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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언스 매직’ 시리즈

    공부하기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없다.더욱이 과학은 생활과 밀접하면서도 재미를 느끼기에는 힘든 과목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이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기획한 과학실험시리즈 ‘사이언스 매직’(전4권·중앙M&B)은 괴학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마술’을 선보인다. 이 시리즈는 각 책을 집 안의 장소별로 구성했다.1권 ‘마술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 부엌과학’은 바나나가 스스로 껍질을 벗거나 달걀 껍데기를 깨뜨리지 않고 벗기는 법 등을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2권 ‘마술 지팡이로 짚어 보는 거실과학’에서는 못이 병 위에 물구나무서게 하고,3권 ‘마술 장갑으로 만져 보는 욕실과학’에서는 물에도 막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바늘을 물 위에 띄운다. 마지막으로 ‘마술 빗자루로 쓸어 보는 침실과학’에서는 침실 곳곳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세계를 살피고,눈이 잘못 보고 있는 착각의 세계를 경험해본다. 이 책은 여러 과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의 원리를 터득했는 지를 재미난 삽화와 재치있는 답변으로 설명해 어린이들에게 ‘나도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다. 김명승기자 mskim@
  • 美, 이식용 장기 배분위급 환자에 우선권

    -새 지침 17일부터 시행 [워싱턴 연합]미국 보건당국은 이식용 장기를 배분하는데 있어 지역보다는환자의 위중도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장기이식 지침을 17일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새 장기이식 지침은 우선 간(肝) 이식에 적용되는데, 미국은 지금까지 국내를 11개 지역으로 구분해 간 기증자가 나타날 경우 인접 구역에 보다 위중한환자가 있더라도 지역내 대기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새로 마련된 이식지침은 적용 구역을 확대해 보다 넓은 지역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에게 간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구역확대 및 우선권 문제는 지난 2년간 정부 주무장관인 도나 섈레일라 보건장관과 의회간에 논란의 대상이 돼왔으나 의회가 16일 새로운 지침실시에 대한 유예방침을 해제함으로써 정식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 ㈜ 부영 李重根회장 순천대에 고시원 지어 기증

    주택업체인 (주)부영 이중근(李重根)회장이 전남 순천시 순천대학교에 고시원인 ‘우정원’을 기증한다. 지난달 말 착공한 이 고시원은 공사비 20억원이 투입돼 800여평에 달하는지하 1층,지상 5층의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건립된다. 고시원에는 정독실,침실,외국인 숙소 등이 들어서 교수와 학생 등 110명이이용할수 있게 된다. 순천대는 이 고시원의 명칭을 이회장의 아호인 ‘우정(우정)’을 따 우정원으로 명명됐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기업이념을 바탕으로 육영사업에 많은 관심을갖고 있는 이회장은 현재 건국대학교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전국 20여개 학교에 기숙사나 체육관 등을 건립,기증한 바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별 6개’ 초특급호텔 건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 객실이 거실과 침실을 갖춘 특실(스위트룸)로 된 초특급호텔이 오는 2001년 문을 연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역삼동에 건축중인 아이타워(지하 8층,지상 45층 규모) 중 지상 30∼45층에 조성할 예정인 초특급호텔의 운영자로 하얏트인터내셔널을 선정하고 15일 오전 11시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경영위탁계약을체결했다. 2001년 9월 문을 여는 이 호텔은 하얏트의 최고급 호텔 등급을 뜻하는 ‘파크하얏트서울’로 명명됐다.전 세계 192개 하얏트호텔 중 파크하얏트급은 17개뿐으로 기존의 특급호텔을 일컫는 ‘5스타’보다 고급스럽다는 이유로 ‘6스타급 호텔’로 불리고 있다. 호텔디자이너인 존 모포드가 실내 설계를 맡게 될 파크하얏트서울은 객실 265실,연회장 6실,비즈니스센터 14실,식음료매장 7개소,스포츠센터 등으로 구성된다.각 객실의 평균 넓이는 국내 기존 호텔의 평균 객실(9∼10평)의 두배인 20평이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초 아이타워를 현대의 강남사옥으로 사용하기 위해 착공했으나 경제위기이후 강남사옥 계획이 취소됨에 따라 올해 초부터 호텔사업을 구상해 왔다.이 회사 관계자는 “객실 숙박료는 하루에 40만∼50만원이될 것”이라면서 “사업차 내한한 외국 최고경영자나 외국 국가원수,왕족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아 기존 특급호텔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성태기자 sungt@
  • [멋 플러스] 올 인테리어 경향 점검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자.비용 때문에 망설여질 수도 있다.이럴 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를낼수 있는 방법이 조명이다.조명의 위치나 전등 갓만 바꾸어도 실내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지곤 한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밤은 차가운 형광등 불빛보다는 은은하게 비치는스탠드 불빛이 더 정감있고 부드럽다.또한 공간 전체를 휜히 밝히는 전체조명보다는 코너를 중심으로 연출하는 부분조명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계연 홈월드 실장은 “올해 인테리어 경향은 단순하면서도 동양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이라며 “이에 따라 조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으며 전체조명보다는 부분조명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조명기구를 살펴보면 디자인은 단순하면서 색깔은 흰색 등 밝은 색을 사용한 것이 많다. 거실이나 침실,천정에 다는 등은 펜던트(pendent·천정에서 늘어뜨리는 것)보다는 천정에 밀착된 것이 많다.부엌등은 펜던트 형이 많은데디자인은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한지 느낌이 나는 신소재인 폴리 카보네이트로 갓을 만든 조명기구들도 있다.이 소재는 덴마크에서 개발한 것으로 종이와 아크릴을 섞어 만든 것이다. 한지와 달리 물로 씻거나 닦을 수 있어 깨끗한 상태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각 공간의 목적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부분조명의 하나인 매입등을 많이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매입등은 천정에 홈을 파 만드는 것이다.이때 그림이나 액자 등 특별히 강조할 부분이 있을 때 방향조절이 가능한 할로겐을 사용하면 화랑 분위기를 낼 수 있다.부엌의 경우 동선을 중심으로 매입등을 많이 사용한다.그러나 매입등은 위치나 배선 때문에 시공에 앞서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스탠드는 이동하기가 편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분조명이다.특히 지난달한샘에서 내놓은 ‘자바라 조명’은 탈·부착이 가능한 스탠드로 브래킷(bracket·벽이나 기둥에 붙이는 등)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그리고 갓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어 스포트라이트 역할도 가능하다. 집안에 특별한 장식이나 소품이 없다면 조명의 형태보다는 빛 자체의 효과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조명기구가 효과적이다.금속소재의스탠드나 브래킷 등을 이용한다. 동양풍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전등갓으로 한지를 선택한다.그리고 나무나패브릭을 소재로 한 스탠드 램프나 단순한 디자인의 조명이 적당하다.한지로 된 조명기구는 빛을 은은하게 발산하므로 분위기를 부드럽고 여유있게 만들어준다.조명기구가 없다면 양초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평소 집안꾸미기에 관심을 갖고 전문점들을 돌아보면서 안목을 기르면 적은 비용으로도 내집에 맞는 조명과 인테리어 구상을할수 있다”며 “일례로 조명은 위에서 아래로 비쳐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휠씬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강선임기자 sunnyk@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 지식산업

