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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카치·레닌의 부활

    루카치와 레닌이 돌아왔다. 루카치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교환가능한 물건처럼 다뤄버린다는 ‘물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문화비판에 초석을 놓았던 인물이고 레닌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실험했던 사람이다.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금 이들 얘기를 꺼냈다가는 “쯔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둘을 불러낸 사람은, 뜻밖에 3세대 비판이론가 악셀 호네트와 라캉주의자 슬라보예 지젝처럼 주목받는 대가들이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이라는 책을 통해 상품교환관계 분석에 머물렀던 물화 개념을, 사회관계에까지 확대시켰다. 그런데 ‘물화-인정이론적 탐구’(나남 펴냄)에서 호네트는 ‘자본주의 사회=물화’라는 공식을 “대단하지만 성급했다.”고 평가한다. 소련 혁명의 성공에 도취돼 정밀하지 못하게 접근했다는 것. 그래서 호네트는 지나친 좌경화만 털어낸다면 여전히 루카치의 ‘물화’ 개념은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진단하는 데 쓸 만하다고 주장한다. 불과 100여쪽이 채 못되는 짧은 본문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밀한 논증으로 가득 차 있다. 정점은 자기물화 개념을 다루는 5장의 분석. 스승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모델을 다분히 ‘기능적’이라 비판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혁명이 다가온다’(길 펴냄)에서 지젝이 주목하는 레닌의 면모는 ‘실천’이다. 레닌은 실패했다는 좌파에게 지젝은 도발적으로 되묻는다.“그래서? 정치적으로 항상 옳기만 한,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너희들은 이제까지 도대체 뭘 했는데?”라고. 포스트식민주의이론, 페미니즘, 환경운동 등 급진적 대안들은 “여가시간에 혁명하는 급진적 멋쟁이”라 조롱받는다. 지젝은 1914년을 주목한다.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 좌파들은 반전투쟁 대신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 전쟁에 적극 협력한다.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한 좌파혁명이라는 비전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이 암흑의 시대를, 레닌은 불과 3년 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뒤집어버린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혁명을 창출해냈던 것이다. 전지구적이라 불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바람, 그 광풍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듯 악전고투하고 있는 좌파들에게 레닌의 ‘실천’은 해법일까. 앉아서 그런 고민하느니 지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라는 지젝의 호통이 들리는 듯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국언론보도 충격적으로 잘못돼 있다”

    “한국언론보도 충격적으로 잘못돼 있다”

    “그들은 선택적으로 그렇게 한다. 때때로 문맥에서 벗어나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뒷받침하는 편향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 한국정부의 관점에 대한 신뢰할 만한 표현을 얻기 위해 한국 매체를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똑같은 현상이 미국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더 많이 일어난다. 종종 뒤틀기,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선택적인 인용이 발견된다.” 여기서 ‘그들’이란 한국언론이다. 표현만 완곡하다 뿐이지 미국은 물론, 한국의 입장조차도 한국언론은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다는 낯뜨거운 비판이다. 한두 명이 이렇게 불평한 게 아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미국 정부 관료들에게 물었더니 공통적으로(consensus) 이처럼 말했다. 이어 좌절감마저 느끼고 있다는(frustrated) 미국 국방부 분석가의 증언도 나왔다.“한국측 소스는 미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흥미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미국정부의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미국정부의 입장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잘못 표현해서인지, 한국이 잘못 이해해서인지는 당신 판단에 맡겨둔다. 종합하자면 모든 것들은 충격적으로 잘못돼 있다.(shockingly bad)” 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하려는지에는 관심없고 제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게 한국 언론이니, 한국 언론에서는 미국측 입장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만 유심히 보라는 통렬한 비판이다. 이런 증언들은 크리스토퍼 넬슨 ‘넬슨 페이퍼’ 편집인이 ‘미국 정책입안가와 평론가는 한국 관련 뉴스를 어떻게 얻는가?’라는 주제를 발표하기 위해 한국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미국 관료 등을 인터뷰한 결과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주최로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간 언론정보교류 시스템의 현황과 개선 방향’ 국제심포지엄에서 공개됐다. 이번 심포지엄은 북핵위기·북한위폐문제, 전시작전통제권 등 한·미간은 물론 동북아 전체에 파급력을 가진 강력한 이슈들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 양국 언론이 이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정연구 한림대 교수는 한·미가 서로를 보도하는 행태가 ‘악순환’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보수적인 신문을 택해 뉴스의 흐름을 따라잡는다. 그런데 한국 신문은 취재원이 다양하지 못하고, 정부나 기관·단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미국이 별도 취재를 한다 해도 영어를 잘하는 지식인처럼 엘리트층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의 정보통제 아래서 생산된 미국 주류언론의 기사만을 중심으로, 그것도 자신의 구미에 맞는 내용만 증폭한다. 이러면 미국 내 이라크 반전 세력이나 한국내 FTA반대 세력들에 대한 보도는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정 교수는 그래서 “상생의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두 얼굴을 가진 국가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을 연구해온 스티븐 코스텔로 PGI회장은 이와 관련, 지금 동북아정세와 관련돼 나름의 분석을 제시했다. 스티븐 회장은 한국정부가 명확한 우선순위에 기초한 실용적인 대북·대미 관계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미간 마찰은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정책을 별안간 역전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외정책을 평가할 때는 “커다란 성공보다는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이 한국정부를 비판할 때 기준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 암시하는 대목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복지와 경제,상생할 수 있다/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복지개입을 통한 사회통합 노력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복지국가로부터 제공되는 각종의 복지혜택은 소외계층의 생존능력을 증진시키고, 상대적 박탈감을 약화시켜 국민의 생활만족도 향상에 기여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투자 비율 확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의 복지적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왔다. 공공의 복지 투자보다는 민간의 자발적 자선에 의존한 복지제도는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게 낮은 사회복지 제도화를 이루어 왔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 놓은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자조 섞인 소리가 많다. 국민의 일부는 높은 삶의 질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일부 소외계층은 극도의 박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소외계층이 많은 사회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핵가족화와 가족해체의 증가로 소외된 아동이나 노인, 여성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산업재해와 교통사고의 다발, 공해로 인한 장애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인구적인 측면에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극도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성장의 잠재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전체의 근본적인 복지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내년 복지예산에 올해(56조원)보다 10% 정도 늘어난 61조∼62조원을 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책 본격 추진 등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복지예산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복지예산이 너무 확대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수준에 비해 국가의 복지투자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한 사회의 복지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은 국가에 의한 복지비 지출 비율인데, 우리나라는 선진 복지국가의 3분의1 수준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대비 사회보장비 지출비율(8%)은 공공부문 복지를 최소화하는 미국(15%)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선진국일수록 보건과 복지 분야에 돈을 많이 쓴다. 사회복지체계가 허술해서는 경제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방치할 경우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경제난과 함께 지금과 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지속될 경우 소외계층의 인간존엄성 훼손과 함께 사회적 분노가 고조되어 노사간 신뢰의 파괴, 계층간의 갈등 고조 등 경제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수 있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자포자기형의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경제 성장만을 강조하던 과거 행태에서 벗어나 분배와 소외계층의 복지를 고려하는 정책 대안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면, 복지는 국민 전체가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복지와 경제성장의 목적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때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우선순위를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복지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의 재원만으로는 사회복지에 필요한 자원이 충분하게 조성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활력적 참여도 유도하여야 한다.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그동안 누적된 국민적 갈등과 대립의 모순을 극복하고, 갈등구조를 타파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함께 더불어 잘사는 복지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 9·11테러 5주년 세계질서의 변화 미국 ‘퓨포럼’ 두 석학 인터뷰

