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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硏으로 간판 바꾸고 시민 삶에 포커스”

    “서울硏으로 간판 바꾸고 시민 삶에 포커스”

    1992년 출범해 20주년을 맞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제2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간판부터 서울연구원으로 바꾸고 독립성을 강화해 서울을 대표하는 종합연구소로 거듭난다는 꿈에 부풀었다. 창립일인 14일이면 ‘나이’에 걸맞은 새 청사진을 매듭짓게 된다. 이창현 원장은 4일 “올해 목표를 정명(正命)과 정견(正見)으로 잡아 미래를 제대로 기획하는 데 주력하겠다. 현안에 머물지 않고 길게 내다보며 서울 경쟁력과 시민 삶에 주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일하다 지난 2월 13대 원장 자리에 앉았다. →원장 취임 100일 소감은. -시정연은 서울시 출연 도시정책 종합연구소로 첫발을 뗀 뒤 시정을 뒷받침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시가 요구하는 사안을 받아 일방적으로 연구에만 매달려 지원하다 보니 자율성을 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시정연은 사람 나이로 치면 이제 성인에 올랐다. 또 무엇보다 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시를 위해서도 좋다. 박원순 시장도 그 점을 주문하고 있다. ●독립성 강화… 서울 자체에 연구 초점 →명칭을 변경하는 이유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시정’과 ‘개발’을 빼고 ‘서울연구원’으로 개칭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현재 시의회에서 검토 중이다. 이달 조례가 통과되면 7월에 정식으로 발표하려 한다. ‘시정’을 빼는 것은 서울시 정책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서울 자체에 연구 초점을 두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발’을 빼는 것은 성장뿐 아니라 성장 이후를 대비하고, 토건과 하드웨어에서 시민 삶의 질과 소프트웨어를 고민하겠다는 각오를 표현한 것이다. ●‘작은 연구 프로젝트 공모사업’ 시작 →중장기 전략을 짠다는데. -시민소통협력위원회를 신설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연구에 최대한 담으려고 애쓴다. 개방형 연구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작은 연구 서울 프로젝트 공모사업’을 시작했다. 시민이면 누구나 500만원 이내 범위에서 연구 프로젝트 공모에 응할 수 있다. 지금까지 80건 응모해 현재 20건을 선정했다. 가령 ‘문래동 창작촌에 대한 연구’, ‘도시 빈 공간 활용방안 연구’, ‘공동체 토지 신탁연구’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모아 작은 연구가 활성화되면 큰 연구도 더 윤택해질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4)송시열과 윤휴

    [선택! 역사를 갈랐다] (14)송시열과 윤휴

    1653년(효종 4년) 여름, 논산의 황산서원에서는 이 지역의 유력한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작지만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 소동이 일었다. 송시열(1607~1689)이 친구 윤선거(1610~1669)에게 윤휴(1617~1680)와 절교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비슷한 연배였던 세 사람은 젊었을 적부터 서로 교유하고 있었고, 윤선거와 윤휴는 특히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송시열의 주장은 주희와는 다르게 ‘중용’을 해석한 윤휴는 주자학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도적과 같은 존재, 곧 사문난적(斯文賊)이므로 그를 조선 사회에서 고립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의 사귐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 시기 조선 사상계의 지형이 어떠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시열, 윤선거에게 윤휴와 절교 요구 송시열이 이때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치고 배격한 것은 조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상으로서 주자학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주자학을 비판하고 그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주자학을 벗어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 송시열의 판단이었다. 이 무렵, 조선에는 윤휴의 ‘중용’ 해석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송시열이 이 사실을 알고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윤선거로 하여금 그와 절교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윤휴의 의식은 송시열과는 달랐다. 주희의 학문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굳이 그의 사유체계를 묵수(墨守·제 의견이나 생각, 또는 옛날 습관 따위를 굳게 지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주희의 경전 이해를 그대로 따르려 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중용’ ‘대학’ ‘효경’을 중시하여 자신의 시각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했다. 송시열이 특히 문제로 삼았던 책이 ‘중용’이었지만 윤휴는 이 책과 함께 다른 경전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자기 생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들 세 책에 대한 그의 이해와 해석에는 당대 조선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하던 새로운 내용이 실려 있었다. 주희의 해석을 통하지 않더라도 공자의 사상, 유교의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 경전을 해석하는 윤휴의 생각이었다. 이와 같이 주자학의 이해를 둘러싸고 송시열과 윤휴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조선에서 이전에도 특정 사상의 수용과 이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17세기 중·후반 두 사람 사이에 생겼던 대립만큼 격렬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주자학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 차이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갈등은 단순히 주자학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 조선 사회의 현실 문제를 인식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그 대립의 강도는 엄청났다. ●임진난·병자호란·당쟁 등 조선 무너뜨려 17세기 중·후반의 조선 사회는 앞서 50~60여년간 겪은 여러 사태로 말미암아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1592년 일본 침략과 긴 시간의 전쟁, 광해군대와 인조대 여러 정치세력 간의 갈등, 1636년 청나라 침략과 패배와 같은 사건은 기존 조선 사회의 질서를 바탕부터 무너뜨렸다. 특히 청나라의 침략, 곧 병자호란은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타였다. 전쟁을 거치며 조선은 인적·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고, 외부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국방체제, 군사적 대응 능력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더군다나, 종래 오랑캐로 여기던 청나라에 굴복하여 군신의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사대해야 했다. 종래 유지되던 조선과 명의 관계 또한 끊어졌다. 기막히기 그지없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효종과 같은 국왕을 비롯한 많은 수의 위정자들은 분노와 치욕에 떨며 청나라에 복수하고 원수를 갚고자 했다. 최선의 방도는 청나라와 전면전을 벌여 군사적으로 응징하는 일, 곧 ‘북벌’이었다. 이리하여 북벌은 이 시기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중국까지 진출하며 명나라를 멸망시킨 위력을 가진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벌의 속도, 방법, 내용을 둘러싸고 분분하게 의견 대립이 일었고, 그 중심에 송시열과 윤휴가 서 있었다. ●극단적 주자학 vs 부국강병책 송시열의 극단적 주자학 강조는 국정 운영의 전반적인 기조를 강력한 도덕주의 위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송시열은 군주와 신료 등 국정을 이끄는 주체들은 주자학의 가르침에 따라 도덕주의를 실천하며, 강상(綱常) 윤리를 강화하여 사회 기강을 잡을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현재 상황에서 직접 군사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긴 시간 동안 실력을 쌓아 오랑캐의 국가로부터 당한 모욕을 갚을 것을 강조하였다. 현실적으로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굴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오랑캐를 능가하는 절대의 정신력을 배양하고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송시열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한다면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 유린당하는 ‘문명’을 조선이 지켜내고 궁극에는 청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윤휴 역시 조선에서 회복하고 실현해야 할 것은 강상과 윤리를 강화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선 국정 운영의 방향을 송시열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윤휴는 조선에 필요한 것은 빠른 속도로 부국강병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청나라와는 직접적인 군사 대결을 통해 그 원수를 갚을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그는 종래와는 달리 국가 권력이 토지와 백성을 빠짐없이 파악하고, 양반들의 특권을 어느 정도 제한하며, 군대 편제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수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한다면, 종래 조선의 제도와 체제는 매우 크게 변하게 되어 있었다. 윤휴의 북벌 주장은 실질적인 정책과 연관하여 추진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휴의 독자적인 경서 해석은 이러한 현실 대책을 밑받침하는 근거를 경전을 통해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입으로만 외친 북벌, 사대부가 지지 송시열과 윤휴의 생각은 북벌을 서로 강조하는 점에서는 외형상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방식에서 양자는 서로 달랐다. 송시열의 북벌 주장은 당장의 행동보다는 먼 미래의 결정타를 예비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윤휴의 움직임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행동주의적이었다. 송시열의 방법은 사상적으로는 매우 강경하되 실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의 변화를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윤휴의 방식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이끌어내며 기존 질서를 크게 뒤흔들 가능성이 컸다. 군사적 행동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생각은 강력한 국가권력에 기초하여 정치·사회 운영을 도모한다는 점을 필연적으로 드러내었다. 이처럼 송시열과 윤휴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두 사람이 주자학을 강조하고 또 주자와는 다른 해석을 하려는 데는 그만한 정치적 혹은 현실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학문적, 정치적 방향 설정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송시열과 윤휴의 선택을 좌우하게 한 요소는 일단 군사 강국 청과 군사 대결을 벌일 것인가, 그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판단이었다. 송시열은 사상적·문화적 방면으로의 체제 강화를 선택했다. 조선은 중국의 문명을 이어받은 ‘소 중화’의 국가이며, 이를 강력하게 실현하는 것을 통해 오랑캐의 강국 청나라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 위에서였다. 반면 윤휴의 경우, 청의 군사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조선은 대적하여 원수를 갚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빠른 속도로 부국강병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시열과 윤휴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조선의 정치 사상계는 송시열을 지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고 나서 세워진 남인정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윤휴는 숙종 6년 정국 주도권이 서인으로 넘어가자 유배의 벌을 받았고 결국에는 사약을 받았다. 윤휴의 방식을 지지하고 긍정한 것은 소수였다. 그의 유력한 지원자들, 혹은 그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도 그의 생각이 매우 위험하며 불원간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청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맞대결이 위험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정치 엘리트들은 알고 있었다. 윤휴의 선택과 판단은 정치적으로 보아 비토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숙종 6년, 윤휴를 처벌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조선에 매우 위험한 요소를 영원히 추방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송, 조선 후기 장악… 윤, 북학으로 수용 송시열의 승리, 윤휴의 패배는 조선의 정치사상계가 군사주의적 방향으로의 국정운영, 강력한 국가를 전망하는 흐름을 배제해 나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선의 정치사상계는 이후 우여 곡절을 겪지만, 송시열이 강조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자학의 영향력이 더 확대되었으며, 주자학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는 지속적으로 배격받았다. 그렇다고 하여 윤휴의 생각이 조선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8~19세기 서울·경기 지역의 남인들 가운데 일부는 윤휴의 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그들의 생각을 세우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경기도 지역의 천주교 수용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녹암 권철신과 같은 이는 윤휴의 ‘대학’ 이해를 적극적으로 추종했고, 다산 정약용 또한 윤휴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윤휴의 생각은 후학들의 새로운 사유 속에 스며들며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정호훈(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 조폭남편에 수장살해 20대女, 4년만에 다시…

