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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vs133 울돌목 신화, 명량대첩 감동이 재현된다

    13vs133 울돌목 신화, 명량대첩 감동이 재현된다

    2019 명량대첩축제가 오는 27~29일 사흘간 ‘불멸의 명량! 호국의 울돌목!’을 주제로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등 울돌목 일원에서 개최된다. 전남도와 해남군, 진도군이 공동주최하고, 재단법인 명량대첩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정유재란 당시 기적의 대승으로 불리는 명량대첩과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기념행사, 명량대첩 당시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 체험이 다채롭게 진행된다. 축제의 백미로 꼽히는 명량대첩 해전재현은 울돌목 바다에서 9월 28일 오후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펼쳐진다. 지역 어민들이 조선 수군과 왜군으로 나눠 울돌목 바다위에서 명량해전 당시의 해상전투를 재현하는 행사다. 올해는 특수효과를 강화해 수중 폭파와 침몰 장면 등을 재현, 실제 전투와 같은 박진감있는 연출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남 우수영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 녹진까지 출정식 퍼레이드와 명량대첩 해상 퍼레이드와 함께 해전재현이 메인 행사로 이어진다. 국내외 20여개팀이 참여하는 전국수군무예대회와 명량청소년 가요제, 온겨레 강강술래 한마당, 명량대첩 축하쇼, 미디어파사드 등도 마련됐다. 특히 야간 프로그램을 강화해 밤에는 우수영 명량대첩해전사 기념 전시관 외벽을 활용한 영상공연 미디어파사드가 펼쳐진다. 강강술래 EDM 밤, 비보이와 무용의 협업 공연 인수화풍 퍼포먼스, 드론라이트쇼인 명량대첩 별들의 전쟁 프로그램 등이 계속된다.무예버스킹, 해군음악회 등 특색있는 볼거리와 함께 조선시대 저잣거리 체험과 수군 체험 등 가족단위 즐길거리도 풍성하게 준비했다. 오는 26일부터 30일까지 제1진도대교의 교통이 통제된다. 축제장까지 셔틀버스(해남읍~축제장, 우수영여객터미널~축제장)가 운행된다. 군 관계자는 “박진감 넘치는 해전재현을 비롯해 다른 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행사를 다양하게 마련했다”며 “축제의 즐거움은 물론 역사문화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축제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대학교수 “전쟁나면 여학생 위안부 된다” 여성 비하 논란

    대학교수 “전쟁나면 여학생 위안부 된다” 여성 비하 논란

    1학기 땐 극우 유튜버 영상내용으로 시험 출제동의대 “진상위서 녹취파일 확인 뒤 징계”A교수 “정치 논리 강요 안해…19일 소명”부산의 한 대학교수가 강의 시간에 “전쟁이 나면 여학생들은 위안부가 된다”는 등 수차례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 동의대 총학생회는 지난 10일 A교수의 문제 발언이 담긴 녹취 파일과 탄원서를 학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녹취 파일에는 9월초 첫 강의에서 A교수가 “전쟁이 나면 여학생은 제2의 위안부가 된다. 남성은 총알받이가 될 것이다”, “여름방학이면 여자들이 일본에 가서 몸을 판다”는 등의 망언이 담겨 있다. A교수는 또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2014년 4월16일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목숨이 잃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학생들 앞에서 주장했다. 해당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은 40명이었으나 A교수의 발언을 들은 학생 절반 이상이 수강 신청을 취소했다. A교수는 지난 1학기에 개설된 또 다른 수업에서도 극우 유튜브 채널 목록을 A4용지에 인쇄해 나눠준 뒤 “이 채널에 올라온 영상 내용 안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총학생회는 A교수에 대해 학교 측의 진상 조사를 공식 요청했고, 다른 강사로 강의를 교체하고 A교수의 파면을 요구했다. 총학생회는 “이전에도 학생들이 A교수에 관해 문제제기를 했으나 동의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동의대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A교수가 미국으로 출장을 가 지난달 29일 귀국해 지금까지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다”면서 “진상조사위가 열리기 전 교무처장이 지난 6일에 개인 면담을 했다”고 해명했다. 동의대는 학생들의 강사 교체 요구에 “A교수에 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무기한 휴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동의대는 A교수의 서면 해명과 교무처장 면담 자료를 토대로 지난 16일 오후 5시에 첫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었다. A교수는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 논리를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A교수는 “오는 19일 열리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소상히 소명하는 것으로 언론 대응을 갈음하겠다”면서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를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동의대는 “녹취 파일을 듣고 해당 발언의 진위를 확인한 뒤 징계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면서 “학생들 수업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히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본지는 A교수에게 녹취 파일 등 관련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나룻배 끊겨 한 달을 결근…/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나룻배 끊겨 한 달을 결근…/손성진 논설고문

    한강 다리가 몇 개 안 되던 시절 나룻배가 사람과 차를 실어 날랐다. 서울 남북의 한강변에는 1960년대에 모두 19곳이 있었다. 광나루, 송파나루, 마포(삼개)나루, 서강나루, 뚝섬나루, 신천나루, 한강진나루, 새말·사평나루, 동작(동재기)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 공암나루 등이다. 나룻배는 가축과 화물, 마차, 손수레, 자동차까지 실어 날랐다. 1970년대 초반 나룻배 요금은 사람은 버스 요금과 같은 20원, 용달차는 100원이었다. 뚝섬과 봉은사 사이를 다니던 나룻배는 폭 5m, 길이 12m의 뗏목 형태로 뒤에서 모터보트가 밀어서 운행했다. 말이 끄는 마차와 비슷하다고 해서 ‘마차배’라고 불렀다. 갑자기 모터가 멈추면 노를 저어야 했다. 배에 직접 모터를 달고 ‘제비호’ 등의 이름을 붙인 철선도 있었다. 강북의 학생들은 나룻배를 타고 봉은사로 소풍을 갔다. 이용객은 많을 때는 하루 500여명, 한 해 4만여명에 이르렀다(경향신문 1964년 3월 26일자). 장마철에 한강 물이 불면 나룻배 운행이 중단됐다. 지금은 강남의 중심부인 잠원동과 신사동은 장마철이면 섬처럼 고립됐다. 이곳에 살던 어느 회사원은 홍수로 나룻배가 끊겨 강북에 있던 회사에 한 달이나 출근을 하지 못했고 어느 고등학생은 학교에 가지 못해 학기말 고사를 치르지 못했다. 나룻배는 밤 11시면 끊어지기 때문에 한남파출소에는 밤에 나룻배를 놓쳐 재워 달라는 사람이 매일 10여명이나 있었다고 한다(경향신문 1969년 12월 26일자). 나룻배는 적정 인원을 넘겨 태우기 일쑤였고 침몰 사고가 잇따랐다. 나룻배가 침몰해 49명이 익사한 사건은 1963년 경기도 여주에서 일어난 참사였다. 1962년 9월 7일에는 한남동에서 잠실 쪽으로 가던 나룻배(마차배)가 전복돼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거민촌인 사당동 배나무골에서 흑석동에 이르는 도로는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해 주민들은 나룻배로 버스가 다니는 이수교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1969년 8월 9일 내린 폭우로 한강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사당동에서 승객을 가득 싣고 나오던 나룻배가 전복돼 7명이 숨졌다. 양화대교가 1965년에 개통돼 하류 지역 나루터의 기능을 대부분 흡수했다. 1969년 크리스마스날 한남대교가 개통되자 서잠실나루(잠원나루)와 신사나루가 자취를 감추었다. 1972년 7월 잠실대교가 개통돼 신천나루터도 사라졌고 뱃사공도 일자리를 잃었다. 청담나루, 압구정나루, 토막나루(암사동), 행주나루 같은 작은 나루들도 그 위에 영동대교(1973년 개통) 등 다리가 생기면서 없어졌다(동아일보 1972년 12월 29일자).
  • [시론] 문화체육관광부는 응답하라/정란수 프로젝트 수 대표·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