    9·11테러 5주년 세계질서의 변화 미국 ‘퓨포럼’ 두 석학 인터뷰

    2001년 9월11일 뉴욕 테러가 발생한 이후 5년 동안 국제사회는 근본적인 질서의 변화를 목격해왔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 중동의 이슬람 문화의 충돌 양상이 더욱 뚜렷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종교와 공공사회의 문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퓨포럼은 9·11 5주년을 맞아 ‘문명 충돌’(1996년)의 저자인 사무엘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와 헌팅턴 교수의 이론에 비판적인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발표했다. ■ 사무엘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 헌팅턴 교수는 “아직까지 문명의 충돌이 절정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진단하면서도 “머지않은 장래에 그같은 시점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종교와 문화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종교란 사람의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언어가 문화의 핵심적 요소일 수 있겠지만 종교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교는 바깥 세상을 보는 시각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외부와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역시 소통의 틀을 종교가 제공하는 셈이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문명충돌 이론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면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책을 처음 출간했을 당시에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영향력을 갖는 이론들은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가 명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실질적이다. 그러나 또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같은 이론이 나오는 타이밍이다. 내 책이 5년 전이나 5년 후에 발간됐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보다 종교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것인가. -나는 당시 사고의 조류 속에 서있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전제를 깔고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9·11을 예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9·11이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예견했던 것 아닌가. -그점에 대해서는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 ▶9·11은 미국과 서구를 이슬람과 충돌시키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시도였다고 말했다.5년이 지난 지금 빈 라덴의 시도는 성공했다고 보는가. -지난 몇 년간 이슬람과 서방의 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이슬람 국가들이 서방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사실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물러나는 외부세력과 떠오르는 국내 세력간의 긴장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본격적인 문명충돌이라고 볼 수 있나. -단순하게 하나의 충돌이라고 하기보다는 문명간의 충돌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충돌의 양상을 잘 보면 문명간의 충돌보다는 문명내의 충돌이 많은 상황이다. 유럽의 역사를 보라. 유럽의 국가들도 늘 싸워왔다. 현재의 세계는 많은 수의 주요 문명들이 존재하는 다극화된 사회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위계적인 질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이슬람 세계와의 갈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좀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슬람 내에서도 종파와 국가간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 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이슬람 국가들이 연합해서 과거에 통치했던 서방 지역들을 되찾아가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들은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까지 통치했던 역사가 있다. ▶미국의 핵심은 앵글로-프로테스탄트(앵글로색슨 인종에 개신교도)라고 말한 바 있다. 개신교도의 선교 정신이 문명충돌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개신교도 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선교 국가는 아니다. 물론 미국은 종교적인 그룹들에 의해 건립됐다. 따라서 근원적으로는 종교적인 국가다. ▶이라크 전에 대해 비판적인가. -그렇다. 이라크에 갈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페르시아 만의 안정이 필요했고 급진적인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란을 침공할 이유는 없었다. ▶이라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제는 어떻게 이라크를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뜨리지 않고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시간표를 정해서 이라크 안정의 책임을 걸프만 지역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에 조금씩 넘겨가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이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미국은 다원적이고 다양한 그룹으로 이뤄진 국가이다. 민족,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이 다 다르다. 미국은 그러나 남북전쟁이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화합을 이루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강대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해낸 것이다. 미국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가진 민주적인 사회이다. ■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대 교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간의 대화가 세계 질서의 주된 흐름이 돼야 한다.”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 대학 국제학과 교수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충돌론에 반대해 지난해 3월 ‘테러 이후:문명간의 대화 촉진’이라는 저서를 발간한 인물이다. 파키스탄 출신인 아흐메드 교수는 드물게 이슬람과 서구 문명을 모두 연구한 학자이다. 최근에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국제화시대의 이슬람’ 연구 프로젝트의 대표 연구자를 맡기도 했다. ▶9·11이 발생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그 당시 아메리칸 대학의 강의실에 있었다. 막 강의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뉴스를 처음 듣게 된 순간 앞으로 나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직감했다. 무슬림으로서, 그리고 이슬람을 가르치는 학자로서. ▶학자로서 무엇이 힘들다고 본 것인가. -지난 10년간 영국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상호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을 모색해왔다.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식민지로 삼는 등 이슬람 세계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류를 해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 오랜 기간 교류해온 경험이 없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도 어려운 것이다. ▶문명충돌이라는 패러다임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나. -나는 학자다. 따라서 문명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충돌은 지난 1000년간 존재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1000년간 십자군의 전쟁이 있었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가 있었다. 그것이 이슬람과 서구의 관계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와 이슬람은 또한 화합과 문화적 교류 및 융합의 시대도 경험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무슬림들이 기록을 남겼다가 유럽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지금도 수백만명의 무슬림들이 유럽과 미국의 시민으로서 살고 있지 않는가. 미국을 처음으로 국가로 인정해준 나라도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였다. 문명의 충돌뿐만 아니라 화합도 분명히 역사의 일부였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의 우파 정부와 언론은 헌팅턴의 이론을 부각시켰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이슬람 9개국을 방문했다. 현지에서 느낀 반미 감정은 어땠나. -반미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강렬했다. 방문국에서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교수와 학생을 모두 만났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서방의 미디어가 이슬람교를 비난하고 예언자 마호메트를 조롱하는 것을 보며 무슬림들은 이슬람 세계가 서방사회의 총체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어떤 리더십이 떠오르는가. -세 가지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첫번째는 현재의 상황을 인내하자는 것. 두번째는 이슬람과 서구의 문화를 융합하자는 것. 세번째는 이슬람만의 철옹성을 쌓자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스가 대표적인 세번째 모델이며 문명충돌의 사례이다. 그러나 반미감정 때문에 세번째 모델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첫번째와 두번째 모델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부유하고 교육도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구사회는 아직도 폭력을 빈곤의 산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시각으로만 세계를 본다. 특정 인종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크다고 규정해버리는 식이다. 이를 이슬람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부족들은 복수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다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무슬림 젊은이들을 행동으로 모는 것이다. 지금 무슬림들은 명예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들도 9·11 이후 마찬가지의 위협을 느끼며,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위협을 느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문화가 다양한 대도시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무슬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할까. -나의 주장은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예배당을 방문해보고 축제를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아브라함을 기리는 축제가 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공통의 끈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삼성전자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