    조폭남편에 수장살해 20대女, 4년만에 다시…

    2007년 6월 19일 밤, 전남 나주의 112 신고센터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그는 드들강변인디요, 강 속에 차가 한 대 빠져있어라우.” 경찰은 물에 잠긴 승용차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일주일 전 가출신고가 접수된 26세 김모씨였다. 그녀가 뱃속에 품고 있던 5개월 태아도 엄마와 명을 같이했다. 동갑내기 남편 박모씨와 가족들은 그녀의 주검 앞에 오열했다. 박씨는 아내가 운전연습을 하러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운전 미숙으로 강물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사망 전 보험사 3곳에 상해보험, 운전자보험, 자동차보험을 각각 들어둔 상태였다. 보험 수익자는 모두 남편 박씨였고 전체 보험금 총액은 4억 4000만원에 달했다.   보험회사 2곳에서 보험금을 노린 범죄의 의혹이 있다며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실제로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사업 실패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박씨 부부가 매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의 보험에 가입한 점이 석연치 않았다. 1억원짜리 자동차보험의 한도를 2억원으로 높이는가 하면 운전자보험도 본인이 사망하면 2억원이 나오도록 특약을 설정한 점도 수상했다. 또 김씨가 발견된 드들강변은 15도 경사의 좁은 비탈길로 운전연습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고발생 시간이 밤 11시였는데도 차에 라이트가 켜져 있지 않았고,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는데도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박씨는 빚 독촉에 시달렸고 보험사기 전과도 있었다. 모든 정황이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의 행적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최초 경찰에 전화를 걸었던 신고자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결국 수사를 종료했고, 박씨는 보험회사 1곳에서 약 2억원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 미혼모에게 접근한 조폭, 달콤한 말로 꼬드긴 이유는… 경기도 시흥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씨는 2007년 4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되자 고향인 광주광역시에 내려왔다.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던 김씨는 인터넷에서 보모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광고를 낸 사람은 나중에 남편이 된 박씨. 광주 조직폭력배 S파의 일원이었던 박씨는 가정불화로 그해 2월에 이혼을 한 상태였다. 박씨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김씨에게 “15개월 된 딸을 혼자서 키우기 버거우니 보모가 돼달라.”고 했다.   김씨는 박씨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지할 곳 없던 김씨는 박씨가 이성적으로 접근하자 쉽게 마음을 열었다. 두 사람은 5월 초부터 박씨 집에서 동거를 하다 같은달 23일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하지만 그의 달콤한 말은 ‘악마의 덫’이었다. 보모 구인광고 역시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박씨는 혼인신고 일주일 뒤 중고 승용차를 구입, 산부인과 갈 때 쓰라며 김씨에게 줬다. 김씨는 사건 전 친정 어머니에게 “돈도 없는데 굳이 차를 사준 이유를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6월 6일 박씨는 “운전연수를 시켜주겠다”며 전남 나주시 드들강변으로 아내를 데려갔고, 계획대로 아내가 탄 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은 뒤 그대로 강물에 밀어넣었다. 현충일인 이날을 범행 날짜로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가입한 보험 중 하나는 휴일에 사망하면 1억원의 보험금을 더 주는 특약조건이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5일 뒤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1주일 뒤에는 800만원을 주겠다며 교도소 동기 양모(당시 26세)씨에게 사고차량 발견 신고를 하도록 시켰다. 경찰이 아무리 뒤져도 최초 신고자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 해결의 실마리는 신고전화 속 나즈막한 ‘그 놈 목소리’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난해 7월. 영구미제로 끝날뻔한 이 사건은 광주 서부경찰서의 한 형사에 의해 실마리가 풀렸다. 과거 나주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던 그는 당시 광주에서 조직폭력배를 수사하던 중이었다. 형사는 조폭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4년 전 그때의 남편 박씨 이름이 있는 게 아닌가. 재수사가 시작됐고, 얼마 후 “양씨의 목소리가 당시 신고자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제보가 전해졌다. 경찰은 신고 당시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양씨의 음성 파일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결과는 일치. 국과수는 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냈다. 신고 당시 양씨 옆에서 “떨지마.”, “겁 먹지마.”, “화순쪽 샛길로 간다고 해야지.”라며 지시를 내린 작은 목소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박씨였다. 양씨는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심지어 박씨가 자신에게 목소리 변형수술을 강요했으며 “이 사실을 말하면 가족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도 했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법정에서도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박씨가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고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시신 발견지점을 특정한 점, 신고 사실을 은폐한 점 등으로 볼 때 계획적인 살인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박씨는 징역 15년, 양씨는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숨진 김씨는 차가 물속으로 들어가는데도 왜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부검결과도 익사로만 나왔을뿐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박씨는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니, 그녀가 살해되는 과정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태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사건 Inside] (34) 범인은 전화기 속에 있었다…‘광주 임신부 살해사건’

    [사건 Inside] (34) 범인은 전화기 속에 있었다…‘광주 임신부 살해사건’