    벌레의 몸 속으로 들어가 그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는 버섯이 있다.그래서겨울에는 벌레요,여름에는 풀이라 하여 동충하초(冬蟲夏草)라고 불렀으며 천년에 한번 꽃이 핀다는 전설과 함께 불로장생의 신비한 선약으로 여겨져 왔다.오늘날에도 덩샤오핑(鄧小平)이 애용했다는 항암 면역제로 세상에 널리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희귀한 동충하초의 균을 누에에 접종하여 다량 생산하는기술을 개발했다.농가에서 그것을 기르면 같은 누에에서 고치를 생산할 때보다 10배나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된다고 한다.물론 사람의 손도 덜 간다. 몇 천년 동안 누에에서 비단실을 뽑아 오던 잠업의 패러다임이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첨단산업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동충하초의 작은 이야기속에서 21세기의 미래 사회를 읽을수가 있다.그것은 새 천년 준비위원회가 내건 다섯가지의 비전 가운데 하나인 ‘지식 창조’의 모델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천년 이상 잠업의 기술은 발전해왔고 나라마다 그 기술에도 차이를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일년에 한번밖에 딸 수없던 고치를 춘잠(春蠶)과 추잠(秋蠶)으로 두번 딸 수 있게 한것은 일본인이 개발한 기술이고 이상(李箱)의 말대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이‘귀족 가축’의 식성이나 생리를 바꿔 사육하게 쉽도록 종자를 개량한 것은독일인이었다. 그러나 동충하초를 다량 생산하여 생산성을 올린 한국의 경우는 잠업의 기술이 아니라 잠업,그 자체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지식기술의 산물이다.벌레가풀이 되는 이야기를 황당하다고 비웃고 누에에서 비단실이 아니라 약재를 얻는 것을 허황된 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은 새 천년의 이야기이다. ■ 벌레가 풀이되고 누에가 약이되고우리가 백년동안 서양사람들의 뒷통수를 보며 숨차게 따라온 산업문명이란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면 농장을 공장으로 바꾸는 일이었다.농장에서는 식물이던 동물이던 살아있는 생물체를 가꾼다.그러기 때문에 농산물은 씨를 받아 되풀이해서 재생산을 하게 된다.먹는 것,입는 것,사는 집이 모두 끝없이순환하는 생명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공산품은그와는 다르다.생산품의 원료도 그것을 제조하는 동력도 거의 모두가 지하에서 캐낸 광물이다.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을 석탄 위에 떠있는 섬이라고 불렀듯이 현대 산업문명은 어느 하나 지하자원에 의존해 있지 않은 것이 없다.그리고 그것은 에누리없이 재생산이 불가능한 무기물로서 한번 쓰면 그냥 버려야만 한다. “내가 달나라에 가서 맨먼저 한 일은 폐차장을 만든 것이었다”라고 말한우주인 에드윈 올드린의 고백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실감한다.올드린이 달 표면에 탐사차를 놓고 지구로 돌아온 순간 달은 거대한 자동차 폐차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인간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쓰레기장이 된다.그것이 우리가지금 겪고 있는 생태계 파괴요 환경오염이다. 그러기 때문에 20년 전에 로마클럽이 인류에 경고한 것처럼 지구의 자원은고갈되고 그 성장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우리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땅의 자원에 의존해있는 농장이나 공장을 머리와가슴을 기반으로 한 지장(知場)으로 바꾸어가는 작업을 해야만한다. 로마클럽이 지구의 자원 가운데 제일 먼저 고갈하는 것으로 동(銅)을 지목했을 때 세계의 동 값은 2배로 뛰었다.일부 석유회사들은 동광(銅鑛)을 매수하기도 했다.중국이 앞으로 거대한 대륙 전역에 전화선을 깔게 되면 지구의동이 바닥이 날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뻔한 일이다.그러나 동선보다 싸면서도 그 용량은 수백배가 넘는 광섬유가 발명되고 통신위성을 실용화하면서 그파동은 가라앉는다.최근 15년동안 동값은 잠잠하다. 자연자원의 고갈을 억제하거나 대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신소재를 발견해내거나 산업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그리고 그 신소재나 통신위성 같은 디지털 기술은 땅이 아니라 머리에서 캔다.그러니까 광섬유와 디지털 기술 상품은 농산품이나 공산품이라기 보다 지식상품에 더 가깝다. ■ 知場은 인간의 머리·가슴에농장이나 공장은 땅 위에 있다.그것을 지으려면 넓은 농토나 대지가 필요하다.생산의 자원과 동력원도 모두 땅위나 땅 밑에서 가져온다.평균 독일사람이 한햇동안 마시는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토지는 150㎡라고 한다. 소백 오렌지 등 평균 독일인이 먹는 식료품을 생산하기 위한 토지의 합계는자국 재배면적의 3배에서 4배 정도이다.만약 중국이나 인도가 독일 수준으로생활수준이 오르면 지구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장(知場)은 인간의 머리와 가슴 속에 있다.그 자원도 동력원도 모두가 머리와 가슴속에 숨어있다.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캐 써도 없어지는 일이 없고 남에게 나눠줘도 고갈하는 법이 없다.동시에 굴뚝 없이도 생산되고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서도 버려질 수가 있다.그 지장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사이버 스페이스라고 부르는 인터넷이요 버철 리얼리티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루어 낸 정보혁명은 또하나의 신대륙과 서부지대를 제공해준 것이다.그것은 종래의 언어와 문자공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의지적 창조활동의 영역을 무한으로 넓혀준다.더구나 그 공간은 비트로 되어있어서 유한한 아톰의 지구자원을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만약 수백만의 네티즌이 전자우편이 아니라 종이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해보라.하루에 하나씩 지구상에서 정글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사회는 단순히 자원의 절약이나 억제만이 아니라 생산요소 자체를 바꿔놓는다.지식은 노동,자본,토지에 첨가되는 자원의 한 요소가 아니라 동충하초의 경우처럼 생산자체의 개념을 바꿔놓는 자원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그래서 지식사회에서는 생산개념이 창조개념으로 변하고 경제력과 군사력의 뒷바퀴 노릇을 하던 지식이 앞바퀴로 바뀐다. 보잉777의 동체부분을 깎을 때 보통 오차가 5∼6㎜ 생긴다고 한다.기계기술의 한계다.하지만 지식기술이 가미되면 그 오차를 머리카락 정도로 줄일 수가 있다.그렇게 되면 마찰열이 줄어들어 기체관리의 코스트가 내려가고 그것을 네트워크를 이용,해외 공장으로 보내면 설계 코스트의 반 이상이 감소된다.똑같은 비행기를 만들면서도 다운 사이징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지식기술로 하면 생산도,관리 코스트도 전연 달라진다. ■ 사이버공간에 투자해야 기계기술에서 앞섰던 일본은 90년대초만 해도 국제경쟁력이 3위였지만 90년대 말에는 18위로 밀려났다.지식기술에서 뒤진 것이다.산업사회에서 우등생이었던 일본은 지식사회에서는 낙제생이 되고만다.경기가 한창 좋을 때 일본은 사이버 공간에 투자하지 않고 토지에다 투자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땅값으로 치면 일본 열도가 미국보다 몇배나 더 큰 버블현상을 빚고 만 것이다. 이제는 경제계에서도 문화자본(사회자본)과 같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오늘날의 기업 경쟁력과 생산력은 토지나 공장이나 설비와 같은 하드의 자원보다 지적 능력이나 서비스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지식을 관리하는 지력(知力)만이 앞으로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능력”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자면 기계를 만들고 움직이는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과지혜에 더 많은 힘이 실어주어야 한다. 부국강병의 패러다임은 자연히 부국강지(富國强知)로 바뀔 수밖에 없다.지식사회에서의 부(富)란 지식노동자를최대의 자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병(强兵)의 논리도 마찬가지다.군대의 힘은 근육이나 주먹을 바탕으로 한것이지만 앞으로의 군사력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력에서부터 나온다. 걸프전때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미 공군은 스마트탄과 같은 최신무기로 대통령궁의 침실을 정확히 폭격했다.그러나 후세인은 죽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슬람교도들은 심각한 문제나 위기가 올 때에는 침실이 아니라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군은 고도한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첨단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슬람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문화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다. ■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에 비중을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머리를 쓰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공헌하거나 부를 창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그래서 지력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어도 그것을 창조적인 데에 사용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한 예술가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 가거나 재주로 남을 속이다가 범법자가 되었다.오죽하면 한국에는 IQ,EQ 말고 JQ하나가 더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왔겠는가.JQ는 ‘잔머리를 굴리는 지능지수’라는 것이다. 1993년 뉴스위크는 한국과 싱가포르를 예로 들면서 “미래는 손을 사용하는사람이 아니라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특집을 내고 장래의 국제경쟁력은 그 나라가 창출하는 지식의 우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뉴스위크의 칭찬과는 달리 한국은 아직 지식의 가치가 대접받고있는 사회가 아니다.초등학교 교실만 들여다보아도 알수 있다.이순신장군의거북선을 하드웨어로 가르치고 있는 한 우리의 지식사회는 요원하다. 일본의 해군전술은 왜구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상대방 배를 불태우지 않고 그 위에 올라타 칼로 공격하여 약탈을 하는 해적전법을 사용한다.그것을 잘 안 이순신 장군은 왜병이 배 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뚜껑을 해닫고 그 위에 창칼을 꽂아 놓았다.단순한 엔지니어적 발상이 아니라 전술상의 소프트웨어로서 거북 모양의 배가 탄생된 것이다.거북선을 하드에서 소프트로 시점을 옮기는 교육시스템의 변화없이는 새 천년은 없다.누에에서 비단실을 뽑던 농가가 바이오 지식을 이용하여 동충하초의 약재를 만들어낸다.이러한 작은 변화에서 농촌은 지촌(知村)으로 바뀌고,생산은 창조로 변하고,폐기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동충하초를 21세기의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벌레가 풀이 되고,땅을 파던 사람들이 머리와 가슴을 파고 토지에 투자하던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으로 몰려드는 진귀한 광경이 보일 것이다.지식사회가 온다.어서 대비하라는 새 즈믄해의 아주 낮은 귓속말이 들려온다./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 [국제취업정보] 英 장애인 센터 체험기

