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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은 5년간 떠오르지 않았다

    진실은 5년간 떠오르지 않았다

    선체 침몰원인·朴정부 은폐 등 의혹 여전 책임자 처벌·특수단 설치 진상규명 첫걸음“‘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이제 다 해결됐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속상했어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고 유예은양 아빠인 유경근 전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우리가 탄핵에 앞장선 건 진상 규명을 막는 세력이 사라져야 진실이 드러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벌써 5년이 흘렀지만 출항부터 침몰까지 만 하루도 걸리지 않은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고 유족들은 보고 있다. 검찰과 법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와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등이 나름의 결과를 내놨지만 여전히 미진하다고 말한다. 진실 규명을 방해해 온 권력에 대한 불신도 떨쳐낼 수 없다. 참사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들은 크게 3가지의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고 본다. ▲세월호 침몰 원인이 정말로 과적과 조타 미숙, 기관 고장인지 ▲왜 박근혜 정권은 증거를 조작하고 유족을 음해하면서 진상 규명을 방해했는지 ▲해경은 왜 선원만 구조하고 승객 구조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등이다. 선체 침몰 원인은 근본적 물음이다. 선박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선조위는 지난해 8월 종합보고서를 내놨지만 3명씩 의견이 갈려 2가지 가능성을 담았다. 기계 결함 등의 이유로 침몰했다는 ‘내인설’과 충돌 등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열린 설’이다. 유 전 위원장은 “(내인설을 뒷받침하는) 과적, 조타 미숙, 기관 고장설 등을 반박하는 수많은 반론이 나오고 있다”면서 “유족 입장에선 ‘(내인설이) 정말 원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유족들이 추정하는 침몰 원인에 대해선 발언을 자제하려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결론이 이것이니까 가져와’라고 들릴 수 있어서다. 유 전 위원장은 “우리가 원하는 건 투명한 과정으로 조사하고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것”이라면서 “그 과정을 통해 결론이 나온다면 신뢰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왜 진상 규명을 가로막으려 했는지도 풀지 못한 의문이다. 특히 2기 특조위가 지난달 “해군·해경이 세월호 폐쇄회로(CC)TV DVR(녹화장치)을 조작·은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고, 경찰이 세월호 유족을 비난하는 여론전을 벌이고 사찰까지 해 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더 커졌다. “박근혜·김기춘·황교안 등 책임져야”… 처벌 대상 1차 명단 발표현재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오병환 4·16재단 이사는 “최근 유가족 사찰과 관련, 법정에 다녀왔는데 여전히 왜 우리가 사찰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책임자 처벌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 304명을 구조하지 못했고, 이후 진실 규명마저 방해한 이들을 법적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사의 구조 책임 등을 놓고 처벌받은 공무원은 ‘말단’인 김경일 해경 123정장뿐이라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기울었을 땐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결국 침몰해 아이들이 죽었다”면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이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이날 처벌 대상 1차 명단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관계자 13명과 관련 기관 5곳이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포함됐고, 해경에서는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전 목포해경서장 등 해경 관계자 4명이 포함됐다. 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도 처벌 대상에 올렸다. 유족들은 검찰 내부에 전담 수사 기구인 ‘특별수사단’을 설치해 전면 재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2기 특조위가 침몰의 원인과 초동조치, 정보기관의 개입 및 진상 은폐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권한이 적으니 기소권까지 있는 검찰이 나서 달라는 것이다. 유 전 위원장은 “수많은 범죄사실이 국정원과 기무사 등 정보기관을 가리키고 있는데 현재 구조로는 책임자 처벌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진행한 국민청원에는 15일 오후 9시 기준 13만명이 동의했다. 청원은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세월호 5주기]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죽은 참사… 그날 해경의 1시간30분 밝혀야”

    [세월호 5주기]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죽은 참사… 그날 해경의 1시간30분 밝혀야”