    삼성전자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

    낸드플래시 메모리 하나만으로도 2시간짜리 고화질 영화 2편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 낸드플래시 16개를 붙여 64GB(기가바이트) 메모리카드로 제작하면 MP3파일 기준 1만 6000곡(1340시간), 영화 40편(64시간), 일간지 400년치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야말로 ‘손 안의 영화관, 도서관’을 갖게 되는 셈이다. 또 이 메모리를 뒷받침하는 기술은 35년간 플래시메모리를 지탱해온 미국과 일본의 원천기술이 아니라 순수 우리 힘으로 개발됐다.‘테라(기가의 1000배) 시대’를 열 수 있는 이 기술로 앞으로 세계 반도체의 역사와 기술은 한국이 확실한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11일 신개념의 ‘CTF(Charge Trap Flash)’ 낸드플래시 기술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CTF 기술을 통해 ▲반도체 공정수 20% 이상 축소를 통한 제조원가의 획기적 절감 ▲20나노 256기가 확대 적용 가능 ▲반도체 산업을 현재의 ‘기가 시대’를 넘어 2010년 이후 ‘테라 시대’ 진입의 토대 마련 ▲낸드플래시 시장 앞으로 10년간 250조원 창출 효과 등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50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에 이어 올해 CTF 기술로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함으로써 “1.5년 만에 용량(집적도)이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깨고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이 발표한 ‘메모리 신성장론(황의 법칙)’을 7년 연속 입증했다. 40나노 반도체 기술은 머리카락 두께 3000분의 1의 초미세 기술이다. 32기가 메모리 용량은 세계 인구 65억명의 5배나 되는 328억개의 메모리 기본 소자가 한 개의 오작동없이 엄지 손톱만한 크기에 집적된 것이다. 황창규 사장은 “지난해가 ‘플래시 러시(Flash Rush)’의 해였다면 올해는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여는 ‘플래시토피아(Flashtopia)’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첫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건호의 뷰티풀 샷] 회화적인 사진 찍기

    [이건호의 뷰티풀 샷] 회화적인 사진 찍기

    옆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중세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답’이다. 올 초에 ‘fashion+art’란 테마로 작업한 사진이다. 따라서 화보의 전체적인 테마를 잘 살릴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사진이어야 했다. 그래서 스태프와 회의 끝에 결정한 주제는 ‘회화적인’ 느낌이 나는 사진. 즉 모딜리아니 ‘여인의 초상’이란 작품에서 풍기는 그런 분위기를 갖는 사진을 만들고자 했다. 몽환적인 표정 연기를 위해 선택한 모델은 ‘김다울’. 미묘한 표정 연기가 관건이었기 때문에 몸매보다는 감성이 아주 풍부한 모델을 선정했고 단순하고 짙은 색상의 의상에 대비되도록 하얀 메이크업과 커다란 머리 장식으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포즈는 될 수 있는 한 절제하고, 표정에서 풍부한 감정연출을 요구했다. 라이팅도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고자 부분적이면서도 확산이 되지 않으며 적당히 부드러운 콘트라스트를 유지시켰다. 렌즈의 무브먼트를 이용, 라이팅과 더불어 사진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좀더 회화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배가하기 위하여 파스텔 느낌의 확산필터를 사용했다. 촬영은 만족스럽게 진행되었고 후반작업에서 사진의 질감을 넣어 주기 위해서 검은 망사를 합성해 넣고, 사진의 어두운 주변부를 더욱 어둡게 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필자(39)는 주로 패션 화보와 카탈로그, 영화 포스터 분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김정일 특별열차’ 신의주서 3~4일째 정차 왜?

    방중설이 나도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별 열차가 중국과 접경지역인 신의주역에 3∼4일째 멈춰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5일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3∼4일 전부터 신의주역에 머물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관의 분석은 김 위원장이 신의주에서 현지 지도 중이거나, 조만간 열차가 중국으로 출발하는 두갈래다. 어느 쪽이든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중국을 방문한다면 왜 신의주역에서 3∼4일씩이나 열차를 세워 두고 있느냐는 점에 궁금증이 모아진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뭔가 중국 측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관측을 제시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날부터 베이징을 방문했기 때문에 미·중의 협의를 지켜본 뒤 열차를 베이징으로 움직이리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방중 일정이 외교채널간에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리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김 위원장의 방북설을 단호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친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방북설에 대해 “현재 그 방면의 예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현지지도와 중국 방문이란 두가지 일정이 복합돼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제특구로 지정하려는 신의주 현지를 살펴본 뒤, 중국으로 출발하는 게 당초 계획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방송이 지난 3일 김 위원장이 시찰했다고 보도한 구성 공작기계공장과 구성 닭공장이 바로 신의주 부근에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1월에도 중국 방문에 앞서 신의주의 한 유치원을 방문한 전례도 있다.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와 중국 방문의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지만, 중국 방문을 뒷받침하는 조짐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첫째는 호위총국 경호팀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로 북한 당국이 중국 단둥시를 마주보고 신의주로 연결되는 모든 도로를 봉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할 경우 나타났던 인원과 물자통행 통제와 단둥해관(세관)과 단둥역, 압록강철교 부근 등의 경비강화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신의주에는 특별열차만 남아 있고,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되돌아 갔으리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수도권 대기정책 정밀감사

