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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운의 왕족’ 덕혜옹주 유품 첫 공개

    ‘비운의 왕족’ 덕혜옹주 유품 첫 공개

    덕혜옹주(德惠翁主)는 고종 황제의 외동딸로 1912년 태어났다. 아버지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했고, 나라를 빼앗긴 1910년 이래는 ‘덕수궁 이태왕’으로 불렸으니, 흔히 덕혜옹주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고 부르는 것은 비운의 왕족이라는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덕혜의 어머니가 궁녀 출신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이라, 왕의 서녀에게 주는 작호인 옹주를 받았다. 덕혜는 7살이던 1919년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했지만, 일본이 왕실 사람들은 일본에서 유학해야 한다고 압박하자 13살 때인 1925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20세에 대마도(쓰시마) 종가(宗家)의 소다케시(宗武志) 백작과 강제 결혼하여 3년 만에 딸(宗正惠)을 얻었으나 정신병 등 지병이 계속되었다. 1951년 이혼당했고, 유일한 혈육인 딸이 결혼에 실패하여 현해탄에 투신자살한 뒤 덕혜의 병세가 악화됐다. 1962년 1월 38년 만에 귀국했지만, 5년간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 후 창경궁(昌慶宮) 낙선재(樂善齋)와 연결되어 있던 수강재(壽康齋)에 칩거했다. 계속된 치료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다가 1989년 4월 21일 사망했다. 덕혜옹주가 태어난 지 100년, 일본에서 귀국한 지 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국립고궁박물관 2층에서 11일부터 대한제국과 조선왕실 여성의 복식·생활사를 보여 주는 전시회를 연다. 박물관은 “복식과 장신구, 혼수품 등은 도쿄에 소재한 일본 문화학원복식박물관(文化學園服飾博物館)과 후쿠오카 소재 규슈국립박물관 소장품으로 국내 첫 전시”라며 “복식박물관 소장품은 덕혜와 이혼한 소다케시가 조선 왕실에서 보낸 다른 혼례품과 함께 영친왕(英親王) 부부에게 1955년 돌려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자료는 당시 일본 문화학원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 도쿠가와 요시치카(德川義親·1886~1976)에게 기증되면서 현재까지 도쿄에 남게 됐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지지 부동표 잡아라” 朴 정치쇄신·文 용광로 선대위 승부수

    ■朴측 安지지층에 공개 구애 새누리당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정치쇄신’으로 치고 나갔다. 안대희 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은 정치쇄신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쇄신책을 이미 발표했으며, 구체적 실행안 역시 마련돼 있다.”면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쇄신안의 충실한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정치쇄신의 시작은 선거쇄신”이라면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흑색선전을 하지 않을 것이고, 막말정치와 폭로정치를 비롯한 혐오정치를 배격하여 반칙이 없는, 원칙에 충실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면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 역시 이러한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선거쇄신 노력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자신이 야권에 제안한 정치쇄신실천협의기구 구성에 안 전 후보가 호응해 온 것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이 안 전 후보와 이른바 새 정치를 위해 야권 단일화를 논의한 것이라면 안 전 후보의 뜻을 존중해 즉각 기구 출범에 동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협의기구와 별도로 쇄신안 실천 방안을 강구해 국민에게 보여 주겠다.”고 말하면서 검찰 등 권력기관 신뢰회복 방안과 관련해서는 “틀림없이 며칠 내로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문 후보가 정치개혁 문제를 놓고 안 전 후보와 경쟁을 벌이다 내내 공격당하고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면서 “두 후보가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채 사실상 단일화가 결렬됐으므로 정치개혁 문제만큼은 새누리당이 우월적 위치에서 민주당을 공격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듯 안 위원장은 “안 전 후보의 쇄신안을 적극 보완해 새 정치의 열망을 이룰 것”이라며 안 전 후보 지지자들에게 공개 구애했다. 안 위원장은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이 열렬히 원했던 정치쇄신 방향은 권력형 부패 척결, 친인척 비리 척결, 여야 정쟁 금지, 공권력 오남용 방지 등에 있었다.”면서 “(안 전 후보 측 쇄신안과 우리의 쇄신안은) 70∼80%가 같은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세비심사위 등 구체적 안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특위에서 이미 검토했고 근본적 차이를 제외한 몇 가지 부분, 국회 개혁, 국정감사 강화 등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안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정치를 혐오해 ‘안철수식 새 정치’에 열광해 온 안 전 후보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文측 ‘국민연대’ 구체화 전략 고심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이 ‘새정치공동선언’에서 밝힌 국민연대를 구체화하기 위한 공동선대위 구성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 후보 측은 안철수 전 후보 측과 중도·무당파층, 합리적 보수세력까지 포함하는 ‘제2의 용광로 선대위’로 승부수를 띄운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만큼 안 전 후보 지지 세력을 이탈 없이 묶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 측은 공동선대위를 통해 양 세력이 유기적 결합을 이룰 것을 기대한다. 김부겸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2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모든 것을 비워 놓고 안 전 후보 측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느 세력 편도 들기 어려워 관망하던 분들까지 포함한 큰 선대위를, 제대로 된 의미의 용광로 선대위를 꾸려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외부 인사 영입 카드도 거론된다. 단일화 가교 역할을 자임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단일화 촉구 성명을 냈던 황석영씨 등 문화예술·종교계 인사 102명,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심상정 진보정의당 전 대선 후보 등이 영입 대상이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 패배 후 두 달여간 칩거해 온 손학규 상임고문도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집중유세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 후보 지원에 나서며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 측은 안 전 후보 측 핵심 인사들에게 연락해 공동선대위 합류를 조심스럽게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문 후보 측으로부터 크게 바라보고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 측에서도 국민연대라는 큰 틀 아래서 문 후보 측과 결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에 흡수되는 방식보다는 안 전 후보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기를 바라는 기류가 감지된다. 안 전 후보 측의 한 인사는 “안 전 후보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지역 포럼은 남을 것 같다.”며 캠프 구성원들이 독자 세력으로 남는 쪽에 무게를 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공동선대위가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당시의 매머드급 공동선대위와 같은 형태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1997년 당시에는 공동선대위에서 중요 사항은 결정하되 자민련 조직은 그대로 뒀다.”면서 “안 전 후보 측도 별도 조직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후보가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별도로 지원하는 형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전쟁영웅서 불륜남 추락 퍼트레이어스 대학 강단 갈까? 토크쇼 진행할까?

    ‘전쟁 영웅’에서 졸지에 ‘불륜남’으로 추락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자택 칩거… 친구들과 전화·이메일 교환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측근들의 입을 빌려 현재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자택에서 칩거 중인 그에게 대학 4곳이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해 왔으며 뉴욕 출판사들은 책을 내자고 제의했다고 전했다. 기업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방송 토크쇼 진행자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퍼트레이어스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거물급 변호사인 로버트 바네트를 고용했다. 자발적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그는 친구들과 이메일이나 전화를 주고받거나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퍼트레이어스의 절친한 친구 잭 케인 전 합참 부의장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라며 “목소리에서 예전과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퍼트레이어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아내 홀리의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홀리는 연방정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에서 군인 가족들의 금융 문제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부인은 매일 출근… 남편일 언급 안해 CFPB 대변인에 따르면 홀리는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 홀리는 이번 주 소비자금융보호국의 웹사이트에 2건의 글을 올렸지만 전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관한 내용이었을 뿐 남편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퍼트레이어스의 친구인 존 네이글 예비역 중령은 “홀리가 워낙 관대한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진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靑 “특검, 언론플레이… 더티하다”

