴 경우 이번 대선에서 김대중후보 당선이라는 「가장 원하지 않는」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와함께 포항칩거일정을 다음주초까지 연장해가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박태준위원의 모호한 태도도 이같은 소강국면을 조성하는 커다란 요인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신당추진세력은 「원내 10명,원외 20명이상 추가탈당확신」이라는 종전 입장과는 달리 『이러다가는 원내교섭단체구성도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의기소침해 있다. 하지만 신당추진세력은 다음주초 박위원 거취표명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다.만약 박위원이 신당참여의사를 피력한다면 또다시 물줄기를 반전시키는 호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때문에 신당세력측은 「박위원 모셔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신당구성원의 부정적이미지 해소를 위해 야권인사와의 연대에도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새정치국민연합의 이종찬의원이 16일 이철승 이민우 고재청씨 등 구야권원로를 만나 신당참여를 권유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 “새달초 창당” 신당세력 속보/활발한 물밑활동 점검

    ◎주력,“박심은 우리편… 유리한 국면” 판단/TJ칩거­침묵에 일부 관망파는 주춤 박태준최고위원의 민자당탈당으로 활기를 띠고있는 신당추진세력들은 「박심」은 자신들쪽에 기울고 있다고 보고 이번주중 민자당내 민정계관망파와 반금성향의원들을 상대로 연쇄접촉을 갖는등 세확산을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세력은 이에따라 정국 상황이 기대했던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경우 다음주중 「신당호」의 닻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삼총재등 민자당지도부가 민정계중진의원들을 대거 동원,관망파의 「주저앉히기」에 적극 나서고있어 박최고위원의 탈당으로 빚어진 정국동요는 이번 주말이 최대고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신당추진세력은 크게 이종찬의원의 「새정치 국민연합」,무소속동지회장인 정호용의원이 이끄는 무소속그룹,한영수·임춘원의원등 민주당탈당파,민자당소외그룹인 이자헌·박철언·김용환·장경우의원등 이른바 「반금4인방」등 네갈래로 볼수있다. 이들은 박위원의 탈당이 확인된 지난주말쯤부터 활발한 물밑교차접촉을 벌여 신당창당의 구체적인 스케줄까지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자당탈당파의 핵심격인 박철언의원은 12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신당추진세력을 지칭)이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기간이 이번 주가 될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일정을 뒷받침했다. 즉 박의원등 반금4인방이 14일쯤 일부 원외지구당 위원장과 함께 1차 탈당을 결행하고 주말쯤 유수호·강우혁의원 등 현역동조세력과 원외위원장들이 2차로 탈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금세력의 원로급인 채문식·윤길중고문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12일상오 민자당사에서 열린 긴급당무위원및 고문단연석회의에 채·윤고문과 함께 반금성향의 이자헌 박철언 김용환 심명보 이도선 남재두당무위원등이 불참한 것은 유의해볼 대목이다. 박의원은 또 김총재측이 박최고위원의 정계은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에 대해 『박위원이 언제 구체적인 언급을 한적이 있느냐』고 반문,다분히 김총재측의 「희망사항」인 것으로 풀이했다. 박의원은 특히12일 상오 시내H호텔에서 이종찬 김용환 심명보 장경우의원등과 함께 조찬모임을 갖고 신당의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박의원등은 신당동조세력의 규모를 면밀히 분석하고 신당을 만들더라도 민자당탈당파와 새정치국민연합등 모든 세력에게 똑같은 자격을 부여한다는데 의견접근을 본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당이 관망파들을 대거흡수,가속도를 붙이기 위해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당의 얼굴」을 결정하는 것이 필수전제조건이라고 보고 유력한 대상인물인 박최고위원이나 강영훈전총리 「모셔오기」를 위한 삼고초려에 들어간다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 모임에 노태우대통령의 핵심측근인 김종인의원이 참석한 것은 향후 정국추이와 관련,주목을 끌었다. 김의원은 평소 『10월중에 정치권의 큰 변화가 있을것』이라고 동료의원들에게 자주 말해온 것으로 알려져 이른바 「노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초·재선의원중심의 「관망파」들이 앞으로 행보를 결정하는데 커다란 변수역할을 할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와 관련,김의원과 비슷한 입장인 노재봉·안무혁의원의 거취표명도 상황판단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데 특히 안의원의 경우 신당창당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는 또 이들 세력을 주축으로 늦어도 다음달초까지 중앙당창당을 끝낸뒤 다음단계로 국민당과의 제휴를 모색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또하나 주목되는 것이 전두환전대통령의 행보로서 전전대통령은 지난 4일 이한동·장경우의원등에 이어 11일에는 심명보·이세기·정석모·김종호의원등과 골프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정가에서는 전전대통령이 신당태동과 관련해 모종의 역할을 하고있지 않느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전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장세동전안기부장과 허문도전통일원장관 등이 신당합류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다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신당창당 움직임에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민자당지도부의 집요한 설득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관망파들이 신당의 향후 진로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관심의 표적인 박최고위원이 「칩거」를 계속하며 자신의 거취에 관해 일체 함구하고 있을 경우 이들의 「신당행」을 주춤거리게 할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박위원이 당초 예정대로 이번주초 귀경하지 않아 신당세력의 세확산이 『실기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돌고있다. 지난 경선당시 이종찬의원진영에 가담했던 최재욱·박범진·박명환의원과 박철언의원이 이끄는 월계수회의 강재섭·이긍령·김인영·조영장의원등 초·재선그룹의 관망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 장영자씨 재기하려나/30억 빌려 증권투자·외제승용차 구입(조약돌)

