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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군, 오늘 독도방어훈련 돌입…“명칭은 동해영토수호훈련”

    해군, 오늘 독도방어훈련 돌입…“명칭은 동해영토수호훈련”

    군이 25일 그동안 미뤄왔던 올해 독도방어훈련에 전격 돌입했다. 동해영토수호훈련으로 명명된 이번 독도방어훈련은 2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해군은 이날 문자 공지를 통해 “오늘부터 내일까지 동해 영토수호훈련을 실시한다”면서 “훈련에는 해군·해경 함정과 해군·공군 항공기, 육군·해병대 병력 등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해군은 이어 “군은 독도를 비롯한 동해 영토수호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훈련 의미와 규모를 고려하여 이번 훈련명칭을 ‘동해영토수호훈련’으로 명명해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카다즈·KADIZ)를 무단 진입하고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가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한 데 대해 우리 군이 경고 사격을 가했었다. 당시 한국 정부의 항의에 러시아 정부는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발뺌했고 일본은 “자국 영토인 독도 영공에 침범한 데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과 러시아에 항의, 자위대를 긴급 발진하기도 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2000자 인터뷰 26] 김동엽 “지소미아 종료 결정, 복안 세워 나온 거라고 믿고파”

    [2000자 인터뷰 26] 김동엽 “지소미아 종료 결정, 복안 세워 나온 거라고 믿고파”