    靑 “특검, 언론플레이… 더티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34)씨에 이어 1일 오전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79) 다스 회장이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에 수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자 청와대는 특검 수사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MB, 비상경제회의 참석 등 예정대로 이 대통령은 이 회장이 출두하던 시간에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중장 진급자들의 보직신고를 받는 등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했다. 아들 시형씨의 소환조사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공식 일정을 하나도 잡지 않고 ‘칩거’에 들어갔던 것과는 달랐다. 이 대통령은 큰형의 특검 출두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도 겉으로는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덤덤한 반응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특검의 최근 수사 진행 방식에 대해 속을 끓이며 발끈하고 있다. 특검수사팀이 시형씨 등에 대해 처음부터 기소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청와대와 대통령 ‘창피주기’에 몰두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창피주기에 몰두” 불만 쏟아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대응하려고 해도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특검이 그러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 더티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특검법에 따르면 중간 수사발표 외에는 피의사실을 얘기해서는 안 되는데 특검팀이 피의사실까지 흘리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면서 “시형씨 변호사가 특검수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이것과 관련해 언론에 청와대 개입설이 보도돼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대통령 아들’ 특검 출두] ‘침통’ 靑 수사방향 주시… MB 이틀째 ‘칩거’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34)씨가 25일 오전 특검에 출두하자 침통한 분위기 속에 특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의 주시했다. 이 대통령은 시형씨의 출두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靑 “더 이상 관여할 문제 아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이틀째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아 사실상 ‘칩거’에 들어가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상 청와대가 더 이상 개입하거나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특히 시형씨 소환 이후 특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검이 시형씨 소환에 이어 시형씨에게 현금 6억원을 빌려 준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과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까지 소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어 수사 결과를 미리 가늠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결국 시형씨를 비롯해 관련자 상당수에 대한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與 “수사 엄정하게 이뤄져야” 시형씨 소환과 관련해 야권은 내곡동 사저터 구입 과정에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는지 등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특검에 소환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면서 “시형씨는 특검 앞에서 본인 명의로 사저 부지를 매입하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아버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인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野 “이대통령이 책임질 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면서 “법과 상식에 따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공평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측 김미희 대변인은 “아버지 심부름을 하다 들킨 사건이며 이 대통령이 직접 책임질 일”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 이정현 공보단장은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다만 시형씨의 출두 자체에 대한 불필요한 정치 공세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아들 소환 앞두고… 靑 전전긍긍

    아들 시형(34)씨에 대한 특검의 소환조사를 하루 앞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공식 일정을 하나도 잡지 않았다. 다음 달로 예정된 해외순방과 관련한 내부 보고를 받는 등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이 대통령이 사실상 ‘칩거’ 모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시형씨가 현직 대통령의 자녀로는 사상 처음으로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마음은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아들이 특검에 소환된다고 청와대가 들썩거려야 하느냐.”(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터 매입 의혹에 대한 특검수사가 가속도를 내면서, 이전 검찰 수사와 달리 사저 매입에 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듯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특검이나 특정 정당에서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으며, 시형씨 기소를 포함해 판을 짜놓고 맞춰 가는 게 아니냐는 푸념도 청와대 내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특검팀이 이날 중국에서 귀국한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과 그의 부인까지 소환조사를 예고하는 등 대통령 일가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지만, 청와대로서는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는 것도 고민이다. 특검팀은 전날 농협 청와대 지점의 업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 실무진을 청와대에 보내 탐문조사를 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검팀이 당시 계약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청와대 경호처를 압수수색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 상황이라 청와대는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구나 25일에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다. 국감에서는 특검 의혹뿐 아니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이 심도 있게 다뤄지며 청와대에 대한 질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열등감 괴물’이 거장 우뚝… 인간승리로 한국영화 새 역사

    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막을 내린 제69회 베니스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빛바랜 개량한복에 밑창 터진 신발, 꽁지머리를 한 아시아 감독에게 쏟아졌다. 2000년 ‘섬’으로 처음 베니스영화제(경쟁부문)를 두드릴 때만 해도 철저한 무명이었다. 하층민의 삶에 대한 펄떡거리는 묘사,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탐닉에 일부 유럽평론가들은 매혹됐다. 반면 여성 비하로 페미니스트 진영의 공격을 자초했고, 신체 훼손으로 특징지어지는 폭력성 탓에 혹평도 뒤따랐다. 하지만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평한 김기덕(52) 감독은 한국 영화감독 중 가장 먼저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품었다. 그만큼 굴곡진 인생의 소유자도 드물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절대군주와도 같던 6·25 상이용사 아버지와 외유내강형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 탓에 공식 고교학력이 인정되지 않은 농업학교에 진학해 그의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졸업 후 구로공단과 청계천 공장에서 일하다 해병대에 입대해 5년 만에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시각장애인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1년쯤 신학을 공부했다. 종교적 배경은 작품에도 투영됐다. 이탈리아 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는 “기독교와 소통은 그의 지식과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기독교로부터 어떤 종교적 확신도 얻지 못하지만, 죄와 속죄의 변증법만큼은 흡수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서른 살이 되던 1990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유럽 이곳저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3년간 생계를 유지했다. 그 무렵 난생처음 본 영화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1993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했다. 기계나 그림에는 능했지만, 글은 익숙한 표현수단이 아니었다. 떨어졌다. 오기가 생겨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에 등록했다. 그러고는 1996년 3억 50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 ‘악어’로 데뷔했다. 영화를 처음 접한 지 불과 4년 만이다. 1998년 ‘파란 대문’이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2004년에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의 감독상 트로피 2개를 한 해에 받는 이례적인 성취를 거뒀다. 또 장동건과 이나영, 하정우, 오다기리 죠 등 스타들이 출연을 자청할 만큼 위상도 치솟았다. 하지만 ‘콤플렉스를 품은 비주류 감독’, ‘저예산 예술영화 감독’의 이미지도 여전했다. 평단과 관객 모두 ‘지지’ 혹은 ‘안티’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70만명을 동원한 ‘나쁜 남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1만명을 넘기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2008년은 끔찍한 해였다. ‘비몽’ 촬영 중 여배우 이나영이 사고로 죽을 뻔한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애제자 장훈 감독이 김기덕필름을 떠나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와 손잡았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그는 3년 동안 산속에서 칩거하며 영화감독으로, 인간으로 고민과 번뇌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찍었다. 영화 속 장 감독과 충무로에 대한 독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지만,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영화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는 창작에 대한 열정을 회복했다. ‘피에타’는 “그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성숙함이 돋보이는 수작”부터 “김기덕 작품 중에서도 평균 이하”란 평까지 여전히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이 ‘특별한 그의 영화경력에서도 새로운 출발’(AFP통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마이너 인생 김기덕의 구원”

    “마이너 인생 김기덕의 구원”

    ‘묵묵히 비주류 인생을 살아온 김기덕 감독에 대한 구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9일, 국내 영화인과 네티즌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계천과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살았던 데다 단 한 번의 정규 영화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그 흔한 단편영화 습작이나 연출부 경력도 없는 김 감독의 독특한 이력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은 또 한 번 놀랐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은 “한국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라며 “한국영화계를 대표해 김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섬’을 제작했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트위터에 “박찬욱도 봉준호도 홍상수도 이창동도 아닌 김기덕 감독이 먼저 최고상을 받았네요. 한국에서 유독 비주류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오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축하했다. ●총제작비 8억… 25만명이 ‘본전’ 김 감독의 독특한 작업방식도 뒤늦게 화제다. 김 감독은 1996년 같은 해에 데뷔한 홍상수 감독과 함께 적은 돈을 들여 빨리 찍는 대가로 통한다. 보통 장편 상업영화의 회차는 40~60회 정도. ‘마이웨이’ 같은 대작은 160회차까지 찍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15회차 안팎이다. ‘실제상황’(1998)은 서울 대학로에서 불과 3시간 촬영했으니 1회차로 끝낸 셈. ‘피에타’ 또한 지난 2~3월 15회차로 촬영을 끝냈다. ‘피에타’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김기덕 사단의 홍일점 문시현 감독은 “빨리 찍는 것은 여전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빡빡했다. 조민수 선배의 드라마 촬영 일정을 피하느라 평일에 쉬고 주말에 몰아 찍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스태프가 20명 남짓해서 감독님이 막내 스태프들 이름까지 외워 부를 만큼 가족적이었다. (3년 동안의 칩거)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셨다.”고 귀띔했다. ‘피에타’의 순제작비는 1억 5000만원이지만, 배급·프린트 및 마케팅비용(P&A)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8억 5000만원이다. 손익분기점이 24만~25만명. 영화에서 악마 같은 사채업자로 나온 이정진, 수십년 만에 나타난 엄마 역할로 열연한 조민수 등 배우와 촬영스태프, 홍보대행사까지 러닝개런티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베니스 특수’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보너스를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조민수 아쉬운 여우주연상 ‘불발’ 조민수는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혔지만,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주요 부문 수상을 겸할 수 없다는 불문율에 따라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게 배급사인 NEW의 설명이다. 배급사 측은 “심사위원과 영화제 관계자들이 폐막식 후 마련된 피로연에서 ‘조민수의 여우주연상은 만장일치였다’고 전하며 아쉬워했다.”며 특히 중국의 천커신(陳可辛) 감독과 영국배우 사만다 모튼 등이 직접 찾아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에타’, 예매율 3배로 급증 실제 관객도 늘어날 조짐이다. 피에타의 예매 점유율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9.2%(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로 나타났다. 전날(2.8%)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서점가도 심상치 않다.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한 ‘피에타’(가연)는 9일 서점에 깔리자 마자 초판 5000부가 모두 팔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커버스토리] 국산車 생산 50년…5대 강국으로