    우프,키부츠,워크캠프,자원봉사 등 해외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그중에서 나는 윙드 펠로우십 트러스트(WFT)라는 영국의 장애인 센터를 택했다.발전된 자원봉사 시스템을 배워 한국에 전파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 때문이다.제대후 복학까지 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의미있는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었고 인터넷을 통해 ‘국제자원봉사협회(KIVA)’를 알게됐다. 영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도움을 보태 항공권과 240파운드(48만원)를 들고 떠났다.그러나 돌아올때는 232파운드를 가지고 왔다.결국 영국에서는 8파운드 밖에 안쓴셈이다.단체에서 나오는 용돈으로 생활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WFT 최초의 한국인 봉사자였다.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두려움과 영어에 대한 우려가 영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나를 짓눌렀다. 히스로 공항에 마중나온 두 영국인을 만났을 때부터 걱정은 현실화됐다.그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그때 나는 “저들이 하는 말을 돌아갈 때까지 다 알아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정신없이 그들과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을 하게 됐다. WFT는 휴가를 얻은 장애인들이 1주일간 요양을 하는 곳이라 매주마다 다른사람을 보살펴야 했다.모두 신체적으로만 부자유스러울 뿐 밝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침 일찍 목욕과 식사를 돕는 것부터 밤 늦게 침실로 안내하는 것까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낮에는 그들과 함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쇼핑도 했다. 휴일에는 관광도 떠나고 멋진 파티도 열렸다.이곳에온 사람들은 정상인과 전혀 다름없이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가생활을 즐겼다.한국의 장애인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5개월 동안의 영국생활을 통해 연수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자부한다.최선을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은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진병준(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
  • [세계로 나가자] 해외일자리 안내 (7) 워크캠프-체험기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려는 대학생이 많다.여행사에모든 것을 맡기지 말고 시야를 넓혀 좀더 유익한 프로그램을 찾자.전세계 75개국 2,000여곳에서 열리는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세계의 젊은이들과 문화교류를 하고 자신만의 국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제워크캠프는 해당지역 스폰서들이 기획하는 프로젝트에서 각국의 참가자들이 2∼3주 동안 함께 지내며 일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대부분의 워크캠프는 여름에 실시되며 10∼30명이 한 캠프에 머문다.참가자들은 해당지역의 생활수준에 맞춰 생활한다.각 캠프는 다양한 국가의 젊은이들을 원하고있어 최소 10여개국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워크캠프는 1920년 평화주의자 피에르 세레솔이 전쟁으로 파괴된 프랑스의한 마을에서 반전운동과 마을 복구사업을 시작한 데서 유래됐다.유네스코(UNESCO)는 1948년부터 국제자원봉사조정위원회를 발족하여 전세계 140개 회원단체를 연결,국제워크캠프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워크캠프에는 18세 이상이면 누구나참가할 수 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이뤄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어회화 실력이 필요하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정과 유연성,도전의식이다. 캠프에서는 주당 5∼6일,하루에 6∼8시간씩 봉사활동을 한다.봉사는 환경,농업,건설,사회사업,문화,교육 등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생활은 유스호스텔,청소년 센터,농장,학교 등에서 하고 식사는 봉사자들이 교대로 준비하는경우가 많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워크캠프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 가기때문에 항상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캠프에 따라서는 짧은 일정으로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지역주민들과 파티나 운동회를 열기도 한다. 워크캠프에 참가하려면 국내의 워크캠프기구(IWO)에 회원등록(등록비 2만원)을 하면 된다. 참가 희망자들은 각국의 캠프 리스트를 자세히 검토하고 자신의 일정이나소요경비와 비교해 적절한 캠프를 선택해야 한다. 참가비는 100∼200달러 정도.항공료는 자신이 부담해야 하지만 단순한 배낭여행 보다는 훨씬저렴하다.가격 뿐만 아니라 여러나라 젊은이와의 문화교류,영어의 생활화,해외 자원봉사 경력 축적 등이 워크캠프가 갖는 장점이다.문의 국제워크캠프기구 (02)568-5858,웹사이트 www.1.or.kr이창구기자 window2@- 워크캠프 체험기…자원봉사 통해 영어습득·문화체험 98년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가슴속에 간직했던 계획을 마침내 실행했기 때문이다.계획은 바로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여행 일정을 짜던 중에 우연히 워크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고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신청한 캠프는 독일 북부 소도시 슈밀라우에서 7월 18일부터 8월 8일까지 3주간 계속되는 캠프였다.신청서를 보낸 뒤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는데 2주 뒤에 드디어 캠프에 참가하라는 답장을 받았다.내가 계획했던 것 중의 하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3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3주간의 캠프생활을 위해 캠퍼들의 집합장소로이동했다. 집합장소는 슈밀라우 근처의 시골역이었다.그곳에서 폴란드 친구아쉬카를 만났다.역에서 만난인연으로 우리는 같은 침실을 썼고 캠프 안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됐다. 캠프 기획자인 올리와 함께 캠프지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캠프 리더인 마르티나를 비롯 독일,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루마니아 등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이 캠프의 목적은 문화 시설과 놀이 시설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여가시간을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었다.우리는 낡은 기차의 칸막이 방을 숙소로 이용했다.침실,부엌,식당도 전동차를 개조해 만들었다.선로 위에 조립식으로 만든 거실에서 카드놀이도 하고 이야기꽃도 피웠다.여가시간을 활용해 유기농장을 방문하고 유럽 수상자전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때때로 ‘퓨처 워크숍’이라는 토론회를 가졌다.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좀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토론회에서 우리가 내놓은의견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마지막날 가진 파티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계속됐다.그동안 너무 정이 들어서 누구도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처음 내가 캠프를 신청했을땐배낭여행 중의 한 일정으로만 생각했다.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캠프 참가가 오히려 더 큰 경험이 됐다. 천숙진(한양대학교 독문학과 4학년)
  • 5세미만 어린이사고 79%가 ‘보호자 곁에서’