    미국이 한국 정부에 10년을 매달린 끝에 2016년 11월 맺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청와대가 22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해 24일 종료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3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원칙과 일관성을 지킨 결정”이라면서 “미국의 대중국 동아시아 전략 가운데 한 축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할 수 있어 문재인 정부가 파장을 감당할 복안을 세우고 수를 두고 있다고 믿고 싶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처음으로 내지른 자주적 입장이라며 반기는 반면, 우리 정부가 조국 후보자 파문 등 국내 정치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Q. 지소미아 협정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또 종료 결정은 어떤 파장을 낳을까? A.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군사정보를 공유해 실익을 취하려는 차원에서 시작한 협정이 아니었다. 미국은 중국 포위전략(인도태평양전략)의 동쪽 축인 미국-일본-한국의 위계적 군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화를 지지하고 한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역사적으로 위안부협정, 군사적 고리로 지소미아 협정을 체결하라고 밀어붙였다. 아울러 한국의 진영 이탈을 방지하고자 대못을 박은 것이 사드 배치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가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어질러 놓은 세 가지 오물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잘 치웠어야 적폐 청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물을 치우지 못하고 뒤집어썼다. 사드 배치는 그대로 강행했고, 위안부 등 역사 문제로 지금의 한일관계는 나빠졌고, 마지막으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적지 않게 작용하는 등 지난 정권의 오물을 다 뒤집어쓴 형국이다. Q.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두 나라는 군사정보를 주고받을 근거가 사라진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A. 누가 그런 터무니 없는 얘기를 퍼뜨리는지 모르겠다. 이 협정은 교환되는 군사정보의 내용과 양, 질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된 정보의 관리 책임을 상대에게 명확히 하는 것이 골자였다. 즉 그 정보로 다른 짓을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다. 지소미아가 없을 때도 여러 국가와 군사 관련 업무 교류를 했고 정보 교환도 했다. 그 때마다 정보 보호에 필요한 추가 조항이나 첨부 문서를 붙여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지소미아는 이런 번거로움을 없애고 더욱 원활한 정보교류를 위해 사전에 1년짜리 각서를 받아둔 것이다. 이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건건이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비슷하다. Q. 협정 종료 결정이 불러올 파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A. 당장 미국 정부 관리들이 우리 쪽의 사전 설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국제 정세를 돌아보면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 역력한데 단순히 심기가 불편한 수준을 뛰어넘어 전략적으로 한국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바뀔 수도 있는 휘발성을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을 넘어 미국의 안보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문제를 확산시켰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난번 러시아 전투기의 독도 상공 침범 때 일본이 되레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그래, 미국 너희 뜻대로 되나 보자”라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일각에서는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빈 틈을 중국이 파고들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그런 모든 파장을 감당할 복안을 세우고 수를 둬가고 있다고 믿고 싶을 따름이다. Q. ‘지소미아 문제로 조국을 덮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온다. A. 잘해봐야 본전인데 반일 감정과 믿었던 이에 배신당한 감정이 충돌했을 때 국민들은 결국 배신과 상실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빨리 깨달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으까봐 걱정이다. 시민과 시민사회는 순수하게 반응하는데 정부가 이번 결정을 내년 총선용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점에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 시점에 난, 국면 탈피라거나 물타기라고 믿고 싶지 않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 정장(대위)이었던 윤영하 소령은 253편대 기함인 358호정과 함께 기습도발을 감행하던 북한 경비정 차단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1.1㎞가량 침범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참수리 357호정과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고, 참수리호의 좌현이 노출됐습니다. 이때 북한군이 갑자기 85㎜포로 기습공격을 했습니다. 150m 거리에서 날아든 포탄에 순식간에 357호정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함교에 올라와 있던 윤 소령은 즉각 대응사격 명령을 내렸지만 연이어 날아든 총탄에 피격돼 안타깝게 산화했습니다. 당시 참수리호 함교는 지붕과 벽면이 없었기 때문에 윤 소령의 위치가 그대로 노출됐고 적의 집중적인 사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함교 아래 조타실에서는 조타장 한상국 상사가 치열한 교전 과정에 가슴에 흉탄을 맞았습니다. 그는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상태로 숨을 거뒀습니다.적의 포화는 20㎜ 벌컨포 사격을 맡은 병기사 황도현 중사에게도 집중됐습니다. 그는 포탄 파편이 머리 쪽으로 날아드는 순간에도 몸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모습 그대로 발견돼 동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40㎜ 함포로 적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던 병기사 조천형 중사도 좌석에서 화재로 숨지는 순간까지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M60 기관총으로 사격하던 서후원 중사는 적함의 저격수에게 희생됐습니다.●희생 장병들 방아쇠 놓지 않고 끝까지 응전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내달렸고 서 중사가 쓰러지자 직접 M60 기관총을 붙들고 응사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다시 총탄이 쏟아졌고 온몸에서 100여개의 총탄과 파편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다 출혈로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인공호흡기와 수많은 의료기기를 단 상태로 사투를 벌인 박 병장은 결국 84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함께 반격하는 358호정은 그대로 두고 집요하게 357호정만 공격해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윤 소령을 포함한 모든 장병이 목숨을 걸고 반격해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권기형 상병은 왼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황창규 중사는 적의 기습공격으로 40㎜ 함포의 전원 장치가 손상되자 수동 사격으로 전환해 적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부장(중위)이었던 이희완 중령은 지휘관인 윤 소령이 전사하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이들의 분전으로 적함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갑판이 대부분 부서진 채 NLL 북쪽으로 퇴각했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은 적과의 교전에서 큰 상처를 입고 결국 침몰했습니다. 조타장 한 상사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357호정 조타실에서 발견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함정 추진 방식 프로펠러→워터제트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오후 8시에 열리는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6용사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윤영하 소령, 박동혁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뉴스로 보거나 영화로 봤던 ‘제2연평해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분전과 헌신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 대응지침(교전수칙)은 ‘경고방송 →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였습니다. 이것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등 3단계로 단순화됐습니다. 단계별 조치를 취하다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호의 교훈을 되새기는 의미였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서해 NLL의 경비는 130t급의 참수리 고속정(PKM)이 맡았지만, 지금은 40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검독수리(230t)급 신형 고속정(PKMR)이 맡고 있습니다. 검독수리급 고속정은 76㎜ 함포와 130㎜ 유도로켓을 장착해 원거리에서 북한 경비정을 타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함교를 함 구조물 내부로 넣어 정장이 비바람은 물론 적의 표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외관 구조를 대폭 개선했습니다. 또 윤영하함(400t)급 유도탄고속함은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선체에 76㎜ 함포와 대함유도탄을 장착했습니다. ‘프로펠러’로 기동하던 함정의 추진 방식도 ‘워터제트’로 바꿔 기동력을 높였습니다. 새로 건조된 유도탄고속함에는 윤 소령을 포함한 6용사의 이름이 차례로 붙여졌습니다.●16년 지난 작년에야 특별법으로 전사자 예우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일반순직’으로 처리됐습니다. ‘전사자’를 전사자로 부르지 못하고 ‘순직자’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당시 ‘군인연금법’에는 ‘전사’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었고,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무상 사망’ 보상기준에 따라 1인당 3000만~6000만원의 보상금을 제공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에서 돈을 줄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후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군인연금법에 ‘전사’에 대한 보상기준을 신설했지만 정작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유족에게 추가 보상금(1인당 1억 4400만~1억 8400만원)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이제야 도리를 다하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 해군 관계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으로 보상제도 등 군 체계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라며 “군은 피를 흘리면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전사하신 분들의 아픔이 너무 컸다”고 토로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직전 윤 소령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남긴 갚진 유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변화무쌍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대됐고, 중국과 러시아 공군은 한반도 지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훈련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이 와중에 미중이 홍콩 사태를 놓고 격돌하는 형국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동아시아에서 가까스로 유지됐던 하나의 전략적 질서(strategic order)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 복잡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잡아 갔던 그 질서를 전문가들은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라고 부른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다. 키신저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철천지원수로 지냈던 양국의 극적인 화해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 그리고 1978년 미중 수교의 토대가 됐다. 미국은 중소 분쟁의 틈을 노려 중국과 손을 잡고 일거에 힘의 균형을 역전시켰다. 소련 붕괴과 냉전체제의 종식은 키신저 외교(세력균형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동아시아에서 40년간 유지됐던 키신저 질서의 핵심은 미중 간 협력체제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분업체제의 틀 속에서 중국은 경제개발에 나섰고, 중국은 그 대가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지배적ㆍ군사적 우위를 인정했다.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의 국제분업 체제 편입의 최종 선포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패권 도전,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전방위 공세는 구질서 붕괴를 초읽기로 몰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미중 관계(키신저 질서)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트럼프가 경제전쟁의 총구를 겨누며 미중 협력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프랭크 로즈 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년간 대화를 통해 중국을 자유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던 키신저 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제는 키신저 질서를 대체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현실화되면서 동아시아 전역이 혼돈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패권 유지 비용은 고스란이 동맹국에 전가하는 트럼프 정책 때문에 동맹국들의 비명은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던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조차도 “동맹 내 공조를 무시하는 트럼프 정권의 외교적 접근이 동맹 균열을 초래한다”며 날 선 비판을 토해 낼 지경이다. 최근의 한일 관계 역시 직간접으로 키신저 질서 붕괴와 연관이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한일 관계의 핵심은 미국 주도의 국제분업 체제에서 미국은 군사안보,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을 후견하는 체제였다. 전후 냉전 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었다. 식민지 지배를 포함한 과거사 청산에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동북아 냉전의 전진기지로서 한국을 활용하겠다는 미국의 구상과 일본의 지지, 그리고 경제자금이 시급한 박정희 정권의 조급함이 빚은 결과다. 그동안 정경 분리 원칙 속에서 그럭저럭 한일 관계가 유지됐지만 최근 아베 정권은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관철되지 않자 급기야 수출 규제라는 최악의 강수를 던진 것이다. 한일 간 경제분업 체제 속에서 부품·소재를 장악한 일본이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부상을 막겠다는 얄팍한 계산도 숨어 있다. ‘65년 체제’ 극복은 새롭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시아 맹주를 꿈꾸는 아베 정권의 극우 성향에 비춰 참으로 어려운 길이지만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 선언은 올바른 양국 관계 재정립의 시금석이 될 수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현재의 안보 문제로 전이시킨 상황에서 양국의 안보협력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양국은 미래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할 운명이지만, 지금 현재는 전쟁을 도발한 아베 정권의 무도함에 대한 대한민국의 결기와 의지를 보여 줘야 하는 시점이다. oilman@seoul.co.kr
  •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변화무쌍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대됐고, 중국과 러시아 공군은 한반도 지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훈련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이 와중에 미중이 홍콩 사태를 놓고 격돌하는 형국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동아시아에서 가까스로 유지됐던 하나의 전략적 질서(strategic order)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 복잡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잡아 갔던 그 질서를 전문가들은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라고 부른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다. 키신저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철천지원수로 지냈던 양국의 극적인 화해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 그리고 1978년 미중 수교의 토대가 됐다. 미국은 중소 분쟁의 틈을 노려 중국과 손을 잡고 일거에 힘의 균형을 역전시켰다. 소련 붕괴과 냉전체제의 종식은 키신저 외교(세력균형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동아시아에서 40년간 유지됐던 키신저 질서의 핵심은 미중 간 협력체제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분업체제의 틀 속에서 중국은 경제개발에 나섰고, 중국은 그 대가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지배적ㆍ군사적 우위를 인정했다.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의 국제분업 체제 편입의 최종 선포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패권 도전,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전방위 공세는 구질서 붕괴를 초읽기로 몰아갔다. 트럼프는 기존의 미중 관계(키신저 질서)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전쟁의 총구를 겨누며 미중 협력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프랭크 로즈 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년간 대화를 통해 중국을 자유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던 키신저 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제는 키신저 질서를 대체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현실화되면서 동아시아 전역이 혼돈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패권 유지 비용은 고스란이 동맹국에 전가하는 트럼프 정책 때문에 동맹국들의 비명은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던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조차도 “동맹 내 공조를 무시하는 트럼프 정권의 외교적 접근이 동맹 균열을 초래한다”며 날 선 비판을 토해 낼 지경이다. 이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따라 저마다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최악의 상황에 돌입한 한일 관계 역시 직간접으로 키신저 질서 붕괴와 연관이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한일 관계의 핵심은 미국 주도의 국제분업 체제에서 미국은 군사안보,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을 후견하는 체제였다. 전후 냉전 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었다. 전승국 지위를 얻지 못해 식민지 지배를 포함한 과거사 청산에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동북아 냉전의 전진기지로서 한국을 활용하겠다는 미국의 구상과 일본의 지지, 그리고 경제자금이 시급한 박정희 정권의 조급함이 빚은 결과인 것이다. 정경 분리 원칙 속에서 그럭저럭 한일 관계가 유지됐지만 최근 아베 정권은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관철되지 않자 급기야 수출 규제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한일 간 경제분업 체제 속에서 부품·소재를 장악한 일본이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부상을 막겠다는 얄팍한 손익계산도 숨어 있다. ‘65년 체제’ 극복은 새롭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아시아 맹주를 꿈꾸는 아베 정권의 극우 성향에 비춰 어려운 길이지만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협력의 미래로 나가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ㆍ오부치 선언 등 과거사 극복을 위한 노력들을 토대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oilman@seoul.co.kr
  •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양화진과 선유도’ 편이 지난 17일 오후 6시부터 2시간여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화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 네 번째 순서였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절두산 가톨릭 순교성지와 양화진 역사공원을 거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둘러봤다. 이동시간을 단축하려고 시내버스를 이용,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공원에 내렸다. 수질정화원-선유정-녹색기둥의 정원-수생식물원-시간의 정원-전망대 순서로 어둠이 내려앉은 한강 한가운데 섬을 걸었다. 이번 코스의 서울미래유산은 양화대교와 선유도공원 2곳이다. 가까이 있지만 먼 양화진과 선유도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참석자들의 기대와 호응이 높았다. 선유정과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18세기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야간 버전인 듯했다. 선유도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양화대교~서강대교~성산대교 사이에 펼쳐진 서울의 서쪽을 맘껏 조망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새 답사코스를 개발한 덕분이다.양화진은 기독교를 양분하고 있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대 종파의 공동 성지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수난을 상징하는 절두산 순교자기념관과 개신교 개척 선교사들의 요람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이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두 성역의 중심부에서 절묘한 균형추를 잡고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양화나루터를 지키던 옛 군사기지 터에 조성됐다. 본래 양화진은 서울~인천, 서울~강화도 두 바닷길을 잇는 길목이었다. 또 세금으로 바친 곡식을 실은 세곡선의 검문소이자 선유봉과 잠두봉이 연출하는 절정의 뱃놀이 명소이기도 했다. 새남터(이촌동)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기에 죄인을 처형하거나 죄인의 시신을 전시했다. 1884년 갑신정변 ‘삼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이 능지처참을 당한 바로 그곳이다.1866년(고종 3) 제1차 병인양요 때 서울을 침범한 프랑스 함대가 정박한 양화진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잠두봉은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에서 절두산이라는 섬뜩한 이름이 붙었다. 무려 2000여명이 이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966년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매입한 뒤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 사적지로 조성했다. 1976년 이래로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 와 안치했다. 절두산성지 내에는 관련 사료와 유물, 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 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성당은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및 국립극장, 경주박물관 등 종교건축과 문화시설을 주로 지은 건축가 이희태의 작품이다. 기념관은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세워졌는데 원반 모양의 지붕은 선비의 갓을, 6m 높이의 종탑으로 구멍이 뚫린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 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 늘어뜨린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성당은 부대시설과 장식을 일절 배제했다. 언덕 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3인이 묻힌 한국 개신교의 성소다. 서울시내에 유일한 이국적 풍경의 외국인 묘역이다. 1885년 4월 5일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를 태운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이틀 전 일본 나가사키를 출항, 부산에 도착한 뒤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고 돌아 제물포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은 한국 개신교의 공식 선교일이다. 갑신정변 직후여서 파란 눈을 가진 목사의 서울 입성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결국 아펜젤러 부부는 일본으로 되돌아갔고, 독신 언더우드는 서울에 들어온 첫 목사로 기록됐다.언더우드는 제물포선착장(올림푸스호텔)-인천도호부(문학초등학교)-성현(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 앞)-성곡(부천시 여월동)-고음월리(신월IC)-양화진(인공폭포)-애오개(아현감리교회)-돈의문(강북삼성병원 앞)-제중원(을지로입구)을 거쳐 사대문 입성에 성공했다. 직선거리 45㎞에 이르는 이동경로는 오늘의 경인로라고 보면 된다. 최초의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6월, 아펜젤러는 7월 뒤이어 입경했다. 언더우드는 새문안교회와 경신학교,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다. 아펜젤러는 배제학당과 정동교회,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각각 설립했다. 이들 외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호머 헐버트, 대한매일신보 설립자 어니스트 베델,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으로 결핵요양원을 세우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 삼일만세 사건을 처음 보도했고 행촌동에 딜쿠샤를 남긴 앨버트 테일러 등 모두 14개국에서 온 415명의 선교사와 가족이 잠든 곳이다. 양화대교 중간에 배 모양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선유도는 원래 40m 높이의 선유봉이었고 주변은 더 넓은 모래벌판이었다. 선유봉의 운명은 기구했다. 네 번의 윤회를 통해 변신을 거듭했다. 우뚝 솟은 봉우리에서 채석장으로 변했고, 다시 정수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첫 변화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한강변에 둑을 쌓으면서 골재 채취용으로 크게 훼손당됐다. 두 번째는 여의도비행장 건설 때 모래와 자갈을 내어 주는 골재 공급처로 쓰여 망가졌다. 1945년 해방 이전에 봉우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됐다. 해방 이후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또 선유봉 암반을 깎았는데 이때 선유봉은 평지로 변했고, 1965년 이 자리에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놓였다. 1968년 시작된 제1차 한강개발사업은 선유봉을 섬으로 만들었다. 주변에 7m의 옹벽을 치고, 섬과 한강 남단 사이에 있던 모래를 모두 퍼내 강변북로를 만들었다. 결국 1978년 영등포 공단지대의 식수공급용 정수장으로 둔갑했다. 2002년 4월 정수장을 재활용한 한강 최초의 섬 공원이자 국내 최초의 산업시설 재활용 생태 공원이 돼 시민 곁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당인리발전소와 함께 개발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산업시설로 존재했다.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 일제강점기의 골재 채취장, 1970~90년대 정수장이라는 변신을 겪은 공간은 생태공원으로 네 번째 삶을 맞았다. 선유도 전망대에 올라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붉은 아치의 성산대교가 나타난다. 다리 너머엔 난지 하늘공원, 남쪽에는 목동, 북쪽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에는 양화대교와 합정동의 마천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한강공원에서 선유교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선유도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고, 선유정 정자 맞은편은 누에머리 모양의 옛 잠두봉 절두산 성지다. 조명을 받은 망원정도 눈에 들어온다.자갈과 모래로 채워졌던 제2여과지는 상판을 들어내고 주차장으로, 약품침전지는 부레옥잠이나 연꽃 같은 수생식물을 키우는 식물원이 됐다. 제1여과지는 선유도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하천이나 늪지에서 자라는 습지식물이 콘크리트 그릇에 담겨 있다. 시간의 정원은 제1침전지였고, 침전지의 상부 수로는 수생식물 정원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물길로 꾸며졌다. 취수펌프장은 한강을 조망하는 카페테리아 나루가 됐고, 전망대를 뚫고 나온 미루나무는 생명과 바람의 존재를 실감 나게 한다. 선유도공원은 물과 회색 콘크리트와 녹색식물의 합작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선유봉의 네 번째 환생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8차 서울의 영화3(이만희 감독의 귀로) ■일시 및 집결 장소:8월 24일(토) 오후 5시 시청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정기석의 환경과 우리몸] 폭염과 식중독