    [커버스토리] 국산車 생산 50년…5대 강국으로

    “기아가 100% 자체 개발로 승용차를 만든다고 하자 일본 기술자들이 ‘기아가 만든 차가 굴러갈 수 있을까요?’라며 비웃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씨름한 지 1년 만에 100% 우리 손으로 세피아를 만들어 냈습니다.” 기아차에 입사, 봉고 신화 등을 낳아 ‘한국의 아이어코카’, ‘자동차 경영의 귀재’ 등으로 불린 김선홍(80) 전 기아차 회장의 회고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기아산업 공채 1기로 입사한 그는 1968년 36세에 이사가 되는 등 기아산업과 고속성장을 같이한다.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이후 현재 기아자동차의 골격을 잡았다. 포드·마쓰다와 3각협력체제를 구축, 프라이드 신화를 일군 것도 그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기아차의 좌초로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은둔해 왔다. 인터뷰를 사양하던 그를 지난 23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그의 자택 앞 찻집에서 만났다. 칩거 이후 15년 만이다. 김 전 회장은 “바퀴도 핸들도 못 만들던 우리가 세계 5위의 자동차 강국이 된 것을 보니 인생을 걸고, 자동차 국산화만을 보고 달렸던 나의 인생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 전 회장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5년. 유엔재건단의 차량 등에 쓰이는 부품을 조달하거나 만드는 병기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는 “자동차 한 대도 못 만드는 나라지만 그곳에선 가내 수공업으로 거의 모든 부품을 만들고 있었다.”면서 “이런 저력이 우리 자동차산업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1962년 기아산업이 상공부와 함께 추진하던 삼륜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김 전 회장은 “3륜차가 나온다고 하자 지금의 서울시청 광장에 우마차들이 가득 모여 ‘삼륜차 때문에 먹고살기 어려워진다’며 데모를 했다.”면서 “그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말 제2차 석유파동으로 기아차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회장으로 추대돼 ‘봉고신화’에 이어 프라이드, 세피아, 엘란, 중형차 크레도스 등을 내놓는다. 그는 “봉고는 기아차를 살렸고, 프라이드는 기아차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차”라고 소개했다. 화제를 바꿔 은둔의 배경을 묻자 “다시 세상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냥 ‘김선홍 기아 회장’이란 이름이 잊혀지기를 바랄 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아차의 좌초 음모설에 대해선 “내가 무슨 이야길 할 수 있겠나. 나는 패장이다. 이제 모든 걸 다 놓았다. 배가 침몰하면 부하들의 크고 작은 실수를 선장이 지는 것이 옳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관련, 김 전 회장은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가 미국 GM이 한창 잘나갔던 1970년대에 ‘쉐보레 브랜드를 스핀업(분사)시켜야 한다’고 했다.”면서 “당시 드러커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GM이 이렇게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을 대신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압박받는 정두언의 선택은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통보를 계기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박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소환 통보를 하면서 정 의원에 대한 ‘가시적 조치’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새누리당도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8일 “정 의원이 탈당을 하든가 검찰에 자진 출두라도 해야 당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3일 새누리당 지도부는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정 의원을 향해 “영장실질심사 이상의 강도 높은 조치를 스스로 취하라.”고 요구했었다. 정 의원은 체포동의안 부결 이튿날인 13일 강원도에서 체류하다 16일 돌아온 뒤 칩거 상태다. 정 의원 측은 이날 “이미 검찰 소환에 응해 조사까지 받은 마당에 다른 무슨 조치를 더 취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검찰에서 7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난 뒤 다른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는 이상 정 의원이 취할 수 있는 선제 조치는 현실적으로 없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자진 탈당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李대통령 칩거… 대국민 사과 준비

    이명박 대통령은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구속과 관련, 조만간 대(對) 국민 사과를 하기로 하고 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11일 오전 제1회 인구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려던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숙고에 들어갔다. 전날(10일) 이 전 의원의 구속으로 인한 충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측은 이 대통령이 특별히 전달할 메시지가 없어서 일정을 취소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은 약해 보인다. 그보다는 대국민 사과를 준비하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과의) 시기와 방법, 표현 등을 고심하고 있다.”면서 “(사과문제와 관련해) 아직 대통령에게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참모들의 의견을 종합해 대통령실장이 곧 보고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이 전 의원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이후부터 이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의 형이 구속된 것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측근비리 문제와 관련, “할 말이 없다.”고 한 애매한 표현에서 벗어나, 진솔한 뜻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_산시성 몐산, 쓰촨성 구채구