    2007년 6월 19일 밤, 전남 나주의 112 신고센터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그는 드들강변인디요, 강 속에 차가 한 대 빠져있어라우.” 경찰은 물에 잠긴 승용차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일주일 전 가출신고가 접수된 26세 김모씨였다. 그녀가 뱃속에 품고 있던 5개월 태아도 엄마와 명을 같이했다. 동갑내기 남편 박모씨와 가족들은 그녀의 주검 앞에 오열했다. 박씨는 아내가 운전연습을 하러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운전 미숙으로 강물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사망 전 보험사 3곳에 상해보험, 운전자보험, 자동차보험을 각각 들어둔 상태였다. 보험 수익자는 모두 남편 박씨였고 전체 보험금 총액은 4억 4000만원에 달했다.   보험회사 2곳에서 보험금을 노린 범죄의 의혹이 있다며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실제로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사업 실패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박씨 부부가 매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의 보험에 가입한 점이 석연치 않았다. 1억원짜리 자동차보험의 한도를 2억원으로 높이는가 하면 운전자보험도 본인이 사망하면 2억원이 나오도록 특약을 설정한 점도 수상했다. 또 김씨가 발견된 드들강변은 15도 경사의 좁은 비탈길로 운전연습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고발생 시간이 밤 11시였는데도 차에 라이트가 켜져 있지 않았고,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는데도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박씨는 빚 독촉에 시달렸고 보험사기 전과도 있었다. 모든 정황이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의 행적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최초 경찰에 전화를 걸었던 신고자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결국 수사를 종료했고, 박씨는 보험회사 1곳에서 약 2억원의 보험금을 받아냈다. ● 미혼모에게 접근한 조폭, 달콤한 말로 꼬드긴 이유는… 경기도 시흥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씨는 2007년 4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되자 고향인 광주광역시에 내려왔다.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던 김씨는 인터넷에서 보모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광고를 낸 사람은 나중에 남편이 된 박씨. 광주 조직폭력배 S파의 일원이었던 박씨는 가정불화로 그해 2월에 이혼을 한 상태였다. 박씨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김씨에게 “15개월 된 딸을 혼자서 키우기 버거우니 보모가 돼달라.”고 했다.   김씨는 박씨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지할 곳 없던 김씨는 박씨가 이성적으로 접근하자 쉽게 마음을 열었다. 두 사람은 5월 초부터 박씨 집에서 동거를 하다 같은달 23일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하지만 그의 달콤한 말은 ‘악마의 덫’이었다. 보모 구인광고 역시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박씨는 혼인신고 일주일 뒤 중고 승용차를 구입, 산부인과 갈 때 쓰라며 김씨에게 줬다. 김씨는 사건 전 친정 어머니에게 “돈도 없는데 굳이 차를 사준 이유를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6월 6일 박씨는 “운전연수를 시켜주겠다”며 전남 나주시 드들강변으로 아내를 데려갔고, 계획대로 아내가 탄 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은 뒤 그대로 강물에 밀어넣었다. 현충일인 이날을 범행 날짜로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가입한 보험 중 하나는 휴일에 사망하면 1억원의 보험금을 더 주는 특약조건이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5일 뒤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1주일 뒤에는 800만원을 주겠다며 교도소 동기 양모(당시 26세)씨에게 사고차량 발견 신고를 하도록 시켰다. 경찰이 아무리 뒤져도 최초 신고자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 해결의 실마리는 신고전화 속 나즈막한 ‘그 놈 목소리’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난해 7월. 영구미제로 끝날뻔한 이 사건은 광주 서부경찰서의 한 형사에 의해 실마리가 풀렸다. 과거 나주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던 그는 당시 광주에서 조직폭력배를 수사하던 중이었다. 형사는 조폭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4년 전 그때의 남편 박씨 이름이 있는 게 아닌가. 재수사가 시작됐고, 얼마 후 “양씨의 목소리가 당시 신고자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제보가 전해졌다. 경찰은 신고 당시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양씨의 음성 파일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결과는 일치. 국과수는 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냈다. 신고 당시 양씨 옆에서 “떨지마.”, “겁 먹지마.”, “화순쪽 샛길로 간다고 해야지.”라며 지시를 내린 작은 목소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박씨였다. 양씨는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심지어 박씨가 자신에게 목소리 변형수술을 강요했으며 “이 사실을 말하면 가족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도 했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법정에서도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박씨가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하고 범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시신 발견지점을 특정한 점, 신고 사실을 은폐한 점 등으로 볼 때 계획적인 살인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박씨는 징역 15년, 양씨는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숨진 김씨는 차가 물속으로 들어가는데도 왜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부검결과도 익사로만 나왔을뿐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박씨는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니, 그녀가 살해되는 과정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태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아모레퍼시픽 “최고 기술로 세계인을 아름답게”

    아모레퍼시픽 “최고 기술로 세계인을 아름답게”

    아모레퍼시픽이 경기도 오산에 새로 마련한 뷰티사업장의 1층 로비에는 고 백남준 작가의 ‘거북선’이 자리잡고 있다. 2층에는 그의 또 다른 유작 ‘마르코폴로’가 전시돼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가 두 작품을 이곳에 전시한 이유가 있다. 동·서양을 누빈 베네치아의 상인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거북선처럼 거침없이 나아가 세계에 한국의 미를 전파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대변하고 있어서다. 30일 오산 뷰티사업장 준공을 기념해 열린 간담회에서 서 대표는 “대한민국 화장품의 1번 주자로 세계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출발점을 완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뷰티사업장이 아시아 시대를 맞아 아시안 뷰티의 요람이자 새로운 발신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은 경북 김천, 경기 수원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스킨케어·메이크업 사업장과 5개 물류센터를 한곳에 통합해 완성한 통합생산물류 기지다. 산을 깎아 터를 잡은 사업장의 전체 면적은 22만 4000㎡로 축구장의 30배에 달한다. 대량 고속 및 다품종 소량 생산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첨단시설로 무장했으며, 태양광 발전, 온실가스 저감 등 친환경 시스템들이 도입됐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활짝 열린 식물원, 갤러리 등도 갖췄다. 공장 건물답지 않게 예술 작품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서 대표는 “독일, 스위스의 공장들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둘 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4만~5만 달러를 올리는 나라들”이라며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전 직원의 눈높이가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곳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절대품질’ 구현. 그는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절대품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서 통하기 힘들다.”면서 “마치 의약품 공장에서 하듯 제조공정과 위생공정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화장품에 대한 규제와 법률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뷰티사업장은 유기농, 무방부 제조 등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규격화한 시설이란 설명이다. 그는 “80년 전 창업자 어머니의 부엌에서 고집스러운 원료 선택과 정성이 깃들여져 탄생한 동백기름에서 비롯돼 지금껏 커왔다.”며 “최고의 원료, 최상의 기술로 이제는 세계인을 아름답게 만드는 ‘세계의 부엌’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생산시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될 뷰티사업장의 현재 생산 공급 능력은 3조 5000억원. 2020년까지 7조원으로 끌어올리고 글로벌 사업장까지 합쳐 14조원의 공급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2020년 매출 11조원, ‘세계 톱7’의 화장품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각오다. 이 같은 꿈은 라네즈, 마몽드를 앞세워 매년 30% 이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시장의 성공이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1억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화장 인구가 10년 안에 3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상하이에 10배 늘린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서 대표는 “현재 세계적 기업들의 성공은 인접시장, 내수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바탕이 됐다.”며 “우리에게는 만개하는 아시아 시장이 성장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장마가 코앞인데… 아직도 수해 복구 중

