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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4차 訪中] 조윤제 “북·미, 2차 정상회담 위한 고위급회담 곧 개최할 것”

    [김정은 4차 訪中] 조윤제 “북·미, 2차 정상회담 위한 고위급회담 곧 개최할 것”

    일각 “폼페이오 5차 방북 시도 배제 못해” 미 국무부 신중모드… 논평 등 발표 안 해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가운데 조윤제 주미 대사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조 대사는 8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미의 물밑 접촉이 지속하고 있다”면서 “2차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회담이 조만간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보통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6주 정도 걸린다”면서 “고위급 실무회담이 이달 중·하순 열리고 정상회담은 2월 말이나 3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 대사는 이어 북·미 고위급회담만 열릴지, ‘스티븐 비건-최선희 라인’의 실무협상이 고위급회담과 동시에 ‘2+2’ 방식으로 열릴지 등에 대한 논의는 물밑 접촉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8일 북측 요청으로 만남이 무산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의 회동 장소는 북한 유엔대표부가 있는 뉴욕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5차 방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가 2차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가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는 김 위원장의 4차 중국 방문에 대해 신중 모드를 이어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트윗도 침묵했다. 국무부 등 트럼프 정부도 논평 발표 등에 나서지 않았다. 또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북·미가 물밑 조율 중인 2차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긴밀한 북·중 관계를 바탕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북한과 중국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심석희 미투] 침묵의 대물림… ‘그루밍 성폭력’에 스러지는 운동부 청춘들

    [심석희 미투] 침묵의 대물림… ‘그루밍 성폭력’에 스러지는 운동부 청춘들

    4년새 63%↑성폭력 상담·신고 93건 폐쇄성 탓 고발 땐 선수 생활 접어야 체육계 “터질게 터졌다, 빙산의 일각” 문화연대 등 오늘 자성촉구 기자회견“감독 선생님이 부르더니 ‘수비를 이렇게 하라’면서 민감한 부위를 만질 때가 있어요. 그냥 참고 넘어가죠.”(중학교 여성 핸드볼 선수 A양)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대들보인 심석희(22·한국체대) 선수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고2 때부터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준 가운데 체육계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A양 사례처럼 지도를 빙자해 학생 선수들의 몸을 만지는 등 성폭력을 저지르는 현장 지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 선수의 폭로가 ‘체육계 미투’의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9일 체육학계에 따르면 초·중·고·대학 소속 학생 선수들이 성폭력에 노출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8년 진행한 ‘학생 선수 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중·고교 학생 1139명 중 63.8%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희롱이 58.5%로 가장 높았고 강제추행(25.4%), 성관계 요구(1.5%), 강간(1.0%)까지 있었다. 폭행도 일상적이었다. 응답 대상 중 78.8%가 ‘훈련 태도 등을 이유로 맞거나 욕을 듣거나 기합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인권위 실태조사 이후 10년간 어린 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살핀 대대적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심 선수의 고백 등을 보면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상담 건수는 2014년 57건에서 지난해 93건으로 63.2% 늘었다. 체육계 내부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어린 선수들은 성폭력·폭행 등을 당하고도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탓에 심 선수처럼 용기 내는 일이 드물다. 우선 선수들이 초·중·고교 때부터 감독·코치를 ‘아버지’처럼 모시는 비정상적인 사제 관계 속에서 운동하다보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어렵사리 고발해도 “딸 같아서”라며 친밀감의 표현처럼 덮어버리면 피해자만 곤란해지기도 한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성직자와 교인 관계처럼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도 ‘그루밍 성폭력’(신뢰 관계를 쌓아 심리를 지배한 뒤 가하는 성폭력)이 흔하다”고 말했다. 수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따져봐야겠지만 심 선수도 6살 때부터 자신을 지도한 조 전 코치의 폭행 등에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도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한 종목의 코치들은 대부분 학교 선·후배 등으로 엮여 있어서 어린 선수가 특정 지도자를 고발하면 선수 생활을 접을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국내 운동부 학생 다수는 엄청난 훈련량 탓에 수업을 제대로 못 받아 운동으로 성공하는 것 외엔 대안 없는 삶을 산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설령 지도자의 잘못이 인정돼도 솜방망이 징계만 받고 6개월 뒤면 돌아올 것”이라는 인식이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김상범 중앙대 체육과학대학 교수는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의 폭행 혐의 재판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생겨 용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 선수의 폭로가 피해 뒤 침묵하던 다른 선수들의 생각을 바꿔 체육계의 자정(自淨)을 알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 교수는 “체육계의 잘못된 관행이 이번에도 고쳐지지 않으면 바로잡을 기회가 영영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등 관련 단체들은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범죄를 방조하는 체육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서울신문은 운동부 학생이나 성인 선수들에게 발생하는 폭행, 성폭력, 언어폭력 등 인권 침해 실태를 집중 취재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례를 경험하셨거나 목격하셨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 제보자 신원 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법의 지엄함 보여달라” 안희정 항소심 마지막 재판서 읽힌 김지은 최후진술(전문)

    “법의 지엄함 보여달라” 안희정 항소심 마지막 재판서 읽힌 김지은 최후진술(전문)

    위력으로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는 안 전 지사의 비서였던 김지은씨도 변호사를 통해 재판부에 최후 진술을 남겼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12월 21일 항소심 법정에 나와 비공개로 6시간 남짓 증인신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변호사를 통해 대신 읽혀진 최후 진술에서 김씨는 지난해 2월 처음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뒤 11개월 동안 자신이 겪은 고통들을 털어놓으며 “누군가 ‘미투’ (폭로를 할지) 상담을 해오면 말릴지도 모르겠다”면서 재판부에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안 전 지사를 향해선 “피고인 측이 쏟아내는 거짓과 왜곡된 주장들로 매번 새롭게 상처받고 찢겨진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피고인과 주변 사람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괴로웠다”면서 “아직까지도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아무리 거대한 손이라도 인간의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면서 “아무리 힘 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재판부에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김씨의 최후진술 전문. ▲최후 진술서 피해자 김지은입니다. 마지막 발언의 기회를 허락해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립니다. 피고인에게 당한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11개월이 지났습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 ‘진실’을 말하기까지 저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피고인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습니다. 미래 권력은 현재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피고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당연히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피고인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피고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들은 피고인과 알고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사회 곳곳에 관계 맺어 다각도로 생물처럼 뻗어나가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피고인이었습니다. 그런 피고인을 향해 미투를 한다는 것, “지금 당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안희정 개인에게만 한정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정치적 지위와 관계 맺은 수많은 이들에 맞서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미투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고 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할지 모를, 그리고 살더라도 죽은 것 같이 살아가야 할,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의 사과를 듣고 한 번으로 끝날 것 같던 성폭행 피해는 반복되었고, 지난해 2월이 되어서야 저는 영원히 도망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번의 피해는 제게 처음과 같았고, 반복되는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미투를 한 직후 제 가족들까지 언급하며 허위 사실들이 유포되었습니다. 수많은 악플들이 달렸고, 거짓 사진과 글들이 마치 사실인양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 중에는 안희정 지사의 측근들도 있었고, 정당의 주요직을 맡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팬클럽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최근 한명 두명 유죄 판결을 받아 벌금형에 처해지고 있지만, 2차 피해로 인한 제 삶은 이미 망가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고발할 때부터 예견돼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검찰 진술에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마치 제가 가해자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신문받고 답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 진술의 진실성을 검증받았습니다. 며칠에 걸쳐 제 휴대폰과 주변 모든 내역들까지 조사받았습니다. 제 진술이 진실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자신의 휴대폰을 파기했습니다. 피고인이 떳떳했더라면 왜 그 휴대폰을 파기하고 파기한 사실도 그토록 숨기려 하였을까요? 아무리 거대한 손이라도 인간의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심 재판정에서의 진술은 16시간이 걸렸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재판 내내 피고인이 기침소리를 낼 때마다 제 심장은 요동치고 정신은 점점 더 혼미해졌습니다. 피고인이 제 바로 옆에서 저를 압박하고 조여오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냈습니다.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장시간 오한을 견뎌가며 경험한 그대로를 말씀드렸습니다. 1심이 끝났고,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매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피해 사실을 모두 잊어버리고 고통을 이겨내고 싶었지만, 2심에서 다시 진술해야 했기에 기억조차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2심 항소심의 진술을 위해 지난 12월 21일 법원으로 오기까지 차라리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 이 세상을 외면할 수 있다면 편하지 않을까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2심 재판부에서 진술하였습니다. 차라리 죽고싶을 만큼 힘겨웠지만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참고 견뎌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24시간 업무 중인 비서에게 상사의 지위는 24시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것을 고의적으로 성범죄에 이용한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성실히 살아왔던 제 인생은 모두가 재판 중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피해자답지 않게 열심히 일해 왔다는 이유였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들인 저의 성실함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캠프에 간 것은 팬심에 의한 것이었고, 근무시간의 제한 없이 일에만 매진해야 했던 것은 피고인이 좋아서였다는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변에 이야기해도 도움 받지 못해 이후 전혀 티내지 못했던 것은 피해자다움과 어긋난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었습니다. 전임 남자 수행비서들이 꾸준히 일상적으로 해왔고 수행비서의 기존 업무 중 하나였던 숙소 예약은 ‘관계를 원해 한 셀프 호텔 예약’으로, 피고인이 갑자기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식당에 가겠다고 하여 급히 통역인 부부와 동행한 레스토랑은 ‘단 둘이 간 와인바’로 바뀌었습니다. 만약 당시 정상적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받기를 요구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를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일까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의 업무가 절실했던 제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평판이 존재하는 정치 영역에서 이미 ‘안희정 사단’으로 꼬리표가 붙은 제가 어디에 가서 직장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피고인 측이 쏟아내는 거짓, 왜곡된 주장들에 이쯤이면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매번 새롭게 상처받고 찢겨집니다. 그동안 지독히도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피고인과 주변 사람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괴로웠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저와 잘 지내던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이 제게 했던 성폭행 직후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다음 범죄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미투 직후 게시글을 작성했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고인은 이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아직까지 피고인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제게 피고인은 처음부터 일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직장 상사였습니다. 한번도 이성의 감정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이 가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 애사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저와 이성적인 관계였다고 말합니다. 언론에 어떤 관계를 입증할 사진이라고 언급한 사진은 수행 업무 중 뒤에 서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업무상 가까이 서 있던 모습을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피고인에게 연인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누가 제게 미투를 상담한다면 저는 선뜻 권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미투를 말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지난 11개월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께 진실을 말해주는 분들이 겪은 수많은 어려움을 봐왔기에 이 과정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것입니다. 제가 그 고통 속 다행히도 생존해 있을 수 있는 건, 미약한 저와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숱한 외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미투를 고민하는 분께 제가 겪은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장님, 부디 사건의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해주시어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아무리 힘 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막대한 관계와 권력으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지엄함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19년 1월 9일 피해자 김지은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서울광장] ‘공약파기’와 ‘괄육취골’/김성곤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약파기’와 ‘괄육취골’/김성곤 논설위원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 하나 버리기가 아까울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그러나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고, 바꿀 것이 있다면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 집권 3년차를 맞아 나온 공약파기 얘기다. 솔직한 심정으로 괄육취골(刮肉取骨·내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함)이나 이대도강(李代桃?·작은 손해로 큰 승리를 얻음)을 권하고 싶지만, 순발력 떨어지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이 정권에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광화문을 메웠던 촛불에서는 함성이 없었다. 침묵과 삼삼오오 모인 작은 속삭임, 낮은 노래들이 있었다. 촛불혁명은 이런 개개의 촛불과 속삭임, 염원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목소리나 염원의 갈래가 많이 나뉘었고, 방향도 서로 갈렸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청구서를 내밀기도 한다. 이런 때 가장 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도 있고, 그중 가장 약한 이, 가장 절실한 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도 있다. 어떤 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인이라면 가장 절실한 이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지만, 정치는 마냥 이를 좇을 수도 없다. 그러다간 큰 방향을 놓칠 수도 있다. 참으로 어렵다. 청와대가 새해 벽두 문재인 대통령 1호 공약인 광화문 집무실 이전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말이 보류지 공약파기의 완곡한 표현이다.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지지자 중에서도 “광장으로 집무실을 옮겨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당초의 취지를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려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야당은 공약파기에 대해 문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난리다. 사과하라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표 공약을 바꾸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을 보면 표리부동이요 정치공세다. 그러나 광화문 집무실이 야당이 아닌 국민에 대한 약속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솔직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또 그 정신도 이어 가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 시점은 10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될 것 같다. 기자들이 묻든 묻지 않든 문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대통령의 공약파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게 김대중 정권 때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DJP연합’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 내각제 개헌이다. 그러나 이것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을 못 지켜 사과했고, 대운하도 사실상 공약(空約)이 돼 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기초노인연금 도입과 4대 중증 의료비 전액보장 등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바다 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당선되면 8년 내 20조 달러 부채를 해결하겠다”, “공무원 고용동결” 등을 외치더니 당선되자 “내가 언제?”라며 오리발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파기도 처음은 아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백지화 공약에 따라 대통령 취임 이후 중단했던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재개했고, 지난해 7월 16일에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사실상 지키기 어려워졌다”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공약들은 광화문 집무실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고, 그 근원지로 집무실을 옮겨서 귀를 열고 시민과 함께하는 국정을 펼치겠다는 근원적인 약속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집무실 무산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1호 공약이지만,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솔직히 시인하는 것에 대해 “용기 있다”고 칭찬하고 싶다. 취지는 좋았지만, 실현이 쉽지 않은 공약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결정은 좀더 빨랐더라면 하는 것이고, 이런 버릴 줄 아는 자세가 다른 국정 과제에도 일찍 적용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니까 공약쯤은 파기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이 꿈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꿈꾸는 바대로 세상을 바꾸는 게 꿈이었을까. 만약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공약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경제 때문에 그나마 쌓아 온 외교나 남북 문제의 성과까지 다 날아갈 판이다. 국민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소득주도성장은 날개조차 펴지 못할 지경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괄육취골은 못 하더라도 이대도강의 자세로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전했으면 한다. sunggone@seoul.co.kr
  • [경제블로그]김동연 전 부총리, “정책결정 과정의 반성 없어 아쉬워”