    중국은 산이고 물이로다 호랑나비가 되는 꿈을 꾼 장자가 깨어나 말했다지.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중국을 누볐다. 나는 꿈을 꾼 것인가, 여행을 한 것인가. 신의 조각품이라 할 만한 산시성의 몐산, 물감을 엎지른 것만 같은 쓰촨성의 구채구는 ‘중국의 산과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글·사진 김명상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하나투어, 레드팡닷컴 산시성 몐산 綿山 타이항산맥에서 피어난 한 떨기 산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에서 마침표를 찍는 백두대간을 굽어보면, 산과 산이 북에서 남으로 길게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다. 백두대간이 9개의 산을 안고 있듯 중국의 타이항산맥太行山脈도 산시성, 허베이성, 허난성 출신의 산을 실타래처럼 엮는다. 남한 쪽 백두대간의 길이는 650km, 타이항산맥의 길이는 남북으로 600km며 동서로 250km. 수치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산시성山西省은 타이항산의 서쪽, 동쪽은 바로 산둥성山東省이다. 타이항산맥의 서쪽에서 솟아오른 몐산綿山·면산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았다.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 몐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까닭이다. 한식은 춘추전국시대 충신으로 불리는 개자추介子推를 기리는 날이다. 진나라 문공이 칩거했던 시기,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줄 정도로 문공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했다. 그러나 훗날 문공이 왕이 되자, 개자추는 다툼이 잦은 현실 정치를 뒤로한 채 어머니와 함께 몐산으로 숨고 만다. 충신을 잃은 문공은 개자추를 불러들이기 위해 몐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래서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에는 뜨거운 불에 죽어간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찬 음식을 먹고 있다.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엔太原·태원에서 개자추의 전설이 영근 몐산까지는 버스로 2시간이면 닿았다. 몐산을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이어지는 산’이다. 분명 몐산의 저 너머에는 또 다른 중국의 산이 불뚝 솟아 있을 것이다. 버스에 의지해 몐산을 본격적으로 오르자, 신이 둥근 과일을 칼로 깎듯이 저 산을 곱게 도려낸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해발 2,000m를 웃도는 산 위, 도로가 끊길 듯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연이어 나타났다. 도로의 폭이 워낙 좁은 탓에 대형 버스 두 대가 마주칠 때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비켜갔다. 버스가 직사각형 반듯한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절벽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원펑수위안雲峰墅苑·운봉서원이었다. ‘하늘 위 호텔’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숙소 창문을 열자 한 폭의 동양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1, 2 정궈스에 오르면 등신불을 볼 수 있다 3 몐산의 원펑스에는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이 숨쉰다 4 원펑스의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와 12연기를 의미한다 5 원펑스에서 정궈스로 오르는 계단이 아찔하다 6 군사요새인 몐산의 석채. 타이항산의 서쪽에 솟은 몐산의 높이는 2,000m가 넘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소원이 박힌 절벽을 지나 ‘미라 승려’를 만나다 원펑수위안의 로비인 10층은 원펑스雲峰寺·운봉사와 이어지는 비밀 통로다. 여기서 원펑스를 오르면 호텔 10층 높이만큼 발품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편한 것을 거부하고 느리게 다가오는 중년의 중국인이 보였다. 그는 아찔하게 펼쳐진 120계단 위에 두 손을 밀착하면서 연거푸 절을 했다. 고개를 들 때마다 시선은 원펑스로 향해 있었다. 120계단은 108가지 번뇌煩惱에 12연기를 더한 숫자를 의미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나는 심적인 고통이다. 마음을 비우면 쉬운 것을 우리는 항상 욕심을 부리고 의도치 않게 성을 내며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았다. 그래서 120계단은 인간의 행렬로 쉴 날이 없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원펑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만 같은 편안함이 감돌았다. 포복사抱腹寺는 절벽 속에 감겨 있는 원펑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절은 마치 어미의 뱃속에 아이가 안겨 있는 모습을 닮았다. 사람의 손길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가파른 암벽을 따라 붉은 천이 휘날렸다. 천에 매달린 것은 등불 혹은 방울이었다. 왜 등불과 방울인가. 등불燈·등불등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길 기다리겠다等·기다릴등”고 신께 기도했고, 반대로 방울鈴·방울영을 단 사람은 “소원이 이뤄지다니, 영험합니다靈·영험할영”고 감사 인사를 띄웠다고 한다. ‘등’과 ‘영’이라는 한자 음을 이용한 중국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 했다.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뤄지리라. 원펑스를 지나 ‘之갈지’ 모양의 지그재그 계단을 올랐다. 정궈스正果寺·정과사로 가는 길이다. 정궈스까지 오른 이유는 하나였다. 등신불等身佛을 보고 싶었다. 등신불은 쉽게 말해 ‘미라가 된 승려’다. 미라라 하면 방부처리한 상태로 편하게 누워 있는 이집트 미라가 대번 떠오른다. 그러나 이곳의 등신불은 고고하게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꼿꼿한 자세 그대로 ‘인간 불상’이 되었는지는 과학도 풀기 힘든 미스테리라고 했다. 오매불망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그대로 돌이 된 망부석처럼 등신불에는 어떤 애절함과 의지가 선연하게 묻어났다. 등신불의 갈라진 틈 사이로 뼈와 두개골이 보였다. 정궈스에는 등신불 총 12존이 있다. 등신불도 살아온 궤적에 따라 저마다의 표정이 달랐다. 유독 표정을 잔뜩 찡그린 불상이 보였다. 죽어서도 지울 수 없는 한이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게 틀림없었다. 역시나 그 등신불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있다고 했다. 하산한 그대여, 왕자다위안과 핑야오구청으로 가라 몐산에서 내려와 왕자다위안王家大原·왕가대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씨네 집을 찾아간 것이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소” 노래 <왕서방연가> 탓인지 중국의 부자 하면 왕서방의 퉁퉁한 얼굴이 스쳤다. 실제 왕王씨는 이李씨, 장張씨와 함께 중국의 3대 성씨로 꼽힌다. 왕자다위안은 길조차 왕씨의 집임을 증명했다. 남북으로 큰 길이 하나 놓여 있고 동서방향으로 세 개의 길이 나 있으니 영락없는 王자였다. 왕씨 가문의 시조인 ‘왕실王實’은 두부장사로 큰돈을 모은 거상이었다. 왕실의 17대손 형제는 나란히 관직에 등용돼 가문에 영광을 안겨줬고 집을 더 크게 짓고 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와 명예를 뽐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으리으리한 집짓기가 아닌가. 수백년에 걸쳐 대대손손 지어진 이 집은 ‘민간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방의 개수는 1,118칸, 정원의 수도 100개가 넘는다. 집을 구경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족히 1시간은 걸렸다. 왕자다위안에서는 숨어있는 장치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계단과 문 앞에는 복숭아, 박쥐, 원숭이, 물고기 등의 조형물이 나타났다. “복숭아는 장수, 박쥐는 복을 의미하고요…” 여기저기서 숨은 그림 찾기에 빠진 이들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집을 채운 소품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다. 방문객이 어찌나 만졌던지 사람의 손을 탄 장식품은 하나같이 반들반들했다. 하산 후 여행은 대개 왕자다위안에서 핑야오구청平遙古城·평요고성으로 이어진다. 핑야오구청은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명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번화해 몐산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적막한 몐산에 파묻혀 며칠을 지냈던지라 왁자지껄한 핑야오구청의 분위기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몸이 반응했다. 정신없이 골목을 누볐더니 어느새 두 손 가득 간식과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들려 있었다. 스토우빙으로 불리는 바삭바삭한 과자, 매콤하고 짭조름한 양 꼬치, 대형 지팡이 과자 등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워낙 많아 끼니를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핑야오구청에는 지갑을 열게 하는 마력이 흘렀다. 알고보니 핑야오구청 일대는 상업 중심지로 흥했던 곳이었다. 중국 최초의 은행인 표호票號도 이곳에 있다. 처음 핑야오구청을 둘러보면 망망대해를 누비는 것처럼 막막하다. 다행히 스러우市樓·시루는 든든한 등대 역할을 했다. 아침이면 이곳을 중심으로 거리 공연이 열리고, 밤이면 화려한 빛이 뿜어 나와 여행객을 위무했다. 1 장수, 복 등을 의미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숨어있다 2 왕자다위안은 민가의 자금성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하다 3 핑야오구청의 아침은 화려한 전통 공연으로 시작한다 Travel tip 산시성 사람은 식사 전 꼭 ‘식초’ 한 잔을 마신다. 상 위에 오른 검정 액체를 보고 당황하지 말자. 몸에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냉큼 마셔 보시길. 핑야오구청에는 게스트하우스, 중국식 전통 숙소인 객잔이 있다. 특히 객잔에 머물면 홍등과 버드나무를 벗 삼아 객잔 주변을 산책해 보라. 귀부인이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또한 객잔 마당의 테이블에서 맥주 캔을 든다면 풍경에 취해 밤을 새기 십상이다. 단, 객잔의 실내는 약간 쌀쌀한 편이니 취침 전 창문을 잘 닫는 게 좋다. T clip.여행상품 10월20일까지 몐산으로 손쉽게 떠날 수 있다. 바로 인천에서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전세기를 운항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총판매대리점을 맡고 있는 레드팡닷컴을 비롯해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참좋은여행, 온라인투어 등 전국의 여행사를 통해 전세기 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출발해 4박5일간 현지에 머무르며 몐산, 왕자다위안, 핑야오구청 등 산시성 대표 여행지를 모두 아우르며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디너쇼도 포함한다. 상품가 69만9,000원부터 문의 레드팡닷컴 02-6925-2569 쓰촨성 구채구 九寨溝 고산증은 통과의례였다 오색찬란한 물빛을 보는 순간 당신은 선계仙界에 온 듯한 착각을 할 것이다. 지구상의 온갖 푸른색 보석을 가루 내 물에 푼 듯한 구채구의 물빛은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산을 고이 담아낸 물이 잔잔하고, 웅장한 폭포에서는 거대한 물의 커튼이 눈앞을 가린다. 하지만 구채구에 도착하기 전 고산병이 발목을 잡았다. 구채구로 가는 관문인 청두成都·성도에서 국내편 비행기를 타고 해발 3,500m의 구황공항에 내리자마자 딱따구리가 머리를 쪼는 듯한 두통이 일어났다. 갑자기 높은 곳에 올라오자 심한 고도차에 몸이 고통을 호소한 것이다. 미리 먹었던 고산병 예방약은 별무소용이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몸은 금방 적응됐는지 평소와 같은 기분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정도가 조금 덜할 뿐, 여전히 두통이 남아있다고 했다. 구채구는 해발 1,980~3,100m 정도 높이에 걸쳐져 있는데 한반도의 최고봉, 백두산 높이가 2,744m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고산증세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며 극복한다면 진한 감흥을 얻을 것이다. 구채구는 1970년대에야 벌목공에게 발견됐을 정도로 오지다. 골짜기 안에 9개의 장족 마을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아름다운 산과 오색찬란한 물로 유명하다. 동화세계, 인간선경 등으로 불리는 중국 관광의 명소로 1975년 중국 정부 지정 관광지로 지정됐고,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1997년에는 세계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4 진주가 흐르는 듯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진주탄폭포 5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색깔이 비친다는 뜻으로, 비취색이 인상 깊은 곳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물빛 구채구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Y자 형태이며 크게 수정구樹正溝, 일측구日則溝, 측사와구則渣窪溝 3개의 골짜기로 이뤄져 있다. 전체 길이는 55.5km, 입구에서 구채구의 가장 높은 지역인 장해까지의 길이는 총 17.8km에 달한다. 따라서 도보로 걷기에는 힘들기에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같은 버스를 탄 관광객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찬탄을 질러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산이 물 표면에 그대로 비춰지기도 하고, 비취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물 색깔의 오묘함에 홀리듯 빨려들게 된다. 예로부터 장족들이 신산성수神山聖水라 불러 왔다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구채구 내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114개, 호수 사이에 17개의 폭포군, 11개의 급류, 5곳의 트래버틴(석회암의 일종) 모래톱이 서로 연결돼 있다. 호수는 이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는데 명칭이 있는 호수는 보통 오화해, 경해, 장해와 같이 바다海라 명명된다. 구채구에 관한 전설에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옥낙색모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달과라는 남자신이 그녀를 사모했다. 한 번은 달과가 여신에게 바다를 볼 수 있는 보물거울을 선사했는데 갑자기 달려든 마귀에 놀라 거울을 떨어뜨렸다. 그 거울 조각이 인간세상에 떨어져 보석처럼 산 곳곳에 박히게 됐는데 그것이 구채구의 호수가 됐다는 것이다. 구채구의 하이라이트, 오화해·장해 구채구는 면적이 720km2 달하는 만큼 관광객이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성수기에는 가이드도 압사당할 뻔했다고 할 만큼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기에 여유로운 사진 촬영도 어렵다. 따라서 미리 몇 곳을 정해 놓고 집중해 보는 편이 낫다. 추천하는 곳은 오화해五花海와 장해長海다. Y자 계곡의 오른쪽(일측구) 상류 부분에 있는 오화해는 꽃처럼 아름다운 다섯 가지 색이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구채구 호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데 에메랄드색과 남색, 녹색 등이 서로 교차하고 영롱한 빛을 발해 눈을 어지럽힌다. 이런 신비한 색감은 석회암 지형 때문인데, 물에 석회질이 많아 색깔이 옥색으로 비치는 것에 더해 주변 산의 전경, 태양의 움직임 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호수 속에는 이미 오래된 나무가 유유자적하게 잠겨 있는데 신기하게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지질 특성상 석회 성분이 고착돼 그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이 어우러진 오화해는 말 그대로 선경이라 부를 만큼 감동이 살아 숨쉰다. 오화해 위로는 팬더바다라는 뜻의 웅묘해熊猫海가, 아래로는 경내에서 가장 웅장하며 진주가 흐르는 듯 아름답다는 진주탄폭포珍珠灘瀑布가 있는 만큼 천천히 유람하듯 즐기는 것도 좋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구채구에서 제일 높은 호수인 장해로 향했다. 장해는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101m에 있고 길이는 약 4.3km에 달한다. 유람선이라도 뜰 것 같은 긴 물결이 호수임에도 시야를 탁 트이게 만든다.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마치 중식도로 산을 뭉텅뭉텅 베어낸 듯한 노르웨이의 피오르드fjord와 흡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구채구라는 계곡 하나에서 동양과 유럽의 매력을 아우르는 풍경이 숨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장해 아래 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역시 물 색깔이 곱디고운 오채지五彩池에 닿는다. 1 석회질 성분 때문에 이곳에 잠긴 나무들은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2 웅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장해. 이름답게 사진에 보이는 장면이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3 구채구 장족문화촌에서는 장족의 문화와 전통을 만끽하며 쇼핑도 겸할 수 있다 4 장족문화촌에서 전통복장을 한 여인이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5 장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칼을 차고 다니기에 화를 돋우면 곤란에 처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지 속 쇼핑몰, 장족문화촌 구채구 내의 수정채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장족 마을이 있다. 입구 앞에는 쵸르텐불탑과 룽다風馬가 서 있다. 룽다는 긴 장대에 매단 긴 깃발이고 타르쵸는 정사각형의 기를 이어서 매단 것으로 경문이 가득 쓰여 있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에 전달돼 모두가 해탈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해져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면 타르쵸가 만국기처럼 내걸려 있다. 상점에서 물품을 파는 이들은 모두 장족 전통 복장을 하고서 그들만의 독특한 기념품을 만든다. 티벳문자가 수놓인 천 제품, 스카프, 옥으로 만든 빗, 각종 의류, 거울, 팔찌,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 등도 만날 수 있다.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 아쉽지만 장족의 고유한 삶도 들여다보고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어 구채구를 찾은 이라면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다. T clip.가는방법 청두(성도)는 구채구의 관문이다. 인천에서 청두까지는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사천항공 등이 운항 중이며 약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청두에서 구황공항까지는 비행기로 45분 걸리지만 육로로는 10시간도 소요될 수 있다. 그만큼 비행기 이용객이 많은데 문제는 날씨가 워낙 오락가락하는 탓에 비행기 연착이 흔하디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 기자는 3시간 넘게 청두 공항 의자에 누워서 기다려야 했다. 상품 문의 하나투어 02-2127-1951 Travel tip. 구채구는 산에 단풍이 들고 물이 많은 가을이 성수기다. 단, 10월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서 주변 호텔 가격도 비싸고, 관광할 때 인도를 걷기도 힘들 만큼 붐비니 9월이 가장 적당하다 구채구 내에서 버스 이용할 때는 앉은 자리가 풍경 감상의 핵심이다. 입구에서 상행선 버스를 탈 경우 왼쪽이, Y자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일측구에서는 오른쪽에 앉으면 이동하면서 멋진 장면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병은 평소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자만은 금물. 일단 고산병 증세가 생기면 하산만이 해결책이다. 약을 준비하는 등 미리 조처하고 대비하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무바라크 사망 임박” 이집트는 ‘혼수상태’