    장마가 코앞인데… 아직도 수해 복구 중

    “장마가 코앞인데 여전히 공사판 절개지가 벌겋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으니 불안하기만 합니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국 곳곳의 절개지와 경사지 등이 무방비로 장마에 방치돼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춘천 동면 옥광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인근 절개지는 수년째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낙석방지망 등이 낡아 끊어진 지 오래지만 도로와 10m 이상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집중호우를 당하면 토사와 돌더미가 금방이라도 도로를 덥쳐 사고로 이어질 형상이다. 서면 당림리 일대 국도 46호선 수해위험지구 정비공사현장은 더 아슬아슬하다. 국도 46호선 하부구조와 기존 석축이 낡아 지난해 9월부터 내년 9월까지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이미 도로 경계석이 무너져 침하가 시작됐다. 폭우가 내리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다. 임시로 모래주머니를 쌓고 방수포를 덮어 놓았지만 공사현장 2㎞ 구간 절개지 대부분이 자갈과 모래로 쌓여 있어 집중호우시 토사유실로 인한 도로붕괴가 우려된다. 더구나 방수포로 덮어 놓지 않은 구간은 이미 지난번 내린 비 등으로 일부분 깎여 나간 흔적이 보이는데다, 일부 침하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곳 이외에는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춘천 동면 모 아파트 공사 현장이나 강남동 절개지 공사현장 등에도 산을 깎아 곳곳에 토사로 이뤄진 절개지와 경사지들이 많지만 특별한 안전조치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 춘천과 화천, 양구 등의 국도와 지방도 절개지에 낙석이 발생해 방지망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등 장마철을 앞두고 도로 곳곳에 유실·붕괴 위험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주민 최종민(51)씨는 “지난해 수해로 봉사활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이 춘천에서 10명이 넘게 희생됐는데 여전히 공사판이나 도로변이 장마 대비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면서 “방수포라도 제대로 깔아 토사로 인한 대형사고는 최소한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동두천 신천이 범람하고 연천군 초성철도교량이 무너지는 등 큰 수해를 입었던 경기도 지역에도 장마철을 앞두고 비상이다. 39명의 인명 피해 등을 입은 경기지역에는 현재 복구 대상 4595곳 가운데 91%에 해당하는 4178곳의 복구를 완료했지만 일부는 장마 이전 복구가 어려울 전망이다. 경기도 도로사업소는 국토해양부로부터 위임받은 87번 국도와 75번 국도 가운데, 7개 구간에 대한 공사를 진행해 왔다. 지난주 2곳을 완공하고, 이번 주 4곳에 대한 복구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가평천이 범람하면서 석축 및 도로가 40~50m 유실된 75번 국도 가평 북면 재령리 구간은 다음 달 말이나 돼야 공사가 끝난다. 현재 암거박스 설치와 옹벽쌓기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장마철 이전 완공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는 소방방재청에서 지난해부터 수해복구 공구를 분할 발주하지 못하도록 해 공사량이 커지다 보니 예산확보와 설계 등의 절차를 거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이양대 경기도 도로사업소 주무관은 “행정절차를 이행하느라 시간이 필요했고 동절기를 피해 지난 1월에야 착공하다 보니 법적시한인 6월 말 임박해서 준공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 사진 춘천 조한종·의정부 한상봉기자 bell21@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과 근대’전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과 근대’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인 조선실을 ‘대한제국과 근대’라는 주제로 새롭게 단장했다. 조선실 개편의 백미는 올해 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와 채용신의 ‘운낭자상’(1914), 그리고 서울대 국문학과 이상억 교수가 최근 기증한 ‘이규상 초상화’이다. 전통화법을 유지하면서 서양화의 원근법이나 입체적 묘사법 등 개화의 입김들이 묻어 있다. 우선 백악춘효(白岳春曉)는 여름날의 백악산과 경복궁의 풍경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중식은 장승업으로부터 전통화법을 계승했지만, 21살이던 1881년 중국에 가 서양화법의 기초를 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악춘효는 쌀알 모양의 점을 찍는 전통화법인 ‘미점준법’으로 그렸으니, 이 미점으로 입체감을 나타내려고 했다. 여름 풍경을 그리면서 ‘봄날 새벽’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서윤희 학예연구사는 “일제 강점기를 얼른 떨쳐내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안중식은 겨울 풍경을 그려 놓고도 역시 ‘백악춘효’라는 제목을 붙여놓아, 학예연구사의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채용신이 그린 ‘운낭자상’은 최연홍 초상화다. 아기를 안은 여성의 모습이 기독교의 성모자 상을 연상시키고,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이 선악과가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치마 주름을 선이 아니라 채색 면으로 처리해 서양화처럼 입체감을 강조했다. 그러나 치마 밖으로 살짝 드러낸 버선발 등은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전통성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운낭자(최연홍)는 평안남도 가산의 관기(官妓)였으나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군수 부자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지내고 부상한 군수의 동생을 치료한 공으로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왔다. 이규상(1837~1917)의 초상화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의 전통 무관 복장을 한 이규상 초상화의 특이점은 왼쪽 가슴에 고종황제 망육순기념장(1902)과 황태자 가례기념장(1907) 등 기념장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 초상화의 제작시기가 1907년 이후라는 의미다. 또한 전통 초상화와 다르게 얼굴을 묘사할 때 왼쪽보다 오른쪽을 더 밝게 그려 서양화의 명암법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좌우 균형을 중시하는 동양초상화의 관례에 따라 명도 차이를 최소화했다. 화문석 문양을 뒤로 갈수록 작게 처리한 것도 서양화의 투시법을 채택한 것이다. 작가 미상이지만, 이당 김은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척화비와 대한제국선포에 따라 거북이 조각된 인장에서 용이 조각된 황제의 인장으로의 변화, 대한제국의 훈장, 세로로 쓴 근대 교과서, 축음기, 사진기, 전화기 등의 신식 문물이 전시된다. 2부는 전통회화가 어떻게 근대회화로 진행하는가를 보여 준다. 3부에선 자유연애 등 도덕관념의 변모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가 가져온 당시 사회의 변화상을 ‘요지경’ 등 딱지본 소설의 표지나 근대사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59건 61점의 근대 유물이 소개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3) 사육신과 단종 복위