    거리엔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여기저기 웃음꽃이 피어난다. 4월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4월이 잔인하기만 하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이들은 줄곧 함께 분노하고 울었지만 먹먹함은 더할 뿐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에게 치유란 단어는 없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50)씨도 그런 사람이다. 딸 예은(당시 16·단원고 2년)은 이제 곁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4·16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유씨를 만났다. 노란 리본을 새긴 점퍼가 ‘이제라도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바람을 외치는 듯했다. 유씨는 “진상규명에 5년째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 투성이다. 후손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길지 고민해야 한다”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세월호 참사 본질은 선박 사고에 그치지 않아요. 당연히 살았어야 할 사람들이 죽었는데 사고원인을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세월호 침몰 전까지 최소 1시간 30분가량 여유가 있었는데도 왜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가슴을 쳤다. 사고 선박에 도착한 해경이 마이크를 통해 승객 탈출을 권유했다면 최소 6분, 길어야 8분이면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유가족들이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도 아니다. 꼭 5년 전 오늘 아침 아이들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곤 “빨리 그곳을 탈출하라”고 얘기를 못 건넨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한다. “그토록 엄마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부모랍시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안내방송 잘 따라야 한다’고 오히려 타일렀다”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해 죽고 싶은 심경”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유가족들이 여태 진상규명에 매달리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다. 더러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됐고 정권도 바뀌었는데 차분하게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라고 불편한 시선도 보내지만 진상규명은 이제부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2기 ‘특조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밝힌 중간조사 발표 내용에 주목한다. 특조위는 해군이 2014년 6월 세월호 선내 안내 데스크에서 수거했다고 주장해 온 폐쇄회로(CC)TV DVR(영상녹화장치)과 검찰이 확보한 DVR이 서로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씨는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해경에 DVR을 빨리 수거하라고 요청했으나 소극적이었고 수거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당시 영상을 조작했다고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영상 조작이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누가 어떤 이유로 기획하고 진행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에 개입해 실종자 가족 성향을 분석하고 개인 신상을 털어 성향을 분류한 사실이 최근 공개된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로 여기다가 갈수록 아닐 수도 있다는 심증이 확증으로 굳었다”고 했다. “우리 어른들은 죄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사람을 구조하지 않아서 벌어진 게 세월호 대참사입니다.” 유씨는 “우리 아이들처럼 억울하게 희생되는 동생들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아이들의 명령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5년을 보냈는데 앞으로 50년을 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수 아빠’ 정성욱(49)씨는 “(당시 단원고 2학년이던 아들이) 시흥으로 이사를 해서 1시간 20분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입을 뗐다. 이어 “바쁘다는 핑게로 동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직도 미안하다”고 아쉬워했다. 세월호 트라우마 탓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에도 “내 몸 하나 편해지려는 듯해 아이에게 미안해 포기했다”고 귀띔했다. 또 “의혹이 늘어나지만 2기 특조위엔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며 특별수사단 구성을 정부에 요구했다. ‘준형 아빠’ 장훈(49)씨는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3남 1녀 중 맏이인 준형이는 약자를 보살피는 정의로운 아이였다”며 듬직한 아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늘 죄인처럼 산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 가슴에 남는 것은 내 가족,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라며 안전사고 없는 세상을 염원했다. “준형이가 교생 선생님과 벚꽃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봤는데 봄마다 온몸으로 앓습니다,” ‘우재 아빠’ 고영환(51)씨는 참사 6개월 만인 그해 10월 안산 생활을 정리하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5년째 팽목항 가족식당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고씨는 “너무나 쉽게 말들을 하는 세상과 떨어져 혼자 이겨내야 해 아예 아픈 현장으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고씨는 “외롭지만 이제 적응돼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우재 여동생이 어려움을 딛고 대학을 가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대견해 자랑스럽기도 하다. 고씨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했던 이 자리에 교훈으로 삼을 기록관과 공원 등이 생길 때까지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안산에는 회의가 있을 때 참석한다. “동네 이웃들 등 많은 분들이 쌀과 채소 등 도움을 주고 계신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평일에는 슬픔을 잊기 위해 노란 세월호 리본을 만들고 있다. 마음을 닦으며 만든 나무 리본이 1만개쯤 된다.5주기를 앞두고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엄마들은 세 번째 작품 ‘장기자랑’을 무대에 올렸다. 단원고 교복까지 맞춰 입은 무대 위 엄마들이 객석을 흐느낌으로 물들였다. ‘장기자랑’은 2014년 단원고 2학년생들이 수학여행을 코앞에 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을 그렸다. 극본을 쓴 변효진 작가는 희생 학생 등의 이야기를 12권으로 정리한 ‘4·16 단원고 약전’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래서 작품은 사실 그 자체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그리고 생존 학생인 애진 엄마 김순덕씨 등이 배우로 무대에 선다. 엄마들이 연극을 하게 된 것은 2015년 10월 말 커피공방 대표의 권유로 연출가 김태현씨를 소개받고부터다. 시작은 ‘심리치유를 위한 대본 읽기’ 모임이었다. 그러다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누구 엄마’로 불리기 위해서였다. 2016년 3월 극단을 결성하고 그해 7월 첫 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을, 2017년 7월엔 두 번째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4년차 ‘세월호 전문배우’가 되었다. 김도현씨는 “아이(동수)만 보고 연습했다”며 웃었다. 이어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연극을 본다면 ‘엄마아빠 견뎌라, 힘내라’고 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출가 김씨는 “연극을 통해 세월호로 무엇을 잃었는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고 어머님들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또 스스로 아이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게 어려운 결심인데 중간중간 울컥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소환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안산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안산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속보]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침수 중’ 2014년 4월 16일.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을 생중계한 뉴스 속보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참사를 지켜본 우리의 상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아프게 덧난다. 아무 기념일도 아니었던 그날은 5년이 지나면서 ‘추모일’이 됐다. 이 슬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해야 하는가. ‘단원고 학생들이 의지하는 의사’ 김은지(정신과 전문의) 원장을 만나 답을 들어 봤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경기 안산 단원고의 ‘스쿨 닥터’였다. 이후 안산을 떠나지 못한 채 ‘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열고 생존자와 시민의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한 빌라에 여러 명,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아이를 잃은 상황이 발생했어요. 온 국민은 침몰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죠. 일대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동체 트라우마’로 남았어요.”김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 뒤 우리가 5년이 지난 지금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상처는 함께 입었는데 정작 이 상처를 공동체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참사 이후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관심만 지나쳤지 배려는 결여됐다. 더욱이 참사의 간접 피해자인 단원고 1, 3학년 학생들과 안산 시민은 관심에서도 배제됐다. 김 원장은 “공동체적 관점으로 모두를 보듬었다면, 그래서 이 슬픔을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면, 추모관 건립 문제 등으로 서로 날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치유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김은지 원장은 아직 치료를 끝낼 수 없다. “그만 기억하라고 하기엔 너무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매년 4월이면 단원고 출신 아이들이 그를 찾는다. 김 원장은 “학교 다닐 때는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치료에 임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한발 떨어져 참사를 겪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을 살아내 보기 위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김 원장은 “재난 트라우마는 성격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고 했다. 불가피한 자연재난과 달리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 누군가의 과실로 벌어진 인공재난 피해자는 심리 치료가 더 어렵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트라우마는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원장은 “그 또래 아이들은 당시 상황을 지켜보며 ‘와 이것 봐. 아무도 안 지켜 주네. 어른들은 싸움만 하고 있네’라고 느꼈고 공공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세월호 세대’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안산에 남은 이유도 ‘신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우리가 치유해 주겠다’며 갑자기 안산에 몰려들었다가 일순간에 떠나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좋지 않은 의도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생겼다. ‘너희 몇 억원씩 받았다며?’라는 비수 같은 비아냥도 날아왔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와 사람에게 지쳤고, 마음의 벽을 쳤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아’라고 말해 줘야 합니다. 사회는 그 말을 증명해 보여야 하고요.” 세월호의 과도한 상징성은 때론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짓누르기도 한다. 조금은 잊어야 일상을 살 수 있지만, 사회는 그들에게만 “잊지 말라”고 요구한다. 일부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였다. 치료를 통해 아픔이 잊히는 것을, 또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잊히는 것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내하며 살아 내고 있다. 김 원장은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잘 견뎌 주어, 잘 살아 가려고 노력해 주어 참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김 원장이 보기엔 참사로부터 한발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지원이 더 필요한 시기다. 그는 “참사 당시 유가족 중에는 ‘아이를 먼저 보내 놓고 내가 뭘 잘했다고 치료를 받나. 진상 규명이 더 시급하지’라는 생각에 심리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5년이 흘렀다. 김 원장은 “긴 세월을 극복할 힘을 가지려면 꾸준히 치료받으며 살아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금씩 잊혀 가는 지금이야말로 유가족들과 우리 공동체에게 치유가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도 지적했다. 김 원장은 “유가족들이 시위하면 눈물을 흘리는 분에게 카메라가 향하고, 이를 클로즈업하는 것은 ‘유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짚었다. “여전히 아프고 슬프지만, 어떤 날은 밥을 먹다가 웃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유가족도 생존자도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유족들과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참사 재수사 및 책임자 처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4·16 연대와 서울시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라는 이름의 세월호 참사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장훈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었을 때, 해양경찰이 선원들만 구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느냐”면서 “국가는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를 방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들은) 단 한가지를 요구한다. 우리 아이들, 304명의 국민을 죽인 살인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천명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박래군 4·16 연대 공동대표도 “우리는 5년 전의 참사를 보며 ‘4월 16일 이후는 그 전과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면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꼭 처벌해 보다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낮부터 ‘국민참여 기억무대’로 시작됐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세월호 참사 5주기 대회’ 등이 이어졌다.특히 이날 오후 4시 16분쯤 열린 ‘잊지 않을게’ 대학생 대회에서는 참여자들이 노란 우산을 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의 대형 리본 모양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각종 부스가 설치돼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가방고리 만들기 체험, 세월호 기억물품 나눔행사 등이 열렸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5·18 역사왜곡 등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개혁 역행 저지, 사회 대개혁 시국회의’ 집회를 열었다. 4·16 연대 회원인 서지연씨는 무대에 올라 “참사 때 배가 가라앉는 것을 TV로 보면서도 ‘다 구조했다’는 말에 속아 안도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린다”면서 “(참사 당시) 위험하니까 탈출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 단체가 이날 오후부터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105개 중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5주기] 다섯 번째 봄, 팽목항 색바랜 노란 리본만 ‘그날’ 기억하듯 ‘몸부림’

    [세월호 5주기] 다섯 번째 봄, 팽목항 색바랜 노란 리본만 ‘그날’ 기억하듯 ‘몸부림’