    이달 초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호스니 무바라크(84) 전 이집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혼수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망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건강 위독설이 제기됐지만 이번엔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대선 결과 발표(21일)를 앞두고 군부의 재집권 시도 등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이집트 정국에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이집트 관영 메나통신은 무바라크가 이날 오후 카이로 남부의 토라 교도소 내 병원에서 심장마비와 뇌졸중 증세를 일으켜 헬기에 실려 외부 군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건강상태에 대해선 보도가 엇갈렸다. 메나통신은 무바라크의 심장 박동이 멈췄고, 심장충격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임상적으로 사망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집트 군 최고위원회의 맘도우 샤힌 장군은 CNN과 인터뷰에서 “위독한 상황이지만 임상적인 사망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부의 한 관계자는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한 반면 다른 보안 관리는 무바라크가 혼수상태에 있지만 인공호흡기는 뗐으며 심장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여러 기관도 기능을 하고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무바라크는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안정을 되찾았으며 아내 수전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병원 주변에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모여들면서 당국은 경찰 병력을 대거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시민 상당수는 무바라크의 건강위독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해 7월에도 일부 언론이 혼수상태라고 보도한 이후 법정에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비롯해 그동안 수차례 위독설이 제기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무바라크와 그의 측근들이 교도소보다 시설이 나은 외부 병원에서 수감생활을 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며, 한편에선 대선 결과에 대한 관심을 흩뜨리기 위한 방편으로 무바라크의 건강 상태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그가 지난 2일 종신형 선고 뒤 건강이 악화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도소 내 의료진은 지난 11일에도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심장충격기를 두 차례 사용했으며, 같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두 아들이 아버지 곁에 머물도록 허용했다. 고령에다 지병이 있는 무바라크는 교도소에 수감되자 화병에 우울증까지 겹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추측된다. 무바라크는 지난해 2월 시민혁명의 여파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시나이반도의 홍해 휴양지에 칩거해 오다 첫 재판을 받은 지난해 8월부터 법원의 명령으로 카이로 인근 병원에서 머물렀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은 직후 교도소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새는 양날개로 난다/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새는 양날개로 난다/오일만 경제부 차장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 선생은 평생 ‘색깔론’에 시달렸다.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번민하던 그는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경 공부에 매진한 시기가 있었다. 1년 남짓 그의 ‘방황’은 끝을 맺고 조선조 유교문화를 꽃피운 대유(大儒)로서 우뚝 솟은 인물이 됐다. 하지만 그가 한때 불교에 심취했다는 것 자체는 반대파들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됐다. 유교사회에서 친불론자라는 딱지는 아마도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시대 주자파(走資派)나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당시의 공산주의자, 우리의 군부 독재시대의 ‘빨갱이’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격화되던 당쟁 속에서 사문난적으로 몰린 이이는 수차례 파직과 칩거를 거듭할 정도로 벼슬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을 이단으로 몰았던 엄혹한 조선의 땅에서 이이는 불교는 물론 노자 사상도 과감하게 수용해 삼교합일(三敎合一)을 시도한 창조적인 지성인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가 유학자로서 숭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이 선생의 인생 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종북좌빨’과 ‘보수골통’ 논쟁에서 보인 아쉬움 때문이다. 양자택일의 논리,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가 횡행하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정치공학적 접근으로 변질되는 느낌이 짙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100년 전 소련의 볼셰비키나 히틀러의 파시즘처럼 섬뜩한 광기마저 엿보인다.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온건진보 세력에도 종북이란 프레임으로 딱지를 붙이는 것은 21세기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논쟁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한 국가는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인 것처럼 이념적으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용해야 한다. 새가 양날개로 나는 것처럼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선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공존 속에서 서로가 경쟁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 북한 접근법은 참으로 어렵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엔 하나의 민족이란 감정적 접근도 해봤고, MB정권은 지난 5년 가까이 적대적 국가로서 문을 걸어 잠그는 선택도 해봤다.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이념적으로 이복형제 격인 남북한이 ‘원수로 지내면 안 된다’는 공존의 필요성을 보다 절실하게 깨닫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복지논쟁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이냐, 선택적이냐’를 놓고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복지논쟁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국가가 존립하는 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패자 부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복지의 주요한 기능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논쟁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편가르기 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복지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고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큰 그림 속에서 복지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의 대표적 모델인 스웨덴을 보자. 그 많은 돈을 국민들의 복지에 쓰면서도 스위스 국가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2012년)에서 5위에 올라 있다. 우리는 22위, 일본은 27위였다. 50%가 넘는 조세부담률을 기꺼이 수용하면서도 노동자의 실업과 기업의 도산을 당연시하는 엄격한 경쟁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관건이다. 진보적 색채가 강한 사회민주당과 경쟁력을 중시하는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공존의 정책을 만든 점에서 부럽기 그지없다. 차는 브레이크가 있어야 달린다. 브레이크가 망가지면 그 비싼 롤스로이스도 무용지물이다. 브레이크가 불안해도 속도를 내지 못한다. 튼튼한 브레이크는 질주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것이다. 공존의 묘미를 체득하지 못한 사회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마도 백년하청(百年河淸)일 것이다. oilman@seoul.co.kr
  • 이석기 2주째 잠행… 중대 결심? ‘퇴출’ 여론 잠재우기?

