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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독재자 초라한 은둔

    중동 독재자 초라한 은둔

    지난 2월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83) 전 이집트 대통령이 다음 달 3일 유혈진압과 부정축재 혐의에 대한 첫 재판을 앞두고 우울증 증세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올초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되거나 해외로 피신한 독재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8일 무바라크 전 대통령,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전 튀니지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69) 예멘 대통령 등이 감옥 대신 철통 보안의 병실에서 요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0년간 이집트를 무력통치해온 무바라크는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이집트 남부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서 칩거해 오다 지난 4월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자 병원에 입원했다. 한때 심장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주치의는 단순한 심장박동 이상이라고 밝혔다. 튀니지를 23년 장기집권해온 벤 알리는 시민혁명이 발발하자 지난 1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제2도시 제다에 있는 전용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다. 튀니지 법원은 지난달 궐석재판에서 권력남용과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5년과 벌금 5000만 디나르(약 386억원)를 선고했다. 33년간 예멘을 부패의 늪에 빠트린 살레는 지난달 대통령궁에서 일어난 폭탄 사고로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우디로 떠난 뒤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수도 리야드의 진료소에서 팔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 포착된 그는 귀국을 공언하고 있지만 야권이 살레 대통령 축출을 위한 혁명국가위원회 발족을 준비하는 등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재스민 혁명의 타도 대상인 독재자들이 하나같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인디펜던트는 재판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예전 아시아,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달리 호화판 해외망명이 쉽지 않게 변한 환경도 원인으로 꼽았다. 일례로 우간다의 학살자 이디 아민은 1979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사우디 왕가의 보호 아래 제다에서 24년간 편히 살았다. 필리핀의 21년 독재자 페르난도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82)도 하와이에서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으로 망명생활을 한 뒤 1991년 귀국,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요즘 독재자들은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이 수사 당국에 쉽게 발각돼 자금인출이 동결되는 데다 이웃 국가들도 이들의 망명을 꺼리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신문은 “국내에 남아 처벌받거나 피난처를 찾는 길밖에 없는 독재자들에게 병원이 은신처로 인기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與 전당대회 6인의 성적표

    與 전당대회 6인의 성적표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후보는 대표직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지만 지도부에 입성해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쉽게 낙선한 후보들도 당 안팎의 인지도를 넓히며 재도전을 기약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후보는 대표직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지만 지도부 입성으로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 아쉽게 낙선한 후보들도 당 안팎의 인지도를 넓히며 재도전을 기약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위를 차지한 유승민 최고위원은 “홍준표 대표가 말한 참보수, 내가 말한 용감한 개혁을 통해 한나라당이 민심을 되찾길 바란다.”며 “함께 당선된 최고위원들과 함께 역대 어느 때보다 팀워크가 훌륭한 지도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당심에서 조금 선택을 받지 못해 3등에 머물렀다. 한나라당이 하나 되는 데 앞장서 홍 대표와 함께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을 힘차게 이끌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많은 분에게 계파를 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부를 많이 들었다.”며 “어떤 위치도 마다하지 않고 가장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이 많다.”며 “친이·친박 계파부터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친박(친박근혜)계’의 조직력으로 2위에 오른 유승민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 측근이다. 1958년 대구에서 출생한 유 최고위원은 유수호 전 13·14대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당내 대표적 경제통이다. 그는 2000년 2월 이회창 전 총재에 의해 영입돼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2005년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박 전 대표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으로 활동하며 전투력을 과시했다. 경선 패배 뒤로는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지만 이번에 친박계 단일 후보로 나서 화려하게 중앙정치 무대에 컴백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하지만 ‘여성 몫’이 아닌 ‘자력’으로 지도부 입성에 연거푸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나 최고위원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사시 34회에 합격해 판사로 활동하다가 이회창 전 총재에게 발탁돼 정치계에 입문했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첫 번째 배지를 달았고, 18대 총선에선 서울 중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나 최고위원은 17대 국회 당 대변인 및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관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왔다. 그는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던 최근 두 차례의 전당대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연이어 1위를 기록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소장 개혁파의 원조 격이다. 이번 전대에선 친이(친이명박)계 구주류의 대표주자로 나섰다. 1964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입시험과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로, 3년간 검사 생활도 거쳤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뒤 18대까지 서울 양천갑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002년 한나라당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며 개혁파의 중심에 섰고, 남경필 의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남·원·정’이란 개혁 브랜드도 얻었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데 이어 이번 경선에서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에도 불구하고 4위에 머물며 정치적 입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영원한 소장파’, 4선의 남경필 최고위원은 부친인 남평우 전 국회의원이 작고하면서 치러진 1998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 의원 시절인 2000년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이후 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기도당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4선을 지내면서도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채 중립 성향을 고수하며 꾸준히 개혁적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당내 신주류로 떠오른 소장파 대표 주자라는 입지를 감안하면 ‘턱걸이’는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보수 본능’을 자처했던 박진 의원은 6위로 석패하면서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계파색을 드러내지 않고 당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등의 개인기로 얻어낸 성적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실추됐던 명예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효과를 얻었다. ‘천막 정신’을 강조하며 친박계의 지지를 기대했던 권영세 의원은 인지도 면에서 뒤처져 저조한 성적을 냈다.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지냈던 권 의원에게는 대중성이 가장 큰 과제로 남겨졌다. 홍성규·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송지선 연인설’ 두산 임태훈, 논산훈련소 입소사진 공개