    주민 “평일 한산… 주말엔 100여명 찾아” 20대 추모객 “4월만 되면 왠지 숙연해” 컨테이너 20여개 철거, 2동만 덩그러니 기념관엔 단원고생 반별 단체사진 걸려 팽목항 개발 사업중… 진도 관광객 증가세그날 이후 다섯 번째 봄을 맞아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들은 울음바다를 이뤘던 길에 활짝 피워 올렸지만 쓸쓸함을 달랠 순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가던 유람선 세월호 침몰과 함께 미처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차가운 물속으로 잠긴 5년 전 어여쁜 아이들이 자꾸자꾸 떠올라서일 터이다. 11일 오후 1시 며칠 사이 비가 내리고 강풍으로 벚꽃이 하나둘씩 떨어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약간 흐린 날씨에다 거센 바닷바람 탓에 썰렁하기만 했다. 뼈아픈 참사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던 비극의 장소이자 수습 거점으로 여겨졌던 팽목항은 5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이젠 평온하게 손님을 맞았다.이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양재석(50) 비취타운 사장은 “평일엔 사람들을 거의 찾을 수 없는데 주말엔 가족과 교회 단위로 100여명쯤 온다”며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더러는 처음 방문했다며 슬픈 얼굴을 한다”고 귀띔했다. 파랗게 출렁대는 바다에 시선을 보내고 있던 서승원(28·전남 순천시)씨는 “14일 생일이라 와보고 싶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해소되지 않는 먹먹한 슬픔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씨는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마냥 즐겁기만 한 날들이었는데 그날 이후 4월만 되면 꼬리표처럼 세월호와 학생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진다. 그러면서도 더불어 당연한 일상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사고 수습현장으로 자원봉사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4여년간 머물던 이동식 컨테이너 건물 20여개는 모두 철거되고 황량함만 풍겼다. 가족식당과 화장실, 세월호 팽목기념관 등 건물 2동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임시분향소로 이용됐던 팽목기념관엔 영정사진 대신 ‘그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경기 안산 단원고생들의 반별 단체사진들이 걸려 한결 밝은 표정을 자아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 인형과 장남감, 노란 색종이로 만든 바람개비 등이 놓여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했다. 바로 옆 방파제에는 색이 바랜 노란 리본만이 나부껴 안전한 대한민국을 빌었다.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5명에게 어서어서 신고 오라며 운동화 다섯 켤레가 꽁꽁 묶여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에게 하늘에선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희망의 편지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이곳 팽목항은 2020년까지 진도항 배후지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대형 덤프트럭들이 연약지반 처리를 위해 흙을 나르느라 바빴다. 업무차 한 달에 두 번씩 이곳에 들른다는 김모(여·54·진도읍)씨는 “진도군민들로선 너무나 큰 생채기를 마음에 새기면서 고통을 함께 안고 가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 따라 지우개처럼 잊는 게 아닌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억과 각오를 새기고 지낸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피지역으로 바뀌었던 진도엔 관광객이 차츰 예년처럼 회복되고 있다. 2014년 29만여명에 그쳤지만 이후 연간 50여만명, 지난해에는 73만여명으로 늘어났다.진도군은 오는 15일과 16일 팽목항 등대와 옛 분향소 마당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를 마련한다. 문화제와 토론회, 청소년 체험 마당, 예술 마당 등으로 그날의 아픔을 씻는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수색 작업은 지난해 10월 마무리됐다. 그러나 남현철·박영인(당시 단원고 2년)군, 양승진(당시 57) 교사, 제주로 이사를 가던 권재근(당시 50)·혁규(당시 6) 부자의 흔적은 끝내 찾지 못했다. 글 사진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임정 바로 보기’로 새로운 100년 연다

    ①남북서 외면 김원봉·김두봉 재평가 ②사초부터 확보, 숱한 논란 종식해야 ③분당·송도 등 일제 용어 잔재 청산을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역사학계에서는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과제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의 재평가, ‘임정 수립일’이 논란이 될 정도로 부실한 임정 사초 찾기,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 청산 등을 꼽았다. 그동안 건국절 논란을 비롯해 이념적 대결 갈등에서 벗어나 ‘임정 바로 보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민감한 사안이라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임정 관련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을 보면 ‘김일성 장군의 활약에 감동받아 항일투쟁에 나섰다’는 구절이 나와요. 생각지도 않은 내용이어서 저희도 놀랐죠.” ‘판결문에 담긴 임정의 국내 활동’을 출간한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10일 이렇게 털어놨다. 당시 임정의 활동에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우파 위주로 진행된 독립운동사 연구의 범위를 민족 전체로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김원봉과 김두봉 등 ‘연안파’에 대한 재평가 주문이 많다. 연안파는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뒤 입북한 조선의용대 출신을 말한다. 독립운동연구 전문 이원규 작가는 “이들은 일제와 무력으로 맞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하지만 해방 뒤 남한에서는 ‘빨갱이’로 몰려 박해당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독재에 반대하다가 숙청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1990년부터 임정 수립 기념일을 4월 13일로 기념해 오다가 올해 4월 11일로 바꿨다. 최근 발굴된 증거를 볼 때 실질적으로 내각을 구성한 날짜가 11일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임정 수립 기념일을 다시 정한다면 통합임시정부 대통령과 각원을 선출한 9월 6일이나 이동휘 등 주요 각원이 취임한 11월 3일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임정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임정 자료가 거의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정부는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사라진 임정 자료부터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이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일제의 잔재인지도 모르고 쓰는 용어를 정리해 임정 수립을 통한 독립의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경기 성남시 분당은 조선총독부가 ‘장터’(盆店·분점)와 ‘당모루’(堂隅里·당우리) 지역을 억지로 합친 뒤 앞글자만 따 만들었다. 인천 송도 신도시도 러일 전쟁 때 침몰한 일본군함 마쓰시마(松島·송도)호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정부 안전 정책, 국민 체감 중요… 현장 중심 대응 역량 키워야