    [경제블로그]김동연 전 부총리, “정책결정 과정의 반성 없어 아쉬워”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017년 11월 정무적 고려로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당사자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침묵을 깨고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겼습니다. 김 부총리는 게시글에서 “공직자는 당연히 소신이 있어야 하고 그 소신의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이어 “34년 공직생활 동안 부당한 외압에 굴복한 적은 없다”면서도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정책형성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적자국채 발행이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 아니라 종합적인 고려에 의한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김 부총리의 설명은 기재부의 해명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신 전사무관이 지적한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정치개혁)에 올린 ‘나는 왜 기획재정부를 그만두었는가‘라는 글에서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정책 페이퍼를 쓰고 나면 이걸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청와대에 보고를 하기로 결정하더라도 청와대 지시와 부처 명령체계 내의 지시가 다르면 재차 고민한다. 누구말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라고 실무진의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청와대와 부처에 이중으로 보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과정에서의 혼선을 말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부총리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청와대와 정부부처 간의 소통 부재가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부처의 A사무관은 “청와대에서 갑자기 지시를 떨어뜨려서 빨리 뭘 만들어내라고 하니 설익은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면서 “부처의 정책 자율권을 보장해주고 자율권이 충돌하면 조정해주는 것이 상급기관의 역할인데 그런 부분이 개선이 안되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가 있어도 부처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런 신 전 사무관의 인식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중앙부처의 B사무관은 “대통령은 늘 바뀌지만 청와대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말도 안되는 지시를 받았지만 버텼다고 눈밖에 난 적이 있는데, 어설프게 나서면 바로 아웃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제부처의 C과장은 “청와대와 부처간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청와대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정권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이다”라고 지적한 신 전 사무관의 글 맺음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전자랜드, 외인 듀오 앞세워 4연승…유도훈 감독 “힘든 상황 수비로 풀었다”

    전자랜드, 외인 듀오 앞세워 4연승…유도훈 감독 “힘든 상황 수비로 풀었다”

    전자랜드가 외인 듀오의 활약을 앞세워 4연승을 질주했다. 전자랜드는 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8~19 프로농구 정규시즌 원정 경기에서 SK를 66-59로 눌렀다.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16득점, 8리바운드)와 기디 팟츠(13득점, 8리바운드, 2어시스트)가 29득점을 합작했다. 정효근(10득점)도 4쿼터 중요한 순간마다 3점포를 터트리며 승리에 일조했다. 4연승을 달린 전자랜드는 2위(19승11패) 자리를 굳게 지켰다. 같은 날 승리를 거둔 선두 울산 현대모비스와는 5경기 차이다. SK는 대체 선수로 합류한 아비안 아스카(13득점, 10리바운드)와 안영준(19득점), 김선형(13득점)이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지만 턴오버가 16개나 나와 고개를 숙였다. SK는 최근 6연패 뒤 1승으로 체면치레를 한 뒤 다시 10연패 수렁에 빠졌다. 전자랜드는 리바운드 싸움에서 근소하게 밀리며 10-12로 1쿼터를 마쳤지만 2쿼터부터 살아났다.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SK의 수비가 매끄럽지 않은 틈을 타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결국 29-26으로 앞선 채 전반전을 마쳤다. SK는 3쿼터에만 5개의 턴오버를 남발한 데다가 외곽포(4/20)까지 침묵하며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초반 골 결정력이 떨어졌고 3점슛이 몇 개 안 들어가다 보니 급한 공격이 나왔다. 힘든 상황을 준비한 수비로 풀어가서 이긴 것 같다”며 “SK의 아스카가 합류한 지 하루도 안 된 팀인 것도 우리 팀 입장에선 호재였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엇박자가 나온 부분도 있다. 다시 맞춰봐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경은 SK 감독은 “연패가 길어져 큰일이다. 실책과 3점슛 성공률에서 밀렸다. 수비는 괜찮았지만 공격이 매끄럽지 않았다”며 “빨리 연패를 끊을 수 있도록 정비를 빨리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에선 선두 현대모비스가 DB를 76-70으로 꺾고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순자 “민주주의 아버지는 전두환”… 정치권 “망언” 규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민주주의 아버지는 우리 남편’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2일 ‘망언’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침묵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순자씨가 실성에 가까운 망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설 최고위원은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 같은 발언을 해서도, 이 같은 태도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재판장에 나와 석고대죄하며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재정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국민이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일궈낸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마저 농락하지 말라”며 “범죄자들과 그 비호세력의 세 치 혀에서 나온 말들이 피해자들의 상처를 다시 할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당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노영관 상근부대변인은 “국민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자행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일말의 반성도 없이 변함없는 뻔뻔함은 따를 자가 없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도 “기가 막힌다. 해외토픽에 나올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한국당의 비협조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데 더욱 진상규명 작업이 절실해졌다”며 “한국당은 5·18 진상규명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자기 최면도 이만하면 병이다”라며 “전씨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싶다면 광주 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재판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이 여사는 한 보수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전 대통령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순자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발언에 자유한국당 홀로 침묵