    [선택! 역사를 갈랐다] (13) 사육신과 단종 복위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癸酉靖難), 아니 계유사화(癸酉士禍). 어떤 사건이 크면 클수록 그 직접적인 영향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계유사화 같은 정변도 그러하다. 계유사화는 그 자체로 엄청난 살상극이었다. 단종 복위 운동에서 목숨을 잃은 사육신 등을 포함하면, 필자의 추산으로 70명 이상의 인재가 조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에게 불의가 무력을 이용하여 정의를 대신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뿌리 깊은 내상(內傷)을 심어주었다. 신숙주·정인지·한명회 등은 공신(功臣)이 되어 노비와 전답을 하사받고 잘 먹고 잘살았다. 홍윤성 같은 자는 멋대로 양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만행을 부려도 세조는 눈감아 주었다. 공신들의 세상. 원래 불의의 특권이 더 달콤한 법이다. ●원기(元氣)가 손상된다는 것 반면 찬탈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죽고 가족은 노비가 되었다. 이래서 뜻있거나 젊은 사람들은 세조 정권을 외면했다. 김시습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시습이 조정에서 별로 활동한 일도 없는데 자꾸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공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항하고 비판하였으되 이름을 남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이 김시습이었다. 남효온이 젊은 나이에 과거를 그만두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시습이 “나는 세종의 은혜를 받았으니 당연하지만, 그대는 나와 다르니 세상을 살아갈 계책을 세우라.”고 충고했을 때, 남효온은 “소릉(昭陵·문종 비 현덕왕후의 능호)이 추복되었을 때 나가도 늦지 않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조의 찬탈은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않았다. 비판은 좌절되었고, 공신들의 득세는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사마천은 물었던 적이 있다. 왜 좋은 사람들은 해를 입고 사리사욕을 탐하는 자들은 떵떵거리며 잘사는가, 하늘의 도라는 게 옳은가 그른가? 어디 사마천만 했던 질문이었겠는가? 역사 속에서 숱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요, 지금 우리도 던지는 질문 아니겠는가? 이 질문을 던질 힘이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다. 냉소하는 것, 애써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좌절, 원기의 손상은 거기서 시작된다. 세조의 찬탈은 한동안 조선 사람들의 원기를 손상시켰다. 그것이 세조가 남긴 진짜 업보이다. ●찬탈은 간신(奸臣)을 낳고 임사홍(任士洪)은 그 아들들이 예종과 성종의 사위였으며, 이를 기회로 권력을 등에 업고 횡포를 자행하던 조선조의 대표적인 간신이었다. 도승지에 올라 유자광(柳子光)과 파당을 이루어 전횡을 부렸으며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에는 신진 사림들을 김일손(馹孫)의 사초(史草·후일 정리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관이 그때그때 적어놓는 1차 자료) 사건에 얽어 숙청하였다. 무오사화는 아다시피 이극돈(李克墩) 등이 자신의 비위사실을 있는 대로 적은 사관 김일손 등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애도한 글이라고 몰아가 모반죄로 얽음으로써 일어난 사건으로 연산군 폭정의 서막이었다. ‘조의제문’을 종종 한글을 읽는 호흡에 따라 ‘조의-제문’하는 식으로 읽는 분이 있는데, ‘조-의제-문’하는 식으로 읽어야 한다. 항우(項羽)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김종직이 실제로 세조의 찬탈에 비유하여 이 글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임사홍 등이 그 글을 세조 찬탈을 풍자한 것이라고 하여 김종직 등을 모반죄로 얽었던 데는 그 글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세조찬탈의 명분에 대해 임사홍 일당과 김종직 등 사림들 간에 첨예한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 명분의 차이는 경제 정책의 기조, 정치 운영의 원칙 등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었다. 역사의 인과응보는 참으로 알 수 없어,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세조 때의 공신들은 무덤에서 죄를 받았다. 딸 둘을 왕비로 들여보냈던 공신 한명회나 공신 정창손 등은 부관참시되었다. 생모 폐비(廢妃) 윤씨가 사약을 받았을 때 동조했다는 이유로 연산군에게 보복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홍귀달, 이유녕 등 다수의 사림 역시 해를 당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었지만, 중종 14년 기묘사화가 일어난다. 조광조 등 개혁세력들이 공신세력들의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연산군의 폭정을 바로잡았던 공신들이 왜 또 사화를 일으켰는가? 공신이라는 특권을 제한하려는 조광조 등의 견제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리고 반정공신의 행태는 세조시대 이지러진 특권의 향유와 행사를 본받았고, 그 결과 출발과는 달리 자신들만의 영화를 위한 특권을 형성하며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방향으로 타락했다. ●기억하는 사람들 언제부터 사육신을 사육신이라고 불렀을까? 단종은 언제부터 노산군이 아닌 단종이 되었으며, ‘노산군일기’는 언제부터 ‘단종실록’이라고 불렸을까? 중종 때 소릉을 복위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 소릉은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인데, 어머니 최씨와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된 뒤 폐위되었고 능의 석물이 훼손되었다. 중종 8년 반정의 기운이 남아 있어 다행스럽게도 소릉은 복위되었다. 그러나 단종과 사육신은 여전히 금기 대상이었다. 사림정치가 본격화하는 선조대에 이르러서도 이들에 대한 복권은 여의치 않았다. 선조 2년 어느 날 경연에서, 퇴계와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은 “그들의 의도는 상왕(단종)을 복위하려는 것이었는데 세조는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며 복위를 건의한 일이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기대승의 논리는 세조에 대한 ‘반역’과 상왕 복위를 분리하여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실은 이 논리밖에는 없었다. 이미 사육신이 세상을 뜬 지 10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기대승의 문제 제기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선조 9년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을 가져다 본 선조는, “내가 그 글을 보니 춥지 않은데도 떨린다. 지난날 우리 광묘(光廟·세조)께서 천명을 받아 중흥하신 것은 진실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저 남효온이란 자는 어떤 자이길래 감히 필묵을 놀려 국가의 일을 드러나게 기록하였단 말인가? 이는 바로 아조(我朝)의 죄인이다.”라고 단언했다. 민간에서 알음알음 전해오면서 읽어오던 책이 ‘육신전’이었는데, 이는 곧 금서(禁書)였던 것이다. ●군(君)에서 대군(大君)으로 그러나 당색을 막론하고 노산군을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어졌다. 곧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바꾸는 일이 현실화했다. 숙종 7년(1681), 그러니까 숙종 즉위년부터 정권을 담당했던 남인(南人)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1680)으로 실각하고, 서인(西人)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 7월 무더운 어느 날의 낮 공부(晝筵) 시간에 숙종은 이렇게 말하였다. “정실의 왕비 소생은 대군이나 공주라고 부르니, 노산군도 대군으로 불러야 한다. 대신들은 의논하라.” 이에 따라 논의한 결과 대신들도 대군으로 고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숙종의 견해는 참으로 기발했다. 이것은 이 사건에 대해 200년 이상 축적된 합의가 낳은 대안이며,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 위한 여러 단계 중의 하나였다. 원래 노산군이라고 할 때의 ‘군’(君)은 서자(庶子) 왕자에게 붙이는 칭호와 글자는 같아도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폐위된 임금을 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자(朱子)가 ‘자치통감강목’에서 만든 역사 기록 범례의 하나였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숙종의 착상인지 이전에 어떤 의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위의 논리는 노산군에게서 ‘폐군’의 혐의를 벗기고 ‘적실 왕비의 왕자’라는 지위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단종’으로, ‘충신’으로 이로부터 10년 후, 숙종은 노량진에 자리한 사육신묘에 제사를 지내게 하고, 복관 조치를 내림과 함께 사당에도 편액을 하사한다. 당시 이미 민간 차원에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오던 터였다. 그러므로 편액을 내리는 것으로 사당 건립을 사후 승인한 셈이었다. 이런 배경에는 숙종 6년, 강화유수 이선(李選)이 세조도 아들인 예종에게 ‘사육신은 충신’이라고 유시(諭示)했다는 것을 근거로 사육신을 정려할 것을 요청했던 상소에서도 나타나듯이, 사육신을 충신으로 표창해야 한다는 공론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숙종 24년(1698)에는 현감(縣監)을 지낸 적이 있는 신규(申奎)가 노산대군의 왕호를 회복하라고 상소했다. 이후 숙종은 조정의 신하는 물론 지방관과 이미 관직을 그만두고 초야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의견을 묻도록 하였다. 한 달 뒤인 10월에 숙종은 승정원에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노산대군의 왕호를 추복하게 하였다. 단종이 영월 땅에서 승하한 지 햇수로 242년 만의 일이다. 이후 곧바로 온 나라의 축하 속에 단종 복위가 반포됨으로써, 강봉된 노산군은 243년 만에 후손들에 의해 단종으로 복원되었다. 우리가 장희빈만 기억하는 시대, 조선사람들의 유전인자에 냄비근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기나긴 역사바로세우기가 마무리되었다.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다단계 사기왕’ 中서 돌연사 미스터리

    ‘다단계 사기왕’ 中서 돌연사 미스터리

    4조원 규모의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인 뒤 2008년 12월 10일 중국으로 밀항, 종적을 감췄던 주범 조희팔(55)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경찰이 21일 밝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조씨의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망 당시 응급 진료 기록과 사망진단서, 시신 화장증 등이 발견됐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19일 0시 15분쯤 중국 현지 호텔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경찰은 “공조해 오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로부터 지난 21일 저녁 (사망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3만여명에 이르는 피해자 모임 측은 “사망설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조씨의 사망을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갖가지 의혹도 나오고 있다.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의 또 다른 미스터리다. 경찰이 확보한 중국 현지의 120구급대(119에 해당)의 응급 진료 기록을 보면 조씨는 지난해 12월 18일 한국에서 자신을 만나러 온 여자 친구 등과 함께 중국 옌타이(煙臺)시의 한 호텔에서 식사한 뒤 오후 8시 30분쯤 호텔 내 노래주점에 들러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이어 객실로 돌아와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조씨는 “급체한 것 같다.”며 응급 진료를 요청, 구급차로 인근 인민해방군 404병원으로 가다 숨졌다. 다음 날인 19일 긴급비자수속을 밟아 출국한 가족들의 참관 아래 조씨의 장례가 치러졌고 시신은 화장됐다. 경찰은 밀항을 도왔던 조씨의 외조카 Y씨의 집에서 조씨가 생전에 썼던 중국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응급진료기록증, 사망증명서 등을 통해 조씨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조씨 딸의 컴퓨터에 있던 51초 분량의 장례식장 동영상과 딸이 쓴 일기장 역시 사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지난 17일 조씨가 운영하던 다단계 업체의 운영위원장 최모(55)씨와 사업단장 강모(44)씨 등 핵심 공범들이 도주 3년 만에 한국으로 강제 송환된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조씨의 사망 사실을 놓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찰은 역시 여러 정황으로 미뤄 돌연사에 무게를 두면서도 ‘위장 사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을 굳이 영상으로 담아놓은 점이 석연치 않다. 수배된 피의자의 사망 증거를 남겨놓는다는 점이나 장례식 촬영 자체가 정서상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영상에는 조씨가 입관된 모습도 나와 있다.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경찰은 “사망증명서를 발급한 의사로부터 조씨 본인임을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했지만 시신이 화장된 상황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입증해 줄 수 있는 생물학적 증거인 유전자정보결합체(DNA) 확보가 불가능하다. 경찰은 “DNA 대조까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까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씨의 유족들이 피해자들의 테러나 보복을 우려해 조씨의 사망 사실을 숨겨 왔다는 게 경찰의 수사 결과다. 조씨는 중국에서 조영복이라는 가명을 쓰고 나이도 53세로 속여 생활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의 달인으로 내연녀와 여자 친구 등 화려한 여성 편력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측근의 검거로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자작극을 벌였을 개연성도 100%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 모임 측은 “조희팔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병도 아닌 예기치 않은 사망으로 은닉해 놓은 거액의 범죄 수익금에 대한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전현직 공무원 연루 비리와 자금 추적 수사가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렇지만 수백억원에 이를 범죄 수익 및 공범에 대한 수사는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檢 “뭉칫돈 수시 입출금… 노 前대통령 퇴임뒤 중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비위 사건을 수사 중인 창원지검이 18일 노씨 관련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공개함에 따라 이 돈의 규모와 성격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이 밝힌 뭉칫돈의 규모는 500억원 안팎이다. 이준명 차장검사는 “뭉칫돈 규모는 아직 자세한 조사와 계산을 해 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500억원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은 이 돈은 노 전 대통령이나 그 가족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언급한 차명계좌도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이 뭉칫돈이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한 노씨와 주변 사람들의 비리와 관련된 자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뭉칫돈의 거래시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뭉칫돈은 2004년부터 2008년 5월까지 3~4년에 걸쳐 수시로 이뤄졌다. 이 차장검사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해당 계좌에서 이유없이 수시로 입출금되던 뭉칫돈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부터 중단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뭉칫돈을 주고받은 관련자들의 비리혐의를 일정수준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 차장검사는 “이번 수사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으며 이는 아주 나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검찰은 이 뭉칫돈의 흐름을 추적해 노씨와 관련된 또 다른 비리사건을 캔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노씨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한 후 자금관리인 등 주변 인물을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이 차장검사는 “뭉칫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건평씨를 다시 조사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자금의 흐름을 확인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하면 추가 조사도 할 수 있다.”고 말해 노씨에 대한 추가 소환 가능성도 내비쳤다. 한편 노씨 측은 검찰 발표에 대해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법적대응을 하기로 해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도 주목되고 있다. 노씨 기소를 앞둔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이 같은 거액의 돈을 발견했다고 밝힌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차장검사는 이에 대해 “건평씨와 관련된 계좌에서 뭉칫돈이 발견된 수사 자료는 법원에 제출돼 공개될 것이기 때문에 덮고 넘어갈 수 없고 돈의 성격을 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사설] 파이시티 남은 의혹 봉합하려 해선 안 된다