    자동차의 미세먼지 오염 기여율이 실제론 정부발표보다 턱없이 낮다는 학계 연구보고서가 잇따라 공개(서울신문 9월4일,5일자 1면 참조)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정부 대기정책의 타당성 검증작업에 들어가는가 하면, 감사원도 대기정책의 수립과정과 예산책정 문제 등에 대한 감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 환노위 보좌관·전문위원들은 서울신문 보도와 관련해 지난 4일 긴급 좌담회를 갖고 경위 파악에 나섰다. 서울대 연구팀의 용역결과 보고서 등 관련 자료제출을 환경부에 요구하는 한편 환경부 대기정책 담당 관계자들을 불러 연구결과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우원식 의원실 곽현 비서관은 5일 “현재의 대기정책 방향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여당 소속 보좌관들이 긴급 모임을 가졌다.”면서 “연구보고서 내용과 분석기법 등을 정밀검토해 사실로 확인되면 (경유차 대책에 치중하고 있는)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발표를 토대로 경유차 개선사업을 적극 펼쳐온 환경단체 역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같은 주문을 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 안준관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은 “서울대팀과 대기환경학회의 연구결과가 너무 뜻밖이어서 깜짝 놀랐다. 국회와 정부, 시민단체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시급한 재검증 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팀장은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미세먼지 오염주범은 자동차’라는 환경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은 잘못도 있다.”고도 했다. 감사원도 환경부에 대한 정책감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경유차 개선대책으로 책정된 예산규모(4조원)가 워낙 큰 데다, 서울대팀과 대기환경학회의 연구용역 결과가 현재의 대기정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 등 파장을 감안해 (감사원이)곧 감사에 착수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면 감사원은 “현재로선 계획이 잡혀있지 않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는 자체 발주한 두 가지 연구용역의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해명자료를 잇따라 배포하는 등 불끄기에 나섰다. 이날 ‘경유차가 66%를 배출한다.’는 기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국의 경우도 자동차의 미세먼지 오염기여율이 52∼70%를 나타내고 있다.”는 자료를 냈다. 그러나 경희대 김동술 교수는 “전 세계 대도시들은 거의 모두 자동차의 기여율이 1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워싱턴과 산타마리아,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시는 9% 정도라는 사실을 (환경부 공무원들에게)알려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사설] 나열식에 그친 세제개편안

    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세제개편안은 저출산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독신이나 맞벌이 가구의 세부담을 높이는 대신 다자녀 가구의 세부담을 줄였다. 또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장치를 강화하고 목적을 달성했거나 타당성이 미흡한 비과세, 감면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했다. 이밖에 저소득 근로자에게 정부가 일정액의 현금을 보전해주는 근로장려세제(EITC)의 도입을 위한 토대도 마련했다. 정부는 재정여건이 허용하는 한 기업과 중산·서민층의 세부담을 줄여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데 역점을 뒀다지만 방향성이 없는 나열식에 그쳤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정부는 연구개발 설비 투자금액 세액공제 일몰 연장, 기초원자재 기본관세율 인하 등을 대표적인 성장잠재력 확충 조치로 열거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세제 혜택이 경기 하강 속도를 제어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보는 시각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도리어 조세 중립적이라는 정부의 평가와는 달리 근로세를 내는 납세자의 세 부담 증가를 예고하는 전주곡이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복지에 소요되는 재정부담을 감안해 세수 감소가 큰 세제 개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과 맥을 같이한다. 세제가 금리나 재정처럼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지 모르나 경제주체에게는 훨씬 더 민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세제개편에서 시장과 경제주체에게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 의지를 보다 극명하게 천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앞으로 국회 심의과정에서 수정, 보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성장을 통한 분배정의 실현이라는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주기 바란다.
  • ‘미국행 항공테러 음모’ 조작의혹

    세계를 경악케 한 여객기 동시테러 미수사건과 관련, 실체가 조작되거나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상 최악의 항공테러 음모라는 당국 발표에 걸맞지 않게 드러난 증거가 빈약한 데다 단서를 제공한 파키스탄 당국의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제3세계 전문 통신인 IPS는 용의자들이 체포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경찰 발표를 뒷받침하는 물적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영국 무슬림들을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18일 전했다.●의혹1. 폭탄 증거물 정말 있나 우선 제기되는 의혹은 ‘액체폭탄’의 실체다. 전날 경찰이 런던 북부 하이와이콤브의 숲에서 폭탄 부품가방을 발견했다는 BBC 보도가 있었지만 경찰은 자세한 내용을 함구하고 있어 궁금증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용의자들에 대한 정보는 경찰이 흘리거나 제3자를 통해 나온 간접 진술뿐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용의자들의 집과 직장, 심지어 집 근처 인터넷 카페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결정적 물증을 찾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의혹2. 항공권도 없이 공중테러? 검거된 24명의 용의자 가운데 항공권을 구매한 사람이 없다는 점도 의문이다.체포된 시점에서 며칠 안에 테러를 감행하려 했다는 경찰 발표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용의자 한명은 이미 풀려났다.존 프리스콧 부총리가 16일 한 무슬림 단체와 면담에서 “모든 용의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도 경찰 수사에 무리한 대목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의혹3. 사상 최악 테러에 블레어는 휴가? 토니 블레어 총리의 행적도 논란이다.현지 언론은 블레어 총리가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즐기다 존 리드 내무장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가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즐기던 더글러스 알렉산더 교통부 장관이 호출을 받고 급히 업무에 복귀했다는 점이다. 공항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돌아왔다는 해명이었는데, 주무장관이 급히 돌아온 마당에 총리는 다음날 유유히 휴가를 떠난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의혹4. 파키스탄 정보는 믿을 만한가 음모를 적발한 결정적 단서가 파키스탄에서 나온 점도 무슬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다. 기야수딘 시디키 영국 무슬림협회 사무총장은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국내 입지가 몹시 불안하다.”며 “미국과 영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슨 일이든 벌일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2003년 이라크 침공 직전 영국 정보부가 공개한 이라크내 대량살상무기 정보가 조작으로 판명난 점, 지난해 7·7 런던 테러 직후 영국 경찰이 브라질인 메네제스를 테러범으로 오인, 살해한 사건도 이번 발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책꽂이]