    이순자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발언에 자유한국당 홀로 침묵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가 전씨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홀로 침묵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2일 이순자씨가 전날 인터넷 보수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을 ‘망언’으로 규정하며 일제히 비판했다.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경거망동 말라. 국민이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일궈낸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마저 농락하지 말라”면서 “범죄자들과 그 비호 세력의 세 치 혀에서 나온 말들이 피해자들의 상처를 다시 할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각종 법안을 애써 외면하는 한국당에게도 묻는다. 이순자씨의 말에 동조하는가.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같은 당 설훈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순자씨의 발언에 대해 “실성에 가까운 망언”이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고문을 당했다. 나 자신의 부덕이라고 생각하며 용서하고자 했지만 용서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노영관 상근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국민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자행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일말의 반성도 없이 변함없는 뻔뻔함은 따를 자가 없음이 분명하다”면서 “함부로 민주주의 운운하지 말라. 참회와 속죄로 성실히 (사자 명예훼손) 재판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기가 막힌다. 해외토픽에 나올 일”이라면서 “5·18 진상 규명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한국당의 비협조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지 못 하고 있는데, 더욱 진상 규명 작업이 절실해졌다. 한국당은 5·18 진상 규명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자기최면도 이만하면 병이다.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면서 “전씨는 광주 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재판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바에야 전씨 부부는 그 입 다물고 더 이상의 망발을 멈추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순자씨 발언과 관련해 어떠한 공식 논평도 내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이영광론/신수진