    ‘송지선 연인설’ 두산 임태훈, 논산훈련소 입소사진 공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투수 임태훈의 훈련소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육군훈련소 공식 블로그는 지난 23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임태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임태훈은 지난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특례 혜택을 받아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는다.  훈련소 입소 계획은 없었지만 송지선 아나운서와의 연인설 등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을 고려해 서둘러 입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태훈은 지난 달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고 2군으로 내려갔지만, 그동안 2군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채 칩거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임태훈은 훈련을 마치는대로 두산 2군에 합류해 남은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  한편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지난 달 23일 자택인 서울 서초동 모 오피스텔 19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무바라크 위암 투병중

    지난 2월 시민혁명으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83) 전 이집트 대통령이 위암에 걸렸다고 그의 변호사가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파리드 엘 딥 변호사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위암으로 투병 중”이라며 “종양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무바라크는 지난 2월 11일 권좌에서 물러난 뒤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 칩거해 오다가 지난 4월부터 부정축재와 시위대 유혈 진압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무바라크는 조사 중 심장 발작을 일으켜 현재 병원에 연금된 상태이며, 오는 8월 3일에 그의 아들 알라, 가말과 함께 첫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무바라크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지난해 3월 독일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바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최근 2년간 그만큼 구설(口舌)에 오른 작가도 없다.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동행하면서 현 정부를 ‘중도 실용’으로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1989년 방북과 망명생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였기에 논란이 뒤따랐다.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강남몽’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1962년 서울 경복고 재학 시절 ‘입석부근’으로 문단에 나왔으니 햇수로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68) 얘기다. 지난해 9월부터 황석영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에 칩거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곳을 찾아 달라.”는 그의 부탁에 강태형 문학동네(출판사) 사장이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다. 해발 2400m에 있는 소수민족 나시족의 고대 도시에서 구상과 집필을 한 황석영은 제주도로 옮겨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 연재 방식이 아닌 생애 첫 전작 장편 ‘낯익은 세상’이다. 소설은 1980년대 초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문명의 이면과 쓰레기장 빈민의 삶, 폐허에서 싹트는 희망을 말한다. 리장의 한 호텔에서 1일 취재진과 만난 황석영은 “내 나이 대에 걸맞은 ‘만년문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구설’들과 관련, “지난 2~3년간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 특유의 입담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듯 편해 보였다. →‘낯익은 세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내 작품 중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전반기라고 한다면, 방북과 망명, 옥살이 이후 10년여 동안 쓴 작품은 후반기 문학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으로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란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변신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이 무렵 술자리에서 전에 추구했던 세계나 가치관, 현실에 밀착한 소설이 아니라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얘기를 문인들과 나눴다. 당시 누군가가 쓰레기장에 가면 지난 세월을 보낸 욕망의 존재들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농담처럼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얘기를 하다가 시대나 인물을 추상화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난지도인데. -상황을 빌려 왔지만 세계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생산과 소비를 극대화한 인간 욕망에 대한 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마지막에 ‘땜통’(주인공 ‘딱부리’의 동생으로 도깨비들과도 소통하는 신비로운 존재)이 죽는데. -처음에는 안 죽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땜통은 저 세상(정령들의 세계)이 어울리니 보내자고 하더라. 예전에는 발끈했을 텐데 요즘에는 편집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아량이 생겼다(웃음). →등단 50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얼마 전 마흔 살 먹은 아들과 술 한잔하는데 ‘더는 사나운 형님 말고, 할아버지가 되라.’고 하더라. 후배들도 ‘잘난 척 그만하고, 술자리에서 혼자 말하지 말고, 당신만 옳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처럼)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이들의 약점은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거다. 후배 문인들과 얘기하다가 내 또래의 ‘만년 문학’ 얘기가 나왔다. 치매에 걸린 노파가 딸을 몰라보면서도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 주면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 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 문학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좋다.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가야 할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 →다음 작품은. -정확히 따지면 내년이 ‘입석부근’으로 등단한 지 50년이다. 처음에는 평론가 몇 명과 대담집을 낼까 했는데 좀 섭섭할 것 같아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제목도 정했다. ‘이야기꾼’이다. 황석영의 아바타 같은 인물을 만들어서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온갖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쓸 생각이다. →표절 시비 이후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 문단에서 실제 자료를 다루면서 출처를 밝히는 전례가 없었다. 시대물이나 역사소설에서 창작품이 아닌 자료들은 다 활용을 하지 않나. 팩트(사실)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놓치고 실수한 거다. 그래도 ‘강남몽’은 후대에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억될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2009년 대통령과 중앙아시아에 갔을 때도 말이 많았다. -나는 남북관계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현 정부의 구성이나 콘텐츠가 내가 살아온 세월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남북관계 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하고 여전하다. 다만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지역 차원에서 풀자는 것이다. 그게 알타이 문화경제연대라는 건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다. 다음 정권이 오면 다시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소설만 열심히 쓰라고 한다(웃음). 글 사진 리장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놀드 슈와제네거, 이혼 위자료 ‘2600억원?’