    ●람세스 최후의 비밀(브래드 기글리 지음, 마리오 옮김, 따뜻한 손 펴냄) 고대 이집트 제20왕조 두 번째 왕으로 신왕국 최후의 위대한 군주로 불린 람세스 2세. 그의 주위에 모반의 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 기운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달 없는 밤에 그림자만 떠돌아 다닐 뿐. 마침내 혼돈의 신 섹트의 추종자는 진실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난다.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탕아와 요부, 왕과 신하, 신기루 같은 주술적 인물들이 미로 속에서 춤을 추는 역사추리소설. 메디네트 하부를 ‘자메트 신전’으로, 데이르 엘 메디나를 ‘진실한 마을’로 바꾸는 등 현대독자들을 위해 지명과 인명을 평이하게 바꿨다.9800원. ●사자의 꿀(데이비드 그로스먼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삼손은 새뮤얼 이전 시대의 마지막 판관인 마노아의 아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노아의 아내 앞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곧 있을 임신 사실을 알린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삼손은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한다. 하지만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나실 사람의 수칙을 어기고 시체에 접근하고, 포도주를 마시는가 하면 창녀와 동침하기도 한다. 그러다 블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은 힘을 잃고 두 눈마저 뽑히지만 하느님에게 최후의 기도를 올려 힘을 회복, 이교도 신전을 무너뜨리고 블레셋인 3000명을 죽인다. 성경의 행간을 읽어가며 새롭게 써내려간 삼손 이야기. 저자는 이스라엘 현대문학의 거장.8800원. ●호란하 이야기(샤오홍 지음, 원종례 옮김, 글누림 펴냄) 호란하(呼蘭河)는 중국 헤이룽장성 중부를 흐르는 강. 하얼빈 근교에 위치한 호란하현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저자는 이 동화 같는 소설을 통해 호란하 사람들의 인습적 사고을 비판한다. 저자 샤오홍(蕭紅)은 중국에서 정령(丁玲) 이후 가장 뛰어난 여류작가로 꼽히는 인물.1만 3000원. ●샤르 허브의 아지랑이(더르즈접드 엥흐벌드 등 지음, 정용환 등 옮김, 모시는사람들 펴냄) 몽골 현대 단편소설 16편을 엮었다. 몽골의 전통 주거지인 ‘게르’에서의 삶을 그린 소설에서 전형적인 도시형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몽골인들에게 그리움은 여름날 소낙비 끝에 초원을 긋는 무지개만큼이나 아름답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들리고 사막의 모래먼지 피어오르는 몽골 소설에는 그런 그리움이 서려 있다. 표제작은 낙타와 더불어 살아가는 고독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너무나 귀하기에 낯선 이에게라도 일순간에 전심전력하게 되는 몽골 여인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그렸다.1만원.
  • 고이즈미는 버린 카드 아베 겨냥 계산된 침묵?

    고이즈미는 버린 카드 아베 겨냥 계산된 침묵?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및 한·일관계 등 외교·안보 문제를 비롯, 최대 현안인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미 예고됐기에 노 대통령의 대응 수위에 한껏 관심이 쏠려 왔던 터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 및 질서론’과 연계,‘대일 원칙론’을 밝혔을 뿐이다. 내용도 지난 3·1절 기념사와 같이 일본에 “진실으로 반성하고 사과를 뒷받침하는 실천”, 즉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정도였다. 물론 독도·역사교과서·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을 해결토록 압박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에 강경 태도를 견지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의 EEZ 배타적 경제수역 수로탐사 움직임 때에는 ‘조용한 외교’라는 일본과의 외교 기조까지 바꿨다.“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다(2005년 3월23일 일본의 다케시마 날 선포와 관련)”,“독도 문제를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뤄 나가겠다.(2006년 4월25일 한·일관계 특별담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행위를 경축사에 끼워넣는 일은 경축사의 격에 맞지 않다.”면서 “큰 틀에서 일본에 대해 할 말을 다 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국가 도약을 위한 미래 지향적 과제를 제시했다. 전시 작통권 환수의 정당성과 한·미 FTA의 필요성을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 질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우경화와 팽창주의에 대한 강한 경고도 당연히 포함했다.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를 적시했을 경우, 노 대통령의 메시지 초점이 흐트러진다는 점이 십분 고려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다음달 퇴임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아예 무시하는 쪽의 ‘계산된 전략’을 구사했을 법하다. 실제 고이즈미 총리 후임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겨냥, 새로운 외교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복선’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직접 나서지 않은 대신 외교통상부에서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신사참배에 대해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공공도서관 짓기 아지매들 뭉쳤다

    “30만 인구 밀집지역에 공공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억세게 노력할 겁니다.” 도서관 불모지인 대구 달서구 성서지역에 초·중등생 자녀를 둔 아줌마들이 지역 도서관 건립을 위해 힘을 뭉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발족한 ‘좋은 도서관 만들기 성서지역 엄마모임(대표 신수진·37)’ 회원 30여명은 30만 인구가 사는 성서지역에 공공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도서관 건립을 위해 직접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가벼운 문제의식 제기에서 비롯됐다. 평소 친분이 있는 엄마들끼리 학교 앞 PC방 등 유해환경에 대해 걱정을 하다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데는 부모들 책임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부터였다. 지난 5월엔 도서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2차례 실시, 주민 1000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이와 함께 지역 내 소규모 도서실을 일일이 탐방, 도서별 보유 현황 등 실태조사를 벌여 공공도서관 건립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구축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취임한 곽대훈 신임 달서구청장이 임기 내 도서관 건립을 약속하자 조기 착공을 위해 지난달 초 2차 서명운동을 벌인 데 이어 오는 29일엔 도서관 설립을 위한 주민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공공도서관 짓기 아지매들 뭉쳤다