    1.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위상학 인간을 위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지만 신에게 붙잡혀 영원한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 1) 그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주저 없이 고통의 근원으로 다시금 향하는 시지프스의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감히 통찰하고 부조리한 삶을 무한히 들어올림으로써 결코 패배하지 않는 반항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결의와 반복처럼 이영광은 계속해서 쓴다. 우울과 명랑을 진자처럼 오가며 그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절벽을 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아니 그건 너무 SF적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이 바람과 좌절은 그 자체로 시지프스의 은유와 부합한다. 1998년 등단 이후 서정적 주체의 환부를 드러내고 그 통증의 발로를 소상히 추적하고자 하는 시정신으로 그는 이제 ‘끝없는 사람’에 당도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서 아픔을 갱신하며 정신의 높이를 몸의 위치로 끌어내린 그는 기꺼이 병실로 치환된 세계를 겪어낸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는 위태로운 상태일지라도 그는 적어도 자기 세계를 가진 자로서 이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입지는 이영광의 정신적 배후로, 그의 위상학으로 건재해왔다. 이영광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문득 “한 번도 문제가 돼본 적”(‘문제’) 없는 역설적인 세계를 깨닫는다. 합리와 효용만을 쫓는 병리학적 사회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 예의 그 반동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그의 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역설적 사유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죽음이라는 테마는 삶보다 더 압도적이다. 죽음은 미학적 감수성의 대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도약시키는 극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대 한국시에서 진단되는 시대적 감각이나 향유적 양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의 대결구도를 견디는 주체의 극기를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윤리는 자칫 자기 동일성에 포섭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폭력의 메커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세계를 주시한다. 2) “죽기 전에”(‘오일장’) 죽기 위함이라는 역설과 비판적 실천 의지는 자해에 가까운 자학으로 점철되었고 마침내 이러한 기근 속에서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나무의 존재로 현현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식물적 상상력과 가공할 병실로 환원된 세계 인식을 근거로 계속해서 “간다”, “가야한다”(‘나무는 간다’)를 역설하는 이영광의 이 길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3) 2. 상실과 존재의 원환(圓環)으로서 병폐의 징후 : 미치다, 아프다, 병들다 이영광의 시에는 상실과 결여의 수사가 넘쳐난다. 상실은 존재를 표상하고 존재는 다시 상실을 견인한다. 그에게 상실은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의식화이다. 대상이 충족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의식하지 않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사랑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때의 상실은 사랑의 존재에 대한 의식화인 것이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결승선(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는 간다’ 전문 이상(李箱)에게 열두 명의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있었듯, 이영광에게는 미치고 푸르고 가고 가버린 나무가 있다. 시인의 자기의식은 나무로 환유되고 있는 이지러진 시적 주체의 자화상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지평으로서 나무는 시적 주체의 술에 취한 가계(家系)와 생활과 속내를 목도해왔을 뿐 아니라 그 울음을 위로하던 내밀한 기억으로 인하여 제 자신 역시 깊은 병을 앓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씩 미쳐가는 나무는 제 스스로의 몸에 묶여 혀를 빼물고 있으면서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도망치지 못한 채 순순히 미쳐가고 있던 나무는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면서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징한 로고스를 탈각한 채 세계를 거대한 병실로 치환하면서 그것과 한몸인 나무가 겨우 붙어 있는 숨으로 뱉어내는 전언, 이 신음이 바로 이영광의 시가 육박해가는 시의 음성이다. 그것은 “고문받는 몸뚱이”의 형상이리만치 처절하게 으스러진 어떤 것이다. 변형되고 훼손되고 상실하면서 이제 나무들은 간다. “결박”과 “독방”이라는 이 문제적 존재의 필요충분조건 위에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 있다. 그것이 설령 “제자리걸음”일지라도 가고자 하는 까닭은 세상이 “뒤집히”거나 “녹아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의 관계로서 나무의 뿌리격인 세상은 나무의 존재를 끊임없이 몰락시키며 역설적으로 바로 그 허물어지는 순간들로부터 나무가 재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미쳤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미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광기와 착란의 고투는 “공중의 결승선”에서 마침내 분신하듯 정신을 잃고 제 몸을 산화하고 만다. 정신을 잃고 나서야 푸르게 미친 나무와 푸르게 미친 숲은 모두 서로에게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온통 상실과 결여의 비존재로 읽히는 세계에서 에포케가 발생하는 이 공명의 찰나로부터 이영광의 시집은 시작된다. 정체와 암전에서 시동을 걸 때 나타나는 재부팅의 효과, 그 광포한 분란을 통과할 때에만 겨우 돌아오는 불규칙한 심호흡이 바로 이영광 시에서 나타나는 병폐의 첫 번째 징후인 ‘미치다’의 증상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미친, 혹은 미쳐버린 이 나무들의 진격은 삶의 벼랑 끝에서 발휘되는 재기의 몸부림이자 고유한 주체 확보의 계기가 된다. 시끄럽게 부서지고 피 나던 집이었는데/누구도 아이를 욕하거나 때리지 않았다/조용한 아이였다/조심하는 아이였다/모든 걸 알고 모든 것에 준비된 표정으로/떨려고 하지 않았다/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중략)/아프지 않겠습니다/아이가 되지 않겠습니다/온몸을 희끄무레한 붕대로 감고 있어서/아플 곳이 없었다/죽으면 죽으리라. 4) /살면 살리라/벗은 아이였다/벗겨진 아이였다/생각하지 않고,/늘 남의 생각만 생각하는/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무섭고 많은/시간이 잡은 아이였다/하루는 사십년처럼 흐르고/사십년은 하루처럼 멎어/어느 날, 돌아온 아이였다/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아직도 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망가져가는 아이’ 부분 상실과 결여로 화하는 존재의 나쁜 사정(아프거나 혹은 죽거나)은 핏속을 흐르는 불가해한 광기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시라는 것에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몹쓸 운명에 다름 아니다. 문명과 역사의 폭압으로부터 거세된 욕망은 이제 생태적 상상력을 넘어서 가족 내력으로부터 발생한 병폐적 징후들, 상실된 존재라는 치부로 고백된다. 폭력과 방임과 유기라는 총체적인 학대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야만 한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숨죽여 자라는 동안 모든 걸 알아차려버린 아이는 어느덧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어서 아플 곳이 없는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을 외우는 동안 죽고 또 죽어 역설적으로 그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사십년의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빛바래지 않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의 하루는 사십년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사십년은 하루처럼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발가벗겨지고 죽임당한 채 자신을 영구히 복원하지 못하는 이 시적 주체의 내력은 질병의 코드로 나타나며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상실과 결여의 반대급부로서만 존재의 기표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다. 모든 곳이 아파서 아플 곳이 없는 아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아이, 아픈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데도 안 보이는 아이로 아픔이 재현되는 양상에서 볼 수 있듯, 이영광이 상실의 주체를 존재의 그것으로 전복시키는 역설을 보여줄 때 그 도화선은 병폐적 징후로 드러난다. 병폐적 징후의 두 번째 시어로서 ‘아프다’ 역시 꺼져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의지의 기제로 작동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새 활로의 모색을 담당하는 기저가 된다.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그는 병들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가만히 멈춰 있기죠/그는 병들었다, 하지만/나는 왜 병이 좋은가/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그는 버르적댄다/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침이 흐른다/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어떤 기적이 필요하다/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중략)/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그는 힘없이 낫는다/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대홍수가 나지 않아도,/메뚜기떼가 새까맣게 하늘을/덮지 않아도 좋다/나는 안락하게 죽었다/나는 내가 좋다/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소주와 꿈 없는 잠/소주와 꿈 없는 잠 ―‘저녁은 모든 희망을’ 부분 이영광은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한다는 뒤바뀐 선후 관계를 통해 병의 중의적 차원을 암시한다. 이는 낫기 위해서는 먼저 병이 들어야 하는 논리적 인과성에 대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지만 병폐의 징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은 본래 어떠해야 했는지를 복기시키는 반동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어 있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전력을 다해 멈춰 있기 위해 “혁명”이라든가 “기적”과 같은, 존재의 근원을 통째로 뒤바꿀 만한 지각변동을 꿈꾸지만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 소요 사태 속에서 ‘나’는 도리어 병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병은 푸르게 미쳐가는 생의 긍정적 요소로 읽어내야 한다.) 시어들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놓은 이러한 양상들은 이제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음을 가시화하기 위한 이영광식의 역설로 정립된다. 그래서 이영광이 쓰는 존재의 본질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와해되고 생성한다. 이 유동적인 성질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존재가 되기 위해 ‘그’는 “버르적”대고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린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는 또 다른 ‘나’이지만 ‘나’는 ‘나’를 만듦으로써 도리어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에 처한다. 고통과 쾌락, 경험과 선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인이 접근하고자 하는 ‘나’는 다가갈수록 멀어질 뿐 한시도 오롯한 ‘나’가 되지 못한다.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몸이라는 집을 한 채 지니고 있다. 집은 일종의 병실로 나타나며 그는 이 무력한 “스물네평”에 “변혁”, “새날”, “자폭”, “재앙”, 혹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대혼란이 벌어지길 기도한다. 그것은 더 완벽하게 미치고, 더 못 견디게 아프며, 더 깊이 병들어 차라리 그 병세에 차도가 없어져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희망을 앓아온 ‘그’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완치되고 만다. 이것은 패배조차 허락되지 않는 참담한 실패를 증거한다. 상실을 경험함으로써만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이러한 역설적 구조는 이영광이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패러다임으로 병폐의 세 번째 징후인 ‘병들다’의 의미다. 내 것조차 될 수 없는 고통의 전유물인 ‘나’ 앞에서 시인은 그의 유일한 도구인 시만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시는 이영광의 시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상실과 존재의 원환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세계 속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멈춰 있는 것, 불변하는 것, 영구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논리적 명쾌함은 불가능해지고 점점 수식어가 많아질 뿐이다. 이 구태의연한 언어의 불가능성은 상실과 결여로서 존재에 대한 회의와 그대로 닮아 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나’와의 간극은 모순으로 일관하고 있는 세계의 이원성, 이를테면 안과 밖, 전력과 정지, 죄와 벌, 아침과 저녁,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현실과 꿈 등을 통해 구조화된다. 마침내 모든 상실이 존재를 부상시킨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 ‘나’는 “소주와 꿈 없는 잠”에 혼곤하게 빠져든다. 만해의 “잠 없는 꿈”(‘잠 없는 꿈’,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이 구절 속에는 모든 대상이 뒤집어진 거울 속 같은 세계가 놓여 있다. 현상과 이면이 전복되는 세계를 목도하며 ‘나’는 세계의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트랙을 돌며 남겨진 부분(병폐로 나타나는 이상 징후)을 확보하고 그것을 존재로 변환할 궁리에 몰두한다. 3. 시지프스의 역설 : 나무의 존재론 지난 시력으로 볼 때 이영광의 작업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서 병폐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시대적 데카당스를 향한 분기였고 시적 실천에 의한 궐기였다.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디스토피아와 대치하면서 그가 겪어내는 소외와 환멸은 미치고, 아프고, 병든 시적 주체의 상태로 반복된다. 시인은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이 고통을 직면함으로써 사람다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고 있는데/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중략)/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마음 1’ 부분 아니, 아니…… 돌아가야 해요/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에,/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해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유령 6’ 부분 시집 곳곳에 기록된 4월 16일은 우리로 하여금 섣불리 환부를 봉합하는 대신 고통을 날것 그대로 경험하도록 한다. “오늘도 무사하지 않았느냐고” “겁도 없이”(‘겁’) 이야기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징역 살고 싶”(‘무인도’)은 심정을 토로한다. 고통의 근원지를 밝히고 불편과 부끄러움을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갈 때만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영광의 피 흘리는 세계는 사람의 것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광에게 존재가 되기 위한 상실과 병폐의 과정은 다음 시들에서 죽음의 이미지들로 변환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삶과 죽음이라는 시어는 전도되어 있으며 자주 몸 바꾸어 나타나는 죽음의 현시들은 삶의 부장품처럼 예상치 못한 일상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출토된다. 이는 삶과 죽음을 매 순간 견디어내면서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과도 같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기를/살려주는 일/정말 해야 할 일도 저에게 위로를/던지지 않는 일/입이 말을 못하겠나/손이 구원을 못 쓰겠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하지 않는 것을 해내는 일 ―‘깔깔대는 혼’ 부분 고독이 안되자 그는 삶을 물어뜯었다/사람이 안되면 사람을,/진심에 지피면 진심을 무찔러야 했는데/삶을 쓰러뜨렸다/죽음이 안되면 죽음을 여의어야 했는데/삶을 버렸다 ―‘하지만’ 부분 자기를 순순히 살려주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하는 이 전언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저 위악과 자위의 역설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때문에 내가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영광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로 죽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진심을 무찔러야”하고, “죽음을 여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견딤의 미학이 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 존재를 성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의 외연에 등재시킨 상실과 결여의 병폐적 현상들을 주체의 확립과 존재로 복귀시키며 재구조화하는 이영광의 시도는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와 사명임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뒷밭이 우릴 먹여주지 않니 시인은 싫다 너는 학교에서 라디오도 타왔지 않니 취직도 안하고 출세도 안되고 시인이 되어 내려갔을 때는, 나는 네가 시인만은 되지 말길 죽 바랐다, 이젠 객사하지 말라고 기도해야겠다, 어머니는 말했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시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뒷밭이 북풍한설이어서 굳게 다짐했다 시인이, 나는 아니다 언젠가는 가짜를 들킬 것 같아 두렵다 어쩌다 어머니 말을 잊어먹을 때면 그 짐승이 불쑥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때 깊이 눌러 감추어버렸던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 또 나는 무섭다 세상 모든 밭들은 왜 다 기근인가 객사 얘기는 그만하세요 뒷밭은 언제나 우릴 굶겼어요 저는 그냥 방랑만 하는 거예요 시늉만 하는 거예요 ―‘뒷밭’ 부분 시인님이 되느니/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시인님이 되느니/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높이지 않아도 시인은/만장처럼 드높으므로/아무리 높여도 시인은/꿇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시인님’ 부분 자전적 시임이 분명한 위의 메타시들에서 시인은 시 쓰기를 업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견디는 시지프스로 화한다. 평생 뒷밭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시인이라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들려주던 김삿갓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김병연의 전기를 가능케 한 드라마틱한 방랑과 객사에만 방점을 두어 마치 시인이 되면 반드시 떠돌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듯 아들의 행보를 심려한다. 시인이란 대개 시대의 병폐를 가장 먼저 진단하는 첨병으로 부나 권력과 같은 가치들을 풍자하며 으레 속세를 떠난 듯 자유로운 자들로 통용되지 않는가. 문학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도 시인의 입지가 지닌 이 변방의 좌표가 어렴풋이 짐작되었으리라.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겪어야 할 그 정처 없는 빈곤도 싫었겠지만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저 반역과 모반의 기질, 세상을 척지고 홀로 싸워나가야 하는 어두운 예감 같은 것이 서늘히 엄습해왔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인 어머니에게 불효를 자처하면서 기어이 멋대로 시인이 되어버린 시적 주체는 그러나 간혹 제가 가짜임이 들통날까봐 저어한다. 또 제가 정말 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 역시 두려워한다. 자신은 그저 시인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그의 말은 어쩐지 자신을 더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거나 “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고 말겠다는 이 호언장담, 이 비하와 경멸의 자기모멸감 속에는 기실 시의 쪽배로밖에는 이 깊은 생을 건널 재간이 없는 한 사람의 떨림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만장처럼 드높”고 “꿇은 상주처럼 낮”은 이 고결하고도 비천한 이름 곁에 선 시인의 결연함은 슬프도록 장엄하고 눈물겹도록 어리석다. 뭇사람들이 그 눈에서 “죄인”과 “천치”를 읽고 간 미당의 피맺힌 아침과도 같은 부끄러운 혼, 그러나 뉘우치지 않는 그 오만한 자세를 이영광은 어딘가 닮아 있다. 나무의 적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빈 들은 이글거리는 뿌리들을 비끄러맨다/바람은 잡념의 가지들을 조각조각 부러뜨린다/나무의 정권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한 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부분 맨주먹을 쥐고 눈밭에 선 나무, 시적 주체로 형상화된 이 강인한 나무는 무방비 상태의 싸움꾼이다. “저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렇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상대는 바람이다. 바람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으로 나무와 교전한다. 제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의 정직한 생의 기록은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모를 홀연한 바람의 태생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나무가 거역할 수 없는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서 육중한 삶을 떠메고 가야 한다면 바람은 무한한 가변성이라는 무상함을 상징한다. 제 몸을 한그루 장창 삼아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 불어오는 지평선을 제압하는 나무 안에는 뜯겨나간 뿌리와 부러진 가지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이 부서진 한 그루의 육체 안에는 삶과 죽음이 온통 뒤엉켜 있어 그 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지게 된다는 이 유연한 나무의 병법을 통해 시적 주체는 상실과 병폐를 넘어서는 영원한 시지프스의 시 쓰기와 존립을 이루게 된다. 언제나 환한 볕보다는 그늘의 모서리를 맴돌던 시적 주체는 마침내 “한 점 배후도 없이” 맨몸으로 제 삶을 일궈내는 나무가 된다. 당신이 한낱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날 죽여 나는 음 사월 물푸레나무같이 푸르렀습니다 푸르고 튼튼하게 병났습니다 물푸레나무 곁에서 춤추는 물푸레나무같이 기쁨을 못 이겨, 나는 당신이 한없이 외로웠습니다 당신은 한낱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쳐 날 다시 살려내고, 사랑 없는 사랑이 되어 떠났습니다 마른 가을이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듯 나는 모든 기쁨을 힘없이 무찔러 이기고, 음 시월 물푸레나무같이 시들어 병 나았습니다 ―’물푸레나무같이’ 전문 당신이 건넨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인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나’는 기쁨에 못 이겨 춤을 추면서도 당신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치자 ‘나’의 병은 나았지만 나는 사랑도 기쁨도 잃은 채 시들게 된다. 시인의 책무란 본래 사람의 것으로 아플 때 죽음과도 같은 병폐 속에서 도리어 시퍼렇게 살아나 그 한없는 외로움을 읊는 것이며, 사람의 것이 떠났을 때 힘없이 시들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상실과 존재의 아포리아 속으로 망명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시적 주체는 이제 자신의 생애보다 오래된 나무의 부동자세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의 무한수열을 느낀다. 그 바람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나무의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에서 분다. 그 바람을 관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보다 먼저 미치고, 먼저 아프고, 먼저 병들어버리는 자로서 시인뿐이다. 시적 주체는 필연적으로 역설의 폐허에서 기아와 고독과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존재의 상실이야말로 새 존재를 생성해내기 위한 회로의 추동장치로 작동한다. 이영광은 병폐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결국 시를 앓을 때만 존재가 도래할 수 있는 기반을 예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으로 인하여 시적 주체는 소진되거나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려가는 순간에 시를 통한 삶을 발견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슬픔, 병과 치유, 죽음과 생명이 마치 한몸처럼 붙어 있는 이 역설의 시학은 나무의 존재로 부활하는 이영광식의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시적 주체는 바람이 일으키는 병폐의 징후를 통해 생사의 영원한 지평 위로 나무의 삶을 고양시키고 재편한다. 그때 들려오는 푸른 존재의 잎사귀 소리는 원래 자기 몸 안에서 울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천지의 울음을 내재하고 있는 나무의 존재론은 이제 이영광 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를 기억하는 주요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할 것이다. 4. 역설의 폐허에서 자란 존재의 아포리아 2000년대 이후 미정형 주체들의 등장은 기존의 논리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서정시라는 장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생성했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기원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난해함에 유폐된 것일지라도 기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명의 의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정치적 추문이라는 2010년대의 현실에 직면한 시는 윤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해체환상유희적 계보에 틈입한 윤리의 맥락 속에서 이영광은 가장 클래식한 발성과 감성으로 노래할 때만이 구축될 수 있는 자기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담론보다 광활하고 가변적이며 모순적인 존재로서 ‘끝없는 사람’을 구현하는 시. 그가 세속성의 탐닉이나 언어의 실험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좌표를 확보한 까닭은 사람이 가진 그 예외적 불가능성만이 시의 자기복제가 아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나 같아서 나 같지 않”고, “너무 나 같지 않아서 나 같”(‘불을 끄려고 한다’)다고 하는 시적 주체의 음성은 소외와 환멸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메아리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세계의 트랙을 돌며 이영광은 미치고, 아프고, 병들어 있는 이상 징후들을 감지하고 그 상실의 집합들을 지속적으로 출몰시킨다. 병을 앓듯 자신을 오래도록 앓는 자만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의 중의성을 비롯한 역설적 언어의 고안은 시 안에 자신의 존재론을 도입하기 위한 장치이자 다의적 층위를 포섭하기 위한 그의 기획을 보여준다. 나무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한 무더기의 푸른빛만이 단지 거기에 남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영광의 숲은 마음껏 길을 잃도록 안내한다. 그는 병들어 있는 주체를 통해 그 존재 자체가 곧 황폐한 세계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현실 맥락 속에 은폐된 이력과 배후를 드러낸다. 그러나 병의 의미가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층위로 활용되면서 더 깊이 병들어 죽어버리는 지경에 이를 때라야 그 죽음으로서 삶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소외되고 병든 주체의 착란과 광기는 가고 가고 또 감으로써만 이 견고한 세계를 꿰뚫고 장악하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의 푸른 흔들림으로 산화한 나무의 기투는 결국 “나는 자꾸자꾸 미쳐서 반드시 삶이 되고 말 것”(‘오일장’)이라는 다짐 속에서 두터운 자기 그늘을 겹겹이 축적해간다. “산은 산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다시 산은 산이다.”라는 선문답이 있다. 이 변증법에 의하면 이영광의 시도 나였다가, 나가 아니었다가, 다시 나로 재편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산 채로 죽어보는 건 커다란 일”(‘동구릉’)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영광은 간다. 간다는 말에는 저 피안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의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뜻도 숨어 있다. 이영광은 간다. 더 잘, 더 곱게 가기 위하여 그는 “나으려 하지 않는 병”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숱한 사랑의 말”(‘세한’)을 찾기 위함이다. 그것만이 시지프스가 되어 기꺼이 감당해내야 할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1) 알베르 카뮈, 오영민 옮김, 시시포스 신화, 연암서가, 2014, 201~208쪽. 2) 들뢰즈의 차이(difference)나 레비나스의 타자성(alterity)과 같은 숱한 담론에서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상호 존립 가능한 관계의 회복은 이영광 시에서 여전히 화두로 존재한다. 3) 최근 두 권의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 2013)와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을 대상으로 하며 시를 인용할 때는 작품의 제목만 표기한다. 4) 에스더서 4장 16절.
  • [이재무의 오솔길] 라면 예찬