    아놀드 슈와제네거, 이혼 위자료 ‘2600억원?’

    가정부와의 혼외정사로 비난을 받고있는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와제네거(63)와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55)의 이혼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위자료 액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부인 슈라이버 측은 유명 이혼 전문 변호사 로라 왓서를 고용한 상태로 조만간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혼과 더불어 세간의 관심은 아놀드 슈와제네거가 지불할 위자료의 규모. 해외언론들은 위자료의 규모가 약 1억 5,500만 파운드(한화 약 2,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 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자산 총액인 3억 1,000만 파운드의 절반으로 추측한 것. 전문가들은 부인 슈라이버가 충분히 슈와제네거 재산의 절반은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슈라이버가 이같은 위자료를 받게 된다면 마이클 조던의 1억 파운드(약 1,700억원)와 6,500만파운드(약 1,100억원)의 타이거 우즈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한편 ‘터미네이터5’로 할리우드에 복귀할 예정이었던 아놀드 슈와제네거는 일체의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孫대표, 김헌태·문용식씨 영입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25일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과 문용식 나우콤 대표를 각각 당 전략기획위원장과 유비쿼터스위원장에 내정했다. 사무총장 산하에 신설한 전략홍보본부장은 박선숙 의원이 맡게 됐다. 김 위원장은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사람 중심 사회를 위한 민주주의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에서 활동했다. 손 대표가 춘천 칩거 생활을 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4·27 재·보선에서 손 대표의 전략을 담당하면서 본격 합류했다. 문 위원장은 운동권 출신 인사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최측근이다. 2012년 총선(경기 고양 덕양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당·정·청을 두루 경험한 전략홍보통으로 꼽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무바라크·두 아들 법정에… 최고 사형

    민주화 혁명으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그의 두 아들이 시위 참가자 살상과 부정축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24일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에 따르면 압델 마기드 마흐무드 검찰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무바라크와 그의 두 아들 알라와 가말을 형사법정에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부자는 지난 1월 25일부터 18일간 이어진 시민혁명 당시 평화적인 시위 참가자의 살상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권한을 남용, 개인 재산을 늘리고 공공자산을 낭비한 혐의도 받고 있다. 모하메드 엘귄디 법무장관은 최근 현지 유력 일간지 알아흐람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가 시위대에 발포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입증되면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월 11일 시위 이후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846명이 숨지고 640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무바라크는 그간 홍해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서 칩거하다가 지난달부터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다. 그의 두 아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유명한 카이로의 토라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기덕 감독 ‘아리랑’ 칸 사로잡다

    김기덕 감독 ‘아리랑’ 칸 사로잡다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포스터)이 제6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공식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이로써 김 감독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세계 3대 영화제 모두 수상 김기덕 감독은 칸 영화제 폐막 하루 전날인 21일(현지시간) 드뷔시관에서 열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시상식에서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의 ‘스톱드 온 트랙’(Stopped on track)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연패한 것으로, 이 상의 수상자가 2년 연속 한 국가에서 배출된 것은 처음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국내 감독은 김 감독이 유일하다.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수상했다. 1978년 제31회 칸영화제 때 신설된 주목할 만한 시선은 경쟁부문과 함께 대표적인 공식부문으로 꼽힌다. 주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김 감독은 2005년 ‘활’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했고, 2007년 ‘숨’으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는 개·폐막 작을 포함해 19개국에서 21편이 초청됐다. 한국영화는 김 감독의 ‘아리랑’,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진출했다. 김 감독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두 번이나 차지한 프랑스의 거장 브루노 뒤몽, ‘리턴’으로 제6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신인 감독상을 거머쥔 러시아의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에릭 쿠 등 주요 감독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 감독은 수상식 뒤 인터뷰에서 “이번 상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 소감 뒤에 영화 속 삽입된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김 감독은 데뷔작 ‘악어’(1996) 등 십여편의 영화를 만든 국내 대표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외부와 연락을 두절한 채 칩거에 들어가 폐인이 됐다는 소문이 나오기도 했고, 최근엔 자신의 제자인 장훈 감독이 메이저 영화사와 계약한 일을 두고 ‘배신 논란’을 빚으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손태겸 감독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 한편 손태겸 감독의 ‘야간비행’이 칸영화제 학생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손 감독의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작품으로, 10대의 일탈문제를 다루고 있다. 1998년에 만들어진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은 해마다 전 세계 학생영화 중 15~20편 정도의 중·단편을 선보이는 칸영화제 공식초청 프로그램으로, 매년 초청작 중 우수작 세 편을 수상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새 음반]