    [시론] 문화체육관광부는 응답하라/정란수 프로젝트 수 대표·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

    최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까지 이르는 등 한일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여행, 관광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성숙한 국민들은 일본의 부당한 대응에 자발적으로 맞서서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한편 대체 여행지로 국내 지역이나 해외의 다른 국가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한일 간 항공 노선이 축소되고, 대체 노선이 확정되는 등 크고 작은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국민들의 이런 움직임에도 관광 분야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그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거나 발빠르게 대응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체부는 이 같은 국내 여행 대체 흐름에 맞춰 국내 관광산업의 다각적인 발전 방향을 근본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일본 여행 보이콧과는 별개로 해외여행 감소로 인한 여행업계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점검과 대책 마련도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엄중한 시기에 한 문체부 고위 관리가 ‘친일은 곧 애국’이라는 지탄받아 마땅한 주장을 공공연히 펼쳤으니 더욱 딱하기만 하다. 얼마 전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 줬던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구조팀을 파견하는 등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돋보였다. 문체부 역시 당연히 피해 주체인 관광객들의 안전과 여행업계의 관행적 문제점은 없었는지를 살펴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헝가리에서의 활동과 대응책에서 어쩐 일인지 문체부의 역할은 크게 드러나지 않아 보였다. 사고 이후 긴급 소집된 중앙대책본부 화상회의에서조차 본부장인 강 장관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에서 장관이 동석한 것과 달리 문체부에선 차관이 자리에 나오기도 했다. 사고 이후 여행객 안전 대응에 미흡한 문체부의 행정과 정책에 대해 언론 등 각계에서 지적한 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사항이다. 물론 국가 정책 실행이 늘 발빠를 수는 없다.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책일수록 보다 진중하고 체계적인 준비와 추진이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현안에 따라 흐름을 발빠르게 파악하고, 주무 부처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관심은 없고 힘들어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일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관광 분야는 매우 빠른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갖고 있다.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 등 체류형 관광이 나타나는가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여행하는 이른바 생활관광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 여행이 일상화되고 다변화되는 경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 공인 통계인 국민여행조사에서 내국인 관광객이 국내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통계 수치에서 제외되고 있다. 외래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관광객에 대한 관광객 수치나 관광 수지는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늘어나는 국민들의 해외여행은 정책 논의 대상에서 등한시해 온 것도 그렇다. 한일 관계부터 해외여행, 그리고 체류형 관광과 같은 문제까지 급변하는 관광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개별 여행자와 민간 관광산업의 흐름을 문체부는 잘 파악하고 대변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올해는 국가관광전략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하며 관광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챙긴 의미 있는 원년이다. 관광은 그저 외화 벌이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삶의 질, 그리고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다.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여행업계의 변화가 필요한 이 시점에 문체부에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국내 관광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국가관광전략회의보다 낮은 수준의 상시 전략회의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일본 여행의 대체재를 발굴하고, 보다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 여행의 일상화 추세, 생활관광 개념 확대 등을 위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광정책 수립 시 국가와 지자체 등 공급자 입장이 아니라 여행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왜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는지, 왜 국민들이 여행지에 가서 불만을 갖는지 등을 수요자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 현대글로비스 화물선 美해상 사고 “韓선원 4명 구조, 화재로 어려움”

    현대글로비스 화물선 美해상 사고 “韓선원 4명 구조, 화재로 어려움”

    현대글로비스 소속 대형 자동차 운반선(PCC)이 8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미국 동부해안에서 옆으로 기울어졌다. 사고 선박에는 모두 24명이 승선했는데 20명은 긴급 대피하거나 구조됐는데 선체에 화재가 발생해 한국인 선원 4명이 있는 기관실 쪽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 해안경비대(USCG)가 밝혔다. 해안경비대 찰스턴지부를 이끄는 존 리드는 이날 오후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연기와 불길 탓에 구조대원들이 선내 깊숙이 진입하는 게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은 연기는 더 이상 선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드는 다만 “선체 내부로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완전 진화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선박 상황이 안정돼야 구조대원들이 선내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당국은 오염경감(pollution mitigation)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현재까지, 선박에서 밖으로 오염물질이 유출되지는 않고 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와 외신 등에 따르면 차량 운반선 골든레이(Golden Ray) 호(號)는 이날 오전 1시 40분쯤 조지아주 브런즈윅항의 내항에서 외항으로 현지 도선사에 의해 운항하던 중 선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골든레이호는 브런즈윅 항구로부터 1.6㎞ 거리의 수심 11m 해상에서 좌현으로 80도가량 선체가 기울어졌다. 선박정보업체 ‘베슬 파인더’에 따르면 브런즈윅항에서 출항한 골든레이호는 9일 오후 7시쯤 볼티모어 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볼티모어항은 브런즈윅항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1100㎞가량 떨어져 있다. 사고 선박은 침몰하지는 않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승선한 24명 가운데 사고 발생 10시간 만에 20명이 대피하거나 구조됐다. 구조된 인원은 한국인 6명, 필리핀인 13명, 미국 도선사 1명 등이다. 외교부는 사고 수습을 위해 주애틀랜타 총영사관의 담당 영사를 현장에 급파했으며, 해양수산부 등 관계 당국과 협조해 선원 구조와 사고 경위 파악 및 한국민에 대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글로비스도 현지 직원을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USCG는 “대략 새벽 2시쯤 찰스턴의 선박 감시 대원들이 글린카운티 911 파견 대원으로부터 골든레이호가 전복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감시대원은 긴급 해상 정보방송을 내보내고 구조인력들을 배치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브런즈윅 긴급대응 보트, MH -65 돌핀 헬리콥터, 찰스턴지부, 사바나 해상 안전팀, 구조엔지니어링대응팀(SERT) 등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7년 건조된 7만 1178t급 선박으로, 마셜제도 국적이다. 길이 199.9m에 폭 35.4m로 차량 7400여대를 실을 수 있다. 사고 당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차량 4000여대를 선적했다. 선적된 차량이 배 밖으로 유출되는 등의 물적 피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항만 당국은 사고 해역의 반경 5마일 이내에는 항해를 제한하고 있다고 USCG는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태풍 강타로 강화도 대부분 정전