    [이재무의 오솔길] 라면 예찬

    우리 세대에게 라면은 구황식품이었다. 1960~70년대 시골에 처음 들어온 라면은 단박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라면은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었다. 당시엔 라면이 국수보다 훨씬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어머니는 여름날 특식으로 국수에 라면을 섞여 끓이곤 했는데, 아버지의 사발에는 항상 더 많은 양의 라면 사리가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라면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게 돼 서민들이 즐겨 먹게 됐다. 너나없이 궁핍한 시절 라면이 서민들 식생활에 기여한 공로가 실로 적지 않았다.지금에 와서도 라면은 서민들이 일용하는 양식 중 하나다. 나 역시도 라면을 즐겨 먹는 편이다. 58년생인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라면을 먹는 셈이니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허기질 때 먹고, 적적할 때 먹고, 슬플 때도 나는 라면을 먹는다. 외국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찾는 음식도 라면이다. 매콤한 라면 국물을 들이켜면 타국에서 먹은, 느끼한 음식 때문에 더부룩했던 속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가시는 기분이 드는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서민 음식 중 라면 앞에 서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면의 원조가 중국이다, 일본이다 분분하지만 그거야 어쨌든 박래품인 라면이 우리 맛의 과정을 거쳐 서민과 함께하는 보편적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여름 나는 시골집에 내려가 밤을 기다려 물을 반쯤 채운 냄비에 뜬 별에 라면을 넣고 끓여 먹었다. 또 낮에는 시골집 평상에 앉아 지나가는 구름 한 장을 냄비에 띄워 라면과 함께 끓여 먹었는데 냄새를 맡고 온 바람이 얼굴을 사납게 할퀴어 댔다. 그 여름 막바지 주말에는 바닷가에서 끼룩대는 갈매기 울음 서너 송이를 따 냄비에 넣고 끓여 먹다가 바다가 흰 목젖을 내밀어 오는 통에 사리 몇 가닥을 적선한 적도 있다. 몇 해 전에 나는 심야에 라면을 끓여 먹다가 사색에 잠긴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라면이 한 소식을 안겨 준 셈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늦은 밤 투덜대는, 집요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는 신경이 가파른 아내의 눈치를 피해서 도적처럼 몰래 주방에 갔다. 사기 그릇들이 눈을 크게 뜨고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침묵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자극보다 반응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구석에서 곤한 잠에 든 냄비를 깨워 물을 채운 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점화를 했다. 적요의 천에 구멍을 내는, 냄비 속 물 끓는 소리가 어릴 적 들었던 한여름 밤의 개구리 울음소리 같았다(고요 속에는 저렇듯 호들갑스런 소리가 숨어 있는데, 물체 안쪽에 박혀 있는 소리들은 언제든 들킬 준비가 되어 있고, 그리하여 계기만 주어진다면 잽싸게 몸 밖으로 소리를 토해 놓는다). 찬장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라면의 표정은 딱딱하고 각이 져 있었다. 사리들이 짠 스크럼의 대오는 아주 견고하고 단단해 보였다. 누구도 저들의 몸통을 부러뜨리지 않고서는 깍지 낀 결속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사리를 끓는 물 속에 넣었다. 딱딱하고 각이 져 있고, 한 몸으로 뭉쳐 있던 사리들은 펄펄 끓는 물 속에 들자마자 금세 표정을 바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각자 따로 놀며 흐물흐물 흩어지며 풀어지고 있었다. 저 급격한 표정 변화는 우리 시대의 슬픈 기표였다. 도마 위에 양파, 호박, 파 등속을 가지런히 놓아 두고 집 속에 든 칼을 불러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그의 눈빛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그는 세상을 나누고 자르기 위해 태어난 자였다. 놓여진 것들을 다 자르고도 성이 안 찬 노여운 그는 늦은 밤을 이기지 못한 내 불결한 식욕을, 지난한 허기의 관성을 푹 찔러 올는지 몰랐다. 냄비 속 부글부글 끓는 것은 그러므로 라면만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라면 한 그릇 앞에서 자못 느낌이 무겁고 진지했다. 하지만 그해 늦은 밤 라면이 정색하고 내게 준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허기의 관성을, 라면의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 [색다른 인터뷰] 세계 지도자 키울 ‘개성평화대학’ 세워 남북 공존 실마리 만들자