    ●디 얼티메이트 컬렉션 26년간 6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고도 영국의 4인조 팝그룹 샤데이가 사랑을 받는 데는 초콜릿처럼 달콤쌉싸래한 목소리를 지닌 나이지리아 출신 여성 보컬 샤데이 아두의 공이 크다.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 동안 칩거했던 그가 아니었다면 더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양날의 칼’인 셈. ‘디 얼티메이트 컬렉션’이란 제목답게 2개의 CD에 1~6집 히트곡은 물론, ‘스틸 인 러브 위드 유’ ‘러브 이스 파운드’ 등 신곡 3곡을 곁들였다. 소니뮤직. ●러브? 낮에는 법률사무소 공증인으로, 밤에는 백댄서로 활동하던 제니퍼 로페즈가 데뷔 앨범 ‘온 더 식스’를 빌보드 정상에 올려놓은 건 1999년. 어느새 불혹을 넘겼지만 가수 겸 배우로,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아이돌’ 심사위원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로페즈가 4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았다. 레이디 가가의 ‘저스트 댄스’ ‘포커페이스’를 프로듀싱한 레드원 등 올스타급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의외로 심심하다. 유니버설뮤직.
  • 이재오 “배신당한 건 한번으로 족하다” 지역구서 거취 고심

    이재오 “배신당한 건 한번으로 족하다” 지역구서 거취 고심

    이재오 특임장관이 9일 칩거에 들어갔다. 집무실에도 나오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층 체력단련실에서 1시간 동안 운동만 하고는 다시 지역구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주에는 약속된 일정만 소화하고 대부분 지역구에 머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희생양이 직업 아니다” 이 장관은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27 재·보선 참패와 지난 6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패배의 책임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데 따른 부담감이 꽤 크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럽 3개국 순방에서 돌아오는 이달 중순쯤 거취 결정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측근은 “임명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긴 하지만 당사자로서 본인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장관의 직업이 ‘희생양’은 아니지 않으냐.”고 푸념했다. 이 장관 역시 경선 이후 사석에서 “배신은 한번으로 족하다. 희생양도 한번이지, 희생양이 직업은 아니지 않으냐.”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선 전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허 참 그게 아닌데’라고 웃어넘겨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면에 원내대표 경선 결선투표에서 중립진영인 황우여 후보 쪽으로 돌아선 이상득계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이 장관은 2008년 5월 18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이상득 의원과 갈등을 빚다가 미국행을 택한 바 있다. 이 장관은 다만 특임장관직 사퇴를 현실 정치 복귀 코스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은 “이 장관의 고민은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차원”이라면서 “물러나더라도 당지도부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 “여의도 돌아가지 않을 것” 한 친이계 의원도 “‘여의도 정치’에 매몰되어선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서 “국민의 뜻을 좇아 좋은 정책을 만들고 체감할 수 있게 하다 보면 자연히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특임장관직에서 사퇴하더라도 세를 결집해 당권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당분간 민심 현장에서 큰 정치를 향한 밑그림을 그릴 공산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④ 이·취임사에 나타난 장·차관 리더십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④ 이·취임사에 나타난 장·차관 리더십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나 기관장들의 취임사에는 재임기간 조직을 이끌고 갈 기본방침과 포부가 담겨있다. 대부분 취임사에는 새로운 목표설정과 조직의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이 많다. 반면 이임사는 재임기간 소회를 다양한 유형으로 표출한다. 특히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러날 경우, 알 듯 말 듯 애매한 말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눈길 끄는 이·취임사를 통해 고위 공직자나 기관장들의 당시 심경과 공직관을 되짚어 봤다. 1988년 2월부터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가 되면서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0개월~1년에 불과하다. 차관 역시 큰 차이가 없다. 개인적인 결함이나 능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겠지만, 정책실패에 따른 문책과 정략적인 이유에서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대 장관들의 취임사에는 당시의 사회 문제나 실패한 정책을 만회하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내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길이 멀면 허공도 짐” 詩서 따와 ‘5·6 개각’으로 2년 3개월여 만에 퇴임하게 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시 구절을 인용해 경제적 위기상황을 표현했다. 윤 장관은 2009년 2월 취임사에서 “길이 멀면 허공도 짐(시인 조정의 표현)이라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넘어가는 요즘 경제상황은 그만큼 어렵다.”고 토로했다. 당시 실물 경제 위축이 시작되던 시기였던 만큼 시장의 신뢰회복과 소통을 강조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 회복을 위해 위기 극복에 동참할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윤 장관은 평소에도 고사성어나 고전 속에 나오는 명언을 즐겨 인용해 왔다. 