    “30만 인구 밀집지역에 공공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억세게 노력할 겁니다.” 도서관 불모지인 대구 달서구 성서지역에 초·중등생 자녀를 둔 아줌마들이 지역 도서관 건립을 위해 힘을 뭉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발족한 ‘좋은 도서관 만들기 성서지역 엄마모임(대표 신수진·37)’ 회원 30여명은 30만 인구가 사는 성서지역에 공공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도서관 건립을 위해 직접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가벼운 문제의식 제기에서 비롯됐다. 평소 친분이 있는 엄마들끼리 학교 앞 PC방 등 유해환경에 대해 걱정을 하다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데는 부모들 책임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부터였다. 지난 5월엔 도서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2차례 실시, 주민 1000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이와 함께 지역 내 소규모 도서실을 일일이 탐방, 도서별 보유 현황 등 실태조사를 벌여 공공도서관 건립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구축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취임한 곽대훈 신임 달서구청장이 임기 내 도서관 건립을 약속하자 조기 착공을 위해 지난달 초 2차 서명운동을 벌인 데 이어 오는 29일엔 도서관 설립을 위한 주민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대북 수해지원 경색국면 푸는 전기 되길

    북한 수해 지원이 민간과 대한적십자사, 정부 등 3자합동으로 이뤄지게 됐다. 정부는 어제 대북 민간지원단체의 모금 규모에 맞춰 남북협력기금으로 100억원 가량을 지원한다고 공식발표했다. 한적의 지원 규모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대규모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쌀 지원규모는 최대 10만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5개 정당은 그제 원내대표회담을 열어 정부의 대북 수해 지원을 뒷받침하기로 모처럼 합의를 이끌어냈다. 국민적 컨센서스가 모아진 가운데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천리길도 첫걸음부터다. 북한에 대한 범국민적 지원이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북한 수해 규모는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국가적 행사인 8·15 평양통일대축전과 외화 획득에 도움이 되어온 아리랑 공연을 잇따라 취소하였다. 엄청난 수해 때문이다. 인명 피해를 제외하고도 수만㏊의 농경지가 침수,5만t을 웃도는 식량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뜩이나 심각한 식량난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도로와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의 피해도 막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대북 지원을 신속하게 결정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 지원은 북한 동포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 데만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북 주민의 마음을 이어주고, 긴장을 완화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촉매로서의 기능도 중요하다. 수해 지원으로 민간차원의 대화뿐 아니라 적십자사 대화 채널도 이어져 나가게 됐다. 미사일 발사로 인해 식량과 비료의 대북 지원이 무산됐지만, 수해 지원을 전기로 하여 북한 주민의 배고픔과 아픔을 덜어줄 적극적 지원 방안이 차례차례 실천에 옮겨지고 남북대화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 한나라 호남행 ‘가속페달’