    제13호 태풍 ‘링링’의 강타로 인천에서는 8일 오전 8시 현재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강화도에서는 전날 점심 무렵 부터 3만 8000여 가구중 2만 1300여 가구에 대한 전기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어젯 밤 늦게 까지 순차적으로 전기공급이 재개됐으나 길상면 초지리와, 섬인 교동과 서도 338가구 주민들은 이 시간 현재 까지 정진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강화군에 따르면 어제 점심 무렵 부터 강풍으로 전봇대가 쓰러지거나 변압기가 손상되면서 강화군 곳곳에서 전기 공급이 끊겼다. 전체 주민의 70%가 정전으로 밤늦게 까지 불편을 겪었다. 배 편을 이용해야 하는 섬 지역 등에서는 아직 정전이 계속되고 있다. 서해 북단인 옹진군 연평도에서도 같은 날 오후 1시36분쯤 도로에 세워져 있던 전신주가 강풍에 쓰러져 가정집 591곳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오후 2시 44분쯤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주차장 인근에서는 한진택배 건물 담벼락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회차 지점에서 잠시 쉬려고 시내버스에서 내린 운전기사 A(38)씨가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숨졌다. A씨 이외 강화·옹진·부평·계양 등 시내 곳곳에서 행인들이 강풍으로 인해 다쳤다. 이날 오후 1시 12분쯤 인천 부평구 한 한방병원 건물에 설치된 간판이 지상으로 추락해 길을 가던 40대 여성이 부상했다. 오전 11시 52분쯤에는 옹진군 영흥면 선재리 한 창고에서 70대 노인이 강풍으로 넘어진 구조물에 어깨를 다쳤고, 1시간 뒤 계양구 계산동에서는 40대 남성이 교회 건물에서 안전조치를 하려다가 다쳤다. 오후 3시 4분쯤에는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강풍에 파손된 창문에 20대 여성이 다치기도 했다. 500년 된 보호수가 꺾이는 등 인명을 제외한 강풍 피해도 1100여 건이 넘게 신고됐다. 시설물 피해 신고가 31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간판 추락 146건, 나무 쓰러짐 150건, 정전 2건 등이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공원에서는 수령이 500년 된 보호수 회화나무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꺾였고, 옹진군 영흥면 내리 면사무소 앞 나무와 연평도에 있는 소나무도 뿌리째 뽑혔다. 부평동 아파트 단지에 있던 가로수도 강풍에 쓰러져 주차된 차량 위를 덮쳤다. 바다에서 선박사고도 5건 발생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옹진군 장봉도 대빈창 선착장에서는 피항 중이던 3톤 어선 선미가 부서져 물이 들어차자 선주와 해경이 홋줄을 보강해 침몰을 막았다. 장봉도 큰야달 선착장에서는 2.9톤 어선 홋줄이 터지면서 전복되거나 4.15톤 어선이 해역 바닥에 얹히는 사고도 났다. 강화도에서는 외포항에 피항 중이던 2.96톤 운반선 홋줄이 터져 표류 중인 것을 인근 어선이 발견해 구조했다. 수도권기상청 인천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 40분 현재 인천 지역 최대순간풍속은 초속으로 옹진군 영흥도 14.2m, 인천 10.3m, 송도 8.8m였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40~82㎜를 기록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美 새벽 소형선박서 폭발 화재… 잠자던 34명 덮쳤다

    美 남동부 허리케인 ‘도리안’에 비상사태 미국 캘리포니아주 앞바다에 있던 소형 선박에서 2일(현지시간)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삽시간에 탑승자 최소 2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화재는 이날 새벽 3시쯤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스섬 연안에 정박해 있던 상업용 다이버 선박 ‘컨셉션호’에서 발생했다. 컨셉션호는 화염에 휩싸인 뒤 수심 20m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사고 직후 승무원 5명은 바다로 뛰어들어 인근에 있던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미 해안경비대 매슈 크롤 부지휘관은 이날 “시신 25구를 수습했다”고 말했다. 해안경비대는 나머지 실종자 9명에 대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고 당시 선박에는 승무원 6명과 승객 33명 등 모두 39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한편 허리케인 도리안이 강타한 카리브해 바하마에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2일 집계됐다. CNN에 따르면 이날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2700여편의 항공편이 취소됐으며, 플로리다 레고랜드와 디즈니랜드도 휴장했다. 플로리다와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에 이어 버지니아주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헝가리 부다페스트 놓지 않은 희망의 끈···허블레아니호 ‘실종자를 찾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놓지 않은 희망의 끈···허블레아니호 ‘실종자를 찾습니다’

    주헝가리한국대사관 실종자 찾습니다 글대사관 페이스북과 홈페이지 등에 게재허블레아니호 마지막 실종자 찾기 위해가족 측이 제안, 여행사가 사례금 부담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수색 과정에서 끝내 찾지 못한 마지막 한명의 실종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헝가리 현지에서 아직 진행 중이다.2일 주헝가리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대사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허블레아니호 실종자의 특징 등을 담은 ‘실종자를 찾습니다’ 공지글을 게시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한국인 1명을 찾고 있습니다. 발견하신 분께 1백만 포린트(한화 약 400만원)를 사례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단 한 명의 실종자까지도 끝까지 찾길 바라는 의지가 담겼다. 글은 대사관 홈페이지 팝업창에도 게시됐다. 대사관 관계자는 “헝가리 경찰에도 이러한 문구를 담은 공고를 전국에 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실종자 찾기 공고는 앞선 정부의 합동 수색에서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과 여행사 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실종자 신고 사례금은 여행사 측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29일(현지 시각) 한국인 관광객 33명과 헝가리인 승무원 등 총 35명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대형 선박 바이킹 시긴호에 부딪혀 침몰했다. 이 사고에서 7명이 생존했고 헝가리인 2명을 포함해 27명이 숨졌다. 사고 직후 우리 정부는 수색팀을 파견해 지난 7월까지 헝가리 정부와 합동 수색을 진행했다. 이후 헝가리 경찰에서 지난달 중순까지 실종자를 수색했으나 실종자 1명은 끝내 찾지 못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美 서부해안 다이빙 보트 불에 타 침몰, 25명 사망 9명 실종