    정부 안전 정책, 국민 체감 중요… 현장 중심 대응 역량 키워야

    국가적 실패로 이어진 최악의 인재(人災). 재난에 대한 국민 인식을 뒤바꾼 ‘세월호 참사’가 오는 16일 5주기를 맞는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안일하게 대응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국민의 안전을 국가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곧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 사회는 과연 더 안전해졌을까. 총체적인 재난 리포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신문이 지난 4개월간 기획보도한 ‘세이프 코리아 리포트’를 마무리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정부에서 재난안전을 총괄하는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안전 차관)과 양기근 전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방기성 경운대 안전방재공학과 교수,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이 질문에 답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재난안전 분야에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면서 “정부가 미래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현장 중심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안전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 사회는 더 안전해졌나. 양 회장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면 이전보다 안전해진 것은 맞다. 자연재해 또는 사회재난 발생건수와 재산피해 규모 등이 감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사회지표조사’에서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낀 응답이 전체 20.5%로 2016년(13.2%)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의미 있는 수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사회적 재난에 포함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크다.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갔던 포항 지진이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 탓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실제 재난안전과 관련된 객관적 지표가 나아졌음에도 이런 사건들로 국민은 국가가 전체적인 재난관리에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방 교수 “크게 ‘재난’과 ‘안전’ 두 분야로 나눠 봤을 때 안전 분야는 눈에 보일 만큼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재난 분야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비용을 많이 투자해도 실제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정부의 대응 능력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에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테스트’를 받았고 거기서 낙제했다. 문재인 정부도 재난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제2의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미심쩍다.” 이 교수 “아직 부족하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시스템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결정자들이 현장을 찾아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이 향상됐다고 할 수는 없다. 대형 재난 상황에선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재난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는 부처의 서열과 경제논리에 밀린다.” 류 차관 “문재인 정부는 그간 흔들렸던 국가의 재난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역점을 뒀다. 나아진 점은 분명히 있다.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긴급재난문자가 8분 만에 발송돼 문제점으로 지적됐지만 2017년 포항 지진에선 35초로 줄었다. 포항 지진 당시 정부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 조치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정부가 그만큼 안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공무원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체감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국민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개선 방안을 찾겠다.” 개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나. 이 교수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현장 지휘관들의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고위 관료가 현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재난 상황에서 가지는 권한도 아직 부족하다. 재난 현장에서만큼은 현장 지휘관이 지방자치단체장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양 회장 “범부처 통합적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정비해야 한다. 참여정부 이전부터 강조하는 것이지만 지지부진하다. 행안부 소관인 재난안전기본법은 기본법이라기보단 집행법적 성격이 강하다. 모든 재난을 총괄하는 행안부는 이 법을 근거로 재난 상황에서 각 부처를 조율해야 하는데 과연 잘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차관급 조직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를 장관급 이상으로 격상해야 한다.” 방 교수 “현장 지휘관뿐만 아니라 사고 수습을 총괄·지원하는 ‘비상관리자’의 역할도 강조돼야 한다. 이들은 현장에 나가진 않지만 사고 상황에 대해 정확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재난 현장에 대해 높은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정부에는 그런 인재가 없다. 오로지 사망자가 몇 명인지 등 보고서를 꾸미는 데에만 급급하다. 비상관리자들의 전문성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재난 관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관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은 손에 꼽는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재난 분야만을 전담할 ‘방재안전직’이 신설됐지만 실제 정부의 역량 강화로 이어지기까진 요원하다. 실제 정부 재난 대응 전담 조직의 60% 이상이 재난 분야 전문가로 채워져야 한다.” 류 차관 “과거엔 재난이 터지면 재빨리 수습하고 사회적 기능을 복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재난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에 정부가 더욱 역점을 둬야 한다. 지난해 11월 KTX 오송역에서 단전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사고가 있었다. 열차가 멈춘 원인을 찾아내 기차의 통행을 재개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과거의 재난 대응 방식이다. 이제는 기차 안에 있는 승객들에 대한 보호 조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재난안전관리본부가 적극적으로 일하기 위한 위상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재난관리의 출발은 지자체와 현장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지자체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으로 나아가진 않고 있다. 정책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세월호 같은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을 때 ‘국가 실패’로까지 일컬어지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는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아직 ‘자신 있다’고 답변하지 못한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다.” 대비 -미래 재난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방 교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려보자.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이뤄낼 때 그는 축구 경기에서 현란한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체력 단력만 시켰다. 앞으로 복합, 신종 재난이 올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기술적인 보완보다 앞서야 할 것은 기본적인 재난 대응 역량이다. 기본만 잘 갖춰져 있으면 어떤 재난이 와도 문제가 없다. 앞으로는 정부가 원칙과 틀을 세우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10년 안에 ‘슈퍼 태풍’(1분 평균 최대 풍속 67㎧ 이상)이 올 것으로 본다. 여의도가 잠기고 소양강댐이 허물어지는 등 한반도가 초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난으로 국가가 망할 수 있다는 정도의 혹독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자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현재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지 진단해야 한다. 그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미래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양 회장 “점점 재난에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구조도 바뀌고 있다. 특히 어디 하나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는 ‘초연결사회’에선 대규모 복합재난 발생으로 사회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일 수도 있다. 사회 전체의 재난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높은 수준으로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재난에 대해 ‘공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언론과 국민은 정치권에 어떤 형태로든지 답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답을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개별적인 재난 사고 하나만 봐서는 안 된다. 보다 큰 관점에서 다가가야 한다.” 이 교수 “기본적인 재난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보다는 지방의 역량이 약하고 광역단체보다는 기초단체가 열악하다. 과연 우리 지자체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판단으로 중앙정부에 적절한 지원을 요청한 경험이 있는가. 이들이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꾸려야 한다는 요청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류 차관 “미래 재난이라는 것이 이제는 정말 머나먼 미래의 관념만은 아니다. 슈퍼 태풍이라든가 대규모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등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 국가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준비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당장 복합재난에 대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달에 ‘을지태극연습’을 실시한다. 지진이나 원전 사고 등에 대해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개발해 관련된 모든 부처가 총력 대응하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교수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래 재난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종합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래 재난에 대해 별도의 체계를 만들 수는 없다. 재난안전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담 조현석 산업부장 hyun68@seoul.co.kr 정리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39년 전 고성 앞바다에 침몰한 속초해경 경비정 ‘72정’ 추정 선체

    39년 전 고성 앞바다에 침몰한 속초해경 경비정 ‘72정’ 추정 선체

    39년 전 강원 고성 앞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기상 불량과 항해장비 고장 등에 따른 항로 착오로 다른 경비정과 충돌해 침몰한 속초해경 경비정 ‘72정’으로 추정되는 선체가 파악됐다. 침몰 추정 해점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으로 수심은 100여m다. 해경은 2일 선명 확인 등 추가 작업이 필요하지만 해당 해역에 침몰한 다른 함정이 없는 등 주변 정황을 볼 때 사실상 72정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경찰관과 전투경찰 등 승조원 17명 모두 순직했으며 유족들은 진상조사와 선박 인양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사진은 선체의 해저면 영상자료. 고성 연합뉴스
  • 39년전 침몰 속초해경 경비정 ‘72정’ 추정 물체 파악

    39년 전 고성 앞바다에서 침몰한 속초해경 경비정 ‘72정’을 찾는 탐색작업을 벌이던 해경이 1일 오후 5시쯤 거진항 앞 1.5㎞ 해상 수심 105m 지점에서 ‘72정’으로 보이는 유력 물체를 파악한 것으로 1일 전해졌다. 해경은 수색 결과를 2일 오후 경찰서 대강당에서 브리핑할 계획이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백학선 속초해양경찰서장과 정섬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사가 참석해 그동안의 탐색과정과 범위, 촬영영상 등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다. 속초해경 60t급 경비정인 ‘72정’은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 20분께 거진 동방 2.5마일 해상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중 기상 불량과 항해 장비 고장에 따른 항로 착오로 200t급 다른 경비정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투경찰 등 승조원 17명 전원이 순직했으며, 유족들은 진상조사와 선박 인양을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해경은 지난달 4일부터 경비정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을 중심으로 탐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경은 ‘72정’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3마일 반경 해역에서 지난달 27일까지 해경 잠수지원함(1200t급)을 투입해 1차 탐색을 벌였으며 해양과학기술원 해양조사선 이어도호(357t)를 투입해 2차 탐색을 진행해왔다. 해경 관계자는 “침몰 함정과 비슷한 물체를 발견한 건 맞다”면서 “정확한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수색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속초해경 침몰 경비정 39년만에 발견

    39년 전 고성 앞바다에서 침몰한 속초해경 경비정 ‘72정’을 찾는 탐색작업을 벌이던 해경이 1일 오후 5시쯤 거진항 앞 1.5㎞ 해상 수심 105m 지점에서 ‘72정’으로 보이는 유력 물체를 파악한 것으로 1일 전해졌다. 해경은 수색 결과를 2일 오후 경찰서 대강당에서 브리핑할 계획이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백학선 속초해양경찰서장과 정섬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사가 참석해 그동안의 탐색과정과 범위, 촬영영상 등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다. 속초해경 60t급 경비정인 ‘72정’은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 20분께 거진 동방 2.5마일 해상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중 기상 불량과 항해 장비 고장에 따른 항로 착오로 200t급 다른 경비정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투경찰 등 승조원 17명 전원이 순직했으며, 유족들은 진상조사와 선박 인양을 지속해서 요구해 왔다. 해경은 지난달 4일부터 경비정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을 중심으로 탐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경은 ‘72정’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3마일 반경 해역에서 지난달 27일까지 해경 잠수지원함(1200t급)을 투입해 1차 탐색을 벌였으며 해양과학기술원 해양조사선 이어도호(357t)를 투입해 2차 탐색을 진행해왔다. 해경 관계자는 “침몰 함정과 비슷한 물체를 발견한 건 맞다”면서 “정확한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수색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내 삶을 모두 맡긴 기계, 충분히 알고 있나요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내 삶을 모두 맡긴 기계, 충분히 알고 있나요