    [정기석의 환경과 우리몸] 폭염과 식중독

    해가 갈수록 여름이 더 뜨겁고 길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더운 날씨는 각종 음식물의 부패를 촉진하므로 여름철은 각별히 식중독을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다. 식중독이란 식품 또는 물을 섭취했을 때 인체에 유해한 미생물이나 미생물이 만들어 낸 독소로 생기는 감염성 또는 독소형 질환이다. 우리나라는 날것을 즐겨 먹는 식문화 때문에 여름철 식중독에 더 취약하다. 높은 기온이 지속되면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식재료와 음식 보관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식중독균이 가장 빨리 번식하는 온도는 섭씨 35~36도 전후로 냉방이 미치지 않는 장소의 여름철 온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식품을 방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중독균과 독소로 범벅이 된다. 폭염은 지상의 기온뿐만 아니라 바닷물의 수온도 상승시킨다. 3년 전 우리나라에는 후진국 병의 대표격인 콜레라가 15년 만에 발생했다. 당시 필리핀과 예멘 등 해외에서 콜레라의 발생과 국내 유입 보고는 있었지만 국내에서 자체 발생한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다. 당시 거제도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다행히 소규모에 그치고 소멸됐지만 두 가지 요인이 대두됐다. 폭염에 의한 해수온도의 상승이 콜레라균의 번식을 촉진시킨 것과 당시 중국 양쯔강에 대홍수가 발생한 것이었다. 중국의 홍수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콜레라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했을까? 비브리오 콜레라균은 바다에 살지만 흥미롭게도 짠 바닷물보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을 더 좋아한다. 양쯔강의 홍수로 중국 상하이를 빠져나온 강물이 남해안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뜨거운 바닷물에 염도마저 낮춘 것이 콜레라균이 창궐하게 한 요인이 된 것이다. 이같이 환경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예기치 않은 병을 발생시킨다. 해수온도가 18~20도 이상 상승할 때 잘 자라는 대표적인 식중독균으로 장염 비브리오균이 있다. 장염 비브리오균은 구토, 설사와 같은 일반적인 식중독에 그치지만, 비브리오 불니피쿠스라는 균은 혈액을 파고들어 패혈증을 일으키며 치사율이 30~50%로 매우 심각하다. 이 균은 어패류를 먹어서 오는 것뿐만 아니라 피부에 상처 난 부위를 통해서도 침범하며 만성간질환이나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는 분들이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해수의 비브리오균 농도를 정기적으로 측정하여 식중독 예방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행히 치료제가 있으니 바다에 다녀와서 발열과 하체에 물집이 생기면 즉시 병의원을 찾아야 한다.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음식의 조리, 보관 과정에서 균이 자라거나 독소가 축적될 여지를 없애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끓이거나, 굽는 등 가열을 하여 섭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섭씨 4도에서 60도 사이 온도에서 증식한다. 따라서 음식물을 보관할 때는 뜨거운 음식은 60도 이상, 찬 음식은 4도 이하로 유지하면 식중독 예방에 도움이 된다.
  • 면역력 떨어지는 환절기, 스트레스 많은 3040에도 포진하는 너!