    [색다른 인터뷰] 세계 지도자 키울 ‘개성평화대학’ 세워 남북 공존 실마리 만들자

    이동섭(64) ㈔‘희망래일’ 부이사장이 ‘개성평화대학’ 설립 운동을 제안했다. ‘현역’ 시민운동가로서 밝히는 개성평화대학은 일단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성의 의미와 통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가깝다. 물론 장기적으론 번듯한 정식 대학을 개성에 세우도록 하자는 의제를 남북 정부에 제기하는 의미도 담겼다. 30일 이 부이사장을 만나 그가 고민하는 개성평화대학, 그리고 남북평화와 공존을 되새겨 봤다.→희망래일이라는 단체는 통일뿐 아니라 한국을 대륙과 연결하자는 운동도 열심인데요. -우리가 섬나라보다 더한 섬나라라는 걸 절감하고, 특히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 실망하면서 해결을 꾀하자는 의미에서 2010년 첫발을 뗐습니다. 설립 때부터 한 게 두 가지입니다. 대륙학교는 처음엔 한 달에 한 번씩 일반시민강좌 방식으로 하다가 지난해부터는 정세현 전 통일장관을 교장으로 모시고 1년에 두 번씩 하는 교육강좌로 거듭났죠. 성공회대와 양해각서도 체결했고요. 지난 9월 열린 4기 대륙학교에선 정 전 장관,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등이 강사로 나섰습니다. 시베리아 인문여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시야를 키우자는 취지입니다. 20~30명이 함께합니다. →개성평화대학 설립운동은 어떤 운동입니까.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4월 27일과 5월 26일 판문점, 9월 18~20일 평양) 열면서 남북관계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뒤 북·미관계가 원활하게 진척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남북 간 철도연결을 위해 공동조사를 하는데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둥, 유엔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둥 하면서 남북관계를 남북이 자주적으로 풀어 나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 자체에 분노해야 합니다. 남과 북의 평화와 공존,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실마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성평화대학은 그런 고민 속에서 나왔습니다. 단초는 박한식 교수가 내놨습니다. 희망래일 ‘대륙학교’라는 프로그램에 박 교수를 초청강사로 모셨습니다. 박 교수가 강연에서 개성에 대학을 세우자는 얘길 하는데 ‘이거다’ 싶었죠. 서울과 평양을 잇는, 통일시대를 위한 핵심지역인 개성에 남북이 공동으로 종합대학을 설립해 평화와 통일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연구 중심지로 육성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남북 젊은이들이 개성에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해 이들을 세계 평화를 이끌 지도자로 키운다면 그 자체로 통일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통합해서 연구한다거나 역사학이나 국문학을 함께 고찰한다면 학문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북측 반응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박 교수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북측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북측에서 현재 논의 중이라면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 갈 겁니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정부 차원의 논의와 별개로 우리는 시민단체로서 시민들의 힘을 모아 양측 정부에 행동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일단 정규 4년제 대학이 아니라 대안학교 형태를 고민 중입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학민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전병문 서울대민주동문회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이병한 원광대 교수 등이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희망래일 사업 가운데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회가 가장 유명한 것 같습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회는 올해 봄 ‘70년 침묵을 깨는 침목’이라는 표어로 시작했습니다. 2조원가량이라는 동해북부선 연결 비용 가운데 1%를 시민 참여로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발족했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 이철 희망래일 이사장, 방송인 김미화씨 세 명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이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혈세를 받는 김제동 7억 연봉 공영방송 시사프로 진행자, 김미화 남북철도추진위원장, 문팬 카페지기 공기업 사외이사... 이들이야말로 화이트리스트가 아닙니까’라고 비난했습니다. 김미화씨가 즉각 “저는 남북철도위원장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희망래일이라는 민간단체와 동해북부선철도연결 ‘침목놓기운동’에 봉사활동하고 있습니다만”이라고 반박하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이 의원은 이내 ‘김미화 남북철도추진위원장’이란 부분을 슬그머니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곧 ‘김미화 남북철도추진 위원장(정식명칭: 동해북부선연결 공동추진위원장)’이란 문구를 집어넣었어요. 사과를 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사실 정부에는 남북철도추진위원회라는 기구 자체가 없습니다. 명백하게 허위사실인 게 드러났는데 연락도 없습니다. →사랑의 연탄 나눔을 통해 북측과 함께 사업을 한 경험도 많으시지요. -개성과 금강산 지역이 주요 대상이었는데 50차례 가까이 방문한 것 같습니다. 2004년 가을 금강산 온정리 마을에 연탄 5만장을 지원한 게 처음이었습니다. 2010년 5·24조치(북측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 교역 중단,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를 골자로 한 남북교류 제한) 전까지 북에 연탄 1000만장을 지원했습니다. 연탄 관련 협의차 평양도 서너 번 방문했죠. 언젠간 북측 관계자한테서 “금강산이 푸르게 된 건 다 연탄을 때면서 벌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남북 사이의 벽을 허물고 평화와 공존, 통일을 앞당기는 활동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성평화대학도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이동섭 부이사장은 누구 이동섭 희망래일 부이사장은 1972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1975년 제적된 긴급조치 세대다. 1980년 재입학했지만 계엄령 위반으로 두 달 만에 다시 퇴학과 함께 1년간 수감됐다. 3년가량 회사생활을 하다 1985년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3년간 핸들을 잡다 노조에서 1993년까지 쟁의부장 등을 맡으며 파업으로 구속된 적도 있다. 30일로 7주기를 맞은 김근태(1947~2011)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맺은 인연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새사회연대에서 같이 활동하다 1998년 보좌관으로 일했다. 2001년 한반도재단을 설립하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참여했다. 석탄공사 감사를 지내던 2004년 6월 노조원들이 3만원씩 기부한 7000만원을 마중물로 사랑의 연탄 나눔을 시작했다.
  • 11년 전 ‘타미플루 이상반응’ 알고도…환자에 경고는 작년 한 번뿐

    11년 전 ‘타미플루 이상반응’ 알고도…환자에 경고는 작년 한 번뿐

    2009년 중학생·2016년 초등학생 추락 의료인 대상 안전성 서한 2차례만 보내 의협 “9년 간 망상·지각이상 등 3051건” 약사단체 “식약처 서한으로 책임 회피”보건당국이 2007년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의 이상 반응을 인지하고도 지난 11년 동안 환자 대상의 경고 전단지를 단 한 차례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의료인 안전성 서한도 2009년과 지난 22일 여중생 사망 사고를 계기로 보낸 것까지 포함해 두 차례에 불과했다. 의·약사가 주의사항을 알려주지 않거나 직접 주의사항을 읽어보지 않으면 환자는 이상 반응을 알 방법이 없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대한의사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타미플루 제조사인 ‘로슈’에 보고된 이상 행동, 망상, 지각 이상, 섬망 등 신경정신과적 증상은 305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91%인 2772건이 일본에서 보고됐다. 로슈 측은 ‘사망과 약물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럼에도 일본은 2007년부터 10대 청소년에 대한 타미플루 처방을 금지하다가 지난 8월에야 투약을 재개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09년 14세 남자 중학생, 2016년 11세 초등학생 등 두 차례의 추락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주의사항을 알리지 않았다. 이상 행동에 의한 사고 위험성은 이미 2007년 타미플루 약품 경고 문구에 포함됐다. 식약처는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던 2009년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차례 안전성 서한을 제공했을 뿐이다. 현재 약품 설명서에는 ‘2일간 소아, 청소년이 혼자 있지 않도록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여전히 의료인 대상의 주의사항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8월 뒤늦게 이상 반응 주의사항이 담긴 환자용 전단지를 한 차례 배포했다. 2007년 이상 반응 인지 이후에도 줄곧 ‘나몰라라’ 했던 셈이다. 지난 22일 여중생 사망 사건 발생 이후 의료인, 환자 대상 주의사항을 공개해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약사단체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2009년 타미플루 안전성 서한 하나만 배포한 채 모든 책임을 다한 것처럼 행동한 식약처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손흥민 1도움 더했지만 살라흐는 1골 1도움 12월의선수상 어찌 될까

    손흥민 1도움 더했지만 살라흐는 1골 1도움 12월의선수상 어찌 될까

    손흥민(토트넘)이 1도움으로 뛰었다면 모하메드 살라흐(리버풀)은 1골 1도움으로 날았다. 더욱이 페널티킥을 동료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스토리까지 더했다.  손흥민은 30일(한국시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인 울버햄프턴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홈 경기 전반 22분 케인의 득점을 도와 시즌 5호, 리그 4호 도움을 기록했다. 중원에서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 끝에 공을 따낸 동료가 밀어준 패스를 오른쪽 측면에 있던 해리 케인에게 넘겼는데 케인이 페널티 아크 근처로 드리블한 뒤 왼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의 패스는 어시스트로 기록됐다.  12월 리그 성적으로는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해 2시간 30분 뒤 킥오프한 아스널전에서 1골 1도움을 추가한 살라흐(6골 4어시스트)보다 공격 포인트가 뒤지게 됐다. 그는 동료 피르미누의 해트트릭 완성을 위해 후반전 두 번째 페널티킥 기회를 피르미누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면모도 보였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살라흐가 피르미누에게 페널티킥 기회를 줬을 때 거의 울 뻔했다”며 “살라흐가 얼마나 득점을 원하는지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다.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쟁자인 피에르 에메리크 오바메양(아스널)은 침묵하면서 5골 2도움이 12월의 최종 성적이 됐다.  손흥민의 동료이며 이날 앞서 신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는 명단에 이름을 올린 케인도 이날 선제골을 기록하며 이달에만 리그에서 6골 (2어시스트)째를 기록해 이달의 선수상을 엿보게 됐다. 이달의 선수상은 인터넷 투표 10%와 심사위원 채점 90%를 합산해 결정하는 만큼 자국인 잉글랜드 선수들이 거의 독식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케인은 또 리그 13골째를 기록해 오바메양, 살라흐와 득점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한편 2위 토트넘이 충격적인 1-3 역전패를 당하며 승점 45에 머물러 선두 리버풀(승점 54)와의 격차가 9로 벌어졌다. 3위 맨체스터 시티가 30일 11시 15분 사우샘프턴과 비기기만 해도 골 득실 차로 2위를 양보하게 된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란 말로 5연승에 제동이 걸린 선수들을 감쌌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에어포스원이 왜 여길 날아가?” 트럼프 이라크 ‘몰래 방문’ 들킨 사연