    한나라당이 ‘호남행 열차’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강재섭 대표에 이어 김형오 원내대표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당 지도부는 말보다는 실천으로 ‘호남 민심’을 돌려놓겠다는 의지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11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전날 강재섭 대표의 공식 사과에 큰 의미를 부여한 뒤 ‘호남 다가서기’의 3대 기본자세로 ▲진정성 ▲현장성▲일관성 등을 꼽았다. 이는 당내 2인자로서 강 대표의 ‘호남 다가서기’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원내대표는 우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얄팍한 접근이 아니라 호남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세로 다가서는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을 의식한 정치공학적 접근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호남 지역의 주요 현안사업에 대한 당 차원의 지원과 함께 호남지역의 인재 발굴 및 비례대표 30% 배정 등 실질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현장성’을 제시했다. 호남 지역의 여론을 수렴해 당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는 호남지역의 광역자치단체장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장들과도 정책협의를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와 함께 ‘일관성’을 강조했다. 지도부뿐 아니라 당원 모두가 일회성 보여주기가 아닌, 지속적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1인이 호남지역 지역구 1곳을 맡아 지역 현안과 예산 확보에 앞장서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대담 “나쁜 관행 바로잡기 사회공동체의 용기 필요”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대담 “나쁜 관행 바로잡기 사회공동체의 용기 필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논문 파문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그릇된 관행에 대해 짚어보는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기획시리즈가 지난 1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서울신문은 서울대 박효종(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아주대 강명구(행정학) 교수와 함께 우리 사회의 관행들을 종합적으로 짚어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 3일 서울신문 사회부 박현갑 차장의 사회로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 관행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인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좋지 않은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강명구 교수 관행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전부터 하던 습관을 따라하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풍습, 규범, 전통, 상식, 묵인, 자율 등이 있지요. 반면 웹스터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흔히 하던 대로 행동하는 것’‘오랫동안 행해져서 거의 법률화된 것’이라고 뜻풀이가 돼 있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전관예우, 기부, 자원봉사, 급행료, 촌지·떡값, 성 상납, 낙하산 인사 등 법률보다 관행이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관행이라고 하면 ‘불법은 아니지만 용인되는 것’‘통용되는 행위이지만 외부에 알려지면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등 우선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효종 교수 관행은 영어로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합니다. 라틴어가 어원인데 ‘함께 온다.’, 즉 협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관행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관행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많습니다. 좋은 관행과 좋지 않은 관행을 나누는 기준은 효율성과 정의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풍습 속에서도 씨받이는 정의성에서 인정받을 수 없고, 조상을 모시는 일도 호화분묘를 만들면 효율성에서 지탄을 받게 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관행이 문제되는 이유는 행위자 본인이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효율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관행에 대해서는 문제 삼아야 합니다. 관행은 의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법으로도 규제하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음력설을 쇠지 말라고 강제적으로 조정을 시도했던 것이나 허례허식이라고 결혼식장에서 음식을 제공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법으로 규제하려고 해도 불가능했지 않습니까. 관행이 가지고 있는 힘의 논리 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나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온정주의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강 교수 온정주의 때문에 잘못된 관행이 퍼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관행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영역을 관행이 대신하는 기능, 그리고 기득권 수호의 기능입니다. 두번째 기능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자칫 부패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 측면에서 온정주의가 영향을 많이 끼치기는 하지만 온정주의가 반드시 관행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 교수 맞는 말씀입니다. 관행을 잘 표현하는 속담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인데 과연 관행이 누이와 매부 외의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일까요.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관행을 법제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연고주의는 일정한 틀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관행입니다. 모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관행은 교수나 학교에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봤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지 못하는 관행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반성과 자기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 ‘나는 관행대로 해도 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이중적인 잣대가 국민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강 교수 이중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관행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집권층에 대해서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신이 근저에 있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게 되지요. 여기에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지도층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박 교수 높은 권력이나 권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걸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데서 온 실망감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그간 지도층들이 이에 걸맞은 역할 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고위 공직자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공직자가 되면 어떤 희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명예만 앞세우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사회 우리 사회의 이른바 ‘국민정서법’이 나쁜 관행을 더 조장하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강 교수 관행은 법에 추가로 여유분을 주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보편성의 입장에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줄 수 없지만 관행적으로, 국민 심정적으로 그렇게 해왔던 것이죠. 그러나 이번 김 전 부총리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다릅니다. 논문 베끼기는 절대로 학계의 관행이 아닙니다. 김 전 부총리는 자기가 말한 관행과 학계에서 통용되는 관행간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국민정서라는 것이 일반적 국민들의 정서라기보다는 사건에 대한 단기간의 여론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얼마나 성숙된 여론으로 발전시키느냐, 또 어떻게 보편화시키느냐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겠지요. ●박 교수 여론에는 확고한 정의감과 도덕성이 담길 때도 있지만 감정이나 정서가 더 강하게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여론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다가 자기와 맞지 않으면 매를 들이대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원주의 사회에서 형성되는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존 방식입니다. 여론이 늘 올바르진 않지만 최선의 판단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집권층은 일반 국민들과 의견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다만 여론을 형성하는 국민이 더 나은 판단력을 갖추고 감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문제 제기는 계속돼야 합니다. ●강 교수 여론 형성과정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학습효과가 뛰어납니다. 냄비근성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자기 정화기능이 활발해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뛰어나게 됐습니다. ●박 교수 한국사회의 여론이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좀더 정교화하고 관용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사회 좋은 관행은 이어가고, 나쁜 관행은 끊어버리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힘써야 할 부분들이 참 많을 듯한데요. ●강 교수 우선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고발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합니다.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는 ‘왕따´가 되는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두번째는 내부 민주화 문제입니다. 관행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율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부조리에 대해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자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박 교수 나쁜 관행은 악순환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뀔 때 좋은 관행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순환의 고리는 매우 단단해서 지도층이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습니다. 일반인의 노력은 큰 빛이 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흔히 하는 말로 ‘더 나은 사회(Better Life)’라는 게 있습니다. 후손들이 현재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나쁜 관행 속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우리 후손들에게는 나쁜 유산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의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특권적 관행을 고치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 왔던 게 사실 아니었습니까. ●사회 지도층의 각성을 말씀하셨지만 막상 그런 일이 내게 닥치면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강 교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가운데 “열정이 너를 사악하게 하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치된 이해관계를 어떻게 공동체 정신으로 바꾸느냐, 이걸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입니다. ●박 교수 나쁜 관행을 깨기 위해 이해관계가 바뀔 때 사회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기 동기화나 자기 이익이 반드시 연결돼야 관행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제도화에 앞서 이에 대한 가치의 공유도 교육을 통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 교수 유신시대 때 생긴 시민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이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그 정도의 판단능력은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보내보면 줄서기, 친구돕기, 길건너기 같은 걸 먼저 가르칩니다. 경쟁을 뒷받침하는 시민교육이 없으면 사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풍전등화’ 성 바실 성당