    ○…지난 82년 거액어음사기사건으로 9년10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한 뒤 지난 3월30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영자씨(47·사진)가 출소 만6개월을 맞아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장씨는 그동안 서울 강남구 청담2동 대지 2백20평 건평 80평의 자택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실상의 칩거생활을 해왔으나 요즘에는 증권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외제고급승용차를 구입하기도 해 모종의 활동 재개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82년 4월 당시 어음 사기사건으로 장씨가 안고 있는 빚이 1천억원에 이르는 점으로 미뤄 볼때 이같은 장씨의 움직임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장씨는 지난 5월 유일하게 가압류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기도 화성군 일대 5천3백여평을 담보로 사채업자 하모씨(52)로부터 30억원을 빌려 일부를 증권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지난해 9월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한데 이어 지난 5월 임페리얼 및 벤츠 300 승용차를 사들이는등 「재산가」행세를 하고 있어 주변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 브라질 대통령 사임 임박/「콜로르게이트」 파문 확산

    ◎의회,수뢰 확인·탄핵심의 예정/민·군도 사퇴압력… 새달 하야설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소추 위기에 직면한 브라질의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대통령(43)이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금명간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지난 89년 첫 직선 대통령에 당선된 콜로르는 현재 의회·국민 뿐아니라 브라질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군부로부터도 사임압력을 받고있어 부통령의 승계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9월 하야설」이 정가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앞서 브라질의회내 「콜로르 스캔들」에 대한 22인 특별조사위원회는 26일 콜로르대통령이 보좌관들의 거금 횡령사실을 알고 있었고 뇌물을 받았다고 확인하는 보고서를 16대 5란 압도적 표차로 승인했다.3개월에 걸친 조사끝에 이날 채택된 2백쪽의 보고서는 콜로르대통령이 대선운동당시 재무담당이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파울로 세자르 파라스가 조직한 「공갈단」을 통해 6백50만달러를 부정 착복했다고 발표했다.조사위원들은 이 공갈단이 정부발주 공사등에서 각종 특혜를 미끼로 기업인들로부터 금품을 뜯어냈다고 밝혔다.보고서는 또 콜로르대통령의 가족·인척등이 대통령 재임 2년6개월간 2천3백만달러의 뇌물과 상납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에따라 하원은 내달 2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요청을 심의할 예정이다.브라질대통령의 탄핵은 하원의원의 3분의2이상 찬성으로 소추되며 대통령직무가 정지되는 1백80일 이내에 상원의 결의로 가결된다. 일명 「콜로르 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건이 드러난 것은 지난 5월.놀랍게도 이 사실은 대통령의 막내동생인 페도로 콜로르가 자신의 사업이 형의 측근인 파라스가 지원하는 경쟁사 때문에 타격을 입게되자 한 주간지를 통해 폭로했었다. 대통령의 부정축재혐의가 폭로되자 브라질 국민들은 지난 2주간 연일 사상최대규모의 반정부시위를 벌여왔다.앞서 콜로르대통령은 지난 3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공직자의 비리행위를 엄중처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더욱 커져 현재 국민의 70%이상이 그의 퇴진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그는 그러나 대통령궁에 칩거,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여전히 권좌에 집착하고 있다. 콜로르대통령은 탄핵소추의 저지선인 하원의원의 3분의1을 확보하기 위해 국고에서 4억달러를 빼내 야당의원 포섭및 서민주택건설과 위생정책에 충당하는등 대통령직 고수를 위해 무분별한 「선심정책」을 펴고있다. 하지만 콜로르의 지지기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침몰하고 있다. 이달초 호세 골뎀베르그 교육장관이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반발,사임한 것을 비롯해 그의 측근 10여명이 등을 돌렸다.특히 골뎀베르그장관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콜로르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런가하면 21년간의 군정 끝에 지난 85년 병영으로 복귀한 뒤에도 브라질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부도 오는 9월7일 독립기념일 이전에 콜로르가 자진 사퇴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반정부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경축식장에 참석할 경우 불상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육·해·공군 장관들이 콜로르에게 사임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콜로르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와 관련,그가 「정치적 쇼」의 희생양이란 일부의 동정도 없지않지만 30년만에 선출된 최초의 직선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그를 벼랑끝까지 내몰고있다.