    美 서부해안 다이빙 보트 불에 타 침몰, 25명 사망 9명 실종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상에 정박해 있던 다이버용 소형 보트가 2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화재로 침몰해 탑승자 39명 가운데 25명이 주검으로 확인됐다고 해안경비대가 밝혔다. 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앞서 선장과 승무원 등 5명은 구조됐다. 한국인 승선자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불은 새벽 3시쯤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남쪽, 말리부 서쪽 바다의 산타크루스섬 연안에 정박해 있던 상업용 다이버 선박인 ‘컨셉션호’에서 일어났다. 보트는 선체 길이 22m 정도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140㎞ 떨어진 산타크루스섬 북쪽 해안의 18m 지점에 정박 중이었다. 컨셉션호는 화염에 휩싸인 뒤 뱃머리 일부만 남겨둔 채 수심 20m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AP통신은 해안경비대 매튜 크롤 부지휘관의 말을 인용해 갑판 아래쪽 선실에서 잠자던 탑승자들은 대부분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갑판 위에 있던 선장과 승조원 등 5명이 물에 뛰어들어 가까운 곳에 있던 그레이프 에스케이프호에 의해 구조됐다고 전했다.  벤투라 카운티가 지역구인 줄리아 브로드웨이(민주) 의원은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희망을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탑승자 가족은 KTLA 방송에 “선상에서 프로판가스 폭발이 있었다고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해안경비대와 소방당국은 “현재로선 화재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탑승자들이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화재가 급속도로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을 소유한 플리츨러스 트루스 아쿠아틱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배의 최대 탑승 인원은 46명이며 110명을 위한 구명조끼와 탈출용 보트가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는 샌타바버라에서 산타크루스섬까지 산호초와 해양생물을 수중 탐사하는 스쿠버 다이버들을 실어 날랐다.  사고 선박은 1981년 건조됐으며 그동안 특별한 사고나 법규 위반 사례는 없었다. 컨셉션호는 노동절 사흘 연휴를 맞아 지난달 31일 샌타바버라 항구에서 출항했으며 2일 오후 돌아갈 예정이었다.  한편 LA 한국 총영사관은 “현재 한국인 또는 한국 교민 탑승자가 있는지 확인 중”이라며 “지금까지 교민 안전과 관련해 문의해온 확인 전화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96세 ‘최고령 스쿠버 다이버’ 또 경신

    96세 ‘최고령 스쿠버 다이버’ 또 경신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최고령 스쿠버 다이버’ 기네스 세계기록 보유자인 영국인 레이 울리(96)가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AP통신은 31일(현지시간) 울리가 이날 키프로스공화국의 항구도시 라르나카 앞바다에 1980년에 침몰한 제노비아 호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울리는 이날 47명의 다른 다이버들과 함께 48분간 잠수해 수심 42.4m에 다다랐다. 1923년 8월 28일생인 울리는 자신의 생일 전후로 세계 기록을 경신해 왔다. 2017년 생일에는 라르나카 앞바다에서 38.1m까지 잠수해 기네스 세계 기록에 현역 최고령 스쿠버 다이버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9월 1일에 같은 장소에서 40.6m까지 잠수해 95세 4일의 나이로 자신의 기록을 깼다. 해마다 최고령 다이빙 기록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울리는 “내년에도 기록 경신에 도전할 것이며 100세까지 잠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시집가는 게 취직’ 성차별 발언 일삼은 여대 교수…“해임 정당”

    ‘시집가는 게 취직’ 성차별 발언 일삼은 여대 교수…“해임 정당”

    자신이 가르치는 여대 학생들에게 “시집가는 게 취직하는 것”이라는 등 성차별적 발언을 한 교수의 해임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안종화 부장판사)는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청구 기각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1일 밝혔다. 모 여대 조교수 A씨는 지난해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 사유로 학교 교원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해임됐다. 대학은 A씨가 “그렇게 커서 결혼을 할 수 있겠냐? 여자가 키 크면 장애다”, “문란한 남자 생활을 즐기려고?”, “시집가는 게 취직하는 것이다”는 등의 여성 비하 발언을 여러 차례 하거나 SNS에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그뿐만 아니라 A씨는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 죽은 딸 팔아 출세했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못 하는 것을 공약으로 하는 후보는 뽑으면 안 된다”는 등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A씨는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거나 발언했더라도 진위를 오해한 것이니 징계 사유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수업 시간에 한 발언 내지 SNS에 게재한 글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해임 처분한 것은 지나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발언이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의 여성 혐오·비하 발언은 해당 강의의 목적 및 취지와 무관하게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원고의 평소 성차별적 편견에서 기인한 여성 집단 자체에 대한 내부적 혐오의 감정을 저속하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비방, 폄훼, 조롱, 비하 등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서 “A씨는 자신이 지도해야 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2년 동안 특정 집단에 대한 개인적인 혐오 감정 또는 편견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며 “구성원들에게 정신적·심리적인 고통을 주고 그런 차별과 편견에 동참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라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단독] “악몽 꾸는 내게…그들은 참수리호 펄을 치우라 했다”

    [단독] “악몽 꾸는 내게…그들은 참수리호 펄을 치우라 했다”