    “에어포스원이 왜 여길 날아가?” 트럼프 이라크 ‘몰래 방문’ 들킨 사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는 보도는 조금은 사실과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탑승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영국 셰필드주 상공을 비행하다 한 아마추어 천문 동호인에게 일찌감치 들켰기 때문이다. 앨런 멜로이는 26일 아침 자택의 층계에서 하늘을 올려보다 에어포스원의 비행 모습을 촬영해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사람들이 이 비행체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폭로 전문가들인 위키리크스도 따라붙었다. 이들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깜짝 방문 가는 것인가? 아님 터키? 항로 추적꾼들은 에어포스원으로 쓰이는 두 대의 항공기 중 한 대(92-9000/VC-25)가 가짜 비행 코드 ‘AE47C4’로 위장한 채 한밤 중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이륙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무선 응답은 루마니아 근처에서 바뀐 뒤 작동 불능”이라고 알렸다.멜로이는 세 군데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가 접촉해와 “황홀했다. 사랑스러운 일요일 아침이었다”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비행체를 보자마자 ‘되게 번쩍이네’라고 생각했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완벽했다”고 털어놓았다.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백악관 내부적으로도 너무 많은 ‘힌트’를 제공했다고 짚었다. 공보실에 아무도 없었던 점, 대통령의 일일 일정이 배포되지 않은 점,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동(웨스트윙)에 있을 때 보통 밖을 지키는 인력도 눈에 띄지 않은 점 등 때문에 대통령의 부재를 누구라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탄 연휴에 폭풍처럼 쏟아내던 ‘트윗 질’이 어느 순간 뚝 끊긴 것이 가장 큰 ‘힌트’가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3일과 24일 각각 10회 이상, 성탄절인 25일에는 두 차례의 트윗 글을 올린 그가 이라크에 도착했다고 발표될 때까지 약 20시간 동안 ‘침묵’했던 것이 사람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라크행은 ‘깜짝 방문’일 예정이었으나 비밀이 오래 가지 못했다”며 ‘극적 효과’가 반감됐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전임 행정부들은 대통령이 ‘분쟁지역’을 갈 때면 보안을 지키기 위한 극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보안 유지 노력이 더 어려워진 데는 비밀을 못 지키는 트럼프 대통령 탓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WP와의 인터뷰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전투지역을 방문하려고 한다”고 ‘귀띔’까지 했던 것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손흥민 두 경기 연속 멀티 골, 생애 세 번째 이달의 선수상에 ‘성큼’

    손흥민 두 경기 연속 멀티 골, 생애 세 번째 이달의 선수상에 ‘성큼’

    손흥민(토트넘)이 27일(한국시간) 본머스전에서 두 골을 뽑아내 두 경기 연속 멀티 득점으로 5-0 완승에 앞장섰다. 손흥민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인 본머스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9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전반 16분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선제 골로 1-0으로 앞선 전반 22분 상대 수비 실수를 틈타 카일 피터스 워커가 건네준 패스를 받아 그대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 세 경기 연속 골을 신고했다. 이날 첫 슈팅을 깔끔하게 골로 연결한 결정력이 돋보였다. 그는 후반 25분 문전 혼전 중에 골키퍼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공을 골문 안으로 집어넣어 리그 7호(시즌 10호) 골을 신고했다. 지난 24일 에버턴과의 18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6-2 대승을 이끌었을 때에 이어 두 경기 연속 멀티 득점이다. 그가 리그 두 경기 연속 멀티 득점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시즌에도 같은 기록을 작성했지만 그때는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경기가 포함돼 있었다. 손흥민은 후반 42분 페르난도 요렌테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걸어 나왔고 많은 관중들이 기립 박수로 그의 수고를 치하했다. 토트넘은 전반 34분 루카스 모우라의 골과 후반 15분 에릭센의 크로스를 몸을 돌려 발리 슈팅으로 연결한 해리 케인의 득점을 엮어 5-0 완승을 거뒀다. 맨체스터 시티가 레스터시티에 1-2로 무릎 꿇으면서 토트넘은 리그 2위로 올라섰다. 맨시티는 전반 14분 베르나르도 실바의 선제 골로 앞서나갔으나 5분 뒤 알브링턴이 동점을 만든 뒤 후반 36분 리카르도 페레이라가 역전 결승 골을 얻어맞아 승점 44에 머물렀다. 4연승을 내달린 토트넘은 승점 45를 쌓아 맨시티를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이달 들어 손흥민은 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여덟 경기에 출전해 7골 2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하나 이상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12월 득점 부문에서 손흥민은 기성용이 아시안컵 차출로 결장한 뉴캐슬과의 경기 후반 득점 포를 가동한 모하메드 살라흐(리버풀), 팀 동료 케인과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본머스전에 이어 울버햄프턴전에서도 공격 포인트를 추가하면 손흥민은 이달의 선수상을 받아 생애 세 번째 수상 가능성이 높아진다. 손흥민은 첫 수상 당시인 2016년 9월 4골 1도움을 올렸고, 두 번째인 지난해 4월에는 5골 1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는 12월에 4골 3도움, 3월 4골을 기록했지만 이달의 선수상은 받지 못했다. EPL 사무국이 제정하는 이달의 선수상은 1년에 아홉 번만 수여한다. 손흥민은 지금까지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EPL 이달의 선수상 수상자다.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손흥민은 처음으로 12월에 시즌 10골을 달성하는 기쁨도 누렸다. 리그 데뷔 시즌 8골에 그쳤던 그는 2016~17시즌엔 1월 29일에 시즌 10호 골을 넣었다. 2017~18시즌엔 1월 5일에 10번째 골을 넣었는데 올 시즌 아시안게임 차출 때문에 지쳐 득점이 침묵하다 이달 들어 폭발하며 가장 빨리 시즌 10골을 채웠다. 지난 20일 아스널과의 리그컵 경기부터 최근 세 경기 5골을 기록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뽐냈다. 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 닷컴은 평점 8.73을 매겨 에릭센(8.99)과 케인(8.95), 모우라(8.80)에 이어 팀 내 네 번째로 높았다. 그가 평점 8을 넘긴 건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지난 9일 레스터시티전(8.54), 24일 에버턴전(9.91)에 이어 세 번째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평점 8을 줬는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워커 피터스, 케인과 나란히 가장 높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사랑도 명성도 잃은 대형교회

    사랑도 명성도 잃은 대형교회

    명성교회 사태 예장통합 분열 위기감 사랑의교회 대법원 판결 두고 불안감 성탄절인 25일 전국 교회와 예배당에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도가 종일 이어졌다. 예수가 실천했던 사랑과 평화를 되새기자는 목소리도 비등했다. 하지만 그 요란한 다짐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교회의 욕심과 독선이 부른 일탈 때문이다. 특히 성탄 시즌과 세밑 개신교계의 큰 그늘은 두 대형교회에 짙게 드리워진 느낌이다. 부자세습 논란에 휩싸인 명성교회와 담임목사 자격을 둘러싼 내홍을 앓는 사랑의교회. 두 교회의 갈등은 노회와 교단 분열로 이어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성탄절, 교회의 욕심과 독선에 눈총 명성교회 사태는 개신교계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려놓고 있다. 지난 9월 명성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103회 총회에서 김삼환 목사와 아들 김하나 목사 세습의 부당함이 천명된 뒤 명성교회 세습 쪽에 힘을 실어 준 총회재판국 국원이 전원 교체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동남교회의 세습 재심청구를 받아들인 재판국이 재심을 개시했지만 답보 상태다. 특히 서울동남노회와 예장통합 측 목사·장로의 일부가 명성교회 세습 쪽으로 기우는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결국 기독교인 250여명이 모인 명성교회세습철회를위한예장연대(예장연대)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제103회 총회 결의 이행 촉구대회’를 열었다. 대회 참석자들은 예장통합 총회 임원회가 총회 결의를 역행하는 인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재판국에 대해 재심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 공동대표 김동호 목사는 “예장통합 산하 교회와 노회가 불법과 불의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총회가 불법을 묵과하고 편법으로 명성교회 편을 든다면 뜻 있는 교회와 노회가 모두 저항해야 하며 불복종, 불협조 운동을 벌여서라도 이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나 목사 세습 어떤 결론 나도 후폭풍 이에 대해 세습 찬성 측은 김하나 목사 청빙이 정당하다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지난 2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예장 통합 정체성과 교회수호 연대’(예정연) 창립총회는 그 신호탄이다. 사실상의 맞불집회와 대항 단체 발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103회 총회는 여론에 편승해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인 특정 교회의 자유를 훼방하고, 교단의 헌법과 규칙 및 절차를 유린한 총회였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불법적으로 공천된 총회재판국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자격 없는 자들에 의한 법률요건 위반으로 각하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로선 총회재판국 재심이 어떻게 귀결될지 안갯속에 빠져 있다. ‘세습 불가’ 쪽으로 결정돼도 ‘교단 탈퇴 불사’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명성교회 측의 강경한 입장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예측 불허의 상태다. ●오정현 목사 자격 두고 법과 싸우는 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자격 논란에 휩싸인 사랑의교회 사태도 결말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분란상을 띠고 있다. 오정현 목사 자격 시비는 해묵은 논란거리였다. 그러다 지난 5일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4월의 원심을 깨고 “오 목사가 교단이 정한 목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돌려보낸 판결을 받아들이면서 사태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랑의교회 측의 대응이 만만치 않다. 사랑의교회가 소속된 예장합동 헌법에 따르면 목사가 되기 위해선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후 강도사고시에 합격하고 1년 이상 교역에 종사한 후 목사고시에 합격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일반 편입이면 목사고시까지 합격해야 목사가 될 수 있고 편목편입이면 강도사고시 합격만으로 목사 자격이 생긴다. 총회와 소속 노회는 오정현 목사가 편목과정을 거친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편목과정이 아닌 일반편입으로 간주했다. 국내 목회를 위해선 처음부터 다시 목사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는 즉각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오정현 목사 직무정치가처분신청 심리는 1차로 종결됐으며 재판부는 27일까지 추가 서면자료를 받은 뒤 결론짓기로 했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오정현 목사는 당회장과 담임목사 자격이 박탈된다. 명성교회와 마찬가지로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의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경찰·소방 여성 공시생들 “기준 강화 공감… 낮은 할당 비율은요?”