    남자아이들의 사고율이 여자아이들보다 두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4일 지난 1년동안 접수된 전국 어린아이(만 5세까지) 사고자 1,193명에 대한 사고사례를 분석한 결과 남아들의 사고가 여아의 1.8배 정도 됐다고 밝혔다. 어린아이의 가정내 사고 유형은 작은 물건이나 장난감,놀이기구 등 생활용품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72%나 차지했고,계단이나 창문 등 주택시설에 의한 것이 28%였다. 사고 장소로는 보통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방(침실)이나 거실에서 61%가 발생해 가장 많았고,사고 발생 당시 보호자가 주변에 있었던 경우가 79%나 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美학교총격 범인 ‘증오일기’발견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깜짝 놀랄 일을 저지르겠다….운동선수들,우리를 무시한 사람들,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나는 증오한다.반드시 그들을 벌주리라.” 지난 주 콜로라도 주 덴버시 근교 리틀턴의 한 고교에서 총기를 난사,13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들도 총으로 자살한 10대 범인이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다른 학생들의 우상인 운동선수에 대한 거부감과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던차에 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까지 당한 이 범인의 일기장은 학생과 학교 전체에 대한 증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거의 1년간 씌어진 이 일기는 범인이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대적이었는지,얼마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범행을준비해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4일 일기 내용을 공개한 제퍼슨 카운티의 존 스톤 보안관은 그러나 용의자 2명 가운데 한 사람의 침실에서 발견됐다고만 밝혔을 뿐 에릭 해리스(18)과 딜런 클레볼드(17) 2명 가운데 누구의 일기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기는 지난해 4월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이 있는 달에 시작됐다.일기장곳곳에 독일어로 된 나치 관련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여러 차례 언급된 ‘4월20일 히틀러의 생일’이란 말은 범행일자가 히틀러의 생일과 관련이있음을 짐작케해주는 대목. “20일 오전 11시15분.우리는 로큰 롤을 출 것이다.” 범행계획은 치밀했다.이 일기의 주인공은 D-데이까지 분 단위로 세워진 범행계획의 이행상황과 그 동안의 심경을 꼼꼼하게 기록해나갔다. 스톤 보안관은 또 범행 순간 자신들끼리 의사소통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수신호 개발까지 해놓았다고 일기에 적혀있다고 말했다.
  • 서방언론·심리학자들 분석…밀로셰비치는 ‘다중 인격자’

    잔학한 ‘인종청소’작업을 수년째 계속하고 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57).무엇이 그를 인류문명사를 후퇴시킨 ‘살육자’로 만들었을까. 보스니아 전쟁의 피가 채마르기 전에 재연된 ‘인종 청소’로 충격받은 서방언론과 심리학자,역사학자들은 밀로셰비치의 성장과정과 심리상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다중인격’‘자아도취’‘정신분열증’.참혹한 가족사가 그를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냉혈한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슬로보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자유’.그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5살때 밀로셰비치와 부인을 버리고 가출했다가 밀로셰비치가 21살되던 해 총으로 자살했다.또 밀로셰비치가 아버지 대신 따르던 삼촌(군인)도 역시 총으로 자살했다.음울한 성격의 공산주의자인 어머니와 살던 밀로셰비치는 10년 뒤 그어머니마저 거실 전등에 목을 매 자살하는 참극을 겪어야했다. 극도의 정신적 충격과 혼란속에 성장기를 보낸 밀로셰비치는 자연스레 비사교적이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했고 권력과 타인에 대한 지배욕망은 본능처럼밀로셰비치를 지배했다. 밀로셰비치는 항상 흰색셔츠와 검은색 양복 차림을 고집하는 일종의 ‘결벽증’도 갖고 있다.스포츠와 외출을 극도로 기피한다.고교시절 만난 마르크스 이론교수인 부인 미랴나 마르코를 빼면 개인적인 친구는 아무도 없다.‘침실 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밀로셰비치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부인 미랴나의 어머니도 2차대전중 목숨을 잃은 공산주의자였다. 밀로셰비치의 비인간적인 면모는 이제까지 한번도 세르비아 병사들의 막사나 병원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부상한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로 던지지 않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권력이 그의 손에서 떠나려 하는 순간,그는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할 것이다”세르비아의 한 전직관리는 밀로셰비치 독재의 막이 내리는 순간을 이렇게 내다봤다. 金秀貞
  • 케이블TV 뮤직비디오 너무 자극적