    면역력 떨어지는 환절기, 스트레스 많은 3040에도 포진하는 너!

    무더위가 수그러들며 낮과 밤의 기온 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환절기가 다가오고 있다. 환절기에는 몸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몸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활성화돼 대상포진에 걸리기 쉽다. 대상포진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뇌수막염, 실명, 안면마비, 청력손실, 근력저하와 같은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어 특히 노약층은 더 주의해야 한다. 18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상포진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4년 64만명에서 2018년 72만명으로 12.4%(연평균 3.0%)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지난해 50대 환자(24.5%)가 가장 많았고 60대(21.1%), 40대(15.7%) 등 주로 중고령층 환자의 비중이 컸다. 하지만 20~30대 젊은 환자(약 18%)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상포진은 흔히 중고령층이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젊은 환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30대(4.0%), 40대(3.6%)가 전 연령대를 통틀어 인구 10만명당 연평균 증가율이 가장 높다.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조정구 교수는 “면역력 저하를 일으키는 스트레스가 30~40대에 더욱 커짐에 따라 대상포진 증가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상포진은 매우 심한 통증이 있는 수포(물집)가 군집돼 띠 모양의 분포를 보이며 발생하는 바이러스 질환이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따라 내려가면서 한쪽 방향으로 피부 병변이 나타난다. 어렸을 때 수두를 앓으면 수두를 일으켰던 수두 바이러스가 없어지지 않고 신경 속에 오랜 기간 잠복한다. 그러다 스트레스, 과로, 당뇨 같은 만성 질환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이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한다. 바이러스는 처음 수두를 일으켰을 때와 달리 자신이 숨어 있던 신경에 손상을 줘 감각저하, 신경병성 통증, 이상감각을 일으키며 그 신경을 타고 나와 피부에 발진, 수포 등을 일으킨다. 대상포진의 특징은 피부병변보다 통증이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경통이나 오십견 등으로 오인하는 일이 많다. 처음에는 파스를 붙이고 생활하다 이상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통증은 따가움, 찌르는 듯한 통증, 찌릿함, 쑤심, 타는 듯한 느낌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중앙대병원 피부과 김범준 교수는 “얼굴에 대상포진이 발생하면 두통으로 생각하기 쉽고 옆구리에 발생하면 요로결석이나 담석으로, 사지를 침범하면 몸살, 근육통, 디스크 등으로 오해하기 쉽다”며 “몸의 특정 부위에 국한적으로 통증이 발생하거나 살이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최근 피로하거나 무리한 후 발생했다면 대상포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피부 병변이 나타나기 4~5일 전부터 동통(쑤시고 아픈 증상), 압통, 감각이상이 발생하고 가벼운 자극에도 과민 반응이 나타나며 극히 일부에서 두통, 권태감, 발열 등이 동반될 수 있다. 통증이 나타나고서 1~10일이 지나면 피부 반점과 물집이 생기고 점점 뭉치면서 띠 모양이 된다. 1~2주 후에 껍질이 딱딱해져 딱지가 떨어진다. 피부 병변이 클수록 환자는 더 심한 통증을 느낀다. 특히 고령 환자가 더 심각한 통증을 호소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오상호 교수는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더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려움 혹은 별 통증을 못 느끼는 환자도 있다. 발병 부위에 따라 가슴통증, 복통 등을 호소하기도 하며 감각 신경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운동 신경이 마비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간혹 안면신경 마비나 항문 부위에서는 배뇨장애가 나타나며 일시적으로 사지의 힘이 빠지기도 한다. 대상포진이 꼭 피부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점막과 폐, 간, 뇌와 같은 내부 장기에도 나타날 수 있다. 경희대병원 피부과 신민경 교수는 “안구 신경에 대상포진이 발생하면 포도막염과 각막염, 결막염, 망막염, 시신경염, 녹내장, 안구돌출, 외안근 마비 등을 동반할 수 있으며 청(聽)신경을 침범하면 이명, 안면마비, 귀 통증 등이 발생하고 전정기관에 나타나면 현기증과 감각신경성 난청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심한 합병증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다. 김 교수는 “대상포진 피부 병변이 치유되고 나서도 바이러스에 의해 신경세포가 파괴돼 신경에 상처를 남겨 ‘포진 후 신경통’이 남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신경통은 몇 주나 수개월, 혹은 수년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 김 교수는 “40세 이하에서는 비교적 드물지만 60세 이상에서는 환자의 50% 정도에서 발생한다”며 “통증 외에도 수면장애, 만성통증에 따른 피로, 우울증 등이 동반될 수 있어 진통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통증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상포진을 예방하려면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고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예방접종도 효과가 있다. 60세 이상 성인 3만 90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임상실험을 한 결과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한 집단이 위약(가짜 약)을 사용한 집단보다 대상포진 발생 빈도가 51.3% 감소했다. 중앙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신화용 교수는 “예방접종 자체가 대상포진의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행하는 것을 66.5%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60대에 접종하면 약 60%의 예방 효과가 있다. 그러나 70대가 되면 40%, 80대가 되면 20%로 떨어진다. 적지 않은 예방접종 비용을 고려하면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60대에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 대상포진은 전염성이 약하지만 환자로부터 수두가 전염될 수 있다. 특히 대상포진 발생 후 일주일까지는 물집이나 고름에서 바이러스가 분리돼 나올 수 있어 환자와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정부청사 부지’ 배제 검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정부청사 부지’ 배제 검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과정에서 행정안전부와 갈등을 빚는 서울시가 정부서울청사 구역을 제외하는 쪽으로 계획안을 수정할지 관심이 모인다. 최근 시가 우회도로를 만들 때 행안부가 관리하는 정부서울청사 부지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13일 박원순 시장 주재로 진희선 행정2부시장, 강맹훈 도시재생실장, 김원이 정무부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이 제시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당초 서울시는 경복궁 광화문 앞 ‘티(T)자’ 도로 상단의 ‘일(一)자’ 부분인 사직로~율곡로 구간을 폐쇄하고 율곡로에서 종로1길로 꺾어 사직로8길과 새문안로5길로 이어지는 ‘유(U)자’ 우회도로를 만들어 광화문 앞 일대 도로를 ‘와이(Y)자’ 형태로 조성하는 안건을 추진해 왔다. 이럴 경우 정부청사 후문 민원실 일대 부지가 도로에 포함된다. 이를 두고 행안부 측에서 난색을 표하면서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행안부는 지난달 30일과 지난 9일 두 차례 서울시에 전반적인 사업 일정 조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시가 실무진 대면 협의 자리를 만들려고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미뤄졌다. 서울시는 행안부와의 협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 한편 정부청사 부지는 시가 강제수용할 수 없는 땅인 만큼 끝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때는 우회도로의 폭을 줄이거나 도로 형태를 변경해 해당 부지를 침범하지 않는 방안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교통체증 등 시민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모든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것일 뿐 계획 변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시 관계자는 “행안부가 시민과의 소통 부족과 여러 실무적 어려움을 제기하는 만큼 실무자끼리 만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해야 해법이 나오지 않겠나”라면서 “지난주에는 행안부가 일정이 안 된다고 해서 이번 주에 만나 실무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생명 위협까지 느끼는 ‘칼치기 운전’ 처벌 못 하나