    이석기 2주째 잠행… 중대 결심? ‘퇴출’ 여론 잠재우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은 19대 국회 개원 이틀째인 31일에도 국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회관 신관에 마련된 이 의원의 사무실은 입주자 없이 국회 사무처에서 설치한 집기만 있는 상태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후 단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만 논평 등을 통해 반박했고, 이마저도 17일 이후에는 중단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도 일주일째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의 총괄보좌역인 김영욱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전날 전화통화에서 “현재 이 의원은 지방에 있다. 의정활동은 아니고 개인적인 일로 내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김 전 부소장마저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한 상태다. 그는 구당권파의 배후 정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신당권파 측 관계자는 “보좌관 외에 당내에서도 이 의원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서울시당 당기위 제명 절차와 여야의 자격 심사 청구 움직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잠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코너에 몰린 그가 칩거하며 자진 사퇴를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당선 직후 일성으로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자신이 야권연대의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김재연 의원은 이 의원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날 국회 앞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석했다. 사퇴 압박에도 의정활동을 꿋꿋하게 펴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31일에는 징계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윤숙 비례대표(7번) 후보의 기자회견 참석차 국회 정론관을 잠시 방문했다. “조 후보가 왜 당에 의해 제명을 당해야 하는지, 부적절한 후보로 낙인찍히고 매도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기위 제소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굳게 닫고, 대기 중인 승용차에 올라 급히 국회를 빠져나갔다. 김 의원 측은 “오늘 공식 일정은 이것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일정”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한 적은 없다. 이·김 의원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대해 김 의원만 정면에 나서 해명하다 보니 당내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김 의원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게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보좌진으로 이정희 전 공동대표 보좌관을 지낸 김정엽씨만 국회에 등록했다. 김 의원은 아직 보좌진을 등록하지 않았다. 이·김 의원을 제외한 구당권파 의원들은 보좌진 구성과 입주를 마치고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집회 나온 김재연, 황급히 차로 돌아간 이유는

    집회 나온 김재연, 황급히 차로 돌아간 이유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은 19대 국회 개원 이틀째인 31일에도 국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회관 신관에 마련된 이 의원의 사무실은 입주자 없이 국회 사무처에서 설치한 집기만 있는 상태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후 단 한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만 논평 등을 통해 반박했고, 이마저도 17일 이후에는 중단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에도 일주일째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의 총괄보좌역인 김영욱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전날 전화통화에서 “현재 이 의원은 지방에 있다. 의정활동은 아니고 개인적인 일로 내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김 전 부소장마저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한 상태다. 그는 구당권파의 배후 정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신당권파 측 관계자는 “보좌관 외에 당 내에서도 이 의원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서울시당 당기위 제명 절차와 여야의 자격 심사 청구 움직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잠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코너에 몰린 그가 칩거하며 자진 사퇴를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당선 직후 일성으로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자신이 야권연대의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김재연 의원은 이 의원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날 국회 앞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석했다. 사퇴 압박에도 의정활동을 꿋꿋하게 펴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31일에는 징계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윤숙 비례대표(7번) 후보의 기자회견 참석차 국회 정론관을 잠시 방문했다. “조 후보가 왜 당에 의해 제명을 당해야 하는지, 부적절한 후보로 낙인찍히고 매도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기위 제소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굳게 닫고, 대기 중인 승용차에 올라 급히 국회를 빠져나갔다. 김 의원 측은 “오늘 공식 일정은 이것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일정”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한 적은 없다. 이·김 의원을 둘러싼 모든 논란에 대해 김 의원만 정면에 나서 해명하다 보니 당내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김 의원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게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보좌진으로 이정희 전 공동대표 보좌관을 지낸 김정엽씨만 국회에 등록했다. 김 의원은 아직 보좌진을 등록하지 않았다. 이·김 의원을 제외한 구당권파 의원들은 보좌진 구성과 입주를 마치고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김한길, 민주 경선 선두 재탈환