    모스크바의 상징 성 바실 대성당이 러시아 대도시를 휩쓰는 개발광풍으로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1555년 ‘폭군’ 이반 황제의 전승 기념물로 세워진 이 성당은 양파모양의 돔지붕과 오밀조밀한 첨탑 배치, 화려한 외장 등으로 4세기 넘게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잡아 왔다. 성당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내년 인근에 착공될 대규모 호텔단지. 이미 크렘린의 건축허가까지 떨어졌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붉은광장의 19세기 상가 건물을 사들인 러시아 기업연합회가 이곳에 2억 3000만파운드(약 4150억원)를 들여 ‘소더비급’ 경매하우스와 호화 객실, 초대형 지하주차장을 갖춘 5성급 호텔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2일 전했다. 문제는 성당이 자연지형이 아닌 인공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지반이 무른 데다 호텔부지와의 거리도 90m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성당 보존위원회는 공사가 강행될 경우 지하수 흐름을 바꿔 지반 침하가 불가피하고 공사장 진동으로 성당 구조물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안드레이 바탈로프 성당 보존위원장은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아닌 미래 세대의 풍요를 위해 러시아의 상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반 황제가 이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완공 직후 건축가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바실 성당은 나폴레옹 전쟁과 스탈린 치하의 종교말살 정책 아래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인디펜던트는 “희대의 권력자들도 없애지 못한 세계적 문화유산이 오일머니가 가져다준 풍요와 탐욕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실 성당은 1980년대 말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전자오락게임 ‘테트리스’의 배경화면으로 사용돼 우리에게도 친숙하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열린세상] 법을 지켜야 할 이유/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독일 유학 중에 보았던 TV방송의 ‘몰래카메라’ 얘기다. 조그마한 글씨로 당부사항을 적은 쪽지를 슈퍼마켓 출입문 한 구석에 붙여 놓고 손님들의 반응을 엿보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객 여러분께! 카트 사용 중에 충돌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에는 자동차 깜빡이를 켜는 식으로 손을 흔들어서 수신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인 백.”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필자의 예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노인들을 포함해서 손님들 거의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유심히 쪽지를 읽고, 카트를 밀고 가면서 곧이곧대로 손을 흔들어서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했다. 제작자는 대충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 가벼운 흥밋거리로 만든 것이었겠지만, 필자에게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사점이 적지 않은 화두로 남아 있다. 아마도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의 방송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성냥 한 개비를 쓸 때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담뱃불을 붙인다는 ‘절약’의 범례와 함께,‘준법!’ 하면 연상될 정도로 자주 들었던 ‘도로에 보행자가 전혀 없는 한밤중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면 철저하게 정지한다’는 얘기의 무대가 독일이었다. 실제로 5년 남짓 살면서 가끔 목격한 바, 적막한 새벽녘의 외곽도로 교차로에서도 묵묵히 신호등에 따라 준법운행을 하는 모습은 전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또 한편, 나치 체제를 뒷받침하고, 결과적으로 유대인 학살의 만행과 ‘유색인종과 성교나 유사성교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따위의 ‘총통명령’을 합법화하였던 이른바 ‘수권법’(授權法)의 현장도 대략 반세기 남짓 전의 독일땅이었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재연한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1993)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 온 다음에도 한참이나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눈물을 훔척대는 모습을 보았던 곳도 당시 독일 수도인 본이었다. 비판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정신자산에 관한 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야만과 폭력을 용인하였던 것인지, 필자 역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상념에 빠졌던 것도 기억난다. 2005년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 20.8%가 ‘손해 볼 것 같아서’,26.6%가 ‘다른 사람도 지키지 않아서’,‘기타’가 4.5%, 나머지 48.1%는 ‘귀찮아서’라고 답하였다. 최근에 적발된 목불인견의 법조비리작태들이 잘 보여주듯이, 그 이유들은 주로 법집행의 엄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법문화의 후진성, 특히 냉소적이고 무비판적인 법의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항목을 비슷하게 구성하여 설문을 반대로 바꿔서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는 이유’를 물으면 답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민주법치국가에서 기대되는 준법의 제일의 이유는 시민 개개인의 건실한 비판력과 사회의 자정력에 의해서 확인되고 담보되는 법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과 수긍이다. 말하자면 ‘따를 준’(遵)자 그대로 존경할 만한 받침, 즉 법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과 합리적인 실익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대신 의논하여 결정’하는 대의(代議)입법자에 대한 신뢰와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필수조건임은 물론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에 폐기 또는 존치된 규정들을 선별하여 정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버린 ‘신문법’도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법률이었다. 장중한 대법전 속에 ‘슈퍼마켓교통법’은 없는지, 물건 잔뜩 실은 카트 밀랴, 깜빡이 수신호 하랴,‘꼭두각시준법’에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가끔 돌아 볼 일이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 뉴토익 말하기·쓰기 이렇게

    뉴토익 말하기·쓰기 이렇게

    토익(TOEIC) 개발기관인 미국 ETS가 최근 서울에서 설명회를 열고, 올 12월 초 첫 선을 보일 말하기·쓰기 시험 유형을 공개했다. 지난 5월부터 시행되어온 뉴(New) 토익의 일환으로 국제 업무환경에서 영어 의사소통 능력 및 영문 작성 능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다. 말하기·쓰기 시험은 현실적인 영어 사용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년부터 취업 현장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ETS가 공개한 말하기·쓰기 시험의 특징과 대비 요령을 알아봤다. ETS가 공개한 예시 자료를 보면 말하기는 20분 동안 모두 11문항을, 쓰기는 60분 동안 8문항을 풀어야 한다. 문제 유형은 각 6개,3개로 초·중·고급 수준의 수험자를 골고루 평가하도록 설계됐다. ●말하기(speaking) 11개 문항 가운데 73%에 해당하는 8개 문항이 주어진 제시문을 보거나 듣고, 질문에 답하는 중급 수준 이상의 문항이다. 발음과 억양, 강세에서부터 답변에 쓴 어휘와 문법, 내용의 일관성과 완성도, 관련성 등을 종합 평가한다. ‘문장 읽기’는 50∼75개의 단어로 구성된 지문을 큰 소리로 읽는 문항이다. 원어민이나 영어에 능숙한 비원어민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사진 묘사’는 컬러 사진 한 장을 주고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는 문항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질문에 답하기’와 ‘제공된 정보를 사용하여 질문에 답하기’는 일상적인 사교나 업무 교류에 적절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문항이다. 모두 친숙한 주제에 대해 3개의 질문을 받아 2개는 짧은 사실적 답변(15초)을,1개는 긴 의견(30초)을 제시해야 한다. 차이점은 ‘질문에 답하기’가 음성으로 주제를 제시하는 전화설문 형태인 반면,‘제공된 정보를 사용하여 질문에 답하기’는 시각적인 자료를 보고 질문에 답하는 형태다.ETS측은 후자의 경우 “주로 회의나 행사 일정, 스케줄 등 업무 관련 내용이 출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문항씩 출제되는 ‘해결책 제안하기’와 ‘의견 제시하기’는 일상적인 업무 환경에서 적절하고 일관성 있게 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해결책 제안하기’는 상황이나 문제점, 질문 등을 제시하는 음성 메시지를 주고, 해결책을 메시지 형식으로 답변하는 문항이다.‘의견 제시하기’는 2개 이상의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이슈 하나를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한다. ●쓰기(writing) 쓰기 시험은 수험자의 초·중·고급별로 각 1개씩 모두 세 가지 유형으로 구성돼 있다.‘사진에 근거한 문장 만들기’는 한 장의 사진과 함께 2개의 단어 또는 어구를 주고, 주어진 단어(어구)를 이용해 한 문장을 작문하는 문항이다.8분 동안 5개의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특히 구성력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종속절이 있는 문장을 정확히 만들 수 있느냐가 포인트다. 문법과 사진과의 연관성도 평가한다. ‘e메일 답변 작성하기’는 직접적인 정보나 질문, 지시사항, 설명 등 일반적인 업무 관련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문장을 작성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문항이다.50단어 이하의 짧은 e메일과 지시문을 주고 수행과제 3개를 답변 메일 형태로 완성해야 한다. 어휘와 구성은 물론 문장의 수준과 다양성을 평가한다. ‘의견 기술하기’는 낯익은 에세이 주제 1개를 주고, 수험자의 의견과 그 의견을 지지하는 250∼300단어 길이의 답변을 작성하도록 하는 문항이다. 문법과 어휘, 구성력에 적절한 이유나 예를 사용해 의견을 뒷받침하고 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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