  • 주5일제 수업/김문환 서울대교수(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

    ◎공부서 해방… 심신단련시간 늘린다/올2학기부터 매달 둘째토요일 휴교/취미·교양 쌓을 문화공간 아직은 미흡 오늘날 일본의 청소년들이 당면한 문제의 상황과 대책을 좀더 멀게 보자면 아무래도 「청소년백서」를 참조해야 할 것같다.총무청에서 발간한 91년판을 소학생부터 근로청소년까지의 생활과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이에 따르면 대학생의 공부시간이 제일 짧고 자유시간이 제일 긴 데 반해 중학생은 거꾸로 가장 여유가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어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학교에 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등의 무기력·칩거형의 청소년도 늘고 있다.또 중학생중 학교의 규칙등 학교에 불만을 가진 경우가 제일 많다. 오사카유소년 교육연구소가 소학5·6년생 1천3백53명을 대상으로 한 앙케트에서도 자유시간 및 수면시간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는 응답이 7할을 점한다.그러면서도 인간관계를 깊게하기 위한 여유가 좀더 필요하다는 응답은 2할 전후에서 멈추고 있다. 문부성이 각급학교가 1992년 2학기부터제2토요일은 휴교하도록 지시한 배경에는 이러한 실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좀더 자세히 살핀다면 학교수업 일수 5일제의 도입에 관해 검토해온 문부성의 「사회의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학교운영등에 관한 조사연구협력자회의」는 92년도 2학기부터 월1회,제2토요일을 휴업일로 하는 형태로 5일제를 실시하도록 제언하면서 심의결과를 매듭지어 문부성에 보고했다.이로써 명치이래 계속되어온 학교6일제에서 학교5일제로의 이행이 정식으로 결정되고,문부성은 9월부터의 전국일률실시를 목표하여 성령개정을 관보에 고시하는 한편 실시를 목표로 한 유의사항을 각 도·현·부에 통지했다. 또 교육장앞으로 보낸 통지에서는 수업시간의 운용에 관해 유치원은 토요일의 교육시간을 삭감,소·중학교에서는 교과외 활동및 학교행사의 정선등의 지침을 제시했으나 고교에서는 그것에 추가하여 토요 수업시간을 다른 요일에 옮겨놓는 것을 선택의 하나로 명기했다. 문부성의 「청소년의 학교외활동에 관한 조사연구협력자회의」는 아이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과인간형성의 기본은 가정에 있다고 하면서 가정의 교육기능의 복권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학원이나 게임센터밖에는 갈 곳이 없는 상태를 피하자면,아무래도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말하자면 공연장·도서관·박물관·체육관 등 아이들이 때로는 부모와 선생과 함께,때로는 스스로 방문하여 자신이 평생 지닐 수 있는 취미와 교양을 도야하고,스스로 설정한 연구테마를 탐구해보는 경험이 가능해져야 한다.예컨대 동경 우에노공원에 있는 국립과학박물관의 「교육밸런티아제도」는 이런 점에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198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민간지식의 활용과 생애학습의 장을 꾸민다고 하는 이중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는데,방문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밸런티아를 조직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독일의 경우처럼 상식화되어 있는 학교­가정­지역사회와 문화시설의 연계작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학교5일제는 그 근본취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학력관의 변화는 필수적이다.학력을 측정하는 척도가 암기한 지식의 양식으로부터 「스스로 생각하고,주체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기 위해 몸에 익힌 능력」으로 대치되어야 한다.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일본의 문화청이 현재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전국 고등학교종합문화제,어린이예술극장,청소년예술극장,중학교예술감상교실등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역사회의 충실한 문화적 대응과 학교­가정­지역사회의 연대를 촉구할 뿐이다.