    김한길, 민주 경선 선두 재탈환

    ‘김한길 대세론’의 시작인가. 30일 실시된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강원 지역 대의원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가 179표(득표율 26.4%)로 이해찬(82표·12.1%) 후보를 97표 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전북(31일), 수도권 등 4개 지역을 남기고 김 후보는 누적 합계 1921표를 획득해 이 후보(1837표)를 84표 차로 뒤집고 재역전에 성공했다. 원주 인터불고 호텔에서 대의원 339명(80.7%)이 참여한 투표에서는 김 후보에 이어 강원 철원 출신 우상호(166표) 후보가 이 후보를 꺾고 2위에 올랐다. 김 후보는 “민심과 당심이 만난 결과이며 공정한 대선 경선관리로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이긴 김 후보의 승리 요인에는 경선진행지역 12곳 가운데 8곳에서 선두를 기록하면서 형성된 대세론이 대의원들의 ‘두 번째 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2강(强) 체제로 굳어진 현 상황에서 사(死)표 방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친노계가 주도한 4·11 총선에서 강원 지역이 전멸하면서 총선 패배의 책임론이 비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이 후보는 아니라지만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을 내세워 대선 승리를 강조했던 이 후보의 전략이 ‘자승자박’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춘천에 칩거했던 대권주자 손학규 전 대표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지지층이 비노(非)계로 결집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후보를 제외한 김 후보 등은 친노 주도의 총선 패배와 이를 반성하지 않는 밀실 담합으로 이 후보를 엮어 공격했다. 선두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이 후보와 김 후보 간 공방도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전날 밤 TV토론에서 ‘사학법’ 처리를 놓고 언쟁을 벌인 데 이어 이날 서로 비난 성명서를 내는 등 험악한 설전을 벌였다. 이 후보 선거대책본부는 보도자료에서 2006년 김 후보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시절 국회 등원 조건으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와의 산상회담에서 사학법 재개정에 합의했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는 “사실과 다르다. 원내대표 재임 중 사학법을 끝까지 지킨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저 이후 지도부가 사학법을 바꿔 섭섭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 후보 측은 ‘합의문 전문’을 공개하며 “김 후보가 사학법 개정을 주도해 놓고 후임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후보 선대본도 반박 자료를 내고 “꼼수며 네거티브가 아닌 실정법 위반의 범죄 행위”라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강주리·원주 이범수기자 jurik@seoul.co.kr
  • 아라가야의 심장 함안에서 만난 낙화놀이

    아라가야의 심장 함안에서 만난 낙화놀이

    교교한 달빛이 흐르는 연못 위로 불꽃비가 내립니다. 하늘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불꽃놀이와는 양태가 사뭇 다릅니다. 아래로 아래로 잔잔하게 흘러내립니다. 한 가닥의 불꽃은 수천 개의 흐름으로 바뀌고 곧 불꽃비가 되어 연못을 적십니다. 경남 함안 무진정에서 열린 ‘함안 낙화놀이’ 풍경입니다. 꼭 낙화놀이가 아니더라도 함안을 찾아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너른 악양뜰과 국민 가요 ‘처녀 뱃사공’을 품은 악양루,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만큼이나 넉넉한 반구정, 칼날처럼 올곧은 선비들이 살던 고려동 등 다 돌아보려면 하루해가 짧지요. 함안은 겉보기와 다른 도시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요. 빼어난 풍경들은 외려 도시의 이면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함안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아라가야가 신라의 그늘에 가려졌듯 말입니다. 글 사진 함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함안은 사실 여행 목적지로 그리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경남에서도 오지에 속한다고는 하나 오지 특유의 적요함보다는 인근 창원의 위성도시 같은 들뜬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런데 꼭꼭 숨어있는 풍경들을 찾다 보면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풍경 하나하나가 여느 곳에서 쉬 보기 어려울 만큼 빼어나다. 무진정은 그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경승지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조삼의 후손들이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다. 세월이 더께로 내려앉은 정자의 풍모도 좋지만 정작 객들의 시선을 끄는 건 무진정 앞에 펼쳐진 연못이다. 둥근 석축이 감싼 연못 주변에는 왕버드나무, 느티나무 등이 아름드리로 자라났다. 연못 가운데 영송루를 중심으로는 구름다리가 놓여 운치를 더한다. # 물오른 참나무 7일간 태워 숯 만들고 광목 얹어 심지 삼아 무진정에선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 낙화놀이가 열린다. 올해 21회째다. 경북 안동, 전북 무주 등에서도 비슷한 놀이가 열리는데 문화재(시도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건 함안 낙화놀이가 유일하다. 낙화놀이는 액운을 태워 없애고 한 해의 풍농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행사 시작 전부터 여간 정성을 쏟아야 하지 않는다. 핵심은 숯가루다. 함안군청 홍보담당 조정래씨에 따르면 음력 3월 중순께 물오른 참나무를 통째 자른 뒤 이를 넣고 7일 동안 흙구덩이에서 불을 때 숯으로 만든다. 숯이 만들어지면 들깨처럼 곱게 갈아 한지 위에 놓고 심지로 쓸 광목을 얹은 뒤 둘둘 만다. 이렇게 만든 낙화 2개를 두께 1~1.5㎝, 길이 15~20㎝로 꼰다. 광목에 녹아 있는 풀을 빼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풀을 녹이기 위해 양잿물을 넣는데 양잿물의 양을 조절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너무 많으면 심지가 너덜거리고 적으면 제대로 불이 붙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타래(전해 오는 정확한 이름은 없다) 3000개를 무진정 앞 연못에 설치한 줄에 걸고 불을 붙이면 숯가루가 거꾸로 타오르면서 바람에 날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2시간여 진행되는 낙화는 잔잔하게, 때로는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일년에 단 하루 펼쳐지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진정 일대를 가득 메운다. 뭇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낙화놀이 횟수를 늘이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 고운 꽃비처럼 날리는 숯가루, 일년 액운 다 가져가렴 함안의 경승지들은 대개 낙동강과 남강 등 물길 주변에 몰려 있다. 그 가운데 악양루는 가장 앞줄에 세울 만하다. 진주를 거쳐 온 남강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법수면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다. 악양루에 서면 악양뜨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런 황톳길이 ‘S라인’을 그리며 휘돌아 가고 물새 오가는 남강변엔 갯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뉘라서 이 광경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적시면’으로 시작되는 노래 ‘처녀뱃사공’도 바로 이 풍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조정래씨는 “6·25전쟁 당시 유랑극단 단장으로 함안에서 피란 생활을 하던 윤부길(가수 윤항기, 윤복희의 선친)씨가 대산장에 가기 위해 악양나루터에서 나룻배에 올랐는데, 마침 노를 젓던 처녀가 군에 입대한 뒤 소식이 끊긴 오빠(박기준, 6·25전쟁 때 전사)의 사연을 들려줬고 훗날 이 내용을 토대로 가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가사에 남강이 아닌 낙동강이 등장하게 된 건 가사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것. 악양뜰 너머 남강변엔 악양둑방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져 있다. 둑 양편으로는 꽃양귀비 등 꽃들이 식재돼 있다. ‘에코싱싱길’이라 불리는 꽃길의 길이는 2.5㎞에 달한다. 남강에 악양루가 있다면 낙동강변엔 반구정이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짙은 그늘을 선물하는 곳이다. 반구정에 들면 먼저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타 마실 일이다. 반구정 쪽문을 열면 커피와 종이컵, 정수기 등이 준비돼 있다. 객들에게 늘 공짜 커피를 타 주시던 할머니는 올봄 타계했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할머니의 뜻은 여태 이어지고 있다. 반려자를 먼저 보낸 조승도(88) 할아버지의 손님맞이 방식도 남다르다. 객들이 찾아오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음료수를 준비하는데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주객이 맞절로 예를 표시한 뒤에야 대화를 나눈다. 느티나무 아래 텃밭엔 ‘선화지허’(仙化之墟)라고 쓰인 비가 있다. 할머니가 숨을 거둔 장소로, 한학자 출신의 조 할아버지가 직접 작명했다. 조 할아버지에 따르면 밭일하던 할머니를 놀래주기 위해 뒤에서 몰래 끌어안았는데 호미를 손에 쥔 채 그대로 할아버지의 품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외모만큼이나 로맨틱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애틋한 이야기다. # 노예 같은 벼슬길 마다하고 자연 벗 삼은 선비가 살아난 듯 함안 안쪽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는 칠원면 무기리의 무기연당이다. 조선 후기 학자 주재성의 생가이자 주씨 집안의 종가에 딸린 전통 정원이다. 정원 곳곳마다 이름을 숨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선비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무기연당의 중심 건물은 하환정(何換亭)이다. ‘어찌 바꾸리오.’라는 뜻의 건물이다. 주재성의 학식이 높아 조정에서 세 번이나 관직을 권했지만 그는 매번 “자연과 벗 삼은 삶을 어찌 노예 같은 벼슬길과 바꾸리오.”라며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환정 앞에는 사각형의 연못이 조성돼 있다. 물 가운데엔 원형의 석가산(石假山)도 세웠다. 땅은 네모요, 하늘은 둥글다는 우주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표현한 것이다. 함안 선비 특유의 날 선 기개와 마주하려면 군북면 조려의 생가 일대와 산인면의 고려동(高麗洞) 유적지를 찾아야 한다. 군북면 원북리 일대의 채미정과 고바위 등에서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귀와 자주 만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면 백세란 말 그대로 100세대, 즉 3000년을 뜻한다. 이는 곧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푸른 바람처럼 허허롭게, 또 절개를 지키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터다. 고려동은 고려 말 성균관 진사였던 이오가 칩거했던 집이다. 전정렬 문화관광해설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충절을 지키려는 이오가 산인면에 내려와 담을 높이 치고 평생을 담 안에서 살았다.”며 “후손들 또한 19대 600년 가까이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라면 함안박물관, 아라고분군 등도 함께 둘러보는 게 좋겠다. 함안은 아라가야의 수도였다. 559년께 신라에 복속되기 전까지 500년 넘게 지속됐던 국가다. 아라가야의 후예라는 자존심은 지금도 함안 곳곳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대전통영 고속도로 진주분기점에서 부산 방향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함안나들목으로 나간다. 고려동유적지, 무기연당, 악양루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동선을 잘 짜야 한다. 잘 곳 읍내 장미모텔(585-8823), 황실모텔(585-1515) 등이 비교적 깔끔하다. 맛집 ‘처녀뱃사공’의 조카가 운영하는 악양루가든(584-3479)은 메기매운탕을 잘한다. 산초 등이 양념처럼 들어가는데 원치 않을 경우 미리 말해야 한다. 3대를 이어져 오는 어탕도 맛있다. 악양루 초입에 있다. 함안면 북촌리에는 한우 국밥촌이 형성돼 있다.
  • 오세훈·원희룡 영국 유학길… 與 친이계 각자도생 모드로