    제2연평해전 생존자들, 17년 만의 증언“너희들이 펄 안 치우면 누가 치우냐”‘특별관리’ 한다더니 진급 혜택조차 없어“지금이라도 명예 회복받고 싶다” 울분“상부에서 군 생활하는 동안 우리를 ‘특별관리’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니 침몰한 참수리호를 뒤덮은 ‘펄’(해저 진흙)을 직접 치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맨발로, 그 엄청나게 썩은 펄을 치우다 무서운 독(毒)이 올라 병원까지 여러 번 다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2002년 제2연평해전에 ‘갑판장’으로 참전했던 이해영(56) 예비역 원사가 17년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제2연평해전 전우회장으로, 지난해 9월 3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군복을 벗었습니다. 이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군인 신분이 아니니 속시원하게 우리 전우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만 기억합니다. 그 뒤에 숨겨진 생존자들의 아픔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꼭 ‘진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합니다. ●“내부에선 우리를 ‘패잔병’ 취급했다”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을 9시간여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내려온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참수리 고속정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습니다. 생존대원들은 포탄이 터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벌여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쫓아냈습니다. 적 함정은 갑판이 대부분 부서졌고 3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적을 패퇴시킨 참수리호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해저로 가라앉았습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승전 대원들의 아픔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씨의 설명입니다. “머리 부위 피부가 탄에 맞아 찢어졌고 꿰맸는데 8일 만에 국군수도병원에서 내쫓기듯 나왔습니다. 실밥 겨우 뽑고 마음 안정도 안 된 나를 바로 2함대 의무대로 보내더라고요. 일반 수술 환자도 그런 대접을 하진 않습니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패잔병’으로 취급했습니다.”전투 직후 정부는 이 사건을 ‘서해교전’으로 명명했습니다. ‘승전’이 아닌 ‘남북 충돌’ 의미가 강했습니다. 2008년이 돼서야 기존 승전인 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으로, 서해교전도 승전 의미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했습니다. 그 때 전사자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행사로 승격됐습니다. 이씨는 전투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지금도 배에 물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악몽을 꾼다”며 “피가 나오는 전쟁영화를 못 본다. 동물 다치는 것만 봐도 손이 덜덜 떨릴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내려온 상부의 지시는 인양한 참수리호에 가득 차 있는 펄을 치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는데 부대에서 생존대원들에게 펄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용역을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죠. 그런데 상부에서는 ‘다른 대원들이 그걸 하겠냐. 너희들이 거기서 생활했는데 너희들이 안 치우면 누가 치우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빨리 퇴원한 10여명이 그걸 물청소를 하면서 다 치웠습니다. 그 때 군인 신분이어서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승전’했지만…전사자만 특진 1999년 7월 4일 제1연평해전에 참가했던 해군 유공장병 7명은 1계급씩 특진을 했습니다. 군장병이 교전으로 특진한 것은 6·25와 월남전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제2연평해전 생존대원은 외면했습니다. 윤 소령 등 전사한 6용사가 특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정부는 또 당시 전사한 6명과 심한 부상을 당했던 생존장병 3명을 각각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대상자로 정했습니다. 나머지 부사관 7명과 병사 6명은 무공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국방부 장관·참모총장 표창으로 격이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생존대원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씨는 “5년 뒤인 2007년 심사까지 받고 다음해 상사에서 원사로 진급했습니다. 2함대에서 인사 고과에서 특별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우대해준 게 없어요. 작심하고 함대 사령부에 따졌지만 변화가 없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라고는 충남 계룡대에서 군의관에게 진료 1번 받은 것 뿐이에요. 트라우마 치료 기록이 있으면 오히려 보직을 제대로 맡지 못할까봐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는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계속해야 할 상황에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씨는 이 대목에서 숨을 참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군은 ‘사기’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참전용사에게 특진이나 훈장은 커녕 국민 성금이 포함된 보상금 1000만원과 대통령 표창이 전부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훈격 격상 같은 명예 회복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습니다. ●“12년 만에 트라우마 치료…그것도 서울에서” 또 다른 생존자 곽진성(38) 예비역 하사는 제2연평해전 당시 ‘전기장’으로 참전했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오른팔 관통상과 포탄 폭발로 인한 엉덩이 파편상을 입은 상태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왔습니다. 8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2003년 3월 전역했습니다. 곽씨의 설명입니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 등 군 관계자들이 사복을 입고 병원 주변에서 상주하고 모든 대화나 상황을 모니터링했기 때문에 불만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참전 부사관들은 심한 부상을 당해도 훈장 대상자에서 모두 빠졌고, 상부나 부대에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도 8개월간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지만 ‘부사관은 뺀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습니다. 또 “환자 후송이나 사후 지원을 하던 부대에서 승진자가 나오고 상을 받았지만 정작 참전대원은 승진에서 제외되고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습니다.곽씨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경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생존대원 중에 정부 지원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대부분 사비로 치료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다 12년쯤 지나 정부에서 갑자기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곽씨는 “우리 일정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지방에 있는 나에게 서울에 올라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며 “실태조사를 해보고 문제가 되니까 실적 쌓으려고 부른 것 밖에 더 되겠나. 왜 오라고 하는 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해전 이후 보상금으로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씨보다 부상 정도가 심해 더 많은 보상금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10%인 300만원만 정부 지원금이었고 나머지 90%는 ‘국민 성금’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참전용사에게 보상금을 줄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한 것입니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전투행위 자체는 보훈대상으로 예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의 침략을 막으려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더라도 사망하거나, 7급 이상 상이 등급을 받거나, 훈장을 받지 못하면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 합니다. 그래서 17년이 지난 지금도 제2연평해전 참전 예비역 중 2명이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3번 이상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연이어 탈락했습니다. 이는 현재 복무 중이거나 보훈심사 중인 대원을 제외한 인원입니다. ●“지원부대 상받는데…난 땡볕에서 박수쳤다” 따라서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처럼 특수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특별히 희생하거나 헌신한 참전용사에 대해 예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제2연평해전 참전자들은 서울신문에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수술하고 몸도 안 좋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청소를 했고, 깨끗한 군복 챙겨입고 땡볕에 나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상받을 때 박수치고 있자니 너무 울적했습니다.” “참전 병사와 부사관만 차별해 국무총리상, 국방부 장관상을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유가족들이 있으니) 일단 알았으니까 너희들은 조용히 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참전용사는 그냥 ‘쩌리’(보잘 것 없는 사람)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우리가 과연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또 어떤 대우를 해왔는지 곱씹어봐야 할 때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언론사망’ 검색어 뜬 이유 “시민운동 폄하말라”

    ‘한국언론사망’ 검색어 뜬 이유 “시민운동 폄하말라”

    29일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한국언론사망’이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오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랭킹은 각 포털의 고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 배열된다. 이 검색어를 제안한 네티즌은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성명을 올려 그 취지를 알렸다. 글쓴이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언론의 오보에 분노했지만 당신들의 입에, 손에 재갈이 물려있다 생각해 인내하며 기다렸다. 당신들이 파업할 때 응원하고 지지했다. 그 재갈이 풀리면 우리 언론이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낼 거라고 기다렸다”며 “그러나 당신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도가 올라가도 신뢰도는 4년 연속 전 세계 최하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 멀어지는 간극을 메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언론에 참담함을 느낀다. 언론의 윤리와 책임을 망각한 당신들은 부디 부끄러워하라”면서 “사법개혁,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온라인 시민운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명서 말미 “온라인 시민운동을 폄하하지 말라. 조국수호, 적폐청산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강조했다. 글쓴이는 “자꾸 조국 지지자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폄하하는 언론들이 보여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만 좀 적어봤다. 사법개혁에 대한 갈망과 사법검찰 개혁을 언급하고 싶기도 해서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법원 “세월호 불공정 보도 박상후 前 MBC 부장 해고 정당”

    세월호 참사 당시 MBC에서 관련 보도를 총괄 지휘한 박상후 전 MBC 전국부장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부장 이종민)는 27일 박 전 부장이 자신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MBC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의 선고 공판을 열고 박 전 부장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박 전 부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 급파된 서울·목포 MBC 기자들을 총괄 지휘하는 전국부장을 맡았다. MBC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당시 MBC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불공정하고 부실하게 이뤄진 데 대해 박 전 부장이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며 지난해 6월 그를 해고했다. 또 ▲2018년 4월 26일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 제작을 위해 취재하던 MBC 기자의 취재를 방해하고 폭행한 점 ▲전라도 지역 출신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수시로 사용한 점 등도 해고 사유로 삼았다. 반면 박 전 부장은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MBC가 징계 재량을 일탈·남용했다며 해고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부장이 기자의 취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사실은 은폐·축소하려고 했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다. 박 전 부장의 지위를 고려할 때 비위 정도가 매우 무겁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배 안에 300명 이상 남아 있다는 말을 들은 목포 MBC 기자가 자사 보도부장에게 ‘전원 구조’가 오보임을 전달했고 전국부장인 원고에게도 오보임을 알렸지만 원고는 오보를 즉시 바로잡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기자가 사고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가 500명이 아니라 16명이라는 내용을 단독으로 취재해 보고했지만 박 전 부장이 이 내용을 편집회의 때 올리지 않은 점 ▲해경 간부가 ‘(세월호 탑승객)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받고도 기사화하지 않은 점 등을 잘못으로 꼽았다. 재판부는 “언론사 내부 의사결정권자의 자율권이 국민의 알권리에 앞설 수 없고 원고가 보도하지 않은 내용이 보도 가치가 없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징계 사유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법원 “세월호 불공정보도 박상후 前 MBC 부장 해고 정당”