  • 「노심」 어디에 있든 승리 확신/이종찬후보 일문일답 내용

    ◎대의원 지대열기 피부로 확인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경선에 나선 이종찬의원은 전당대회일을 6일 앞둔 13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의 경선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후보와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구사항이 15일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행동을 취할것인가. ▲자유경선을 위한 핵심적인 전제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관철될 것으로 믿는다.안된다는 가정을 미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후보의 선거대책위원들에게까지 외압이 가해진다고 주장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압력을 넣을 수 있을만한 곳에서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활동을 중지하라」「당신은 무슨무슨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하는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회유와 압력을 넣고 있다. ­지금까지 노태우대통령이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다 최근들어 대통령의 중립의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유는. ▲김종필최고위원의 행적과 발언내용을 분석하면 짐작할 수 있다.총선뒤 칩거하던 김최고위원이 대통령을 만나고나서 김대표를 지지하기로 한 것이나,3당합당당시의 약속은 내각제가 아니라 2인자결정이었다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통합당시 이미 밀실에서 서열이 정해진것을 알 수 있다.자유경선은 껍질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후보측이 매표를 획책한다고 주장했는데 확증이 있는가. ▲김후보측은 전당대회 직전인 17·18일 행사가 없다.그 기간동안 대의원을 장악하고 작용할 수 있다.또 정보도 갖고 있다.따라서 매표행위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도 이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을 인정했는데 그 상태에서도 승리할 수 있겠는가. ▲각지를 돌며 대의원과 당원들을 만나본 결과 지지열기가 뜨겁고 높다고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노심」의 향방이 어디로 가든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18일 합동정견발표회 개최등 세가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는가. ▲건전하고 이성적인 대의원들의 판단에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외압이 계속될 경우 경선을 거부할 생각은 없는가. ▲외압의 상태를계속 주시하고 있다.오늘의 기자회견은 외압이 더이상 작용하지 않도록 시정을 촉구하는 뜻도 있다.
  • “공정한 경선위해 최선다할터”/청와대신임정무수석 김중권씨(인터뷰)

    ◎노 대통령 뜻 굴절없이 전달하겠다 『노태우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엄정중립의 자세로 자유경선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묘한 시기에 청와대 정무수석의 중채을 맡은 김중권의원은 『앞으로 내 얼굴은 없다』며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철저한 중립을 거듭 강조했다. 김신임정무수석은 『멋진 경선을 치르고 금년말 대통령선거 등 중요 정치일정도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소감은. ▲3·24 총선에서 낙선한 뒤 그동안 칩거하고 있었다.신문지상을 통해서 경선양상을 아는 정도였다.하지만 이제 어려운 직책을 맡았으니 이쪽 저쪽 치우침 없이 업무를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다. ­인선배경은. ▲전혀 모르겠다.의외의 인사다. ­전임자가 한쪽 편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종찬후보 진영에서 그렇게 거론해 그런 시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앞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히 해 일부의 오해도 없도록 하겠다. ­경선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대통령의 뜻을 굴절됨이 없이 양측 캠프에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겠다. ­최근의 경선양상을 보는 느낌은. ▲여당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은 헌정사의 첫 경험이다.따라서 축제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할 큰 행사라고 본다.그런데 축제분위기에 흠집가는 것같아 안타깝다.경선은 이기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지만 내재적 한계는 있어야한다.남 흠집내기 보다는 나의 생각·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려 승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후보측의 탈당이나 후보사퇴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당이 잘못됐다면 그 내부에서 고쳐나가야 한다. ­정무수석경질에도 불구,「노심」이 아직도 김후보에게 기울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제(4일) 노대통령을 면담했으며 어제는 정해창비서실장을 만났다.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으나 노대통령의 엄정중립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53세인 김정무수석은 율사출신의 3선의원으로 현재 국회법사위원장.조직장악력과 정치적 판단이 뛰어나 노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특히 균형감각이 뛰어난 선비형이어서 대권후보 경선을 막후에서 관리할 적임자로 꼽혔다는 것. 14대 총선에서 울진지역 핵폐기물처리장설치문제가 선거쟁점화 되는 바람에 의외의 고배를 마셨으나 정무수석에 발탁됨으로써 전화위복이 된 셈. 고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여당내 고대출신 인사들중 선두주자.부인 홍기명씨(46)와 1남3녀를 두고 있고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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