    오세훈·원희룡 영국 유학길… 與 친이계 각자도생 모드로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구주류인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유학길, 해외여행에 오르거나 본업으로 돌아가는 등 야인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대선을 전후해 새로운 정치적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상수 서초동에 변호사사무실 6월 초 영국으로 떠나는 원희룡(오른쪽) 의원은 11월 말까지 약 6개월간 현지에 체류할 계획이다. 최근 케임브리지대학의 아시아중동연구소와 다윈칼리지 2곳으로부터 방문연구원 승인을 받았다. 원 의원은 이곳에 적을 두면서 독일 아데나워재단, 노르웨이 노르딕아시아연구소 등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 정부·정당들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대선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당장 당 내 역할에 연연하기보다 사회 양극화, 보수의 사회적 가치 등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방문연구원 승인 소식을 올리며 “총선 불출마 후 인생 하프타임의 재충전 시간”이라고 기대감도 드러냈다. 오세훈(왼쪽) 전 서울 시장도 26일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현지에서 영국의 국제관계 등 각종 포럼에 참석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진 후 중국 유학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이후 시장직에서 물러나 외부 행보를 끊은 채 조용히 칩거해 왔다. 지난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경기 의왕·과천)에서 낙천한 안상수 전 대표는 최근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분간 본업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낙선의원들 美서부 버스투어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한 안경률·조전혁·정옥임·안형환 의원 등은 6월 초 미국 버스투어를 떠날 계획이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서부를 보름 정도 여행하며 18대 국회 임기를 정리한다는 복안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우리 스님은 과격하고 무식하게 말하지만, 정직하고 청렴하고 한 점 티끌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신실한 신도들이 느낄 상처와 절망을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명진(62) 스님은 17일 서울 한남동 남산맨션의 사무실에서 칩거하며 “승복을 입고 세상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승려 도박 동영상’ 사건과 연계돼 명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승려 4명의 2001년 룸살롱 출입 사건이 재차 주목 받게 되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명진 스님. 당시 사건으로 종회 부의장을 사퇴했고, 법회나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히고 반성했지만, 그를 따르는 신도 중 30~40%는 이번에 사건을 알게 돼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페이스북의 19살 친구가 스님을 존경했는데, 기대가 무너졌다고 써놓은 글을 보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린 것은 죄”라고 했다. 승려 도박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과 ‘한편’이라는 시각에 대해 “일면식이 없다.”면서 “성호 스님이 지난 3월 룸살롱 문제와 관련해 참회록을 보내와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스님들의 도박·음주·성매매와 같은 파계에 대해 명진 스님은 “일부 스님들의 문제일 뿐”이라면서도 “한국 불교가 선종으로 가면서 일반적으로 계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화되면서 스님들도 자본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 시대의 계율에 따르면 음악을 들어서도 안 되고, 여자와 단독으로 만나서도 안 되고, 돈을 수중에 지녀서도 안 된다고 했다. 9세기경 중국 화엄종의 청량 국사가 계율을 지키려고 늙은 어머니가 찾아와도 병풍을 치고 만난 사례를 들었다. 이런 형식적 계율의 엄수는 당대에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풍토를 개선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은 “다만, 복잡해진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계율이 필요하지 않은지 불교계가 고민할 시점에도 왔다.”고 제안했다. 자승 총무원장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양상처럼 보이는 현 사태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현재의 ‘총무원-종회 권력분립형’ 체제는 1994년 한국 불교계의 진보·개혁적 사람들이 승려대회를 통해 종헌·종법을 고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명진 스님은 “개혁에 실패하면, 내가 중노릇을 그만하겠다.”라고 선언한 뒤 밀어붙여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에 성공했다. 차기 총무원장은 명진 스님의 은사인 탄성 스님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으로 “서의현 총무원장은 사라졌지만, 계파 보스를 중심으로 한 ‘150명의 작은 서의현’들이 등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총무원장과 몇몇 비리스님을 쫓아내면 됐지만, 이제는 종무행정에 발을 딛는 스님들이 대부분 비리와 부패에 모두 엮이게 돼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 다시 종헌·종법의 개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28일 초파일을 월악산 보광사에서 쇤 뒤 문경 봉암사에서 하안거를 하며 잘난 척하고 깝죽대고 오만했던 나를 다스리겠다.”면서 “이제 MB 정권 바꾸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고, 변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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