    케이블TV 음악전문채널에서 방송되는 뮤직비디오의 내용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종합유선방송위원회(위원장 한정일)는 지난 1월28일부터 일주일간 m·net와KMTV 등 음악채널 두 곳이 방영한 국내 뮤직비디오 119편을 분석한 결과,전체 방영곡의 19.3%가 폭력 장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밝혔다.유승준의 ‘나나나’뮤직비디오의 경우 오토바이 질주 장면과 집단 패싸움장면 등이 빈번히 등장해 폭력성이 가장 높았다.선정성을 강조한 곡은 전체의 17.7%로 이가운데 침실을 소재로 한 엄정화의 ‘초대’와 업타운의 ‘돌아와’등이 가장 노골적이었다.아울러 가사에도 문제가 많았다.‘사랑’을주제로 한 노래의 30%이상이 다른 사람의 애인을 빼앗거나 사랑에 집착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등 잘못된 사랑관을 심어주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줄 우려가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또 가사해독이 어려운,랩으로 구성된 노래가 무려 51%에 이르러 올바른 국어사용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위는이와 관련,음악채널들이 프로그램의 80∼90%를 뮤직비디오로 편성하면서 주시청층인 청소년의 눈을 붙들기 위해 음악성보다는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경향을 더욱 뚜렷이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종합유선방송위는 이에 따라 성인취향의 뮤직비디오의 경우 청소년시간 대를 피해 방송토록 하는 등 심의기준을 보완하기로 했다. 이순녀 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8)尹潽善과의 갈등(下)/윤보선과 평가