취임 후 직원들에게 일자리 나누기를 ‘부뚜막의 절미통’(節米桶·어려웠던 시절 쌀을 절약하려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덜어내 조금씩 담아 모으던 통)에 비유하며 확산되기를 희망했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토적성산’(土積成山: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으로 비유했다. 당시 이용걸(현 국방부 차관) 재정부 2차관도 취임사에서 ‘천류불식’(川流不息:흐르는 강물은 쉬지 않는다)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 정부 들어 3대째 행정안전부 수장이 된 맹형규 장관은 지난해 4월 15일 취임사에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경제성장률이 5% 내외로 전망되고 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보다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으로 취약계층과 차상위 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켰다. 이후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개각으로 물러나게 되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내각을 지켜온 ‘장수 장관’들은 직원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한 취임사로 기억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부처 직원들은 ‘친정 식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정 장관에게 국토부는 교통부와 건교부 시절부터 줄곧 몸 담았던 곳이고, 이 장관도 국민의 정부 때 차관으로 환경부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었다. 정종환 장관은 취임사에서 “30여년 간 공직자로서 젊음과 열정을 바쳤던 이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고 얼굴 하나하나가 무척 반갑다. 마치 오랜 기간 출가했던 딸이 친정집에 다시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하다.”며 한 식구임을 강조했다. 취임사 끝도 “우리 모두 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희망을 나누며 뜻을 모아 최선을 다하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만의 장관도 취임사에서 “헤어진 지 5년 만에 다시 환경가족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첫 번째 환경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큰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는 말로 직원들에게 친숙함을 드러냈다. ●“손자병법 전략은 風林火山” 풀어  2008년 2월 당시 김석동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의 이임사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28년간의 공직생활을 접으면서 이임사에 남긴 ‘5가지 자기 반성’에 대한 회한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섭공호룡(葉公好龍)’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 미래과제에 적절히 맞서지 못한 심경을 토로했다. 용을 좋아한다던 섭공이 막상 실제 용을 보고는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 기절해 버렸듯, 고령화·저출산 문제나 기후변화 등 미래과제에 대한 실체와 위험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을 반성한 말이다.  한편 김 차관은 3년여 ‘칩거생활’ 끝에 올해 초 금융위원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금융위원장 취임사에서 “손자병법의 전략은 풍림화산(風林火山) 네 글자로 압축된다.”면서 “금융위원회가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진중하게 대내외 환경변화에 선제적이고 창조적으로 변화되길 기대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학철지부(涸轍之鮒: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를 인용, 서민금융 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곤궁에 빠진 물고기에는 강물이 아니라, 물 한 바가지가 더 절실한 것처럼 서민금융 역시 응급처방이 절실함을 강조한 말이다.  참여정부 때 강금실 법무장관 이임사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이자 검찰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던 그는 이임사에서 “개혁은 서로 믿고 사랑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 가로막고 있는 오해와 불신을 녹이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또한 “어느 순간에는 정치의 중심에 서서 진짜 해야할 일을 소중히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장관직에 회의가 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해야할 일 못해 장관직 회의” 비쳐 2008년 12월 우형식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이 이임사에서 밝힌 내용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기도 했다. 우 차관은 교과부에서 28년간 재직했고, 교과부 1급 공무원의 일괄사표에 앞서 사의표명 후 물러나는 자리였다. 그는 서산대사의 시로 송별사를 짧게 대신하겠다며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라는 시를 읊었다.  해석해 보면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뜻이다. 당시 이임사에 담긴 의미를 놓고 해당부처에선 “눈밭을 함부로 밟고 더럽히면 뒤따르는 사람이 길을 잃게 되는 것처럼 정부의 정책 추진도 신중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 아니겠느냐.”고 긍정적인 해석을 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권 입맛에 맞춘 교육정책이 급전환되는 것을 놓고 쓴소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공식성상에서 리더들의 발언은 파급효과가 큰 만큼, 무책임한 발언 등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길성 한국행정DB센터 소장은 “과거 장·차관이나 기관장들의 이·취임사를 보면 당시의 사회상이나 정책, 리더로서 의지와 회한 등이 잘 나타나 있다.”면서 “사자성어 등 고전 속의 명언 한두 마디씩은 인용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훌륭한 리더는 화려한 이·취임사보다 재임기간 만들어낸 성과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손학규, 한나라 꼬리표 떼고 야권 유력 대권주자 ‘우뚝’