    생명 위협까지 느끼는 ‘칼치기 운전’ 처벌 못 하나

    가해자, 항의한 상대방 가족 앞에서 폭행 유사 피해 경험자들 강한 처벌 요구 빗발 2년 동안 집중 단속해도 1만 3780건 발생 벌금형이나 약식기소 그치는 경우 대부분 “고속도로에선 인지 어려워 적극 신고를”‘칼치기 운전’(차와 차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불법 주행)에 항의하는 상대를 보복 폭행한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이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평범한 운전자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난폭운전 피해를 당해 본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자신의 피해담을 올리며 제주 사건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경찰이 2년 전부터 난폭·보복운전을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도로 위 무법자’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카니발 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18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폭행 가해자 A(33)씨에게 난폭운전 혐의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4일 발생한 이 사건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졌다. 카니발 승합차 운전자 A씨는 당시 제주시 조천읍 도로에서 칼치기 주행하던 중 뒤에서 차를 몰던 B씨가 항의하자 차에서 내려 B씨를 폭행하고 휴대전화를 집어던진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차량에는 B씨의 아내뿐 아니라 두 아이도 타고 있어 아빠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애초 경찰은 A씨에게 폭행과 재물손괴 혐의만 적용하려 했으나 “난폭운전으로 처벌하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더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여론이 들끓는 건 도로 위에서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운전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칼치기 등 난폭운전자로부터 위협당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 대형차가 칼치기해 들어오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거나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켜기는커녕 오히려 경적을 울리면서 칼치기해 사고 날 뻔했다”는 등의 피해 경험을 공유한다. 가해차량 탑승자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해 8월 뮤지컬 연출가 황민씨가 음주 상태로 칼치기 운전을 하다가 25톤 화물차를 들이받아 동승자 2명이 사망했다. 황씨는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2016년부터 난폭운전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2016년 개정된 도로교통법 조항이 처벌 근거다. 법에 따르면 신호 및 지시 위반, 중앙선 침범, 앞지르기 방법 위반 등 법이 금지한 9가지 행위를 지속·반복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만들면 처벌받는다. 법이 정한 처벌 수위는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인데 보통 벌금형이나 약식기소에 처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년간(2017~2018년) 난폭운전 발생 건수는 1만 3780건이었다. 같은 기간 보복운전도 8835건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암행 순찰차로 난폭운전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고속도로 등에서 이뤄지는 칼치기 운전은 경찰이 직접 인지하기 쉽지 않다”면서 “피해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근거로 국민신문고 등에 적극적으로 공익신고해 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동영상] 새떼와 충돌한 러 여객기 동체착륙 모두 무사한데 당국 “범죄 조사”

    [동영상] 새떼와 충돌한 러 여객기 동체착륙 모두 무사한데 당국 “범죄 조사”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서 15일(현지시간) 이륙 직후 동체 착륙한 국내선 여객기는 새 떼와 충돌,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비상 착륙했는데 새들이 엔진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과 동체 착륙 직전과 직후 모습을 담은 승객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70여명이 다쳤으나 사망자가 없는, ‘라멘스크의 기적’을 연출했다고 조종사 등을 칭송하는 분위기인데 러시아 수사 당국은 안전 조치를 다했는지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날 아침 크림반도의 심페로폴로 가기 위해 모스크바 동남쪽 쥬코프스키 공항을 이륙한 에어버스 A321 여객기가 이륙 직후 갈매기 떼와 충돌했다. 우랄 지역 예카테린부르크에 본사를 둔 ‘우랄항공’ 여객기에는 승객 226명과 승무원 7명 등 모두 233명이 타고 있었다. 새들이 양쪽 날개의 두 엔진에 모두 빨려 들어가면서 하나의 엔진에 화재가 발생했고 다른 엔진도 고장을 일으켰다. 다행히 불이 동체로 옮겨붙지는 않았다. 기장은 곧바로 동체 착륙을 결정하고 엔진을 모두 끈 뒤 착륙기어를 내리지 않은 채로 활주로에서 약 1km 떨어진 옥수수밭에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켰다. 그 뒤 승객들은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아 비상 트랩을 이용해 서둘러 탈출했다.현지 재난의료센터는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75명이 부상했으나 대다수는 타박상 등 간단한 치료만 받고 퇴원했으며 한 명만 계속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장의 민첩한 대응과 성공적인 착륙으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2009년 이륙 직후 허드슨강에 무사히 동체 착륙한 US 항공 여객기의 기적이 재현됐다고 반겼다. 한 승객은 현지 언론에 “기장이 상당히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를 아주 잘 착륙시켜 모두가 살아남았다”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많은 네티즌들도 여객기를 성공적으로 착륙시켜 수많은 승객의 목숨을 구한 조종사들을 칭찬하는 글을 올렸으며, 일부 네티즌은 조종사들에게 상을 주자는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이 사고와 관련해 범죄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dpa 통신이 전했다. 연방수사위원회는 항공사 측의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는 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비행기 동체가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보통 새떼와 충돌하는 일은 전 세계에서 비일비재한 항공 사고 가운데 하나지만 이렇게 동체 착륙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여기에다 동체 착륙 직전 5초 동안 기체가 심하게 요동 치고 전기 시스템이 나가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는 승객들의 증언도 있었다.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징역 4년 형이 선고될 수 있다. 또 공항의 조류 퇴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최근 항공 사고가 이어지면서 항공 안전 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dpa는 전했다. 지난 5월 승객과 승무원 78명이 탄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 직후 낙뢰를 맞고 비상착륙하는 과정에 화재가 일어나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일도 있다. 이에 러시아 항공교통국(Rosaviatsia)은 기장과 승무원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항공교통국 대변인은 “동체 착륙은 옳은 결정이었다”며 “범죄 조사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군에 의해 2014년 침공을 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 항공 당국은 우랄 항공이 과거 일부러 영공을 침범한 경력이 있다며 블랙리스트에 우랄 항공을 포함시켰다고 BBC는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 우여곡절 끝 국교 재개 합의했지만… 기로에 선 ‘1965년 체제’