    세월호 참사 당시 MBC에서 관련 보도를 총괄 지휘한 박상후 전 MBC 전국부장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부장 이종민)는 27일 박 전 부장이 자신의 해고가 부당하다며 MBC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의 선고 공판을 열고 박 전 부장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박 전 부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 급파된 서울·목포 MBC 기자들을 총괄 지휘하는 전국부장을 맡았다. MBC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당시 MBC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불공정하고 부실하게 이뤄진 데 대해 박 전 부장이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며 지난해 6월 그를 해고했다. 또 2018년 4월 26일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 제작을 위해 취재하던 MBC 기자의 취재를 방해하고 폭행한 점 전라도 지역 출신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수시로 사용한 점 등도 해고 사유로 삼았다. 반면 박 전 부장은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MBC가 징계 재량을 일탈·남용했다며 해고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부장이 기자의 취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사실은 은폐·축소하려고 했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다. 박 전 부장의 지위를 고려할 때 비위 정도가 매우 무겁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배 안에 300명 이상 남아 있다는 말을 들은 목포 MBC 기자가 자사 보도부장에게 ‘전원 구조’가 오보임을 전달했고 전국부장인 원고에게도 오보임을 알렸지만 원고는 오보를 즉시 바로잡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기자가 사고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가 500명이 아니라 16명이라는 내용을 단독으로 취재해 보고했지만 박 전 부장이 이 내용을 편집회의 때 올리지 않은 점 해경 간부가 ‘(세월호 탑승객)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받고도 기사화하지 않은 점 등을 잘못으로 꼽았다. 재판부는 “언론사 내부 의사결정권자의 자율권이 국민의 알권리에 앞설 수 없고 원고가 보도하지 않은 내용이 보도 가치가 없다고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징계 사유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동해서 조업 어선 침몰…승선원 7명 모두 구조

    동해에서 조업 중인 어선이 침몰했으나 승선원 7명은 침몰 전에 모두 구조됐다. 27일 오전 8시 50분쯤 경북 경주시 감포읍 동쪽 약 92㎞ 해상에서 조업하던 포항 구룡포선적 9.77t급 어선 A호가 침몰 중이라고 해경에 신고했다. 포항해양경찰서는 연안구조정과 헬기를 출동하는 한편 주변 바다에서 항해하거나 조업하는 어선에 구조를 요청했다. 이에 인근에서 항해하던 어선 다온호(9.77t급)가 오전 9시 12분쯤 A호 갑판에서 대기하던 선원 7명을 모두 구조했다. 구조된 승선원 7명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해경 연안구조정을 타고 구룡포항으로 들어왔다. A호는 전복된 상태다. 포항해경은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 정장(대위)이었던 윤영하 소령은 253편대 기함인 358호정과 함께 기습도발을 감행하던 북한 경비정 차단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1.1㎞가량 침범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참수리 357호정과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고, 참수리호의 좌현이 노출됐습니다. 이때 북한군이 갑자기 85㎜포로 기습공격을 했습니다. 150m 거리에서 날아든 포탄에 순식간에 357호정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함교에 올라와 있던 윤 소령은 즉각 대응사격 명령을 내렸지만 연이어 날아든 총탄에 피격돼 안타깝게 산화했습니다. 당시 참수리호 함교는 지붕과 벽면이 없었기 때문에 윤 소령의 위치가 그대로 노출됐고 적의 집중적인 사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함교 아래 조타실에서는 조타장 한상국 상사가 치열한 교전 과정에 가슴에 흉탄을 맞았습니다. 그는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상태로 숨을 거뒀습니다.적의 포화는 20㎜ 벌컨포 사격을 맡은 병기사 황도현 중사에게도 집중됐습니다. 그는 포탄 파편이 머리 쪽으로 날아드는 순간에도 몸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모습 그대로 발견돼 동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40㎜ 함포로 적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던 병기사 조천형 중사도 좌석에서 화재로 숨지는 순간까지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M60 기관총으로 사격하던 서후원 중사는 적함의 저격수에게 희생됐습니다.●희생 장병들 방아쇠 놓지 않고 끝까지 응전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내달렸고 서 중사가 쓰러지자 직접 M60 기관총을 붙들고 응사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다시 총탄이 쏟아졌고 온몸에서 100여개의 총탄과 파편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다 출혈로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인공호흡기와 수많은 의료기기를 단 상태로 사투를 벌인 박 병장은 결국 84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함께 반격하는 358호정은 그대로 두고 집요하게 357호정만 공격해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윤 소령을 포함한 모든 장병이 목숨을 걸고 반격해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권기형 상병은 왼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황창규 중사는 적의 기습공격으로 40㎜ 함포의 전원 장치가 손상되자 수동 사격으로 전환해 적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부장(중위)이었던 이희완 중령은 지휘관인 윤 소령이 전사하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이들의 분전으로 적함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갑판이 대부분 부서진 채 NLL 북쪽으로 퇴각했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은 적과의 교전에서 큰 상처를 입고 결국 침몰했습니다. 조타장 한 상사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357호정 조타실에서 발견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함정 추진 방식 프로펠러→워터제트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오후 8시에 열리는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6용사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윤영하 소령, 박동혁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뉴스로 보거나 영화로 봤던 ‘제2연평해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분전과 헌신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 대응지침(교전수칙)은 ‘경고방송 →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였습니다. 이것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등 3단계로 단순화됐습니다. 단계별 조치를 취하다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호의 교훈을 되새기는 의미였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서해 NLL의 경비는 130t급의 참수리 고속정(PKM)이 맡았지만, 지금은 40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검독수리(230t)급 신형 고속정(PKMR)이 맡고 있습니다. 검독수리급 고속정은 76㎜ 함포와 130㎜ 유도로켓을 장착해 원거리에서 북한 경비정을 타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함교를 함 구조물 내부로 넣어 정장이 비바람은 물론 적의 표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외관 구조를 대폭 개선했습니다. 또 윤영하함(400t)급 유도탄고속함은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선체에 76㎜ 함포와 대함유도탄을 장착했습니다. ‘프로펠러’로 기동하던 함정의 추진 방식도 ‘워터제트’로 바꿔 기동력을 높였습니다. 새로 건조된 유도탄고속함에는 윤 소령을 포함한 6용사의 이름이 차례로 붙여졌습니다.●16년 지난 작년에야 특별법으로 전사자 예우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일반순직’으로 처리됐습니다. ‘전사자’를 전사자로 부르지 못하고 ‘순직자’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당시 ‘군인연금법’에는 ‘전사’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었고,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무상 사망’ 보상기준에 따라 1인당 3000만~6000만원의 보상금을 제공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에서 돈을 줄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후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군인연금법에 ‘전사’에 대한 보상기준을 신설했지만 정작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유족에게 추가 보상금(1인당 1억 4400만~1억 8400만원)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이제야 도리를 다하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 해군 관계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으로 보상제도 등 군 체계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라며 “군은 피를 흘리면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전사하신 분들의 아픔이 너무 컸다”고 토로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직전 윤 소령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남긴 갚진 유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107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 현재 모습 공개…“부식 상태 심각”

    107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 현재 모습 공개…“부식 상태 심각”