    손학규, 한나라 꼬리표 떼고 야권 유력 대권주자 ‘우뚝’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짜릿한 인생 역전을 맛봤다.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 ‘철새’라는 여권의 공격을 버티며 춘천 칩거 등으로 몸을 웅크린 지 4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한나라당의 ‘심장부’인 분당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말뚝을 박았다. 손 대표는 27일 당선 소감을 통해 “분당의 승리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승리”라면서 “변화 열망이 분당의 시민을 통해서 표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승리는 손 대표의 당내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은 물론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위상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손학규의 행로는 가시밭길이었다. 1993년 경기 광명에서 보궐 선거로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뒤 신한국당 정책조정위원장을 맡는 등 여권의 촉망 받는 정치인으로 순탄하게 입지를 굳혀 나갔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2000년 총선에서 16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년 뒤인 2002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지사직에 도전해 당선됐다.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그러나 손 대표는 2007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이번 보궐선거에서 맞붙은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된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여부를 놓고 당 지도부가 극심한 내홍을 겪다 칩거에 들어간 지 나흘 만인 2007년 3월 19일 “돌팔매를 감수하겠다.”며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손 대표는 “지금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며 여당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가 판치는 낡은 정치구조를 교체하겠다.”며 당을 박차고 나왔다. 사실상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그때부터 ‘탈당·철새 정치인’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시련의 계절은 계속됐다. 탈당 직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정동영 의원과 경쟁했지만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손 대표는 시련을 딛고 이듬해인 2008년 1월 9개월 만에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취임한다. 한나라당은 그런 손 대표의 행보를 놓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철새의 전형”이라며 맹비난했다. 이후 강재섭 전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과 18대 총선을 놓고 숙명의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총선에 대패한 뒤 당 대표에서 물러나 강원 춘천에서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손 대표는 2년 1개월 동안 암중모색하면서 차기 정국구상에 몰두했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여의도 정계에 다시 돌아왔다. 2010년 10월, 민주당원들은 비호남 출신의 손 대표를 수장으로 추대했다. 호남 출신으로는 대선 판도를 뒤집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영남 출신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인물로 손 대표밖에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도 이때다. 당시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정동영·정세균 전 대표 등 유력 대권주자들을 제치고 전당대회에서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탈당→대선경선 낙선→총선 패배→칩거 등 우여곡절 끝에 얻은 승리였다. 손 대표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당내 계파 화합 조치와 함께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지난해 12월 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에 맞서 서울광장에서 천막 장외투쟁을 주도한 손 대표는 100일 희망대장정에도 나선다. 그리고 운명의 4·27 재보궐 선거. 분당, 강원, 김해 모든 지역에서 후보를 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역대 한나라당이 한번도 국회의원을 내준 적이 없는 분당은 후보 영입에 실패, 패색이 짙었다. 손 대표는 오랜 고심 끝에 ‘십자가’를 졌다. 그리고 결국 승리를 차지했다. 중산층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민심을 흔들었다. 당선 소감을 통해 “이대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6選 노리는 ‘TK 엘리트’ vs 대권 노리는 ‘수도권 엘리트’

    6選 노리는 ‘TK 엘리트’ vs 대권 노리는 ‘수도권 엘리트’

    “예전엔 집값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종종 왔는데, 정치부 기자가 들른 것을 보니 이번 선거가 중요하긴 한 모양이네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 부동산’ 대표 이모(47)씨는 “총선 때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엔 흥미진진해졌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아들 집으로 가기 위해 32평(105㎡) 아파트를 전세가 4억 5000만원에 내놓으려고 부동산에 들른 장향선(59·여)씨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투표할지가 관건”이라며 거들었다. ‘부동산 1번지’ 분당이 4·27 보궐선거를 맞아 ‘정치 1번지’로 변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가 4일 당 후보로 확정되면서 여야의 전·현직 대표가 사상 처음으로 맞붙는 ‘빅매치’가 성사됐다. 지하철 정자역 3번 출구 앞에 들어선 강 전 대표의 선거사무실과 4번 출구 앞에 포진한 손 대표의 사무실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정통 엘리트들의 승부수 강 전 대표와 손 대표는 대한민국 엘리트의 전형이지만 정치적 지향점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강 전 대표는 보수정당에서 잔뼈가 굵었고, 당 대표까지 지냈다.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당의 정신을 확 바꿔 놓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보수적 가치를 중시한다. 손 대표는 비록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줄곧 개혁 노선을 견지해 왔다. 손 대표는 출사표에서 “중산층이 이끄는 개혁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분당을에 출마했다.”고 밝혔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강 전 대표는 경북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다. 32살의 젊은 검사였던 1980년 청와대 정무·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일각에서 ‘5공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시절의 경력 때문이다. 그러나 강 전 대표 측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13대 때 비례대표로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면서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6·29 선언이 나오기까지 청와대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반박한다. 이후 강 전 대표는 17대까지 내리 5선을 하면서 부총재, 최고위원, 원내대표, 대표 등을 두루 거쳤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야인’으로 지내다 이번에 6선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경기 시흥 출신의 손학규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수도권 엘리트’다. 고교·대학 동창인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됐으며, 1980년 민주화의 봄 당시 홀연히 영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서강대 등에서 진보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민자당에 입당한 손 대표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된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정동영·정세균 등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승리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확실히 뗐고 민주당으로부터 ‘적통’을 인정받았다. ●14년 한솥밥 먹었지만 결이 달랐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인연은 손 대표가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되면서 시작됐고 14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강 전 대표는 손 대표 등원 당시 민자당 대변인을 맡아 입심을 자랑했고, 손 대표는 1995년부터 1년여 동안 민자당과 신한국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강 전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 총재일 때 비서실장을, 손 대표는 1997년 12월 조순 총재의 비서실장을 잠깐 지냈다. 강 전 대표는 이회창 대선 후보의 정치특보를 맡았고, 손 대표는 반(反)이회창 노선을 걸었다. 직접적인 충돌은 2007년 3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손 대표는 경선 룰에 반발하며 강원도 산사에 칩거 중이었고 당 대표였던 강 전 대표는 손 대표의 경선 참여를 설득하려고 했다. 강 전 대표는 그해 3월 17일 회동을 위해 손 대표가 칩거한 것으로 알려진 낙산사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손 대표 측의 거부로 도중에 서울로 차를 돌려야 했다. 이틀 뒤 손 대표는 야권으로 투신했다. 각각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대표로서 선거를 지휘한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은 반면 민주당은 81석에 그쳤다. ●강한 후폭풍이 몰려온다 전·현직 당 대표가 보궐선거에서 맞붙은 경우는 한국 정당사에 처음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오차 범위’ 내 혼전을 보인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희태 전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가 2009년과 1999년에, 민주당의 경우 정동영 최고위원(전 당의장)이 2009년에 각각 보궐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지만 선거구가 자신들에게 확실하게 유리한 ‘텃밭’이었고, 상대 후보와 ‘체급’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두 ‘거물’ 모두 우여곡절 끝에 후보가 됐고, 판이 커진 만큼 승패에 따라 정치 지형이 출렁거릴 게 뻔하다. 강 전 대표는 당 지도부와 청와대,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정운찬 전 총리를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를 뚫고 공천을 따냈다. ‘이 장관이나 안상수 대표 등에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자 강 전 대표는 “그들과 싸울 ‘군번’이 아니다.”면서 “지금의 ‘봉숭아 학당’ 같은 당의 모습으로 정권 재창출은 어림도 없다.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야당 대표와 맞붙는 만큼 당선된다면 자신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당내 거부세력이 많은 강 전 대표와 달리 당의 요구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승리한다면 당내 입지는 물론 야권의 확실한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손 대표는 “민주당에 의석 하나 더 얹어주겠다는 차원에서 출마한 것이 아니다. 분당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구하자는 뜻인 만큼 분당선거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분당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두문불출’ 도쿄전력 사장 어디에…