    검찰이 어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하고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최 전 위원장은 고향 후배인 사업시행자 이정배씨로부터 인허가 알선 청탁 대가로 8억원을, 박 전 차관은 이씨로부터 1억 6000여만원과 코스닥 등록업체 대표로부터 산업단지 승인 알선 등의 명목으로 1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이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곁가지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봉합될 가능성이 높다. 2조 4000억원대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방위 로비를 벌여 결국 용도 변경에 성공했음에도 비리 관련자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은 부실 수사이거나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본다.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대선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했다가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박 전 차관 역시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재직할 당시부터 ‘왕비서관’ 기간까지 꾸준히 돈을 챙겼다. 이 전 대표가 로비를 위해 조성한 비자금 규모에 비해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혔던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흘러간 돈의 규모는 어색할 정도로 적다.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에 ‘의결 안건’이 아닌 ‘자문 안건’으로 올려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것도 유감이다. 파이시티 시공사 변경 과정에서의 ‘밀약설’을 뒷받침하는 문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간다.”고 했던 당초의 약속을 분명히 지켜야 한다. 큰 틀의 수사가 일단락됐다고 해서 남은 의혹과 새롭게 불거진 의혹을 적당히 봉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면 돌파만이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을 당당히 비켜 가는 길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성역 없는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처벌만이 권력형 비리의 발호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보겠다.
  • ‘박영준·이영호가 비선 親盧인사 퇴출이 과제’ 불법사찰 수사 새국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VIP(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비선’ 조직에 의해 신설·운영되고, 사찰 내용은 비선 인사를 거쳐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장에게 보고됐다는 문건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영준(52·구속) 전 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영호(48·구속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선 인사로 보고, 이들이 불법 사찰에 개입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이다. ●2008년 8월 진경락씨 작성… ‘靑 비선→대통령실장’ 보고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이 16일 확보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2008년 8월 28일 작성) 문건에는 지원관실 신설 목적 및 성격, 지휘·보고 체계, 당면과제, 운영상 유의사항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문건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노무현 정권 인사들의 음성적 저항과 일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VIP의 국정수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설치됐다. ‘공직사회의 기강확립과 사기진작을 위해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VIP의 원활한 국정수행을 뒷받침하는 데다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도 긴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비선 조직은 야당의 정치 공세에서 자유롭고, VIP의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휘체계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지만 특명사항은 VIP에게 절대 충성하는,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한다.’고 명기돼 있다. 보고 체계와 관련해서는 최대한 줄이되 경중을 고려, ‘일반 사항은 총리에게 보고하지만 특명사항은 청와대 비선을 거쳐 VIP 또는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한다.’고 적혀 있다. ●전직 총리실 조사관 “이영호씨 입 열면 현정권 무너질 것” 주장 문건에는 이영호 전 비서관이 지원관실의 막후 실세임을 보여 주는 정황도 나온다. ‘자체 기획하거나 VIP 지시사항은 BH 공직기강팀과, 첩보·인지 등 기타 비공식적으로 추진된 내용은 고용노사비서관과 사전 조율’이라고 써놓고 있다. 비선 실세인 이영호 전 비서관이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나 진경락(45·구속기소) 전 기획총괄과장에게 사찰을 지시하고, 이들을 통해 보고받은 내용을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전직 총리실 조사관 A씨는 “이 전 비서관이 지원관실 사찰 내용을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면서 “이 전 비서관이 입을 열면 현 정권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건은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퇴출이 당면과제 중 하나라고 적고 있다.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 제출 유도’라는 문구와 함께 ‘2008년 9월 현재 공기업 임원 39명, 필요시 각 부처 감사관실 동원할 것’이라는 계획도 담았다. 정권 출범 초기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공기업 사장 등을 퇴진시키기 위해 회유와 압박을 가한 의혹이 불거졌던 사실과 일치하고 있다. 문건 작성일인 2008년 8월 이후 대통령실장은 정정길씨와 임태희씨다. 검찰은 이 문건을 김경동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휴대용저장장치(USB)에서 확보했으며, 진 전 과장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황우여 대표 일문일답 “당 화합을 제1과제로”

    “당 화합을 제1과제로 삼겠습니다.” 새누리당의 초대 당대표에 오른 황우여 의원은 5선의 수도권 중진으로 범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된다.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여야 합의를 잘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대표로 선출된 소감은.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앞으로 있을 70일 동안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당을 잘 섬겨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에서 당에 부과된 많은 공약과 국민과의 약속을 잘 모아 수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9대 국회를 모범적인 선진 국회로 운영하도록 뒷받침하겠다. →당 지도부가 친박계 위주로 구성돼 공정한 대선경선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지난 17대 대선 때 사무총장으로 경선 관리를 해봤다. 경선에서는 엄정 중립, 엄격한 당헌·당규에 따른 절차 진행이 생명이기 때문에 모든 후보들의 의견이 잘 수렴되도록 원만한 진행을 하겠다. 어떤 계파 없이 공정한 경선을 치르는 데 중점을 두겠다. →친박 일색 지도부라는 우려가 있는데,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나. -오늘부터 최고위원과 함께 의논하고 당 고문들의 얘기를 듣는 시간을 가진 뒤 인사에 들어가겠다. 어떤 계파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잘 계획하겠다. →대선경선 주자들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는데. -경선룰에 대한 문제는 후보들의 문제제기가 있으면 정식으로 수렴하겠다. 최고위원회를 통해 수렴 방식과 절차에 대해 검토한 뒤 공식 입장을 정하겠다. ▲1965년 인천 ▲제물포고 ▲서울대 법학과 ▲사법시험 10회 ▲서울지법 부장판사 ▲감사원 감사위원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사무총장 ▲국회 교육위원장 ▲당 인천시당위원장 ▲당 사무총장 ▲15, 16, 17, 18대 국회의원 황비웅·최지숙기자 stylist@seoul.co.kr
  • [새누리 당권주자 인터뷰] “승자독식 깨고 당직 탕평 실현… 구태청산 화합형대표 될 것”