    기계는 왜 그렇게 자주 고장이 날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장 난 기계들과 마주친다. 느려터진 스마트폰에서부터 랜섬웨어에 감염된 컴퓨터, 벽돌처럼 작동을 멈춘 태블릿PC, 음료 캔을 뱉어내지 않는 자판기. 고장 난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내던질 때 우리는 기계의 고장이 기계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때로 그런 관점을 더 큰 규모의 기계들에 대해서까지 확장해서 적용하는 이들도 있다. 예컨대 철도, 비행기, 선박, 공장과 발전소의 결함은 ‘기계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무엇이 그 기계들을 작동하게 하는가? ‘기계비평들’은 기계를 사회적 맥락과 책임하에서 작동하는 구조의 산물로, 중립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일곱 명의 저자는 한국 사회 근간의 신뢰를 무너뜨렸던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부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노량진의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부상하는 ‘에듀테크’, KTX-SRT를 포함하는 철도 테크놀로지의 이면 등 기술문명의 그림자를 낱낱이 조망한다. 기계와 기술문명이 우리를 더 편리한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계비평들’은 그런 관점을 취하지 않았다. 서문을 쓴 임태훈은 “우리는 이 시대의 기계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함부로 웃을 수 없다. (중략) 단언컨대 지금은 인간도 기계도 처절히 실패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비평이 이 책의 가장 앞에 실린 이유다. 전치형은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 사건을 기계(선박) 자체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규정하려고 했던 일부의 해석을 비판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계의 실패를 넘어선 사회 시스템의 실패, ‘재난’으로 인식해야만 병폐에 맞대응할 수 있고 다음 단계의 새로운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중립적이라고 믿는다. 기계는 고도로 전문화돼 있고 그 세부는 보통의 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으며, 규모는 손 안의 작은 스마트폰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비행기와 공장까지를 넘나든다.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우리의 삶을 기계에 기꺼이 맡긴다. 그러나 기계는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기계에 대해서, 기계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다면 기술문명에 대한 신뢰는 ‘배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계비평들’은 이제 우리가 이 기계들의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 해군·해경, 세월호 침몰 영상 숨기고 ‘DVR 수거 쇼’ 했나

    해군·해경, 세월호 침몰 영상 숨기고 ‘DVR 수거 쇼’ 했나

    침몰 직후 40분 영상 없이 일부만 공개 전체 영상 수차례 요청에도 모두 거절 해군 영상 속 DVR, 檢 확보 DVR 달라 수거 당일만 유난히 조용한 작업도 의심 해군 “수거된 DVR 당일 해경에 인계”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세월호 참사의 주요 증거물인 사고 당시의 폐쇄회로(CC)TV가 조작·편집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해군과 해경이 CCTV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를 미리 확보하고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이후에 이를 수거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참사 당시 세월호 내·외부의 상황이 담겼을 것으로 예상되는 40여분간의 세월호 내 CCTV 내용이 조작 또는 편집됐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조위는 28일 조사내용 중간발표회를 열고 “해군이 참사의 주요 증거물인 DVR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DVR은 세월호에 설치돼 있던 64개 CCTV 영상을 저장하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다. 참사 직후부터 주요 증거로 거론됐지만 해경은 6월 22일에야 DVR을 수거했다. 뒤늦게 수거된 CCTV 영상에는 참사 발생 약 3분 전까지인 오전 8시 46분까지의 상황만 담겼다. 이후 일부 생존자들이 “세월호가 이미 기운 9시 30분까지도 모니터로 CCTV 화면을 봤다”고 증언하면서 ‘사라진 40여분간의 CCTV 영상’에 대해 조작·편집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특조위는 “해경이 22일 이전에 이미 DVR을 수거했으면서도 이를 감추기 위해 22일 수거한 것처럼 연출했다”고 발표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해군의 수거 작업이 담긴 수중 영상은 다른 영상들과 달리 전체가 아닌 8분 분량에 흑백으로 편집됐다. 해당 영상에는 DVR을 케이블선과 분리하고 수거하는 과정이 나오지 않는다. 우현까지 들고 나오는 과정에서도 DVR은 영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특조위는 “전체 영상을 달라고 해군과 해경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22일 잠수 작업이 유난히 늦은 시각에, 조용히 이뤄졌다는 정황도 나왔다. 잠수 직전 늘 복명복창하는 해군이 이날에는 조용하게 작업했다는 것이다. 해군은 그 이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외에도 특조위는 “해군이 수거했다는 DVR과 추후 검찰이 확보한 ‘세월호 DVR’의 손잡이 부분이 다르고, 전면부 잠금 상태 역시 달랐다”고 밝혔다. 박병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국 국장은 “해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보다 윗선”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측은 “윗선을 추론하는 게 대단히 조심스럽지만, 필요에 의해 사전에 DVR을 수거하고 포렌식을 해 내용을 살펴봤을 수 있다”며 “누군가 데이터에 손을 댔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침몰 직후 40여분의 사라진 CCTV 내용이 침몰 원인을 밝혀낼 결정적인 단서로 보고 있다. 피해자가족협의회 측은 “사고 직후부터 줄곧 CCTV를 고의로 껐거나 추후에 CCTV 영상이 조작될 가능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왔다”며 “이번 특조위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해당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하드디스크 복원 작업 등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해군은 “당시 현장에서 수거된 모든 증거물은 관계자 입회하에 즉시 해경으로 이관했다”며 “22일 수거된 DVR도 동일한 절차대로 당일 즉시 인계했다”고 해명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CCTV 편집·조작 정황” 근거는?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CCTV 편집·조작 정황” 근거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8일 “세월호 참사 증거자료인 폐쇄회로(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세월호 CCTV DVR(CCTV 영상이 저장된 녹화장치) 관련 조사 내용 중간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특조위는 “해군이 2014년 6월 22일 세월호 선내 안내데스크에서 수거했다고 주장해 온 DVR과 검찰이 확보한 DVR이 서로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며 “정황상 수거 과정에 대한 해군 관계자의 주장도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증거인멸의 증거가 상당하고, 관련 증거에 관한 제보가 절실한 점과 사안의 중대성, 긴급성 등을 고려해 조사 내용을 중간 발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그간 세월호 참사 주요 증거물인 DVR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된 데 따라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2014년 8월 검찰이 세월호 CCTV를 복원한 결과, 참사 발생 약 3분 전인 오전 8시 46분까지 영상만 존재해 침몰 원인과 선내 구조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없었다. 그러나 일부 생존자는 사고 당일 세월호가 이미 기운 오전 9시 30분까지 3층 안내데스크에서 CCTV 화면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선박사고 조사의 기초 증거인데도 참사 발생 두 달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CCTV DVR을 수거했다. 특조위는 DVR 수거 경위에서 해군과 해경 관계자들의 진술이 객관적 정황과 부합하지 않고, 수거 직후 해경 및 해군 관계자들이 보인 태도 등에 의혹이 있어 조사에 착수했다. 특조위는 먼저 해군이 2014년 6월 22일 세월호 선내 안내데스크에서 수거했다고 주장해온 DVR과 이후 검찰이 확보한 DVR이 서로 다르다고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 특조위는 “DVR 수거 담당자인 A중사는 2014년 6월 22일 밤 11시 40분쯤 안내데스크에서 DVR을 확인하고 그 본체를 케이블 커넥터의 나사를 푸는 방법으로 분리해 수거했다고 진술했다”며 “하지만 조사 결과 케이블은 분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DVR은 5개의 커넥터가 70여개의 케이블 선과 DVR을 연결하고 있었다. A중사 설명대로 케이블을 손으로 다 풀었다면 이 케이블선과 커넥터가 모두 발견돼야 하는데 세월호 선체 인양 후 해당 구역과 뻘 제거 영상을 확인한 결과, 커넥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특조위의 설명이다. 특조위는 해군이 6월 22일 당시 ‘가짜 DVR’을 동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DVR 수거 작업이 담긴 수중 영상을 확인한 결과, 분리·수거작업 과정이나 DVR을 들고 나오는 과정에서 영상 속에 DVR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특조위는 “해군이 수거했다는 DVR은 이후 해경이 마대자루에 보관하다가 추후 검찰이 확보한 DVR과 서로 다르다”며 “해군이 수거했다고 주장하는 DVR은 오른쪽 손잡이 안쪽 부분의 고무 패킹이 떨어져 있으나 검찰이 확보한 DVR은 고무패킹이 그대로 붙어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중사는 DVR을 선체 우현 현측 외판에 올려뒀다고 진술했지만, DVR 수거 작업이 담긴 수중 영상에는 A중사가 DVR을 들고 나오는 등의 장면이 담기지 않았다”며 “해군이 수거한 DVR은 전면부 열쇠구멍이 수직 방향으로 잠금 상태였지만, 검찰 확보 DVR은 수평으로 잠금 해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CCTV 화면 조작 여부에 대해서는 “데이터에도 손을 댔는지 들여다보고 있다”며 “데이터에 손을 댄 증거가 확보되면 복잡하고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 좌초설 신상철씨, 충남대 교수 고발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한 전 민군합동조사단 위원 신상철(61)씨가 사실을 왜곡했다며 노인식 충남대 조선해양학과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신씨는 27일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한 노 교수를 업무상 과실 및 위증 등 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신씨는 고발장에서 “노 교수는 천안함이 반파되면서 발생한 충격이 프로펠러 샤프트에 전달되는 관성의 힘으로 프로펠러 날개가 휘어졌다고 주장하는 등 과학적 사실을 심각히 왜곡하고, 이같은 내용을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증언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 교수는 프로펠러 손상 원인을 분석하면서 처음부터 좌초는 배제한 채 극소수 확률도 못 되는 폭발만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했다”면서 “이는 정부와 국방부가 설정한 ‘천안함 어뢰 폭침’에 부합하는 논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씨는 “노 교수는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 원인 분석을 도외시한 채 사실과 다른 내용을 합조단에 거짓과 조작의 근거 논리로 제공했다”면서 “과학자로서 직무를 유기하고 법정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증언해 위증의 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씨는 자신의 논리를 덧붙였다. 그는 “천안함 프로펠러가 휘어진 것은 해저지반(모래톱)에 좌초했다는 증거”라며 “우현 프로펠러가 집중적으로 손상을 입은 것은 좌초시 그쪽 프로펠러만 모래톱에 파묻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휘어진 부분이 샌딩한 것처럼 빤질빤질하고 따개비가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은 우현 프로펠러가 모래톱에 묻힌 채 회전을 했다는 뜻”이라며 “블레이드가 마치 S자처럼 휘어진 것은 좌초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사고가 난 2010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신씨는 19 차례에 걸쳐 인터넷매체 등을 통해 천안함 침몰 관련 허위 글을 올렸다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2016년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항소심 중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KB 왕조도 ‘우리’처럼…