    한일회담은 한국이 승전국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 참가가 좌절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대일강화조약 서명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하자, 조약에 일본과의 양자협의를 개최할 수 있는 근거(제4조 a항)와 일본의 한국 내 재산의 포기를 확인하는 조항(4조 b항) 등을 추가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제4조 a항은 ‘재산 및 채무를 포함한 청구권의 처리는 일본과의 특별협정으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 조항에 근거해 미국의 주선으로 마련된 예비회담이 1951년 10월 20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최고사령부에서 시작되었고 중단에 중단을 거듭하다 7차 회담을 통해 1965년 6월 22일 마무리됐다.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이 체결됐다.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이다. 양국 국회에서 비준된 뒤 1965년 12월 18일 양국 정부가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됐다. 이날부로 양국 국교가 재개되었고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1차 회담(1951~1952년) ‘대한(對韓)청구권’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은 ‘법령 33호’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 정부와 기관 등의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을 전부 몰수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11일 한국 정부와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을 체결하고 인계했다. 회담이 시작되고 일본은 1907년 헤이그 조약 46조의 ‘사유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역(逆)청구권을 주장했다. 일본은 패망 시점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을 702억여엔(당시 환율로 대략 47억 달러)으로 집계해 이 재산으로 한국의 대일청구를 상쇄하고 연합국 배상에도 충당하려 했다. 역청구권 주장이 계속되자 한국은 “일본이 청구권을 철회하지 않는 한 회담은 계속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고, 일본은 무기연기를 제의했다. ●2차 회담(1953년) ‘어업 문제’로 인해 일본은 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1차 회담이 시작되기 1개월 전 이승만 대통령은 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침범한 일본 어선을 ‘마구잡이’로 나포했다. 일본은 나포된 어선과 선원들을 송환받기를 원했다. 1953년 4월 15일 도쿄에서 열렸지만 일본은 이승만 라인의 철폐를, 한국은 일본의 대한청구권 주장의 철회를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기본관계 ▲재산청구권 ▲재일한인의 국적 처우 ▲어업 ▲선박 등에서 5개 위원회가 설치되어 돌아가던 중 6·25전쟁 휴전이 성립되자 서로 회담을 뒤로 미루기를 원했다. ●3차 회담(1953년) 구보타 망언 파문으로 양국 간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회담이 장기간 표류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에 유익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시혜론’이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일본 측이 역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자 재산청구권 위원회에서 한국 측 홍진기 대표가 “일본이 36년간의 축적을 반환하라고 한다면, 36년간의 피해를 상각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일본 측 구보타 수석대표는 “한국에서 민둥산을 녹화한 일, 철도를 깔고 항만을 건설하고 논을 조성한 일, 대장성이 1000만~2000만엔을 지출해 한국 경제를 배양한 일을 한국 측 요구와 상쇄했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한반도에) 일본이 가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들어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로선언에서 사용된 ‘조선인의 노예 상태’라는 단어는 연합국이 전시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도 했다. 회담은 개시 2주 만인 10월 21일 결렬됐다. ●4차 회담(1958~1960년) ‘재일조선인’의 북송 문제가 파란을 일으킨 회담이었다. 앞서 회담 휴지기에는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1954년 구보타 망언이 철회되었고, 미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일본이 역청구권을 포기한다. 한일회담에서의 최초의 합의였다. 문화재도 일부 ‘인도(반환이 아닌)되었다. 1958년 4월 15일 회담이 개최되었지만 6월 북한과 일본이 북송에 합의하자 한국은 한일무역을 단절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적극적 중재와 양측의 필요성이 회담을 추동해 4차례 본회의를 열었으나 1960년 4·19혁명과 대통령의 하야로 회담은 보류됐다. ●5차 회담(1960~1961년) 경제협력 방식을 통한 청구권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일본이 본격 제기했다. 한국은 이 방안은 수용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 관련 회담에는 응했다. 장면 내각은 적극적인 대일 정책을 천명했다. 한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도 1950년대 호황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을 생산기지 겸 시장으로 바라보고 경제협력 구축의 필요성을 느꼈다. 1960년 9월 6일 일본 외상이 친선사절단으로 방한,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해방 후 일본 고위관리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5차 회담은 5·16을 맞으면서 중단된다. ●6차 회담(1961~1964년) ‘김·오히라 메모’로 청구권의 액수와 공여 방식을 결정했다. 앞서 양국은 실무협상만으로는 타결이 어렵다고 보고 고위급 정치회담을 개최, 1962년 3월 최덕신 외무장관·고사카 외상 간 이른바 제1차 정치회담을 열었다. 이때 청구권 금액은 한국 7억 달러 대 일본 7000만 달러(차관 2억 달러 제시)로 편차가 컸다. 1962년 10~11월 2차 정치회담에서는 김종필 부장과 오히라 외상이 만났다. 앞서 배의환·스기 수석대표 간 10차례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해 상대방이 염두에 두고 있는 수치가 무엇인지 탐색했다. 메모는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원조 2억 달러, 자금협력 1억 달러+@’로 정리되었다. 김·오히라 메모 합의 후 오히라 외상은 그 명목을 “한일국교 정상화를 축하하고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라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은 청구권이 아닌 경제협력을 위한 자금으로 할 것을 회담 내내 고집했다. ●7차 회담(1964~1965년) 회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2년 반이 더 소요됐다. 어업 문제, 기본조약 문제 등 나머지 현안에 대한 교섭이 남아 있었는데 일본은 특히 어업 문제를 청구권 문제의 미해결 사안과 연계시켰다. 1963년부터 김·오히라 메모에 대한 극심한 반대로 한국이 큰 혼란을 겪은 탓도 컸다. 1964년 12월 7차 회담이 재개되었다. 1965년 2월 17~20일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김포 도착 성명에서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고 한 것은 회담 타결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었다. 일본은 조인식 직전까지 몇몇 표현에 집착했다. 예컨대 ‘청구권’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거부했고, ‘문화재’라는 명칭을 피하려 ‘문화상 협력에 관한’이란 표현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는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 협정’ 등의 이름으로 타협됐다. 6월 22일 이동원 장관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1개의 조약과 4개의 협정, 2개의 의정서에 조인한 뒤 총 27건에 이르는 조약, 협정, 부속문서가 조인되거나 교환됐고 각각 국내 비준절차를 거쳐 12월 18일 발효되었다. jj@seoul.co.kr
  • 음주운전 적발된 다음날 또 음주운전한 20대 구속

    20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다음 날 또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구속됐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A(21)씨를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0일 오전 7시 20분 혈중알코올농도 0.152% 상태로 부산 해운대구 우동 광안대교 요금소 부근에서 기장군 기장읍까지 20㎞가량 본인 차량을 운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음주 운전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A씨는 경찰 추격을 무시한 채 도주하며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후 역주행, 보도 침범, 급진로변경 등을 반복했다. 경찰은 순찰차 3대를 투입해 A씨 차량을 막아 세워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다음 날인 21일에도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귀가 조처 이후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며 “무면허에 다수 음주운전 전력이 있어 구속했다”고 설명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러 군용기 또 카디즈 무단진입…軍, 전투기 대응출격

    러 군용기 또 카디즈 무단진입…軍, 전투기 대응출격

    러시아 군용기가 지난 8일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 진입해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를 비행하던 러시아 TU-142 초계기 2대가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을 무단진입해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을 긴급 발진했다. 이 군용기들은 또 독도 동쪽과 제주도 남쪽에 있는 KADIZ도 무단진입했다. 러시아 군용기들의 KADIZ 진입이 확인된 직후 한국 공군의 전투기 수 대가 전술조치 차원에서 대응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군용기들은 지난달 23일에도 중국 폭격기 등과 동해 상공에서 합동비행을 하는 과정에서 KADIZ를 무단 진입한 바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에 침범했지만 러시아 측은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국제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에스퍼 美 국방장관 “한미 동맹은 철통, 평화안보 핵심축”

    에스퍼 美 국방장관 “한미 동맹은 철통, 평화안보 핵심축”