    경찰·소방 여성 공시생들 “기준 강화 공감… 낮은 할당 비율은요?”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의 여성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여성 수험생도 남성 수험생과 똑같은 기준의 체력검정을 실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취자나 강력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경찰관과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소방관을 뽑는데 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다른 체력검정 기준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지난달 13일 경찰대가 모집 인원 중 12%만 여성으로 뽑는 성별 제한을 폐기하자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정작 준비생들은 이런 논란에 앞서 당면한 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2일 올해 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진행됐고,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체력검정 준비에 들어간다. 시·도별 소방공무원 채용도 최종 결과만을 앞둔 곳이 많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한양공무원체력전문학원에서 만난 여성 준비생들은 “체력검정 기준을 강화한다고 해도 여성 할당 비율이 바뀌지 않는 이상 여성끼리의 경쟁”이라고 입을 모은다.●“여자라도 체력검정은 당락 좌우할 시험” 전날보다 8도 이상 기온이 떨어진 지난 24일 오전 10시. 한양공무원체력전문학원엔 여성 경찰·소방공무원 준비생들로 북적거렸다. 불과 이틀 전 경찰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른 준비생들은 합격자 발표일인 28일까지 초조해하기보다 체력단련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신체·체력·적성검사는 다음달 21일부터 지방청별로 실시된다. 준비 기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구령에 맞춰 몸풀기와 스트레칭, 달리기가 진행됐다. 본격적인 체력단련에 들어가기 전 충분히 몸을 풀어주지 않으면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다. 소방공무원 준비생인 이주이(23)씨는 “지난해 시험 때 체력검정을 앞두고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제대로 체력검정을 치를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경찰 시험에서 체력검정은 ‘제6의 과목’으로 불린다. 일반 채용은 총 5개 과목을 치르는데 체력검정도 다른 과목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실제 경찰 시험에서 체력검정 비율은 25%로 필기시험 한 과목보다 중요도가 높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조은혜(26)씨는 “공부하는 동안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고시원에 갈 때 일부러 뛰어서 올라가고, 평소 걸을 때도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부를만큼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도 악력기로 틈틈이 운동했다. 악력은 100m 달기리와 더불어 고득점을 받기 가장 어려운 종목이다. 둘 다 단시간 내 실력이 늘기 어려워서다. 김다원 한양공무원체력전문학원장은 “악력이 약한 사람이라도 꾸준히 연습하면 평균 이상은 낼 수 있다”면서 “100m는 기초체력이 없으면 50m 부근에서 퍼져버리기 때문에 시작점에서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과 결승점까지 온 힘을 다해 뛸 수 있는 근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평소에 체력을 단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에서 혼자 체력검정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구체적인 목표치를 설정해 실전처럼 연습하는 게 필요하다. 학원에 다니는 준비생들은 수험기간에 주 3~6일은 하루 1~2시간씩 훈련한다. 이를 고려하면 나홀로 준비생들도 매일 자신이 달성해야 할 운동량을 정해두는 게 바람직하다. 김 원장은 “최근 체력검정은 ‘정확한 자세’를 전보다 많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 연습할 때도 올바른 자세로 연습하는 게 중요하며 제한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채용 비율 변화 없이 체력검정 기준만 상향? 여성 준비생들이 현행 여성체력검정 기준에 마냥 동의하는 건 아니다. 특히 논란이 됐던 경찰 체력검정에서 팔굽혀펴기할 때 무릎이 지면에 닿는 것에 대해선 “이렇게 비난이 일 바에야 우리도 지면에 닿지 않고 시험을 치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조씨는 “준비생들은 내부 규정에 맞춰 시험을 준비했다”면서 “여성들도 당당히 무릎을 펴고 시험을 치르자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방공무원의 여성체력검증 기준을 현행 남성의 65%에서 80% 수준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여성 준비생들은 공감을 표했다. 다만 경찰관과 소방관의 업무가 단순히 힘과 체력을 요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라는 점과 여성 할당 비율이 현저히 낮은 부분에 대해선 침묵한 채 기준만 상향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이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남녀 구분 모집 기준을 폐지한 것과 향후 여성 경찰 비율을 15%까지 올리겠다고 한 건 최근 사회적 흐름과 범죄 발생 현황과도 관련이 있다. 사이버 범죄와 사기, 횡령 등 경제사범이 이전보다 훨씬 지능화되고 있으며,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대다수 피해자가 여성인 범죄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 준비생은 “여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같은 성별의 수사관에게 털어놓고 싶어하지만 해당 경찰서에 여성 경찰관이 부족해 남성 경찰관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경험담이 많다”면서 “올해 3차 시험에서 여성 할당 비율을 3000명 중 750명(25%)명으로 잡아 많아 보이지만 일선에선 여성 경찰관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550개 여성청소년수사팀 중 여성 경찰관이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곳이 46곳이나 됐다. 소방공무원의 업무를 화재 진압에만 초점을 맞춰 “수관을 들지 못하는 여성들은 소방관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소방관의 업무는 화재 진압뿐 아니라 각종 재난, 재해 등에 대응하고 위급한 상황에 필요한 구조·구급 활동까지 아우른다. 지난해 화재 건수는 모두 4만 4178건이었고, 전체 119 출동 건수는 80만 5194건이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소방공무원 4만 8042명 중 여성은 3435명(7.1%)에 불과하다. ●“여성 채용 늘릴 것…체력검정 기준 연구중” 여성 채용과 체력검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경찰청과 소방청은 방침이 정해진 건 없으며 내년 상반기에 구체적인 방향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여성 채용을 늘리면서 여성의 체력검정 기준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내부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 모집을 폐지하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체력검정을 하라는 의견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구분 모집을 폐지하고 남녀를 함께 뽑으면 여성 합격자가 남성 합격자보다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필기시험에서 여성 응시생들이 상대적으로 고득점을 받기 때문에 체력검정 기준을 같게 한다고 해서 여성이 덜 뽑힐 거란 생각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경찰대와 간부후보생의 남녀 비율을 폐지한 경찰청은 조심스럽다. 경찰대 통합선발 체력기준 연구 용역이 지난 23일 완료됐지만 내부 논의가 아직 남아 있어서다. 경찰공무원 채용 담당자는 “논란이 된 팔굽혀펴기 규정이나 남녀 구분 모집을 폐지하는 사안 등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결정된 바 없다”면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2~3년의 유예기간을 가질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공항 갑질’ 비판 확산…민주당 사흘째 침묵

    ‘공항 갑질’ 비판 확산…민주당 사흘째 침묵

    보안요원 “사람들 앞에서 욕하고 고함” 김 의원, 해명 없이 ‘정치적 음모론’ 제기김정호 의원의 ‘공항 갑질’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김 의원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논란 사흘째인 24일에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김 의원에게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다가 항의를 받았던 김포공항 보안요원 김모(24)씨가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김씨는 이날 “김 의원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이 XX 근무 똑바로 안 서네’라고 욕을 하고 고함을 질러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며 “그분의 말이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욕설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해명을 내놓지 않은 채 이 사건을 ‘정치적 음모론’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은 이날 경남 김해에서 열린 ‘부·울·경 검증단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 중간보고’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김해신공항 (검증)에 대한 기본적인 견제가 깔려 있어 한국공항공사가 (언론에) 제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본인이 어느 정도 소명자료를 내지 않았느냐”며 “부분적으로 자기가 좀 사과할 부분은 했고, 저희는 그것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이 국회 국토위원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야당 지적에는 “지나친 정치공세 아니냐”고 일축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 같은 대응은 성난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 의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들이 올라왔다. 한 시민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촛불의 힘이 일장춘몽이 되지 않게 명백히 해야 할 시점이다. 민심이 떠나는 건 한순간이다”고 했다. 야당은 현장 폐쇄회로(CC)TV 공개와 김 의원의 국토위원 사퇴를 요구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김 의원의 공항 갑질은 미국 공항 같았으면 현장 체포감”이라고 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안희정 재판 앞두고 시민단체 피켓팅 시위 “위력 성폭력 인정하라”

    안희정 재판 앞두고 시민단체 피켓팅 시위 “위력 성폭력 인정하라”

    업무상 위력 간음과 성추행 등으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여성단체가 피켓팅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항소심 재판을 지켜보겠다며 재판부가 위력 성폭력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21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침묵 시위를 열고, 함께 재판을 방청했다. 여성 30명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채, 노란색 피켓을 들고 30분간 법원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이 든 피켓에는 ‘위력 성폭력 인정하라’, ‘피해자다운 그런 피해자는 없습니다’, ‘존재만하는 위력은 없다’, ‘다시 시작이다. 더 많은 지지와 연대로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등이 적혀 있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 홍동기)는 오전 10시 10분 안 전 지사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한다. 옛 수행비서인 김지은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날부터 4차례 공판을 진행한 뒤, 내년 2월 1일에 선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인 김지은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해 간음하고 강제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사설] 의혹 뒷수습에 끙끙 앓는 靑, 투명하게 해명해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비위에서 불거지는 의혹이 갈수록 심상찮다. 개인 비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특감반원 김태우 수사관이 “억울하다”며 청와대 근무 중 조사했던 문건들을 일부 언론에 유출한 결과다. 김 수사관은 청와대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금품 수수에서부터 민간인 사찰, 친여 인사 특혜 의혹을 묵인 또는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치고받는 폭로전에 청와대의 대응이 날마다 가관이다. 6급 수사관이 첩보 문건을 마구 발설하다니 어이없지만, 오락가락 불분명한 청와대 해명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검찰이 무혐의 처리해 우 대사 문제는 덮었다더니 검찰은 수사를 한 적도 없었다. 전직 총리 아들과 노무현 정부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했다는 폭로에는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이 없었으니 민간인 사찰이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같은 당 출신인 우제창 전 의원이 운영하는 커피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은 더 어이없다. 관련 보고서를 김 수사관이 제출했는데도 “보고서를 쓴 당사자가 업무배제됐으니 그 자료는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청와대는 건건이 대응하며 논란을 양산하기보다 침묵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진실게임 양상이 돼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일개 수사관의 폭로에 내놓는 해명마다 어설퍼 스텝이 꼬이는 청와대의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폭로전을 감당할 수 없어진 청와대가 백기를 든 것으로 비칠 정도다. 기왕 불거진 의혹에는 상식선에서 납득할 선명하고 솔직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앞뒤가 안 맞는데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 민간인 사찰은 없다”는 식의 수사(修辭)에 설득될 만큼 국민 수준이 낮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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