    KB 왕조도 ‘우리’처럼…

    박지수 등 활약 우승 ‘통합 6연패 꿈’ 우리은행 독주 마감… 삼성·OK 약진2018~19시즌 여자프로농구(WKBL)가 KB스타즈의 통합 우승으로 5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25일 우승컵을 들어 올린 KB스타즈는 지난 12년간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것처럼 ‘왕조 구축’의 꿈을 꾸고 있다. 정규시즌과 챔피언 결정전 둘 다 만장일치로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박지수에다 염윤아, 강아정, 심성영으로 이어지는 국내 선수진이 탄탄해 한동안 막강한 화력을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우승으로 인해 차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낮은 순번을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KB에는 타격이 덜할 가능성이 있다. 박지수라는 든든한 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이 앞 순번에서 장신 선수를 싹쓸이 해도 KB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득점력 있는 선수를 노리면 된다. 안덕수 KB 감독도 “2연속 통합 우승을 반드시 이루겠다”며 벌써 다음 시즌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6시즌 동안 최강자로 군림했던 우리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시즌을 끝냈다. 임영희(39), 김정은(32), 박혜진(29)이 막강하긴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 탓에 체력 문제를 겪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데려왔던 크리스탈 토마스는 득점력이 아쉬웠다. 하지만 WKBL을 대표하는 명장인 위성우 감독이 있는 데다, 올 시즌 신인상에 빛나는 박지현까지 성장한다면 정상 재도전이 가능하단 평가가 나온다. 비록 챔프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삼성생명은 국내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하며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을 침몰시키는 반란을 일으켰고, 인수 기업이 없어 고생이던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4승)의 세 배가 넘는 13승을 챙기며 4위에 올라 박수를 받았다. 반면 올 시즌 5위의 KEB하나은행은 이훈재 국군체육부대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했고, 6위의 신한은행은 26일 “10배수 이상의 후보 리스트를 만든 뒤 인사검증과 면접을 거치겠다”며 신임 감독 선발 원칙을 밝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노르웨이 크루즈선 승객들 “침몰직전 타이타닉호 같았다”

    노르웨이 크루즈선 승객들 “침몰직전 타이타닉호 같았다”

    승객과 승무원 1,373명을 태우고 항해 중 노르웨이 해안에서 표류한 크루즈선 ‘바이킹 스카이호’가 무사히 항구에 정박했다.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출발해 12일간 알타와 트롬쇠 등을 거쳐 영국 런던의 틸버리 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바이킹 스카이호는 23일(현지시간) 악천후 속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켜 표류했다. 다행히 예인선과 헬기의 도움으로 구조작업은 끝났지만 최소 20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 2명은 중태다. 합동구조본부의 한스 비크 본부장은 “표류 상황에서 엔진이 재가동되기 전 배가 더 이동했다면 좌초될 수 있었다”면서 “배가 좌초했다면 큰 재앙에 직면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를 겪은 승객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아찔했던 표류 상황에 대해 속속 증언을 내놓고 있다.영국 하트퍼드셔주에서 온 한 60대 부부는 “이대로 죽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니스 토저(64) 부인은 사고 당시 수영장과 가까운 7번 갑판에 있다가 배가 휘청하면서 넘어져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다리가 찢어졌다. 그녀는 “배가 가라앉을 듯 흔들렸다. 암초가 바로 눈 앞에 있었고 배 안에 있던 의자, 탁자, 도자기, 화분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엉켰다”고 설명했다. 남편 마이클 토저(64) 역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고 말했다. 결혼 40년을 맞아 크루즈선에 오른 이들 부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배 안에서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홀로 크루즈선에 오른 영국 햄프셔주 출신 로베르타 타케는 “혼자 탄 배에서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면서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 있는 느낌이었고 이대로 익사하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승객들이 공개한 크루즈선 내부 영상에는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던 승객들이 배가 기우뚱하면서 패닉에 빠진 모습이 담겨 있다. 가구들이 쓸려내려가고 천장에서 떨어진 합판에 맞아 부상을 당한 승객도 있었다. 높은 파도가 창문을 깨고 배 안으로 들이치면서 승객들이 발을 들어올린 채 물을 피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미국인 승객 존 커리는 “배가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창문이 깨지고 바닷물이 들이쳤다. 혼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 대부분이 장년층이다보니 자칫 차가운 바닷물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객들은 강풍과 거친 파도가 예보된 상황에서 크루즈 운항을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내 바바라와 함께 배에 올랐다 구조되기까지 10시간 가까이 기다리며 공포에 떨었던 조지 데이비스는 “일기예보를 통해 이미 항해가 불가능한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배를 띄운 것이 놀랍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해양 전문 변호사이자 유람선 전문가인 짐 워커는 “바이킹 스카이호가 표류한 지역은 암석이 많고 파도가 거칠어 ‘배의 묘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라면서 “무리한 운항이었음에는 틀림 없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 선장 올라브 역시 “이 지역은 노르웨이 전 해안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이킹 스카이호 소유주인 노르웨이 억만장자 토스타인 하겐은 사고 후 병원을 방문해 승객들의 상태를 살핀 뒤 “끔찍한 경험임에는 틀림없지만 희생자 없이 잘 처리돼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이라크 티그리스강서 배 침몰로 최소 71명 사망