    ‘두문불출’ 도쿄전력 사장 어디에…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가 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해당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의 최고 경영자(CEO)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을 향한 비난의 볼멘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시미즈 사장은 원전 사고 직후인 13일 제한 송전과 함께 사과 성명을 내놓은 자리를 제외하고는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장관과 함께 원전사고 통합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그이지만, 고작 지난 19일 사태 악화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는 서면 성명을 대리인을 시켜 발표했을 뿐이다. 로이터통신은 20일 “방사능 유출 등 원전 사고에 조바심과 공포를 느끼는 일본인들은 도쿄전력 사장이 이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도쿄전력 간부들은 “시미즈 사장이 여전히 사태 수습을 위해 사령탑에서 지휘하고 있고 그 때문에 아주 바쁘다.”며 그의 ‘칩거’에 대해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또 여느 최고책임자들과는 달리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을 대지진의 탓으로 돌리며 사임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통신은 “철저하게 통제된 도쿄 중심부 43층짜리 초호화 아파트 자택에서도 그의 자취를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도쿄전력이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받아야 할 원전의 냉각 시스템을 포함한 장비 정기점검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이런 사실을 지진 발생 열흘 전 관계 당국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미즈 사장은 사면초가에 처했다. AP통신은 “도쿄전력이 점검하지 않은 제1원자력발전소 원전 1~6호기의 장비 33개 가운데는 비상용 디젤 발전기와 냉각펌프 등 현재 일본 정부가 방사성물질 대량 누출 사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냉각 시스템 복구와 관련된 장비들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매화… 墨香으로 피어나다

    매화… 墨香으로 피어나다

    입춘도 지났으니 봄을 알리는 매화를 감상할 법도 하다. 마침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문봉선(50·홍익대 교수)의 ‘묵매화전- 문매소식(問梅消息)’이 열린다. 먹으로 작업하는 그림임에도 한지 대신 캔버스 원단 천을 써서 줄기와 가지의 거친 느낌을 일필휘지하듯 냈고, 먹이 주된 재료이지만 꽃만큼은 서양화에 쓰이는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로 색깔을 줬다. 멀리서 봤을 때 유독 꽃만 눈에 확 띄는 매화의 특성을 살린 것이다. 사진을 찍어 와 참조하는 방식 대신 화첩을 끼고 다니며 먹으로 밑그림을 그려 오는 전통 방식을 썼다. 덕분에 함께 전시된 화첩을 통해 처음 매화나무를 대하고 형성된 작가의 심상이 큰 그림으로 어떻게 옮겨졌는지 따라가 볼 수 있다. 작가는 1990년 전남 순천 승주읍의 매화나무 사진을 보고 매화에 ‘꽂혀’ 지금껏 작업해 왔다. 좋은 매화가 있다면 선운사뿐 아니라 김해농고, 지리산 단속사, 화엄사 구충암 등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중국 난징의 매화산에 칩거하기도 하고, 일본 오사카성 매원과 후쿠오카의 신사 등도 수차례 방문했다. 이렇게 매화 하나 쫓아 20여년간 돌아다닌 작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매화 속에 둘러싸여서도 그리고픈 매화를 찾지 못하거나 딱 맞는 매화를 찾았음에도 잘 그려지지 않을 때면 한자리에서 며칠을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는 그의 대답은 중국 청나라 화가 이방응이 남겼다는 시 한 구절이다. ‘이리저리 천만송이 눈에 띄지만(觸目橫斜千萬朶) 마음에 드는 것은 두세 가지뿐(賞心只有兩三枝)’ (02)730-114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날세운 鄭 “부자증세 포함”…잠잠한 孫, 연휴 정국구상