    107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는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대서양에서 한 탐사팀이 해저에 잠들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난파선을 조사하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화제다. 2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한 유명 탐험가가 이끄는 한 탐사팀이 14년 만에 뉴펀들랜드 해안의 수심 3810m 해저에 있는 타이타닉을 다시 방문했다.지난 5월에도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 수심 약 1만928m 지점 탐사에 성공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해저탐험가 빅터 베스코보가 이끄는 탐사팀은 이달 초 유인 잠수정을 타고 잠수해 다섯 번에 걸쳐 타이타닉을 조사하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러웠던 이 여객선은 금속을 먹는 박테리아와 염분에 의해 빠르게 부식되고 심해 해류의 영향으로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됐다. 이에 대해 이번 원정에 참여한 역사학자 파크 스티븐슨은 “타이타닉 열성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선장실 등은 이제 사라졌다. 한쪽 갑판 전체가 무너져 내린 상태”라면서 “타이타닉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탐사팀이 공개한 영상은 철로 된 뱃머리가 박테리아의 영향으로 녹이 심하게 슬어 고드름처럼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모습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타이타닉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이번 원정에 동참한 과학자 로리 존슨은 덧붙였다. 타이타닉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은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탐사팀은 기상 악화와 거센 조류 탓에 타이타닉 주변을 항해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타이타닉이 잠들어있는 해저는 빛도 거의 없고 수압이 강해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탐사에서 철을 먹는 미생물들이 집락(콜로니)을 이뤄 5만 t의 철을 서서히 녹슬게 하고 고운 가루 형태로 만들어 해수로 퍼져나가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탐사팀은 타이타닉은 오는 2030년까지 완전히 파괴되리라 예측된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타이타닉호는 지난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항에서 미국 뉴욕항으로 대서양 횡단 항해를 시작해 4일째 되는 14일 오후 11시 40분쯤 빙산에 충돌해 15일 이른 아침 뉴펀들랜드의 남쪽 약 600㎞ 지점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승선자 2208명 1513명이 사망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판깨스트] 판결로 본 ‘세월호 보고조작’… “김기춘, 허위 보고 직접 주도”

    [판깨스트] 판결로 본 ‘세월호 보고조작’… “김기춘, 허위 보고 직접 주도”

    “(대통령)비서실에서는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끊임없이) 유·무선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대통령은 직접 대면보고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7월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와 서면답변서를 제출하고 보고서 내용 그대로 국회에서 답변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 법원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권희)는 “청와대의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들을 기만하고자 한 것으로 그 죄책(죄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른바 ‘세월호 보고조작’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의 판결 내용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과 이후 청와대가 보고시각을 조작한 과정을 되짚어 봤습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발생 무렵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국무회의나 외부 행사 등 공식적인 일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주로 관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등 관계 공무원들과 직접 대면하여 국정을 논의하거나 보고를 받는 일이 드물었고 주로 서면보고를 받았다” 김 전 실장 등의 판결에 기본 전제사실로 적힌 박 전 대통령의 근무 형태와 보고 방법입니다. 공식 행사가 없을 때는 관저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나가기까지 7시간 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가 사고 직후부터 큰 논란이 됐죠. ●청와대, 최초 보고시간 ‘9시 30분→10시’으로 수정 왜? 사고 직후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이 오전 9시 30분 사고 발생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사고 상황에 대한 첫번째 보고서를 작성한 국가안보실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오전 9시 19분쯤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뉴스속보 자막을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소식을 접했고, 안보실 소속 전모씨는 9시 22분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을 이용해 각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 등에게 사고 발생 소식을 알렸습니다. 역시 안보실 소속인 이모씨는 10분 안에 상황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겠다고 보고 보고시간을 ‘2014. 4. 16(수) 09:30’으로 적은 상황보고서 1보를 작성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사항만 보고를 올렸다가 상황팀장인 김모씨의 지시를 받고 조난 신고 시간, 배의 명칭과 톤수, 탑승인원 등을 추가로 파악했고 김씨가 이씨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1보 보고서를 수정했습니다. 상황2반의 상황팀장인 백모씨가 9시 39분과 9시 42분쯤 구조세력 동원 현황을 파악했고 9시 54분과 9시 57분쯤 56명이 구조됐다는 것과 구조된 인원이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7㎞ 떨어진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해경 상황실과의 전화통화로 파악했죠. 이미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예상한 보고시간보다 30분 가까이 지체가 됐습니다. 그리고는 안보실 상황팀은 1보 초안을 작성해 10시에 상황병에게 김장수 전 실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김 전 실장이 1보를 검토한 뒤 신인호 전 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에게 1보를 대통령에게 보내도록 지시했고 신 전 센?장은 10시 12~13분쯤 1보 보고서를 출력해 밀봉한 뒤 상황병에게 관저로 전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위기관리센터에서 대통령 관저 인수문까지 597m를 상황병이 뛰어서 이동할 경우 소요되는 시간은 약 6분 20초. 관저 경호원이 이를 전달받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은 최소 10시 19~20분이 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 내용입니다. 1보를 포함해 국가안보실에서 청와대 관저로 상황보고서를 보낸 것은 모두 세 차례였습니다. 1보가 10시 19~20분쯤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10시 40분쯤 상황보고서 2보, 11시 20분쯤 상황보고서 3보가 각각 안보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와 함께 정무수석실 산하 사회안전비서관실에서 해경 출신 이모 행정관이 해경 상황실 등과 통화하며 파악한 내용들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보냈습니다. 오전 10시 36분, 10시 57분, 11시 28분, 오후 12시 5분, 12시 33분, 1시 7분, 3시 30분, 5시 11분, 8시 6분, 8시 50분, 10시 9분 총 11차례 정 전 비서관에게 이메일이 전달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정 전 비서관이 이메일을 열어보았는지, 이메일 속 보고서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실제로 보고됐는지는 확인하지 안?고 정 전 비서관도 비서실에 이메일을 받았는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는지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회 답변 앞두고 보고시간 및 대응상황 재점검…김기춘 “좋아, 다음으로” 일일이 확인 스스로 탈출한 생존자들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참사의 비극이 나날이 짙어지자 청와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상황이 전달되지 않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다 참사 일주일 뒤 김장수 전 실장은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통일, 정보, 국방 분야의 컨트롤타워이지 자연재해 같은 게 났을 때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해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고조시켰죠. 참사 당일 과연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가 이뤄졌고 왜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못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국회는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국회 운영위원회와 국정조사특위가 7월로 예정되자 5~6월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예상 질의·응답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각 수석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들인 실무자들이 작성한 답변자료 초안을 직접 검토한 뒤 6월 18일부터 7월 9일까지 14차례 ‘검독회’를 갖습니다. 쟁점별로 질의응답을 직접 주고받으며 정리하는 것이죠. 신동철 당시 정무비서관이 예상 질의내용과 답변을 읽은 뒤 관련된 수석들이 부가적인 설명을 하는 식으로 답변 내용이 정리되면 김기춘 전 실장은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판결에는 “피고인(김기춘 전 실장)이 각 답변자료에 대해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질의사항 및 답변사항 추가, 수정 및 삭제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히 청와대의 늦장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신인호 센터장은 국가안보실의 최초 사고 인지 시점과 최초 서면보고 시점 등에 대해 정확하게 다시 사실관계를 파악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애초에 안보실에서 작성된 1보에는 ‘9시 30분’으로 보고시간이 적혀있었지만 실제로 1보 보고서가 완성된 시간은 10시가 다 가까워졌으니 보고시간부터 이미 틀린 상태였습니다. 판결에는 “상황팀 직원 모두 상황보고서 1보에 기재된 보고시간 09:30이 실제 보고시간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이들이 최초 보고시점을 특정하려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상황팀은 위기관리센터 안에 있던 폐쇄회로(CC)TV 두 대를 통해 당시 보고서를 전달한 상황병들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9시 50분쯤을 1보 보고서의 보고시간으로 특정했습니다. 이후 그해 6월 초까지 1보 보고서의 보고시간을 9시 50분으로 정리했는데, 해경 녹취록을 입수한 뒤 9시 50분도 틀린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해결 녹취록과 상황보고서 1보의 내용을 비교해 보니 9시 57분쯤 안보실이 파악한 구조 인원들이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1보에 포함돼 있던 겁니다. 청와대는 최초 보고시간을 10시로 바꾸기로 결정했는데, 누구의 지시와 제안으로 최초 보고시간을 10시로 바꾸게 됐는지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이 서로 엇갈려 명확하지 않습니다. 상황팀 직원들은 자신들이 변경 지시를 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일로, 정무수석실 관계자들로부터 변경됐다는 내용을 들었다고만 했습니다. 보고시간을 수정한 것과 함께 재판의 쟁점이 된 것은 과연 ‘실시간으로’ 보고가 이뤄졌는지였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그해 7월 7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업무현황 보고에 이어 7월 10일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서 잇따라 박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부터 서면보고를 받은 뒤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달받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이 10시 서면보고를 대통령에게 올리자마자 10시 15분에 대통령이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주셔서 해경에 지시를 하도록 했고, 다시 또 해경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시고 그 이후에 저희들이 계속 간단없이 20~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보고시간은 최소 10시 19~20분보다 늦었음에도 세월호 탑승자가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시간인 10시 17분의 ‘골든타임’ 이전에 보고가 이뤄졌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전 10시에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조작했고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고 했다는 게 김기춘 전 실장의 공소사실 핵심 내용입니다. ●법원 “‘20~30분 간격, 끊임없이 보고했다’는 김기춘 답변은 허위” 김기춘 전 실장 측은 특히 정호성 전 비서관을 비롯한 부속비서관실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통령에게 10차례 이상 보고가 됐으니 실시간으로 보고한 게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서는 “오후 1시 27분쯤 관저로 올라가 비서실에서 받은 보고서(10시 36분부터 1시 7분까지 보내진 6건)를 한꺼번에 출력해 침실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 방법으로 보고를 했다. 다만 오전 10시 36분과 57분 보고서는 오전에 관저에 한 번 올라가서 갖다 드렸거나 팩스르 보냈을 수도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오전에 한두 번 팩스를 넣었던 것 같고, 오후에 관저에 올라가면서 출력해 침실 앞 탁자에 올려두었던 것 같다”면서 그 뒤 오후 상황까지 자세히 보고 시점을 언급했습니다. 검찰과 법정 증언이 엇갈리는데 특히 사고와 더 멀리 떨어진 법정에서의 진술이 더 자세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정 전 비서관이 기억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 정 전 비서관이 실제 몇시에 몇 번이나 관저에 직접 찾아가 보고를 했는지를 밝힐 증거는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김기춘 전 실장이 정 전 비서관에게 보고 시간 및 횟수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보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여기에 국회 질의응답 자료를 준비하던 실무자들은 한 목소리로 ‘실시간으로’,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라는 문구는 김기춘 전 실장이 직접 쓴 표현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재판부는 “사고 당일 대통령비서실이 정호성에게 이메일로 보낸 대통령에 대한 서면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보고서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전달되지 않은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대통령이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 보고를 전달받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허위의 사실을 기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당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과 직접 대면한 사람은 그날 오후 2시 15분쯤 관저를 방문한 최순실씨와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이었는데 이 가운데 비서실에서 이메일을 받은 정 전 비서관조차 그날 점심 무렵까지 상황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정 전 비서관이 평소에 급한 보고서가 있으면 바로 팩스로 대통령에게 전송했다고 하면서 그날은 팩스를 보냈는지 아닌지 기억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오후 2시 50분쯤 김장수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190명 추가 구조 보고는 서해 해경청에서 본청에 잘못 보고한 것”이라고 보고할 때까지도 그렇게 큰 사고인 줄 몰랐다며 스스로 불찰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대면한 사람 가운데 그나마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인식과 가장 비슷했을 텐데 그조차 오후까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으니 박 전 대통령 역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대통령이 최초 보고를 받은 때부터 약 7시간에 이르도록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내에 갇혀있는 것조차 몰랐던 것은 아닌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5년. 이날 선고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노란색 옷을 입고 온 유가족들은 방청권을 미리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법정 밖에서 울부짖던 부모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2014년에 살고 있다고요”, “자식을 이렇게 잃은 부모의 심정을 알기나 합니까?” 목이 터져라 토로하던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김기춘 전 실장은 피고인석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미세먼지·재난 사고… 국민들은 불안하다