    이라크 티그리스강서 배 침몰로 최소 71명 사망

    이라크 티그리스강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최소 71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라크 내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의 티그리스강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71명이 사망했으며 어린이 19명을 포함한 55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사망자 대부분은 수영을 못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도 상당수 있어 사망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구조대는 아직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승객들은 쿠르드족의 새해 명절인 ‘노우르즈’ 행사에 참석하려고 모술의 관광단지로 가던 중이었다.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사고 원인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지시했다. 민방위의 한 소식통은 여객선이 정원을 훨씬 웃도는 승객을 태운 것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압델-레힘 알-샤마리 이라크 의원은 “배의 수용 인원은 50명인데 약 200명이 탑승했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종합] 윤지오, 문 대통령에 감사 인사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 같은 일”

    [종합] 윤지오, 문 대통령에 감사 인사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 같은 일”

    배우 윤지오가 문재인 대통령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윤지오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증언 전 변호인단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됐다.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 같은 일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라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아직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겠다”라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윤지오는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과 처음으로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법무부 박상기 장관,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에게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보고받았다. 이에 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하 윤지오 인스타그램 글 전문. 증언전 변호인단으로 부터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 같은 일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아직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분들과 처음으로 진실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고개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재인대통령 #국민청원 #고맙습니다 #진실규명 #증인 #윤지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경쟁보다 협력, 속도보다 방향, 이윤보다 생명존중이죠”

    “경쟁보다 협력, 속도보다 방향, 이윤보다 생명존중이죠”

    “내 아이가, 우리 아이가 주입식 암기교육·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에 병들고 아파하는데 침묵할 수 없었고요. 아파하는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경쟁교육 더 이상 못하겠다고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들이 해직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참교육학부모회 창립은 왜곡된 교육열로 아이들을 고통 속에 방치했다는 자성의 외침이었습니다. 아이들 개개인의 소질과 개성·꿈을 펼칠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해주고자 학부모들이 나선 거지요.” 나명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이하 참학) 신임회장의 일성이다. 실수실행(實修實行). 즉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진정한 지성인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교육 민주화에 헌신한 그의 모습에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소설이 생각난다. 유럽 선진국과 OECD 국가의 50% 이상이 법으로 금지하고 실시하는 ‘취학전 문자교육 금지’를 아시아 국가로는 대만이 유일하다. 그러나 현 정부의 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을 높이는 후퇴된 입시정책을 결정하고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을 허용한다고 발표를 보며 “촛불로 국민이 세운 정부이기에 맘대로 절망도 못 하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대통령님을 뵙고 다시 한번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라는 나 회장.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제도, 그리고 사회 풍조를 개선하는 것으로부터 내 아이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선각자의 길을 걸어온 나 신임회장을 만나 교육 민주화와 21세기 참교육에 대한 그의 소신을 확인하며 ‘없던 길을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는 말이 새삼 지혜로 다가온다. 편집자 주→양육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지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학교급식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식재료를 공급받기 위해 지방 곳곳 급식업체 실사를 다니며 학교 참여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바쁘다 보니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수업준비물을 빠뜨리는 일, 받아쓰기를 챙겨주지 못 하는 일 등 손길이 느슨해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당신 애나 잘 챙기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교사나 주변의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학부모’를 오직 ‘한 아이의 부모’, 가장 사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것이었어요. 아이를 키우며 더 힘들었던 것은 능력주의 신화를 의심 없이 강요하는 교육시스템과 거기에 무기력하게 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내면화하는 우리 교육 현장과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는 초등 저학년부터 매번 시험점수로 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고등학교는 아예 칠판에 학급 등수를 써놓고 복도에 전교등수를 기록합니다. 소고기 등급 나누듯이 아이들을 성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잘한 자에게는 보상을 주고, 못한 자는 루저 취급하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 학교 교육과정 내내 아이들은 시험점수만이 개인의 역량을 파악하는 도구라는 ‘능력주의’ 프레임에 익숙해집니다. 내 아이와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학부모운동을 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연대와 참여를 통해 해결해 나가려고 했습니다. →참교육활동을 하게 된 동기와 활동하면서 느꼈던 보람은 무엇인가요. -2000년대 초반 학교학부모회는 제가 아는 어떤 조직보다 비합리적이었어요. 자원하지 않은 자원봉사, 공교육이라면서 걷는 찬조금, 결산보고도 없는 예산 운영 등이 보편화된 사업방식이었어요. 19세기 학교에서 21세기 아이들을 키운다는 비판을 하잖아요. 그야말로 19세기 학부모회였지요. 그런데 의외로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교육혁신을 위해 만들어낸 제도가 있어요. 교육혁신을 위한 큰 무기이자 힘이죠. 교육의 변화를 위해 누군가 여기까지 끌어왔구나, 내 몫의 참여와 개혁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용을 공급받기 위해 참교육학부모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학생인권조례, 학부모회지원조례, 친환경 무상급식, 불법 찬조금 금지 등의 활동을 하면서 제왕나비를 떠올렸어요. 제가 부모로서 우리 아이에게 해준 최고의 선물은 교육운동을 한 것, 우리 세대와는 다른 출발지점에 서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배들의 발자취를 이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고, 함께 ‘참교육학부모회’라는 지속가능한 활동에 함께 하는 학부모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 우리가 쌓은 계단 덕분에 뒤에서 오는 누군가는 좀 더 쉽게 올라갈 거고, 저 역시 누군가가 쌓아놓은 계단을 딛고 덜 넘어지면서 여기까지 온 거겠지요. →30년 역사의 참학은 87년 6월항쟁 이후 교육 민주화와 궤를 함께한 듯합니다. 기간의 역사와 활동에 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설립됐는데 이에 참여한 교사들은 모두 해직을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는 우리가 지킨다’라며 선배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했지요. ‘전교조 탄압저지 및 참교육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시민사회와 함께 결성했습니다. 전교조합법화 집회에 나갈 때면 많은 협박이 있었다고 해요. 심지어 장학사가 와서 시비를 걸기도 했고 선배님들은 거리에서 집회 현장에서 수시로 연행되었답니다. 1989년 9월 22일 창립대회가 열렸던 향린교회를 전경들이 원천봉쇄하였는데 450여명의 회원이 참가했는데 그 수보다 전경과 사복경찰이 더 많았대요. 학부모가 두려웠나 봐요.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이 그때는 불온시 되던 엄혹한 시절이었지요. 창립과 동시에 ‘육성회비 반환청구소송’을 했어요. 소송으로 육성회비는 수업료와 다른 잡부금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으나 재판에는 패소했어요. 그러나 이후 육성회비는 폐지되었습니다. 또한 참교육학부모회가 ‘불법찬조금신고센터’를 설치해서 부당한 찬조금과 촌지 요구에 대해 제보를 받았었는데 어찌나 제보가 많았던지 당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이를 근거로 감사청구도 하고 고발도 했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데 근거자료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참교육학부모회 하면 촌지 없앤 단체’라고 많은 분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촌지로 인한 고통이 컸다는 반증이라 봅니다. 그 외에도 학교급식법 개정 및 무상급식운동, 학교운영지원비 폐지,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등등 다양한 일들을 했습니다. →최근 참교육학부모회가 중점을 두는 활동은 무엇인지요.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지요. 학교자치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이 산교육이라 생각합니다. 학부모가 학교자치를 실현하는 하나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교육과 상담을 하고 지원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또한 텅 빈 학교운동장을 보면 마음이 아팠어요. 넓은 운동장 한켠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을 불렀어요. ‘와글와글 놀이터’는 그렇게 태어났어요. 놀이터를 지켜주는 학부모를 ‘놀이터 이모’라고 불렀어요. 저희는 운동장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기꺼이 놀이터 이모가 되려 합니다. OECD 35개국 중 만 19세에 선거권을 갖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에요. 오스트리아는 만 16세에 선거권을 갖는데 말이죠. 청소년에게 선거권도 안 주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심한 모순이죠. 청소년이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선거연령 18세 미만 하향, 정치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정당법개정, 어린이 청소년인권법 제정, 학생인권법제정 운동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임회장으로서 포부와 하시고자 하는 주요 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요.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 중에 동엽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가 침몰하는 배에서 하던 말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 동엽이가 펼치지 못한 꿈, 우리 아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어요. 과거 정권에서 우리 아이들은 꿈꿀 틈이 없었어요. ‘고교다양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줄 세우고 고등학교 입시부터 아이들을 경쟁시키기에 바빴죠.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없이 바로 입시정글에 내던져진 셈이지요. 다행히도 국가교육회의 중심으로 미래 교육을 제시하는 2030교육체제를 마련 중에 있습니다. 입시지옥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교육체제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자 합니다. 올해는 참교육학부모회 30주년입니다. 그 역사를 기록하고 총정리하려 합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30년을 내다보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교육계와 다양한 사회의 지성들과 함께하는 자리도 마련하려 합니다. →현 정부 취임 1주기를 맞이하여 문재인 대통령께 편지를 보냈다는데요. -세월호참사로 250명의 아이를 잃었습니다.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그 아이들이 유예시킨 꿈을 생각하며 진도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세월호’에 갇혀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사 호소하기 위해 글을 올렸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 속도보다는 방향, 이윤보다 생명존중’의 가치가 교육에 녹아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을 높이는 후퇴된 입시정책을 발표했고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을 허용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교육 시장에 정부가 굴복했다고 봅니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사교육시장과 거기에 영합하는 교육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거죠. 또한 부모의 비능력적 요소의 격차를 없애는 것은 공교육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촛불로 국민이 세운 정부이기에 맘대로 절망도 못 하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대통령님을 뵙고 다시 한번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참교육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체제는 국가책임이 빈곤한 공공성 부재 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내 자식의 교육은 학부모의 각자도생과 경쟁우위라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으며 학력과 학벌이 계층상승의 주요한 수단이 되어 입시 중심 교육이 지배해 왔습니다. 이는 경쟁과 수월성(秀越性)과 소비자 선택권 추구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체제가 우리 교육의 골간이 되어버린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교육선택권이란 이름으로 계속해서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미국은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비가 비싼 사회로 유명한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이 당연시되고 사회공공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반면 북유럽 나라들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사회연대 의식이 보편화되고 공동체는 활성화됩니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단순히 교육비 부담의 문제가 아니며 신자유주의 교육을 극복하는 참교육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세월호 동물뼈’는 음식물쓰레기”…인양·수색 작업 어떻게 했길래