    한미국방장관 회담 모두발언서 ‘방위비’ ‘호르무즈파병’ 언급 안 해靑 ‘48억달러 방위비 명세서’ 보도에 “근거없는 내용”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장관은 9일 “한미동맹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linch pin)”이라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 모두발언에서 “저는 오늘 한미동맹은 철통(Iron clad) 같다는 것을 재확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한미 양국은 전쟁 속에서 형성된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며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두발언에서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 증액’, ‘호르무즈 파병’,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아시아지역 중거리미사일 배치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에스퍼 장관은 ‘한미 양국의 방위 협력 증진’, ‘주요 역내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대북 문제에서 “우리는 역내 우방국들과 함께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CVID)에 참여하기 전까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단호하게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외교적 해결 노력도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명확하게 밝혀왔듯, 미국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모든 약속에 대한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으로 접촉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조건을 기초로 미군 사령관이 가진 전작권을 한국군 사령관에게 넘기는 문제에서 진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동맹으로서 갖는 신뢰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자 그 어떤 상대도 필적할 수 없는 전략적 이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에스퍼 장관의 이번 방한은 한미가 전작권 전환에 초점을 맞춘 하반기 연합연습에 돌입한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 두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원칙을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장관은 또 “국가방위전략상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의 우선순위 전구”, “지난 6일간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국의 소중한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을 방문했다”며 이 지역의 안보 공조의 중요성도 거듭 부각했다.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3각 안보공조와 직결되는 GSOMIA가 존폐 기로에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도 풀이된다. 다만 그는 지소미아를 포함해 ’방위비 증액‘, ’호르무즈 파병‘, ’아시아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에스퍼 장관은 회담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면서 기자들로부터 ’방위비분담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거론하며 “한일관계와 한미일 안보협력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에서 최초로 연합훈련을 하고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언급한 뒤 “안보환경이 엄중한 시기에 에스퍼 장관과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미동맹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할 수 있는 잠수함 공개 등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노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대한 한미간 공조 노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오전 서울 도렴동 청사에서 에스퍼 장관과 만나 한미동맹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에스퍼 장관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관의 방한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방침을 밝히면서 “한국이 미국에 지불하는 분담금을 늘리기 위한 논의(talks)가 시작됐다. 한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이며 이제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방어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방한 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에게 ‘48억달러’의 방위비 명세를 제시하며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방위비 분담금은 (이제) 협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같이 부인했다. 한미가 합의한 올해 한국 정부의 주한미군 주둔 관련 방위비 분담금은 1조 389억원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러시아, 핵 폭격기 미국 방공식별구역 침범…미·캐나다 F-22 출격

    러시아, 핵 폭격기 미국 방공식별구역 침범…미·캐나다 F-22 출격

    러 국방부 “훈련 일환으로 공해 수역 비행…국제법 준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Tu-95 전략폭격기 2대가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무단진입, 미국과 캐나다 공군이 출격해 러시아 측의 비행을 차단했다. 8일(현지시간) CNN 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성명을 통해 Tu-95 폭격기들이 이날 알래스카 서부 해안에서 200마일(약 322㎞) 떨어진 방공식별구역 경계선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NORAD는 미 공군 F-22 전투기 2대와 캐나다 공군 소속 CF-18 2대가 즉각 출격해 Tu-95들을 차단했다면서 “(러시아 폭격기들은) 알래스카 서쪽 국제 공역에 머물렀으며 미국과 캐나다 영공에는 진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이번 근접 비행은 미러 간 관계가 복잡미묘한 시점에 벌어져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란 핵 문제,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분쟁,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 등을 둘러싸고 양국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미러 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알래스카 해안 서쪽 국제 공역에서는 올해 1월과 5월에도 미국·캐나다 방공식별구역에 러시아 폭격기와 전투기가 진입해 미국과 캐나다 전투기가 차단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 6일에는 러시아의 대잠초계기 2대가 같은 공역을 13시간 동안 비행한 적도 있다. 미군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잠재적 위기 상황에 대한 자국군의 대응 능력을 훈련하고 가상 적국에 대한 위력 시위 차원에서 이러한 비행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 해안 주변에서 간혹 유사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유럽 지중해 상공 국제 공역에서 러시아 Su-35 전투기가 미국 해군 초계기 바로 앞을 수차례 고속으로 비행하는 등 진로 방해를 해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날 러시아 폭격기들의 미국, 캐나다 ADIZ 진입과 관련해 러시아 국방부는 “오션 실드 2019 훈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Tu-95MS 미사일 탑재 전략 폭격기 두 대가 오션 실드 2019 훈련의 일환으로 베링해 공해 수역을 비행했다”면서 “비행은 10시간 이상 진행됐고, 특정 단계에선 미군 F-22와 F-18 전투기가 (Tu-95MS들을) 에스코트했다”고 말했다. 북극해와 대서양, 흑해, 태평양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장거리 비행 훈련은 타국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고 공역 이용에 관한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러시아 국방부는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3일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 및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나 걸쳐 침범했다. 러시아는 당시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국제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 공군은 F-15K와 KF-16 전투기를 출격 시켜 차단 기동을 펼침과 동시에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 쪽으로 경고사격을 하는 조처를 했다. 오션 실드 2019 훈련은 발트해에서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며, 전투함 49척과 지원함 20척, 러시아 공군과 해군 소속 군용기 58대가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서울광장] ‘대한 청구권’처럼 준비했을까?/이지운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한 청구권’처럼 준비했을까?/이지운 논설위원