    1961년 5월16일 새벽2시쯤 張勉은 총리 숙소로 쓰는 반도호텔 809호실에서경호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어났다.張都暎 육군참모총장이 급한 일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張都暎은 “육군 30사단이 장난질 하려는 것을 막았고,현재 해병과 공수부대일부가 서울로 들어오려는 것을 한강다리에서 막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염려마시고 그저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 아십시오”라고 덧붙였다. 張勉은 와서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기다리지만 張都暎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총성이 요란하게 들려오자 張勉은 경호대장 등과 함께 지프를타고 반도호텔을 떠났다.거리가 가까운 미국대사관과 대사관 사택을 찾았지만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잠시 몸을 피하려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혜화동 수녀원으로 갔다”(회고록 중에서).그리고는 55시간이 지난 18일 낮12시쯤에야 모습을 드러내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내각 총사퇴를 발표한다. 尹潽善은 새벽 3시30분에서 4시 사이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張勉과 마찬가지로 張都暎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었다.張都暎은 “쿠데타가 일어나 헌병을 동원해 한강다리에서 저지하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뚫렸다. 쿠데타군이 시내로 들어왔는데 진압될 것같지 않다”고 우려했다(尹潽善 회고록에서). 尹潽善은 “피신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일신의 안전만을 위해 300만 서울시민을 버릴 수 없고” 또 “그들하고 사리를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요, 설령피살이 된대도 그리 부끄러울 것은 없다고 생각해” 자리를 지킨다. 5·16쿠데타가 발생해 제2공화국이 결국 무너지기까지 국무총리 張勉은 몸을 숨겼고 대통령 尹潽善은 현장에 남아 ‘유일한 헌법기관’으로서 쿠데타세력을 상대한다.쿠데타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지 못하고 자기 한몸 피신하는 데 그쳤던 張勉은 제2공화국 붕괴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尹潽善은 제 할일을 다한 걸까. 16일 낮 쿠데타 주역인 朴正熙소장과 柳原植대령이 청와대로 尹潽善을 찾아왔다.이 자리에는 玄錫虎국방장관과 張都暎 등이 함께 있었다.玄錫虎는 쿠데타 소식을 듣고 반도호텔로 가서 張勉을 만나고 헤어진 뒤 쿠데타군에게 체포된 상태였다. 접견실에서 朴正熙 일행을 만난 尹潽善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말로 입을열었다.이 말은 훗날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되었다. 尹潽善을 비난하는 쪽은 “쿠데타를 기다렸다는 투의 이 표현이야말로 그가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쿠데타세력과 관련해 보여준 행동을 설명하는키워드”라고 풀이했다.현장에 있던 玄錫虎는 회고록에서,尹潽善이 이 말에이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었다”면서 張勉정부에 비난을 퍼붓고 朴正熙의 거사에 찬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尹潽善의 설명은 물론 다르다.“그들(朴正熙 일행)을 대하는 마음이 서글퍼나도 모르게 이 말이 떨어졌고,당시 사회적·정치적 혼란상을 생각할 때 당장 무슨 일이 터지고야 말 것같아서”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尹潽善은 “군인들끼리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잘 수습하라”는 말로 발언을 끝낸다.모두 물러갔다가 朴正熙와 柳原植이 다시 들어왔다.柳原植이 “저희는 이 혁명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면서과거에도 대통령에게 충성을다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마치 張勉내각이 물러나면 권력을 尹潽善에게 넘길 것처럼 들리게끔 하는말이었다. 尹潽善은 이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미 국무부 자료를 보면,그는 白樂濬 참의원의장을 쿠데타군쪽에 보내 ‘헌법 69조에 따라 尹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한다면 군부가 권력을 이양하고 철수할 것인가’를 타진한다. 한편 朴正熙 일행에 이어 마셜 그린 주한미대리대사와 매그루더 UN군사령관이 함께 尹潽善을 방문한다.두 사람은 이미 “張勉총리 영도 하의 합헌적인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였다.두 사람은 “서울시내에 들어온쿠데타군은 4,000명이 채 안되므로 4만 병력만 출동시켜 서울을 포위해 들어가면 쿠데타군이 항복할 것”이라며 무력진압을 주장했다. 그러나 尹潽善은 “국군끼리 전투를 벌여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북한 인민군이 기회를 노려 남침한다”는 논리로 끝내 반대한다.그린은 “각하의 이번결정으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군부통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를 남기고 돌아간다.매그루더는 尹潽善과의 면담후 본국 합참본부에 전문을 보내“尹대통령은 張총리를 몰아내고 싶어 가능한 법적 절차를 찾고 있다”고 보고한다. 尹潽善은 이날 오후 張都暎이 요청한 계엄령을 승인했으며 17일 오후 2시에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 “군사혁명위원회가 정부 기능을 대신한다”고 밝혀 張내각 퇴진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또 쿠데타를 “애국적인 군사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張勉은 수녀원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사태의 전개를 알고 있었고 16일아침 그린 대리대사와 통화도 한다(그린의 증언).그는 내각 총사퇴를 결심한 이유를 “미대사관에서 尹씨의 태도를 연락받았는데 그가 쿠데타 진압을 방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서밝혔다.그러나 張勉은 尹潽善에게 직접 연락해 쿠데타 저지를 논의하거나,최소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를 직접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尹潽善은 張勉의 행방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제2공화국을 지키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적 지향과 인적 구성 등에서 이질적이었던 민주당의 신·구파,그리고 그들의 대표격인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갈등과 대립은 갓 피어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히게 하는 크나큰 비극을 초래한다.제2공화국 붕괴의 책임을저울질한다면 張勉과 尹潽善 그 어느쪽으로도 저울추가 결코 기울지는 않을것이다. 이용원- [기고] 張勉과 尹潽善 평가 5·16쿠데타가 일어나 張勉총리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尹潽善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한 것은 두 사람의 비극적 결합을잘 말해준다.우리가 슈뢰더 독일총리는 알아도 대통령 이름은 잘 모르듯 내각책임제 아래 대통령은 명목상 존재에 불과하다.그런데도 尹潽善은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처럼 행세하다 막상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때 “올 것이 왔다”며 쿠데타를 추인해 버렸다. 尹潽善에게 쿠데타가 ‘올 것’인 이유는 자신의 파벌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당시 집권당은 한민당 후신인 구파와,재야 민주화세력인 신파의 연합으로 구성된 민주당이었다.申翼熙·趙炳玉같은 비중 있는 지도자가사망한 뒤 구파를 이끌게 된 尹潽善은 전형적인 과거형 정치가였다. 구파의 전신인 한민당은 우익민족주의 세력과 친일파 세력이 혼재한 정당이었다.UN한국위원단이 ‘보수적 지주정당’이라고 지적했듯이 해방직후 토지개혁에 반대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며,李承晩의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따라서 한민당이 李承晩과 결별하고 야당의 길을걸은 것은 이념과 정책상의 대립이라기보다 李承晩의 권력독점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한민당은 해방이후 좌익세력의 급진성과 李承晩의 독선이 낳은‘반감(反感)’이란 정치적 공간을 적절히 점유해 생존한 과거형 정당인 것이다. 4월혁명후 ‘대통령=구파,총리=신파’라는 합의 덕에 대통령에 선출된 尹潽善이,자파인 金度演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정치적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여기는 과거형 정치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대통령과 총리를 모두 차지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구파는 결국 민주당을 뛰쳐나가 신민당을 창당한다.尹潽善은대통령으로서 이런 분열적 행위를 제지하기보다는 부추기는듯한 처신을 보였고,정부를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해 張勉정부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개인과 파벌의 이익을 모든 가치보다 우선시한 행위인 것이다. 반면 신파를 이끈 張勉은 1960년대 한국상황에서는 등장이 너무 빨랐던 미래형 정치가이다.자유민주주의에의 신념과 종교적 경건함이 밴 구도자적(求道者的) 정치가인 張勉은 2000년을 눈앞에 둔 현재에도 시기상조일지 모를 정도로 선진적인 정치가였다.그는 尹潽善이 이끄는 구파의 끝없는 시비를 인내하면서,1960년 10월 제2공화국 경축식에서 말한대로 “정부의 시정목표로서경제제일주의”를 주창한 실질적이고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쿠데타 세력이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내세운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나 국토건설사업은 모두 張勉정부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실천하고자 수립한 것들이다.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경제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 張勉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 실천되었더라면 5·16이후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신화’라는 어두운 경제성장사는 ‘국민신화’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5·16후 두 사람의행보도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張勉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란 죄의식 속에 참회하다가 죽어간 반면,尹潽善은 ‘올 것이 왔다’던 쿠데타세력의 朴正熙 후보와 1963년과 67년 두 차례 대결했으나 패배했다.현실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꿈을 접었을 무렵인 1980년대에는 全斗煥 정권에 협력하다가 세상을 떠났다.쿠데타후 두 사람의 삶은 현재우리 정치의 낙후성의 한 원인을 말없이 웅변해준다. [李德 一 역사평론가·문학박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
  • 국가고시 편집실은 도심속 ‘요새’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미국보다 더 먼 곳’ 국가고시 편집실을 두고 행정자치부 고시출제과 직원들 사이에는 이런 우스개가 오간다.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시출제과는 행정고시,외무고시,기술고시,지방고시,9급 및 7급 공무원시험 등 각급 공무원 시험과 사법시험의 문제를 출제하고 관리한다.고시출제과사무실은 세종로 청사에 있다.실제로 출제 작업을 하는 편집실은 서울 종로구 창성동 합동청사에 따로 떨어져 있다. 직원들은 보통 국가고시가 치러지기 2주일 전에 편집실에 들어간 뒤 시험이 끝나는 날 오후에야 ‘풀려’나온다.올해는 모두 151일을 이곳에서 지내야한다.지난해는 146일을 ‘갇혀’있었다.휴일을 빼면 세종로청사에서 근무하는 시간보다 편집실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오히려 길다. 출제과 직원들에게는 또 하나의 가정이자 사무실이기도 한 편집실은 340평규모다.합동청사의 한 층을 모두 사용한다.편집실 안에는 먼저 출제위원들이 쓰는 심사실이 있다.이곳에는 출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3,000여권의 참고서적이비치되어 있다.또 직원들의 업무공간인 편집실,30만개의 문제카드가보관되어 있는 문제은행실,그리고 침실과 주방,휴게실 등 생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편집실의 생명은 당연히 보안이다.일반전화는 아예 없다.유일한외부와의 통신수단은 세종로청사 사무실과 연결된 인터폰 1회선이다.편집실에 들어가려면 두개의 철문을 거쳐야 한다.바깥쪽 철문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도,안쪽에서 또 하나의 철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편집실 안으로 한번 들어가면 사람이건,물건이건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나오지 못한다.시험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12명 안팎의 출제과직원과 문제지 인쇄를 맡은 업체직원 4명,그리고 이들의 건강을 책임질 주방아주머니 1명이 들어간다. 음식재료는 3∼4일에 한차례씩 밖에 있는 직원들이 공급한다.그러나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쓰레기조차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시험이 끝났다 해도 출제과장으로부터 일일이 검사를 받아야 나갈 수 있다.관련자료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시출제과 직원들은 2년반 정도마다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다.어려운 근무여건을 간부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徐東澈 dcsuh@
  • 새달 방한 英여왕 1일 숙박료 665만원