    “‘세월호 동물뼈’는 음식물쓰레기”…인양·수색 작업 어떻게 했길래

    세월호 인양 및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수천점의 동물뼈 대부분이 잠수부와 인양업체 직원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쓰레기였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결국 세월호 침몰 현장에 음식물쓰레기와 인체 유해가 뒤섞여 있었다는 의미로, 세월호 인양·수색 작업을 총괄한 해양수산부가 너무나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감사요구로 진행된 세월호 인양 관련 감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인양·수색 과정에서 음식물쓰레기로 추정되는 돼지·닭뼈 등 동물뼈 6705점(세월호 내부 3880점, 외부 2825점)이 미수습자의 유골 144점과 같이 수습됐다. 특히 세월호 외부에서 발견된 동물뼈 2825점의 82%(2318점)가 세월호 인양 후 2차 수중수색 중 선체가 누운 자리(펄)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수습된 반면 미수습자 유해 유실방지망 전체 구역에서는 507점만 수습됐다. 감사원은 동물뼈들이 세월호 침몰지점의 수면 위에서 아래로 버려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인양업체였던 상하이샐비지의 당시 작업총괄자로부터 일부 음식물쓰레기를 해양에 투기했다는 진술 영상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해양수산부는 음식물쓰레기와 미수습자 유해가 섞이지 않도록 침몰지점 주변 오염에 대해 철저히 관리해야 했다”면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동물뼈가 발견됐다면 상하이샐비지가 환경관리기준 등에 부합하게 인양 작업을 했는지 사후에라도 확인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해양환경관리법에 따르면 선박이나 해양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은 해양에 배출하지 못하게 돼 있다. 앞서 해양수산부는 인양 작업 전인 2015년 9∼11월 유실방지망을 선체 창문 등에 설치해 선체 내에 동물뼈 등 음식물쓰레기가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이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참사 당시 세월호에는 뼈로 남을 수 있는 음식이나 육류 등이 일절 없었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3개월 후인 2014년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4개월 동안 실종자 구조와 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투입된 잠수 인력에 식사로 소·돼지·닭 등 육류가 제공됐고, 이들은 식사 후 바지선 갑판 등에서 세월호 침몰지역 해양에 음식물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하이샐비지는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세월호 인양작업을 위해 중국에서 12척의 작업선을 출항시키면서 식자재 총 21만 9936㎏ 상당을 공급했으며, 추가로 진도군의 한 회사에서 최소 950만원 상당의 돼지등뼈 등을 산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세월호 인양 과정에서 불거졌던 인양 지연과 선체 훼손 의혹 등은 사실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당초 상하이샐비지는 해상크레인과 플로팅독을 이용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했지만, 중간에 공법을 바꿔 반잠수식 선박과 재킹바지선을 활용한 공법으로 세월호를 인양했다. 감사원은 인양공법이 바뀌면서 세월호 선체가 일부 훼손된 것은 맞지만, 해양수산부가 공법 변경의 불가피성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사전에 알렸고, 절단된 구조물도 별도 장소에 보존 처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또 재킹바지선 방식이 해상크레인 방식보다 개선된 기술로 평가받고 있고, 전문가 기술자문회의를 거쳐 공법을 바꾼 만큼 고의로 인양을 지연시켰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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