    청구권(請求權)이 우리가 일본에 요구할 것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일본 측의 ‘대한(對韓) 청구권’이란 게 있었다. 참 어이없다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이 문제로 일본에 한참을 시달렸다. 전쟁통에도 일본과 마주 앉아야 했던 1951~1952년 1차 한일회담 테이블을 뒤엎은 건 대한 청구권 문제였다. 우리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일본 패망 후 결론도 그렇게 났다. 1945년 9월 20일 남쪽에 설치된 미 군정청은 12월 6일 발표한 ‘법령 33호’를 통해 한반도 내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제2조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정부, 그의 기관 또는 당해 국민, 또는 … 이 소유 관리하는 … 모든 종류의 재산 및 수입에 대한 소유권은 1945년 9월 25일부로 미 군정청이 취득하고 소유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은 반발했다. 1907년 헤이그조약 46조의 ‘사유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 삼아 한반도 내 일본인 재산의 반환을 주장했다. 그리고 패망 직후부터 이를 대비했다. 해방 후 채 보름도 안 된 1945년 8월 27일 조선총독부는 종전사무처리본부를 설치하고 ‘일본인의 조선 내 기업경영, 소유재산, 조선인에 대한 채권채무, 투자’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 재산으로 한국의 대일 청구를 상쇄하고 연합국 배상에도 충당하려 했다. 집계 결과 해방 시점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은 702억여엔. 당시 환율로 대략 47억 달러였다. 다행스러운 건 한국도 일본인들의 치를 떨게 한 무기를 개발한 것이었다. 1952년 대통령 선언으로 확정한 ‘이승만 라인’ 또는 ‘평화선’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이 설정한 일본 해역보다 더 일본 쪽으로 선을 긋고 영해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본회담 개시 1개월 전이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은 1994년 논문에서 “한일회담에서 미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그에 대체되는 유리한 교섭재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으려는 미국이, 한국이 일본에 대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보고 한국을 억제하려던 시점이었다”고 보았다. 1953년 2차 한일회담은 어업 문제에서 결렬됐다. 당시 일본 외무성에는 이승만 라인의 철폐를 조건으로 대한 청구권을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하니, 참으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다. 한국이 이승만 라인을 침범한 일본 어선을 ‘마구잡이’로 나포하고 있다며 일본 국회에서는 미군의 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이 1954년 미국을 찾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라인의 철폐를 요구하자 이 전 대통령은 아예 회담을 결렬시켜 버린다. 귀국하자마자 일본 어선의 나포를 강화했으며, 일본과의 경제 단교 조치를 내리기에 이른다. 대한 청구권은 대략 이즈음 소멸의 길을 걷는다. ‘구보타 망언’으로 종료된 3차 한일회담 이후 휴지기를 거치며 일본에서 청구권의 포기가 거론된다. 우리 협상력의 결과물이면 좋았으련만 그렇지는 않았다. 일본 경제는 한국전 특수로 펄펄 끓으면서 1950년대 중반도 못 돼 전쟁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고 고도성장 단계로 진입했다. 청구권을 논하느니, 한국으로 경제 진출을 꾀하는 편이 이득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제력을 회복하고 국제 정세에 힘입은 일본은 회담 중재에 나선 미국의 압박을 여러 차례 물리치기도 했다. 대한 청구권 논란은 국가 간 갈등과 논쟁을 대비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 준다. 일본 대장성은 1차 요시다 내각 아래 1946년 9월 대장성 관리국 부속기관으로 ‘재외재산조사회’를 설치해 297명을 동원, ‘일본인의 해외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라는 극비 또는 취급주의 문서를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35권짜리 책으로 인쇄돼 보관된 것 가운데 조선편이 10권이다. 뒤에 피징용자 협상중 일본이 한국 측에 숫자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강요하며 “피해자 명부가 있느냐”고 비아냥댔을 때 우리 협상단은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언필칭 ‘전쟁 중’이라 하니 따져 보게 된다. ‘대한 청구권’처럼 준비했을까? 일본에도,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일이다. 또 하나 짚을 게 있다. 오늘날의 ‘이승만 라인’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 이것으로 대략 300여척의 일본 선박을 나포했고, 4000명가량의 일본인 선원들이 옥고를 치르거나 구금 조치됐다. 1965년 최종 한일협정 조인 때까지 살아남아 일본을 괴롭혔다. 끝으로 미국, 그리고 국제 정세의 변화가 당시에도 고비마다 협상을 좌우지했음도 기억해야 한다. jj@seoul.co.kr
  • [김균미 칼럼] 동맹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김균미 칼럼] 동맹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안보 환경이 갈수록 심상치 않다. 미중 패권경쟁은 무역전쟁에서 환율전쟁으로 전선이 확장되면서 한국을 비롯해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 대상국) 배제 조치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2%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안보 상황은 어떤가. 지난달 23일 중국·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과 영공을 무단 침범했고, 북한은 지난달 25일 이후 13일 동안 네 차례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와중에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미국 신형 중거리 미사일 배치까지 한국에 ‘안보 청구서’를 한꺼번에 들이밀고 있다.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에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에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 안보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동맹에 대한 자세냐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에 미국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역할을 분담해 가며 안보 청구서를 날리는 현 상황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난달 중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청구서를 던지고 가더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일 호주에서 열린 국방·외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에 한국과 일본에 사실상 파병을 요구했다. 호주에서 지상 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 배치에 대해 “우리의 동맹 및 파트너와 협의를 거쳐 배치할 것”이라고 밝힌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8일 한국에 온다. 한결같이 동맹을 강조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정부 관계자들의 동맹 관련 발언은 철저하게 자국 이익에 치우쳐 진정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동맹에 경제적 잣대를 들이댔고, 취임 후에도 무역에는 동맹이 따로 없다고 말해 왔다. 특히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심히 우려스럽다. 트럼프는 지난달 26일 “소형 미사일일 뿐”이라면서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미국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다. 그들 양측은 분쟁을 벌이고 있다. 오랫동안 그래 왔다”고 했다. 주한, 주일 미군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에 가해지는 위협을 무시하는 심각한 발언이다.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 두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동맹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직 고위 외교관을 비롯해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전하는 트럼프의 동맹관을 보면 더 걱정스럽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동맹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 동맹국 간 단합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 동맹국들의 관계 악화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등이다. 최악의 상황까지 온 한일 상황에 대압해 보면 딱 맞아떨어진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한일 갈등이 커지는데 미국은 중재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지적한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이다. 동맹은 일방통행이어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힘과 위세에 밀려 한두 번은 어쩔 수 없이 무리한 요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 나라가 동맹의 안위에는 관심 없는 미국의 리더십을 믿고 지지하며 공조하겠나. 이래서는 아시아에서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방한에 앞서 일본에 도착한 에스퍼 장관은 한일 양측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요청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한국과 일본 방문 일정을 통해 한일 갈등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한일 갈등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미국 국익 차원에서 보고 더 늦기 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해리티지재단 이사장을 오랫동안 지낸 에드윈 퓰너.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자문으로 알려진 퓰너가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동맹은 거래 관계가 아니라 가치와 목표의 공유에 기반한다”는 조언에 트럼프가 주목하길 기대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트럼프의 동맹관이 바뀌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미래가 없다.
  • 정경두 “독도 경비 해병대 이관 검토… GSOMIA 파기 신중 접근”

    정경두 “독도 경비 해병대 이관 검토… GSOMIA 파기 신중 접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5일 독도 경비를 경찰에서 해병대로 이관하자는 의견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독도 경비를 해병대로 이관하는 게 어떤가’라고 묻자 “저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전략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독도 경비를 군이 나서 책임지는 방안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 해병대가 독도 방어를 위한 전략도서방위사령부 창설을 제시한 바 있지만, 아직 국방부 차원의 구체적인 계획 검토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장관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주장에 대해서도 “최근 일본에서 수출 규제 등 신뢰가 결여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파기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그간 지소미아를 연장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무게를 둬 왔다. 하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추가 경제보복을 취하면서 기류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와 관련해 북한은 ‘방사포’, 군 당국은 ‘탄도미사일’이라고 다르게 분석한 데 대해서는 “탄도미사일의 특성을 가졌다는 게 한미 간 공동 평가 결과”라며 “다만 북한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정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정 장관은 이날 현안 보고에서 지난달 23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 “의도적인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및 독도 영공 침범을 통한 한국 측 대응 의지를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중러가 해상 및 공중 연합훈련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정 장관이) 북한을 변호하고 있다”는 자유한국당 박맹우 의원의 발언으로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박 의원이 “사사건건 북한을 변호하고 대변하고 있다. 과연 이게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장관이 맞나”고 하자 정 장관은 “제가 북한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씀은 취소해 달라. 언제 북한을 대변했냐”고 크게 반발했다. 국방위는 이날 ‘북한의 핵 고도화와 미사일 도발 규탄 및 재발방지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결의안은 “국회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키기 위해 감행하는 일체의 군사적 행위와 도발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하며, 북한 정권에 일체의 군사적 도발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명시했다. 한편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장 정부는 지소미아부터 파기하기를 주문한다”며 여당 지도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지소미아 파기를 공식 요청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서 불신하고 부정했기에 지소미아를 유지할 사유가 없다”며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8월 15일에 파기 통지서를 보내 우리 국민의 뜻과 경고의 의미를 전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정경두 “군사정보협정 파기 신중 검토…‘전술핵’ 검토 안해”

    정경두 “군사정보협정 파기 신중 검토…‘전술핵’ 검토 안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파기 여론과 관련해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소미아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무소속 서청원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정 장관은 “정부는 내부적으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수출규제 등 신뢰가 결여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파기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지금은 결정된 바가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소미아와 관련된 부분은 그 자체의 효용성보다도 여러 가지 안보와 관련된 우호 동맹국 간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우리 정부도 매우 신중하게 검토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소미아는 일본이 먼저 요구해 체결됐다”며 “협정 체결 후 26건, 올해 들어 3건의 정보 교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일본 정부가 헌법을 개정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우려에 대해선 “다양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응책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에 대해서는 “군사력 건설 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방위사업청 등과 면밀히 검토했다”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 “9·19 남북군사합의 이전 대응 조치나 현재 조치나 실질적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확실하게 구체화해놨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능력보다 한국의 능력이 훨씬 더 우월하다,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며 “양적인 측면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우세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주장하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는 “현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 정책이다. 전술핵 배치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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