    다음달 방한하는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다이애너비가 묵었던 곳에 투숙한다. 10일 외교통상부와 호텔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우리나라를 찾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숙소로 서울 하얏트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이 확정됐다. 프레지덴셜 스위트 룸은 지난 92년 찰스 영국 황태자와 다이애너비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투숙했던 곳으로 하루 숙박료는 세금과 봉사료 포함 5,324달러(한화 665만원)이다.100평 크기에 거실,침실,욕실,식당,부엌,드레싱룸,서재,접견실 등이 딸려 있으며 남산과 한강이 동시에 보여 전망이 좋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방한했을 때 이 곳에 묵었으며 고르바초프 소련 전 대통령은 지난 95년 그린크로스 총재 신분으로 투숙했었다.또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세계적인 테너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 등 저명인사들도 이용했었다. 任泰淳 stslim@
  • 고국온 남나리 이모저모(I)

    ▒3일 고국에서 생애 첫 밤을 보낸 남나리는 4일 새벽 숙소인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 지하 2층 특설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이날 오후에는 명동 등지에서 쇼핑을 즐겼고 기자회견 등도 가졌다. 5일과 6일에는 오후 6시45분부터 ‘나리와 친구들’이라는 주제로 국내 선수 5명과 연기 시범을 갖는다.5일에는 빙상관계자 등을 초청해 신예지,정민주(진명여고 3년),진윤기(한체대 3년)와 공연한다.6일엔 일반인 400명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하며 최영은(진명여고 1년),박빛나(송파중 2년),진윤기가함께 나온다.6일 입장권은 아침 7시부터 특설링크 입구 데스크에서 1인당 2장씩 선착순 배포된다.팬사인회는 이날 오후 7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남나리는 7일 오전 10시40분 출국한다. 한편 4일 입국을 주선한 호텔 사무실에는 남나리 가족에 대한 방송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시범 공연에 대한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남나리가 고국에서 받는 예우는 외국의 장관급이다.그랜드 하얏트 호텔 의전 관계자에 따르면 남나리 가족들에게 제공되는객실과 차량,경호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외국 장관급을 넘는다는 설명.남나리 가족들이 이용하는 객실은 디플로매틱 스위트룸 1개와 일반 객실 2개.디플로매틱 스위트룸은 하루객실료만 120만원이며 서재와 거실·욕실·침실이 달려 있다. 호텔은 또 남나리 식구들이 7일 공항으로 갈때도 92년 방한한 고 다이애나영국 왕세자빈이 탔던 외제 고급승용차 롤스로이스를 제공한다.또한 호텔내에서는 자체 경호팀이 남나리를 보호하고 외부에서는 전문경호 용역회사에서 나리양을 근접 경호한다. 김경운
  • 동아건설 아파트 분양가 할인

    ◎이달말까지… 서울 3개 지역서 최고 15% 낮춰 동아건설이 서울지역에서 분양중인 답십리 8구역,상월곡동,천호동 동아아파트에 대해 이달말까지 한시적으로 5∼15% 할인판매를 실시한다. 특히 이 기간동안 계약한 계약자에게는 입주시 이사비용을 제공하며 입주 3년 후 집단장을 무료로 해주는 체인지 업 서비스(벽지,바닥재,주방가구,침실문 중에 1가지 무료시공,2가지 이상 선택시 시중가의 50% 할인)도 추가된다. 답십리 8구역 동아아파트의 경우 38평형(중간층 기준)은 당초 분양가에서 1,152만원,42평형은 2,250원을 할인 판매하고 여기에 1층과 최상층은 5%의 추가할인 해주기로 했다. 분양대금 납부방식도 종전의 계약금 20%,중도금 30%,잔금 50%에서 계약금 10%,중도금 30%,입주시 40%,나머지 20%는 입주후 6개월마다 10%씩 납부토록 했다. 이 아파트는 1,233가구의 대규모 단지로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과 장안평역이 도보로 7분거리에 있어 교통은 좋은편이며 내년 7월 입주다. 상월곡동 동아아파트도 1,531가구의 대단지며 향과 층에 따라 최고 15%까지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입주예정은 2001년 10월. 천호동 동아아파트는 526가구로 입주예정은 2000년 7월이다. 한편 올해초 용인 구성지역에서 분양한 철골조 아파트인 ‘동아 솔레시티’에 대해서도 분양가를 차등 적용할 계획으로 분양가를 조정,내년 1월중에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 딸 이불속 애인 보고 격분 폭행(조약돌)

    ◎“아버지도 피해자 쌍방 배상을” ●서울지법 민사합의16부(재판장 丁仁鎭 부장판사)는 10일 딸의 침실 이불속에 숨어있는 남자친구를 때린 아버지 李모씨(49)와 李씨에게 폭행당한 金모씨(22) 사이에 벌어진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李씨는 金씨에게 700만원을 지급하고,金씨도 李씨가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李씨가 金씨를 둔기로 때려 전치 7주의 부상을 입힌 점이 인정된다”면서 “하지만 이른 아침 딸의 방에서 속옷만 입고 숨어있는 남자를 본 李씨도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만큼 金씨도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李씨는 지난해 3월 金씨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 9월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金씨가 李씨를 상대로 소송을 내자 李씨도 아버지로서 입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맞소송을 냈다.
  • 클린턴 대선자금 ‘덫’에 걸릴까

    ◎연방지법,법사위에 ‘수사보고서’ 열람 허락/공화 불법모금 의혹 시비로 ‘탄핵 불지피기’ 중간선거의 선전으로 ‘성추문 탄핵위기’를 무사히 넘겼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공화당측이 내건 불법 대선자금 모금 의혹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미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96년 대선자금 의혹 수사에 대한 보고서를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벌이고 있는 하원법사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도록 2일 허가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 법사위는 앞서 ‘성추문’으로도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게 되자 클린턴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포함시킨 조사확대안을 통과시켰다.클린턴 대통령을 끝까지 물고늘어지겠다는 속셈이다. 열람이 허용된 보고서는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루이스 프리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해 11월24일 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제출한 수사메모와 법무부 특별수사팀이 지난 7,8월에 작성한 잠정 보고서 및 부록 등 4건.공화당측은 이보고서에 클린턴 대통령의 범법행위에 대한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대선자금 의혹이란 지난 96년 대선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민주당이 불법으로 선거자금을 모았다는 스캔들.클린턴 대통령은 현행법상 행정기관 건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10만달러 이상의 거액 헌금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이른바 ‘링컨침실’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불법 모금 다과회를 열었다는 혐의를 받았다.공화당측은 시들해진 대통령 탄핵논의에 불을 지필 수 있는 호재로 여기고 매달리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변호인단측이 즉각 위협성 ‘강경 대응’을 선언한 것도 이때문이다.성추문으로 가뜩이나 레임덕현상(임기말 권력누수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최후의 일격이 될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고종의 강제 퇴위(秘錄 南柯夢:26)