    [새누리 당권주자 인터뷰] “승자독식 깨고 당직 탕평 실현… 구태청산 화합형대표 될 것”

    새누리당 당 대표 후보로 나선 홍문종(3선·경기 의정부을) 당선자는 13일 “수도권의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대선 승리의 보증수표가 되겠다.”고 밝혔다. 홍 당선자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 당원이 하나가 되는 화합형 당 대표로 구태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선 국면을 앞두고 어떤 당 대표가 되겠는가. -‘화합형’ 대표가 될 것이다. 대선 경선을 철저히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 경선 이후에도 승자 독식 관행을 허물고 탕평책을 펼치겠다. 8년 동안 중앙정치를 떠나 소외돼 있었던 만큼 수도권과 호남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아픔을 잘 안다. 그들에게 당직 기회의 폭을 넓혀 주겠다. 계파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관행을 타파하고 상향식 공천제도를 확립해 당원들에게 돌려드리겠다. →당 대표 후보로서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민생 현장에 있으면서 다른 후보들보다 서민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특히 친박(친박근혜)계 외곽 조직인 ‘경기희망포럼’ 대표와 두 차례의 경기도당위원장 등을 바탕으로 수도권에 든든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선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경기 지역 출신 후보가 세 명이나 된다. 차별화 전략은. -현실 정치와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중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들인 수도권·호남 지역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당직 기회의 폭을 넓혀 주겠다는 공약이 상당한 공감대를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뒷받침하고 확실하게 지원할 수 있는 수도권 조직을 누구보다 잘 갖추고 있다.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친박계 일색이라는 비판도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원들의 선택에 의해 선발된 사람들이다. 친박, 비박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당을 위해 헌신하고 대선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분이라면 지도부에서 일하는 게 자연스럽다. 지금 새누리당에 필요한 것은 계파 간의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단합된 힘으로 대선 승리를 위해 화합하는 것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새누리 당권주자 인터뷰-정우택

    새누리 당권주자 인터뷰-정우택

    새누리당 5·15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우택(3선·충북 청주 상당) 당선자는 9일 “대선 승리를 위해 중원(충청)을 지키는 미드필더형 대표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당선자와의 일문일답. →왜 중원을 강조하나. -12월 대선에서 중원을 뺏기고 어떻게 승리하나. 민주통합당을 보라. 박지원 원내대표 당선에 이어 이해찬 상임고문이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민주계와 친노(친노무현)그룹의 결합일 뿐만 아니라 호남과 충청의 결합이기도 하다. 여야의 정치 구도를 잘 살펴야 한다. 새누리당의 지도부에 중부권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관리형 대표론’에 대한 견해는. -대선 후보가 앞장서고 당이 뒷받침하는 형태의 관리형 대표로는 오는 12월 대선에서의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 당과 대선 후보가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한다. 관리형 대표가 아닌 주도형 대표가 필요하다. →본인이 ‘주도형 대표’에 어울리나. -주변에서 나를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민선 4기 충북도지사 재직 당시 24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민선 3기 때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 투자 유치 실적인 14조원보다 10조원가량 많다. 충북의 인구도 10만여명 늘었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을 꼽으라면. -대선을 앞두고 범보수 세력의 결집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우선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과 통합 또는 연대 논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선진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민련 출신인) 나다. 또 중도의 가치 이념을 가진 인사들을 영입할 것이다. →대선 후보 경선 방식으로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요구에 대한 입장은. -대선 후보들의 유불리를 따져 경선 규칙을 바꾸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역선택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고 경선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민의부터 살피겠다. 국민이 원하고 여야가 합의한다면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 놓겠다. 장세훈·최지숙기자 shjang@seoul.co.kr
  • 못난 수컷들…“원시인보다 힘·미모·성적 능력 못한데… 솔직하지도 못해”

    못난 수컷들…“원시인보다 힘·미모·성적 능력 못한데… 솔직하지도 못해”

    “지금 이 책을 읽는 남자나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남자는 역사상 가장 ‘못난’ 남자다. 아, 토 달지 말라. 당신은 못난 남자다. 이상.” 이렇게 포문을 여는 ‘남성퇴화보고서’(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읽는 내내 배꼽을 잡게 만든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오늘날 남성이 옛 시절 원시인 남자만도 못한데다, 그럼에도 감히 옛 조상보다 진화했다고 잘난 척해대고 있다고 논증하는 호주의 고고인류학자다. 첫 포문에서 짐작하듯 저자의 입담은 보통 아니다. 마지막 결론도 이런 식이다. 호모 에렉투스를 현대 세계에 데려와 마이크를 쥐어준다면 예수의 목소리를 비틀어 “아들들아, 아들들아, 어찌하여 나를 버리느냐.”라고 할 것이라 해뒀다. 그렇다면 각론으로 들어가서, 어떤 분야로 비교해볼까. 저자는 두운도 맞췄다. Brawn(힘), Bravado(허세), Battle(싸움), Balls(운동능력), Bards(말재주), Beauty(미모), Bairns(육아), Babes(성적 능력) 등 8개 분야다. 힘, 허세, 싸움, 운동능력이야 그럴 만도 하다. 영화 ‘300’,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리면 된다. 근육이 너무 현대적이고 인위적으로 부각됐고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들 늘씬 쭉쭉빵빵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옛 남자들이 현대 남자에 비해 육체적 힘에서는 월등할 것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생존이 달렸으니 말이다. 다만, 저자가 풀어놓은 다양한 사례들을 쭉 읽은 뒤 다시 ‘300’과 ‘스파르타쿠스’를 본다면, 잔혹하고 야한 장면들이 흥행을 위해 적당히 과장을 섞어넣은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재주, 미모, 육아, 성적 능력 분야다. “그래 원시인이라면 힘은 강할 테지. 그러나 우리 문명화된 남자들은 그런 거 가지고 으스대는 유치한 짓 따윈 안 한다구.”라면서 거듭 자기위안해왔던 남자들을 처절하게 짓밟아 나간다. 아니, 철따라 유행따라 옷 맞춰 입고 화장품 바꿔가며 피부관리하고, 여자 앞에만 서면 목소리 톤을 바꾸고 부드럽게 배려하는 태도로 환심사려고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결혼 뒤엔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낮에는 짐승들 쫓아다니다가 밤에는 툭하면 강간하듯 여자를 취하던 원시인들만 못하다고? 이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 두가지만 뽑자면, 하나는 미모. 저자는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을 불러낸다. 베컴은 10년간 89가지 헤어스타일을 갈아치웠을 정도로 멋을 부린 남자다. 여성스럽다는 비난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하고, 동성애 잡지 기자로부터 당신이 동성애자의 우상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찬사를 많이 받아서 좋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니제르의 우다베족이 치르는 게레올축제에 비하자면 베컴의 치장은 새발의 피다. 게레올 축제는 3명의 미녀가 최고의 남자를 뽑는 행사다. 이를 위해 우다베족 남자는 화장을 하고, 구슬로 만든 의상과 벨트를 차고, 깃털머리장식을 한다. 남성적 아름다움을 이으려 잘생긴 아들을 얻기 위해 아내가 잘생긴 남성과 동침하는 것도 허락한다. 아프리카 중부 투아레그족은 아예 남자들이 온몸을 베일로 감싸고 다닌다. 여자가 남자의 아름다움에 충격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고대 타히티족 남자는 백옥 같은 피부를 위해 사춘기가 지나면 아예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아닌 남자가. 다른 한 가지는 성적 능력. 저자가 이번에 불러오는 인물은 LA레이커스 센터로 활약하면서 한 경기당 100 득점 등 NBA 기록만 72개를 보유하고 있는 농구선수 월트 체임벌린이다. 체임벌린은 농구실력 못지 않게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실력이 유명했고, 스스로도 2만명의 여자와 즐겼다고 떠벌렸던 사람이다. 늘 그랬듯, 저자는 체임벌린 따윈 상대가 안 된다는 이런저런 사례를 제시하는데, 이건 직접 읽는 게 좋겠다. 저자가 이 같은 얘기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빨리 포기하라는 거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 속(屬) 가운데 ‘몸집이 작은 수컷’에 속한다. 다만, 오랑우탄처럼 솔직하지는 못하다. ‘몸집이 작은 수컷’ 오랑우탄은 적어도 자신의 2등급 지위를 인정하고 활용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덩치 큰 수컷’의 가면만 쓰려고 한다.” 인간, 그것도 선조에 비하자면 힘쓰는 일은 물론, 아이 돌보기와 여성 만족시키기 등에서 선배들에게 한참을 못 미치는 주제에 킹콩 가면 쓰고 으스대며 돌아다니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실체를 홀라당 벗긴 김정운 교수가 떠오른다. 모였다면 정치 얘기에 핏대 올리다가, 밤이면 룸살롱에 가서 폭탄주나 돌려돌려 하다가, 어쩌다 쉬는 날엔 우르르 산에 몰려다니면서 막걸리나 퍼마시다보니, 은퇴해서 명함 떨어지고 나면 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그러고보니 김 교수의 주장도 결국 한시 바삐 덩치 큰 킹콩 수컷의 가면을 벗어던지라는 제안이다. 그게 씁쓸한 일인지, 아니면 바람직한 일인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ICAO, 작년 GPS교란 北에 경고했다