    미세먼지·재난 사고… 국민들은 불안하다

    ‘사회 전반 안전체감도’ 5점 만점에 2.65 재난안전 분야별 조사 대상 13개 모두↓ 환경오염·사이버위협·성폭력 최하위권 점수 하락 폭은 ‘안보위협’ 0.2점 가장 커올해 상반기 국민들의 안전체감도가 2분기 연속 하락했다. 미세먼지와 강원 산불과 같은 재난 사고가 잇따라 사회 전반의 불안감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환경오염과 사이버위협, 성폭력 분야의 체감도가 가장 낮았다. 행정안전부는 여론조사 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3세 이상 일반국민 1만 2000명과 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국민 안전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우리 국민이 느끼는 ‘사회 전반 안전체감도’는 5점 만점에 2.65점으로 조사됐다. 전 분기인 지난해 하반기(2.74점)보다 0.09점, 전전 분기인 지난해 상반기(2.86점) 대비 0.21점 낮아졌다. 2017년 상반기 2.64점이었던 안전체감도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같은 해 하반기 2.77점, 2018년 상반기 2.86점 등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다가 2018년 하반기(2.74점)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올해 상반기까지 내림세를 보였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12월)와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1월),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2018년 9월), 경기 고양 백석역 온수관 파열사고(2018년 12월), 미세먼지(2019년 3~4월), 강원지역 산불(2019년 4월),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2019년 5월) 등이 국민의 안전체감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재난안전 분야별 국민 안전체감도는 조사 대상 13개 분야 모두 하락했다. 환경오염(2.19점)과 사이버위협(2.25점), 성폭력(2.26점) 등이 최하위권이었다. 체감도가 가장 낮은 환경오염은 올해 초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고통이 컸음에도 정부 대응이 미흡해 불만이 커졌다고 행안부는 설명했다. 점수 하락 폭은 안보위협(2.74점) 분야가 0.20점으로 가장 컸다. 지난해부터 수차례 남북대화,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됐음에도 북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자 긴장감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 안전의식 조사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7월 시작했다. 6개월마다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안전체감도는 2013년 3점을 웃돌다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상반기 2.58점으로 급락했다. 이후 다시 상승해 2015년 하반기 2.92점까지 올랐다가 2016년 하반기에 조류인플루엔자·탄핵 정국 여파로 2.64점으로 떨어졌다. 김계조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국민 안전의식이 낮은 분야는 관련 정부 안전대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국민의 불안감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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