    ◎“천리 거역땐 변고”… 이완용 잇단 傳位협박/이토 사주업고 매국노들 음모 미리 눈치챈 정환덕 황제께 비밀리에 봉서/일본군,함녕전 포위하고 기관총까지 설치 위협/사면초가 고종 마침내 조칙/‘섭정’으로 일격당한 일제 강제 양위식으로 퇴위시켜 그러나 이토 미간에도 풍진이… 이토 히로부미는 역시 교활한 여우였다.‘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그는 차제에 숙원사업으로 남아있던 고종의 양위를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1907년 7월3일 먼저 고종황제에게 “음험한 수단으로 일본의 보호권을 거부하였으니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 하시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고 위협하고 3일뒤에 총리대신 이완용을 불러 “헤이그 밀사는 일본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행위이니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선전(宣戰)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협박했다.그리고나서 “당신 책임하에 고종을 양위시키시요”라고 명령했다.정환덕은 이 음모를 미리 알고 고종에게 은밀히 알려 드렸다. 하루는 강창희씨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근간에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증응 임선준 이재선 등이 한적한 곳에 모여서 비밀리에 의논하는 것을 엿들었더니 바로 전위변혁(傳位變革=황제를 바꾸는 일)음모였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극히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그러니 대감이 먼저 황제께 아뢰어 이 일을 미리 아시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일이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가 조석지간에 망하게 되었습니다.황제에게도 참화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나 이를 어떻게 하실지 걱정만 됩니다”고 하였다.그렇지만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이 마당에 이것을 알면서도 아뢰지 않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돼 드디어 글을 써 봉함하고 서상궁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 주상께서는 봉서를 보신 뒤 긴 한숨을 내쉬며 서상궁을 불러 은밀히 하교 하시기를 “이 일을 어찌 조처하면 되겠는가.정환덕에게 속히 대답하라고 일러라”하시었다. 이에 나는 상서하기를 선위(禪位)하시는 문제는 주상폐하의 확고한 용단으로 결정하실 일이며 또 이 문제는 폐하의 집안일이신지라 소신이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다만 금년 정미(丁未)년은 폐하의 역수(歷數,즉 운수)가 끝나는 해이온데 만일에 이를 거역하신다면 성상의 수명에 불리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선위하신다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우니 이런 난감한 일은 폐하께서 직접 조처하실 일이지 신이 감히 입을 열 처지가 못됩니다.참으로 황공하여 다시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 선전포고란 헛소리요,공갈이었다.고종이 이 말에 속아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이완용과 송병준이 무엄하게도 대궐의 문턱을 넘어 들어와서 “양위하셔야 합니다”고 아뢰자 호통을 치며 이를 물리쳤다. 이완용과 송병준 등 대신들은 함녕전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서 전위(傳位)문제를 주달하였다.“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지 이미 44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고 동궁 전하(융희를 일컬음)의 성년(聖年)도 벌써 40이 가까웠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상폐하께서는 동궁전하께 선위하심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중의(衆議)를 저바리지 않으시는 것으로 압니다.감히 말씀드립니다”고 하였다.이에 황제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경들은 모두 여러대에 걸쳐 나라의 두터운 은총을 받은 신자(臣子)들이다.만일 전위의 의논이 있었다면 상소를 올려도 되고 간쟁(諫爭)을 하여도 가하거늘 어찌 무두무미(無頭無尾:밑도 끝도 없이)졸지에 여러사람이 궁궐에 들어와 전위를 강권하는가.이게 무슨 도리인가.비록 경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전위문제는 짐이 먼저 알아서 할 일이다.그러나 아직 짐의 정신과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동궁의 나이 40이 가깝다고는 하나 몸이 약하고 견식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결행하지 못한 것이다.물러가 짐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가하다.절대로 강제로 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셨다.이에 이완용 등은 감히 다시 권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며칠 뒤 저들은 다시 일행을 거느리고 함녕전 대청에 들어와서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폐하께서 끝내 천리를 거역하시면 밖에서 부터 혹시 불칙한 변이 있을지 모릅니다”하였다. 이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밖에서부터 불칙한 변이 있다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하셨다.여러 사람이 소리내 주달하기를 “폐하의 운명이 이미 다 되고 하늘의 운수도 동궁에게 돌아갔으니 전하께서는 속히 전위하시어 천지신명에 따르고 옥체를 보존하는 것이 가하실 것으로 아옵니다.또 세계 열강들의 공론도 속히 전위하시는 것이 좋다고 하오니 폐하께서 빨리 용단을 내리시는 것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계공론’이라는 있지도 않은 허튼 말을 하고 있었다.이토는 이때 일본정부로부터 “저 놈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을 받고 있다고 공언하였다.다시말해 고종의 목을 베어 가져가겠다는 폭언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이토는 일본군을 동원,덕수궁 대한문을 밀고 들어가서 함녕전을 포위한 뒤 기관 총 4문을 설치하고 고종황제를 위협했다.또 남산에도 포대를 설치,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문자 그대로 전쟁상태였다.이같은 상태에서 고종황제는 마침내 조칙을 내리니 바로 1907년 7월19일 오전 3시였다. 짐이 대통을 이은 뒤 생민은 도탄에 빠지고 사직은 위태로워 망할지 모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환란과 재난이 없는 해가 없었던 것은 치안유지에 실패한 탓이었으며 짐이 부덕한 탓으로 그 화가 2천만 국민들에게 미쳤다.지금 뉘우친들 무엇하겠는가.세부득하여 동궁에게 전위한다.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성심으로 이를 고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조칙은 양위조칙이 아니었다.나라의 대사를 황태자로 하여금 대리케 한다는 섭정(攝政)조칙이었다.놀란 것은 이토였다.또 한번 고종황제에게 얻어 맞은 것이다.그는 황급히 본국으로 전보를 쳐 일왕이 고종의 양위를 축하한다는 전보를 치게했고 이튿날 오후 중화전에서 양위식을 거행하였다.그뒤 고종과 순종은 덕수궁과 창덕궁으로 격리돼 떨어져 살게 되었다. 대체로 태상황(고종)께서 신황제(순종)와 식탁을 같이 하고 침실을 함께 하신지 34년이다.그런데 하루 아침에 서로 떨어져 사시게 되었으니 부자간의 정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이토의 하수인으로 공을 세운 이완용은 대한제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인사행정을 자행하였으니 그 여독은 오늘에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신황제가 즉위한 뒤 개각을 단행했으나사실은 모두 저들이 멋대로 조각한 것이었다.총리대신에 이완용,내부대신에 송병준,탁지부대신에 고영희,군부대신에 이병무,궁내부대신에 이재선,외무대신에 조중응 그밖의 경무사(警務使)와 13도 장관,360주의 군수들까지 모두가 저들의 친족들과 인아(사돈),그리고 사돈의 사돈까지 줄줄이 차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토는 고종 황제에게 이겼다고는 볼 수 없다.정환덕이 이토의 관상을 보았는데 그의 양미간에 풍진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몇해전 이토가 조선통감으로 부임했을 때 잠시 돈덕전(敦德殿)에서 보았는데 겉으로는 영웅같이 보였으나 가슴속에 끝없는 흉계를 갖고 있었고 양미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풍진(風塵)이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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