    ICAO, 작년 GPS교란 北에 경고했다

    지난해 유엔 산하 전문단체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북한의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행위에 대해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ICAO 이사회 의장 명의로 발송한 서한에서는 2011년 3월 서해상에서 발생한 GPS 교란을 북측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이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엿새째 이어진 비슷한 형태의 교란행위에도 북측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3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ICAO는 지난해 3월 말 ‘북한의 교란행위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민간 항공 안전에도 위협이 돼 앞으로 유사한 행위가 재발할 경우 한국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경고 서한을 북측에 발송했다. ICAO는 1947년 설립된 특별기구로, 현재 북한을 포함해 191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항공 규범 제정과 분쟁조정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앞서 지난해 3월 4~14일(11일간) 서해상에서는 한·미 키리졸브 훈련을 겨냥한 GPS 교란전파가 떠돌았다. 인천사령부 소속 연안경비정과 고속정에 GPS 장애가 발생했고, 김포지역에선 민간항공기 3~8대의 GPS에 중대한 이상이 발생했다. 이륙해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 정찰기(RC-7B)가 이륙 40여분 만에 조기 귀환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의 소행으로 확실시되는 전파교란이 엿새째 계속됨에 따라 군을 비롯한 산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3일 오후 2시까지 모두 337대의 민항기가 전파교란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도입해 운용 중인 다양한 통신·레이더 교란 장비 20여종과 100㎞ 이내에서 전파교란을 할 수 있는 러시아제 장비를 활용 중인 것으로 추정한다. 강자영 항공대 교수는 “항공기에 대한 GPS 교란은 군함이나 화물선, 통신사 기지국 등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령 카페는 사이비 종교… 배신자 극단적 응징”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학생 살해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의 폭력성이 오프라인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메신저 채팅에서 비롯된 갈등을 현실로 그대로 옮겨와 벌인 10대들의 잔혹극이라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메신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시작된 갈등을 마치 자신들에게 부여된 과업처럼 여기고 현실로 연결지은 상황”이라면서 “인터넷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특히 사리분별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라는 점이 화를 키웠다고도 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또 “온라인 인간관계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고 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이버상 대화를 현실로 착각, 중독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가해 학생들의 성장 배경에 학교 부적응, 가족 해체 등으로 인한 인간관계 결핍 문제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송원영 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는 “온라인 활동에 열중하는 학생일수록 뿌리 깊은 외로움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도 기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16세 때 범행을 저질렀다 해도 문제의 요인은 이미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쌓여 왔다고 봐야 한다.”면서 “어린 나이에 친구 없이 인터넷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들의 범행이 “사이비 종교적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건 당사자들이 죽은 영혼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사령(死靈)카페’에 가입했고 평소 영혼·주술 등과 관련한 대화에 심취했던 까닭에서다. 스마트폰 대화방에서 피해자 김모(20)씨가 독선적으로 행동하자 ‘강제탈퇴’ 방식으로 왕따를 시킨 뒤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응징’을 가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의자인 10대들이 그들의 공동체인 사령카페가 김씨에 의해 공격당하자 복수의 의미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마치 가정이나 국가, 종교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해치려는 사람에 대해 방어적 공격을 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자신들의 믿음에 대해 무조건적인 결속력을 보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강한 반감을 갖는 것이 놀랄 만큼 사이비 종교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엄한 처벌이 뒤따를 것임을 알면서도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사이비 종교적 행태와 유사해 보인다. 표 교수는 “강한 집단심리가 형성돼 있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깨달은 뒤에야 자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10년만의 균형재정… 근로복지·지속형 성장 방점

    10년만의 균형재정… 근로복지·지속형 성장 방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확대 요구가 거셀 전망이지만 예산당국은 균형 재정 달성 전제하에 일자리와 복지를 확충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균형 재정 회복으로 미래 대응력과 대내외 신인도를 높이고, 일하는 복지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원을 배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2013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의결했다. 지침에 따라 각 부처는 6월말까지 부처별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고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짠 내년 예산안을 9월말까지 국회에 내게 된다. 내년에 균형재정이 달성되면 이는 일반·특별회계와 각종 기금을 통합관리하는 통합재정수지가 도입된 1978년 이후 두번째다. 김동연 재정부 제2차관은 “외환위기 이후 확대정책을 편 국민의 정부(DJ정권)가 마지막에 편성한 참여 정부 첫 해 2003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했다.”며 “이명박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대정책을 폈으나 마지막 해에 다음 정부 첫 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균형재정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균형 재정 달성을 위해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 증가율을 웃도는 재정 준칙은 내년에도 유지된다. 총수입 증가율과 총지출 증가율의 차이는 지난해 3.0% 포인트, 올해 4.0% 포인트다. 김 차관은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 이야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차이를 둬야 균형재정이 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과세·감면 축소, 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의 지원방식 변경 등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복지 차원의 수요 증가는 선택과 집중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일하는 복지를 위해 저임금 근로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등 근로유인형 복지체계를 강화하고 임대주택 공급, 전세자금 지원 등 주거비 부담 완화를 통해 서민생활 안정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보육료·양육수당 확대, 대학생 학비부담 경감 등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늘어난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소상공인·중소기업과 농축수산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 확대된다. 중동·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개척 및 로봇·해양·녹색산업 등 미래 먹거리형 신산업이 육성된다. 기초·녹색·재난 등 공공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고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가 지원된다.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한 핵심 능력 및 적극적 억제전력 확보가 지원되며 112신고시스템 개선, 3대 폭력(학교·여성·아동폭력) 근절 등을 위한 위한 재정투자가 확대된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부담이 되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국민·공무원·사학·군인연금 등 4대 공적자금, 기초노령연금, 교육분야, 건강·장기요양·산재·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을 포함한 10개 분야의 장기재정전망이 내년부터 5년마다 분석·공포된다. 올해부터는 대규모 공공기관의 5년간 재무관리 계획이 수립·관리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철도공단, 철도건설계획심의委 가동

    한국철도시설공단(철도공단)이 철도건설사업과 관련, 다양한 갈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철도건설계획심의위원회’(철도건설위)를 23일 가동했다. 철도건설위는 한국개발연구원과 녹색교통운동, 한국소비자학회 등 관련 학계와 협회,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10명과 철도공단 1명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현안 발생 시 개최되며 심의결과는 철도공단 안으로 활용, ‘해결사’보다 합리적인 갈등 조정을 통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철도공단이 최근 13년간 총사업비 변경원인을 분석한 결과 지가상승과 법령 및 시설기준 변경 등 불가피한 사항을 제외하고 9063억원이 민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요구로 증액됐다. 철도 활성화를 위한 투자보다 과도한 민원이 반영되고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강제성은 없지만 외부의 객관적 평가를 받아 철도건설에 나서겠다는 취지”라며 “무리한 민원과 요구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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