    민주당의 복지 내전이 설 연휴 기간에도 계속됐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은 6일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겨냥해 “증세 없는 복지는 야권연대의 장애물이자 정권교체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했다. 정 최고위원은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기자들과 신년 오찬을 갖고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해) 조세 소득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다.”면서 “부유세 도입은 단순 세목·세율 조정이 아닌 조세 체제를 전면 개편하자는 의미”라며 복지 재원 마련에 ‘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 최고위원은 세금 없는 복지 구상에 대한 다른 야당의 반발을 거론하며 “부자증세를 해야 다른 야당과 정책 연대·연합을 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며 야권이 분열하고 이에 따라 정권교체에 실패할 경우 책임이 손 대표에게 있음을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그는 당이 7월 말까지 복지 재원 세부 대책을 확정하기로 한 데 대해 “재원방안은 대선 후보가 확정된 뒤 정하면 된다.”며 열린 토론을 강조했다. 정 최고위원은 또 ‘좌클릭’으로 당의 정체성을 선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체성을 확실히 세워야 중간층을 흡수할 수 있다. 어중간해서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며 손 대표의 애매한 포지션을 지적했다. 야권 대선 후보로 분류되는 정 최고위원은 최근 국회 상임위도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환경노동위로 바꿨다. 한편 손 대표는 설 연휴 동안 2007년 한나라당 탈당 직전 칩거했던 강원도 인제군의 백담사에 머물며 이광재 전 지사가 낙마한 강원 등의 4월 재·보선 승리와 여야 영수회담 문제 등 신년 정국 구상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최민수 아내 강주은 “결혼 18년 신기하게 버텼다”

    최민수 아내 강주은 “결혼 18년 신기하게 버텼다”

    배우 최민수가 아내 강주은씨와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한다. 최민수, 강주은 부부는 지난 11일 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 녹화에 참여했다. 이날 최민수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내 강주은 씨와의 첫만남에서 결혼으로 골인하기까지의 풀스토리를 공개했다. 또 근황을 전하며 1년 6개월간 산속에서 칩거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민수의 아내 강주은 씨는 “최민수는 결혼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으로서도 도움이 안 된다”, “결혼 18년을 신기하게 버텼다” 등의 폭로를 쏟아내기도 했다. 최민수, 강주은 부부의 이야기는 오는 20일 11시 5분 방송된다. 사진 = MBC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손학규號 4월 재보선 파고 넘을까

    지난해 10·3 전당대회로 ‘민주당호’의 선장을 맡은 손학규 대표가 10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난 100일은, 춘천 칩거 2년 만에 야당 당수로 돌아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자 애썼던 기간이랄 수 있다. 청원경찰 입법로비 의혹 사건,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등 녹록지 않은 외부 환경과 극심한 계파 갈등이라는 내홍 속에서도 비교적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 서울광장을 시작으로 천막을 치고 ‘거리의 투사’로 변모한 것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전국 시·군·구 순회 100일 ‘희망대장정’ 등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중이다. 야권 통합 연대의 성공을 가늠할 첫 무대인 4월 재·보선은 그가 대선주자로서 범야권의 기대에 부응할지를 내다보게 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내부적으로는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등 한층 가열될 당내 경쟁자들의 견제를 막아내야 한다. 여전히 당 일각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정체성 논란도 불식시켜야 한다. 한 자릿수대에 머무르고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도 당의 정체성과 선명성을 강화해야 하는 일은 상시적 과제다. 아울러 수권정당에 걸맞은 대안과 비전을 제시, 정권교체의 기대감을 높여야 한다. 손 대표는 취임 100일 새해 기자회견을 갖고 3가지 메시지를 던질 계획이다. 우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을 밝힐 전망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의 자녀 특별채용, 정치인들의 친인척 보좌관 채용 등 각종 특혜 논란 등 ‘강자독식’의 불공정성을 주장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내정 등 국회인사청문회를 겨냥한 것이다. 이어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본격적인 복지 어젠다로 사회개혁과 친서민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여당의 대선 유력 후보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복지 정책 대결을 추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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